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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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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일송 스님 출가하던 시절 댓글:  조회:1990  추천:0  2015-03-21
일송 스님 출가하던 시절     아는 분의 누나가 일송 스님이라고 일엽 스님 밑에 계시던 분인데,  그분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엽 스님이 병중에 계실 때 업어서 모시고 산에 다니신 분입니다.      그분이 고등학교 3학년인가 되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출가를 했대요.  집에서는 그런 낌새를 전혀 안 보여서  자기 누나가 그렇게 집을 나가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나 봐요.      아주 모범생이었는데 편지 한 통 써놓고 떠나서  수덕사로 일엽스님을 찾아간 거예요.  아마 책을 보고 간 모양입니다.      집에서는 너무 놀라서 절마다 다 뒤져서  어떻게 수덕사에 있는 것을 알아내어 거기를 찾아갔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찾아와서 만류하면서 집에 가자고 며칠을 그러고 있으니까  이분이 대뜸 산으로 올라가더랍니다.  그러니까 부모님도 기를 쓰고 따라 올라갔대요.      산꼭대기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니까 부모님께서 늙으셔서 힘들잖아요.  그래도 막 헐떡이면서 따라가는데, 아무리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렇게 못한다면서 계속 올라오더래요.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죠.  딸이 출가한다는 것은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죽는 것보다 더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죽자 사자 기를 쓰고 따라오니까  더 이상 오지 말라고 그러면서 바위 앞에 딱 서더랍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올라오시면 바위를 굴리겠다고 하더래요.      그런 마음입니다.  그분이 진짜 부모님을 향해 바위를 굴리겠습니까?  살인을 하겠느냐고요.  하지만 구도하는 사람들은 그런 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앞길을 막는 사람은, 아무리 나를 사랑해서 그런다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막는 사람은  보모님일지라도 바위를 굴릴 수 있다는 자세,  그것이 구도심입니다.  구도심에 한번 불이 붙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 그렇지 않은 상태이고 사회에 미련이 많을 때는  누가 조금만 유혹해도 같이 어울리고 싶어져요.  그러나 일단 때가 되어 구도심에 불이 붙으면 그런 정도로 됩니다.      저도 수련할 때 친구고 누구고 하여튼 악착같이 전화 오고  집 앞까지 따라오고 그랬는데,  그 때는 얼마나 칼같이 잘랐는지 몰라요.  당시는 욕하고 그러더니 나중에 공부 끝나고 나니까 다시 좋아하게 되더군요.      “그러느라고 그랬구나”하고 이해해요.  그 당시에는 온갖 말고 해도 안 되더군요.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또 전화하고 또 찾아오고 그래요.      사람이 그렇습니다.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니까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왜 저러는가? 미쳤는가?” 그렇게 생각해요.  도대체 이해를 못 하니까 그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더군요.      아주 칼같이 자르고 무안까지 주고 그랬습니다.  너무너무 무안을 줘서 다시는 전화를 안 할 정도로 해야  인간관계가 잘라지더군요.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사회생활 다하고 소외되지 않았잖아요.  제가 스스로 소외되고 싶어서 소외된 것이지  따돌림을 당해서 소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이 사람들이 수련을 안 해도 기운이 맑고 좋은 것을 아나 봐요.  자꾸 무슨 일이 있으면 찾고 하소연하고 상담하고 계속 그러더군요.  제가 따라다니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다녀요.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기운의 향기를 다 맡아서 결사적으로 달라붙어요.  구도자가 아닌 수도자, 즉 도를 구하는 단계가 아니라  도를 닦겠다는 수도자의 입장에서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다 옵니다.  그러니까 소외 당할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지금도 그 사람들이 계속 전화하고 찾아오곤 합니다.  남들이 안 가지고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러워하지 소외되지는 않습니다.         
244    몸과 마음 댓글:  조회:1720  추천:0  2015-03-19
몸과 마음     욱체는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의 결과가 몸을 통하여 표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몸이라는 것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나를 싣고 갑니다.  나를 대표하며, 나를 반영하며, 나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지요.      사람의 인체는 소우주라고도 하며 아주 오묘해서 신비스럽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의학이 많이 발달되어 인체의 구석구석이 다 파악이 되고 있지만  막상 질병의 발병 원인이나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이 나타나는 병원체 등은  의학계에서도 큰 숙제로 남아있을 것 같군요.      사람의 인체는 사실 기본적으로는 다 똑같으면서도 이상하리만큼 모든 사람이 다릅니다. 비슷하지만 길이, 넓이, 폭, 색깔 등이 모두 다르며 그래서 생김새가 모두 다르게 생겼지요. 그에 따라 행동들 역시 판이하게 다르고요.      우리의 몸을 크게 세 등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초, 중초, 상초인데요.    하초는 배꼽아래부터 골반부분이며 에너지인 힘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생명력, 의지력이 주 임무이죠. 하초의 장부로서 주主가 되는 것이 신장이 되겠습니다.      중초는 흔히 말하는 오장육부가 자리하고 있는 상체부분인데 위장, 간, 심장, 폐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러 색깔의 감정을 담당하고 있으며, 많은 감정 중에서도 사랑이 가장 많이 언급이 되죠.      그리고 상초는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으며 생각을 주도하는 머리부분이죠. 각 개인의 컨트롤 타워입니다. 아직은 대략의 개요 외에는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신경계, 면역계 등 그 수를 헤아릴 수는 없지만 삼초 위주로 설명을 해보았습니다.  또한 장부는 육체적인 기능과 동시에 정신적인 기능도 같이 수행을 합니다.      예를 들어 위장인 소화기능이 약해졌을 때는 본인의 인간관계가 뾰족한 면은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소화기관는 음식만이 아니고 주변의 인간관계의 소화 능력 역시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간의 기능이 떨어졌을 때는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평상시 화를 잘 내시는 분이 아니신지 보고 그 성향부터 고치셔야 됩니다. 간이 태과 되었다고들 하지요. 그럴 경우 연계가 되는 부위인 눈, 목 등이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큰 그림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사람마다 모두 다르며 환경 등에 따라서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마음의 표현이 몸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관찰하면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몸과 마음의 연계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아시다시피 내적인 균형상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육체적으로 시초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관리에 대해 서 중점적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을 자동차에 비유를 하고 마음을 짐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어떤 이는 태어날 때 어떠한 이유로 인해 아주 소형차를 부여 받았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최신 벤츠와 같은 좋은 차를 부여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몸이 아무리 좋은 차라 하더라도 짐을 반 이상 실으면 안 됩니다. 항상 반은 비어있어야 되지요. 용량이 크고 좋은 차라고 해도 가득 채워가지고 다니면 머지않아 고장이 나고 망가집니다.      또한 아무리 몸이 강건해도 이 몸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장이 잘 나는 차를 가지고 먼 길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인 우리의 몸과 마음을 타인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몸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너무 험하게 다루기도 하지만 사실 이 몸은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맡기지 마시고 스스로 아껴주고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주는 방법을 터득하여야 된다고 봅니다.       
243    부부관계의 여러 가지 유형 2 댓글:  조회:2029  추천:0  2015-03-18
부부관계의 여러 가지 유형 2         그런 것을 상대방이 알던데요.  금촉은 아니지만 수련을 하면 할수록  남편이 어떻게 행동을 하든지 반응을 안 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그것을 상대방이 알고는 아주 서운해하고 투정을 부려요.  왜 그렇게 자기를 사랑 안 해주냐고……  육체적인 접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한테 관심을 쏟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래도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 건가요?        그런 것을 보지도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보고는 있는데 거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다 보고, 할 말 하고, 조언할 것 해주고  도와줄 것 도와주고 다 하는데  다만 내가 거기에 엉켜서 같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그것조차 서운해해요.  무슨 일이 있으면 예전에는 같이 울어주고 그랬는데  “아, 이제는 그렇지 않군”라는 것을 느끼면서  좀 멀어진다는 것을 느끼나 봐요.  제가 할 일은 다 해주는데도  마음이 안 간다는 것을 알아채더군요.        부부관계라는 것이 하나의 정형이 있어서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죠.  얼마든지 다른 유형의 부부가 있을 수가 있는데  우리 나라는 그런 면에서 미개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다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된다고 해서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불만족스러워 하는데  문화가 앞서가는 곳에서는  여러 유형의 부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수용한다”는 것은,  거기에 끌려간다는 얘기가 아니라 인정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인정은 하되 내가 같이 어울리지는 않는 거예요.  인정한다고 해서 다 어울리고 끌려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수용이란 내가 상대방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비판하고 못마땅해하기 잘하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인정을 못해서 그런 거예요.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해서  그렇게 싫어하고 비판하는 것 아닙니까?      인정을 하면 그런 것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자기하고 달라고 이 사람은 이런가 보다,  저 사람은 저런가 보다 그러지  굳이 “나를 따르라” 이러지 않습니다.      또 우리 사회가 너무 개인적인 것에까지 참견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자기가 그러면 꼭 남까지 끌고 들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과감히 쳐야 합니다.  수련에서는 자를 때는 칼같이 자르는 거예요.               
242    부부관계 댓글:  조회:1864  추천:1  2015-03-16
  부부관계           우리는 태어나서 많은 만남을 가집니다.  우선 자신을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그리고 또 나의 가족을 이룰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주변에서 우연을 가장한 많은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나의 삶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만남도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만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것을 어떻게 승화를 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도 부부관계에 대해서 언급을 해보려 합니다.  틀림없이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가족까지 이루었을 터인데  보통은 적수로 변해버리는 탓에 콩깍지 타령도 하게 되지요.   명상을 통해서 이 모든 만남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모난 면도 예쁘게 봐 주실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눈을 감아 버릴 수도 있지만 부부라는 관계는 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라고 하더군요.  나에게 없는 기운이 상대방에게 있을 때 우리는 서로 끌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을 만나면 끌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모자라는 부분을  상대방을 통해 찾으려 하고 만족하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서 찾는 것은 한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타인에게 눈을 돌리며 다른 이를 찾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많은 불완전한 면을 완벽하게 채워줄  완벽한 이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꼭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해서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서로 맞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고 또 우리 사회가 너무 개인적인 것에까지 참견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남까지 끌고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그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같이 살아가면서 부부 서로간에 하는 잔소리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불완전한 면을 지적해서  고쳐주려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로 게으른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서 고치려 하는 것이지요.  당하는 이는 괴롭습니다.  이것을 지적 받기 위해서 가족을 이루었다기 보다는  사랑하고 싶고 편안하고 싶고 만족하고 싶어서  가족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으니까요.   허나 사실은 감사해야 할 대상입니다.  나의 모난 점을 지적해주는 감사한 사람인 것이지요.  그리고 지적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칭찬을 하면서 좋은 소리 듣는 것이 더 쉽지요.         요즘은 부부의 정형이 바뀌고 있습니다.  하나의 정형이 있어서 꼭 이래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유형의 부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문화가 앞서 가는 곳에서는 말이죠.   최근에는 인연이 있으면 가족을 꼭 이루어야 한다는 편견보다는 좋은 친구로서 서로 도움을 주면서 같이 가는 경향도 많습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에게서 부모의 세대보다  영성 면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남을 봅니다.    그리고 가족을 이루어 본인이 선택한 가족에 대해서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끝없는 책임을 지려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우직한 신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다는 답은 없습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닌 같이 가는 길을 선택한 분들은  그에 걸맞은 어려움과 또한 즐거움이 있겠지요.  단지 혼자 가는 사람은 스스로의 격만 올려놓으면 되지만 같이 가는 사람, 다시 말해 가족을 이룬 사람은  그중 한 명으로 인해 모두의 격이 같이 떨어질 수가 있지요.  같이 상승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길이랍니다.  
241    부부관계의 여러 가지 유형 댓글:  조회:1938  추천:0  2015-03-14
부부관계의 여러 가지 유형       저도 수련을 하면서부터 술을 일체 안 했는데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도 잘 안 만나게 되고  저 혼자만 붕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를 해롭게 하는 것, 내가 가고자 하는 노선과 반대되는 것은  과감하게 자를 수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뭐든지 다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자기가 원칙을 세웠으면 거기에 반대되는 것,  방해되는 것은 아주 무섭게 잘라야 돼요.  가차없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제가 금촉수련 할 때는 더 심했어요.  따돌림 정도가 아니었지만 과감하게 쳤습니다.      결국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수련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과감하게 칠 수가 있었는데 그 때는 다들 서운해했죠.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존중을 해줍니다.  그렇게 노선을 분명히 하면 이쪽 저쪽 다 할 수가 있어요.        선생님께서 하셨던 금촉수련은 가족들도 안 만나시고 혼자 하셨던 건가요?      금촉이라는 것은 원래는 입산 수도해서 다 끊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수련은 속가(俗家)에서 하는 수련이에요.  할 것 다 하면서 금촉을 하는 것입니다.      지감이라는 것은 마음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다 끊는다는 것이고,  금촉이라는 것은 기적인 접촉을 모두 끊는다는 얘기거든요.  가족들하고 같이 사는데 그렇게 완전히 끊을 수는 없죠.  같은 집에서 기거하면 기운이 다 섞여요.      제 남편이 당시 술을 많이 하곤 했는데,  아무리 많이 마시고 들어와도 자고 나면  아침에 아주 개운해지고 반대로 저는 굉장히 괴롭고 그랬어요.  매일 같이 그런 생활을 되풀이했습니다.      차라리 산이 들어가서 혼자 수련하면 너무 쉬울 텐데  그렇게 할 거 다 해가면서 그 모든 움직임을 끊는 거예요.  반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다 수용하면서  내가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을 금촉이라고 합니다.  놔두고 내버려두면서 수련만 하는 거예요.      아이들도 커가면서 늦게까지 안 들어올 때가 많죠.  요즘 아이들 12시, 1시까지도 안 들어오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반응하면 수련을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 다 내버려 두면서 하는 거예요.      이 수련이 그렇게 묘한 수련입니다.  기적으로나 마음으로나 모든 면에서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240    자신의 길을 가다 댓글:  조회:1817  추천:0  2015-03-12
자신의 길을 가다       오래 전 노자 할아버지께서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하신 적이 있습니다.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여러 가지로 해석이 분분합니다만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도는 도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도라고 하지는 않아도 좋다” 본인이 설명을 하기 위해서 “도” 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뜻이죠.     그리고 다음은 우리 명상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도道와 덕德은 따로따로 가 아니고 하나다 라고요. 굳이 풀어보자면 덕德의 길道이 되겠네요.     사람의 삶의 여정을 길(道)로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은 탄탄대로와 같은 길을 가며 어떤 사람은 골목길과 같기도 하지요.   또 어떤 이는 산 넘어 산, 또 넘어 산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길이 억울하고 공평치가 못하다고요? 그러게요. 많은 이들은 억울하고 분하게 살다가 원망하면서 허겁지겁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감사하면서 가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잘 알지를 못해서 그렇지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 우리네 교육이 그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추구하는 것도 다르니 그 범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흔히 세속적이다 라고 표현을 하는 것 말입니다. 자신의 길 각자가 다릅니다. 각자가 다른 것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죠. 전부가 왕이 될 수도 없는 것이며   그렇다고 전부가 하인으로 살 수도 없는 것이듯 말이죠.      흔히 어떠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무슨 끼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연예인이나 예술가들에게 끼가 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죠.  하지만 때로는 가지고 있는 그 끼와는 상관없는   사회분위기에 의한 직업을 부모님이나 타인에 의해 강요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닌데도 하는 것이며 마치 보도블록이 다른 보도블록 위에 얹혀 있는 것처럼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고 타인의 자리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 길이 자기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정말 열정이 샘솟는 일인지, 만족스러운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행복하실 거예요. 어렵더라도 보람을 느끼실 것이고요. 자신의 역할은 사실 본인이 압니다. 단지 본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잘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길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배우고, 깨우치는 것은   자신의 진화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얻느냐가 더욱 중요한 것이고요.     누군가 길은 길어서 오래 걸을 수 있으면 좋고, 좁은 길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면 좋고, 게다가 좋은 친구가 있으면 좋은 길이라고 하네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 길입니다.     인생의 여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고불고불 돌고 돌아 결국 풍성한 자신을 만나는 것, 결국 본연의 자신을 만나기 위한 길(道, The Way)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나를 응원합니다!    
239    나는 삐에로다 댓글:  조회:2689  추천:0  2015-03-09
나는 피에로다     질문이 있습니다. 그릇의 크기가 크면 남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받아 들인다는 것의 한계가 궁금합니다.  이를 테면 남자들 집단이라는 것은 주로 술을 마시면서 문화가 이루어지는데  그런 자리에 한두 번은 빠질 수가 있지만 계속 빠지면 왕따가 되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그런 경우에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참 고민을 하게 됩니다.      본인에게 솔직한 것이 제일 중요해서,  그렇게 같이 어울리는 것이 즐거운지를 보십시오.  아직 이 수련에 들어온 지가 얼마 안 되셨는데,  수련을 하다 보면 기운과 파장 때문에  자연히 수련하지 않는 분들하고 어울려지지가 않게 됩니다.      이성이 개입되기 전에 본능적으로 그렇게 돼요.  기(氣)적으로 안 맞고 파장도 안 맞아서  그런 시간들이 괴로워집니다.      아무리 친하고 인간적으로 아주 좋은 사람이라도  수련을 안 해서 탁기일 때는 본능적으로 너무 싫은 거예요.      지금 단계에서는 그런 분들하고 어울릴 수가 있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데,  뜻을 세우고 생활의 비중을 수련 쪽으로 두어  수련 안으로 확 들어오면 달라집니다.     지금은 직장일, 사회생활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겠지만  저는 수련이 제일 중요해야 된다고 늘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수련에 대해서 뜻을 세워서 “한번 해보겠다.  몇 년 후가 아니라 지금부터 해야겠다” 하신다면  뜻을 세우는 데 방해되는 것들을 스스로 차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련해서 자꾸 맑아지다 보면  머리로 판단해서 이롭고 해롭고를 따지기 전에,  그렇게 어울리라고 해도 괴로워서 스스로 못하게 돼요. 전혀 즐겁지가 않거든요.      지금 단계에서는 그런 자리에 빠지면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할까 두려울 수도 있는데  일단 이쪽으로 크게 발을 들여놓으면 그렇지 않습니다.  한 발만 들여놓은 상태가 아니라 수련으로 깊이 발을 들여놓으면  그 때는 자신이 원칙을 정해서 선언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도 잘 처리하고 인간관계도 좋은데 술은 안 마신다”  그렇게 인식되도록 잘 하셔야 될 거예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스스로 “나는 삐에로다” 라고 선언을 하고서  피에로같이 행세하고 지낸답니다.  처음에는 다 우습게 생각하고 그랬는데  본인이 아예 그렇게 선언을 하고 행동하니까 인정을 하더군요.  그래서 원하지 않는 일에 자꾸 끌어들이려고 애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혹시 소외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아니었어요. 본인이 노선을 분명히 하니까 인정을 해주더군요.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는 친구들도 헷갈리죠.  이런 것 같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니까 회색분자처럼 여겨요.  그런데 아예 색깔을 분명히 하면 그렇게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는 00님하고 하시면 아주 잘 통하실 것 같네요.  그분이 술이라면 두주 불사하시다가  이 수련하면서 노선을 바꾸었습니다.  과연 소외되는가 한번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어떤 분도 원래 굉장히 술을 많이 하셨는데  수련하면서 그런 것이랑 다 결별했거든요.  그 후에도 사회생활 아주 원만하게 잘 하시고 크게 성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본인이 분명히 입장을 밝히면 인정을 해줍니다.  물론 처음에는 싫어하고 따돌리고 하지만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존중해주게 됩니다.         
238    눈 한번 뜨는 것도 댓글:  조회:1920  추천:0  2015-03-06
눈 한번 뜨는 것도       평소에는 기운을 현실감 있게 잘 느끼지는 못하는데요.  방금 말씀하신 내용을 저도 크게 경험한 바가 있거든요.  심한 분노를 느꼈을 때 몸이 좍 가라앉고 갑자기 탈진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회복하는데 보통 하루 정도는 걸리는 것 같아요.  빠져나가는 것은 그렇게 잘 느끼는데,  수련 시간에 들어오는 기운은 왜 쉽게 못 느끼는지요?      천기라는 것은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주지 않는다고 말씀 드렸죠.  유격훈련 할 때처럼 기운을 다 빼고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만 주고 이 길을 가게 합니다.      저도 답답해요.  기운을 왕창 주면서 가라고 그러면 신이 나겠는데,  천기나 우주기는 꼭 필요한 만큼만 줍니다. 또 그것을 받아서 바람직하지 않은데 쓰려고 하면 절대 안 주십니다.  꼭 수련에 필요한 만큼만 줘요.      기운은 링거 줄에서 주사약이 똑똑 떨어지는 정도의 양만큼씩 들어오거든요.  그렇더라도 차곡차곡 단전에 쌓아 놓으면 남는 장사가 될 텐데  화내고 갈등해서 다 써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기 싸움”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런 것 때문에 소모하고 탈진하면서 다 써 버린다고요.      그래서 저축이 어려운 것입니다.  기운은 한 푼, 두 푼 모아서 저축하는 것이지  투기하듯이 어느 날 갑자기 뻥 튀기듯이 모으는 것이 아니에요.  이 길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것입니다.      항상 숨쉰 만큼만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것도 성정을 부려서 다 날려 버리므로 어려운 공부이죠.  항상 평상심을 가져서 준 것만 제대로 지키면 손해가 없는데  자꾸 한꺼번에 까먹어서 그렇습니다.      기운의 소중함을 안다면 눈 한번 뜨는 것도 다 의미가 있어야 뜨고  허튼 에너지 소모를 안 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짓은 절대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도 너무 쉽게 벌면 쉽게 막 써 버리는 것처럼  아까운 줄을 모르면 기운도 막 씁니다.  그런 것이 한 번 앉아서 된 것이 아니라  한 숨 한 숨이 다 모여서 된 것이거든요.  그렇게 축적이 어려운데 어떻게 기운을 함부로 쓰겠습니까?      수련하면서 제일 지켜야 될 것은  일단 걷어들인 것은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에  다 날려 버리고 화내서 태워 버리고 그러죠.      기운을 많이 주어서 수련의 진전이 빠르면 저도 좋을 텐데  이 기운은 그렇지가 않아요.  지기(地氣) 같으면 막 퍼주기도 합니다.  원래 부어라, 마셔라 왕창 주어지는 것이 지기거든요.  들어오는 느낌이 화끈하죠.     
237    비 오면 비를 통하여 눈 오면 눈을 통하여 댓글:  조회:2038  추천:0  2015-03-03
비 오면 비를 통하여 눈 오면 눈을 통하여        텔레비전에서 우주에 관한 프로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속한 은하계 가까운 곳에 태양 크기의 30억 배만한 블랙홀이 있는데,  지구상의 어떤 과학자도 왜 그곳에 그만한 크기의 블랙홀이 있는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우리가 속한 은하계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가 안드로메다 은하인데  그 은하가 우리 은하 쪽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십억 년이 지난 후에는 지구가 속한 은하가 우주에서 가장 큰 은하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과학자들도 모르는 우주를 명상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를 알면 알수록 인간의 무력함과 보잘것없음,  그리고 우주의 위대한 힘을 느낍니다.  우주가 인간의 뜻과는 별개의 어떤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의 뜻에 의해 우주가 움직이고 있다면  지구상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우주의 비밀을 1%라도 알지 못하고 있을까요?  저는 그런 우주를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부분인 피조물들은  우주의 진화라는 뜻에 동참하여야 한다는 우주의 법칙을  저의 능력껏 알릴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전하고자 합니다.          비 오면 비를 통하여 눈 오면 눈을 통하여 하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무심치 않을 것입니다.      
236    단전을 잃어버리면 댓글:  조회:1858  추천:0  2015-02-26
단전을 잃어버리면       생활을 하면서 화를 내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단전의 기운이 다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일하다 보면 화를 내게 되고 단전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단전이 안 느껴져서 너무 고민하다가  억지로 호흡을 하다 보면 며칠 있다 다시 느낌이 오던데요.  그럴 경우 실제로 단전은 있는데 기운만 날아가 버리는 건가요,  아니면 단전 자체가 없어지는 건가요?        “단전을 놓친다”라는 표현은 단전이  어디로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잃는다:는 말입니다.      단전은 항상 있습니다.  이 수련을 그만 두거나 그 사람에게 단전이 있는 것이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다고 판단해서 회수하기 전에는 있는데,  단전에 전혀 기운이 없으면 안 느껴지죠.      단전은 기운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단전을 잃어버렸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수련을 열심히 해서 중심을 찾으면 다시 제자리에 있어요.      그런 데 이 수련이라는 것이 계속 호흡을 하면 남는 장사인데  왜 이렇게 진전이 없고 모자란 장사같이 느껴지느냐?  수확을 자꾸 잃어 버려서 그래요.  공부한 것을 자꾸 까먹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건설은 참 어렵죠.  집 하나 지으려면 땅 매입하고 재료 사서 지어야 하고 어려운데  불 한번 나면 순식간에 타 버리듯이 파괴는 참 쉽습니다.      화내지 말라는 이유도  “화”라는 것은 태워 버리는 것이거든요.  그러므로 제일 나쁜 것이 화내는 것입니다.  기운이라는 것은 태우면 다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화를 내면 그냥 일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저는 단전이 어디로 아주 가버린 줄 알고 너무너무 고민을 했거든요.  ”아이고, 나는 이제 끝났나 보다” 했습니다.      수련을 하다 보면 자꾸 까먹는데,  까먹는 방법 중에 제일 나쁜 것이  화내는 것하고 갈등이에요.  갈등이 있으면 기,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으므로  갈등의 소지를 해결하십시오.               
235    잃어버린 본질 댓글:  조회:2268  추천:1  2015-02-22
잃어버린 본질        명상을 하다 보면 본질을 보는 눈이 계발되고 뭐든지 온몸으로 하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머리로 합니다.  좀 더 수준이 높아지면 마음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온몸으로 합니다.        보는 것도 몸 전체로 봅니다.  듣는 것도 세포 하나하나로 집중해서 온몸으로 들어요.  몸 전체가 다 깨어 있으면 온몸으로 보고 듣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훈련이 되어야 그렇게 됩니다.        그럴 때는 ‘본다, 듣는다’는 표현보다 ‘안다’라고 합니다.  무엇으로 아느냐? 머리로 아느냐? 마음으로 아느냐? 그냥 아는 것입니다.  온몸으로 알아지는 단계가 됩니다.  알쏭달쏭하지만 재미있죠?        인간은 원래 제 3의 눈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질, 현상에 매이는 바람에 이런 기능이 쇠퇴했습니다.  현상만 볼 뿐 그 속에 숨어있는 섭리, 이치를 모릅니다.        명상은 인체의 상실됐던 DNA를 복원시켜 잃어버렸던 기능을 되찾게 해줍니다.  숨어있는 감각을 키우려면 보이는 세계나 들리는 세계를 닫아야 합니다.  그래서 명상의 과정 중에 일시적으로 그런 감각을 닫아 보는 단계가 있습니다.    닫아 보면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그런 것이 고도의 훈련을 통해서 터득되는 능력입니다.  본래 가졌던 기능을 되찾는 것이지만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항상 명야 할 것은 무엇을 하더라도 한 번 몰입을 해서 해보는 것입니다.  그냥 빠져야 됩니다.  순간이라도 진지하게 몰입을 해보십시오.         
234    아주 맑아질 때까지 2 댓글:  조회:1946  추천:0  2015-02-20
아주 맑아질 때까지 2     수선대의 기운은 은빛 기운, 안개 빛 기운,  황금빛 기운, 회오리바람 같은 기운  이렇게 네 가지를 연결해 놓았는데  실제로 오시면  그렇게 회오리바람 같은 기운이나 안개 빛 기운,  목욕탕에 있는 것처럼  몸이 촉촉하게 적어오는 기운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수선대에서는 사우나탕에 들어가서 때를 불리듯이  탁기를 촉촉히 불려서  목욕하는 수련을 위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 수련은 지난 번 정규수련 때 처음 가동해 보았는데  앞으로 할 때마다 점점 진도가 나갈 거예요.  받아들리는 기운의 양이 많아질 것입니다.      00님께서 지금 수선대에 계신데  요즘 기운 맛을 아셔서 수련에 재미가 들이셨습니다.  오늘도 여기 오는 대신에  거기 좀더 있고 싶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벌써 회오리바람 기운, 소나기 기운, 안개 기운  그런 것을 다 구분하시더군요. 그래서 기운 재미가 들리셨습니다.      탁기가 빠져나가도 몸의 기운이 빠지나요?      탁기만 나가면 기운이 안 빠지는데  정기도 같이 쓸려 나갈 때는 기운이 빠집니다.  처음에는 탁기만 선별해서 내보내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회음으로 빼면 대개 정기와 탁기가 반반씩 나가는데  초보자의 경우에는 탁기만 내려 보내기가 어려워서 좀 위험해요.  그래서 계속 용천으로 빼는 수련을 하는 것이고,  저와 같이 할 때는 회음으로 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의 지도를 받아가면서 탁기를 뺄 때도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 느끼실 수는 있어요.  왜냐하면 탁기만 빠져나갈 때도  스스로는 기운이 많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기운이 나가는 것 같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정기가 같이 나가서 기운이 빠지는 수가 있고,  탁기만 나가도 일단 몸에서 어떤 기운이든 빠져나가는 것이니까  허하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탁기가 빠져나가면 전체적으로 시원해집니다.      오늘 하신 태우는 수련 법은  정기가 빠져나가는 수련 법은 아닙니다.  모았다가 태우기 때문에 정기는 안 나가죠.  혼자 수련하면서 회음으로 빼실 때는  그냥 한꺼번에 빼 버리면 같이 나갈 수가 있으니까  늘 의식으로 탁기만 중단으로 모았다가  단전으로 내리셔야 합니다.               
233    감동을 느끼게 살자 댓글:  조회:2044  추천:0  2015-02-18
감동을 느끼게 살자      명상을 통해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쉽게 말씀드리면 사랑스러움입니다.    사랑스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정성스러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정성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은 바라보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사랑스러움, 정성스러움, 아름다움……. 왜 그래야 하는가?  사랑스러운 것, 정성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은 ‘감동’을 줍니다.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이 입니다.  그렇게 하늘을 감동시키고 자연을 감동시키고  인간을 감동시키도록 사는 것이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오시는 분 중에 농사지으시는 어떤 분이 ‘식물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셨더군요.  그런 제목의 책도 있지요.        그렇습니다.  식물에게도 사생활이 있습니다.  그들만의 고난이 있고 고충이 있고 슬픔이 있습니다.  그것을 전달하려고 식물 나름으로 백방으로 표현을 하는데 인간들이 알아주지 못합니다.        또 하늘도 폭풍우라든가 바람, 강렬한 햇볕, 이런 여러 가지로 하늘의 마음을 전달해 주고자 하는데 인간들이 그것을 모릅니다.    또 인간들끼리도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각자 느끼는 것들이 전달이 안 됩니다.        이제까지는 그랬을지라도,  앞으로는 우리가 하늘과 자연과 인간을 알고, 하나가 되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명상이란 그런 것을 향해서 가는 과정입니다.  궁극적으로 인류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232    아주 맑아질 때까지 댓글:  조회:1828  추천:0  2015-02-15
아주 맑아질 때까지       오늘 수련을 하면서 중간에 탁기를 태웠는데,  “수련을 하면서 왜 탁기가 나올까”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안 나왔는데  기껏 수련하고 났더니 탁기가 나오니 말이죠.      이유는 이렇습니다.  고여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죠.  구정물이라도 위에서 보면 맑아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그것을 휘저어 놓으면 구정물이 되잖아요.      오늘 한 육기조화 수련을 보면  장부를 기운으로 닦는 것입니다.  닦으면 그 반동을 이용해서 계속 돌아요.  처음에는 빡빡해서 기운이 잘 안 돌아가는데  세계 해서 세 번 돌리고 나면  그 반동으로 기운이 혼자서 돌아가는 거예요.  장부를 돌리는 것은 그런 원리입니다.      그러면 장부에 있던 탁기들이 활성화되죠.  운동을 하니까, 기운을 돌려주니까  고여있던 것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장부에 고여있던 탁기가 나오니까  그 탁기를 중단으로 힘껏 모았다가 단전으로 내려서 태우십시오.      장부를 기로 휘저어 놓으니까  좋지 않은 기운들이 다 우러나와서 당연히 탁기가 나오죠.  그것을 사방에 뿌리지 말고 몸 안에서 다 태우라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전에 수련 안 했을 때는 어디 가면 맑다는 소리 듣고, 맑은 축에 속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수련하면서 탁하다는 얘기를 듣는단 말이에요.  수련을 하는데 왜 탁한가 하고 여기실 수도 있는데 이런 원리입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고여 있는 상태이죠.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좋지 않은 기운이 암도 되고 질병이 되는데  기운으로 계속 호흡을 해주면서 들춰내는 것입니다.  물을 휘저어 놓으니까 탁기가 자꾸 나올 수밖에 없죠.      그래서 수련을 하면 할수록 몸에서 탁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게 다 없어질 때까지  몸이 아주 맑아질 때까지 계속 뽑아내셔야 돼요.  그래서 수련을 하면 할수록 몸에서 탁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게 다 없어질 때까지, 몸이 아주 맑아질 때까지 계속 뽑아내셔야 돼요.      탁기에 관한 숙제가 누구나 다 있습니다.  어느 정도 수련을 해서 몸 안에서 기운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탁기와의 전쟁이 되는 거예요.  당연히 탁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해소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탁기제거 방법을 많이 알려드렸으니  그런 것을 통해서 계속 제거를 하십시오.  탁기제거는 이 수련이 끝나는 날까지,  즉 자체에서 정화능력이 생겨서  스스로 할 때까지는 계속 해야 합니다.      평소에는 계속 진도가 나가는 수련을 하시되  수선대에 가시면 집중적으로 탁기 빼는 수련을 하세요.  도랑이 많이 지저분하면 평소에는 치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수선대에 오시면 대청소 하는 것처럼 탁기를 제거하세요.         
231    행복한 웰빙 댓글:  조회:1926  추천:0  2015-02-13
행복한 웰빙        웰빙이라는 것이 본뜻은 좋습니다.  자기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짐으로써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  자신을 이롭게 하면 남도 이롭다는 것인데  지금의 웰빙은 어떻게 보면 이기적입니다.  자기만 악착같이 챙기고, 남은 나 몰라라 하는 이미지입니다.  자기만 좋은 게 아니라 주변에 알려주고 하면 좋은데…….  그건 서양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걸 그대로 답습하자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한국적이고 우주적인 웰빙을 보여주자는 겁니다.  그 방법은 문화여야 합니다.  문화운동으로 가면서 생활 속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문화, 놀이, 예술을 통해 보여줘야 합니다.        각자 웰빙의 모델이 되어 보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웰빙이다’ 하는 것을 보여주세요.  생활 속에서의 웰빙,  즉 먹는 건 이런 걸 먹고 숨은 이렇게 쉬고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옷을 입고… 등등  웰빙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겁니다.        옷이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인데 우리는 옷에 사람이 맞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자연의 기운을 느끼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  또 어떤 집에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보편타당하고, 자연스럽고, 완성된 모델을 한 사람이 다 보여 줄 수는 없습니다. 각자 부분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합해서 ‘웰빙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려면 건강해야 되고, 맑아야 되고, 따뜻해야 됩니다.  따뜻함, 정성, 열심히 하는 면……,  웰빙의 한 가지 면은 보여주실 수 있을 겁니다.        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웰빙을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하루 한 가지씩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자기를 만들어 가세요.  그동안 웰빙 한다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요시하다 보니 다소 이기적으로 비쳤는데,  이제 주위에 관심도 가지면서 보시도 하시고요.  가장 큰 보시가 노인에게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보시를 하면 나한테 생기가 돌아오는데 노인에게는 오로지 주기만 합니다.  우리는 그런 보시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고 그럼으로써 주변에 보시하도록 하십시다.        그 방법이 더딘 것 같아도,  주변은 다 몰라라 하고 나만 챙기는 방법보다 더 빠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조화를 이루면서 웰빙을 실천하십시오.       
230    바닷물에 잉크 한 방울 댓글:  조회:1798  추천:0  2015-02-09
바닷물에 잉크 한 방울         덕(德)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입니다.  다 어루만지고 수용하는 거예요.  그것이 그릇의 크기입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인정 못하면 안 되고  나와 전혀 생각이 달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닷물에 잉크 몇 방울 떨어져봐야 아무 영향이 없듯이  그릇이 크면 아무 움직임이 없는데, 그릇이 작으면  누가 조금만 무얼 던져도 아우성을 하고  난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 수련하면서 자신의 그릇을 보니까 크기가 종이컵 만하더라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런 것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죠.      만일 그런 정도의 크기라면 자기 자신도 다 못 담습니다.  자기도 다 수용을 못해서 자기의 어떤 부분만 담는 거예요.  좋은 부분만 담죠.      나머지 부분들은 전부 그릇 밖으로 삐죽삐죽 나와서 흉한 모습이 됩니다.  그런 부분, 자신의 부족한 자질이나 가정환경 같은 것을  누가 건드리거나 언급하면 비명을 질러댑니다.      자기가 받아들이고 싶은 면만 인정하고  나머지 부분들은 전부 내 탓이 아니라고 하면서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피동적으로 주어진 여건이라고 거부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릇이 크고 덕이 풍부하면  다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모두 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릇이 커지면 자기도 담고 남도 다 담고 그러고도 한없이 남아요.  처음에는 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담는 내용이 좋으면 그릇을 전부 마모시키더군요.  기존의 것들을 없애고 깨뜨려서 한없이 넓어집니다.      그릇은 바꾸기가 어려우니까  그런 식으로 우선 담는 내용을 바꾸셔서 점점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셔서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일 수 있고  누가 뭐라고 해도 거리낌이 없다면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볼 때도 어떤 면에 자꾸 눈에 띈다면,  특히 단점이 눈에 띄고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이 계속 확대되어 보여진다면  “내사고 방식에 조금 문제가 있지 않은가?” 스스로 한번 점검을 해보아야 합니다.      아주 편협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남 칭찬하는 데는 인색하고 어쩌다 한 마디 하면 비판적인 얘기죠.  타인이나 사회전반에 대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눈이 그렇게 따뜻하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야 사는 사회는  아무리 구도단체일지라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결점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러므로 항상 어떤 자세여야 되느냐 하면  본인이 취할 점을 취하면 되는 거예요.  나머지는 보지 않으면 되는데  성격상 굳이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서 고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모임이나 흐름에서는 반드시 배울 것이 있죠.  현명한 방법은 자기가 그 배울 점만 배우면 되는 것입니다.      굳이 바꾸고 싶을 때는 일단 자기 자신을 먼저 바꿔서  그 향기가 옆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자기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옆 사람이 저렇게 되고 싶다고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229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 댓글:  조회:2071  추천:0  2015-02-08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그렇게 일을 많이 해야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너무 많습니다.        기업이나 국가의 입장에서는 물건을 자꾸 만들어내야 흥하니까 계속 만들어냅니다.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려야 세금도 많이 걷지 않습니까.  많이 만들려니까 점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너무 많이 만들어내니까 다 쓰레기가 되어서  쓰레기 처리나 환경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것들이 녹색운동 하시는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죄악인데,  국가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안 만들어내는 것이 죄악입니다.  그래서 서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자연과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이 너무 일을 많이 하고 있고,  불필요한 것 만들어내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인간이 진화하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진화하지 않고 퇴보하고 지구를 오염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진화할 수 있는 여건,  즉 간소하게 먹고 입고 생존하고 이런 정도 선에서 노동력을 발휘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문화적인 일, 창조적인 일, 영적인 일을 위해서 쓰기를 원하는데, 반대로 되어서 문화 챙기고 그러면 사치라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원래 돌아가야 될 길로 가는 거대한 흐름이 웰빙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득권자들로부터 많이 위협받고  또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소수의 튀는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라고 알고 있는데,  어느새 매스컴에서 호응을 하고 있고 벌써 주류이자 선두그룹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궁극적으로 웰빙이란 육체와 영혼의 정화운동으로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진화와 건강,  그리고 영혼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28    타고난 그릇 바꾸기 2 댓글:  조회:1950  추천:0  2015-02-07
타고난 그릇 바꾸기 2           상단(머리, 지혜)는 많이 발달됐는데  하단(몸, 의지력)이 너무 부실하다거나  반대로 하단은 잘 발달됐는데 상단이 부실하다든지  이렇게 상하가 불균형이면 군신간의 불화,  부자간의 불화로 나타납니다.  직장에서도 상사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고 아랫사람들과 불화가 있고 그렇습니다.      좌로 혹은 우로 치우쳐 있는 좌우 불균형이 있으면  친구나 동료간의 불화가 옵니다.  좌는 양이고 우는 음인데 양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만약 좌측이 많이 발달되고 우측이 덜 발달되면  바깥에서 하는 친구관계는 아주 좋은데  가족간. 형제간의 불화가 있습니다.      한편 사고방식의 불균형도 나타나게 되는데  좌로 치우치면 상당히 비판적이고  우로 치우치면 너무 동정이 많아서 인정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또한 앞뒤 불균형도 있는데  임맥, 독맥의 불균형을 말합니다.  임맥이 막히면 실천력이 없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하려고 의욕을 냈다가도  임맥의 어느 부위 즉 단전, 중단, 회음, 인중  이런 부분이 막혀 있으면 귀찮아서 그냥 주저앉아 버립니다.      한편 독맥이 막히면 잘 잊어버립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실천력도 있는데  며칠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거예요.  자기가 뭔가를 하려고 했었다는 것조차 잊어요.      앞뒤 불균형은 그런 식으로 나타납니다.  시간적인 불균형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처음에는 위에서 볼 때도 아래에서 볼 때도 옆에서 볼 때도  똑같이 원만한 단전을 지급받았는데  본인의 몸의 불균형 또는 사고방식의 불균형이  스스로 그릇을 원만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생활하시면서  계속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보세요.  상사와의 갈등을 빚고 있는 분들은 상하 불균형이 아닌지 보시고,  동료나 친구들과 계속 불화를 빚는 분, 친구가 없고 외톨이인 분들은  좌우 불균형 쪽으로 생각을 해보셔야 됩니다.      앞뒤 불균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잊어버리거나 실천력이 없을 때는 임독을 유통시켜 보세요.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천지유통 같은 수련을 많이 해서  임독의 경락을 다 열고 몸의 불균형이 해소되면 마음도 바로잡아집니다.  반대로 마음을 그렇게 스스로 교정을 하면 몸도 바로 잡아지게 됩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은 같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면 마음과 몸을 같이 점검해보셔야 됩니다.  균형 잡힌 사람이 되기가 참 어려워서  어느 면에서나 원만하고  항상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가 참 어렵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내 몸을 잘 모르겠다는 분은 주변의 관계를 보십시오.  인간관계, 가족관계에서 계속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윗사람하고는 아주 잘 지내는데 아랫사람하고 잘 못 지내는 분들 있죠.  상사에게는 아주 예스맨인데 부하직원들에게는 인색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그릇이 너무 위로 치우쳐서 그렇습니다.  위로는 한없이 너그러운데 밑으로 갈수록 좁습니다.      반대로 윗사람과의 관계가 괜히 삐딱한 사람도 있어요.  상사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삐딱하게 나가는데  자기보다 수가 아래인 사람들,  만만한 사람들하고는 더없이 잘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분들도 그릇이 치우쳐 있어서 그렇습니다.             
227    다운쉬프트 댓글:  조회:2114  추천:0  2015-02-05
다운쉬프트        프랑스 사람들은 베짱이라고 하고, 영국 사람들은 개미라고 그랬는데,  그 영국 사람들조차도 이제는 ‘다운쉬프트 족’이라고 해서‘느리게 가자.  출세도 싫고 돈도 싫고 명예도 싫다,  나를 찾겠다’ 이런 바람직한 형태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보면 아직 튀는 사람들이고 별로 환영하고 싶지 않은 부류입니다.  왜냐 하면 그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가다보면 다 파괴되겠기 때문입니다.        직장 오너들이 볼 때는 다들 일 안하고 주말 찾고 법정 근무일수 딱 채우고는  휴가 달라고 하니까 잘 유지가 안 되겠죠.  또 가정에서도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시각에서 보면  다 가출해서 이탈하게 생겼으니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은 거부하고 색안경 끼고 보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그런 저항세력이 있지만, 대세를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제일가는 일벌레가 우리나라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법정 근무시간이 주당 40시간이 넘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조차 주 5일 근무제를, 노조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안 해보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은 금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거대한 흐름이 이제는 뿌리칠 수 없게 들어와 있는 겁니다.  물밀듯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이 웰빙입니다. ??  그러나 우리나라가 참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아마 주 5일 근무제도 제일 끝까지 버티다가 법이 통과된 나라에 속할 겁니다.    일 많이 하는 것을 칭찬하고,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자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여깁니다.  국가적으로 ‘잘 살기 위해 일하자’고 노래하면서 끌어왔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아침부터 밤까지 일벌레처럼 일하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문화적인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226    타고난 그릇 바꾸기 댓글:  조회:1633  추천:0  2015-02-04
타고난 그릇 바꾸기       그릇이란 껍질입니다.  에고 라고 하죠.  하늘로부터 덕을 받아서 그 그릇으로 살아가다가  수련을 하면서 좋은 기운  즉 천기와 우주기를 계속 받다 보면  그 기운의 힘으로 그릇이 마모되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에고의 껍질을 벗는다고도 표현하는데  이와 같은 방법이  수련으로써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한편 어중간히 수련해서 에고만 점점 더 커지고  그 어중간한 그릇에 기운만 강해지면  그때는 오히려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기운이 없으면 죄는 저지르지 않죠.  자기 자신 하나 먹고 살기도 바빠서 안 좋은 생각을 안 해요.      그런데 그릇은 작으면서 기운이 자꾸 강해지면,  더구나 좋지 않은 지기로 강해지면  그때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됩니다.      단전이 단지 같은 모양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왜 저런 단지 같은 모양이 됐을까 하는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하필이면 왜 저런 모양일까?      물론 다 저런 모양은 아니에요.  기존의 단전이 너무 엉성하고 쓰지 못할 상태여서  지난번에 단전재건 수련으로  일시에 단전을 새로 지급 받았는데도 다 저런 모양은 아닙니다.      성격의 치우침 등에 따라 깔때기처럼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도 있고 반대로 위가 가늘고 아래가 넓은 것,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삐뚤어진 단전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전후 좌우의 불균형,  사고방식의 불균형 같은 것 때문입니다.  몸 자체가 조화를 이루면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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