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넋이 살아 숨쉬는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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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친구의 의미 댓글:  조회:1801  추천:0  2016-03-29
우리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속담이 있고 중국에도“多一个朋友,多一条路”란 말이 있듯이 친구를 잘 사귀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목표가 달라지고 친구가 많을수록 인생길이 열린다는 뜻이다. 사회생활에서 인맥이 차지하는 위치가 갈수록 귀중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인맥을 잇기 위한 노력에 필사적이다. 그 인맥은 대부분 친구를 통해 이루어지고 실현된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라는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 반가움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 나를 웃게 하는 사람, 내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 등등 모두가 우리가 말하는 친구 아닐까. 절친이라면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 무슨 고민이 있어도 끝까지 들어주는 친구, 마음이 서로 잘 통하는 친구, 싸워도 금방 화해할수 있는 친구, 먼 길을 함께 갈수 있고 손잡으면 희망을 품게 되는 친구여야 한다.  진정 슬리퍼를 신어도 반겨줄 친구, 그리고 김치, 마늘냄새가 나도 반겨줄 친구가 우리의 인생에 도대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흔히 성실한 느낌을 주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자기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본분을 지키는 귀감들에게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고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다정하게 느낄 때 그 사람에 대하여 호감을 갖는다. 최저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하거나 선뜻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는 상대방에게 호의를 가지고 인맥을 이어가는것이다.  "옷깃을 스쳐도 인연"이라고 친구란 인생에서 필요한 존재인것만은 분명하다. 친구는 우리가 어렵거나 힘들 때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기를 돋구어 주는 존재로 될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이렇게 저렇게 만나게 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우리는 흔히 초면구면 관계없이 친구라 할때가 많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는 천차만별이고 많은 경우에 이름으로 불릴 따름이지 진정한 친구라 하기가 너무도 부족하다. 친구라 부르면서 유독 자기가 수요될때 나타나고 열정을 보이며 손을 내미는 사람을 진정 친구라 할수 있을까. 어떤이는 친구라 하지만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것이고 자신의 교제능력을 보여주기 위한것이고 친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것이다. 어떤이는 끓는 정열로 환경에 따라 입에 침이 마를세라 친구라 부르지만 기실은 안중에도 없는 존재일뿐이고 돌아서고 나면 깨끗이 망각하고 새로운 친구를 부르며 아양을 떤다. 절친이라면 기필코 마음으로 그리고, 어디가든, 만날수 있든없든 깊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세월이 변해도 천년바위처럼 그는 끄떡하지 않고 천년묵은 술처럼 음미할수록 그윽한 향기만을 발산하는것이 아닌가. 오늘의 만남으로 래일을 기약하고 영원히 잊지않는 사람만이 바로 마음속의 따뜻함과 당당함을 안겨주는 해피한 친구이다. 마음을 나눌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이다. 아무리 가까이에 있어도 마음이 가지 않는  친구가 아니라 동사자일 따름이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바로 진정한 나의 친구이다. 친구사이에 목적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영원한 친구가 없고 영원한 “리익”이 있을뿐이라는 말이 나온것이 아닐까. 친구가  많다고 우쭐해도 결과적으로 리익관계로 얽힌 합작일 경우가 적지 않다. 다만 “리익”의 내용이 너무도 광활하여 스스로 챙기느라 바쁠뿐이다. 아침출근시에도 술냄새를 물씬물씬 풍기며 흐리터분한 기분으로 하루를 일과하는 사람을 보면서 친구의 소중함이 어느 정도였으면 하는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그 어떤 복잡한 리익에 얽힌채 몸까지 망치며 우정을 과시하는 술상에 도대체 어떤 진정한 의미가 담겨있는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하루자고나면 세월이 무섭게 변하는 오늘의 사회이지만 유독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면 오늘이 가면 래일이 온다는것이다. 오늘도 래일도 언제나 함께 하고 걱정하여주는 사람 그리고 래일이 오면 문안과 기도를 해주는 그런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그 친구는 멀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인생의 동반자 그대의 안해와 남편임을 잊지 말라. 지구촌 70억 인구를 뚫고 맺어진 부부의 인연은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이요, 100세 시대를 맞아 세상 끝까지 함께 가야 할 절친이다.
29    조선족은 왜서 민사안건이 적을까 댓글:  조회:2001  추천:0  2016-01-08
조선족이 집거해 있는 지구에서 법원서류들을 살펴보면 조선족당사자들의 민사안건과 민원이 적다고 한다. 물론 형사안들은 별도의 문제이다. 민사소송이 적다고 하여 우리민족의 법의식이 결여되여 있는것은 아니다.  다만 민족내부에 응결되여 있는 단체의식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순과 분쟁을 민족내부에서 해결하는 스텔스장치가 되여 있는것이다. 이는 조선족의 일종 문화로서 비교적 높은 문화자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중국에는 “원쑤를 갚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다”, “나라의 원쑤를 갚는데 100년도 늦지 않다” 는 진부한 관념이 뿌리깊다. 때문에 사소한 일을 가지고  대를 이은 설전과 충돌, 법적소송은 물론 인명피해와 같은 참사까지 빚어낸다. 조선족은 이런 경우가 극히 드물다. 기실 다혈질적인 조선족의 성격은 일상에서 크고작은 충돌은 더욱 많다. 지어는 작은 일로 혹은 술먹다가도 피투성이 되도록 폭력을 행사하지만 관청까지 가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법적놀음은 체면을 구기는 일로 여길때가 많다. 오늘 싸우고나서는 래일 다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는 한잔의 술로 오해와 매듭을 풀고 툴툴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조선족은 체면을 중히 여긴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이런 의미이다. 때문에 조선족은 거지, 고의사고로 인한 갈취현상들이 극히 드물다. 물론 나라의 법제건설의 진척에 따라 사람들의 법률의식이 점차적으로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지배할것으로 보이지만 큰일은 작게 만들고, 작은 일은 아예 해소해버리는 습관은 서로에게 편리를 줄수 있다. 경제구조의 다양화와 함께 사회구조도 다양해지고 새로운 사회군체들이 형성되면서 새로운 모순과 충돌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제건설이 절박한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법적절차에 따라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고 쟁취하는것은 현단계에서 의심할바 없는 현명한 선택이다. 민원제기 역시 공민의 정당한 권리이며 이슈로 되는 사회적문제를 해결하고 개인의 합법적요구를 실현하는 중요한 도경일뿐더러 문명사회의 구현이다. 그러나 부동한 사회집단구성체의 조화를 이루는데서 사람들의 자각적이고 자률적인 행위를 홀시해서도 안된다. 이러한 행위의 형성과 안착은 그래도 사람들의 문화자질과 정신수양을 높이는것과 밀접히 련관되여 있다.때문에 문명한 전통습속을 개발,계승하여 사회구성원들이 스스로 모순들을 해소하도록 하여야 하며  국민의 전반자질을 제고하는 사회적시스템을 만들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을 닦아야 한다.  
28    오늘을 즐기며 살라 댓글:  조회:1801  추천:0  2015-09-02
도시의 밤빛은 언제봐도 현란하다. 즐비한 고층빌딩들 그리고 오색찬란한 네온에 눈이 부실정도이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갈수록 밝아지는 도시는 현대문명을 자랑하기에 너무도 충분하다.  그런데 어쩐지 갈수록 흐리터분해지는 몽롱한 의식과 시각으로 도시의 률동과 어울리지 않게 기가 죽어있고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영문 모를 슬픔과 애환에 고독스럽기만 하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불안감을 피할수 없다지만 가슴깊이 파고드는 불안한 그들의 마음 누가 와서 들어줄까. 자신에게 욕도 해보고 때리기도 해보고 물어보기도 한다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비통과 상처를 멀리할수 있을까. 얼마를 기다려야 봄꽃이 활짝 필라나. 갈수록 고독과 한숨만 쌓여간다. 꽃은 피고 아릿다움을 뽐내다가 지지만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감싸고 덥혀야 하는지 모른다. 타향에서 걸어가는 길 너무도 멀고 무겁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 한다. 그속에서 그들은 외로이 자신과 싸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에서 이겨 백전백승의 장군이 될것처럼 말이다. 행복을 찾아 동분서주한지 몇해던가. 보일락 말락 잡힐듯 안잡힐듯 숨박꼭질만 반복되는 인생 누가 행복이 그렇게 쉽다고 했더냐. 행복을 찾아가는길이 인생이라면 슬픔과 함께 하는것은 무엇이라 할까. 살아가는 인생은 어쩌면 이리도 힘들까. 먹을걱정 입을 걱정 없고 세상은 아름답게 변해만 가는데 뭐가 모자라서 마음은 울적이기만 한지.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오늘, 정서적으로 불안과 초조함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증과 싸우는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진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인생선택으로 주변을 가슴 아프게 하는 사건들도 쉽게 접할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건강이 시급한 과제로 우리들 앞에 나서 있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는것이다. 하루하루가 바쁜 삶을 살면서 지나간 일을 되새기며 가슴 썩일 필요가 있을까. 장담할수 없는 래일의 일로 오늘 정서를 망칠 필요가 있을까. 중요한건 그래도 오늘의 정서와 느낌이다. 오늘의 모든것이 바로 제일 귀중한 존재들이다. 시대때도 없이 몰려오는 마음의 아픔은 어떻게 치유할까. 마음의 아픔은 마음으로 치유하여야 하는데 관건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신이 스스로 치유하여야 한다. 원망과 한탄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끝없는 원망은 새로운 고민을 가져다 주고 타인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보여주는것이나 다름없다. 원망이 악습으로 된다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암흑속으로 빠뜨리게 된다. 우리는 남들의 평가를 개변할수 없지만 자신은 개변할수 있다. 엉망진창인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는 열쇠는 자신의 손에 달린것으로서 회한과 탄식을 버리면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이 저도모르게 쉽게 찾아올수도 있다. 백년을 넘기기 힘든 인생을 왜서 더 힘들게 하겠는가. 하루하루가 얼마나 아까운 시간들인가.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말라. 자신을 흠상할줄 아는것은 기쁨을 찾는 금열쇠이다. 너무 힘들게 살지 말라. 힘들게 사느라면 정신적인 압박감에 육신마저 힘들어 진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라. 스스로 만족할줄도 알아야 한다. 시비판단에서는 예리한 시선이 필요하겠지만 생활에 대한 자세에서 시선이 너무 날카로우면 주변이 황량해 질수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도 너무 밝히면 친구가 떠나버린다. 사람마다 나쁜인간으로 되는데 누가 가까이 하고 평화공존하겠는가. 부정적 시각으로만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깨진 유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들의 장점을 본다면 볼수록 사랑스러움을 느낄것이다. 남에게 너무 잘 보이려고 하지 말라. 자신의 노력이 더 소중하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면 자신을 잃게 된다. 자신을 충전하는것이 더욱 중요하다. 마음의 고통은 생활을 의미있게 꾸리지 않는데서 온다. 의미있고 내용있고 다양한 생활방식을 추구한다면 쓸데없는 생각을 할새가 없게 된다. 매일매일 재미좋고 보람있게 지내는것보다도 행복한것은 없다. 행복감과 즐거움은 매일 느낄수 있는 좋은 감각에서 온다. 래일걱정을 오늘에 하고 오르지 못할 것을 비하며 이루지 못할 환상을 하구서야 마음의 안정이 있을수 있나. 현실에 맞지 않는 모든것은 생명의 최대 킬러이다. 사는법을 바꾸어봐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수 있다. 사는게 마음이 안들때 환경을 바꾸거나 현실에서 리탈하는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감상하거나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전화를 치거나 해빛을 쏘이거나 하는것들이다. 이래서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말도 나온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이긴다는것이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과의 싸움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이라고 하였다. 희열의 뿌리는 자신에게 있다.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것이다. 굳이 조건같은것들은 필요없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가장 큰 비애이다. 스스로 만족하라. 만족할줄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수 없다. 
27    소나무와 우리민족 댓글:  조회:1824  추천:0  2015-07-08
장백산 줄기따라 이어진 강토에서 수천년세월 자연과 함께 하면서 우리민족은 자연의 정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호랑이처럼 용맹하고 소나무처럼 꿋꿋한 성미를 키워왔다. 먹거리가 없어 배를 고를때도 자연은 헌신적으로 우리민족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자연은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너무도 해피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민족은 자연에 잘 적응하며 험난한 일과 좌절이 닥쳐도 강의한 성격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이겨낸다.자연을 떠나서 인간은 생존할수 없다하지만 우리민족처럼 자연과 각별한 인연을 쌓고 수천년문명사를 개척한 력사는 드물것이다.  그가운데서 우리민족의 성격을 제일 잘 반영한 자연물을  찾는다면 그래도 소나무가 아닐까 싶다.우리 겨레는 오랜 옛날부터 소나무를 심고 가꾸며 사랑하여왔다. 반만년 민족사에서 우리 겨레와 운명을 함께 하고 정으로 련결되여 있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이다.소나무속에서 나서 소나무속에서 죽을 정도로 우리민족과 함께 해온 나무이다. 장백산을 보노라면 줄기줄기 그 어디가나 우리민족의 삶의 터전과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우거진 소나무숲들로 가관을 이루고 있다.  그 어떤 비비람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 좋은 땅, 굳은 땅 가리지 않고 그 어디서든 줄기와 잎을 뻗치고 지어 날새들도 앉기 힘들어하는 아찔한 벼랑턱에도 억세게 뿌리를 박고 웅건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찬서리와 눈속에 파묻혔어도 푸름을 잃는 소나무,철따라 잎이 지는 나무와 달리,4계절 한결같은 소나무를 오래전부터 우리 겨레는 민족의 강의한 의지의 상징으로, 민족적기상과 슬기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소나무의 고집스럽고 끄떡없는 성격을 닮아서일까 우리민족은 수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도 외세에 동화되지 않고 단일민족으로 자신을 굳건히 지켜 왔다.   천하절경을 자랑하는 백두산에는 하늘높이 치솟은 소나무숲들이 많아 보는이들마다 감탄을 련발한다.웅장한 체구는 용사를 닮았다지만 미풍에는끄떡도 하지 않고 도고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은 천상 스님이다.문무를 겸비한 소나무여서 나무의 왕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소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여서 장수를 상징하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병풍에 그려진 소나무의 의미도 바로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려진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소나무는 버리는것이 없이 인류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건축용재, 가구재, 선박재, 다리재, 동발나무,팔프원료는 물론, 소나무의 송진은 고약이나 반창고의 기초제로 쓰며 송진을 비롯하여 솔잎과 그 우린물은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데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료리사들은 솔잎으로 솔잎떡을 할뿐더러 백숙을 포함한 다양한 료리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작가에 의해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공예품이 되여 우리의 생활에 정취를 더 해준다. 얼마나 기특한 소나무인가.자연에서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할뿐더러 인간에게도 온몸 다바쳐 희생을 한다니 그저 자연에 감사하고 소나무에 고마울 따름이다. 이와같이 소나무가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우리생활의 구석구석 파고들면서 소나무와 관련된 속담들도 륙속 등장하고 있다.“소나무가 말라 죽으면 잣나무가 슬퍼한다.” “가랑잎이 솔잎더러 바스락거린다고 한다.” “겨울이 다 되여야 솔이 푸르름을 안다.”“못된 소나무에 솔방울만 많다.” “남산골의 소나무를 다 주어도 서캐조롱장사를 하겠다.”등이 그 대표적 실례이다.  그래서 나는 소나무가 좋고 존경스럽다. 뿌리만 내리면 사치 부릴줄도 응석 부릴줄 모르고 소리없이 우리 강토 어디서나 잘 자란다. 산에만 가면 소나무들이 시뚝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소나무 숲은 말 그대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들놀이의 좋은 장소가 되여 춤판이 벌어지고 행복의 노래소리가 넘쳐 흐른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모습, 어찌보면 그 모습에 담겨진 수많은 사연들이 우리민족과 함께  하여 왔고 또 영원히 함께 해야 할 민족사일지도 모른다.  소나무, 오늘도 장백산 그 어디서나 푸르청청 변함없는 일편단심으로 우리민족을 지켜주고 있다.  
26    민족의 자랑 댓글:  조회:1308  추천:0  2015-07-01
김죽화 조선족,중공당원,료녕신빈사람,료녕성 특급교사, 전국인민대표대회대표,중공전국대표대회대표,전국로동모범,국무원특수공헌수당금수혜전문가,전국신장정돌격수 등 영예를 수상하였다. 기층학교에서 40여년간 교육사업에 종사하였으며 25년이라난 교장사업을 담임하면서 교육일선에서 민족교육과 국가교육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전국인민대표대회대표직에 있으면서 의무교육의 관철과 연장 그리고 중국교육개혁과 발전을 둘러싸고 수많은 건설적인 의견들을 제기하면서 유관부문의 고도의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두영웅  한자리에 모이다 김춘명 조선족,중공당원 흑룡강상지사람, 1977년생, 1995년에 입대,현재 료녕성공안소방총대본계시지대명산구대대특근반에서 근무하고 있다. 화재일선에서 언제나 제일 위험한곳에 뛰여들며 전우들에게 내가 희생되여도 고아니까 홀로 가면 다지만 전우들에게 사고가 생기면 친인들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준다며 위로하군 한다. 입대후 그는 1650여차의 소방임무와 구조임무를 완수하였으며 국가재산수천만원을 보호하였으며 65명의 인명을 구조하였다. 선후하여 개인 일등공  1차례,  2등공 두차례,  3등공 8차례를 세웠으며,  전국공안소방부대일터기능련마10대최우수기술능수, 공안부모범소방전사,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개인, 뢰봉식소방전사, 중국청년54훈장, 료녕성공안소방부대10대걸출한관병, 료녕성청년54훈장, 뢰봉훈장, 료녕성인민공훈경관, 본계시뢰봉식선진개인, 희망공정특수공헌상, 옹정애민모범 등 수많은 영예의 주인공이 되였다.
25    우리학교는 안전지대인가 댓글:  조회:1558  추천:0  2015-06-23
한시기 학교와 가정 및 사회의 안전불감증으로 학생들의 생명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주류를 이루던 반면에 최근에 들어서서 형사안건들이 주요인으로 되고 있는 학생들의 피해와 피살사건들이 눈에 뜨이게 늘어가고 있다.  놀라운것은 우리민족사회도 인젠 누구도 방심할수 있는 사각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문지상에서 남의 일로만 보던 끔찍한 학생피살사건들이  인젠 우리민족사회에서도 비일비재이다.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는 학생들의 등교와 귀가는 어찌보면 평화로운 일과로 보이겠지만 학생생명안전을 위협하는 식품위생, 교통사고, 화재사고, 형사안건들은  끊기지 않고 있다. 시시각각 우리민족 후대들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점에 감안하여 볼때 민족사회의 중시가 아주 절실하다. 이를 우리민족사회를 포함한 전반 사회적인 불가피한 현상으로 리해한다면 우리는 조속히 그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가능한 모든 방도로서 학생에게 안전하게 성장할수 있는 안전지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학교안전은 학교운영의 담보로 될수 있다. 사회와 학부모들이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가 그 어느떄보다 크며  국제경쟁,인재경쟁으로 인한 교육위기, 생존위기 등으로 학교자체는 언제나 거대한 압력과 도전에 직면해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안전문화에 대한 인식여하는 학교생존 및 학생성장과 밀접히 관계되는 요인으로도 될수 있으며 안전불감증으로 초래되는 학생피해는 학교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도 치닫게 할수 있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인젠 안전교육을 형식적인 겉치레로서가 아니라 학교교육의 구성부분으로 삼고 실제적인 방안과 대책을 짜고  대담히 실천을 시도해야 한다. 더우기 인간성을 기본으로 생명을 아끼는 자세를 갖추고 자아보호능력을 키워주는것을 주내용으로 한 안전문화를 구축해야 하며 학교의 일상생활에 정착시켜야 한다.  안전문화를 학교교육에 착륙시킴에 있어서 인간성을 기본으로 하는 사상을 수립하고 모든것은 인간을 위한다는 리념으로 사람마다 안전에 관심을 돌리고 피동적인 사고와 사업방식에서 벗아나 주동적이고 능동적이며 일상화된 생활내용으로 이루어나가야 한다. 단순한 관리인으로 되거나 사고발생후의 일처리에 급급하기에 앞서 학교에서 안전의식과 안전문화가 형성될때라야만이 사람마다 안전을 자신의 일과 관련되는 사명감으로 사고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줄일수 있으며 안전우환들을 제거할수 있다. 안전문화를 창도하는 과정에. 교연조별 학년조별 학급별로 교직공별로 자체담당부문에서 책임을 확실히 하고 안전사업과 업무사업을 한 어깨에 짏어지게 함으로써 단순한 행정적이고 강박적인 안전제도와 감독체계에서 벗어나 학교의 일상사업으로 연착륙 할때에라야 만이 안전문화의 도야속에서 안전제도가 지켜 지고 안전위험요인들이 하나하나 제거되면서 학생들이 아무런 걱정없이 성장할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될수 있다. 그리고 일상적인 안전상식과 지식들을 교수내용에 첨가시켜 계절에 따라 교수내용에 따라 시대환경에 따라 안전을 지킬수 있도록 경시를 주고 자아보호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안전을 위협하는 돌발상황들이 시시각각 우리주변에서 맴돌고 있는만큼 학교에서의 안전교양도 일상화되여야 학생들이 그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태연하게 응부하고 자기를 지킬수 있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학생보호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는 학부모모임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여 학부모를 상대한 갖가지 강좌를 많이 조직하여 학부모가 갖추어야 할 마음과 자세를 알게 할뿐더러 가정에서의 안전문화를 창도해나가는데서 주도적역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학생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생명과 인신안전에 위험을 가져다 주는 갖가지 요인들을 알고 위기가 닥쳤을때 차분하게 풀어나갈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것은 학생들의 심리장애와 자페증 그리고 우울증으로 인한 학생생명 안전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심리장애는 병이 아니라고 그대로 방치해둔다면 엄중한 정신질환으로 진전될수 있고 또 심리장애를 정신질환일종으로 착각하는 시각도 버려야 한다. 심리장애로 기인된 학생생명안전에 대한 위협은 학교나 주변사람 혹은 학생보호자들의 세심한 관찰과 자문 및 약물보완으로 미연에 방지할수 있는 만큼 시각차이를 버리고 이런 부류의 학생들에게 중시를 돌리고 심리장애를 제때에 제거하도록 그들을 도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보귀한것이 생명이란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 생명의 가치를 알고 생명을 보람있게 지키며 살아나가는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그길을 열어주고 지켜줘야 할 사람들은 우리의 학부모들과 학교이다. 안전문화의 창도를 통해 우리후대들이 안전된 사회환경에서 건실하게 성장할수 있는 여건들을 마련하는것이 시급한 실정에서 학교가 주도로 되여 안전문화착륙의 새기원을 열어가야 한다.  
24    학생도 선생도 모두 진화해야 한다 댓글:  조회:1514  추천:0  2015-06-03
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어찌보면 이는 단순하게 학생을 피교육자의 위치에 세워놓고 부정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자의 위치에서 교사는 학생 비해 진정 박식하고 지능적이고 자격있다고 할수 있을까? 시대의 발전과 함께 학생들이 많이 진화되여 있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위치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수선, 학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학”은 명사로 해석하면 학업,학문,학식을 가리키며 동사로 해석하면 학습과 터득을 가리킨다.”생은”생소하고 서먹하며 익숙하지 않다는 뜻외에 생명,생존,생활,생산과 창조등을 의미한다. 때문에 학생은 수선 학업,학문, 학식이 생소한 사람을 가리키는것으로서 배우는것은 학생의 천직이다. 아울러 학생은 생활과 생존을 배우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닳아야 하고 생산을 배우고 창조를 배워야 한다. 이는 학생의 글자뜻에 따른 해석이다. 이런 해석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동반되여 있다. 여기에는 학생은 유치하고 무지하고 비성숙된 사람이며 선생은 학생 비해 고명하고 학생에 대한 평가자이며 령혼의 공정사라는 전제의식이 깔려 있는것으로서 이러한 잠재의식은 사생관계와 학생에 대한 평가에 큰 영향을 준다.그러나 학생들에게는 과거와 다른 큰 변화가 있다. 그들은 인젠 간단한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하는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존재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들의 사상관념, 생활방식, 행위방식은 전반사회현실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상응한 사회적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단순하게 사회에서 배우면서 미래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다음, 학생들은 변하고 있다.과거에는 사회변화가 더디고 상대적으로 안정되여 성인들의 경험과 문화가 확실히 청소년에 비해 우세가 컸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급변의 시대로서 지식갱신속도가 빨라 성인들도 부단히 지식갱신하고 사회화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성년들도 학생과 마찬가지로 대등한 사회적지위에 있으며 성인이 가지고 있는 우세가 과거와 달리 권위성이 떨어지고 선지정도도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청소년들은 사상해방이 빠르고 정력이 넘치고 기억력이 좋고 새로운 사물을 쉽게 받아들이며 정보화 시대에서 성인 비해 더 우월한 지위에 있으며 그들이 정보를 얻는 능력과 장악하는 능력은 성인들을 크게 앞지른다. “다원화”방향으로 나아가고 “선택성”을 늘이는것은 돌이킬수 없는 사회적추세로서 인젠 문화의 동일한 표준을 타파해야 할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고 개성넘치는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다원화와 선택의 특성은 학생들에 대한 성인들의 문화표준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와 발전은 청소년들이 경험이 부족하다 해도 단순하게 그들을 가능한 존재로만 본다든가 가공대상부품으로 본다든가 철없는 변두리의 사람으로 본다든가 지어는 학습과정에서 스스로의 체험을 부인하고 그들의 가치관념의 의의와 현실성을 부인하면서 상대하고 평가하고 요구한다는것은 이미 시대에 떨어진 교육행위로서 그들의 반발과 저촉만을 초래하게 된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학생관에 대하여 오늘의 학생들은 관념이 새롭고 정보에 능란하고 개성이 발랄하다. 이는 전례없는것으로서 교육자에게 주는 의미가 아주 크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교육의 근본적인 출발점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학생관이 가져다주는 문제점은 많다. 학생에 대한 존중이 없는 안하무인으로서 학생의 주체지위가 박탈당하고 교육의 대상으로, 교수의 부속물로, 지식을 담는 용기로, 가공을 기다리는 원자재로, 성인들의 관리욕을 만족시키는 도구로만 리용되였을 따름이다. 합격된 선생이 되려면 인젠 학생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하다. 자주는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존중이며 자학은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교수이며 자률은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덕육이며 자치는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관리이다. 자주는 학생이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고 학급의 주인, 학교의 주인이 되라는것이며 학생을 학습의 주인이 되고 과당의 주인이 되고 활동의 주인이 되라는것이다. 리상적인 과당은 학생을 위주로 하고 학생을 위해 봉사하고 학생에서 출발한후 학생들을 거쳐 학생에로 이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학생을 신임하는것이다. 우리의 학생들은 이러한 과당에서만 즐겁게 지식을 배울수 있고 능력을 제고할수 있으며 지식을 얻는 동시에 승화와 발전이 있게 되고 존중을 얻는 동시에 존엄을 세울수 있게 된다. 학습의 주체는 영원히 학생자신이고 학습은 영원히 학생자신의 일이며 학생은 영원히 스스로 배워야 학습의 주인으로 될수 있으며 학습은 반드시 자신을 거쳐야 완성될수 있다. 배우는 전제는 배울줄 아는것이다. 배울줄 알려면 기계적이고 소극적이며 피동적인 기억에서 인지와 터득에로 전변하여야 한다. 그 열쇠를 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새로운 학생관으로 무장된 선생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학교사이경쟁 교사사이의 경쟁은 교사의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의 변화를 시도하고 학생의 진화와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학교가 성공할수 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학교로 장기간 그 맥을 이어갈것이다.
23    자신과의 싸움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전쟁이다. 댓글:  조회:2611  추천:0  2015-05-20
사람마다 자신만의 꿈세계에서 그 성공을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꿈을 이룰수 있는것은 아니다. 성공에는 방법이 있고 실패에는 원인이 있는 만큼 실패를 위해 구실을 찾지 말고 성공을 위해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필경 실패의 원인보다 성공의 방법이 더 많으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일들이 많겠지만 그 앞에서 어떤이는 과감히 직시하고 어떤이는 도피를 선택한다. 물론 힘든 사람들은 꼭 성공할수는 없지만 회피하는자는 기필코 실패한다. 세상에는 해결하지 못할 곤난이 없고 곤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을따름이다. 곤난에 봉착했을때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부지런히 사고하고 사고방식을 댜양화한다면 모든 곤난들이 해소될수 있다. 천만의 곤난이 있다면 분명 천만보다 많은 해결책이 있다.  살다보면 할말 안할말 분간하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가 서로가 상처를 받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은 입을 마음에 담고 있으나 미련한 사람은 마음을 입에 담고 있다. 두뇌는 일상용품이지 장식품이 아니다. 할말 안할말 스스로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 남을 미워하면 그 고통이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남을 비방하는것은 피를 뿜는것처럼 먼저 자신의 입을 더럽힌다. 그러나 락관적이고 환한 웃음은 자신을 즐겁게 할뿐더러 주변사람들도 편하게 할수 있다. 자신을 낮출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 존귀한 사람이다. 사람은 정말 요사한 동물이다. 돈은 죄악이라면서도 모두 건지려 안간힘을 쓰고 미녀는 화라면서 모두 차지하려 하고 관직은 탐욕자라면서도 모두 오르려고 빠득거리고 천당은 좋다면서 누구도 가려고 않는다. 사유는 텔레비에 맡기고 련락은 핸드폰에 맡기고 두 다리는 자가용에 맡기고 건강은 약에 맡기는 얼씨구 세월에서 살아가지만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스트레스는 수없이 쌓여만 간다. 성숙된 사람은 과거를 개의치 않으며 총명한 사람은 현실을 개의치 않으며 통쾌한 사람은 미래를 개의치 않으며 하루하루를 보람있고 충실하게 살아가는데 의미를 둔다. 기실 쓰레기를 밟으며 올라선 리상의 경지나 금을 밟으며 올라선 리상의 경지는 똑 같다. 금과 쓰레기가 무슨 구별이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 남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그들의 행복을 극대화하고 그들의 불행과 좌절은 보지 못하며 남들은 언제나 행복한줄로만 안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는 행복을 보지 못할뿐더러 고민과 번뇌가 자신만을 따라다니는줄로 알고 불만이 많고 불안해 한다. 자가용을 타고다니고 넓고 환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불만뿐인 사람들은 과연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남들이 성공하였을때 우리는 그가 운이 좋다고 하고 남이 실패하였을때 우리는 그가 노력하지 않어서라고 한다. 자신이 성공하였을때는 자신의 노력의 결과라 하고 실패하였을때는 환경을 탓한다. 자신을 스스로 망치는 사람이 남이 자신을 망치는 사람보다 훨씬 더많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이길수 있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자신을 파악할줄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자신을 잘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을 잘 대하는 것이고 남을 잘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을 관용하는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지혜로 자신의 두뇌를 충전하고 미련한 사람은 언제나 남의 지혜로 자신의 정서를 혼란시킨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은 쉽게 잊으나 남이 자신에게 입힌 상처는 평생 기억하고 용서를 하지 못한채 자신을 불안의 소용돌이에 가두고 몸소리친다. 관용 하나로 그 어두운 세상에서 나올수 있다는 단순한 도리를 모른채로. 사람들은 흔히 의외의 방식으로 횡재할수 있고 의외의 약효로 병을 치료할수 있으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행복을 얻을수 없다. 관용으로 세상을 얻을수 있고 미움으로 세계를 잃을수도 있다. 귀뚜라미 외로이 우는 밤에 함께 해줄수 있는 친구라면 세상 무엇도 부러울것이 없을것이다. 복잡한 일은 간단하게 하고 간단한 일은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자주하고 자주 해야 할 일은 창의성 있게 하면서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즐겁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면 어떨까. 그러느라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전쟁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정한 승자가 될수 있을지도 모르지.
22    된장에 담긴 민족의 정서 댓글:  조회:1947  추천:0  2015-05-08
아침이다. 출근하느라면 바쁜 아침이지만 나는 매일매일 아침밥은 챙겨서 에우군 한다. 오늘도 랭장고에 있는 시래기 한덩어리와 호박 한쪼각, 돼지고기 몇점,그리고 파와 두부를 넣고 된장국을 보글보글 끓여 아침상을 차렸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도 않는 된장국에 밥 한공기를 뚝딱 말아먹고나니 출근길이 이처럼 개운할수가 없다. 우리민족은 수천년세월속에서 발효식품으로 몸을 다져왔다. 그 가운데서도 된장은 헌신적인 정신으로 우리민족을 지켜주었고 끊임없이 영양소를 제공하여 주었다. 된장은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 띄울 때 생성된 미생물 등의 효소작용으로 혈전용해효과와 항암효과가 뛰여난 고단백 발효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된장의 가장 큰 효능은 바로 항암효과라니 가이 놀랄만도 하다. 또한 피를 맑게 도와주고 혈액순환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고혈압 예방, 노화 방지, 치매 방지, 골다공증 예방 등 다양한 효과가 있어 현대인이 일상에서도 섭취할 수 있는 보약이라고 하니 우리는 그저 조상의 지혜에 감탄할 뿐이다. 우리민족은 다혈질체질이여서 성격이 급하다. 식사시에도 료리를 가공할 사이도 없이 그대로 가져다 장에 뚝 찍으면 밥반찬이요, 술안주가 된다.  된장을 리용한 다양한 음식들은 우리 민족의 매끼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주요 메뉴이다. 된장찌개는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반찬 역할을 수행하며 한끼 식사를 거뜬히 해결할수 있다. 된장을 찍어 각가지 식재료로 쌈 싸먹으면 그것보다 산해진미일수가 없다. 고칼로리에 현대병에 몸살하는 오늘, 옛식 된장 쌈은 인젠 우리민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건강식으로 탈바꿈하였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술상에서도 눈을 지프리며 뭔가 모자란듯 저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대개 느끼함보다 개운하고 시원한 료리를 많이 찾는다. 술잔이 여러바퀴 돌고나서 각가지 야채들을 큼직한 접시에 담아 올리고 나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듯 서로 집어주느라 야단들이다. 된장에 찍어 입에 놓으면 입안은 온통 명절분위기이다. 이쯤이면 자연의 색상 그대로 살아 숨쉬는 각가지 야채는 산해진미를 물리치고 당당히 인기료리로 올라선다. 우리민족문화의 한구성원으로 자리를 굳힌 된장은 인젠 우리민족 음식문화의 대표로 되여 다양한 메뉴로 변신하고 있다. 된장을 리용하여 고추, 깻잎, 풋마늘 등 채소를 된장에 뭍혀 숙성시키면 장기간 밑반찬으로 이용하는 장아찌가 되고 또 쌈에 곁들이는 소스역할도 충실히 리행한다. 고전적 형태에서 벗어나 염분을 줄이고 자연 발효의 기능성을 강화한 된장과 편의식 수요증가에 발맞춘 다양한 가공제품들이 육속 개발되고 있으며 의약품과 화장품 등의 소재로도 활용되면서 세인들의 각광을 받고 있다. 아무리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이지만 된장은 이렇게 기타 음식들을 배척하지 않고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된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을 내고 다른 식품과 어울려져 다양한 식재료로도 쓰이지만 다른 맛과 섞어도 제 맛을 내는 단심,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 항심. 기름진 냄새를 제거하는 불심,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선심, 어떤 음식과도 조화가 되는 화심 등으로 우리민족의 삶의 정서와 민족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메주를 쑤는날이면 온 집안이 아침 일찍부터 난리다. 식구 모두가 자기의 분담역할을 완수하느라 바쁘다. 잘 익은 콩은 이입저입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짓뭉개진 콩은 재치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곱게 메주로 빚어진다. 어머니가 메주를 곱게 빚지 않으면 메주같은 자식을 본다고 하자 만지고 두드리며 곱게 만드느라 경쟁이다. 모두들 제가 빚은 메주가 곱다고 야단들이지만 세상에 고운 메주가 어디에 있냐 싶게 사람들은 한결같이 못난 사람은 메주처럼 생겼다고 한다. 그래도 메주는 그 토록 천대를 받으면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소리없이 된장으로 진화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 하면서 우리를 지켜주고 떠나지 않는다. 시간을 알리기나 하는듯 때가 되면 집집이 밥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가물가물 피여나고 부엌가마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뿜어나온다. 향긋한 밥냄새와 된장의 구수한 냄새는 서로 합주를 하듯이 온 집안을 감돌며 행복을 가득 심어준다. 비록 화려하지 않지만 허기진 사람들에게는 산해진미가 되여 밥상우에 당당히 오른다. 수백년 세월이 흘렀어도 한결같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것도 바로 이때문에 아닐까 싶다. 어릴때 밖에서 실컷 뛰놀다가 집에 들어서서 배고프다고 졸라대는 우리에게 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차려준다. 거의 끼마다 상에 오르는 된장국이지만 사람을 유혹하는 구수한 그 냄새는 질릴때가 없이 주린 배를 언제나 통통 채워주군 하였다. 툭 튀여나온 배를 두드리며 밥상에서 물러서는 자식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타향생활에 적응하고 타향음식에 길들여가지만 고향의 된장국맛만은 영원히 잊지 못하고 구석어디라도 그 맛을 찾아 다닐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한류와 함께 한식이 웰빙식품이라는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식의 세계화가 가속화 되고 된장국도 인젠 어디서나 쉽게 접할수 있는 글로벌 음식으로 되였다. 그래도 고향의 정이 묻어나는 어머니의 된장국은 언제나 그 무엇으로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추억의 대상이 되여 그리워 진다. 기름기 찰찰 도는 이밥에 보글보글 끓는 장국 거기에 깍뚜기김치나 배추김치를 곁들이면 신선밥상이 부럽지 않은 금상첨화가 아니였던가. 된장은 귀와 천, 부와 궁의 구별이 없이 언제나 소박하고 무던하고 친절하고 존경스럽다. 여름에 채소와 곁들여 먹으면 해갈이 되고 가을에 산나물과 곁들여 먹으면 자연의 기를 그대로 옮겨받고 겨울에는 화로불에 부글부글 된장국을 끓이면 온집안에 구수한 된장냄새에 어머니의 사랑이 넘쳐난다. 봄엔 새록새록 금방 돋아난 산나물과 곁들어 먹으면 춘곤을 물리치고 잃어가던 밥맛이 돌아와 원기를 살려준다. 된장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민족에게는 된장관련 속담들도 많이 나타났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 “장맛보고 딸 준다”, “된장과 사람은 묵은것이 좋다” 등 집안의 가풍과 관계있는 중요한 요소로까지 생각한다. 옛날에는 어느집 된장이 맛있으면 안주인의 자랑이요 남편의 자랑이였다. 된장은 우리 식문화의 뿌리이며 우리 민족의 정서와 지혜 그리고 삶의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건강식품이고 효자음식이다. 소박하면서 세월의 뜸을 들여 정성이 듬뿍 담긴 콩에서 된장까지의 변신은 선조의 지혜가 있어서 가능하였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하는가 하는것은 당연히 현대인 우리들의 몫이다.
21    효에 관련된 고어 댓글:  조회:1830  추천:0  2015-04-23
▶君圣臣忠,父慈子孝(군성신충 부자자효) 임금이 거룩하면 신하가 충성스럽고, 아버지가 仁慈(인자)하면 그 자식이 효도한다. (王良)   ▶父不忧心因子孝,夫无烦恼是妻贤.(부불우심인자효 부무번뇌시처현) 아버지가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함은 자식의 효도로 인함이고 남편이 번뇌함이 없는 것은 아내가 어짐이라.(명심보감)   ▶死后祭之 不如生前之善养(사후제지 불여생전지선양) 죽은 후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살아계실 때의 참된 봉양만 못하다.(孔子家語)   ▶树欲静而风不止,子欲养而亲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조용하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하려고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효도를 다하라는 뜻.   ▶身既不孝 子何孝焉(신기불효 자하효언) 내 자신이 이미 효도하지 아니하면 자식이 어찌 효도 하리오. (太公)   ▶养子息 知亲功(양자식 지친공) 자식을 길러 봐야 어버이의 공을 안다.   ▶爱养父母 为之孝 友於兄弟 谓之悌 教育其子 为之慈(애양부모 위지효 우어형제 위지제 교육기자 위지자.) 부모를 사랑하여 섬기는 것을 "효"라 이르고, 형제에게 우애있는 것을 "제"라 이르고, 그 자식을 가르쳐 기르는 것을 "자"라 이르니라.   ▶以爱妻子之心 事亲 则曲尽其孝(이애처자지심 사친 즉곡진기효) 처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기면 그 효도는 마음과 힘을 다한 것이다. 자신의 처자식에게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섬기면 진정한 효도가 된다는 의미. (경행록)] 처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모를 섬기면 그 효를 곡진하게 하는 것이다.   ▶立身有义 而孝为本(입신유의 이효위본) 세상에 나가 출세함에 의가 있으니 효도가 근본이 된다. (孔子)   ▶资於事父 以尊尊 而君道立焉  资於事父 以圣圣 而师道 立焉 兹所谓生三 而事一也(자어사부 이존존 이군도 입언. 자어사부 이현현 이사도 입언. 자소위생삼 이사일야) 부모 섬기는 것에서 바탕삼아 존귀한 분을 존귀하게 여기니, 임금의 도가 서고 부모 섬기는 것에서 바탕 삼아 현명한 분을 현명하게 여기니 스승의 도가 서니라 이것이 이른바 삼생(나를 생존하게 한 세분 君, 師, 父)이라 섬기는 것이 한가지라.   ▶子曰 弟子立则孝 出则弟 谨而信 汎爱众 而亲仁 行有余力 则以学文(자왈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 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는 들어오면 효도하고 나가면 공손하며,삼가고 미덥게 하며, 널리 무리를 사랑하되 어진이를 친히 할 것이니,이것을 행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그것으로써 글을 배울지니라.   ▶子游 问孝 子曰 今之孝者 是谓能养 至於犬马 皆能有养 不敬 何以別乎(자유 문효 자왈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뉴양 불경 하이별호) 자유가 효를 물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의 효라고 하는 것은 다만 음식을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나 말에 이르러서도 모두 음식으로 공양함이 있거늘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서 이를 구별하겠는가?   ▶子孝双亲乐 家和万事成 (자효쌍친락 가화만사성) 자식이 효도하면 어버이가 즐거워하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지니라.
20    단순함에 숨어있는 행복 댓글:  조회:1789  추천:0  2015-04-20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을 비우면 행복이 찾아온다. 하긴 인간은 행복을 찾아 한생을 바친다. 자신만이 고집하는 행복, 그 의미가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행복에 대한 리해와 추구가 있다. 물론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에 시도때도 없이 찾아드는 좌절과 고민은 행복의 천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행복이든 고민이든 모두 인간의 마음먹기에 달렸다는점은 분명하다. 인생의 행복과 고민은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것이다. 고민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고민과 번뇌를 떨치지 못하는데 있으며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행복의 의미를 터득하지 못하고 수많은 행복을 찾지 못하는데 있다. 매일 외식하고 자가용을 타고 아파트에서 살면서도 불만뿐인 사람들은 진정 무엇을 더 요구하고 바라는것인지 알길 없다. 아이들은 왜서 마냥 천진하고 행복한 모습일까. 그것은 그들의 눈에는 세계가 너무도 순수하고 단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생각이 많은것은 그들의 마음에는 세계가 너무도 복잡하기 보이기 때문이다. 기실 산도 그 산이요 물도 그 물이지만 사유방식과 세계관이 다름에 따라 산으로 보이지 않고 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의 인생은 티없이 순결하다. 그들의 눈에는 세계가 신기하지만 자연의 모든것은 원모습 그대로 각인되여 있다. 어른이 되면 리상과 현실사이의 충돌에서 체험하게 되는 좌절들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의심하게 하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게 한다. 이때면 산을 보아도 한탄뿐이고 물을 보아도 탄식만 나온다. 산은 여전처럼 단순한 산으로 보이지 않고 물도 자연스럽게 보일리가 없다. 세상만사에 대하여 리성에 기초한 현실적인 사색을 갖게 한다. 세상만사가 사람들의 주관의사의 플랫폼이 되여 이것저것 모든것을 비하면서 그에 따르는 고독과 방황 고통과 몸부림을 경험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로년이 되면 인생경험이 축적되면서 자성과 수련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번거로움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마음속 깊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주변의 쓸모없는 일들에 집착하지 않고 웃음과 성숙으로 세속의 모든일을 대한다. 산도 물도 원상 그대로 보일뿐더러 삶의 방식도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행복이 무르익어가는 창창한 대로가 펼쳐지는것이다. 겉으론 행복해보이지만 고민의 세월에서 허덕이고, 힘든 세월을 사는것 같지만 행복해보이는 도리는 과연 왜서일까. 실생활에서 우리는 두리뭉실하게 사는 사람이 쉽게 행복을 찾고 인생을 즐기지만 모나게 사는 사람은 되려 쉽게 힘들어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모난 사람은 너무도 진실하고 완벽한 결과를 바라기 때문에 생활에서 고민투성일수밖에 없다. 반면에 두리뭉실한 사람은 따지는것이 적고 삶과 사고방식이 단순하여 되려 인생의 높은 경지에 쉽게 오를수 있고 거기서 행복과 즐거움을 만끽한다. 알몸으로 태여나서 알몸으로 가는 인간세상에서 탐욕에 심신이 지친채 인생을 마치기보다는 인생의 사계절을 즐기고 수놓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고싶은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행한 일은 결과에 관계없이 후회를 하지 않는 인생,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푸른 하늘과 칠색무지개를 가슴에 담고나서 자신의 가슴을 당당하게 두드려보는 그러한 인생. 살다보면 완벽하지 않지만 량심에 당당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인생. 멋진 인생은 이렇게 사는것이다. 행복은 단순한 생활에서 온다. 그런다고 청빈한 생활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순한 생활은 바로 유유하고 편안한 생활을 말한다. 어떻게 하여야 유유하고 편안하다고 할수 있는가? 이는 한사람의 금전과 지위와 련관성이 있다고 하기보다 생활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평범하면서도 일상적인 생활에서 우리는 열정과 의미있는 생활을 훌륭히 할수 있다. 사람은 원래부터 사람일뿐이다. 집요하게 사람구실을 한다고 할 필요가 없다.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알심들여 처세를 신경쓸 필요가 없다.  9뒤에는 0이 따르고 원점에서 우리는 다시 반복할뿐이다. 사람들은 흔히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너무 신경을 쓴다. 타인의 정서에 좌우되면서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남들의 어망결에 던진 한마디에 신경을 쓰면서 자신을 혼란상태로 몰아간다. 기실 사람 모두가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한것이지 남을 마음에 담아 두고 남의 인생을 두고두고 걱정하는 사람은 얼마 안된다. 우리가 차실을 범할때 그것은 머리를 써야 할 곳에 감정으로 대응한데 있다. 성깔쓰는것은 우리들의 수양을 망가뜨리고 나서야 할곳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것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좌절속에서 왕왕 하늘이 무너진다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기실은 스스로가 옳바른 위치에 서지 못하였거나 자신을 너무 월등한 위치에 올려세우고 내려볼수 없게하거나 타인의 성과를 무시하는데서 기인된것이다. 세상을 바꿀수 없어도 관념은 바꿀수 있고 일을 바꿀수 없어도 마음은 바꿀수 있고 남의 생각을 바꿀수 없어도 자신의 시각은 바꿀수 있고 바람방향을 바꿀수 없어도 돗대의 방향은 조절할수 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변할수 있다. 사람의 제일 큰 적은 남이 아닌 자신이다. 자신을 이기면 진정한 승자가 된다. 욕망이 한계에 이르렀을때 극복했다면 승자이다. 인생에서 감출수 없는것은 기침, 가난, 사랑이라고 한다. 흥청망청써서는 안되는것은 신체, 금전, 사랑이라고 한다. 잡아가둘수 없는것은 생명, 시간, 사랑이라고 한다. 떠올리기 싫은것은 재난, 죽음,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삶과 언제나 떨어지지 않는것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랑을 베풀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여유있는 삶을 살아가는것이 인간의 최적의 선택인것 같다. 자연의 구성원이 되여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그 속에는 분명 단순한 삶의 자세만이 만들어 주는 인생의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런 의미를 발굴하고 터득하고 자신의 삶에 어떻게 리용하는가 하는것은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19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의 득과실에 대하여 댓글:  조회:1770  추천:0  2015-04-01
핸드폰은 오늘 사회에서 필수적인 통신도구이며 우리들의 생활에 많은 편리를 가져 다 주고 있다.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이 급증하면서 학교에서의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여부를  둘러싸고 론쟁이 끝이지 않는 가운데 합리한 사용방안을 둘러싸고 고심하는 학교와 담임선생님들도 많다. 아래에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의 득과실 그리고 해결책을 둘러싸고 필자의 소견을 피력하려 한다. 첫째: 학생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리유”에 대하여 “리유”의 본질적인 의미는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는 까닭이나 근거를 말한다. 때문에 학생들의 핸드폰사용에서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바로 핸드폰사용의 까닭이나 근거를 찾는것이다. 핸드폰은 현대생활에서 불가결의 통신도구임은 분명하나 학생 에게 있어서 잠재적 위험요소로 될수 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지금의 핸드폰은 통화와 메시지 교환에만 쓰이는것이 아니다. 2006년부터 화웨이, 노키아, 모토롤라 등 핸드폰회사에서는  핸드폰에 소프트웨어와 게임을 설치하여 단순한 핸드폰에서 오락도구로 탈바꿈시켰다. 사람들의 부단한 추구와 함께 다원화의 오락기능은 끊임없이 개발되고 승화하기 시작하였다. 통신회사들에서의3G네트워크개발이 현실화되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할수 있게 되였고 컴퓨터에  비해 인터넷 사용이 훨씬 편리해졌다. 최근들어 삼성과 애플에서 출시한 감응식핸드폰과 고지능핸드폰은  손안의 컴퓨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의 발전이 핸드폰의 혁명을 불러오고 있지만 소비군체와 사용군체는 대부분 저령화단계에 머물러 있다. 소학 중학 고중 대학을 위주로 한 소비군체는 고지능핸드폰사용을 서로 비기고 류행을  따르는 징표로 간주하고 있다.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리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학생들은 아직 경제능력이 없고 가정경제능력이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핸드폰에 대한  학생들의 통일된 인식과 태도는 의외의 행위를 조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갖가지 리유를 대서라도 부모들에게서 값 비싼 핸드폰을 사 갖는다. 그중 가장 많은 리유는 바로 련락하기가 편리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만약시에 아빠 엄마가 나를  찾지 못하면 어쩌냐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타협의 자세를 보이군 한다. 기실 학생들의 속마음은 뻔하다. 통화가 핸드폰소유의 주목적이 아니라 오락으로 즐기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류행을 따르는것이 바로  절대부분 학생들의 주목적이다. 자아판단능력이 결핍한 학생들앞에 펼쳐진 핸드폰류행은 학생들을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학교측에서 사용을 금지하는 처사에 대하여 학생들은 불만으로 일관되여 있다. 끝없이 달구치는 응시교육의 채찍밑에서 무미건조한 서책 비해 손안에 있는보배는 지루한 시간과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데 최상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둘째: 핸드폰이 학생에게 가져다 주는 페단에 대하여 심조1중에서는 여러방면으로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는데 몇가지 통계에서 문제의 엄중성을 알수 있었다. 1. 핸드폰의 보급정도에서 볼때 평균한반에 40명이라 할때 20개학급이면 800명이다. 75%의 학생들이 핸드폰을 휴대 하고 있다면 600대가 학생군체에서 류동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2. 경제적차원에서 볼때 학생들 수중에 있는 핸드폰은 대부분이 지능형으로서 비싼것은 5000원 좌우이고 눅어야 1000원좌우이다. 평균가격이 2500원으로 6000ⅹ250=1500000(원)즉 150만원이다. 일년이365일,  3년이라는 고중생활은1095일이다. 만약에 이돈을 교육에 쓴다면1500000/1095=1370(원)이라는 답이 나오는데 매일 교육에 쓸수 있는 경비가1370원이 된다는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통화비, 인터넷접속비, 핸드폰보수비, 장식비, 충전비 등이 포함되여 있지 않았다. 3. 핸드폰이 점유하는 학생들의 시간에서 볼때 30M세트의 한달 이동통신비용이 5원이라면 하루에QQ를 몇시간 사용할수 있는가를 보기로 하자. 부지런히 채팅해서 한시간에300-400KB를 소모하고 일반 채팅도 150-240KB를 소모하게 된다. 30M=30960KB라고 할때 계산결과가 쉽게 나온다. 학생들이 하루 24시간 인터넷사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게임하고 음악을  감상하고 소설과 동영상을 보고 마이크로블로그를 리용하는데 드는 시간은 포함하지 않았다. 시간계산에서 알수 있듯이 학생들이 하루에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능형핸드폰으로 그들의 하루일과가 해결될수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의 발달과 함께 핸드폰을 통한 사람들사이의 의사소통이 쉬워지고 다양해 지고 있다. 통화, 메시지, 채팅, 마이크로블로그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숙제를 하거나 예습, 복습에 리용되여야 할 많은 시간들이 학생들의 이런 심심풀이에 빼앗기고 있다는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련애에도 무형의 공간을 만들어줌으로써 채팅을 통한 사랑이 늘고 있다는것이다. 그 위해성은 불보듯 뻔하다. 4.건강차원에서 볼때 많은 페단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건강에 주는 영향이다. 다기능핸드폰에 대한 학생들의 맹목적인 추구는 동조심리에서 기인되고 또 동조심리를 키워준다면 핸드폰사용에서 방사되는 전자파는 무형의 킬러가 되여 학생의 신체에 큰 손상을 가져다 줄수 있다. 매일 이온에서 흘러나오는 비자연광은 학생들의 시력에 주는 영향은 심각하다. 원체 학생들의 시력저하로 보건당국에서 심각히 받아들이고 해결방안에 고심하고 있을때 엎친데 덮친격으로 핸드폰 장시간 사용으로 인해 초래된 두통과 안병문제가 미래에 우리들의 건강을 해치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수도 있는 실정이다. 핸드폰이 인간의 두뇌에 주는 영향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지만 학생들은 베개머리에 놓은채 잠을 자는것이 보편적이다. 중독에 가까운 이런 행위들은 학생들의 생리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것은 피면할수 없다. 셋째: 이처럼 심각한 핸드폰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1.학생보호자립장에서 볼때 핸드폰 사용여부에 대한 옳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학생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거의 모두 부모들이 사준것이다. 사주는 리유 또한 아주 간단하다. 사달라니까 사주는것이다. 가격이 얼마든 학생의 요구에 응하는것이 지금 부모들의 처사방식이다. 어찌보면 자식한테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도 이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현명한 처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부모님들 한번이라도 학생의 핸드폰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누구와 통화하는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어떤 메시지를 주고  받는지를 알면 핸드폰 사용여부에 대한 판단이 쉽게 이루어진다. 사실 학생들의 통화내용을 보면 그들의 성장에 도움이 절실한 선생님과 부모님들과의 통화와 메시지 거래는 거의 없다. 사실 우리민족처럼 자식의 노예나 다름없이 한생을 아글타글하는 민족은 드물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자립능력을 키워주고 경제적지혜를 갖춘 미래대비형 양성방법을 알고 실천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물질적만족은 일시적일뿐이고 자녀들의 빈 마음구석과 두뇌를 채워줄수 있는것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부모에게 있는 만큼 부모들 반드시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인지 자성의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자녀는 부모의 얼굴이라는 점을 되 새겨보기 바란다. 2. 학교립장에서 볼때 교양과 제도적단속 병행이 필요하다. 아직 교육행정당국의 제도적조치가 공백인 현실에서 여러학교들에서 나름대로의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고 시비도 엇갈리고 있다. 학생들이 받아들일수 있는 방안이 가장 리상적이고 옳바른 선택이라 하겠지만 핸드폰에 푹 빠져있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학교의 제도적조치는 쉽게 리해될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만큼 점진적인 조치로 교양을 경상화 하고 휴대를 할수 있되 리용시간을 규정한다든가 경제적으로 효률적으로 사용하도록 인도하는 제도적조치를 시도해보는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담임교원립장에서 볼때 학교측의 제도적조치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실천하느냐가 종요하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핸드폰사용의 득과 실을 확실히 알려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것은 담임교원사업의 관건문제이다. 학급간부들에게 학교규정을 인식시키고 통일행동에 동참하도록 이끌며 효률적인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등교후 통일적으로 거두어들이고 보관한다든가 장려점수제를 실시한다든가 학급감독관리제도를 세운다든가 과임의 협조를 부탁한다든가 학부모와의 련계를 경상화한다든가 특정된 개별학생에 한해서는 특단의 조치로 몰수하고 학기말에 돌려주는 방법을 시행한다든가 하는 방법들을 시도해 볼수 있다. 지금 심조1중 여러학급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단속하고 있는데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 이번 학기들어 학생들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지지 않던 현상이 종적을 감추기 시작하였으며 학생마다 옛모습으로 돌아가 동아리활동에서 취미를 찾아가고 있다.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뛰노는 학생들이 많이지고 수업시간에도 인터넷에서 떠돌던 학생들이 급감하였다. 앞으로 기나긴 시간내에 핸드폰은 학생들의 련애문제처럼 교육사업에 종사하는 우리들에게 풀기 어려운 과제를 안겨줄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중심에는 학교가 아닌 가정이 있고 해결사는 학교만 아닌 학부모, 학생, 학교, 사회의 공동의 몫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협동작전을 한다면 학생에게 안정되고 즐거운 공부환경과 컨베이어를 마련해줌으로서 학생마다 학업에 열중하고 다채로운 학교생활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면서 자신의 인생목표를 향한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디딜수 있을것이다.
18    도시사람들 댓글:  조회:1516  추천:0  2015-03-26
흐리멍텅한 오전  따뜻한 햇살이 창턱화분을 비출때. 창가에 앉아있던 난 이런 생각을 했었지. 이 지겨운 일터를 떠나서 새로운 터전을 찾을거라고. 날개를 펼쳐 훨훨 날아 내가 원하는 길을 걸을거라고. 아무것에도 구속되지않는 지유로운 사람이 될거란 생각. 해빛에 미소를 번쩍이며 이런 상상을 할때 손안의  커피는 향기롭게 식어가고 있었다... 녹지근한 오후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할때. 아무렇지 않은듯 우산을 펼치는 사람들. 그들은 무언가에 쫓기는듯 지하철로 뛰어가고 있다. 붐비는 지하철안 지쳐있는 사람들. 그들은 전부 무표정이였다. 지하철이 달리고 있을때. 사람들의 한숨소리는 커져만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두드린다. 사람들은 왜 담배를 찾고 술을 찾을까? 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그런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단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메마른 령혼과 함께 지쳐가고 있다. 사람들은 지나친 소비를 통해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고한다. 물질적인 향유로 단기간의 기쁨을 느끼고 또 다시 돈만을 위해 일하고있는 도시사람들. 사람들을 마주할땐 웃고있지만 집으로 돌아올땐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아침이 되면 또 다시 얼굴이라는 가면을 쓴채 기계처럼 일을 한다. 밖으로는 웃고있지만 속으로는 외롭게 울고있는 도시사람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한다. 감성은 사라진지 오래고 가슴이 아닌 머리. 오로지 머리로만 살아간다. 나는 두렵다. 나도 그런사람이 될가봐. 리성을 잃어버릴까봐 두렵다. 아니 감성마저 잃어버릴가봐 더욱 두렵다. 길가다 마주친 아이의 눈망울을 봐도. 다리가 부러진 참새를 봐도. 슬피 울고있는 사람을 봐도. 황혼녘 쓸쓸이 걸어가고 있는 노인을 봐도. 눈이 살며시 녹아내려갈때 눈꽃을 피우고있는 나무를 봐도. 봄바람에 망울을 톡톡 터치는 꽃을 봐도. 아무느낌이 나지않는 도시사람이 될가봐 두렵다. 도시에는 진정 봄날이 있는걸까.  
17    그래도 김치가 제일이다 댓글:  조회:2940  추천:2  2015-03-20
봄빛이 완연하고 얼었던 대지가 풀리기 시작한다. 겨우내 움추려 있던 몸을 쭉 펴고나니 한결 거뿐해지지만 어쩐지 기분만은 아직 별로다. 밥맛도 가버리자 아예 손을 걷어 올리고 양배추와 오이로 김치를 담궜다. 국수를 말아먹을라니 시원한 국물을 생각하다가 무우로 물김치도 담구고 나니 어느 전문 료리사 못지 않게 군침이 입안을 괴롭힌다.밥 한공기와 국수 한그릇이 뚝딱이다. ㅎㅎㅎ 퇴직하면 식당을 차려볼까? 자화자찬이라도 하면서 료리에 재미를 붙이니 나름대로 생활의 정취가 살아나고 울적한 기분은 사라지고 봄기운이 우쑥우쑥 잘두 자라네. 뭐요? 내가 한것이 맞느냐구요? 허참, 남자라구 김치를 못 담구나? 어느나라두 유명료리사가 남자인지 모르는가 뵈네. 여러분들두 함께 즐기실라우? 
16    학생을 아는 선생과 부모가 되여야 댓글:  조회:1642  추천:0  2015-03-17
오늘도 예나다름없이 양복에 넥타이를 고정하고 집문을 나선다. 학생앞에 나서는 모습이 항상 정갈하고 정직하여야 한다는 신조를 수십년 견지해오고 있다. 확트인 교문에 들어서면서 언제나 사명감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지 하고 마음으로 웨치군 한다. 교육을 중시하는 민족으로 중국내 우수민족으로 자부하던 우리민족이 지금 한족한테 밀려 1위자리를 내주고 있지만 교육열은 아직도 뜨겁다. 교사직업은 태양아래 가장 신성한 사업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선생님은 자신의 모든것을 헌신하는 초불같은 존재로 칭송받고 있다.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에 대한 애착은 사람마다 갖추어야 할 일본새이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교사를 초불에 비유하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물거리는 초불의 신세가 가련하고 또 조용히 꺼져버리는 삶이 싫어서일까 아니면 가물가물 발산하는 빛과 열이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어쨌든 너무도 평범하고 화끈하지 않는 인생을 산다는것은 재미도 없다. 나는 아름드리 나무가 좋다. 강대한 생명력으로 보살핌이 수요되는  학생들을 감싸안고 나무속에 슴배있는 자양분으로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싶다. 학생들이 힘들면 걸터앉을수 있는  쉼터가 되여줄수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나는 너무도 좋다. 학생들은 성장의 환경이 다름에 따라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에 차이가 있게 되고 그 차이로 인한 부동한 심리적요인들이 쌓이면서 서로 다른 인격을 구성하게 된다. 언젠가 친구의 자녀 네학생을 불러 식사자리를 마련하였는데 한시간좌우의 식사시간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모습이 나를 사색에 빠뜨렸다. 어릴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두 아이는 저가락을 움직이는 시간이 길고 모든 료리들을 맛갈나게 먹었고 남에게 집어주기까지 하면서 즐기는 분위기였다. 다른 두 학생은 어릴적 부모가 리혼을 하면서 결손가정에서 사춘기를 보내였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거나 계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의 저가락 놀림은 분명히 차수가 적었고 눈치를 보는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이들에 대한 평가에서 성숙되고 례절이 바르고 착한 아이로 인정되겠지만 나는 어쩐지 측은한 마음과 함께 그들의 가슴깊이 숨어있는 부모사랑에 대한 갈구를 읽을수 있었다. 부서진 사랑을 다시 주어담아 얼마라도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부지런히 료리를 집어주었다. 선생님마다 지금 학생들 자질이 이왕 비해 못하다고 한탄하고 있지만 학생들을 마음으로 읽어주는 선생님은 많지 않은것 같다. 학생들이 범한 과오라지만 그 뿌리는 언제나 어른들에게 있다. 시대적변화와 가정환경의 변화가 낳은 학생심리의 변화를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을까. CT처럼 학생들의 마음을 속속히 파헤치려면 부모같은 사랑이 필요하고 학생들도 선생님을 부모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비관적이다. 인류력사상 보기드문 성인으로 인정받은 공자도 3천명제자들을 양성하였지만 현인은 고작72명뿐이였다. 아무리 미사려구로 선생님을 칭송하고 우상한다고 하여도 교사들은 가정교육을 떠난 학교교육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고 교육의 목적을 달성할수 없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만사대길로 생각하는 학부모들은 부모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집집이 한두자녀뿐인 가정구조에서 많은 부모들도 자식을 키우기 힘들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성숙기에 들어선 아이들에 대한 옳바른 인도와 교양이 따르기 힘든것이 주요문제이다. 때문에 가정에서는 학교교육에 주로 의거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몇명도 아닌 수십명학생에게 사랑의 손길을 골고루 내민다는것도 선생님에게 있어서 버거운 일이고 많은 경우에 불가능하다. 공부를 줄곧 잘하던 등교을 꺼려하더니 공부까지 그만둔다고 야단이다. 학생들에게서 발생하는 문제는 왕왕 다방면 요인들로 이루어진 압박감이 작은일에서 순식간에 벌어진다. 일이 터지고 나면 문제점 제 요인들은 제쳐놓고 사건의 발단을 두고 론할때가 많다. 이 학생의 경우도 어릴적부터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안고 부모가 지정한 성장모식에 따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지내온터라 스스로 자룰적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였다. 공부를 포함한 모든 수요는 부모의 뜻에 따라 좌우될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내성적인 성미와 아버지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는 대화의 기회가 별로 없었으며 어쩌다 있게 되는 대화의 주제도 부모에 의해 제기되고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내심을 발로할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불만을 쏟는 차수가 불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을 공부의 도구로만 리용한다고 여기는 학생과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부모사이의 충돌은 이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대학시험준비가 한참 바쁜 고3하학기에 성적이 언제나 우수하였던터라 학생에 대한 학교와 부모의 기대치가 높은것도 사실이였다. 그런 학생에게서 문제가 발생하자 시름이 깊어지는것은 부모나 학교나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의 심리적불안과 장애문제는 인젠 새삼스럽게 들리는것이 아니라 비일비재로 우리 앞에 제기되여 있다. 특정된 일이나 인물에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정도에 까지 와 있다. 해마다 중국에서 자살건수가 20만명 정도라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다. 통계에 의하면 조선족 학생의 결손가정이 70%에 접근하고 있으며 완정한 가정의 학생은 30%대를 웃돌고 있을뿐이다. 그나마 합격된 부모의 자격을 갖추고 부모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리행하고 있는지 단정할수 없다. 모두들 가정은 학생성장의 첫 학교이고 부모는 첫 선생이라 하지만 우리민족학생들의 가정실태가 이 정도이니 후대에게 무엇을 더 바랄것이 있겠는가. 학교교육이 학생교육의 주전선임은 의심할바가 없다. 학생마다 나름대로의 성장기를 거치면서 각자의 인생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 선택에서 매인의 운명이 바뀔수도 있다. 학생, 학부모, 학교를 포함한 3자의 조률을 떠나서 일방적인 교육에만 의거하여서는 좋은 교육효과를 기대할수 없다. 문제점이 많은 학생들 경우 더욱 그렇다. 학교에서 일을 저지르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사랑결핍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이다. 이러할진대 우리가 진정 아이들을 문제아이로 락인 찍고 제도적으로 처리할수 있을까. 문제의 근본요인을 찾지 않고 현상에 따른 단순한 처리는 학생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것으로 밖에 되지 않는다. 학생을 아는 선생이 되고 아이의 진정한 부모가 되는것이 학생성장에서의 관건이다. 오늘도 기로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없는지 걱정이다. 그들을 진정 알아주고 함께 아파해주고 마음으로 안아주는 교육이 정착되여야 한다. 그날을 위해 노력하는것이 교육자의 사명이다.  
15    “효”에 관련된 사자성어 댓글:  조회:2156  추천:3  2015-03-16
1. 망운지정(望云之情):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의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   2. 혼정신성(昏定晨省): 자식이 부모님께 아침 저녁으로 잠자리를 보살펴 드리는 것.   3. 자위부은(子为父隐):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긴다는 뜻으로 부자지간(父子之间)의 천리 인정(天理人情)을 말함.   4. 반의지희(班衣之戏): 늙은 부모를 위로하려고 색동 저고리를 입고 기어가 보임. 늙어서 효도함.   5. 반포지효(反哺之孝)까마귀 어미가 늙으면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 먹이는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커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이르는 말.   6. 사친이효(事亲以孝):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로써 함. 세속오계의 하나.   7. 부자유친(父子有亲):아버지와 아들의 道는 친애에 있음. 五倫의 하나.   8. 부위자강(父为子纲):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지킬 떳떳한 도리. 삼강의 하나.   9. 반포보은(反哺报恩):자식이 부모가 길러 준 은혜를 갚음.   10.풍수지탄(风树之叹):树欲静而风不止 子欲养而亲不待(수욕정이풍부지,자욕양이친부대 -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멎지 아니하고,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그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의 준말.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어버이를 여윈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말.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효도를 할 기회가 없음을 한탄함.   11. 출필곡반필면(出必告反必面): 밖에 나갈 때 가는 곳을 반드시 아뢰고, 되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보여 드린다.   12. 호천망극(昊天罔极): 끝없는 하늘과 같이 부모의 은혜가 크다는 것을 말함.  
14    결손가정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댓글:  조회:1937  추천:1  2015-03-11
결손가정학생교육의 심각성이 제기된지 여러해 되면서 여러분야에서 여러가지 탐구와 시도를 하고 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이 민족교육의 어두운 그림자만 짙어가고 있다. 결손가정의 출현을 막는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지만 한국행이 점점 쉬워지면서 결손가정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모든것은 자녀를 위한다는 동기에서 출국을 선택하지만 실제로는 자녀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첫걸음을 내디딘것이나 다름없다. 출국이 가족의 생존을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자녀가 받아야 할 모성애와 부성애를 최대한 보장할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돈만 바라보고 자녀를 멀리한채 서로 서먹할 정도로 갈라져 살아가는 결손가족들이 결과에 만족하는 가정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그래도 굳이 출국을 고집하는 부모들 자녀들의 미래를 락관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주요하게 생존의 기본요구와 자녀의 물질적욕망을 만족시켜 줄수 있고 자녀교육은 학교에서 책임지면 다다는사고방식에 있다. 학생의 가장 훌륭한 보호자가 부모자신이라는것을 부모님들은 아직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량친이 모두 출국을 선택할 경우 학생들은 심리적으로 의탁할 곳을 잃게 되며 심신건강에 꼭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는것이다. 심리적 불안감이 쌓여갈수록 기형적인 심리적 현상들을 발로하며 물질적 욕망 혹은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학생이 기로에 들어서게 되는 시작인것이다. 친척한테 맡기거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맡겨 학생들이 성장과정에서 품행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라도 세대차이로 인하여 학생들의 성장에 필요한 활력소가 충분히 보장되는것은 아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인생타령에 푹 빠져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거나 감정파멸로 남남으로 갈라지는 부모들은 리혼후에도 별로 호강을 못하면서 애꿎은 자녀들 인생만 망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부모들의 경솔한 처사에 망가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로서 자신들의 인간성을 다시 한번 짚어봤으면 좋겠다.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나타난 사회적 현상인 결손가정, 그 확대추세는 엄연한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보호자없이 또는 있다해도 그직책을 충실히 리행하지 못하는이들이 다수인 실정에서 결손가정의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주요하게 학교에 의거할수 밖에 없다. 학교가 봉사기구로 선생님은 봉사원의 자세로 결손가정자녀들에 대하여 더욱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쏟는다면 그들도 남과 못지 않게 떳떳이 성장할수 있다. 수선: 결손가정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관심과 주의가 더욱 필요하다. 그들의 기본상황을 손금보듯 료해하고 그들의 사상, 감정, 행위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 하여야 하며 이상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부모사랑이 결핍한 학생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부모 리혼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학생들에게는 상처가 다치지 않도록 쓰다듬어 주어 학생이 내가 힘들때 나를 지켜주는 선생님이 계신다는 안정감을 갖도록 하는것이 아주 중요하다. 가정방문이 지금 많이 소외시되고 있지만 기실 가정방문이 결손가정학생에게 있어서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제점이 돌출한 학생일수록 가정방문을 통해 사생사이의 거리를 줄이고 학생에 대한 교사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을 진정으로 자식처럼 사랑하는 교사만이 이렇게 할수 있다. 다음: 보호자와의 련락을 경상화하여야 한다. 지금의 학생들은 담배와 술 그리고 PC방은 말할것도 없고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때문에 학교와 보호자의 경상적인 련락을 통하여 학생동태를 수시로 파악하고 이상행위를 할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미리 차단하여야 한다. 일단 유혹의 늪에 빠져든 다음 다시 헤여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점 역시 교사와 보호자의 끈질긴 노력이 필수적이다. 셋째: 성격적 결함을 가진 학생들을 분별하여 맞춤식 교육방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장기간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학생들의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장기간 어머니의 손끝에서 자란 학생은 담이 작고 부끄러움을 쉽게 타며 내성적인 반면 조폭한 아버지의 슬하에서 자란 학생은 우울하고 말이 없으나 공격성이 강하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학생들은 자기중심사상이 뚜렷하며 개인주의가 심하고 비교적 산만한 편이다. 친척집에서 자란 학생들은 자기주장이 뚜렷하지 않으며 주춤하는 경향이 심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따른다. 이런 실정에서 교사는 반드시 세심한 관찰을 통하여 학생들의 심리적 특점을 잘 파악하고 그에 알맞는 대책을 여러모로 강구하고 시도해 보아야 한다. 더우기 사춘기에 있는 학생들일 경우 교사의 경솔한 말 한마디도 깊은 상처를 줄수 있는 만큼  권위로 다가서기 앞서 심리적으로 거리를 가까이 하는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네째: 학생들의 자립의식을 키워주는데 치중하여야 한다. 부모가 자녀를 영원히 지켜줄수 있는것은 아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사상을 심어주고 실천하도록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손의 해는 학생이 보고 있지만 부모가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할수 밖에 없는 주된 리유가 결국은 학생하나만을 위한데 있다는 도리를 가르쳐 주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는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이고 가족이 하루빨리 한자리에 모일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여야 한다. 이런 인생철학을 진정으로 터득하였을때 학생 자신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알고 실천 할수 있다. 결손가정이 생기는 근원은 결국 경제적 리유에 있다. 중국경제의 장성과 함께 우리민족경제의 번영이 진정으로 이루어질때라야만 새로운 형태의 리산가족들이 생기지 않을수 있고 우리 민족이 이땅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행복한 삶의 터전을 가꾸어나갈것이며 우리민족의 새로운 번영이 이루어질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진정으로 기대해 본다.     
13    민족사회에 불고 있는 기부문화 댓글:  조회:1553  추천:0  2015-03-10
나는 언제나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민족적인 정서가 짙고 귀감이 되는 뉴스들을 편애한다. 민족사회의 위기론이 제기된지 오래되였지만 그래도 방방곡곡에서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열심히 살아갈뿐더러 귀감이 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야기들이 자주 세상에 알려져 가슴을 흐뭇하게 해준다. 근간에 조선족기업인들이 사회봉사와 자선사업을 활발히 벌려 민족사회에 감동을 선사하는 사실들을 자주 보게 되여 감개무량하다. 어찌보면 기업인들이 돈이 많으니까 기부하는건 당연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겠지만 돈의 다소를 떠나서 언제나 민족사회를 념두에 두고 이곳저곳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과 집단에 선뜻 베푸는 자세가 더욱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조선예술인 집단초대, 한국국제학교와 기타 민족학교에 성금을, 그리고 여러분야의 친목회와 민족행사들을 후원한 등등 사실들은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기부사연들도 수없이 많다. 이 모든것들은 동포애를 가슴으로 느끼게 할뿐더러 인젠 우리도 남을 도울수 있는 나라와 민족이라는데 의미가 크고 자긍심을 안겨준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행복의 조건일뿐 결정요소는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월에서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나누며 살아가는 인생자세가 누구나를 막론하고 더욱 절실한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기업인들의 기부문화는 우리민족사회에 감동과 신심을 주고 있으며 민족사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데서 중대한 역할을 도맡고 있다. 민족사회의 위기론이 아직도 식지않고 있을때 기업인들의 선행은 잔잔한 물결이지만 그파장은 오래갈수 있고 더욱 매력적으로 사회적영향을 일으킬것이다. 물론 자선행위의 실천은 다만 금전과 물질적으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자원봉사를 비롯한 선행을 실천하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것도 의미가 크다. 코리안드림으로 우리민족이 많이 풍요로워진것 같지만 아직도 우리주변에는 도움이 절실한 동포들이 많다. 경제적어려움과 후대양성문제 그리고 부모님 양로문제해결은 사회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을 떠나서는 실현될수 없다. 경제적 도움과 일상생활에 대한 보살핌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우리민족사회의 특정된 개인에만 의거할것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현실로 가능하다. 그 실현을 위하는데 개개인도 한몫 할수 없을까를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12    도시에는 봄날이 없다 댓글:  조회:1835  추천:0  2015-03-05
도시의 밤빛은 언제봐도 현란하다. 즐비한 고층빌딩들 그리고 오색찬란한 네온에 눈이 부실정도이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갈수록 밝아지는 도시는 현대문명을 자랑하기에 너무도 충분하다. 세상만물은 비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 울타리를 만드느라 바쁘다. 자신만의 울타리에서 생존법을 익혀가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면서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인생이 힘들어도 환상과 자화자찬으로 아픔을 달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그런데 어쩐지 갈수록 흐리터분해지는 몽롱한 의식과 시각으로 도시의 률동과 어울리지 않게 기가 죽어있고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정처없이 길을 가는 그들에게 차디찬 비물만 얼굴을 때린다. 머리는 촉촉히 젖어들고 온몸에 불빛이 찾아들지만 영문 모를 슬픔과 애환에 고독스럽기만 하다. 눈물은 어느새 흘러나와 눈가에 맺히고 눈물비물 범벅이 되여 흘러내린다. 쌀쌀한 찬바람 불어와 몸은 떨리고 몸 둘곳이 없다. 그저 가로등만 소리없이 친구가 되여 비물에 몸서리치는 그림자를 던져줄 따름이다... 태양이 결석한지도 너무 오래다. 어디서 뭘하는지 해빛의 냄새조차 없다. 가장 추운때가 겨울인줄 알았는데 어쩐지 여기는 봄날이 이렇게도 추운지. 파릇파릇 새록마다 애절하게 기다리는 아지랑은 아직도 소식없고 쌀쌀한 칼바람에 애처롭기만 하다. 별수 없지만 아침에도 찬비 저녁에도 찬비가 내린다. 삼켜버릴수도 없는 걱정과 고통은 따뜻함을 원해도 해빛은 보이지 않고 길가에 흔한 꽃들도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한송이도 없다. 어쩌다 사람들 향기에 취하지만 진정 그들의 마음에 드는 한가닥 향기는 보이질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불안감을 피할수 없다지만 가슴깊이 파고드는 불안한 그들의 마음 누가 와서 들어줄까. 자신에게 욕도 해보고 때리기도 해보고 물어보기도 한다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비통과 상처를 멀리할수 있을까. 얼마를 기다려야 봄꽃이 활짝 필라나. 아픔과 외로움을 어떻게 거절하여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외로이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꽃은 피고 아릿다움을 뽐내다가 지지만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감싸고 덥혀야 하는지 모른다. 타향에서 걸어가는 길 너무도 멀고 무겁다. 혼신의 힘을 다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야 한다. 목적지가 아무리 찬란하다 하여도 주어진건 없고 인젠 결과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멈추어서는 안되고 멈출수 없을뿐이다. 굳어진 시선들, 야유의 시선들, 기대의 시선들, 격려의 시선들 여기저기에서 번쩍거린다. 그속에서 그들은 외로이 자신과 싸우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에서 이겨 백전백승의 장군이 될것처럼 말이다. 번영의 뒤에 숨어있는 도시의 삭막함은 천길 함정마냥 입을 벌리고 나약한 자들을 삼킬듯 공포스럽다. 함정을 피하려는듯 외로운 사람은 거리를 떠돌기도 하고 고독한 마음은 필에 담아 달래보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비물에 젖어 방황하다가 어느 순간 법률의 고압선에 손을 댔다가 인생을 망치는 처참한 결과를 낳는다. 침묵한 사람은 언젠가를 모를 폭발을 기다리듯이 일촉즉발 초읽기 상태이다. 어쩔수 없는 사람들은 다행으로 필끝에서 글이 되여 마음을 추스르고 얼굴에 주름살을 파며 세월과 싸울 뿐이다. 행복을 찾아 동분서주한지 몇해던가. 보일락 말락 잡힐듯 안잡힐듯 숨박꼭질만 반복되는 인생 누가 행복이 그렇게 쉽다고 했더냐. 행복을 찾아가는길이 인생이라면 슬픔과 함께 하는것은 무엇이라 할까. 희미한 불빛속에 가물거리는 광선을 타고 잡고싶은 무언가를 유심히 살펴보아도 눈에 잡히는건 아직 없다. 억척스레 일하면서 자신의 그 몫을 찾아보아도 허사인줄 인제야 알았다. 창밖의 비는 줄줄 멋없이 잘도 내린다. 아무런 고통도 불안도 없듯이 제멋에 흥이다. 그저 부럽기만 한 세상만사지만 넓은 세상에 거처도 없으니 마음은 텅텅 비여가고 자신의 존재도 의미를 잃어간다. 주변에도 마음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따스한 봄날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 다행으로 가슴이 후련해 나기도 한다. 마음이 차가워지면 눈물로 덥히고 마음이 아파나면 비로 씻고 마음이 힘들어지면 찬바람으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이 상처를 입으면 깊은 밤에서 쓰다듬고 마음이 허전해지면 툴툴 털고 명상에 빠져보면 어떨까. 천국보다 아름답고 황홀한 세상이 펼쳐질지 누가 알랴.  
11    봄의 집착 댓글:  조회:1489  추천:1  2015-03-04
  기다림에 지치고 칼바람에 망가지고 그래도 집착의 끈으로 새록새록 움이 트더니 봄꽃은 너무나 화사하구나   천기에 시든들 어떻더냐 심령의 돗배 꼭 잡고 물오른 나무마다   봄을 맞느라 바쁘다 계절이 바뀜은 순간이구나   침묵에 마음을 앉혀놓고 싱싱한 자연의 극치에  한번 멋내 본다 싱숭대는 이 내 속을  누가 알랴 심장의 박동 선물  멈출수 없네   구름사이로 요리조리 포근한 해빛에 대지가 생기를 찾는데 모든 춘몽 저강 따라 바다를 향한 발걸음 바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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