륙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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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그러진 술 주전자 /김인덕
2019년 08월 19일 10시 40분  조회:623  추천:0  작성자: 륙도하
쭈그러진 술 주전자
 
김인덕
 
먼저는
생업에 뛰여들기도 전에
이유 없이
주인의 망치에
흠씬 뚜들겨 맞았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홀에 호출되였다가
여기저기 술상 모서리에 맞히고
멋도 모르고
사정없이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상처를 훈장처럼
주렁주렁 가슴에 단
쭈그러진 술주전자
 
밤새도록
낯선 손에 목덜미를 잡히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
술잔을 오가며
귀때로 열물을 토했다
 
온갖 짓거리에
머리가 욱신거리고
몸마저 노근하다가
짓궂은 나그네의 육담에
잠시 마음이 설레이기도 했다
 
자정이 되여서야
시렁구석에 납작 엎드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빈속을 달래며 잠을 청한다
 
마침내
새벽이 가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쭈그러진 술주전자끼리
부둥켜안고
스며드는 한점의
찬바람에 휘파람을 분다
 
쭈그러진 술주전자는
누구나 가슴에
쓰고 농렬한 소주쯤은
품고 사는 거라고
눈물이 마를 때까지
몸으로, 몸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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