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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로또 보따리
2019년 11월 16일 18시 27분  조회:713  추천:1  작성자: 선수기

시골에서 자란 나는 사남매 셋째딸로 아래에 남동생 하나 두고있다.

그런데 이 남동생이 나에게 엄청난 부담을 가져다주는 애물단지 보따리가 되였던적이 있다.

 피줄을 나누어 가진 혈육으로 그냥 내쳐버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끌어안자니 내 힘이 부치여 눈앞이 캄캄하고 숨이 막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애물단지 보따리가 지금에 와서 나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보배단지 보따리가 되였다.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지난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것이다. 그때 나는 집 한칸 있고 매달 먹고쓰는데 부족하지 않게 벌어다 주는 남편을 만나 그냥 그런대로 잘 살고 있었다. 거기에 자그마한 가게 하나 차려놓아 다달이 푼돈도 생기게 되여 그야말로 더 이상 바라는것없이 무지무지 만족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너나가 다 한국가는 세월에 애아빠도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나고 나는 집에서 애나 키우면서 하던 가게일을 계속 보며 그럭저럭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시골중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하던 남동생이 찾아왔다. 시골학교여서 학생수가 점점 줄어들다가 학교문마저 닫게되였다며 이젠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될일만 남았다고 한숨을 풀풀 내쉬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이제와서 다른 길이 없는데 어떻게 좀 누나와 같이 장사나 할수 없겠냐며 마구 들이대는것이였다.

장사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말이 장사지 그거 어디 아무나 하는 일인가. 그거 누구나 다 하는것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장사해서 못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것이니 말이다.

나도 이제야 겨우 밥벌이나 하는 장사인데 동생이 와서 거기에 숱가락을 얻고 같이 밥을 나눠먹자고 한다.

그러나 답답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 짚오라기잡는 심정으로 없는 비위까지 쓰며 매달리는 동생을 보니 차마 거절할수 없었다.

나는 기실 오래전부터 동생에게는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손에서 자라면서 나는 시집오기전까지 못해본 고생이 없었다. 시골에서 어렵게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시험을 치렀으나 락방하였다. 그 다음해 보습반에 들어가 재수하자면 그때 돈으로 500원만 더 내면 다닐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집에 그 돈 500원은 천문수자나 다름없어서 나의 학비로 선뜻이 낼수 있는 형편이 아니였다

세살 터울인 남동생이 금방 내 뒤를 따라 고중에 붙다나니 혼자 살림을 도맡아 하시는 어머니께는 아무래도 무리일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어머니는 그래도 차마 넌 다니지 말라는 말씀은 못하시고 어떻게 하나 어디서 돈을 구해보겠으니 포기하지말고 다시 한번 시험을 쳐보라고 격려해주셨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집안형편을 빤히 알고 있는 나는 계속 보습반을 다니겠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릴수 없었다. 그리고나서 혼자 궁리한것이 나절로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였다. 상학기엔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후학기에 보습반을 다시 다녀 대학시험을 한번 더 쳐보려고 마음 먹었던것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정작 사회에 나오고 보니 다시 학교에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어머니는 금방 고중에 붙은 남동생의 학비도 제때에 대주지 못하는 형편이셨다. 나는 내가 고중다닐때 집에 돈이 없어 학비도 제일 마지막에 내다나니 몸과 마음이 늘 초라해나던 생각이 들어 사내자식인 동생만은 그렇게 기가 죽어 학교를 다니게 하고싶지 않았다. 잘 먹이고 잘 입히지 못하더라도 사내자식의 기만은 살려주고 싶었던것이다. 그러나 보습반 후학기만 다니고 다시 한번 대학시험을 쳐보자했던 애초의 나의 생각이 얼마나 천진한 생각이였는지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평생 동안 얼마나 후회하고 한이 맺히게 하는 일이 되고 말았는지를 얼마 안가서 금방 깨닫게 되였다.

만약 시계바늘을 되돌려 나더러 지금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엄마의 다리라도 잡고 어디가서 돈을 꿔서라도 기어코 다시 한번 대학시험을 칠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며 애원했을것이다.

그런데 환장할것은 그렇게 내가 모든 설음을 혼자 씹으면서 애면글면 뒤바라지하여 고중공부를 마친 동생이 나중에는 글쎄 대학에 붙고도 붙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한것이다.

동생은 자기에게 날아온 입학통지서를 남몰래 감춰놓았던것이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늘 동생을 탓했다.

이 누나가 내 인생 내 꿈을 다 포기하면서까지 힘들게 너를 공부시켰는데 대학문앞에 가지도 못했다고 나무랐다.

그때마다 동생은 벙어리가 된듯이 눈만 껌벅껌벅거렸다

그렇게 동생이 힘들게 살때마다 늘 원망하였는데 그로부터 거의 십년이 지났을까 어느날 동생이 더는 참지 못하고 실토정했다.

"사실 그때 입학통지서는 받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놓을수 없었어."라고 말이다.

순간 나는 몽둥이에 한매 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왜, 왜서? 통지서를 감췄단말이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동생이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땐 그로서 리유가 있었을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흥분을 최대한 자제하고 차분하게 물었다

”내가 대학 가면 그 뒤바라지는 누가 해주겠어. 그때까지는 누나가 뒤바라지해준 돈으로 어렵게 고중공부는 마쳤지만 이제 시집갈 나이가 다 된 누나한테 더는 보따리가 되고싶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대학을 다녀봤자 우리집에 뒤를 봐줄도 사람 하나 없는데 사회에 나와서 또 뭘 어쩌겠나.”

”남자로 태여나서 왜서 그렇게 옹졸하게 생각했느냐. 멀리 보고 길게 생각해야지. 네가 그때 입학통지서만 내 놨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대책을 강구하였을것이야. 아버지의 생전단위에서도 네가 대학에 입학했다면 꼭 돌봐줄거고. 대학을 졸업하고 멋있게 사는게 누나의 고생에 대한 보답인걸 왜 몰랐나? 형제사이에 신세질땐 신세를 지고 잘 돼서 잘 살아주면 되는게 아니였나.” 나는 동생을 애면글면 뒤바라지 해줬기에 배신감이 더 들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을 졸업했더면 지금쯤은 좋은 직장에 출근하고 떵떵거리며 살수 있지 않겠어. 지금처럼 고중만 졸업하고 시골에서 선생질하다가 백수가 되는 일은 없지 않겠어. 바보 팔푼이라구. 저 절로 제 눈을 찔렀지. 그 년대에 대학생이 얼마나 받들렸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짓을 한 동생이 야속하기만 했다 .

그렇게 가시든 내 살점처럼 아픈 내 남동생, 그런 동생의 간절한 부탁으로 동생몫으로 가게를 하나 더 내서 동업하였다.
그런데 하늘이 무심치 않아서인지 기댈 언덕이라곤 없는 우리 남매에게 대박이 터질 기회를 주었다.

적은 돈으로 시작해서 열심히 한 장사가 몇해 안되는 사이에 눈덩이처럼 불고 불어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어마어마하게 커져버린것이다. 때로는 어린 자식들을 조롱조롱 넷씩이나 둔채 너무도 일찍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가 저 세상에서 우리 남매를 돕는게 아닐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누가 그저 부조해 주듯이 해석이 불가능한 어떤 힘이 우리를 돕는듯 말이다. 이런걸 행운이라 하지 않을가? 아마 행운에도 이런 행운은 더없을것이다. 완전히 로또에 당첨되면 이럴가.

그야말로 나도 대박, 동생도 대박이라 내가 마음 잘 쓴 대가를 톡톡히 받아낸 행운의 로또당첨자같았다.

장사가 잘 된날은 온 저녁 달콤한 마음에 생각할수록 고맙고 또 고마웠다.

래일 또 이런 마음에서 우러러나오는 고마움으로 가득 차면 좋겠다. 집평수도 늘이고 자동차도 사서 반평생을 홀몸으로 우리 사남매를 키우시면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벌의 저기 끝까지 씽씽 달려보고도 싶었다.

매일 퇴근한 뒤엔 모아산에 올라가 시원한 공기도 마시며 여유도 즐기고 싶고 내 힘 내 능력으로 열심히 벌어서 사고싶은 모든걸 다 사고 싶다. 돈 많이 벌어서 내 인생의 가치도 실현하고 내 부모형제의 언덕이 되여주고도 싶다.

장사에서 대박이 터져서 자금이 풍족한데다 머리가 좋은 동생이 좋은 아이디어를 자꾸 대주고 나에게 경험까지 좀 있어서 그 뒤에도 장사는 계속 즐거움의 련속이였다.

이렇게 우리 남매는 자그마한 가게장사군으로부터 이제는 사업가로 불릴만하게 발돋음을 한 셈이다

그때 만약 동생을 "애물단지 보따리"로만 보고 외면하고 내쳤더라면 그리고 동생한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그냥 한달에 삼사천원이나 버는 작은 가게장사군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와서 되돌아보니 동생은 그야말로 "보배단지” 보따리가 되고 내 인생의 귀인이 된것이였다.

이런 생각이 나에게 세상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여서 나는 시골에 있는 오빠들도 모두 같은 방식으로 도와주면서 살았고 그 길에서 또 우리를 도와주는 많은 귀인들을 만났다.

결국 내가 덩달아 톡톡히 혜택을 본셈이 되는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늘 감개무량하게 지인들과 얘기한다.

못 사는 부모형제들일지라도 절대로 그들를 외면하지 말라고. 그들이 꼭 당신이 상상할수도 없는 복을 가져다줄것이라고. 세상은 꼭 그렇더라고. "덕은 쌓은대로 가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더라고. 오늘도 나는 내 가족을 위해서 내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을것이다.

꼭 축복받는 인생을 선물받으리라는 기대보다도 온 가족이 행복하니 내 마음도 더 없이 행복하니깐말이다.

가족과 함께한 책임감이 오늘날 내 성취의 황금열쇠가 아니였던가? 여기까지 쓰고 나니 머리속에는 이런 시구가 저절로 떠오른다.

팽개치고 싶은  보따리
외면하고 싶은 보따리
어쩔수 없는 내 몫이라네

무거운 보따리 힘겹게 지고 
높은 산 오르느라 불만이 얼마였던가?

하지만  보따리덕에
마음씨 좋은 동행자들
돕고 도우며 산마루에 올랐거니

굽어보니 혼자 오르는 이들 
까마득히 산중턱에서 헤매고
산밑에서 맴돌더라

정상에 이른 동행자들 
감지덕지 하였노라
애초에 내동댕이치지 않은
보따리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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