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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아숨쉬는 소녀의 심장
2011년 08월 03일 09시 08분  조회:5707  추천:0  작성자: 人和

 1992년5월초에 한차례의 황사가 하북성 장가구시를 휩쓸었다. 시중심에 위치해있는 한 병원의 소아과에서 태여난지6개월이 되는 한 녀자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아기를 자세히 진찰하던 의사는 아기가 선천성심장기형증에 걸려 심방과 심실이 채 발육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런 아기는 대부분이 첫돌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뜻밖의 진단이라 아기엄마인 조미영은 믿을수 없었다. 불안해난 그녀는 아기를 안고 부근의 다른 병원들을 다 찾아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조미영은 눈앞이 캄캄해나면서 아기의 미래가 걱정되였다.

그후 아기는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7개월이 되자 아기는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고 첫돌이 되자 말을 번지기 시작했다. 딸애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조미영은 아기 이름을 장효라고 지었다. 생각밖으로 심장이 채 발육되지 않은 장효는 아주 총명했다. 3살때에 벌써 텔레비죤을 보면서 련속극대사를 줄줄 외웠다.

부모의 사랑에 떠받들려 몇번이나 생사고비를 넘긴 장효는 어느덧 학교에 다닐수 있게 되였다. 비록 집과 몇백메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학교였지만 장효의 걸음으로 학교에까지 가려면 반시간이 넘어 걸려야 했다. 그래서 조미영은 아침마다 장효를 업어서 학교에까지 데려다주었다.

6.1아동절날, 장효는 동학들이 무대에서 신나게 뛰여노는것을 보고 부러움을 금치못했다. 이때 선생님은 그의 마음을 궤뚫어보기라도 한듯이 한번 무대에 올라가 노래를 불러보라고 말했다. 장효는 날듯이 기뻐서 인차 무대에 올라가 “세상에서 엄마가 좋아”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두구절쯤 불렀을 때 가슴이 막 답답해났다. 장효는 하는수없이 노래를 멈췄다.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온 장효는 엄마를 보고 울면서 말했다.

“엄마, 전 왜 노래조차 부를수 없는건가요? 제가 이렇게 살아서 뭘 하나요.”
엄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얘야, 내가 널 이렇게 낳아줘서 미안하구나. 오늘 내가 너한테 함께 놀수 있는 친구를 소개시켜주마.”
한참후에 장효는 엄마와 함께 관학주라고 부르는 아저씨네 집에 도착했다. 집이 꽤 부유해보이는 관아저씨한테는 장효와 동갑내기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애는 벙어리였다. 또래친구를 보자 신이 난 남자애는 비싼 장난감들을 가득 꺼내놓았다. 장효는 그 남자애와 함께 난생 처음 본 장난감을 갖고 재미있게 놀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가 입을 열었다.
 “장효야, 넌 그 남자애를 보고 뭘 느꼈어? 관아저씨네는 남부러울것이 없는 부자이지만 아들이 벙어리란다. 이처럼 좋은것은 한사람에게만 차례지는것이 아니란다. 그 애는 뛰여다닐수 있지만 말을 못하잖니. 넌 비록 뛰여다닐수 없지만 걔보다 총명하잖아.”
“엄마, 전 오늘에야 알았어요. 세상에 저만 힘든것이 아니라는것을…전 다시는 병때문에 울지 않을거예요.”

이튿날부터 장효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더는 자신의 병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모든것을 이겨내려고 애를 썼다. 학교도 홀로 다니겠다며 자진해나섰다. 그후부터 장효는 이른아침에 집을 나가 수십번씩 쉬였다 걸었다를 반복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더구나 겨울철에는 하루에 몇번씩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장효는 이를 악물고 홀로서기를 견지했다. 강렬한 삶의 의욕을 보이는 딸애를 보면서 엄마는 꼭 딸에게 건강을 되찾아주리라 속다짐했다.

2001년8월에 조미영은 딸애를 데리고 북경시의 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의사는 장효가 심장수술을 받으면 증세가 조금 완화될수 있다며 수술비는15만원정도 수요된다고 알려주었다. 째지게 가난한 조미영부부에게는15만원이란 수술비가 천문학적수자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맥을 버리지 않고 이튿날부터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2개월후에 두 사람의 로임을 다 모아봤지만 수술비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아는 한 이웃은 매체의 힘을 빌어보는것이 어떠냐며 제의를 했다.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조미영은 이튿날에 하남인민방송국으로 찾아가 사정을 말한후 도움을 청했다. 결국 텔레비죤방송국의 호소하에 많은 사람들이 장효한테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2001년11월2일에 장효는 하남성아동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심장수술을 받았다. 퇴원할 때에 장효는 달음박질치면서 엄마품에 와락 안겼다. 그후 장효는 동학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주말이면 엄마를 도와 집안일도 거들어주었다.

1년후의 어느날에 장효는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되여 병원에 호송되였다. 의사는 장효가 재수술을 받을수 없다고 진단했다. 할수없이 장효는 심장병이 발작할 때마다 병원에서 간단한 구급치료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도 장효는 배움에 한치의 게으름도 피우지 않았다. 심지어 병원침대에 누워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성적은 늘 학급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그후에도 조미영은 딸애의 병치료를 위해 선후로11번이나 북경에 다녀왔다. 그러나 장효에게 재수술을 해주겠다는 전문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중 조미영은 북경대학인민병원 심장외과의 리교수가 심장수술에 용하다는 소문을 듣게 되였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조미영은 딸을 데리고 부리나케 북경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장효를 자세히 진찰해보던 리교수는 “장효한테 재수술을 해줄수는 있지만 수술의 성공여부는 담보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가닥 희망이라도 놓치고싶지 않았던 조미영은 리교수를 붙잡고 “선생님, 꼭 제 딸을 구해주십시오. 전1%의 희망이라도 놓치고싶지 않습니다. 제 딸을 수술해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이튿날에 장효는 전면검사를 받았는데 비장이 없고 간, 위 등 기관의 배렬방향도 건강한 사람과 반대라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결과에 리교수도 놀라서 말했다.

“비장이 없고 심장이 채 발육되지 않은 환자는 대부분이 짧아서 첫돌, 길어서3살밖에 살지 못합니다. 장효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다시 한번 기적을 창조해봅시다.”
이튿날부터 조미영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처로 뛰여다녔다. 어머니가 아무리 애를 써도 고작 몇만원의 돈밖에 마련하지 못한것을 본 장효는 직접 교육국, 부련회와 당지 정부, 장가구적십자회 등 해당부문으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해당부문에서는 딱한 그의 사정을 헤아려 몇만원의 돈을 보내주었다. 병원에서도 부분적인 치료비를 면제해주었다. 2009년11월7일은 장효가 수술받기로 한 날였다. 수술실에 들어가기전에 장효는 리교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선생님, 만약 제가 수술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면 저의 유체를 병원에 기증해주세요. 절 실험용으로 하여 선생님들께서 하루빨리 저같은 환자의 치료방법을 찾아내기를 희망합니다.”

2009년11월 7일 오전8시에 장효는 북경대학인민병원의 수술실에서 복잡한 심장개입수술을 받았다. 7시간을 거쳐 진행된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였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는 말에 조미영부부는 병원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수술후 장효의 건강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얼마후에는 퇴원할수 있었다.

2010년7월에 장효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수한 성적으로 꿈에도 그리던 장가구시제1중학교에 입학하였다. 7월23일 오전에 장효는 엄마와 함께 학급지원서를 가지러 시1중으로 떠났다. 이들 모녀는 이야기꽃을 피우며 뻐스에 올랐다. 이때 그 누구도 예견치 못했던 재앙이 그들을 덮쳤다. 비길에서 쏜살같이 달리던 뻐스가 운전수의 잘못으로 완전히 뒤번져졌던것이였다. 차안에 앉았던 손님중에10명이나 중상을 입었고3명은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3명중의 한사람이 바로 장효였다.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장효의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여직껏 병마에 시달려왔던 딸이 이제야 건강을 되찾았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질줄이야? 장효가 비로소 오매불망 그리던 학교에 붙었는데 이토록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다니?

사고를 당한 조미영은 중상을 입고 해방군251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구급치료를 받았다. 일주일후에야 겨우 혼미상태에서 깨여난 조미영은 눈을 뜨자마자 딸부터 찾았다. 장효가 죽었다는 말에 엄마는 또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며칠후에 조미영은 혼미상태에서 깨여났고 점차 정서가 안정되였다. 그러나 그녀는 딸이 생전에 했던 말이 귀가에 맴돌아 쏟아지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엄마, 만약 수술이 성공하지 못하면 제 유체를 의학부에 기증해주세요. 심장병치료방법을 연구할수 있게 말이예요. 제가 죽어도 엄마는 상심해마세요. 다른 사람이 제 장기를 기증받는다면 전 다시 태여날수 있잖아요. 그럼 엄마는 다시 날 만날수도 있잖아요.”
며칠후에 조미영은 눈물을 머금고 딸의 유체를 병원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녀의 생각에 남편도 울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2010년11월13일 오전10시경, 장효의 유체기증의식이 장가구시 장의사에서 거행되였다. 사회 각계층의200여명 인사들이 의식에 참석했다. 장효의 유체를 기증받은 하북북방학원의 장휘교수는 “우린 여러 병원의 각 전문가들과 함께 힘을 합쳐 꼭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아낼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의식이 끝난후에 장효생전의 동학들은 점점 멀어져가는 령구차를 보면서 장효와 함께 불렀던 “당신과 함께”라는 노래를 불렀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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