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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로, 『한국근대소설연구』, 일조각 1980
2009년 05월 16일 21시 44분  조회:2702  추천:0  작성자: 방룡남

-20년대 리얼리즘 소설의 형성을 중심으로

 

일제의 문화정책의 저의가 어디에 있었건, 1920년대의 한국 사회는 3·1운동의 지속적인 영향 아래에 있었던 만큼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일반적 성격이 3·1운동 및 이에 따른 사회운동·문화운동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3·1운동 후 국내의 민족개혁운동은 주로 반일제·반봉건 투쟁을 지상과제로 하는 문화운동의 양상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우리가 굳이 획기적인 연대로 구분하고자 하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2)
1920년대의 소설에 대하여 관심이 집중되고 연구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것은, 이들 소설이 현대소설사의 출발이 된다는 것 이외에도 소설의 양상 자체의 빠른 변화와 아울러 이들 소설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여러 측면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3)
문예사조의 수용·영향 연구에서는 각 민족마다의 역사적·사회적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그 작품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3)
이 시대의 소설 전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평가를 위해서는 개별적 작가론·작품론·사조론 등에 대한 방법론적인 세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또 하나의 문제는 각 작품과 전체적인 시대정신과의 관련성을 찾는 작업인 것이다. 즉 개별 작품의 의미, 작가 의식의 특질, 사조의 수용 등은 시대정신의 총체적 연계성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작가들과 개별 작품들이 이러한 총체성과 관련하여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구해야 할 것이다.(3)
통합적 해석론에 의하면, 문학연구는 어디까지나 정신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자연과학적 방법론과는 구분되어져야 하며, 그러한 근거 위에서 인간의 내면적 정신의 흐름이나 역사적 지속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점은 한편으로는 종래의 심리적·사회적·형태적인 방법론들 중 어느 한 측면만의 작품 접근 태도를 지양하고 총체성과 문학의 자율성을 동시에 인정하려 한 것이다. 정신사의 맥락에서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외형적인 문화와 내면적인 정신의 복합성과 함께 그 관계양상의 작용·반작용을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고찰해야 하며, 그 지속성을 주시해야 한다. 통합의 해석론은 종래의 제방법론에 대한 절충을 시도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며, 작품과 작품 이해의 방법론을 변증법적 원리로써 파악하여 문학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방법이다.(4)
그러므로 통합의 해석론의 기조가 되는 것은 역사주의 관점과 정신사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주의자들의 작품해석 태도는 역사의 변증법적 양상을 주시하면서, 시대의 기층구조와 개인과를 상호 유기적으로 관련시켜 작품의 위치와 작가의 지향이 무엇인가를 측정하려고 하는 것이다.(4)
통합적 해석론에서는 '적합한 순간' '적합한 대상'에 대한 '적합한 방법론'의 적용이라는 과제가 중시된다. 또한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의 위치에서 역사적 視界로 옮겨 작품세계와 자아의 세계를 동시적으로 인식하는(4)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통합적 해석론에서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미시적 분석과 거시적 통합을 어떻게 일원화하고 균형·조화를 이루도록 하는가 라는 점이다.(5)
통합해석론의 필요성은 사실상 예술작품 자체의 본질성에 의해서 제기된 것이다. 예술작품이 유기적 구조성을 띤다는 것은 다양성에서 동질성을 찾아 중심적인 의미로 융합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부분과 전체를 동시적으로 파악하면서, 동일체로 융합시키는 통합기능의 구실을 하는 매체를 중시하게 된다. 이러한 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는 그것이 작중 인물이든, 작품자체이든, 장르 혹은 유형이든, 예술사조이든 간에 작가의 주관과 객관 세계, 부분과 전체, 특수와 보편, 당위와 존재 등으로 분화된 양극적인 세계를 균형·조화를 이룩하게 하는데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언어 그 자체도 의식과 객관물 사이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통합기능의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언어나 문학의 통합적인 기능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을 더 확대하여 문학사·문학비평·문학이론 상호간에 존재하는 발전계기로서의 매체로도 원용할 수 있으며, 또한 장르간(이른바 '토도로프'의 '이론적 장르'와 역사적 장르 등) 혹은 문예사조(가령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혹은 사실주의와 자연주의간 등) 등의 전이를 연속성으로 파악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5)
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1920년대 소설이 리얼리즘의 방향으로 발전된 것은 저널리즘의 영향 혹은 근대소설의 양식 자체가 리얼리즘과 밀접되었다는 점 이외에, 우리의 문학전통과의 연계에서도 그 요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실학사상·동학사상에 연원한 당대의 현실과 가치관에 대한 관심은 외래적 리얼리즘을 수용함에 있어서 그 잠재력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7)
문학적 전달은 사실의 교환이라기보다는 체험의 교환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인간적 관점의 동일성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이러한 동일성(10)을 이해하는 선결조건은 나타난 문화현상과 내재적인 정신의 복합성과 함께 그 작용·반작용을 유기적으로 관련시켜 고찰하는 것이며, 문학사적 사실의 시공간적 관계 설정 역시 정신사적 지속 현상을 주시하면서 진행하여야 된다는 것이다.(12)
예술작품은 원래 그 구성 부분의 분리란 있을 수 없고, 모든 형식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작품의 구심점을 향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작품 역시 고정된 양식으로 경직된 일면성만을 강조할 수는 없으며 다양한 소재가 상상력과 정서의 작용으로 통일된 조화가 이루어질 때 성공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의 내포적 요소와 외연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통합되었을 때 작품의 가치는 있게 된다.(16)
1920년대 작가는 그 사회적 신분이나 연령상으로 보아 대체로 20대의 신교육을 받은 지식인층에 속한다.(21)
이 시대 지식인·작가들의 고민은 직접적인 정치운동이 규제되자 작품을 통해 이 시대의 비극을 증언하려는 데 있었다.(21)
이 시대에는 일제의 계획적인 식민경제정책으로 경제적 수탈을 당하여 한국의 자원은 날로 피폐해 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는 혼란의 와중에서 이기적·퇴폐적 성향과 자폭적(방화·살인·자살 등) 경향마저 드러내게 되었다.(28)
3·1운동 이후 우리 문학사는 소설, 특히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그것은 리얼리즘을 지향해 왔다. 전대소설과 대비한 1920년대 소설의 현저한 특색은 당대의 사회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려는 더 있었다. 1920년대의 소설이 리얼리즘을 지향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이 시대의 신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식민지 체제하의 구제도와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의 내적 의지를 가지고, 선진 시민사회의 역사 경험과 거기서 고양된 문학예술을 배우기 위해 서구의 근대 시민문학을 적극적으로 섭취하려는 데 있었다.
둘째로, 3·1운동을 분계선으로 하여 전환된 문화운동과 아울러 저널리즘(36)의 확대·보급으로 독자층이 증대되었고 전문적 記事作成者가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이조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계승되어 내려온 현실주의(후에 실학사상, 동학, 천도교사상과 맥락을 가짐)와 그 잠재력 등을 들 수 있다.
첫째 경우로 3·1운동 후 신문화운동의 결과 서구사조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편모는 이 시대에 애독된 외국작품들을 보면 窺知하게 된다. 이 시대 지식인 작가들은 대체로 톨스토이·푸시킨·투르게네프·바이런·와일드·화이트맨·포우·위고·모파상·플로베르·졸라·베를레느·보들레르 등을 애독했으며 그 중에서도 혁명전야 러시아 작가들의 것이 많이 읽혀졌다. 그것은 제정러시아의 전제정치 아래서 신음하던 민중들의 참담한 상태가 일제 밑에서 고통을 받던 한국 사람의 불행한 생활과 유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南歐의 華麗純爛한 문학이 이 시대의 문학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당대의 문학은 북구문학에서 그 사상성을, 남구문학에서 세련된 기술과 예술적 미학을 수용하면서 일본의 신세대를 대표하는 명치·대정문단의 일면적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당대에 일본 신세대 문학작품이란 세계사조를 중개하는 창구 구실밖에 못하였다.(박영희, 「현대한국문학사(2)」, 『사상계』, 제58호, 1958, 5.-인용자 재인용)(37)
대체로 외국의 문예사조가 자국의 문학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자국에서 과거로부터 예술작품을 구현시켰던 내재적 가능성을 선행하여 검토하면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민족의 역사의식은 불가피하게 외래적인 요소를 굴절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우리의 현실적 의미는 언제나 과거의 잠재적 잔상이 현재의 지각과 결부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부단히 우리의 潛在像으로 누적되어 가는 것이며,  그것은 새로운 사실과 결부되면서 다른 의미의 현실적 존재로 부상되는 것이다.(37)
소설의 시간이란 어떤 의미에서 초월적인 反時間性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맥에서 리얼리즘 소설의 개념을 요약한다면 개개 인간들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나의 전체적 생활양식의 가치를 창조하고 판단하는 종류의 소설이라 하겠다. 따라서 리얼리즘은 민족과 시대마다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하면서 변용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리얼리즘의 기본개념을 常數로 한다면 민족과 상황에 따른 상이한 리얼리즘을 변수로 놓을 수 있다.(38)
반영론과 목적론 사이의 논리적 갈등은 리얼리즘(38)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39)
리얼리티는 상상력과 정서와 사상을 가진 작가정신이 시대상과 결부되어 하나의 모형을 창조하는데서 실현된다. 따라서 사실주의를 검증하는데 리얼리티 검증이나 유형해석은 단순히 주위 환경의 복사물의 반영이라는 의미를 거부한다. 우리는 쉽게 그림과 카메라의 비유를 들 수도 있다. 그림이란 카메라의 복사성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라 하겠다.(39)
보편적으로 사실주의란 심리적인 면보다는 외부사실에 중점을 더 두고, 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짧게 정의하면 사실주의란 철학에서는 이상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예술에서는 사실주의란 낭만주의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사실주의자 발자크에 대해 낭만주의자 조르즈 상드가 자기와의 관점의 차이를 다음처럼 규정한 것은 상당히 예리하다. "당신은 당신의 시선에 비치는 그러한 모습을 그리지만, 나는 그 사람을 내가 그렇게 보았으면 하는 그러한 모습의 그를 묘사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40)
사실주의 다른 변종 가운데 하나인 자연주의는 모든 인생이나 사실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주로 사실적이고 평범한 현상, 인간을 동물과 같게 하는 그런 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결과가 되었다. 문학에 있어서의 자연주의는 과학에 있어서의 자연주의와 유사해지려고 한다. 자연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자연주의 문학자는 예술과 학문을 동일시하며 문학과 자연과학을 동일시하려고 노력한다. 자연주의의 이론이란 자연과학의 성과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자연주의 이론이란 진화의 법칙에 의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주의의 한 측면은 기계적이며 원칙적인 종속의 사상을 낳았다. 자연주의는 주인공의 자유를 박탈하고 주인공은 환경에 노예화된다.
자연주의 작가는 사실을 대할 때, 어떠한 감정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연주의자들은 자신을 실험가로 비유한다. 따라서 연민과 분노를 느끼지 않는 자연주의자들은 선과 악을 똑같이 대한다. 우리는 졸라의 글에서 자연주의가 조야한 물질주의와 냉소주의로 변하기가 쉬우며 그 건강한 사실주의가 퇴화해 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중요한 것은 자연주의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자신들의 세계가 중요한 것이므로 철저한 자연주의 이론 자체만을 강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 서구의 작가들 역시 그들 작품이 이론보다 뛰어났으며 무미건조한 설명이나 철저한 실험·관찰의 보고서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문학의 문제에 관한 한 정신사로서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이상 철저한 자연주의란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자연주의는 관찰과 실험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소설의 리얼리티를 탐구하는데 공헌했다는 점은 인정된다.(41)
인간의 二大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보존욕인 식욕과 자기유지욕인 성욕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부단한 공허 속으로 몰아낸다. 그러므로, 자연주의소설이 추적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세부묘사의 증대(세부묘사와 예리한 관찰) 이외에 원초적 힘(본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대체라 문학에서의 자연주의적 미학은 태내에서 무덤까지 더욱 날카로운 성적 본능의 비전을 인간에게 요구하였다.(44)
자연주의나 사실주의에서 묘사방법의 숙련과정은 사실적인 현장으로 접근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주의 문학은 성욕과 식욕 등 본능을 탐구의 대상으로 하였을 때나 그런 요소가 결핍되었을 때의 현장을 특별하고 구체적인 감각과 인식의 넓은 조명 가운데서 묘사하는 것이다. 위에서 밝힌 실험소설이라는 용어는 가끔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 자연주의 작가의 소설은 대체로 아주 직선적이며 우직하고 그 화법이 모두 19세기의 인습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실험성이란 말은 바로 인간을 사물과 同列에 놓고, 인간을 과학 실험관 속에서 조종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험성은 주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내용을 강조하면서 형식과 스타일을 무시하게 된다. 자연주의자들은 진실이 목적이었지 예술이 목적(원문은 윗점임)은 아니었다. 따라서 자연주의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단면'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구조적인 예술만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자연주의자들은 소설의 무정형을 택했으며 아주 융통성 있는 문학 장르를 택했다. 이러한 자연주의자들의 관점은 인간존재의 진화과정을 추적하려는 욕망과 환경과 상황의 영향을 통해 형성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45)
낭만주의에 의한 인간의 이상화와는 대조적으로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을 벌거벗기면서 동물 수준으로 평가절하시켰다. '形而上學的 人間'은 '물리적 인간'으로 졸라에 의해 대체되었다. 자연주의자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을 인간이하로 평가절하 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화의 과정을 명백히(원문은 윗점임) 묘사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어떤 위기, 가령 스트레스라거나 격렬한 섹스의 역설, 혹은 알콜의 영향 아래 인간을 그 내부에 가진 원시적인 야수성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45)
자연주의자들은 원시성의 심리적·신화적 유형(원문은 윗점임)을 발굴해서 새로운 진리를 얻는 동시에 유동적인 시공간성에서 영원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은 사회 속의 다양한 인물 묘사로부터 한두 사람에 집중하여 그들 내면의 비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그런 경우 자연주의는 인간 내면에 숨겨 있는 육욕 등을 추적키 위해 특수한 환경의 장치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46)
자연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비극보다 환경사의 제시에 기울어져 있다.(46)
자연주의자들은 결국 리얼리즘을 정교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그 근본성향을 강화시킨 셈이다. 자연주의는 리얼리즘이 아직 갈 수 없었던 새로운 지적 지평선을 확대시키면서 원초적 본능을 탐험하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자연주의는 리얼리즘보다 구체적이긴 하지만, 보다 제한적이다.(47)
리얼리즘은 이러한 낭만주의의 뿌리와 자연주의의 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합적이고 변증법적인 내적 연관성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리얼리즘이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낸 것은 인생을 묘사하는 반영적인 것이기보다는 지도적 인생, 즉 고착된 사실성에만 집착되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리얼리스트들은 모든 사실을 주의 깊게 통찰하고 새로운 인간의 윤리의식에 의미를 두어야 함을 깨닫는다.(48)
리얼리즘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상상력이 추상적인 예술형식들과 같이 무절제한 관념적 유희에 빠져들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환상 속으로 비약하는 것을 지양하고, 혹은 현실의 일면적 피상적 묘사에 의해 트리비얼리즘으로 떨어지는 것을 단호히 배격한다. 말하자면 동시대의 사회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표현한다는 리얼리즘의 강령은 인생에 대한 총체적 통합정신이라는 맥락을 지니는 것이다..(49)
체험과 표현의 정확한 재생력은 이중적 과제가 되어 작가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시련이지만 어느 쪽도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49)
작가들이 어느 정도 주변 현실을 직시했는가를 검증하는 것은 바로 그 시대 소설의 리얼리티를 검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50)
리얼리즘 소설은 특정한 내용의 특정한 형태이다. 따라서 존재 그 자체의 문제 해명은 인간의 특수한 개성과 분리되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은 개인의 고독감과도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사람이 놓여질 수 있는 특수상황이란 인격이나 사람이 사는 환경에 종속되는 것이다. 가령 근대소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톨스토이의 고독은 보편적인 인간조건에서가 아니라 특수한 사회적 숙명 앞에서 형성된 것이다. 특수한 사회적 숙명 앞에 놓인 개인의 고독이 근대의 이론과 실천의 특성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하이데거가 서술한 이른바 '던져진 곳의 存在' geworfenheit in dasein 라는 의미로 더욱 생생히 일깨워질 것이다. 인간이 특정한 상황 속에 존재하는 동안 거기에서 환기되는 특수한 양식·긴장·암시 등의 여러 가지 가능성은 물론 개인의 특징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51) 리얼리즘은 사람의 실제 생활을 潛在力 potentiality으로서 파악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링러리즘 소설은 인식론적 본질과 외적세계의 치밀한 관찰이 통합될 때 그 속성이 드러난다. 리얼리즘 소설은 동시대의 특정사회 속에서 사람의 진실을 발견하려 하는 것이다.(52)
우선 1920년대 초반 한국 작가들이 모색한 자연주의는 실험정신에 얼마나 투철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해야만 한다.(56)
어떤 면으로는 리얼리즘의 소설은 그것이 어떠한 인간의 삶을 그렸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중심을 둔다. 그것은 아무리 시대나 민족마다에 차이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목표와 방법의 면에서 소설에서의 리얼리즘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58)
철학에서의 인식론적 문제와 관련하여 보면 근대소설과 리얼리즘은 공통된 측면을 갖고 있다. 이 양자는 근대철학을 배경으로 하여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근대란 고정관념화된 보편적 지식에 대한 거부태도를 가지고 과거의 유산과 결별하면서 자유롭게 진리에 도달하려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58)

3. 현진건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치 못하는 것이다. ......로만티즘도 좋다. 리알리즘도 좋다. 상징주의도 나쁜 것이 아니요, 표현주의도 버릴 것 아니다. 오직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 이것이야말로 다른 아모의 것도 아닌 우리 문학의 생명이요 특색일 것이다.(빙허, 「朝鮮魂과 現代精神의 把握」, 『開闢』, 65호, 1926, 134쪽-인용자 재인용)(125)
흔히 빙허의 문학관과 소설양식은 민족주의 차원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기법의 성숙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면에서 보면 빙허는 동시대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춘원·동인·상섭 역시 빙허가 밝힌 위의 진술과 유사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빙허의 문학관이 동시대 사회적 진실을 실감 있고 객관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면, 전형적인 리얼리즘 정신과 기법에 접근된 것이다. 더욱 그의 문학적 리얼리티가 시대정신과 연결시킨 것이라면, 소설의 진실을 추적하는 전체적 연대성으로의 통합관과 더욱 가깝다. 빙허가 지·정·의의 종합적 미의 형성을 소설 미학으로 평가한 것은 우리 소설사에서 소설의 수준을 한 계단 올린 것이다.(125)
문학의 연구가 거시적 視界를 통하여 총체적으로 파악될 때, 그리고 작품의 다양성과 통일된 조화(원문은 윗점임)성이 검증되었을 때 문학의 본질은 해명된다. 예술적 표현은 곧 새로운 지각과 낡은 체험(殘想)의 결합 과정에서 형성된다. 즉 체험의 잡다한 요소들이 용해되고 재결합되고 조직화되는 창조과정에서 사상은 그 본체의 형체를 잃고 새로운 예술적 형상의 근간으로 되나 문학을 독창적으로 만드는 것은 주로 정서적 기능인 것이다.(126)
빙허의 評眼을 이러한 통합적 해석론의 관점으로 소박한 대로 받아들인다면 춘원의 계몽문학경향, 동인의 반춘원적 예술지상주의로의 경향 혹은 경향문학의 목적문학 편향을 그가 어떻게 극복하고 동시대이 진실을 소설에서 발전시켰는가를 고찰해야 할 것이다.(126)
빙허가 20년대 '조선역사'를 말하는 증인의 대표자요, 당시의 사실주의 문학을 건설한 대표자요, 당시에 처음으로 단편소설을 완성한 대표자로서 우리 문학사에서 귀중한 존재(김우종, 『작가론』, 동화문화사, 1973, 64쪽-인용자 재인용)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기적 배경을 밝혀보는 데서도 참고할 수 있다.(126)
빙허의 작품목록을 시대순으로 배열하면, 작품동기가 일정하게 암시되어 있고, 점층적으로 강화됨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同工異曲의 主題素가 시대상과 밀착되어 극적 구성기법이나 장면 중심적인 영상수법으로 이동함으로써 더욱 작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암시한다. 정치적 지배체제에 대한 불만, 다시 말하면 국권을 박탈당한 동시대의 조선 지식인의 자기정체상실과 좌절의식을 우회적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가장 큰 명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식민지정책에 대한 저항이며, 작가는 필연적으로 소외자의 위치에서 일제의 검열을 피하는 위장문학의 작전술을(128) 최대한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가의 의도가 잠재해 있는 작품의 본 의미를 상징적 암호로 해석해 보아야 한다. 빙허 작품의 목록 작성은 그런 의미에서 필요하며,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중심주제를 구심점으로 하여 전반적으로 관련되어 있다.(129)
서구에서의 근대화라 함은 중세봉건사회에서 근대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트뢸치」는 다음의 3요소에서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신적 요소로서는 자연과학·합리주의·인간중심주의, 그리고 정치적 요소로서는 합리적 국가주의·민주주의를 들고, 사회경제적 요소로서는 자본주의·시민계급을 들고 있다. 그러나 동양의 근대화 과정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성숙과정을 밟지 못하고 아직 근대적(129)인간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훈련도 없었다. 이와 같이 근대화를 밟지 못한 계급층·사회층이 지배하는 사회에 있어서 민족주의가 고취되어도 그것은 가족·종교·촌락과 같은 제1차적 사회집단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난다.(130)
근대 이후의 민족주의는 근대적 인간의 고도한 자주성·주체성 위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화를 밟지 못한 곳의 민족주의는 개인을 매몰시키는 제1차적 사회집단에 집착하게 되므로 모든 민족활동이 단일한 국가에 집결되지 않고 모래알처럼 이산한다. 민주화 국민화를 매개해야 할 통신과 인쇄의 발달은 도리어 족보의 발간·향토애·지방주의의 발휘를 조장시킨다.(130)
경제적 후진성, 정치적 훈련의 부족, 사상적 빈곤 등 모든 방면에 걸친 저해의 요인이 重合되어 있는 동양의 지식인 특히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 인텔리겐차의 사회문제는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자주적으로 근대사회를 형성하지 못한 사회에 있어서는 정신적 발전이 기술적 발전보다 뒤떨어지기 쉽다. 여기에 조선 인텔리켄차의 근대화 현실의 암벽은 더욱 두텁다. 이러한 논리는 빙허의 20년대 작품에 대체로 적용된다. 빙허는 동시대의 시대상에 맞는 과도기적 생활의 현장을 한 상황에 적합하게 표현하고, 점층적으로 하층민의 극한상황을 소설의 장치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문학을 계급적 편견에 의한 투쟁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아각성과 민족해방의 실현매체로 삼고 있다.(131)
일본 유학생이었던 빙허는 민중과 커다란 간극을 인식하고 인텔리켄차로서의 사명감을 실현하기 어렵던 정황을 「빈처」계열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고백한다.(131)
대체로 주인공들은 극적 무대 위에 놓여져 숙명적으로 미지의 세계에서 방황하지만 이미 작가와 독자는 은밀히 교신하여 멍청한 그들의 무지를 지켜보고 있다. 작가는 사실의 현장을 박진감 있게 그리다가 돌연히 어조를 바꾸어 반전의 극적 수법으로 진실을 언제나 가늠하고 있다. 말하자면 작가는 진실의 본질을 양면적으로 조명하면서 비극적 결말 속에서 깨닫게 하여 긴장미를 갖게 하는 아이러니의 기법을 흔히 쓰고 있다.(131)
「빈처」의 작중인물인 미숙한 작가는 자기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희생적이고도 봉사적인 자기 처를 동정하면서도 끝내 극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빈처」는 등장인물들이 여러 목소리가 어울려 독자의 해석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 있다. 첫째, 주인공의 稚氣와 감상적인 미숙성이다.(132)
여기 아내는 '나'의 의존 대상자이며 마치 어린애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과 같은 구실을 하는 모성 콤플렉스적인 대상이 되는 셈이다.(133)
아내에게는 우리 사회에서 애용되는 도덕적 언사 가운데 '부덕'·'현처'·'현모양처'·'요조숙녀' 등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자들의 지위에 대한 역설적 명칭이 따라 다닌다.(133)
그러나 여기에는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한다. 「빈처」「술 권하는 사회」「타락자」의 부부관계는 도덕적 품성을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의 심층면도 있으나, 동시대의 지적 교신이 단절된 부부간의 비극을 간과할 수 없다. 어쨌든 일본 유학까지 한 지식청년의 사회적 좌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의 과장된 무지는 독자들에게 극화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확대 해석하면 '아내'는 동시대의 대중의 무지를 상징할 수 있다. 선량한 대중의 무지와 지식인의 무력은 다른 차원에서 격차를 벌리고 조선의 장래가 암담함을 시사한다. 즉 조선사회가 지향해야 할 근대화의 제요소 특히 시민계급의 자주성, 주체성의 자각을 선도해야 할 인텔리켄차의 '옆에서의 혁명'조차 의도할 수 없는 작가는 대중의 무지를 아이러니의 수법으로 엮어보려 한다.(134)
빈궁을 소재로 한 「빈처」는 감상적 요소가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134)지하게 자기자신에 대한 냉엄한 관찰과 아내의 미묘한 내면심리를 객관화시키려 한 작품이다. 비록 주인공인 나의 성격이 일관되지 않고 지나치게 단조롭고 갈등 요소가 없다거나 감상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稚氣가 있다 할 지라도 20년대 초창기에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단편소설의 형성에 커다란 공헌을 한 소설임에 틀림없다.(135)
이 소설(「운수 좋은 날」, 『개벽』, 48호, 1924. 6-인용자)의 구조는 단일한 사건과 사물, 배경으로 작가의 의도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명암대조법의 틀을 가지고 있다. 오랜간만에 만난 행운의 날이 사실은 가장 운이 나쁜 날이라는 최종적 판단은 작품 플롯 진행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한 진실의 현장을 더욱 점층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작자는 반전의 역설적 기법을 사용하면서 같은 의미를 반복한다. 결국 「운수 좋은 날」의 시학적 구성원리는 계층적 소외자인 도시 노동자의 숙명적 비극을 형상화하기 위해 사용된 아이러니 수법이다.(135)
"겨울철 음산한 날씨에 눈은 아니 오고 비가 내린다"는 것은 벌써 이 작품이 '프라이'가 밝힌 대로 겨울의 신화쟝르에 속하는 아이러니소설 유형으로서 비극적 풍자소설에 가까움을 암시한다.(135)
김첨지의 비극은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는 한 개인의 운명적인 비극, 사회적 모순, 혹은 식민지적 부조리한 사회환경에 저항한다는 복합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136)
빙허는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비극 문제나 사회적 모순을 김첨지 한 개인의 가정적 비극으로 축소시켰고, 독자에게는 위장적 수법으로 시대의 비극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리얼리즘의 정신에 아이러니를 조화시켰고 그러한 극적 수법으로 문학성을 고양시키고 있다.(137)
빙허의 소설관은 생활과 유리된 문학을 거부하고 이 시대의 조선사회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데 있다. 따라서 「운수 좋은 날」(137)의 궁극적 주제는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선사회의 경제적 빈곤 원인을 추적하는데 있다. 결국 작가는 당대의 사회적 병리요소를 한 도시 실업자와 같은 육체노동자에게 집약시키고 있음을 찾게 된다.(138)
「운수 좋은 날」이 도시 노동자의 궁핍과 비극을 극대화하여 20년대의 부조리한 경제모순을 극명하게 묘사한 것이라면, 「불」(『개벽』, 55호, 1925. 1-인용자)은 농촌의 빈궁으로 고질화된 인습의 질곡을 민며느리로 간 15세 소녀의 비극에서 찾아보려는 것이다.(139)
「불」은 강열한 이미지를 함축한 제명이다. 같은 호에 게재된 基鎭의 「불이야! 불이야!」를 위시해서,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여명」창간호, 1925. 1), 최서해의 「홍염」(「조선문단」, 1927. 1), 김동인의 「광염쏘나타」(「삼천리」, 1930) 등은 원초적 불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 투영시켜 의미의 해석을 확대시키고 있다. 이들 작품의 말미에 방화를 한 것은 유사한 유형을 갖게 되어 이 시대의 관습화된 장르의 문학으로 분류할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여기서도 빙허의 불 이미지와 동인의 불 이미지는 작가의 독특한 기질과 작품미학의 상이로 차이성을 드러내겠지만 대체로 이들 작품들은 시대저건의 울분을 노(139)정한 것이다. 실제로 1925년 「동아일보」「조선일보」에 보도된 화염원인의 거의 30%가 방화였다는 사실은 이 시대의 분위기를 말해 준다. 빙허의 「불」의 경우 민며느리의 방화로 끝을 맺게 된 것은 작품 주제동기에서부터 필연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140)
빙허는 「불」의 주인공 '순이'를 등장시켜 해결할 수 없는 가난한 농민의 숙명적인 무지와 인습의 굴레를 근대화 정신의 소산인 봉건적인 인습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조명하여 비판적 리얼리즘의 시선을 굳힌다.(140)
'순이'가 특정한 상황 속에 '던져진 존재자'로 주시되면서 어떻게 환경에 순응 혹은 저항하는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불은 이 시대 농촌의 폐습을 리얼하게 부각시켜 지방풍토색을 짙게 나타내고, 한 연약한 소녀가 그러한 인습 속에서 어떻게 희생되는가를 휴우머니즘적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자성시킨다.(141)
'순이'가 최종적으로 인습의 질곡에서 불로 인해 해방된 것은 인습의 부당한 모순을 지양하려는데 있었고, 금기 파괴의 기쁨이기도 하다. 불에 탐닉하여 희열하며 미지의 세계로 비상하려는 '순이'의 면모는 이른바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를 나타내는 소녀의 절규다. 금단의 불에 대한 존경과 그 불을 훔쳐서 사용하는 인간의 '영리한 불복종'은 고질화된 인습의 억압이 극한적 상황에 이르렀을 때 폭발되었다.(142)
「B사감과 레브레타」(「조선문단」, 1925. 2)는 「운수 좋은 날」이나 「불」의 경우처럼 노동자나 농민의 빈궁상을 소재로 삼은 비극적 아이러니가 아니라 여학교 기숙사 사감의 위선을 폭로하고 동시대 여학교 기숙사의 시대착오적인 인권 유린을 극화시킨 것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또 하나의 중심사상은 인간해방과 평등정신이었으므로 남녀간의 자유연애사조는 정당하게 표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의 표현이요, 생활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등정신의 근거를 해명하면 여학교 기숙사에서의 부당한 禁足令과 개인의 서신 검열과 같은 것은 부당한 인권 침해요 시대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의 자유사조를 우선 이해하(142)면 「B사감과 레브레타」의 주제 동기와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143)
작가는 철저히 위장된 한 인물의 본질을 전형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작가는 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를 희극적 요소로 가미시켜 극화시키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창 틈으로 엿본 기숙사 여학생들에 의해 B사감의 본성이 폭로되는 것과 같은 극적 장면은 바로 희극적 아이러니의 수법을 의미한다. 즉 작자는 낮과 밤의 양면적인 장면 속에서 한 인간의 철저한 위장을 벗기기 위해 극적 기교로 장면구성을 하였으며, 상반된 인간의 모순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143)
철저하게 애정문제를 멸시하여 지나치게 학생들의 '러브레타'를 규제했던 노처녀 B사감선생이 바로 그 빼앗은 '러브레타'를 보고 자정에 흥분하는 커다란 모순은 인간의 감추어진 본성을 찾는 리얼리즘이나 아이러니의 기법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결말 부분의 급전으로 인하여 놀라움과 긴장감과 극적 아이러니로 감추어진 인간의 본성을 갑자기 드러내는데 있다.(144)
「고향」(「朝鮮의 얼굴」, 1926)은 소재가 동시대 농촌의 황폐와 궁핍상을 드러내기 위해 한 실향민의 방랑생활을 묘사한 것이지만 「운수 좋은 날」이나 「불」보다는 훨씬 넓은 시공간 속에서 시대정신과 리얼리티를 드러내고 있다.(145)
「고향」의 주인공인 '나'가 만난 작중인물은 이 시대 많은 조선인이 겪는 떠돌이 방랑생활을 하는 전형적 인물이다.(145)
주인공의 슬픔은 같은 조선인에게만 상통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 속에서 벗겨진다.(145)
극한적인 생존의 위협을 받았던 농민의 떠돌이 방랑생활을 하는 것을 작가가 시대의 중심문제로 삼아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고향」에 등장되는 주인공의 방랑생활과 그 비극적인 삶의 신세타령은 바로 이 시대 조선의 현실을 조명한 것이다.(147)
「고향」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사회·역사적 맥락, 문학 관습의 전이 이외에도 주인공의 심층적인 내면심리 등을 검증하면서 작가의 표현미학과 결부시켜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이 시대의 처절한 궁핍 상황은 아내나 딸의 정조와 물질과의 교환이 생존수단이 되는 소설적 소재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148)
「고향」의 주인공이 체면의식의 가면을 쓰게 된 것 역시 조선의 지정학적(중국과 일본 등 강대국의 영향권에 든 한반도)인 역사 배경 하에서 자기 생존 보호책이라는 특수성이 한 조건으로 될 수 있다. 그의 고향은 동척의 수탈이 가장 심했던 南鮮地方이라는 숙명적 사회배경 속에 있었으므로, 이로 인해 불가항력으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던 정체성 상실은 타인에게 附和雷同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다.(148)
빙허는 반전을 통한 자각의 기법으로 술을 사용해서 분위기의 자연스러움을 훌륭히 처리한다. 가령 그의 초기작품인 「빈처」「술 권하는 사회」를 비롯해서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私立精神病院長」에서 W군 등의 본질적 내면의식은 술에서 찾아진 것이다.(149)
「私立精神病院長」은 「개벽」 65호(1926. 1월호, 1925. 12. 9. 탈고)에 게재된 것이다. 同誌에는 빙허의 「朝鮮魂과 現代精神의 把握」이라는 평문도 함께 발표되어 「私立精神病院長」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즉 어떠한 문예사조도 수용할 수 있지만 오직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이야말로 우리 문학의 가(149)장 중요한 생명이요 특색이라는 것이다.(150)
빙허가 '조선혼과 현대정신'(빙허, 「朝鮮魂과 現代精神의 把握」, 『개벽』, 65호)의 문학관에서 '달뜬 기염에서 고지식한 개념에서 수고로운 모방에서 한 걸음 뛰어나와 차근차근하게 제 주위를 관조하고 고요하게 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으려'는데 있다고 스스로 해명한 것처럼 작품 속에는 침통한 조선의 時代苦(원문은 윗점임)가 앞선다.(150)
미친 P군의 보호자였던 사람 좋은 W군이 또한 미쳐서 살인까지 하게 된 아이러니컬한 대단원은 극한상황 속에서 인간의 반응을 실험한 자연주의적 수(150)법일 것이다. 더 의미를 확대하면 W군의 참극은 W군의 성격의 결함이라기보다는 외부적 영향 속에서-동시대의 시대고가 경제적 무능력작인 지식인 실업자  W군에게 가장 예민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151)
1920년대 초반의 문학사조는 대체로 己未 이후 자연주의·사실주의·예술지상주의·악마주의·상징주의 등 사상적 혼류에서, 1923년 이래 커다란 두 주류는 민족문학과 이른바 경향문학과의 대립에서 찾아진다. 빙허의 위치는 민족주의적 계열에 속하면서도 소시민적 자전체로서의 낭만주의 혹은 기교가로 그 뒤 자연주의 혹은 사실주의 작가로 전환하면서도 「운수 좋은 날」 이후 그 소재면에 있어서는 자연적으로 빈궁문학으로 기울어진다.(151)
「貞操와 藥價」(『신소설』, 1929. 12)의 소설 제목이 지나치게 노골화된 命名인데도 불구하고 그 주제는 상당히 구체적인 문체로 구성되고 있다. 특히 이제까지 그의 대부분 작품 결말에서 보인 비운의 주인공과는 달리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자연발생적인 신경향파작가라고 불리우는 최서해의 「飢餓와 殺戮」(『조선문단』, 1925. 6)이 그 소재면(빈궁한 '경수'가 그의 아내 약값으로 1년 동안 의사집 머슴살이를 함)에서 유사하면서도 서해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결말의 공식적인 저항과 살인극에 비교하면 빙허의 미학은 새로운 인간상응ㄹ 창조하고 있는 점에 그 특색이 있다. 빙허의 문체부터 우선 검토함녀서 그의 문학관을 조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빙허는 후기 작품으로 올수록 참된 리얼리즘의 성숙미를 더해 가고 있다.(152) 빙허의 리얼리즘은 地圖的인 인생 혹은 고착도니 사실을 묘사하거나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의 뿌리와 자연주의의 가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통합적이고 변증법적인 내적 연계성 위에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림이란 카메라의 複寫性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라 하겠다.(153)
소설의 환경은 극한적 가난이고, 주인공은 상황의 희생자들이다. 그들이 던지워진 숙명적 환경은 굶주림, 질병, 빼앗긴 토지, 약값으로 지불되는 정조가 상징하는 추악한 조건들이지만, 그들은 그러한 질곡에서도 줄기차게 살아가는 삶의 철학을 보이고 있다.(153)
이 작품은 분명히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 속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보존하려는 개체보존욕을 시사한 것이다. 농부의 아내 경우 세속적인 윤리관은 맞지 않는다. 즉 남편의 생명이 가장 위급할 때, 기존적 윤리의식의 터부는 파(154)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더 넓은 의미로 이 시대의 역사적 상황의 탈출구가 무엇인가도 점검하게 되고 줄기찬 생명력의 고귀함을 획득하게도 된다. 「貞操와 藥價」는 그런 의미에서 새 윤리성을 제기한 작품이다.(155)
빙허의 소설 역시 전체적 연대성으로 통합관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상상미학으로서의 소설의 기능은 지적인 동시에 정서적이며, 감각적인 동시에 이성적이라는 것, 즉 眞善美의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155)
빙허의 세계는 차차 내면적인 고민을 시대의 모순으로 돌리면서 인간의 가면과 본질의 낙차를 아이러니의 기법으로 성숙시켰다.(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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