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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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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번역]들뢰즈와 문학 - 글쓰는 기계(74-78)
2018년 10월 21일 15시 35분  조회:717  추천:0  작성자: 강려
 
 
출처 Rhizoma *^^* | 뿌리줄기
원문 http://blog.naver.com/conscom/100009627124
 글쓰는 기계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유형지의 고문 기계는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욕망하는 기계의 유용한 사례로서 기능한다. 그것이 그 단어의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기계이기 때문에, 그것의 에로티시즘은 비인간적 메커니즘과 상호작용하는 고독한 희생자와 관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기능은 단연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하지만 『카프카』에서, 고문 장치는 단지 들뢰즈와 가타리가 실험하는 기계들 중의 단지 하나일 뿐이며, 그들은 그것이 최소한 독신자의 욕망의 생산과 연속의 관점에서 볼 때 카프카의 가장 성공적인 기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너무 추상적이며, 자신 안에 포위된, 너무나 고립된 실재물이다. 그것은 하나의 섬 위에 존재하는바, 특정되지 않은 유형지보다는 제도들에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그것의 요소들은 너무나 쉽게 아버지와 아들, 예의 지휘관과 관리/희생자라는 오이디푸스적 구조 내부에, 뿐만 아니라 그와 유사한 구약적 신과 무력한 메시아의 종교적 구조 내부에 동화된다. 그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 기계는 조각들로 파열되고, 관리는 죽으며 탐험가는 섬을 탈출한다. 그 탐험가의 탈주를 제외하면 모든 운동은 끝나 버린다.
기계들의 기능은 “기계화하는 것” - 종합들을 형성하고, 이항적 연접들, 포함적 이접들과 유목적 통접을 통해 흐름들을 생산하는 것 - 이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문제는 욕망하는 생산의 흐름들을 종합하고, 다중적인 연접들, 이접들과 통접들을 형성하고, 그리하여 운동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글쓰는 기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안티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의 흐름들의 운동을 기술하지만, 또한 운동이 봉쇄되는 방식들을, 그리고 흐름들의 연접들 속에 한정되고, 이접들 속에 포함되며, 통접들 속에 고정되는 순환들 속으로 흐름들이 제한되고, 규제되고, 코드화되고, 방향잡혀지는 방식들을 길게 이야기한다. 만약 욕망하는 기계들이 모든 곳에서 탈영토화하는 흐름들이라면, 그와 동일한 흐름들 역시 인식가능한 대상들과 안정적인 주체들의 조직된 양식들 속으로 끊임없이 재영토화되고 있다. 따라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하는 생산의 두 가지 극, 즉 흐름들을 한정하고 분리하는 “편집증적이고 파시즘적인 유형 혹은 극”과 “욕망의 탈주선들을 따르고, 그 벽을 헤치고 나아가 흐름들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분열혁명적 유형 혹은 극”(AO 329; 277)을 확인한다. 『안티오이디푸스』에서 그들은 두 극들의 순환들의 지도를 만들고, 그것들의 보편적인 역사 속에서 세 가지 종류의 편집증적인 사회적 기계들(원시적, 전제적, 자본주의적)과 그것들 각각이 흐름들을 제한하고 조직하는 특징적인 수단들에 대해 기술한다. 정신분석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단지 이러한 분석의 일부일 뿐이며, 아버지-어머니-나의 오이디푸스적 삼각형은 단지 (이러한 경우에 욕망이 우선 가족 속에, 자아-주체 속에, 전체적이고 별개의 유기체들 등등 속에 위치지워져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욕망을 규제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들 내의 억제들 및 통제들의 일반적인 체계의 한 가지 구성요소일 뿐이다.
『카프카』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카프카를 오이디푸스적으로 독해하는 것에 대해 반대함으로써 계속해서 정신분석에 대해 공격을 가하지만, 그들의 주요 목적은 운동의 생산, 지속, 증식의 맥락에서 카프카의 글쓰는 기계의 활동들을 상술하는 것이다. 그들은 카프카의 글쓰는 기계의 세 가지 구성요소들 - 편지, 단편소설, 장편소설 - 을 확인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카프카가 펠리체 바우어와 주고받은 서신들 속에서 편지들의 정수를 발견한다. 카프카는 그녀에게 편지로 구혼하고, 그 결과 약혼하게 되지만 결코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의 모든 편지는 일종의 연애편지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편지들의 지평 위에는 언제나 한 여인이 있으며, 그녀가 진정한 수신인이고, 그녀는 아버지가 필경 그로 하여금 헤어지도록 만든 사람이며, 그녀는 그의 친구들이 그가 관계를 깨뜨리기 희망하는 사람이다.”(K 53; 29)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펠리체를 만난 후 카프카는 곧바로 그녀와 정기적인 서신 왕래를 시작했고, 그녀에게 매일 편지를 썼으며 자주 답장을 쓰겠노라고 그녀에게 약속했다. 마침내 그들이 약혼하게 되었지만, 서신 왕래 전반에 걸쳐 카프카는 그들의 드문 만남들에 항구적인 장애물들과 그들의 결혼에 항구적인 반대들을 배치한다. 그의 지연은 카프카가 칭했던 바의 “호텔 속의 법정”에, 그의 의향들을 결정하기 위한 베를린의 Askanische Hof에서의 펠리체와의 인터뷰로 이어졌다. 그날 이후 그는 그들이 파혼했다는 소식을 그녀의 가족에게 분명하게 전했고, 카프카가 논평한 바처럼, “그들은 내가 옳았음을,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 반대하여 말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했다. 나의 결백 속의 악마.”(Diaries II, 65) 펠리체와 카프카는 잠시 동안 계속해서 편지를 썼지만, 결국 구혼과 서신 왕래는 끝나기에 이르렀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기에, 편지들은 “문학적 기계의 악마적인 권력을 직접적으로, 순수하게 제기한다.”(K 52. 59) 연애편지들은 사랑의 대체물이며, 부부 계약을 대체하는 악마적인 계약(언젠가 그는 펠리체로 하여금 그에게 매일 두 번씩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하도록 만든다)의 생산물이다. 카프카는 드라큘라와 같아서, 펠리체에게서 생명을 빨아들이기 위해서 박쥐같은 편지들을 보낸다. 그는 자신을 말하는 주체[언표 행위 주체]와 이야기의 주체[언표 주체] - 집에 남아 있는 순수한 말하는 주체, 마찬가지로 편지들 안에서 과감하게 말하고, 물리적 만남들에 대한 장애들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하지만 공허하게 시도하는 이야기의 순수한 주체 - 로 이중화한다. 편지들의 목적은 서신 왕래를 영속화하는 것이며, 결혼을 연기하고 리비도적인 글쓰는 기계의 작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은, 작가가 그 자신의 기계에 포획될 것이며, 흡혈귀가 “가족의 십자가와 부부의 마늘”(K 54; 30)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카프카의 편지들은 진실로 호텔 법정에 이르게 되고, 작가는 그 자신의 기계에 붙들리게 된다. “‘모든 순수한 속의 악마성’이라는 공식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K 60; 33)
그가 펠리체와 서신 왕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프카는 그의 첫 번째의 잘 익은 단편소설인 「선고」를, 곧 이어 「화부」와 「변신」을 생산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바에 따르면, 편지들은 “어쩌면 원동력, 즉 그것들이 가져오는 피를 통해, 전체 기계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이고”, 단편소설들은 “위험을 미리 보여주거나 그것을 마법으로 쫓아버리기 위해”(K 63; 35) 쓰여진다. 단편소설들은 탈주선들 - 함정들, 우리들, 감옥들, 막다른 길들, 폐쇄된 공간들, 그리고 협박하는 기계들로부터의 탈출로들 - 에 관심을 갖는다. 그것들은 가능한 운동의 통로들을 추적하는 한편, 제한하고 죽이는 봉쇄들 역시 추적한다. 「선고」에서 게오르그 벤데만은 가족적이고 부부적인 강제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버지의 판결에 굴복한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동물-되기의 과정에 들어감으로써 가족과 업무(work)에 대한 그의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길을 탐험한다. 하지만 그레고르의 탈주선은 시종일관 절단되고, 세 번이나 그는 자신의 방 안으로 퇴각한다. 그의 누이는 그의 방에서 가구를 치워줌으로써 그의 곤충-되기를 격려하지만, 그레고르는 항의의 표시로 벽에 붙어 있는 사진에 달라붙는다(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초상화들과 사진들은 카프카에게 있어서는 코드들을 부과하는 것으로 시종일관 연결되어 있다). 그로부터 누이의 분열-근친상간적 욕망은 탈출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들에 아무런 도움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가 집어 던진 가족적인 죄의 사과는 그의 몸 안에서 썩고, 결국 그는 죽는다.
모든 단편소설들이 「변신」처럼 그러한 파멸적인 결말로 끝을 맺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원숭이는 인간-되기의 과정에 대해서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우리를 탈출한다. 그는 “아닙니다. 자유는 내가 원한 게 아니었어요”라고 말한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혹은 어느 방향이든 탈출구가 필요했어요. 다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죠.”(Complete Stories 253-54) (원숭이의 이러한 말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동물-되기와 탈주선의 본질 - 결코 자유가 아닌, 오로지 탈출뿐인 - 을 발견한다.) 하지만 원숭이가 탈출한다 해도, 그의 탈주를 계속할 아무런 수단도 없으며, 아무런 접속도 그의 동물-되기가 개시한 그 운동의 확대를 제공하지 못한다. 글쓰는 기계의 문제는 운동과 접속들의 문제이며, 독특하지만 결말-개방적인 순환들 속에서 탈주선을 영속화하는 종합들의 문제이다. 단편소설들에서 탈주선들은 닫히거나 끊어진 채로 남아 있다. 단편소설들의 구성요소들은 자기-파괴적인 기계나 공허하게 작동하는 기계를 형성한다. 어떤 사례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기계가 기능하고 있는지를 지각하지만, 그것의 모든 부분들을 식별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다. 이러한 경우들에서 단편소설들은 완전히 구축된 기계들보다는 기계 목록들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어느 개의 연구」의 일곱 마리의 노래하는 개들은 음악 기계의 기능적인 부분들인 것 같지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기계인지, 그리고 그 부분들이 어떻게 여타의 구성요소들과 관계를 이루는지는 불확실하다. 또 다른 사례들 속에서, 별개이면서 완전히 결합되어 있는 기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떻게 그것의 연결들이 다른 요소들로 확장되는지는 미결정적이다. 유형지의 고문 기계는 이러한 추상 기계의 일종이며, 「가족적인 남자의 걱정들」의 신비한 Odradek - 평평한 별모양의 실패 모양의 사물로서, 실의 떨어진 부분들로 덮이고, 작은 목재 빗장이 그 별의 바깥을 가리키고 작은 장대가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빗장에 묶여 있으며, “충분히 무의미하게, 하지만 나름대로 완전히 종결된 것”(Complete Stories 428)으로 보이는 완전한 사물 - 가 꼭 그러하다. 또 다른 종류의 이러한 추상 기계는 「블룸펠트, 나이든 독신자」에서 등장하는데, “나란히 위아래로 뛰는, 푸른 줄무늬가 있는 두 개의 작은 하얀 셀룰로이드 공들”(Complete Stories 185)이 불가해하게 어느 날 블룸펠트의 문에 도착한다. 더욱이 이 추상적 기계, 기계 목록들은 블룸펠트의 두 명의 조수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분명한데, 이들의 기묘한 익살들은 튀는 셀룰로이드 공들과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는 것 같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복합 기계의 부분들로서 그러한지를, 우리는 결정할 수 없다.
오직 카프카의 글쓰는 기계의 세 번째 구성요소인 장편소설들 속에서 운동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며, 탈주선들이 특정한 순환들에 연결된다. 카프카의 세 편의 장편소설들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지만, 들뢰즈와 가타리의 분석에 의하면, 이것은 오직 글쓰는 기계가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자신의 완전한 기능하기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막스 브로트는 『소송』에 대해서, “프란츠는 장편소설을 끝나지 않는 걸로 간주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브로트는 “구두로 작성된 작가 자신의 진술에 따르면, 소송이 최고 법정처럼 멀리까지 결코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장편소설도 결코 종결될 수 없었다 - 말하자면 그것은 무한으로 연기될 수 있었다.”(『소송』에 붙이는 발문, p. 334) 『소송』처럼 『아메리카』와 『성』도 역시 끝이 없이 무한하며, 오직 그것들이 완전히 고장나지 않고 계속해서 작동하는 기계들이라는 점에서 완료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의 끝나지 않는 기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들의 접속들의 특이성(specificity)과 다중성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세 편 장편소설 모두를 다루고는 있지만 완전하게 기능하는 글쓰는 기계를 가장 잘 예시하는 것은 『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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