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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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산딸기.1(김철호)
2009년 03월 04일 13시 40분  조회:1269  추천:12  작성자: 김철호

1

 

흑석이 어디에 있는가?

나는 흑석이라고 불리우는 마을을 너무나도 알고있는터였다. 허지만 그곳이 항시 나의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앉아 미묘하고도 야릇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고장이여서 나는 가끔 이렇게 자문하기도 한다.

검은 돌이 많다고 흑석촌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심산벽지에 자리잡은 마을주변과 개울가며 산비탈에는 온통 거무칙칙한 돌천지이다. 허지만 흑석촌은 매우 아름다운 고장이였다. 산기슭에 오붓이 들어앉은 아담한 마을앞으로는 수정같이 맑디많은 벽계수가 감뛰며 흐르고 앞산뒤산에는 울울창창한 숲이 우거졌는데 그속에는 약재같은 보물이 쌔고버렸다.

그런데 이렇듯 좋은 고장에 아직도 전가가 들어가지 못했고 교통이 말째여서 사람들의 한탄을 자아내군 한다, 흑석촌은 연길에서부터 기차로 하루, 뻐스로 반나절, 소철을 타고 몇시간을 좋이 가야 닿는 장백산의 막치기였다.

1981 여름, 나는 졸업배치장을 지니고 흑석학교에 찾아갔다. 차에서 내려 자주 들추는 소수례에 옹송그리고 앉아 흑석땅에 들어섰을 때의 나의 감정은 미개척지에 첫발을 들여놓는 풋내기 탐험가의 그런 신비감과 놀라움, 그리고 의혹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박할머니네 집에 하숙을 정했다. 집은 할머니와 그의 손자뿐인 단출한 식솔이여서 내가 들어있기에는 알맞춤했다.

그날 저녁 나는 할머니와 같이 가마목에 자리를 폈다. 말끔하고 깨끗한 장판방에서 자라는것을 나는 뜨끈뜨끈한 가마목이 소원이라고 우겼다. 할머니는 호두알처럼 주름살이 가득 잡힌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혀를 끌끌 찼다. 손자는 목장에 가고 없었다.

이튿날 자리에서 일어나니 벌써 가마에서는 흰김이 물물 피여오르고있었는데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구미를 당겼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바깥쪽으로부터 소곤소곤 말소리가 들려왔다. 창가에 다가가 카텐을 들고 여겨보니 할머니가 젊은이하고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나는 오래동안 깎지 않아 귀까지 덮은 수세미같이 텁숙한 머리와 이슬에 젖어 꼴불견이 옷주제가 눈에 띄자 들었던 카텐을 슬며시 놓아버렸다. 대체 누굴가?

발자취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창가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두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윽고 문이 살며시 열리더니 할머니가 들어서면서 반색했다.

어이유, 벌써 일어났소? 푹 잘게지. 얘야, 날래 이리와 선생님께 인사나 올려라.

터벅터벅 나던 발자취소리가 문전에서 멎었다.

이 꼴 보지, 촌바우가 돼놔서 이렇다오.

할머니는 젊은이를 재촉해서 집에 끌어들였다. 젊은이는 수집은 처녀애마냥 한동안 주밋거리다가 겨우 입을 뗐다.

선생님, 오시느라 욕보셨겠습니다.

아니, 별 말씀을, 펠 끼치게 됐어요.

나는 맞인사를 하면서 그를 찬찬히 뜯어볼수가 있었다. 강대처럼 억세고 다기진 몸매, 농촌에서 흔히 볼수 있는 건강하고 병없는 그런 사나이였다. 얼굴은 먼지가 끼여 거무죽죽했으나 눈만은 맑고 어글어글해 보였다. 상큼한 코날, 두리두리한 얼굴, 훤한 이마, 입귀쪽으로 내려오면서 까칠하게 돋은 수염나는 첫눈에 정력이 왕성한 서른살쯤 되는 사나이로 보았는데 그가 개울에 나가서 세수하고 돌아왔을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비누로 머리를 감아 보기 좋은 곱슬머리엔 함치르르 윤기가 돌았고 금방까지 거무죽죽하던 얼굴은 발가우리하게 상기되여 방금 꽃물을 들인듯했다.

그날 나는 최학구교장선생님을 통하여 할머니네 가정형편을 다소나마 알게 되였다. 할머니의 손자는 만룡이라 부르는데 어려서 부모를 여읜 그는 할머니슬하에서 외롭게 자랐다는것이였다. 만룡의 부모들은 모두 1957년의 수난자들이였는데 그들이 우파모자를 쓰고 산골에 왔을 만룡이는 두돌이 지난 어린애였다고 한다. 1958, 전국적으로 교육을 보급시키는 열조가 일어났다. 그때 만룡의 부모들은 자진하여 흑석에다 학교를 꾸렸다. 헌데 1961년의 조절정돈과정에서 흑석학교를 해산시켰다. 그후 만룡의 부모들은 불행하게도 이름모를 병에 걸려 한해를 사이두고 타계의 사람이 되였다고 한다. 최학구교장선생님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을 나는 어쩐지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해 목장에 갔던 만룡이는 좀해서는 집에 내려오지 않았었다. 나는 할머니가 손자를 몹시 그리워한다는것을 여러번 눈치챘다. 한번은 할머니가 밥상에 수저를 한모 놓은 일까지 있었다. 해도 할머니는 목장에 가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만룡이더러 큰일 없이는 절대 산을 내려오지 말라고 부탁하더라는것이였다. 만룡이도 어쩌다 일이 있어서 마을에 와서도 밤을 넘기지 않고 그날로 목장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할머니가 민망스러웠다.

할머니, 어쩌면 이럴수 있나요. 어쩌다 온 사람을 쫓다니요…

내가 이렇게 말할라치면 할머니는 나의 어깨를 도닥이며 히죽히죽 웃기만 하였다.

 

2

 

조석으로 개울가에  살얼음이 지기 시작할 만룡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밥은 집에서 먹고 자긴 쇠돌이네 집에서 잔다면서 이불짐은 가져오지도 않았다. 나는 말없이 쇠돌이네 집에  가서 그의 이불짐을 꿍져왔다.

웃방이 그저 비여있는데 그렇게 하면 돼요?

나의 말에 만룡이는 무중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부자연스레 모자채양을 움켜쥐는것이였다. 모자는 이미 해지고 색도 난것이 쓰고 다닐것 같지 않아 보였다. 하나밖에 없는 친인을 떨어져서 여름내 산에 들어가 있다가 집이라고 찾아온 불쌍한 사람을 보노라니 나는 어쩐지 목이 메였다. 그때 나는 일인지 만룡이가 몇호짜리 모자를 쓸가 하는 생각이 부지중 떠오르면서 저도 몰래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우리는 한집에서 살게 되였다. 만룡이는 웃방을 차지했다. 만룡이는 웃방문으로 출입했고 눈이 펑펑 쏟아질 때까지도 개울에 나가서 세수를 했다. 그러던것이 내가 방문을 문풍질해놓아서야 그는 주간출입을 하게 되였으며 차츰 나와 한두마디 말을 건늬기도 하였다.

저녁이면 나는 남포등을 켜서 창문가에 걸어놓고 책상에 마주앉아 학습하기도 했다. 때론 책을 펼쳐놓은채 바깥에 나갔다 오기도 했으나 누구나 나의 물건을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은 누군가 나의 책들을 건드려놓았다. 나는 은근히 성이 났다.

그러던 어느날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온 나는 한창 두터운조선말사전을 무릎에 펼쳐놓고있는 만룡이를 보았다. 그는 내가 들어온것도 모르고 자주 책장을 번지기만 하였다. 그 모양이 얼마나 우습고 얄미웠던지… 혹 무슨 글쪽지같은것을 책속에 끼워넣은줄 알고 저러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어처구니 없어 그만 쓴웃음까지 나왔다.

버릇없이 선생님것을 다쳐 쓰냐? .

할머니의 꾸짖음에 뭐라고 대꾸하려던 만룡이는 나를 발견하고 쭈물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먼지도 묻지 않은 책뚜껑을 팔소매로 쓱쓱 닦은후 조심스레 그것을 책상우에 놓고 벌쭉 입을 열었다.

이 책이 참 멋진데…

아니, 사전이 멋있다고요?

아마 그때 나의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개졌을것이다. 마음이 어질고 정직한 사람으로만 생각해왔던 만룡이가 이렇게 사람을 놀린다고 생각하니 모욕을 당한것 같아 입술마저 떨려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태연스레 책을 책꽂이게 얹으면서 마음을 눌렀다.

내가 아무 말도 없자 만룡이는 주눅이 들어 훌쩍 방으로 뛰여들어가고말았다. 할머니는 나의 손목을 끌어 자기옆에 앉히더니 쭈글쭈글 주름이 손으로 나의 어깨를 다독여주면서 정답게 말씀했다

성내지마우, 쟤가 버릇없어 그렇소. 재미있는 그림이나 있는가 해 그랬겠지. 쟤는 낫놓고기윽자도 모른다오.

?

나는 할머니의 말에 두눈이 데꾼해졌다.

쟤는 나처럼 까막눈이라오. 애비에미는 모두 큰학교를 나왔는데 쟤는 유치원도 다녀보지 못했다오.

할머니의 목소리는 솜뭉치가 땅에 떨어질 때처럼 가벼웠으나 나는 도리여 철없는 어린애가 우뢰소리라도 들으듯이 깜짝 놀랐다. 선량하면서도 총명해보이는 만룡이가 머리통이 문맹이라고 생각하자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갖고있는 우리 조선족은 자기들의 후손이 20세기 80년대에 문맹이 있는것으로 하여 치욕을 느낄것이다. 예로부터 서발장대 휘둘러도 거칠것 없는 구차한 살림이라 해도 자식들에게 글공부만은 시켰다는 우리의 조상들이 아니였던가. 나의 놀라움은 어느덧 원망으로 번져갔다. 어쩌면 하나밖에 없는 손자를, 일찍 부모를 여읜 불쌍한 사람을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끝내 가슴속에서 고패치던 원망을 할머니앞에 쏟고야말았다.

할머니, 생활이 아무리 고달팠어도, 처지가 아무리 험악했어도 어찌 소학교공부도 시키지 못했어요, ? 할머니는 나빠요.

할머니의 움푹하게 꺼져들어간 눈엔 눈물이 그득 고여있었다. 그가 슬며시 눈을 내리감자 두눈귀에서 수은처럼 부서진 눈물방울들이 주름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얼기설기 잡힌 주름살과 훌쪽하니 패워들어간 그의 볼에는 갖은 고초를 겪어온 암담한 지난날이 력연히 어려있었다.

후에 최학구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까닭을 알게 되였다. 이고장 아이들은 이전에 모두 50리밖에 있는 공사마을 학교에 다녔다는것이였다. 만룡의 부모가 흑석촌에 학교를 꾸리면서부터 아이들은 몇년간은 그래도 앉은자리에서 공부할수 있게 되였다. 그때 만룡이는 겨우 대여섯살밖에 안되는 어린애였다. 그후 학교가 해산당하고 만룡의 부모들이 타계의 사람이 되였다. 그래서 학교갈 나이가 만룡이는 학교갈수가 없었다. 한것은 50리밖 공사마을에 숙소를 정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우파분자의 후대인 만룡이를 집에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렇다하여 어린 만룡이가 50리를 걸어다닐수도 없었고 소철을 타고 다닐수도 없었다. 그후 만룡이가 17세나던 해에 학교가 다시 앉았으나 배움의 철을 놓친 만룡이는 마음뿐이지 학교에 다닐수 없게 되였다. 열일곱살을 먹은 만룡이는 글공부보다도 소몰이에 재미를 붙였고 입에다 밥을 떠넣을 일이 요긴했다. 그러던 그는 이젠 벌써 25세의 피끓는 젊은이가 다되였다. 그는 고민했다

그후부터 그는 나의 책엔 손을 대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늘쌍 애수의 그림자가 비껴있었으며 빼앗긴 시절에 대한 애달픈 심정과 원한, 증오의 물결이 사품치고있다는것을 나는 엿볼수가 있었다. 1957년의 수난자ㅡ만룡의 부모가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갔다면 후대는 암둔의 상징물로 세상에 남아있어야 한단말인가? !...

 

3

 

검푸른 하늘에 초생달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걸려있던 어느날 저녁, 차겁고 희미한 달빛은 나무토막우에 앉아있는 만룡이를 쓸쓸히 비춰주고있었는데 모양은 마치 거치른 석공의 손에서 다듬어진 석상 같았다. 날씨는 잠풍했으나 어쨌든 겨울은 겨울인것이다. 차디찬 한기를 마시면서  고민에 싸여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가슴이 쓰라렸으며 울적해졌다.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연히 모래를 뚜지다가 반짝하고 빛나는 금알맹이를 발견했을 때의 그런 심정이라 할가. 아니면 시인이 생활의 대해속에서 갑자기 예술적종자를 발견했을 때의 격정이라고나 할가. 나는 매우 흥분되여  만룡이를 불렀다. 그때 나의 생각은 이러하였다. (나는 교원이다. 그에게 지식을 전수해줄수 있다…)

나의 부름소리를 듣고 만룡이는 대번에 나의 앞까지 달려왔다. 그때 우리는 바깥의 으스름한 달빛아래 서있었다. 만룡이가 나의 신상에 큰변이라도 생겼나 해서 지켜보는 모양이 꽤나 우스웠다.

결심이 있나요? 결심만 있다면 꼭 될수 있어요.

두서없는 애매한 말을 듣고 만룡이는 쩔바를 몰라했다. 그제야 나는 성급한 자신을 나무리며 그더러 집으로 들어가자고 졸랐다. 우리는 할머니앞에 가서 앉았다.

할머니, 전 만룡에게 글을 가르치려 해요.

두사람은 한동안 멍하니 나를 쳐다만 보고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듯이. 그러나 나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할머니, 만룡 부모님들의 일생은 불행했어요. 그런데 만룡의 일생마저 그렇게 되게 할수 있어요? 만룡은 꼭 문화지식을 갖춘 새시대의 청년으로 되여야 해요. 세계가 변혁하는 오늘 눈뜬 소경이 되여가지고는 아무 일도 해낼수 없어요. 글을 배워야 해요.

나는 그들이 알아듣건말건 연설조로 나의 마음을 토로했다. 만룡이는 매우 난처해했고 할머니는 영문을 몰라 멍해졌다.

내가 이제 글을 배운다…

만룡이는 못믿겠다는듯이 머리를 절절 가로저였다. 허지만 일종 호기심에 사로잡혀있던 그의 어글어글한 두눈은 금시 희망과 믿음으로 불타고있었다. 그제야 할머니도 영문을 알아차리고는 나의 손목을 잡더니 입술을 바르르 떨다말고 겨우 이렇게 말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면 쟤를 좀 눈뜨게 해주오. 나같이 늙은거야 까막눈이면 누가 뭐라오. 해두 저 얘야 새파란게… 내 그 은혤 눈에 흙이 들어간대두 잊지 않겠으니 제발…

할머니두 참… 전 교원이니까 그건 저의 직책이지요.

나는 송구스러워 할머니의 손을 마주잡았다. 만룡이는 연송 무릎은 주먹으로 쿡쿡 치면서 흘분상태에 처해있었다.

만룡이는 총명했다. 얼마되지 않아서 그는 책을 볼수 있었고 산수문제도 풀수 있었다. 마치 숭숭한 해면에 물이 스며들듯이 그는 글을 잘도 배워넣었다.

눈깜박할 새에 몇달이 흘렀다. 이듬해 만룡이는 목장에 가지 않고 마을에서 일했다. 하여 그는 나의 강의를 매일 들을수 있었다.

어느 한번 만룡이는 내가 그더러 읽어보라고 이야기책을 할머니에게 또박또박 읽어드렸다. 할머니는 너무 좋아 눈물까지 흘렸다.

할머니가 밤마다 우리에게 밤참을 마련해주었다. 기름기 차르르한 찹쌀구이를 저가락에 꿰여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언제나 두개씩만 구워서는 한사람에게 하나씩 주군 했다. 철부지애들이여서 다투기라도 할가봐 두려워하듯이 우리들을 곱게 흘겨보고는 어서 먹으라고 재촉했다.  흑석의 감자는 얼마나 맛있었던가? 쪄놓으면 떡떡 터진 속으로 솜같은 감자살이 미죽미죽 나왔다. 할머니는 우리가 찰구이를 먹고나면 부엌에 파묻어둔 개지같은 감자를 꺼내여 재를 툭툭 털어서는 한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준다. 먹고싶어도 없다. 두개만 구웠으니깐 먹기 싫어도 먹어야 했다. 아니면 할머니가 성을 냈다. 처음엔 면구스러워 만룡이와 마주앉아 먹지 못했다. 그러나 차츰 허물없는 사이가 되여버렸다. 나이를 따지면 만룡이는 나보다 몇달 앞선 동갑이다. 그러나 그는 번마다조선생님, 조선생님… 하면서 나를 존대해 불러주었다. 나는 반대로만룡이, 만룡이… 하면서 학생을 대하듯 그를 불렀다. 그러나 학습이 끝나고 밤참을 먹을 때면 우리는 소꿉시절의 동무가 된듯싶었다. 그가 목이 메여서 꺽꺽거리는 모양이 하두나 재미가 있어 나는 입을 싸쥐였고 그도 나의 코등에 묻은 재를 보고 우습다고 킬킬거렸다. 그럴 때면 할머니도 한옆에서 대견스레 웃고있었다.

 

4

 

세월은 빨리도 흘러 벌써 여름이 짙어가고있었다. 심록색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다정한 련인들처럼 부드럽게 속살거리고있었다. 산머리의 파란 하늘에서는 하얀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돌고 산과 밭은 날따라 푸른살이 오르는것만 같았다.

어느 한가로운 일요일, 나는 만룡이와 함께 들구경을 나갔다. 나는 오솔길옆에서 한포기를 뿌리채 뽑아쥐고 한창 들여다보다가 던져버렸다. 만룡이는 내가 던진 풀포기를 주어다 뿌리를 털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질경이라고 하는데 씨는 약재로 쓰고 잎은 먹기도 합니다.

그런가요?

이 타원형의 길죽한 잎사귀와 삐여져나온 꽃대에 맺힌 하얀꽃을 보십시오. 이삭모양으로 피여난것이 얼마나 묘합니까? 질경이는 함박꽃처럼 그렇게 곱지도 않고 국화처럼 오래오래 피지도 못합니다. 그저 이렇게 수수히 누가 보든말든간에 두메산촌 오솔길가에 소리없이 피여났다 소리없이 사라지지요. 나같은 시골사람처럼말입니다. 허허허…

만룡인 참 멋지게 말하는군요.

나는 환성을 올리며 손벽까지 짱짱 쳤다.

만룡이는 쑥스레 머리를 돌리더니 분비나무숲속으로 달려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서 우리는 숲을 나섰다. , 나는 경탄해마지 않았다. 앞에 파란 풀밭이 깔린 평지가 펼쳐져있었던것이다. 해볕은 풀밭에 무더기로 쏟아져내려 신비로운 빛을 반사해주고있었다. 나는 그처럼 깨끗한 풀밭에서 걸음을 옮겨놓기가 저어되였다. 두부모를 떨어뜨려도 깨여지지 않을것 같은 파란 잔디가 가쯘히 한벌 깔린 풀밭이였다. 나는 시골처녀가 궁전의 주단을 밟듯이 조심스레 풀밭을 밟으면서 사뿐사뿐 걸었다.

, 날씨가 몹시 찌물쿠는군. 나는 저아래 목장엘 가보겠습니다.

나의 행동에 시답지 않은 눈길을 팔고있던 만룡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가 가건말건 들꽃을 꺾으면서 앞만 향해 걸어갔다. 얼마 안가서 언덕아래서 조잘거리며 흐르는 개울물이 나타났다. 나는 개울물에 발을 잠그고 앉아 싱그러운 풀냄새를 한껏 마셨다. 흐뭇이 취해왔다. 나는 어쩐지 혼자 있는것이 고독스럽기만 했다. 만룡이가 가버린것이 괘씸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가 신변에 있다면 자연의 야생미앞에 취할것만 같았다. (오솔길가에 소문없이 피였다 사라지는 질경이꽃, 그것이 자기같다 했지. 시골총각같으니, 못난이…) 거울같은 개울물에 둥글넙적한 만룡이의 얼굴이 비끼는것 같아 보인다.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시물시물 웃는다. 갑자기 정갱이에 무엇이 걸리자 나는 인차 그것을 손으로 쥐여보았다. 어디선가 떠내려온 풀포기였다. 나는 제멋에 웃고는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개울물을 따라 아래로 달렸다. 계곡을 줄달음치는 개울물은 붉고 노랗고 푸른 각가지 색으로 조화부리며 솰솰 흘러가고있었다. 나는 꽃묶음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면서 개울을 따라 자꾸자꾸 내려갔다. 나는 꽃묶음에서 꽃을 한송이 한송이 뽑아선 내물에 띄워보냈다. 동동 떠내려가는 꽃을 쫓아가던 나는 갑자기 첨벙청벙 들려오는 물장구치는 소리에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순간 나는 그만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눈을 감고말았다. 사나이가 미역을 감고있었는데 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이 해빛에 번들거리고있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손가락 쯤새로 사나이의 뒤모습을 훔쳐보았다. 함치르르 윤기도는 곱슬머리, 그것은 만룡이였다. 일순, 나의 피가 몽땅 얼굴에 모인것만 같았다. 그런것도 모르고 만룡이는 씩씩거리면서 물을 떠서는 몸에 끼얹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의 정갱이에는 내가 띄워보낸 꽃가지들이 무더기로 걸려있었다. 나는 몸을 돌렸다. 헌데 끌밋한 체신, 윤기 번지르르한 피부를 만룡이 몰래 훔쳐보았다는것을 느꼈을 나는 이상스럽게도 이름할수 없는 모진 수모를 당한것만 같았다. 만룡이가 나에게 어떤 모욕이라도 준듯이 통분했고 통분할수록 만룡이가 얄미웠으며 얄미울수록 그의 건강한 체구가 눈앞에 다시 떠올라 종당엔 두눈에 뜨거운것이 고였다. 나는 달아오른 얼굴을 싸쥐고 냅다뛰였다.

나는 달리다가 그만 풀에 걸려 꼬꾸라졌다. 폭신한 풀이 담요처럼 나를 포옹해주었다. 나는 얼굴을 풀속에 파묻고 흐느꼈다. 나는 갑자기 어떤 갈망을 느꼈으며 따라서 뭔가 그리워졌다. 부지중 자신의 가슴속에 싹트는 알지 못할 무엇이 생겨남을 느꼈으며 그것으로 하여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이성을 그렸던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그리는 총각은 만룡이가 아니였다. 나는 나와 학력이 비슷한 총각을 못내 그렸던것이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나이도 이만큼 먹었으니 인젠 부모님 신변에 가고싶다는 사연을 만장같이 썼다.

편지피봉을 봉하고있는데 만룡이가 털썩털썩 마당에 들어섰다. 그는 저고리에 무엇인가를 가득 싸안고 집안에 들어섰다. 나는 금방전에 그의 알몸뚱이를 본것으로 하여 가슴이 실없이 두근거렸다. 헌데 그런것을 모르는 만룡이는 외려 멀쑥한 얼굴에 천진한 웃음을 띠우고있었는데 그것이 나를 시름놓게 했다. 만룡이는 저고리에 싼것을 책상우에 와그르르 쏟아놓았다. 그것은 향긋한 냄새를 풍겨주는 빨간 열매였다.

산딸깁니다. 흑석의 특산인 산딸깁니다. 달콤하고 시원하기로 유명하지요. 자 어서 자셔보십시오.

만룡인 언제 이런 익살을 배웠나요?

나는 웃으며 산딸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당금 사르르 녹는것 같다. 익을대로 익은 산딸기는 향기롭고 달았으며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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