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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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허공장장 일화(김철호)
2009년 06월 03일 14시 02분  조회:1481  추천:19  작성자: 김철호

단편소설

허공장장 일화



꽃분이네 창가에서 또다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동네사람들은 귀를 강구면서 경탄해하는것이였다. 금방 꾀꼬리표 라지오록음기가 고장난바람에 그러지 않아도 말썽이던 꽃분이네 창가엔 요사이 부부간의 말다툼이 노래소리 대신 흘러나와 듣그럽게 동네사람들의 귀를 자극주었던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투막질소리 대신 또다시 아름다운 선률이 흘러나오는것이 아닌가?! 아마 상식이 없은탓에 조절할줄 몰라 록음기가 고장난줄로만 모양이였겠다. 마당에서 서성거리면서 이웃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입과 눈을 찡긋거렸다.

이때 꽃분이 어머니가 쪽걸상을 들고나오더니 마당 한쪽에 앉으면서 언제나 손에 놓을새 없는 뜨개질감을 잡는것이였다. 얼굴에 홍조가 발가우리하게 어린 꽃분이 어머니는 오늘 무척 기분이 나는 모양이였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한쪽 꼬리가 처져 심술이 드레드레 매달려있는것 같던 눈섭이 련속 춤을 추어대는가 하면 지금 한창 건드러지게 흘러나오는 남성독창에 맞춰 한쪽 발로 박자를 쿵작쿵작 치고있었다.

아낙네 서넛이 저마다 쪽걸상을 갖춰들고 꽃분이 어머니 옆에 가서 앉았다. 그녀들은 자기네가 갖고간 일감을 다듬질하면서 꽃분이네 창가를 힐끔힐끔 건너다보며 그속에서 흘러나오는 (아마 미남자일) 목소리 좋은 독창가수의 노래소리를 들으면서 좋아들했다.

꾀꼬리가 병난줄 알았는데

옆에서 누군가 이렇게 묻자 꽃분이 어머닌 이때를 기다렸다는듯이 입이 함박만해지면서 웃었다. 그통에 어금이에 박아넣은 금이가 석약볕에 번쩍 하고 빛을 반사했다.

나도 영 숨이 넘어간줄 알았죠뭐.

그래 아무 일도 없는걸 가지고 원앙이 다툰건 아닌가요?

이쪽에 앉은 아낙네가 슬쩍 구루를 쳐보는것이였다.

고장 안나다니요. 한심하게 마사졌댔죠뭐.

꽃분이 어머닌 이쪽저쪽을 번갈아보며 좋아서 웃었다.

금방 이사온 허공장장님 모르나요. 거 우리 꽃분이와 한반 다니는 허일 아버질말이예요.

금방 이사온 허공장장님을 모를수 있겠는가. 아낙네들은 저마다 허공장장네 집쪽을 피끗 바라보았다. 얼마전 새로 이사온 허공장장님이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이라는것을 누가 말치 않아도 다 아는 이녀들이였다.

글쎄 그분은 정말 귀신같아요. 눈에 현미경을 걸었는지 손에 자석을 달았는지 그저 척척척 하더니, 호호호난 귀신께 홀리나 했죠뭐.

꽃분이 어머닌 그저 신이 나서 련속 웃기만 했다.

그런데 꽃분이 어머닌 어느새 그런 뒤문을 다 보아뒀나. 정말팔방미인이군요. 히히

그거야 내 낮바닥이 소볼기짝처럼 두터우니 그런거죠. 난 애아버지와 한바탕 다툰 끝에 숙제공부하러 허일네 집에 가있는 딸애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피난가려고 그 집에 갔더랬지 않았겠나요. 그때 피뜩 이런 생각을 했던거래요. 무선전공장의 공장장님이니까 록음기같은건 애들 놀이감처럼 여길거라구말이예요. 때마침 일요일이라 공장장님이 집에 계셔서 난 마구잡이로 제기했죠. 처음엔 두손 내흔들면서 거절하더니 허일이랑 꽃분이랑 마구 매달리며 흥흥거리니 하는수 없는지 말씀이 없는거 아니겠어요. 난 불이 펄쩍나게 뛰여와서 록음기를 들구갔죠. 그분은 록음기 뒤덮개를 열더니 이리저리 훑어보겠죠. 그러던것이 뭐 관인지 돈인지 하는 귀에 생소한 부속품이름을 말씀하시면서 영 못쓰게 된것 같다지 않겠어요.

저런 큰일났군요.

아낙네들은 혀을 끌끌 찼다.

꽃분이 어머니도 그때의 락태상이 되였던 꼬락서니를 보여줄양으로 잔뜩 우거지상을 해대면서 한숨까지 내쉬였다. 그러던것이 또다시 쾌활한 안청으로 여럿을 둘러보며 웃었다.

그분은 집에 부속품을 예비로 둔것이 없으니 지금 당장 수리할수 없겠은즉 저녁에 와보라는게 아니겠어요. 저녁에 가보니 글쎄 우리꾀꼬리가 목청 하나 변치 않은대로 청맑게 노래하지 않겠나요. 호호호

꽃분이 어머니는 찔끔 솟구치는 눈물을 손등으로 눌러버리면서 기쁨에 겨워 깔깔 웃어댔다.

, 대단하구만요.

아무렴, 무선전공장의 공장장이니까 범상해선 안되지.

아낙네들은 허공장장님을 구구히 춰올리는데 야단스레 우짖는 한떼의 새무리 같았다.

아니, 저기 그분이 와요.

누군가 이렇게 말해서 아낙네들은 머리를 솟구치며 골목 저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골목길로 허공장장님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오는데 락조가 토해놓은 혈색에 물올라서인지 온후하고 인품좋게 생긴 둥실한 얼굴에 점잖으면서도 도량과 예지와 높은 기품이 풍기는 모습이였다.

허공장장님은 꽃분이네 마당앞을 지나가면서 아름다운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것 같더니 보기만 해도 듬직하고 신뢰감을 주는 두툼한 입술을 빙긋 열며 꽃분이 어머니를 향해 한마디 묻는것이였다.

그래 별다른 문제는 없습데까? 솜씨가 서툴어서

아유, 어려운 말씀을 다금방 사왔을 때와 꼭 같습데다요.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좋아요?

은혜라니요. 이웃끼리허허 참, 또 다른 문제가 보이면 인츰 알리시오.

정말 감사해요.

꽃분이 어머니는 벌써 자기집마당까지 허공장장님의 뒤에 대고 연신 허리 굽혀 절을 올리면서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송구스레 앉아있던 아낙네들도 꽃분이 어머니의 정서에 감염되여 경모에 눈길로 허공장장님의 름름한 모습을 숭엄히 바라보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은 집에 들어서자 열이 오른 얼굴을 식히려고 선풍기의 전류꼭지를 누르고 적삼깃으로 부채질하면서 쏘파에 철썩 들어앉았다.

어이쿠!

뭔가 와싹하는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펄쩍 뛰여일어난 허공장장님은 앉았던 자리를 돌아다보았다.

이런, 거기에는 그가 제일 즐겨피우는 봉황표 담배 두보루가 놓여있지 않는가. 물론 금방 너무 요란스레 앉는바람에 포장한 종이가 찢기긴 했어도 그속으로 비쳐나온 노오란 권련은 군침이 꿀꺽 솟게 눈뿌리를 뺐다.

(이거 마누라가 헴이 드는 모양이군.)

허공장장님은 슬쩍 담배 한갑을 집어들고 코에다 대고 냄새를 큭큭 맡아보다가 갑을 터치고 한대 집어내여 입에다 꼬나물었다. 노루친 막대도 삼년 우려먹자고 드는 안해에게서 한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적 없는 허공장장님은 오늘 별일이라면서 구수한 담배연기를 힘껏 들이켰다.

저녁상에 마주앉은 허공장장님은 더욱 놀랐다. 반찬거리는 색이 변치 않았지만 전례없이 불로주 한병이 목을 빼들고 밥상우에 덩그렇게 올라앉아 있지 않는가. 허공장장님은 힐끔 안해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의 귀빠진 날이 아닌가고 속으로 슬그머니 계산도 해보았으나 근본상 달수가 맞지를 않는다.

안해는 알았다는듯이 노르끼레한 눈확주위에 잔주름을 앉히면서 의미있게 웃었다.

아까 꽃분이 어머니가 가져왔댔어요.

뭐라구?!

허공장장님은 들었던 술잔을 딱깍 놓으면서 눈을 부릅뜨고 안해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어쩌면 이웃의 례물을 어떻게 받는단말이요. 더구나 꽃분인 허일과 한반 다니는데당장 돌려보내오.

쯧쯧, 눈알이 튕겨나오겠어요. 담배도 갑을 터쳤지 술도 마개를 뽑았지. 인젠 어떻게 되돌려요. 수고하셨다고 가져온건데 받는것도 성의지요.

, 수고했다구. , 수곤 무슨놈의 오그라질 수고야!

허공장장님은 기분이 상해 아무 내막도 모르고 받아먹기만 하려는 안해를 외면하고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이라는 체면이 그로 하여금 꽃분이 어머니가 록음기를 들고오는것을 막지 못하게 했던것이다. 수년간 행정사업을 해온 그가 라지오를 알면 얼마나 알고 더구나 록음기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황차 가마공장의 부공장장으로부터 무선전공장의 부공장장으로 금방 전근되온 그가말이다.

덮개를 뜯고 보았댔자 누먼 갈밭에 든것 같았다. 허공장장님은 장님이 개천 나무리듯 여기 저기서 얻어들은 라지오부속품들의 이름을 주어대면서 돈벌이에 눈이 빨개 질량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한바탕 기업관리형편을 비판한 다음 눈섭새에 내천자를 누비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거 전자관이 마구 타버린것이 틀림없습니다. 영 벙어리가 된걸 보면. 계기도 없고 부속품도 예비로 둔것이 없으니 저녁에 와보십시오.

꽃분이 어머니가 가슴이 한줌 되여서 돌아간후 허공장장님은 인차 공장 독신숙소에 전화쳐서 허주활이를 찾았다. 그가 금방 전근되여왔을 주활이는 같은 허씨라고 우정 공장장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인사하면서 금후 많이 가르쳐 달라고 하던 낯이 운동장같은 젊은이였다. 공장장님이 장기를 논다는 소문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엊저녁에는 장기판까지 갖춰가지고 공장장님이 퇴근하기를 접수실에서 꼬박 한시간이나 기다렸다면서 찰거마리처럼 달라붙는통에 저녁을 굶어가면서 아홉시까지 백병전을 벌린 일까지 있었다.

여보게 주활이, 엊저녁 결판을 마저 깨지 않으려나?  , 그러겠다고. 좋아, 그럼 우리 집에 오라구. 마침 일요일이라 할일도 별로 없고에끼, 어렵긴 뭐가 어렵다고 우는 소리야. 지지리 못나긴그럼 인츰 오게나. 저 그리고 올 때말이야, 만능계기를 갖구 오라구. 글쎄 오면 알거니까.

허공장장은 그제야 후유ㅡ 한숨이 새나왔다.

허주활은 1분도 안되여 고장난 곳을 찾아냈다. 나발에 붙은 선에 연물이 적게 발리워서 떨어져있었던것이다. 연물 한방울을 떨구었더니 선은 나발에 붙어버렸다. 왕ㅡ 하고 나발에서 음향이 터져나왔다.

허공장장님은 흥이 난김에 점심을 굶으면서 저녁 4시까지 장기를 들었다.

수고는 허주활이 하고 수고값은 자기가 받아먹자니 어쩐지 가슴이 트릿해났다. 허나 무슨 별수가 있는가 허공장장님은 불로주를 부어놓은 잔을 건뜩 들어 굽을 냈다.

안해는 해쭉 웃으면서 열무김치 한쪼박을 날렵하게 짚어서 주인의 입에 제꺽 넣어주었다.

어느날 허공장장님의 안해는 요먼저 꽃분이 어머니가 가져왔던 불로주를 마지막 반주술로 잔에 꼴똑 부어주면서 좁쌀같은 눈을 쪼프리더니 전에없던 웃음을 웃었다.

여보, 은행집에서 록음기가 고장났다면서 당신이 좀 수고해주길 바라더구만요.

뭐라구?

허공장장님의 눈확은 한뽐이나 째져서 보기 망측해졌다. 내가 그걸 수리해? 그런 재간이 있으면 여북 좋게. 저건 여태껏 같이 살았다는게 남편의 재간통이 어디에 붙었는지도 모르고있으니 헛데리고 살았지, 에익.

여보, 당신은 여태 아무것도 모르고 납드오. 날 그래 수리쟁이로 만들어놓을 작정이오, ?

여봐요. 누가 당신더러 수리쟁이가 되라고 했나요. 저절로 실컷 소문놓구는 흥!

이튿날 퇴근해보니 은행집 록음기가 와있었다. 허공장장님은 천둥같은 화가 치밀었으나 울며 겨자먹기였다. 어쩔 방법이 없었다.

요먼저처럼 허주활이를 불러왔다. 물론 결판을 못낸 장기의 승부를 가르는것이 전제여고 왔던김에 고장난 록음기에 손을 대보라는것이 후제였다. 모든것이 원만히 되여 은행집에서는 이튿날 술담배를 가져왔다. 물론 안해가 허공장장님 몰래 슬그머니 받아두었다.

안해는 만면에 꽃이 펴서 예뻐보였으나 허공장장님은 하루밤새에 낯에 잠이 돋더니 영감티가 났다.

여보, 다신 이런짓을 말기요. 내가 무선전공장의 공장장이면 뭐 록음기박사인줄 아오. 난 금방 전근됐고 또 행정을 책임진 부공장장이란 말이요.

아니, 그럼 여태껏 어떻게 수리했게요? 아야, 그럼

안해는 불현듯 정신이 든듯 외마디소리를 쳤다.

다 그 장기친구가

아니, 그럼 이걸 어쩌나요?

남의 손을 빈것도 모르고 남편이 언제 그런 재간을 배워뒀을가 하는 희한한 생각에 동네에 다니며 까치배때기같은 소릴 잔뜩 안해는 락태상이 되여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머리만 길었지 소견은 짧은지라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가 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겠으니 일이 분망하다는 핑게로 딱 잡아떼오.

차츰 사람들은 허공장장앞에서 공손히 인사하게 되였다. 물론 허공장장은 아주 겸손하게 처신할줄 알았다. 그런데 요즈음 건너편에까지 소문이 가서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에서는 고문으로 그를 초빙하련다는 초청장까지 보내왔다. 물론 허공장장님은 그 일을 절대 접수할수가 없었다. 류비는 세번만에 제갈량을 초가집에서 끌어냈다지만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의 류비제씨들은 여섯번이나 벽돌기와집에 찾아왔으나 초빙해가기는커녕 지금까지도 그토록 현능한 허공장장님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있었다. 안해가 전문적으로 마당에 나서서 허공장장님이 집에 계시지 않는다고 방패를 쳐놓았던것이다. 허공장장님은 무더운 여름밤에도 집에 꾹 박혀있어야 했다.

엊저녁이였다. 아홉시가 넘었는지라 모든 방어태세를 다 낮추고 시름을 활 놓은 허공장장님은 한여름밤의 더위를 막으려고 바깥에 나와서 파초부채질을 슬슬 하면서 바람을 쏘였다.

허공장장님 아니신가요?

은방울 굴리는듯한 녀인의 고운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파마머리를 곱살하게 내리드리운 어여쁜 처녀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순간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섬찍해났다.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가 피뜩 생각났던것이다. 끝끝내 당하고마는 체포, 허공장장님은 머리가 오싹해났다. 국에 덴것이 랭수를 보아도 땀이 돋는가보다. 허공장장님은 급기야 아니라고 도리머리를 치고는 자기집쪽을 가리켰다.

저 집에 가서 찾아보오.

처녀는 집쪽으로 들어갔고 허공장장님은 집을 멀리 피해 으슥한 곳에 숨었서 처녀가 나오기를 꼬박 한시간이나 기다렸다. 후에야 그녀가 허일이네 반주임선생님이였다는것과 그날 여러 집을 방문하다보니 늦게 찾아오게 되였다는 사실을 알고 허파터지게 한바탕 웃긴 했으나 속은 어쩐지 열탕 마신것처럼 썼다.

그럭저럭 뻗치다나니까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에서도 인젠 기권해버리고말았는지 다시 찾지 않아서 허공장장님은 출입을 시름놓고 할수 있었다.

오늘 퇴근할 때 허공장장님은 자전거페달을 스쩍스쩍 밟으면서(허공장장님은 출퇴근을 검박하게 자전거로 한다.) 자기를 그렇게  혼내놓던 지식청년무선전수리부앞을 지나오면서 높직이 걸려있는 패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패쪽이 거룩해보였다. 그가 금방 수리부 문앞을 지나쳤는데 눅군가 허공장장님!하고 소리쳐불렀다. 피뜩 돌아다보니 홀태바지를 입은 청년남녀가 수리부앞에서 서성거리고있었다.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후두두해났다. 허공장장님은 모르겠다 하고 페달을 힘껏 디디면서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골목길로 해서 자전거를 냅다 몰았다.

허공장장님!

뒤에서는 계속하여 그를 불렀다. 허공장장님은 그럴수록 기세를 올렸다. 목구멍에서 가죽타는 냄새가 나고 바지가랭이에서는 비파소리가 났다.

아이고허공장장님,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그렇게 속도를 냅니까? 기력이 참 좋으십니다그려.

추격자 역시 헐한 사람이 아니여서 끝끝내 따라잡았던것이다. 허공장장님은 놀라면서 돌아다보니 이웃에 사는 1 어문교원 오선생님이였다. 그제야 시름을 놓은 허공장장님은 속도를 늦추었다. 아래다리가 후둘후둘해났다. 등골에서는 도랑물이 좔좔 흐르는것 같았다. 이런 꼴사나운 일이라구야. 허공장장님은 그만 사맥이 떨어지는것 같았다. 그는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면서도 빙그레 웃음을 날려보냈다.

내 좀 급한 일이 있어서

오선생은 허공장장님의 소개로 무선전공장에서 일본의 부속품을 가져다 생산하는 천연색텔레비죤을 사게 되였는데 지금 안테나선을 사가지고 오는 길이라면서 구구히 말하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 저녁에 꼭 건너오십시오. 공장장님의 덕분에 시제품을 다 사게 되였는데 와서 맥주도 한잔 할겸 집구경도 할겸 꼭 나오십시오.

시간이 있는데로

허공장장님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저녁에 오선생의 안해가 세번이나 내보내서 허공장장님을 모셔오게 했다.

푸짐히 차려놓은 주안상앞에 다정한 이웃들이 모여앉아 텔레비죤방송시간을 기다리면서 맥주잔을 기울였다.

신호가 나왔다. 칠색단을 드리운것 같은 신호는 눈이 시게 현란했다. 집안은 삽시에 환락으로 끓었다. 절목소개가 끝나고 소식보도가 지나자 이어서 텔레비죤소품이 시작되였다. 손님과 주인은 허물없이 껄껄, 킬킬 웃으면서 즐거운 저녁 한때를 보내고있었다.

효과가 참 좋습니다. 허공장장님, 금년에 귀공장에서 이런 제품을 많이 생산하게 됩니까? 우리도 기회를 보아 하나 들어와야겠는데허허허

건너집 장씨가 엉뎅이를 들춤질하면서 허공장장님에게 다가앉았다.

그럼요. 이번에 광주에 가서 일본사람들과 교섭했는데 수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참 묘하단말입니다. 이것이 좋거든요.

허공장장님은 이마를 툭툭 쳤다.

결정권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나라에서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내항(전문일군)이 아니고선말입니다.

아무렴요. 허공장장님같은분이 실무를 책임졌은즉 실수가 있을리 있겠습니까?

그렇고말고요!

옆에서 추슬러주자 한잔 들어간 허공장장님은 그만 어깨가 으쓱해났다.

아니, 아니, 나야 언제나 아무것도 아는게 없지요. 저는 행

허공장장은 짐짓 기침질을 하면서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리곤 맥주잔을 조심히 상우에 놓으면서 여럿을 둘러보는데 입가엔 늠실늠실 웃음이 파도치고있었다.

오선생은 맥주잔을 도로 허공장장님의 손에 쥐여주면서 히쭉 웃는데 무척 감동된 모양이였다.

허허오선생, 정말 이 손끝 세개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답니다. 책임이 크지요.

허공장장님은 만년필을 쥐였을 때의 자세로 세손가락을 굽혀보였다.

그렇지요. 지도간부들이란 석자이름으로 큰일을 해내니깐요.

하하하

흐흐흐

집안은 웃음으로 끓었다.

바로 이때 오색이 령롱하던 화면이 문뜩 새까매졌다. 웃음꽃 피였던 얼굴들은 삽시에 흐려져버렸다. 여럿은 긴장한 기색으로 허공장장님의 얼굴을 한결같이 쳐다보았다. 마치 얼굴에서 신비한 힘이 비쳐나와 새까만 화면에 조화로운 색조를 부어넣을수 있기나 한듯이 오로지 허공장장님의 얼굴만 얼이 빠져 쳐다보는것이였다.

허공장장님은 가슴이 섬찍했다. 얼굴에 벼룩이 매달린듯 근질근질해났고 한쪽 입귀는 별스럽게 푸들거렸다. 그는 조심스레 전류꼭지를 몇번 눌러보았다. 아무 효험도 없었다.

누군가 뒤덮개를 열어보자고 했다. 그러나 허공장장님은 손을 내저었다.

그건 절대 안됩니다. 폭발합니다!

그바람에 오선생의 안해는 쇠꼬챙이를 맞비비는듯한 새된 소리를 질렀고 이웃 손님들은 능구렁이라도 밟은듯이 화닥닥 자리에서 뛰쳐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런게 아니라 잘못 건드리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제야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허공장장님은 손수건으로 이마에 돋은 땀을 문지르곤 눈살을 몇번 쪼프렸다폈다하면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튼 난처한 자리는 피하고 봐야 했다.

이건 꼭 만능계기가 있어야 검사할수 있습니다. 아마 큰 고장은 아닐겁니다. 새거니깐요. 제가 곧 공장에 갔다오겠으니 오기전에 절대 손대지 마십시오.

점잖은 사람이 떠나겠다는데도 누구 하나 일어나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언녕 그러길 바랐다는 눈치들이였다.

갑자기 바깥에 나섰기때문이여서인지 눈앞이 캄캄해져서 허공장장님은 벽모서리를 더듬어짚고 몇초란 휴식해야 했다. 당장 처리해야 일로 걱정이 구름처럼 일어섰다. 밤중에 허주활을 찾아가자니 지난 두번의 일까지 한데 겹쳐지여 자신의 모든것이 드러날것 같아 걱정이요, 아니 가자니 안타까이 기다리는 오선생네 일가에 미안하기 그지없었어 걱정이였다. 이럴 다른 급한 사정이 생겨서 난처한 장면을 면하고 봤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허공장장님은 오다나니 저도 모르게 공동변소 있는데까지 왔다. 변소안에서 기침질하는 소릴 들으니 녀자변소켠이라 허공장장님은 허둥지둥 남자변소쪽으로 몸을 피했다.

아이쿠!

허공장장님은 허공을 딛는것 같은 감촉에 외마디소리를 지르고말았다. 그러나 어쩔새 없었다. 잇달아 콩크리크바닥에 하고 턱이 맞쪼이는가 싶더니 뒤골이 하고 부딪쳤다. 숨이 막히고 눈앞에서 불꽃이 팔팔 일어났다. 풀썩 하더니 재가루와 함께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을 잘못 옮겨 그만 재구뎅이에 빠지고말았던것이다. 위생국에 몇번이나 제기하였으나 고쳐주지 않아 지금까지 그럭저럭 쓰고있는 동네 공용재구뎅이였다. 허공장장님은 끙끙 앓음소리를 했다. 그런데 도무지 허리를 펼수가 없었다. 땅에 닿은 다리가 찌륵찌륵 아파나는게 깡깡 얼어붙은 커다란 성에장에라도 집히운듯했다. 허공장장님은 콩크리트로 구뎅이벽을 간신히 짚고 서서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는 입술을 사려물고 참기 어려운 진통을 이겨가면서 구뎅이에서 나오려고 웃모서리를 향해 뻗쳤다. 순간 허공장장님은 몸이 갑자기 허공에 둥둥 뜨는것 같았다. 어쩐지 몹시 홀가분해지는것 같았다. 그럴가? 그렇지, 이걸 핑게로 장소에 안가도 되니깐. 흐흐흐나야 이제 며칠 앓게 되겠는데 청하러 오지야 않겠지. 아이구 고맙기루, 하느님이 도와준거로구나. 정말, 잘된 일이야, 잘된 일이구말구!

허공장장님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였다.

상처는 크지 않았다. 놀라서 신경이 긴장해진외에 몇곳이 경한 타박상을 받았고 왼쪽 종이뼈가 실금이 갔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며칠 치료한후 집에 나가서 몸조리를 잘하기만 하면 아무런 후유증도 없을거라고 의사는 몇번이고 안심시켜주었다.

이웃에서 련달아 병문안을 왔다. 그들은 저마다 과일즙이며 통졸임, 사탕, 과자를 사오느라고 적지 않은 돈을 팔게 되였다. 그러나 유능한 지도간부가 불행을 당했은즉 몇푼 돈을 아낄 이웃은 아닌것이였다.

그날 저녁 한자리에 앉았던 오선생과 그의 , 그리고 이웃인 장씨도 왔다.

우리때문에 허공장장님이 이렇게 불행을 당하셨습니다. 전 괴로와 죽을 지경입니다.

오선생 내외간은 눈물이 글썽하여 사과했다.

허공장장님은 온후하고 인품좋게 생긴 둥실한 얼굴에 인자한 웃음을 담고 가장 궁굼한 문제를 물었다.

그래 텔레비죤은 어떻게 됐습니까?

오선생은 그만 송구스러워서 무릎만 두손으로 싹싹 문지르면서 처를 바라볼뿐이였다. 그의 역시 아궁이앞에 앉았을 때처럼 빨개진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숨이 한줌만해 앉아있었다.

오선생, 근심마십시오. 크게 고장났다면 되물릴수도 있고 아니면 바꿔드릴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오선생은 시무룩히 웃었다.

허공장장은 영문을 알수 없어 여럿을 돌아보았다.

제가 어찌도 재간이 신통한지 글쌔, 이어놓은 전기선에 전기가 통하지 않았던겁니다. 개천에 버릴 위인인겁죠. 히히

허공장장님은 무슨 말인지 리해가 서지 않아서 띠룩띠룩 눈알만 굴렸다.

남들이 못쓴다고 줴뿌린걸 어느땐가 제가 주어들였댔어요. 그것을 저이가후ㅡ돈을 좀 아끼자 하다가 곤욕을

말에 저마다 제마끔의 웃음을 킬킬, 껄껄 웃었다.

허공장장님은 따라 웃긴 했으나 허무해지는 심정을 어쩔수 없었다.

그들이 돌아간후 허공장장 내외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여보, 우리 또 이사해야겠소.

왜요? 여북 좋은 이웃인가요. 옛말에도 세잎 주고 집사고 천냥 주고 이웃 산다 했는데 이좋은 이웃 두고 이사가긴 어데 간다고 그래요.

이웃이야 좋구말구.

그런데 왜요?

글쎄 살아가자면

 

1986천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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