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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두만강을 따라(11)ㅡ두만강가 팔련성 발해옛터
2005년 06월 10일 00시 00분  조회:4405  추천:81  작성자: 리함
천리두만강을 따라 (11)

두만강가 팔련성 발해옛터

리 함

천리 두만강은 량수진을 포함한 도문시 구간을 지나고 훈춘시 구간의 밀강, 영안 등지를 거치면서 점차 강폭이 커지고 물결이 잔잔하다. 산간지대를 흐르던 두만강물은 드디여 80리라 일컿는 훈춘벌을 적시게 되는데 여기 훈춘벌 두만강가에는 옛날 고구려의 책성부와 발해의 동경룡원부가 자리 잡아 길손들의 발목을 잡는다.
발해의 동경룡원부(东京龙原府)라 불리운 팔련성옛터는 훈춘하와 두만강 삼각충적평원으로 이루어진 훈춘벌의 서북부, 훈춘시 국영량종농장 남쪽의 밭가운데 자리잡았다. 두만강이 서쪽 약 2.5킬로미터 되는 곳에서 북남방향으로 흐르고 북쪽 1킬로미터거리에 도훈(图珲)도로가 있다지만 길가에 아무런 옛터표시가 없은데서 길안내자가 없으면 찾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팔련성발해옛터는 한때 발해국의 서울로서 발견된 지가 아주 오랜데 지난세기 20년대에 벌써 위성하의 《훈춘고성고》를 남기고 있다. 해방 후 길림성과 연변주의 문물공작자들이 선후 수차나 팔련성옛터에 대해 조사와 연구 사업을 벌리여 팔련성의 형태와 규모, 역사적지위 등을 기본적으로 밝히였다. 문물공작자들의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팔련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졌는데 궁성은 외성의 중앙북부에 일어서고 황성은 내성안에 일어섰다. 내성과 외성은 흙구조이고 남북으로 펼쳐지고 둘레의 길이가 2894메터이고 성밖에 성을 둘러싼 호성하(护城河)와 네면 성벽에 각기 드나드는 문 하나씩 있었다. 팔련성의 건축형태로 보아 화룡시 서고성의 건축형태와 비슷한데 당나라 서울 장안성의 모습이 뚜렷이 엿보인다고 한다.
하다면 팔련성발해옛터는 어느 시기의 산물일가, 학술계에서는 팔련성의 수건년대를 발해 제3대왕—문왕 대흠무의 통치시기로 잡는다. 적절히 말하면 기원 784년 대흠무가 동경룡원부로 불리운 팔련성으로 천도하기 전이다.
대흠무는 발해국의 제3대왕으로 알려진다. 이 제3대왕은 기원 737년부터 기원 793년까지 57년간 재위하는 기간 발해의 내정, 외교 등 여러 면에 대해 중대한 개혁을 실시하여 《해동성국》의 기틀을 잡아놓았다. 그런 대흠무는 나라건설의 수요로부터 대흥 48년, 즉 기원 784년에 도성을 상경으로부터 동경에 옮기고 대흥 57년, 즉 기원 793년에 천명을 다할 때까지 9년 남짓한 기간 동경룡원부— 팔련성을 발해왕국의 서울로 삼았다.
대흠무가 팔련성으로 도읍을 옮긴 9년 기간 오늘의 훈춘일대는 당년 발해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중심지였다. 기원 794년, 다시 말하면 성왕 중흥원년에 성왕 대화여는 도읍을 다시 오늘의 녕안시 발해로 옮겨갔지만 팔련성은 의연히 발해 동경룡원부의 소재지었고 발해가 일본으로 통하는 《일본도(日本道)》의 중요한 교통중추였다.
팔련성발해옛터는 말그대로 한때 발해의 서울로 이름난 역사의 고장이었다. 상경 룡천부로 천도한 뒤에도 팔련성은 4개 주, 18개 현을 관할하는 동경룡원부의 소재지로서 번영의 일로를 걸어갔다. 그러나 1200여년 오랜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이곳 발해옛터는 서서이 력사무대에서 사라지면서 옛날의 참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있다면 팔련성 외성의 동쪽성벽 남구간과 남쪽성벽 동구간 그리고 북쪽성벽이 1미터쯤의 높이와 4~5미터의 너비로 남아있을 뿐이다. 서쪽성벽은 언녕 수레길, 자동차길로, 북쪽성벽은 언녕 수로의 뚝으로 변했고 나머지 성벽들은 모두가 평지로 탈바꿈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팔련성옛터에서 확연히 보이는 장방형모양의 옛터 성벽자리라 하겠다. 화룡의 발해—서고성이나 금나라 동고성에 비해 높이와 너비에서 뚜렷하지는 못해도 옛터모양은 그런대로 시야에 안겨든다. 가을의 팔련성옛터안은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이 일매지게 펼펴지는데 양종농장 농장원들이 가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팔련성주변들에는 발해시기의 유적으로 이름높은 평지성과 산성들이 적지 않다. 그중 찍고 넘어갈 수 있는 평지성과 산성들로는 온특혁부성, 석두하자성, 살기성, 소성자고성, 영성자고성, 밀강고성, 경영고성, 성장랍자산성, 농평산성 등이다.
온특혁부성(温特赫部城)은 팔련성 남쪽 5킬로미터쯤 되는 삼가자향 고성촌에 자리잡고있다. 이 고장엔 온특혁부성과 비우성이 무너져내린 성벽이 그대로 펼쳐져 보다 인상적이다. 온특혁부성이란 이름은 금나라때에 붙여진 이름이고 고구려때는 이 성을 책성이라고 하였단다. 온특혁부성을 두고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고구려시기, 고구려 제6대왕 태조대왕은 멀리 압록강가의 국내성에서 동쪽 두만강가의 책성에 와서 흰사슴을 잡아 큰 잔치를 베풀며 동부변강을 지켜선 책성사람들을 치하하였다고 한다. 그때가 약 2000년 전으로 헤아려진다. 옛날로 말하면 역사적으로 내려온 성들은 그 이전시기의 그대로 수건, 계승하여 사용하기 마련이였다.
온특혁부성이 발해 평원성가운데서 규모가 비교적 크고 발해시기 동경룡원부관할하의 한개 주소재지로 알려진다면 살기성은 산성으로서 유명하다.
살기성은 발해시기의 중진(重镇)으로서 훈춘시 양포향 양목림자촌 동남 1.5킬로미터 떨어진 산우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성도 발해시기 동경룡원부 관할하의 한개 주 산성으로 알려지는데 돌로 축조된 산성은 험준한 산세를 따라 약 7킬로미터나 뻗었다. 팔련성과의 거리도 팔련성 동남 약 20킬로미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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