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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줘서 고마워
2014년 04월 16일 15시 52분  조회:1579  추천:0  작성자: suseonjae
 
 
함께 해줘서 고마워
  
 
'이제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긴긴 밤들을 뜬 눈으로 새워가며 조금만 있으면 좋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1분 1초가 길고 더디게 지나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절대치로 주어지는 시간이건만,
고통이 동반된 시간은 마치 영원할 것처럼 느껴진다.
지독하게 아팠다. 원인도 모른 채.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길거리에서 주저앉았다가
겨우 집으로 다시 되돌아왔던 그때가 아마 21살 봄이었던 것 같다.
부푼 꿈과 설렘을 안고 대학에 다니던 시절.
예고되지 않는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게 고통은 찾아오더니
그 후 길고 지리한 장마처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난소낭종입니다. 두 군데 난소에 각각 8cm 크기의 종양이 있습니다.”
그토록 몸이 아팠던 원인이 바로 난소에 자라고 있는 종양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진했던 공부를 마치고 싶어
값비싼 레슨비를 치러가며 두 번째 피아노 리사이틀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연주회를 일주일 앞두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도를 더해가는 복통 때문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과도한 긴장감과 신경과민 때문에 일어난 신경성 복통이거나,
심하면 급성맹장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사는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병명을 알려주며 아직 젊고 결혼하지 않았으니
선택에 신중을 기하라고 한다.
두 군데 난소를 다 제거하면, 종양은 사라지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고
호르몬 생성을 하지 못해 급격히 늙어버리게 되고,
종양만 제거하면 재발률이 잦은 병이라 또 언젠가 재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며
그냥 두었을 경우, 계속되는 고통은 물론이고
운이 나쁘면 암으로도 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기에 의사의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여러 난관이 예상되는 꽤 난해한 병이 내 몸 안에 있었던 것이다.
‘아!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난 열심히 살았는데. 남에게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누군가를, 어딘가를 원망해가며 병원벤치에 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울었다.
26살. 아직은 못해본 것이 더 많고, 인생에 대한 기대도 꿈도 너무 많은 나이.
어떠한 실수도 젊음이란 이름으로 용납되는 가장 아름답고 싱그러운 나이에 말이다.

"수술은 안 해! 어떻게든 나을 수 있다니까!"
나는 부모님께 완고하게 고집을 부렸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당신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무슨 신념으로 그런 말을 했었는지 지금도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그냥 수술을 한다면 너무 쉽게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아서였을까.
그 후 길고 긴 고통과의 싸움이었다.
지독한 아픔 속에서 때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짓궂게도 난, 인생에 애착이 많았다.
근사하고 삐까번쩍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보란 듯 행복해지고 싶었다.
제대로 잘 살아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맘껏 받으며,
누리지 못했던 행복, 평안… 그 모든 것들은 내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난소낭종이란 생소한 병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최고 학벌에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언제까지나 날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었고,
대학원 대신이라며 톡톡히 투자해왔던 레슨과 계획했었던 리사이틀 모두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라고 계획했던 꿈들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상황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침착했으며,
반드시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몸과 마음은 바닥이었다.
며칠씩 몸져누울 정도로 아픈 날은 꼼짝도 않고 누워서
창밖의 나뭇잎을 종일 바라보기도 했다.
누워서 보는 나뭇잎은 유난히 싱그럽게 반짝반짝 반사되며
마치 해가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째.깍.째.깍’ 하는 시계소리에 의식과 고통이 더 또렷이 각성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고통을 죽음으로써 끝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창 너머로 두런두런 들려오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어찌나 평화롭고 부럽게만 보이던지….

지속되는 통증은 그걸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겹고 버겁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며 아픔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다는 것,
내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별 욕심 없이 남들 누리는 행복만큼,
꼭 그만큼만 가졌으면 했는데 나에겐 그걸 누릴 자격이 없었을까.
삶이라는 끈을 스르르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왜 아픈 걸까?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을까?
이렇게 아픈데 죽을 땐 얼마나 아플까?
이러다 죽으면 어디로 갈까?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은 어떡하지?
과연 신은 있는 걸까?'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 또한 없었다.
고통이 지나고 나면 그간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더 억척스럽게 살았던 것 같다.
식이요법, 등산, 병과 마음을 다스리는 온갖 책과 정보를 찾아다니며
병에게 무릎 꿇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갔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 고통을 받아들여갔다.
인간은 때론, 그냥 견디는 것 이외에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조금씩 고통을 친구로 맞이하기 시작했을 무렵 명상을 만났다.
삶을 돌아보고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명상을 하면서
인간에게는 각각 다른 모습의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
마음을 다스리는 법과 그에 관한 수많은 비밀,
그리고 예전에 가졌던 꿈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은 내게, 다른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아프기 전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
생명이 있는 하찮아 보이는 모든 생명체가 신비롭고 귀하게 여겨졌다.
고통 뒤에 느껴지는 삶은 예전과는 달랐으며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그 경이를 조금씩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두꺼운 껍질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그 위로 새살이 돋아나듯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덜 아픈 것에 대해, 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하루,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이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작은 일들에 대해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점점 근원적인 행복에 물들어갔다.
그러자 갖은 우여곡절 끝에,
낫기 어렵다던 병도 차츰 차도를 보이면서 점차로 건강해져가고 있었으며
이젠 내게 주어진 생을 만끽할 여유가 생겼다.
비록 불같은 사랑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일도,
멋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도
모두 미완의 꿈으로 남았지만,
지금 더없이 행복하다.

고통은 내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가족보다 더한 정을 나눌 수 있도록
비좁은 울타리를 치워주었으며 예전엔 몰랐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다 넓은 세계와 교감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안내해 주었다.

원망하는 마음을 감사함으로 바꿔놓았고,
결코 알지 못했던 모든 생명에 대한 귀함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고통을 안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과 내 자신까지.
만약 내가 건강하고 살아가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면?
내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겠지.
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자존심 강한 그 성격에,
나에게나 남에게나 빈틈없이 깐깐하게 굴며 세상의 부조리와 타인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때론 인간이 아무리 용을 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으며 어떤 거대한 섭리에 의해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아팠던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기연민에 빠져본다.
여기 저기 흉터뿐인 내 몸. 많이 아파서 지치고 힘겨웠을 내 몸.
수많았던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해준 내 몸. 손가락,
발가락, 어디 한군데도 내놓을 만큼 예쁜 구석은 없지만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고마워.

고통도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함께 해줘서 고마워….
오늘같이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질 땐,
부실투성이인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하늘의 섭리를 느낀다.
모든 생명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이유와
누구보다 이들을 사랑하는 그 어떤 섭리를….
 
 
 
최경아( 명상화가)
1998년 명상입문.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자유인. 자연을 바라보며 그림 그리는 일을 즐겨함.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지 짜증을 많이 내고 학교가기를 싫어했음.
20대 초반 ‘난소낭종’이란 병을 떠안고 세상이 끝인 줄 알고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과감히 피아노 뚜껑을 닫고 건강해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명상을 접하게 됨.
명상이란 세계에 매혹되어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다보니
어느새 나이는 삼십 중반을 훌쩍 넘어버렸음.
지독한 아픔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인생을 더 풍부하게 보게 되어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자 성격이 약간 개조됨.^^
역시 사람은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결국 자기 자신도 사랑하게 됨.
하늘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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