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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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향기와 벽
2019년 07월 12일 19시 08분  조회:26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향기와 벽

박초란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좁은 길을 요리조리 비집더니 어느새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선 네거리 도로변, 처음 와보는 낯선 거리였다. 그럼에도 가게마다의 짙은 냄새가 어우러져 하나의 운명을 지닐 수 밖에 없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매일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북적임과 고단함을, 깊어가는 겨울 안에서 울림이 되여 퍼져오는 북풍의 문안을 그리고 오랜 예전의 고요를, 이 모든 것을 단꺼번에 받아안을 수 있다는 것의 행운에 대해서 단 몇번의 호흡만으로 느낄 수가 있다는 의미에서는 결코 낯설지가 않은 거리였다. 사거리동네의 력사 같은 것인가? 생각해보니 오래 전에 내가 이런 비슷한 표정에 비슷한 냄새를 지닌 사거리에서 한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물론 이 거대한 도시의 번화한 사거리의 표정 대부분이 살뜰하게도 비슷하긴 했다. 한쪽에 웅장한 쇼핑몰이 있고 그 겉면에 유명한 피자나 샤브샤브나 북경구운오리 등등의 체인점들 간판들과 각종 패션과 화장품 브랜드 간판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여있는 것은 물론, 초스피드로 사면팔방 통하는, 그런 속도를 유지해야만 여기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시시각각 그 몸뚱아리 전체를 던져 깨닫게 해주면서 늘 지상으로 아니, 저 높은 하늘을 향한 꿈을 갖도록 만드는 지하철 입구들과 통유리창으로 김이 몰몰 올라오는 따끈한 빵이 들여다보이는 그래서 더욱 위안이 되는 빵가게와 치킨할아버지의 웃음과 맥도날드의 두툼한 햄버거와 프랜차이즈커피나 각종 맛의 밀크티체인점 등등 가게들이 들어앉아있는 것이 기본이긴 했다. 

사거리 앞에 서면 어린 시절 종이로 접어 량손가락에 끼우고 놀던 ‘동서남북’이 생각났다. 어느 쪽으로 가면 ‘자하문’이 있을가? 동, 서, 남, 북 하면서 대뇌 속에 끼운 ‘동서남북’을 이리저리로 빼본다. 택시기사는 앞 네거리 맞은편 모퉁이만 굽어들면 자하문이 보일 거라고 했지만 나는 과감히 지금 서있는 동쪽 모퉁이를 굽어든다. 이 모퉁이에 빵집이나 커피점이 있음직했다. 일단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도 좋을듯 싶긴 했다. 빵집이 먼저 보였다. 빵집에도 커피를 팔긴 했지만 커피만 빵집에 앉아 마시기엔 애매했고 아침식사하러 빵집을 찾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여유 있게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엔 불편해보였다. 몇년 만에 맡아보는 빵집 냄새인가? 나는 가게 밖에서 빵냄새를 들이마시다가 코앞에 떡하니 있는 ‘자하문’ 간판을 발견했다. 

어두컴컴한 문으로 들어섰다. 아직 영업시간 전이다. 교외에 살다 보니 길이 막힐가봐 일찍 떠났는데 너무 일찍 모임장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불도 달랑 하나가 켜져있는 어두운 홀, 나무테이블 앞에 중년의 남자가 연록색의 운동복 차림으로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남자가 인기척에 머리를 들고 물었다. 

“왜요? 여기… 직원인가요? ”

이렇게 손님이 들이닥치기는 처음이리라. 직원들도 아직 출근하기 전이다. 공연히 미안해졌다.

“예약한 손님인데요. 너무 빨리 도착했네요. 여기서 기다려도 될가요? ”

내가 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남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잠간 있으니 듬성듬성 들어서던 직원들이 한꺼번에 밀려들며 카운터에는 딩동딩동 출근카드를 찍는 소리가 쉴새없이 울렸다. 홀 안은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서서히 분망한 하루가 시작될 조짐이다. 불이 켜졌다. 해가 잘 들어오지 않아 낮에도 조명을 환히 켜야 했다. 불이 안쪽으로 층층이 켜지며 식당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드디여 홀 전체가 환해지고 그제서야 나는 이 식당이 엄청 큰 규모임을 눈치챘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터에서 매일 반복되는 그네들의 일상일 것이다.

가끔은 바쁘게 움직이는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이 즐겁다. 그 활기가 나에게 전염이라도 되는듯 보는 순간만 나도 뭔가 민첩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한눈에 바라보이는 공간을 제외하고 여러개의 특실이 숨겨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누군가의 분주함이 좋다. 수저와 그릇, 컵을 정연하게 격식대로 차려놓고 차 한잔을 따라주는 그런 잘 짜여진 서비스에 익숙한 몸짓마저도. 결국 깨닫게 된 건 그런 와중에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움직임, 그래서 서로가 영향을 주고 서로가 긴밀히 련결되여있는 것일지도…

한시간 쯤은 기다린듯하다. 그리고 년말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가 그중 누군가가 남경대학살 때 조선인들이 앞장서서 살육을 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갖고 시비를 했다. 

“징병되여 전쟁에 나갔다 하더라도 일본병으로 나간 거니 일본이 한 거죠. 안 그래요?”

“그게 정말일가요?

“저도 위챗에 나온 걸 봤어요…”

그 때였다.

“그건 엄연한 류언비어입니다!”

듣고 계시던 사학자 한분이 듣다 못해 그들의 화제에 끼여들었다.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따뜻한 차를 홀짝거리던 나를 비롯하여 그 자리에 앉아있던 모든 사람들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건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우리 민족을 매도하기 위해서 퍼뜨린 류언비어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속혀서 동조하면 안되지요. 남경대학살은 1937년 12월에서 다음해 1월까지 6주간 자행되였어요. 포털사이트에서 남경대학살을 자행한 일본군 중 40%가 조선인이였다는 근거 없는 류언비어가 류포되였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그 당시 일본의회는 조선에서 징병여부를 토론 중에 있었습니다. 이후 1939년에 일부 징병을 했지만 평양사단과 서울사단에 분배되였으며 국외로 파병된 적이 없지요. 우리라도 그 사실을 알고 그것이 류언비어임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잠간 지속되였던 고요함이 지나가고 다른 화제가 시작이 되고 끝나고 또 새로운 화제가 시작이 되였지만 내 머리 속에는 온통 아까 그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 뿐이였다. 

누군가 옆에서 작가님, 하고 불러왔지만 오래 전에 자주 맡았던 단향檀香 타는 향기가 어데선가 쏘옥쏘옥 자꾸만 내 후각을 자극했다. 

향. 단향. 향기. 

그리고…

천연염색한 청색 치마의 묵직한 흔들림.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서던 하얀 운동화.

그녀는 그렇게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썅썅香香.

향로가 되고 싶다던, 그것도 그녀가 애용하고 있던 단아한 향로도 아닌, 누구라도 와서 크고 작은 소원을 담은 향을 사르는 절 앞의, 비바람 속에서도 태연한 커다란 향로가 되고 싶다던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여울쳐오는 향기와 함께 계속해서 부딪쳤다.

 

“밥 사줄게. 그동안 고생 많았어.”

한이 서점에 들린 건 우리가 작은 서점을 오픈한 지 일주일 뒤였다. 아무런 도움도 못되였다고 미안해했지만 가게자리를 찾을 때 두세번 정도 나와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닌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였다고 내가 대답했다. 그건 진심이였다. 나는 그동안 북경에서 살면서 관광차를 제외하고는 거의 5환로 밖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내게는 창평昌平은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지리도 사람도 모든 것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막막했는데 한이 함께 돌아준 덕분에 금방 이곳에 익숙해지게 되였다. 이 지역 자체가 크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길들이 쭉쭉 곧게 뻗어있어 찾기도 쉬웠다. 한은 창평구가 되기 전인 창평현성에서 태여나 학교를 다녔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다녔다. 그러니까 친구 한에게는 창평이 고향이자 인생의 중요한 시간 대부분을 보낸 곳이였다. 한은 나보다 네살 정도 많았다. 한은 한동안 시를 썼는데 그의 시에 묻어있는 정서가 마음에 들었고 나는 꽤 오래동안 어쩌면 그녀의 유일한 독자이기도 했다. 어느 한 독서모임에서 만나서부터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였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한은 자신의 시를 읽어줄 독자가 필요했다. 한어언문학汉语言文学을 전공한 나는 솔직히 조선어로 된 문학작품보다는 중국어로 된 작품들을 더 많이 읽은 셈이였다. 한은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였으나 태여나 밥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고기붙이는 입에 대지도 못했으므로 밖에 나와서 음식을 먹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3년 남짓 직접 채식 위주의 음식점을 경영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 무슨 ‘주의’ 같은 걸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아니였다.

“밖에서 먹긴 좀 그렇지 않겠어?”

내가 걱정을 하자 한은 이미 생각해둔 곳이 있으니 따라만 오라고 했다. 

‘초향로草香芦’에 처음 들린 건 그 때였다. 서점을 개업하기 전부터 그 가게 앞을 오고 가면서 들어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늘 급한 일들에 치달려 잊어버리고 있었던 터였는데 한과 점심을 먹기로 한 그 날, 그 가게 앞을 지나는 도중 갑자기 한이 저 가게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 하면서 앞장서서 그 가게문을 밀었다. 

차들이 쉴새없이 오고 가는 큰길 맞은편에는 우정국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브랜드 옷가게들이 십자가 머리끝까지 줄느런히 늘어져있었는데 그 앞은 맞은편(우리가 들어선 가게가 있는)보다는 늘 들락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사선으로 또렷이 바라보이는 십자거리 동남쪽 편에는 우선 빵가게 하나가 있었고 컨더키매장도 빠질 수가 없다는듯 들어앉아있었으며 그 뒤로는 거대한 성마냥 쇼핑몰이 하나 떡하니 서있었다. 각종 음식점들은 물론, 영화관이며 수영장에 헬스장까지도 달려있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왠지 모를 경외감까지 드는 5층 건물이였다. 동북쪽에도 브랜드 옷가게들이 줄느런히 서있었는데 그 쪽의 열기는 좀 덜했다. 서북쪽으로는 유명한 브랜드의 마트 하나가 v자 모양으로 들어서있었는데 마트의 끝편 쯤으로 빠져나오면 신화서점도 하나 있었다. 그리고 신화서점을 지나 작은 가게들이 들어서있는 곳에 우리 가게와 갓 개업한 서점이 있었다. 

한과 함께 그리고 해살과 바람과 함께 그 가게에 들어선 기분이였다. 가게 안은 약간 어두웠고 은은한 조명으로 분위기를 잡고 있었는데 나무숲에 들어선 것만 같은 좋은 향기가 났다. 

“분위기가 좋네…”

한이 감탄을 련달아 했다. 그러건 말건 가게를 지키고 있던 젊은 녀자는 차상 앞에서 아까부터 하고 있던 알 수 없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가게는 ㄴ자 모양으로 되여있었는데 진렬해놓은 물건이 그닥 많지 않음에도 옹골차보이는 그런 가게였다. 군데군데 도자기 몇점이 진렬되여있었고 이 상품은 팔지 않음이란 글자가 조그맣게 씌여진 메모지가 옆에 놓여있었다. 가게에 가장 많은 물건이 념주였다.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나무종류 외에도 갖가지 보리수 종자로 만든 념주도 있었고 수정이나 호박이나 밀랍 재질의 념주도 있었다. 나무로 조각한 호신부도 몇점 보였는데 서툴지 않은 솜씨였다. 이외에도 향과 향로도 놓여져있었다. 

“이거 어떻게 파세요?”

한이 잠겨진 유리문 안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잠시만요.”

이십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녀자가 천천히 다가와서 유리문을 열었다. 무릎 아래로 내리드리운 묵직한 청색 치마가 인상적이였다.

“이건가요? 6백원요.”

“녹나무인가요?”

한이 물었다. 한은 념주를 좋아했다. 평소에도 한두개를 꼭 몸에 하고 다녔다. 그렇다고 그녀가 충실한 불교도인 것도 아니였다. 그냥 념주가 좋다고 했다. 내가 고기도 못 먹고 장신구보다는 념주를 좋아하는 한에게 전생에 분명 스님이였을 거라고 했을 때 한은 고맙다고 했다. 그게 왜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인지 나는 리해하지 못했다.

“네. 맞아요.”

녀자가 념주를 꺼내 한에게 내밀었다. 한이 그것을 손목에 감고서 들여다본다. 이미 그의 다른 손목에는 금강보리념주가 감겨져있었다. 한은 그걸 좋아하는 만큼 념주에 대해 잘 알았다. 념주알마다 다른 무늬와 향기, 나로서는 보고도 알 수가 없었고 그것들에 대해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한이 금강보리라고 하면 금강보리였고 녹나무라고 하면 녹나무였고 그것의 진가를 가려내야 할 안목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녀자가 흘깃 한의 손목의 념주를 건너다보더니 감각이 좋으시군요 했다. 

한은 지기를 만났다는듯 이거 괜찮은 거죠? 다시 한번 확인했다. 

녀자가 아무 말도 없이 가볍게 웃었다.

“왜요?”

한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였다.  

“아니예요. 좋아보여요.”

녀자가 대답했다.

그럼에도 한은 시원치가 않았는지 되물었다.

“헌데 아까 그 웃음은 뭐죠?”

내가 한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거 좀 놔볼래?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내가 화났을가봐?”

한이 웃었다.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녀자를 쳐다보았다.

해살이 잘 안 드는 가게라서 그런지 녀자는 창백한 얼굴로 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조용히 입을 뗐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일 때가 더 좋은듯해서요.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소중하지가 않거든요… 제 생각엔 그래요.”

내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 얘기해줘야 하나 끙끙거리다 해주지 못한 말이기도 했다. 헌데 그녀는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아주 쉽게 한에게 그 말을 던지고 있었다.

한은 아무 말도 없이 손목에 감았던 념주를 풀어서 내려놓았다. 사태가 심각해지나 걱정하고 있는데 한이 갑자기 깔깔깔 웃었다.

“살다보니 이런 가게도 다 있네. 장사를 하는 사람이 물건을 팔면 됐지 손님이 그걸 몇개를 사든 뭔 상관이래!”

한이 그러건 말건 녀자의 얼굴빛은 변함이 없었다. 너무 담담해서 보고 있던 나마저도 이건 뭐지 싶었다. 그녀는 손님의 기분 따위를 맞춰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책을 팔면서 나는 자신이 서서히 비굴해져가고 있다는 걸 느끼였다. 꼬마아이를 데리고 온 아이엄마에게도 애가 귀엽다는둥 이쁘다는둥 칭찬을 늘여놓으면서 이 책 저 책을 찾아내놓았고 책 한권 사지 않으면서 선자리에서 몇권의 책을 다 읽고 다음날 또 찾아오는 심심해보이는 표정의 말라빠진 남자에게도 싫은 소리 한마디 못했다. 나는 이 동네에 익숙해져야 했고 어떠한 손님들에게도 비위를 맞춰줄 심적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장사는 처음이였다. 엄연한 의미에서 책을 팔아야 먹고 살 수가 있는 나에게 서점도 장사는 장사였다. 

서점을 하자고 나를 끄당긴 사람은 율이였다. 나의 동업자이자 남자친구.

솔직히 나는 그녀가 걱정이 되였다. 깊은 동굴 같은 이 가게 안에 하루가 가도록 대체 몇사람의 손님이 나드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보건대는 이렇게 장사를 어찌 하나 싶었다.

“가자.”

한이 내게 눈짓했다. 이미 제자리로 돌아가앉아 뭔가를 계속하고 있는 그녀 쪽을 향해 한이 입을 삐쭉했다. 약간 재수없어보이는 스타일이였다.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녀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갑자기 내게 말을 건넸다.

“저기, 옆에 갓 서점을 여셨죠? 언제 한번 들릴게요…”

“아, 네. 그러세요.”

내가 느끼기에도 웃음이 어색했다.

 

그 날, 한은 뭔 저런 녀자가 다 있냐고 몇번이고 코웃음 쳤다. 밥 먹으러 가다가 그랬고 그녀가 찾아낸 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채식식당 안에서도 그랬고 그녀의 가게 앞을 다시 지나 우리의 서점으로 돌아올 때도 그랬다.

그렇게 ‘초향로’와의 인연은 끝나나 싶었다. 뭐 시작도 없는 인연인데 라는 생각은커녕 어쩌면 그녀를 잊어가고 말고 할 것까지도 없는 만남이였다. 들어가서 물건을 흥정했던 가게주인을 다 기억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율과 함께 살고 있던 우리의 집을 한이 방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고향에서 대학을 나왔다. 한국기업들이 대거 중국에 진출할 때라 한창 조선족들이 여기저기에 필요한 때이기도 했다. 많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렇게 북경으로 오게 되였다. 한국의 유명한 기업에 취직을 했고 부지런히 일을 한 덕분에 나는 꽤 많은 월급을 받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알았다. 이것이 조선족으로서 거의 최고의 자리라는 걸. 더 이상의 발전성은 불가능하다는 걸. 그 때부터였다. 나는 자신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졌다. 율은 그즘에 내게로 다가왔다. 율은 내게 같이 일을 하자고 했다. 뭔 일을? 내가 물었고 율이 말했다. 

“진정으로 네가 하고 싶은 일 말이야. 평생 해도 싫지 않을 그런 일 말이야!”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이였다. 

“잘 생각해봐.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율이 다시 한번 말했다. 나는 자신의 일보다는 남자가 더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율이 일을 핑게로 나한테 관심을 가진 거라고 믿었다. 율이 전문 책도매를 하는 친구를 소개시켜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얼마 뒤 율은 회사에서 잘렸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주변에서 율이 거래처와의 비리건으로 잘렸다고 쉬쉬했지만 율은 아니라고 했다. 율은 이제 자신의 사업을 해나가야 할 시점이여서라고 했고 책 읽기가 유일한 취미였던 나는 율에게 서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나에게 일은 잘하고 있냐는 대신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율은 결혼에 대해서는 좋다고도 싫다고도 하지 않았다.

 

그 날 저녁, 나는 엄마가 고향에서 부쳐준 소금에 절인 송어를 꺼내 구워먹었다. 율은 출장을 나갔고 서점은 직원에게 맡겨놓고 모처럼 저녁 일찍 집에 들어온 날이였다. 굽기 시작할 때부터 냄새가 송어의 마지막 한숨처럼 집안 곳곳을 파고들었고 송어가 집을, 공기를 그리고 나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싶게 온 집안이 송어로만 그득찼다. 다른 생각은 아예 침입할 틈조차도 없었다. 송어는 송어로서의 마지막을 그렇게 화려하게 장식했다. 장엄한 어떤 례식으로 군침을 뚝뚝 삼키는 인간이란 생물을 짙은 냄새로 환호하게 만들었다. 공기청정기는 벌써 네개의 빨간 신호등을 번쩍이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고 입고 있는 옷에도 머리카락에도 언녕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의 존재를 처절하게 남겼다. 씻기 전에는 송어의 마지막 존재의 무게를 그대로 떠메고 있어야 할 터였다. 잠간 과일 사러 밖에 다녀오는 길에서도 바람결에 흩어지는 냄새만으로 사람들은 바다에서 헤염치던 물고기의 위엄을 알아챘다. 사람들 뿐 아니라 길에서 마주친 개와 고양이도 그 냄새 하나에 눈빛이 달라졌다. 

하필 이런 날, 한이 왔다. 서점에 들려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율은?”

한이 문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율이 있냐고 물었다.

“출장 갔어.”

내가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은 생그레 웃었다. 그러더니 뒤를 향해 어서 들어와 했다.

한의 뒤를 따라 들어선 이는 그녀였다. ‘초향로’의 주인.

 

한은 들어서자 참으로 코를 벌름거렸다.

“이게 뭔 냄새지?”

“아까 송어를 구웠더니 냄새가 안 빠지네…”

“완전. 여기 어떻게 있어?”

그러면서도 한이 주방을 기웃거렸다.

“밥은?”

“아니. 먹고 왔어.”

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갈가?”

한이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송어냄새를 피우면서 거리를 떠돌고 싶은 생각은 눈곱 만치도 없었다.

“좀 있으면 냄새 나갈 거야.”

“참, 잘도 나가시겠다.”

한이 코웃음 치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황급히 코를 틀어막았다.

우리가 냄새 때문에 의견이 갈린 새에 그녀는 거실 탁자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다시 한번 앉으라고 권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쏘파에 앉았다.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한도 쏘파에 와서 앉았다. 

“차 마실래?”

내가 물었다.

“차? 차에서도 비린내가 날 것 같은데. 차라리 맥주 줘.”

한은 갈 때까지 어쩌면 집에 돌아가서까지도 이 비린내 투정을 계속할 것만 같다.

“저기. 이걸.”

앉아있던 그녀가 메고 온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향 태우시면 냄새가 금방 좋아질 거예요.”

그녀가 내민 것은 조그마한 향통이였다. 집에 향로가 있을 턱이 없었다. 내가 율의 담배재털이를 가져왔다. 그녀가 향을 잘라 갸우뚱하니 재털이 우에 걸쳐놓았다. 

“냄새 좋네요.”

내가 계속 코를 벌름거리다가 말했다.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비린내에 이미 찌들은 코안으로 향기들이 날개가 달린듯 날아들었다.

“그렇죠… 단향이예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그녀가 대답했다.

“직접 만들어요?”

향을 만드는 사람에 관해서는 한번도 듣도 보도 못했던 터라 신기했다.

“이이가 글쎄 수제향을 만드는 명장이래.”

한이 끼여들었다.

“우리가 같이 와서 놀랬지? 솔직히 말해봐.”

한이 친근하게 한쪽 팔을 내 어깨로 걸치며 물었다.

“응, 좀.”

“지난번에 나랑 같이 갔던 채식식당 있잖아. 그 식당 사장이랑 이 친구가 친한 사인 거야. 거기서 만났어.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하고 있는게 너무 잘 맞는 거야. 널 물어보길래 그냥 같이 와보자고 했지.”

한은 친구를 사귀는 걸 좋아했다. 한은 뭐든지 경험해보는 걸 즐겼고 새로운 사람이랑 곧바로 친해지는 재주가 있었다.

“너 둘 동갑이더라. 친구로 지내면 좋겠네.”

한이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스물아홉?”

그녀가 먼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새벽까지 열렬했던 우리의 끝없이 이어지던 화제들을 기억하고 있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쩌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했던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엉뚱함과 매력에 대해 얘기했고 헤세와 ‘싯다르타’를 얘기했고 타고르의 시를 읊었고 장자와 금강경과 릉엄경에 대해서 얘기했다. 서서히 온 집안에 단향으로 가득 차넘치는 것을 느끼면서 흥분했고 차분해져갔다. 갖가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잠간 울기도 했다. 그러는 새 우리는 하나가 되여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생을 탐색할 준비를 이미 마쳤다는 것을, 그래서 함께 용감하게 나아갈 ‘동지’가 되여줄 것임을 확인했다. 우리는 정신적인 것들이 물질적인 것보다 더욱 위대하고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부류에 속했다. 아직까지 한번도 처절한 가난도 굶주림도 전쟁의 상처나 느닷없이 찾아든 불행 따위를 겪어보지 못했다. 의미있음의 의미없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의미없음의 의미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맥주 한잔으로도 충분했던 밤이였다.

 

그 뒤 우리는 틈 날 때마다 모여서 떠들고 웃었다. 그 날 너무 신난 나머지 그녀의 이름마저도 묻지를 않아서 다음날 대체 그녀 이름이 뭔지 몰라서 곤혹스러웠던 것도 에피소드라면 에피소드였다.

“이름이… 내가 듣긴 들었는데.”

한이 멍털멍털 구을러다니는 서점의 창밖 양서杨絮를 내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생각난듯 손벽을 짝하고 쳤다.

“썅썅香香, 썅썅이야.”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우선 향비香妃를 떠올렸다. 

“그 환주거거还珠格格에서 향비 이름과 같아. 향향공주라고 했지?”

한도 향비를 먼저 떠올렸던 게 틀림없었다.

“얼굴도 말갛고 조신한 게 향비랑도 너무 닮지 않았어?”

한이 그 와중에도 이름을 기억해낸 게 자랑스럽다는듯 신나했다.

 

사람들이 들이닥친 건 서점을 개업하고 나서 다섯달 쯤 되였을 때다. 날이 찌물쿠기 시작할 무렵이였고 밤 늦게까지 거리에는 밖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얼굴빛이 굳어진 남자 둘에 날카로운 목소리의 녀자 하나가 갑자기 서점 안에 밀고 들어오더니 율이 어데 있냐고 찾았다. 율은 서점이 좀 안정되고 나서 부쩍 출장이 잦아졌다. 자신은 다른 사업거리를 찾아본다고 했다. 

“율이 지금 없는데요. 출장 갔어요.”

내가 대답하기 바쁘게 녀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서점 안에 챙챙하게 울렸다.

“언녕 내뺐어. 내뺀 거야.”

“어데 갔어?”

이번엔 두명의 남자 중 하나가 물었다. 나이가 좀더 들어보이는 쪽이였다.

“저도 잘…”

내가 말끝을 흐리자 녀자가 다시 소리쳤다.

“언녕 내뺐겠지… 여서 기다리고만 있겠어? 헌데 아가씨는 여기 직원이야?”

“직원은 아니고… 동업자…”

“동업자? 뭐야. 그럼 같이 사기를 친 거야?”

“사기라니요? 대체 당신들 뭐야?”

내가 소리를 질렀다.

“율이 그 놈이 우리 돈을 사기쳐갔어. 이 서점을 담보로.”

“이 서점 다 제 돈으로 개업한 건데요?”

“뭔 소리야. 우리한테서 서점 더 크게 늘인다고 돈 꿔갔어.”

“얼마나…”

“오십만.”

“말도 안돼요. 이 가게는 다 내 돈을 들여서 개업하고…”

“으흐흐흐, 뭐야, 그럼 아가씨도 당한 거야?”

녀자가 쓰겁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아려보니 율이 출장 나간 지 벌써 일주일이 넘고 있었다.

“말도 안돼…”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자꾸 눈물만 도리반거리고 기대여도 내려앉지 않을 만한 책장도 책상도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괜찮아?”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그녀였다.

“당신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빨리 공안국에 가서 신고나 하세요.”

그 사람들을 한참 달래서 내보낸 뒤 그녀가 서점문을 닫았다.

“어떻게 된 거야? 저 사람들 말처럼… 하다면 너 지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돼.”

그녀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그래야지 하면서도 휴대폰을 누르는 내 손이 계속 무섭게 떨렸다. 율의 전화번호는 계속해서 없는 전화번호입니다를 중복했다.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무난했던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들이닥친 고비였다. 마음을 도스르려고 할수록 더욱 허둥거리기만 했다.

“너 가게세 몇달치 줬는데? 주인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그 돈 그대로 있는지.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인데 네 카드 정지시키고.”

그녀가 빠르게 말했다.

“그건…”

“빨리 해봐.”

그녀가 다그쳤다. 세상 밖으로 나앉은듯 가게를 지키고 있던 그녀의 눈빛이 아니였다.

가게주인아줌마가 전화 저편에서 말했다.

“책 들여온다고 반년치를 먼저 빼갔는데 일주일 뒤에 준다고 하더니만… 언제 줄 거요?”

“네? 반년치를 빼갔다구요? 책 들여오는 돈은 이미 줬었는데…”

지갑 안에 넣어뒀던 카드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목구멍에서 헛헛한 바람이 새여나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시렸고 손발이 차겁게 오그라들었다. 오만원은 넘어 있어야 할 카드에는 달랑 오천원이 남아있었다. 율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자비’이자 내  전부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풀풀 나왔다. 내 이십대 대부분을 들여 모은 돈도 그리고 사랑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단 한순간에 티끌이 되였다. 그 먼지가 내 살아있는 생 내내 내 눈을, 내 가슴을 알알하게 할 것만 같아서 스물아홉의 나는 더더욱 아팠다.

 

꼬박 삼일 동안을 열병으로 앓았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거웠다가 찜통에라도 들어간듯 더웠다가 반복했다. 포크레인이 뭔가를 계속 부수고 있는 소리가 덩덩덩 누워있는 침대를, 아빠트 전체를 두들겼다. 낑낑 앓으면서 지옥이 따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만 싶었다. 녹아버리거나 증발해버리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념주알의 진가를 알아볼 수 없는 건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어도 한 인간의 진가를 가리지 못한 건 뼈아픈 후과가 뒤따라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 됨됨이를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이 바보스러웠고 스스로가 마주하기에도 창피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어도 충분히 비켜갈 수도 있었을 터인데 자신을 사랑이란 이름하의 그 무조건적인 무지 속에 방치해버린 나 자신에게 화딱지가 났다. 내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한 벌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날들, 더 이상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할 것만 같아서 슬퍼졌다. 한과 그녀가 번갈아가며 찾아와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 해 여름이 다 갈 무렵 나는 머리카락 틈새로 쏜살같이 빠져 달아나는 젊음을 보았다.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고 륙십이 되고 칠십이 다 가는, 섬뜩한 두려움이 삼복철 기분 나쁜 습기처럼 온몸에 들러붙는듯했다. 세월이 흘러간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심장을 움켜쥔듯한 통증이 재빨리 전신을 훑고 지나가듯이 신음했다.

서점은 정리했다. 이른 봄 내내 개업준비를 하면서 설레였던 시간들이 먼 기억 속 화석으로 굳어져갔다. 책도매상과 결산을 하고 나니 거의 맞서서 다행히 빚을 지진 않았다는 것이 고맙게 생각되였다. 살고 있는 아빠트의 방세는 그나마 빼가지 않은 것이 그 와중에도 고맙다고 해야 하나, 방 침대에 누워 천정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동안 아침은 커피 한잔으로 때웠다. 그리고 시계를 들여다보면 어느새 열한시가 되고 있었고 쏘파에 늘어져있다가 다시 커피를 마시면서 과장된 몸짓의 개그프로를 들여다보면서 그냥 따라 웃다 보면 곧장 오후가 한시가 되고 두시가 되였다. 그것도 지치면 책을 읽거나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면서 앉아있었다. 나만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에 얼얼했다가, 창밖의 날씨가 미세먼지에 묵직하게 쌓여있으면 침침하게 가라앉았다가, 비 오는 날은 울기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비는 머춤하고 서있던 그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깊어가도록 오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한번 해보라면서 일감을 가져왔다.

수제향을 만드는 일이였다.

오후 늦은 시간이였는데 아마도 그녀는 가게문을 닫고 온듯했다. 나는 가게는 어찌하고 이 시간에 왔냐고 묻지도 않았고 다만 그녀가 거실 나무탁자 우에 향로며 이름 모를 도구들을 하나씩 꺼내놓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향을 만들기 전에 먼저 향을 사르는 걸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그녀가 가루향이 그득 담긴 비취색의 향통과 문양이 새겨진 손잡이가 달린 동판을 내밀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았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넓은 향로에 그것을 대고 앙증맞은 향숟가락으로 향가루를 떠서 솔솔 뿌려넣기 시작했다. 누르는 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맞춤하게 가해야 향이 부서지지도 않고 완정하게 완성이 될 수 있다고 그녀가 곁에서 설명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엔 딱 좋은 일이였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향가루같이 거무스름한 어둠의 가루가 잔뜩 창밖에 내려앉아있었다. 세상 전체가 향로인듯 그래서 서서히 하늘끝이 타오르는듯 나는 문득 다시 한번 세상의 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조심스럽게 동판을 빼냈다. 또렷한 범어 만자가 향로 안에서 살아났다. 부서졌던 가루들이 모이고 모여서 다시 또렷한 문양이 되여 태여났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한쪽 끝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조금 피여나나 싶더니 천천히 타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가 쏘옥 코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단전까지 스윽, 푸근해지게 하는 시원한 기운이였다. 연기가 긴 꼬리를 하늘하늘 흔들면서 피여났다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향이 이제 내 몸뚱이 전체를 품었다. 코속으로 눈속으로 귀속으로 그리고 피부의 세포 하나하나 속으로 머리카락 속으로 향기가 소리없이 스며들었다.

왈칵, 울음이 터져나왔다. 먼저 후두둑 눈물방울이 떨어졌고 이어 꺽꺽 울음소리가 향기와 함께 집안 전체를 파묻었다. 율이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혹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지 않을가 은밀하게 가슴 밑바닥에 숨겨져있던 일말의 요행마저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바보스럽게 당한 내 자신이 한심하긴 하지만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다 울고 기운이 진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리고 그 향이 다 타들어갈 때까지 그녀는 소리없이 내 곁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점점 향기가 어데론가 사라져가고 있을 때 쯤 그녀는 옅어진 향기가 말을 건네오듯 작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

“침향沉香이야.”

그리고 나서 하얀 재가 조금 남은 향로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령혼을 정화시키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지. 향로는…”

중도에 꺾이지 않고 끝까지 타들어간 침향을 보면서 그리고 그 훅 불면 날려갈 것 같은 하얀 재가 남은 향로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희열이 가슴에 차올랐다. 향이 다 사라진 뒤에도 남겨져있던 그 희열의 정체를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지만 몸을 살라 향기를 풍겨주는 향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그렇게 좋은 향도 타고 나면 조금의 재로 남는구나, 그런 생각이 그 당시의 나에게 오히려 위안이 되였다. 그녀의 향도수업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다는 것도, 그 학비 또한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뒤늦게야 알게 되였지만 나에게 그녀는 다만 순수한 믿음직한 그런 친구였다. 향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나눌 수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스승 같은 친구였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그녀의 가게로 나갔다. 그녀와 함께 상 앞에 앉아서 향목과 다른 향초 등을 넣고 섞어 반죽을 해서 각양각색의 향을 만들었다. 한도 저녁이면 와서 거들기도 했다. 가루를 배합하고 반죽을 하는 건 그녀의 몫이였고 나와 한은 주사기로 향을 뽑았다. 끈적거리는 반죽이라서 힘이 들긴 했지만 나는 그 과정들을 충분히 즐겼다. 가느다란 선향线香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며칠이고 그늘에서 말리우면 되였다. 모든 재료는 천연재료였고 찹쌀가루도 들어간다고 했다. 그리고 원추모양의 나무틀에 넣어 찍어내는 향도 만들었고 향가루와 말린 꽃을 집어넣은 향낭香囊을 만들기도 했다. 온갖 꽃향들이 싱그러웠다. 

 

그렇게 보내고 있던 충실했던 날들. 

한이 갑자기 그 말을 꺼냈다. 그 날도 향을 틀에 넣어 찍어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던 중이였다.

“그거 봤어? 남경대학살 때 조선인도 있었다며?”

“설마?”

내가 도리머리를 저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거 나도 봤어.”

매장에서 향낭을 걸고 있던 그녀도 합세를 했다.

“뭔 소리야? 남경대학살은 일본놈들이 한 거잖아! 그렇다고 해도… 학도병으로 강제로 끌려온 거겠지…”

내가 애살스럽게 변명했다.

“강제로?”

한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강제로 끌려온 거라면 그렇게 지독하게 죽일 필요까진 없었지 않을가?”

“지독하게?”

내 심장이 벌렁거렸다. 교과서에서 남경대학살에 대해 배우면서도 거기에 가해자로 나와 같은 피를 가진 동족이 참여했을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된 걸 거야.”

“정말 그럴가?”

한이 한숨을 내쉬였다.

“정말이지 말이야. 나도 아니길 바래.”

그 순간, 나를 바라보는 한의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

“누군가의 롱간일 수도 있어.”

그녀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고마웠다. 

“혹여 그렇다 하더라도 쟤 잘못은 아닌 거잖아.”

그녀가 아까부터 걸고 있던 향낭을 걸며 한마디 더 붙였다.

나는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궁해져서 꿀 먹은 벙어리 모양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숨막힐듯한 정적이 흘렀다. 왠지 모르게 계속 미세하게 가슴이 떨렸다.

“먼저 일어날게.”

침묵을 깨고 내가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면대로 가 손을 씻고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밤바람이 차거워져있었다.

… …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빠트를 정리하고 그 곳을 떠났다. 새로운 터전을 찾고 정착을 하느라고 바삐 보내다 보니 한번도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 번화한 사거리 앞에 서면 그녀의 고즈넉한 가게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가 떠올려지군 했다. 그리고 함께 만들었던 향의 향기가 세월의 바람결 너머 은은하게 달려오듯하기도 했다. 온갖 세상의 냄새에 섞여있음에도 너무 분명하고 달콤한 향이였다. 지금까지도 내게는 그랬다.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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