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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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2)
2019년 07월 18일 09시 10분  조회:26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2)

박초란

 

그가 사는 5동은 3동 바로 뒤편에 있었다. 4동은 아예 없다. 3동을 지나 건늠길을 건느려는데 총망히 쓰레기통 옆에 뭔가를 놓고 지나가는 그녀가 보였다. 그의 이웃집 녀자. 

“어, 저 녀자? 어떻게 여기 살지?”

이양이 놀란 소리를 했다.

“왜 알아?”

내가 물었다. 

“지난번에도 우리 가게에 노트 사러 왔었는데… 그 근처에 사는 줄 알았는데?”

이양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의 눈길은 그녀가 버린, 쓰레기통 옆 종이봉투에 가있다.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간다. 머뭇거리기에는 박스가 너무 무겁다. 그것보다는 이양이 보는 앞에서 그 종이봉투를 기어코 줏게 될가봐서였다. 무거운 박스를 내려놓고 이양이 그것을 푸는 새, 그는 계속 그 종이봉투가 생각난다. 이웃집 녀자가 버린 종이봉투.

오늘은 대체 뭘가?

그는 궁금하고 또 궁금해진다. 

어제는 접시 하나에 숟가락 두개. 그제는 조선말로 된 책 여섯권. 그리고 그그제는 옷 몇벌. 그리고 그그그그제는 새 노트와 잡지 네권. 그 앞서 며칠은 이루다 말할 수 없이 많았던 물건들… 조선말 책이라니… 그는 그 책들을 이리저리 번져보며 흥흥 코노래를 불렀었다.

“아침은?”

이양이 물었다.

“아직… 이따 알아서 먹을게……”

그가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럼 같이 먹어요. 지금 내가 가서 채소며 사올게요. 쌀은 있나?”

이양이 부엌으로 가서 여기저기 열어본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든다.

“쌀은 없어… 됐으니까 오늘은 그냥 가줄래? 좀 있다가 친구가 오기로 했어.”

“그래요? 모처럼 오늘 시간 냈는데… 이 먼데까지 왔는데 밥도 차도 안 주고 쫓을내기예요?”

“차? 어쩌지 생수도 없는데…”

이양은 수도물은 아예 안 마시는 사람이였다. 고향에서는 돌틈에서 굴러나오는 샘물을 마셨는데 수도물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며 끓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럼 뭘 마시고 뭘 먹고 살아요?”

이양이 정색해서 물었다.

“그냥 수도물을 받아서 끓여 마셔. 그게 편해. 굳이 생수를 주문할 필요도 없고.”

“며칠 놔뒀더니… 이렇게 막 사시면 어째요?”

이양은 쉽게 그를 놔줄 기세가 아니다.

그럴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급해진다.

“괜찮아. 다들 그렇게 먹고 살아… 가서 너 일 봐. 걱정 말고.”

그는 두 손으로 떠밀다 싶이 이양을 현관으로 내민다.

“아직 집구경도 못했는데…”

이양이 결국은 그에게 떠밀려 신을 신고 황당해진 표정을 감출 생각을 않고 문밖으로 나선다.

“잘 가.”

그가 인사를 하고 창밖으로 이양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저었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신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도 종이봉투는 거기에 있었다. 그는 제꺽 종이봉투를 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그는 그런 그를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는 이양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쳤다. 잠시 그 자리에 굳어져버린 그와 그의 손에 들린 봉투를 지켜보던 이양은 더 뭐라고 하지도 않고 꼿꼿이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는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 되여서 현관문을 닫았다. 봉투 안의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싹 사그라져버렸다. 

 

조금씩 산의 릉선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숲 속에서 나온다. 교외에 살고 있는 것 중의 행복한 일은 바로 근처에 나무숲들이 줄지어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숲에 안길 때마다 느낀다. 오늘은 소나무숲, 래일은 아카시아나무숲 그다음은 은행나무숲… 나무들이 커가고 무성한 수림을 이룰 때까지 여기 오래오래 살고 싶어진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삼환로변의 아빠트를 처분하고 이렇게 교외로 이사나온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은 아무도 리해해주지 않았다. 잘 나가던 애가 왜 그래? 다들 그런 표정이였다. 나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광고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었다. 사장은 회사의 얼마간의 주식을 떼여주며 내가 남기를 권했다. 내 이십대의 절반과 삼십대의 대부분 시간들을 그 회사를 키우는 데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나는 커다란 성취감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비애를 느꼈다. 내 자신이 점점 빈 껍데기로만 남겨지는 것 같았다. 그 때에야 나는 <줄리>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줄리가 퇴근 후 주방에서 초콜릿크림을 저으면서 ‘확실한 게 하나도 없어서 불안한 세상에서 재료를 넣고 정해진 시간 동안 저으면 맛있는 초콜릿크림이 만드어진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한 말을 조금이나 리해할 수가 있었다. 그전까지만도 모든 게 확실한 그런 세상을 살고 있었던 나였으니. 그 확실했던 것들이 불안한 것으로 바뀌는 데는 불과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그 때야 안 셈이다.

명예나 부가 다 있는데 뭘, 하면서 그냥 모르는 척 살 수가 있을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보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끈기는 거기서도 빛을 발했다. 나는 절대로 그냥 못 본 체하고 만족해할 인간이 아니였다.

정작 일을 그만두려는 결정은 어렵게 내린 결정이였다. 어느 한순간에 내린 결정이 아님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반년 가까이 더는 밤 늦도록 야근을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나는 서서히 조심스럽게 일에서 물러날 준비를 해왔던 셈이였다. 일에만 배여온 습관이란 것은 마약과도 같은 금단 증세를 보였다. 일찍 자야 되는데 다시 보고 있으면 어느새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들고 있었다. 그 무렵 그동안 읽으려고 사다가 무져놓은 책들을 저녁시간을 리용해 읽고 있었고 그렇게나마 자신을 위하는 듯한 위안을 받고 있었다. 서서히 밤샘을 하면서 책을 읽는 일이 밤샘을 하면서 일을 하는 것으로 바뀌여가고 있음을 그 순간에는 몰랐다. 그 습관의 힘의 존재를 알았을 때 나는 아연해졌다. 

결국 나는 휴식할 줄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여있었다.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떤 것이 진정한 휴식인지를, 어떤 것이 몸이고 어떤 것이 마음이고 그 둘의 련관관계가 어떤 것인지…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남겨진 인생의 숙제가 되였다. 

산보를 시작한 것은 내가 한번도 몸을 위해서 몸을 움직여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다. 몸은 늘 일을 위해서 뭔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숨가쁘게 움직여왔었다. 피곤해도 아파도 그리해왔다. 요가를 하고 있던 친구가 요가를 건의해온 것도 3년 전 일이였지만 늘 바쁘다는 핑게로 가질 않았다. 그 때 그 친구가 척추 교정을 필요할가 있는 것 같다고 귀띔을 했었지만 나는 그런 것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때의 나는 얼마나 우둔하고 무지한 건가?

 

갑자기 발밑에 뭔가가 채일 듯해서 급히 들었던 발을 좀더 크게 앞으로 내디뎠다. 그 통에 평형을 잃은 몸이 휘청거렸다.

“뭐지?”

회색의 커다란 것이 분명 발밑에서 움찔했다. 바로 서서 허리를 굽히고 그것을 다시 내려다본다. 어둠안에서 그것은 꼼짝하질 않고 웅크리고 있다. 눈을 바싹 대본다. 

“쥐인가?”

쥐라기엔 너무 크다. 그리고 무슨 놈의 쥐가 이렇게 웅크리고만 있겠는가? 언녕 도망가고 말지… 그렇다고 손가락을 대기에는 징그러운 생각이 든다.

그 때였다.

“뭐하세요?”

누군가가 내 곁에 다가오며 역시 허리를 굽히고 그것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머!”

내가 낮고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것에 집중해 있어서 누가 가까이 다가오는 자취를 듣지 못한 탓에 놀란 것도 있지만 더더욱 놀란 건 그의 말 때문이였다. 그는 정확하게 그것도 류창하게 조선말을 구사하고 있었다. 이런 외딴 교외의 동네에 조선족이 있었어? 그리고 내가 조선말을 안다는 건 어찌 알고?

그것은 놀라움이였다. 그리고 힐끗 올려본 나는 더더욱 놀라고 말았다. 맞은편 집 남자였다.

“아…”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이거 고슴도치 같은데요?”

남자가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전등을 켰다. 불빛 사이로 고슴도치가 촉촉한 코를 날름거렸다. 까맣고 작은 두 눈을 들었다. 

“미안, 너도 이런 불빛은 싫지?”

남자가 급히 스마트폰을 껐다.

고슴도치라니?

나는 신기해서 그것을 만져보려고 어둠 안으로 손을 내민다. 

“찔리면 아플 거예요.”

남자의 한마디가 내 손목을 잡았다.

“그래요? 정말 찔릴가요?”

그러면서 나는 손을 움츠렸다.

“아니요. 그것보다는 동물들은 사람냄새가 묻어나는 걸 안 좋아할 수도 있어요.”

남자가 말을 이었다.

“고슴도치 처음 봐요?”

“네, 처음이예요. 신기하네요. 이렇게 동네 숲에서 다 볼 수가 있다는 게.”

어둠 안에서 고슴도치가 꼼짝 않고 계속 웅크리고 있다.

“헌데 이렇게 길에 나와있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 가끔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이 길로 다니기도 하던데…”

걱정이 든다. 이 아이를 어떻게 치워야 하나?

“그럼 우리 빨리 갑시다. 그러면 저 애도 빨리 갈 거예요.”

남자가 웃었다.

남자가 앞서 걷고 내가 뒤따랐다.

숲이 끝나는 어구지에서 내가 다시 걱정했다.

“갔을가요?”

“갔을 거예요. 아니면 다시 가서 확인해볼가요?”

“그럴가요.”

이번에는 남자가 왼편에 서고 내가 오른편에 서서 나란히 고슴도치를 만났던 곳으로 향한다. 어둠이 밀려든 숲, 바람소리가 난다. 박쥐 두마리가 허공에서 부지런히 날아옌다. 이맘 때면 언녕 떠나간 숲길이였다. 

“여기가 맞나?”

내가 주변을 휘둘러본다. 남자도 주변을 휘둘러보더니 맞아요, 했다.

“없는 걸 보니 갔네요.”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찔리더라도 한번 만져볼 걸 그랬나?

“생각보다 빠르네요.”

조금 더 어둠 안에 머무르고 싶어진다.

“좀더 걸을래요?”

남자가 물었다. 나는 어둠 안에서 조그맣게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남자가 왼편에 서고 내가 오른편에 서서 나란히 앞으로 걸었다. 한번도 이렇게 어두운 숲길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남자가 곁에 있다는 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져 어둠도 두렵지가 않았다.

침묵이 내린 대지를 우리는 침묵을 하면서 걷는다. 며칠 전에 불어친 황사바람에 날려 떨어진 아카시아꽃들이 발밑에 밟혀 사르락사르락 소리를 냈다.

숲이 끝나가는 끝자락에서 남자가 멈춰섰다. 숲이 열리고 남쪽 하늘로 두툼하게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집채 만한 구름이 낮게 깔려져 있었다. 어둠 안에 서서 장엄하기까지 한, 어쩌면 멀리 서장에 있는 부다라궁을 련상케 하는 구름덩이를 바라본다. 나는 남자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그런 남자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순간, 이 남자의 어깨를 이렇게 바라보기 위해 내가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살풋이 들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아카시아꽃향마냥 은은하게. 남자의 머리 우로 나무잎 몇개가 날려 떨어진다. 별 몇개가 머리 우에서 반짝거린다. 남자는 아까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던 고슴도치를 닮은 것 같다. 다만 남자에게는 뾰족한 가시가 없을 뿐. 저러다가 남자가 정말로 고슴도치로 변해버리는 게 아닌가, 근심스럽다. 

나는 이번에는 찔리더라도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후텁지근했던 공기가 어느새 차거워져 있었다.

그가 몸을 돌렸다. 어둠에 둘러싸인 숲, 그녀는 그 때까지도 거기 서있었다. 얼마나 잔 걸가? 한참 시간이 흐른 듯 아까 숲 끝자리로 나오면서 보았던 집채 만한 하얀 구름덩이가 이제는 어둠 안에 시커멓게 웅크리고 있다.

“아직 계셨네요?”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녀자가 대답 대신 어둠 안에서 희미하게 웃었다. 

처음이였다. 잠들어버린 그를, 잠든 내내 조용히 지켜만 봐준 사람은 처음이였다. 그의 어머니마저도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편히 침대에 가서 누워자라고 귀띔을 해주군 했다. 친구녀석은 또 시작이군, 하면서 언제라도 잠든 그를 내버려두고 가버리군 했었다. 그는 친구녀석 앞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을 어둠 안에서 느낀다. 

그는 처음 그녀의 곰인형을 집어 들여오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때부터였을가? 그는 인연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무섭지도 않았던 걸가? 그는 궁금해지기도 한다.

“춥지 않으세요?”

그가 물었다. 밤바람이 찼다.

“아니, 괜찮아요.”

그녀는 그러면서 얇은 셔츠의 옷깃을 여민다.

그가 입고 있던 운동복을 벗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그의 손에서 옷을 받았다.

그는 그녀가 그의 커다란 운동복을 어깨에 걸치는 것을 지켜본다. 지켜보는 그도 그의 옷을 받아 입고 있는 그녀도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아주 오래동안 알고 지내왔던 사이마냥 익숙한…

그가 조금 앞장서 걸었고 그녀가 곧장 뒤따라왔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숲 앞으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나가면 큰길이 나오고 큰길을 따라 십분 정도 걸어가면 그들이 살고 있는 아빠트단지가 나온다. 앞에 바라보이는 큰길 녘 가로등이 켜져 있어 울퉁불퉁한 흙길도 걷기가 불편하지 않다.

그와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없이 걷기만 한다. 긴 그림자가 뒤따라왔다. 큰길로 련속 차 두대가 지나갔다. 첫 차가 지나가기 전 그는 뒤따라오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5동 앞.

녀자가 옷을 벗어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두 손을 내밀다 말고 주춤해진다. 부쩍 피기 시작한 장미덩굴 아래에 이양이 서있었다. 

“고마워요.”

그녀가 인사를 했고 그는 옷을 받았다. 이양의 굳어진 눈빛이 날카롭게 그의 손에 톡톡 부딪쳤다.

이양이 그와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늦-었네요?”

이양의 첫음의 악센트가 유난히 길고 높았다. 

“두분, 어데 같이 갔다 오나 봐요?”

이양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려고 애쓰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산보 갔다 오는 길이야.”

그가 성큼 말을 내뱉었다. 그녀가 그런 그와 이양을 살풋 올려다보았다.

“어라, 언니였어요?”

가까이로 다가온 이양이 그녀를 보며 반색한다.

“누구?”

그녀가 조심스럽게 젊은 녀자의 얼굴을 뜯어보지만 아무런 인상이 없다.

“날 알아요?”

그녀가 물었다.

“그럼요! 며칠 전에도 우리 가게에 왔었잖아요. 노트 사러…”

그녀는 아아, 하고 머리를 끄덕인다. 

“카운터에 있던 아가씨네요!”

“네, 맞아요. 이양이라고 해요. 반갑네요… 헌데 두분은 알던 사이신가요?”

이양은 그러면서 슬며시 그의 얼굴을 눈빗질한다.

“아, 아까 산보하다가 그냥…”

그녀가 웃었다. 왠지 애매한 립장이 되여버린 느낌이 들었다.

“우리 사장님 여기 집에서 사는데, 그럼 언니도 여기 사세요?”

그녀가 여기 살아요, 하면서 일층의 아빠트 창문을 손짓했다.

“와, 이런 우연이… 맞은편 집이네요. 그럼 우리랑 이웃인 거죠?”

“이양, 우리라니?”

그가 반박했지만 더 끼여들 틈이 없이 이양이 계속 말을 쏟아냈다.

“언니랑 사장님 아는 사이인 줄 알았어요. 어차피 지금은 아는 사이 맞잖아요. 하하하, 저 슈퍼에서 맥주 사들고 왔는데 가까운 이웃 끼리 한잔 할가요?”

이양이 그녀의 팔짱을 꼈다.

“아니, 전 그만 들어가봐야 돼서… 두분이서 마셔요. 그럼.”

그녀는 급히 말을 끝내고 조용한 방안으로 스며들고 싶다. 젊은 녀자의 한 옥타브 높아진 듯한 말소리도 친근한 척하는 행동도 거슬렸다.

그녀가 몸을 빼내여 아빠트로 들어가려는데 이양이 다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언니, 언니가 대답 안하면 사장님이 또 절 내쫓으실 거예요. 지난번처럼.”

이양이 그러면서 울상을 지었다.

“언니…”

“언니-”

“언니?”

… …

이양이 끝없이 언니를 불러댔다. 그녀의 어깨에 기대온 이양의 입에서 옅은 술내가 났다.

“이미 마신 것 같은데?”

그녀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가 한발 나서 이양을 잡았다.

“술 마셨어?”

이양이 이번에는 그에게로 기대여왔다. 

“조-기 서서 기다리다가 딱 하나 마셨지…”

이양이 가리킨 아까 서있던 곳에 비닐주머니 하나가 놓여있었다. 

“바로서봐.”

그가 이양을 밀어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양은 다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언니, 같이 마셔요. 제발.”

“이거 몇개나 마신 거야? 아니, 다섯개나 마신 거야?”

그가 비닐주머니에서 빈 캔을 련속 주어내여 쓰레기통에 던진다. 그리고는 아직도 묵직한 비닐주머니를 들고 다시 이양의 팔을 잡았다.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그는 화가 나있었다.

“안 갈 거예요. 이거 다 마시기 전까지는.”

이양이 어거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술에 많이 취한듯 싶었다.

그가 이양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양이 소리를 질렀다.

“아프다구요. 아프다구요! 사람을 꼭 그렇게 쫓아버려야겠어요?”

이렇게가 아니고 그렇게라니? 그녀는 이번 뿐 아니라 전번도 있었구나 눈치챘다. 쫓아냈어? 왜? 같이 사는 건 아닌가 보네… 헌데 다행이라는 이 느낌은 대체 뭐지? 그녀는 까치마냥 우짖어대는 자신의 소리를 듣고 있다가 씁쓸해진다. 저 사람이 뭐라고…

이양의 느닷없는 울부짖음에 그가 깜짝 놀라 잠간 팔을 놓아버린 새 이양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다시 그녀에게로 매달렸다.

“언니, 그럼 언니가 저랑 마셔요. 넹~”

 “일단 들어가 재우는 게 좋겠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였고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동네를 소란스럽게 해서 좋을 일은 없을 터였다. 그녀나 그나 어차피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할 터이니까.

그녀가 이양을 달랬다.

“알았어. 그럼 들어가서 딱 한잔만 마셔…”

그녀가 이양을 부축해서 안으로 들였다. 이양이 희죽희죽 웃으며 그녀의 손에 이끌려 얌전히 따라 들어왔다. 문앞에서 그녀가 그를 되돌아보았다. 

“이쪽으로 서세요. 문 열게요.”

그가 열쇠를 꺼내서 문을 열었다. 

이양이 먼저 문을 젖히고 집안에 달려들어갔다.

“집에 왔네… 좋다~”

그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들어가기를 권했다.

“들어오세요. 제가 혼자서 저 친구랑 있기엔 불편해서 그래요.”

그가 한숨을 내쉬였다. 그녀는 빨리 자신의 침대로, 하다 못해 싫었던 쏘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남자의 한숨 앞에 별수 없이 남자의 집 문턱에 발을 들이민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익숙한 노란 베개를 벤 곰돌이인형을. 여기저기 방을 기웃거리던 이양이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이양의 품안에 그것이 안겨져 있었다.

“사장님, 곰돌이 좋아하셨어요? 웬 이런 게 여기 있을가?”

이양은 아까와는 달리 몸가짐이 반듯해 보였다.

“그건…”

남자가 다가가 이양의 손에서 인형을 빼앗았다.

“아무 거나 막 다치는 거 아니다.”

그가 급히 인형을 침실로 들여갔다. 

이 남자는 뭐지? 싶어진다. 그러다가 서뿌른 판단은 금물이란 생각도 든다. 그런 곰돌이인형이 어데 하나 뿐일라구?

“인형 좋아하시나 봐요?”

남자가 거실로 돌아오자 그녀가 물었다.

“아, 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뭐랄가요… 아까 그 인형을 보면 내 자신을 보는 듯해서……”

“그건 또 뭔 말씀이세요? 사장님. 내가 사장님 자는 걸 몇번 봐서 아는데… 전혀 닮지 않았거든요!”

이양이 빈정거렸다.

그의 얼굴로 어색스런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그렇고 참, 앉으세요… 이 집엔 쏘파 같은 게 없어서, 그냥 여기 앉으세요.”

그가 커다란 방석 하나를 나에게 내민다.

“나는요?”

이양이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넌 여기…”

그가 자신의 옷을 거실바닥에 깐다.

이양이 만족스럽다는 듯 성큼 그 우에 앉았다.

그제야 나는 남자의 집 거실을 휘둘러본다. 거실은 정말 내가 갖고 싶었던 그대로 텅 비여있었다. 텅 빈 거실엔 나무상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거짓말처럼 방석도 내가 깐 것이 유일했다. 내가 지금 지독하게 갖고 싶은 거실, 나는 잠간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실실 웃어버리고 만다.

“완벽하네요!”

내가 감탄했다.

이양이 재빠르게 되물었다.

“완벽하다구요? 내 보기엔 넘 없어보이는데… 사장님, 돈 다 어데다 쓸려구요?”

남자가 아무 대꾸도 없이 캔을 따서 내 앞에 내려놓는다.

“마시죠…”

이런 텅 빈, 내가 꿈꾸던 공간에서 맥주 한캔 쯤은 마셔줘야지 싶다. 집구조가 똑같은 터라 슬슬 다른 칸들도 궁금해진다. 

“미니멀 라이프네요.”

내가 캔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나서 말했다.

“굳이 그걸 쫓은 건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살게 됐네요.”

그가 웃었다.

“요즘은 심플족이 류행이라지요?”

이양이 비꼬는 듯 입꼬리를 샐쭉거렸다. 

이양의 말에는 아랑곳 없이 나는 계속 말했다.

“혹시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책 보셨어요? 그 책이 나오고 또 다른 이는 《나는 어지르고 살기로 했다》 그런 책을 냈더라구요…”

“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책소개는 인터넷에서 봤어요. 이쪽 책제목이 재밌네요…”

그가 머리를 끄덕였고 이양이 말을 받았다.

“《나는 뻔뻔하게 살고 싶다》라던가 《나는 아이없이 살기로 했다》 그런 책도 있던데요?”

이양의 얼굴이 납빛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주는 유리잔에 따라 마셔야 제맛인데…”

“또 어델 가?”

그가 이양을 잡아 앉히려고 손을 내밀었다.

“유리잔 찾으러요.” 

이양이 그의 손을 피해 창문 쪽으로 에돌아 부엌으로 잔걸음으로 나갔다.

“잔 같은 거 없어.”

그가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있네요…”

이양이 유리잔 두개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거… 안 쓰던 거야.”

그가 말했다.

“써라고 있는 거라구요.”

이양이 갖고 온 잔에 맥주를 붓는다. 동그란 유리잔이 눈에 익다. 내가 그그저께인가 버린 물건 중에 저런 유리잔도 두개 있었는데…

나는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는 캔맥주를 든 채 사색에 잠겨있다.

“저도 이렇게 텅 빈 공간을 갖고 싶었어요.”

내가 말을 꺼냈다.

남자가 반응이 없다.

이양이 남자를 툭 쳤다.

“또 잠든 거죠?”

남자가 어, 하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캔을 놓쳐버렸다.

남자가 다급히 캔을 다시 잡았지만 이미 맥주가 쏟여져서 남자의 하얀 티셔츠자락을 흠뻑 적셨다.

이양이 깔깔 웃더니 뛰여가 부엌에서 행주를 찾아들고 와서 흘려진 맥주를 닦았다. 휴지를 찾아보았지만 상 우에도 상 밑에도 없다.

“사장님이 깜빡 잠드는 버릇이 있어요. 이런 사람 본 적 없죠?”

나는 그제야 아까도 남자가 잠든 거였구나, 깨달았다. 

문득 잠들어버리는 남자.

나는 남자의 집도 남자도 신기해졌다.

남자가 옷을 바꿔입으러 침실로 들어갔다.

이양이 물었다.

“조선족이죠?”

“티가 나?”

내가 물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이양이 중국어가 아니라 조선어로 말했다.

“저 분한테서 배운 거야?”

내가 침실 쪽을 눈짓하며 물었다.

“아니, 제 고향도 연변이예요. 조선족들과 함께 한동네서 살았지요…”

“어머, 그랬어?”

나는 리유없이 반가워진다. 

그동안 나도 외로웠던가, 싶던 찰나. 

“헌데 왜 저한테 아까부터 반말이세요?”

금방까지 살뜰하던 이양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언니라고 불러주니 언니라도 된 줄 아셨나?”

아주 작게 혀아래소리로 이양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또렷이 고막을 쳐왔다.

뭔, 이런 애가?

눈길을 들어 그 애를 쳐다보았다.

나는 말 대신 잔을 들었다. 얘는 대체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이양도 따라서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아니, 둘이서 신나셨네요?”

남자가 티셔츠를 바꿔입고 나오다가 비워진 잔을 보면서 말했다.

남자는 아까와 똑같은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남자의 똑같은 하얀색 티셔츠마저 만족스럽다.

“언니랑 친해질려구요…”

이양이 다시 신이 난 듯 떠든다. 아까의 묘한 표정은 가뭇없이 사라져 있었다. 

“언니를 처음 볼 때부터 친근해보였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가게에만 있어서 저 친구도 없어요…”

이양이 내 앞의 빈 잔에 맥주를 채웠다.

“…”

내가 웃었다.

잠간 침묵이 흘렀고 남자가 말을 꺼냈다. 

“고향이…”

“아까부터 나도 묻고 싶었는데 언니, 고향이 어디세요?”

이양이 남자의 말을 급하게 나꿔챘다. 

이거였구나. 이양이 견제하고저 하는 건.

“물학성이라고 아세요?”

그녀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되물었다. 이번에도 남자의 옆에 붙어앉다 싶이했던 이양이 말을 먼저 받았다.

“물학성…”

남자가 박수를 쳤다.

“저, 이양의 고향도 물학성이라고 했지?”

이양의 낯빛이 어색해졌다가 금세 본래대로 돌아왔다.

“네, 우리 집도…”

“그럼, 알던 사이일지도 모르겠네?”

남자가 호기심을 표해왔다.

“우리 집은 소학교 근처에 있었는데 어데 집이 있었던 거야?”

내가 눈길을 그녀의 얼굴로 박으면서 물었다.

어쩌면 오다가다 만났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아니면 우에 오빠나 언니나 있다면 모르지… 알고 있을지도?”

“시내랑 좀 떨어진 곳에서 살았어요.”

이양이 담담히 말을 맺었다. 그다지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보였다. 

“너 오빠 둘이 있다고 하질 않았어? 큰오빠가 너랑 아홉살 차이가 난다고?”

남자가 집요하게 이양에게 물었다.

“그럼 나랑 동갑인데?”

내가 말했다.

“저보다 어리시네요?”

남자가 나를 보며 웃었다.

이양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장님, 저 먼저 가볼게요. 넘 늦은 거 같아서…”

너무 갑작스러워 남자가 이양을 쳐다보았다가 나를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았다가 이양을 쳐다보았다.

이양은 그대로 휭하니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으로 나가면서 아직 주방 바닥에 놓여있는 밥가마를 가리키면서 밥 잘해먹어요, 했다. 붉은색의 전기고압밥가마였다. 익숙하다 싶어 생각해보니 엄마가 잃어버린 밥가마도 그것과 똑같이 생긴 거였다. 

현관에서 신을 신던 이양이 갑자기 신발장 밑에서 종이봉투 하나를 집어내더니 내게 말했다. 

“이거, 언니가 내다버린 거죠?”

며칠 전 아침에 내다버린 종이봉투였다. 

“저건?”

나는 아연해진다. 아까부터 아니겠지? 했던 것들이 명확해져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버렸던 곰돌이도 컵도 그리고 아마도 책이나 다른 것들이 고스란히 이 집안 어덴가로 스며들었을 것이였다.  기분이 찜찜했다. 이미 내가 버린 것들임에도 기분은 찜찜했다. 그렇다면 내가 입던 옷도? 그것은 이미 불쾌감의 수치를 훨씬 넘어가있었다.

“왜?”

스스로도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왜 이양이 기어코 내게 보이려 한 건지 그걸 묻고 싶었는지 아니면 남자가 내가 버린 것들을 주어들인 리유를 묻고 싶은 건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이양이 사라졌다. 가게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갔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지만 사실이였다. 그동안 이양을 믿어온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차피 가게는 조만간에 이양에게 주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였다. 친구녀석 덕분에 투자가 잘되여 생각지도 않은 돈을 벌게 되였고 가게가 그다지 그에게 큰 의미가 있던 건 아니였다.

메일함에서 이양의 편지를 발견한 건 불쾌했던 그 날이 있고 나서 딱 열흘 뒤였다. 열흘 뒤 이양은 가게를 팔았고 그 돈을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이양이 사라져버렸다는 것도 가게를 팔아넘겼다는 것도 그는 이양의 메일을 보고서야 알게 된 셈이였다.

 

이양의 편지는 이랬다.

 

사장님, 그동안 고마웠어요. 처음으로 저를 사람대접 해준 게 아마도 사장님이였을 거예요. 그래서 오래 사장님 곁에 남고 싶었어요. 제 얘기를 꼭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어쩌면 사장님이라면 그런 저를 보듬어 안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우리 집 막내였지요. 오빠가 둘이 있다고 했는데 실은 셋이였어요. 셋째오빠가 내가 여길 오기 전해에 죽었거든요. 전혀 갈 일 없는 6층 베란다에서 추락해서 죽었지요.

저의 아버지는 도둑이였어요. 살던 고향에서는 더는 살 수가 없어서 도망을 쳐서 왔다가 그 곳에 정착한 거라고 했어요. 거기서 엄마를 만났고 엄마는 두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아버지가 도둑이라는 걸 알았지요. 그리고 고향에서 도망을 했던 건 도둑질을 하다가 실수로 사람이 다쳤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 때 알았다고 해요. 엄마는 그래도 두 아이를 보더라도 다시는 도둑질을 안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그렇게 살았나 봐요. 그렇게 셋째아들을 낳고 또 저를 낳았지요. 제가 일곱살 때 큰오빠가 도둑질로 소년원에 붙잡혀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어머니 몰래 도둑질을, 그것도 재간이라고 전수해준 거라나요… 어머니는 결국 화김에 목을 맸어요. 셋째오빠가 죽은 것도 도둑질과 관련이 있다는 걸 나도 알아요. 엄마가 죽고 나서 아버지와 오빠들은 아예 일을 할 예산은 없이 여기저기로 나돌아다니면서 도둑질을 일삼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마도 큰오빠 이름만 대면 언니는 분명 우리 집을 알 거예요. 큰오빠가 소년원에 가게 된 것도 그 언니 때문이니깐요. 한창 사춘기였던 큰오빠가 사랑했던 녀자였으니깐요. 민희, 차민희. 그 언니의 이름이였죠. 아주 어렸을 때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이상하죠. 나는 첫눈에 알아봤는데 그 언니는 나를 못 알아보더라구요. 큰오빠가 훔친 건 책이였어요. 그 언니가 책을 좋아한다고 서점을 턴 거죠. 언니가 큰오빠가 가져간 한무더기의 책들을 내놓지만 않았더라도 큰오빠는 탈 없이 학교를 마치고 대학도 갔을 거예요. 큰오빠는 공부를 잘했거든요. 큰오빠는 절대 그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돈을 훔치진 않았어요. 큰오빠는 그 당시에만도 순수한 사랑을 꿈꾸던 소년이였는데 거기에 어찌 훔친 돈 같은 것이 그 사랑에 끼여들게 하겠어요. 사람들은 아버지가 도둑이라는 것만 믿고 그 자식도 도둑이라고 밀어붙여서 돈과 책을 같이 잃어버렸다는 서점주인의 말만 믿은 거예요. 아마도 민희언니도 믿질 않았을 거예요. 헌데 서점에서 잃어버린 2000원은 결국 오빠가 훔친 거 맞아요. 큰오빠가 아니라 둘째오빠가.

그런 집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가 없었어요. 아무도 나를 가까이하질 않았죠.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혼자였어요. 엄마가 죽고 나서는 집안의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했어요. 밥 하고 설겆이 하고 아버지와 오빠들의 빨래를 하고. 나는 그러면서 절대로 아버지나 오빠들처럼 살진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요. 엄마를 그렇게 죽게 만든 아버지가 너무 미웠어요. 나와 년년생인 셋째오빠가 죽고 나서 나는 그 집을 떠나야겠다고 작심했어요. 그리고 끝내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 갖고 북경 행 기차를 타게 된 거구요. 그래도 운 좋게 사장님을 만났고 쭉 이대로 오래동안 살 줄 알았어요. 

이 돈은 내가 벌어서 꼭 갚을게요. 도둑년이라고 욕하진 말아주세요.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그리고.

갖다 드린 밥가마는 실은 언니네 집 거였어요.

 

두번째 편지는 편지라기보다 쪽지 같았다.

 

나는 나를 버리고 싶다.

 

딱 한마디 뿐이였다.

처음에는 화를 참지 못해 그는 펄펄 뛰였다. 녀동생처럼 믿고 아꼈던 아이였다. 친구녀석의 첫 반응은 신고할 거야? 였다.

결국 그는 신고를 하질 못했다. 가차없이 당했건만 가차없이 몰아붙이기는 싫었다. 이양에게 한번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이양의 큰오빠처럼 결국 도둑으로 만들어서는 안되겠지? 암?! 어차피 돌려줄 거라고 말했지 않았는가… 그랬다가도 그는 또 화가 나서 펄쩍 뛰였다. 수남에서 수납으로 불리워졌을 때 보다도 더 황당했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냥 달라고 하지, 달라고… 그는 상심하고 또 상심했다. 그는 이양의 마지막 한마디가 맘에 걸리기는 했다.

“나는 나를 버리고 싶다.”라니. 

 

그 다음날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첫 비였다. 그는 잠 속에서 투덕거리고 자신을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분노를 하다가도 잠들 수가 있다는 것, 그는 그것이 복인지 슬픈 일인지 헛갈려졌다.                       

열흘 동안 그는 옆집 녀자를 보질 못했다. 그러니까 열흘 동안 가게마저 아예 방치하고 낑낑 앓고 있었던 건 그녀 때문이였다. 옆집 녀자는 더 이상 아무런 물건도 내다 버리지 않았다. 쓰레기를 버리러도 나오지 않은 듯했다. 잠든 새에 나왔다 다시 들어갔나? 그는 온통 그녀의 집문소리에 신경이 씌여져 있었다. 뭐라고 해석을 해야 할 테지만, 결국 열흘을 낑낑거리며 합당한 리유를 찾고저 했지만 모든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그녀의 내리깐 눈초리에 걸려있던, 넌 이상하고 더러운 인간이야! 하는 말을 읽어냈다. 스스로도 자신이 이상해 보였고 그러는 그녀가 충분히 리해가 갔다. 차라리 그 순간에 잠들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는 생각한다.

그는 주방 바닥에 놓여있는 전기밥가마를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비가 내리기 전부터 비가 주룩주룩 퍼붓고 있는 어둠이 깃들이 시작한 저녁녘까지 수십번을 반복하고 있었다.

용기를 내본다. 그녀가 자신이 이상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용기를 내여 무거운 전기밥가마를 들고 문을 나선다.

이제 그녀의 집 문앞에 그는 서있다. 

초인종을, 초인종을 눌러야 한다. 전기밥가마가 자꾸 아래로 처진다.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침실 침대에 누운 채 벨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는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네번째 만에 벨소리가 끊겼다.

집안에 흐르는 정적.

숨을 크게 들이쉰다. 나는 옆집 남자일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다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한번, 두번, 세번.

이번에는 세번 만에 끊어버렸다.

정적. 

아까보다 더 깊어진 듯한 정적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마주쳐보자. 이렇게 피하고 있는 것도 불편하니까. 그렇다고 이사 가?

나는 그 날부터 쭉 이사 갈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다.

차라리 이사 가라고 해볼가?

나는 침실 안을 휘둘러본다. 집은 내가 이제 퇴직을 하면서 말년까지 쭉 살 생각으로 고심고심하면서 고른 집이였다. 사십도 안돼서 벌써 퇴직하고 뭘하면서 살 건데? 주변사람들의 걱정에도 아랑곳 없이 꿋꿋이 실행에 옮긴 그 결과물이였다.

천천히 할 것들을 찾아봐야지 뭐… 그러면서 시작했던 것이 고작 버리기였고 미니멀 라이프는커녕 이런 사달이 나고야 만 거였다. 나는 이번에는 꼭 남자의 입에서 대답을 듣고 싶었다. 

 

길에 나서면 여기저기서 반색했다. 

네가 민희니? 북경대학에 다닌다는…

연구생공부를 할 무렵이였고 엄마는 고향에 어쩌다 온 딸을 매일이다 싶이 여기저기 끌고 다니길 좋아했다. 그 때만도 고향에는 오래도록 같이 지내온 많은 이웃들이 살고 있을 때였고 곧바로 천지사방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함을 모를 때였다. 

갖다 먹어유… 떡이며 과일이며 먹으라고 떠밀어주는 인심 좋은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이 있었고 북경엔 땅 밑으로 기차가 다닌다는 게 정말이예요? 하고 궁금해하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그 날도 그녀는 엄마와 함께 시장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과일이며 먹거리를 사고 있었고 막 채소를 사러 내려갈 참이였다. 채소난전이 벌려져 있는 입구에서 그녀는 그 아이를 보았다. 이선. 그 애의 이름은 이선이였다.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였고 그녀의 가슴에 아프게 묻혀져 있는 아이. 그녀 기억 속의 그는 아이였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로부터 9년이란 세월이 흘러있었다. 이선은 온갖 채소들을 벌려놓은 좌판 뒤에서 채소를 팔고 있었다.

“이거 하나 더 드릴게요. 다음에 또 사주셔야 돼요. 예쁜 아줌마…”

도마도 하나를 더 올려놓으며 능청스럽게 장사거래를 하고 있는 이선을 마주쳤을 때 그녀는 그 사람이 이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너?”

그녀는 좌판 밖에 굳어져버렸다. 연구생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에 비해 이런 난전에서 좌판을 벌려놓고 채소장사를 하고 있는 이선이라니. 언제 소년원에서 나왔는지 궁금했지만 그녀는 몸을 돌렸다. 

“저 애 너 한반에 다니던 애가 아니였니? 그 때…”

엄마는 물어왔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때 그 책들을 내놓지만 않았어도… 왜 그랬던 걸가?

그녀는 이선을 좋아했지만 도둑이라는 이선마저 좋아할 용기는 없었다. 이선은 책만 훔쳤다고 했다. 그녀를 위해서. 열두권짜리 세계명작선집이였고 그녀도 이선도 돈이 없었다. 당시 유치원 보조선생님으로 일한 엄마의 월급은 쓰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았다. 반짝이는 금줄로 테두리를 한 세계명작선집은 그녀에게는 사치였다. 

“책은 가져왔지만 돈 같은 건 절대 훔친 적 없어.”

서점주인이 경찰과 함께 학교에 나타났을 때 이선은 분명히 말했지만 그녀는 믿질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선의 아버지가 유명한 도둑이라는 것도 그 때 알았다. 그녀는 책상 안에 넣어둔 책들을 꺼내 묵묵히 서점주인의 앞으로 내갔고 그 날 오후 그녀는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다. 후에 건너서 들은 얘기로는 서점주인이 그 날 책을 들여오려고 찾아놓은 2000원이나 되는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고 했다. 한달 월급이 사오백원이던 그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돈이였다.

무거운 책을 안고 나가는 그녀를 지켜보던 이선의 눈빛을 그녀는 또렷이 기억한다. 절망과 실망과 슬픔이 범벅이 된 그런 눈빛, 그녀는 마지막까지도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질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선을 만났던 걸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문을 연다.

먼저 빨간색의 전기밥가마가 보였고 그다음 남자가 보였다. 남자의 말소리가 둥둥 귀가에 울린다.

“이걸, 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어이없게도 나는 모든 것을 떠나서 갑자기 남자의 기면증이 궁금해진다. 인터넷에서 찾아읽은 기면증이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유력한 가설을 떠올리면서…

내가 물었다.

“혹시 모다피닐을 드세요?”

출처:<장백산>2017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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