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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부자 집 가정부로 취직을 한지도 반년이 지났다. 100평의 주택에 화장실 3개 거실 4개에 객실과 주방은 거실의 두 배나 된다. 50대의 부부와 자녀 셋에 시부모와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인집은 하루 빨래만 세탁기에 3,4차 돌려야 하고 빨래를 정리하고 다림질 하는 시간도 거의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
결벽증이 있는 주인마누라는 베개커버는 일주일에 한번, 이불커버는 두주에 한번, 이불은 날씨만 좋으면 옥상에 널어놓고 문지 털기를 반복해라 했고 지어 침대커버는 매일같이 테이프로 먼지를 묻혀내기를 원했다. 퇴근시간 5분을 앞두고 옷 한 벌을 내밀면서 다림질 해달라, 슬리퍼를 씻어라, 고구마를 쪄달라, 옷 정리를 해달라, 여하튼 제시간에 퇴근 시키려 하지 않고 퇴근시간이 돼도 퇴근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 수요에 따라 퇴근시간이 30분이나 연장이 돼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연한 듯 일을 시켰다.
특히 생선을 좋아하는 나의 룸메이트는 내가 먹을걸 들고 집에 들고 갈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네가 나를 위해서라도 그 부자 집에서 쭉 일해야겠다. 이거 꿩 먹고 알 먹기 아니니?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
두 달이 지나니 주인집 남자가 식사를 했는지를 묻기도 하고 시아버지는 고향이 어디냐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때로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증조할머니가 남몰래 호주머니에 만원자리를 넣어줄 때면 얼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똥을 묻힌 팬티를 내놓기도 하고 너무 많이 먹어서 화장실을 초토화 시킬 때도 있고 쉴새 없이 지팡이를 두드리며 집을 헤집고 다녀 정신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5분에 한번씩 물컵을 내놓아 밉상이기도 했지만 고향에 두고 온 비슷한 처지의 친정엄마 생각에 증조할머니한테 정성스레 음식상을 차려주기도 한다.
하루는 7살나는 여자애가 나한테 물었다. '청소하는 할머니는 왜 우리와 같이 밥을 안 먹어요?' 예상치 않았던 물음에 당황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줄 수 밖에 없었다.
"너는 공부가 위주이고 나는 청소가 위주니깐 설거지 끝나고 먹어야지."
우연하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다가 같은 빌딩에 있는 가정부와 마주쳤다. 서로 주인집 흉을 봤는데 그 집에서도 그녀한테 반찬은 꼭 전날에 먹다 남은걸 준다고 했고 그 집은 온종일 식구 넷이 집에 틀고 있어 하루 종일 허리를 펼 시간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낫다고 나를 부러워하는 그 언니를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매일 같이 맥주를 찾느라 냉장고를 이 잡듯 하는 증조할머니가 어느 날 우리 둘만 남았을 때 이런 애기를 했다. 원래 이 집에서 몇 년간 일했던 가정부가 있었는데 물건을 집으로 자주 가져가는 바람에 쫓겨났다는 것 이였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그 동안 의심 받은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가정부 일을 하면서부터 점점 변하는 나를 발견했다. 빨래를 묵혀 두지 않고 제때에 세탁하고 설거지를 할 것이 한 개만 있어도 안절부절 못하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컵 받침대를 찾고 과일을 먹어도 포크가 있어야 하고 반찬도 그릇에 예쁘게 담아 먹으려 하고 주방에 두 번씩 나갔다 오더라도 밥을 작은 공기에 담아 먹으려 한다. 거기에다가 집에서 까지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는 나를 보고 룸메이트가 이런 표현을 했다.
"부자도 아닌 것이 우아한 척 하기는. 내사 눈이 시려서 못 봐주겠다. "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다. 소 뒷걸음 치듯이 싫은 발길을 돌려 주인집으로 갈 때 마다 나 자신을 위안한다. 이 집이 아니면 네가 어디에 가서 하루에 7만원이란 돈을 벌 수 있겠니? 식당에서 12시간 힘들게 일하기 보다 이 집에서 하루 8시간 일하면서 쉬고 싶을 때 쉴 수도 있고 때로는 부자 집 떡고물도 주어 먹을 수 있는데 이 일을 포기하면 내가 바보지. 부자 집 종 노릇도 이만하면 할만 한 것 아닌가.
동북아신문 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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