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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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녀를 따라
2011년 08월 03일 15시 26분  조회:2783  추천:1  작성자: 손룡호

그녀를 따라


손룡호



    골안을 빠져나가는 뻐스엔 사람이 콩나물시루같이 꽉 들어찼고 골안을 들어가는 뻐스엔 사람이 없어 헐렁했다. 억수로 쏟아지는 장마비에 뻐스는 길이 끊어져 애를 먹는다. 그래도 간신히 이어놓은 길로 뻐스는 부르릉거리며 용케도 빠져나간다. 차체가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거리면서 한굽이 두굽이 톱아오르더니 끝내는 구름에 휩싸인 산마루에 올라섰다. 이제는 미글어져 내려가야 했다. 나는 한숨을 올리쉬였다. 처음 오는 취재길이 이렇게 갈수록 심심산골일줄은 몰랐다. 두만강하류에 자리잡고 한생을 수문탐사로 늙어온 오십대의 한 공정사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였다. 떠나올 때 짐작은 했지만 그곳까지 뻐스가 가닿을리 만무한 일이였다. 과연 뻐스는 산을 내리지도 못하고 멈춰섰다.

   《손님 여러분, 미안합니다. 우리 버스는 닷새만에 시험적으로 뛰는 버스입니다. 내다보십시오. 홍수에 아래마을도 절반이상 잠겼습니다. 더 갈수 없으니 여러분들은 차에 앉아 되돌아 가시던지 아니면…》승무원아가씨의 초조한 목소리였다. 나는 진작 바깥상황을 읽고있었다. 산기슭웃쪽의 평버짐한 곳에 웅기중기 서있었다.

   《자리 좀 비켜요.》

    나의 안쪽에 앉은 여지껏 말없던 녀자가 우뚝 일어섰다. 나는 무릎을 안으로 포개였다. 그녀는 서슴없이 내리였다. 사람들은 이상한 눈길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순조롭게 가긴 다 틀린 길이지만 녀자가 내리는데 남아있을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내리였다.

    보기 드문 물란리였다. 아래마을은 물속에 잠겨 사라져버렸고 오직 삐딱하니 서있는 전선대만이 그 자리가 원래 부락이였음을 알려주고있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여기서도 시오리 더 된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이 느직느직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해볕이 그 새로 가끔씩 빛을 발산하고있었다. 갈만치 가보리라 작심하고 나는 어정어정 걸었다. 그녀도 내 앞에서 걸었다. 좀 지나서 그녀는 길섶언덕에 세워진 천막으로 훌 들어가버리였다. 나는 그대로 걸어내려갔다. 강이 눈앞이였다. 나는 다가서려다가 무춤 멈춰서버렸다.

    헌데 뒤엉켜져 휘우뚱거리며 떠내려가는 가정기물들, 나무로 만든것이면 다 떠내려가는 판이였다. 간혹 죽은 돼지도 배가 불룩해서 떠내려간다. 뿌리빠진 나무가 둥둥 떠내려 온다. 그우에 물에 젖은 토닭 한마리가 볼품없이 서있다. 나무가 파도속에 흥청대자 닭이 보이질 않았다.

   《첨벙!》

    나의 발섶에서 서너메터 되는 곳이 무섭게도 뭉청뭉청 물속으로 꺼져들고있었다. 내 발밑도 움찍거렸다. 농촌집 앞뜨락만한 땅이 내려앉고있었다.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내뛰였다. 위험했다. 빠지면 끝장이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쭉 내돋았다. 이때 아까 차에서 먼저 내리던 그녀가 긴장한 나와는 달리 제법 가벼운 걸음으로 내앞에 나타났다. 참대같이 미끈하게 쭉 빠진 녀자였다. 젖가슴이 곱게 삐여진 그녀의 몸매는 깃을 활작 펴려는 아름다운 공작새를 방불케 했다. 부채살같이 드리운 주름치마가 절주있게 흥청이였다. 그녀는 분명 나를 향해 주저없이 다가오고있었다.

    나는 그녀를 알고있었다. 안지가 주시간도 안되였다. 두시간저에 그녀는 시내뻐스역에서 올라 내곁에 앉았었다. 나는 짙은 향수냄새를 두시간이나 맡았다. 풀어헤친 숱진 머리카락이 내 바른 볼편을  싫지않게 간질러댔었다. 둘은 종점에 내릴 때까지 한마디 대화도 없었다. 너무도 예쁜 녀자가 도고하게 곁에 붙어앉았으니 활달한 기자도 굴먹은 벙어리가 되고말았다.

    그녀는 벌써 내앞에 와서 멈춰섰다. 뭘 물어보면 대답이라도 하자고 궁리하고있는데 그녀는 알은체도 않고 사품치는 강물만 이윽토록 지켜보고 서있었다.

   《동문 어디로 가자고 그러오!》

   《수문소로 가려구요.》

   《길이 끊어졌는데 어떻게 가겠소!》

    그녀는 어떻게 간단 말도 없이 돌아서더니 물에 뜯긴 산기슭을 무작정 톱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겨운 장마에 푹 젖은 숲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가 좀 정신충격이나 받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한다하는 사내도 주저하게 될 길없는 길을 그녀가 아무 주저도 없이 헤쳐나아가니말이다.

   《동무, 그렇게… 어떻게… 가자구… 어서 돌아서시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녀는 어느덧 숲속에서 묻혀버리고 흔들리는 나무잎만 보이였다.

    처녀의 거동은 나를 몹시 불안케 하였다. 그녀의 신상에 어떤 위험이 생길지 누가 알랴! 이 산은 뱀이 욱실거리기로 이름있는 산이다. 게다가 녀자가 선뜻 나서는 길을 남자가 못간다는것도 아예 말이 안되였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를수밖에 없었다. 따를바엔 같이 가는것이 여러모로 다 좋은 일이였다.

   《동무―, 좀 기다리오!… 한길인데 같이 가기오!》

    나는 숲을 헤치면서 소리쳤다.

   《싫어요!― 산에서 사람이 제일 싫어요!―》

   《나는― 기자요― 나― 쁜― 사람이― 아니요!―》

    나는 손나팔을 해가지고 목청을 뽑았다. 

   《좋은 사람이면 따르지 말아요!》

   《동무가 걱정돼서 그래오!― 뱀한테 물리거나 물에라도 빠지면 어쩌겠소!―》

   《뱀은 나를 안물어요! 물에 빠질 념려도 없어요!―》

    나는 무어라고 더 할말이 없었다. 오히려 내쪽에서 더 겁이 났다. 시가지의 넓다란 아스팔트길에서 걷던 놈이 산골짜기의 키넘는 나무숲을 헤치자니 자꾸만 머리만 쭈볏쭈볏 일어섰다. 이왕 들어선바엔 울며겨자먹기로 그녀를 따라야 했다.

    땀동이나 꽤 흘려서야 그녀의 뒤모습을 볼수 있었다. 깨끗하던 치마자락이 이슬에 젖고 풀물이 들어 볼품없이 얼룩이 져있었다. 물론 내 꼴은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나을수는 없었다.

   《숨, 숨이 차오… 좀 쉬, 쉬였다… 가기오!》

    나는 목에서 겨불내가 확확 치밀어오르고 벌써 땀벌창이 되여있었다.

   《하늘을 봐요!》

    야무진 그녀의 대답이였다. 머리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새 구름을 뚫고 해가 방싯이 내비치고있었다.

   《비오기는 멀었소! 좀― 쉬― 기― 오!》

   《여기가 어디라고 쉬자고 그래요! 이제 소나기가 쏟아지면 이 골짜기로 무서운 골물이 터져요. 물귀신이 되고싶으면 쉬세요!》

   《해가 머리를 내밀었는데 무슨 소나기요?》

   《정말 비보얘요. 장마철에 나타나는 해는 소나기가 터질 징조예요!》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했다.

   《손바닥만한 구름에 뭐 놀랄게 있다구…》

    나는 혼자말로 두덜거리며 그녀를 가까스로 따라나섰다. 한참후 아니나다를가 산마루는 새까맣게 흐려오고있었다. 미구하여 검은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으면서 삽시에 주위가 캄캄해지고 산기슭을 훑으면서 찬바람이 쏴― 쏴― 불어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우뢰가 울고 번개가 하늘을 쪼개며 억수로 폭우를 쏟아부었다. 천지간은 온통 물이다. 물뿐이다!

    눈깜짝할새에 온 몸은 물참봉이 되였다. 눈을 떠도 앞을 가려볼수 없었고 또 눈을 뜰래야 뜰수조차 없었다. 나는 그녀가 앞에 있다는것만 생각하고 죽어라고 앞만 헤치고 나아갔다.

   《어델 그렇게 비여져 나가요? 빨리 돌아서 곧추 이리로 올라와요. 좀 있으면 골물이 터져요! 어서요!》

    그녀의 부르짖음소리는 내 등뒤에서 들려왔다. 앗차! 그러고보면 내가 필시 방향을 오끼고 헤맨것이다.

   《어데 있소?…》

   《여―기― 있―어―요!―》

   《그―냥―소―리―쳐―주―오!―》

   《네!― 빨―리―!》

    그 웨침소리가 방향이였다. 등대였다. 희망이였다! 나는 그녀의 웨침소리를 따라 젖먹던 힘까지 다해 산기슭에 매달렸다. 어디선가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쏴― 하고 홍수가 터지는 소리가 막 들려왔다. 더럭 겁을 집어먹은 나는 황급히 잔나무가지를 마구 움켜잡고 톺아오르느라 막 악을 썼다. 한창 그러고있는데 문득 발밑이 허망 무너져내리며 두발이 사품치는 골물에 할퀴우고있다는감이 뇌리를 탁 쳤다. 점점 그 감각은 뚜렷해졌다. 손에 쥐인 잔나무뿌리가 뽑히는 날이면 나는 끝장이다.

   《빨―리! 동무때문에 내―죽―소―!…》

    나는 단말마적으로 부르짖었다. 죽고싶지 않았다. 어찌하여 죽는단말인가?! 그러나 손맥은 점점 풀리고 나무뿌리는 하나 둘 뚝뚝 끊어지고있었다.

    아, 하느님 맙시사! 유망한 김일관기자가 죽습니다. 취재길에 한 녀인을 걱정하다 죽습니다. 꽃같은 안해와 아들을 두고 36살에 심심산골에 와서 객사합니다…

   《빨―리!―난― 죽…》

    이때였다. 무언가 내 발바닥을 툭툭 치였다. 분명 골물에 딩구는 돌이리라!

   《악―》

    나의 비명소리와 함께 내가 매달려있던 잔나무뿌리가 뭉청 뽑히여나갔다. 끝장이였다. 철저히 끝장이였다!

   《저때문에 죽어봐요! 두다리는 왜 허공에 달아매둿나요?》

    느닷없이 그녀가 나의 발아래쪽에서 나의 종아리를 툭툭 차면서 삐꼬아대고있었다. 그제야 나는 두다리를 놀리면서 일어섰다. 완전히 착각에 놀랐던것이다. 발밑의 흙이 뭉클 꺼지니 골물이 치며 뜯어가는 줄로만 알고 애오라지 희망을 잔나무들과 그녀한테만 걸고 펀펀한 두다리의 공능을 상실했던것이다. 뜻밖에 들이닥친 공포가 사람들을 얼빤하게 만들 때도 있는가부다.

   《어서 제 손을 쥐여요!》

    나는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 둘은 곧추 산으로 올랐다. 우리가 자리를 뜨자 사나운 골물이 들이닥쳤다. 좀만 늦어도… 나는 뒤일을 생각하기조차 무서웠다.

   《됐어요!》

    그녀가 됐다고 하지만 나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 손을 놓으면 생명선이 동강나는것 같아서였다.

   《됐어요! 이 손을 놓아요. 아파 죽겠어요!》

    그녀가 손을 뿌리쳤기에 나는 손을 놓고말았다.

    우리가 머문 곳은 썩바위가 삐죽이 내민 자그마한 굴이였다. 소낙비를 귾기에는 안성맞춤이였다. 아마 70년대에 전쟁준비로 파다만것인것 같았다.

    나는 두다리가 해나른해서 아무데고 주저앉고말았다. 찰나, 내 엉덩짝이 뭉클하며 벌에게 쏘인듯 때끔해났다. 나는 후닥닥 놀라 뛰쳐일어났다.

   《뱀!》

    그녀가 부르짖었다. 삽자루만치 실한 독사가 다발을 틀고있는것을 보지 못하고 그만 깔고앉았던것이다. 놀란 산주인은 스르륵 따발을 풀며 대가리를 바싹 추켜들었다. 독을 쓰며 날름거리는 그 혀가 무척 끔찍스러웠다.

   《냉큼 뒤로 피해요!》

    그녀의 새된 소리에 내가 뒤로 흠칫 피하자 개대갈통만한 돌이 독사를 여지없이 짓저겼다. 뱀은 세곳이나 동강나서 늘어지였다. 그제야 나는 숨이 활 나갔다.

   《비를 피해 들어온 뱀 같아요 물리지 않았나요?》

   《가만, 아주 때금하던데…》

   《그럼 물렸어요! 어디예요?》

   《여… 여기!》

    따끔한 엉덩작이 골을 이룬데서 좀 오른쪽이였다.

   《어서 벗어요!》

    그녀는 명령조로 말했다.

   《못… 못벗겠소!》

    생면부지의 처녀앞에서 어지 엉덩작을 드러내놓는단말인가? 너무도 망칙스러운 일이라 나는 바지춤을 쥐고 뒤로 비실비실 피했다.

   《죽겠어요 살겠어요? 여기엔 약도 의사도 없어요. 시간은 생명이예요. 빨리 벗어요!》나는 돌아서서 띠를 풀었다. 띠가 풀리기 바쁘게 바지는 아래로 활 내려가고 이어 속내의도 쭉 벗겨졌다. 그녀는 찬찬히 보고있었다.

   《물렸어요! 어서 엎드려요!》

    나는 시키는대로 엎디였다. 그녀는 꽃가방을 헤치고 안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더니 아구리쪽을 돌에 대고 탁 치는것이였다. 술냄새가 코를 콱 찔렀다. 그녀는 쪼각난 병쪼각을 들고 다가왔다.

   《그건 왜서?…》

    그녀는 대답도 않고 무작정 내 엉덩작에 달라붙었다.

   《으윽!― 미쳤소?!… 아갸!―》

    엉덩짝은 모질게 아파났다. 나는 너무도 아파서 죽은 뱀을 마구 움켜쥐고있는줄도 몰랐다.

   《진정하세요. 살점이 떨어져서는 죽지 않아요!》

    그녀는 힘겹게 뱀에게 물린 자리를 오려내였다. 입으로 상처를 한참이나 빨아대더니 그 자리에 술을 팍 쏟았다. 나는 또 한번 죽었다 살아났다.

   《됐… 됐어요! 이래도 죽는다면 저도 어쩔 방도가 없어요!》

    그녀는 숨이 차서 할작거리면서 자기의 치마깃을 쫙― 찢었다. 나의 입술은 이발에 옥물리여 피가 흘렀고 손에 주인 뱀은 죽탕이 되여버렸다. 그녀가 다 동인 다음에야 그녀의 도움밑에 겨우 바지를 주어입었다.

    그녀는 맥이 진해서 바위벽에 기대였다. 나는 호주머니를 들춰 손수건을 꺼냈다.

   《옛소! 그… 입을 닦소! 맨… 피… 요…》

    그녀는 손수건을 받아 입술을 싹싹 닦았다. 깨버린 술병을 보니 화룡수수술이였다.

   《아버지께서 술을 즐기시오?》

   《예! 이 술을 즐겨 마셔요. 지금즘은 술이 떨어져…》

    그녀의 고운 눈에는 이술이 가랑가랑 맺혀져 반짝이였다. 아마 아버지의 신상을 걱정해서 나오는 근심의 이슬이였을것이리라!

   《그런걸 깨버렸으니 어쩐다오?》

   《아직 여러병 있어요. 이제 또 뱀한테 물리면 그것마저 거덜이 날거예요!》

   《절… 절대, 안물리겠소. 그런 도깨비수술을 난 두번 다시 받을수 없소!》

   《저도 그러기를 소원이예요. 아버지 전화를 받은지가 벌써 사흘이 지났어요.》

   《동무의 아버지는 뭘 하는 사람이요?》

   《두만강막치기의 수문소에 계셔요.》

   《성함은?》

   《김득진!》

    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떨리였다.

   《아, 그렇구만! 나도 동무의 아버지를 취재하러 가는 길이요.》

   《그래요?!》

    나는 너무도 격동되여 더 말이 나가지 않앗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앞이 흐려지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동굴안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돌아서더니 웃옷을 벗어 짜기 시작했다. 나도 전신이 으쓱해나서 옷이 푹 젖었음을 느꼈다.

    내가 옷을 벗으려고 일어서는데 천정에서 모래가 스륵스륵 떨어지였다.

   《무너져요! 어서 이쪽으로!―》

    그녀는 소리치며 나를 와락 잡아당겼다. 뒤이어 쿵― 하면서 모자채양같이 삐죽이 내밀고있던 썩바위가 그대로 내려앉았다. 바로 내가 누워있던 그 자리에말이다. 나의 취재용들가방이 그만 깔리워버렸다.

   《에크!》

    나는 소름이 쭉 끼쳤다. 그녀가 잡아당기지 않았더라면 영락없이 저 돌밑에 깔린 귀신이 되고말았을것이다. 어찌보면 오늘은 꼭 죽을 팔자 같았다.

    돌에 막힌 굴안은 칠흑같이 캄캄하였다. 손을 움직이자니 움직일수 없고 발을 펴자니 펼수 없었다. 그녀의 급촉한 숨소리가 내 코앞에서 났고 내 가슴은 그녀의 가슴을 꽉 누르고있었다.

   《숨… 숨이 안나와요. 빨리… 좀… 비켜요!》

    나는 제한된 공간에서 몸을 비벼탈며 겨우 그녀의 가슴에서 조금 물러났으나 가슴과 가슴은 여전히 붙어있었다.

   《이재… 좀… 숨… 숨이… 더… 비켜요, 빨리!…》

   《더 비킬 자리가 없소!》

   《없긴 뭐가 없어요!》

    그녀는 두팔을 올려 내 어깨를 힘껏 밀었다.

   《앗!》

    등뒤에 뾰족이 내민 돌에 어깨박죽이 찔리여 나는 고음을 뽑았다.

   《아프세요?》

   《모질게 아프오!》

   《아파도 별수 없어요. 등으로 뒤에 돌을 밀어제껴야 우린 살수가 있어요.》

   《난 두번 죽을번한 사람이요!》

   《세번 죽기전에 힘을 내자요. 좀 더 지체하면 질식해죽어요. 자― 어서 밀자요!》

    그녀는 두발과 두팔로 돌을 밀고 나는 등뒤로 힘을 썼다.

   《하나… 둘… 셋!》

    돌이 움쭉거렸다.

   《한번… 더… 하나… 둘… 셋!》

    돌은 끝내 조금 움직여 주멍만한 하늘이 내다보이였다. 그리로 비가 새여 좔좔 흘러들었다. 피할 공간이 없는지라 비물은 그대로 내 뒤덜미에 떨어져 전신을 적시였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싫어서 주먹으로 구멍을 막았다.

   《막지 말아요. 그 비물이 우릴 크게 도울거예요.》

    둘은 계속 밀었다. 구멍은 점점 커지고 비물은 좌르르 흘러들어 바위밑의 흙을 즐벅이 적시였다.

   《살았다! 우린 살았다!》

    죽음을 세번째로 면한 나는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치면서 그녀를 와락 끌어안고 그녀의 얼굴이며 목이며 가슴이며를 마구 키스해댔다. 한참이나 싱갱이질하다가 그녀가 홱 몸부림치는바람에 제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녀의 앞가슴이 반나마 헤쳐져있었다.

   《아니, 내… 이… 이게 무슨… 짓이람? 잘… 잘못했소!》

    나는 그녀의 손을 으스러지게 꽉 쥐고 세차게 흔들어대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녀는 장난꾸러기같은 얼굴을 해가지고 나한테 물었다.

   《제가 만약 남자라면… 어쩌겠나요?》

   《남자라면? 주, 주먹으로 어깨를 치고 포오하며 만세를 부르겠소!》

   《전 남자예요!》

   《아니, 남자라니?…》

   《기자선생님이 그것도 몰라요?…》

   《모르겠소!》

   《모르는것이 좋아요. 그저 제가 남자라는것만 명심하세요! 자, 그럼 어서 길을 다그치자요!》

    그녀는 앞서 굴어구로 나섰다. 비도 그쳤다. 그녀의 손에는 어지러워진 꽃가방이 다시 들려져있었다. 그 험악한 속에서도 그 술병은 보존되여있었다. 나도 찢기고 물에 흠뻑 젖어 쓸수 없게 된 취재용가방을 다시 주어들고 나섰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봐요, 저 곳이 수문소예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군함같은 바위우에 앉아있는 흰 벽돌집이 우렷이 안겨왔다.

   《멀지 않구만!》

   《그래요. 이제 저기 저 강만 건느면 돼요.》

    그녀의 손길 따라 내려다보니 병풍처럼 치솟은 검푸른 벼랑밑에서 사나운 물결이 소용돌이쳐 흐르고있었다.

   《며칠전에 떠나올 때까지도 괜찮았어요. 이런 홍수는 난생 첨이예요. 제발 깊지만 말았으면…》

   《깊어도 괜찮소!》

   《헤염을 잘 치나요?》

    그녀는 상긋 웃었다.

   《칠줄 모르오. 개발헤염은 좀 알뿐이지.》

   《개발헤염을 가지고는 저 물을 못건늘것 같아요.》

   《괜찮소. 난 세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요. 죽을 팔자는 아니란말이요.》

   《제가 없었더라면?》

   《그럼 난 진작 저세상 부처님으로 되였을거요.》

   《호, 그럼 절 다라 모험하게 되였단말이지요?》

   《그렇지! 그러나 살고보니 이번 모험이 한생 가도 잊혀지진 않을거요. 생사의 자극은 정말 짜릿하단말이요!》

   《그 말씀은 너무 일찍해요. 저 물까지 건너고 봐야 해요.》

   《그럼 또 산우로 건너가기오.》

   《좀 산을 보고 말해요.》

    올려다보니 정말 붓끝같이 기막히게 험준한 산은 허구픈 웃음만 자아내게 하였다. 나는 그녀를 따라 내렸다. 기슭에 이르러 그녀가 물었다.

   《어때요, 건늘 자신이 있나요?》

   《동무가 건느면 나도 건늘수 있소. 나는 동무를 떨어져선 안되니까, 어떤 험난한 길이라도 함께 가야 하오. 이번엔 혹시 내가 동무를 구할지도 모르오.》

   《그럼 좋아요! 구원을 기다리겠어요. 건늘 때 뒤를 보지 말고 바위벽에 딱 붙어서 건너야 해요. 세찬 물결에 휘감겨들어가는 날이면 영락없이 고기밥이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를 따라 바위에 붙어서 물에 들어섰다. 물은 단통 허리를 쳤다. 둘은 반메터를 사이두고 조심조심 걸었다.

   《이 곳은 깊… 어… 요!》

    그녀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니나다를가 조금 앞으로 나아가니 발이 닿이지 않았다. 몸이 허공 뜨는것 같았다. 나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미구에 발이 자갈같은것에 닿이는것 같았다. 우리는 천신만고하여 걷기도 하고 헤염치기도 하며 건너가고있었다.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갑자기 그녀의 웨침소리가 들리였다.

   《뒤로 비켜요! 바위가 무너져요!》

    고개를 들어보니 대안의 떡구시같은 바위가 흔들리고있었다. 내가 황급히 뒤로 물러서는 찰나, 바위는 텀벙 물에 꼰지였다. 그 바람에 나는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코구멍으로 흙탕물을 들이켰다. 숨이 막히고 눈앞에서 불꽃이 튕기였다. 뭐든 집자고 단말마적으로 악을 썼으나 허사였다. 이번엔 진짜로 위험이 닥친것 같은데 그녀의 구언이 없었다. 그녀를 소리쳐부르고싶었으나 목안이 꽉 막히는듯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앙다물고 발로 물밑을 죽어라고 찼다. 불시에 내 몸이 물우로 솟구쳤다. 두번 들어갔다 솟구쳤지만 어쨌던 나는 개발헤염이라도 치면서 대안에 닿고있었다. 눈결에 피뜩 술병이 들어있는 꽃가방이 물속에 가라앉고있는것이 보이였다. 가슴이 철렁 했다. 나는 그것을 따라가 얼른 쥐였다. 가방안엔 술병이 그대로 있었으나 그녀는 보이질 않았다. 나는 그녀가 빨리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꼭 나타날 그녀였다. 절대 죽지 않을 그녀였다. 그녀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였다. 그녀는 꼭 나타날것이다. 불쑥 내앞에서, 살그머니 내 뒤에서…

    나는 눈뿌리가 아려나도록 파도치는 물면을 지켜보았다. 순간, 눈뿌리가 뭉청 뽑히웠다. 눈확은 온통 물천지로 꽉 찼다. 앞을 가려 볼수가 없었다.

   《아!》

    나는 주먹으로 바위를 냅다쳤다. 통곡이 터졌다. 나는 다시 파도속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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