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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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나무행렬
2013년 06월 28일 14시 04분  조회:1090  추천:0  작성자: memory

봇나무행렬

정호원



연길-왕청-동광-십리평-황구-복흥-륙도위자 코스를 달렸다. 두시간 좋이 달려 신툰이라는 간판아래에 세웠다. 동구밖 입구에 들어서니 청일색으로 한족동네라는데 놀랐다. 더 특이한것은 지붕에 올린 “널판자기와”였다. 고로하면서도 특색적인 풍물로 와닿는 주택 옥개(屋蓋)다. 말짱 홍송널판자로 만든 목와(木瓦)다. 당지자원을 합리하게 리용한 농가의 지혜산물임을 절감케 한다.

초씨성을 가진 농부와 안씨성을 가진 농부 두집을 선후해 방문했다. 경작지 6무를 다루는데 자식들은 전부 시내와 외지로 돈벌이를 떠났단다. “마소의 새끼는 시골로,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한족들의 기성세대는 시골에서 땅농사를 하면서도 자식들만은 출세시키고 견식을 넓힌다는 의지이다. 남녀로소 덩달아 “남부녀대”하는 붐에 비해 한족들의 이동현상은 엄청난 이질감이 있었다. 늙은 내외들은 집에서 잣송이를 따는 부업과 산열매채집을 주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치부의 꿈을 키우고있었다. 집안은 별로 볼품이 없는 가장집물이 전부다. 대조적인 기물은 마당에서 포착됐다. 한마지기에 달할 정도로 휘넓은 뜰에 잣마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 노끈으로 포장한 잣마대옆엔 도끼, 낫, 도리깨, 농기구와 서슬 푸른 전기톱이 놓여있었다.

“우린 이 고장에서 43년간 살아오우다. 줄곧 터전을 지키고 밭을 다루고 농살 짓지유…”

안씨는 당당하게 어깨를 추스르며 말한다.

차는 다시 달린다. 도로 량옆엔 전통적이면서도 고로한 한족농사(農舍)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토피집을 둘러싼 벽체와 “복(福)”자 주련을 붙인 대문짝, 돌로 쌓은 담장, 마소들이 들어선 마구간은 바탕이 구전한 살림 그 자체였다. 바람벽이 떨어져나가고 창호지가 너덜너덜하고 지붕이 고삭은 조선족농가들에 비해 원형을 잘 보존한 원초적인 집단부락들이다. 옥수수를 말리는 덕과 농기계, 비둘기장은 그들만의 유표한 징표로 토착민의 포실한 가계내실을 마냥 표방하고있었다.

복흥에 이르니 해가 서너발이나 솟아올랐다. 식당은 말짱 한족업주가 위주였다. 가물에 씨나듯이 요행 찾은 “조선족개장집” 간판을 보는 순간 동질성에 뭉클해났다. 한달음에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맙시사-벽에 붙은 쌍 “희(喜)”자가 이방인의 얼굴처럼 서먹하고 애매하기만 하다. 식당구조 역시 한족구들이다. 칸막이 벽지에도 창을 꼬나든 괴물의 풍속도가 걸렸다. 주련처럼 나붙은 문구가 벽모서리에 또 걸렸다.

“한족식당이구나. 참…”

양대가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것 같은 둔갑술에 의아쩍어 반문할 때다. 곱상하게 생긴 안주인이 동남 부엌에서 살룩대며 다가와 입을 연다.

“아니예요. 우린 조선족이지요. 남편은 복흥병원에서 화험원으로 근무하고 저는 훈춘 쌍신에서 시집온지 몇십년 되는데요. 김치장사를 하다가 개장집을 경영하는데요…”

박씨성을 가진 녀인의 해사한 인사치레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소개를 듣고보니 복흥엔 조선족이 거퍼 몇명 없고 조선족식당영업은 자기들이 혼자란다.

“원래부터 조선족들이 드물었는가요?”

“이전엔 조선족들이 꽤 많았지요. 인젠 학교도 빈 집으로 됐고… 조선말하는 사람도 없어지고…”

그녀의 한숨이 실린 한탄은 듣는이로 하여금 역시 갑갑하게만 군다. 동포군체가 둥지를 떠나니 오붓했던 주변환경도 대뜸 수은주가 내려앉아 을씨년스럽다는 결론이렷 다.

다시 출발했다. 장백산어구에 들어선 감이 들었다. 산등성너머로 삐죽삐죽 내민 봉우리들이 가을과 겨울의 환절기에 접어들어 제법 선명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도로 량켠은 훤칠한 라목들의 대렬이 의장대처럼 씩씩하게 서있다. 차창으로 찬찬히 보니 일초일목마다 서로들 닮아버려 대동소이를 판박이처럼 만들었다는 핍진감이 앞선다. 마술과 술사가 동시에 작동하는 변화다단한 요지경을 내가 손으로 굴리나보다. 나는 경이감에 찬 눈길로 잎이 다 떨어져나간 겨울수림을 눈빗질하고있다. 뭔가 이상야릇한 초점이 끝내 포착됐다. 한것은 십리평을 지나서부터 비탈에 들어선 나무숲이 일매지게 봇나무로 울울창창하다는 발견에 동공을 키워야만 했다. 금창림장에서 잠간 포즈를 취할 때도 미처 예견하지 못한 풍경이다.

무심한 관찰이 아니다. 봇나무수림은 어찌 보면 근거지를 떠나버린 개척자들의 등신상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 착상이자 새삼스런 발견이다. 그분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마을 산자락에 원주민들의 대리동상처럼 일떠선 행렬이 바로 봇나무수림이 아닌가! 하얀 치마자락을 날리는가 아니면 두루마기를 휘저으며 아리랑고개를 톺아오르는가! 백의겨레의 이동대오가 잠간 숲에 머물러 다리쉼을 취하는 포즈 같기도 하고 밀림을 빠져나가는 경의비마(輕衣肥馬)가 안개발에 가리운채 서성거리는듯하다. 봄과 여름엔 무성한 록음에 덮여져 형체를 분간치 못했으나 락엽으로 잎새가 내려앉은 지금은 라목들로 확연하게 현신하고있다. 백의동포가 마을을 비우고 산중의 절을 지키는듯 아니면 초혼하는 모습으로 샤쯔자락을 흔들어대는듯하다. 기발한 착상은 아니고 불길한 조짐도 아닌 그 어중간한 중립상태에서 내 사유는 골풀이를 친다. 유복지인들이 줄레줄레 떠나는 프로필을 보는 심정은 서글픔만 아니다. 말못할 자가당착에 휩싸인다.

흰 봇나무가 앙상한 비석처럼 동토에 서있다. 정든 보금자리를 훌훌 떠나 외로운 또는 삭막한 집산지에 우두커니 서 바들바들 떠는 환각의 영상으로밖에 안겨오지 않는다. 끼끗하고 말쑥하던 봇나무의 이미지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대신 헐벗고 앙상한 몰골이라는 점이 심히 불안스럽다. 또 살길을 찾아 원정의 촉도난에 올라야 하는 가난의 핍박이라면 운명의 추방이라겠다. 갈대밭에 날아든 갈매기라면 다른 시각으로 흡족하게 웃어줄수 있으련만…한족들은 나무기와를 얹은 두실와옥에서 포실한 살림살이를 영위하고 동족들은 광야라는 객지에 할수없이 나앉아야만 하는가?!…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경계선에 서서 사진을 남겼다. 한창 시공중에 있는 포장도로옆의 높다란 간판을 파노라마로 기념촬영을 했다. 봇나무행렬을 배경으로 시대의 추억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한걸음 북으로 더 내디뎠다. 바로 흑룡강성 땅이다. 곧추 가면 로야령, 로흑산, 동녕, 수분하라는 흑룡강성 행정구역이다. 봇나무행렬은 이어지고 자리뜸하면서 전진한다. 하늘이 높이 더 열리고 땅이 더 넓게 뻗어간다. 피난민이 걸어온 리정표이고 위치를 찍어주는 패쪽이다. 아직도 망국노와 주인공의 시처위가 가끔 헛갈릴 때가 있다는 산 증거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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