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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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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적 상상력[스크랩] 댓글:  조회:1962  추천:0  2018-02-20
가스통 바슐라르  바슐라르 [Bachelard, Gaston, 1884.6.27~1962.10.16]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활동분야  철학   《새로운 과학적 정신》(1934) 《부정(否定)의 철학》(1940)   글 올린 이 / 이충이          본문     구조주의(構造主義)의 선구자이며 시론(詩論) ·이미지론(論)으로도 유명하다. 1927년 《근사적 인식(近似的認識)에 관한 시론》으로 학위를 취득한 후 디종대학의 강사·교수를 거쳐 1940년 소르본(파리대학)에 초빙되어 과학사·과학철학을 강의하는 한편, 동 대학 부속인 과학사 ·기술사연구소장을 지냈으며, 1954년 명예교수가 되었다.  20세기 초두, 약 4분의 1세기에 걸친 ‘물리학의 혁명’을 목격하면서 과학을 그 동적(動的)인 변화발전의 위상(位相)에서 파악하는 가운데, 이 변혁기의 과학활동에 맞는 의미를 종래의 철학이나 일상적 인식 또는 과학자 자신에게 투영시키는 데에서 ‘과학의 철학’의 위치를 구하였다. 초기의 대표적인 저작 《새로운 과학적 정신》(1934)은 상대성이론의 비(非)뉴턴 역학적(力學的)인 성격이나 양자역학(量子力學)의 비결정론(非決定論)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통하여 현대과학에서의 인식의 양식(樣式)을 ‘비(非)데카르트적 인식론’으로서 제시한 것인데, 이러한 파악이 《부정(否定)의 철학》(1940)에서 ‘비(非)의 철학’으로서 결실되었다.  이상의 저작에서 과학이 초래하는 새로운 인식에 대하여 개방된 정신, 나아가서는 과학의 발전을 촉구하는 정신의 추구와 같은 자세를 볼 수 있다면 《과학적 정신의 형성》(1938)의 목표는, 그것을 방해하는 ‘인식론적 장해’의 정신분석에 의한 배제였다. 이러한 방향은 앞서 말한 과학의 진전을 촉구하는 정신의 추구와 근저(根底)에서 교착되면서 시와 이미지의 자유분방한 역동성(力動性) 자체를 구하는 ‘4원소(元素)’에 매개된 심층심리의 분석으로 발전하였다. 이 양자를 끊임없이 ‘상보적(相補的)’으로 전개시킨 바슐라르의 사상적인 영위는 프랑스의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현대적인 의미 확립에 기여한 동시에 J.피아제와 L.알튀세르 또는 G.캉길램을 통하여 M.푸코에게로 다채로운 영향을 끼쳤다.  『불의 시학의 단편들』은 과학철학자이자 시인이며 문학비평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에 관한 연구서로, 바슐라르 사후 26년 만인 1988년, 딸 수잔 바슐라르의 손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보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가스통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이 근본적으로 불 물 공기 흙 네 가지 원소로 분류할 수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른바 4원소설을 펼쳤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의 시학의 단편들』은 『불의 정신분석』 『초의 불꽃』과 마찬가지로 불의 이미지를 고찰하고 있는 책으로, 문학 상상력에 관한 바슐라르의 기나긴 연구 도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미 있는 저작이다.     1. 촛불의 미학     “촛불은 혼자 탄다. 불꽃은 혼자이고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이고,  또 그것은 혼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외로운 불꽃이여, 나는 홀로 있다. 불꽃은 소리를 내고, 불꽃은 투덜거린다. 불꽃은 괴로운 존재이다. ”  “산다는 것은 생성하는 것, 순간순간마다 새로운 미래를 획득하면서 진행하는 창조의 과제이다. 따라서 그는 과거조차도 고정된 불변의 실체가 아닌, ‘하나의 항구적인 이마주’, 도달해야 할 하나의 미래로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하여, 상상력과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삶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기 스스로를 소재로 하면서 빛을 얻기 위해 항상 위를 향해 타고 있는 촛불의 불꽃과 같다.”  "결국 인생의 여러 가지 경험들, 이리저리 찢겨지고 갈래갈래 조각난 경험들을 숙고해 보건대 내가 참으로 실존의 책상에 임하는 것은 차라리 백지 앞에서, 나의 램프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두어 책상 위에 펼쳐진 흰 페이지 앞에서이다.  그렇다. 내가 최대한의 실존, 팽팽한 실존, 앞을 향해서, 보다 앞을 향하여,  또 그 위를 향하여 긴장되어 있는 실존을 알게 되는 것은 나의 실존의 책상에서이다."  ---------------------------------------  노발리스가 불꽃의 수직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단장을 모두 정리해 보면, 대우주 안에서 직립하고 있는 모든 것, 수직인 모든 것은 하나의 불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動)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즉 위로 올라가는 모든 것은 불꽃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그의 환위명제는 다소 그 강도를 약하게 할 뿐 아주 명백하다.  노발리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불꽃은 동물적 삶의 존재 그 자체를 구성한다. 노발리스는 이것을 역으로 이라고 쓰고 있다. 불꽃은 어떤 점에 있어서 벌거벗은 그대로의 동물성이며 일종의 극단적인 동물이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대식가이다. 이와 같은 아포리즘들이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 흩어져 있는 단장(斷章)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신념의 직접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들은 사람이 깊은 몽환 상태를 체험하여 성찰하기보다는 오히려 몽상하는 것을 통하여 증명할 수 있는 몽상의 진실이다.    각각의 생명계는 그때 특수한 불꽃의 한 타입이 된다. 메테르링크가 번역한 일부분 가운데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  * 노발리스, .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불꽃의 배설물로 표현되어 있는 특이한 페이지를 참조할 것. 우리들은 타고 있는 존재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사이스의 사도들, 제 2권, p. 216). [동서시편]에서 괴테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        --------------------------------------    2.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뿌리는 언제나 하나의 발견이다. 뿌리란 못 보는 만큼 더욱 꿈꾸게 되는 법. 실제 발견된 뿌리는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한다ː뿌리는 바윗덩어리이자 머릿단이고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필라멘트 같으면서도 단단한 목재가 아닌가?  3. 공간의 시학  "잘 말함은 잘 삶의 한 요소이다.”  “집을 인간의 영혼에 대한 분석도구로 생각함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같은 책, 123쪽)        “때로 집은 커지고 늘어나기도 한다. 그런 집에서 살려면, 한결 더 유연한 몽상이, 한결 덜 명확히 그려진 몽상이 필요하다.”   (책 속에서, 가스통 바슐라르)              4. 몽상의 시학  5. 불의 시학의 단편들  가스통 바슐라르가 임종 직전까지 몰두했던 불에 관한 연구서  불은 부동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잘 때도 살아 움직인다.  꿈꾸는 사람에게, 불의 이미지는 강렬함을 전달하는 하나의 학파와도 같은 것이다.  『불의 시학의 단편들』은 과학철학자이자 시인이며 문학비평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불'에 관한 연구서로, 바슐라르 사후 26년 만인 1988년, 딸 수잔 바슐라르의 손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보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가스통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이 근본적으로 불 물 공기 흙 네 가지 원소로 분류할 수 있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른바 4원소설을 펼쳤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의 시학의 단편들』은 『불의 정신분석』 『초의 불꽃』과 마찬가지로 불의 이미지를 고찰하고 있는 책으로, 문학 상상력에 관한 바슐라르의 기나긴 연구 도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의미 있는 저작이다.  『불의 시학의 단편들』이 출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딸이자 이 책(프랑스어본)의 편집자인 수잔 바슐라르가 책머리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다. 우선 바슐라르는 불에 관한 두 저서(『불의 정신분석』 『초의 불꽃』)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존재의 양극에서 체험되는 상반된 불의 이미지, 즉 아니마의 불과 아니무스의 불을 고찰하고자 했다. 제1부에서는 아니무스의 불을, 제2부에서는 아니마의 불을 연구하려는 것이 최초의 구상이었다. 그런데 집필하는 중에 또다른 아이디어들이 생각났고 그때마다 그것을 집필 계획에 포함시켰다. 바슐라르의 그칠 줄 모르는 지적 호기심과 끝없는 몽상 덕분에 책은 점점 방대해져갔다. 수잔 바슐라르는 이런 아버지를 "영원한 학생"에 비유했다.  영원한 학생이었던 아버지는 배우기를 좋아했다. 우리는 그의 저서에서 그가 유년 시절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유년 시절을 그리워했다는 표시도, 순진함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는 표시도 아니다. 그것은 유년 시절의 능력, 즉 몽상적이고 자유로운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경탄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배우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향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수잔 바슐라르, 「책머리에」  이런 와중에 건강이 나빠진 바슐라르는 결국 제2부를 포기하고 제1부를 쓰는 데 전념한다. 그런데 피닉스에 관한 '피닉스의 시학'을 쓰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다. 그래서 '불의 시학' 원고는 미완성인 채로 제쳐두고, '피닉스의 시학'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슐라르는 이 책 역시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그의 딸 수잔 바슐라르가 애초에 구상한 '불의 시학' 서론과 '피닉스의 시학' 서론 그리고 '불의 시학' 제1부에 해당하는 원고를 분류·정리·편집하여 바슐라르 사후 26년이 지난 1988년 『불의 시학의 단편들』이라는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피닉스의 시학' 원고는 서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분실되었으므로 그 내용을 알 길이 없어 아쉽지만, 가스통 바슐라르가 임종 직전까지 몰두했던 불의 테마에 관한 자료들을 접할 수 있으니, 독자들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불을 품은 신화적 존재들의 시적 이미지론  이 책은 서론과 '피닉스' '프로메테우스' '엠페도클레스'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슐라르는 고대 전설과 신화 속 존재들이 가진 불의 이미지에 대한 몽상에서 출발, 상승의 의지를 가진 인간존재의 정신현상을 탐구한다.  피닉스… 영원히 죽지 않는 새, 삶과 죽음의 변증법에서 시적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피닉스에 관한 장. 바슐라르는 유년 시절 어느 햇빛 찬란한 여름날 강가에서 물 속으로 뛰어드는 불새, 피닉스를 보았다. 불을 최초로 체험한 이 순간, 그는 세계관이 뒤흔들렸다고 고백한다. 이 장은 특히 피닉스가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우주적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피닉스)는 유일하다. 그는 독특하다. 그는 삶과 죽음의 마술적 순간들의 스승이며, 둥지와 장작더미의 중대한 이미지들의 기묘한 통합이다. 그는 자신의 장작더미가 불타오르는 최후의 순간에 최고의 영광에 도달한다."  프로메테우스… '인간에게 불을 주기 위해 하늘의 불을 훔친 영웅 프로메테우스'의 정신을 주시하는 장. 바슐라르는 불의 유용성을 넘어 지성주의를 표방하는 초인간성 그리고 그것의 절대적 승화를 보여준다. "시적인 프로메테우스의 이미지들은 항상 인간의 본성을 한층 더 높여주는 정신적 행위를 가리킨다. 정신현상의 미학, 다시 말해 정신의 삶을 견고하게 하고 활기차게 해주는 정신적 행위가 프로메테우스의 기호 아래 놓일 수 있을 것이다."  엠페도클레스… 에트나 산 위에서의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에 관한 명상. 그의 죽음은 단순히 철학사의 잡보기사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는 진실로 삶과 죽음을 숙고하고 불을 꿈꾸는 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불에 뛰어들어 죽음을 선택하는 의지의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소멸의 미학에 관한 장. "우리가 존재 속으로 내던져졌다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모든 철학에 대립하여, 죽음 안으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철학자가 있다. 죽음 속으로 몸을 내던질 때, 엠페도클레스는 처음으로 자유롭다. 이러한 결정의 순간들은 시간의 시학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불은 부동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잘 때도 살아 움직인다.  꿈꾸는 사람에게, 불의 이미지는 강렬함을 전달하는 하나의 학파와도 같은 것이다.  바슐라르는 우리 존재를 불과 마찬가지로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긴장 속에서 항상 생동하고 있어서 올라가고 내려가며 빛나거나 어두워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불의 솟구침을 포착하고 불에 참여하면서 존재 자체가 불처럼 용솟음친다고 이야기한다. 바슐라르는 불의 역동성과 끝없이 상승하려는 존재의 의지를 동일하게 이해하고, 발레리, 엘리엇, 횔덜린, 니체 등 시인들의 저작들을 읽어가면서 그것을 고찰한다. 바로 여기서 몽상과 상상력이 응축된 절정의 언어미학이 탄생했다. 『불의 시학의 단편들』은 비록 완성되지 못한 저작이나, 바슐라르가 구축하고자 한 언어미학을 음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은 철학자-시인의 몽상으로 탄생한 새로운 언어와 행복하게 조우하고 높이를 향해 치닫는 몽상에 빠질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낮에서 밤, 밤에서 낮 사이, 우리 안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우리의 피닉스는 몇 살인가?  인생의 만년에 불사조적 망상들은 노령을 가로지른다. 사람들은 추억을 태우며 죽는다.  그렇지만 추억을 태우면서 추억을 더욱 사랑하게 되므로, 사람들은 체험한 사랑의 영원함을  누릴 만한 자격을 얻는다"  6. 꿈꿀 권리 - 미술평론 에세이  -창조적인 화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초적인 삶의 존재들을 바라보고, 드러내 준다.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목은 '모네, 샤갈, 바로끼에, 칠리다, 꼬르티, 마르쿠시스, 플로꽁을 통해 펼쳐 나가는 몽상의 철학자 바슐라르의 미술론'이다. 내가 본 부제목 가운데 단연 가장 긴 부제목이다. 부제목을 이렇게 바꾸어도 될 것 같다. "~~~의 작품을 통해 펼치는 바슐라르의 철학적 몽상,' 목차는 다음과 같다. 수련, 또는 여름 새벽의 놀라움 / 샤갈의 '성서(聖書) 서설 / 빛의 근원 / 원소에 자극 받은 화가 / 시몽 세갈 / 조각가 앙리 드 바로끼에 / 철(鐵)의 우주 / 어떤 물질의 몽상 / 마르쿠시스 작품에 있어서의 점과 시선 / 물질과 손 / 풍경의 역학(力學) 서설 / 알베르 플로꽁의 '끌에 관한 시론' / 환영의 성(城).  미술 작품을 놓고 펼쳐지는 바슐라르 특유의 '몽상'에 동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행히도 몽상의 레훠런스, 그러니까 미술 작품 사진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샤갈과 모네 이외의 작가 이름이 생소한 독자들도 안심할 수 있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 '수련'을 주제로 하는 첫 장의 시작부분은 다음과 같다.    문장의 상당 수가 사실상 아포리즘에 가깝다. 바슐라르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마치 '자동 기술'해놓은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문학 작품, 예술, 신화, 종교, 철학, 심리학, 자연과학 등의 분야에 걸친 바슐라르의 식견이 문장 곳곳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바슐라르의 몽상을 따라가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포인트는 그런 식견 또는 지식에 있지 않다. 표현 또는 그냥 문장에 있다. 다음은 '풍경의 역학 서설'의 한 부분. (pp.118.)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미술 작품을 보는 바슐라르의 눈은 그의 앎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덕분에(?) 앎의 깊이가 깊지 못한 (나 같은) 독자들로서는 바슐라르의 앎을 막연하게 가늠하며 읽을 도리밖에 없다. 다행히 번역자 이가림 선생의 주석이 그러한 가늠을 돕는다. (물론 충분하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원소(元素)에 자극 받은 화가'의 첫 부분. (p71.)    한편 클로드 모네는 1883년에 파리 북쪽의 마을 지베르니에 집을 빌려 정착했다. 그리고 1900년에 그 집을 사들인 뒤, 정원을 꽃밭으로 가꾸고 연못을 파 근처의 에프트강 줄기에서 물이 직접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1906년부터 그는 수련의 연작에 몰두한다. 하지만 모네의 '수련'하면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대형 작품들은(파리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1916년부터 본격적으로 창작되었다. 이 시기의 모네는 개인적으로 실의에 빠져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소용돌이는 물론이거니와, 1911년에 두 번째 아내를 잃었고 그로부터 3년 뒤에는 아들까지 잃었다. 더구나 모네 자신의 시력에 이상이 생기고 있었다.  그러한 모네는 오랜 친구이자 저명한 정치인인 클레망소의 물심양면의 도움과 격려로, 오래 전부터 구상하던 수련 또는 연못 풍경 연작에 착수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지베르니 저택의 정원 한쪽에 폭 12미터, 길이 20미터의 대규모 화실을 세우고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모네의 수련 연작의 특징은 역시 수면에 비치는 세계와 수면 위에 떠 있는 사물(수련) 사이에 어떤 구분 또는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요컨대 화폭 전체가 빛의 반영 그 자체가 된다. 경계가 없는 빛의 잔치!  최근 몇 년 사이에 미술 작품을 '알기 쉽게' 해설하는 내용의 책이 제법 자주 출간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일진대, 알면 알수록 더욱 잘 볼 수 있을 것이고, 그것도 쉽게 알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하지만 그런 책과 함께 바로 이 책과 같은, 그러니까 깊고 내밀하며 유일무이한 사색의 자취를 담은 책도 꾸준히 출간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지.  ------------------------------------------  샤갈의 의 序說                                                              I    모든 사물에 빛과 찬란함을 투영시키는 현대의 눈, 한 화가의 눈은 이 책의 각 페이지마다에서 전설적인 역사의 어둠의 밑바닥을 바라본다. 이 살아있는 눈은 과거 속에서도 가장 위대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원초적인 삶의 존재들을 발견하고, 바라보며, 드러내 준다. 생물들이 꿋꿋한 나무줄기와 같이 태어나 성장하고, 인간이 그대로 초인간적 존재였었던 저 확고부동한 위대한 시대를, 우리들에게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 마르크 샤갈, 우주의 창조자로서 붉은색과 황토색, 짙은 청색과 엷은 청색을 배합할 줄 아는 이 화가는 낙원시대의 색깔들을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샤갈이 성서를 읽는다. 그러면 그의 독서는 곧바로 한줄기의 빛이 된다. 그의 화필, 그의 연필 아래서 는-자연스럽게, 아주 간단명료하게-한 권의 그림책이 되고, 한 권의 초상화집이 된다. 그리하여 여기에 인류의 가장 위대한 한 가족의 초상이 모아지게 되는 것이다.    독자로서의 내 고독 속에서 그 '성스러운 책'에 대해 깊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 목소리가 너무 강하게 울려서 나는 언제나 선지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곤 하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가 내게 있어서는 예언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지금 이 아름다운 화집의 삽화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오래된 책을 읽는다. 나는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듣는다. 왜냐하면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샤갈, 그 見者가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그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샤갈은 나의 귀에 빛을 비춰 준 것이다.                                      II    형상의 창조자, 한 사람의 천재적인 화가에게 있어서, 낙원을 그리는 임무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은 무슨 특권일까! 아! 바라볼 줄 알고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눈에는 모든 것이 낙원인 것이다. 샤갈은 세계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를 바라볼 줄 알고, 특히 세계를 드러내 보여줄 줄 알기 때문이다. 낙원이란 아름다운 색깔들의 세계이다. 하나의 새로운 색깔을 발명하는 것이 화가에게 있어서는 낙우너의 기쁨인 것이다! 이와같은 기쁨 속에서 화가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즉, 창조하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화가마다에 자신의 낙원이 있다. 그리고 색깔을 조화시키는 것을 체득하게 된 사람은 확실히 한 세계의 화합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낙원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낙원에 대한 모든 몽상가의 원초적 몽상에 있어서, 아름다운 색깔들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화해시킨다. 모든 존재들은 아름답기 때문에 순수하다. 모든 것은 함께 사는 것이다. 물고기들이 공중에서 헤엄치고, 날개 달린 당나귀가 새의 길동무가 되며, 우주의 청색이 모든 피조물들을 가볍게 만든다. 조금 꿈꾸어 보라. 땅 위에서 꺾여 창공 속으로 운반되어  은방울꽃에 온 몸이 향기로와, 하늘에서 그토록 잘 꿈꾼 나머지 머리 속에 한 마리 비둘기를 떠오르게 하는 초록색 당나귀처럼.    이와같이 낙원은 일종의 고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말로써 표현하는 데는 숱한 詩작품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샤갈의 단 한 점의 데상이 이 모든 위력을 응축시켜 버린다. 단 한 장의 그림이 끝없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색깔이 언어가 되는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회화야말로 언어의 원천이며 시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낙원의 그림 앞에서 꿈꾸는 사람은 讚歌의 합창을 듣는 것이다. 형태와 색깔의 결혼식은 번식력이 강한 결합이다. 모든 존재들은 신의 손에서 태어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생하고 풍부하게 화가의 화필에서 태어난다. 의 최초의 동물들은 신이 인간에게 가르치는 어록집의 낱말들이다. 예술가는 천지창조의 추진력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창조한다'는 동사를 끊임없이 활용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는 창조에 얽힌 모든 행복을 자기 것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빨리 창조하는 예술가를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기쁨인가. 왜냐하면 샤갈은 빨리 창조하기 떄문이다. 빨리 창조한다는 것은 생생하게 창조하기 위한 커다란 비결인 것이다. 생명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생명은 되돌아오지도 않는다. 초벌그림이란 결코 있을 수 없고, 언제나 불꽃뿐이다. 샤갈이 그리는 존재들은 모두 최초의 불꽃이다. 그러므로 우주적인 정경에 있어서, 샤갈은 발랄함의 화가인 것이다. 그의 낙원은 실증나지 않는다. 새들의 비상과 더불어 무수한 눈뜸이 하늘에 울려퍼진다. 대기 전체에 날개가 돋혀 있는 것이다.   -------------------------------------------------------------    7. 불의 정신분석  8. 물과 꿈    9. 공기와 꿈  10. 물과 불  "호프만의 술은 불타는 술이다. 그것은 매우 질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불이 지니고 있는 아주 남성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포의 술은 낮게 가라앉게 만들며, 망각과 죽음을 가져오는 술이다. 그것은 매우 양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물의 아주 여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에드커 포의 천재성은 어셔 가 저택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연못 속의 잠자고 있는 물, 죽은 물에 연관되어 있다." (물과 불)  11. 불의 정신분석  12 부정의 시학  13. 순간의 시학  14. 어록  [출처] 시와 산문 그리고 시와 록색 http://cafe.daum.net/kpoetry/CU9q/114?q =  
2    아름답게 미친 천재, 이미지로 조합하면 見者? - A. 랭보[스크랩] 댓글:  조회:1560  추천:0  2018-02-20
아름답게 미친 천재, 이미지로 조합하면 見者?  - A. 랭보 퍼온 글임 0. 들어가며 아르튀르 랭보(Arthur Jean Nicolas Rimbaud·1854~1891). 짧은 37년간의 생애를 지상에 머물다간 천재. 소년의 나이에 시작해서 4년 후에 중단되는 창작활동. 나머지 생애 동안의 문학적으로 완벽한 침묵, 근동지역과 중앙아프리카를 누비고 다니며 다 양한 직업에 종사했던 것, 시작한 지 2년만에 원래의 출발점뿐만 아니라 이후 이루어질 문학적 전통마저 돌파해 버리고 오늘날까지도 현대시의 원조로 남아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 그 짧은 창작기간 동안의 광적인 발전 속도는 내재된 천재적 광기의 폭발이었으리. 이것이 랭보의 간략하게 뭉뚱그린 객관적 프로필이다.   랭보의 작품을 가장 잘 나타내는 핵심어는 ‘폭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正格 시구로 시작해서 탈격 자유시구로 넘어가며 거기에서 「일루미네이션」과 「지옥에서 보낸 한 철」같은 불규칙적 리듬을 가진 산문시들로 이르게 된다. 랭보의 시는 무엇보다 보들레르의 이론적인 구상들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랭보의 시는 철저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테마들은 서로 간에 간혹 막연하게 연관될 뿐, 과도할 정보로 많은 단절들을 드러낸 채 대개는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이러한 시작법의 핵심은 테마와는 거의 상관없이 끓어오르는 흥분이다. 1. 방향상실 1920년 리비에르(J. Riviere)는 랭보의 시에 대해 “그의 사명은 우리로 하여금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다” 라고 논평했다. 랭보의 비실재적 혼돈은 조여드는 현실로부터의 구출 시도였다. 랭보의 시들은 가혹한 타격으로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극도로 마술적인 음률을 자아내는 언어로 이루어진 만큼, 더욱 더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랭보는 때로는 초지상적인 축복 속에서 거닐고 있는 것처럼, 때로는 황홀경에 빠져 빛을 바라면서 저 너머의 세계로부터 도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협화적인 작품은 랭보에 대한 지극히 모순적인 평가를 초래하기도 한다. 2. 견자의 편지-공허한 초월, 비규범성의 추구, 불협화음의 리듬 시의 목표는 ‘미지의 것에 도달함’이며, 달리 표현하자면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듣자’이다. 이러한 개념들은 보들레르로부터 나온 것이며, 공허한 초월을 의미한다. 랭보는 그것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인식하여야 할 목표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기한다. 그러므로 비일상성, 그리고 비현실성, 전혀 다른 것 등으로 표기되기는 하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랭보의 시들에서도 이 점이 확인된다. 그의 시들의 현실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돌진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욕구 자체의 방출이며, 그 결과 현실을 탈형상화시켜서 비실재적이긴 하지만 진정한 초월의 표지라고는 할 수 없는 형상들에 도달하게 된다.   랭보의 견자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편지에서 “시인은 미지의 것에 도달한다. 비록 자기 자신이 환영들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시인들은 그것을 직관하였다. 시인은 전대미문의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물들을 통한 거대한 비약의 과정에서 파멸해도 좋다. 왜냐하면 다른 무시무시한 일꾼들이 나타나서 그 자신이 좌초해버린 저 지평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시인 존재는 미지의 곳으로 탈주하여 거기에서 좌절하게 되는 강력한 상상력을 무기로 세계 폭발에 참여하는 일꾼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3. 전통과의 단절 랭보의 시들은 당대와 19세기 초기의 작가들의 영향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선배들의 영향이 아닌 랭보 자신의 목소리 또한 뚜렷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전래의 문학적 자산을 랭보는 과도하게 가열하거나 혹은 과도하게 냉각시킴으로써 완전히 다른 실체로 변형시켜 버렸다. 그러니까 빗대어 말하자면, 그에게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니, 원형 불변의 법칙, 만유 인력의 원리 등등의 아주 기본적인 물리학의 원칙들이 지극히 무의미한 셈이다.   랭보의 특성은 그가 읽은 작품에 가하는 강력한 변형, 그리고 전통과의 단절을 원하면서 전통에 대한 증오를 강화시키는 그의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자와 시대로부터의 과격한 분리가 철저하게 시행되어 과거로부터 분리라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 원인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사적인 것이다. 진정한 연속의식의 소멸, 그리고 그 대신으로 나타난 역사중의와 박물관적인 수집으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된 과거는 19세기의 몇몇 정신적 지도자들에게 반대 방향의 힘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과거를 청산토록 했다. 그의 시구들은 고대가 희화화 되어 언급된다. 신화는 비천한 것과의 결합에 의해 고유의 품위를 상실하고 만다. 4. 현대성과 도회시 현대성에 대한 랭보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물질적인 진보와 과학적인 계몽이란 점에서는 현대성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취한다. 반면 현대성의 가혹함과 암흑성이 차갑고 어두운 시를 쓰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경험을 주는 범주에 있어서만큼은 현대성을 수용한다. 이러한 역설적인 입장에서 랭보의 도회시가 생겨난다. 일를테면 「일루미네이션」 이 그 좋은 본보기 작품이다. 자극적인 상상력에 의해 창작된 형상들의 시공을 초월한 혼돈은 대도시적인 현대성의 물질적·정신적 요소들, 주술적으로 작용하는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개념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으나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는 있는 직관의 표지이다. 5. 기독교 유산의 강요에 대한 저항, 「지옥에서 보낸 한철」 랭보의 시들은 기독교에의 반란을 시도하긴 하지만 결국 기독교 유산의 강요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에서 오는 고통을 토로하는 것으로 점철된다. 랭보의 저항은 자신이 맞서고 있는 바로 그 힘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마는 역설적인 것으로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에는 그러한 자각이 표현되어 있다.   “이교도의 피가 끊어오른다, 복음은 지나가 버리고, 나는 유럽을 떠나 떠돌며, 풀을 뜯고, 사냥하며, 끓어오르는 금속처럼 독한 즙을 마시리라, 구원받은 자여.” “나는 열망으로 신을 기다리노라……. 나는 결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 노래했던 그런 종족에 속했을 뿐” “나는 지옥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 유산에 의한 강요를 지옥이라고 하고 있고, 그 해명할 수 없는 정신적 실존의 긴장 앞에 항복한다. 모든 것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나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갔던 시인은 그 미지 세계의 정체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없었고, 그 자신이 폭파시켜 버렸던 세계 앞에 침묵하면서, 내면의 죽음을 감내한다. 그에게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것은 기독교 유산이었다. 기독교 유산은 초현실적인 것에 대한 무제한적인 욕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에게는 다른 모든 지상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협소하게 보였다. 모든 현실과 상상 속에 불을 붙여 폭파시킴으로써 랭보는 기독교마저 찢어놓았던 것이다. 6. 인공적 자아-탈인간화 랭보의 시들에서 말을 하는 자아는 「악의 꽃」의 자아와는 달리, 작가의 인격으로 해석될 수 없다. 랭보의 자아는 앞에서 언급했던 조작적인 자기 변신, 요컨대 그의 시들의 형상 내용들이 거기에서 생겨나는 바로 상상적 문체의 산물이다. 이 자아는 어떤 가면도 쓸 수 있으며, 모든 존재 방식, 시대와 민족들로 확대될 수도 있다.   랭보는 자신의 정신적 운명을 현대성의 초개인적 상황으로부터 해석한다. “정신의 투쟁은 사나이들의 살육전처럼 잔인하다”라고 말한다. 그는 더 깊이 빠져들어감으로써 더 먼 곳을 보며, 아무도 이해할 수 없지만, 부드러움 속에서도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몰락자가 되어야 할 시인의 운명을 옹호한다. 시인은 “이 기이한 고통이 불안정을 초래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자만심을 느껴야 한다. 랭보는 “나의 우월성은 어떠한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라고 말한다. 낭만주의 시의 ‘느끼는 감정들’은 그에게 역겨움을 준다.    “그래 인간의 갈채로부터, 저속한 추구로부터 벗어나라. 그리고 날아서…….” 이것은 단순한 강령으로 그치지 않는다. 시 자체가 탈인간화 된다.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고 독백하면서, 청자들의 이목을 붙잡아 둘 한 마디 말도 없이, 시는 그것을 담아줄 어떠한 그릇도 존재하지 않는, 더군다나 상상적으로 구성된 자아조차도 그 주체가 없는 진술 앞에서 비켜가버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7. 극한으로의 몰입 상상의 아득한 영역으로 밀치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점차적으로 랭보 시의 주체 자리에 들어선다. ‘미지의 영역’으로 강제적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그는 보들레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늘빛 심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패배의 심연이며 아울러 “바다와 전설들이 서로 만나는 불의 샘”인 저 높은 곳에서 천사들이 거주하고 있다. 아득한 곳을 묘사하여 가까운 곳을 부각시키는 이러한 기법은 랭보의 전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역동적인 도식이다. 그것은 점점 더 빨라져서 때로는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이루어 지기도 한다. 흥분은 열광에 도달한다.    “나는 탑과 탑을 밧줄로, 창과 창을 화환으로, 별과 별을 황금의 사슬로 엮었다네, 그래 이제 나는 춤추노라.” 이것은 보들레르의 「일곱 늙은이들」의 마지막 시구에서 이미 보았던 바와 같이 목적 없는 자들의 혼란스런 춤이다. 광막함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파괴된다. 파괴되어 흩어지는 맨 마지막 지점에 랭보의 눈물겨운 영혼이 울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상처 없는영혼이 어딘들 있으랴! 8. 취한 배 「취한 배」는 랭보의 시 중 가장 알려진 작품이다. 시 속에 나타나는 이국의 바다와 지방은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이다. 시는 그 어떠한 실제 사실들과도 연관을 맺지 않는다. 강력하게 작용하는 상상력은 드넓게 소용돌이치며 확장되는 비실재적 공간들의 열광에 찬 환영을 만들어낸다.   사건의 진행자는 한 척의 배이다.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명백한 사실은 사건의 경과와 동시에 시의 주체의 진행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형상 내용들에는 매우 격렬한 힘이 부여되어 있어서 배와 인간 사이의 상징적인 동일화의 전체의 운동성을 고려할 때만 가능하다.   ‘취한 배’는 유례없는 팽창 활동이다. 일시적인 머뭇거림들이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그 이후에 팽창은 다시 격렬하게 진행되며, 몇군데에서는 혼돈의 폭발에 다다른다. 폭발은 문장 구성에서가 아니라 관념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관념들 자체는 시연에서 시연에 걸쳐서뿐 아니라, 시행에서 시행에 걸쳐, 심지어 한 시행 안에서 요원한 것과 거친 것, 아니 거침과 요원함 위에 쌓아올리는 상상력의 홍염들이다. 9. 파괴된 현실성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태도와 ‘미지의 것’은 그 공허함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충격을 가하는-보들레르의 경우보다 더욱 강력한-긴장의 극이다. 현실은 그 불충분성으로 인해 공허한 초월과 대비되어 경험되기 때문에, 초월을 향한 열정은 현실성에 대한 무목적적인 파괴로 향하게 된다. 이러한 파괴된 현실성은 이제 현실 전체의 불충분성과 아울러 ‘미지의 것’으로의 도달 불가능성에 대한 혼돈의 표지가 된다.   랭보 시에 나타나는 구체적 세계의 원소들에는 물과 바람이 포함된다. 이 원소들은 초기 시들에서는 통제되어 있었으나 나중에는 노호와 폭풍우, 대홍수의 무시무시한 힘이 되어 솟아오르고, 이 좌중에서 시간과 공간의 질서들은 파괴되며, “평원, 황야, 수평선은 뇌우의 붉은 옷이 되는 것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대상들과 사물들을 총괄해보면 그가 얼마나 불안정하게 더 넓고, 더 높고, 더 깊게 팔다리를 뻗으며, 어느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10. 추화 추는 랭보가 그의 시구에 내포된 현실의 잔재물에 각인시킨 정신의 집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미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시에는 형상에서는 아니면 언어의 가락에 있어서든 정말 ‘아름다운’ 구절들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이것들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추한’ 구절들과 인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와 추는 대립적인 가치들이 아니라 자극의 변이체들이다. 이들 사이의 객관적 차이는 진실과 허위의 차이처럼 제거된다. 미와 추의 밀접한 접근은 모든 요소들을 좌우하는 대비의 역동성을 산출한다. 이러한 대비의 역동성은 그러나 추 자체로부터도 산출될 수 있다. 11. 감각의 초현실성 직관 가능한 형상들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으며, 언어에 내재한 은유의 근원적인 힘들로 인해 예전부터 시의 특권이었던 무한 자유를 넘나든다. ‘거리의 두 번 구운 과자’, ‘자신의 배위에 서 있는 왕’, ‘하늘빛의 콧물’. 이러한 형상들은 현실 자체에 존재하는 특성들을 때로는 더욱 예리하게 드러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그 기본 방향은 현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의 역동성에 있다. 이는 형상 경계들을 혼란시키고 극단적인 것들을 강제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현실성 자체를 감각적으로 자극받고 자극하는 미지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12. 전제적 상상력 전제적 상상력은 인지하고 묘사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무제한의 창조적인 자유로서 작용한다. 자신의 내용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창출하려는 주체의 명령에 따라 현실 세계는 조각이 난다. 전제적 상상력은 공간의 질서를 전도시킨다. 예를 들면, 마차들은 하늘 위에서 달린다. 호수의 바닥에 살롱이 있고, 드높은 산정에서 대양이 출렁거린다. 철도 레일이 호텔을 통해서, 호텔 위로 달린다. 그러나 상상력은 또한  인간과 사물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도 전도시킨다.   “법무관이 그의 시계줄에 결려 있다”. 상상력은 가장 연관이 먼 것, 구체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강제로 결합시킨다. “아침 우유의 중얼거림, 지난 세기 밤의 중얼거림 때문에 죽도록 슬픔에 잠기다.”. 상상력은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더 낯설게 만드는 비실재적인 색채들을 창안한다. 랭보는 불온한 세상을 이렇듯 행복을 살다 그렇게 불행하게 간 것이다. 13. 일루미네이션 제목부터가 ‘염색’과 ‘조명’을 암시하는 등 특기할 만큼 다의적이다. 작품의 내용 해석이 불가능하다. 수수께끼같은 형상들과 사건들이 지나간다. 어조는 도취와 냉혹한 단절, 단조롭게 제기되는 반복과 근거없는 말의 연결들로 교차되어 나타난다. 「일루미네이션」은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시이다. 이 시는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환각적인 자기 방출의 뇌우이며, 기껏해야 위험에 대한 사랑의 진원지인 위험에 대한 저 두려움을 일깨우는 것으로 만족한다. 게다가 이 시는 자아가 없는 텍스트이다. 왜냐하면 몇몇 작품에서 등장하는 자아는 견자의 편지에서 구상되었던 바의 저 인공적이고 낯선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절대화한 현대적 상상력의 최초의 위대한 기념비이다. 14. 혼효의 기법 랭보는 이제 형식 언어마저도 그의 해체적인 상상력에 부합시킨다. 그래서 그는 형식 언어를 그의 산문시와 매우 유사한 비대칭적 시구 형태로 바꾸어버린다. 이로써 랭보는 형식의 차원에서도 보들레르를 넘어서는 힘찬 걸음을 내딛는다. 은빛 그리고 구리빛 마차들 강철의 그리고 은빛의 뱃머리가 거품을 때리고, 가시덤불의 그루터기를 일으켜 세운다. 황야의 강들, 그리고 거대한 썰물의 흔적이 선회하면서 동쪽을 향하여, 숲의 기둥을 향하여, 부두의 방파제를 향하여 줄지어 지나간다. 그 모서리에 빛의 소용돌이가 부딪친다. -「바다풍경」, 전문 이 시에는 두 가지 영역이 등장한다. 바다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 그러나 이 두 영역은 하나가 다른 하나 속에 뒤섞여 나타나고, 모든 일상적 구분이 제거됨으로써 서로 교차되고 잇다. 바다 풍경은 또한 동시에 육지 풍경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 이 시는 개별적인 단어군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동사들이 두 영역을 한꺼번에 지칭함으로써, 이러한 추측 가능한 발상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므로 은유는 결코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문제는 은유가 아니라 상이한 사물들의 절대적인 동일시이다. 더 나아가서 텍스트는 바다가 아니라 거품과 썰물에 대해서, 배가 아니라 뱃머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체 대신에 부분들을 지칭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었던 방식이기도 하다.   이 기법은 랭보에게서 더욱 확연하게 들어난다. 거의 언제나 사물의 부분들만을 지칭하면서 그는 파괴를 끌어들이고, 이것은 다시 사물적인 질서 전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사물적인 질서 전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차분하고 간결한 짧은 시는 프랑스에서 자유시구의 결정적인 일보 전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탈현실화와 감각적 비실재성의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현대적인 혼효기법을 보여주는 첫번째 범례이다. 15. 추상시 「일루미네이션」의 전제적인 상상력은 부조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 「대홍수 이후」를 그 예로 들어 보자. 클로버밭의 토끼 한 마리가 거미줄을 통하여 그의 기도를 무지개에게 말한다. 마님은 피아노를 알프스 산에 세워 놓는다……. 상상력은 ‘술 던 깬 아침’에서와 같이 현란한 이미지 조작들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추상이라는 핵심어로 의도했던 것이다. 이 핵심어는 선과 움직임이 탈사물화한(추상적인) 직조물이 되어 형상들 위에 위치하고 잇는 랭보의 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사물들은 순수한 움직임과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단순화 된다. 이 모든 것은 이미 비실재적이지만, 종결부의 절멸에 의해 그것은 더욱 더 비실재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랭보는 털끝만큼의 열정도 없이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세계 속에서 움직인다. 그는 자신의 초기시들을 낯섦으로 몰아넣었던 저항적인 탈주를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낯섦 그 안에 스스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16. 독백시 1871년 이래로 랭보의 시는 점차로 독백이 된다. 문장들은 서로 간에 더욱 밀착되고, 에피세트들은 더욱 과감하게 생략되며, 기이한 단어군들은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의 독백적인 모호함은 되는 대로 쏟아낸 배설물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에 따른 예술성의 산물이며, ‘미지’를 향한 채울 수 없는 열정으로 인해 기지의 것을 파헤지고 낯설게 만드는 방식만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시의 산물이다.   랭보는 후기의 한 글에서 회고하며 “나는 표현 불가능한 것을 기록했고, 소용돌이를 움켜쥐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몇 페이지 뒤에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서로 배치되는 이 두 입장 사이에서 랭보의 모호한 시는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아직 진술되지 않은 것의 모호함, 그리고 더 이상 진술할 수 없는 것의 모호함, 이 둘은 침묵의 경계선에 인접하고 있다. 천재가 천재임이 확인되기 전에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17. 동역학과 언어마술 랭보 시의 긴장의 직조물은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의 에너지로부터 성립된다. 이때 음악과의 유사성은 그 음향 형상이라기보다는 다양한 강도로 진행되는 음조, 상승과 하강의 절대운동, 집적과 방출의 교체라는 점에 있다. 여기에서부터 모호하고, 마치 허공에 말을 건네는 듯한 랭보 시의 고유한 매력이 시작된다.   그러한 동역학의 진행 방식은 산문시 「신비주의자」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활기찬 움직임, 그후 텍스트의 중간 지점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상승, 여기서부터는 진동하다가 정지되면서 침강하는 폭넓은 만곡선, 그러다가 앞의 문장과 분리된 ‘저 밑에서’라는 짧은 말의 만곡선을 갑작스럽게 급강하시킴으로써 종착점에 도달한다. ‘내용’이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들이 시의 본질을 규정한다. 그러므로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매력이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랭보는 ‘말의 연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는 모든 자음들의 형상과 운동에 염두를 두었고, 언어에 내재된 리듬을 사용하여 조만간에 모든 의미와 연결될 수 있는 시적인 시원어를 창안하려고 생각했다.”   랭보의 마지막 작품에 들어있는 이러한 문장들은 그 어떤 극복된 단계를 암시하려고 하지만, 그가 이 마지막 작품 속에서도 언어 마술적인 창작 방식을 다양하게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시 편편들마다 그것을 소리내어 읽게 되면 모음들의 음영, 자음들 사이의 친화력이 얼마나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우리는 알게 된다. 그것은 음향 자체의 의지가 너무도 지배적이 되어서 시구나 문장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게 되거나 아니면 부조리하나마 그 어떤 의미만을 가지게 되는 경우에도 더욱 명백하게 입증된다. 0. 나오며 랭보의 위대함은 ‘미지의 것’ 앞에서 좌절한 고로, ‘미지의 것’에 대신하여 불러내었던 혼돈을 불가사의한 완벽의 언어로 전이시키는데 있다. 이른바 예술적 승화로 현실과의 불화를 극복한 것이다. 그는 보들레르처럼 용기 있게 미래를 예지하면서 그 자신이 천명했던 바대로, 또한 그의 세기의 운명이었던 ‘처절한 정신의 투쟁’을 수행했다.   세계와 자아를 동시에 탈형상화시키는 그의 시가 스스로를 파괴시키기 시작하는 경계에 도달했을 때, 이제 19살의 랭보는 지조 있게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침묵 또한 시인 존재로서의 행위이다. 종래의 시 안에서의 극단적인 자유는 이제 시로부터의 자유가 되었다. 랭보로부터 도움을 받기보다는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되었던 많은 후대인들은 요컨대 침묵이 상책이라는 사실을 배울 수도 있었을 터이다. [출처] 꽃물논술모둠 카페에서 http://www.zoglo.net/blog/update_form/jingli/347124  
1    시 창작 이론 모음 [스크랩] 댓글:  조회:3122  추천:0  2018-02-20
시 창작 이론 모음   1. 시를 쓸 때 습득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          시창작 리론 모음 A. 습득해야 할 것,  1)  시를 언어에서 출발하지 말고 '시적인 것'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황지우    2)  상상에 의한 의미의 확장조차도 기반은 '사실적 관찰'에서 출발해야한다    3) 대중성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되 건강해야 한다. 대중성이란 말로 대중에게    영합하거나 병든 미적 관념과 가치관에 편승하지 말아야 한다.    4)  상투성의 탈출 - 슬픔을 슬픔으로 노래하지 않는 것.    5) 시의 서사의 은닉(이야기의 감축) - 수사적 책략으로 이야기의 결핍을 추구하는     서사양식. 이야기의 추방(생략, 압축, 절단)과 변환을 수반.    6)  시는 생략함으로써 유혹한다. 시는 정보의 과소 공급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      을 이야기하는 언술 형식이다.    7)  '에둘러 가기'를 포기할 때, 시는 궁핍이 되고 그 존재의 광휘와 넉넉한 까다로       움을 상실한다.    8)  시는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좁게는 작품 차원에서, 넓게는 역사의 큰 문맥까      지 전체성을 지향하고 완결성을 향해 나아간다.    9)  시가 보편을 추구하면 추상에 떨어진다. 추상은 시의 지옥이다. 시가 어떤 보편      을 성취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구체성과 특수성의 힘을 통해서다.    10)  이미지의 구체성 - 몽롱하지 않음 (시의 한 방법으로서의 '애매성'은 이미지의      모호한 표현을 말함이 아니고 상상에 의한 의미의 확장 가능성을 말함이다.)    11) 시어는 추상어 보다 '구체어'를, 보편어 보다 '특수어'를 쓴다.    12)  시인의 주장은 추상적 구호 없이도 아주 절절히 한 이미지를 통해 전달된다.    13) 시인의 관념보다 구체를 더 지향한다.    14)  추상성 - 큰 고민 없이 어떤 '느낌'만으로 시를 채우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       다 (진정성의 결여)    15)  시는 나의 감정의 서술이 아니고 독자의 감정의 획득이다.    16) 잘된 시 좋은 시는 그것이 시인 자신의 감동에 머물지 않고 그 글을 읽는 사람     에게도 똑 같은 정서적 반응으로 자리하게 된다.    17) 시의 질을 따지는 비평적 장치들 - 시적 진술의 평면성 극복 여부, 간접 화법     의 정도와 효과, 이미지 배치법, 어사 선택의 연마도, 비유/상징 운용의 기술 수     준, 긴장/갈등의 상승적 해소와 종말    18) 시의 육체를 구성하는 세가지 == 1) 묘사와 비유로부터 발생하는 이미지 = 2)      서사의 실제적 이야기 = 3) 리듬과 어조에서 태어나는 감정 - 이은봉    19)  서정시와 음량은 늘 '아직도 작은 목소리'이다  20)  문학이 문학적 진술의 모호성이라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서 '       신비적 사유양식'을 채택하는 일과 '신비주의' 그 자체에 빠져드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다 .       - 역설적 어법을 통한 신비주의        - 은유적 신비주의    21)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도 그 노래가 이미 불리워진 노래의 변조에 지나지 않      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문학은 일차적으로 창조적 배반과 전복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22)  작가는 그것의 전범을 왜곡하고 비틀어 새로운 글쓰기의 모형을 만들어 내야       진정한 작가의 가능성을 찾게 될 것이다.    23)  '관습적 사유에 대한 반란으로서의 시'    24)  줄광대는 몸무게가 쏠리는 반대쪽으로 부채를 펼친다. - 시인의 부채는?    25)  좋은 시인은 그의 내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      할아는 사람이다 - 대부분 시인들은 자기의 감성적 상처를 지나치게 과장하거      나 그것을 억지로 감춤으로써, 끝내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를 벗지 못      한다    26)  나의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과 나의 이야기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구      별된다.    27)  '전형화'의 문제    28)  어두운 시대, 시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상징이다. 소수인의 독점물일지라도 일      정한 긴장과 자기통제 아래 이루어지는 상상력의 문학은 암울한 시대 상황과      싸우는 유일한 부드러움이요 무기다 29)  '모더니스트'들이 사상적 빈약의 상태에서 육체의 세련미를 추구하느라 모호한      수사학적 유에 집착해 왔다면 '사실주의 자'들은 언어의 의미망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집착과 문학적 상상력의 빈곤에 의한 상투성에 매몰되어 왔다.    30) 시의 언어는 생리적으로 체험이나 사물의 구체를 겨냥한다.    31)  담고자하는 내용에 압도되어 언어의 힘이 과소 평가되다 보면 일종의 '스토리      텔링'이 되기 쉽다. 짜임새도 있으며 건강한 주제 의식도 살아 있는데 전체적       으로 건조하고 말과 말 사이에 탄력이 붙지 않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이다. -       선취된 관념에 구속됨    32) 서정시는 이야기 내용 또는 교설적인 측면을 가능한 한 제한해야 하는 양식이       다.    33)  (경우에 따라서는) 지나친 수사력으로 대상이 가벼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런 은유의 세계를 버리고 되도록 평이한 표현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34) 자신이 사용하는 말에 자신의 체중이 실리고 있는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35) 모름지기 시란 그 핵이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낌'에 있는 탓이다. 36) 민족문학의 시적 흐름이 성급한 '개념적 진술'로부터 이와 같이 완벽한 '형상화'     쪽으로 기운 것은 대단한 진화라고 불 수 있다.    37)  '80년대 민중시의 구조 중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스토리 위주'의 시적 진술이      지닌 장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38) 자기가 겪은 체험을 그대로 시로 옮기려는 '익숙한 것'에의 유혹에서 탈피하여     체험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시작의 확보와 함께 시를 읽는 재미와 긴장을 적극     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39)  적절한 의성, 의태어 - 정물화처럼 되버릴 가능성이 있었던 시를 동적으로 살       려 놓기도 한다.    40)  악보가 부여되지 않은 언어는 또 그것 나름의 울림을 갖는다 - 음악성 고려.    41)  서정적 주인공의 등장과 감춤.    42)  어떤 서정적 주인공을 등장시킬 것인가를 고려.   43)  민영의 초기 시 - 말을 아끼며 체험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절제      되고 압축된 생략적 구도의 행간에 여백의 공간 또는 침묵의 공간이 펼쳐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단시에서 볼 수 있는 호홉의 짧음과 이차원적      구도의 평면성에 의해 어떤 감상주의적 한계가 지적될 수있다.      (압축된 복합성이 없는 단순성의 경계)    44)  '시대와의 불화'는 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독자와의 불화'는 시인의      창조적 노력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    45)  이즈음 젊은 시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현학성와 난해취미 그리고 요설이나     수다스러움이 없어서 좋다.    46)  장중하면 맑기 어렵고 맑으면 장중하기 힘든 법이건만 엄청나게 큰 소리이면      서 이슬처럼 맑은 울림,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없는'둥근소리'여야 한다. 길고 긴 여운을 지닌 소리여야 한다.-박노해   47)  형상과 의미 혹은 상상력과 논리 사이의 끊임없는 존재론적 긴장감    48) '도구적 접근'으로 부터 '미학적 접근'으로    49) 문학이라는게 '상처보여주기'를 그 근본 업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50) 대칭 또는 역설적인 삶을 받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시 또한 대칭적이거나 역설적      이다. 51) 습작 시절에는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52)  에 대한 도식의 위혐 : 전형에서의 해방이 곧 인간 해방의 다의성으로       이어지는 데는 훨씬 더 민중적인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 - 고은의 '만인보'    53)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실험' '해체' 따위의 꼬리표를 달고 나타나는 형식      파괴의 작업이 얼마만큼 독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라기 보      다는, 그 작업이 얼마만큼 작가의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혹시 겉멋부림은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54) (그리고) 다음엔 그 작품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삶이 우리의 현실 속의 삶      과 어떠한 관계를맺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55) '낮설게 하기'라는 문학적 기법은 이상의 이유들로 해서 문학사적 보편성을 획     득하고 있는데,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이끎으로서     인간과 세계와의 발전적 상호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56)  시인은 참말로 '최초로 생각하고 최초로 보고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57)  신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쉽게 떠오른 생각이나 글자들을 지워 버리는 것      이다. 그들은 백지 위를 너무 쉽게 달려간다.    58)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 작품은 필경 삶을 어떤 수준에서 '새롭게 해주는' 품격      을 지향해야 하며, 모든 문체와 기법은 이를 위해 은밀히 봉사를 해야 한다.  58)  시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개념과 감각의 상투형을 파괴'하려고 대담하게 모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59) 시란 말하고싶은 것을 다 말하지 않는 데에서, 즉 '말과 침묵 사이'에서 균형     된 어떤 탱탱한 긴장을 받기 때문이다.    60)  는, 그러나 일상의 표피적 묘사와 도시적 소품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는 '우리 시대의 위기 구조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언제나 동반돼야 한다. - 아니다 때로는 '일상에서 우리가 미처 감지하지 못      한 아름다움'이 시인에 의해서 발견되고 노래될 때도 그 시는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61)  시가 의미를 가지는 또 하나의 가치는 그것이 우리의 '반성적 사유'를 자극한      다는 것이다.    62)  좋은 시인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표현할 때 조차도 심미적 거      리를 유지하며, 대상이 존재 의의를 보다 명징하게 간파하여 절제된 묘사에      이르도록 한다. 63) 시인은 언어의 도취를 위해 시를 쓰지 않고 그 언어의 도취를 깨우기 위해 시     를 쓴다. 그래서, 타락한 세계 그 자체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그 세계를 지탱하     는 타락한 언어에 대한 싸움이다. (관념화된 언어와의 싸움)    64)  문제는 경험을 어떻게 사실에 부합되게 재현하는가가 아니라, 진실로 그 경험      이 무엇인가에 대한 시적 해명이며, 그 경험의 세계를 존재의 밝음 속으로 이      끌어오는 것이다.    65)  풍자는 독자의 의식을 충격하며 그 이데올로기적 미망을 깨고 현실에 대한 재     인식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청자(聽者) 중심적인 문학적 계몽주의의 변종이다.    66)  (끊임없이 경계에 위치하며 그 경계를 지워 나가는 운동) - 이러한 운동이 그     의 시를 '도취적 내면적 담론'에 머물지 않게하며, 그의 시들을 살아있게 한다.    67)  모든 시적 언어는 논리적 언어로 요약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시적 언     어가 된다. 68) 시라는 장르가 초월의 형식이라는 미학적 명제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초월은     대지의 삶에 대한 관심과 결코 불리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구조와 지리학     에 대한 관심을 절연한 초월은 소박한 낭만주의 충동을 넘어서지 못한다.    69) 시는 부정을 목표로 하는 부정이 아니라, '없음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없음의     현실을 부정하는 힘 또는 없음에 대한 있음을 꿈꾸는 건강한 힘'이다.    70)  (시인의 태도) 부정적 사유의 힘은, 그 쉬지 않는 운동의 에너르기와 자기 갱      신에 의해서 유지된다.    71)  시는 현실의 변화를 예감할 뿐만 아니라 그 변화에 참여하며, 나아가 그 변화      의 의미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문학 형식이다.    72) 시에 있어서 미적 구조의 진정한 성취는 시적 언어의 육화(肉化)를 얻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보기 시의 경우) 시 언어의 현실감의 증대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태도가 '직설적이고 과잉된 수식어를      통해 개진됨'으로써 그 정서적 역동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73)  시에서 삶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궁극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어휘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 언어의 형태적, 통사적 구조를 통해서이다.     '준엄한 정의'를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정서적인 충격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일인 것이다.    74)  경험 자체는 시가 아니며 종교적, 철학적 통찰 역시 그 자체로는 시가 아니     다. 시의 의미의 층위들은 그러한 세계관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의 만남을 계기로 화학적으로 침전된다. 시인은 흩어진 경험의 조각 가운데 선    택적으로, 어떤 것을 독특하고 중요한 것으로 부각시킨다. 경험은 정밀하게 관찰    되고 현재화된다. 시는 일상적인 경험의 변역이 아니라, 경험의 의미를 실현하는    움직임이다. 시인은 그 '경험에 하나의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경험의 진    정한 주체가 된다.    75)  시의 '어조'는 작품의 외적인 경험 현실의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에 부과된 장식이 아니라, 바로 세계와 교섭하는 방식 그 자체인      것이다.    76)  (자본주의적 모순 하에서) 시인들에게는 두 가지 싸움 방식이 부여되어 있다.    하나는 화려한 자본주의적 이미지들 안에 은폐된 추악하고 어두운 죽음의 이미    지를 투시적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는 것인데, 이것은 행복의 신화를 깨뜨리는    대항 이미지의 창출이라고 할 만하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적 언어 양식들의    어법과 표현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그것들의 비꼼을 통해 그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77) 페러디란 무엇인가? 모든 글쓰기는 모방의 글쓰기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낯선     것이 되려는 글쓰기이다. 글쓰기의 욕망은 근본적으로 페러디의 욕망이기도 하   다. 문학 행위는 현실에 대한 일차원적 반영의 행위가 아니라. 앞선 언어에 대한   끊임없는 모방과 베끼기의 행위이면서, 그 모방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점   유하려는 행위이다.    78)  (80년대에 대한 90년대의 문학의 변화) 그것은 객관적 인식에 대한 주관적 인     식의 우위, 웅변에 대한 독백의 우위, 집단적 전범에 대한 개인적인 개성의 우     위, 모방론에 대한 표현론의 우위, 당위적 진리에 대한 일상적 진실의 우위, 재     현적 진실에 대한 시적 탐구의 우위 등으로 거칠게 요약될 수 있을 뿐이다.    79)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지각될 수 있을 때 효과성      을 띤다.    80)  형용사나 부사어가 한 행에서 반복되면 천박한 느낌을 준다.    82)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 작품은 필경 삶을 어떤 수준에서 새롭게 해주는 품격을     지향해야 하며, 모든 문체와 기법은 이를 위해 은밀한 봉사를 해야 한다.    83) 시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개념과 감각의 상투형을 파괴하려고 대담하게 모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84)  서사와 서정의 개념은 헤겔이 정의한 대로, 자기 노출의 주관성의 표현이 서      정으로 드러나는 것이요, 세상의 객관성을 움켜잡으려는 충동에서 서사가 나      온다고 말할 수 있다.    85)  시인에게 있어 세상은 맑고 투명한 감각으로 그 미세한 생명의 숨소리조차 놓      치지 않고 품어 안아야 할 삶의 현장이지, 싸움의 대상은 결코 아니다.    86) 삼라만상을 시인 자신의 주관성 표출의 도구로 전락시키지 않고 그것들의 빛나     는 개별성을 그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생태학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87)  시는 그 의식을 녹이고 삭여 예술성 짙게 형상화되어야지 생경한 구호 나열의      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88)  시의 '어조'는 작품의 외적인 경험 현실의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에 부과된 장식이 아니라, 바로 세계와 교섭하는 방식 그 자체       인 것이다.    89)  유행에 편승하여 임시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는 '유희정신'을 버리고 인      간 존재와 삶에대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오랫동안 속으로 묵혀서 오래 남는 시      를 쓸 수 있는 시정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90) 요즈음 우리 시 일부에 유행하는 장광설, 비틀림, 무잡함에 일격을 가해 신선     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91)  그의 시에 특징적인 것은 그 어느 경우에나 시인 개인의 사적 주석 또는 감상      적 개인에 의해 사물과 인생 그것의 본래적 역동성이 훼손되는 것을 시인이      극력 피하고 있다.    92) 산문적 인식과 시적 인식의 차이 또는 산문적 표현 방식과 시적 표현 방식의       차이    93)  시가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최대의 이윤'이      아닌 '최고의 가치'와 '최고의 신실'을 추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94)  도식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 요즘 우리 시단에서 너 나할것 없이 발표하      는 소위 생태시를 보고 있자면 지난 시대에 민중시가 보여줬던 단순성과 도식      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저버릴 수가 없다.    95) 시인들이여 좀더 복잡해지기를, 시인들이여 인간은 물론 이 세계가 얼마나 다     층적이고 잡스러운 것인가를 새삼 인식하기를, 시인들이여 그 유행 휘하에서     과감히 벗어나기를, 시인들이여 노래하는 대상이 추상적 존재가 되거나 도그마    가 되지 않기를...    96)  이번에 출간된 ooo의 시집을 보며 그가 왜 이렇게 바깥으로만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그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차분하게 내면화시키거나 좀더 입체적으로 바     라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97)  무엇보다도 시가 난해하지 않고 문장의 수식이 절제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작     품을 대할 수 있다. 너무 언어가 화려해지고, 절실성보다 파격성에 매달리는     이 시대의 문화적 혹은 문학적 풍토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시는 조금 진부한      듯하나 오히려 그것이 돋보인다.    98)  그러나 나는 그가 좀 더 말을 아끼며 조용하게 그의 시세계를 다듬어 나갔으      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99)  친숙함은 인식의 장애다.    100)  다시 말해서 두드러지게 노골적인 야유나 풍자를 통한 비관, 폭로속에 진정      한 전복적인 힘이 '깃들어' 있으려면 그 작품의 시적 진정성, 슬픔과도 같은      큰 긍정이 그것을 깊은 데로부터 지탱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      으면 그것은 천박한 욕설에 불과)    101)  '쉬운시'란 지시적이고 관습적인 전달성의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쉬운시란 '새로운 세계의 발견'과 '표현의 묘'를 지니고 우리에      게 다가온 '감동' 그 자체로서 존재해야 한다.    102)  시의 공화국 안에서 시보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다 가짜다. 철학적 언사에      대한 강의를 쫓아다니는 자들, 제도권과의 유희를 벌이는 자들, 시 속에 종교      적 언사를 흩뿌리는 자들, 시가 궁극적으로 말해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 자들,      무엇 무엇이 시적 전통이라고 외치는 자들은 모두 자기 죽음을 지키려는 자들      이다. 시 공화국은 오직 '구체적 외부'만을 가질 뿐이다.    103) 진부한 일상성에 발목이 잡혀있는 의사시는 버리자 - 인식이 없는 이런 시들      은 요즘 우리의 시정신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104)  즐거리의 최소한 합리성의 참견을 물리치기 힘든 소설과는 달리, 시는 그 자       체로 완결되어 있는 비합리적 총체성을 오롯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105)  창작 주체의 최대의 적은 보편성에 머무는 것이다.    106)  시인은 망설일 필요가 없다. 강하게 진술.    107)  아이러니의 제공 원인은 객관적 상황일 것. 독자가 미처 몰랐던 아이러니를       깨달을 것, 아이러니의 개인성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108)  대상을 옳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투적인 선입주를 버려야      한다. 상투적 선입주는 언제나 어제 본 그대로, 더구나 남들이 승인하는 그대      로만 보기 때문에 다수의 동의를 얻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날카롭고      창조적인 눈을 봉쇄하고 사물을 획일화 된 무덤속에 가두게 된다. 대상을 옳      게 표 현한다는 것은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109)  누보 로망은 이전 소설들이 기초하고 잇던 사실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복시켰      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주의는 하나의 작품을 하나의 근거에 기초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는 미지라는 현실에 동의하며 불안한 세계를 보     여주는 것이다.--- 누보 로망은 세계와 인간의 충돌을 작품 안에서 처리한다.    사실주의는 주인공의 어려움과 갈등을 논리적으로 작품 내에서 설명한다. 하지    만 누보 로망은 책 자체가 설명이다. 누보 로망은 편안한 문학이 아니고 불편하    게 만드는 문학이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다. 사실주의는 객관성과 주관성을 화    해 불가능한 것으로 그린다. 누보 로망은 그것을 함께 보여준다. 이런 충돌이 우    리가 쓰는 작품내에서 일어난다. 충돌이야말로 우리 일상이다. 언제나 두 가지    양극의 욕구가 충돌하고 있다. --- 누보 로망을 읽으면 독자는 능동적으로 깨    어 있다. 책이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작    품이 주던 안정성, 사실성은 현대 문학에서 사라진다. 하나의 작품은 여러 가지    불가능한 요소들이 충돌하는 불안정한 장이라는 충돌을 받는다.    (알랭 로브 - 그리에)    110)  노자는 말했다. 사람들은 진흙을 빚어 꽃항아리를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쓰     이는 부분은 꽃항아리 속의 비어있는 부분이다. -- 정작 중요한 것은 비어있     는 부분일 터인데 능청이 지나쳐 여행담이 너무 수다스럽거나 여행자가 얻은    각종 지식과 풍물들을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아 무거워지는 대목들은 최근 우리    문학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취약점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것이다. 비어있는 부    분이 핵심이라지만 항아리의 모양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야 상품(上品)이다    111)  시는 우선 시가 되어야 한다.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의 구분이나, 참여니     순수니 하는 변별은 그 다음 문제다. 동시에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므로 호악    (好惡)의 판단이 있을 뿐 우열(優劣)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시인이 시가(詩歌)    언어(言語)의 규율을 무시하고 목청만 잔뜩 높이게 되면 그것 은 한 때 대학가   에 요란스레 나붙었던 대자보나 근엄한 목회자의 설교와 다를 바 없다. 웅변이나   설교를 시의 형식을 빌어 듣고 싶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시는 결코 관념의 놀이   터이어서는 안된다. 또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몽환적   어휘의 나열이나 이미지의 배합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그것은 속세무민의 연금술   사에 자나지 않을 것이다. 시는 결코 독해할 수 없는 상형문자이거나 암호문일     수는 없다     B.  글을 쓸 때 피해야 할 것    1)  관념의 덩어리를 날것 그대로 내뱉는 조야함의 탈피 2) 기교주의, 거친 일상적 내용, 짙은 현실주의 (위의 것들은 시의 감동을 줄인다)  3) 간접적이고 상징적이고 때로는 비틀어지고 알쏭달쏭한 표현만이 시라는 관념은          세기말적인 것에 불과하다. 4)  진부한 이미지의 오용 4)  삶에 대한 해석이 없다. 모든 것들은 단편적인 풍경이며 시인의 몇몇 나날들이     조합된 꼴라주일 뿐이다. 5)  시가 시적 자아의 삶에 기호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사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     고 공적언술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개인적 감상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는 작품. 6)  젊음의 고뇟길에서도 늘 거울앞에 서서 자신만을 응시하더니, 그 고뇟길에서     돌아온 나이에도 여전히 거울 앞에 앉아서 자기 얼굴만 들여다보며 자기 얘기    만을 써내는 그런 시인들이 의외로 많다.   7) 비유와 상징의 상투성 또한 시인에게는 치명적이다. 잘못된 비유와 상징은 예상    치 못했던 '사막의 집'을 만들기 때문이다.  8)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상투적인 산문성. 9)  저마다 자신의 개별적인 느낌들을 누가 무어라고 하건 말건 마구 써대는 시    10)  이 시인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모호함이다. 그러고 그 모    호함은 자기 개인에게서 발생하는 느낌이나 생각들을 좀 더 깊은 타자들과의 관    계라는 객관적 심연 속에서 우려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10) (-등)의 비유가 작품의 의도를 직접 노출함으로써 시적 암시력을 잃고 말았다. 11)  사상과 실천의 심화과정 없이 주관적으로 머릿속의 관념만으로 씌어지는 것이     문학일 수 없다.  12)  지당한 사유를 반복하는 것이 가져다 주는 지루함. 13) 주제상의 육중함에 비해 그것을 지탱하는 형상적풍요가 모자라게 느껴지는경  14) 이슬방울 맺힌 청청한 풀잎의 그 식물적 생명성은 간 데 없고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어쩌고 하는 비유의 뻣뻣한 잔해만 남아 공연히 폼을 잡는다.    15) '관습적 사유'로 인해 엄청난 감동이 수반되어야 할 것을 감동 없이 써내는 것     도 문학에서는 유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16)  갈등의 드라마가 없으면 단순성을 면치 못한다  17)  그것은 막연하게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시 이전의 어떤 감정일 뿐이다. 다시금      삶의 구체적인 지형도 속에서 그 한 단면의 구체적인 드라마와 연결되어서 이      쪽 저쪽으로 뻗어나가는 긴 이야기의 한 단편으로 정확하게 그것은 자리 잡아       야 한다.  18)  아마추어 시들이 실패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꾸 설명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독자들의 인식 단계를 무시한 채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상징과      비유의 세계를 구축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19)  죽은 관용구를 시적 변형없이 그대로 나열하는 나태.   20) '상상력'이라는 부분을 핑계삼아 문맥의 부정확을 방기하는 것은 초보의 단계      에 그쳐야 한다.  21)  언제부터인가 감각적인 낱말의 무분별한 나열이 시의 재치 같은 것으로 받아     들여지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재치가 일방적으로 해롭다는 뜻이 아     니라, 깊이 있는 통찰력과 분명한 관점으로 탄탄한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     태에서의 언어감각은 한대의 패션으로 끝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다.    22)  근시안적인 시인의 기능주의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23) 거기에는 생활의 객관적인 인식이 배제되어 있고 시를 쓰는 사람의 막연한 정      서적 체험이 모호한 관념적인 언어를 통하여 나타나 있을 뿐이다.     2.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표현  어떤 시들을 보면 시가 막연하고 모호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시는 시로서 이미 실패한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가 실패한 원인을 살펴보면 시어들이 구체적 표현을 하지 못하고 아주 애매하고 모호한 표현들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은 시란 어떤 대상이든 그것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명제로 남습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쉽게 감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묘사하거나 암시해야 합니다. 시는 더구나 주관성이 강하기때문에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면 누구의 감동도 끌어낼 수 없다. 자기 혼자만이 아는 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정주는 (저는 서정주 연구로 문학석사 학위를 땄습니다.  그래서 인용할 때 서정주님을 많이 합니다. 양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를 한 언어조직으로 짜내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우리가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내가 실감한 대로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상상시킬까?'하는 것이다. 상상을 시키지 않고서는 우리가 실감한 어떤 시의 감동도 독자에게 전할 길이 없다.  시인이 가령 어떤 의젓한 남자를 보고 감동했다고 하자 그 의젓함으로  '기가 막히게 세계 제일로 씩씩하고 늠름하고, 엄숙하고,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어쩌고 추상적으로 설명해 봤자, 독자는 '어떻게' 생겼는가를 상상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구약성경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의젓하고 씩씩한 남자의 코를 표현하길,  '다마스커스로 향한 레바논의 수루(戍樓)와 같이....'라고 쓴다면  '아, 그래 적의 땅 다마스커스를 향해서 용감히 우뚝 솟아 있는 레바논의 수로 같이 용감한 느낌을 주는 오똑 솟은 코로구나'  하고 그 느낌을 주니, 어떤 모양임을 능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는 늘 독자에게 작자의 실감을 상상시킬 수 있는-'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궁금증에 대답하는  구체적인 영상의 조직을 보족하는 것들로만 쓰여져야 한다.  추상이란 원래가 어디에서나 구상을 보족하기 위해서 쓰여져 온 것이다.  시에 있어서도 그 임무는 역시 마찬가지이다.  추상관념을 주로 해서 시라고 써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가끔 보지만, 이 것은 나무 없는 그늘을 말하려는 어리석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말 그대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파스칼의 말처럼  '천사를 그리려다 짐승을 그린다'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겠지요.  시를 쓸 때도 추상어나 일반어보다는 구상어와 특수어를 써서 구체적인 표현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곽재구님의 을 한 번 읽어보실까요?  참 맑은 물살  발가락 새 해적이네  애기 고사리순 좀 봐  사랑해야 할 날들  지천으로 솟았네  어디까지 가나  부르면 부를수록  더 뜨거워지는 너의 이름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출렁거리는 산들의  부신 허벅지 좀 봐  아무 때나 만나서  한몸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 연분홍 사랑 좀 봐.  어때요? 우리가 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단어들로만 구성되었지요?  이 시를 두고 조태일님은 "위에 인용된 시의 언어들을 살펴보면 우리들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상어들이 대부분이다.  물살, 발가락, 고사리순, 머리카락, 허벅지, 산, 눈물들은 이미 경험에 의해서 친밀해진 것들이다.  따라서 머리로 생각하기 앞서 우리들의 가슴으로, 몸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정호승님의 을 한 번 읽어보실까요?  부활절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 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시를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려면 묘사를 잘 해야합니다.  즉 시적 대상을 그림을 그리듯 인상적이고 특징적인 세밀한 부분들을 잘 그려냄으로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시가 좀 어려운 것 같지만 제가 볼 때는 여기서 개미는 열심히 일이나 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근로자들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 달동네 풍경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그려질 것입니다.  이어서 이성복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살 속으로 물이 들어가 물이 불어나도  사랑하는 어머니 微動도 않으신다  빗물이 눈 속 깊은 곳을 적시고  귓속으로 들어가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어도  사랑하는 어머니 微動도 않으신다  발밑 잡초가 키를 덮고 아카시아 뿌리가  입 속에 뻗어도 어머니, 뜨거운  어머니 입김 내게로 불어온다  창을 닫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빗소리  사랑하는 어머니 비에 젖으신다  사랑하는 어머니 물에 잠기신다  어떤 사람들은 무덤 속의 어머니를 뜻한다고 하나, 저는 대지(大地)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의견이 맞던지 어머니의 무덤이나 땅으로 어머니를 대치해놓고 보면 참 구체적인 언어로 그림을 그리듯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비 오는 숲 속을 생각해보십시오.하나 하나 그 장면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향집이 생각나는 최하림님의 을 읽어 보자 나 물 속처럼 깊이 흘러 어두운 산 밑에 이르면  마을의 밤들 어느새 다가와 등불을 켠다  그러면 나 옛날의 집으로 가 잡초를 뽑고  마당을 손질하고 어지러이 널린 농구들을  정리한 다음 등피를 닦아 마루에 건다  날파리들이 날아들고 먼 나무들이 서성거리고  기억의 풍경이 딱따구리처럼 소리를 내며  달려든다 나는 공포에 떨면서 밤을 맞는다  밤이 과거와 현재로 부유스럽게 흘러간다  뒤꼍의 우물도 물이 차오르는 소리  밤내 들린다 나는 눈 꼭 감고     3.  대상에 대한 표현 - 표현은 정확하게 1 * 표현은 정확하게  먼저 고려시대 쌍벽을 이루던 두 문장가 김부식과 정지 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알기 쉽게 풀어놓은 시와 한자음을 달아놓습니다.  하루는 김부식이 정지상의 시가 좋아서 이 구절을 내게 달라고 했으나 정지상이 거절했습니다,  그 후 김부식이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시인 즉,  "절에서는 불경소리 그치고 琳宮梵語罷(림궁범어파)  하늘은 유리처럼 맑다" 天色淨琉璃(천색정유리)  하루는 김부식이 봄이 되어 그 봄을 맞는 시를 지었습니다.  "버들빛 천 줄기 푸르고 柳色千絲綠(류색천사록)  복숭아꽃 만 점 붉구나." 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  참 멋있는 시이지요?  그런데 느닺없이 정지상의 귀신이 나와서 김 부식의 뺨을 때리면서 "버들의 천줄기 누가 세어 보았으며,  복숭아꽃 만 점을 누가 헤아려보았느냐" 하면서  "줄줄이 버드나무 푸르고 柳色絲絲綠(류색사사록)  점점이 복숭아꽃 붉다."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 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두 시가 다 내용이 같을 뿐만 아니라 단 한 글자씩만 바꾸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느냐 하겠지만,  그만큼 시를 쓰는 글자에 중요성입니다.  시어를 쓸 때는 그만큼 표현의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적당히 그냥 생각나는 말로 써버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시어를 고를 때부터 지극 정성을 드리라는 말이겠지요.  좀 설명이 길지만 이 두 표현에 대한 조태일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정지상이 김부식의 따귀를 때리며 고쳐 쓴 "줄줄이 버드나무 푸르고/점점이 복숭아꽃 붉다"는 구절은  내용 면에서 김부식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시는 의미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표현이 아니며, 어떤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언어표현도 아니라  정서적 울림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에 두 시의 의미는 서로 비슷하지맘 가슴에 파고드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김부식이 표현한 '천 줄기'와 '만 점'은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사물을 관찰하고 그 것을 언어로 가시화하는 시인의 태도가 안일하고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푸르른 버드나무와 붉은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두리뭉실 '천 줄기'와 '만 점'이라는 언어를 선택했지만  이 언어들에는 필연성, 즉 꼭 그 언어이어야만 하는 유일성이 없다.  즉 시인은  별로 고민하지 않고 적당하게 이 언어들을 씀으로써 시어의 생명인 정서적 울림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정지상이 쓴 '줄줄이'와 '점점이'는 가장 쉽고도 정확하게 버드나무와 복숭아꽃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여인의 긴 머리카락처럼 무성하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한번 상상해 보라.  '천 줄기'라는 언어보다 '줄줄이'라는 의태어가 훨씬 더 생동감 있게 우리들의 감각을 자극할 것이다.  또한 '줄줄이' '점점이'라는 의태어가 빚어내는 음악적인 효과까지 함께 곁들여져 버드나무의 무성한  푸르름과 복숭아꽃의 붉은 빛이 더욱 깊고 황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비교해 볼 때, 정지상이 선택한 언어들이 대상을 표현하고 그것들을 살려내는데 성공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시어들이 빚어 낸 정확한 표현 때문인 것이다."  여러분께서 조태일의 말 그대로 생동감이 무성한 푸르름이나 붉은 꽃의 색깔이 더욱 깊고 황홀한 것까지  느껴지는가는 모르겠습니다. 또 꼭 그의 의견에 동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시어의 선택이 정확해야한다는 그의 의견만은 너무도 확실한 이야기이어서 길어도 옮겨보았습니다.     4.  대상에 대한 표현 - 표현이 정확한 시 몇 편  서정주님의 을 감상해 봅시다  좀 어려운 시인 것 같아도 시를 다루는 문학평론가라면 다 한 번씩은 다루었다 할 정도로 유명한 시이며  서정주가 23세 때 쓴 시인 것을 알면서 읽기 바랍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이며 나는 왔다.  이 시를 읽어보면 시어가 아닌 일상적 언어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심하여 시어로 사용하였기에 그 정확한 표현은 감동과 함께 시를 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표현들을 빼고 다른 언어로 대치하면 바로 시의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독창적 언어체계입니다.  (팔할, 죄인, 천치, 혓바닥, 수캐 등은 이렇게 시 밖에서 볼 때는 일상에서나 흔히 쓰는 언어임을 그냥 알 수 있습니다.)  잘 아시는 시 김현승님의 를 올립니다.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시기 위해서 시의 부분을 싣지 않고 전문을 실으니 강의가  그 때문에 좀 길어지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은 모르나,  플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을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 하는 어느 날.  플라타나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참고로 위의 시에 나타나는 플라타나스의 모습은 그냥 단순한 나무의 차원이 아니고 사람의 모습으로  의인화 되었음을 인식하시고 읽으시면 더욱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 시 한 편 더 읽겠습니다.  이제무님의 입니다.  아들아 무덤은 왜 둥그런지 아느냐  무덤 둘레에 핀 꽃들  밤에 피는 무덤 위 달꽃이  오래된 약속인 양 둥그렇게  웃고 있는지 아느냐 넌  둥그런 웃음 방싯방싯 아가야  마을에서 직선으로 달려오는 길들도  이 곳에 이르러서는 한결  유순해지는 것을 보아라  둥그런 무덤 안에 한나절쯤 갇혀  생의 겸허한 페이지를 읽고  우리는 저 직선의 마을 길  삐뚤삐뚤 걸어가자꾸나  어디서 개 짖는 소리  날카롭게 달려오다가 논둑 냉이꽃  치마폭에 폭 빠지는 것 보며  *시인은 죽음과 슬픔 등 여러가지 어두운 무덤에서 어두운 시의 씨앗을 얻은 것이 아니라  무덤의 봉분, 밤에 떠오르는 보름달, 산을 오르는 꼬부랑 길 등 곡선의 부드러움.  포용, 원만함, 겸허한 마음 등을 깨닫고 직선의 마을 길과 대비시키며 그의 시를 완성시켜 나갑니다.     5.  대상에 대한 표현 - 낯설게하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여러가지 문예비평이론 중에서 "낯설게하기"이론을 윤석산 교수님의 글을 옮깁니다.  문예비평이론은 너무 어려워서 외울 필요는 없구요.  그냥 한 번 읽어보시기만 하시고 필요하신 분은 잘 기록해두시기 바랍니다.  [낯설게 만들기와 이미지 및 은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초기에 시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차츰 시선을 산문 쪽으로 옮기면서 문학의 일반적 특성에 관심을 둔다.  슈클로프스키는 [기법으로서의 예술](1917)에서 시의 모든 요소와 기법은 시인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독자의 습관적 수용에 충격을 가하여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서  '낯설게 만들기(defamiliarization)' 을 강조한다.  그리고 정보 전달을 위주로 하는 산문에서 은유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인 반면에 시에서는  미적 효과를 강화시키기 위해 낯설게 만드는 것이 목적 이라면서 와  를 구분한다.  그리고 그는 또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시의 운율도 실상 무미건조한 생활 언어의 억양을 일그러뜨려  습관화된 청각을 자극하는 수단이라면서, 시를 비롯한 모든 예술은 대상을 '새로운 인식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의미론적 전환(semantic shift)'이 근본적인 목적이며 존재 이유라는 견해를 편다.  그의 이런 관점은, 예술은 우리가 모르거나 친숙하지 않은 사실을 알기 쉽게 해준다는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또는 낯선 정신 세계를 단번에 도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정신의 경제적 전략임을 전면으로 거부하는 것으로서,  '낯익음', '친숙성'은 '자동화(automatization)'로 이어져 탈언어화(脫言語化) 다시 말해 기호화(記號化)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그대로 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예술의 테크닉은 사물을 '낯설게'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며,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킨다.  지각 과정이야말로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되도록 연장 시켜야 한다.  예술이란 한 대상이 예술적임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상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슈클로프스키는 이 기법이 실험적인 작가들의 유희가 아니라 문학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원칙임을 입증하기 위해 사실주의 소설가인 톨스토이를 예로 든다.  그는 {전쟁과 평화} 에서 오페라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무대장치를 '페인트칠한 마분지 조각들'로 묘사하고,  {부활}의 미사 장면에서 성병(聖餠)을 '조그만 빵 조각'이라고 일상적인 용어로 표현한 걸 지적한다.  그리고, ≪홀스토머≫(Xolstomer, 말이 화자인 일인칭 화법으로 씌어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에서  말의 주인과 그 친구들의 변덕과 위선을 말(馬)의 시각에서 보고 이야기함으로서,  인간의 위선성을 새롭게 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바흐친은 '톨스토이는 낯설게 된 사물에 넋을 잃지 않았다'면서,  '사물을 낯설게 만든 것은 사물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사물을 끊어 정말로 필요한 것-어떤 도덕적 가치-을 훨씬 더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제시하기 위해'라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돌을 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낯설게 된 사물을 배경으로 삼아  도덕적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가 이런 비판을 한 것은 슈클로프스키는 사물의 새로운 지각만 강조하고 그를 통해  표현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제거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야콥슨도 회화를 예로 들면서 이와 비슷한 견해를 편다.  그는 그림 같은 시각 예술에서 사실감의 표현은 상당히 자연스럽고 용이한 것으로 생각하나,  삼차의 실물을 2차원으로 옮기는 것으로서, 인위적 방법을 채택하며,  그 그림의 박진성은 저절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관습적 언어'를 익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관습적 방식이 계속되면, 마침내 '추상화'가 되고,  한문과 같은 '표의문자'로 바뀌어 핍진성(verisimilitude)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를 다시 이그려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상의 왜곡은 사실을 말하지 않고 강하게 지각시키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야콥슨이 내린 시적 자질(poetic quality)에 대한 정의는 슈클로프스키의 낯설게 만들기와 거의 유사하다.  그는 시가 를 깨뜨림으로써,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강화해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가 있다면, 슈클로프스키는 인식의 주체와 객체 관계를 논의한 반면에,  야콥슨은 와 간의 관계로 설명하여,  현실에 대한 독자의 태도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시인의 태도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사는 언제나 '사실' 또는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전시대의 문체에 반발하고,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문예 사조를 사실의 왜곡이니 진실의 파괴라며 부정한다.  그러나, 어떤 표현도 리얼리티를 추구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대의 문학이 부정되는 것은 과거 낯설었던 것들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맥을 떠나 어떤 문체 또는 어떤 비유가 더 사실적이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형식주의자들이 이질적인 수법을 동원하는 것은 새로운 방법으로 사실을 표현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어느 쪽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낯설은 것과 친숙한 것 가운데  어느 한쪽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이 개념을 받아들여 희곡에서 '소외(疏外)의 기법'을 사용한다.  '소외의 기법'은 종래 연극의 경우 관객을 작품 속으로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반면에,  작품이 진행되는 도중에 이것이 연극임을 강조하여 몰입과 동화를 막으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사건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따져보도록 유도하기 위한 기법을 말한다     6. 시의 첫행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고비  시에 있어서 첫머리는 독자와 만나는 첫번째 고비이다. 첫머리에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없다면 그 작품을 도대체 누가 읽어줄 것인가. 더구나 시는 20행 내외, 길어야 50행 정도이다. 그런만큼 시 독자는 인내심이 없다.  소설이라면 어느 정도 읽어나간 다음에 그 작품에 대한 판별이 서기 시작하지만 시의 경우는 그야말로 짧은 한순간의 눈길로 그 작품을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많은 시인들은 그 첫머리를 특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온갖 테크닉을 개발하게 마련이다. 아래는 그 첫머리를 유형별로 분석해 본 것이다. 다소 도식적이지만 이러한 기초사항을 눈여겨 봄으로써 자기만의 독특한 첫머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 시간을 나타내는 시의 첫행은 매우 일반적이다. 특정한 시간대는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흔히 4계절이나 하루 중 특정한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첫행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계절 가운데는 봄이, 하루 중에는 밤이 첫행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런 류의 첫행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복잡하거나 충격적인 어귀를 쓰게 마련이다. 덧붙이자면 단순한 시간대는 피하는 게 현명하다.  ① 봄이에요. 노랗게 목 메이는―이태수  한밤입니다. 자연의 밤―권달웅  ② 이즈막엔―한기팔  어느 새벽―조창환  기인 밤입니다―박용래  ③ 6월 16일은―김영태  ①은 봄이나 밤을 묘사하는 상투적인 표현법에 변화를 가한 예라고 하겠다. 앞은 도치의 방법으로, 뒤는 점층의 방법으로 상투성을 벗어나고 있다. ②는 불특정한 시간대를 설정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상상적인 해독이 가능하도록 한 예이다. ③은 오히려 특정한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유인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 시의 첫행에서 시간을 제시하는 경우보다 공간을 설정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빈도수를 보여준다. 자연 공간 중에서도 산이나 강이 압도적이다. 들과 골짜기, 바닷가, 또는 뜰과 나뭇가지 등등 대체로 시의 모티브가 작품 내부의 공간으로 설정되고 있다.  ① 어딘가에서―윤강로  ② 어머니가 매던 김밭의―이근배  ③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 만큼한 먹오디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서정주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서는―김종털  ①은 시간의 제시 방법에서 본 바와 같이 불특정한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시의 융통성을 살린 예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첫머리는 다음의 두번째 행이 더 극적이어야 하는 부담을 준다. 또 한 시인이 여러 차례 반복 사용할 수 없다. ②는 시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제재(題材)로서 특수한 공간을 설정한 예가 된다. 허나 이 역시 자주 쓰면 상투적이고 도식적일 위험이 있다. ③은 시적 감흥을 위해서 약점을 무릅쓰고 구체적인 사항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에게 충격을 가하고 있는 예다.  ○. 시간과 공간이 첫 행에서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경우는 훨씬 효과적이다. 이러한 표현법은 그만큼 압축되고 간결한 어휘의 구사가 요구되지만 표현상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① 지금 어드메쯤―조병화  ② 12월의 北滿 눈도 안 오고―유치환  ③ 겨울에도 비가 오는 城北洞 기슭―이명수  ④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오른  산길은내 키에 몇 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강희근  ①은 불특정한 시·공간을 제시함으로써 막연하고 애매한 기대감을 환기시킨다. ②와 ③은 보다 구체적이다. ②는 ‘북만주’ ③은 ‘성북동 기슭’이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 등장함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또한 ‘눈도 안 오고’와 ‘겨울에도 비가 오는’이라는 관형어절이 특별한 정황을 암시함으로써 갈등을 예고한다. ④는 시간과 공간, 주인공이 한데 어우러진 한 대목을 도입부의 첫머리로 삼고 있어 특이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시의 첫행이 하나의 단어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① 그윽히―허영자  귀여운―김경희  ② 그늘―김현승  누님―서정주  어머니―신석정·양명문  촛불―-황금찬  ①은 부사, 형용사 ②는 명사로 된 첫행의 예들이다. ①은 다음 행에서 어떤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의 출현이 예견되는 표현이다. 우리말의 부사나 형용사는 대체로 시의 첫행에서 자주 쓰이지 않는다. 다음에 수식해야 할 어구가 예견된다는 것은 그만큼 상식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②는 다시 ‘누님·어머니’와 같은 인간 즉 유정물(有情物)과 ‘그늘·촛불’과 같은 무정물(無情物)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다만, ‘누님·어머니’와 같은 경우는 호격조사가 생략되므로 오히려 청각적인 기능이 강화되고, ‘그늘·촛불’과 같은 경우는 회화적인 시적 구성이 예견된다.  ○. 시의 첫행이 하나의 단어를 중심으로 수식된다.  ①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김소월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이은상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노천명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이병기  이번 예는 한 단어의 예 가운데 ‘누님/어머니’와 같은 계열에 속하는 한 변형이라고 하겠다. ‘이름/조국’과 같은 추상명사를 의인화시킴으로써 상상력의 변주가 가능해진다.  ○. 시의 첫행이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① 이쯤에서 그만 下直하고 싶다―박목월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유치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김춘수  이번 예는 앞의 예들보다는 좀더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첫행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문장의 주어가 1인칭 즉 ‘나’로 되어 있거나 생략된 예들이다. 박목월과 유치환의 경우는 하직과 죽음이라는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박목월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 관조하는 듯한 겸양에 찬 어법을, 유치환은 의지적인 어법을 사용함으로써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춘수는 나와 짐승을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② 풀이 눕는다―김수영  관이 내렸다―박목월  길손이 말없이 떠나려 하고 있다―장만영  봉준이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황동규  소 한 마리를 잡기로 하였다―송정란  ○. ②의 예는 하나의 문장으로 첫행이 이루어졌으되, 그 주어가 명사어로 된 예들이다. 김수영의 예는 그 주어가 사물이고, 장만영과 황동규는 그 주어를 인간으로 하고 있는 점이 조금 다르다. 그러나 김수영의 ‘풀’은 민족 또는 민중을 상징하고 박목월의 ‘관’도 한 인간의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송정란은 소를 통해 시를 상징화하고 있다. 장만영은 ‘길손’이라는 불특정한 주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황동규는 ‘전봉준’이라는 역사상의 인물을 주어로 등장시키고 있다. 최근의 시에 가까울수록 특정한 시간·장소·인물이 시에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대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의 독자적인 개성이 요구됨에 따라 보다 사적인 소재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③ 가난이야 한낱 襤褸에 지나지 않는다―서정주  사랑은 항상 늦게 온다. 사랑은 生 뒤에 온다―정현종  ○. ③의 예들은 3인칭의 주어가 추상 명사로 된 것들이다. ‘가난/사랑/목숨/산다는 것’ 등등에 대한 정의(定義)에 가까운 수사법이 이러한 예들의 근간을 이룬다. 정현종의 경우 두 개의 문장으로서 첫행을 이루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시의 발생기에는 그 첫행이 비교적 간결한 경향이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두 개 및 두 개 이상의 복합 문장이 병치되거나 또는 병렬문의 형태로 길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 시의 첫머리를 산문형으로 시작한다  ① 벌판한복판에꽃나무하나가있소近處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 꽃나무를熱心으로 꽃을피워가지고섰소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나는막달아났소한꽃나무를爲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숭내를내었소―이상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백석  ○. 이밖에도 시의 첫행에 있어서 ‘사랑이 오라 하면·먼후일 당신이 찾으시면·눈 감으면·이 비 그치면’ 등 가정법이 사용되고 있다. 한때 여류 시인들에 의하여 애용되는 것 같았지만 최근에는 관념의 심화에 두드러지게 사용되고 있다.  70년대에 들어, 우리 시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현상의 하나가 시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다. 그 중에서도 강우식은 4행시를 보여주었고 그에 반해 산문시, 연작시가 시의 한 흐름을 형성하였다. 미당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가 산문시와 연작시의 형태를 보여주었다면, 박제천의 『장자시』는 연작시이자 띄어쓰기를 무시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도입했다. 그와 더불어 단위 작품에도 산문시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정진규·박제천 등 60년대 시인들이 자주 쓰는 산문형 흐름은 요즘의 신인들에게 그대로 이어져서 내용의 심화를 이루게 된다.       7.  창작강의] 몇몇 시인들이 들려주는 시작법 / 안도현(시인·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인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중국의 현대시인 아이칭의 에 나오는 제일 첫 문장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언어를 다는 저울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므로 시인은 양심을 속이거나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편으로 “표연히 흩어지거나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일체의 것을 고정시켜 선명하게, 마치 종이 위에 도장을 찍듯이 또렷하게 독자의 면전에 드러나게” 하는 시의 기교를 함께 강조한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러한 견해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중국 시론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경융합론’을 펼친 왕부지의 시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情)과 경(景)은 이름은 둘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분리될 수 없다. 시를 묘하게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양자를 자연스럽게 결합시킬 수 있어 가장자리를 남기지 않는다. 정교한 시는 정 가운데 경을 나타내고, 경 가운데 정을 나타낼 수 있다.” (류워이 지음, 이장우 옮김, )고 했다.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도 문장이란 “굳세면서도 막힘이 없고, 시원스럽게 통하면서도 넘치지 않고, 간략하면서도 뼈가 드러나지 않고, 상세하면서도 살찌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조화와 통합의 문장론을 내세웠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시적인 언어를 “내적인 경험, 감정 및 사고들이 마치 외적 세계에서의 감각적 체험과 사건들인 것처럼 표현된 언어”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말, 진실/기교, 내용/형식, 정/경, 강함/부드러움, 내적 경험/외적 표현 등 모든 이항대립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조화와 결합을 이룰 때 좋은 시가 태어나는 법이다. 심지어 시인의 재능/노력도 서로를 격려하고 고무하는 유동적인 것이지 어느 한 쪽으로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한 편의 시는 이처럼 시인들의 고뇌의 집적이며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일상속 느낌 그냥 흘리지말고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그렇다면 시인들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시를 쓰라고 말하고 있을까? 시작법에 관한 현역 시인들의 조언을 몇 가지 경청해 보자.   강은교 시인은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쓰라고 한다.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으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한다.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적 경험이라는 것은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쓸 때 발현된다는 것.   셋째,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며 시작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넷째,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으므로 늘 세상을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다섯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정신의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에서 예술의 힘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익히라고 제안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 것, 무엇보다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우라고 한다.(시인이 에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고 노래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끝으로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한다고 매우 이색적인 의견을 제출한다. 즉 시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강은교 시인다운 비결이라 하겠다.   최영철 시인은 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느낌’이므로 이런 느낌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마음속으로 되새겨 보는 게 시창작의 첫 단계라고 한다.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 속으로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번 중얼거려 보라고, 그 다음 단계는, 바람이 어떻게 시원한지를 느껴 보라고 한다. ‘막혔던 가슴속 응어리를 뚫어 주듯이 시원하다’ ‘바람에 실려 그리운 사람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 모두에게 어떤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그것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글을 남과 다르게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라고 권한다. 그 또한 자신감을 강조한다. 글감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찾을 것이며,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부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치미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숨김없이 보여주어야 독자는 흥미와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도 괜찮은 일이며, 연속극이나 신문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오히려 시를 쓸 자격이 있다고 등을 두드린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무엇보다 앞세운다. 늘 보게 되는 밤하늘의 달과 별도 시인의 눈에 붙잡히면 다음과 같은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하늘로 가 별 닦는 일에 종사하라고 달에게 희고 동그란 헝겊을 주셨다   낮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밤에 보면 헝겊 귀퉁이가 까맣게 물들어 있다   어두운 때 넓어질수록 별은 더욱 빛나고   다 새까매진 달 가까이로 이번에는 별이 나서서 가장자리부터 닦아주고 있다.   -최영철, 전문   장옥관 시인은 시적 발상을 획득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일상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야 감수성 훈련이 된다. 둘째,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셋째, 어린아이의 눈처럼 사물과 현상을 난생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상상력이 커진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대상의 눈으로 나를 보라는 것. 넷째,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섯째,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는 눈이다.   ‘어떡하면 다르게 쓸 수 있을까’ 자신의 숨기고픈 얘기서 출발   실제로 장옥관 시인이 시로 형상화하는 소재는 대단히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벚꽃 아래로 지나가는 개, 자신이 누는 오줌, 포도를 껍질째 먹는 일, 아스팔트에서 본 죽은 새, 옛 애인에게서 걸려온 보험 들어 달라는 전화……. 그러나 이것들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면 경이로운 존재의 실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빛을 뿜는다. 시인은 길을 걷다가 장애인을 인도하는 노란 안내선을 보며 놀랍게도 밑창으로 하나하나 핥으며 걷는 길의 등뼈를 발견한다. 신발의 밑바닥이 길을 핥는다는 통찰을 통해 시적 발상이 어떻게 발화하는지 보여주는 시다.     길에도 등뼈가 있었구나   차도로만 다닐 때는 몰랐던 길의 등뼈   인도 한가운데 우둘투둘 뼈마디 샛노랗게 뻗어 있다   등뼈를 밟고 저기 저 사람 더듬더듬 걸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밑창이 들릴 때마다 나타나는 생고무 혓바닥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남김없이 일일이 다 핥아야 한다   비칠, 대낮의 허리가 시큰거린다 온몸으로 핥아야 할 시린 뼈마디 내 등짝에도 숨어 있다 -장옥관, 전문   8.. 시창작을 위한 일곱 가지 방법 첫째 장식없는 시를 써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시적 공간만으로 전해 지는 것,  그것이 시의 매력이다.  시를 쓸때는 기성시인의 풍을 따르지 말고  남이 하지 않는 얘기를 하라.  주위의 모든 것은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시의 자료가 되는 느낌들을 많이 가지고 있게 되면  시를 쓰는 어느 날 그것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 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임을 기억하라  시는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단단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구체적 언어를 이끌어 내 준다.  단지 감상만 갖고서는 시가 될 수 없으며  좋은 시는 감상을 넘어서야 나올 수 있다.  시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개인을 넘어서야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적인 시만 계속해서 쓰면 '나'에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쓰라.  단, 시를 쓰는 일이란 끊임없이 누군 가를 격려하는 일임도 기억해야 한다.  (예)'따셋째 시가 처음뜻함' / 강은교  웅덩이 건너편 모개가/웅덩이 쪽 모래를 손짓하는 새/ 아침별이  저녁별을 손짓하는 새/햇빛 한 올이 제 동무 햇빛을 부르러 간 새  셋째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고  자신을,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내가 정말로 시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지 말고 신념을 갖고 시를 쓰라.  나의 시를 내가 맏지 않으면 누가 믿어 주겠으며  나의 시에 내가 감동하지 않으면 누가 감동해 주겠는가.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라.  문학 평론가 염무웅은 이렇게 충고한다.  '세상의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왜 하필 당신은 시를 쓰려고 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쓰는가?'라고.  우리는 신념을 갖고 시를 쓰되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  네 번째, 시의 힘에 대하여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다.  미국의 자연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고 전율하지 않는 사람은 한물간 사람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일몰과 일출을 보는 습관을 가지라.'  그는 자연에서 생의 전율을느끼라고 충고한다.  우리의삶에서 가장 전율을 많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연애가 주는 스파크, 음악 등이 아니겠는가.  허나 살다가 보면 이때의 전율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시는 정신적으로 전율을 느껴야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면 전율할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한다.  표현과 기교는 차차로 연습할 수 있지만  감동과 전율은 연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에게 감동이 혹은 전율이 스무살때처럼 순수하게 올 수 있을까?  그 순수한 전율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인의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에 대해서  원래 '노마드(Nomade)' 란 정착을 싫어하는 유목민에서 나온 말이다.  이말은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예술의 힘, 시의 힘은 바로 이 노마드의 힘이 아닐까?  우리의 정신은 이미 어떤 틀에 사로잡혀 있는 국화빵의 틀에 이미 찍혀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우리는 틀을 깨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흔히 문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틀을 깨는 과정에서  술(알콜)의 힘을 빌어야 좋은 문장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술을 도구로 하여 얻어지는상태가 과연 진짜 자유인가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자유를 빙자한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술의 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려져 있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만 술을 마셔야 하지 않을까.  여섯 번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읽히자  우리는 상투 언어에서 벗어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익혀야 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신으로 긴장을 살려나가자.  감상적인 시는 분위기로밖에 남지 않으며  '시 자체'와 '시적인 것'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시적은 것은 시의알맹이가 아니다.  시적인 것에만 너무 붙들려 있으면 시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시가 긴장하여 이데올로기의 자유를 성취하는 순간  깜짝 놀랄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정신을 지니자.  몸의 자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또한 "침묵의 기술, 생략의 기술"도 익히자.  예를 들어 T.S. 엘리어트 의 황무지라는 시는  우리에게 침묵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시다.  시와 유행가의 차이는 그것이 의미있는 침묵인가 아닌가의 차이이다.  시는 감상이 아니라 우리를 긴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인데,  만약 설명하려다 보면 감상의 넋두리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보다 침묵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그 시는 성공할 것이다.  말라르메는 말했다.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이 짧은 두 행의 사이에는  시인 자신이 말로 설명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이 보이는가?  그러나 침묵의 기술을 익히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한 법.  우리는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워야 한다.  시를 쓸때도 다른 모든 세상일처럼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며  더욱이 말로 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형상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  시를 쓰고, 어느 정도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긴 하겠지만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되지 않을까?     9.  시와 사진 구분하기       어떤 대상이 작자의 가슴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 모습 그대로 내 놓았을 때는 사진이 되고 그 대상이 작자의 가슴속에서 녹아내려 제2 제3의 다른 모습이 되어 나왔을 때는 시가 된다.    그런데 시와 사진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놓고는 시라고 생각하는 이가 이 외로 너무 만은것 같다.    다시 말해 사진을 찍어 놓고는 자신이 사진사인데 시인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의 글을 점검해 보았을 때 나는 사진사 였구나 또는 시인이였구나 하고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출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웃는다. 는 사진이지만    바위가 웃는다. 는 시가되고    아기가 젖을 먹는다. 는 사진이지만    귀신이 젖을 먹는다. 는 시가되고    천을 오려 옷을 만든다는 .는 사진이지만    구름을 오려 옷을 만든다 .는 시가된다 이와 같이 사진을 녹여서 시로 만드는 연습 해 보기로하자.        예문1.산행을 갈때     (사진을 녹여서)            →(시로 만들기)     나는 산속으로 걸어간다 →산이 내품으로 걸어 들어온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청춘가를 부르는 개울물     상큼한 풀냄새               →파란 풀냄새     시원한 공기                  →굴맛나는 공기     후련해라                      →간이 녹아 내린다       예문2. 꽃을 보았을 때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저꽃 너무 예뻐            →저꽃은 우리아기 얼굴      무슨 말을 할것 같애    →오셨어요 인사하는 꽃      이 아름다운 향기        →내 마음을 녹이는 향기      한들 거리는 꽃           →꿈을 꾸고 있는 꽃      보드레 한 꽃잎           →아기의 살결 같은 꽃잎        예문3. 한접시 송편을 보고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잘 만들었네               →하얀 반달떡      예쁜떡                      →딸아이 눈동자 같은 떡      참기름을 바른떡        →마음을 바른떡      참말로 맛있다           →분홍색 맛이나는 떡      말랑말랑한떡            →엄마의 젖가슴 같은 떡            예문4. 물고기를 보았을때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펄떡펄떡 뛴다          →뱃살빼기 운동을 한다       고기입이 크다          →산봉우리를 삼킬만한 입       물결을갈라치는지느러미→지느러미로 풍금을 친다       민첩한 몸짓              →자진모리 가락으로 돌아가는 몸짓        서로 부딪친다          →신호등을 무시한 보행사고          예문5. 첫눈 내리는날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깨끗한 눈송이          →아기의 마음 같은 눈송이        너무너무 하얀눈       →이빨같이 하얀 눈        눈속으로 걷는길       →추억속으로 것는길        눈이오면 즐거워       →눈 위에서 피는 마음꽃       내가 만든 눈사람      →꿈을 꾸고 있는 눈사람     이상의 예문으로 사진사와 - 시인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되지만 아직도 어떤사물이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와 그 모습 그대로 내놓고도 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 같아서 다시 복습으로 예문을 제시해 보도록 한다.          예문6. 구름을 보았을 때         (사진을 녹여 )           →(시로 만들기)         뭉개구름                   →포도송이로 익어가는 구름         흰구름                      →하얀 옷을 입고 가는 구름         조개구름                   →손에 손잡고 가는 유치원 구름         새털구름                   →털옷을 입은 구름         검은 구름                  →상복을 입은 구름           예문7. 책을 보았을때          (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두꺼운 책                 →뚱뚱한 책          얇은 책                    →깡마른 책          그림 책                    →색깔들이 모여 사는책          국어책                     →우리말이 모여사는 세계          영어책                     →꼬부랑말이 모여 사는 세계             예문8. 바위를 보았을 때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검은 바위                →검은 옷을 입은 바위           흰 바위                   →흰 옷을 입은 바위           짐승바위                 →하늘 짐승이 내려와 바위가 되었네           둑 바위                   →냇물을 가로막은 바위           거북바위                 →바다로 가다가 바위가 된 거북이              예문9. 촛불을 보았을때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반짝이는 촛불        →눈을 깜빡이는 촛불            혼자 있는 촛불       →혼자만의 세상            작은 촛불              →유치원 또래의 촛불            외로운 촛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촛불            촛농이 떨어지는 촛불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촛불              예문10.시장엘 갔을때             (사진을 녹여)        →(시로 만들기)             분주한 거리          →삶의 교차로             복잡한 거리          →콩나물시루 같은 사람들             떠드는 소리들       →삶의 음악             외침소리              →삶의 호소             엿장수 웃음          →엿장수 얼굴에 핀 삶의 꽃     필자는 지금 쏟아져 나오는 만은 책들 중에 사진과 시를 구분하지 못하고 쓴 시들이 더 많음을  볼때 시를 너무 가볍게 보는 풍토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흔히들 한권의 책을 보아도 시 한두편 건지기가 어렵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닐까 싶다 그 첫 단계가 시와 사진 구분부터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10.  김철진 시인의 시 창작을 위한 10가지  詩作을 위한 열가지 방법  1. 동물의 이름을 머리와 가슴속에 넣고 다녀라.  (조류,곤충류,어패류,동물들의 이름을 가령 종달새,굴뚝새, 파리,물거미,달이, 소라고동, 바다사자, 고양이 등)  2. 바람과 쉼 없이 마주하라.  (동서남북 바람, 강바람, 산바람,의인화한 바람까지도)  3. 기후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라.  (안개,폭풍,빗소리,구름, 4계절의풍경 등)  4. 사람들의 이름을 항상 불러 보라.  (옛 사람이든 오늘 살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  5. 무엇이든지 뒤집어서 생각하라.  (발상의 전환을 위해 가령 열정과 불의 상징인 태양을 달과 바꾸어서 생각한다든지  또 그것을 냉랭함과 얼음의 상징으로 뒤집어 보는 것이 그 방법  그리고 정지된 나무가 걸어다니다고 표현단다든지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상식을 배상식으로 구상을 추상으로  추상을 구상으로 유기물을 무기물로 무기물을 우기물로 뒤집어서 생각하라.  이것이 은유와 상징 넌센스와 알레고리의 미학이며 파라독스에 접근하는 길이다)  6. 타인의 경험도 내 경험으로 이끌어 들여라.  (어머니와 친구들의 경험, 혹은 성인이나 신화속의 인물들의 경험이나 악마들이나 신들의 경험까지도)  7. 문제 의식을 늘 가져라.  (어떤 사물을 대할 때나, 어떤 생각을 할 때 그리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적 현상을 접할 때 이것이 시정신이며 작가 정신이다.)  8.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안 보이는 것까지 손으로 만지면서 살아라  (이 우주 만물 그리고 지상위의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은 다 눈과 귀,  입과 코가 달려 있으며 뚫여있다고 생각하라.  나뭇잎도 이목구비가 있고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도 이목구비가 있고  여러분이 매일 무심코 사용하넌 연필과 손수건에도 눈과 귀 입과 코가 달려있는 사실을 생각하라. 우주안에선 모든 것이 생명체이다)  9. 문체와 문장에 겁을 먹지 말아라.  (하얀 백지 위에선 혹은 여러분 컴퓨너 모니터에 들어가선  몇 십번을 되풀이 해 자유자재로 문장 훈련을 쌓아가라.)  10. 고독을 줄기차게 벗 삼아라.  (고독은 시와 소설의 창작에 있어서 최고의 창작환경이다.  물론 자신의 창작을 늘 가까이 읽어주며 충고해 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11. 좋은 글의 이론적 조건  1) 독창성 - 소재, 시각, 표현이 보편성과 조화된 개성을 가져야 한다.  좋은 글의 절반은 글감이므로 참신한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잡을 수 있다. ( 방망이 깎던 노인 ) - 인간과 세계에 대한 개성적 통찰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시각의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는 현상적 인식에서 본질적 인식을 전환, 관습적 인식에서 개성적 인식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물론 초보자의 경우 자기가 살아온 지역 과 인연이 닿는 사물을 먼저 소재로 삼는 것은 그리 허물은 아니다.  표현에 있어서의 독창성을 얻기 위해서는 참신하고 개성적인 표현을 얻어야 한다.  2) 충실성 - 충실성을 위해서는 소재와 주제가 명료해야 한다. - 독자 의 입장이 되어 읽을 거리가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 소재를 마련 하는 데에는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며 주제를 마련하는 데에는 깊은 사 고가 필요하다. 결국 내용의 충실성은 성실한 독서와 끈질긴 사색에의 노력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3) 진실성과 성실성 -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이를 허위와 가식 없이 표출해야 한다. 허위와 가식은 설득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초보자는 흔히 자신의 미숙함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교양이나 지식, 감정을 과장하려 하거나 지나치게 기교를 부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거창한 소재와 주제를 온갖 화려한 수식어와 난해한 개념어들로 포장하려는 것은 금물이다. 글이란 갈고 닦아야 예 술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 해변시인학교 - 황금찬 시인 )  * 글쓰기는 수공업이다. - 안톤 슈낙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 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다사로운 햇살이 떨어져 을 때,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을 혼자 있게 될 때"  4) 명료성 - 평이하게 쓴다. 간결하게 쓴다. 의미의 모호성을 피한다.  예문 (1) 어젯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2) 성 선생님은 호랑이다.  (3) 내가 좋아하는 선배의 친구는 나를 싫어하고 있다.  (4) 그는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나는 범인을 쫓아갔다.  (5) 철수는 그날 아침 영수에게 어젯밤의 꿈이 불길하여 아무 래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그날 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바로 그였다.  (6) 막연한 표현을 피해야 한다. -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부적절한 비유와 상징은 글의 명료성을 해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객관성을 중시하는 설명이나 논증의 글에서는 비유와 상징의 구사에 더욱 주의하여야 한다. ( 논술의 경우에 매우 중요함 )  5) 정확성 - (1) 논리에 맞는 문장을 써야한다 : 적절한 어휘를 써야한다. 내용에 논리적 모순이 없어야 한다.  (2) 어법에 맞는 문장을 써야 한다 : 문법, 표준어  6) 경제성 - (1) 동의 반복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 동의 반복은 글을 산만하고 지루하게 만든다.  예문 - ①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 하나 씻어낸다.  ② 인격은 세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데, 첫째 단계 인 무율의 단계를 거치고, 둘째 단계인 타율의 단계를 거치고, 셋째 단계인 자율의 단계를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③ 친구나 벗을 사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정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친하다고 한두 번쯤 약속을 어길 수도 있다는 생각과 의식은 버 려야 한다. 친할수록 정확하고 어김없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2) 불필요한 수식어나 완곡어법은 피해야 한다.  - 빙빙 돌리지 말고 핵심적인 내용을 짧고 분명하게 써야 한다.  * 노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7) 정직성 - 인용할 때는 그 빌려온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 직접인용 : 그대로 빌리는 경우, 간접인용 : 요지만 빌리 는 경우. 명인과 암인 ) - 표절의 비도덕성, 인용은 할 수 있는 것이다.  8) 글쓰는 상황의 고려 - 글쓰는 상황에 어울리는 성격의 글을 써야 한다. 즉, 글의 목적과 독자의 성격에 맞아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12. 내 생각 글로 쓰기 - 10. 시 쓰기 - 3    시 창작은 사물이나 사건의 벌어지는 형태나 동작을 보고 감각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비유하여 주제를 감추고 이미지화하여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표현하는 작업이다. 흔히 감각이라는 말은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려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나 느낌을 말한다.  감각은 시를 쓰는 사람이 관찰을 통하여 많은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동기를 유발시킨다. 사물이나 사건의 형태와 동작을 비유한 시를 중심으로 창작의 실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전봉건의「피아노」전문    이 작품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작품이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의 손가락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가락의 움직이는 모습을 물고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는 시구에서마치 그 피아노의 선율이 들리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청각적 표현을「물고기가 쏟아진다」로 나타내어 소리를 시각화하였다. 여기에「신선한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생동감을 주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습 중 가장 신나게 일고 있는 파도를 집어든다. 이것이 칼날로 보이는 것만큼 화자가 느끼는 감동의 힘이 강렬하다. 이 시는 연상에 의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 이미지는「피아노 선율에서 물고기로 다시 바다에서 파도로 그리고 칼날」로 연결된다.   대나무 잎사귀가 칼질한다.   해가 지도록 칼질한다 달이 지도록 칼질한다 날마다 낮이 다 하도록 칼질하고 밤마다 밤이 다 새도록 칼질하다가 십년 이십년 백년 칼질하다가 대나무는 죽는다.   그렇다 대나무가 죽은 뒤 이 세상의 가장 마르고 주름진 손 하나가 와서 죽은 대나무의 뼈 단단하고 시퍼런 두 뼘만큼을 들고 바람 속을 간다. 그렇다 그 뒤 물빛보다 맑은 피리소리가 땅 끝에 선다 곧 바로 선다.   - 전봉건의「피리」전문    이 시에서 성장 과정과 멈춤 과정을 두고 이야기 한다고 본다. 성장이라 함은 대나무가 자라며 그 잎에 칼바람 세우고 살아가는 현실과, 멈춤을 통해 대나무가 죽은 그 이후의 다른 형태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꿈으로써 나타나는 피리라는 사물을 강직하게 나타내고 있다.  드러내지 않지만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시를 통해 그렇게 나타내고자 하는 의지라 본다. 피리소리 물빛보다 맑게 울리기 위한 그 인고의 과정을 통해 소리가 소리로써의 音을 간직하기까지의 삶이 바로 서 있는 詩라고 볼 수 있다.   여태껏 시치미 따고 초록빛 몸뚱어리로 살면서 언제 삼켜두었는지 짙은 분홍빛 꽃잎을 여러 겹 겨워냈구나, 가슴을 열고 하늘 맑은 물에 묽게 녹아내는 가을 인사말 어렸을 적 바라보던 부러운 옷 색깔을  들길 따라 입은 꽃  - 졸시「과꽃」전문     봄부터 무슨 색깔을 한 꽃을 피울지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초록빛을 띤 잎 새와 가지만 싱싱하게 자랄 뿐이었다. 들길 가에 홀로 나름대로 꿈에 취했는데 그 빛이 짙은 분홍빛으로 겨워내듯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어릴 적에 잘사는 집 아이들이 입은 옷이 입고 싶어 부러워했던 그 색깔로 갈아입은 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둠이 걷히고 가슴이 탁 트인 기분으로 아무에게나 인사를 거는 여유로운 마음은 가을이 다되도록 피어있다.    커피 한 잔에서 나오는 따뜻한 김이 엮어내는 공간으로 나의 기다림이 들어앉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낮아지는 그 공간이 비좁아질 때 나의 체온은 식고 있었다. 마주하고자 했던 상대가 없이 한 자리를 지키면서 얼마나 참을성 있게 지내온 건지 얼마나 아량 있게 대해온 건지 혼자 만지작거리며 측정해보는 내 마음의 깊이가 이렇게 얕았던가 보다. 내 삶의 테두리가 이렇게 좁았던가보다. 쓰디쓴 커피는 식어서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없이 나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 졸시「커피 한 잔」전문    어느 겨울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다보았다. 높이 올라 넓은 공간을 만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 좁아져가는 걸 느꼈다. 마주하고자했던 상대도 오지 않고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없이 떠밀려나오는 심정을 그렸다.  그동안 지내왔던 상대에게 참을성 있게 대했는지, 아량 있게 대했는지 생활의 모습을 그려보며, 내 마음의 깊이와 내 삶의 테두리가 얕고 좁은 것을 반성하고 있다. 거피 한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시의 소재가 되고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상상력에 대한 공감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감각을 통한 상상력일 것이다. 창작은 상상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가려질 수 있다. 상상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날이 서서 예리해지지만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면 녹이 슬어 제대로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시간이 나면 쓰고 시간이 없으면 못 쓰는 활동 자세는 시인의 사명을 버리는 것이다. 항상 관찰하여 시상을 떠올리고 올바른 잣대로 냉철하게 비판하는 날을 세워야 한다   13.  논리적인 글쓰기를 위해 다음 여섯 가지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1. 글을 쓰는 능력은 사고하는 능력이다.  창의적,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면 참신한 아이디어나  설득력을 가진 글을 쓸 수 없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습관과 훈련이 필요하다.  여기서 생각이란 밖에서 주어진 문제를 당연히 받아 들이고 답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주장이든 그것을 의심하고 문제를 제기하여 그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태도다.  또 자신의 주장을 제시할 때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놓고  다른 사람이 나의 주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그 문제에 답을 하려는 태도다.  2. 글쓰기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읽기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는 글은 무의미하다.  독자가 글을 읽을 때 글의 흐름과 방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항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습관이  읽기 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데 도움을 준다.  3. 논리적인 글을 쓰려면 글을 쓰기 전에 글의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글의 구조란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의 연관 관계다.  자신의 글이나 다른 사람의 글을 요약하는 연습이 논리적인 글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4.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좋은 글을 단순히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적은 양의 글을 꼼꼼히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읽는 게 중요하다.  또 읽으면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이 있다면 사전이나 다른 자료들을  참고하거나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문의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5.글을 쓰고 난 뒤에 그 글을 반복해 읽으면서 고치는 습관이 필요하다.  좋은 글은 반복된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주장과 근거가 참신성과 설득력을 가지는지, 문장과 문장 또는 단락과 단락 간의  연결이 자연스러운지, 문장이 문장으로서의 요건을 모두 갖추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긴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지,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는지, 구어 표현이나 주관적인 감상 또는 다짐의 표현을 사용하는지, 무관한 접속사를 자주 사용하는지,  한 문장에서 한 가지 생각만을 정확하게 전달하는지, 반복되거나 중복된 내용이 있는지,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글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다.  6. 관심과 정성을 가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신이나 타인의 생각과 글에 쏟는 관심,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세우고 수정하는데  쏟는 정성으로부터 참신하고 논리적인 생각과 글이 나올 수 있다.  -김준성, 서울대 글쓰기교실 선임연구원     14.  시 창작 강의 (2)   -2. 詩를 많이 읽어 보자 시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독자로서의 시읽기가 아니라 시에의 올바른 접근을 위한 정독(精讀)을 말합니다. 하루에 몇 권의 시집을 독파하는 것이 아니라, 시 속에 무르녹은 의미와 시어에 유의하면서 음미해보는 것이 시와의 만남을 더욱 가깝게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 읽기에서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유의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① 시를 정독하라 시는 의미의 전덜이 아니라, 시 속에 함축된 의미의 암시나 상징. 그리고 의미의 변용을 통해서 정서적, 감각적인 미적 감동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 시인의 시를 통해서 시인의 미적 감동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책을 읽고 간접적인 체험으로 지식과 인격을 느끼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의식으로 지식을 넓혀나가는데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독은 시를 이해하는데는 가장 효과적이며 적절한 방법입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 속에 감춰진 함축적 의미의 발견이나,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무엇인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감명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② 감명을 받았거나 감동을 준 부분은 다시 읽고 재해석을 해보라   시집 한 권을 읽다보면(시집 한 권에는 60~70편의 시가 수록됨) 그 중에 유독 몇 편은 친근감이 가고 감동을 받는 시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일은 내가 직접 쓴 것 같은 것이거나 내가 간직한 시적 상상력, 또는 체험 속에 곰삭은 어떤 의지가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이 유사성은 시와의 친숙한 정감을 불러 일으켜서 시인이 그런 체험을 어떤 방법으로 해서 시창작을 성공시키고 있느냐하는 관심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시가 마치 스스로 쓴 듯이 뜯어보고 분석해보며 음미하는 일이 계속되면 스스로 자신이 시작과정을 재구성해 본 것과 같이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상상력이나 사물을 보는 시각, 그리고 표현하는 방법 등이 부족함을 절감하면서도 이렇게 쓰는 것이 감동을 주는 시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바로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하는 잠재력이 이미 발산되고 있다는 사릴에 놀랄 것입니다. ③ 마음에 새겨지는 시의 행(行)이나 연(聯)은 그냥 음미로 그칠 것이 아니라, 노트에 옮겨 써보는 일도 중요하다.   물론 외워버리면 더욱 좋겠지만 이때 옮겨 적는 과정에서 문득 새로운 무엇을 발견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렇게 옮겨 적는 일이 많아지면 자신이 생각했던 시어(詩語)들을 동원하여 바꾸어 본다든지, 몇 마디를 생략해 본다든지, 또는 새로운 이미지(image)를 첨가해주는 일 등은 시창작 연습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한편 이런 것들이 모작(模作)이건, 창작(創作)이건 간에 시 쓰는 행위가 될 것이며 이 행위야말로 바로 시 쓰기의 경험으로 연결되는 시적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 시편들도 그냥 던져버릴 것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항상 필요합니다. 어떤 형태의 해석이든 자신의 의식으로 접근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1-3. 모든 것들에 대한 많은 사유(思惟)가 필요하다. 시는 어쩌면 많은 사유에서 탄생되는지도 모릅니다. 많이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곧 사유하고 사색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다양한 상상력이 동반하게 됩니다. 조그마한 일상생활에서부터 차원 높은 우주관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은 사유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유 속에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하는 인생관이 있으며 일생동안 기필코 성취되어야 할 목표인 꿈과 희망도 있습니다. 시 쓰기에서 많은 사유가 필요한 점도 시인의 정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많이 사유한다는 것은 많은 상상력을 빚어낸다는 뜻입니다. 이 상상력도 진실된 인생의 고민이 담겨져야 합니다. 상상은 결국 나 자신의 정서와 밀접한 관계에 놓입니다. 정서는 모든 사상(事象)에 부딪혀을 때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을 말합니다.   심리적으로는 자극이 되는 대상에서 강하게 일어나는 감정으로서 또는 신체적인 변화가 뚜렸한 것으로서 일정한 상태로 지속되다가 끝나거나 다른 정신상태로 옮겨가는 의식의 과정을 말합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慾)의 칠정(七情)이 우리의 오관(五官-눈, 귀, 코, 혀, 피부. 우리 몸에서 감각을 일으키는 다섯 개의 기관)을 통하여 경험하는 정신적인 산물이 됩니다. 이러한 정서의 올바른 비축을 위한 사유는 창조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르테면 '겨울나무'를 응시하면서 시적인 사유로 발전하려면 그 추운 겨울을 인내하면서 새봄의 루르름을 꿈꾸는 희망으로 바꾸어보는 사유, 즉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과 미래의 유추로 연관짓는 사유가 필요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잠시 조병화 시인의 말을 들어 봅시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내면의 고독과 싸워 왔다. 그 생(生), 애(愛), 사(死) 그 존재와 생존, 그 순수허무와 그 순수고독과 싸워 왔다. 항거와 슨응, 그걸 살아오고 있는거다. 그게 나의 시이며 시론이며 존재 양상인 거다. 인간은 누구나 한정된 자기 수명을 살다 가는 거다. 그 한정된 시간을 견디고 살다간, 또 다른 세계로 이사를 가야하는 거다.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 죽음이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이 나의 테마이며 나의 작업인 거다 때문에 나는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나를 철학하기 위해서 오로지 사색해 왔을 뿐이다. 나를 세우기 위한 철학, 그 발견과 창작의 철학 속에서 시를 배회했고 시의 이치를 찾았고 그것으로써 시를 써 왔다. 이와같이 어떤 사물이건 관념이건 간에 모든 것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의미를 찾아보는 사유, 이러한 사유야말로 시를 쓰기 위한 사유가 아닐까 싶다     15.  시 창작 강의(3)   -4. 시 쓰는 연습을 많이 해 보자  처음부터 시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아주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그냥 메모하는 식으로 써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하여 감동했던 것이나 마음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일들부터 자신의 생각으로만 하나씩 적어 봅니다.  어떤 형식에는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문체나 형식이 일기문이 되거나 편지글이 되거나 상관 없이 글로 옮겨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전번 시간에도 말한 바와같이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난 후에 내 생각을 가미하여 모방해보려는 의지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 부딪치는 어려운 점은 언어의 부족입니다.(이 언어문제는 다음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물론 언어뿐만 아니라 표현반법이 여러모로 서툴지만 읽고 생각한 자신의 진실을 글로 적어봄으로써 자기 세계가 열리고 시 쓰기에 대한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옛날 선배 시인들은 시인이 되기 위하여 습작 원고지 3만장 정도를 휴지가 되도록 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의 쓰라린 습작기를 거쳤던 것입니다.  시 쓰기에는 유형(有形)적인 소재이거나 무형(無形)적인 소재이거나 간에 많이 느껴본 습성이 중요하지만 이 느낌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시는 느낌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느낌이란 많은 형태의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이 느낌이 깊은 곳에서 받아들여 미적인 감정과 미적인 언어의 조화로 한 편의 시 작품이 창작되는 것입니다.  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 앞에서 하는 속임없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구약성서의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하야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의 말처럼 어떤 소재에서 느낀 솔직하고 진지한 나의 진실이 글로 표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는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시입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어떻습니까. 어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유히 갈 길을 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밤 하늘에 뜬 구름 사이로 흘러가듯 떠 있는 달의 모습은 얼마나 고적하고 유유합니까. 이런 달의 형상이 작품 속에서 나그네와 연관됨으로써 다른 사람이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며 나그네의 구체적인 모습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옛말에 시이도지(詩爾志)란 말이 있습니다. 시를 쓰거나 읊조리는 것은 자기의 지닌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종호 교수는 정규 문과 대학생 조차도 우리 근대시의 고전인 (박목월, 조지후, 박두진 3인 시집)을 읽어본 경우가 희소하다고 개탄하면서 우리 문학 교육의 현실을 말하고 있어서 위의 [나그네]같은 작품은 겨우 교과서에 수록된 것을 읽는 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옛날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시 쓰기에는 이런 일도 있구나하는 도움이 될까해서입니다.  고려 때 문신인 정지상과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과는 서로 시적(詩敵)이었습니다.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의 사령관이었던 김부식은 정지상이 이 난에 관련되었다하여, 평소에 시 쓰기에 있어서 숙적이었던 정지상을 처형해 버렸습니다.  그 뒤 어느 봄날 김부식은 시 한 수를 다음과 같이 지었습니다. 봄의 정경을 잘 표현한 아름다운 시입니다.  버들은 일천 가지로 푸르고(楊柳千絲綠-양류천사록)  복숭아는 일만 송이로 붉구나(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  그런데 문득 공중에서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서 김부식의 빰을 갈기며 호령했습니다.  "이놈아, 버드나무가 일천 가지인지, 복숭아가 일만 송이인지 네가 세어 보았느냐? 왜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숭아는 송이송이 붉다(楊柳絲絲綠-양류사사록,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라고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나중에 김부식은 어느 절간 화장실에서 정지상의 귀신에게 불알을 잡아당겨 죽었다는 일화가 라는 책에 전해오고 있습니다.  참 절묘한 표현의 차이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드나무 가지의 표현이 일천 개보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표현이 더욱 좋다는 것입니다. 복숭아꽃의 일만 송이보다는 점점이 그러니까 송이송이 이것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와같이 시 쓰기의 연습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정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언어를 매체로 해서 표현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결국 많이 읽어보고 많이 생각하며 많이 써보는 것만이  '나도 시를 쓸 수 있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길일 것입니다.     16.  시 창작 강의 5   인간은 누구나 감수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때가 있다. 막연하나마 어떤 정신적인 동경이나 갈망이 솟구쳐서 이를 표현해 보려는 의욕이 일어나서 종이에 낙서를 하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데 이러한 표현 욕구는 시를 쓰는 목적이나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다만, 마음의 공허를 채우기 위한 습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씌어진 시란 다분히 자기 본위의 일상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앞날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청춘의 감성은 대체로 자기자신의 내부적인 세계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세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불안감의 표시로 봐야하며 이러한 표현의 욕구는 언젠가는 새롭게 발견되어질 미(美)의 세계에 대한 예술적 탐구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시인으로서 살아간다.’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시적인 표현 욕구는 시를 쓰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잠재한 내외적 세계의 조화로서 표현의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일은 사회적 불안이나 내 자신의 불안 등 여러 형태의 모순들이 보다 안정되고 보다 차원 높은 세계의 강망이나 희구, 또는 향수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시를 쓰는 즐거움의 뒤안에는 이러한 욕구나 동경에 대한 충족감이 깃들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적어도 시를 쓰고자 하는 의지로 창조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참된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요즘 시인들의 시창작 경향을 살펴보면 대체로 현실의 비합리성에 따른 위기의식의 극복과 절박한 갈증의 해소가 시적인 동기로 나타나는 예가 많은데 이는 시창작을 통해서 화해나 조화를 모색하고 정신세계의 안온을 위한 기원의 의지를 추구하려는 시의 목적의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방지원 시인의 작품 [해뜰 무렵]도 이러한 인식이 깊게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밤새 불을 밝히던 고깃배가  놀란 물살을 바쁘게 가르고  느린 듯 빠르게  그 찬란한 불덩이를 들어올릴 때  바다 한가운데 검게 앉은 그 사람도  바닷가의 사람들도 모두 한마음이었을까  연한 살점 태워 하늘에 올리는 소지(燒紙)  오존층까지 오르고  그 불덩이가 세상을 돌아  노을이 될 때  우리는 눈부신 황금빛으로 남기를 바란다.   과연 시는 무엇 때문에 쓰는가? 말할 필요도 없이 시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리하여 자기의 정갈한 세계를 구축하고 시를 쓰는데서 지적인 만족을 획득하는 또다른 희열을 느낄 수 가 있를 것입니다.  매슈 아놀드의 말대로 ‘시는 인생 비평이외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3. 시인과 현대 사회   현대 사회는 대단히 복잡다단한 사회입니다. 살아가는 일마저 다양한 형태이지만 물질문명의 팽창으로 어쩌면 정신의 활폐화가 극도에 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아가는 시인들은 남다른 능력을 가졌거나 탁월한 그 무엇을 소유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시인을 예언자나 초자연적인 느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행각한 적 있었습니다.  영국의 시인 C. D 루이스는 구약성서에서 히브리의 많은 예언자들은 시인이었으며 그리스의 사람들은 시인들이 시를 쓸 때에는 어떤 신(神)에게 홀렸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접신(接神)의 경지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고도로 발달된 과하문명이나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이라는 생활방식에서 시는 그 가치가 축소되고 그 기능이 감소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척박한 사회일수록 시의 가치성과 기능을 더욱 공고히 해야한다는 역설적인사실을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시 문덕수 시인의 시론을 들어 봅시다. 그것은 마치 일반적으로 종교와는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되는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그만큼 우주의 불가사의하고 신비로운 영역이 넓어져 가고 따라서 신에 대한 믿음이 더욱 증대되어 가고 있는 현상과 같다고 하겠다. 현대는 산문의 시대, 곧 소설의 시대라고도 하지만 시의 기능이 점점 중요시되어 가고 있고 시인의 존재 이유가 더욱 절실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시인은 복합적이면서 다원화된 현대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보면서 어떻게 그 기능을 살릴 수 있을까하는 문제들을 심각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마치 인간이 기계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로 인격이 전락하여 인간관계는 바로 물질적 관계로 변형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인간과 인간이 단절되고 사회의 분열현상마저 초래되고 있는 서글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들의 혹독한 아픔이며 비극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격의 파괴나 인간의 소외, 도덕의 소멸 등으로 현대인들은 불안하고 또한 고뇌의 원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현대 사회가 고뇌의 늪으로 빠질수록 우리는 일찍이 예감할 구 없던 새로운 인류의 공동운명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자연의 파괴나 전쟁의 위험, 빈부의 차이,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더욱 큰 고뇌를 인류 전체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먹구름 홀연히 천지를 덮는다  지구 저쪽에서 날아온 조전(弔電)  펼친다, 펼치면서 꿈꾼다  먹구름 속 유영하던 꿈  깨진 꿈 껍질이 풀풀한 지상에는  오오, 누군가 온몸으로 오열하는  거기, 그곳에는 찌그러진 언어 몇 개만  막숨을 몰아 쉬고  이제 피와 눈물과 마지막으로 섞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먹구름은 저승쪽으로만 몰려가고  무방비의 이 지상에서  가녀린 기원마저  시름시름 무너지고 있다  --그래, 우리 살아남을 수 있겠나.   이 시는 졸시 [不在中 . 12]의 전문입니다. 참으로 암담한 지구상의 존재들을 나름대로 고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인은 현대 문명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이를 조화와 예지로서 화해의 가교 역할과 함께 비판적이면서도 통합하는 기능을 보유하지 않으면 언될 것입니다     17.  시창작 강의 6   ㅁ 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 이제 2008년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잡다한 일상사를 정리하고 내년에는 반드시 무엇인가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시도 많이 쓰시고 이곳 ‘창작방’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럼 전번에 이어서 운율에 대해서 좀더 알아 봅시다. ③ 음수율(syllabig system)   이 음수율은 각 시행의 음절수(音節數)를 일정하게 맞추는 운율입니다. 영시(英詩)에서는 음보(音步-metre)가 있고 한시(漢詩)에서는 다섯 글자로 맞추는 오언(五言)과 일곱 글자로 맞추는 칠언(七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형시인 시조나 가사, 기타의 신문학 초기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3 . 4조나 4 . 4조, 또는 7 . 5조 등으로 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조선조 중기의 문인이었던 양사언의 시조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렇게 시조처럼 일정한 글자수를 맞추는 형식인데 지금 현대시에서는 별로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김소월의 [먼 후일]이라는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글자수의 배열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시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시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어제도 오늘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그리고 한시에서는 전형적으로 이러한 오언이나 칠언절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참고로 만해 한용운의 [차영호화상(次映湖和尙)]이란 작품을 봅시다. 내용은 “시와 술로 시름하는 나입니다만 / 당신도 문장으로 늙으시네요 / 눈보라와 더불어 부쳐온 글월  / 속절없이 설레이네 오가는 두 정”이지만 우리는 오언절구라는 운율에 유념하여야 하겠습니다.   詩酒人多病 文章客亦老(시주인다병 문장역객로)   風雪來書字 兩情亂不少(풍설래서자 양정난불소)   역시 칠언절구도 마찬가지 입니다. 김삿갓의 시 [무제(無題)]를 보면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사각송반죽일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라고 하여 일곱 글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김삿갓이 방랑을 하다가 어느 집에서 쉬어가게 되는데 주인이 너무 가난하여 죽 한 그릇으로 대접을 하면서 어쩔줄 몰라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합니다. “네 다리 소반에 놓인 죽 한 그릇 속에 하늘빛과 구름의 그림자가 함께 떠 있구나. 주인은 도리가 아니라고 쩔쩔 매지 마시오. 나 본래 청산과 물이 비치는 것을 무척 사랑한다오” 쯤으로 알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3-1-2. 내재율(內在律)   지금까지 외형율, 그러니까 외적으로 나타나는 운율을 살폈지만 지금부터는 안으로 내재되어 확인되는 않지만 현대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내재율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내재율은 한 마디로 시의 호흡이나 템포(tempo-속도, 박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형시에서의 외형율처럼 일정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있기는 있으나 분명히 지적할 수 없는 속으로만 생명처럼 존재하는 시인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의 저변을 흐르는 언어의 억양과 색조가 빚어내는 어떤 리듬입니다. 바로 현대시에서 언어가 갖는 속성이나 기능을 종합한 무형의 리듬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 내재율은 일정한 규칙이 없기 때문에 시를 쓰거나 읽으면서 스스로 체득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가령 윤동주의 [서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처럼 시의 외형상의 리듬은 보이지 않지만 속살로 흐르는 시인 특유의 맥박과 호흡니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시에서 필요로 하는 내재율입니다. 다시 산문시의 형태를 갖춘 나의 졸시 [사랑법 . 9-시인의 사랑]이란 작품을 읽어 봅시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솔바람곁에 뿌리는 라일락 향기로 그대는    내게 다가 왔다. 어느 후미진 언덕배기에서 안개 속 잡풀의 흔들림을    보거나 마알간 냇물이 흰구름을 안고 치억들을 어루만지거나 아니 서   해 바닷가 갈매기 울음을 듣거나 그대 눈빛은 항상 내 가슴 깊이 안   기어 촉촉하다. 더러는 연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무지개였다가 별안간    이슬 한 모금 삼킨 주홍빛 꽃잎이었다가 스스로 앵두 입술 지그시 깨   물고 사유의 골짜기를 오르내리는 순한 바람이었다가 아아 그대여, 이   제 진실로 그대에게 들려줄 수 있는 한 마디 ‘사랑해’ 그 화음이 해뜰   녘이거나 저물녘이거나 늘 함께 푸른 강물로 젖어 있다. 멀고 가까움   이 이제 지워진 그 시인의 사랑 그리고 사랑법.   이런 작품을 언뜻 보면 산문처럼 생각되지만 산문시의 형태로 표현되어서 명심해서 읽어보면 시의 맥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대시는 외형율보다 내재율을 중시한는 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비록 자유시(현대시)라 할지라도 김소월과 김영랑 등 자연파 시인들은 음악성을 강조하는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는 점도 어찌보면 시는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18.  시의 이해  심상과 운율은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드는 요소이다. 이들에 대한 연구를 미학적 입장에서만 전개하면 내적 비평의 한 방법이 된다.  1. 심상(이미지)  (1) 심상의 의미  심상은 체험을 감각적으로 언어화한 것을 말한다. 이 때 감각적이라는 말은 심상을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중요하다. 감각은 심상적 표현의 구별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보다 “나는 그녀를 붉디붉게 사랑했다.”가 더 심상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붉디붉게’라는 표현이 감각의 일종인 시각으로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2) 심상의 종류  심상은 체험을 감각적으로 언어화한 것이기 때문에 심상의 종류도 감각의 종류와 같다. 보통 감각의 모든 것은 얼굴에 모여 있는데(우리가 매일처럼 다듬고 씻고 하는 이 얼굴이 감각의 집결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허망하기도 하다. ^^;) 눈, 코, 귀, 그리고 입 속의 혀, 땀구멍까지 각각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각각으로 제시될 때도 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가 함께 제시되거나, 혹은 원래 가진 감각이 이동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1) 복합 감각: 각각의 제재에 각각의 감각이 붙은 표현. 감각이 결합되었다는 뜻으로 복합감각적 표현이라고 한다.  2) 공감각: 하나의 제재가 원래 가진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이동하는 표현.  (예시)  ①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②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③들을 때는 우레더니 보니 눈이로다.  (해설) ①은 ‘우는 줄’과 ‘달이 뜬 초가 삼간’이라는 각각의 제재에 청각과 시각이 각각 결합해 있다. 따라서 복합 감각적 심상이다. ②는 ‘태양’이라는 하나의 제재가 원래 가진 시각이 ‘울림’이라는 청각으로 이동해 있다. 따라서 공감각적 표현이다. ③은 폭포의 소리와 모습을 보고 ‘우레’라는 청각과, ‘눈’이라는 시각을 결합했다. 폭포 소리라는 제재에 청각이 결합하고 폭포의 모습이라는 제재에 시각이 결합했으므로 복합감각적 표현이다.  (3) 심상의 제시 방법  1) 심상의 제시 방법  심상의 종류는 감각의 종류만큼 많지만 심상의 제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가른다. ‘묘사’와 ‘비유’가 그것이다. 이 때 비유는 상징을 포괄하는 것으로 광의의 비유를 의미한다. 묘사든 비유(상징)든 감각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런 구체화된 감각은 독자의 감성을 환기하여 감동의 깊이를 더해준다.  2) 비유적 심상의 효과  비유는 감동의 깊이에 감동의 폭을 넓힌다는 또 하나의 기능을 가진다. 비유를 하게 되면 감각이 구체화될 뿐 아니라, 함축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개인들이 공감을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한국 민중이 가장 즐겨 보는 보편적인 점술서 [토정비결]은 가장 예언이 잘 적중하는 명저로 꼽힌다. 그런데 이 [토정비결]을 보면 천 가지가 안 되는 경우의 수에 모든 사람의 길흉화복이 맞추어지도록 되어 있다. 4000만명이 넘는 인구가 천 가지도 안 되는 경우의 수에 맞춘 것이 토정비결인데 적중률이 높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해마다 이 점술서를 사 본다. 그 비법은 간단하다. 즉 모든 서술이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기에 여러 경험이 다양하게 해석되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목에 꽃이 필 괘’라는 비유적 표현은 뭔가 희망이라고는 없는 상황에서 좋은 일을 맞이한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비유적 표현이 감동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문제) 다음 시의 표현상의 특징을 잘 못 말한 것은  (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나)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먼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①(가)는 시각적 심상으로 외로움을 구체화하고 있다.  ②(나)에는 공감각적 표현이 있다.  ③(나)에는 역설적 표현이 있다.  ④(나)가 (가)보다 묘사적이다.  ⑤(가)의 ‘달빛’은 외로움과 상통한다.  (해설)  (가)는 묘사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하고 (나)는 비유적(은유적)으로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따라서 잘못된 설명은 ④이다.  (4) 심상의 해석 요령  1) 일반론적 해석 - 토정비결의 수준  한 편의 시를 독자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교과서적 해석에 따르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시를 시험 문제에 낼 수 있나 없나를 묻는 것과 같은 차원의 것이다. 전자의 입장에 서면 시를 절대로 시험 문제에 낼 수가 없고 후자의 입장에 서면 시험 문제에 낼 수가 있다. 이 경우 후자가 맞다. 시의 해석은 교과서적 해석을 따라야 한다. (참고서적 해석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  흔히 시가 창작되어 작가의 손을 떠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독자의 몫이라 하여 독자가 나름대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구절이나 독자가 나름대로 해석해서 자기 것으로 여기면 그만이지 시 해석의 일반론을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 해석의 일반론을 따르다가 보면 시 해석이 딱딱해지고 어려워져서 결국 시에 대한 진정한 감상에 이르지 못한다고까지 생각하는 것이 이 입장에 선 사람들의 주된 태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가령, 비유적 표현의 집산지라고 할 수 있는, 그래서 시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우리의 명저 [토정비결]의 한 구절을 보자. '고목에 꽃이 필 괘'라는 구절을 보고 일반론적 해석을 전제하지 않고 그냥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기분이 나쁜 상태라고 하여, 아주 기분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 사람이 이 구절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 이 때 일반론적 해석의 진실은 무엇인가? 하나하나 살펴보자. 가령 '고목'은 꽃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도저히 꽃이 필 조건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목은 꽃이 피기에 적합하지 않은, 혹은 꽃이 절대로 필 수가 없는 부정적 조건이 될 것인데 여기에 꽃이 피었으니 예상 외로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일반론적 의미를 가진다.  이 일반론적 해석을 유도하고 가르치려는 것이 교과서적 해석이다. 이른 일반론적 토대를 무시하고 독자의 기분에 따라 시를 마음대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시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시에 대한 모독이다.  일반론적 해석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다음 문제를 보자. 즉, 토정비결을 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풀어 보고 시의 이미지를 해석하는 요령을 알아 보자.  (문제) 보기 시에서 시행의 함축적 의미가 다른 하나는? (1999 수능 기출)  < 보 기>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北)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①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②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③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옴작거려  ④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⑤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성(城)에는  (해설)  점을 보러 갔는데 ‘하늘도 다 끝나가는 운세요’라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 뜻에서 ①은 그 의미가 부정적이다. 나머지를 점괘 식으로 해석해 보라. ‘꽃이 빨갛게 필 괘,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움작거릴 괘, 제비 떼 까맣게 날아올 괘(더구나 이 시행이 꽃이 빨갛게 필 괘라는 구절과 함께 쓰였다. ), 바람결 따라 꽃성이 (찬란히) 타오를 괘’ 어느 것 하나 부정적인 이미지는 없다. 모두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에다가 시적 화자가 눈이 온 툰트라 동토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까지 고려해 보라. 정답은 ①이다.  대부분 수능 출제 시들은 이렇듯 일반론적 해석, 한국 민중의 민족적 정감에 바탕을 둔 토정비결식 해석을 넘어서지 않는다. 토정비결식 해석으로 단박 풀리는 문제 하나를 더 보고 가자.  (문제) 는 ㈎의 시를 해석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다음 시( 박목월의 [이별가]와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지문으로 출제됨.) 의 시어 중, 이와 유사한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은? (1997 수능 기출 응용)  문학적 상징에는 인류 문화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상징과 특수한 문화권에만 적용되는 상징이 있다. 이 시에 나타난 ‘길’이나 ‘가을’ 같은 것은 동서양에서 모두 자주 다루어지는 문화 소재이지만, ‘미타찰(彌撱刹)’은 불교의 전통과 관련하여 동양권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시어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우리 시를 잘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① 강기슭 ② 뱃머리 ③ 흰옷자라기 ④ 골짜기 ⑤ 낙엽  (해설)  박목월의 시 [이별가]는 시에 나타나 있듯이 ‘저승’으로 간 ‘너’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저승’에 간 ‘너’는 ‘흰옷자라기’만 펄럭거린다. 우리 민족 문화 전통에서 ‘흰 옷’은 곧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서양이 ‘검정 옷’임에 반해. 이것이 민족적 전통이다. 그러니 답은 ③이다. 일반적인 시의 해석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시 해석은 토정비결 수준이라고 해석하면 딱 맞다.  과연 시의 이미지가 일상적인 해석의 수준, 토정비결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가? 조금 어렵다고 판단되는 다음 문제를 풀어 보자.  (가) 자야곡(子夜曲)  이육사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문제)  (가)의 흐름으로 보아 긴밀하게 연결되는 이미지끼리 묶인 것은?  ① 빛 - 꽃불 - 연기 ② 빛 - 파이프 - 무덤 (1.2점)  ③ 고향 - 자랑 - 소금 ④ 노랑나비 - 연기 - 그림자  ⑤ 연기 - 발자취 소리 - 이끼  (해설) 이육사가 지은 자야곡이다. ‘자야’란 시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 밤중을 가리킨다. 한 밤중에 일어나 지은 곡이라는 뜻인데 도대체 한 밤중에 무슨 내용의 시를 지었을까? 일단 문면을 보니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만 봐도 한 밤중에 일어나 고향 생각이 절실해서 지은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화자가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그것은 파이프 담뱃불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담뱃불은 ‘꽃불’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이제 상황은 대충 요약된다. 호랑나비 한 마리 오지 않는 무덤일 뿐인 현재의 고향에서 시적 화자는, 파이프 담뱃불을 보면서 ‘수만호 빛’이었던 과거의 고향을 아스라히 떠올리고 있다. 파이프 담뱃불은 회상의 매개체로 수만호 빛이었던 과거의 고향을 연상시킨다. 담뱃불=꽃불이므로 이미지 연결은 ‘꽃불’- ‘빛’으로 이어진다. 파이프에 현재 꽃불이 붙어 있으니 연기도 물론 날 것이고 그것은 고향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 정도의 상징 의미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정답은 ①이다.  시는 이렇게 일반론적이고 상식적인 입장에서도 충분히 풀 수 있다. 일상적 시어와 시적 언어는 거의 다르지 않고 다만 전체 시의 맥락 속에서 몇 가지 사항들을 유의하면 쉽게 풀어질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렇게 쉽고도 상식적인 입장에서 풀 수 있는 시 문제를 참고서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보니까 그것을 음미하고 즐길 줄 모르고 암기해 버리고 마는 데서 발생한다. 일반론적 상식에 입각해도 충분히 풀어갈 수 있는 다음 문제도 풀어 보자.  (가)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嶺)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三水甲山)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문제)  (가)의 셋째 연에 보이는 정서와 가장 유사한 것은? ( 1994 1차 수능 기출)  ①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②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③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④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내리잖는 그 땅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⑤ 아카시아 어린 잎사귀가 피어나는 산모롱으로  나는 혼자서 거닐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역시 혼자였었다.  (해설)  (가)의 셋째 연에는 시적 자아의 어떤 행위가 나타나 있다. 그 밑의 시의 내용을 보면 ‘산수 갑산’에 돌아갈 수 없지만 십오 년 정분을 못잊는다는 시적 자아다. 그가 온 길을 돌아서서 다시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15년 정분을 못잊는 미련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불귀, 즉 다시 못 돌아가는 곳 아니냐.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 시적 자아의 정서가 나타난 것이 (가)의 셋째 연의 정서이다. 미련과 결행 사이에 갈등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는 구절이 답이 될 것이다.  ①은 청산에 살고 싶다고 했으니 소망의 정서가 드러난다. ②는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시적 화자의 편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③은 탄식의 고개인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서 ‘한 번 가면 못 온다’고 하여 넘어갈까 넘어가지 말까를 망설이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④눈 속 깊이에서 피어나는 꽃맹아리를 보고 목숨의 의지를 다지는 정서이고 ⑤는 혼자 걸어가면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그리움의 정서를 형상화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정답은 ③이다.  시의 이미지가 지닌 함축적 의미를 해석하는 일이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시 문제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 주는 데 기여하리라.  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 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 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를 일일께며.  (문제)  밑줄 친 부분의 지시 대상이 나머지 넷과 다른 하나는?(1994 2차 수능 기출)  ① 유일한 사람 ② 머슴 ③ 나 ④ 끄나풀 ⑤ 정한 몸알  (해설) 심호흡도 필요 없다. 그냥 단순히 대입해 보라. ‘정한 몸알’인 ‘그’를 위해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유일한 사람, 머슴, 끄나풀’이다. 정답은 ③이다.  2) 개성적 해석과 유추적 사고  그렇다면 독자 나름대로 해석해서 가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런 일반론적 해석을 자신의 경우로 적용해 보는 것이다. 가령, 수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학생이 수학 시험을 치르기 전에 이 구절을 보고 '의외로 운 좋게 수학 시험을 잘 치르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노처녀라면 결혼 운이 생기겠구나로 해석하는 것이고 할머니라면 늦아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요컨대 독자 나름의 시 해석에 대한 다양성은 일반론적 해석을 전제하고 난 뒤의 이야기이지 일반론의 단계에서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과서적 해석을 참고서적 해석과는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가령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는 구절의 경우, 참고서는 무조건 '가난한 노래의 씨'는 독립의 의지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그 뒤에 나오는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부르는 '결실의 노래'가 독립일 때, 유추적으로 미루어 해석된 결과일 뿐이다. 가령 '결실의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를 의미한다면 '눈 내리는 벌판'은 이별이 된 부정적 상황으로 유추되며, '노래의 씨를 뿌리는 행위'는 재회의 희망을 심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것을 꼭 독립의 의지라고 외울 필요까지는 없다. 참고서가 제시하는 이런 따위 수준까지 다 외우는 데서 시가 죽는 것이다. 시를 살려 정말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론적 해석을 전제로 그것을 자신의 경우로 유추하여 해석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시 해석 행위는 고차적 언어 능력인 추리 상상력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며 합리적인 상상력을 기르는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이런 유추적 사고와 관련 있는 내용의 시 문제를 풀어 보자.  [다] 서시(序詩)  윤동주(尹東柱)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문제 1)  밑줄 친 부분의 시적 의미가 형상화된 시행을 다음에서 찾으면? (1995 기출)  ①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②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③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④ 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  ⑤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문제 2)  (가)시(김소월 [진달래꽃])의 (나)시의 화자가 대화를 나눈다고 할 때, 작품에서 드러나는 태도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1999 수능 기출)  ① ㈏ : 당신은 너무 소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면 절대 가지 말라고 임을 붙잡든지, 아니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미련을 남기지 않고 헤어지든지 했을 것입니다.  ② ㈎ : 떠나는 임에게 꽃을 뿌린다는 것도 소중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프면서도 그것을 안으로 삭이며 인내하는 것이 우리 여인들의 전통적인 정서가 아니던가요?  ③ ㈏ : 그런 태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어차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굳은 마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해야 합니다.  ④ ㈎ : 임이 떠난다는 현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미련이 많이 남습니다. 모든 상황을 하나의 감정만으로 정리하기 힘든 게 바로 인간이 아니던가요? 제가 했던 말은 그런 심정의 표현이지요.  ⑤ ㈏ : 사실,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우리들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지요 그럴 경우 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곤 합니다.  (문제 3)  를 참조할 때, ‘청산 별곡’의 화자와 ‘어부사시사’의 화자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2000 수능 기출)  갑: 차라리 강으로 달려가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지언정, 어찌 희고 결백한 몸으로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쓰겠는가?  을: 강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강물이 흐르면 내 발을 씻으리라.  ① (가)의 화자가 '을'이라면,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② (가)의 화자가 '갑'이라면, 현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③ (나)의 화자가 '을'이라면,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④ (나)의 화자가 '갑'이라면, 현실에 적응하여 분수를 지키며 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⑤ (가)와 (나)의 화자가 '갑'이라면,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설) 1. 먼저 밑줄 친 부분의 시적 의미를 알아 보자. 시적 화자는 한 점 부끄럼 없게 살기를 바라온 사람이다. 그래서 따라서 자신(잎새)에게 불어오는 조그만 부끄럼(바람)에도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내적 단련을 거쳐 순결한 삶을 유지하고자 애썼다는 것인데, 이런 구절과 관련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 먼저 ①.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는단다. 바위처럼 강한 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형상화한다. ②는 바위를 깎는 대상들이다. 바위에게 닥친 외적 시련이다. ③은 자기 채찍질이다. 내적 단련과 관련이 깊다. ④는 바위가 지향하는 세계다. 거리낌 없음이나, 먼 곳을 지향하는 심리가 드러나 있다. ⑤ 역시 강력하고 의지적인 존재가 되겠다는 의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정답은 ③이다.  2. 두 시적 자아가 대화를 나눈다고 할 때 알맞은 것을 고르는 문제는 전체적으로 시를 감상하고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그러나 대조라는 것은 두 대상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고라는 것을 전제해 두면 각각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해석해 내어서 응용하는 문제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진달래꽃]의 경우, 이별의 상황이라는 부정적 상황에서 ‘가는 님’을 붙잡지 않고 있다. 이별을 적극적으로 만류하고 있지 않다. [꽃]의 경우, 꽃이 피어날 수 없는 극한 상황이라는 부정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든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진달래꽃]이 소극적이라면, [꽃]은 매우 적극적이라는 것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런 면을 염두에 두고 문제를 풀어 보자. 정답은 ⑤  3. 청산별곡의 화자는 현실이 너무 괴로워 ‘청산을 택했지만, 현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삶의 고독과 비애를 느끼는 존재이다. 반면 어부사시사의 화자는 세속의 반대항인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며 살아가고자 하고 있다. 에서 ‘갑’은 죽을지언정 현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삶의 자세를 보여 주고, ‘을’은 현실의 변화에 알맞게 대처하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사람으로 볼 수 있으므로 ③이 답이 될 수 있다. 답③  2. 운율  (1)음악성(운율)  1)반복  운율은 반복에서 온다. 음절수가 반복되면 음수율이 되고 음보(발음 등장성으로 끊은 음의 걸음걸이)가 반복되면 음보율이 된다. 특정 위치에서 음운이 반복되면 음위율(두운, 요운, 각운)이 된다. 수미쌍관의 구조도 일종의 음악성과 관련이 있다. 반복의 기본틀에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것이 수미 쌍관이기 때문이다.  (문제1)  을 처럼 고쳐썼을 때, 고쳐 쓰기를 통해 얻은 시적 효과를 가장 적절하게 평한 것은? (1999 수능 기출)     ♥ 시는 율어에 의한 모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    ♥ 시는 모방의 기술이다.   (필립 시드니)    ♥ 시는 강력한 감정의 자발적 발로이다. (워즈워드)    ♥ 시는 정에 감응하여 말소리로 나타낸 것이다.  (이규보의 )    ♥ 시는 감흥을 주고, 볼 수 있게 하고, 사귀게 하고, 원망하게 하며,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공자)    ♥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맥리쉬)     시의 특성 ♠ 절제된 언어와 압축된 형태로 표현한다. ♠ 내면화된 세계의 주관적이고 은밀한 토로(吐露)이다. ♠ 언어가 지니는 '소리(운율)'를 많이 활용한다. ♠ '시적자아(서정적 자아)'라는 대리인에 의해 전달된다.     시의 여러 요소 ♠ 4대 요소    ㉠ 의미적 요소(생각) : 시에 담긴 시인의 뜻과 생각 → '주제'    ㉡ 음악적 요소(운율) : 반복되는 소리의 질서에 의해 창출되는 운율감 → '운율'    ㉢ 회화적 요소(심상) : 대상의 묘 사나 비유에 의해 떠오르는 구체적인 모습 → '형상'    ㉣ 정서적 요소(감정) : 시어에 의해 환기되는 심리 및 감정 반응 → '정서' ♠ 형식적 요소    ㉠ 시어(詩語) : 시에 쓰이는 언어로, 함축적 의미를 중시하는 압축된 형태의 언어이다.    ㉡ 행(行) : 시에서의 한 줄을 가리킨다.    ㉢ 연(聯) : 시적 사고와 내용 전개의 단위로 하나 이상의 행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 운율(韻律) :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소리의 규칙적인 리듬이다.     시의 언어 ♠ 시어의 특성    ㉠ 시는 언어 예술이다. : 시는 언어의 의미와 소리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언어 예술이다.    ㉡ 언어의 외연적 의미보다 내포적 의미를 중시한다.                      *외연적 의미(지시적 의미) → 언어의 과학적 쓰임으로, 사전적이고 직접적이며 객관적인 의미.             *내포적 의미(함축적 의미) → 언어의 정서적 쓰임으로, 암시적이고 간접적이며 주관적인 의미.    ㉢ 사이비(似而非) 진술 : 과학적 진실이나 상식에 어긋나면서도 시적 진실을 표현하는 진술 방식으로,                                              '가진술(假陳述)'이라고도 하며, 시어의 중요한 속성이다.          예> 사람이 술을 마신다.(과학적 진술) → 술이 사람을 마신다. (가진술)    ㉣ 시적 자유(시적 허용) : 문법 파괴, 신조어 구사, 고어와 사투리의 사용 등 규범 문법의 제약에서                                              벗어난 표현이 시에서는 허용됨.          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십니까?)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범하진)    ㉤ 다의성(多意性) : 하나의 시어가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성질을 말하며, '모호성'이라고도 하며,                                           이는 시어의 함축적 기능에 연유한다. ♠ 시어의 기능    ㉠ 음악적 효과(운율)를 줌.    ㉡ 이미지(심상)를 이루어 냄.    ㉢ 시의 어조를 만들어 냄.    ㉣ 시의 분위기(정조)를 형성함.    ㉤ 함축적 의미를 지님.    ㉥ 특수한 기법(반어, 역설, 풍자 등)에 의해 시적 긴장을 가져옴      운율의 개념          ⇒ 운율이란, 소리의 일정한 규칙적 질서로, 시를 읽을 때 느껴지는 가락(리듬감)을 말한다. ㈀ 운(韻) : 동일하거나 유사한 자음이나 모음이 일정한 위치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                 두운, 요운, 각운 등 한시의 압운법이 대표적이다. ㈁ 율(율격) :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글자의 수 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                     영시의 강약률, 한시의 성조율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시가의 율격 기준은 시간적 등장성(等長性)에 기초한 음보율(音步律)이 중심을 이룬다.        운율의 요소 ♠ 동일 음운의 반복 : 특정한 음(음운)을 반복하여 사용함.    ㈀ 자음 반복            예> 갈래 갈래 갈린 길 / 길이라도 (김소월의 "길") → 자음 'ㄱ'의 반복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 → 자음 'ㄹ'의 반복    ㈁ 모음 반복            예> 오늘 하루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 'ㅗ'의 반복 ♠ 동일 음절수의 반복(음수율)      예> 한시, 시조, 가사, 창가 등이 대표적임.            산 너머 / 남촌에는 / 누가 살길래 //            해마다 / 봄 바람이 / 남으로 오네.//  (김동환의 ) → 7.5조의 음수율 ♠ 일정한 음보의 반복(음보율) : 3음보, 4음보가 대표적임      예> 날좀 보소 / 날좀 보소 / 날좀 보소//            동지 섣달 / 꽃 본 듯이 / 날좀 보소//            아리 아리랑 / 쓰리 쓰리랑 /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 날 / 넘겨주소.//       (민요 ) → 3음보 ♠ 동일한 통사 구조의 반복 : 같거나 비슷한 문장의 짜임을 반복하여 사용함.      예①> 물새알은 / 물새알이라서 / 날개 죽지 하얀 / 물새가 된다.               산새알은 / 산새알이라서 / 머리꼭지에 빨간 댕기를 드린 / 산새가 된다.      예②>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a                            a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b                            a ♠ 의성어 · 의태어의 사용     예> 살랑살랑 물결 이는 냇가에 서면 / 가슴 안 여린 모래톱으로 / 그리움 사르르 밀려 들오고.        운율의 종류 ♠ 외형률 : 시의 표면에 겉으로 드러난 운율(정형률)    ㈀ 음위율 → 일정한 위치에 같은 음을 배치함으로써 생기는 운율              예> 한시 · 영시 등의 두운, 요운, 각운    ㈁ 음성률 →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의 주기적 반복으로 생기는 운율.              예> 영시와 한시에는 두드러지나, 우리 시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    ㈂ 음수율 → 글자의 수를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운율.              예> 3(4) · 4조,  7 · 5조 등.    ㈃ 음보율 → 일정한 음보(音步. 발음 시간의 길이가 같은 말의 단위)를 반복함으로써 생기는 운율.             예> 우리나라 전통 시가(시조, 가사, 민요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는 3음보, 4음보 등. ♠ 내재율 : 의미와 융화되어 내밀하게 흐르는 정서적이고 개성적인 운율.                 일정한 규칙없이 배열된 시어 속의 리듬으로, 시를 읽어가는 동안에 독자의 마음 속에서 느껴            지는 것으로, 행이나 연, 문체, 또는 작품 전체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는 주관적인 운율을 말한다.        운율의 효과 ♠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소리의 규칙적 질서에 의해 즐거움과 함께 깊은 인상을 준다. ♠ 일상 생활의 말에 대한 무감각으로부터 깨어나게 한다. ♠ 시의 의미와 연결되어서 독특한 어조를 이루어 낸다.         25.  제1강  박석구의 시작법 1.      시의 여행을 떠나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대상과 현상을 만납니다. 이런 대상과 현상의 모든 것을 세계라고 합니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집니다.  그럼, 대상과 현상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한 편의 시로 표현해야 하는 걸까요? 이런 막연한 질문에 시인도 독자도 당황하는 때가 많습니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것들은 그것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그 방법을 구체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존 시인들의 작품을 수없이 읽고, 외우고, 자기의 작품을 끊임없이 쓰고, 지우다 보면 표현 방법이 저절로 터득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 멀고, 그것은 지도 없이 세계여행을 떠나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시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정리하여 옮겨 보기로 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부끄럽지만 나의 시작 과정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은 나의 해답일 뿐, 정답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듯이 시를 쓰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인용한 모든 시는 나의 시 중에서 가려 뽑았습니다. 나의 시작 과정을 밝히는 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용한 시들은 나의 삶 속에서 캐낸 평범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를 도구로 한 것들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가슴에 남은 이야기들을 시로 바꾸어 보았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지 모릅니다.  평범한 것이 아름답고, 쉬운 것이 옳다는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시는 쉬워져야 합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달나라나 별나라의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 속의 이야기가 드러나야 됩니다. 이 글은 시를 전문으로 쓰는 시인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시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삶 이야기를 시로 바꾸어 보는 연습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를 쓰는 과정을 함께 가 보자는 생각에서 정한 것입니다. 평범한 마음으로 평범한 대상들을 가슴에 담아 시로 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여행 준비  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시에 대한 이론을 조금은 익혀야 합니다. 이것이 여행 준비. 이 장에서는 시의 개념, 표현 방법, 대상인식 등에 관한 것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1. 시의 개념  예술은 어떤 대상(사물과 현상)에 대한 인식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 언어를 도구로 하는 것이 문학, 문학 중에서 운율을 강조하는 것이 운문, 운문의 대표적인 형태가 시입니다. 다시 정리하여 보면, 시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운율 있는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한 문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대상은 시의 소재, 즉 글감을 말합니다. 당신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떤 대상이 당신에게 감흥을 주었다면, 그것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다음 시를 읽으면서 시의 여행을 준비해 봅시다.  하루에 한 번쯤은 혼자 걸어라.  세상 이야기들 그대로 놓아 두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라.  말이 되지 말고, 소가 되어  나에게 속삭이며 혼자 걸어라.  괴로움이 나를 따라 오거든  내가 나에게 술도 한잔 받아 주고  나를 다독이며 혼자 걸어라.  나무도 만나고, 바람도 만나면  마음은 어느 사이 푸른 들판  잊었던 꽃들이 피어나고  고향 내음새 되살아나  내 가슴을 울리는 나의 콧노래  하루에 한번쯤은  이렇게 나를 만나며 살아가거라.  - 하루에 한 번쯤은-  시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먹고사는 것, 혼자가 되어 한 번 걸어 보십시오. 발은 걸으라고 조물주가 만들어 준 것.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남이 아니라 당신 자신과 함께 걸어 보십시오. 가슴에 엉켰던 것이 녹아 내리고,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새롭게 눈을 떠 당신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멀리 보이던 것들이 가까이 보이고, 가까이 보이던 것들이 멀리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만나는 모든 것들을 가슴속에 그대로 담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과도 말없는 말로 가슴을 열 수가 있습니다.  풀과 나무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 보십시오. 들판의 풍경들을 가슴 속에 그려 보십시오. 하늘을 향해 외쳐 보십시오. 당신 자신과 해가 지도록 얘기를 나누어 보십시오. 거기에 상상의 세계가 있습니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진실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당신은 당신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는 동안, 당신에게 감흥을 준 모든 사물과 현상, 즉 대상이 시의 소재입니다.  인식은 대상에 대한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말합니다. 이것이 시의 바탕이 됩니다. 그리고 시에서의 언어를 시어라고 하는데, 이 시어들의 어울림이 운율입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은 우리의 가슴에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크나큰 즐거움일 수도 있고,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는 기쁨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슬픔일 수 있고, 눈가에 맺히는 몇 방울의 눈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울부짖게 하는 함성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까요? 그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진실이란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러나는 사랑, 미움, 아픔, 기쁨, 슬픔을 거짓없이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 속에서 빚어지는 고독, 그리움, 방황, 울분 등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왜, 우리는 진실을 표현하려 하는 걸까요? 말을 바꿔 보면, 왜, 우리는 밤을 새워 시를 쓰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시를 읽는 걸까요?  시를 쓰는 이유는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며, 시를 읽는 이유는 자신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입니다.  표현과 감동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신적 즐거움과 영혼의 정화입니다. 우리들의 삶을 맑고, 밝고, 풍요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에서의 웃음은 기쁨을 밝히는 것, 울음은 슬픔을 걸러 내는 것, 외침은 분노를 털어 내는 것. 결국, 웃음도, 울음도, 외침도 마음을 정화시키는 정신적 배설작용입니다.  좋은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좋은 그림을 보면 마음이 고요해 지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그윽해 진다고 말합니다. 결국 모든 예술은 우리의 삶을 정화시키기 위한 것들입니다.  시를 쓰는 일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시는 삶을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시는 삶의 충분 조건일 뿐이지, 필요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삶을 위해 시가 필요한 것이지, 시를 위해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돌에다 이름을 새기기 위해  사는 것이 정말 아닙니다.  삶의 목적은 삶  죽어 금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삶. 3 -  우리는 지나치게 목적을 중시하고, 과정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과정, 그 자체입니다. 삶이 다른 목적을 가질 때, 그 삶은 진실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삶을 엮어 가는 수단으로써의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진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까요? 아닙니다. 그 진실을 실감나게 표현했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2. 표현 방법  표현 방법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인식한 내용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묘사와 진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묘사는 대상의 현상이나 성질, 인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말하고, 진술은 그것들을 묘사하지 않고, 직접 상대방에게 들려주듯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시는 이 두 방법이 알맞게 어우러져 그 모습을 드러내야 됩니다.  묘사의 종류에는 서경적 묘사, 심상적 묘사, 서사적 묘사로 나눌 수 있고, 진술은 독백적 진술, 권유적 진술, 해석적 진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경적 묘사는 보고, 느낀 것을 직접 그려내는 묘사이고, 심상적 묘사는 마음 속에 떠오르는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고, 서사적 묘사는 사건이나 현상을 시간의 연속을 통해 그려내는 것입니다.  독백적 진술은 인식 주체의 독백, 고백, 반성, 회고, 기원 등을 진술하는 것이며, 권유적 진술은 동조, 참여, 각성을 청하는 인식의 주체의 주장을 내세운 진술이며, 해석적 진술은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의 이해, 해석, 비판, 판단을 드러낸 진술입니다.  너무 말이 많아 미안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나누는 작업이 아니라 모으는 작업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묘사와 진술의 종류를 아는 것은 시의 틀을 짜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설명했습니다.  시에서의 묘사와 진술은 시적 자아에 의해 드러납니다. 시적 자아란 시 속에서의 인식 주체를 말합니다. 인식 주체는 1인칭인 '나'입니다. 소설에 빗대어 본다면 서술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시에서 주인공일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한 관찰자일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한 전지적 제삼자일 수도 있습니다.  햇빛 부스러지는 아침  금낭화 속에서 기어 나오는  일곱 점박이 무당벌레  하, 요놈이, 어젯밤  산을 그렇게 울리었구나.  -산 29 -  1연이 묘사이고, 2연이 진술입니다. 1연은 한 폭의 그림을 떠오르게 하고, 2연은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시적 자아를 통해 상대방에게 들려주듯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다고 묘사와 진술을 선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분하는 것은 묘사가 중심이 되었는가, 진술이 중심이 되었는가를 판단하는 것뿐입니다.  * 만나는 대상에서 느끼는 것을 가슴속에 그려봅시다. 만나는 대상에 대해 생각한 것을 가슴에 대고 속삭여 봅시다. 이 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대상 인식이라고 합니다. 인식한 대상을 그려보는 것이 묘사의 시작이고, 인식한 대상에 대해 속삭여 보는 것이 진술의 시작입니다.  구태여 길게 묘사하고, 길게 진술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 줄의 문장이 오히려 좋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대상을 본 후, 곧 바로 느끼고, 곧 바로 생각하는 직관, 대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보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상인식의 첫걸음입니다.     26.  제2강  박석구 시작법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3. 대상 인식  대상인식은 대상에 대한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말합니다. 묘사와 진술에 앞서, 우리는 먼저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합니다. 그것은 대상을 인식한 후에야 묘사와 진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인식은 언어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언어로 느끼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식한 내용을 묘사와 진술이라는 표현 방법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상 인식은 그대로 보기, 빗대어 보기, 상상하여 보기 등의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그대로 보기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말하고, 빗대어 보기는 그대로 본 것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상상하여 보기는 그대로 보기나 빗대어 보기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사건이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인식한 것이 묘사와 진술에 의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① 호숫가에 연꽃이 피었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보기입니다. 대상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아무 꾸밈없이 옮겨 본 것입니다. 다음은 빗대어 보기. 빗대어 보기의 열쇠는 질문.  연꽃이 무엇같이 피었습니까? 아니면, 연꽃이 무엇처럼 피었습니까?  ② 호숫가에 연꽃이 부처님 오신 날의 줄등처럼 피었습니다.  글의 소재인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본 것입니다. 즉 '연꽃'이 무리를 지어 핀 것을 '줄등'에 빗대어 본 것입니다. 다음은 상상하여 보기. 대상을 빗대어 놓으면 상상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상상하여 보기의 열쇠도 질문. '왜? 어떻게?' 등의 여러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해답일 뿐입니다. 상황에 따라 질문이 달라질 수 있고, 질문도, 답도 시인에 따라 다양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피었습니까? 어떻게 피었습니까?  여기에서 '왜'는 이유, '어떻게'는 상황을 말합니다.  ③ 호숫가에 연꽃이 당신이 오시는 길 밝으라고, 부처님 오신 날의 줄등처럼 여기 저기 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연꽃은 보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의 가슴속에 피어나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상하기입니다. 여기까지가 대상인식입니다. 이 인식된 내용을 조금만 다듬으면, 시가 될 수 있습니다.  호숫가에 연꽃이 피었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길 밝으라고  부처님 오시는 날의 줄등처럼  온 동네를 환하게 밝혀 놓고  여름이 다 가도록 피었습니다.  1행은 그대로 보기, 3행은 빗대어 보기, 2행, 4행, 5행은 상상하여 보기입니다. 상상하여 보기 중, 2행은 '왜', 4행과 5행은 '어떻게'에 해당합니다.  대상인식 과정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그대로 보기는 씨앗, 빗대어 보기는 싹과 잎, 상상하여 보기는 꽃, 완성된 시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상에 대한 감흥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당신이 감흥을 받지 않았다면, 그대로 보기나 빗대어 보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흥은 순간적이며 직관적입니다. 순간적이며 직관적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곧바로 느끼거나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감흥은 그대로 보기와 빗대어 보기 단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씨가 싹이 되는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도 햇볕과 공기와 습도가 알맞게 어우러지지 않으면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알맞게 어우러지는 순간에 감흥이 이루어집니다.  햇볕과 공기와 습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대상을 볼 수 있는 당신만의 눈을 가지게 하는 경험입니다. 이때의 눈을 심미안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의 눈 말입니다. 그래서 같은 대상을 보고 쓴 시가 시인에 따라 서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심미안을 기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대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됩니다. 질문을 가지고 대상에 접근하면 그것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 줄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이 쌓여 경험이 되고, 이 경험이 대상을 보는 당신만의 눈을 새롭게 해 줍니다. 이 눈이 당신만의 심미안입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들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파랗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그대로 보기. 주어진 상황을 인식하여 간단하게 옮겨 본 것입니다.  '파랗게 물들어 가는 들판'이 무엇과 같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빗대어 보는 방법이라고 했지요?  '한 장의 파란 화선지'  다음은 상상하여 보기입니다.  *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분별력이 생기면서부터 만나는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집니다. 이 호기심이 상상의 시작입니다. 이 호기심은 만나는 대상에 대한 많은 의문을 낳습니다.  의심이 아닙니다. 의심은 죄악을 낳지만, 의문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줍니다. 머리 속에 물음표가 들어가면 의심이 되지만, 가슴속에 들어가면 의문이 됩니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상상입니다. 그 의문이 꼬리를 물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납니다.  상상하여 보기 방법은 질문을 통한 상상하기와 경험을 되살려 상상하기가 있습니다. 질문을 통한 상상하기는 대상에 대한 질문을 통해 얻은 답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고, 경험을 되살려 상상하기는 인식한 대상에 경험 속의 상황이나 사물을 결합하여 상상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질문을 통한 상상하기를 해 봅시다.  '들판이 화선지라면, 당신은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려면 당신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붓.'  당신은 붓이 되었습니다. 붓이 되었으면, 그림을 그려야 되겠지요?  '붓으로 무엇을 그리겠습니까?'  '고향.'  이것이 질문을 통한 상상하기. 그런데 모든 질문과 답은 당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경험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똑같은 해를 보고 살면서도 햇빛을 받고 사는 사람이 있고, 햇볕을 쬐고 사는 사람이 있고, 햇살을 맞고 사는 사람이 있듯이 경험은 그에게 주어진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과 답도 이 경험에 따라 달라져서 상상의 세계도 시인에 따라 다르게 펼쳐집니다.  이젠 인식한 내용을 정리하여 줄거리를 엮어 봅시다. 줄거리를 엮을 때, 서경문, 서사문, 기행문, 반성문, 고백문, 회고문, 기도문, 서간문, 권유문, 광고문, 설명문, 논설문 등등의 틀을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글의 형식을 빌리든, 소설의 구성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을 참고로 하여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3요소에 그대로 맞추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줄거리를 만들어야 시의 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선, 소설의 구성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짧은 이야기를 엮어 봅시다.  여기에서 인물이란 행동의 주체인 나, 시적 자아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경은 시 속에 주어진 시대적, 시간적, 공간적, 심리적 상황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건은 시적 자아나 행동의 주체가 되는 사물이나 대상의 느낌, 생각, 행동, 태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 요소를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시의 틀을 쉽게 짤 수 있습니다. 시를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에 나타난 인물, 사건, 배경을 알아낼 수 있다면 감상이 쉬어진다는 말입니다.  위의 인식한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리는 묘사와 진술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정리 과정에서도 퇴고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들판이 한 장의 파란 화선지와 같은데, 나는 붓이 되어 거기에 고향을 그리고 싶다.  인물은 '나', 배경은 '들판', 사건은 '고향을 그리고 싶다'로 보면 됩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①들판은 한 장의 파란 화선지  ②나는 붓이 되어 고향을 그리고 싶다.  다듬어 봅시다.  ① 들판은 한 장의 파란 화선지  시어에 변화를 주어 다시 정리해 봅시다.  들판은 파랗게 번져 오는 화선지 한 장  형용사 '파란'을 '파랗게 번져 오는'으로 고쳐 생동감을 주었습니다. 시구가 길어지면 행을 나누는 것이 좋겠지요?  들판은 파랗게 번져오는  한 장의 화선지  ②나는 붓이 되어 고향을 그리고 싶다.  이것도 생동감이 있게 바꿔 봅시다. 생동감을 주기 위해서는 형용사 '그리고 싶다'를 동사의 현재형 '그린다'로 바꾸면 됩니다. 이것도 행을 나누어 정리해 봅시다.  나, 붓이 되어  고향을 그린다.  모으면 하나의 짧은 시가 됩니다.  들판은 파랗게 번져오는  한 장의 화선지  나, 붓이 되어  고향을 그린다.  시행의 균형이 맞지 않은 것 같지요? 그것은 1연 1행의 글자수가 다른 행에 비해 많기 때문입니다. 말을 바꾸어 보면, 1행은 3음보, 2행은 2음보의 운율로 이루어져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1행을 줄여야겠지요? 무엇을 줄일까요? '들판'이란 시어를 줄이는 것이 좋겠지요? 대신 제목은 '들판'이라고 하면 그 의미가 그대로 살아 남습니다.  들판  파랗게 번져오는  화선지 한 장  나, 붓이 되어  고향을 그린다.  1연은 대상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본 서경적 묘사이고, 2연은 당신의 마음을 고백한 독백적 진술입니다.  * 하나 더 상상해 봅시다. 앞에서는 질문을 통한 방법으로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았습니다. 이젠 경험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펼쳐 봅시다. 경험을 되살려 상상하기는 그대로 본 것이나 빗대어 본 것에 당신의 경험 속의 이야기나 풍경, 또는 소재 등을 결합하여 줄거리를 엮어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경험이란 당신의 체험일 수도 있고, 책에서 읽은 것일 수도 있고, 남에게 들은 것일 수도 있고, 당신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한 폭의 그림이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방법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쓰인다는 말은 아닙니다. 두 방법은 상호보완적입니다. 질문을 통한 상상하기도 경험을 되살려 상상하기와 마찬가지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질문에 의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 당신의 귀여운 꼬마가 그림에 그리고 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풍경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습니다. 하늘과 해가 그려지고, 산이 그려지고, 나무가 그려졌습니다. 이젠 그 그림에 색칠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상상의 날개를 펴 봅시다. 시적 자아는 아빠. 당신이 귀여운 꼬마의 아빠가 되어 보는 겁니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대상은 '꼬마가 색칠하는 그림'. 이것에 당신의 경험을 결합해 봅시다.  눈을 감아 봅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경험한 것을 떠올린다는 말. 그대로 본 대상 속에 지난 날의 이야기나 풍경, 소재를 옮겨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경험을 되살려 상상하기.  눈을 감았습니까? 그럼, 어린 날의 언덕에 앉아 들판을 바라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논, 밭, 언덕, 나무, 날고 있는 새들이 보이지요. 그 중에 무엇을 불러오겠습니까? 새.  됐습니다. 그 중 한 마리만 불러와 '꼬마가 색칠하는 그림' 속으로 날려 보십시오.  정리해 봅시다.  꼬마가 색칠하는 그림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여기까지가 경험을 되살려 상상하기. 이제 중심 소재가 된 '새'를 구체화해 봅시다. 구체화도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질문을 해 봅시다.  새는 어떤 새일까요?  학.  어떤 학입니까?  종이학.  종이학은 누가 접었습니까?  아내.  '새'를 '아내가 접어놓은 학'으로 구체화하였지요? 정리해 봅시다.  꼬마가 색칠하는 그림 속으로 아내가 접어놓은 학이 날고 있다.  행을 나누어 정리해 봅시다.  꼬마가 색칠하는  그림 속으로  아내가 접어놓은  학이 날고 있구나.  그런데 무엇인가 빠진 것 같아 허전하지요?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을 그렸을 뿐, 당신의 마음을 나타내는 구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어에는 음악성. 회화성, 의미성이 함께 드러나야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시어의 3요소라고 합니다. 음악성은 운율, 회화성은 심상(이미지), 의미성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생각, 곧 주제를 말합니다. 이 시는 의미성이 약하다는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겨야겠지요? 이것이 퇴고입니다. 시어를 고르고, 운율을 맞추고. 이미지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주제가 잘 드러났는가를 되새겨 보는 것입니다.  모든 열쇠는 질문이라 했습니다. 꼬마는 지금 색칠을 하고 있지요? 그림을 다 그렸습니까, 그리지 못했습니까? 시를 읽어보면, 아직도 다 그리지 못했지요? 아직도 색칠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다 그리지 않았는데'를 첨가하여 당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면 어떨까요?  꼬마가 색칠하는  그림 속으로  아내가 접어놓은  학이 날고 있구나.  아직도 다  그리지 않았는데.  1연은 마음으로 한 폭의 그림을 그린 심상적 묘사, 2연은 안타까운 마음을 고백한 독백적 진술입니다.  이처럼 상상의 세계는 당신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제목은 '들판'이라고 해도 좋고 '풍경'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생각해 보니, '풍경'이 어울릴 것 같군요.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까.  * 꼬마의 '그림'은 '희망'입니다. 자기 앞에 펼쳐진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내가 '접어놓은 학'은 '동경'입니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언제나 한 발 앞서 가는 마음이지요. 그러나 아이의 삶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학을 접을 수 있는 아내의 마음도 아름답고, 그것을 지켜보는 당신의 마음도 역시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삶들이 어우러지는 곳이 바로 우리가 숨쉬는 세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삶 속에서의 아름다움을 당신이 발견해 내는 것입니다. 발명이 아닙니다. 이미 조물주가 마련해 준 것을 찾아내는 것일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수많은 마음들이 빚어 놓은 상상의 세계에서 울고, 웃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픈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처럼 상상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대상 인식이 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시상이 엮어지고, 묘사와 진술, 즉 표현 방법이 결정되고, 어느 정도의 형상화가 이루어지며, 시적 자아의 위치와 태도, 어조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인식(느낌과 생각)이 시의 전체분위기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상인식은 시의 주춧돌이고, 시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상 인식, 즉 그대로 보기, 빗대어 보기, 상상하여 보기 중,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빗대어 보기입니다. 빗대어 보기는 나무의 잎처럼 무성하고, 다양하여 상상하여 보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시를 형상화하는 방법을 알게 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것은 뒷장에 싣겠습니다. 당신의 필요에 따라 읽으셔도 좋고,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것은 지나친 이론은 시를 쓰는데 오히려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이론에서 벗어나야 시다운 시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이 자유를 구속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시에 대한 이론도 시의 자유를 위해 있어야 합니다.     27.  제3강 박석구 시인의 시작법  2. 여행 연습. 1  지금부터 우리는 그대로 보기와 빗대어 보기를 바탕으로 하여 한 편의 이야기를 엮어 보거나,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보거나, 한 묶음의 생각을 털어놓는 연습을 해 봅시다. 이것이 상상하여 보기, 시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꽃을 피우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짧은 시를 써 봅시다.  이제, 상상력이라는 카메라 하나 짊어지고, 무지개 빛 마음이 머무는 곳에 렌즈를 대고 사진을 찍어 봅시다. 무지개 빛 마음이란 아름다운 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개에는 수많은 삶의 빛깔들이 굴절되어 있습니다. 삶의 기쁨,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아픔, 분노 등 모든 빛깔들이 스며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개 빛 마음은 슬픔을 슬픔으로, 기쁨을 기쁨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마음입니다.  렌즈는 대상을 보는 당신의 눈, 즉 심미안을 말합니다. 필름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굴절되는 대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마음의 굴절은 그대로 보기, 빗대어 보기, 상상하여 보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상인식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의 굴절을 이루게 하는 직관입니다. 직관은 대상에 대해 순간적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직관이 시의 씨앗입니다. 그 씨앗이 트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다시 더욱 살진 씨앗으로 돌아갑니다. 이 씨앗도 잘 정리하면 짧고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직관의 주체, 즉 인식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꽃이 웃고 있다면, 누구를 보고 웃을까요? 새가 울고 있다면, 누구를 보고 울까요? 바로 당신입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누구에게 불어오는 걸까요? 바로 당신입니다. 모든 인식의 주체는 바로 당신입니다. 이때의 당신이 시적 자아입니다.  걸음을 옮깁시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고. 지금부터 당신은 만나는 대상에 대해 순간적으로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리하는 연습을 해 보는 것입니다. 시의 씨앗, 즉 직관을 모아 보자는 것입니다.  * 길  길을 걸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당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그대로 보기입니다. 즉 대상인식입니다. 인식한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정리한다는 것은 당신의 행위, 느낌, 생각을 간추린다는 말입니다. 될 수 있으면 짧게, 순서에 맞게 한 편의 이야기, 한 폭의 그림, 한 묶음의 생각으로 정리해 봅시다. 기본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시에서의 그림이나 생각도 결국에는 문자에 의한 표현이므로, 줄거리를 만들어 정리해 보자는 것입니다.  앞에서 줄거리를 엮을 때는 서경문, 서사문, 기행문, 반성문, 고백문, 회고문, 기도문, 서간문, 권유문, 광고문, 설명문, 논설문 등등의 틀을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줄거리를 엮어 정리해 봅시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없어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여기까지가 인식 내용 정리입니다. 서사문의 틀을 빌렸지요? 앞에서 줄거리를 엮기 위해서는 소설의 구성 3요소를 빌리자고 하였습니다.  '길'이 배경이고, '나'는 인물이고, 나머지의 느낌과 생각, '걷고 있는데' '기분이 좋았다'를 사건이라고 생각합시다.  시도 결국에는 삶의 이야기라 했습니다. 이것은 압축되어 소설과 모습을 달리하지만, 시의 내용을 유추해 보면, 거기에는 한 편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불안하실 겁니다.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느냐고. 그러나 이런 것도 한 편의 좋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해 봅시다. 생략할 수 있는 것은 생략해 봅시다. 이것이 압축입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다.  이것을 재정리라고 이름을 붙여 봅시다. 시에서 퇴고란 모든 제작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재정리도 퇴고의 한 방법입니다. 재정리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시의 틀이 저절로 짜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다듬어서 행을 구분하여 봅시다. 이것이 구성입니다.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연과 행을 구분하여 시의 틀을 짜는 것입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다.  어디인가 어울리지 않고 흥이 나지 않지요? 그것은 행과 행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운율이 고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낭송하기에 좋지 않다는 말이지요.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유치한 것 같지요? 염려하지 마십시오. 모든 예술은 당신이 바로, 유치하다고 생각한데에서 출발했으니까. 유치하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거짓이 없다는 말과 통할 수 있으니까. 예술의 시작은 우리가 흔히, 천하게 이르는 말, '째'가 '멋'으로 변하여 발전한 것입니다.  행의 균형을 맞추어 운율을 골라 봅시다.  길을 걸었네.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네  '걷고 있는데'를 '걸었네'로 압축했습니다. 이렇게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고, 줄일 것은 줄이는 것, 이것이 퇴고입니다. 퇴고는 시에 따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짧은 시는 마음으로 여러 번 낭송해 보면, 곧 고칠 수 있습니다. 아니, 당신의 입으로 직접 낭송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함께 따라 읽을 테니까.  그래도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쉬움이 남지요? 아직 완결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길을 계속 걸으십시오. 이것이 시의 여행. 혼자 걷는 동안, 만나는 대상과 가슴에 밀려오는 생각들이 다음에 이어질 시어와 시구를 마련해 줍니다.  당신은 지금,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가슴에 안겨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들이 노래를 부르지요? 풀꽃들이 웃지요? 그대로 듣고, 그대로 보며 걸으십시오. 그러다 보면, 새도, 풀꽃도, 당신도 사라집니다. 이것이 무아지경.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입니다. 기분이 너무 좋지요?  방금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정리해 봅시다.  새들의 노래를 듣고, 풀꽃들의 웃음을 보며 걸으니, 나마저 사라져 너무 좋았다.  이것을 앞 시구의 운율에 맞춰 다듬어 봅시다.  새들의 노래  풀꽃들의 웃음  나마저 사라져  너무 좋았네.  앞의 시구와 이어 봅시다.  길을 걸었네.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네.  새들의 노래  풀꽃들의 웃음  나마저 사라져  너무 좋았네.  1연과 3연의 '너무'가 동어 반복이지요? 3연의 '너무'를 '더욱'으로 바꿔 옮기면 어떨까요?  길을 걸었네.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네.  새들의 노래  풀꽃들의 웃음  나마저 사라져  더욱 좋았네.  '그대로 보기'를 바탕으로 하여 한 편의 시를 완성했습니다. 표현기교는 영탄법. '너무 좋았네' '더욱 좋았네.'는 시적 자아의 즐거운 마음을 감탄조로 드러낸 것입니다. 표현 방법은 1연과 3연은 당신의 마음을 당신에게 털어놓은 독백적 진술, 2연은 서경적 묘사입니다.  어떻습니까? 짧지만 그런 대로 운율이 맞아 흥이 나지 않습니까? 흥이 나지 않으면 자꾸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다듬어져 운율에 맞을 테니까.  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하나의 이야기도 다듬으면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시는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이 아닙니다. 들판에 있는 누구나 딸 수 있는 과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는 평범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일 뿐입니다.  위에서, 시의 형식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의 형식은 행과 연을 말합니다.  행은 시인의 호흡에 따라 나누어진 시에서의 한 줄, 연은 리듬에 따라, 의미(내용)에 따라, 이미지(심상) 변화에 따라 나누는 시에서의 단락을 말합니다.  형식에 맞추었으면, 다음은 운율을 골라야 합니다. 운율은 시에서의 운과 율을 말합니다. 운은 정해진 위치에 같은 소리나 비슷한 소리가 나는 시어를 배치하는 소리의 규칙성을 말하고, 율은 시어들끼리 어울리는 가락의 규칙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에서는 운보다 율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율(가락)에는 음수율과 음보율이 중심이 됩니다. 음수율은 시어들의 규칙적인 글자수의 어울림을 말하는데 3·4조, 4·4조, 7·5조가 우리나라의 시에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음보율은 시를 낭송할 때, 끊어 읽는 반복적인 가락의 어울림으로 2음보, 3음보, 4음보가 있습니다. 이것을 규칙적으로 지키는 것 외형률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낭송하기가 좋으면 운율이 고른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우리의 정서에 맞는 가락을 익히게 되고, 나름대로의 가락을 가지게 됩니다. 거기에 맞으면 운율이 맞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재율이라고 합니다.  다시 연습을 시작합시다.  * 봄  봄이 왔습니다. 개나리꽃이 웃고 있습니다. 어디에선가 뻐꾸기가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것이 그대로 보기. 당신이 당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당신은 지금, 웃겠습니까, 울겠습니까?  빨리 대답해 보십시오. 시간이 걸리면 빗나갑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당신의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습니다. 이젠, 당신이 처한 상황에 당신의 대답을 섞어 정리해 봅시다.  봄이 와서 개나리는 웃고 있고, 뻐꾸기는 울고 있어서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동어 반복이나 의미의 중복을 피하는 것이 생략의 기본. 생략할 수 있는 것을 생략하여 봅시다.  개나리는 웃고, 뻐꾸기는 울고 있어서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다시 한 번, 다듬어서 정리하여 행을 구분해 봅시다.  개나리는 웃고  뻐꾸기는 울고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봄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개나리는 웃고, 뻐꾸기는 울까요? 그 원인은 당신 가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웃고 싶은 맘과 울고 싶은 맘이 함께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개나리는 웃게 했고, 뻐꾸기는 울게 했습니다. 이것이 감정이입,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인식하는 대상에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표현 방법은 1, 2행은 봄의 풍경을 요약적으로 그려낸 서경적 묘사, 3, 4행은 당신의 마음을 고백한 독백적 진술입니다.  표현기교는 의인법과 대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의인법은 대상 속에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생동감을 주는 비유법, 대조법은 상반된 시구를 대비시켜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강조법입니다.  *이른 아침  이른 아침, 당신은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슬에 몸이 점점 젖어옵니다. 그런데 새들이 자꾸만 울어댑니다.  그렇다면, 새들에게 한 마디 해야겠지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몸이 더 젖기 전에 어서 말해 보십시오.  새들아, 울지 말아라. 벌써, 이슬에 몸이 흠뻑 젖었단다.  행만 구분하면, 시가 됩니다.  새들아, 울지 말아라.  벌써, 이슬에  몸이 흠뻑 젖었단다.  표현기교는 의인법과 돈호법. 돈호법은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불러 정서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표현 기교입니다. 표현 방법은 동조, 참여, 각성을 청하는 권유적 진술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 어젯밤 꿈에 슬픈 꿈을 꾼 모양이군요? 이슬에 몸이 젖고 새소리에 맘이 젖는 걸 보니.  *부엉이  달밤의 숲 속. 부엉이 한 마리가 눈을 부릅뜨고 나무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림 속의 풍경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다음은 상상하기. 상상하기의 열쇠는 질문이지요?  지금, 부엉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이 떠오르지 않으면 부엉이가 되어 '부엉'하고 울어 보십시오. 귀신들마저 천리 밖으로 도망을 칠 테니까. 이제 알았지요, 부엉이가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유가 숲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정리해 봅시다.  달밤에 부엉이가 눈을 부릅뜨고 숲을 지키고 있다.  '달밤'이 배경이고 '부엉이'가 인물이고 '눈을 부릅뜨고 숲을 지키고 있다'가 사건입니다. 시의 형식에 맞추면 금방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옮겨 봅시다.  달밤에 부엉이가  혼자서 눈을 부릅뜨고  숲을 지키고 있다.  낭송해 봅시다. 자연스럽게 읽히지 않지요? 운율이 고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어를 골라야겠지요?  달이 뜨는 밤에는  부엉이 혼자서  숲을 지킨다.  서경적 묘사와 해석적 진술이 하나로 어우러졌지요? 서경적 묘사란 어떤 풍경을 눈에 보이게 그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해석적 진술은 대상에 대한 인식 주체의 이해, 해석, 비판, 판단을 드러낸 진술입니다. 묘사와 진술은 이처럼 하나로 녹아 어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정말, 지금 부엉이는 숲을 지키고 있을까요? 그런데 부엉이를 지켜보고 있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고 있습니까?     28.  제4강 박석구 시인의 시 작법  *오줌  연잎 위에 이슬이 고여 빛을 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호숫가에서 본 풍경입니다.자, 한 번 물어 봅시다. 당신이 당신에게  '이슬이 무엇처럼 빛을 내고 있습니까?'  '구슬처럼.'  다시 한 번 물어 봅시다.  만약, 연잎 위에 오줌이 고인다면, 구슬처럼 빛을 낼까요, 빛을 내지 않을까요?  대답해 보십시오. 모르겠으면, 아무도 모르게 당신이 연잎 위에 오줌을 직접 싸 보십시오. 대답이 생각났다면, 인식하기가 끝났습니다. 다음은 정리하기.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게 정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 이것도 압축입니다.  오줌도 연잎 위에 고이니, 구슬처럼 빛을 내는구나.  '오줌'을 인물, '연잎'을 배경, '구슬처럼 빛을 내는구나'를 사건이라고 생각합시다. '오줌'을 인물이라고 하니 좀 이상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각의 전환입니다. 생각의 전환이야말로 직관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 이것이 상상의 뇌관입니다.  다듬어 봅시다. 매듭을 만들어야겠지요? 매듭을 만든다는 것은 행과 연을 구분하는 것.  오줌도  연잎 위에 고이니  구슬처럼 빛을 내는구나.  서경적 묘사와 해석적 진술이 알맞게 어우러진 시가 되었습니다. 가슴에서 야릇한 웃음이 배어 나오지요? 이것은 풍유법, 대상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서 비꼬아 보는 표현기교입니다.  '오줌'은 보조 관념, 원관념은 뒤에 숨었습니다. 무엇이 숨었을까요? 그리고 '연잎'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연잎'은 '좋은 자리, 높은 자리, 힘있는 자리, 그래서 모두가 앉고 싶은 자리'가 아닐까요? '구슬'은 '가치 있는 것'. 그렇다면, '오줌'은 '사이비' 곧 '빛 좋은 개살구'가 되겠군요. 시어의 속에 숨겨진 의미, 이것이 상징적 의미입니다.  * 단풍  단풍이 빨갛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어디서나 만나는 풍경이지요?  단풍은 어젯밤 무엇을 했기에 저렇게 타오를까요?  화내지 않을 정도로 은근하게 단풍에게 물어 보십시오. 무엇을 상상했기에 은근하게 물어야 되는 걸까요? 짙은 사랑 이야기 하나, 상상했지요? 이젠, 당신의 질문을 다듬어 옮겨 보십시오. 단풍에게 직접 묻는 형식으로 바꾸어 행만 구분하면, 멋진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어젯밤 너는  무엇을 했기에  지금도 그렇게  타고 있느냐.  이런 때는 단풍나무의 대답은 당신의 가슴에 묻어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가 당신의 가슴속을 훔쳐보려 할 테니까.  이것이 여운입니다. 질문만 던져 놓고 답을 하지 않는 것.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 스스로 찾게 하여 독자의 가슴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방법입니다.  여운을 남기는 방법에는 위와 같이 질문만 하고 대답하지 않는 방법과 시구의 한 부분을 생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질문을 하는 방법을 문답법, 시구의 한 부분을 생략하여 여운을 남기는 방법을 생략법이라고 합니다.  표현방법은 대상에 대한 판단을 숨겨 놓은 해석적 진술입니다.  * 잔치  똥 위에서 파리 떼가 윙윙거립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풍경입니다. 이처럼 시의 소재는 어느 곳에든지 널려 있습니다. 질문을 해야겠지요?  지금, 파리들은 똥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상상하여 대답해 보십시오.  잔치.  내용을 정리해 옮겨 봅시다.  똥 위에서 파리들이 온종일 잔치를 벌이고 있구나.  조금만 손질하여 행만 구분하면,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짧은 시, 그러나 너무도 긴 시.  똥 위의 파리 떼들  온종일 잔치를  벌이고 있구나.  '똥'은 무엇을 의미하고, '파리'는 무엇을 나타냅니까? '똥'은 '부정적인 것', '파리'는 '부정적인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파리 떼들에게 습격을 받을지 모르니까?  뭔가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물려주지 않습니까? 가끔은 이렇게 욕을 하며 사는 것이 삶이 아닙니까? 욕도 멋지게 하면 시가 될 수 있습니다.  표현 방법은 눈에 비친 풍경을 빗대어 드러낸 서경적 묘사와 대상에 대한 비판을 드러낸 해석적 진술이 어우러졌습니다. 표현기교는 풍유법과 영탄법입니다. 풍유는 원관념(어떤 대상이나 의미)을 완전히 뒤에 숨기고, 보조관념(다른 대상)만으로 숨겨진 본래의 의미(어떤 대상이나 의미)를 암시하는 비유입니다. 특징은 비판성, 교훈성, 풍자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대상을 비꼬아 놓았지요? 이것이 풍자성입니다.  이런 것이 시냐고요? 그렇습니다. 이런 것도 시입니다. 시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것은 특별한 것처럼 행동하는 시인들일 뿐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것, 생각되는 것을 다듬어서 옮기면, 그것이 시입니다. 그리고 시는 특별해지고자 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마음, 우리의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 휘파람  바람이 불어옵니다.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나무가 흔들립니다. 휘파람 소리가 납니다.  지금, 휘파람을 부는 것은 나무입니까? 바람입니까?  답을 알았다면, 인식하기가 끝납니다. 정리해 봅시다. 정리할 때는 소설의 구성 3요소를 인물, 사건, 배경을 가슴에 새기며 정리해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나무들이 몸을 흔들며 휘파람을 분다.  문장 성분의 위치를 바꿔 시의 옷을 입혀 봅시다. 문장 성분의 위치를 바꾸는 것, 이것도 퇴고의 한 방법입니다.  바람이 부니  나무들이 휘파람을 분다.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표현기교는 의인법, 표현방법은 서경적 묘사와 해석적 진술이 하나로 어우러졌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나무는 휘파람을 붑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불안하지요? 휘파람과 먹구름은 서로 상대적인 시어입니다. 휘파람은 긍정적 의미로, 먹구름은 부정적 의미로 쓰였습니다. 두 시어 중, 어느 시어가 전체의 분위기에 영향을 줄까요? 먹구름이지요? 왜, 그럴까요? 마음속으로 소리나지 않게 읊어 보십시오. 그러면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시어가 긍정적으로 쓰였느냐, 부정적으로 쓰였느냐에 따라 그 시의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시를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어의 쓰임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시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희망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나무처럼 휘파람을 부는 놈이 있으면, 그놈에게 쑥떡이나 하나 먹여줍시다.  표현기교는 의인법과 도치법, 표현방법은 독백적 진술입니다. 의인법은 대상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비유법, 도치법은 문장 성분의 순서를 바꾸어 시적 여운을 남기는 강조법입니다.  의인법을 잘 활용하면,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깁니다. 모든 대상을 의인화해 보십시오. 거기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당신의 가슴에 안겨 와 다정히 속삭일 것입니다.  그리고 도치법도 잘 활용하면, 멋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평범한 문장이라도 문장 순서만 바꾸면, 멋진 시구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그럼, '꽃이 피려고 하는데, 비가 오는구나.'를 '비가 오는구나, 꽃이 피려하는데'로 바꾸어 읽어봅시다. 느낌이 다르지요? 이것이 도치법이 주는 잔잔한 감동입니다.  * 허수아비. 1  바람이 붑니다. 허수아비가 논 가운데 홀로 서서 흔들립니다. 새떼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가을 들판의 풍경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허수아비는 논 가운데 홀로 서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필요한 것은 생각의 전환이라고 했습니다. 허수아비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답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당신의 머리 속이 아니라 가슴속에 있습니다. 답이 생각났으면, 정리하여 봅시다.  바람이 부는데, 허수아비 혼자서 새떼들을 쫓고 있다.  다듬어 봅시다.  바람이 부는데  허수아비 혼자서  새떼를 쫓고 있네.  * 지금쯤 허수아비는 들판에서 땀을 펄펄 흘리고 있을 겁니다. 그놈 덕에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사는 것이 아닐까요?  표현기교는 의인법, 표현방법은 서경적 묘사와 해석적 진술의 조화. 시어를 한번 되씹어 볼까요? 되씹어 본다는 것은 시어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것. '허수아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허수아비가 아닌 다른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요? 이것이 상징적 의미입니다. 겉에 드러난 시어의 의미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찾아보는 것, 이것이 시의 감칠맛입니다.  * 생각해 봅시다. 지금도 자기의 일터에서 땀을 펄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슬픈 이야기지만, 바로 그분들이 허수아비가 아닐까요?  * 그림자  당신은 깡말랐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그림자도 깡말랐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당신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자, 상상의 날개를 펴 당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겨울이 와 옷을 껴입으면, 당신의 그림자는 어떻게 될까요?  당신의 대답을 당신의 질문과 섞어 정리해 옮겨 봅시다. 현재시제의 문장으로 다듬어야 현장감이 있겠지요?  겨울이 와 옷을 껴입었는데도, 내 그림자는 나처럼 여전히 깡말랐다.  다시 다듬어 형식에 맞추어 봅시다.  겨울이 와  옷을 껴입었는데도  내 그림자는  여전히 깡말랐구나.  당신의 그림자는 어떤 빛깔입니까? 부처님과 예수님의 그림자는 금빛. 이젠 알겠지요, 당신 그림자의 빛깔을? 검은빛이나 회색빛이겠지요? 그렇다면 '그림자'가 머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깡마른 당신의 그림자'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당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아닐까요?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에 속아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한, 우리들의 어릿광대 같은 몸짓이 그림자가 아닐까요?  동물원에 갇혀 사는 호랑이에게 가 물어 보십시오, 가죽을 남기기 위해 죽겠느냐고. 그래서 우리도 이름을 남기기 위해 지금 당장이라도 죽어야 하느냐고.           시어(詩語)  1   [Ⅰ]:시어(詩語) '詩는 문학의 정수(精髓)'니, '詩는 문학의 꽃'이니 하는 말을 우리는 자주 하고 듣습니다.  그 까닭은 시가 가장 짧은 형태 안에 앞으로 우리가 함께 공부해 나갈 '시(詩)의 요소(要素)'인 언어·운율[리듬]·이미지·비유·상징 등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시 공부를 하거나 '시 짓기'를 하거나 할 때, 우리가 진실로 알아야 할 것들은 시의 기원이나 시의 정의나 시론이나 시의 분류가 아니라 바로 이제부터 공부할 시의 요소들이지요. 이 시의 요소들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시 공부입니다.  그럼 제6강에서는 시에 씌어지는 언어인 시어(詩語)부터 우리 공부를 시작해 볼까요?  1. 시어(詩語)란 무엇인가?  그럼 시의 요소 중의 하나인 이 시어란 무엇일까요?  골치부터 아퍼 오지요?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쉽게 쉽게 넘어갈 테니까요.  간단하게 말해서 시어란 '시에 쓰이는 언어', '시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럼 '시에 쓰이는 언어가 따로 있단 말인가?'라고 의아해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생활하면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쓰는 말들을 시에서 쓰면 그것이 시어가 되는 것이지요. 뭐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그런데 소위 유식한 분들은 거창하게 '시는 고도의 언어 예술'이므로 '시어란 시에 동원되는 특별한 낱말과 어귀'란 뜻으로 해석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들과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이래서야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감히 시 근처에나 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시의 독자들이 자꾸 줄어들지요.  그리고 요즘 보세요. 어떤 시인들이 이렇게 어렵게 시어를 의식하면서 시를 짓고 있나요? 요즘 시인들은 어떤 시어든지 자기의 시상(詩想)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언어라고 생각되면 그 시어를 가져다 쓰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지저분한 부분이나 거슬리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긴 합니다만 제 시 제가 그리 쓰겠다는 데 누가 뭐랄 수 있겠습니까?  하긴 옛날에는 동서양 구분 없이 시어에는 일반적인 언어와는 달리 어떤 우아함이나 고상함, 또는 장중함 같은 느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에 쓰이는 언어인 시어에서 고어(古語)나 아어(雅語) 등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때로는 별도의 성구(成句) 등도 즐겨 사용해 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영국의 T.그레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보통의 언어가 필요에 의해서 특수화되면서 거리가 생겼다. 이것이 바로 시어인데 라틴어의 완곡한 표현체인 고어체를 고쳐 놓은 것이다.'라고 한 데서도 입증되고 있지요.  그러나 워즈워드는 그의 '서정시집'의 서문에서 시의 감동적인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들은 시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요. 결국 워즈워드에 의하면 산문의 언어와 시의 언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럼 우리가 시와 산문을 읽으면서 그 언어의 차이를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공부할 기회가 오겠지만 우선 여기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비유나 상징 등으로 인하여 시어가 지니게 되는 언어의 특수한 기능 때문이라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합시다. 아직은 더 깊이 들어가면 시에 대해서 情이 뚝 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2. 시어(詩語)의 함축적(含蓄的) 의미(意味)에 대하여  제목만 봐도 한자가 많아 한글 세대들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지요?  그럼 이야기나 한 자루 하며 좀 쉬어 갑시다.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김 삿갓 난고 김병연의 시 한 수 볼까요?  月白雪白天地白 (월백설백천지백)  [달도 희고 눈도 희니 천지가 희고]  山深水深客愁深 (산심수심객수심)  [산도 깊고 물도 깊어 객수도 깊구나]  이 얼마나 간결하게 쉬운 글자들로만 시를 지었으면서도 달빛 희게 부서지는 깊은 산 속에서 눈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나그네의 심정을 이리 잘 표현했을까요?  이런 것이 시입니다.  유식한 한학자들이 딱딱하고 어려운 한자들로만 지은 어려운 한시들보다야 이 시가 얼마나 쉽게 우리의 가슴을 때립니까? 그럼 한 수 더 살펴볼까요?     시어(詩語)(2)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망할 놈의 집에서 쉰 밥을 주는구나]  人間豈有七十事(인간개유칠십사)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것가]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내 집에 돌아가 선 밥 먹음만 못하구나]  이 시는 김 삿갓이 한문 숫자풀이를 이용하여 함경도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 받은 나그네의 심정을 완곡하게 풍자적으로 읊은 것입니다.  여기서 이십수(二十樹)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스무나무를, 삼십객(三十客)의 삼십(三十)은 '서른'이니 '서러운'의 뜻으로 써서 삼십객(三十客)은 '서러운 나그네'를, 사십가(四十家)의 사십(四十)은 '마흔'이니 '망할'의 뜻으로 써서 사십가(四十家)는 '망할 (놈의) 집'의 뜻을, 오십식(五十食)의 오십(五十)은 '쉰'(상한)이니 오십식(五十食)은 '쉰 밥'을, 칠십사(七十事)의 칠십(七十)은 '일흔'이니 '이런'의 뜻으로 써서 칠십사(七十事)는 '이런 일'의 뜻을, 삼십식(三十食)에서는 삼십(三十)의 '서른'을 '미숙한, 선'의 뜻으로 써서 삼십식(三十食)은 '설익은 밥', 즉 '선 밥'의 뜻으로 노래한 시이지요. 그 기지와 풍자가 놀랄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한문 숫자인 '二十, 三十, 四十, 五十, 七十, 三十'은 모두 그 숫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의미 이외에 또 하나의 다른 뜻을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지요.  이런 것을 두고 시어의 이중성이라 하는데, 하나의 시어가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시어는 하나의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둘 또는 셋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시어와 산문의 언어가 다르게 느껴지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에서 그것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서 화담, 박연 폭포와 더불어 송도 삼절로 불리고 있는 황진이의 시조를 살펴볼까요?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이 시조에서 '벽계수(碧溪水)'는 '푸른 계곡 물'인 동시에 왕실 종친이었던 '벽계수'를, '명월(明月)'은 '밝은 달'과 황진이 자신의 기생 이름인 '명월'을 동시에 뜻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여기서도 보는 바와 같이 시어가 지니는 이러한 이중성은 바로 시어에 함축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시에서 '푸른 계곡 물'과 '밝은 달'의 의미는 사전에 나오는 뜻풀이로서 이런 것을 '사전적 의미'라 하고, '벽계수'와 '명월'처럼 이 시 속에서만 중의적으로 그 뜻을 지니는 시어의 의미를 '함축적 의미'라고 하지요.  내 설명이 어렵습니까?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내 실력이 이 정도뿐이니 다른 방법이 없군요.  그럼 하나만 더 살펴볼까요?  '장미'가 시어로 씌어졌다고 할 때, 그것이 '관상용 식물인 장미과의 낙엽 관목'을 나타내는 시어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사전적 의미'로 쓰인 것이요, 만일 '사랑하는 이에 대한 나의 정열적 사랑'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함축적 의미'로 쓰인 것이지요.  이제 시어의 '함축적 의미'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기로 합시다.  3. 시인(詩人)과 시어(詩語)  이제 시인과 시어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합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에 사용된 언어는 모두 시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구요?  같은 대상을 두고 두 사람이 시라고 썼는데 한 사람의 작품은 시가 되고 한 사람의 작품은 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의 시냐 아니냐의 가름은 두 사람이 사용한 시어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어를 썼다 하더라도 그 시어가 적확하게 제자리를 잡아 앉았느냐도 문제가 되고 그 대상을 표현하는데 그 시어가 최선의 시어였느냐 아니냐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시인 개인의 시적 역량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시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기존의 언어 관념을 뛰어넘어서 독자로 하여금 폭넓은 상상력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한 편의 시 속에서 그 시의 내용과 긴밀한 관계를 지니면서 시어 하나 하나가 표현하려는 사물이나 대상의 본질, 또는 이미지를 확대시켜 우리에게 간명하게 전달해 줄 수 있어야만 한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시어로 시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시인의 몫이지요.  그래서 시인에게 시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여기서 여러분도 잘 아시는 김수영의 '풀'을 한 번 볼까요?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가 나오기까지 풀은 세상에 흔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일 뿐이었지요. 그러나 1960년대 말 김수영 시인에 의해서 억압받으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서서 불의에 맞서 항거하는 '민중(民衆)', '민초(民草)'의 상징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풀'은 김수영 시인의 '풀'로 태어나 모두의 '풀'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 사용된 '풀'이 바로 시어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춘수 시인이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김춘수 시인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듯이 시인은 시어의 의미를 확대 재발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 나의 애송시를 찾아 그 시에 나오는 시어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비유의 효과  비유는 우리가 외출할 때 아름답게 화장을 하듯 글을 아름답게 꾸미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을 닦아서 인간 자체를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계 기구의 활용법을 잘 알아야 그것들을 이용하기 쉽듯이 비유의 진정한 힘과 효과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비유는 무엇입니까?  아마 오늘까지 강의를 들으셔서, 쉽게 설명하긴 어렵더라도 마음 속으로는 이 것이다고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물, 상황, 세계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  즉 추상적이고 불투명한 관념까지를 가장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지름길 입니다.  이제 우리가 학문적으로 다루니까 그렇지 시가 아니고도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도 얼마나 많은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눈이 작은 사람보다 간재미 같은 눈, 단추구멍 같은 눈이라 한다던지,  꾀꼬리의 목소리라 하는 것, 바람처럼 사라지다라는 영화제목, 아마 말의 종류만큼 많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도 비유라는 말이 있는데 그 구절 말고도 수많은 비유로 사람들을 알으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뿐 아니고 다른 종교의 경전들도 그렇다하니,  비유는 우리에게 보다 알아먹기 좋게 하는 표현의 방법이라 할 수 있겠 습니다.  불교의 초기 경전 가운데 그 형식의 대부분이 시적 형식을 취한 의 한 구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물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 번 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성경도 비유문학이라 할 정도로 비유가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의 곁에 있어 쉽게 접할 수 있으므로 여기에 일일이 예를 들지 않으니 여러분께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위의 비유는 무엇일까요?  어떠한 집착이나 망상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창조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불교의 가르침이 비유를 통해 간결하고도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유는 아주 장황스러운 설교조의 말보다 휠씬 호소력이 있습니다.  그 것은 비유를 통해 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그 뜻을 함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교회에 가면 목사님들의 설교도 그렇구요.  티비에 나오는 유명 강사들의 강의도 마찬가지인데요.  모두 다 좋은 비유를 통해 청중들이 쉽게 알아먹게 하려고 애 쓰는 것을 역력히 알 수 있지요.  그렇듯 시 역시 시인의 통찰력과 인지력, 그리고 시인의 정신이 생동하는 언어로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비유는 시 세계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면서 독자들을 시인의 세계 속으로 흡인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유의 힘  시인이 의도하는대로 비유가 시 속에서 강력히 힘을 발휘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한 기능과 에너지가 최대한 살아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좋은 비유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집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비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드러내줍니다.  비유에 의해 사물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과 세계를 확대 심화시켜 나감으로 우리의 인습과  고정관념의 무지와 타성에서 벗어나게 한다고까지 말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시가 지니는 리얼리티(사실성)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볼 수가 있겠지요.  둘째)  좋은 비유는 시인의 독창적이고 구체적인 인식을 쉽게 가시화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권대웅님의 을 한 번 읽어보시지요.  술취한 아버지 대낮에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어딜 그렇게 올라 가세요.  낙엽 긁어 모으며 바람 불면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 계곡  녹슨 세월의 송전탑  숨은 아들 대답하지 않는데  되돌아오는 메아리만 가슴을 태우는 山  자꾸 뭐하러 올라가세요  그게 아니다 애야 그런게 아니라고  붉은 손 흔들어 길 막는 너도밤나무  온통 아픈 울음 가득 토해내도  아버지 넘어지며 자꾸 넘어지며.....  아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는 비유이지요.  술 취해 발갛게 달아오른 아버지의 얼굴로 가을 산을 비유했습니다.  왜 이 시가 좋은 시가 되냐하면요.  우리는 보통 가을 산이라하는 시를 쓰거나 내용에 가을 산이 들어가게 되면, 불타오르는 산, 불꽃 같은 산, 열정, 열애 등  을 금방 떠 올리거나 그렇게 표현하기 쉽지만은 이 시인의 독창적인 눈으로는  아주 색다른 비유로 아버지의 술 취한 얼굴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 것도 술에 취해 대낮에도 벌겋게 달아오른 아버지, 울면서도 자꾸만 넘어지는 아버지의 슬픈 초상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를 읽으시면서 아들이 아무리 붙잡아도 자꾸만 높은 산으로 올라가시는 세월의 산을 느끼시지 않습니까?  늙어가시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정이 생기지 않습 니까?  셋째)  좋은 비유는 풍부한 시적 의미를 암시해주는 것입니다.  비유는 어떤 모양일까요? 그 것은 하나의 점이나 선일까요?  평면이나 어떤 도면 같은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비유는 입체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다양해집니다.  우리는 장님과 코끼리에 대한 비유를 잘 아십니다.  보이지는 않고 코끼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코를 만진 사람,  다리를 만진 사람, 꼬리나 배를 만진 사람의 코끼리에 대한 설명이 다 다를 수 밖에 없듯이  독자들이 그 시를 읽는 상황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양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시가 일단 발표되면 이젠 독자의 몫이 된다고 늘 강조하는 것은  나의 해석과 다른 사람의 해석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성복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짐승, 별, 내 손가락 끝  뜨겁게 타오르는 정적  외로운 사람들이 따 모으는 꽃씨  외로운 사람들의 죽음  순간과 머나먼 곳,  異邦(이방)의 말이 고요하게 시작됩니다  당신의 살같 밑으로 大地(대지)는 흐릅니다  당신이 나타나면 한 개의 물고기 비늘처럼  무지개 그으며 내가 떨어질 테지만.  좀 어려운 시이네요.그러나 분석해보지요.  여기서 원관념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입니다.  그 원관념에 대한 보조 관념이 '짐승', '별', '정적'.'꽃씨',  '정적', '죽음','순간','머나먼 곳','내 손가락 끝' 등 여러가지이지요.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의 동일성에 대해서는 작가의 의도를 우리가 짐작해 볼 수 밖에 없지만  이 시에서는 당신이란 원관념에 대해 다양한 보조관념으로 전이시키면서 '당신'의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결합하는 보조관념의 대상들까 지도 하나의 의미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비유는 우리에게 정서적 충격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정서적 충격을 주지 않는 시는 좋은 시가 아니지요.  시를 읽어서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는 시라면 그 것은 죽은 시 아니겠어요?  요즘은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실험적인 경향이 있어 현재의 시경향을 해체시켜버리려는 의도도 있고요.  감동보다는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효용론에 입각한 주장도 있지만 저는 일단 시는 감동을 주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좋은 비유로 쓴 시는 마치 수문을 열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 우리의 감동이, 정서가 밀려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대흠의 이라는 시의 전문을 읽겠습니다.  다섯째)  좋은 비유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힘이 있습니다.  성원근님의 전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밤에  눈물이 많았던 누군가  목선을 타고  바다로 간 것일까?  풀잎마다 가득  바람을 먹고 있는  돛자락들.  이 시에 대한 조태일님의 해설을 옮겨봅니다  "우리가 '이슬'이라는 대상을 생각할 때 맑고 투명한 것, 영롱하게 빛나는 것을 떠올린다.  그런데 위 시에서는 이 '이슬' 에서 '돛자락'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돛'은 바람을 받아 배를 가게하기 위하여 돛대에 높게 펼쳐 매단 넓은 천인데,  이슬을 돛자락에 비유함으로 예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광활하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이슬에서 발견하게 된다.  마치 푸른 바다의 한 가운데서 펄럭이는 흰 돛자락인 양 '이슬'이 한없이 크고 넓게 느껴지기 조차 한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좋은 비유는 시적 대상을 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내는 힘이 있습니다.  역시 시를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이동주님의 전문입니다.  고정희, 김남주 시인의 고향인 해남이 고향이신  이동주님의 시로 해남 대흥사 입구에 시비로 서있습니다.  다음에 해남 대흥사에 가시는 분들은 주차장 앞에 이 시  비를 보시면 강의를 받던 기억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여울에 몰린 은어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레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프가 감긴다.  열두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  달빛 아래에서 열심히 강강술래를 돌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르지요?  그들을 여울에 몰린 은어떼로 비유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발상입니까?  달빛에 비추인 가녀린 팔목들을 여린 삐비꽃의 하얀 속살로 비유한 것이라던지,  강강술래의 원을 하늘에 떠 있는 달무리로 비유하는 것이라든지 하는 비유들은  훨씬 더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특질을 선명하게 드러내줍니다.  또한 '뇌누리에 테프가 감긴다'나 '열두발 상모가 돈다'나 '기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등의 비유는 춤을 추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듯 할 뿐만 아니라  그 춤의 역동성을 잘 나타내주어 독자로 하여금 절정감을 실감나게 해줍니다.  좋은 비유가 얼마나 시를 살려주는가 위의 여러 예들로 잘 아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시를 쓸 때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대로 옮겨 표현할 것이 아니라  이런 비유를 독창적인 것으로 창조해 표현 한다면 여러분들도 분명 좋은 시를 쓰시게 될 것입니다.  좋은 비유와 죽은 비유에 대해서는 대충 이해하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시가 아니고도  우리가 보통 잘 쓰는 죽은 비유를 몇 개 더 들어볼테니 여러분도 더 찾아보시고,  이런류의 죽은 비유를 시에 사용하시면 안되겠습니다.  -사랑의 불꽃, 교통 전쟁, 입시 지옥, 증권 파동, 무거운 침묵, 달콤한 말, 자연의 숨결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이런 은유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처음엔 아주 멋진 표현이며 살아있는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듯 은유는 언어를 새로 창조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 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시인은 언어의 창조자가 되겠 지요.     죽은 비유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지요.  우리는 이 죽은 비유를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개와 같은 인생", "세월은 유수와 같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네", " 쏜살 같은 세월"," 샛별 같은 "눈동자". "앵두 같은 입술", "백옥 같은 살결". "목석 같은  사내", "여자는 여우",남자는 늑대", "여자는 갈대""쟁반 같은 달", "사랑은 불꽃" "토끼 같은 아이들", 등은 이미 죽은 비유입니다.  이러한 비유들은 이미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습관화되고 상투화되었기 때문에  사물과 세계의 의미를 새롭게 보여주지 못합니다.  시에서는 이런 자동화된 비유, 죽은 비유를 멀리하고 배척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두진의 전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날의  아픈 피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靜寂(정적)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湖心(호심)아  조태일님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위 시에 나타나 있는 '꽃'의 모습을 보자.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 정열, 사랑, 황홀 등 자동적, 관습적으로 받아들였던 꽃의 모습이 아니다.  시인의 눈에 의하여 발견된 '속삭임', '울음', '핏방울', '정적', '호심' 등의 비유는  우리가 예전에 체험하지 못했던 꽃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의미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이 때 솟아나는 정서적 충격과 황홀한 경이감이 우리들의 삶의 지평을 확대 시키고 타성에 빠진 우리들의 시각을 깨뜨리게 한다."  그러면 이런 결과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 것은 당연히 시인이 관습적이고 자동화된 죽은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살아 있는 비유를 사용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박인환님의 을 싣습니다. 좋은 시 올리는 것들은 모두 전문(全文)입니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길을 걷고 살면 무엇하랴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눈매를 닮은  한마리의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엇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에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담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잊혀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홍윤숙님의 를 읽겠습니다.  눈 내리는 길로 오라  눈을 맞으며 오라  눈 속에서 눈처럼 하얗게 일어서 오라  얼어서 오는 너를 먼 길에 맞으면  어쩔까 나는 향기로이 타오르는 눈 속의 청솔가지  스무 살 적 미열로 물드는 귀를  한 자쯤 눈 쌓이고, 쌓인 눈 밭에  아름드리 해 뜨는 진솔길로 오라  눈 위에 눈같이 쌓인 해를 밟고 오라  해 속에 박힌 까만 꽃씨처럼  오는 너를 맞으면  어쩔까 나는 아질아질 붉어지는 눈밭의 진달래  석달 열흘 숨겨운 말도 울컥 터지고  오다가다 어디선가 만날 것 같은  설레는 눈길 위에 늙어온 꿈  삼십 년 그 거리에  바람은 청청히 젊기만 하고  눈밭은 따뜻이 쌓이기만 하고  이미경님의   유달산 외곽도로 따라 갔더니  잎 지는 나무들 서 있었네  아침 안개 속에 서 있었네  나 상수리 나무 옆에 섰네  딸이여 안녕  당신도 안녕  깃털처럼 드디어 무게도 버리고  상수리 나무 한 잎으로  바스러지고 싶었네  유달산 외곽도로  외길 따라 갔더니  바다 있었네  비단 치마폭 바람에 살랑이듯  그렇게 있었네  나 목선 옆에 누웠네  효부도  현모양처도  그리고 매력을 꿈꾸던  내 여성도  신발 옆에 나란히 나란히  벗어놓고 가라앉고 싶었네  머리도 가지런히 눕고 싶었네     시와 비유(比喩)-비유법을 알면 시를 절반은 쓴것  아마, 학창 시절에 배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고등학교에서 배울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드립니다.  비유법을 알면 시를 절반은 쓰신겁니다.  우선 김준오님의 『詩論』에서 비유에 관한 것들을 찾아보기로 하지요.  국내에 시론이 아주 많이 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장사에서 나온 『시론』이 제일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  1)동일성의 원리  시인들은 어떤 묘사를 위해서만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비교에 의해서 관념들을 표현하고 전달합니다.  쉽게 말하면 이 비교가 비유적 언어, 즉 비유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룩스와 와렌의 이론이 아니고도, 비유가 일종의 비교인 이유는 반드시 이질적 두 사물의 결합 양식이기 때문이지요.  수사적 용어를 사용하면 원관념(元觀念)과 보조관념의 결합을 말하는데요.  지난 시간에 이미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란 용어를 사용한 바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 지칭하는 용어가 다르거든요. 원관념을 주지(主旨),  본의(本義), 취의(趣意), 주상(主想), tener, primary meaning,으로  보조관념은 매체(媒體),유의(喩意), vihicle,secondary meaning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원관념은 비유(되는)이미지 또는 의미제이고 보조관념은 비유하는 이미지 곧 재료제입니다.  이 때 원관념과 보조관념은 의 매개어로 결합되거나  (이와 같은 비유를 직유라 합니다), 의 형태로 결합됩니다.  다시말하면 비유의 근거는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 또는 연 속성에 있습니다.  즉 두 사물의 동일성에 의하여 비유가 성립됩니다.  이쯤 이론 무장이 되셨으니 이제부터 하는 강의는 더욱 알아먹기 쉬우실 것입니다.  2)비유(比喩)는 시 창작의 원리  시인은 비유를 통해서 시인이 발견하고 창조한 의미나 진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시적 공간에 형성해놓기 때문에 비유는 수사적 기교나 장식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시 창작의 원리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비유는 시인의 상상력과 직관에서 나옵니다. 스파크처럼 빛나는 불꽃입니다.  이 비유의 빛이 사물에 가 닿을 때 사물은 감추어져 있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들에게 경이감과 충격을 주게 됩니다.  조태일님 같은 분들은 비유를 모르는 시인은 결코 참다운 시인이 아니며,  비유 없는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주 극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이겠지요.  그래서 시인을 판단할 때는 그가 사용한 비유의 힘과 그 독창성에 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 비유의 종류 비유에는 우선 직유,은유, 환유, 제유, 의인화, 풍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는 비유적 이미지를 설명할 때 이미 말씀드  렸습니다만, 여기에선 보다 세밀하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1)직유  직유는 말 그대로 직접적인 비유를 말합니다. 특별히 유사하지  않은 사물들을 ~같이,~처럼,~듯,~보다 등의 연결단어를 통하  여 직접 비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직유의 특성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표면에 그대로 드러남으  로서 원관념의 구체성을 얻게 합니다. '목소리'라는 원관념과  '은방울'이라는 보조관념이 위에 열거한 연결단어에 의해  "은방울 같은 목소리"라는 직유의 모습을 띄우면서 '목소리'가  은방울과 같은 소리를 낸다는 구체성을 얻습니다.  여기에서 보조관념은 자기의 특질이나 속성을 그대로 지니  면서 원관념의 의미나 특징, 성격, 모습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  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직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얼마간의 유사  성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유의 형태가 단순하기 때  문에 독자로 하여금 고도의 상상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많이 요구해야 좋은 시인 것으로 볼때  직유는 은유에 뒤떨어진 비유의 방법입니다.  또한 지난 시간 연속 말씀 드렸지만, 죽은 비유는 결코 써서는  안되며, 참신성이 있고 신선한 비유를 써야 합니다.  고미경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내 몸의 깊은 안 쪽에는  허리선이 버선볼 같은 강 하나 살고 있네  그 강물 속 맑기가  가을 햇빛 같아야만,  그 강물 속내가  어린 것에게 젖물린 어미 같아야만,  그대 전체!  나에게 살포시 보여주는데  강물의 한 끝을 닦아오는 사이  허리선이 버선볼 같은 강둑에는  들꽃들 하나 둘 찾아와 서로 사랑하더니,  철철이 아기꽃들이 태어나더니,  강물은  들꽃 향기로  들꽃 그림자로 흐르네.  위의 시에서 직유의 표현을 한 번 지적해보십시오.  원관념은 '강'이 되겠구요, 보조 관념은 '버선볼'  이 되겠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강물'을 원관념 '가을 햇빛'과  '어린 것에게 젖물린 어미'를 보조관념으로 보는  직유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인의 시각은 결코 흔하지 않은  개성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가벼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시를 쓸 때 이렇듯 개성적인 시각으로 사물들을  포착하고 그 것들의 동일성을 발견해냄으로서 살아있는  좋은 비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2)은유  최문자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시적 미학  은 새로운 인식과 시적 사유에서 탄생한다. 시가 사실을  사실대로 사진 찍듯 찍어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 시가  만물의 존재와 본질을 건설하는 일이나, 철저히 사회적인  것을 철저히 개인적으로 읽는 따위의 현란한 우리 문학 풍  토에서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없다." 라고 말합니다.  즉 시가 어떤 사실을 그대로 복사하듯 표현한다는 것은  다분히 비창조적이고 다만 개인적인 푸념이나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비시라는 것  입니다.  은유도 그 구조가 직유처럼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되어  있으나, 직유의 ~처럼, ~같은,~ 듯이 와 같은 매개어가 없  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이런 매개어가 없기 때문에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하여도 비유는 숨은 형태로 나타  나며, 여기에서 나타나는 의미도 또한 직유와 다릅니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서로 충돌하듯 결합하고 이 때 일어  나는 상호작용은 물리적 반응이 아닌 화학적 반응을 함으  로서 전혀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유란 말을 메타포(metaphor)란 영어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의미의 전이(轉移) 즉 의미의 자리  옮김이란 뜻이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는 뜻이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은유를 가리켜 "어떤 사물에다 전혀 다른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이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는  metaphor가 meta(초월)와 phora(옮김)에서 나온 것을 보면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이러한 은유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의미는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인 사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이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보면 은유에 대해" 이 것만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징"이라고 말 할  정도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김광섭님의 전문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여 白鳥(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이 시에서 마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시적이고 구체적  인 수단을 통해 구상화 하였습니다. 아주 흔한 은유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물은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낙엽 한 장이 떨어지거나 물방개 한 마리만 지나가도 작은  파문이 입니다. 여기에 바람이 불거나 돌을 던지면 아주  커다란 파문이 일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물은 늘 제 원상을  회복하려는 성질이 또한 있게 마련입니다. 그 표면이 잔잔  하고 고요해지려는 것이 물의 특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것이구요. 우리가 '세파'  란 말을 많이 쓰는데 이는 인생을 물결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 시에서는 온갖 일에 흔들리기 쉬운 마음도 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해지기를 원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조태일님의 해설을 들어보겠습니다.  " 위 시에 나타나는 은유는 원관념인 '마음'과 보조관념인  '물결'이 각기 이질적인 대상이지만 앞에서 살펴본 유사성  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마음과 물결이 서로  충동하듯 결합함으로써 이 두 대상을 각기 떼어놓고 보았  을 때와는 다른 긴장감과 탄력성은 물론이거니와 불투명하  고 모호한 '마음'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며 관념에서 벗  어나 투명한 육체성까지 형성하게 된다"  오늘 은유에 대해서 공부를 하셔서 아시겠지만, 조태일님  의 말도 다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에 밑바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은유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게 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어서 시를 살아나게 함을  잘 알아두셔야 합니다.  좋은 시는 얼마나 좋은 은유로 구성되어 있는 시인가의  차이일 것입니다.  여기 시 몇 편을 소개해드리니, 그 시들의 은유가 어떻게  살아있는가 여러분들 스스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고은님의 을 읽어보겠습니다.  죽은 그대 이 세상에 두고 사는 일이  내 일입니다.  어느 날은 그릇 깨어지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고욤나무 열매 떨어지면서  내가 사는 일입니다.  죽은 그대 섬겨서  나와 함께 긴 겨우살이 사는 일이  내 일입니다.  어제 눈이 내렸습니다.  그대를 내 가슴에 두고 먼 데까지 부르니  그대가 열두어 살 단발머리로 달려왔습니다.  그대와 함께 살며  어제와 오늘 눈이 내립니다.  이것이 내 일입니다.  아니 여러 사람의 일입니다.  죽은 그대라는 그리움 하나가 나라입니다.  다음은 강은교님의 입니다.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와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배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血)를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 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다음엔 『문예연구』2001, 가을호에 실린 조말선(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님의 를 읽어보겠습니다.  내 낯바닥에 내가 방사하는 눈물 내 길바닥에 내가 방료하  는 열두 시 내 손바닥에 내가 방목하는 손금 나는 또 다시  내 눈물 속으로 돌아간다 누가 전원을 내려주기만 한다면  이 엘리베이터가 허공에서 멈출텐데 매 분 매 초 절정일텐데  나는 또 다시 내 손금 속으로 돌아간다 내 심장에 내가 투석  하는 혈액 돌아오고 돌아오는 현관 내 혓바닥에 내가 굴린 말  마지막으로 허형만 교수님의 를 올립니다.  슬픔 하나가 향로 속에서 더는 타지 않기 위해 차라리  무너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일곱 시간 만에 도착했다는  문상객이 머리와 외투에 덮인 하이얀 시간의 비늘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말년에 무일푼이셨던 아버지는 슬픔 하나 유산으로 남  기셨다 빛났던 날들 눈처럼 쌓였다가 서서히 얼어붙으니  그래 머쟎아 녹아 흐르리라 흘러흘러 저승 바다 넘치면  끝내 이승의 내 발목을 적시리라       제목 : 수사법 총정리   비유법(比喩法)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를 곧바로 말하지 않고, 그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현상이나 사실을 끌어대어 표현하는 법.  1. 직유법(直喩法)   등의 말이 뒤따르거나, 따위의 말을 앞에 놓아 또는 하는 식의 비유.  ·꽃 같이 아름다운 소녀  ·보름달 같은 얼굴  ·유수(流水) 같은 세월  ·푸른 하늘이 홑이불처럼 이 골목을 덮어……  ·먹물을 끼얹은 듯 검은 하늘에……  ·묵은 역사처럼 밤이 내리면, 나의 밤은 가라앉은 잠수함     처럼 고요하다.  · 인생은 배우와 같다.  · 물 퍼붓듯 쏟아지는 비……  ·소마냥 느린 걸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다.  ·정자의 얼굴이 달덩이같이 피었다.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      꽃 : 비유의 대상 - '보조 관념'     미인 : 말하려는 사실. '원관념'     꽃과 미인에는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 '아름다움'  * - (×)    2. 은유법(隱喩法)   가 아니라, 와 같이 비유하는 말과 비유되는 말을 동일한 것으로 단언하듯 표현하는 법.  ·인생은 나그네다.  ·소년은 나라의 꽃이다.(소년〓꽃)  ·호수는 커다란 비취, 물 담은 하늘  ·내 마음은 호수.  ·간디는 인도 국민에게 빛을 준 큰 별이었다.  ·백설의 피부, 밤의 장막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  ·계절의 여왕 오월의 여신(女神)이여 !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보라.  3. 의인법(擬人法) 사람 아닌 동물이나 자연을 사람인 듯 표현하는 법  ·매미가 하품을 한다.    ·굽어보는 달님  ·성난 파도                ·오월 햇빛 아래 얼굴을 붉히고 다소곳이 머리 숙인 다     알리아꽃  ·부끄러움을 가득 안은 아카시아꽃  ·갈가에서 가는 목들을 갸우뚱거리며 웃는 코스모스  ·아침 이슬을 머금고 나팔꽃이 방긋 웃고 있다.  ·꽃이 방긋 웃고, 버들이 손짓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4. 활유법(活喩法) 생명 없는 것을 생명이 있는 것처럼 비유하는 법.  ·소리 지르며 달리는 냇물  ·숨이 차 헐떡이면서 비단길을 기어오르는 증기 기관차  ·청산(靑山)이 훨훨 깃을 친다.  ·파도가 울부짖는다.  ·들이 가슴을 열었다.        5. 의태법(擬態法)     사물의 모양과 짓을 그대로 시늉하여 표현하는 법.    의태어(擬態語)를 쓴다. 〓 시자법(示姿法)      ·말랑말랑한 손      ·매끈매끈한 살결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다.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어물어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해는 뉘엿뉘엿 지고……      ·확 풍겨 오는 향기……      ·토실토실한 손등      ·노루가 껑충껑충 뛰어 달아난다.  6. 의성법(擬聲法)     자연계의 소리, 인간 또는 동물의 소리를 그대로 본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법.     ·학교 종이 땡땡 친다.     ·멍멍 개야 짖지 말고, 꼬꼬 닭아 울지 마라.     ·찌르릉찌르릉 비켜나세요.     ·"만세! 만세! 대한 민국 만세!"     ·뻐꾹새 뻐꾹, 까마귀 꼴깍, 비둘기 꾹꾹     ·흐흐히 히애애, 도깨비가 나타날 것만 같다.     ·바람이 윙윙 부는 밤     ·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우지끈뚝딱하고 났다.  7. 풍유법(諷喩法)   원관념을 완전히 숨기고, 비유하는 보조 관념만 나타내되, 교훈적·풍자적이어야 한다.    속담은 모두 여기에 속한다. 엉뚱한 말 속에 참뜻을 담아 본뜻을 추측하게 한다. 〓우유법(寓喩法)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 못나 보인다고 업신여기면 안된다.    ·산에 가야 범을 잡는다.               → 큰일을 하려면 어려움을 무릅써야 한다.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 일엔 뜻이 없고 분량만 재려 한다.     ·꿀 먹은 벙어리요, 침 먹은 지네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 이야기 전체가 풍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예)   8. 대유법(代喩法)   (1) 제유법(提喩法) : 한 부분을 가지고 그 사물 전체를                    나타내는 법                ·빵만으론 살 수 없다 : 빵 → 식량, 식생활        ·사육신 :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 개, 하위지, 유성원        ·무슨 약주 드셨습니까? : 약주 → 모든 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들 → 조국  (2) 환유법(換喩法)    하나의 사물을 다른 명칭을 들어   비유하는 법        ·별 → 장군          ·강태공 → 낚시꾼        ·태극기(한국)가 일장기(일본)를 눌렀다.        ·무궁화 삼천리 → 대한 민국        ·바지 저고리 → 촌사람        ·밤 손님 → 도둑        ·상아탑 → 대학교  9. 중의법(重義法)     한 말에 두 가지 이상의 뜻을 포함시켜 표현하는 법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왜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 벽계수 → 시냇물, 사람 이름          명월 → 달, 황진이  10. 상징법(象徵法)     비유이면서도 좀처럼 원관념을 찾아내기 힘든 표현. 추상적인 것(무형)을 구체적 사물(유형)로 암시하는 법    ·십자가 → 희생    ·비둘기 → 평화    ·낙락장송 → 절개  ·매화 → 우국 지사  * 은유법은 원관념, 보조 관념이 다 표현되지만, 상징법은  보조 관념만 나타난다.     예를 들면, 미인을 표현하는 데도 여러 방법이 있다.  ·그녀는 꽃 같이 아름답다.  (직유)  ·순이는 한떨기 백합꽃이다. (은유)  ·그녀가 들어오니, 방 안이 꽃밭이 된다. (상징)   강조법(强調法) 문장의 인상을 강하게 만드는 표현법. 감정보다는 의미상의 강조가 주가 되는 방식이다.  1. 과장법(誇張法)    실제보다 훨씬 크게 또는 작게 표현하는 법.    ·하늘에 닿은 수풀     ·밴댕이만한 소갈머리    ·간이 콩알 만해졌다.   ·눈물의 홍수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  ·쥐꼬리만한 월급    ·하루를 천추(千秋)같이 기다린다.(一日如三秋)                                         (직유, 과장)    ·백발 삼천 척       ·주먹만한 대추(직유, 과장)    ·바늘 귀만한 소견(직유, 과장)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만큼이나 힘들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    ·하늘을 찌르는 높은 산    ·노도(怒濤) 같은 진격    * 말만한 개(과장) ― 늑대만한 개(보통 표현)  2. 영탄법(嘆法)    기쁨, 슬픔, 놀라움, 무서움 따위의 감정을 높이는 방법.    감탄사, 감탄형 어미를 주로 쓰지만, 때로는 의문형을 쓰기도 한다.    ·아 ! 아름다운 하늘이여 !    ·오, 이거 얼마만인가 ?    ·어즈버, 태평 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    ·슬프다, 붓을 놓고 통곡하고 싶구나 !    ·어이할꺼나,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    ·저주받은 인생이여 !    ·그리움마저 얼어붙은 가슴인가?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  3. 반복법(反復法)    같거나 비슷한 말을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법.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멀고 먼 나라        ·깊고 깊은 바다  ·자자 손손           ·우불탕 구불탕한 길  ·솟아라, 고운 해야 솟아라.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정 도령님아.  ·쉬어 가자, 벗이여, 쉬어서 가자.  ·눈물로 적시고 또 적시어도.          4. 점층법(漸層法)    어구(語句)의 의미를 점차로 강하게, 크게, 깊게, 높게 함으로써 그 뜻이나 가락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방법.     ·내 이웃에서 시작하여 내 마을, 내 고장, 내 나라, 아니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한다.     ·가족은 사회에,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열 사람을 당한다. 열은 백을 당하고, 백은 천을 당하며, 천은 만        을 당하리라.  5. 점강법(漸降法)    뜻을 점차로 여리게, 작게, 얕게, 낮게 벌여 나가는 법.      ·책보만한 해가 손바닥만해졌다.      ·만 원이 안 되면 천 원이라도, 천 원이 안 되면 백 원, 그것도 안 되면 십 원도 좋다.  6. 대조법(對照法)    서로 상반되는 사물을 맞세워 그 중 하나를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법. 한 구절의 말뿐 아니라, 한 작품 전체에도 쓰일 수 있다.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      ·앉아 주고, 서서 받는다.      ·얕은 내도 깊게 건너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강물이 푸르니 새 더욱 희고, 산이 퍼러니 꽃빛이        불붙는 듯하도다.      * 선(善)과 악(惡), 미(美)와 추(醜), 충(忠)과 간(奸)                                     → 작품 전체  7. 미화법(美化法)    좀 과장되게, 아름답게 표현하는 법.      ·이슬은 가을 예술의 주옥편(珠玉篇)이다.      ·화장실(化粧室) ← 변소      ·거리의 천사 ← 거지      ·부처님 가운데 토막 ← 착한 사람      ·양상 군자(梁上君子) ← 도둑      ·꽃마음 ← 아름다운 마음  8. 열거법(列擧法)  비슷한 말귀나 내용적으로 관계 있는 말귀를 늘어놓는 법.           ·유적(遺蹟)의 도시, 역사의 도시, 명승의 도시……     ·푸른 하늘과 바다와 들과 산.     ·이것들은 그가 자라난 흙과, 하늘과, 기후를 말하지   않는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9. 억양법(抑揚法)    우선 누르고 추켜 주거나, 추켜 세운 후 눌러 버리는 법        ·얼굴은 곱지만, 마음씨가 고약하다.       ·그는 마음은 좋지만, 행실이 나쁘다.       ·그는 좀 모자라지만, 사람은 착하다.       * 일종의 대조법(對照法)이라 할 수 있다.  10. 현재법(現在法)     과거나 미래형으로 쓸 말을 현재형으로 나타내는 법.       ·검찰, 깡패 소탕에 나서다.       ·1919년 3월 1일, 삼일운동 일어나다.       ·이 도령은 춘향 앞에 섰다. 춘향은 얼굴을 붉히고         돌아선다.       ·머리 딴 계집애가 이리저리 옮아 다니며 주물렀다.          그리고는 깩깩 소리를 지르며 엄살을 한다.……비위          가 거슬려 돌아누웠다.  11. 비교법(比較法)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개념의 비슷한 것을 비교시키는 법.      ·여름 바다도 좋지만, 가을 단풍이 더 좋다.      ·달이 쟁반보다도 크다.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같은 말의 되풀이는 반복법, 비슷한 말을 늘어놓으면   열거법, 앞 말의 꼬리를 따면 연쇄법, 정반대의 뜻을 가     진 말을 맞세우면 대조법, 비슷한 것을 비교시키면 비교     법이 된다.  12. 연쇄법(連鎖法)     앞 말의 꼬리를 따서 그 다음 말의 머리에 놓아 표현하는법     ·고향, 고향은 가을의 동화를 들려 준다.     ·고인(故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어도 녀던 길 앞에 있네.       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녀고 어떨꼬.  13. 명령법(命令法)     격한 감정으로 명령하는 법. 일부러 명령하는 형식으로 나타내는 법이다.    ·꼭 이기고 돌아오라 ! 조국의 명예를 걸고 건투하라 !    ·젊은이여, 기회는 한번뿐, 놓치지 말라.    ·힘차게 약동하라.  14. 돈강법(頓降法)     절정에서 갑자기 속도를 뚝 떨어지게 하는 법,      ·단편소설의 대단원 처리  변화법(變化法)     단조로운 문장에 변화를 주어 주의를 높이려는 법.  1. 도치법(倒置法)     문법상, 논리상으로 순서를 바꿔 놓는 법.     ·가자, 나를 부르는 고향으로.     ·그는 머뭇거렸다, 처음으로.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바보야, 넌 !"     ·"뭐라 하느냐, 남의 앞에서……"  2. 인용법(引用法)    남의 말이나 격언, 명언을 따다가 인용하는 법.  (1) 직접 인용(明引法)     따옴표 등의 표시로 선명히 인용이 드러나는 법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 있다.      ·선생님께서 "숙제를 게을리하는 학생에게는 꼭 벌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으니 어찌 나아가 구하지 않        을 것이랴.  (2) 간접 인용(暗引法)       따옴표 등이 없이 문장 속에 숨어 있게 표현하는 법.       ·아버지께서는 늘 게으른 사람은 꼭 고생을 하게           마련이라고 말씀하신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더니, 네 뒷집에서 일어난         일을 몰라?      * 인용법에는 반드시 "     " 또는 '    ' 또는 …라         고, …하고, …고 등의 조사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3. 설의법(設疑法)    서술로 해도 좋은 것을 의문형으로 나타내는 법. 답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 치의 국토라도 외적에게 빼앗길 수 있겠는가?      ·이래도 거리에 사람이 없다 하겠느냐?      ·저런 사람도 애국자라 할 수 있겠는가?  4. 대구법(對句法)    가락이 비슷한 글귀를 짝지어 나란히 놓아 흥취를 높이려는 법.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지혜 있는 자는 생각하고, 의로운 자는 행하고 어진자는 지킨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려라.     * 대조법은 뜻이나 내용이 대조(반대)를 이루는 데 반해 대구법은 내용은 같건 말건 가락이 비슷한 점만을       노리는 것이다.  5. 경구법(警句法)     기발한 글귀를 씀으로써 자극을 주는 법. 이가발한 말 속에는 진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속담, 격언 등은 이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방귀 뀐 놈이 성 낸다(賊反荷杖)      ·아이 자라 어른 된다.                (아이라고 너무 욱박지르지 말라)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모름을 모른다고 함이 참으로 앎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    * 의미상으로는 경구법에 해당하는 것이 표현 양식으로     는 풍유법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6. 반어법(反語法)    표면의 말과는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법.    ·너 오늘 또 칭찬 받을 일을 했더구나.                            ← 꾸중 들을 짓을 하다    ·그놈 참 얄밉게도 생겼다. ← 예쁘다    ·규칙도 모르는 사람이 심판을 했으니, 판정이 오죽이나 공정했겠소? ← 공정치 못했다.    ·과연 날씨가 좋군요. ← 눈보라 치는 날    ·어쩌면 마음씨도 그리 비단결 같은지(심술꾼에게)    ·나 말이야, 미칠 정도로 행복해서 그래. ← 비참함    ·무식한 제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 다 알고 있다.    * 반어법에는 풍자가 있다.      ·그 우람하신 허리 하며, 굉장한 미인이시던걸.      ·무식한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7. 역설법(逆說法)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어긋난 것처럼 보이면서도 그 속에 진리가 담겨 있게 표현하는 법.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    ·만세 불렀다. ← 모든 게 실패로 끝났다.    ·손님 들었다. ← 도둑 들었다.  8. 문답법(問答法)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형식.    ·그러면 학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앞으로 사회에 나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왜 왔는가?  이야기 하기 위해 왔다.  9. 비약법(飛躍法)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던 글을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바꾸거나, 하던 이야기를 갑자기 중단하는 법,  ·보기도 싫다는 듯이 돌아 앉아서 빈정대고 고집만 부리    던 아버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며,     "여보 ! 손님이 오셨는데 밖에 세워 두는 법이 어디 있소? 건넌방으로 모시고, 고구마나 삶아요."(비약)  ·인생이란 따지고 보면 다 그런 걸세. 이제 그만 가세."                                                (중단)  10. 생략법(省略法)     어떤 말이 없어도 뜻의 내용이 오히려 간결해져서 함축과 여운을 지니게 하는 법.    '……'로 된 것도 생략법의 일종이다.  ·모든 것을 잊고 싶어졌다고……  ·나래에 가을을 싣고 맴돌다 문득 고향.                     ('생각이 난다'를 줄임)  ·"아버지, 나 돈.('좀 줘요'를 줄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하는 여러분에게                           이승하(시인. 중앙대 문창과 교수)  1) 한 작품에 많은 사연을 담지 말것. 한 편의 시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정서든 이미지든 하나여야 하고, 다른 모티프들은 그것이 뿜는 자장(磁場)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이때 시는 통일성을 얻는다.  2) 비유와 상징을 아낄 것. 비유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 아껴야 오롯한 품위를 갖는다. 상징은 시인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숨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3) 긴 시를 경계할 것. 시의 참된 맛은 행간에 있다. 행간에는 침묵의 언어와 정서의 긴장이 깃들여 있다. 긴 시는 행간을 매립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4) 시상을 풀어가는 수단으로써, 분명하게 몸으로 감촉할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할 것. 불투명한 관념이나 감정을 시 비슷한 문법으로 채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것  5) 정서의 결을 잘 다듬을 것. 몇 번의 침전과정을 거친 그리움이라면 슬픔 따위가 개운하게 세척된 상태라야 한다. 물기가 없이 잘 마른 상태라면 더욱 좋다.  6) 구문이 거추장스러운 것, 관형구나 부사구가 무거운 것은 금기다. 줄기가 가지를 지탱하기 어렵다. 관형어나 부사어가 상쾌하게 오려진 문장은 조촐하고 산뜻하다.  7) 시로 삶의 각성이나 잠언적인 의도를 노출시키지 말것. 시는 철학이 아니라 미학이다.  [시안] 2002년 봄호에 실린 글을 축약해둔다. 시를 쓰면서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일들을 찬찬하게 지적해주었다. 두고 읽을만 하다.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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