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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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노를 저어라 댓글:  조회:3711  추천:0  2016-10-15
                                                       노를 저어라.                                                           최 균 선       인생이 고해라함은 무슨 뜻일가? 대답이 묘연하고 진부한 우문이다. 우문일지라도 아예 묻지 않는것보다는 현명하리라. 눈을 감고 밤길을 가는것보다 두눈을 크게 뜨고 발길을 가늠하는 사람은 쉬이 곤두박질하지 않듯이 말이다. 인생은 불만족속에서 상대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원래 불충분한 전제에서 충분한 결론을 찾아낸다는것은 분명 살아가는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요 보람이다.      현재의 불평에 너무 애를 끓이지 말고 무중생유라는 말을 열심히 외워보자. 세상이 전부 긍정적인것만도 아니듯이 죄다 부정적인것도 아니다. 다만 내마음의 느낌이 이렇게 저렇게 금을 그을뿐이다. 즐거움은 잠간이요 슬픔은 지리멸렬하다. 인성이 모여사는 이 세상이지만 행은 빌어와야 하고 불행은 남아돈다. 그것이 인생현장이다. 기쁨은 이따금 잠간 들렸다 가는 떠돌이지만 고통은 지꿎은 빚쟁이 같다.     기쁨은 잠자리 날개같이 잠간 머금었던 미소마저 거두어버린다. 그대 즐거움만 찾으려면 스스로 빚어가는 괴로움부터 마음의 문밖에서 막아나설 아량을 키우시라. 욕망의 지팽이에 혼신을 걸고 휘청이는 인생길은 힘겨운 법이요 자기 허영의 그림자에 스스로 쫓기는 삶은 고달픈 삶일 수밖에 없다.     인생은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거늘 오지도 않은 래일을 두고 공연한 걱정을 쌓지 말라. 그것은 래일의 근심을 덜어주는것이 아니라 오늘 가지고있는 용기마저 앗아간다. 운명은 항거할수 없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홍매(洪邁)의《용재수필 (容齋隨筆) 三·人當知足》“기안분지족지의 종신불투(其安分知足之意 終身不渝) 라는 구절이 있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하는 뜻을 평생 바꾸지 않는다는 뜻일게다.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이 성격을 낳고 성격은 운명을 낳는다는 말은 그저 명언이 아니라 인생좌표이다. 우리가 소비하는것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것이 시간인줄 알면서도 별아쉬움없이 랑비를 거듭하는것도 인간이다. 가장 큰죄는 자기 생명을 랑비한 죄. 큰불행은 자기생애의 마지막에서도 후회의 한숨으로 숨을 거두는 사람일것이다. 인생의 노대가 썩게 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저을수밖에,     련습삼아 비바람 몰아치는 인간세상에 왔다가는 인간이기를 원하는 자가 누구냐?세월은 그저 저혼자 흘러가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싣고간다. 자기 인생마당에 무엇인가 가득 쌓으려면 땀으로 짓이긴 시간의 벽돌장을 쌓으라. 일하라, 일하는것이 보람으로 느껴질 때 고달픈 인생도 때따라 즐거움이 찾아든다. 자기가 하는 일이 울며겨자먹기라면 당신은 한평생 생활의 노예로 살수밖에 없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는데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변명하지 말라. 이제라도 찾으라. 찾음에는 얻음이 있는법이다. 시작하지 않는것보다 늦게나마 하는것이 낫다. 그러나 공연히 팔소매를 거두고 두 손바닥에 침을 뱉으며 허장성세하지는 말라. 강을 건널생각이 없는데 바지가랭이부터 거두는 준비는 준비가 아니라 무모한 헛짓이다.     최정상에는 오를수 있으나 그곳에 오래 머물수는 없다. 그러나 꿈을 꾸라. 그게 백일몽일지라도, 미몽은 쉬이 오지 않고 오면 쉬이 깨지기 마련이지만 꿈을 꾸는 동안만은 신나는 일이다. 자기만의 꿈자락을 꼭잡고 있는다면 반드시 실현된다고 말할수는 없더라도 마음의 하늘에 희망은 무지개처럼 높이 걸려있을것이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진리는 모든것이 변한다는것이다. 삼라만상,인생만사는 변화의 경계선에 있다. 별볼일 없이 평범하게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삶일지라도 언제나  새출발점이지 마지막역이 아니다. 인생의 고개길엔 구비도 많고 구비마다 발부리를 걸채일 돌멩이도 많은법이다. 넘어질가봐 길을 못떠나는 바보는 별로없다. 설겆이를 하다가 접시를 깨는것은 실수일수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패는 병가지상사라는 거창한 비유를 할것도 없지만 골짜기가 없는 높은 산을 당신은 본적이 있는가? 골짜기에 들어서서야 산봉우리가 높은줄 더욱 절감하리라. 한두번 실패우에 영영 주저앉지 말라. 잘못을 범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 기가 한 일이 잘 되였는지 어쩐지 평생을 두고 모를것이다.     잘못의 옛터우에 새시작의 집을 짓는다면 갑절 더 잘해낼수 있다는것을 기쁘게 느낄것이다. 그것은 성공과 손을 잡는 때이다. 그때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것이 급선무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데 남이 어찌 나에게 신임을 얹을것이랴, 운명은 뜻이 있는자를 희망의 대로로 안내하지만 뜻이 없는 자를 질질 끌고 오솔길로만 다닌다.     희랍신화에서 제우스신이 동물을 만들때 곰과 코끼리에게는 억센 힘을 주고 토끼와 사슴에게는 빠른 속력을 주었고 물고기에게는 지느러미를 주었고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으므로 매우 서운하게 생각하였는데 나중에 물으니 생각하는 슬기와 사랑을 주어서 인간이 만물의 령장이 된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에머슨은 인간이란 그 사람이 생각하고있는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라셀은 인간은 자기가 생각한대로의 인간이 된다고 했다. 당신을 건강한자나 병자, 불행한자나 행복한자, 혹은 부자나 빈자로 만드는 모든것은 오로지 당신의 마음속에 그려지고 부지런한 두손으로 실천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생각하는 갈대가 되라고 권장했다. 아무튼 생각 하는 인간, 행동하는 인간, 생각한 다음 일을 시작하고 시작한 다음 내내 결말까지 생각하라. 뜻대로 되지 않는게 인생의 속성이다. 그러니 운명이 당신을 위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지마라. 그대가 자기 인생을 위해 어떤 의미를 창조해 나갈것인가를 오히려 인생쪽에서 당신에게 묻고있다.     눈을 감아라.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일것이라는 말은 눈을 감고 사색하는 인간이 되여 마음의 눈으로 요지경같은 이 세상을 투시하라는 말이다. 그 모든 유혹은 알락달락하지만 무작정 유혹의 등에 업힌다면 내팽겨치는 곳은 어김없이 천길나락이 아니면 련옥의 진구렁텅이다. 바람새 세찬데 고요히 서있을 나무가 어데있으랴고 구실을 찾지 말라. 그리고 주변이 모두 진흙이니 자기도 깨끗해질래야 깨끗해 질수 없다고 구시렁거리지도 말라. 그것은 스스로 자초한 후회가 엮어대는 서글픈 변명이다. 련꽃은 진흙속에서 나고 꽃피워도 청초하기만 하지 않던가,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있는지 한번 들판에 나가보라. 하찮게 보았던 들꽃 한포기가 씨앗을 틔우고  잎이 무성해지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퍼뜨리고 가을이 되면 남은 잎과 줄기, 뿌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대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는 생명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터득할수 있을것이다.        인생은 등산과도 같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해야 할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의미가 결과에 있다기보다 그 과정에 있다는 철학상식이요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인생의 십자로에 내걸린 선전구호이다. 오랜 직업적 관찰에 의하면 떠나야 할 시점에 제발로 떠나지 못하면 나중에 초라한 모습으로 질질 떠밀려가기 십상이다.     죽은 물고기는 시름없이 떠내려가지면 산물고기는 세찬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느라 안깐힘을 쓴다. 자기 생활의 쪽배를 흐르는 물결에 맡겨버리면 언제 기슭에 닿을지 모른다. 노를 젓는 힘겨움이 자기를 살린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어엿차, 노를 저어라. 인생고해의 격류속에 가라앉지 않으려면 노를 저어라. 노를 놓아버린 사람에게는 어느곳에도 희망의 대안이 없다.                                             2010. 5월 13 일           (연변일보 2016년 7월 1일자)
771    (진언수상록 45)치사한 오만과 극악한 배타성 댓글:  조회:3966  추천:0  2016-10-08
                                               치사한 오만과 극악한 배타성                                                                진 언       단언하건대 인간처럼 육체적으로는 연약하면서도 정신적으로 턱없이 오만한 동물은 없다. 우주비행선을 타고 달나라에 갔다오거나 화성탐측을 한다거나 하는것을 보면 인간지혜가 극치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단한 인간도 하찮은 벌레나 모기에 물려 고통받고 때로는 이것들이 옮기는 전염병에 걸려 생명을 잃기도하는 약세군체이기도 하여 오만성에 반하여 많은것이 위험대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문명을 이루었지만 한편 작은것에도 또한 약한 모습이 드러나있다. 이것은 상대성원리에 속한 문제이다.     문명개화의 첫발을 내디딘이래 스스로 만물의 령장으로 군림하여 가지가지 특기할만한 기록을 남기고있다. 오만한 지배자 인간은 개조, 정복, 개발의 외투를 걸치고 지구를 말벌둥지로 만들었고 창망한 우주공간까지 잡동사니 쓰레기퇴적장을 만들어버렸다. 46억년에 달한다는 지구력사에 비해 인류문명사는 순간에 불과하다. 주림을 말리기위한 수단으로 다른 동물을 잡아먹다가 나중엔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동 물을 해치고 악어의 눈물같은 자비로 동물보호법도 만들어서 가지고 놀고있다.      덜떨어진 인간, 연약함과는 반상적이게 오만한 인간, 책임질줄 모르고 자성할줄 모르는 인간은 기특하면서도 가련한 존재이기도 하다. 원시적인 수렵생활에서 인간은  함께 살아갈수 있었지만 농경이 시작된후 흉년이면 굶어죽거나 이웃에게서 빼앗았다. 전쟁을 하고 노예를 만들어냈다. 다른 종족을 공격, 살륙한 인간은 잔인 그 자체이다. 우리는 문명이 잘못되였다고 말해서는 안되지만 언제 한번이라도 절대의 선(善)앞에 서 악을 선행시키지 않은 시기가 있었던가?     이러한 인간군에서도 악의 근원인 인종을 꼽으라면 우선 민주와 박애정신을 표방하고있는 미국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것이다. 미국력사에서 가장 반인류적이고 가장 참혹한 인간비극은 아메리카 토착민족인 인디안인들의 토지략탈과 비인간적 도살로부터 시작되였다. 1800년대 중반부터는 아메리카대륙을 장악한 미국에 의해 대대 적인 인디아인들에 대한 도살이 감행됐다.     이 도살은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살아움직이는 전체 인디안을 전멸시키기 위해서였다. 결국 1890년대에는 미국내에서 95%나 되는 인디안인이 학살되고 근근히 25만명이 살아남았다. 미국은 인디안인들이 보유했던 토지를 거의다 빼앗고 겨우 2.5 %의 척박한 토지만을 살아남은 5%의 인디안인들에게 “인디안보호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주었다. 기실 허울좋은 보호구역은 미국식대동물원과 다를것없다.     마치 인류가 자연계에서 자유롭게 살던 동물들을 죽이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감상하는것처럼 인디안인들은 “야만족”이라 불리는 동물에 불과했던것이다. 최종적으로 “보호구역”에 수용(감금)된 인디안인들에게는 정신적통제와 때때로 육체적고문까지 자행되였고 이들 대다수는 렬악한 환경속에서 단백질결핍과 의약품의 부족으로 고통받았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동족학살의 피빛기억을 애써 잊고 “문명한 보호구역”안에서 길들여진 가축처럼 만족해 하며 살아야 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력사가 잔악하지 않은적은 단한번도 없었지만 아메리카 토착원주민들에 대한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제국주의와 이후 미제국주의에 의 한 인디안인학살은 독일파시즘의 유태인학살보다도 수십배 끔찍하고 잔악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도살에는 총과칼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됐으며 심지어는 병원균으로 전염 병을 전파시켜 대량살상하는 방식도 자행되였다.     두번째 비극은 흑인노예장사로부터 시작되였다. 미국의 흑인노예력사를 감추고 미국력사를 론할나위조차 없다. 미국의 력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502년 최초의 아프 리카흑인들이 히스파니올라호에 실려 미주대륙에 끌려왔고 1619년 버지니아 제임스 타운에 도착하면서 그들의 기나길고 끔찍한 악몽은 시작되였다. 그들은 두사람씩 쇠사슬에 묶여 닭장같은 좁은 공간에 갇하워 험난한 항해끝에 미국남부지방 대농장에 끌려와서 살인적인 강제노동과 반인륜적인 학대로 혹사당했다.     남북전쟁이전 그들의 몸값은 노새한마리 값이였다. 쇠사슬에 묶인 노예들이 시장에서 팔려갈 때 이빨이 튼튼한지 해머로 두드려 보면서 값을 흥정했다. 노예들은 백인들의 가축이나 다름없었던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작가 알렉스 헤이리가 쓴 장편소설《뿌리》에 너무 생동하게 묘사되여있는데 단순히 소설적 힘으로서 세계를 진동시켰다기보다 그 참혹한 력사사실 자체였다.     미국의 큰명절이라는 “추수감사절”의 력사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도살한 백인들의 피의 향연이다. 소위 “신성한” 날 그네들은 인디안인학살을 굉장하게 경축하기 위해 칠면조를 학살한단다. 학살된 원혼들이 아니라 침략자, 략탈자, 지배자, 탐욕자, 걸신들린자, 식민지략탈자, 도둑놈, 살인광이였던 선조들에 감사한다. 침략과 학살, 허위, 포장, 표방이 미국인원초의 인성이다.《전쟁을 위한 기도》에서 자신이 성공 하고 승리하기를 소망하고 감사하는것은 상대방이 패배하고 죽기를 소망하고 감사하는것과 같은것이라고 말한 마크 트웨인이야말로 인간량심의 대표자라 할것이다.     200여년 세월이 흘렀지만 살인마들의 오만한 횡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다른 민족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극도의 미국식오만성과 배타주의를 집요하게 추광 하고있는것이다. 각국에서의 민족평등을 요란하게 떠벌리는 미국은 녕악스러운 선조들이 저지른 피의력사에 아닌보살하고있다. 그런데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아직도 무슨 세계평화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 쯤 되는 "아름다운 나라"로 생각하며 원인은 묵살하고 현상에만 침흘리고있다. 이 얼마나 지독한 편견이고 가련한 굴종인가?     중동에서의 이스라엘의 온갖 횡포무도에는 늘 눈감아주며 무슨 정당성을 뇌까린다. 미제야말로 원칙이요 평화요, 국제질서요 하며 당나발을 불어대지만 약소국들의 자원략탈을 포장하고있다. 이 지구촌에서 미국만이“옳고그름”을 판단할수 있다는 이것이 바로 미국식 편견이고 오만이다. 미국 혹은 백인들만이 온 누리에서 가장 뛰 여난 인종들로서 그외는 열등민족, 렬등국가라는 "오리엔탈리 즘(서방우월주의, 동양 렬등주의)"에 도취되여 힘의 론리, 강권의 패덕을 공공연하게 과시하고 있는것이다.     일제의 오만과 배타성은 어떠한가? 조선반도를 점령하고 기탄없이 자원을 략탈해 가고도 성차지 않아 중국대륙을 진공함으로써 도처에서 반인류죄를 감행하지 않았던 가? 그자들의 조선민족말살정책은 치사한 오만의 소치였고 소위 “3광정책”은 배타성 의 광란이였다. 그자들의 남경대도살은 중국인에 대한 대화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한낱 물종으로 취급하며 기탄없이 강간, 방화, 살륙하였던것이다.     승냥이는 결코 양으로 진화되지 않는다. 오늘날 일본정부의 군국주의부활의 광대극을 보라. 아베정권은 헌법해석상 금지되여있는 집단적자위권 행사와 관련, 올가을 자위권행사 용인을 표명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고 마이니치(每日)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집단적자위권행사의 구체적범위를 둘러싼 론의도 가속화되고있다,     집단적자위권은 일본이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이 공격받았다는 리유로 타국에 반격할수 있는 권리를 가리킨다. 지금 다시 준동하고있는 일본렬도의 이리떼를 세계의 정의의 눈길들이 주시하고 있는가? 주시하던들 아메리카 사자를 앞세우고 다시 덮칠 기회를 노리는 이리떼들이 주춤하기나 할가? 그옛날 사무라이의 오만과 섬족속의 타고난 배타성이 기광부리고있는데…                                              2012년 2월 13일 ㅡ2013년 8월 1일  
770    등산의 미학 댓글:  조회:3461  추천:0  2016-10-03
                                                           등산의 미학                                                                   최 균 선      언제부터인가 일종의 문화생활로 류행된 등산이다, 류행에 좇아 매일처럼 같은 산을 오르는것은 등산이라기보다는 소풍이라 하는게 격에 맞을것이다. 험한봉에 올라야 등산다운 등산일게다. 진정 등산은 산정을 정복하는것이 목적이라지만 땀내나는 매 한발자국은 자기를 이겨가는 과정이 될때 더욱 의미로운것이리라.     사이좋게 산상에 오르는 길에는 등수를 따질필요가 없다. 먼저 정상에서 큰소리내는 사람이나 조금 뒤처져 숨을 몰아쉬는 사람이나 결국 산정에 동일한 작은 점들에 불과하건만 먼저 축복받은 사람들과 후에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등산의 험한길 동경하지만 더 쉽게 힘들이지 않고 산정에 오르려한다면 아이러니라 하겠다. 등산자로 말하면 아무리 험한 봉이든 오르고야말겠다는 마음이 가상하고 정상에 오르려고 땀을 쏟는 모습이 열심스러워 보기좋은것이다.     산은 하나의 교실이다. 높낮이를 비기지 않고 자리다툼 하지 않으며 의좋게 들어선 심산계곡의 여러가지 나무들과 잡풀들과 산꽃들에서 밀치고 밀리우며 찡내는 인간군체속에서는 자기 리익이 시비기준으로 되고있다는 황당함을 새삼스레 절감하게 될것이다. 정상에 올랐다고 으쓱하는 어깨들을 문득 낮추어야 하겠다는 마음도 저도 모르게 가지게 될것이고 산에 올라보니 하늘 높은줄 알겠고 깊은 골짜기에 들어서니 땅이 두터운줄 알겠다는 선인들의 절창을 다시 새겨보게 될것이다.     산에는 산의 미학이 있다. 례컨대 장백산은 오를수록 숲이 성긴것은 산의 분별있는 배치이다. 나무는 여유있게 마음껏 가지를 뻗으면서 넉넉하게 살줄안다. 허나 비옥한 산기슭애 나무들이 빼빽이 들어사는 모습은 마치 대도회의 빌딩숲을 방불케 한다. 숲이 성긴모양은 인간세상에 상층일수록 삶의 공간이 넓어지고 여유로운것과는 별개이다. 이 지구촌에 산이 살아있어야 인류가 살아남는다는 도리를 콩크리트벽짬에서 물질문명을 향수하다가 마침내 뒤늦게 깨달은것이다.     깊은 밀림에는 여러가지 수종의 나무들이 다투지 않고 잘들 산다. 인간은 밀집형삶을 선호하지만 나무들처럼 너나없이 화해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있다. 산에 오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서 산의 마음을 읽었다고 할수 없다. 면면한 산봉들은 억겁을 어깨겯고 살면서 산봉은 기슭을 비웃지 않고 큰바위는 작은돌멩이를 깔보지 않는다. 산우에 산이 있어 더 높은곳에 오르고 싶어하는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산은 하나의 군체이다. 산은 산마다 천태만상으로서 자기 풍격이 있고 기질은 같지만 인간의 본질과는 벌써 다르다. 아아한 산봉은 하늘을 찌른다고 표현하지만 산은 하늘 꿰뚫으려는 야심이 없다. 원래 그렇게 태여났을뿐이다. 산의 선택을 우리 보통사람들은 터득할수 없다,     그래서 산의 그 모습이 억천년을 두고 내리 우리에게 귀감이 되여진것이 아니랴, 산의 기질, 산의 품성, 산의 혼을 알고저 한다면 그리고 진정 등산의 희열을 느끼려면 자기 두발로 험한봉에 오르시라. 깊은 골짜기가 있기에 고산준령이 솟아음을 느끼게 될것이다.     현대인들은 순수의 자연에 기갈이 들고나서야 대자연과의 대화를 갈구하며 산이 더없이 친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잘 다듬어진 산길을 따라 삼삼오오 오르는 군상은 희희락락하지만 자연과의 진솔한 대화는 잘 안된다. 여럿이 하는 대화는 의론이지 대화가 아니다. 근거리 야산에 오를때면 가벼운 발걸음과 즐거운 마음이 동반되지만 심심산속을 홀로 걸으면 무서움이 앞서고 걸음이 무겁다. 결국 산을 좋아한다는 인간의 마음이 유모아를 엮고있다는 반증이 된다.     산을 먹고 살던 초창기의 인류, 그 끝없는 번식과 더불어 산은 점점 여위여갔고 마침내 희생을 강요당하다가 오늘은 나머지마저 구경거리와 놀이터로 되였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아니, 닿을수 없는 곳에 산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산이요 대자연의 기념탑이다. 그러네 산을 짓뭉개고나서 뒤늦게야 산을 즐긴다고 산을 찾는 인간은 육신에 병들어서야 산의 존재가 소중함을 절감한다.     자연이 좋다고 자연을 찾지만 자연의 순수함을 닮아보려는 가슴들은 몇몇일가? 산은 끝까지 인류의 리용물로서 존재의 가치가 있는것이다. 진정 “속세”의  리기와 인간군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혼자 깊은 산속에 들어가 보라. 오구작작 모여서 옥신각신하던 문명문화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것이고 인간이 그리워질지 모른다. 산을 잘 아노라고 자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기실 산의 내속을 아무도 다 알수 없다.     등산자들마다 산을 찬미하지만 산은 예이제 말이 없다. 산의 깊은 내속은 세월만이 알뿐이다. 류행따라 산을 찾고 바위나 거목에 모모가 왔다갔노라고 서정을 쏟고 존함을 남기려 목청을 높이지만 산은 알은체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화자찬하고 자아도취하고 있을뿐이다. 산은 침묵하는 기질이여서가 아니라 별을 스쳐온 바람과 티없는 구름과만 대화할뿐이기때문이다.     대자연이 인간의 파괴속에 아픔을 웨치지 않는것을 산의 침묵이라는 멋스러운 말로 표현하니 즉흥으로 지어낸 유모아가 아닌가? 그러나 누가 산에서 자신의 소행에 고개를 숙이는가? 어리광부리는 인간에 대해 산은 말이 없지만 우리 스스로 자성해야 함은 두말할것도 없다. 산을 좋아한다면 산의 품격부터 몸에 익혀야 하리라     산은 인간심령을 정화시키는 교실이다.산에 오를 때 숨차고 힘들어서 번거로운 잡념들이 비켜서고 그리고 류류별별의 욕심들을 잠시 털어버리고 오르기에만 열중하다보니 마음에 빈자리가 생기고 정신도 비워진다고 한다. 흔히들 산은 심신에 쌓였던 온갖 부담스러운것을 뱉아버리기가 제격이라고들 한다. 그래도 산은 말없이 받아들인다. 그게 산의 덕성이다. 아마 그래서 현대인들이 산을 좋아하는가보다.     등산은 육체운동이기도 하지만 산의 가장 소중한 선물은 심령의 세척이다. 산정에 오르며 인생길 굽이굽이를 돌이켜보는 마음은 등산심리학의 한장절이요 등산길같은 인생길을 헤쳐가는 검증일지도 모른다.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을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 마주칠 때 역지사지를 실감하게 된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족감에서 오는 여유로움이 있고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을 바라고 허위단심이다.     흔히 인생길을 등산길에 비긴다. 인생길도 등산처럼 생각하며 산의 덕목을 마음에 옮긴다면 일거량득이 될것이요 저저히“현인”이 되련만 인생길에서“정상”에 오르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등산자로서는 정상에 오를수 있지만 인생길에는 유일한 최고봉이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오르지 못하고 인생이 진해버린 사람이라도 산에 오를때처럼 열심히 산다면 역시 아름다운 인생이라 할수 있다.                                                       2008년 4 월 5 일               (2016년 6월 3일 연변일보)
769    비교인생학입문 댓글:  조회:3776  추천:0  2016-09-23
                                             비교인생학입문                                                       최 균 선       만사는 비교에 의해서 인식된다. 살면서 우리 모두가 보고있는것은 비교의 대상이 되는데 기실 비교함으로써 자신에게 리득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교되는것들의 과거를 비할수도 없고 현재의 비교에서 감각적만족을 추구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미래마저 비교할수 있는것인가? 비교란 모종의미에서 밉살스러운것이라 할것이다.     원래 모든 비교가 부정적인것만은 아니다. 비교란 심리평온의 원쑤가 될수도 있고 분발노력의 벗이 될수도 있다. 우리들의 인생마차는 비교선상에서 굴러간다고 할수도 있다. 인생에 비교가 없다면 제자리 답보가 될수 있고 자기완성의 분발력도 생기지 않을것이다. 비교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나 비교에도 분촌이 있어야 한다. 비교의 방향과 내용, 자나심리문제이다.     비교대상은 먼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사람들속에 있다. 한것은 그들속에서만 자신의 고난과 행복이 확인되기때문이리라. 비교의 능수들인 녀자들의 비교철학은 더구나 현학적임에는 더 말할것 없다. 경쟁으로 시끌벅적한 이 인생마당에서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그 모든 경쟁이야말로 바로 비교심리에서 오는 소득의 락차, 불만족, 실락감, 소유욕 등을 불러오고 비교하기에 집념하게 한다.     사람은 자아의식이 싹트면서부터 자아형상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자아에 대한 정보를 직접 얻기어렵다. 그래서 주위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존재감과 자아가치를 확인하게 되는것이다. 이것을 “사회성비교”라고 한다. 비교의 방향에서 볼 때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것을 “상행비교”라 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며 자위하는것을 “하행비교”라고 한다.     그런데 사이비한것은 자기보다 뛰여난 사람과 비교할 때 따라배우고 릉가하려는 욕망에 앞서 왕왕 질투심이 앞질러가면서 일을 그르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의 비교에서는 겸손에 앞서 업신여기는 심리가 선행하는 심리이다. 흔히 실패나 좌절을 당했을 때 “하행비교”가 많은데 잘하면 심리압력을 이겨나가 새로 시도하게 할수도 있으나 위에 비기니 모자라고 아래에 비기니 여지가 있어서 심리평형을 찾기십상이다.     비교의 근원은 욕망에 있다고 할수 있다. 이 세상에 욕망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욕망이 마라손경기를 하면 비교가 앞에서 까치걸음을 하며 사람의 심기를 혼란시킨다. 심리평형을 찾고싶다면 사유의 매돌을 거꾸로 돌릴 필요도 있다. 세상을 헤쳐나가기가 힘겨울 때 그리고 자기불만족일 때 제나름의 비교철학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때의 비교는 자명등이 되여 눈을 밝혀줄것이다.     자기불만은 이루지 못할 더 큰 욕망의 보따리만 안겨줄것이요 그것을 주체못하는 걱정을 자초하는법, 행복하지는 못할지언정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자족할줄 아는것이 요긴하다. 비교에도 워낙 밑천의 대소차이가 있다. 잘 살수록, 잘 나갈수록 비교의 역차가 커지기마련이다. 빈한자가 작은 행복에도 곧 잘 위안받는것은 아마도 세상과 다투려는 마음이 굴뚝같지 않고 비교의 쪽문에 체념의 자물쇠를 잠그었기때문이다.     자기의 수요를 아는것은 본능이고 수요하지 않는것은 명지함이다. 누구에게나 그 자신만의 행복이 있다. 남을 부러워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면서 더욱 자비감에 빠지지 않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여 다른 사람의 현재와 삶의 표현을 흔상할 태연한 자세가 주어질수 있다. 비유컨대 무슨 신을 신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자기발에 딱 맞는가가 더 중요하다. 즉 무엇을 추구하든 적당한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 되겠다.     그냥 다른 사람의 몇백원, 몇천원짜리 구두만 내려다보며 그 사람의 소비수준과 비교한다면 자기발의 편안함마저 잊을수 있다. 설사 그것이 악어가죽구두라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면 마음마저 편하지 않기 마련이다. 닭에게도 두날개가 있지만 영원히 수리개가 될수 없다. 날아다니는것은 새들만의 분복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마음껏 뛰면서 하늘을 날 욕심을 내지 않는것이 자족이다.     사회도 거울이지만 자기만을 볼수 있는 거울은 자기 마음이다. 거울과 창문유리는 다같은 유리이다. 거울은 단지 은박을 칠했을뿐이건만 창문유리처럼 바깥세상을 볼수 없다. 마음속에 있는 비교의 투시경도 매한가지가 아닐가?! 쌍휴일날 할일없어 무료함을 느낄 때 로무시장인지 하는곳에 가서 얼마간 서있어 보라. 그러노라면  자신은 다닐직장이 있고 할일이 있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확신하게 될것이다.     그러면 마음은 저으기 충실해지고 자기의 무료함도 일종 유한자의 잉여행복임을 발견하게 되고 한가함이란 그냥 들척지근한것만은 아니라는것을 터득하게 될것이며 할일없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무료한 사람이라는것을 다시 깨달을것이다. 만약 당신이 복잡한 인간관계를 잘 처리할수 없고 생활의 보장이 어려워 근심에 잠겼을 때 살아가노라면 보다 어려운 역경이 닥칠수도 있다는것을 예상해 보라. 부디 말을 탈때 소수레 타던 일을 우습게 여기지 마시라.     얽히고 서려서 돌아치는 이 세상에서 만사가 비교를 부르지 않는것이 무엇이랴! 나는 비교일반을 비난하고 싶지않고 또 그럴만 한 자격도 없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을 싹비우고 산다는 말이 류행어로 되였는데 욕망으로 세워진 마음의 골방을 어찌 말끔히 비울수 있으랴, 다만 한생을 무리한 비교의 계주봉을 틀어쥐고 헐덕이지 않으면 만사대길이다. 뒤돌아보고 낮은데를 내려다보는 비교는 유익하다. 하지만 지나친 비교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제배가 크다고 황소와 비기다가 배가 죽이 찢어져 죽은 청개구리의 어리석음도 잊을수 있다.     물욕과 그 얻음에 너무 자주 비교의 잣대를 대지말라. 남의 천당이 내게는 지옥이 되는 경우도 있다. 늘 남과 비교하며 턱없이 높이만 바라본다면 눈아래 행복의 쪽문을 스쳐지날수 있다. 이렇듯 비교는 때론 마음상하게 하는 비수요 때론 자기 만족의 쪽문을 잠그는 자물쇠가 되기도 한다. 이것은 인생공부의 필수과이다. 비교 인생학의 오묘함도 바로 이 변증철학에 있다.     기실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것은 비교할 방법이 없거니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례컨대 생명, 사랑,가족애 등이다. 명리와 생명을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도리를 누구나 알고있지만 실천속에서는 왕왕 어긋나는 사람이 많다. 세상에 최선은 있어도 가장 좋은것이란 있을수 없다. 어떠한 사물이든 자체의 발전에 극한이 있기때문이다. 비교하느라 자아을 잊어서도 안되고 대방을 상해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란 잔혹하기도 한것이다. 사람은 사람과 비교하다 죽고 물건은 물건에 비교하다가 내던진다는 말이 있다. 아이때부터 젊은시절에도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로년에도 비교하는 습성을 가질수 있다. 비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혹시 성공한 인생을 살수도 있고 비교하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혹시 유유자적한 인생을 살수 있다. 인생에는 감오의 비교, 음미의 비교, 체험의 비교, 사색의 비교, 사상의 비교가 수요된다면 가치있는 비교라 할것이다.     대관절 누구를 위한 인생이길래 비교의 노예가 되는건가? 이는 우문이다. 그러나 혹 묻게 된다면 저마다 제인생을 산다고 대답할것이다. 현답이다. 빌려입은 바지가 너무 길어서 자를수도 없고 짧아서 가랑이가 찢기도록 춰입을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사는 내인생이지만 아무도 세상사람들의 눈길과 감지에서 자유로울수 없으며 멋대로 자재적일수 없으니 속탈일이 아니겠는가? 비교에 매달린 당나귀가 되지 말자.                              2007년 6월 30일       2016년 5월 13일 (연변일보)
768    (진언수상록 44))정한풀이 댓글:  조회:3657  추천:0  2016-09-20
                                                                  정한풀이                                                                      진 언         정과 한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루고 있는 근원적인 기능이라고 할수 있지만 완미하게 개괄하려면 그리 쉽지 않다. 한은 한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현실의 삶 과 불일치할 때 느끼는 정서로서의 외로움, 서러움, 허전함, 괴로움, 슬픔, 원망 등의 복합적감정상태를 내포하고 분노와 자책의 감정도 포함하고있다.     한 또는 원한의 의미는 모호하나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또는 그에 처하는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이다. 이러한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것이 원한의 속성이다. 이 속성들 역시 서로 얽혀있어 파악하기 어렵지만 맺힘과 풀림의 계기성과 대립의 묶음들로 정리할수 있다. 원한의 맺힘은 원한의 발생과 생성을 대표한다.     정은 안에서 내비치는것이고 한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가슴에 맺히는것이다. 정은 표현하는것이요, 한은 삼키는것이다. 그러나 원한이 발생하고 생성되는 내부에  는 맺힘과 맺음이 있다. 맺힘은 타인에 의한것이고 맺음은 스스로에서 기인되는것이 다. 이들 원한의 발생과 생성은 모두가 그 전제조건과 그에 처하는 마음의 자세로 분 리된다. 타인,사회제도, 환경 등이 그것이다.     앞의 조건들에 의하여 슬픔, 분함, 억울함, 원통함, 저주, 앙갚음 등 원한은 가슴 에 맺힌 응어리로서 죽을때까지 풀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원한의 속성은 맺힘과 맺음만이 전부가 아니다. 맺힌것이든 스스로 맺은것이든 인간이 안고 살아가는 가장 깊은 심리상처이다. 즉 심령의 기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원죄, 사랑, 자비 등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속에 사무치게 된 원한이며 이를 어떻게 푸느냐 하는 문제이다.        무릇 정은 전 인류에게 공통한것이지만 우리 민족만큼은 자별나다고 해야 하겠다. 모성애 부성애, 우정, 구정, 신정, 무정, 유정, 진정, 애정과 같은 단어가 많다. 뿐만 아니라 정들다, 정떨어지다, 정든 고향, 정많은 사람, 정들자 리별 등 정과 관련된 표현도 풍부하고 다양하다. 심지어 미운정, 고운정과 같이 상호 모순적으로 조합된 “정”도 정이란다. 이로부터 우리의 민족문화는 정(情)의 문화라 할수 있다.     한은 가장 민족적인 슬픔의 정서이다. 그런데 왜 우리 민족에게만 유독 한이 많을가? 우리 민족의 한(恨)은 지정학적으로 숱한 침략, 략탈속에서 반만년을 버티여온 그 피어린 력사과정에 관성처럼 되였다. 우리 민족처럼 많은 아픔을 경험한 민족도 지구상에 그리 흔하지 않을것이다. 력사적으로 930 여차의 외래침략과 략탈을 경험 하면서 내적갈등과 고민에 시달린 그만큼 민족적한의 뿌리는 얼기설기 얽혀있고 깊 이깊이 내리면서 루루천년 굵어지였다.     조그마한 반도땅에서 수천년을 지속된 동족상잔은 백성들로 하여금 자비적심리 현상이 굳어졌을것이며 유교적신분제도의 질곡속에서 인간이하의 생활을 한 천민이나 노비들의 원한이 뿌리깊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가해자였던 통치자, 량반들에 대한 피학대민중의 한도 하늘에 사무치고 남는다. 통치자들의 수탈과 극심한 빈부차이에 절치부심해야 했던 가난한 사람들은 자연히 가진자를 원한의 대상으로 보지않을수 없었다. 남존녀비사상의 질곡속에서 남자들의 횡포아래 인종의 미덕을 강요당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던 녀자들의 한도 천고에 서리찬것이였다. 녀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도 그래서 만들어졌는 모른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한은 력사가 조성한 근원이 깊은 비애로서 슬픈 정감색채를 띠고있다.《한》은 단순히 비탄, 포기, 눈물이 아니며 또한 잔소리 혹은 복수가 아니라 쌓이고 쌓였던 민족내심의 정서로서 일종 분발향상의 동력이기도 한것이다. 이런《한》은 일컬어 반도식의 정감이라 불리운다.     미학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정도는 부동하지만 배달민족의《한》의 민족성은 비분 정서, 소산, 반항 등 세개 층차로 나타난다. 개인, 민족, 세계의 질서 등 지금의 이 모든 문제는 풀린적이 없었고 아무도 해결지을수 없다. 이러한 개개인의《한》은 단군족의 민족성에서 내심에 앙금으로 가라앉은 기본정서이다.     민족성인 우리의《한》은 일반의의상에서의 원한과도 구별된다. 중국유교, 석가모니의 장기적인 영향은 민족의 독특한 성격을 형성하였다. 이런 성격은 자연히 우리 민족인들의 심미관념에 침투되였으며 정한이라는 주제가 현대에도 문학작품이나 민속에 심미특징으로 체현되기때문에 이를 민족의 대표적인 정서로 간주하고있다.     우리 문학에서 리별의 한이나 기다림의 정은 주로 시문학에 나타나고있다. 례하여 김소월은 고려가요와 맥을 이은 정한을 노래하였으며 한용운, 리상화,리륙사 등은 나라를 빼앗긴 한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한용운의 시에 나타난 망국한도 절망도 좌절도, 그냥 앉아서 탄식하는 무책임한 방관이나 숙명론은 아니였다. 여기에서 한의 참뜻은 고난에 찬 행동에의 부름, 새로운 희망의 의지를 담고있다. 한용운의《님의 침묵》에서처럼 기다림은 허탈상태의 막연한 침묵과 기다림이 아니며 빼앗긴 민족주 권을 엄정히 요구하는것이였다. 한용운의《정천한해 [情天恨海 ]》를 다시 한번 읊어보자.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精) 하늘을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하리라. (중략)                                                만일 정 하늘이 무너지고                                              한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에 떨어지고                                              한해에 빠지리라. (하략)          님에 대한 정과 나라를 잃은 한은 봄바다보다 깊고 가을하늘보다 높음을 나타낸 다. 그러나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라 저 높고 깊은 정한의 세계를 건널수 없다. 시는 정과 한이 아니라 절대적인 님의 존재, 무한한 님의 세계를 웨치고있다. 시에서처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감정이나 정과 한은 고유한 정서로 되여 매 시대의 사회구성원의 가치관, 정서, 행동, 사고에 영향을 미치였음은 당연하며 나아가 민족 성격형성에도 바탕이 되였다고 하겠다. 지구촌 모든 인간들의 삶의 근본문제도 원한으로 주어졌지만 우리 민족의 정한은 독특하고 유별나다고 해야 하리라.     왜 인간은 한을 맺지 않을수 없었는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한을 맺게 하였는가? 인류의 력사과정은 원한의 과정이요, 원한의 확대사로서 약자들은 원한을 물마시듯하며 살아왔다. 보라!지난날의 원한이 얼마나 하늘에 사무쳐 대지의 구석구석 을 울려왔는가! 얼마나 많은 한이 지금 이 세상을 갈기갈기 찢고있는가? 크고 작은 한이 하늘과 땅에 넘쳐흘러서 이 세상의 모든 재앙을 불러오지 않는가? 인류를 근원적으로 구원하기 위해 천년적설마냥 맺혀있는 원한을 쓸어내는 해원(解怨)이란 단 어가 있더라면 해원의 시대가 과연 열릴것인가?                                                                                 2011년 12월 30 일
767    (진언씨수상록 43)“빨리빨리”의 리페 댓글:  조회:4072  추천:1  2016-09-12
                                                                “빨리빨리”의 리페                                                                          진 언       원시인류가 현대문명인으로 진화하기까지 600만년이란 오랜오랜 세월을 걸어왔다. 그에 비해 고기술시대의 진입은 눈깜빡할 사이라고 할수 있다. 라이트형제가 1903년 최초의 동력비행기를 날린후 1957년 구쏘련에서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기까지 반세기가 걸렸고 지구인이 마침내 달나라에 발을 딛게 되고…고기술이 20세기에 이룬 성과 자체는 “빨리빨리정신”에 떠밀려 쌓은것이였다.     토플러의《미래의 충격》에서는 기원전 6000년의 고속수단인 락타의 질주가 시속 13㎞ 이고19세기 증기기관차가 시속21㎞로서 8000년 동안에 겨우 8㎞가 빨라졌을뿐이라 했다. 한데 20세기에 들어 우주비행선이 시속 2만9000㎞에 이를만큼 고속화로 치달아올랐다. 이것은 인류에게 축복인가, 환득환실의 례증인가?     고대희랍문화의 특징중 하나가 경쟁이였다. 경쟁은 속도의 추구이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유구한 력사의 장하에 만리장성,《사고전서(四库全书)》등 거대한 문화유산…모든 문명의 업적은 중국사람들의《만만디(慢慢的)》정신의 기반우에 창조된것으로서 그것의 버팀대가“만만디”기질이였다고 해석하고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란 성어가 있는데 홍수가 지면 말은 발버둥치며 물길을 거슬러 헤염치다가 힘이 빠져 죽지만 소는 물에 몸을 맡긴채 둥둥 떠다니다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일이 급하더라도 무리해서 억지로 풀리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성구대로 한것만은 아니다. 우공이산을 느림미학의 전형이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역시 먼길을 줄이려고 조급정서로부터 시작한 일이다. 곡식고갱이를 뽑아올린 송나라사람의 이야기는 성급함에서 기인된 우둔함을 풍자한것이고,     욕망의 실현에서 아무도 만만디일수 없다. 이제는 “빨리빨리병”이라고 불리는 이 증상은 조선사람들만의 특성이라고 할수 없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속도에 반하는 효률을 마다할수 없다. 때로는 장점으로 때로는 단점으로, 어떻든간에 "빨리빨리"는 우리 인간들의 지향이 되였다. "빨리빨리"가 주는 단맛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빨리빨리"의 급공근리에서 단맛을 본 이상 느림의 미학이 퇴색하지 않을수 있으랴, 기다림과 참을성은 인젠 미덕이 아니라 락후이고 어리석음으로 상징된다.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은 현대인들의 체질에 맞지 않게 된것이다.     21세기는 속도의 시대이다. 초고속 전자통신망이 전세계에 거미줄처럼 구축되면서 초고속 인터넷시대에 들어섰다. 그만큼 초고속문명시대는 불확실성시대라고 이름지어졌다, 현대에는 더구나 불확실성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물극상반의 섭리에서 벗어날수 없다. 환언한다면 빨리빨리에는 적지 않은 리익과 페단이 병존하는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속도에만 집착한다. 그래서 생기는 비극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시대의 급물살을 타게 된 중국사람들도 만만디를 차던지고 비상히 조급해졌다. “콰이콰이정신” 은 영국이 런던에 50년을 걸려서야 완성한 지하철을15년에 제꺽 해제겼다. 전통적으로 꺼리던 "빨리빨리" 문화는 중국만이 아니라 지구촌을 온통 속도전으로 풍미하는 근간이 되고 또 자국의 발전을 위해선 " 만만디 정신은 시대의 락오를 의미했다. 그래서 “빨리빨리"가 없으면 약육강식의 이 지구촌에서 생존할수 없다는 론리가 튼튼히 발을 붙이게 된것이다.     시간앞에 달리자는 구호가 있지만 우리는 그냥 시간의 노예로 시간에 쫓기우는 삶을 살고있다. 옛날에는 꿈에도 생각못하던 삶의 조건, 환경에서 살고있건만 우리는 늘 바쁘다. 시간이 금싸라기란것을 잘 알지만 그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빨리빨리를 웨치며 노상 쫓기듯 살아가는 사람들, 숨이나 쉬면서 살고있는지… 빨리빨리에 목맨다고해서 마냥 인생이 더 알찬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우리 말 속담에《급히 먹는 밥이 목이 멘다》,《급하면 바늘허리에 실매여 쓸가》,《우물에가 숭늉 찾는다.》등은 예로부터 지나친 성급함을 경계하고있다. 옛날 농촌에는《뭘 그리 급해하냐? 급해 죽은놈 얼마인데》라는 말이 있었다. 역시 소박한 느림의 미학을 말하는것이다. 현시대 다사분주한 인생살이에서 서둘러야 하고 침착해야 할 일들이 얼마일지 예상할수 없지만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것은 살아가는 기술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빠름을 버리고 느리게 사는것의 의미를 깨달으라고 호소하였다.“현대 사회는 느림이라는 처방이 필요한 환자다. 그런데, 현대인이 속도의 병에 걸려있다고 진단하는것은 나같은 학자들의 몫이다. 사람들은 철학자를 지나간 과거나 분석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철학자를 ‘미래를 처방하고 예언하는 사람’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고싶다. 예언하는 철학자로서 나는 정보화시대의 특징을 분석하기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싶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사회는 빠름을 찬양하고 있지만 개인은 느림을 추구함으로써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삶에 도달할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묻는다.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고,“라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인 반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몸이 느림을 향수할 때 정신은 더욱 포만해지고 삶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     속도가 빠른 자동차일수록 브레이크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듯이 인생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바쁠수록 느림도 필요하다. 인생은 100 메 터달리기가 아닌 장거리달리기이기때문이다. 성찰이 뒤로 밀린 무한경쟁의 고속도시대에도 때때로 황소걸음이 수요된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속담은 천천히 걸어도 아무도 막을수 없는 힘이 있는 걸음이고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뚝심이 있는 걸음이며 얕은 꾀를 부리지 않는 정직하고 우직한 걸음을 의미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려로에 걸음을 너무 달구치는것은 좋은 일만이 아니다. 질풍같이 내달리는 자동차안에서는 풀잎에 맺힌 령롱한 이슬방울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잠간 멈춰서서 가쁜숨을 말리자.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서 주위를 돌아보자. 그러면 숨가쁘게 달려올 때 보이지 않았던 많은것들이 보일것이다. 그리고 그 발견은 당신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해줄것이며 당신의 삶에 다른 의미로 새겨질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속도로 달려나가지 않아도 된다는것을 알아챈다면 당신의 삶은 보다 여유로워질수 있을것이다.     새의 울음소리, 바람소리를 들어보라. 자연의 소리는 일정한 리듬에 의하여 조화를 이룬다. 자연의 리듬은 단순하다. 자연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기까지 순리에 의하여 진행된다. 자연은 타자와 비교하지 않는다. 사람도 자연도 모두 자기 몫이 있다. 삶은 단순할수록 좋은데도 인간들은 자연의 순리를 왕창 무시한다. 하여 마냥 빨리빨리를 앞세우고 달린다.     빠름을 이기는 느림의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촉박한 삶의 여유와 멋은 느림의 미학이 선사한다. 느림의 미학은 곰삭은 젓갈처럼 일정한 발효시간과 때묻은 세월이 필요하다. 셀수 없을만큼 긴 우주의 시간속에 셀수 없을만큼 짧은 순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인데 더 천천히 살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가? 그런데 스스로 채질하며 재촉할 필요가 무엇이랴,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2011년 2 월 10 일
766    (잡문)독사가 지독한가? 댓글:  조회:3593  추천:0  2016-09-11
                                                                    독사가 지독한가?                                                                               최 균 선         “계사년”올해는 60년마다 돌아오는 검은색 뱀의 해이다. 동방의 전통적관념에서 토템으로 되여있고 뱀은 십이지의 여섯번째 동물로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 신사(辛巳) 순으로 순행하는데 좋게도 풀이하고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뱀은 호 불호로 극단적으로 평가된다.     다른 동물보다도 복합적인 상징의미를 지닌 뱀의 상징은 풍요이면서 동시에 영생할수 있는 존재다. 뱀의 일종인 이무기는 승천하면 룡이 되기도 한다고 전해왔다. 고대희랍신화에 나오는 많은 녀신들은 뱀의 형체로 그려져있다. 중국의 고대전설속에 녀와씨와 복희는 남매간인데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뚱이를 가지고 있다고 전하고 세계적인 문화에서도 뱀은 상서로움과 신성함을 상징하고 정력의 원천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뱀은 호불호로 극단적으로 평가되는데 특히 동서방간에 문화적차이가 크다. 서방의 전설중에는 뱀이 힘과 사악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다. 인류의 원죄는 뱀으로부터 시작된것이라고 본다. 에덴동산에 이브를 유혹해 금과를 따먹게했던 뱀이 하느님의 벌을받아 그때로부터 땅을 핥으며 기여다니게 되였다고 한다. 저주받은 뱀은 아무리 꿈틀거려도 참새로도 진화할수 없었다. 만약 펄펄 뛰여다녔더라면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재난을 가져다주었을지 모른다.     뱀은 간사하고 사악한 동물로 부정적이미지가 강하지만 또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는 조상신으로 모시고 있고 유럽에서는 치료의 신으로 각인된다. 우리의 민속신앙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자 흉물인 뱀을 집과 마을을 지키는 대표적인 신으로 받들고있다. 둔갑할줄 아는 뱀으로 형상된다. 뱀의 상징은 남성이다. 뱀이 남성으로 둔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우리 민족의 설화에 “구렁덩덩시선비”가 그례가 될것이다.     뱀은 력발산 항우도 섬뜩해하는 긴짐승으로서 이 지구촌에서 역겹고 가증스러운 동물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뱀은 공포의 대상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풍요와 혁신을 상징하는 진취적이고 친근한 동물이요 정적인 속성을 지닌 동물, 겨울잠에서 깰때마 다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습성때문에 재생과 치유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뱀은 또 만물의 풍요를 분배하는자로 인식되였을 뿐만아니라 녀자의 불임을 막고 행운과 다산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믿어왔다.     그리하여 지극히 리기적인 인간은 그러듯 징그러운 뱀이라고 꺼리면서도 유용한 약재로 애용되여왔다.류종원의《뱀잡이군의이야기 (捕蛇者说)》이라는 글이 있는것처럼 자고로 뱀은 많이도 도살되였다. 지금도 뱀전문호들이 많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전문 뱀과 도마뱀을 도살하는데 50만마리 이상이라는 보도가 있다. 유럽에서는 뱀가죽패션때문에 동남아비단뱀들이 멸종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뱀가죽가방이 선호되면서 뱀들은 더구나 죽어나고있다. 말레시아에는 뱀도살장이 있는데 뱀을 잡는 장면이 눈을 뜨고 차마 볼수없을만큼 얼마나 끔찍한지 임산부는 피해야 할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인성이다. 그러구보면 이 지구촌에서 지독한 독사보다 더 극악한 동물은 결국 인간인것이다. 인간의 악에는 극치가 따로 없다. 만물의 령장이니까 무엇인들 잡아먹지 못하며 잡아먹었단들 인간들을 단죄할 동물은 아직 진화되지 못했으니 어쩌랴,     그러나 사람으로서 사람을 잡아먹는다는것은 다른 얘기다. 금년 5월 2일 한국의 “기독일보”에 미국초기 이주자들이 제임스타운에서 1609년부터 1610년 대기근시 기에 사람을 잡아먹기도 했다는 속설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2차 대전시기 동남아 군도에서 일본황군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얘기는 묵은 얘기이고 조선의 최근의 폭로에 의하면 일본군이 남양군도에서 조선사람을 묶어놓고 산채로 고기를 베여먹었다는 야만적인 사실도 있었으니 뱀도살은 당연지사일수밖에 없다.     동물도 흉악하고 잔인한 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존경쟁속에 본능이며 때로 사람을 잡아먹지만 수천년동안 사람이 잡아먹은 짐승에 비하면 새발에 피만큼도 안된 다. 로신선생도 일찍 침통하게 쓰고있다.“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데 그렇게 엄격할 필요가 없다. 구더기가 더럽긴해도 스스로 청고하다고 하지 않으며 흉맹한 짐승들이 약소동물을 많이 잡아먹었지만 종래로 “공리”나 “정의”의 기치를 내든적이 없다.     금전만능주의가 회행하는 현대사회에서 경제도 “랭혈동물”이고 그 피는 돈이며 리득이라 한다. 그 피에 따스한 온기란 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개인과 집단, 국가 모두가 리득만을 추구하게 되여있다. 비영리단체들에서도 상응한 수입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 경제운행에는 오직 경쟁만이 있기에 동상이몽만이 있을뿐이고 아전인수만이 있을뿐이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부자가 되는데는 량심이 걸림돌이였다.     마라손경기에 나선 사람에게는 달리면서 눈가에 스치는 경치에 흥심이 쏠릴수 없듯이 오로지 리익을 추구하다보면 따뜻한 인정세계에 눈길을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 다. 리익을 추구하는것, 그것은 경제에 수혈하기이다. 경제의 피를 따스하게 할 장사군은 있을수 없다. 공방형자체가 피도 살도 없고 눈물도 련민도 없는 차디찬 피조물이 아닌가? 돈을 다 벌었다는 사람이 없거니와 돈을 많이 벌고나서 인생현장에 따뜻한 봄날이 있음을 깨닫고 회심의 미소를 지을 도덕적인 장사군이 있을수 없다. 이것도 당연한 인성이라 할지 모르나 참으로 사이비한 우리 인성이 아닐수 없다.     사람은 본능밖에 없는 랭혈동물과 경우가 다르다. 그래서 차디찬 인간을 랭혈동물이라고 비유하는것인지 모른다. 비록 “랭혈한(冷血汉)”이란 단어가 있어 비유적으로 쓰이지만 진짜 랭혈인간은 없고 그만큼 자신을 랭혈동물로 자처할 사람도 없을것이다. 정이없는 인간이 있을수 없거니와 혹여 있다면 인간이 아니라 그저 직립 동물일뿐이다. 그런데 인간들속에는 확실히《랭혈짐승》들이 많다.     교과서를 무작정 달달 외워야 했던 철없던 시절에는“독사같은 놈”하면 “악독한 지주”들의 대명사로만 알았다. 시대가 변하면 많은 개념들도 해석이 달라진다. 지금 사회에도 “극악한 지주”들을 뺨칠만큼 악으로 빚어진 인간들이 얼마인지 모른다. 고문실에서 랭소를 지으며 타방에게 오락을 하듯 악행하며 야성의 희열과 악마적 쾌감을 느끼는 인간들, 고문실을 나오면 피와 살이 있고 따스한 가슴을 가진듯한 정상인으로 자처하는 인간들, 공중앞에서는 따스한 미소를 짓는 야비한 인간들, 그 피묻은 손으로 정부의 엉덩이를 쓸며 다정한이 되는 그런 인간들이 영화속에만이 아니라 현실속에도 많다는것을 누구들은 믿고싶지 않을게다.     강권과 강포앞에서는 누구나 차디찬 파충류가 될수 있다. 그런 자들은 처지가 바뀌면 누구보다 아비규환에 비겁을 아끼지 않을게다. 어느 동물인들 환경의 지배를 받지않으랴만 독사같은 자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군체속에서는 적라라하게 원형이 드 러나는 악물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자들은 인간의 원초적비애는 그냥 모르고 자기가 고통스러운것만 알고있을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라는 말을 한번만이라도 새겨본다면 그리 몹쓸 넋이 되지는 못하리라. 나는 동물애호자가 아니여서 기껏 부려먹던 소의 고기를 씹으면서 소를 불 쌍히 여기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모순된 인성에 대하여 곤혹을 함께 짓씹기도 한다. 인성악을 함께 삼키는것인지도 모른다.                        2013년 2월 2일 (2016년 송화강 3기에 )
765    (련시조) 인생일사 댓글:  조회:4317  추천:0  2016-08-25
                                                   인생일사                       1. 우연히 태여나서 필연으로 가는길에                          백년도 못가면서 천년욕심 무삼하랴                          그렇구 그런 세상에 사는대로 살아질뿐                       2. 청춘은 과정일뿐 지속기도 순간이요                         중년은 땀흘리며 결실위한 분투기요                         로년에 총화지으며 주해달기 바쁘더라                          3. 어정쩡 살고지면 행복신이 반겨주고                        똑똑히 살려들면 고뇌마저 단골이니                        한마당 인생유희에 정색한들 무삼하리                       4. 몰라도 알듯싶어 알고싶지 않을때에                         모르진 아니해도 말하곺지 않을때에                         말해도 쓸데없을 때 입다물고 지켜봐라                       5. 달변이 웅변이면 말새단지 일등되고                         침묵이 금이라면 벙어리가 현자되리                         말하라 뚫린 입이니 소리하며 살아야지                       6. 많은 일 혼자 알고 속으로만 새겨보라                         변화가 다단함을 말해본들 무삼하리                         스스로 알고있으면 함구하고 지켜보소                                         7. 쾌락은 더불어도 비애만은 제몫이고                         웃음은 함께해도 고통만은 각각이라                         어즈버 믿을것이란 자기밖에 더 이시랴                       8. 몰라라 언제부터 내 모난곳 닳았는지                         비리가 거슬려도 비정함에 화가 나도                         못본체 못들은체로 불평불만 잠재워라                       9. 인격을 함양함엔 첫째로는 참을인자                         둘째로 간파하고 셋째로는 달관하기                         넷째로 욕심비우고 간소하게 살아가기                      10. 최대로 어려운 일 스스로를 알기여니                          남들이 몰라봐도 나 개의치 않는다면                          시끌한 인생마당도 유유자적 멋나리라                                                               
764    (련시조) 이률배반 댓글:  조회:4094  추천:0  2016-08-25
                                                       이률배반                                  1. 세상을 마주할 때 최상으로 대한다면                                            세상도 최상으로 당신에게 돌려주리                                                    어즈버 주고 받기는 섭리인가 하여이다                                   2. 사랑을 앞세우면 더 큰사랑 마중와서                                             서로의 인간애로 가슴가슴 넘치리니                                                     고달픈 인생살이를 사랑으로 보듬으세                                   3.  믿음을 가진다면 믿음으로 보상되리                                              불신을 앞세우면 의심병에 잡히리라                                                      두어라 인지상정에 신뢰밖에 더 이시랴                                   4. 세상을 보는 눈이 사팔뜨기 되고보면                                             세상도 쓴외보듯 곱지 않게 대하니라                                                     그렇고 그런 세상에 내중심이 어디있냐                                   5. 웃으며 세상보면 세상 또한 반겨주리                                             눈살을 찌프리면 세상 또한 찡그리라                                                     보기에 달린 세상속 바로 보며 살고지고                                   6. 가진것 다바치며 성심성의 다하여도                                             세상은 외면하고 뒤통수를 후려치고                                                     사랑을 바치는데도 등돌리니 엇디호리                                   7. 흑백을 전도해도 유분수라 하였관듸                                             체질화 전쟁광들 핵태산을 쌓아놓고                                                     평화라 인권타령에 목이쉬니 가소롭디                                   8. 억겁을 해가 웃고 구름피던 만리벽공                                             문명의 대작인가 스모그라 천지아득                                                     천궁에 옥황상제도 마스크를 껴야 하리                                            9. 거울이 따로있냐 뭇눈길이 명경이라                                             내인생 내 살지만 유유자적 어렵도다                                                     나묵어 늙은이 되면 더더구나 눈치보여                                  10. 얻었다 좋아말고 잃었다고 슬퍼마라                                               인생은 새옹지마 환득환실 아니던가                                                      보시요 젠체하다가 일패도지 우거지상                                    
763    (련시조) 대비 댓글:  조회:4120  추천:0  2016-08-25
                                                      대비                          1. 과거란 구름찢고 일륜명월 찾아보기                           현재란 창문닫고 구름냄새 맡아보기                           미래란 추측불가한 아리바바 동굴찾기                          2. 예전엔 하수도라 污水만이 흘렀는데                           지금은 기발할손 식용유를 건져내네                           공방아 인정없던들 어이그리 치악햐냐                          3. 이전엔 타향에서 벗사귀면 대길인데                            지금은 고향벗도 반신반의 우려되네                            인심이 변화무상해 정상인듯 하여라                          4. 제핏줄 속일손가 산맥처럼 여겼는데                            엄마도 가짜있고 아버지도 긴가민가                            불신을 앞장세우고 친자감정 하노란다                          5. 그젯날 심심산촌 궁벽하다 외면터니                            오늘은 오염없는 무릉도원 거기라네                            알괘라 자연정복후 청산록수 어드메냐                          6. 이전엔 순산이라 줄줄이 낳았는데                            지금은 포복산에 하나낳고 단산하니                            문명의 소치(所致)이신가 양육난이 앞서선가                                                    7. 이전엔 눈치보여 위생지도 못샀는데                            지금은 불원천리 변기조차 마다않고                            일본제 요시요시라 자랑인양 안고오네                          8. 옛날엔 과거보아 동량지재 되였는데                            고학벌 이 시대는 너도나도 엘리트라                            배움에 실속이 없고 실천에도 난쟁이라                          9. 옛날엔 류수이면 시름놓고 마셨는데                            지금은 지하수도 화험하고 마시라네                            산좋고 물이 맑은곳 노래에만 남았는가                         10. 학생때 성공기준 성적단에 적힌 점수                             사회인 성공표준 저금통장 액수이니                             노예가 따로 있나냐 우리바로 그들일세
762    나에게서 수필이란? 댓글:  조회:3777  추천:0  2016-08-23
                                               나에게서 수필이란?             수필은 붓가는대로 자기 감수를 기록하는 고정된 틀이 없는 문체라고들 한다. 한마디로 자유문체라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인지 당전 문단상황을 본다면 소설가, 시인은 물론 로동자, 농민, 군인, 관원, 학생 할것없이 저마다 수필을 창작하고있어 그야말로 수필의 전성기를 맞은듯싶다.     물론 이런 문화대경관은 좋지만 너무 떠들썩한 소음과 붐비는 창작자들속에 문제는 없는가? 문제의 창작실태는 “수필은 간단하여 제나름대로 쓰면 된다”는 리해에서 비롯된것이 아닌가싶다. 수필창작현황은 정신을 황홀하게 하는것 같으면서도 따지고 보면 영양실조가 온것같기도 하다. 수필창작에서 정말 자재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가? 그러나 아무도 “자유”창작과 무형의 “약속력”간의 모순에서 벗어날수 없다. 수필을 가볍게 써내는 이들은 수필의 핵은 “수의(随意)성” 이라고 하고 수필을 “문학산책” 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무엇이 생각나면 무엇을 쓰는것이고 어떻게 쓰고싶으면 어떻게 쓰는것이라고 주장할것이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좀 좋겠는가? 그러나 전자의 주장을 따르다가 수필이 자칫 산만하고 허탈에 빠지거나 뼈대가 없게 될가봐 두렵다. 후자의 관점대로 한다면 또 수필이 자아봉쇄로 나가게 되고 활력을 잃어버림으로써 독자상실을 자초하게 되지 않을가 걱정된다.     하기야 수필창작자에게 자유가 없다면 두눈을 싸매고 석마를 찧는 당나귀와 같게 되고 칼도마우의 고기덩이와 다를바 없게 될것이다. 그런데 수필의 자유를 제가 쓰고 싶은대로 쓰는것으로 리해하고 일계렬의 감각을 라렬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철리성이라거나 의의, 주제사상을 외면하고 자기 정서와 기분외에 다른것은 고려하지 않는다면 공감대를 잃지 않을가 우려되기도 한다.     현실반영이 근근히 자기 심령의 음영을 내비치는것이 된다면 수필은 어떤 모양일가? 어떤 계기를  틀어쥐고 오묘한 정서세계를 그리고 수식한다거나 남이 다 체험하고있고 알고있는 인생일사를 짐짓 감동적이기나 하듯이 지리멸렬하게 라렬한다거나 제 자랑 비슷한 어떤 경력을 지지콜콜하게 서술한다면 수필의 매력이 나올수 있을것인가?     수필창작의 자유란 무엇을 쓰는가 하는것보다 더욱 중요한것은 어떻게 쓰는가 하는것이다. 누군가 자유적수필이란 산간의 구름과 같고 계곡의 류수와 같으며 혹은 화간에 노니는 나비와 같고 창망한 하늘에 날아예는 수리개와 같다고 비유한바 있다. 하다면 진정 자유수필이라면 정치경제, 사상과 문화, 도덕 등 외재적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내심의 속박도 받지 말아야 할것이다. 여기서 제약이란 곧 상식이나 공덕 등 사회법칙들을 말한다. 상식이란 정신의 응결을 의미하며 공덕이란 진실함을 의미한다. 수필은 정감을 쓰고 사실을 쓰고 어떤 인생도리를 쓰는 등 삼라만상을 포용하지만 인간사회의 잠규칙을 무시할수는 없는바 무릇 제약이 없는 문학자유창작은 기로에 빠질수 밖에 없다.     기실 산곡간의 구름이라든가 류수, 나비, 창공의 수리개의 자유도 필경 제약성을 가지고있는것이다. 자유의 실증(失重)은 수필창작에서 실중의 근원이다. 말하자면 “대수필”속에 작은것이 구사되지 않으면 한낱 “이불거죽”이 되고말것이고 “소수필”속에서 큰것을 엿볼수 없다면 우물안의 개구리가 하늘구경하는식이 될것이다. 훌륭한 수필은 대해나 심산속에 묻힌 보물이나 한알의 모래알속에 비쳐진 대천세계로 되여있다     다음은 수필창작에서 쟁론이 많은 진실성과 허구성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진실하지 못한 수필은 수필이 아니라고 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국면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것은 표면적인 현실생활이 다가 진실하다고 보증할수 없으며 수필은 어디까지나 예술이므로 현실의 국한성을 초월하여 예술적처리를 할수 있고 허구로 창작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비야 어찌 갈라든간에 수필의 꽃은 현실이라는 이 비옥한 토양에 뿌리내려야 하고 민초인생의 고난과 불행을 반영하면서 그들의 심령과의 대화가 돼야 한다고 말하고싶다. 개체생명의 자질구레한 생명현상을 쓰든 감정의 미묘한 골방세계를 쓰든 수필마당에 진, 선, 미가 피여서 쉬이 지지 않는 꽃이 되여야 한다는데는 누구나 이의가 없을줄 안다. 만약 한편의 수필에 이런것들이 선천적으로 결여되여있다면 그 수 필은 문학가치를 상실한 글장난에 그쳐지고말것이다.     물론 수필의 진실성을 편면적으로 리해하여 수필생명을 끊어버리는 실책이 없어야 할것이다. 진실이란 틀에 맞춘것도 아니고 불가침범의 법규도 아니기에 수필창작에 허구성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진실성과 허구성은 음과 양, 오른손과 왼손과의 관계와 같으며 영원히 분리되여있으면서도 통일성을 이루는 차길과 같다. 한마디로 수필에서의 허허실실은 용허범위내의 두개의 합목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가짜수필을 읽을 때가 적지 않다. 제재도 허위적이고 인물도 가짜이다. 물론 어떤것은 진실한 인물을 쓰고있지만 심령의 감동이 없기에 독특한 개성과 견해가 결여하여 가짜라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 어떤 거짓된 수필은 깊은 사색이 없이 씌여졌기에 인생과 생명의 진실과 본질을 반영하지 못하고 보기에는 아찔하게 높이 걸려있지만 결국 빈 새둥지여서 몹시 실망하게 된다.     인간의 진실한 실체속에 빈 마음의 남아있기에 대해같은 흉금이 있게 되고 또 그 래서 희로애락이 넘쳐나는 법이 없이 평형을 유지할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지리학적으로 아래쪽에 있을수록 갈래갈래 내물을 받아들일 공간이 있게 되는것이다. 문학창작시점에서 말하면 이 공간속에는 내용과 형식 등 방면이 포섭된다.     한국수필가 리어령선생의 련재수필은 시간과 공간의 계선을 뛰여넘어 자유자재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구, 대자연과 인간사회 등 삼라만상을 다루면서 인간심령의 구석구석을 투철하게 조명하고있는데 그 필치는 담담하지만 평온한 흐름속에서 밑으로 격류가 소용돌이치는 대하와 같다.     다음 변연과 중심문제도 문제이다. 문학은 자기 본연에로 돌아와야 한다고 대성질호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수필은 응당 정치, 도덕 등의 속박속에서 벗어나 생활화, 인성화된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그로부터 수필을 자신의것으로만 자족하면서 자아봉페의 울타리안에서 맴돌고있다.     어떤 사람은 현대시와 마찬가지로 수필은 “문학산책”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수필을 “로인문체”라고도 한다. 이런 수필창작관은 유모아, 한적함의 소요, 심령의 변연화상태를 드러내고있다. 어떤 지자들은 현대수필들이 갈수록 현시대를 리탈하여 무료한 자기위안과 자질구레한 일상에 기울어져 화조월석이나 새나 벌레, 강아지와 고양이 따위를 다루는데 그야말로 수필의 자살이라고 질타하고있다.    확실히 이런 수필들에서 시대의 숨결을 전혀 읽을수 없을뿐만아니라 인간생명의 약동감도 느낄수 없다. 물론 수필이 시대의 주선률이 될수는 없는바 이 시점에서 수필을 “변연(边沿)문체” 혹은 “업여문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편 수필이 이른바 중심을 둘러싸고 맴돌거나 아예 하나로 융화된다면 수필의 본성을 잃고말것이다.  하여 로련한 수필가는 시대와 너무 거리를 두지 않고 변연인의 시점에서 변연인의 신분으로 변연심리상태에서 수필을 쓰고있다.     그런 수필가들은 맹종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으며 공리에 구애되지 않고 류사성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청고한 심리상태에서 자연과 인생의 섭리를 터득하면서 인류사회의 도리와 심령의 비밀을 파헤친다. 그러나 이런 창작자세는 결코 시대상에 등을 돌리지 않고 자기의 상아탑속에서 문을 닫아걸고 수레를 만드는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들처럼 무병신음하거나 제멋에 겨워 뇌까리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취가 있고 재치있는 수필은 직접 시대를 반영하지 않지만 시대의 밝고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으며 시대의 맥박을 무시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진정 훌륭한 수필은 시대를 포용하면서 시대를 초월한다. 시대를 초월하려면 심령의 빛으로 생활적인 시대를 조명해야 한다는것은 주지하는바이다.     이런 립장에서 말한다면 변연상태에 있기를 원하는 수필가는 반드시 시대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해야 하며 인류심령의 건전한 발전의 제고점에서 자연과 인생을 쓰면서 “자아”중심을 체현해야 한다. 동서고금의 명산문들은 그 시대의 변연에 처해있었지만 그 시대를 무시하지 않고 “자아”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강렬한 심령의 빛을 반사하였다. 이런 심령의 빛은 일체 어두운 면을 투시하였으며 인생, 생명과 인성의 골 방속까지 조명해보였다. 물론 아무나 미치는 경지는 아니지만,     반대로 만약 수필이 정치수요의 메가폰을 된다면 그 수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대의 버림을 받을것이다. 시대와 민중의 광대한 배경이 없다면 수필은 온실속의 꽃처럼 비바람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스러져버릴수 밖에 없다. 수필은 어디까지나 시대라는 이 크낙한 환경속에서 움트고 자라고 꽃피여야 하는바 시대라는 파동과 민중의 숨결로 호흡하면서 세계를 바라보고 인생의 꽃이 피고지는 경상에 울고웃어야 감동을 유지할것이다.     수필은 작가정신의 섬광으로서 거대한 홰불이 되여 인생현장을 통채로 비출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구누구의 심령세계의 구석구석을 비춰보일수 있어야 바람직할것이다. 망망한 우주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지구촌을 비춰주는 하늘빛처럼 생활의 지구를 비춘다면 더 이를데 없을것이다. 태양은 우주의 변두리에 있지만 누리를 비추지 않는가?     수필창작에서의 변증원리는 찬연함과 담담함의 관계속에서도 체현된다. 한면으로는 담담한 숲같고 무색무미의 맑은 물과 같다고나 할가, 그래서 수필의 매력은 “비확정성”과 “창조성”이라고 하는것이다. 수필이 어떤 모식으로 굳어져버린다면 곧 메말라버리거나 죽어버릴것이다. 개인이거나 류파거나 대가거나 무명작가거나 모두 같은 결과를 낳을것이다.     수필은 단일한 정태적생명현상이 아니며 또한 단일한 동태적생명현상도 아닌것으로서 호상 전화, 호상 보충해주는 변증적통일관계에 놓여있다. 더 부언한다면 수필은 물과 같아서 고정된 모양이 없는바 어떤 그릇에 담기면 어떤 모양으로 존재한다. 자유로이 흐르는 강물도 긴 흐름상태이지만 추우면 얼어붙고 따스해지면 녹는다. 나중에 바다에 흘러들어 창해일속이 되면 바다와 모양이 같게 된다.     이렇듯 변화속에서만 생동할수 있는 수필을 두고 사람마다 창작자세가 다를수밖 에 없고 가치실현방식도 제나름일수밖에 없다. 그만큼 나에게서 수필은 인간사회를 관조하는 방식이라기보다 될수록 구석구석을 비춰주는 조명등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더 많이 세상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속심을 나누는 진솔한 대화로 되였으면 좋겠다.                                                                   2006년 1월 10일  
761    문학언어공능의 풍격문제 댓글:  조회:3564  추천:0  2016-08-23
                                    문학언어공능의 풍격문제         무릇 어떠한 종류의 예술부호이든지 주요공능은 감정정보전달에 있는바 일컬어 예술부호—문학언어는 실제상 자체공능의 최적화된 변형체라 말할수 있다.     문학어는 사물에 대한 지시나 지식의 주입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관을 자극하여 무언가 깨우쳐주고 그리하여 보편적인 진실한 감동을 확대시켜주는 엄격히 선정된 언어들이다. 례하여 어감에 민감한 독자들은《밤》이라 하면 단순히 낮의 반대인 시각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며《전원》하면 그저 곡식이나 채소를 심는 밭으로만 터득하지 않는다.     그리고 《봄비》가 해당 언어환경속에서 봄날의 비물로만 되지 않듯이《신록》에서 희망과 대자연의 조화를 련상하게 되고《락엽》에서 자연의 무상함과 비애 등 감정을 갖게 된다. 이렇듯 문학어들은 그 실용성을 초월한 어떤 생활적풍경까지 련상시키는바 독자들의 언어접수도식에서 문화소양의 루적을 기초로 하여 건립되는 상대적으로 온정된 련계기제를 고유한다. 우리는 이것을 암시, 혹은 상징이라고 하는데 문학언어공능의 중요한 조성부분이다.     예술에서 반복은 죽음이라고 한다. 하여 재래로 문학가들은 일반적어휘조합으로 자기 작품을 구사하는것을 원치않고 가능한껏 창조성적으로 새조합을 시도하면서 고심참담하게 문학을 경영하여 왔다. 그렇다고 하여 수의적인 독립적언어체계의 건립 이 가능한것은 아니였다. 이를테면 문학작품에서 《도끼》는 의연히 《도끼》였지《끼도》로 될수는 없었으며 《아버지》는《아부지》로는 통하나《지아버》로 될수 없었던것처럼 말이다.     작가들이 일정한 교제효익의 목적밑에 유의적으로 선택하는 상응한 언어수단 즉 참신한 표달방식의 계통질을 문학언어의 공능풍격이라 하는데 곧 문학작품의 문체풍격을 의미한다. 이는 작가개인이 언어의 구체응용상 그 개성특점에 따라 채용하는 방식, 수단의 응집과는 또 다른 동체이질의것이다. 문학언어공능풍격에는 언어흐름 마당에서 체현되는 모종의 어조, 어투와 언어의 뜻마당에서 산생되는 암시, 상징 등 네개 요소가 포괄된다.     먼저 어조, 어투에 대해 말해보자.     소설창작의 경우 표현전략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스토리나 인물형상륜곽이 정해진 다음에는 어조를 결정해야 한다. 문학적대화의 전략에서 어조의 기본은 작품에 관통될 작가의 정감기조로서 작가-화자를 개성적으로 만들어줄뿐만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과 정서와 욕망, 또는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문학장치로도 되기때문이다. 어조는 화자의 정서상태를 나타내는 기능만 지닌것은 아니다. 같은 제재를 이야기해도 작가에 따라 각기 다른 어조로 말하고 그로 인해서 작품의 특질이 달라진다 는 점에서 작자의 개성을 체현하는 문학장치라고도 할수 있다.     그만큼 어조는 작가의 창작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바 그 실질은 분위기조성, 내지는 자기정감표현형식으로서 짙은 주관성을 띠고있어 창작주체의 개성특질이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위렌(R.Wiren)은 시의 어조를 (내적형식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서 (제재, 청중, 때로는 화자 자신에 대한 태도)라고 정의하고있다. 뚜르게네브도 이에 대해《중요한것은 생동하면서도 특수한 작가 개인소유의 음조이다. 이런 음조는 다른 사람의 후두에서는 절대 울려나올수 없다》 라고 론술한바 있다.     물론 문학적대화에서 화자의 어조는 실제 작가의 어조가 그대로 반영되는것은 아니다. 실제적작가는 작품속에 화자로 현연되고 화제, 독자의 상호관계와 에 설정되는 부동한 상황 및 분위기에 따라 선택, 설정된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어조의 결정에서 화자와 관계되는 요소로는 우선 작가의 인생관 내지는 세계관이 앞서게 된다. 그러나 문학적대화는 인물의 내면세계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암시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점은 소월시를 살펴봐도 알수 있다. 그의 전체 시작품에서 느껴지는 어조는 다분히 수동적이고 체념적이다. 그리고 녀성화자보다 남성화자가 다소 저항적이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 있다. 소월시인의 전체 어조가 이처럼 체념적인것은 일제의 강폭한 압제적현실에 저항해보았자 자아의 외곡을 초래한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가치관이 재현된 결과라고 할수 있다.     어투는 어조와 같이 문학언어공능풍격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어구들의 횡적련계로 구성되는 언어의 흐름마당에서의 다른 일종의 표현이다. 어조가 객체에 대한 창작주체의 정감평가에서 기원되여 개체성이 생활소재에 대한 파악 내지 표현이라면 어투는 창작대상에 대한 형상적서술로서 흔히 생활소재자체가 창작주체에의 반작용이라 할수 있다.     언어의 흐름마당에서 언어절주의 본질은 우리들 자신의 내심운동의 률동인바 일종 명확한 어투는 독특한 표현효과를 약속하고있다. 즉 언어의 흐름마당이든 언어의 뜻마당이든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생명요소로서의 언어에는 감정적특질이 고유 되여있다는것이다. 이로 보아 문학작품에서 언어가 공능변형을 통해 보통언어로부터 예술부호로 전환될뿐임을 알수 있다.     보통 풍격이라 하면 구체작가의 작품방면의 풍격이 거론되지만 문학언어일반의 공능풍격의 변이에 대해서 의론되지 않고있다. 문학창작에서 방법열, 기법열, 형식열에 뒤이어 최근년간에 문학언어공능풍격의 변화가 어떤 징표를 보이고있는데 연구와 토론이 요청되고있다.     흔히 평론계에서 중국조선족문학어는 어딘가 메마르고 딱딱하다고들 말하는데 비교학각도에서 모종의 약점일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우리의 예술부호 그 자체에 선천적인 치명적약점이 있는것이 아니라 언어구사의 창조성, 령활성, 조합기교 및 기능에 있다고 말해야 공정할것이다. 주지하다싶이 언어자체에는 개방성과 탄성이 고유되여있지만 그것은 일정한 언어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작가로서의 최서해의 창작적개성은 피끓는 열정이며 힘찬 기백이다. 열정과 기백을 돋구어낸데 바로 최서해의 독창적인 풍격이 있다. 그것은 일시적인 혈기가 아니며 단순한 감정적인것이거나 육체적인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구자적인 사상적 지향과 정신세계에 의하여 격발된 열혈작가로서의 전투적기백이며 곧 그의 풍격이다.     지금도 그의 작품을 읽노라면 작품속에서 세차게 고동치는  힘찬 박동에 사로잡 히게 되며 그의 정서에 휩싸이게 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그의 작품세계에는 랭담과 관조가 없으며 무맥함과 완만성이 없다. 어느 작품에서나 힘과 열정이 있고 강한 박진력이 있다. 그의 대표작《탈출기》에서의 결말은 평온한 그속에 절절한 호소와 비애에 찬 부르짖음이 은은히 메아리치고있음을 누구나 절감했을것이다.     조명희의 단편소들을 다 읽고 마지막 페지를 덮으면서 받는 느낌은 후더운 정서이다. 진하고 강렬한 정서, 이것이 포석 조명희의 창작개성이며 풍격의 주요한 면모이다. 그의 강렬한 정서는 그의 작가정신의 발현이자 문학언어구사에서 발현된 공능풍격이다. 물론 소설에서 묘사자나 설화자로서의 작가의 면모가 어느 작가, 어느 작품에서나 나서는것은 사실이나 포석의 소설에는 작가의 얼굴이 특볋 강하게 나타난다. 소설 《락동강》의 어조는 유유한것 같지만 기저에서 무겁고 비장한 감응이 고패치고있다.      라도향의 단편소설들을 재음미해보면 그 소박성속에 사실상 강하게 안겨지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섬세성이다. 그것은 소박하나 불쌍한 주인공들의 미세한 면모와 단순하며 정연한 구상과 상세한 심리묘사, 가는 언어문장 등의 풍격으로 하여 보장된 형상의 섬세성이다. 주로 평범한 세태생활속에서 소재를 선택하고있는것이 작가의 창작적개성, 풍격이나 보다 중요한것은 그 평범한 생활자료속에서 사회적, 시대적의의를 탐색하고 그것을 자기식의 어조, 어투로 전달하는 문학언어공능풍격의 체현에서 작가의 특색이 고유하게 된것이다. 그의 대표작《벙어리 삼룡이》나 《행랑자식》 이나《지형근》에서 작가는 마치 세밀한 언어문체로 섬세한 형상적화폭을 창조한 풍격이 독특한 작가였다.     이렇듯 최서해소설의 언어공능풍격과 리기영소설의 언어공능풍격이 다르며 조명희와 라도향의 소설언어공능풍격이 구별되는것도 무엇을 썼는가에 있기도 하겠지만 보다는 어떻게 언어구사를 하는가에서도 선명하게 구별되고 있는것이다.       최근년간 우리 중국조선민족문학언어에서 한국문학언어풍격을 모방,답습하는 경향성이 짙어가다가 이미 하나의 풍조로까지 되였는데 기실 이것은 맹목성에서 온 자아상실의 표현이라 말하고싶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문학예술기호 자체에 개발과 창조의 공간이 없는것이 아니라 작가마다의 언어소양을 비롯한 언어구사의 령활한 창조성, 기교의 모색에 달렸으며 그로서 체현되는 창작개성에 달렸다. 반항의 작가인 최서해가 함북도방언으로 《탈출기》같은 명작을 써내지 않았던가?     하기에 성숙한 작가라면 우리 말 표현수법들이 비유, 의인, 상징, 암시, 풍자, 해학, 등이 모두에게 공유된것이라도 자기식으로 다양하게 선택, 운용하여 새록새록 새로운 언어환경을 창조해냄으로써 그속에서 남과 구별되는 자기의 창작풍격을 형성할수 있는것이다. 또 그로써 그 작가의 인격과 작가적가치가 자리매김하게 된다.     문학작품은 어디까지나 글을 보며 감수, 감탄하게 되지만 한개 민족문화경험은 점차적으로 침투될수 있을뿐 무더기로 옮겨다 이식시킬수는 없다. 비록 우리가 사용하는 문학언어와 동질의 예술부호이지만 한국문학언어공능풍격이 조선의것과도 색다 르듯이 우리의 문학언어공능풍격도 중국대륙에 사는 독립적인 중국조선족의 제반특징이 나름대로 진실하게 체현되여야 우리 문학이노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을것이다.        문학어조합기교, 정감성부여, 형상어의 탐색과 창출 등 면에서의 유익하고 합목적인것은 적극 배워서 자신의것으로 내화하면서 창조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것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문학어에서 심각한것은 무엇보다 사유모식이다. 왜냐하면 이 사유모식뒤에는 인간의 관념이 서있기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특수한 력사적문화배경과 혈연적뉴대를 가지고 발육성장한 중국조선족문학에서 조선, 한국과의 선천적공통성을 배제할수는 없지만 한편 부동한 지역, 문화환경이 부동한 문학현상을 창출하기 마련이므로 자기 특색이 주류가 되여 야 하고 또 그 주체성을  영원히 확보해 나가야 할것은 두말할것 없다. 언어는 그속에 들어가는 일체 사람들의 주체적위치의 상징질서를 설정하며 이로써 언어는 그만큼 우리들이 생존하는 자신의 유일한 세계로 되여지기때문이다.     작가가 문학창작을 진행함에서도 자기가 생활하는 주위세계에서 취재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파악의 기초우에서 예술적재현을 실현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부호계통으로서 개성적사유를 표달하는 창작과정에 문학어의 상규질서를 어떻게 파괴하고 어떻게 새로운 조합을 시도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사유모식의 사회적제약성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다 같은 단군님의 후손이지만 이미 중국조선족으로 부상된 이상 우리의 사유모식이 형성되여 있다는 현실을 부정해버릴수 없다고 본다.     주지하다싶이 중국조선족문학은 중국대지에 뿌리박고 개화결실한 자립적문학으로서 중국조선족 인민들의 인생마당에서의 추구와 희노애락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문학이다. 바로 그러기때문에 창작의 기본수단이 동질의것이라도 부동한 정치리념, 부동한 경제생활권, 부동한 지역적문화습관속에서 부동한 가치관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정된 생활면모가 반영될수밖에 없는것이다. 여기서 조선, 한국 문학과 다른 우리 문학의 특성이 규명되기도 한다.     문학작품에서 세계 본체에 대한 작가들 호상간의 사유모식의 차이성이 곧 창작개성이 되여지고 구성 등 면에서 창작풍격이 체현되는것도 사실이지만 주로는 예술내용과 언어공능풍격에서 보다 돌출히 나타난다. 같은 한어로 창작되고 중국문학권에 들긴 하지만 중국대륙문학, 대만문학, 향항문학이라는 엄연히 구별되는 문학현상으로 고착되여있는것도 바로 이때문이 아니겠는가?     풍격은 곧 문풍을 의미한다. 문풍은 또 실제상 그 사람의 사상풍격과 그것의 작품에서의 표현으로서 특정된 사회환경, 시대의 산물이다. 즉 정치, 경제, 문화의 연혁이 문풍의 변화를 결정한다. 따라서 한 작가의 작품의 풍격, 지방특색의 형성은 환경기분과 취재문제만인것이 아니며 더구나 간단한 지리학상의 향토개념과의 등호를 의미하지 않는다. 문학언어의 공능풍격은 우선 특정된 인문환경속에서의 문화심리의 자연적표출로서 되돌아와 독자들을 감복시키는것을 그 심미가치척도로 삼는다.     언어를 존재의 뜰이라 비유한다. 이런 기점에서 범민족문화권이 많은 공통성을 가지고 형성되게 하였고 서로 침투하고 영향주는 물질적바탕이 있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국조선민족이 일찍 월강민, 망향민으로 있을때까지는 그 뿌리를 유구 한 조선문학에 두었고 그후 조선문학, 한국문학으로 갈래가 뻗을 때 우리 중국대륙에도 중국조선족문학이 새롭게 뿌리내리고 개화하여 전자들과 또 구별되고 그 독립성을 생명으로 한 문학권이 구축되였으며 그로부터 중국조선족문학의 성격이 규정되였다. 마치 영국문학, 미국문학이 동일한 영어문자로 창작됨에도 불구하고 별개로 구별되고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 대륙적인 풍토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중국조선민족으로서 자기문학의 제반 특징이 꽃향기처럼 만방해야 우리 문학의 생존리유가 서게된다. 문학언어의 생신한 조합기교, 정감표달방식, 형상성창조 등 면에서 유익한 섭취는 왈가왈부할것  없이 필요하지만 자기를 잃으면서까지 닮아가려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문학이 자기나름의 모습으로 산처럼 문학지림에 우뚝 솟으려면 매개 작가들마다 자기가 처한 사회현실에 대한 인식활동중에서 그 내재적기질을 굳혀야 하며 주체성확립에 립각하여 자기 특색을 띤 창작궤도를 구축해야 중국조선민족의 문학이라고 내세울수있으며 문학의 망망대해속에서 생존권이 확보되고 그속에서 부끄럼없이 살아남을수 있다. 우리의 문학언어공능풍격이 한국문학언어공능풍격에 바싹 접근할수록 상대적으로 우리 민족문학의 독립성은 상실되고 중국조선족작가로 서의 자기 개성을 스스로 잃고말뿐이라는것을 명기하자.                                                       2006 년 1 월 10일  
760    문학과 땀 댓글:  조회:3964  추천:0  2016-08-23
                                                                                           문학과 땀               문인이란 무엇인가? 문인은 지식인들중에서 인문과학분야의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하다면 나는 문인인가? 근 삼십년간 교단에서 일했고 또 이런 글 저런 글을 드문 드문 발표했으나 문인의 행렬에 껴준다면 그 이상 긍지를 느낄 일이 또 있으랴만 내 야망속의자아(문인)에 비기면 결국 되다가 만 문인이라고 자인하는게 솔직할것 같다.     문학지향자로 말하면 문학은 곧 그 사람의 인생의 궤적이 될것이다. 허나 각자 인생행보가 다르기에 문학과인연이 맺어지고 문학의 길에서 성장해온 과정도 다르기 마련이다. 내 문학의 꿈은 이 필연과 우연의 왕국에서 수동적이기도 했고 주동적이기도 했다.     아마 소학교 3학년 후학기부터였을것이다. 나는 숙명같이 너무 일찍 소설책에 혹하여 학업마저 페할 지경이였다. 나에게는 다섯살 이상인 쌍둥이형이 있었는데 시를 쓰고 랑송하는 멋진 큰형 균설이와 열일곱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신춘문예상을 탔던 둘째형 균필의 서가에는 새록새록 새 책들이 꽂혔다가 사라지군 하였다. 아마도 어데서 며칠간씩 빌려다가 읽는 모양같았다.     처음에는 소년의 일종 유치한 호기심과 허영심때문에 멋도 모르고 대구 읽어보았고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차차 저도 모르게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되였다. 주제넘게 논다는 형들의 지청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면서 어떤 반발심으로 더구나 당길심과 긴박감을 가지고 기를 쓰고 읽었는지도 모른다.《단검》,《참된 사람의 이야기》,《벚나무》,《어머니》,《철의 흐름》등과 같은 장편소설도 도깨비 기와장 번지듯 책장을 훌훌 넘기며 억척스레 읽었다.     그러고보면 자초에 나의 어린가슴에 문학의 씨앗을 심어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형님들이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나로 하여금 글짓기에 직접 흥취를 가직하고 자아표현에 힘을 불어넣어준 분은 내가 룡정중심소학교를 다닐 때 6학년 전학기까지 줄곧 담임을 맡으셨었고 작문써클을 지도하셨던 아동문학 작가 고 남춘우선생님이시다. 그분은 후에 연변일보사에 전근되여 다시 만나뵙지 못했지만 내 가슴에 이름이 새겨진 분이시다.     남선생님은 나의 담임만이 아니라 부형같은 분이기도 했다. 소학교 5학년에 진급하던 그해, 나는 10월이 다되도록 신발이 없어 학교로 못가고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다. 어느날 엄마를 따라 밭에 가서 노는데 남선생님이 일송정기슭에 있는 밭머리까지 찾아오실줄이야, 어머니에게 무어라 말씀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연하다.     선생님은 그길로 나를 데리고 시내에 들어가서 신발을 사주었고 며칠간은 자기  집에서 먹이고 재우면서 보충수업을 받게 하였다. 그때 선생님은 총각의 몸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조촐하게 살고계셨다. 선생님의 집에서 숙식하던 그 며칠 나는 정말 행복하였다. 나는 선생님의 서가에 꽂힌《이른 해돋이》,《단검》,《찌무르와 그으 부대》등 책을 몰래 다 읽어버렸다. 하지만 그때는 물론 작가의 꿈과는 인연이 먼 호기심많은 말썽꾸러기 시골애였을뿐이였다.     막연하게나마 시인의 이미지를 가슴에 새기게 된것은 룡정현 동성중하교에 올라가서였다. 우리의 어문을 가르치셨던 다재다능한 신학철선생님은 시랑송으로부터 시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고 교내연극조에서 공연할 재담이나 단막극 창작같은 임무도 나에 주면서 힘껏 밀어주셨다. 그때로부터 내가 문학지망생이 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때로부터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나와 이름이 뜨르르한 작가가 되는것이 나의 숨은 꿈이 되였는데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게 인생이였다. 어떠한 사연으로 그만 고중도 못가고 청춘을 한탄하다가 한번 크게 문학공부를 해본답시고 외국에 나가려고 시도해보기도 하였으나 그 역시 운명의 배치였던지 물거품이 되였다.     내가 무엇을 좀 알고 검질긴 책벌레가 된것은 호미자루를 잡고 지구수리를 시작해서부터였다. 농촌사회주의교육이 터지면서부터 못생긴 새끼오리로 되여 사회의 괄호밖에 격리당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책이 유일한 정신기둥이였고 독서가 곧 내 정신기둥이였고 독서가 곧 나의 정신가원의 오아시스였다.     농촌에는 “먹은 소 똥눈다는”는 야한 잠언이 있다. 조금 읽었으니 무언가 배설하고 싶은것이 인간본성이였던가? 그래서 게으른 하마가 고니고기를 먹을 엉뚱한 생각을 가지듯 언감생심 “붓”을 들었다. 문학도들이면 거개 그랬겠지만 나도 습작으로 시작한것이 시였다. 시인은 령혼의 화가라는데 매료되여 그랬는지, 작가라는 이름보다 시인이라는 이름이 더 멋져보여서 그랬는지 모른다. “과학은 배우는 사람을 위해 존재 하지만 시는 알고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다”던 누군가의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이였던지 스스로 시인이나 된듯이 제멋에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의 초행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했다. 제딴에; 독특한 개성적감수로 썼다고 느껴져서 한수 또 한수 신문사에 보내고 잡지사에도 보냈건만 그냥 퇴고만 당하군하였다. 나는 감대기도 아닌것을 가지고 공연히 시간과 정력을 랑비하지 않나 하고 락망을 앞세우면서 편집선생들의 매정함을 욕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드디어 내게는 인연이 없는 문학을 아예 포기하려고 작심하기까지 하였다.     살벌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직전이였던지 소설가 민학송선생이 강건너로 가면서 한마디 충고하였다. 발표에 조급해 하지 말고 적어도 십년은 묵묵히 책이나 읽으면서 많이 배우라고,     먼 후날 내가 명동산골에서 교편을 잡고있을 때 우연히 안면을 익히게 된 고 최현숙선생님에게서 나의 작품들이 왜 지면에 못나갔가 하는 원인을 알게 되였고 회심의 쓰디쓴 미소를 짓게 되였다. 당시는 통신원원고뿐만아니라 문예작품도 기층에 내려와 조사하고 확증할 때였다. 내가 살던 룡산대대 당지부에서 가정출신이 명랑 하지 못한 나에게 붉은등을 켜놓더라고 하는것이였다.     농촌구석에 “황색소설”타도바람이 불기전까지만 해도 내 서가에는 두 형님이 타향으로 떠나며 물려준 세계명작들과 자비로 사들인 책들이 꽤 되게 있었다. 시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세계명작들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저한 지식과 인간본성의 온갖 변화에 대한 그럴듯한 묘사들로 세상과 대화하는 소설에 감탄하면서 스스로 실락감을 보듬어주군했다.     나는 농군으로는 상농군에 속했지만 결코 부지런한 사원은 못되였고 책읽기에만 정신이 팔려있은 귀찮은 존재였다. 삼도만으로 풀베기부업을 갈 때에도 책을 이불짐 속에 넣어었고 고동하목재판의 긴긴 겨울밤 등잔불밑에도 졸리는 눈을 잡아뜯었으며 아동저수지공정에서 마차몰이를 하면서도 책을 넣고 다니는것을 잊지 않았다.     “공든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내개 맞아떨어졌는가? 모질기도 했던 세월이 마침내 물러가고 새봄이 오는 발자국소리와 더불어 쥐구멍에도 볕이 들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가는 봄은 구름이요 오는 봄은 기쁨일세”라고나 할가? 1974년 1월, 나의 처 녀작이 끝내《연변일보》문예부간에 발표되였다.     시는 순전히 우연하고 회색적인 기분에서 씌여진것이였다. 그날도 따뜻한 구들에 배를 붙이고 무슨 책인가 뒤적이고있는데 듣기만해도 지긋지긋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어 논코를 끄러 나오라는 생산대장의 명령이 귀청을 때렸다. 때는 신주대지 곳곳마다에서 대채를 따라배우는 열조가 들끓던 비상시국이였다. 그러나 설전부터 일재촉하니 속에서 “제길할”이 꿈틀거렸다. 함께 논으로 나가던 청년들속에서 출신이 좋은 한 친구가 입에서 구렝이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 모르고 게두덜거렸다. “개×같이…이눔의 농민들에게는 겨울이 따로 없다니까…”     그 말이 우습게도 내 녹쓴 머리속에서 어떤 령감으로 변할줄이야, 나는 심드렁하니 괭이를 휘두르면서 그 친구의 말을 계속 짓씹었다. 확실히 농민들에겐 사계절이 따로 없다. 일하고 또 일해야 한다. 무엇때문이냐? 밭고랑타고 세계를 내다보며 혁명을 위해 농사짓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휘두르는 괭이끝에 떨어져나간것은 논코의 흙덩이만이 아니라 겨울이 동강나는것으로 생각이 비약했다. 남들은 한창 대채를 따라배울 때 우리는 벌써 따라잡았다고 호언장담한다면 “혁명적랑만주의”수법으로 쓴 “명시”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엮어지 시 “호두산이 보인다!”를 막연한 마음으로 우체통에 넣었는데 며칠후 시편집이셨던 김경석선생의 손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져 지면에 번듯하게 발표되였던것이다. 돌이켜보면 회심의 미소가 나오지만 당시로서는 승천한것이나 다름없었 다.    그날 마침 집에서 걸상을 만들다가 신문을 들고왔던 마을친구의 입에서 발표라는 말이 나오자 어찌나 격동되였던지 들었던 망치로 엄지손가락을 호되게 내리치는줄도 몰랐다. 피흐르는 손으로 신문을 받아들이고 읽어보는 순간 아픔도 금시 잊혀졌고 첫사랑을 고백하던 그 시각처럼 가슴이 마구 쿵덕거렸다.     시작이 절반이라더니 그다음부터 잘 나갔다. 그때 시들을 지금 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김경석선생님의 사랑은 한 농촌문학도에게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였다. 사실 그후 발표된 변변찮은 몇수의 시작품들이 나를 무난히 교단에로 떠밀어주었던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문학의 길에서 손잡아 이끌어주신 김경석선생님이 무던히도 고맙다.     그리고 내가 아직 농민이였던 때 또 한번의 굽이였다. 내가 되지도 않는 시를 쓴 답시고 끙끙거릴 금방 해방을 맞은 김철선생님과의 해후는 내 문학의 길에서 또 한번 의 굽이였다. 내가 되지 않는 시를 쓴답시고 끙끙거릴 때 김철선생님은 “균선이는 아무래도 시가 잘될것 같지 않구만. 내가 산문편집을 맡았으니 줄글나 써보지. 거기에 김시룡도 있고 리옥금도 있으니 좋은 소재를 발굴할수 있지 않겠소? 보고문학을 한번 써보오.”라고 하던 충고가 내 문학에 일종 승화의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지 않아도 잘 되지 않는 시때문에 가슴을 앓던차 김선생님의 말씀은 자치 말라버릴번한 나의 가슴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하여 김시룡과 리옥금이를 채방하고 보고문학 “위대한 진군길에서”와 “해란강반에 울리는 종소리”, 산문 “그가 가는 길” 등을 륙속 쓰게 되였다. 그래서 나는 또 김철선생님을 내내 고맙게 생각하고있다.     교편을 잡아서 5년이 되던 해 전근해갔던 명동(부유)산골은 내가 제2의 인생고를 겪은 곳이고 인생수련을 톡톡하게 한 곳이였다. 도거리농사가 시작되여 논밭을 분배받았으나 농기구도 있어야 했고 소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학교지도부의 눈총을 받으면서 두부방을 제 손으로 짓고 대부금을 내여 황소를 사서 농사도 하고 두부방에 쓸 나무도 해왔다. 본의 아니게 본직사업에 충직하지 않는 불합격선생이 된것이다.    그대신 새로운 생활체험을 하면서 “탈출기”에 나오는 박군의 가슴에 한으로 새겨진 인생고가 무엇인지 더 투철히 깨닫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 로작가 리홍규, 최현숙 부부가 산좋고 물맑은 명동에 창작활동을 하러 왔다면서 내가 도거리맡은 공소사의 려관에 체류하였다. 명망있는 로작가들과 안면을 익힐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넉살좋게 자아소개를 하였다. 지인지감이 있는분들이였는지라 우리는 인차 친숙해졌고 좋은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      최현숙선생님은 내가 일요일마다 소수레를 몰고 산에 나무하러 가고 퇴근해서는 소여물을 끓인다, 돼지죽을 퍼준다, 개를 먹인다(그때 돼지 여덟마리, 개 여여라문마리를 기르고있었다. )하며 다사분주한것을 보고 보기 민망했던지 산골의 만원호도 좋겠지만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이 안계가 넓은 작가로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시골을 떠나라고 충고하셨다.     사실 그즈음 아들애가 엄청 비뚤게 나가고있었고 나 자신이 또 시골훈장생활에 회의를 가지고있던지라 그 말이 가슴에 깊숙이 새겨졌다. 마침내 나는 시골아이들을 배반하고 천방백계로 “모략”을 꾸몄다. 결국 천신만고끝에 도시로 나오게 되였고 나의 인생궤적은 또 한번 바뀌게 되였다.     어찌보면 문학은 내게 “출세의 길”을 틔워준 돌파구였다. 몇편 안되는 작품과 학생작문지도에서 받은 영예증서들이 나를 도시학교에 추천했고 담보를 서주었던것이 다. 해볕이 꽃을 키우듯이 문학은 내 인생을 가꾸어주었다. 철저히 버림받고 기시당 하던 천덕꾸러기 농부로부터 연변대학 사범분원(원 연변제1사업학교)의 교단에 서기까지 나를 실질적으로 부상시켜준것이 바로 고마운 문학이다.     열쇠가 상자를 열듯이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연다. 문학은 나에게 있어서 자신을 표현하고저 하는 허영이라기보다 이 세상에 살며 느끼고 생각한 나름대로의 기록이요 내 심령의 골짜기에서 울리는 절절한 호소의 메아리였다.     도시는 나에게 락원이 아니였다. 1987년 나에게 있어서 고난의 한해였다. 세집을 찾아 한달에 세번이나 밀차에 가장집물을 싣고 이사해야 하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나는 확실히 세집을 맡을 돈이 없어서 안해가 잠시 일을 하던 도문시유치원의 보이라 실에 살림을 차렸다가 가을에 보이라를 운행하게 되자 쫓겨나와 내가 사업하던 시교원연수학교의 강당을 책걸상으로 간막이하고 살기도 했다. 나는 지아비로서 다 커가는 아이들과 안해에게 미안했다. 내 가슴에 엉키고 서린 정한이 어찌 나 혼자의것만 이랴!그래서 사회를 향해 고발하고싶었다.     불행이 작가를 낳는다던가? 내 불행이 결코 명작을 낳을 불행은 아니였지만 소설을 낳은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 사정이 하도 절박하고 감수가 절절해서 생활의 진실대로 쓴것이 첫소설 “번지없는 집”이였다. 그렇게 나는 소설창작에 손을 대게 되였다. 나의 서투른 첫소설을 알심들여 편집해주신 리영애, 김창석선생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해야겠다.     그후 소설이 몇편 잘 나가다가 또 잘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반발심 비슷한 심정으로 넓은 마당 쓸기를 작심했다. 평론이면 평론, 동시면 동시, 민담이면 민담 등 닥치는대로 끄적거리다보니 발표량은 늘었다. 하지만 거기서 나의 문학은 길을 외낀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딱 소리나는 작품을 내놓지 못한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새 내 인생의 막바지에 석양이 비꼈다. 이제 내가 할수 있는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매달린것이 아프고 쓰린 내 마음을 곧이곧대로 쏟아내고픈 잡문과 일컬어 자기 성찰의 문학이요 세상과 직접 대화하는 문학이라는 수필이였다. 나는 아기자기한 감정의 여울을 담은 자세로 이 사회를 대하고 미소로써만 인생을 포옹할수 없게 만들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 졸작들을 늘 잘 보아주는 조성희, 리영애와 같은 여러 선생님들에 대해 늘 고마움을 되새기고있다.     문학을 강렬한 령혼의 사상이라 한다. 누구나 스스로 느끼고 있는만큼의 인생을 살고있다. 하지만 작가가 되려면 지성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용기이다. 자기가 믿고있는 그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으면 아무도 원고지에 무엇을 써내려갈수 없을것이요 더구나 대중을 위해 글을 쓸수 없을것이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가는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것보다 중요하지 않기때문이다. 내가 바로 문인으로서의 용기를 지니고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냥 용기를 가지고 글을 쓰고싶다.     옛글에 “큰 그릇은 천천히 이루어지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큰 그릇이 되기는 백번도 틀린것같다. 하지만 이 길에 나선만큼 그냥 걸어야 함은 자연적인 리치요 남보다 많이 뒤떨어졌으면 그만큼 땀동이를 흘려야 할줄 안다. 오늘도 나는 황소의 정신으로 내 낡은 문학의 수레를 내 마음의 정상으로 끌어올리려고 허위단심 하고있다.     문학에서 “가장 큰 황소가 천재들이였다. 지치지 않고 하루에 18시간씩 애쓰는 자들이였다.”고 누가 말했던지… 이 말은 내 고군분투의 길에서 좌우명으로 된다. 나의 문학의 길은 땀으로 짓이겨진 비탈길이다.하지만 나는 분투의 희열로 늙음을 즐긴다. 문학은 영원히 적막한 작업이며 고독한자의 생명촉구가 수요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가장 크고 가장 따사로운 내 문학의 보금자리가 바로 연변작가협회 기관지《연변문학》이다. 이 늙은소가 끈덕지게 끌고가는 하잘것없는 문학의 수레를 더 높은 언덕에 오를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힘을 실어주는《연변문학》의 편집선생님들에게 다시한번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린다.                            2006년 3월 3일
759    (진언수상록 42)고기술과 인류의 비애 댓글:  조회:4299  추천:0  2016-08-14
                                                 고기술과 인류의 비애                                                                  진 언           과학기술이 첨단에서 극첨단에로 톺아오르면 인류에게 복을 안겨준다고 환희로운 판에 비애가 어찌구 한다면 어불성설이라  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주의 섭리가 물 극상반이요 환득환실이니 무릇 절대치란 없지 않은가? 말하자면 과학시대라는 말속 에는 이 시대가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물질문명을 주도한다는 의미와 아울러 고기술 시대가 안고있는 고민 이 두가지 의미가 함께 드러났다는것이다.     과학이란 나면서부터 두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정면은 문명한 얼굴이고 반 면은 후광속에 숨겨진 “마귀”의 얼굴이다. 한것은 기적적인 과학성과에 혜택을 누리 면서 동시다발로 피해도 막심하기때문이다. 과학이 인류의 도덕성의 계선을 무시할 때는 인류 자신에게 악재를 가져왔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삶의 모든 면에서 기술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킴으로써 기술이 삶의 중심이 되여져서 인류는 자신이 자초한 인간성 의 상실을 자조(自嘲)적으로 묵인해야 하였던것이다.     고기술은 정이 있는 인간들의 걸작이지만 과학자체에는 추호의 에누리도 없기에 인간성이나 륜리와는 자초에 인연이 없다. 오직 객관적형태로서 인간사회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사회발전을 촉진하는 속성밖에 없다. 과학기술로 인간복지를 개척하였지 만 나중에 인간을 황금에 미치게 하였다. 과학기술 자체가 부정하는 한계를 넘은 욕망때문이다. 과학의 권위는 의심할바없이 확고하지만 이중성과 반면성을 극복할수 없는 자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 기술을 힘의 하나로 분류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리성으 로부터 비롯된 이 기술들은 그것과 상반되는 성격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 한 속성은 모든 기술에 적용될수 있다.  베르그송 “인간은 지혜의 동물이 아니라 제조동물이라”고 하였다. 지혜로운 동물로 진화된 인류가 마침내 우주를 놀래울 창조 동물로 거듭난것은 축복받을 일이기만 한것인가?     례하여 핵시대를 열면서부터 핵기술은 막대한 에네르기로 많은 편리를 가져다 주었지만 사람들을 대량으로 도살할수도 있다는 악과도 그 속에 배태하였다. 날따라 비약하는 과학기술성과 무절제한 리용으로 자초한 전 지구적인 피해는 과학의 륜리성 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고 지성적인 학자들이 아우성치고있다. 과학기술이 합리적이기는커녕 국가권력과 자본의 지배수단이라고 보면서 과학기술 가치를 근저로부터 문제시하기 시작한것이다.     과학기술이 제기하는 철학문제는 결국 어떻게 하면 인간과 인간생존의 기본인 자연환경을 조화시켜 기술의 무리한 지배를 자제하고 원초적인 인간성을 회복하느냐 하는 생사관두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있다. 기술의 량면성은 마침내 인간사회에 곤혹을 안겨주었고 그에서 과학에 대해 새롭게 사회학분석이 나왔다. 과학기술은 보편적이고 합리적인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물 즉 인공물(人工物)이라고 보기에 이르렀다. 이는 총명한 인류가 창출한 이률배반이 아닌가? 과학자들은 기술은 가치문제에는 련관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만 관계한 다고 말한다. 동물의 본성과 본능을 륜리적으로 평판할수 없듯이 기술과학에 대해 륜리가치를 적용하는것은 과학의 발목에 잡는것이라고 역설한다. 구쏘련의 수소폭탄 의 아버지로 불렸던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쁘는 생전에 “나는 핵실험뿐만아니라 핵개발 사업전체의 범죄성을 점차 리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좀더 넓은 인간적 견지에 서 핵문제와 다른 세계문제들을 바라보기시작했다”라는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그의 성찰처럼 고기술문제는 달리 제기된다. 고기술에 륜리와 도덕이 선행되였 던가? 그 자체가 어떤 나쁜 의도를 갖고있지 않기에 모든 령역에서 가능껏 발전 하도록 추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엔 고기술이 너무 앞질러 가버렸고 너무나 참혹한 비극을 빚어가고있을 때 인간륜리가 과학령역에서 어떤 역할을 할수 있을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인공지능학자. 제리 카플란은《인간은 필요없다》에서 ‘(일 하는) 인간이 필요없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2015년 1월에 열린 스 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인공지능과 로보트기술의 발전에 따라 2020년까지 510만개 일자리가 사라질수 있다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일해야 하는 인간이 필요없는 미래 시대라면 조만간에 인간이 기계를 위해 일하게 될것이다.     과학자들은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위험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라고 지 적하면서 기술발달의 불확실성과 통제불가성은 커지는데 반해 이를 제어할 인류의 능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단언했다. 보스트롬소장은 "마치 어린아이 손에 총을 쥐여준것과 같다"며 "기술적능력은 어른이지만 이를 다룰 도덕적책임감은 유아수준" 이라고 비유했다. 과학의 무제한적 발전과정에 어떤 제동장치를 설치할수 있을가?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과학자들의 조언은 무엇일가?     기술의 가치중립성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과학발전 자체를 막을수 없다. 인간은 이미 수요층차를 넘어서 무절제하고 사악한 욕망으로 내달리고있다. 과학기술에서 도덕은 배제되여야 하는걸가? 인류에게 복음을 가져다 준 과학이 되돌아와 륜리규범 으로 여타동물과 본질적 구별을 하게 된 인류에게 그 취지와 전혀 다른 악순환을 불러왔으니 이제 되돌아갈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확답을 못할것이다.      현재 결과가 어떠하든 모든 조리있고 목적있는 전제에서 벗어난채 기술은 그저 앞으로 전진한다. 대륙간탄도처럼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디로 그리고 왜가는지도 모르 는채 기술은 앞으로 전진한다. 이것은 자가당착이다. 문명해질수록 인간은 자멸을 촉진해 왔고 바야흐로 가속화하고 있기때문이다. 과학기술이 도덕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 사악의 제조공장이 되는데 스스로 막다른 골목으로 뛰여들었 으니“인류의 구세주는 어디에 있는가? “인류는 과연 21세기가 끝날때까지 살아남을수 있을가. 또 인류 멸종까지 야기할수 있는 최대위협은 무엇일가?” 라는 납함이 더욱 높아지고있다.     근대전쟁에 사용된 대량살상무기와 도살, 무지경의 산업화가 초래한 지구촌의 참상을 두고 사회적비판의식이 날로 팽배하고있다.극도로 총명해진 인류는 문명이라 는 미명하에 질서를 유지해 나갈수밖에 없다고 설득하며 자기행위를 정당화하고 있 지만 창과 방패를 들고 침을 튕기며 력설하는것과 같다.     물론 과학기술이 없는 인류문명사란 상상할수 없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연약한 대신 발명창조의 지혜를 가졌기에 만물의 령장으로 군림하게 되였다. 원시적기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성에서 벗어나 자연을 지배하게 하였고 고도의 기술문명은 자 연을 재배치하기에 이르렀다. 도리는 너무나 자명하지만 반대로 스스로 극복할수 없는 인간조건의 모순을 드러내였다. 환언한다면 인간은 바야흐로 화를 자초하고 있다는것이다. 돌고 돌아서 결국 물극상반인 우주의 철칙을 벗어날수 없게 된것이다. 과학자들의 시뮬레이션 결과 짧게는 35년, 길게는 45년안에 인류는 고지능 인공 지능에 의해 멸망한다고 한다. 수십번이나 조건을 달리하며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 과는 항상 인류멸망이였다. 리유는 단하나! 인류가 인류의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 다. 결국 합리적인 인공지능은 지구를 위하여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결심하게 된단다. 우리는 이미 인류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험대위에 올라서 있다.                                            2009 년 11월 20 일 초고, 2016년 6월 20일 (수정보충)
758    문화의 실총과 총애의 문화 댓글:  조회:4127  추천:0  2016-08-10
                                              문화의 실총과 총애의 문화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문화의 내함이 더없이 풍부해지고 또 그만큼 각양각색으로 해석되고있는바 현재 문화에 대한 정의가 5백개도 넘는다고 한다. 이것은 문화에 대 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수 없다는 말이 된다.     문화개념이 어떻게 해석되든 결국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나뉘여지고 정신문화도 아(雅)문화와 속(俗)문화 혹은 정영문화, 대중문화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 영문화 혹은 대 전통문화는 지식계층의 규범문화에 속하며 대중문화 혹은 소 전통문화는 곧 인민군중들속에서 자발적으로 산생된 비규범성문화이다.     어쨋거나 문화가 보통명사일 때 옹근 인류사회력사의 유전을 가리키고 하나의 복수명사로 될 때 력사유전중의 모종 특수한 부분을 가리키는것으로 리해하면 될것이다. 만약 문화의 정체를 립체적계통으로 볼 때 문화결구의 세개 층차에서 핵심은 심리층차부분 즉 문화심리상태이다. 이에는 가치관념, 사유방식, 심미취미, 도덕정조, 종교정서, 민족성격 등이 포괄된다.     인간은 문화의 존재이다. 인간은 문화의 창조자이면서도 동시에 문화에 힘입어서 산생되였다.  이것을 “위대한 인과순환계통”이라 한다. 인간이 문화양상을 결정하지만 문화는 되돌아와서 인간적모습을 부각해준다. 문화의 각도에서 볼 때 매개인은 문화에 의해 결정되고 연후에 문화의 창조자로 될수 있다.     격변시대,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의 변화에 따른 문화생활, 정신세계의 변화는 불가피적이고 불가역전적이다. 문화발전의 네개 층차에서 첫층차는 물질층차이고 다음으로 제도층차, 풍속습관층차, 사상과 가치층차이다, 이런 변화는 물론 먼저 대중문화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시대에 진입하여 사람들의 생활방식, 심미정취, 도덕표준 나아가서 가치관념 등에서의 변화가 우리에게 일종의 불안감과 위기감을 주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시장경제의 충격파앞에서 사람들은 화페의 이난성(两难性) 즉 “문화가 돈에 의거할것인가, 아니면 돈의 속박에서 해탈할것인가?”하는 모순에 직면하였다. 정영문화의 위기는 결과적으로 “화페”와 “문화”의 관계에서 기인된것이다.이는 문화학, 문화현상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문체의 하나이다. “공방형”자체는 워낙 무가치하지만 그 역시 일종 문화상징부호이다. 그리하여 현대세계성문화형성에도 화페라는 이 상징부호공능의 강화의 확대가 수반될수 밖에 없다.     아닌게아니라 돈냄새에 취한 사람들이 “문화”의 실천능력에 편중하고 집착하다보니 고귀한 생산성문화가 실총당하고 대신 비생산성문화가 각별히 총애를 받고있다. 이른바 “생산성문화”란 “랑비문화”, “오락문화”등을 포괄하는 “비생산성문화” 범주에 상대하여 하는 말로서 결코 경제의의상의 생산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며 또한 직접적인 물질적리득을 의미하는것도 아닌 정신문화를 가리킨다.     여기서 “생산성”은 “창조성”, “리성” 및 세계에 복리와 재부를 증가하는것을 의미한다. “생산성문화”는 자체의 내함과 광범위한 특질과 사상소재로 하여 사람들에게 인도적행동방향 강대한 행위동력을 가져다주며 그로부터물질과 정신층차상에서 일종 관리에 부합되는 리성적가치를 표현한다.     생산성문화가 발달한 민족과 지구에서 사람들은 정신과 물질상에서 풍성함을 감수하게 되며 선택의 다양성이 가능해진다. 생산성문화야말로 인간의 정신에 동력학적 효응을 가져다주는 문화이다.     문제는 새시대, 시장경제의 격류속에서서 자맥질하는 국민들이 일조일석에 문화의 귀중함을 절감하고 문화인으로 환골탈태한듯이 너나없이 다투어 “문화”향수에 심취되여가는 현상이다. “풍조문화”시대라고 할가? 그러나 기실 엄격한 의미에서의 풍조문화차원에도 미달이고 사람들이 심취되여 들어선 곳은 오히려 “생물문화위기”구역 이라 해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동기와 정감, 가치, 목적 등 방면에서 동시에 생리와 문화 이 두가지 력량의 모순충돌속에서 우왕좌왕하고 망연자실해하고 있기때문이다.     흥성하는 문화의 충격속에 실총당한것은 경전문화ㅡ정영문화이다. 일찍 력사의 진전에 영향을 주었고 전통적지식, 가치리념, 사상체계를 수립해준 경전문화의 주요한 특징은 거대한 력사적관성이다. 경전문화의 독립성과 온정성은 바로 이런 력사적 관성 즉 력사선택의 전통력량에서 왔으며 그로써 확보되였다. 그런데 물욕이 횡행하 고 한탕주의가 살판치는 현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화폐의 이난성앞에서 막무가내하게 색바래고 있으니 심히 개탄할 일이 아니랴!     이른바 총애의 문화란 곧 음주문화, 식문화, 거피문화, 차문화, 복장문화, 거주문화, 개고기문화 심지어는 성문화, 변소문화 등 온갖 잡다한 실천문화로서 한창 만방에 향기를 풍기고있다. 옛문화고국이 동산재기한듯 문화풍경에 눈이 확 트인다. 거리에 나서면 온갖 유흥업소의 간판들에 “쉐익스피어술집”,“괴테노래방”, “신사다방”, “숙녀안마방”등 동서고금의 유명짜한 문화상징어들이 보란듯이 붙어서 문화냄새를 물씬 풍기는가 하면 개고기보신탕집에 “개고기살롱”이라는 이름까지 나붙는 판이니 가관이 아닐수 없다.     그야말로 곳곳에서 중국특색의 현대문화경관을 이루고있다. 남녀로소가 갑자기 각성하여 국수를 발양하는지 보이느니 “××활동실”이요 들리느니 마작을 옮겨 “새 장성”을 쌓는 소리이다. 이런 대중문화는 고루하지만 총애받은 현대문화로 부상된 것이다. 성시의 대중문화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 가정에도 침투되였다. 그것은 서로 닮아가려는 시민의식과 무주견성을 리용하여 영원히 엉킬수 없는 모래알로 만들어버리고 아무 계통성도 없는 주견과 생활가치기준을 가지도록 개변시켜놓아 동일함을 추구하는 의식과 한가함을 달래는 보편적수단이 된것이다.      대중문화는 총애의 문화로 되였지만 또한 어제의 취미를 가장 쉽게 잊게 하며 아무런 사색도 없이 오늘의 취미속에 말려들게 한다. 물론 대중문화는 응집력도 있어 끊임없이 화목과 친선을 창출해내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속에서 도취되게 하지만 거개 일종의 가상적대명사로 되였다. 그것은 환상중에서 마를줄 모르는 영양소를 얻고있다. 총애문화의 오락방식은 모두 환상의 후과를 야기시킬수 있다.     총애문화의 환상성은 주요하게 환상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이끌거나 실현할수 없 는 다른 설계도를 그리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그 환상 자체가 벌써 생활내용에서 비상히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데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활의 프로그람에서 한단락을 차지하고 있고 그것의 마취성분에 사람들이 인이 박히게 하고있다.     반면에 성시 대중문화는 항구적이 못된다. 한것은 경박성을 띠고있기때문이다. 그것이 열중하는것은 축하연이지 장례식이 아니다. 이런 문화에는 영원히 비극의식이 결여되여있는바 자체에 경방성이 고유해있으며 천박한 원인도 그에 있다. 성시대중문에 만약 우연히 엄숙한 의미가 담긴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불만이거나 그로부터 터져나오는 발설로서 태반이 현실적향수에 대한 지향을 방애하는 외부세계이고 그에 속박당하지 않으려는 심령 자체이다.     총애의 문화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바 절대 사고에 빨려들지 않는다. 그것은 사고하지 않기에 사고를 배척하며 또한 사고할 힘도 없다. 바로 그때문에 성시대중문화에서 영원히 진정한 철학이 나올수 없는것이다. 총애받는 대중문화에서 가장 결핍한것은 독립적인 견해로서 성시대중의 맹목성과 수의성은 어떠한 독립성적인 견해든지 거부하며 심지어 저들의 안일한 생활방식에 대한 폭로와 종종의 비평도 거절해버린다. 총애받고있는 성시대중문화는 온갖 용속한것을 키워내는 온상이다. 그것은 대중이 환영한다는 명의로 비평의식을 눌러놓는다.     젊은세대의 사람들은 지금은 감각시대이고 감각을 따르던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자랑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름다운 오해이다. 문화의 일종으로서 “감각문화” 라는 개념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한 사회학가는 력사운동의 본질을 론하면서 력사발전이란 곧 “감각적문화와 관념문화”간의 련속적이면서도 불규칙적인 파동이라 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감각문화는 일체 표달방식(예술, 문학, 종교, 법률, 륜리, 철학, 교육학, 미학과 사회관계) 에서 감각을 얻을수 있고 거기에서 감각의 수요와 념원을 만족시키는 문화이다. 감각문화는 사람들이 오인하고 있는것처럼 감각의 력량을 강조하는것이 아니라 일종 리론문화류형을 구분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있는것이다.     현재 도시대중문화의 영향하에 시민들의 감각은 오색잡다한 자극물에 침점당하고 시민들의 지혜는 오색령롱한 류행과 견해들에서 랑비되고있으며 시민들의 리성은 아롱다롱한 관념에 의해 무너지고있다. 산만하고 잡다하며 둔감하고 빈약한것이 흔히 아롱다롱한 색채로 도금된 도시대중문화표상 배후의 정신실질이다.     시민들이 선호하는것은 풍조와 류행 행위에서 구성되는 심리문화현상인 풍조문화로서 소비, 복장, 심미, 교제, 직업활동 등에서 피차간에 어슷비슷하게 변화되는바 일종의 취미, 류행옷, 생활방식 등 구석구석에서 중복되고이는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수도 있다. 도시대중문화는 어디에 없는 곳이 없다. 그것은 정신상 아무 방비능력도 없고 제어능력도 없는 도시민들을 선풍마냥 휩쓸어버린다. 이렇듯 도시대중문화의 급 변과 과잉후과는 시민들의 정신생활을 날이 갈수록 더욱 창백하게 만들고있다.     도시대중문화는 이미 일부분 시민들로 하여금 누구를 따라 해야 할지 모르거나 혹은 아예 자기를 봉페시키고 자기에게만 속하는 생활권을 건설할 필요마저 느끼게 하고있다. 저질적인 도시대주문화는 불가피면적으로 전면적으로 적치되고 체화된 하나의 력사계단에 진입하였으며 쇠락시기에 들어섰다. 사람들은 조만간에 도시대중문 화에 대한 맹종과 추구야말로 한바탕 헛되이 정력을 소모한 생명랑비였음을 깨닫게 될것이다.     이를테면 유흥과 오락같은 문화활동따위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가치도 남겨주지 않을것이며 기억속에 남아있지도 않을것들이다. 이러한 도시대중문화는 사람들이 너무 밀집하고 지나치게 호상 영향을 준 산물로서 일종 공간감각도 없고 시간지속성도 없는 문화이다. 그러나 도시대중문화는 신기한 오락과 자극성을 추구하는 무수한 시민들을 흡인할것이며 또한 상당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권태를 느끼게 하고있다. 그들 은 이제 더는 대중문화의 조종하에 주견을 상실한 문화동물이 되기를 원치않는다. 하여 자아도취의 개체문화권을 구축하려 하고있다. 이를테면 다시 열독경지에 잠기거나 꽃을 가꾸며 즐기거나 컴퓨터로 채팅하는 재미에 빠지거나 게임을 하는 등등 자족자득의 생활방식을 즐기려 하는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인 버나드 루쎈버그드도 “대중사회에 부족한것은 단조롭고 평탄하고 용속하며  상실된 인성과 부유한 생활에서 기인된 유혹과 고독감”이라고 지적하면서 영화, 텔레비죤, 라디오방송, 신문, 잡지 등 대중문화매체를 통해 전파되고 표현되는 이런 대중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생활속에서의 망연함, 고독감과 생존위기 감을 잠시적으로 극복하게 할수는 있으나 반면에 인류문화의 진정한 표준을 낮추게 할수 있으며 기나긴 력사의 흐름속에서 사람들의 이화를 가심화할수 있다고 피력했다     총애문화와 실총문화의 병존현상은 우리에게 심사숙고와 우려와 더불어 오도되여 곁길로 빠지는 문화를 어떻게 바르게 신장시킬것인가 하는 이 시대의 난제를 제기하고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사랑하는것은 문화 자체가 아니라 문화속의 리용가치이다. 저층차적문화가 총애를 받게 된것은 진정한 문화로 말하면 일종 재난이 아닐수 없다.     지금은 일반 고중생, 대학생들속에서 세계명작열독은 문화고갈의 시기에나 있을 법한 문화향수로 간주되고있다. 이른바의 한류(韩流) 의 격랑속에서 고중생들의 애독물은 만화이다. 연변1중의 대문가에 자리잡은 “학우서점”에 한참 앉아 관찰하노라면 21세기 고중생 들의 열동흥취와 범위, 문화관념, 가치취향을 단층적으로나마 일별할수 있다. 필자가 이 5년가 사립학교에서 고중생들을 가르치면서 심각하게 느껴진것은 세계명작열독이 완전히 전 세대들의 특허권이였다는것이다. 물론 대상이 지력층차상 매우 낮은 학생군체이지만 단면적으로나마 오늘 세대들의 문화자률성이 얼마인지 가늠할수 있었다.     진정한 문화가치는 비참하게 실총당하여 나날이 망각되고 만구할수 없을 정도로 류실되고있다. 서점가에 한번 가보라. 고중입시, 대학입시준비에 속이 달아올라서 참고서적따위나 찾는 중학생들이 간혹 보이고 보귀한 정신량식을 보충하려고 찾아오는 어른들은 가물에 콩싹나듯함을 볼수 있다. 도서관에 가보라. 한적한 도서관엔 그야말로 고상한 한적함과 고즈넉함이 사람을 질식시킬듯 한다. 그러나 노래방, 사우나, 찜 질방, 안마방, 술집에 가보라. 그야말로 온 민족이 현대문화생활을 만끽하는 기꺼운 경상을 보이고있다.     문화전변기중에 사상이 혼란되고 시비가 불투명하며 물욕이 횡행하는 문화단렬현상이 있게 되는것은 세계적조류이고 사회발전에 부합되는 새로운 문화인소라고 볼수도 있겠다. 그리고 문화일반에서 말할 때 문화가 시장속으로 들어가는것이 일종 자체 해방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해방을 얻음과 동시에 발전과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 다만 사람들을 놀래우는 거폭의 알락달락한 문화기발과 돈벌이를 위한 유혹적인 외투가 행진하게 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새의 날개에 금덩이를 달아놓으면 새는 다시 날지 못한다.”는 인도 시인 타고르의 명언이 있다. 사실 총애의 “문화”가 향기를 풍 길수록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은 날이 갈수록 색이 바래지게 되고 원래부터 여린 문화의 꽃을 무정하게 스러지게 한다.     당대미국의 인류문화학가이고 사회심리학가인 엠. 미드는 자기의 저서《문화와 승낙》에서 문화를 세가지 류형으로 나누어 천술하고있다. 첫째류형은 “전유(前喻) 문화”로서 젊은일대들이 로일대에게서 따라배우는것을 특점으로 하는 원시적문화이 고 두번째는 이른바 “동유( 同喻)문화”로서 매 동시대인들이 동년배에게서 배우는것을 특점으로 하는 문명력사이래의 전통문화이고 세번째로는 이른바 “후유(后喻)문화” 로서 로일대가 새 일대들에게서 배우는것을 특점으로 한 당대문화이다. 미드는 이런 문화류형의 변화로써 현대문화의 독특성을 강조하면서 당대문화에서의 “세대차이” 의 산생과 해결방법을 탐색하고있다.     조기문화학자들은 문화의 진화률을 제기했고 현대의 공능파학자들은 또 문화의 과정률을 제기했다. 현시대는 문화침입의 시대, 문화전파의 시대, 호상화시대, 문화돌변의 시대, 문화대체시대, 그에 수반된 일종 문화의 위축 내지는 퇴화의 시대, 문화해체의 시대라고 개괄할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전통문화는 소외당하고 외래문화가 총애를 받게 되였는데 이는 일종의 진보이면서 일종의 퇴보이기기도 하다. 문화생 태에 심각한 불균등이 생기는 근원은 공리주의에 있는것이다.     시쎌로는 “지혜의 문화는 곧 철학”이라는 글에서 “지혜문화내용은 인간의 내재세 계를 개조하고 완선화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리상적공민의 소질을 구비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현시대 사람들이 사랑하는것은 문화 자체가 아니라 문화속에의 리용가치이다. 이러한 “문화군”은 소중할것이 없으며 소비에서 소비로, 향락에서 향락으로 그치고말것이다.     여기서 우리 중국에서 정영문화의 생장점문제가 나선다. 번창하는 대중문화속에 서 우리 민족문화, 정영문화의 새로운 생장점을 찾는것은 현시대 모든 지식인, 문화인들의 시대적사명이다. 그러나 새 시기 많은 문화인재들이 문화진지를 떠나 “경제전선”에서 생존권을 개척하고있다. 그리고 수많은 문화단위들이 생존난으로 상품경제의 물결속에 뛰여들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력대로 청고하고 숭엄하던 음악단체나 예술단체들이 한때 기업에 “출가”한 문화현상이 기억에 생생할것이다.     문예지들이 경제난에 헐떡거린다. 전국의 그많은 잡지들이 평균발행부수가 3천부 를 넘지 못한다니 우리 민족문자로 된 문예잡지들의 현황과 운명은 더 말할것도 없다. 누구의 발명창조인지는 몰라도 미명 한번 좋은 “젖떼기(断奶)” 정책은 기실 정부차원의 문화소외이다. 순 문학잡지의 발행부수가 늘어나지 못하는것이 소위 “문학의 본연에로 돌아와 ‘가슴’,‘하신’으로 창작한다는 ‘미녀작가’들의 야비한 짓거리처럼 자아표현을 위해 작품을 쓴다는 상아탑속의 문인들이 쓴 작품의 질탓이라고 한다면, 작가들의 출판난과 매출난은 독자대중의 문화가치관념의 변화탓이라고 한다면, 총체적출판업의 경영난은 누구의 탓이라 해야 할가?”     인간의 의의와 인간의 문화수요가 모두 물질욕에 귀속된다는 그 자체가 벌써 이 시대의 비극이며  우리 모두의 비애이다. 이 비애를 해결하는 기본고리는 총체상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법률체제의 혁신문제로부터 입수하는데 있으며 “화페”의 기제 가 더욱 구체적이고 합리한 문화부축정책을 체현하는데 있을것이다.                          2005년 7월  15일            
757    《나》는 무엇인가? 댓글:  조회:3875  추천:0  2016-08-10
                                                  《나》는 무엇인가?       흔히《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에《나는 나이지!》하고 호기를 부릴수 있겠지만 스스로《나는 무엇인가?》하고 자문하면 대답이 퍽 궁색해진다. 전반생은 농민이였다고, 후반생은 교원이였다고, 지금은 성쌓고 남은 돌신세가 된 일개 로옹이라고 대답해야 정답이라고 할수 있을가?     하지만 어느 하나로 자기를 딱 소리나게 개괄해내지 못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이 세상의 그 많은 모든 “나”는 시공간의 변화속에서 존재할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인생길 굽이굽이 한갑자를 돌아서 생의 막바지에 올라 차분히 자신을 정리해보면 자기를 잘 알고있다고 가볍게 생각해온것이 심히 부끄럽다.     기실 자기를 잘 안다는 대답의 절반은 자신심에서 온것이고 다른 절반은 이른바 겸손에서 오는 말로서 자기를 똑똑히 안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로자가 “남을 알면 지혜요, 자기를 알면 밝음”이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자신의 옹근 총명과 맞먹는 복잡한 인생계산식을 풀었다는것과 같은것이다.     똘쓰또이는 한 사람을 분수라 할 때 분자는 그의 실가치이고 분모는 그가 느끼고 있는 가치라고 했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들 거개가 자기를 흥량하는데 아주 너그러워서 실제보다 높이 본다. 가진것이란 몸에 때밖에 없는 아Q 씨마저 “자신이 이를 씹는 소리가 왕텁석부리보다 더 요란하다.”고 긍지를 느끼고 있음에랴     사람은 워낙 이왕보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거나 조금 명성을 얻게 되면 자기를 보는 눈이 더 높아지는 법일가?     우선 나 자신이 그렇다. 간혹 사람들이 나를 “지식분자”라고 하는데 내가 정말 지식분자가 옳기나 한가? 일정한 문화과학지식을 가진 뇌력로동자를 지식분자라 한다면 나도 명색이 지식분자일듯싶다.     그러나 진정 의미에서이 지식분자란 얼마나 어마어마한 칭호인가? 서방에서 말하는 지식분자는 비교적 많은 교육을 받았고 일종이 전업일터에서 헌신하는외에도 강렬한 책임감, 사회량지와 정의를 신장하려는 정신 등을 구비한 지성인이다. 한마디로 지식분자는 사회의 량심인것이다.     또 다른 설법에 따르면 지식분자는 독서인일뿐만아니라 거기에 독립정신과 창조능력을 구비하여야 하고 반드시 사회의 비판자, 아주 가치있는 반대자여야 한다. 로신은 “진정한 지식분자는 사회에 대하여 영원히 만족하지 않고 감수는 영원히 고통스러우며 보는것은 영원한 사회페단이므로 장차 희생할 각오도 가지고있다.”고 하였다.     고대희랍의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제정로씨아의 라지쎄브를 비롯해 체르늬쉡스끼, 12월당원들…프랑스의 졸라, 그리고 로신, 고준, 장지신 등이야말로 진정 리상을 위해 살았고 현실의 암흑과 비리와 싸운 명실상부한 지식분자들이며 인류의 정화들이다.     지식, 문화, 신앙을 지식분자의 3대요소라고 한다. 나름대로 거기에 보충한다면 바로 용기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약간한 지식도 문화소양도 있고 모종 신앙심도 조금 갖추었지만 내게 부족한것이 바로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용기이다. 그러니 나는 한갖 이 세상에 이름없는 소지식인쯤이나 될가?     누군가 어떤 장소에서 나를 일러 수필가니 소설가니 할 때 처음엔 등허리에서 무엇이 스멀거리는감을 느꼈지만 거짓말도 천번 하면 참말이 된다더니 그것이 화자가 례의적으로 한 말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럴만하게 들어넘기였다.     지금은 전대미문의《명인시대》이고《××가》의 시대인같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무슨 “××가”인가? 근근히 글줄이나 끄적거리는 말단기고인이 아니던가? 가령 나같은 글쟁이 정말 무슨 “××가”라면 이 세상엔 “××가”들이 곳곳에 득시글거리는 패덕자들보다 더 많을것이 아니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칫 교오로 오해될수도 있는 지나친 겸손일지 모르나 록록한 학생들앞에서도 “나 작가야!”하고 흰소리를 쳐보지 못했다. 지각한 작가지망생이던 때까지도 작가를 하늘만큼 우러르며 불가접근의 존재로 여겼던 나이다. 지금은 작가라면 소학생도 별로 눈이 휘둥그래서 쳐다보지 않지만…     하다면 자신을 무조건 폄하하는것이 자신에 대한 옳바른 평가일가? 물론 아니다. 사람들이 몇번인가 “××가”라고 치켜올릴 때 나는 한번도 즉석에서 아니라고 겸양해 본적이 없다. 이것은 바로 분에 넘치는줄 알면서도 은근히 자기를 높이 보고있다는 반증이다.     문화인으로서의 이런 허명이 물론 다른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 마치 대중에게 미안할만큼 미운 녀자라도 한마디 예쁘다고 칭찬해준다면 그녀가 당신을 절대 욕하지 않는것처럼 말이다. 그렇듯 사람마다 도취감이 있는 법이며 바로 그때문에 제 잘난 멋에 살아가는 재미가 하냥 늙지 않는것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 했을 때는 좌우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내노라 하며 떵떵거리지만 기실 차지한 그 위치에 높았던것이지 결코 그 자신이 대단한것이 아니요 엉덩이가 도금되였을뿐이지 그 자신이 환골탈태하여 풍골이 된것이 아니다. 물론 그 자신은 어깨가 높아있겠지만 그를 론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은 공정한법이다. 물론 당면에서 보는가 배후에서 보는가가 다르지만도,     비유하건대 한 난쟁이가 백두산 산정에 올랐다면 높이 보일지는 몰라도 그 자신이 키다리가 되여진것은 아니요 골짜기에 선 거인이 난쟁이를 보려한다면 쳐다볼수 밖에 없으나 그 자신이 왜소해진것은 아니지 않는가?     바로 여기에 가변성을 고유한 위치의 오묘한 변증철학이 담겨있는것이다. 영예는 늘 과거의 등에 업혀있다. 지위도 널뛰기처럼 한쪽이 솟구치면 한쪽은 떨어져야 한다. 직업은 바뀔수 있고 권세자도 나중에 백성이 될수 있다. 명예도 그 순간이 지나면 과거에 대한 기록일뿐으로서 현재의 그를 의미하지 않는다.     별로 복잡하게 생각할것 없다. 쉽게 이발로 비유해보자. 이발이 잇몸에 단단히 박혀있을 때는 시고 달고 땅땅하고 무른 온갖것을 잘도 씹어주며 제구실을 하지만 삶은 콩도 씹을수 없을 정도로 거들거리거나 아예 하강(下崗)해버리면 한낱 뼈쪼각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고말지 않는가?     그런데 농촌에서 한번 생산대장을 하면 평생 허대장, 백대장으로 불리듯이 진작 자리를 내놓았는데도 정국장이니 한주임이 하는 호칭을 불러주면 당사자는 귀맛좋게 듣는다. 총리질하다가도 물러나면 백성으로 되는 선진국과는 별개인 인문환경탓일가?     “나는 무엇인가?”하는 자문에 가장 좋은 대답은 우선 인간이였고 향후에도 인간이라는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설사 그가 위인이였든 민초였든 그 가 없이도 지구는 의연히 돌아가고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식욕을 느끼고 성유희를 놀것이다.     3황5제이면 어떻단 말인가? 천하를 호령하던 진영정이면 어떻단 말인가? 죽은 후에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지면을 좀 많이 차지하고 있을뿐이고 역시 살은 썩고 백골이 진토되여 탄수화합물로 합성되지 않던가? 일대의 천교도 류성처럼 사라진 과객이였거늘 자고로 뒤에 오는 사람들은 담담한 기색으로 선인들의 해골을 밟고 지나왔다.     남이야 나를 무엇으로 빚어주든간에 뭐라고 품평하든간에 그동안 빚어온 진실한 인간상만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잠간 남아있거나 아니면 곧바로 잊혀질뿐이다. 그것을 스스로 알고있어야 하건만 우리 동양인들은 그런 자각과 자률을 알려고 하지 않는게 통병이다. 기어이 스스로를 높이 모시려 한다면 무거운 기억의 보따리를 걸머지고 촉박한 인생길마저 헐씨근거릴것이다. 번져보아도 뒤집어보아도 빈대떡은 그냥 빈대떡인것처럼 “나”는 나대로일뿐이다. 막차는 이미 떠났다. 남은것은 미구에 사라질 한오리 연 기뿐이다.     어제의 자신에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겠다. 세상에 보이고있는 지금의 내 인간상이 요긴하다. 오로지 자신만일 때 가장 나 자신다운 모습이거늘…                           2006년 7월 20일 
756    슬픈 궤적 댓글:  조회:3688  추천:0  2016-08-10
                                                                             슬픈 궤적         자고로 문인에게는 오기가 넘치되 골기는 오히려 부족했다. 그런 심리장애가 있 었기에《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는 문화병이 생겨나 오늘까지 와전되고있다 원래《문인상경(文人相輕)》이란《소명문선(昭明文選)》에 처음 쓰인 단어인데 당시 해석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고 한다. 로신은      《차개정문집》에서 “문인상경은 국외 인(局外人) ”혹은 국외인인체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만약 자기가 내항에 든 사람이라면 곧 “경”을 당했거나 남을 “경”한 사람일것이기에 결코 대등함을 나타내는 “경”자 를 쓰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어찌할수 없을 때에는 이 네글자로 덮어감추는데 그것은 도망하는 길이며 또한 전술이기도 하다. 하여 사람들은 그냥 이 요어(要語)를 좋아하는것이다.”라고 쓰고있다.     어떤 사람은《상경》이 절대적으로 나쁜것은 아니라고 한다. 말하자면 문인은 마땅히 진리감과 시비관이 있어야 하느데 모종 의의에서《상경》은 개성과 사상의 표현 이라고 말하고있다.     시비야 어찌 갈리든간에 기실 “문인상경”은 대단할것이 없는바 서로 경원시하고 비하하면서 시야비야 후론하는데 그치고만다. 요는 바로 상경심리병이 골수에 사무쳐서 리지를 잃을 정도로 극심화되고 어떤 기후를 만나면 승격되여 끝내는 피를 보고야 마는 문인상잔(文人相残)이다.     어떤 지자가 중국의 력대문인들의 상잔사(相慘史)를 아래와 같은 세가지 원인으로 해석하고있다. 첫째로 모든 인간심령의 암증인 질투심때문이였다. 례하여 당송8대가의 한사람인 소식의 문재가 너무 뛰여나 은근히 질투하고있던 사악한 문인나부랭이들이 그의 한 시문에서 꼬투리를 잡아쥐고 크게 문장을 짓는바람에 시인은 투옥되였고 나중에 옥중에서 자결할번하였다. 그런 용렬한 문인들에게 차례진건 병태적인 복수심리의 만족이였으련만 왜 그렇게 혀까지 빼물고 바락바락 악을 썼을가?     중국력사상에서 문인끼리 못살게 군 첫사건은 공자가 사관벼슬을 한지 7일만에 소정묘를 죽인 일이라고 한다. 소정묘는 로나라에서 공자처럼 학교를 꾸리고 글을 가 르쳤다. 소정묘의 서당에는 학생이 넘쳐나고 공자의 서당은 텅 빌 때가 있었다. 공자가 소정묘에게 씌운 죄장은 다섯가지였지만 기실 한마디로 사상과 언론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이 력사사실에 대해 줄곧 의혹을 가지고 의론이 분분하지만 이 사건의 문화 적의의는 력사실보다 더 심원하다. 바로 그때로부터 누가 학술관점이 다르면 누가《소정묘》로 되여졌기때문이다. 악명높은《분서갱유》도 실은 진시황의 총신이였던 리사가 당시 진나라 유림들과 버성기다가 마침내 앙심을 먹고《상잔》을 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도 간신 조고의 “상잔”으로 요참(腰斬)을 당하고말았으니 죄는 지은데로 가는 법이 아니겠는가?     둘째는 정치기후의 악성적인 변화에 따라 상잔하게 된것으로서 가장 돌출한 실례로는 청조의 건륭, 옹정시기의《문자옥》인데 그때 얼마나 많은 한인선비들이 목을 잘렸는지 모른다. 문인상잔사에서 가장 무시무시했던것은 명조말기의 동림제현 (東林 諸賢)과 원대성과의 상잔이라고 사서에 기록되여있다.     셋째는 독재자의 지시에 맹종하여《상잔》하는것인데 이를테면 지난세기 50년대 말기의 반우파투쟁이였다. 소위《반우파동원령》이 인민일보에 발포되자 젊은문인이든 늙은문인이든 저명한 문인이든 무명소졸이든 덕망높은 사람이든 품질이 저렬한 작자이든 명령일하에 맹장마냥 전마에 뛰여올라 서로 시살했던것이다.     리성을 잃은 문인들만큼 무서운것이 없었다. 기탄없이 호상 검거적발하는 열풍에머리가 뜨거워져서 극히 사소한 문제도 무한히 강(綱)에 올려놓고 수술칼을 들이대는악착한 짓거리들이 비일비재였고 반드시 죄가 있어야 한다는식으로 날조중상하는 문인망나니들의  원형이 드러나기도 했다. 처음엔 남을 잡아내고 쾌재를 불렀지만 그 여흥이 사라지 기전에 제 자신도 결국 잡혀나와 가슴을 친 사람들이 많았다. 남잡이가 제잡이가 된다는 도리를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있었을 문인들이 그러하였으니 실로 회색유모아가 아닌가?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밝혀진 비밀이지만 원래는 순박해 빠진 문인들이 제 열정에 들떠서《운동》을 고조에로 끌어올리고 돌을 들어 제발등을 깐것이였다. 문헌기 재에 의하면 로신의 부인 허광평과 문일다의 부인 고진이도 반우파의 급선봉으로 충당되였다. 한평생 진리의 투사로 싸운 두 선생이 구천에서 개탄했을 일이 아닐가?     그때 오직 남은것이란 맹목적추종과 관능적인 공포증과 마비돼버린 심령속에서 분출한 광증뿐이였다. 침으로 무시무시한 악성순환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서리발치는 칼을 들고 다른 사람의 등을 찌르려 할 때 다른 사람도 칼을 벼려들고 호시탐탐 한다는것을 몰랐던가? 먼저 칼을 놓은 사람이 부처님이 될수도 있었으련만 아무도 손에서 피비린 칼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옥석구분으로 되였으니 이 얼마나 슬픈 력사의 궤적인가?     인류의 력사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과거에 발생하였던 사실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문자 혹은 기타 부호로 썼거나 혹은 제작해낸것이다. 그래서 호적선생은 력사란 아무라도 치장해놓을수 있는 소녀와 같다고 했는지 모른다. 력사는 승리자가 쓰기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승리자가 가능하게 래일의 계하수로 될수도 있다는것을 부디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영웅도 그렇고 평범한 사람도 그렇다.     굽이굽이 뻗어나간 력사의 긴 랑하에서 우리가 읽을수 있는것이란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의 력사를 쓰고있다는것, 그리고 자기 인생에 끝까지(敗筆)을 쓰지 않은 사람이란 없었다는것이다. 생활은 때로는 소용돌이치지만 력사는 라선형으로 발전한다. 바로 그래서 인생현장에는 슬픈 궤적이 생기는게 아니랴,     우리 연변의 조선족문단에도 서로 구실을 만들어 상잔한 부끄러운 력사가 있다. 이른바 “반우파운동”때나 “문화대혁명”때에도 남잡이가 제잡이가 된 희비극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지만 묵은 뜨물독은 휘저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기마련이라 과거는 과거대로 묻어버리고말자.     그런데 관념을 갱신하느라고 시끌벅적하고 세계문화가 밀려오는21세기에 들어 와서도우리 중국조선족문단의 일부 어른들은 의연히 서로 “상경”하느라고 공연히 신경전을 하고있으니 정말 나같이 “상경”을 당할 자격도 없고 누구를 “상경”할 능력도 없는 국외인으로서는 안스럽기만 할뿐이다.     한 사람이 남을 칭찬할수 있는 아량과 포용력이 있다면 그 자신도 그만큼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설명이 된다. 남을 칭찬하기 정말로 싫다면 숫제 입을 다물고 담담한 체하는게 속창을 내비치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고 체면이 설텐데…     광활한 신주대지의 구석쪽에서 근근득실로 문학을 하는 처지에서 서로 손을 잡고 부추겨주면서 동심동덕으로 배달문학의 명맥을 이어가면 얼마나 좋을가? 사실 우리 모두가 뛰여봤자 7월 풀메뚜기밖에 더될것 없고 내노라고 큰소리를 쳐봐야 우물안에 개구리같이 불쌍한 우리 조선족문인들이 아니던가? 남을 “상경”하려면 결국 자기 자신도 잃기마련이다.     “대해는 물방울을 비웃지 않고 태산은 돌멩이를 비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서로 근신하며 자중, 자애하자, 대해는 몰라도 온갖 이물질을 받아들여 침식시키고 려과하며 도도히 흐르는 큰 강물쯤은 되여 보자!백두천지에서 쏟아져 내려온 백하수의 맑고 뭉친 흐름처럼 배달의 문화혈맥을 줄기차게 이어가면서 흐르는데까지 자랑차게 흘러가보자!                          2005년 4월 1일  
755    (진언수상록 41) 정감론초고 댓글:  조회:4169  추천:0  2016-07-26
                                                  정감론초고                                                            진 언         정감과 감정은 맥을 같이 하나 글자의 위치가 다르듯 그 쓰임의 차이가 있다. 정감은 사람의 마음에 호소해 오는듯한 느낌이고 감정은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에 대하여 느끼여 나타나는 심정이나 기분이다. 정서는 주요하게 인간의 생리수요에서 기인되고 정감은 주요하게 인간의 사회성수요에서 발원된다. 정서의 산생은 일찍하고 정감의 산생은 보다 뒤지는데 사회교류 가운데서 형성된다.     정서는 일정한 정경속에서 인기된다. 정감에는 정경성도 가지고 있거니와 온정성도 가지고있다. 사람은 매 시각마다 자신의 생리변화와 현실생활의 자극에서 인기되는 내심의 희열, 비애, 만족, 후회와 한…등 감수를 받기마련이며 동시에 늘 다른 사람의 분노, 우려, 쾌락 혹은 애증 등 정감정, 정서적반응을 살피기마련이다. 이렇듯 정서는 인지내용에 대한 특수한 태도이며 개체의 념원과 수요를 중개하는 일종 심리활동으로서 심리학상에서 크게 희,로, 애, 락으로 나눈다.     정감이 수반되지 않는 행위란 있을수 없다. 그래서 마음은 천실만실 얽히고 정서는 만단정회(万端情怀)이다. 정감은 그 개체생명에서 기인되지만 사회성수요와도 련계되여있으며 사회생활속에서 형성되여 발전하며 변화무상하게 드러나고있다. 사람의 총명정도는 선천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정감은 선천적인 공능으로 대체할수 없다.     심리학에서는 정감체현의 심리과정의 구체적인 형식을 정서라고 명명하며 정감이 표현되는 정서를 “사회정서”라 하고 생물적수요와 련관된 정서를 “원시정서”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정서란 이 두가지 성분으로 구성된것이다. 일반정서란 쾌락, 비애, 분노, 공포감 등이고 도덕감, 리지감, 미감 등을 고급적인 정감이라 한다.     감각은 현대인들의 심리추구의 요점으로서 이른바 인연, 연분이란것도 감각에 원천을 두고있다. 감각과 감정은 별개의것이다. 감각이 있다해서 반드시 감정이 생기는것이 아니며 감각이 없다해서 감정이 없다고 할수 없다. 례하여 경국지색의 미녀를 보았을 때 감각이 있기마련이지만 독사같고 전갈같은 녀자임을 알았을때는 좋아하는 감정이 생길수 없다. 이는 감정의 변화무상함을 반증해준다. 감각은 감정보다 신속하고 맹렬하며 가변적이여서 사람을 눈부시게 하고 머리가 뜨거워지게 하는데 랭정해진후에는 꼭 후회막급한다. 감정은 감각보다 늦게 오고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믿음직하다. 정감은 화학성질을 가지고있는데 정감의 최종적인 공제는 잠의식이 아니면 무의식이다.     사람들은 흔히 일을 처리함에 감정에 놀지 말라고 하나 리성을 앞세워 당면한 정감파동을 잠재운 현인군자는 많지 않다. 그만큼 정감은 미친토끼처럼 리성이 치는 그물따위는 우습게 여기고 냉큼 뛰여넘는 법이다. 리해득실은 리성(머리)으로 따진다지만 정서를 수반하지 않을수 없다. 력사상에 벌어졌던 그 모든 인의지사들의 참사는 정감에서 기인된것이였다. 례컨대 반우파투쟁이나, 려산회의나, 문화대혁명이나 서로 못살게 굴고 죽음에로 몰아넣고 잠시 득세하였으나 남잡이가 제잡이로 된격으로 모두 같은 고초를 겪다가 비명에 간 사람들이 얼마였던가? 그 모든 비정함과 비리함은 비속하고 가소롭지만 사람은 누구나 정감의 지배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희노애락은 인간상정이다. 황제도, 군왕도, 위인도, 군자도, 영웅도, 현인도 례외일수 없다. 기쁘면 웃음짓고 발연대노하면 침방이 튕기는것은 정상인의 자연적인 정감의 로출이다. 물론 량지가 감정류출의 조절기가 되겠지만 왕왕 너무 창백무력하다. 실패한 영웅, 항우가 강동에 돌아가 동산재기할 기회를 버린것도 정감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였거늘 하믈며 민초백성, 포의한사들임에랴,     이처럼 지혜의 대가는 모순이다. 이것은 인생이 인생에 대한 롱담이라 할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적은 자기라는 명언이 있다.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왕왕 자기의 정서를 전승하지 못한다는 역설이 될것이다. 자기를 다스린다는것은 바로 자기의 정서를 다스린다는것이다. 무지경의 탐욕도, 무절제한 호색도, 자기를 모르는 본분에 맞지 않는 출세욕도, 자기가 잘 되기 위해 남을 헐뜯는 암투도…다 감각, 정서로부터 출발한것일진대 영화부귀를 누리다가 일패도지하는 그런 사람들을 다 의지박약자라고 힐난할 성인이 누구일가?      근간에 중국에서는 심리상태(心态)를 어떻게 다스릴것인가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는데 리론설교는 어디까지나 실천보다 쉬운 일이듯 약속력이 없은 말을 하기보다 더 쉬운 일이 없다. 흔히 “내려놓을줄 아는것,“버릴줄아는것”이 인생의 최고경지라고 설파하는데 누가 그런 대도리를 몰라서 자기 심리정서를 절제하지 못하는가? 포용이 지혜로운 처세의 방식이고 버리는것은 일종 명지한 선택이라 하지만 물욕도, 명예욕도, 권력욕도 흔쾌히 버리고 홀가분한 몸으로 최고의 경지에서 노니는 현자는 드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간단해지기 위해 간단해질수 없으며 잊어버리기 위해서 잊어버릴수 없다. 인생에 대한 새라새로운 오감만이 있을뿐이다. 무지개는 적, 등, 황, 록, 청, 남, 자 등 색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생은 무지개가 아니다. 인생도 칠색으로 아롱진 유혹의 세계이지만 넘치도록 가득채우느니보다 적당한 때에 멈추는것이 좋다는 가르침을 누구나 명기하고는 있지만 실천에서는 십중팔구 난쟁이가 아닌가?     인생은 꿈같고 꿈이 인생같이 간단하면서도 복잡하기에 완미한 인생이 없고 완미한 인간이란 이 지구촌에 태여난적이 없다. 잘 짜놓은 연극에도 순수 희극이란 없다.  우주는 망망하고 망망한 우주에 뭇별들이 반짝이고 반짝이는 별빛아래 별처럼 많은 중생들에게는 그만큼 많은 정서극이 무시로 연출되고 있을뿐이다.     우리는 지금 감각시대에 살고있다. 그래서 “감각을 따른다”는 말이 류행되였다. 이런 감각시대는 지난 초감각의 시대가 급전환하면서 온것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감각에 대한 압제는 극한에 이르렀는바 병이 나면 의사에게 말할수 있고 격정이 일면 송가를 엮는 외에 모든 공통감각과 그에서 생성되는 정서에는 “사상”,“주의”라는 락인이 찍히지 않은것이란 없었다.     그때 누가 감히 느낀것을 다 말할수 있었던가? 정서상에서 욕망이 꿈틀거려도 누가 감히 발설한단 말인가? 오래동안의 한가지 설교와 그에서 형성된 집체무의식은 체념이 아니면 중용을 선택하게끔 강요하였을뿐이다. 지금은 정서세계에 금구가 없지만 표현의 자유세계는 아닌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많이 좋아졌다. 사람마다 정감에 굴레를 씌우지 않고 감각의 광야에서 마음대로 질주할수 있게 되였으니 말이다.     인간이 자기의 본연을 찾으려는 시대, 감각에 따라 살고싶다는것을 마다할 리유는 없다. 하지만 사회적정서는 아직도 절제와 조절이 요청된다. 감각만을 따르다보니 사람들은 인제 정감의 극치인 애정의 산마루에서 리혼의 희비극을 비일비재로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를 일러 리혼시대, 리유없는 리혼시대라 한다.     이 한가지 실례로부터 인생극장의 희비극은 모두 정감극, 정서극이라 개괄할수 있으니 현대인의 정감세계의 미로를 밝혀주고 광분하는 정서의 들말을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것은 인간의 원초적비애가 아닐수 없다. 자비감이 많은 사람의 치명적인 연약성은 자기 단점과 부족점의 음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것이다. 열정적인 사람은 흔히 다른 사람에게 리용당하기 일쑤이다. 인간이 감정동물로 진화된 이상 참으로 극단으로 진화되여가는 정감이요 무서운 감각,정서라 하겠다.                                                             2012년 2월 15일
754    붓은 누구를 위해 달리나? 댓글:  조회:4408  추천:10  2016-07-18
                             붓은 누구를 위해 달리나?                                                                     글은 누구를 위해 쓰느냐? 하는 문제는 진부할수 있지만 누구를 보이려고 쓰는가 하는 문제는 벌써 그 저의가 달라서 문인의 영원한 화제가 되지 않을가싶다.     글을 쓰는 리유는 사람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를것같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위해, 자신의 기분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읽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글을 팔아 푼돈이라도 쥐기 위해, 자신이 학식상, 문필상 뛰여난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해, 그냥 다른 취향이 없으니까…아무튼 류류별별이요 각양 각색일것이다.     글이 자신을 리해하여줄 미상의 독자와 속삭이고 하소연하고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라면 글에 담긴 진실은 오직 성스러운 열독행위에서 가치를 실현다고 믿기에 그렇게 피나는 심혈을 몰붓는것이 아니랴!     독자들은 자기는 쓸수 없으니까 작자의 립장에서 독해하려고 할대신 선입견으로 무엇인가 흠집을 찾아내기 좋아한다. 자신은 상상할수 없는 엉뚱한 이야기가 호기심을 사로잡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소일거리로 읽는다. 그러나 표준은 높아서 어디까지나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      글은 자기 감수를 쓴다고 일러왔다. 자기의 고백이 되고 스스로 독자가 되는 일기도 열심히 진실하게 쓴다. 그러나 문학적인 글은 자기 감각, 내지는 감수를 쓰지만 우선 독자, 사회를 상대로 표현하려는것이므로 그저 열정으로서가 아니라 고심 참담한 경영의식을 선행시키지 않을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붓은 왜 들며 미약하나마 붓의 힘을 어디에 실어주는가 하는 문제인데 바로 창작목적, 사상의 경향성에 소급되는 문제가 되겠다. 역시 글이라는것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문제를 무시할수 없는 얘기이다. 붓이 칼보다 더 강할수는 없다. 글이 세계를 개조하는 수단이라고 말하는것은 매우 아득하고 신뢰하기 어렵고 위태로운 말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자들의 절망적인 답답함이다. 무기가 세계를 개조한다. 미국의 무기는 오늘 아침도 이 세계를 정확하게 때려부셔가지고 개조해 버린다. 그 개조의 방향이 옳든 그르든간에 그네들의 리익에 맞게끔 세계를 개조하려 한다. 지금‘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소통의 문제는 무시못한다. 부당한 현실을 상대한 싸움의 일종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그러한 현실에 저항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나마 지금과 같은 정도의 리성적인 사회가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생각해볼수도 있다. 인간은 물론 전쟁을 일으키는 도구적리성의 소유자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성찰적리성도 역시 지니고 있어서 그걸 토대로 부당한 현실을 상대로 한 싸움을 계속해나갈수밖에 없는것이고 글쓰기 작업도 그런것의 하나일수 있다.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글은 작자의 소일거리보다 모종 자각을 앞세운 마음의 소리로서 울리고 송가보다 폭로와 비판성으로,강음으로 메아리친다. 명철보신에 의견이 숨겨지고 복무성에 목매여 사실과 표현은 그렇게도 다를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여 언어의 소통기능은 오래동안 창백무력해졌다.     90년대 이후 문학의 본연에로의 회귀가 고창되다가 사인화창작경향이 성행되여 급기야 일종 창작풍조로 되였고 그에 뒤질세라 우리 민족문단에도 류행되였는바 그 부류의 창작자들의 자리매김을 의미하게 되였다. 사인화창작경향을 제창하거나 실천하는 작자들은 자아표현의 진실성을 중시하고 실천한다. 그런데 그 자아표현의 내함은 어떠한가? 기실 자아표현이란 일종의  환각이고 진정으로 표현되는것은 하나의 의식형태화한 “공공인(公公人)”에 불과하다. 자아본신은 이미 의식형태화된 모종 언어행위의 구성물로서 문학으로 말할 때 소위 진실한 자아란 줄곧 거울속에 꽃이나 물속에 달과 같아서 볼수는 있어도 눈섭사이에 잡아둘수는 없는것이다.     문학의 “귀족화”는 창백한 문학을 낳았다. 문학이 인성을 표현하는것이 제일 선택이라해서 문학정신이 결석해서야 되겠는가? 어떻게 쓰는가 하는데는 작가개성을 핵으로 한 개인화가 가능하지만 무엇을 쓰는가 하는데는 개인화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유의 무의식이란 의연히 유의식이며 모든 유의식은 현실적존재에서 온다.     인간이 사회성을 회피하면 인간의 정신적추구를 회피하는것을 의미한다. 물론 문학이 생활을 간섭하기엔 너무나 무력하고 사회전환의 총체적가치함량에서 의의가 약화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학은 근근히 개인체험의 심리표백이고 개인정서의 발로에 불과한것으로서 생활에 대한 해석을 책임지지 않으며 더우기는 문제에 해답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한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에로 나간것이 아닐가?     지금에 와서 문학은 리념의 설교가 아니고 철학의 발휘도 아니고 더우기 정치의 도해 혹은 재방송은 아니다. 그렇다고 문학은 무엇도 아니며 문학이란 곧 문학이라고 하면서 련인에게 련애편지를 쓰고 정담을 토로하는식에 만족한다면 근원적으로 문학의 본연을 떠난것이 아니겠는가?     문학창작이 개인화를 표방하면 필경 시정생활의 늪에서 자맥질하게 되고 자연히 단조롭고 무료한 자기 중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쓴 글은 눈앞에서 곧 사라질 연기의 운명을 면치못할것이며 작가로서의 단명을 면할수 없을것이다. 기실 크게 웨치고있는“초월”은 실제상 생활에 대한 도피이며 자기사명의 철저한 상실의 분식된 표현이다.     문학이 공농병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말이 극단으로 나아가 정치도구로 전락했다는 의미에서는 력사의 뒤안길에 락엽처럼 묵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문학이 의의로운 사회적활동일진대 지성적인 문인의 붓은 의연히 사회약세군체ㅡ민중을 위해 들어야 한다고 말하고싶다.     붓장난은 자기 감각에 따라 나름껏 놀아도 되겠지만 붓의 공리적력량은 언필칭 이 사회의 진보와 민중의 켠에 서야함은 당연한 리치이다. 력대의 문단사를 일괄하면 승리자을 위한 송가를 엮기 위해서는 필력을 자랑하는 붓대들이 수풀처럼 운집했지만 실패자, 약자를 위해서 붓대를 꼬나든 문인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아마 이런 실태를 두고 어느 지성인이《중국에는 종래로 실패한 영웅은 적고 끈질긴 반항이 적으며 악전고투하는 문인이 적고 반역자를 위하여 통곡하는 조문객이 적으며…이길징조가 보이면 모여들고 패할징조가 보이면 분분히 도망친다.》고 질타했을것이다.     현시대 우리 문인들의 붓대는 강자의 켠에 세워야 하는가? 아니면 약자들의 켠에 세워야 하는가? 흔히 실화문학을 보면 기업가나 명인, 영웅을 위해 기념비를 세워주는것이 례상사였다. 물론 새 시기 중국문단에 로동대중의 하층생활을 파헤치고 그네들의 희노애락을 그린 훌륭한 작품도 있고 사회의 비리로 하여 생긴 진실한 인간생활을 적라라하게 폭로한 작품들도 용약 뛰쳐나온것은 사실이나 문학의 본연에로의 회귀의 결과 붓대가 자아감각의 상아탑속에 풀피리가 된것이 기본경향이다.     만약 붓대가 승리자의 뒤에서 승리하게 된 영명함을 해석하거나 승리자를 따라 부채춤을 추면서 승리자를 신단에로 떠밀어올린다면 그것은 붓의 비애이고 수치가 아닐수 없다. 그런 붓대는 인류문화사에 어떤 가치있고 의의로운 기록을 남길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붓대는 비루하게 무릎을 꿇는자의 생존의 도구일뿐이며 그 임자는 승리자의 어용문인에 불과하다. 그런 문학은 권세가의 앞에서 꼬리치는 애완 물에 불과하며 세상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오락에 불과하다.     정교하지만 눅거리화환을 엮어 승리자를 기쁘게 하는것은 얼마나 쉬운일인가! 우리의 붓대는 사회최하층에 민간에, 이 사회의 변두리인들의 켠에, 아무것도 없는 민초들켠에 세우고 그들의 운명을 두고 울고웃고해야 한다. 오직 그들을 위해 진심된 가슴으로 눈물을 삼키고 피와 땀으로 진실을 반죽할 때 붓은 응유의 힘을 얻는다.      붓대는 사람이 잡지만 독립적이다. 그것이 의뢰성에서 벗어나 밤길을 걷더라도 별빛을 따라 걷는다면 자기가 나갈 방향을 찾을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마땅히 만백성의 감수를 감수해야 하고 만백성의 기쁨을 기뻐하며 만백성의 희노애락을 쓰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 문학의 꽃이 대중이라는 옥토에서만 피고 향기를 풍길수 있다는 간단한 도리에 반기를 들사람이 없을줄 안다.     문학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기에 걸음걸이가 무겁다. 문학은 그러한 본래의 걸음걸이로 균형과 무게를 유지해야 한다.   문학이 자기를 위해 존재하느냐? 평민백성을 위해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는 영원히 제기될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문학이 자기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상아탑속에 무병신음이 될것이다. 문학의 꽃이 과연 누구를 위해 피여야 하는가? 두말 할것없이 국가, 민족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인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오직 민족과 인류에 무해한것이면 존재할 자격이 있으며 그와 반대라면 두절되여야 한다. 평민문학은 물과 같고 사관문학은 불과 같다고 옛날 문인들이 평한바 있다.     국가와 민족과 사회인생을 놓고 말하면 문장은 거울과 같은바 하나는 정면을 비출수 있고 다른 하나는 뒤면을 비출수 있다. 량자가 병존해야 더욱 전면적으로 자기 진면모를 비출수 있다. 문학의 꽃은 아름답다. 인류가 절멸되지 않는한 문학의 꽃은 따스하고 정많은 가슴들에 고이고이 필것이다.     작가는 독립사력이 강하여야 한다. 시대류행에 붓좇아 서양의것이면 그저 진리 이고 진품인듯이 이 리론, 저 리론을 닥치는대로 읽고 피상적으로 신장시켜려는것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한우물을 파서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을 낼수 있다. 이것은 문학뿐만아니라 우리네 삶 모든 방면에 해당되는 진리일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문학가치가 소실되는것이 아니라 세기와 더불어 그 생명가치를 과시하는 문호들의 작품을 과연 사명을 다한것이라고 말할수 있을것가?     《문학을 고독한 백조의 마지막 노래에 비유하곤 한다. 모든 새가 칠흑같은 시대의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우아한 백조처럼 홀로 고독하게 최후까지 어두운 밤하늘을 비상하여 모든 새가 나아갈 방향을 제공하는것이 바로 문학이다.》       미운 새끼오리가 돼버린 현재의 우리 문학이 다시 화려한 백조로 부활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어째서 붓을 들었는가를 확정해야 한다. 문학에 대한 넘쳐흐르는 열정과 자부심으로 평생 글밭을 가꾸어온 지성의 작가들이 부르는 고독한 백조의 노래는 결코 흘러간 옛노래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아감각에 만족해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삶을 살아갈 때 문제의식이  없는것을 자각조차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때, 아니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문제있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아니라고 남을 훈계할수는 없지만 말이다.     글에서 문제의식이란 가시가 돋친것을 의미한다. 그 가시가 대화의 주제가 되여 책을 사볼수 있는 여유와 자금과 지식이 있는 자들을 찔러 그곳에서 나온 피가 보통 의 약지자들에게 정신적인 수혈로 되여야 한다.    보통의 약지자들란 소위 강자로 이 사회를 리드하고 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구조속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왜 힘겨운가, 힘겹게 하는 구조에 대해 의문을 가질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구조에 대한 물음대신 힘겨움을 숙명처럼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다. 그 물음을 작가들이 이끌어내고 대답을 주어야 한다.     금전만능주의에 절어든 사람만이  강자의 삶으로 선망되고 있는 세상에서 진정한 작가가 취해야 할 몸가짐은 어떠해야 할가? 비판적사실주의문학이 물리적폭력에 저항한 문학이였다면 21세기 사실주의문학은 더 치명적인 금전폭력의 비리성을 고발 하는 저항하는 문학이여야 할것이다.    작가는 힘이 없고 돈이 없다는 리유만으로도 소박한 삶과 꿈이 깨여지는 삶을 살아가는 약세력들을 위해 글로써 성원해야 한다. 자본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자본가의 가방 든든한 빽이고 자본가는 정치권력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다. 그래서 다시 리얼리즘을 생각한다. 진정한 리얼리즘정신이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한 문학인가?     그나마 있는 그대로의 현실조차도 외면하는 문학이 문학의 모든것으로 되여있는 오늘인지라 단순히 현실을 반영한 문학이 리얼리즘문학이 될수도 있겠으나 진정한 리얼리즘문학이란 완강한 현실이라는 표피를 뚫고들어가 현실의 리면에 감춰진 진실을 캐내는 문학이라야 할것이다.     자고로 자기들만의 리익을 위한 장치들을 법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 좋아하는 배부른자들의 토대를 뿌리부터 흔들수 있은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리얼리즘 문학이였다. 숨길것도 없고, 에두를것도 없이 참된 아픔과 비애와 울분을 꼭 써야 한다면 용기의 부족에서 오는 일종 두려움이 생기리라.      글 자체가 그냥 삶의 모습이고 과정으로서 순간 순간 변화하는 삶 그 자체를 완벽한 모습이라 할수 없을까? 그렇다면, 우여곡절이 있고 파문이 이는 글, 그 자체가 완벽한 문학이라고 할것이요 붓대가 이룩하는 생명운동의 힘찬 악장이라고 말할수 있을것 같다. 붓을 쥔 손에 힘을 주자! 붓글씨를 쓸때 가볍게 붓을 쥐고있는것 같지만 뒤에서 가만히 우로 잡아당겨도 쉽게 놓치지 않는 서법가의 그 붓대처럼 자기 의 필을 꼬나들자, 의로운 문인들이여!                      2007년 10월 24일
753    《문화》범람과 문화폭력 댓글:  조회:3724  추천:1  2016-07-18
                                           《문화》범람과 문화폭력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갑자기 유식해지고 문명해져서인지 입에 걸고 다니는것이 “문화”이고 문인들이 붓을 들면 언필칭 “문화”여서 없던 문화기분이 버쩍 들기도 하는데 그에 앞서 문화홍수에 익사하지 않을가 걱정된다. 아닌가? 하긴 문화라 하면 지성적이고 우아함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웬 뚱딴지같이 문화가 범람하고 폭력이 된다는것이냐? 하고 불편하게 생각할 분들도 있겠다.     독일의 문화인류학자 란더만은《문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직립보행하게 하였는바 인간은 오직 문화의 기분속에서만 호흡할수 있다. 문화는 마치 신체내의 혈관계통이 인간의 일부분이 된것처럼 혈관속에서 흐르는 주관적정신혈액과 같다.》고 했다.     이렇듯 인간은 문화의 창조자이면서도 되돌아와서 문화의 산생물이기도 하다. 이것을 문화술어로 “위대한 인과순환체계”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문화가 없으면 인간이 인간으로 되는 조건이 결핍하게 되고 문화가 없으면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러니 자연히 문화에 집착하게 되고 문화아집이 생길만도 하겠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정의는 수십종이나 된다. 비록 문화란 수많은 세포로 구성된 하나의 정체지만 변연이 정제하지 못하고 내함도 불확정적이고 외연도 불확정적이다. 문화는 인류사회의 력사실천과정에서 창조한 모든 물질재부와 정신재부의 총화라는 광의적의미에서 이른바 “문화”범람이 야기되였다고 할수 있겠다. 바꾸어 말하면 그 모든것에 문화딱지를 붙이는 괴이한 문화현상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문화의 광의적의미에 리론근거를 둔다면 물질문화의 전초적인 생산기지인 농업, 공업, 상업, 어업, 림업 등 5업에 문화가 나름대로 들어붙게 될것이다. 이를테면 농업문화라는 개념이 성림될 때 자계통으로 가대기문화, 보습문화, 소수레문화, 써레질문화, 호미문화, 모내기문화…등 이루다 헤아릴수 없는 문화산사태가 무너져내릴것이고 공장문화 하면 중공업문화, 경공업문화, 선반기문화, 함마문화, 수압프레스문화, 철공문화, 스파나문화 등등 공업계에 문화홍수가 범람할게 아닌가?     상업문화가 가능하다면 그 내연에 도매문화, 되거리문화, 투기모리문화, 납세문화, 탈세루세문화 등 이름지어진 그 모든 장사행위가 다 문화범주에 들것이다. 교통은 왜 문화모자를 쓸수 없단말인가? 발구길문화로부터 포장도로문화, 고속도로문화, 교량문화, 립체교문화, 로타리문화우에 질주하는 트럭문화, 하이야문화, 찌프차문화에다 자가용문화, 택시문화, 자전거문화, 삼륜차도 교통문화로서 불가할 리유가 없겠다.     세인이 모두 다 아는 일을 가지고 횡설수설하자니 너무 싱겁고 허무해서 이만 략하고 화제를 좀 돌려보자. 협의적의미에서의 문화란 사회형태 내지는 그에 상응한 제도와 조직기구라고도 한다. 이 리론에 근거하면 국가정권기구도 문화로 되여지고 그 자계통으로 권력문화, 정부문화란 말이 성립될것 같기도 하고 부임, 승직, 강직, 전근, 퇴직, 로임, 장려 등에도 정정당당하게 문화계관을 씌울수 있을것 같다.     문화는 인류지혜의 창조물의 정화로서 인류문화사의 “별책”에 오른것들이지 일상의 온갖 잡동사니들이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현대인은 문화폭력에 진저리를 친다.     거리에 나가보라. 큰거리에서 제일 특권자가 자동차들이고 버금으로 오토바이고 그다음 자전거이고 “천하지만물지중에 유인이 최귀(天下地万物之中唯人最貴)”라는 말은 이미 옛말로 되였다. “에라, 길비켜라!”하고 광분하는 자동차들과 오토바이들의 횡행에 눈이 아찔, 가슴이 덜컥할 때가 비일비재라 숨이 한줌만해지니 이 아니 문화폭력인가?     집안에 들어와서 텔레비죤을 켜보라. 보이고 귀가 멍멍하도록 들리는것이 명인효응을 앞세운 광고, 광고, 광고이다. 그야말로 광고홍수에 문화향수를 하기전에 정신이 먼저 익사할 지경이다.  컴퓨터를 켜보라. 온통 미인들의 광고폭력이 부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총을 받쳐들고 큰거리에 버티고선 한 이스라엘병사의 위엄에 겁이 질려 벌벌 기여서 큰길을 건너는 예닐곱살난 팔레스티나 소년의 공포에 떠는 처절한 모습을 보며 그만 “문화폭력”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오지랖이 넓은것인가?     하긴 콩과 팥을 섞어놓고 메주를 쓴다고 설치는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현시대 류행되는 문화론과 문화설에 힘을 입어서 범람하고있는 문화경관에 감탄하던 나머지 이렇게 말주둥이에 당나귀주둥이를 맞춘것같은 글제를 달고 횡설수설해보았으나 문화차원에서 조금 보아주기를 기대하는바이다.                                      2006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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