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http://www.zoglo.net/blog/cuijunshan 블로그홈 | 로그인
<< 6월 2018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879 ]

879    (진언수상록79) 내 눈에 보이는 세상 구석 댓글:  조회:61  추천:0  2018-06-05
                                          내 눈에 보이는 세상 구석                                                             진 언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수 없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을 공중에 내놓고 싶어진다. 하긴 내눈에 보이는 인간세상에 대하여 횡설수설한다면 혹 동감을 얻을수도 있고 반대로 하찮은 글쟁이로 오지랖이 넓다고 비난할 사람들이 더 많을줄로 안다. 그러나 오래 살아오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되는바를 표백한다면 그 역시 진실한 마음이라 할것이다.     “내가 존재하므로”를 전제로 할제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 할 근거가 생긴것이요 눈에 보이는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게도 되는것이다. 철학자 죠지 버클리는 “물질이 인간에게 부여하는것은 물질속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다.”라고 하였듯이 실상 보이는 세상과 보는 세상의 구별도 있게 된것이다.     세상에 어섯눈을 떴을 때 세상은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새면 밝은 새날이 오듯이 흑백 두가지 색으로 인지되여 특별히 분명했고 이 대천세계에 기이하지 않은것이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 눈이라도 동일한 사물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나자신도 내 눈에 보이는 수많은 사물도 볼 때에 따라 느낌이 달라졌다. 마치 처음 명화 “몬나리자”를 보았을 때 단아하기는 하였으나 살아있는듯한 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후에 다시 보면 확실히 살아있는듯 생명의 활력을 느낄수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아롱다롱하던 동경이 현실과 마주섰을 때 특히 나의 청춘의 꿈이 철저히 부서졌다고 절감한 그때로부터 모든것의 앞뒤면, 그것의 량면성을 보아낼수 있었다. 다른 젊은은이들의 눈에는 이 세상이 아름답고 해빛찬란하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물론 이 세상은 아름답지만 보는 눈길, 느끼는 마음에 따라 달리 인지될수밖에 없다.     아닌게 아니라 차차 지적으로 성숙을 다그치면서 이 세상이 회색, 일종 혼합색으로 느껴지면서 명명백백하게 안겨오는것이란 별로 없게 되였다. 세상이 혼탁해서 내눈이 혼탁해졌는지 아니면 내 눈이 혼탁해서 색안경을 낀것처럼 무엇이나 원색을 보아낼수 없는지…일찍 박지원이 하루밤에 아홉번 강을 건너며 강물소리가 각이하게 들릴수 있다고 설득력이 있게 설파하기는 했지만…     다 아는바와같이 하나의 사회는 한 시대를 담고있고 한 시대는 당시 사람들의 눈속에 비낀 사회상이 있기마련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회는 변화하고 우리들의 눈에 비낀 사회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게 된다. 이를테면 다같이 가난하기는 했지만 인심만은 훈훈했던 산촌에 “×××를 타도하자!”는 구호소리가 터지면서 산천 초목도 떨던 광란의 년대. 세상은 헝클어지기 시작했고 물이 흐린김에 손을 넣어 고기를 잡는 “영웅”들이 나와 우쭐렁거리는 바람에 친화성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돈이 나오는 곳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 금전만능주의 현시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저저 심리벽을 쌓아놓고 남을 쉬이 믿으려 하지 않고 경계심만 곤두세우게 되였다. 언론이 너무 민감해서인가, 아니면 이 사회가 너무 부패해져서인가 보이나니 곳곳에 락마관들의 추태요 들리나니 벼라별 추문들이라 머리가 어리벙벙할 지경이다. 물욕이 종횡무진하는 시대여서 인성, 인정마저 돈으로 말아먹게 되였는가? 사람들은 “사회대가정”이란 말을 많이도 외워왔는데 당신은 대가정의 따스함을 느끼는가?     경우와 과정이야 어찌되였든 많이 차지하게 된 사람들은, 남을 다스리는 재미가 짭짤한 기득권자들은 이 세상이 무척 살맛이 날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행복하고 쾌락한 이들은 분복대로 나름껏 쾌락하라고 하라. 그러나 세상은 밝은 곳이 있는만큼 어두운 구석이 많고 그 구석에서 한숨 쉬고 눈물짓는 사람들도 있다는것만 념두에 둔다 면 괜찮은 사람들이라 해야 할것이다.     늘 밝은 세상에서 태양의 축복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단정하게 정좌하고 있는 여래불의 신상앞에 한눈 감고 한눈 뜨고 소원을 뇌까릴제 몸은 불조앞에 있으나 마음은 돈뭉치와 함께 굴러다닌다는것을 전지전능한 여래불이 알기나 하는지, 그리고 보다 많고 날로 더 많아지는 세상의 어두운 구석을 천리혜안 부처님은 굽어보고 계시는지, 예수도 수많은 신도들이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체 하며 자기 리속을 챙기려 꼼지락거리는것을 알고나 있는지…    공생공존하기 위해 맺게 되는 모든 인연들이 다행일수도 있고 불행일수도 있다. 어찌 생각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할수도 있다. 뭇사람들과의 인연이든 부부인연이든 재물과의 인연이든 직장인연이든 자연스러운 인연이 아니라면 꽈배긴가 타래떡처럼 배배 꼬이는 인생이 될것이고…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사회불평들을 의론하고 돌이킬수 없는 부패에 침을 튕기지만 어떤 사람은 행복감에 취해 그런 의론을 예전같으면 멸문지화를 당할 “사회불평”이라고 펄쩍 뛸것이고 어떤 사람은 막무가내함에 손을 휙 내젓고 속으로 참을 인자를 외우기도 할것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낮과 밤이 엇바뀌듯 규칙적이 아니다.     가령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자. 즉 이 세상에 모든 생물은 모두 생존권이 있으며 생명가치가 있다. 례하면 걸어다니는 료리들인 돼지, 소, 닭, 헤염치는 물고기 등등, 인류의 사회공약에 무고하게 동류를 살해하는것을 금기하고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권리로 그런 생명체들을 잔인하게 잡아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뜯고 오리오리 칼로 저며내고 칼탕치고 삶고 고으고 지지고 볶고 상추에 싸서 먹는가?     이는 두말할것없이 우문중에 우문이다. 대답은 지극히 리기적인 인간이 류행어처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타생명을 마구 잡아먹는게 당연지사라는것이다. 우문에 현답이로되 기실 상식을 초월하는 원본사상이 깃들어있다. 즉 이 세상, 이 사회의 본질을 투시하고 파헤치는 그런 심각한 문제가 예시되는것이다. 일컬어 “사회강자”는 “고기”를 먹는 자들이며 사회약자는 강자에게 먹히우는 “고기”들이다.      세상구석을 벗어나 좀 멀리 내다본다면 금전만능주의 자본주의 사회체계는 압박도 착취도 없는 평등한 사회의 아름다운 리상도 말아먹고 결국 빈익빈 부익부 세상을 만들어냈고 결과 량극화 현상이 극에 달하게 되였다. 자유, 평등은 간곳이 없이 오로지 힘의 론리가 지배하는 불가사의한 인간세상,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였다. 극단적 리기주의자들이 세상을 쥐락펴락 하기에 평등은 허황한 념원속으로 숨어 들었고 불의를 보고 참아내지 못하는 정의지사들과 도리와 례의범절을 지향하는 군자들은 뒷전으로 쫓겨갔거나 매몰당하고있다.     “자유,평등,박애,민주,인권”이라는 기치아래 실리주의, 금전만능주의는 금수들의 적자생존의 론리만을 진리로 내세우고있다. 피의 비극이 끊임없이 빚어지는 지구촌을 보라, 무력패권주의가 휘둘러지는 천상천하, 마음에 들지 않은 약소국들은 강대국의 구미에 따라 유린당하고 훼멸당하고 있지 않는가?그러나 개체들은 먹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앞가림에만 분주하다.     페일언하고, 세상을 거의 살다가 다행히 인터넷시대를 접하면서 안계가 조금 넓어져서 지구촌의 세상만사를 눈요기하게 되니 헛살고 있지는 않는것 같다. 내 눈에 보이는게 세상이 전경이 아니고 내가 보려는 세상은 다 볼수 없으나 세상구석이라도 보는것이 여간 의미롭지 않다. 그렇다고 눈앞에 보이는 세상에 감탄표만 칠수는 없고 의문표만 달수도 없다. 이는 두 극단이다. 마침표는 가당하지 않으니 아마도 풀이표 혹은 점선을 쳐두고 하회를 보아야 하리라                                                             2016년 1월 1일
878    문학언어에 대한 초보적 탐구 댓글:  조회:74  추천:0  2018-05-30
                                     문학언어언어에 대한 초보적 탐구                                                              최 균 선       1. 들어가면서       언어가 휘황찬란한 인류문화사에서 최정예의 발명품이라면 문자는 인간을 세계에 중심으로 만든 최초의 계기가 되여 인간의 삶의 양태를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는바 언어,문자가 있는 곳에만 문명세계가 있다. 모든 의미는 언어에서 나오며 언어가 없이는 어떤 의미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어가 수행하는 존재의 대응기능은 절 대적이다. 이 시점에서 인류문명세계는 곧 언어의 세계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언어의 대응기능은 만능이 못된다. 우리는 살면서 부분적이고 상징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늘 한계성을 감수하게 되는바 이러한 론리적거리를 문학언어라는  특수한 문맥과 수사학을 통하여 좁히려고 시도한게 문학이며 그런 장인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이 작가들이였다. 작가들에 의하여 빛나게 실천된 언어의 자의성은 기본적으로 비유와 상징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창조적이고 개성적이며 다의적인 표현의 길을 열 어주었다. 이런 언어의 자의성과 소통성을 가장 예술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활 용하여 언어의 품격과 생명력을 고양시킨 결정체가 곧 문학언어이다.       2. 문학언어의 이모저모       2.1 문학언어의 특성     1) 문학언어의 기능성: 일상언어는 그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인데 리처즈 (영국 비평가) 는 진술이라고 명명하였다. 리처즈로 인해 문학은 어떤 인상에 의존 하는 아마츄어적인 작업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 즉 “본질적인 가치에 의거하여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문제를 검토하는 중요한 학문이 되였 다. 그러나 문학언어 특히는 시언어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해당 대상의 절절한 진술 이 아니라 감동과 그에서 인기된 사상감정, 견해, 태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인 데 그것을 의사진술이다. 여기서 일상언어의 문학적가공이 필수 작업으로 되였다.    문학언어는 기능의 측면에서 일상어나 과학언어를 뛰여 넘는다. 문학언어가 수 사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다의적이고 이중적인 의미창조에 로심초사한다. 일상어 와 과학언어는 단순명료한 의사소통에 목표를 두고 그 달성으로 사명이 끝나지만 문학언어는 문맥성과 변용성, 내포성과 비유성, 허구성과 창조성 등에서 고유한 속성을 구현한다.     2) 언어의 활용성: 문학언어는 작품의 문맥 속에서만 제 기능이 발휘된다. 작가가 일상어를 작품 속에 인입하는 순간 문학언어로서의 기능이 발휘된다. 일상어의 상식적인 의미는 문학적 문맥 속에 녹아들면서 개성있고 함축적인 의미로 변용되기 시작한다. 단어선택과 문장배렬을 포함한 모든 창작기법과 수사전략의 결과이다.     문학언어는 감동적인 전달을 목표로 선택하고 배렬하여 예술적인 의미의 창조에 도달한다. 무릇 어떤 쟝르에서든 즐겨 사용하는 것이 비유와 내포의 수사전략이다. 문학언어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 가지의 대상을 지시할 수도 있고 여러 개의 단어가 하나의 대상을 가리킬 수도 있다.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읽을 때 텍스트에 심취되기도 하지만 한편 문맥 속에 내포된 언어의 다의성, 예술화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를 창출해 내는 마력이 문학언어에 고유한다.     문학작품의 내포적의미는 한마디로 비유나 상징의 원리를 언어의 자의성과 련 결시켜 만들어내게 된다. 주어진 문맥 속에서 소통이 가능한 내포의 힘으로 인해 다양한 문학적 의미가 시공을 뛰여넘는 공감대를 확보하게 된다.     3) 문학언어의 허구성과 창조성: 문학작품은 미지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작가의 예술수단으로서의 허구의 산물이다. 허구성이 개연적인 세계를 꾸며내는 힘이라면, 창조성은 그 허구성을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동력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언어를 창조적 재현과 창조적 모방의 도구로 활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는 자연의 모방이다.”라고 했을 때도 그것은 개연 성을 전제로 한 창조적 모방을 의미한다. 이 러한 창조성과 허구성은 작가에게 문학 언어를 일심불란 가공하여 새로운 인식과 표현의 세계를 열어갈 가능성을 확보한다.     문학언어는 일상용어를 승화시킨 언어 즉 가공을 거쳐 규범화된 서면어로서 민족 공통어의 고급형식이다. 문학언어는 시, 산문, 소설, 극본, 씨나리오 등 다종다양한 문학작품의 언어로서 인민구두창작 과정에서 가공되고 제련된 언어도 포함된다.       2.2 문학언어의 궁극적목표     일상언어의 문학적인 활용의 목표는 우선 대상에 진실하게 접근하는 것이며 버금으로 예술화, 형상화에 의한 대상에 대한 미적감동과 설득, 교화에 있다. 작가가 문학 작품속에 재현한 진실과 진리는 작가와 독자 공감하고 공유하는 체험의 새 세계이다. 문학언어의 상상력의 극대화는 작가가 예술언어를 통하여 자신의 미적 의도를 완벽하게 구조화하는데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작가가 이러한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학언어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한 작가의 능력은 이야기를 최적으로 감칠맛이 있고 감화력이 있도록 최적의 언어로 예술화하는 데서 과시된다. 창작과정에서 예술적 상상력의 힘은 문학언어로 구축된 텍스트를 통해서 구조화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기의 감정과 사상이 독 자에게 최대한으로 전달되기를 갈망하지만 작가-텍스트-독자의 3자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불일치 등으로 불만족은 문학언어의 구사여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문학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그 의미가 직선적이거나 평면적이기보다는 립체적 내지 고차원적이라는 시점에서 언어의 내연적 의미와 외연적 의미를 가진다. 외연적 의 미란 밖으로 드러난 말의 일반적 의미를 말하고 내연적 의미란 어떤 특정한 문맥 속에서 독자가 외연적의미외에 파악하는 의미들을 말한다. 일상언어의 기본공능이 우주만물에 대한 해석, 인간들간에 정보소통이라면 문학언어는 자아를 중심으로 자신의 감수와 인식으로 사람들의 감각방식을 개변시키며 그로써 심미효응을 실현한다.       문학은 언어의 사전적 의미와 언어규범에 만족하지 않고 새롭고 개성적인 의미의 창조를 위해 언어를 활용함으로써 정보전달이나 론리적 주장을 위한 언어활동과는 다른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일상언어는 구체적인 의사전달에 충실하고 문학언어 는 정서적인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를테면 운문문학은 알심 들여 선택된 운률적인 언어로 느낌과 정서를 전달하며 산문문학은 운률적인 언어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언어를 기반으로 하여 사건, 생각, 느낌 등을 서술한다.     문학언어가 일종 창조성적 언어로 거듭나는 것은 문법결구와 론리요구를 돌파하여 개인의 감정색채와 풍격이 두드러지는바 일반적으로 묘사, 상징부호체계이다. 일상용어는 문학언어와 본질적인 구별이 없지만 량적으로는 구별된다 즉 문학언어는 언어라는 무진장한 금광에서 금돌을 캐내여 계통적으로 배렬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일상언어가 문학언어로 거듭날 때 실용적의의는 담박해지는데 그것이 곧 문학언어의 공능이고 매력이 된다.       이처럼 언어의 사용이 사전적 의미의 전달에 그칠 때를 이르는 것이 외연이고 문학작품에서처럼 사전적 의미의 한계를 넘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전달될 때, 그리하여 그것에 수반되는 정서적효과나 암시, 련상, 함축 등이 문제시 될 때를 내 포라 일컫는다. 이는 단어가 초론리적으로 사용된 결과이다.     “진달래”라는 꽃을 례로 들어 말해보자. 만약 진달래란 무슨 꽃인가? 라는 질문 에 생물학자는 진달래란 진달래과에 속하는 락엽관목인데 우리 말로 참꽃이라 불리며 한자어로는 두견화(杜鵑花)라 한다고 곧이곧대로 대답할것이다. 그러나 시인이라면 진달래는 봄의 선구자, 나아가서는 혁명의 선구자를 상징하기도 한다고 대답할것이다. 진달래라는 대상 즉 동일한 개념을 놓고 서로 다른 표현을 한 이 개념정의는 내포와 외연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지만 여기서 창조성적인 언어구사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전자는 진달래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집합을 개괄적(외연적)으로 기술한 것이고 후자는 진달래라는 개념이 가진 속성과 특질(내포)이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감수, 정감을 표출한 것이다. 이처럼 모든 낱말은 외연적 의미와 내포적 의미를 가지 고 있는데 외연은 론리적이고 과학적이여서 개념규정에 제한성 있다면 내포는 감성 적이고 주관적이여서 개념규정의 가능성이 무제한적이다.     이처럼 내포는 속성과 특질로 정의하기 때문에 부동한 사람이나 문맥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고 상징적이거나 함축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이처럼 작가나 시인은 련관된 련상이나 그 개념이 가진 속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정서적감화가 가능 하게 된다.  이것을 시인, 작가의 문학적 재질의 발휘라 할 수 있다.       2.3. 문학언어의 매력     언어는 문학을 실현시키는 캐리어이지만 흔히 “형언할길 없다”는 말처럼 창조성적인 문학활동에서 늘 언어의 빈곤을 느끼기도 한다. 언어의 이런 제약성을 극복 하기 위하여 작가들은 한 개념(단어)의 내포의 발굴과 확장에 로심초사하는바  특히 시인들은 시어의 함축성을 기하여 사금을 일어내듯 심혈을 쏟아붓는다.     문학언어의 경우, 내포는 그와 련관된 가능한 모든 것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상공간이 확장된다. 그런데 외연은 내포를 규정하지 못하지만 내포는 외연을 규정한다. 또 다른 례를 들어 “장미는 사랑과 희망의 꽃이다”라는 내포적 표현은 “장미는 장미과 장미속에 속한 관목성의 꽃나무다”라는 외연적 서술과 배치되거나 즉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장미에 대한 외연적 표현은 “장미는 사랑과 희망의 꽃이다”와 관련이 없다. 더 부연한다면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포가 문학언어의 가장 중요한 특징중 하나로 간주되는 리유는 비유, 상징 등이 모두 말의 함축적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다양한 반응을 문맥상의 암시에 의해 유발하도록 쓰인 말은 모두 함축적이라 할 수 있다. 내연적의미는 다음 세가지 로 구분되는데 첫째로 개인적 체험의 결과로 부가된 의미이고 둘째는 집단적의미, 민족적, 문화적 또는 특정 사회적 경험이나 전통에 의해 첨가된 의미이며 세번째는 인류의 보편적 체험에 관계된 의미로서 이것은 가장 함축적인 의미이다.     문학언어 구사에서 류개념과 종개념을 잘 가려쓰는 것은 문학언어의 내연을 확장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의 고전적명작가극《피파다》에 나오는 가사를 례로 들어 설명해 보자. “봄이 왔다. 뻐꾹새 노래 부르고/숲속에 진달래 피였네 붉게 피였네/ 모진 세월에도 봄철은 찾아와/산허리 돌밭 우에 밀보리 푸르렀네/백두산 두메에도 산나물 피여나고/실버들 가지가지 버들꽃 피여나네”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뻐꾹새, 진달래, 밀보리, 산나물, 실버들, 버들꽃들과 같 은 구체적 대상을 나타내는 단어를 통하여 이른봄의 아름다운 정경을 눈앞에 보는듯 이 그려냈다. 만약 여기서 뻐꾹새 대신 새, 진달래 대신 꽃, 밀보리 대신곡식, 산나물 대신 나물, 실버들 대신 나무라는 류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썼더라면 봄은 봄이지만 이른봄인지 늦은봄인지 알 수 없을 뿐만아니라 봄의 정경을 이처럼 생동 하게 그래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가사에서는 작자가 알심들여 언어를 구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례컨대 작자는 이른봄의 정경을 실감나게 묘사하게 위해 새들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봄을 알리 는 뻐꾹새, 꽃가운데서도 맨 먼저 피는 진달래, 곡식가운데서도 맨 먼저 푸르러지는 밀보리, 나무가운데서도 물기가 제일 빨리 오르는 실버들을 골라썼다. 례에서 보다싶 이 종개념에 속하는 단어들은 류개념을 특징짓는 단어들보다 구체적인 사물현상을 나 타내는만큼 서술의 생동성을 보장함으로써 대상을 구체화하는 표현효과가 크다.     문학언어가 시사한 세계는 허구적인 상상의 세계이다. 그만큼 문학언어의 구성요 소에는 음향요소, 의미요소, 이미지와 은유요소, 상징요소, 정신요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발한 상상력을 가지고 전대미문의 시적경지를 창출하는 시인이라도 무중생 유로 완전히 새로운 언어체계를 창조해낼 수 없다. 누구든 전통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일상언어에서 발굴, 제련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언어의 기본규칙을 따라야 한다.          2.4. 문학언어의 구사문제    각종 문학쟝르는 자체의 언어구조를 고유한다. 희곡은 언어의 회화공능에 착중하 고 소설은 언어의 서술공능에 착중하며 시는 언어의 서정성공능에 착중한다. 그러나 그 무엇에 착중하든간에 언어의 각개 공능은 문학의 존재와 발전에 기본조건으로 된다. 그리하여 우수한 문학작품은 민족문화의 보물고가 되고 왕왕 민족문화의 중요한 상징으로 되여 그 민족들의 관념속에 숭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세대대로 전 해지는 대물림보배가 되여진다.     시어는 무조건적으로 정서에 푹 절구어내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상용어를 바탕으로 동일한 선상에서 선택된다. 그리하여 시에서도 말의 뜻은 일단 관련대상을 정확 하게 지시하는 면을 지니지 않을수 없다. 이것을 언어의 외연 또는 개념지시성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외연이나 개념지시란 이미 우리 주변에서 많이 씌여진 과정에 대중 에 잘 알려져 있는 뜻을 가리킨다. 시인이 아무리 기발하게 언어를 선택하고 조합했 다 해도 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을 쓸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서 단어의 외연을 “사전적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현대파시에서는 시의 언어가 정서적 용법이 되여야 한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경향도 있는데 사전적 의미와 전혀 무관한 상태에서 시의 언어가 쓰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시의 언어는 외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상적 언어이상의 것이기는 하지만 일상적 언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거니와 세상에 그런 시인이 태여난적이 없다,     한 낱말이 어떤 단일한 의미를 표시할 뿐만 아니라 쓰인 문맥상으로 보아 동시에 다른 여러 뜻을 암시하거나 내포할 때 즉 함축할 때 이를 내포라 한다. 외연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객관적 설명이나 론술(례를 들면 과학 또는 철학론문에서) 에 쓰 이고 내연적 의미는 독자의 지적리해 이외에 감각적 내지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글, 즉 문학작품, 웅변 등에 주로 쓰인다.     시의 언어는 외연에만 만족할 수 없는 말들이다. 거기에 요구되는 정서의 폭과 깊이를 넓히고, 크고, 짙게 하기 위해서 시의 언어는 내포 또는 함축적의미도 리용하 고자 한다. 이것은 물론 지시적 기능을 넘어선 차원에서 쓰여진 언어다. 그리하여 이 류형에 속하는 의미는 사전에 적혀 있지 않다. 그보다 이런 말의 뜻은 문맥을 통해서 빚어지며 제나름의 맛이나 멋을 지닌다.     한수의 절묘한 경물시에서 인격화된 언어의 공시적공간위에 펼쳐지는 현실적 예술경지는 인성으로 확장되고 보듬어진 존재론적 언어의 창조품이다. 그처럼 유난 하게 의사소통을 잘 시키는 일상의 언어로는 인간의 삶의 현장을 총체화하지 못한다. 문학언어만이 인생의 한계의 지평을 넘어선 지점에서 인간과 생의 사태들을 그때까 지는 미개척지로 남은 독자들의 모종 정감세계에 재현시킨다. 그것이 비록 허구가 될지라도 독자들의 상상의 한계밖으로 이끌어낸다. 그것이 문학언어의 효능이다.     례컨대 시인은 시속에 창조된 새로운 언어적 공간을 통해서 시적인 전률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시인이 시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낯선 아름다움이면서도 공명이 가 능한 아름다움이다. 어떤 사물을 바라보고 그 사물을 통해서 새로운 시적공간을 류추해내는 시인의 상상력도 대단하지만 결과적으로 언어의 힘을 입는다.     상실의 아픔을 눈물로 대변하고 얻음의 기쁨을 웃음으로 반사할줄 밖에 몰랐던 원시인들로부터 차차 개화하여 문명의 새아침을 열어갈 때 문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정화의 기쁨을 아름차게 안겨주었던 것이다. 내가 모르고 있던 삶의 다른 현장, 인생의 또 다른 의미를 가시적인 현실로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 문학예술이다. 모든 종교가 사유가 리성을 이끌어서 희망사항에 속하는 정신세계를 구조화하였다면 문학 은 점감과 정서가 문학언어의 마력에 힘입어 예술적 정신가원을 가꾸게 하였다.    문학은 작가가 가장 비슷한 대상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면서 한편 독자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재현한다. 이 시점에서 문학을 무한한 가능성과 독창성의 세계라고 하는바 좋은 제재를 형상화하고 잘 부각된 인물형상을 창조해 주는것 바로 문학언어이다. 문학을 작가의 자아실현의 실체라고 할 때 작품의 성패는  바로 어떻게 언어를 다루는가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공간은 물론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이 부지기수이다. 그것들은 자신만의 모습과 자신만의 존재리유를 가지고 있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식물이건 동물이건 간에 자신만의 존재방식이 있다. 일컬어 세상만물이 조물주의 피조물이라면 문학은 작가가 창조해낸 새로운 언어적 피조물이다. 문학의 특성은 새로움과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그것은 형태적아름다움보다는 언어적아름다움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나가면서       언어예술인 문학은 언어를 조합해 조직화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러나 순수문학을 위한 언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반면 이들 일상용어가 그대로 문학의 언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언어를 정교하게 다듬고 독자적인 생명을 불어넣어 새롭게 조직할 때 비로소 문학언어로 부상된다. 부러진 나무밑둥의 상흔은 흔히 있을수 있는 사실이다. 이런 소재로 그림을 그려 생동하고 정확하게 시사할 수 있지만, 미적으로 승화시킬 수는 없다. 그리하여 문학언어만이 생명현상의 화면을 예 술적으로 드러낼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라 하는 것이다.     작가는 문학언어로 하여금 사물을 표시하는 범주를 넘어 현실에 부재하는 인간의 희망사항들을 재현하여 없는 것을 있게도 하고 있어야 할 것을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마술사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작가를 언어의 련금술자, 언어의 마술사라고 칭한다. 한부의 빈약한 문학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곧 문학언어의 빈약에서 비롯된것이다. 발생한 사실자체를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은 재능있는 이야기군이라도 가히 해낼 수 있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구수하게 전달하는것은 문학 언어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예술화된 문학작품으로 거듭나려면 문학언어의 마력을 빌려야 한다.     력사는 특수한 사실의 기록이지만 단 한번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력사기록은 특수한 사실을, 그대로 제시한 것이지만 문학은 특수한 사실을 통해서 개연 적 진실에 도달한다. 그 장거를 문학언어가 완성시킨다. 그것이 문학을 예술이게 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간이다. 흔히 문학공부를 하려면 언어공부를 하라고 하는데 작가수업에서 첫수업이 언어공부라고 하는 데 민족작가라면 자기 민족언어에 대한 공부를 착실하게 하는 것이 작가수업에서 선행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언어는 자고로 민족의 얼을 담은 그릇으로서의 말과 그 말을 담은 그릇으로서의 민족문학언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23일            2018년 제 3호에 발표됨
877    (진언수상록78) 운명을 짓씹어본다 댓글:  조회:85  추천:0  2018-05-20
                                               운명을 짓씹어본다                                                         진 언       사람들은 흔히 바라던 일이 꼬이여 마뜩치 않으면 운수가 없다 한탄하고 돌이킬수 없는 불행과 고통에 맞다들면 명이 사납다고 개탄한다. 운명이란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는 초인간적힘으로서 그것은 불가피한 필연의 힘, 예측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힘이기에 통탄하게 되는것이다. 운명은 명확한 목적의지를 갖는 합리적인 힘으로서가 아니라 비합리적,초론리적인 힘으로 작용하기에 더구나 막무가내함에 주저앉게 되고 미리 주어진 생명운동의 궤적우에서 가슴을 두드린다.     이처럼 우리의 운명의식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 인생을 다 살고나서 불만족의 눈길로 돌이켜볼 때, 여의치 못한 많은 일들을 총괄적으로 해석 할 때 더욱 새겨지는 법이다. 운명과 같은 의미로서 숙명, 천명 등을 쓰는데 운명관의 제1형식은 숙명론이다. 이것은 운명의 힘을 필연적인것으로 보고 인간의 존재 모두를 지배하고 있다는 소박한 신앙으로 정립된것으로서 종교적색채가 짙다.     운명은 운과 명을 포함하고 있는데 간단한 의미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인생의 장하 (长河)에 실린 객관적조건이고 조우이며 한 사람에게 주어진 개인력사의 변수다. 명은 선택할수 없고 운은 배워서 되는것이 아니요 얻자해서 얻어지는것도 아니다. 운명은 아는것과 모르는것 사이에 한갈래 다리로 련계되여 있지만 다 알수 없거니와 파악할수도 없기에 지자나 우자나 운명의 적수가 못된다.         인생과 운명은 점철되여 있지만 꼭 같은것은 아니다. 인생을 먼먼 려행길이라 한다면 운명은 그 길에서 발생할수 있는 어떤 사건일수 있다. 인생길에 어느 때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불상사가 발생한 후에야 개탄하기 일쑤이다.《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면,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했는데…》라고 후회하지만 운명은 이미 발생하였고 하나의 미지의 틀로 그려져있었다. 인생에 운명이 포함 되지만 인생은 운명에 매이기도 한다. 그래서 운명을 개변할수 없지만 보충할수는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인생과 운명의 구별점이라 할지 모르겠다.     티끌세상에서 다사분주하게 뒹굴다가 인생이 저물때 운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였지만 생각할수록 모순에 빠지고 알똥말똥하다. 운명은 공정한가 불공평한가? 하늘은 창창하고 세월의 강물은 도도한데 왜 나의 운명은 얄궂기만하냐? 나서부터 잘 사는자, 못사는자, 강자, 약자, 똑똑한자, 우직한자,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순한 사람, 음흉한 사람, 웃음을 흘리며 다니는자, 우수에 잠긴자…인생마당은 천층만층이요 인간은 류류별별이라 운명은 분명 공평하지 못할수밖에 없으렸다.     나서 곧 재부의 소유자가 되는자는 운명의 불공평을 잘 모를것이요 숙명인양 빈궁속에서 일생을 허덕인자는 운명을 저주할것이요 끝까지 운명의 조롱을 받은자는 반역정신으로 심신이 찌들어버릴것이다. 세상엔 절대적이란게 없다. 운명의 공평과 불공평은 상대적이고 서로 얽혀있다. 복속에 화가 있고 화속에 복이 있다는 말이나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는 말로 자기를 위안하지만 결국은 허황하다.      운명은 한가지 면에서는 공평하다. 영웅호걸도 좋고 초민백성도 좋고 부귀영화를 누려도 좋고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해도 좋고 마감에는 흙으로 돌아가고 백골이 진토되여 한오리 먼지로 날려가 버리는 일이다. 일희일비의 인생이라 단지 살아서 숨쉬며 이 땅을 밟으며 걸어다닌다는 그 한가지만으로 인생의 희열을 만끽해야 하나?     사실 자기 삶의 취향과 세상사가 돌아가는 꼴이 모순될 때 슬프지 않을수 없다. 만사여의란 말이 있지만 속타는 일이 한가지도 없다는것도 불행, 비극이 아닐수 없다. 고통을 맛보지 못한 삶은 진정한 행복의 진미를 모를것이고 처절한 비애를 느껴보지 못한자는 크낙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철학가 쇼펜하우엘도 인생은 슬프고 숙명적이라고 했던가,     행복에 주어진 표준이 없듯이 운명에 대한 평가는 일치할수 없다. 석가모니 교리에는 전생에 무엇을 심었으면 이승에서 무슨 열매를 얻고 금생(今生)에 무엇을 심으면 후세에 무슨 열매를 얻는다고 설교한다. 복잡하게 말할것이 없이 덕은 닦은데로 가고 죄는 지은데로 간다는 인과보응의 순환을 말하는것으로서 운명의 지배자는 자기 자신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실천적으로는 역시 막연한 설교이다.     운명을 개변할수 있는가? 여러가지 좋은 조언들도 많더라만 살생하는 악한 일도 삼가했고 어려운 자를 도와 적덕도 해보느라 했으며 어린애를 사랑하고 로인을 존중했으며 인욕(忍辱)을 배우고 관용도 베푸느라 애썼으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겸손하고 성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손해를 볼지언정 분복에 없는것을 차지하려고 다투지 않았으며 마음을 맑게 하고 따스한 가슴으로 세상을 마주하는라 애썼지만 내사 운명에 무엇이 개변되기나 했는지 인생을 거의 살고나서도 알수 없다.     누가 운명앞에서 자유로울수 있단말인가? 생각하는 갈대밖에 안되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운명을 피해갈수 없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건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에 서 탈출할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인생이 너무나도 기구하다고 개탄하게 될 때, 매사 뜻하는대로 되지 않고 비탈리기만 할 때, 인생은 고해라 고생이 장고생이라고 절감할 때, 운명이란게 주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 안되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데 잘 되는놈 앞엔 호박이 넝쿨채 떨어진다고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넘어져도 팥죽함지에 코를 박는다고 하는가?       인생은 촉박하고 운명의 장난은 짓꿎다. 그러나 어떻게 주어졌는지 미리 알수도 없는 운명대로 세상을 살기는 너무나 억울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여난것은 운명이지만 가난하게 사는것은 운명이 아닌것이다. 황차 좋은 운명을 가지고 태여났다고 하여서 평생 행복한 삶을 사는것도 아니며 나쁜 운명을 갖고 태여났다고 하여서 줄창 불행한 인생을 사는것이 아니라고 믿고 살아야 그나마 어려운 인생을 지탱할것이다.     인생관은 교육으로 수립될지 모르나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요, 인생과 운명에 도전해야 한다고들 가볍게 말하지 말라. 주어진 자기 운명이 어느때, 어떻게 불만족스러울지 어찌 알고 도전한단 말인가? 자기 인생극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대단원을 이룰지 어찌 알고 마음 가지기에 달렸다고 한단말인가? 그런 말들은 기성된 구절을 나름대로 옮겨놓은데 불과한것이다.     혹자는 운명의 동의어는 성격이라 하고 운명은 환경과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환경이란 한 개인이 조우할수 있는 가능성의 범주이고 성격이란 그 조우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성격이 운을 결정할수도 있고 운이 성격을 결정할수도 있다면 성격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 운명이 외재적력량이라 할 때 사람이 운명을 지배한다는것은 잠꼬대이다. 다만 운명에 대한 자기의 태도를 지배할수 있을뿐이겠지,     차라리 역경에 도전한다거나 불만족스러운 처지에 도전한다면 사개가 좀 맞을듯싶다. 인생이 장하일 때 자신을 하나의 물고기라면 흐르는 강물에 육신을 맡겨두고 순순히 떠내려가는것이 운명이다. 바람따라 구름이 가듯이 살면 운명에 순응하는것 이다. 그런데 강물을 따라 흐르는것은 무생명체와 죽은것과 혹은 기진맥진하여 삶을 포기한것들이다. 생생 살아서 헤염치는 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기를 좋아한다. 살아있음이 물을 거슬러 오르는데서 체현되고있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장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로는 될수는 있다.                                                           2012년 1월 15일                                                   
876    (진언수상록 77)《계획》의 비애 댓글:  조회:75  추천:0  2018-05-15
                                            《계획》의 비애                                                           진 언       일년지계는 재어춘(一年之计在於春)이요 일일지계는 아침에 달렸으니 전망성과 계획성이 없이 어떠한 사업이든 성과를 운운할수 없다. 만사는 2분법으로 나누어 보아야 하고 환득환실의 각도에서 문제를 투시해야 한다면“계획”이란것이 워낙은 인류의 진화와 물질재부창조에 더없이 유익한것이다.     그래서 계획경제시대도 그 나름의 우점이 있다고 긍정해야 할것이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어온다면 계획경제는 전시체제에 최적이였다는것이다. 소유의 거민이 표제로 공급받지 않았다면 간상배, 투기모리분자들이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는것이였다. 지금 같이 투기모리가 창궐한 상황에 비하면 확실히 우점이였다고 수긍하게 된다.     두번째로 계획경제는 가난하고 말끔하던 나라를 현대국가로 이끈 작용을 하였다고 한다. 과정이 없는 결과가 있을수 없다는 시점에서는 맞는 론단이다. 다음 지금 같은 시장경제는 귀환(反馈)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시장기제는 자원배치문제를 해결 하였고 공유경제의 효률을 제고시켰다는 등등, 아무튼 계획경제시대는 자기의 력사적 사명을 영광스럽게 완성하였고 휘황한 성취를 거두었다고 할수 있다.     개괄해 말하면 계획경제시대에 대하여 실사구시적으로 평가해야 할것은 당연하다. 무조건 먹칠할수도 없고 한마디로 부정할수도 없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둘이 하나로 합해지는 철학원리나 혹은 성공적인 수술이였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데 졸문은 경제문제의 시대적추이같은 거창한 문제를 다루려는 취지가 아니라 외곡되고 오도된 계획에 대한 관념에서 진행된 일부 시행착오에 대해 말하려는것이다.     사실상 계획이 한때 많은 방면에서 오도되였다. 계획경제시대 농민들은 일년내내 등이 휘도록 농사지어도 그냥 식량난에 허덕이다보니 계획소비방법들이 많이도 고안되였더랬다. 황당한 시대에는 괴상한 창조자들이 많이 나오는법이다. 어떤 사람이 시래기로 쌈을 싸먹으면 배가 인차 부르고 오래 꺼지지 않는다고 했고 밥이든 죽이든 젓가락으로 먹으면 후르륵!소리와 함께 공기까지 들어가서 인차 배부르게 된단다.     그리고 앉아서 먹으면 배가 처지면서 많이 먹게 되므로 서서 먹는게 좋다고 하는 등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거국적인 절약방법들을 많이도 창조발명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은 천방야담을 듣는것처럼 허구프게 웃을것이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두때먹기를 비롯해서 천방백계로 굼때우려 하였고 집집에 량식절약공약 따위를 붙여놓고 아무리 귀한 손님이래도 축객령을 내렸다.     그때 계획성이란 곧 먹고 입고 쓰는 모든것의 제한 그 자체였다. 가난이 영광이고 잘먹고 잘사는것이 “자산계급의 생활방식”으로서 수치라는 황당시대 시행착오는 국민을 오도하면서 가난한《사회주의》에 모든것을 기탁하게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계획성을 절제와만 련계시키는 사유모식에 굳어져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야말로 계획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례컨대 지난세기 70년대말부터 실시된 계획생육을 보자. 기하급수적으로 증장하는 인구대국으로 놓고 볼 때 총체적으로 생 육을 제한하는것이 기본국책이긴 하지만 우리 조선족으로 말하면 그저 줄이고 못낳게 하는것이 곧 계획생육이 아니였음을 지금와서 가슴치며 통탄하게 된다.     그 어느 소수민족보다 이른바 계획생육에 급선봉이 되여 90년도에 가장 낮은 출생률을 공제하여 현대인구재생산률에 진입했다고 홍보하였는데 행정상에서는 임무 완성하고 정치상에서 실적을 쌓은것이 되였는지는 몰라도 력사적시행착오를 범했다는것을 자인해야 할것이다. 조선족은 인구증장에서 계속 하강선을 긋고있어 이제 50년 후에는 19만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예측이 나오고있다. 이는 민족의 존재여부와 관계되는 이른바의 계획의 비운이 아닐수 없다.     인구의 자질제고도 인구의 결구, 량질화도, 인구의 지역경제도, 사회자원환경의 조화적발전도 일정한 량의 보장이 없으면 다 공리공담이 된다는것은 상식이다. 계획성이란 의식적으로 유지되는 부단한 균형을 의미한다. 첫시작부터 무조건 줄이고 제한하는데만 열심하다보니 인구의 자연생장률과 자연사망률의 비례를 고려하지 않았고 미시적각도에서 발생할수 있는 돌발적인 인구류실을 예상하지 못한 근시안적인《계획》이야말로 얼마나 유치한 작법이였던가?      지금와서 아이를 둘을 낳으면 우대를 한다고 하는데 력사적시점에서 잘못된것을 변상적으로 반성하는 때늦은 미봉책이다. 배는 이미 떠나서 산굽이를 돌아갔다. 다시 불러올수 있는가? 물론 조선족인구가 거의 마이나스성장을 기록하게 된 원인이 단지 계획생육에만 국한된것은 아니지만 첫시작부터 인구증장의 경영에서 곁길로 빠져버 렸던것이다. 물이 새기시작한 배는 갈아앉게 생겨먹었다. 거기에 등을 디밀고 안깐힘 쓰는것은 대책이 아니라 무모한 욕망일뿐이다.     우리 민족의 인구감소의 현황에서 비애를 느끼지 않을수 있는가? 지금 5십대 후반의 사람들로 말하면《재수없는 세대》라 할수 있다. 한창 잔뼈가 크고 굳어갈 때 이른바《3년재해시기》였고 한창 지식을 배워야 할 때《문화대혁명》을 맞이하여 열화속의 소년시절을 보냈고 학교를 대충 나와서 일자리를 얻고 인생을 시작하려니까 일컬어《광활한 천지에는 할일이 많다》는 바람에 재교육을 받으러 농촌에 내려갔다.     지각한 사랑이지만 인륜지락을 마음껏 누리려고 하니 그만 하나만 낳으면 영광이고 둘을 낳으면 수치라고 호소하는 바람에 하나만 낳고말았다. 자식을 거의 키우고 일하며 사는 영광을 만끽하려는 때 공장, 기업들에서 기구를 간소화한다는 시책에 따라 일터를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사람은 자리에서 내려 (下岗)와야 했다. 하여 력사교과서에서만 기억했던 실업자가 된것이다, 다만 사회주의시대에 첫실업자가 되는 영광을 안게 된것이 다를뿐 그 실속은 한가지다.     한 사람의 퇴직은 늙었다는것을 의미하고 늙었다는것은 빈까치둥지를 지키는것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만 낳았기에 두 젊은이가 네늙은이를 부양하게 되였다. 다행이 자식이 신변에서 사업하면 그래도 효성을 받을수 있지만 모두 외지에 가있다면 네 늙은이는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게 되여 꿩구워먹은 자리를 퀭하니 바라봐야 할 신세로 된다. 이것은 한시대가 낳은 후유증이라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동시대 사람으로서 돈이 많은가 적은가의 차이는 있겠지만 늙은 다음의 문제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혹시 병상에 눕게 되면 호리할 사람도 없고 위문오는 사람도 없이 창밖만 처연히 바라보게 될뿐이다. 이런 처경은 거의 모든 늙은이들이 부딪친 공동한 문제일것이다. 역시 주도한《계획》이 맺어준 쓰디쓴 열매인것이다.     노상 지각하는 경험선생이 펼쳐드는 교훈서는 예이제 후회, 사후청심환같은 대책으로 엮여져있다. 먹을것도 입을것도 땔것도 계획경제의 속박에서 계량되여야 했던 그시절에 신물이 나지만 계획일반을 부정하는것이 아니다. 치국책에서든 개인의 의식주행에서든 무계획은 무질서와 혼란을 의미한다. 비판적어경에서“망탕지휘”라든가 “학비를 냈던셈”,“눈감고 발더듬이로 강을 건너기”같은 개념이 류행되고있는데 파헤치고 보면 결국 무계획성이 낳은 대작들인것이다.     공급과잉현상도 그렇다. 즉흥적인 산업발전에 의하여 지하자원개발도 무계획적이여서 자원고갈을 예기하고있다. 이 시점에서 계획은 영원히 필요하고 잘 세워야 하는 생존구도이기도 하다. 무계획생산은 망탕생산이다. 계획경제시대로 돌아갈수는 없지만 계획성은 만사에 우선하는것이여야 하리라.                                      2006 년 4 월 15 일
875    (칼럼) “갑질”을 비웃는다 댓글:  조회:166  추천:0  2018-05-01
                                                        “갑질”을 비웃는다                                                                      진  언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갑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였는데 ‘갑을’은 원래 계약체결의 당사자인 갑방(甲方)과 을방 (乙方)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계약은 정의상 둘 이상의 독립적인 개인이 자유의사에 의해 대등한 자격으로 체결하는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갑이 거래관계에서 차지하는 우월한 지위를 리용하여 을에게 공정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 바로 사악한 갑질이다.     갑부들의 잘난 “갑질”이 무척 성행되고있다. 려객기를 되돌리게 한 오너 임원, 백화점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게 한 고객모녀, 제자를 고문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 운전수를 노예처럼 부려먹은 기업주, 기업회장의 항공사직원에 대한 폭행, 병사더러 술상을 차리게 하고 쩍하면 구타한 모사단장, 일컬어 인류 생명의 기사들의 일터인 병원내에서 만연된 임금갑질, 휴가갑질, 노동갑질, 모성갑질, 성희롱갑질, 폭력갑질, 지시갑질, 비품갑질, 정치갑질, 의료갑질…     갑질하는 자들의 잠재의식에는 잘난 우월감이 준동하고있다. 그런 자애가 자신을 선량한 갑으로 놓아두지 않는것이다. 갑질하는 자들은 안하무인이여서 타인의 삶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악랄하고 비루한 작태가 일상이다. 묻거니와 자기만이 주인이 아니라 타인도 자기 삶의 주인일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무식하면 용감해지는 법인가, 갑질쟁이들은 인성공부에는 “묵은돼지”들이다.     힘있는 자들의 무제한적 권리가 힘없는 자들의 무제한적 의무로 규정되고 있는 비리한 현실은 인간의 저렬한 근성의 또 다른 화랑이다. 상처입은 사람들은 아프고 분통이 터지고 증오심이 비등할것이다. 힘있는 자들의 갑질은 막무가내라 할세 약자로서 또 다른 약자를 갑질하려 든다면 어처구니 없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한국의《연합뉴스》에서 청주 흥덕경찰서는 70대 택시운전기사의 뺨을 수차례 때린 혐의로 중학생 A(15)양과 B(15)양을 불구속 입건했다. 눈물이 헤픈만큼 동정심도 많고 순결무구해야 할 소녀들마저 갑질의 쾌감을 느끼려하니 말세는 말세로다.     더욱 경악할 일도 있다. 2년전인가, 경기도 이천시의 한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파괴된 인성의 패륜현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39세의 기간제 교사에게 16세 전후가 된 학생 3.4명이 듣기조차 힘든 욕질과 침뱉고 매질을 하는 장면이 세상에 전파되였는데 만화나 소설도 표현하기 힘든 패륜 그 자체였다     학생들의 인성에 내제된 인간의 도리는 아예 찾아 볼수조차 없다. 정식교사가 아닌 기간제교사란 약점을 잡아쥐고 저지른 그 악랄한 '갑'의 근성이 어른들 사회를 조소하듯 표출된 더러운 모습이다. 사회 곳곳에 고질적으로 만연해 있는 "갑질문화"가 가장 신성하다는 교정에서 공공연하게 감행되였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한 나라의 인성질서가 가장 근본이 되고 확실하게 확립되야 할 교단이 저런 식으로 무너지면 한국사회는 미래가 없다.      타인에 대한 갑질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할수가 없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집착하다보니 타인의 삶에 치명적인 아픔을 주고있다. 갑질은 다른 사람을 주체로 보지 않는데서 생기는 지극히 가증스러운 병적인 심태이다. 갑질행위의 밑바닥을 파헤쳐 보면 저질의 인성의 표현이다. 그래 아니란 말인가? 자신의 행위가 결코 인간적인 작태가 아니란것을 알면서도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 들은 자신의 인격력량과 차지한 자리의 힘을 혼동하고있다. 제복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나뽈레옹의 말처럼 그 사람이 대단한것이 아니라 그 자리로 하여 으시댈수 있을뿐이다.     전통적 관념상 태여날 때 인격은 일률 평등하다고 한다. 그런데 각자 사회인이 되고 사회상에서 신분, 직위가 천차만별로 구별되면서 마치 “갑”과 “을”의 관계처럼 상위에 있는 인간간이 하위에 있는 인간을 박대하고 있다. 갑질행위를 너무 흔해빠진 분석을 들이댄다다면 입에 달고 있는 인권침해이다. 당신에게만 인권이 있는가? 피갑질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그럼에도 무지막지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근본을 잊고 갑질하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정상인의 심태일수 없다. 모든것이 변하는 이 인생마당에서 누구도 결코 갑으로만  살아갈수는 없지 않은가? 절대의 갑으로만 존재하는 생명체는 없으므로 좋으나 궂으나 상호의존해 살아가게 되여있다는 구구히 설명해주어야 알것인가? 도고한 갑질쟁이들이여, 그 좋아하는 갑질을 하기전에 한번쯤은 자문해 보라. 자신을 사랑하는만큼 랭철하게 해부해 본적이 있는가?     그러니 진정 강자라면 약자들앞에서만 거센치 하지 말고 가장 이기기 어려운 적수인 자신한테 수시로 갑질하라. 타인을 용서할줄 알아야 사랑할줄도 안다. 타인에 대한 관용은 자기 내심세계의 평화를 열어주는 열쇠다. 적덕이란 용서하는 마음에서 쌓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인간은 약자를 학대하는 인간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용할 때 되돌아와 자기에 대한 관용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력상수가 높은 사람이라야 깨도할수 있는 인생도리가 아니다. 박애는 일종의 정조이자 수양이다. 박애를 지닌 사람만이 진정으로 스스로를 대접하고 남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기때문에 그의 삶도 즐거움으로 충만할수 있다. 이것은 인생상식이다.     사람이 지켜야 할 법에는 세가지가 있다. 문화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을 말하는 사회륜리법, 법적으로 허용되는 민법과 형사법, 그리고 인과보응이라고 하는 보편법이 그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법은 위반해도 무사할수 있으나 세번째 법을 위반하면 결코 무사할수 없다. 도덕법정도 법정이요 평생을 두고 징벌하기때문이다.     각설하고, 제대로 먹혀진 민주주의국가는 부하고 귀함을 막론하고 평등하게 공생공존 하도록 잘 짜여진 시스템을 갖춘 국가이다. 고위관료는 고위관료대로,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갑질을 당연한 행실로 여기고 어떻게든 ‘갑’의 위치에 서보려는 ‘을’의 그릇된 생각이 오늘날 ‘갑질’이 일종의 문화풍경으로 그려지게 된 원인이다. 갑질이 화해사회에서 생기지 말아야 할 악성병폐이지만 변화가 있을수 없다.     돈이면 만사통인 자본주의사회에서 특권층이 특권을 내려놓고 평등사회가 뿌리를 내리는 사회를 바라는것은 허황하기만 하다. 멀쩡한 제비다리를 부러뜨린 놀부는 죽었다 깨여나도 흥부가 될수 없다. 권귀들은 권귀들대로, 재벌은 재벌대로 호령질에 인이 박혀있기때문이다. 인격을 인격으로 보지 않으려는 지배구조에서 싹튼 ‘갑질’은 이제 인정마저 싹 말려버릴것이다.     닭들은 모이를 주는 주인의 손을 이라고 생각한다. 그 손이 자신의 목을 비틀기전까지만, 이것을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의 비유 혹은 귀납의 오류라고 말한다. 닭을 키우던 농부가 결국에는 닭의 목을 비튼다는것은 그저 아이러니만이 아니다. 이래저래 참으로 우스운 인간극장이요 웃기는 갑질문화라 하겠다.                                           2017년 11월 18일
874    (시) 어느 합수목에서 댓글:  조회:110  추천:0  2018-04-27
                             어느 합수목에서                                       최 균 선                              보아라 어디든 합수목서                            찬찬히 보아라 갈래갈래                            실개천 흘러서 편도없이                            강물에 섞이는 즐거움을                              줄기찬 류수가 만날때에                            잠시는 격랑도 일렁이고                            용용용 고패도 치겠지만                            마침내 하나로 되노매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도                            유연한 물처럼 된다면야                            알륵도 배척도 가셔내고                            융합의 대단원 못이룰가                              철천지 원쑤가 아닌바에                            마음이 하나로 얽히려면                            사심이 풀어진 물이되라                            개체든 국가든 민족이든                              부딪는 쇠돌을 못보았냐                            깨지고 불타는 옥석구분                            대동강 한강이 흘러들어                            동해의 창파를 이루나니                              반만년 이어진 핏줄인데                            분렬후 으르렁 호시탐탐                            입발린 말하기 쉽다한들                            속다른 통일론 짓씹지마                                       2015년 8월 15일
873    (신작시) 평화의 봄꽃이여, 활짝 피여나라 댓글:  조회:204  추천:0  2018-04-27
                               평화의 봄꽃이여 활짝 피여나라                                                     최 균 선                                세계의 의로운 사람들이여                              지도를 펼치라.                              무겁게 드리웠던 전운이 걷히고                              평화의 새봄이 성큼 다가선                              3천리 조선반도를 찾으라.                                민족분단의 아픔을 피눈물로 삼키며                              세기를 넘겨온 8천만 겨레들이여                              그대들의 뜨거운 마음이 달려오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력사적 비극의 검은 막이 찢기고있다                                       보라! 하나로 뭉치려는 두 지성이                             뜨겁게 손잡고 부여안고 웃으며                             한서린 분계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넘어오는 저 모습이                             70년 묵은 해원의 첫걸음이 아닌가!                               녕변에 약산 진달래꽃이 웃는다                             남녘의 무궁화꽃 향기를 풍긴다                             백두산 천지의 푸른물 격랑을 솟구고                             한강이 노래하고 한라산이 환호한다                             세계의 선량한 마음들이 뜨거워진다                                                        3천리 금수강산 푸르게 열리는 하늘에                             칠색 고운 통일의 무지개 비끼는가                             하나로 이어지는 길 여기서부터                             탄탄히 닦아지리라는 믿음이                             천천만만의 가슴들에 새겨진다                               닫혔던 시린 마음을 활짝 열고                             평화와 번영을 함께 심어가노니                             끊기였던 민족의 혈맥도 이어져                             평화와 번영의 뿌리가 얽히고                             천년로송으로 만고장청하리라                               미움과 알륵의 응어리를 풀고                             피어린 3.8선을 지워버리려는                             겨레들의 세기적 숙원은 헛되지 않으리                             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의로운 넋들이                             민족력사의 새 편장을 엮어가리라                               민족부흥의 오아시스를 마련하는                             남북화해의 경사로운 봄날에                             단비여, 천실만실 축복으로 내리라                             무궁화 동산에 숙망의 새싹이                             줄기차게 자라나 무성하게 하라                               평화의 봄이 이미 깃들었거늘                             번영의 가을이 아니 올소냐                             통일의 새 아침 우리들이 열거니                             찬란한 저 빛을 가리울자 누구냐                             평화의 봄꽃이 활짝 피여나라                                      2018년 4월 27일                            (북남 두 정상의 력사적만남의 날에)                                
872    (진언수상록 76) 그럭저럭 살다의 내함 댓글:  조회:152  추천:0  2018-04-18
                                         그럭저럭 살다”의 내함                                                          진 언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나 지기가 “그래 어떻게 보내고있소?”라는 문안하면 “허. 그럭저럭 살고있네”라고 대답하기가 보통이다.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말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우선 추상적가치가 부재한바 끝까지 해내지 않고 또 대수로이 여기지 않기에 맺고끊는 멋이 없이 대충대충 넘어간다.     글자, 혹은 한개 단어는 단순개념일수 있으나 어떤 글자, 단어는 그 민족의 문화, 집체의식을 담고있다. 음역해서 우리 말로 쓰이는 혼돈(混沌)에 깃든 혼합의미는 미묘하다. 강물이 흐르면서 수많은 지류가 흘러들어 류량이 부단히 커지고 또한 혼탁해지듯이 여러사람이 뒤섞여지니“혼(混)”이 생기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이시점에서 “혼”자를 중국의 민초들이 쓸 때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하 여“混饭吃,混日子”라는데 확실히 한갈래 삶의 길이라고도 하겠고 일종 생활방식이라고도 하겠다. 이에 상응되는“그럭저럭”은 일종의 처세술로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흑백을 뒤섞어놓고 무슨 일에 부딪치며 애매모호 하게 말하거나 대강대강 창졸 하게 엮어댄다. 이런 심성이 굳어지면 기괴한 판단표준과 행위준칙으로 삼기도 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속담을 기준삼고 물이 흐린김에 고기를 더듬어 잡으려는 이런 심리관성으로 하여 시시비비를 가르려하지 않고 비정한 현상에도“쓸데없이 참견말라”는 좌우명대로 마냥 구경군이 된다. 이런 심리자세를 가지다 보니 사람들이 오래동안 가치방향을 잃어버렸던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의미에서“혼”은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예측불가의 생활속에 수시로 막무가내한 일들이 발생하고 그만큼 파란만장한 인생려정이니 어찌보면 번거로운 인생살이에서 지어먹은 해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혼”이 중국사람들의 처세철학에 한가지 규범이 되였는지 모른다.     하기사 인생이 뭐 별거인가? 저무는 인생길에서 만단회포를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참으로 “그럭저럭 사는 인생”이라 하겠다. 욕망의 벽도 다 무너지고 가는 시간, 가는 순서도 다 헝클어진 고래희 고개턱에서 돌이켜보니 둥근 지구촌에서 두리뭉실 살자해도 이리저리 부딪치며 상처나고 아물고 또 래일에 웃으니 세상사란 요지경같다. 지어먹은 마음같이 되지 않는 인생인것을 악착스레 살았던들 남은게 무엇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인생지침서들이 많더라. 혹자는 가르치되, 목표를 세우고 자신감을 갖고 환경에 익숙한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거기에 행동할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고,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라태와 무료함이니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고, 난관이라도 헤쳐나간다면 인생이라는 이 어렵고 복잡한 마당에서 반드시 최종승자가 될것이니 행동이 바로 생활에 충실하고 무료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량책이라고,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하지 말고 세상을 헛되게 살았음을 한탄하라고, 다 일리가 있지만 기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줄수 없 다. 말대로라면 인생학교 우등생이 되련만 그게 어디 마음먹은대로 되는 일인가?     각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래서 힘이 되는 조언들은 서로 모순되기도 하여 유의무의하게 어기며 살게 되는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나름대로 다르게 정의해 볼수도 있다. 인생의 동의어인즉 사랑이니 광의적의미에서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했다면 지성인이라 할것이니 단 한사람에게서라도 사랑을 받고 살았다면 사람답게 산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현시대 가장 절실히 필요되는것이 성실일진대 시종 성실하게 살았다면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였다는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이 모든것에 이신작칙 하였다면 과시 훌륭한 사람이라 할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릇 개변이란 불가능함을 알고 있기에 될수록이면 시끄러움을 회피하고 되여가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것이 준칙이 됨으로써 공공리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리익에 준하는 처세를 강구한다.  행복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감수에 머물고 있다는것을 알면 괴로움도 한걸음 물러서는 법이다.  잘났으면 잘난대로 살고 못났으면 못난대로 살아가기 마련인 인생이라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고, 배고프면 배고픈대로 살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살면서 마음이 편하면 만사대길이요 자신에, 가정에, 사회앞에서 책임을 내세워서 그럭저럭 버텨내며 살아왔다면 과시 제잘난 멋에 살아온 인생이 아니던가?     바람직한 일은커녕 바라는 일도 하지 못하고 좋은 일은 고사하고 좋아하는 일도 맘대로 못하고 하고싶은 일이야 없었으랴만 마냥 해야 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온 인생, 결국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게 되는법인가, 심각했던, 가벼웠던, 목적의식적이였던, 자각했던, 몰자각했던 살아지는대로 살아온 인생이다. 고생도 그 한때, 슬픔도 그 한순간, 성공의 희열도 그 한때뿐, 인생이 고달파 못살것같았지만도, 번한 날이 없을것 같았지만도 그럭저럭 살아왔으니 그런 인생일지라도 사는게 좋았던듯싶다.     유감이 많아서 한많은 이 세상인가? 어느날 갑자기 나는 “나 먼저 가오. 잘있소” 라는 영별도 할새없이 훌쩍 떠날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것 하나 없고 동행자도 없으니 떵떵거리며 살아도, 안빈락도로 살아도 결국은 그럭저럭 살수밖에 없는 목숨이 인생인데 탐욕이 탐욕을 마중하고 추구가 추구를 뒤쫓느라 아득바득하니 목숨이 열개라도 당해내지 못할것이다.     자초에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던 엽전의 의미는“밖으로는 둥글게(圓), 안으로는 반듯하게(方)”처신하라는 뜻이였단다. 자신감을 갖고 안으로는 반듯하게 (方) 사는 것은 인생의 기본원칙이라 하고 밖으로는 둥글게(圓) 사는것을 세상을 이끌어가는 기술이라 한다. 달리말하면 눈에 보이기에 보이는만큼 보는 세상, 극히 일부분으로서의 세상을 세상의 전부로 인식하면서 살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자족인게다.     그렇게 사는것이 지극히 물질적인 의식이라도, 확실히 보이는것 같은 저급적인 가치를 기준삼고 근근히 동물적인 본능으로 서식하는것이라해도 인생은 인생이렸다. 고기빵에 고기가 많으면 그만이지 빚은 맵시에 있지 않는것이다. 저 유명한 헤겔씨도 합리적인것은 진실하며 진실한것은 합리적이라고 말했거늘,     변화무상한 세상이요 인생일사 피일시 차일시로 그럭저럭으로 엮어진다. 그래서 순리대로 살라고 한다. 그럭저럭 살아오고 살아가는 초민백성이라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여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잘 어울려 산 인생이였다면 사람냄새를 풍기는 인생을 산것이고 먼저 남을 생각하는 착한 마음으로 흉금이 넉넉하였다면 가난해도 부유한 사람으로 산 인생이 된다.     금의 가치는 오래동안 색갈이 변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의 진미는 오늘보다 래일이 더 낫고 이달보다 다음 달이 더 가치가 있을것이라 믿어야 삶의 진미를 맛볼수 있다. 믿기거나 안믿기거나 우리 모두가 명기해야 할 금언이 있다. 스스로 부풀린 욕망에 짓눌려 헐씨근거리지 말고 당신의 마음 눈을 밝히시라.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한것은 끝까지 가보지 못했기때문이지 세상에 풍물이 없기때문이 아니다. 아름다우면 정채롭다고 찬탄하고 좌절당했다면 경험이라 생각하라. 골이 깊고 아늑한 곳에 초목이 우거지고  물이 고여 깊은 곳에 고기들이 모여 드나니 그냥 리해득실에 초조함을 태우지 말고 순리를 따르면 그럭저럭 사는 삶이라도 무위도식하며 허송세월한 삶은 안되리라.                                              2015년 6월 15일        
871    고전적 문학언어의 묘미 댓글:  조회:148  추천:0  2018-04-12
                                             고전적 문학언어의 묘미                                                       최 균 선           시대와 더불어 변화,발전하는 언어의 자체규률을 어길수 없지만 좋고 아름다운 말인데 차차 쓰지 않아서 숨결이 끊어진 말들이 많아지고있다. 그러나 그것을 “낡투” 라는 감투를 씌워 랭궁에 처넣는다는것은 우리 말과 글의 전통성의 단절을 의미한다 고 사료된다. 병아리를 키우다가 죽어버리면 버리지, 죽은걸 닭장에 넣는다고 암탉이 되냐는 식으로 생각하는것은 단순하다.        왜냐하면 비록 잘 쓰이지 않던 단어라도 재능있는 시인이나 작가의 붓끝에서 거듭나서 보석처럼 반짝거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반지라도 오래동안 구석에 처박아두면 고철이나 다름없지만 다시 꺼내여 잘 닦으면 값진 금가락지 구실을 할수 있듯이 고전적인 언어라도 분위기에 맞게 재활용한다면 그 또한 멋스럽지 않을수 없다. 설사 그것이 숭늉맛같은것이라도 문장이 고전적인 맛과 향기를 풍길수 있다. 이런 문 장기법은 마치 방언을 잘 사용하면 지방특색, 민속적특성을 잘 발휘하는것과 같다.         언어는 류행복처럼 일시적인것이 아니다. 시대의 발전과 아울러 우리 말, 우리 글은 더없이 풍성해졌지만 뿌리없는 나무가 무성할수 없듯이 언어의 뿌리를 외면할수 없는것이 언어발전이다. 바로 작가들이 고전적인 단어라도 잘 닦아서 글줄속에서 야명주처럼 반짝거리게 하는 언어작업은 결코 보수적이만은 아니며 무모한 일이 아니다. 문학언어라 하면 그 특성으로 참신성을 첫손에 꼽지만 전통언어의 재활용과 상충되지 않는다. 세월과 더불어 색바래지 않고 그냥 향기를 풍기는 우리 말이기 때문이다.         례하여 세월은 아득히 흘러가고 시대는 많이도 변하였지만 우리 민족의 고전민요가 어이하여 오늘 날에도 그냥 우리를 사로잡고있는가. 한것은 고전민요는 우리 말, 글살이의 터밭이기때문이 아니랴싶다. 고전민요는 민중의 삶이요 생명으로서 들으면 가슴에 꿈틀거리는 한과 그 한을 흥으로 바꾸어 놓는 묘미가 있다.         그 생명력을 확보해 온것은 바로 우리 말의 매력이다. 들풀처럼 싹트고 한때 무성하여 그윽한 향기를 이 세상에 남기고 차차 잊혀지는것이 민요의 숙명인지 몰라도 언어자체의 숙명은 아니다. 민요는 로동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발생하였기에 일상의 언어가 그대로 원시적 민요로 엮어지였다. 민요에 쓰인 말은 다듬은 예술언어가 아닌 현실적 생활언어로서 로동생활속에서 곰삭아 우러나온것이고 인생고를 이겨가는 희 열의 순간에 저절로 터져나온 진실된 언어이다.         수백년 세월을 넘기며 밭고랑 사이로 전해지고 험한 산길이나 초가집 안방에서, 내가의 빨래터에서 불려진 가락, 한많은 녀인들의 애환이 맥맥히 흐르는 구성진 소리, 그 애원성에서 우리 소리와 우리 말의 멋과 맛이 그대로 녹아있음을 기쁘게 발견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고전민요는 우리의 말, 글살이의 시초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데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상징법으로 민중의 감정과 뜻을 구비구비 풀어낸다. 그래서 민요는 자초에는 개체의 소리였지만 결과적으로 민중전체의 소리이며 지역의 소리이면서도 전민족의 소리로 우렁차게 메아리쳐왔다.         민요의 노래말은 민중의 웃음과 울음이 씨줄과 날줄로 교차하여 만들어진 삼베와 같다. 부녀들 손발의 쉼없는 반복이 베틀작업이듯이, 민중의 한많은 사연이 세월과 더불어 빚어졌는바 마치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만 구구절절 민심이 묻어있지 않은것이 없다. 그리고 그 “질그릇속”에는 울음과 웃음이 공존하고있다. 이는 웃음으로 울음을 걷어내는 민초들의 삶의 지혜의 결과라 할것이다.         아래에 경남《초군 신세타령》을 보자. “에 -이 남날적에 나도 나고 내 날적에 넘났는데/어찌 부귀귀천이 같지 않고 항상 이놈의 지게목달(‘지게다리) 못면하고 항상 넘의 짐만 지고 살아지고이 아- 어떤 사람 팔자좋아 고대광실 높은집에 사모에 핑경 달고 만석농으로 누리건만 이내 팔자 어이하여 항상 지게 못면하고 항상 넘의 집만 살아진고 이후후후--”       나무군이 산에서 힘들게 나무를 하는 과정에서 슬프고 구성지게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는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매우 슬픈 소리이다. 그러나 민요 일반이 다 애원성에서 시작되여 애원성으로 끝나는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민요《령감노래》는 웃음을 유발하기에 결국 웃음으로 울음을 치유하는 희노애락으로 점철된 인생마당의 진실을 지극히 예술적으로 잘 밝히고있다.        “영감아 영감아 개떡 잡소/거리방애 품들어 개떡 쪘네/개떡을 쪄시마 작기나 쪘나 /서말찌 (서말치) 솥에다 한솥 쪘네/영감의 코에는 찬바람 나고 / 개떡솥에는 짐 이 난다”       질박한 언어속에 민초들의 삶의 양상이 생생하게 그려져있는것이 바로 우리 민요의 세계이다. 보다싶이 일상의 언어로 가슴에 피맺힌 이런저런 사연을 가감없이 풀 어냈던것이다. 민요자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민중의 창작품으로서 적자생존의 치렬한 경쟁을 겪어낸 우수한 예술의 결정체이다. 민요의 언어속에는 예술언어 로서의 깊이와 넓이가 그대로 엿처럼 녹아있다.        민요는 천심이라 하는 민심의 세기적 메아리이다. 민요속에는 바르고 정직하게 살려는 민심이 물과 젖처럼 융화되여있다. 동요처럼 천진무구하게 속뜻을 드러내기도 하고 참요(讖謠)처럼 상징과 풍자, 해학 등이 바늘처럼 예리하고 번뜩이는것이 또한 민요의 독특성이다. 생동하는 언어가 지닌 맛, 최적의 표현으로 다듬어진 멋이 민요에 있다. 민요의 언어속에는 다듬어진 예술언어에 못지 않은 묘미가 깊이 녹아들어 있다. 민요는 현실언어가 지니는 멋과 맛을 지니고 있으므로 격세유전의 예술언어로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래서 민요는 우리 말의 보물고라 한다. 보다싶이 민요에는 우리 말을 구사함에 서 우리의 말, 글살이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문학이 되고 음악이 되여진것이다. 말이 말을 받아 소리로 이어질때는 말자체가 자연스럽게 음악성을 고유하게 된다. 말이 그대로 소리가 되고 음악이 되여 부드럽고 아름다운 리듬과 선률을 지니게 된것이다. 동시에 드러내고자 하는 말의 뜻이 정서적으로 은은하게 전달되고있다.        우리의 민요는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한것이지만 세련되게 다듬어져있다. 말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거칠고 투박한것을 피하고 유연하고 막힘없이 류통되기 마 련이다. 그래서 민요는 어떤 특수계층이나 전문가만이 향유하는 문화가 아니라 대중적이다. 중세기 사람들이나 현대문명인들이나 약속이나 한듯이 공감할수 있는 의미전달의 장(場)으로서 제기능을 훌륭하게 하여왔기에 우리 문화유산이 될수 있었다.      문학어와 일상생활어는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목적성에서는 큰차이가 없다. 다만 문학어는 운률이나 의미의 사용면에서 소리를 기술적으로 다루거나 여러가지 의 미로 해석되는 말 등을 보다 재치있게 예술이 돋보이게 활용한다.         요컨대 시(민요도 포함)에서 언어는 예술성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시의 예술성,감칠맛은 시어의 쓰임새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 것은 시어의 표현성, 독창성, 참신성으로 나타나는것이기에 시어는 예술적가치 구현의 한 척도가 된다. 민요에서처럼 고유어, 방언의 쓰임새에서 우리 말에 고유한 멋과 맛 그리고 향기가 그냥 짙게 풍길것은 틀림없다.       화제를 달리 전개해 보자. 지금 현대시 실험을 넘어 인제 하이퍼시까지 나온 상황에서도 김소월의 시가 왜 많은 사람들이 기리고 있을가? 김소월은 조선시대 근대시 발전도상에서 최초로 전통의 현대적수용을 새로운 경지로 보여준 시인이다. 신문학 초기 많은 시인들은 전시대의 삶의 가치관이 갑작스럽게 헝클어지게 된 현실속에서 주체적인 세계인식, 태도가 확립되지 못하였고 시창작방법을 확립하지 못한채 외부의 충격을 매료되였다. 그러나 시대 현실에 대한 옳바른 인식이나 전대 문학과의 관련을 상실한채 추구하는 서구시의 수용과 모방은 혼돈과 미숙성으로 귀결될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문예사조가 혼류하는 가운데 많은 시인들이 서구시를 모델로 한 실험에 열광할 때 소월은 우리 전래의 문학과 문화유산을 폭넓게 계승하여 뚜렷한 시적성 취를 이룸으로써 조선근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던것이다. 하여 소월의 시작품은 전통론의에 시금석과 같은 존재로 각광받았다. 소월의 시에 내재된 전통적 요 소와 특성, 특히 민요적 성격과 “한(恨)의 정서가 사람들의 공명을 불러왔다.         물론 문학의 전통성에 대한 연구와 계승은 궁극적으로는 당대현실과의 변증적 융함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자명하다. 따라서 단순히 전통방식의 답습은 무의미한바 창조적 비전을 외면하고 획일적인 전통지향은 복고주의에 불과하게 된다. 전통성에 대한 연구도 단순한 전통적요소의 재확인을 넘어서서 전통을 계승함에서 창조성과 현 재성을 규명하면서 협조적으로 되여야 함은 두말할것 없다.        재언명하거니와 우리의 고유한 가락, 전통적 률격을 현대적으로 재치있게 재생해 낸것이 바로 소월 시이이다. 례하여 “진달래꽃”의 률격을 처음 대할 때 도무지 낯설 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오는것은 바로 소월시가 일상어에 가까운 소박한 시어의 구사와 전통률격에 밀접히 접목되어 있기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노래말 구성법으로 볼 때 민요는 우리 말을 가장 부드럽고 향토적 정감이 넘치는 방향에서, 그리고 쉽게 부르고 쉽게 기억할수 있는 차원에서 구사한것들이였다. 그런데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민요는 전통문화권에서 기능했던 역 할을 상실하고 현대풍의 대중가요속에서 사라지고있다. 소리가 사라지는 세계에 음악 이 넘쳐나는 이률배반적인 세상에서 우리의 민요문화는 어떻게 계승될것인가?           민요속에 인간삶의 보편적 정서와 지역공동체의 공감대를 느껴볼수 있다. 이러한 속성의 민요는 극단적으로 개인화되여가는 현대사회를 보다 따뜻하게 만들수 있는 매체로 존재할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민요가 일상의 삶에서 쉽게 접근할수 있는 노래문화로 거듭난다면 민요는 새 생명을 얻을수 있을것이다. 따라서 민요속의 멋과 맛을 더 깊이 료해하고 그것을 우리의 시문학창작에 응용한다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세계적 문화의 꽃으로 내세우는데 얼마나 의의로울것인가!                              2016년 12월 31일                (2017년
870    작가에게 도화원은 없다 댓글:  조회:183  추천:0  2018-04-08
                                        작가에게 도화원은 없다                                                            최 균 선       우리의 문학은 지금 독자층의 확보라는 난제를 안고있다. 우리의 문학을 누가 읽어야 하는가. 오늘 날, 다른 전달매체에서 끌어간 더 많은 대중들이 읽어야 한다. 감각지상주의가 된 이 시대, 문제시 되는것은 보다 문학성이 짙은 작품으로 날로 나날이 더 많이 잃어가고 있는 독자들을 흡인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이다.    문학이 사회와 관련없이 쾌락적인 오락으로 전락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작가가 개변하기는 어렵다. 현시대 젊은이들의 상상력의 결핍은 문학에 대한 소외와 관련 되여 있다. 유혹의 상징은 희랍신화속 바다요녀의 노래이다. 문학이 바로 바다요녀의 유혹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학은 자체에 고유했던 유혹력을 상실하였다.     문학이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나가는데 무력하다는 의론을 반문학적이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작가로서는 비관적인 평판이 아닐수 없다. 인류가 남겨놓은 문학유산은 휴지가 될것이고 선각자들이 쉴새없이 진행한 사고들은 모두 헛짓이 되고 말기때문이다. 문학이 대중에게 소외당하게 된것은 고도의 물질문명의 역설인가?     손중산선생은 인간을 세가지 류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는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알고 먼저 깨달아서 먼저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항상 앞서가는 인간군의 선두주자들로서 희소하다     둘째는 “후지후각자(後知後覺者”로 다른 사람이 행동할 때 뒤따라가는 사람으로서 항상 행동이 한단계 느리지만 뒤늦게 깨달아도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 람이다. 때론 자존심때문에 맹종하지 않고 늦게라도 알아차려 제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로서 된 사람으로서 인생고를 겪어야 할 운명이다.     셋째는 “부지부각자(不知不覺者)”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우왕좌왕, 천방지축 살아가는 사람, 자신이 시대의 흐름에 앞서고 있는지 뒤처져 있는지 분간못하고 그냥 제멋에 겨워 인생을 살아가는 무리들이다..     손중산선생이 말하는 첫째 부류의 선각자가 되는 길이 작가의 길이다. 작가들은 흔히 불만족한 현실에 없는 문제들을 작품속에서 더듬어내고 그것을 펼쳐 보인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문학이 인류의 안녕과 복지에 복무하지만 비정상적인 환경하에서 문학의 백화원을 누가 지배하는가에 따라 악용되였다. 그러기에 무시로 딱한 처지에 놓일 부류가 문학인계층이였다. 그들은 문학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의해 운행될지 알기도 하지만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학 그 자체에는 리념이나 진영 따위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책에 씌여진 공리공담이다.누군가 자청해서 어용문인이 되였을 때 그는 인생의 패필을 쓰기 시작한것이며 랭소와 저주의 기둥에 매달리게 된다. 자고로 지조가 높다는 선비들도 리해득실을 앞세울 때에는 량지를 잃는다. 인간사회에서 리익을 초월하는 힘이 없기때문이다. 바람이 부는데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문인은 갈대의 순정에서 벗어날수 없다.     인간성이나 자유라는 개념이 상충되고 있는 인문환경속에서 문학에 혼신을 불태우는 작가들이 많은데 인류에 필요하고 청사에 길이 남을 작가가 될지 아니면 력사의 죄인이 될지는 각자가 선택할 일이다. 바람따라 돛을 달수도 있고 문인의 지조를 고집할수도 있는데 각자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판정할것이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려는 지향은 불확실하다. 지금은 원고료로 갑부가 된 한 족작가들이 있지만 자초에 우리가 문학을 지망하던 그때는 원고료를 바라고 붓을 든 사람은 적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되돌려진 원고를 찢으며 절망하고 더는 문학을 하지 않는다고 만년필을 던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문학의 잘못이 아니였다.     작가는 마치 임자없는 묵밭에 금은보화를 묻혔다는 랑설을 곧이듣고 그 밭을 사서 구석구석 파헤치는 우직한 사람같다. 문학의 백화원에 눈부시게 피여나 향기 만방하는 글꽃들은 무수하지만 금은보화는 없다.작가는 망망한 바다에 한껏 펼쳐지여 희귀한 물고기를 끌어모으는 그물과 같기도 하여 그물에 가득하매 못된것은 내버리고 좋은것만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가다운 작가는 고군분투할 숙명이을 타고났다. 또 하나 작가의 장인정신은 분투정신이다. 각고의 노력에 금전과 명성이 따라서지 못하여도 기죽지 않는것이 작가의 의지이다. 삶의 현장에 대한 관조와 재조명이 작가적 자각의 행위라면 문학은 비생명적이며 반인간적인 여러가지 요인에 결연히 맞서서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바람직한 인문조건을 마련하는 성스러운 작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산은 오르라고 있는것이지 보라고 있는것이 아니다. 땀을 흘리며 힘겹게 정상에 오른 사람이 즐거움을 맛볼수 있다. 문학백화원의 주인은 작가들이다. 고생스러움도 자아가치 실현도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해석하는만큼 채워지고 달라진다. 억지가 상식을 짓밟고 진실이 혼란속에 질식되였지만 작가로서 굴절시킨 자기 합리화는 무모하다. 독자들의 사랑을 잃으면 문학의 존재리유를 상실한것이다.     인생은 행복한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게 만들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레브 똘쓰또이가 글을 쓴 까닭은 오로지 자신이 깊이 생각하여 깨달은바를 다른 사람, 세상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다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였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되기 위해서 분투하였다. 인류는 너무 많은 진실을 감당할수 없지만 반대로 만천하에 범람하는 허위에도 진저리 치고있다. 작가는 그들과 함께 진저리만 치는것이 아니라 납함해야 할 사람들이다     진정한 작가는 “글뒤주”에서 나온적이 없다. 지식경제시대라 해도 작가에게 있어서 졸업장ㅡ학력(学历), 학벌은 별개의 문제이다. 작가에게는 학력보다 학력(学力) 이 효용적이기때문이다. 작가에게 확실한 학력은 곧 문학세계에서 발신되는 창조정신과 력량이다. 쉐익스피어나 쎄르반떼스나 졸라 등 대문호들의 학력은 미미했지만 인간연구에서 얻은 학력(学力)은 학력(学历)을 무시하고 인류의 문화발전에 불멸의 큰 획을 그어놓은 대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하기 그지없는 이인(异人)들이였다.     참으로 진정한 문인은 교만하지 않는 자이다. 교만한자는 마치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리워놓으면 광명이 온통 자기에게 속하는듯 여기는 우자들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진정한 문인일수 없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면 미래가 기약되지만 그것을 외면하면 희망이 없다. 작가가 옳바른 추구와 판단이 없이는 문학작품이 무료한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전락할것이고 그로써 작가의 로동은 무효로동이 되고말것이다.     한편의 불멸의 시는 인성을 치유하는 힘, 영생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읽는 이의 가슴에 닿아 정감세계에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펼쳐주기도 한다. 인생현장의 골목길은 종래로 뒤공론하는 자들과 말밥에 오른 자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러기에 남의 기분에 장단맞추지 않는것이 작가다운 자세이다.      “도연명은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는데 도화원에서 씨뿌리고 밭갈수 있을가” 인간촌에 도화원은 작가들의 힘으로 만들수 없다.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을 도화원으로 만들수 있을뿐이다. 공연히 도고한체 하는 작가들이 글밭을 갈 도화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있다면 꿈의 세계도, 도피의 세계도 아닌 민중의 생활속에 있다.                                                            2018년 2월 12일
869    인권타령의 후렴구 댓글:  조회:167  추천:0  2018-04-05
                                    인권타령의 후렴구                                                                                진 언     온세계 입가진 이들마다 외우고 있는 인권이란 기실 별게 아니다. 나이, 성별, 피부색, 국적, 신체 장애 등에 관계없이 인간으로 태여나면서 가지는 천부적인 권리이다. 따라서 아무도 빼앗을수 없고 또 남에게 양도할수 없는 자연적으로 주어지는것이 인권의 성격이다.     인권타령은 영원히 불리울것인바 마땅히 고창되여야 함은 두말할것 없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권리를 그 어떤 목적(기득권정치, 국제문제)하에 특정대상을 집탈하는 트집이라면 야비한 음모일뿐이다. 인권이란 보편적 개념이지만 구체적삶의 현상에서 체현된다. 이를테면 제아이를 하루세끼 밥먹듯 두드려패거나 극단적으로 학대,치사에 이르게 한다면 자식교육의 수단인것이 아니라 인권유린이 된다.     한국의 뉴스에 의하면 최근 5년간에도 12세미만의 아동 197명이 살해당한것을 비롯하여 아동학대건수가 총 4만 999건에 달하며 지난해에는 그 수가 1만 1 715건 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통계는 2011년에 6 058건이였던 아동학대행위가 근년에 들어와서 근 2배가까이 증가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부모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자식을 때려죽이거나 약을 먹여 죽인다음 산에 묻어버리는 끔찍한 살인행위들과 보육원들이 겨울철에 어린이들을 발가벗겨 밖에 내쫓거나 입에 손수건을 물려 방에 가두어놓다못해 건물 3층에서 밖으로 내던지는 끔찍한 범죄행위들도 있었다.     극도의 인간증오사상의 걸작들인가? 인간의 초보적인 권리마저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과자를 훔쳐먹었다'거나 '식탐을 부린다'며 양부모에게 투명테이프로 묶여 학대받다가 숨진 6살 입양딸이 두달동안 거의 굶은채 폭행당한 비극도 있다. 인면수심도 류만부동이지만 딸을 살해한후 시신을 불에 태워 죄증을 없애려는 극악무도한 그들에게 과연 인성이란게 있었을것인가?     이런 뉴스도 있다 “지난 8월 대구에서 ‘아동 폭행 사망 의심’신고된 4세 A양이 뇌사상태에 빠졌다. A양의 신체 곳곳에는 화상 및 멍자국이 가득했고 일반적으로 물고문의 징후로 판단되는 저나트륨증의 진단도 있었다.(세계일보)”이런 야만적인 아동학대행위는 개별적 인간들의 인성문제인가? 미성년의 인권의식이 제로인" 아동학대 정당화 사회"에서 설곳 없는 아동인권…끊이지 않는 아동학대사망, 그런 행위가 부단히 자행되는것은 인권문제가 아닌가?    “아동학대는 해마다 늘고 수법도 잔인해지고 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4년 1만7791건, 2015년 1만9214건, 2016년 2만9669건으로 눈에 띄게 증가 추세다. 신고된 사건 중 아동학대로 판명 난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2014년에는 신고건수의 약 59%인 1만27건, 2015년에는 1만1000건(58%), 2016년 1만8000건(62%)이었다. 10건의 신고 사건 중 6건이 실제 아동학대인 셈이다.     특히 아동학대의 약 81%가 친부모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4개월 동안 아들을 화장실에 감금하고 학대해 사망한 평택 원영이 사건,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훼손 사건 등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 중이다. 전체 아동학대 중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인 영유아 비율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 2014년 기준 15.2%에 달했다.”… 금수도 경악해 할 사건들이 비일비재이다. 일전에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폭행한 30대 아버지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어른들끼리도 인권의식이 비틀어져있다. 연합뉴스에 의하면2011년부터 2015년 까지 지난 5년간 로인학대 신고건수는 총 50,579건에 달하는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경악할것은 혈연의 아들딸,배우자들이 폭행의 주인공들이란다. 인간의 오복의 한가지 가 자식복이라는데 이 무슨 끔찍스러운 비극인가? 아들은 전체 학대행위자 1만 983 3 명(본인학대 포함) 가운데 8009명으로 전체의 404.4%를 차지했다.     이어서 ‘배우자(2766명, 13.9%)’와 ‘딸(2447명, 12.3%)’이 뒤를 이었다. 사위, 며느리와 손자녀 및 친척 등을 포함한 ‘가족ㆍ혈족에 의한 학대’는 1만 7181건으로 전체의 86.6%에 달하는데 학대행위자의 년령대는 40대와 50대가 위주란다. 이러루 한 뉴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인다. 례하면 말다툼도중 40대 아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A(79)씨를 체포해 조사중이라는둥, 자신과 안해를 폭행하는 아들 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B(7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는둥…애지중지 키워온 금 쪽같은 자식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황혼의 분노”는 왜 일어나는것일가? 곤혹 그 자체라 할수밖에, 반대로 로(老)-로(老)학대도 날로 증가한다니 개체행악질만인가?      [플러스코리아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최근 5년 동안 성폭력을 저지른 로인도 4,623명에 달하는데 특히 지난해 로인성폭력 가해자수는 1,276명으로 2011년 629명에 비해 2배이상 늘었으며 매년 증가 추세란다. 국회 더불어민주당으 박모 의원이 16일 제출받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11년 부터 지난5년 동안 성폭 력 범죄가해자는 11만8,755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65세이상 로인은 4,62 3명으로 전체의 3.9%라 한다. 판이 이러하면 흔히 말하는 개판이 아닌가?     한국이 자살률 세계 제1위라는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자살자 40명이라는데 변명도 불필요한 슬픈 자화상이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자살자는 그로서의 막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한번 가면 다시 불귀의 길에 올랐겠지만 사정이 오죽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가?자살자 개인탓만으로 돌릴수 없다.     고등교육을 받은 소위 엘리트들의 인권의식은 어떠한가? 요즈음은 부산대학교 병원의 한 지도교수가 전공의들을 수년간 폭행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여론이 시끌벅적하다. 2014년과 2015년 부산대병원 A교수가 10명이 넘는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왔다고 밝혔다. “성심병원 ‘장기자랑’ 논란을 계기로 의료계 곳곳에서 갑질,괴롭힘 문화가 폭로되고있다.     최근 드러나는 의료계 내부 폭력사례들을 보면 ‘교수-전공의-간호사- 간호학생’ 까지 의료계 권력관계에 따른 괴롭힘의 련쇄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부산대· 전북대 등에서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사례가 공개됐다. 그런데 이렇게 폭행을 당한 피해 전공의 가운데 일부는 간호사에 대한 ‘갑질’로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권력 서열에 따라 폭력이 재생산되는 행태는 간호사 사회 내부 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수간호사와 일반 간호사 사이에 만연해 있는 ‘직장내 괴롭힘’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의료계 안에서 ‘내리 갈굼’이라고 부르는 이런 식의 ‘연쇄 괴롭힘’은 간호대 학생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간호학과 학생들은 병원 실습과정에서 약국 심부름·침상 정리·환자 안내 등 잡일에 시달린다.     일컬어 인류생명의 기사라는 사람들, 중국말로 “백의천사”의 흰옷속에 이런 흉물들이 숨쉬고 있으니 경탄스럽다. 입버릇처럼 인권을 론하기전에 묻거니와 인성을 선행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인성이 무어냐? 거두절미하고 사람의 됨됨이다. 인성의 반대어가 동물성이다. 인성이 없고 동물성만 가진 인두껍들에게 인권의식이란게 있을수 없다. 인성이 비틀어진 사회에서 인권타령을 부른다면 후렴구로 “제똥구린줄 모르고 남의 말한다 ”가 제격일듯,                                                    2016년 10월 23일ㅡ2017년 11월 14일
868    가장 아름다운 단어공부 댓글:  조회:221  추천:0  2018-03-31
                                            가장 아름다운 단어공부                                                       최 균 선       세계 102개 비영어권 국가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선정하는 영국문화협회의 설문조사결과 가장 아름다운 말이“Mother (어머니)”였다고 한다. 기실 영어권에서만 “어머니”란 단어가 아름다운것이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단어가 “어머니”이다. 사람은 누구나 따뜻한것을 좋아한다. 따뜻한 봄볕을 비롯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물건들은 많고많다. 이 모든 따뜻 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곧 어머니로서 따뜻함의 형용어로 애용되고 있다.     두번째 단어는“열정”이였다. 열정이 있다는것은 삶의 의욕이 있다는것을 의미하며 의욕이 넘친다는것은 생명의 약동을 의미한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몸은 로쇠하지만 신로심불로라는 말처럼 열정만은 상대적으로 “청춘”을 오래 유지한다.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살아도 사는 보람을 떨칠수 있기 때문일가?     세번째는 “미소”이다. 낯선사람이라도 웃는 얼굴은 좋은인상을 준다. 거울을 마주하고 스스로 지어보는 미소띤 제얼굴을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니 뭇눈길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미소는 순수 조선말로 볼웃음으로서 입주변 근육을 많이 움직여서 짓는 빙그레 웃음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즐거움을 나타내는 표정이지만 불안을 표현할 때 씁쓸한 미소를 짓는 경우도 있고 눈은 웃지 않고 입귀만 실룩거리는 거짓미소도 있으니 절대경은 아니다.     네번째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의 의미폭은 무한대하며 심오하기 그지없다. 단순한 단어풀이 차원에서는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라 한다. 대저, 세상에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지니 가령 인간촌에 사랑이 없다면 사막같을 것이다.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라도 사랑이 없다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사랑이 있기에 인간락원이 되는 것, 사랑이 없다면 천국이라도 가려하지 않을게다.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다면 세상은 적막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의적의미에서의 사랑은 문학,도덕,철학, 종교 모든 면에서 가장 근본적인 관념의 하나로 되여있다.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사랑을 둘러싼 사상이 전개되였고 동양에도 인(仁), 자비(慈悲)라는 사상이 있다. “인”이라고 하는것은 부모형제라는 혈연에 뿌리를 둔 사랑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런 감정을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넓혀가는것이 인도(仁道)이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의 시작이다"라고 말했고 사람을 가련히 여기는 동정심에서 사랑이 생긴다고 했다. 묵자는 "하늘아래 서로 겸애하라"고 말했고 친족과 타인을 구별하지 않는 평등한 사랑을 주장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慈)”는 진정 한 우정이며 “비(悲)”는 련민과 상냥함을 뜻한다.중국, 조선(한국), 일본에서는 자비라는 단어로 하나의 관념을 표현하여 왔다.     희랍어로 사랑은 에로스(erōs),아가페(agapē),필리아(philia)라는 세개의 단어로 표현된다. 이들은 사랑에 있어 본질적인 세 가지의 위상을 각각 가리키는 것으로 에로스는 정애에 뿌리를 둔 정열적인 사랑이며, 철학자 플라톤이《파이돈》에서 말했듯이 곧잘 광기의 모습을 보인다. 에로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삶, 실재와의 만남을 추구한 끝에 "삶보다 죽음이 바람직하다"라는 기이한 결론에 이른 것이리라.     다섯번째는 “영원”이다. 영원이란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또는 시간을 초월 하여 변하지 아니함을 이르고  철학상에서는 보편적인 진리처럼 그 의미나 타당성이 시간을 초월함을 이르지만 한갖 념원에 속하는 추상적단어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침이슬 같기에 영원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귀도 영화도 일장춘몽이라 한다. 영원이란게 없는줄 알면서도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인간의 기특한 바램일 뿐이다.     여섯번째는 “환상적”이라는 표현이였다. 환상은 현실적기초도 가능성도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고 사상이나 감각의 착오로 말미암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지만 아무튼 가장 매혹적인 단어이다. 팍팍하고 각박한 현실과 동경을 이어주는 금다리가 바로 환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환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존재하지 않은 대상을 머리속으로 그려보다가 나래가 돋쳐 끝없이 확장됨으로써 전혀 현실적이 아니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것을 마음대로 상상하기에 이른다. 상상이든 환상이든 공중루각을 짓게 되다가 억지로 나가면 전혀 리치에 맞지않는 허황된 생각을 하거나 사실인 것처럼 굳게 믿어 망령된 생각에 이르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상상과 환상은 기특하지만 망상은 아니다. 인생은 환상으로 살 수는 없는데 도달한 곳이 망상의 낭떠러지여서야 되겠는가?        일곱번째는 “운명”이였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을 가리키는  말로서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로서 숙명과 곁들어 쓰기도 한다. 운명은 명(命)과 운(运)세이다 운명이란 한 사람의 선천적인소로서 운명에는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온정성부분이 포함되여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여나는가는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명 (命)이다. 운(运)은 후천적인소로서 운명속에 주관적능동성을 가진 부분이다. 례컨대 비천하거나 령락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나 분발하였거나 운이 좋아 부귀공명을 얻는 경우를 이를 수 있겠다. 그래서 운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명과 운은 반반이라 한다.     여덟번째는 “자유”이다.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 자기 뜻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를 의도적행위와 비의도적행위로 구별했다. "비의도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강제로 한 행위와 모르고 한 행위이다. 그에 반해 의도적인 행위는 행위를 움직이는 원리가 행위자 자신속에 있으며 그 행위의 개별적상황을 행위자가 완전히 알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루쏘는 자유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지니는 속성이며 오직 개인에게만 속한다고 보았다. 인격의 자유는 자신의 사유재산권을 아무런 제약도 받지않고 완전히 제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 헤겔은 "그 어떤 필연도 내포하지 않는 자유라는 것과, 자유가 전혀없는 단순한 필연이라는 것은 추상적규정이며 따라서 옳지 않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구체적이고 그 자신속에서 영속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자유는 동시에 필연적이다."라고 피력하였다.     마지막 열번째는“평온”이였다. 평온이란 고요하고 평안함, 고요하고 평안함을 이르는 말이다. 평온은 평화로움을 모체로 한다.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 함. 평온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이라 해석하고 있다. 평화는 인류의 진화와 동보하여 만들어진 단어로서 세기적숙망이였고 어느 시대에서나 시대의 주어로 되였다.      영어권에서 선정되였다는 열개단어는 각개 다 깊은 함의를 가지고있지만 결국은 쉬바쵸브의 시구처럼 사랑과 자유에 귀결되고 또 그 모든것은 “평화”라는 이 하나의 단어에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지구라는 “어머니의 품”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자유를 누리며 대동세계에서 공생합일하려는 인류의 숙망은 꿈속에만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인류의 원초적비애는 영원한 비애로 남을 것이다.                                2012년 4월 2일 완고  ㅡ 2018년 1월 5일 (연변일보) 발표
867    지기를 떠나보내며 댓글:  조회:317  추천:1  2018-03-28
                                                   지기를 떠나보내며                                                                        (고)김창석선생님의 령전에 올리는 글       삶과 죽음은 늘 한공간에서 호흡하며 우리들의 뇌리속에서 맴돈다. 사람이 함께 늙어가면서 언젠가는 누가 먼저 훌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챙겨 두면서도 정작 떠나보내고 보면 가슴이 착잡해지는 법이다. 한공간에서 마주보며 함께 호흡하며 웃고 울다가 인정사정 헤아리지 않고 떠나가는게 죽음이다. 그렇게 살뜰하게 보내다가 미련없이 떠나가는 길이 저승길이다.     그 나이에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병고라고 할 수 있지만 내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은 지인의 한 사람인 김창석선생님을 떠나보내며 허탈감과 상실감에 못이겨 김선생과 나의 인연을 되새겨보게 된다. 우리의 인연은 문필로 맺아진 셈이다.     1988년 당시 김창석선생님은 “천지”편집부에 소설편집이였다. 내가 도문시 교원진수학교에 있으면서 지지리 집고생을 하다하다 분통이 터져서 언감생심 써본 첫소설 “번지없는 집”을 투고하고 한강에 돌던진격이 되겠거니 하고있는데 김창석선생이 그해 “천지”3월호에 턱하니 내주시는 바람에 감격의 눈물을 찔끔 짜기도 했다.     그후 여러차례 소설창작학습반에 참가시켜 주었고 흥개호소설창작필회에도 불러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그렇게 알게 되여 세월을 누비며 인정을 얽다보니 그를 문학선배,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소설편집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였고 마음으로 형님처럼 모셨다. 그처럼 김선생님은 나에게 많지 않은 지인이기도 하였다.    누구보다 나를 리해해 주고 긍정해주던 고마운 문학선배이다. 오늘은 가장 의미 깊은 말로 가장 깊은 추모의 글을 써서 올리고 싶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으셨고 참으로 문학도, 초학자들을 많이 사랑하였고 많은 배려를 돌려 신진소설가들을 육성한 선생님이다.     지나간 나날을 돌이켜 보노라니 나를 작가로 키워준 김창석선생님을 생각할수록 애석함을 금할수 없고 밤이 깊어가도 그냥 잠들 수 없는 나의 가슴속에서 추모의 글이 절로 이랑을  짓고있다. 다할길 없는 추모의 감정이 저 해란강처럼 되고 녹지 않는 그리움이 얼음꽃으로 피여있는 내 가슴속 깊은 슬픔을 어찌 서투른 붓으로 다 그려 낼수 있으랴, 진실하고 따스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지상의 소임을 다하고 바야흐로 오려는 봄날을 보지 못하고 먼 산에 눈꽃처럼 깨끗하고 순결하게 한생을 마감한 덕망높은 김창석작가님, 세월이 멀리 가도 앞으로 내내 내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을 그리움으로 다가설 김창석선배님!     처음 연변병원에 주원했다고 하기에 우리 수필회에서 몇사람이 문안갔을 때만도 사람을 알아보려고 자꾸 머리를 들어 둘러보고 마침내 눈물까지 흘리시던 모습을 보며 적어도 정신만은 올똘한 사람으로 출원하리라 믿었는데 다시 중의원으로 옮겼을 때 찾아가 보니 사람을 영 알아보지 못했다. 그후 미국에 아들이 와서 양로원에 안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려던 차 다시 하남병원에 주웠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호전되였으리라는 기대를 앞세우고 두 번 찾아갔는데 사람이 점점 글러갔다. 출원하여 양로원에 다시 들어가기전 한번 다시 찾아뵙는다는것이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9일 낮, 김선생은 지금 어쩌고 있을가 하고 생각을 굴려보기도 했는데 홍천룡 회장이 김선생이 돌아갔다고 전화를 해왔다. 마지막 소환에서 고통에 모대기리라 예상은 하면서도 락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우도 눈물을 흘린다는 이른봄 2월의 찬바 람이 옷깃을 스미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서  혹한이 선생님에게 그토록 혹독하였을가? 근심도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합니다. 고이 잠드소서.                                                                      2017.2.10
866    (중편소설) 동토대의 인연 댓글:  조회:241  추천:0  2018-03-27
                                                  동토대의 인연                                                       최 균 필(유작)                                                          호즈 쇼펑            세월이 흘러 흐르는 동안 이런저런 인연들로 얽히는 인생마당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만남과 또 그만큼 많은 헤여짐은 망각의 언덕에 묻혀버리는데 수난의 년대 북국의 동토대에서 맺은 인연들은 끈끈하게도 오늘에 이어지고 오래 살다보니 끊길듯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인연의 끝에서 다시 만남을 가지게 되였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으랴,     30여년전 어두운 밤, 흑하지구 손오군마사육장의 림업국운수잠에서 눈물로 헤여진후 그냥 편지거래는 있었지만 서로 살기가 바빠서였던지 만나보지 못하고 그리움만 간직하고 있는데 상해에서 살고있는 호즈-쇼펑(耗子-小鹏)이 지난 국경절기간 꼭 만나고싶다며 할빈ㅡ상해의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보내왔다. 우리 세식구가 상해유람을 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기보다 그토록 만나보고싶었던 쇼펑을 다시 안아볼수 있게 된것이 나로서는 격동 그 자체가 아닐수 없었다.      만리벽공에 날아오른 남방행 려객기는 구름을 헤가르고 나는 운해를 내려다보며 아득히 먼 저 곳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추억의 언덕을 찾는다. 세월도 많이 흘렀으 니 까막골의 앳된 홍위병들이 인젠 50대의 장년들이 되였을것이다. 사연도 많은 북대황에서 인생길의 시작부터 준엄한 시련을 겪다가 마침내 나서 자란 상해탄으로 돌 아간 그들은 각자 자기의 인생길을 멋지게 장식하였으리라. 고마왔던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노라니 까불이 쇼펑의 모습이 추억속에 떠오른다.           내가 손오군마사육장에서 상해지식청년 쇼펑과 생사지교를 맺게 된 계기는 그가 일컬어 “지주” 에게 복수한다며 엄청나면서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였다. 때는 화창한 봄날아침이였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종자말에게 여물을 주고는 목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솔로 살뜰히 빗어주는데 말이 무슨 신호를 보내는듯 앞발을 탕탕 굴러댔 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엉덩이에 난데없는 칼자국에서 피가 방 울방울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리한 뾰족칼에 깊숙히 찔린게 분명했다. 어느 쳐죽일 놈이 말못하는 짐승에게 몹쓸 짓을 했단말인가?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혹여 파상풍이라도 들어가면 해방패세대와 맞먹는 종자말이 죽을수도 있다. 나는 겁이 더럭 나고 맥이 탁 풀려 주저앉고말았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내 가 수쇠를 차게 될 판이다. 내 처지가 처지이다보니 입이 열개라도 해명할수 없고 해석한다 하더라도 내 말을 믿어줄 사람도 없었다.     나는 사색이 되여 가슴만 쥐여뜯다가 문뜩 범에 물려가도 정신만은 차리랬다고 어떤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말궁둥이에서는 그냥 피가 흐른다. 정신을 펄쩍 든 나는 소독수로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고 된장을 한줌 발라서 지혈시켰다. 그리고 붕대를 부착시켜놓았다. 말은 아픔이 좀 가셔졌는지 더는 갈개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한담? 보위과에 제보한다면 선의는 남천방이 되고 불낸 놈이 불이야 하고 소리치는 격이라고 단정짓고 나는 원흉으로 락인찍을게 뻔했다. 오묘한 범죄심 리학도 풀 필요가 없다. 목에 걸면 목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이 살판스러운 시국에 속절없이 당하게 되였으니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그저 사고를 미연에 방 지 못한 사업책임이 아니라 현행반혁명활동으로 간주될 엄중사고였다.     생각할수록 무시무시하여 숨이 꺽꺽 막히고 살이 떨렸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거늘 그저 당할수는 없었다. 자고로 궁하면 통하는 법 이다. 묘수가 떠올랐다. 원래 봄철이면 종자말들이 발정기라 진정을 못하고 울타리에 마구 궁둥이를 비벼대며 갈개는게 관례였다.     나는 낡은못 서너개와 망치를 찾아내여 말궁둥이가 닿일 기둥들에 못을 박아놓고 말털을 주어 못에 감아놓았다. 이른바 위조 범죄현장을 꾸며놓은것이다. 모든 일들을 눈깜짝할 새에 해치웠다. 하늘이 알고 말이 알고 내가 아는 일이였다. 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닌데 웬 신경을 쓰는가고 의문을 가질수도 있다. 어느 절에나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있다하지 않는가? 바로 내가 이 종마사양 장이라는 곳에서 원귀가 될수도 있으니 어찌 당황망조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울렁거리는 가슴을 눅잦히며 마라초 한대를 피워물고 얼없이 앉았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제 저녁무렵 별명이 호즈(쥐)인 쇼펑이 별 요긴한 일 도 없이 사양실에 들와서 기웃거리다가 쫍쌀에 달걀을 터지워 버무린 여물을 맛갈스 럽게 먹고있는 종자말을 째려보며 무어라 욕질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그 자식이 한짓이구나!” 하면서 무릎을 탁 쳤다.     아니나 다를가, 조조를 말하면 조조가 온다더니 이튿날 어슬녘에 쇼펑이 슬며시 사양실에 들어왔다. 내가 의아쩍은 기색으로 덤덤해 있는데 호즈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권연두갑을 내들고 련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는 쇼펑의 심사를 모르지 않 지만 나는 짐짓 딴전을 부렸다.     “어이, 호즈야! 내가 너한테 좋은 일을 한적도 없고 더군다나 로유가 어마어마한 지식청년에게 좋은 일을 해서는 안되는 정치풍토인데 무엇이 감사하다는거냐?”     “따거야, 내가 저눔의 말엉덩이에 칼을 박았어, 저 짐승은 옛날 지주같이 맨날 계란 여나문개나 터치워 좁쌀에 버무려 먹는데 우리는 뭐야, 일주일 가도 달걀 한알 먹어보지 못하니 너무 억울해서 저 지주를 한번 투쟁했소. 지금 세상엔 투쟁만 잘하 면 출세하는 판에 이 까막골에서 명성을 날려보자고 그랬소. 그런데 숙사에 돌아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유치했소. 해방패자동차 세대와 맞먹는다는 저 쏘련의 돈하종자말을 해치려한것은 현행반혁명행위이니 무서워서 온밤 한잠도 못잤소. 오늘 새벽에 사양실에 가만히 와서 말을 살펴보니 따거가 치료해놓고 아무 내색을 내지 않으니 좀 안심되였소. 정말 따거의 도량과 인정에 탄복되였소.”     쇼펑은 나의 거친 손을 으스러지게 부여잡고 흔들어대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귀한 술한병과 통졸임 한개를 꺼내여 고뿌에 가득 붓고 강호에 협객들처럼 한무릎을 꺾더니 두손으로 받쳐올렸다. “따거, 이 은혜를 잊 지 않을게. 우리 결의형제를 맺읍시다! ” 하고 말하는데 그의 거동이나 말에 조금도 거짓이 없어보였다. 우리는 이렇게 생사지교를 맺게 되였던것이다.                                  그립던 그 얼굴들        상해포동공항의 출구에 나서니 낯익은듯 서먹서먹한 전형적인 상해신사가 내 이름자를 큼직하게 쓴 종이판을 들고있었다. 뛸데없는 쇼펑이였다. 그 뒤에 잊혀진듯 채 잊혀지지 않은 그리운 얼굴을 한 신사들 몇이 서있었다. 이름은 일일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반갑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오래동안 헤여졌던 전우들, 아니 친형제들이 만난듯이 돌아가며 포옹하고 눈물을 머금었다.     쇼펑의 친구들이 으리으리한 식당에서 환영연회를 차렸다. 술이 몇순배 돌자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오래동안 격조하였던 지기들이 만나면 이왕지사들을 떠올리기 마련 이다. 쏘련 돈하의 종자말이였던 얼룩배기가 난산할 때 쇼펑이와 함께 애를 써주었던 고마운 친구들의 입에서 그때의 정경들이 다시 떠올려졌다. 역시 비상한 사연이였다.     해마다 봄철이면 망아지들이 세상에 태여나는 즐거운 시절이다. 갓 태여난 망아지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사람을 영 죽여주었다. 인공교배를 시켜서 밴 망아지들은 지 들은 자연생들보다 체대가 훌쩍 크지만 얼마나 온순한지 막 업어주고 끌어안고 뽀뽀해주고 싶어진다. 나는 오동통하고 귀엽게 생긴 사내애들을 보면 공소사에 들어가 개눈깔사탕이며 우유과자며 한봉지 사서 고사리같은 애들손에 쥐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늙은총각이다. 내가 로유가 정상인이였더면 벌써 간장병이나 술병을 들고 심부름할만 녀석이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다른 락이 없고 말못하는 미물이지만 종자말을 알뜰살뜰 키워내는것이 다시없는 락이였고 사양실에서나 벌판에서 일에 몰두하는게 사는멋이라면 멋이였다.     어느날, 아침일찍 사양실에 나가보니 얼룩배기 103호 말이 양수가 흘러나오는것 이 곧 새 생명이 태여날 징표였다. 나는 마른 풀을 두툼하게 깔아주고 따스한 소금물 에 수건을 적시여 말의 목이며 등허리, 배아래를 닦아주었다. 말은 건초우에 벌렁 눕 더니 용을 썼다. 그런데 다리 하나만 나오다 말고 다른 발이 태줄에 걸려 나오지 못 하고있었다. 뛸데없는 난산이였다. 백에 하나나 있을법한 종자말의 난산을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무슨 마땅한 방도가 나지지 않았다.     급하면 부처님 다리에 매달린다고 나는 지식청년들의 숙사에 달려가 쇼펑이네를 사양실에 나오라고 명령아닌 명령을 내리고 천방지축 사양실에 돌아와보니 얼룩배 기는 땀벌창이 되여 버둑거리는데 보기가 안쓰러웠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 생명을 낳을 때 산고를 겪어야 한다는것을 상식으로 알고있었지만 너무 불쌍했다. 말은 안 깐힘을 쓸때마다 머리를 쳐들다가 마침내 기진맥진했는지 그냥 퍼더버리고 코를 벌 름거리며 단김을 뽑아올리는데 무슨 변이라도 날것같이 내손에도 땀을 흥건했다. 어떻게든 망아지의 뒤다리에 감긴 태줄을 끊어버려야 망아지가 순리롭게 나올것인데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기사 늙은총각님이 이젠 말조산사까지 되였으니 내 인생 에 천방야담을 엮게 된것이 아닌가,     쇼펑이 동아리 일여덟명이나 데리고 달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바오래기를 나누어 주며 말의 뒤발을 단단히 동여매게 하고 힘깨나 쓸 애들에게 바줄을 단단히 잡으라고 당부했다. 말이 용을 쓰며 뒤발질 하다가 채이기나 하면 대갈통이 박살나지 않으면 옆구리를 걷어채이면 갈비뼈가 여러대 끊어질것이니 만일을 대비해 둔것이다. 다른 애들에게는 말의 모가지를 꽉 누르고 있으라고 명령하고 소금물에 팔목까지 깨끗이 씻은후 말의 자궁에 밀어넣 더듬어보니 태줄에 감긴 새끼말의 뒤다리는 어미말이 용을 쓰는 바람에 더구나 타래떡이 된것같았다.     손가위가 있다해도 한손으로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때 쇼펑이 내귀에 대고 태줄을 끊어놓으면 안되느냐고 말했다. 나는 무슨 수가 있으면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하며 팔을 빼냈다. 쇼펑은 내가 땀벌창이 되여 태줄을 풀려고 끙끙거릴 때 궁리가 따로 있 어서 자기 손톱을 벽돌에 예리하게 갈아놓았다. 쇼펑은 아예 샤쯔를 벗어부치고 팔을 말의 자궁에 깊숙이 넣고는 태줄을 잡아쥐고 엄지와 식지의 손톱으로 가위질하였다. 한참 역사질하더니 피가 가득묻은 팔을 꺼내면서 태줄이 끊어진것같다고 했다.     나는 다시 손을 넣어 망아지의 뒤다리 두개를 가지런히 쥐고 어미말이 용을 쓰는 힘을 빌어 천천히 잡아당겨 인산했다. 성공이였다. 나는 말의 뒤발을 묶은 바줄을 풀 어주고 말의 목도 누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암말도 숨을 고르롭게 쉬기 시작했다. 아 침해살이 비쳐들면서 어렵사리 세상에 나온 망아지가 용케도 일어나더니 주정뱅이처 럼 휘청거리며 어미말의 머리맡에 쓰러졌다. 마치 제에미에게 건실하게 낳아주어 감 사하다고 절을 하는것처럼 느껴졌다. 어미말도 긴혀를 빼물고 제새끼의 머리와 몸에 묻은 양수를 말끔히 핥아주었다. 짐승의 모성애도 인간의 모성애보다 못지 않게 위 대한것이다. 성스러운 그 정경에 가슴이 찡해났다. 또 군마 한필의 탄생에 모두 환성을 질렀다. 나는 쇼펑의 어깨를 부여잡고 엄지를 내들며 눈물을 흘렸다. 천진해 빠진 그가 지주를 투쟁한다고 종자말의 엉덩이에 칼을 박더니 보배덩이같은 두 말을 살려내느라 땀벌창이 되여진 장한 모습을 보고 어찌 감동되지 않으랴, 나는 쇼펑이와 함께 애쓴 집체호청년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흔들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햇다. 나는 사양실 한구석에 놓였던 궤짝을 열고 고량주 한병과 내가 담근 김치며 말리운 산나물무침이며를 꺼내놓고 축하연을 차렸다.     로유(누가 먼저 나를 로유(老右)라고 했는지 나의 두번째 이름이 되였다.) 처음으로 상해지식청년들에게 깊이 머리숙여 경의를 표시한것은 그 살벌한 분위기속에서도 그들에게 인정이 남아있고 동정심과 사랑의 감정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동되였기때 문이였다. 나는 쇼펑과 그의 동아리들에게 모두의 애정으로 태여난 망아지를 소상해 라고 이름짓는것이 어떠냐고 제의했더니 모두 대찬성이였다. 우리들이 저를 두고 웃고 떠들어치는줄 알기는 한듯이 제어미를 닮아서 미마인 망아지가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나의 어깨에 턱을 걸고 술한잔 달라듯 두눈이 올롱해 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망아지가 너무 귀여워 죽겠다고 서로 다투어가며 안아주고 어루쓸어주었는데 망아지는 능청스레 들이대고 있었다.     그런 비상한 사연이 있은후부터 우리는 진정 친하게 되였다. 앞으로 로유가 해방 도여 조선에 나간다면 따라가겠다고 예약하는 청년들도 있을 정도였다. 한것은 군마 사육장에서 조선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남강마을의 처녀들”,“보이지 않는 전선” 등 영화들을 상영하였는데 수천명 지식청년들에게 대호감을 가지게 하였다. 중국에서는 살벌한 광란에 정신없을 때 수정주의라고 비난받는 조선에서는 천리마운동을 벌리여 공업화의 길로 내달리고 있었기에 동경하게 되였는지 모른다.                        밭고랑 타고 세계혁명하던 나날         서로 찧고 께끼며 이어가는 이야기판에 주역은 그래도 이름짜한 호즈였다. 아무 참새를 굴레를 씌울 꾀돌이였고 괴짜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여느때처럼 기음철이 되자 군마사육장의 직공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총동원되였다. 군마사육장에서 경작 하는 콩밭은 사래가 어찌나 긴지 한다하는 실농군도 한고랑을 채나가지 못하고 허리가 끊어질듯 해서 휘청거릴 지경이다. 나는 제초전투의 림시지도원으로 농업대에 내려가 지식청년들을 이끌고 콩밭, 강냉이밭, 감자밭김을 맸다.     일에는 늘 베돌이던 쇼펑이 허리띠에 호미긁개를 차고 초모자를 상해탄에 건달처럼 엇비슴하게 제껴쓰고 제법 로농인양 밭고랑을 타고 스리슬쩍 매나가는것이였다. 풀을 매는지 어루쓸는지 매고 나간 자리에는 고개를 쳐든 풀들이 코웃음치고 있었다. 그래도 문화대혁명의 기치를 바싹 따라 할 일도 많은 광활한 천지에 용약 내려와서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며 밭고랑타고 세계혁명을 하느라 혁명기세가 충천하는데 누가 감히 이렇쿵 저렇쿵 시비를 걸수 있을손가!     황차 농업대에 대장이 한 말이 있음에랴, “지식청년들이 북대황의 밭머리에 나서는것만도 일대혁명이고 북대황의 만두를 먹는것도 혁명이다.”명창중에 명창이라 해 야 할것이다. 화제를 돌려 우리의 기특한 쇼펑동지의 뒤를 따라가 보자.     흰적삼깃을 깃발처럼 날리며 제일 앞장에서 김을 매며 나가는 쇼펑이야말로 선줄군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기계화라도 이런 현대적기계화가 또 있으랴, 글쎄 쇼펑이의 호미날은 어떻게 분해했는지 옆채기 혁띠밑에서 쉬고있고 호미갈구리만 밭고랑을 이 리 긁적이고 저리 긁적거리는데 모르고 보면 아주 능숙하게 호미질하고 있는것같았다. 밭고랑에 마른 흙에 거죽만 헤집어놓아서 잠시 흙에 깔린 풀들이 가관이였다. 풀들은 마치 차라리 뿌리채 뽑아버리던지 중둥무이 하던 할것이지 이렇게 머리도 쳐들지 못하게 하느냐고, 보다보다 이런 괴짜는 처음이라고 비웃는듯싶었다.     후에 알고보니 쇼펑이 보란듯 앞장에서 한절반쯤 매여나가는데 재수 좋게도 호미날이 떨어져나간것이다. 호미날를 수리하려면 4,5리나 되는 농기계수리소에 가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생각해낸 묘수가 북대황의 콩밭에서 솜씨를 펴게 되였다. 아무튼 땅거죽을 핥튼 풀뿌리를 희롱하든 남보기에는 엄연히 기음을 매고 있는것이라 누가 감히 왈가왈부하며 지식청년들의 혁명열의에 찬물을 끼얹을수 없었다. 쇼펑은 눈감고 야웅하는 식으로 얼렁뚱땅 한고랑을 매고는 밭머리에 나가 큰대자로 나누어서 하늘을 바라보고있었다. 흰구름이 푸른하늘에서 뭉게뭉게 피여올라 궁궐을 짓고 밭머리에서 새들이 재잘거리고 있는 북국의 풍경을 보며 두발을 묶고 춤을 추둣 부자연스러운 청춘을 괴롭게 짓씹으며 몰래 눈물을 짓고 있었으리라.     인중승천이라 무릇 무슨 일에서나 은을 내는것이 인해전술이다. 사람이 많이 동 원되다보니 콩밭, 옥수수밭, 감자밭김을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아 후닥닥 해치웠다. 제초대회전이 대승리로 끝난것이다. 그다음은 련속작전이다. 호미를 벽에 걸어놓고 새판에 청초베기 돌격전이 벌어졌다. 청초를 기계로 베여 건조시킬만한 뉘연한 언덕배기는 모두 고무바퀴뜨락또르가 도맡고 기계가 들어가지 못할 늪가나 강가에는 사람 들이 갈구리같은 긴낫을 휘둘러 베여눞혔다.     풀베기작업은 콩밭김처럼 엉너리를 치며 겉둥치기를 할수 없었다. 한사람이 반 메터너비로 낫질하며 나가면 뒤사람이 또 반메터너비로 뒤따르는 작업이여서 뒤를 돌 아볼새 없이 바지런히 낫을 휘둘러야 하였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여 일손을 놓게 되 자 호즈는 식당운반차가 오기전에 모욕이나 한다며 빤쯔바람에 개울물에 뛰여들었다. 한두메터 너비의 개천은 물이 어찌나 맑은지 조약돌들이 환히 들여다보이고 물고기들 이 꼬리치며 발가락을 물어뜯는것도 빤히 내려다 보였다.     천년천년 수천년을 흘러도 사람구경을 못한 물고기들이 처음 사람냄새를 맛보더니 앞다투듯 모여들어 종아리며 허벅지를 툭툭 쳐대면 제멋이였다. 쇼펑이 종아리를 물려는 버들치 한마리를 잽싸게 잡아서 기슭에 냅다 뿌리였다. 쇼펑이 련신 물고기를 잡아올리자 탄성을 올리며 구경하던 다른 청년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빤쯔바람으로 내물에 뛰여들어 뒤질세라 물고기들을 잡아올렸다.      난생처음 오염이 없는 산골물에서 목욕하며 맨손으로 한뼘씩이나 되는 버들치며 붕어, 메사귀를 잡아보는 상해지식청년들은 신명이 나서 괴성을 질러댔다. 한여름에 도 뼈가 시리게 차디찬 산골물이라 오래 배기지 못하고 기슭에 올라와선 이발을 덜거덕거리면서도 좋다고 시시닥거렸다. 쇼펑이가 물고기 밸을 따서 버들가지에 꿰여 구 워먹자고 제기하자 여기저기서 삭정이를 주어다고 불을 지펴놓고 말몰이군들이 호주 머니에서 소금알을 꺼내 물고기밸속에 넣고 구우니 천하 별미였다.     대도시 상해에서 만리먼 북변의 까막골에 내려와 빈하중농으 재교육을 받으며 먹어보는 천렵이 이토록 재미날줄을 몰랐을것이다. 남녀청년들이 코밑에 수염을 그려가 며 서로 흉을 보면서 고기를 씹어대는 모습들이 얼마나 정겹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풀베기로동판에서 물고기로 성찬을 먹은탓인지 로동열정이 충천하였다.                                 동토대에 피여난 애정꽃                                                                                                이야기판에 끼여들지 못하고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얌전하게 앉아있던 이 로유의 젊은안해도 추억의 한페지로 펼쳐졌다. 그도그럴것이, 자기가 주례를 섰던 비상시국 의 비상한 결혼식이 쇼펑을 비롯한 다른 상해지식청년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새겨져있었던것이다. 나로 말하면 더구나 어렵게 피운 소중한 사랑의 꽃이였다.       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날이 있고 로총각에게도 결혼하는 날이 있게 될줄이야, 전 해 겨울 나는 친구의 연줄로 할빈도위구 송포조선족 마을에 색시가 있다고해서 선 보러 갔었다. 색시감은 한족중학교를 갓나온 김순이라는 처녀애로서 셋째딸이고 그 아래 13살짜리 머슴애, 9살짜리 남동생이 있고 김순의 아버지는 페결핵으로 고생 하다가 3년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김순의 어머니는 남도태생으로서 일본말도 할줄 알고 일본춤도 잘 추는데 몇마디 주고받는 말에서 마음씨가 무던한 녀인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내가 할빈농기계학원 에 다니다가 우파모자를 쓰고 흑하지구 손오군마사육장에서 로동개조를 하는 불우한 청년이라는것을 들어서 알고있다며 지금 처지가 그래도 좋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좋은 사람이니 사위삼아 아들삼아 딸을 맡기겠다고 내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김순에게 손바닥만큼 큰 모주석휘장을 례물로 주었다.     전대미문의 동란시대에 우파분자인 나로서는 그저 육신이 살이있으니 말할줄 아는 로동기계일뿐인데 열여덟 앳된 처녀가 무슨 멋이나 알고 그러는지 서른살도 넘는 로총각에게 자기 인생을 맡기겠다고 하자 나는 내가 너무 리기적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면서도 약속하고 말았다. 그동안 그냥 꿈속에서 막연하게 동경하던 꽃같 은 처녀와 백년가약을 맺고 돌아온 나는 절망속에서 될대로 되라하며 자포자기하던 자신의 정신세계부터 재건설하였다. 사랑의 힘이란 참으로 어떠한 기적도 창조할수 있는가보다. 모든것을 얼어붙은 동토대에 이제 꽃피는 5월이 오면 꽃다운 색시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고 생각하니 깊이 묻어두었던 일만가지 욕망이 봄싹처럼 움터서 황페했던 나의 마음밭이 푸르러졌다. 나는 대번에 열살도 더 젊어진것같았다.     동북만주 맨 북녘인 동토대에 바야흐로 새봄이 기지개를 펼 때 김순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하늘아래 첫동네, 대낮에도 승냥이떼가 출몰하고 마을에까지 덮쳐들어 집 징승이랑 잡아가는 이 까막골에 흔인등록 증명서와 호구까지 아예 떼여가지고 제발로 걸어왔다. 이런걸 두고 움안에서 떡함지를 받았다고 해야 할것이다. 나를 그처럼 믿 어주는 장모님도 고마왔지만 나어린 김순이가 눈물나게 감사해서 사람들 눈이 아니 라면 막 안아올려 빙빙 돌며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이튿날 군마사육장 정공처에 가서 결혼증을 내러갔더니 정공간사는 나를 거뜰떠 보지도 않고 홍위병완장을 팔에 두른 김순이를 마치 우주인이나 보는듯이 아래우를 훑 어보더니 책상을 쾅 내리치며 삿대질까지 하며 욕부터 쏟아냈다.     “니야, 니! 너는 계급의식도 없느냐? 지금 어느때라고 매매혼인에 속히워 다니는 가? 뿌싱ㅡ먼저 조사해 봐야겠어…”    나는 서리맞은 배추잎같이 되여 해석 한마디 못하고 섰다. 속은 뻔했지만 처마가 낮으면 머리를 수그리라고 고양이앞에 나선 쥐인체 하기로 작심하였는데 김순이가 정공간사의 코밑까지 다가들며 당차게 맞받아쳤다.     “조사연구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요. 이 분이 우파라지만 모주석의 말씀처럼 인민내부모순으로 처리할 사람이지 계급의 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디까지나 쟁취해야 할 사람이구요. 우파분자는 결혼하지 못한다는 법이 있는가요? 게다 가 이분은 조선족인데 우리 조선족들은 옛날부터 매매혼인을 모르는 민족이라구요.”     그는 당지에서 떼온 혼인등록증명서를 척 내놓으며 결혼증을 내지 못할 리유가 없다고 도리를 캤다. 문화대혁명이 사람들을 웅변가로 만드는 모양인가, 원래 야물 딱지게 생긴데다가 혁명의 세례를 받아서 무섭고 두려운것이 없어보였다. 아직 중학 생티도 채벗지 못한 조선족처녀애가 너무 당차게 나서자 정공간사도 유관부문에 청시 해야 한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전화를 걸고 돌아앉은 정공간사의 퍼러딩딩하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곰상 스럽게 이것저것 업무적으로 물어보고는 붉은도장을 박은 결혼증을 내주었다. 그러 면서 혁명정신으로 남편을 잘 교육하며 잘 살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의 가슴에서 무거운 널장이 뚝 떨어지는듯했다. 만사대길이였다.     후에에 알게 된 사연이지만 정공간사가 전화한통으로 일변한데는 그럴만한 까닭 이 있었던것이다. 군마사육장에 제일책임자인 오서기는 중국인민지원군에서 전업한 군관으로서 상감녕전투에서 2등공까지 세운 전투영웅이였지만 사선을 넘나들며 인 정사정을 남달리 터득해서인지 나를 대함에서 우선 인간적이였다. 그는 조선말도 잘 해서 나와 통하는 무엇이 있었다. 가끔 시찰을 내려오면 막사에 찾아와 말을 잘 사양 했다고 치하도 해주면서 함께 말을 타기도 하다보니 막역한 사이가 되여졌다.     오서기는 내가 성실하고 책임성있게 일한다는 보고를 받으면 비록 우파모자를 쓰 고있지만 문화수준이 높고 성품이 정직한 사람이라며 잘 교육하면 좋은 사람이 될수 있다고 긍정해주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번에 얼룩배기의 난산을 재치있게 처리하여 두필의 말을 다 구한 공로도 지도부에서 인장해주고 있다면서 쇼상해를 잘 키우라고 당부까지 하던 그였으니 정공간사가 전화를 걸었을 때 홍위병조선족처녀가 자진하여 시집을 올때는 그럴만한 사연도 있을것이니 실망시키지 말고 숙사도 크고 깨끗한것으로 배치해주라고 지시를 내렸던것이다.       후일의 얘기지만 나와 김순이는 오래 비워두어서 빈대가 많을것을 예상하고 66분가루를 밀가루에 반죽하여 벽틈서리를 메우고 흙으로 잘 매질한후 낡은 신문 지를 싹 뜯어내고 새로 신문지로 병을 도배하였더니 꽤 정갈한 신혼방이 되였다.  부뚜막도 뜯어 조선가마 두개를 걸어놓으니 조선족살림집맛이 풍기여였다…     각설하고, 나는 장모님이 기다리고 있을가봐 20리 큰길을 버리고 강을 건너야 하는 지름길에 들어섰다. 강가에 이르자 나는 이미 내사람이 된 이상 내우를 할게 없다고 생각하며 빤쯔바람으로 등을 돌려대며 김순이더러 업히라고 독촉했다. 김순이는 난생처음 당하는 일이라 얼굴이 홍당무우가 되여 돌아섰다. 지어내는 애교가 아니라 수집음 그 자체였다.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어린애처럼 와락 둘쳐업었다. 몽글거리는 처녀의 젖가슴이 등에 밀착되자 전기선에 닿인듯해서 몸이 부르르 떨리였다. 녀자의 단입김이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내 목을 꼭 끌어안는 두팔이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고있었다. 그것은 이성에게서만 느끼는 사랑의 전류였다.                   잔치날은 “5.1로동절”날이였다. 일생에 여러번도 아니고 한번 하는 결혼인데 그 흔한 붉은꽃도 달아보지 못하고 수수한 곤색옷을 빌려입고 색시는 시대의 류행을 따 른 군복차림이였다. 호즈 쇼펑이 주례를 서고 음으로 양으로 친하게 지내던 상해지식 청년들이 제각기 녀자친구를 데리고 잔치객 겸 그 시기엔 천방야담같이 렵기적으로 결혼하는 제또래의 조선족홍위병처녀를 구경할겸 해서 모여들어 자리를 빛냈다.     그들은 세수대야며 보온병, 주전자, 세수수건 등을 결혼선물로 가지고왔다. 지금은 그런것들이 결혼례물이만 코가 삐뚤어지지만 그때는 조련치 않은 선물들이였다. 이날 잔치집마당은 김순이가 부른 “천안문의 붉은태양(조선말)”에 이어 아리랑을 부 르고 도라지, 노들강변 춤까지 추어서 인기가 대단했다. 상해처녀들은 영화 “꽃파는 처녀” 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조선족 치마저고리를 한번 구경하자고 야단치는 바람에 김순이는 장모가 시집갈 때 입었다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마당에 나서니 상해처녀들은 김순 이와 서로 사진을 찍는다고 벅구작을 피웠다. 사람들은 이 군마사육장에서 로 유의 잔치날처럼 흥성하고 사람사는 냄새를 피우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어린 나의 색시는 인차 상해처녀들과 잘 어울렸다. 휴가일이면 상해처녀들을 휘동하여 남산에 가서 개암을 따왔다. 개암밭이 지천인지라 벌방아낙네들도 개암철이 면 삼삼오오 몰려왔다. 안해는 넓직한 우리 집 마당에 말뚝을 박아 1호 2호…계선을  나누어 놓고 처녀들이 따온 개암을 말린후 키로 잘 까불려서 자루에 넣어주기까지 하 였다. 마음씨 고운 장모를 닮아서인지 안해는 이웃을 잘 도와주고 색다른 음식을 만 들면 나누어주었다, 가는 정 오는 정으로 인심을 얻은 안해는 군마사육장 직공가족들 속에서 인기인물로 되였다.     특히 김장철이면 장모를 모셔다가 배추김치를 큰독 다섯개나 되게 담그었다. 김 치를 담글때면 상해처녀들도 모여와 일손을 거들어주면서 김치를 담그는 기술을 배웠다. 상해에 돌아가면 한번 솜씨를 보인다면서 수첩에 적으며 까근히 익히는 처녀애들 도 있었다. 안해가 해마다 그렇게 많은 김치를 담그게 된것은 오서기부인의 부탁도 있고 지식청년들의 식당에도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깊고 넓은 김치움에서 조선족의 음식중에 명품인 김치는 담그는 사람의 인정과 함께 무르익었고 김치를 나눠먹으면 서 돈주고 살수 없는 아름다운 인연을 엮어가는 안해덕에 나도 인끔이 올랐다.                          아픔을 먹고 자란 사랑나무       우리 군마사육장의 농업대에서는 홍당무우, 배추, 감자를 많이 심었다. 검은 흙토지대라 땅이 비옥해서 밑거름을 주지 않아도 강아지만큼 큰 감자들이 바고랑이 터지 도록 달렸고 홍당무우도 팔뚝같이 길고 굵었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다람쥐처럼 바지런히 돌아쳤다. 그리고 채소를 사러오는 외지 자동차 들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특히 석유공인들이 많은 대경에서 배추며 감자를 실으려 오는 자동차들이 많았다. 여기서 꾸며낸 이야기같은 이야기가 엮어지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대경유전에서 자동차를 몬다는 40대 중반의 낯모를 사람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 군마창에 로유라는 조선족우파분자가 홍위병처녀와 결혼해서 산다는 말을 듣고 희한하기도 하고 동족이라 반가워서 찾아왔노라고 구구이 해석하면 서 붉은손이 검은손을 잡고 흔들었다. 누구를 속심주고 사귀는 시대가 아니기도 하거 니와 생면부지의 사람이 불쑥 찾아든지라 격정같은것은 없었다. 그러나 동족이라는 그 한가지 리유만으로도 랭대할 마음은 없는지라 나름껏 후대해 주었다.     어색한 분위가 점차 화애로워지자 그는 전업군인으로 대경유전에 배치를 받아 운수대에서 일하며 안해는 연변녀자로서 공인식당에서 일하고 아들과 딸이 있는데 한 족학교에 다닌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이 까막골에 끌려와 10년이 넘도록 살면 서 처음으로 조선족을 만나 조선말을 하게 되니 저도모르게 지인같이 느껴져서 닭을 잡아 고아서 술상을 차렸다. 나는 자아소개를 하지 않았다. 이 군마사육장에 로유인 꼬리방즈가 하나 살고있다는것은 눈코가 있는 사람은 다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게다가 무엇을 자초지종 털어놓을 멋도 없었다. 내가 뿔이 세개 난 도깨비도 아니지만 사람마다 뱀을 만난듯 경계심을 가지고 슬슬 피하는 처경에서 길바닥에 나딩 구는 돌멩이처럼 이리 채우고 저리 채우는 자신을 부연해서 말할것도 없었다. 이 까 막골에서 말궁둥이나 따라다니며 사람 그리운 고생을 하다보니 남도 내마음처럼 생 각하며 곧잘 믿어주군 하는 민충이가 다되여 있던터라 마음속으로 믿어지기도 했다.     그는 닭곰을 얻어먹은 신세를 갚느라고 그랬는지 래일 아침에 마지막으로 감자를 실어가니 집사람이 혹 친정에 가고싶어한다면 태워주겠다고 선심을 썼다. 흑하ㅡ할빈 의 국도가 지나가는 곳에 있으니 다른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며 좋은 소리는 다하였다. 하긴 안해는 가끔씩 엄마소리를 하며 친정에 갔으면 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하 던터러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닌 여기서 할빈에 한번 나 간다는것은 꿈에 천보기였다. 시집이라고 와서 한번도 친정에 가지 못한 안해가 안 쓰럽기도 했거니와 이 역시 인연이라고 여기며 쾌히 응낙했다.     그런데 북두칠성이 서쪽에 기울어지고 삼태성도 조으는 한밤중이 되도록 웬일인 지 잠들수 없었다. 삼라만상도 잠에 곯아떨어지고 어디선가 부엉새가 청승맞게 울어 싸고있었다. 이제 날이 밝으면 결혼하여 석달, 밀월의 단맛을 만끽하지 못하였는데 잠시일지언정 안해와 갈라진다고 생각해보니 마음이 도무지 개운치 않았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도 머리에서 맴돈다. 장모님이 어리디 어린 귀한 딸을 나에게 맡기고 가셨는데 어찌 색시를 빈손으로 친정에 보낼수 있으랴싶어 한푼두푼 모아두었던 돈을 보짐에 챙겨넣고 개암이며 검정귀버섯이며 밀가루포대며 다 챙겼지 만 자꾸 무엇인가 빈구석이 있는것 같았다. 안해도 말은 내지 않아도 친정에 가서 엄마며 어린동생들을 만날 일을 생각하니 잠이 아니오는지 돌아누워 꼼지락거리더니 어깨를 달싹이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을수 있는 나였다.     큰동생은 열세살, 작은 동생은 아홉살인데 세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고생 하다가 마침내 옮겨앉을 생각을 하였는데 막내딸을 치우고 훗남편을 맞아들이려고 서두른것도 있겠지만 나를 진심으로 믿었기에 어리디 어린 딸을 밀어맡긴것이라 생각되였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몰래 울고있는 안해가 더구나 불쌍해졌다.    “얘, 너 지금 울고있니? 친정집에 간다고 하니 너무 좋아서 그래?”    나는 아내의 헝클어진 뒤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였다. 그러자 기다렸던듯이 내쪽으로 홱 돌아누우며 내목을 꼭 껴안고 엉엉 울어대는것이였다. 어찌나 서럽게 우 는지 나도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쳇, 너 좋은 길 떠나면서 왜 청승맞게 밤중에 울어? 무슨 일이야?”     “아저씨, 아니, 자기야, 왜 사람이 그리 민해요? 녀자는 문턱을 넘으며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는데, 그리구 처음 만나 좋은 소리는 다하는 사람을 어찌 믿고 천리길에 어린 안해를 딸려보내려고 생각했어?나 친정에 안갈거야, 나를 용서해줘요”     용서라니 이건 또 무슨 홍두깨냐? 돌이켜 생각해보니 짚이는데가 있었다. 김순이는 눈물코물 범벅이 된 얼굴을 내 가슴에 묻고 두손으로 내 턱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실토정을 하였다. 대경의 그 운전수는 자신이 김해김씨인데 김순이와 동성동본이니 녀동생을 만났다며 정이 철철 흐르도록 너스레를 떨었다. 어린각시가 닭곰도 맛있게 끓였다고 찬사를 개여올리며 술잔도 부딪치며 여간 살갑게 굴지 않았다. 외롭게 자란 김순이가 우연하게 친척을 찾은것이라고 나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웬걸, 이튿날 내가 말떼를 몰고 목장에 나간것을 낌새채고 그자가 도적고 양이처럼 우리 집에 기여들었다. 녀자는 제륙감각이 있다더니 안해는 바느질광주리에 서 가위를 찾아 팔소매에 감추고 고슴도치럼 가시를 치켜세웠다. 그자는 바깥사람은 벌써 일하러 나갔느냐며 련락도 없이 불쑥 뛰여들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리를 뜰듯 이 하면서도 슬밋슬밋 주저앉아 횡설수설하더란다.     몇번 감자실러 와서 묵어가며 우리들에 대한 좋은 얘기, 나쁜 얘기를 많이 들어 서 사정을 잘 안다면서 젊은각시가 어쩐 연고로 이런곳에 시집왔는지 알수 없으나 이 빌어먹을 까막골에서 힘겨워 어찌 살겠느냐며 아직 아이도 없는데 옮겨앉으라고 구슬리였다. 실은 친동생이 하나 있는데 스믈네살이고 월급쟁이란다. 3년전에 결혼 했으나 처가 딸을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그만 저 세상으로 간후 한살인 조카애를 자기네가 키우고 있단다. 애가 불쌍해서 마음씨가 고운 새엄마를 얻어주려고 하던차 마음에 딱 뜨는 김순이 를 만나게 되였으니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간곡히 권고하더란 다. 마음이 약해빠진 김순이라 애가 너무 안되였다싶어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혼자 결정할수 없으면 이번에 자동차에 태워줄테니 친정에 가서 엄마와 상의해 보는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자꾸 침을 놓더라는것이였다. 그때 그 시절에 농촌호구인 녀자가 월급쟁이에게 시집을 간다는것은 하늘에 별따기요 정말 시집을 가게 된다면 복이 넝쿨채로 떨어지는 격이였다. 그자는 궁벽한 이 까막골에 이런 봉황이 있는것을 보고 아마 고운 꽃이 소똥무지에 꽂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잘만 하면 좋 은 제수를 얻게 된다고 혼자 김치국부터 마셨던것이다.     그날 점심때 운저수가 술병이랑 챙겨가지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말로는 답례방 문이라고 하였다. 술한잔 입에 대였다가 떼도 얼굴이 관운장이 되는 나인지라 억지로 응수하고 있었다. 그와 김숙이가 어떤 의미로 눈을 마주치고 잔을 부딪쳤는지 알배없 는 나이지라 안해가 공짜로 차를 타고 신선같이 친정집문앞까지 가게 되였으니 좋은 인연에 복을 받게 되였다고 은근히 좋아한 나였다.    …어린 안해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난 나는 화가 상투밑까지 솟구쳤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고 황차 꽃같은 어린안해가 잠간 마음이 흔들렸다면 그역시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많은 남편을 끝까지 믿고 따르겠다고 “죽어도 화냥년이 되고싶지 않았다”고 이실직고한 안해가 불쌍해졌다. 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년장자로서 김순이를 포용해야 했다.    나는 하마트면 놓아버렸을 금쪽같은 나의 파랑새을 꼬옥 껴안아주며 어린애처럼 보듬어주었다. 세상엔 아비죽인 원쑤는 두고두고 복수해야 하지만 녀편네를 훔쳐간 원쑤는 어쩔수 없다고 하였다. 한것은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기때문이다. 김순이가 나의 동가슴을 북두드리듯 마구 두드리며 옹알거렸다.     “자기야, 순진한거야? 등신인거야?제 색시를 훔쳐가려는 꿍꿍이도 눈치채지 못하 고 그저 제맘처럼 믿어주었으니 민충이 아니고 뭐야? 나 몰라, 몰라!”     어린나이에도 때론 나보다 더 엉뚱한 궁리를 하고 당차서 험악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며 새 가정을 위해 일편단심인 김순이가 나에게는 안해이면서도 그냥 녀동 생같기도 해서 응석부리는대로 받아주기로 마음먹은 나였다. 나는 김순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또 인간적으로 고맙기도 해서 다시 한번 으스러지게 껴안고 사나이 피맺힌 한을 속으로 짓씹어서는 통채로 삼키였다.     닭이 울었다. 닭이 울어야 새날이 밝는가? 닭이 울지 않아도 새 날은 밝는 법이다. 하다면 나의 새 아침은 언제 밝아올것인가? 나는 새벽잠이 몰려와 눈을 깜빡이는 안해를 도닥거려 재워놓고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밖에 나왔다. 하늘을 바라보니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 별자리는 없었다. 늦가을 새벽 바람은 차디차서 몸이 으스스해났지만 나의 금쪽같은 어린안해가 잠들어있을 따스한 보금자리를 피부로 느끼며 나는 동가슴을 툭툭 치며 뇌까렸다. “인생나무는 아픔을 먹고 자라고 사랑나무도 아픔을 먹고 자라는 법이다. 그래 억세게 살아야지…”     드디어 날이 훤히 밝았다. 멀리서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당가에서 곡갱이를 찾아들고 기다렸다. 자동차에서 무슨 신호를 보내는듯 헤트라이트를  쩍거렸다. 그러기를 한참 반복해도 집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운전수가 차문 을 열고 내려서 이쪽으로 어정어정 걸어왔다. 나는 밤새 간신히 잠재웠던 분노를 화산같이 터뜨리며 성난 호랑이마냥 그자에게 덮쳐들었다. “이 개보다 못한 놈의 새끼야, 오늘 대갈통이 박산나봐라!” 벼락같이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나를 보자 그자는 “사람살리오ㅡ”하고 비명을 지르며 잽싸게 운전 대에 뛰여오르더니 차문도 닫지 못하고 자동차를 굴리였다. 나는 따라가다가 곡괭 이를 냅다 뿌리였다. 적재함에서 불꽃이 튕기며 쾅! 하는 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흔 들었다. 나는 발을 구르며 듣지도 못하는 욕설을 퍼부었다.     “개보다 못한 자식, 너따위도 조선놈새끼냐? 다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이제 다시 이 까막골에 들어서는 날에는 뼈도 못추릴줄 알아라…”     이듬해, 안해는 떡돌같은 아들을 턱 낳아주었다. 나는 상해지식청년들과의 인 연과 인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을 “상해”라고 명명했다. 조건이 그래서 그렇지 언녕 애엄마가 되였을 상해처녀들은 조선족애가 너무 복상스럽게 생겨서 귀여워 죽겠다며 만나면 서로 빼앗듯 안고돌았다. 애가 돌생진에는 실타래를 여나문개나 걸 어주며 무 병장수를 축원해 주었다. 그후에도 대경에서 감자실이 자동차들이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그 저주맞을 놈의 운전수는 대갈쪽을 내밀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된 인간세상이라 인연이 없이는 살수 없는 인생이다. 그러나 인연에도 좋은 인연이 있고 나쁜 인연도 있는 법이다. 좋은 인연은 도움을 주고 나쁜인연으로 해서 골탕을 먹기 십상이다. 내가 비록 무리를 잃은 승냥이처럼 혼자 으르렁거리며 살지만 하늘이 불쌍히 여겨 점지해 주었는지 천실만실로 얽혀진 어린안해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을수 있었기에 삶의 용기를 되찾았고 호사다마라 그 나쁜 심보를 가진 운전수처럼 되는 호박에 송곳질하는 놈과 잠시 악연을 맺았기에 나 는 또 한차원 성숙해지게 되였던것이다…                                 호즈의 야간도주       이번에는 쇼펑이의 야간도주가 화제에 올랐다. 더러 알고있은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까막골을 벗어났는가를 이야기 하란다. 말하자면 길어지지만 아무 래도 유격전같던 그날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해, 청사료도 넉넉히 마련했고 밀가을도 끝냈는지라 군마사육장총부에서는 사흘간 대휴가를 내주었다. 군부에서 방영대도 내려와 구락부에서 련사흘 영화를 돌렸다. 김순이는 아이를 둘쳐업고 상해처녀들과 영화보러 가고 없을 때 나는 방목할 때 늘 쓰는 연장들을 손질하며 소일하는데 쇼펑이 무거워 보이는 큰가방을 들고 찾아 왔다. 무슨 깜투끈인 알지 못했지만 여느때처럼 무조건 반가웠다. 그런데 쇼펑은 무 슨 일이 있어서 왔으련만 낑낑 깝자르고 있었다.     “야, 이 앙큼한 호즈야, 이 따거에게 무슨 못할 말이 있다구 그래? 어서 말해봐!”     그제야 쇼펑은 울먹울먹해서 사정얘기를 털어놓았다. 상해에서 어머니가 병이 위 급하다고 세번이나 전보가 왔는데 정공처에서 종시 청가를 비준해주지 않고 있는데 집체호친구들이 너도나도 돈도 모으고 하향할 때 가지고 와서 고이 간직하고 있던 여 러가지 물건이랑 지원했다면서 현금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병치료에 보태겠다고 하는데 그 효성이 기특해서라도 발벗고 나서야 했다.     “쑈디야, 너무 속태우지마라, 상해는 병원도 좋아서 엄마병이 나아질거야,”하며 동생처럼 꼭 껴안아주고 힘을 내라고 고무격려해 주었다. 쇼펑이가 돌아가자 나는 선 자리로 보짐을 들고 간부주택에서 사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퇴역한 텁석부리아저씨를 찾아가 쇼펑이가 지금 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자초지종 얘기해주고 도와달라고 청 탁했다. 한뉘 군대에서 몸을 담근 텁석부리아저씨는 성미가 괄괄하면서도 인정만은 후더운 사람이였다. 그는 이 일은 자기에게 맡기라며 가슴을 툭툭 쳐보였다. 그는 이 군마사육장에서 로기술원이여서 덕망이 있는지라 하루밤 사이에 후닥닥 처리하였는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털보아저씨는 돈묶음을 건네주며 장사얘기를 들려주었다. 필경 새 산품이 아니니 창부공소사의 가격보다 훨씬 눅게 하고 부표도 받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베개수건, 타올, 런닝구, 침대보, 양말따위를 너도나도 다투어 사갔다고 했다. 오히려 사지 못한 사람들이 의견이 많았단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선자리로 달려가 쇼펑에게 돈을 건네주며 빨리 집에 부쳐보내라고 독촉했다.     나의 마음은 역설적으로 더없이 개운하였다. 돈을 인차 마련해준 기쁜 마음도 있거니와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 청가를 내주지 않는 불공평한 처사에 일 격을 가한듯한 기분이였다. 아무리 준엄한 비상시국이라도 인지상정도 다 말아먹으니 지랄도 네굽을 안고 하는 지랄발광이 아닌가! 입한번 잘못 뻥긋해도 천길나락에 떨어 지는 살벌한 시국이였지만 속에서 끓어번지는 불만을 누를수 없었다.     그런데 한 사흘이 지나서 멜가방 하나를 달랑 멘 쇼펑이 나를 찾아와서 작별인사 를 하러 왔노라고 눈을 씀벅이더니 룡진역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상부에서 청가를 내주지 않으니 목숨을 걸고라도 도망쳐서 엄마의 림종을 지키려 작심했 단다. 자유의 목숨이요 자유의 공민인 쇼펑이지만 군사생활같은 여기 종마사육장에서 도주한다는것은 그저 사민의 일반 탈주가 아니였다. 하지만 눈물이 글썽해서 나만 지켜보는 쇼펑이가 너무 안되여서 도와주겠다고 응낙했다.     대낮에는 어림도 없으니 밤에 어둠을 타서 행동하자고 다독여놓고는 내 숙소에서 한잠 푹자며 심리준비를 잘 하라고 일렀다. 나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지르 려고 하는지 모르지 않았지만 래일은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이 효자를 30리 밤길에 혼자 내놓을수 없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힘세고 걸음이 빠른 적토마를 도적질 하듯 끌어내서는 안장을 얹고 배끈을 단단히 죄였다. 그리고 말을 먹일 강냉이알도 한가방 넣고 소금도 한줌 푼히 주머니에 넣었다. 쇼펑이가 길에서 먹을 만두 몇개와 짠지도 잊지 않고 그의 멜가방에 넣어주었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말잔등에 올라타고 야간도주의 길에 올랏다. 밀가을이 끝난 들판이라 로출되기 쉬웠지만 밤안개가 엄호하여 주어 마음놓고 말을 달릴수 있었다. 자기 잔등에 올라탄 두사람이 갈길이 촉급한것을 알아주기나 하는듯 적토마는 걸음도 경쾌하게 잘 달려주었다. 나는 용진역으로 가는 길을 접어버리고 림업국운수잠을 목 표로 말을 내몰았다. 세시간 남짓이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합실에는 아침뻐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밤샘을 하며 기다리는 사람들로 벅적거 렸다. 나는 쇼펑이 뻐스에 오르는것을 보아야 시름놓을수 있었지만 안해에게 간다 온다는 말한마디 없이 떠나왔으니 알면 얼마나 속을 태우랴 싶어져서 섭섭한대로 돌아서야 했다. 갓스므살에 나는 앳된 쇼펑이와 30대 초반을 넘어선 나는 친동생을 떠나보내는듯 애절한 마음을 눈물로 적셨다. 앞날을 기약할 처지도 아니여서 더구나 마음이 아리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쇼펑을 굳게 안아주고 일로평안을 기원하며 말을 내몰아 어둠속을 내달렸다. 나는 도적처럼 집에 들어가 이불속에서 긴장을 풀었다.                                                                        못잊을 “8대금강들”       이번엔 내가 백골난망의 은혜를 입었던 그 날의 처절했던 정경을 떠올리며 집체호 “8대금강들”에게 술을 붓고 건배한후 이야기했다. 화두를 떼기전부터 눈물이 앞서며 목소리가 울먹울먹해진다.          쇼펑이 까막골에서 깜쪽같이 사라진지 사흘째 되는 날 한밤중에 누군가 우리 집 대문을 사납게 두드려대며 고함지를 소리에 나는 초풍하듯 놀라 벌떡 일어났다. 도둑이 제발저린다고 할가,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아닌보살을 하기로 작정하고 태연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인민민주전정이다!” 민병련장이 사납게 고함지르며 들이닥쳤고 그 뒤에 전공간사가 기간민병 세넷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대적과 맞다들린듯이 제쪽에서 공연히 긴장과 공포심을 키우며 큰대문을 지켜서고 정주문도 지켜선후 가택수색에 들어갔다, 민병련장과 정공간사는 도끼목수인 내 솜씨로 짠 허수룩한 궤짝을 열어젖히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헌옷가지를 일일이 털어보고 안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고리짝도 발칵 뒤집어놓았다. 수상한 세수수건 하나, 양말한짝도 찾아내지 못한 그들은 창고며 닭우리까지 뒤져보았지만 바라는 물건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나를 무섭게 째려보고는 바람같이 뛰여들었다가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결국은 닭쫓던 개 울 쳐다보는 격이 되고만것이다.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였고 섬약한 안해는 놀란 새끼사슴처럼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제코가 석자인데도 싱거운 걱정으로 화를 자초하는 이 로유를 만나 아니할 고초 도 겪고있는것이다. 인간최하층에서 계급투쟁의 과녁이 되고있는 남편으로 하여 당당 한 빈하중농의 딸이 이런 수모를 받으니 얼마나 억울하랴, 결코 열화금강이라는 좋은 말처럼 문화대혁명의 세례를 받는것도 아니였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가, 이튿날 구락부에서 투쟁대회가 열렸다. 구락부의 두 벽에는 “우파분자를 타도하자!”, “하향지식청년재교육운동을 파괴한 반혁명분자 최××를 타도 하자!”, “조선수정주의 분자를 타도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프랑카드가 높이 걸려있었 다. 나는 속이 얼어들면서도 황당한 현실에 역반심리가 꿈틀거렸다. 이 흥안령속 깊은 오지에 끌려와 사상개조를 하며 산송장이 다된 이 로유가 인젠 국제적요시찰 인물이 되였으니 얼마나 황당무계한가! 대단한 착상이고 기발한 창조였다. 아니면 제좋을 대로 엮어대는 국제롱담인가? 지랄도 가지가지라고 해야 할것이다.     상해집체호의 8대금강이 몽둥이를 거머쥐고 나를 둘러쌌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여기 까막골에 내려온 할빈지식청년들은 다 같은 할빈출신인데 동정심을 가지기는커녕 평소에 사사건건 걸고들며 못살게 구는데는 정말 분노가 끓어도 해볼 처지가 아니여서 그냥 죽여줍시사 하고 들이대고 있는 판이였다. 지나간 얘기지만 고리방즈 로유가 힘깨나 쓴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한번은 힘내기를 해보자고 걸고들었다.     180근짜리 밀마대를 련거퍼 열개를 삼층높이의 밀뒤주에 쏟아넣기였다. 나는 평시 밀포대를 량옆구리에 끼고 사양실로 씽씽 날라들였다. 그런 경력이 있지만 내기는 내기인지라 젖먹던 힘까지 다 내야 할 판이였다.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였다. 나는 숨도 돌리지 않고 밀포대 15개를 밀뒤주에 메여 올리고는 “날 좀 보소.”하는 심사로 뒤주우에 앉아 마라초를 말아 여유작작하게 피웠다. 그러나 꾸역꾸역 뿜겨나오는 담 배연기는 바로 터지지 못해 속에서 끓는 화산재였다.     나와 겨루는 자는 본래 체육단에 거중선수였다는데 체대도 거쿨지게 생기여 힘장수같이 보였다. 그런데 빛좋은 개살구였던가, 여섯개를 넘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두손을 내들었다. 그런 그가 그때 수모당한 봉창을 하려고 그러는지 작두로 짤라버린 참대비자루로 내 얼굴을 찔러댔다. 옛날 농촌에서 지주부농을 투쟁할 때에도 이런 악착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역시 현대문명의 비애라고나 할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통봇나무를 둥근 칼판처럼 잘라서 만든 개패는 30근은 족히 되였다. 맨 목에다 건 바오리가 살을 파고들어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자연히 머리가 숙여졌다. 그러면 고개를 쳐들라고 고함치면서 참대비자루로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대 였고 어떤 놈들은 무대에 올라 몽둥이로 대갈통을 부셔버려야 한다고 길길이 뛰였다.    그런데 나는 몽둥이 찜질을 당하지 않았다. 상해집체호 8대금강들이 그저 위세를 부리느라고 나를 둘러싸고 있은것이 아니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동조하는체 하면서 뭇 눈길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게 교묘하게 나를 보호해주었다. 그들이 할빈청년들과 맞서는데는 그들이 터세를 내며 못되게 논데서 악감정이 생겼을수도 있었다.     내가 쇼펑을 남몰래 빼내준것을 알고그랬는지 몰라도 그들의 행동이 고맙기만 하 였다. 나는 그들 덕에 얼굴이 많이 상했지만 관동군에서 번역을 했다는 력사반혁명분자는 완고통이라고 몰아대며 때려죽였다. 사람잡이에는 개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다가도 콩밭기음매기에서나 청초를 벨때면 땀벌창이 되여서 쩔쩔 매며 이 로유의 도움을 바라던 그들이 어찌하여 인성마저 다 잃고 날뛰는가싶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졌다. 인간은 참으로 어디까지 잔인해져야 하는지 나로서는 알수 없었다.     대개 짐작은 하고있었지만 총부에서 쇼펑의 딱한 사정도 아랑곳없이 청가를 주지 않은바람에 상해지식청년들이 속에서 원성이 높아지고 불평부리며 일터에 잘 나오지 않는것으로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영향도 영향인지라 바빠난 총부에서는 계급투쟁으로 그들의 정서를 전환시키고 지식청년재교육을 억세게 틀어쥔다는 취지로 나를 과녁 으로 내세운것이였다. 8대금강의 보호로 사지가 멀쩡해서 돌아와보니 이런 생사람을 잡는 지옥같은 곳에서 더는 못살겠다고 나를 마구 잡아흔들며 할빈으로 옮겨가자고 악바리를 썼다. 그의 심정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정서는 문제의 반영일뿐 해결방법은 못되였다. 나는 정책상 그렇게는 안될 일이니 참고견디노라면 좋은 날이 돌아올것이라고 자신도 확신이 없는 말을 횡성 수설 늘여놓으며 달래였다. 그맘때는 바로 신주대지를 쥐락펴락하던 “영원히 건강하 리”라던 주인공의 집단의 음모가 파탄되고 상승장군도 운드르한에서 야심에 종지부를 찍은때였다. 천지개벽할 징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영원한 진리는 모든것 은 변한다는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젠 정치풍도도 변해야 했다.                                                          그후의 이야기들         이야기판이 거의 끝날무렵, 내가 그후의 쇼펑의 인생일사가 궁금해서 물었다. 쇼펑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에게는 운명의 전절점이라는게 있고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새삼스레 되새기게 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만해도 머리끼가 곤두서는 그날밤이 정경이 쇼펑을 또 다시 울리고있다. 말등에 오른 쇼펑은 네굽을 안고 질주하는 말에서 떨어질가봐 나의 허리를 꼭 껴안고 두눈을 꼼 감았단다.     그렇게 목숨을 내걸고 상해에 도망쳐온 쇼펑은 끝내 어머니의 림종을 지켰고 어머니의 마지막 길에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했다. 아니, 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효성이였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나서 뒤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놓은 쇼팡은 피터지도록 비판투쟁을 받을 각오를 하고 까막골에 돌아오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쇼펑의 어머니가 다니던 상해 제8방직공장의 혁명위원회에서는 쇼펑을 어머니를 대신(顶替)하여 취직시키고 국가정식로동자로 만들어주었다. 쇼펑은 공장에서 전공을 배웠다. 상해하향지식청년판공실에서는 방직공장의 강렬한 요구로 쇼펑이 있던 군마사육장의 총부와 협상하고 호구와 량식관계, 로임관계, 당안을 상해에 넘기도록 하였다. 정공처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정치표현이 아주 좋다고 문건을 작성하여 상해에 부쳐왔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꼬치꼬치 캐며 각박하게 굴었지만 정공처간사는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식으로 쇼펑의 도주사건을 무마시켜버렸다.     다시 당당한 상해시민이 된 쇼펑은 미국에 류학간 누이의 도움을 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하여 방직공장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개혁개방후, 상해자유무역구가 창설 되면서 쇼펑은 국영기업체제를 주식체제, 사인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얼마후 리사장으로 발탁된 쇼펑은 미국의 “내커”, 프랑스의 “아디다스” 체육단복장의 위탁을 받고 의류가공련합체를 세우고 국내외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원래 별명이 호즈(쥐)인것처 럼머리를 잘굴리는 젊은기업가로 거듭나서 전국에서 경공업중심지인 상해에서 동방 명주탑처럼 두각을 나타낸 전도유망한 대기업가로 성장하였다…     쇼펑이 나에게 그후 살아온 이야기를 하란다. 말이 난김에 그후의 나의 후반생을 간단히 서술하고 넘어가는것이 순리일것같다. 1976년 9월 9일, 모주석이 서거하고 강청을 두목으로 한 “4인방”이 짓부셔지 자 등소평시대가 열리면서 억울하게 짓눌려 살던 수백수천만의 수난자들에게 해방으 새봄이 왔다. 나도 우파모자를 벗겨주고 정책에 따라 안치금을 내주었다. 나는 이 로유와 함께 살면서 지지리 인간고를 치르던 안해 김순이와 군마사육장에서 태여난 아들 상해를 데리고 나는 13년만에 할빈에 돌아왔다.     아무도 간섭할수 없는 자유공민으로 된 나는 떳떳한 발걸음으로 할빈 중앙대가에 있는 정치감옥의 검은대문앞을 보란듯이 지났다. 그리고 할빈의 명물로 되여있는 “홍수방지기념탑”에 이르러 기념탑의 대리석기둥을 어루쓸어 보았다. 이 기념탑에는 나의 피와 땀도 스며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지나칠수 없었던것이다. 지나간 옛이야 기지만 1957년 송화강이 홍수에 범람하여 할빈을 삼키려 들었다. 하여 전도시의 청 장년들이 총동원되여 도리(道里), 도외(道外)의 송화강뚝에서 모래주머니를 메여날라 제방뚝을 높이였다. 실로 생사관두의 전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래서 나는 할빈을 그처럼 사랑하는지 모른다.     화는 홀로오지 않고 복은 쌍으로 오지 않는다지만 그해 나에게는 복이 쌍으로 왔다. 내가 남강구에 있는 모교인 할빈농업기계학원에 강사로 취직하게 되였던것이다. 앞날을 바라고 한숨을 죽이며 살다가 이런 날을 맞게 된것은 당의 영명한 시책이 전 제이긴 하지만 그날 투쟁받으면서 육신이 성한대로 살아나서 오늘 날 해방을 맞게 된것은 살벌하던 그 어려운 시기 동토대에서 인연을 맺은 상해집체호청년들의 은정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     오랜세월 이 아들을 눈이 헐게 기다리며 눈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가 환갑나이가 되기전에 고혈압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 비보를 받고도 그저 동가슴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 통탄했을뿐 쇼펑처럼 림종을 지켜보지도 못하였다. 나어린 호즈는 효자였지만 나는 불효막심한 죄를 짓고 평생 후회하며 살아야 했다. 인생은 만남으로부 터 시작되고 그 첫만남은 나의 생명을 낳아준 어머니이시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사후청심환이라도 효성은 바쳐야 했다.     그해 8월 추석, 김순이와 아들을 데리고 금삼포 공동묘지에 오래동안 내버린채로 있어 스산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산소를 찾아가서 벌초를 한후 어머니령전에 술을 올리 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깊은 절을 올리고 또 올렸다. “어머님, 이 불효자식이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불러봐도 외워봐도 대답이 없을 어머님이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손자 의 술을 받으세요. 흥안력 까막골에서 망아지 쇼상해와 같은 날에 태여났고 상해지식 청년들의 은정을 기념해서 상해라고 이름지은 손자입니다.”    여기 이 젊은각시는 송포에 있는 조선족마을에서 열여덟 애어린 나이에 이 로유 에게 시집온 나의 안해입니다. 며느리가 술을 부어올립니다. 지각한 효성이라도 기 쁘게 받으십시오.” 술도 다 붓고 절도 올렸지만 만리장천을 우러러 허무한 인생을 개탄하며 굽이굽이 서리고 얽히는 만단회포에 눈물로 봉분을 적시였다.                                 아름다운 인연에 또 한매듭 짓다            더불어 살게 되여진 세상에 인연으로 얽히는 인생마당이여서 사람은 누구나 다 인연으로 산다. 좋아도 인연이고 나빠도 인연이여서 살아가면서 인연으로 웃게 되고 인연으로 울게도 된다. 인연으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도 보기도 하기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좋은 인연을 맺고도 그것을 모르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좋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이어간다. 맺아지고 풀어지는 인연속에서 삶이 좋아지고 힘들어진다. 그래서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라 하는것이다. 시작은 나와 상관없이 시작되였어도 인연을 어떻게 마무리하는가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고 하리라.                             2017년 2월 20일 생일날에 (청도에서)    
865    치욕의 력사 반복되는도다? 댓글:  조회:254  추천:0  2018-03-19
                                           치욕의 력사 반복되는도다?                                                            진 언        뉴스를 인용하여 화두를 대신한다.      “지난 1일. 우리로 치면 삼일절이다. 셔먼 차관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 기조연설자로 나와 한중일 과거사와 관련해 매우 민감한 말을 던졌다. 한국을 향해 던진 3.1절 메시지인 셈이다. 국무차관 개인 발언인양 위장된 ‘미국 정부의 3.1절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 과서 내용과 심지어는 다양한 바다의 명칭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되고 있고,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하면서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런 도발적인 행동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할 뿐이다…”     셔먼이란자의 발언취지는 크게 두가지로 인지된다. 하찮은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왜 자꾸 티격태격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냐며 비난한것, 과거사문제를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정치지도자의 치졸함을 꾸짖은것이다. 그가 입을 너불거릴 때 념두에 중국도 있었지만 사실은 한국정부를 향한 메시지다. 골치아픈 과거사문제는 죄다 덮어야 한다는 제멋대로의 채근인것이다.    “한미일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마침내 깊은 잠에서 깨여나서 갈기를 날리고있는  아시아의 “호랑이”를 견제하려는 꿍꿍이속이 따로 있기에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과거사 문제를 꺼내는건 용납할수 없다는 말투의 으름장이자 과거사 문제를 자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해 온게 아니냐는 비아냥이기도 한것이다.     한국국민과 대통령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망발을 꺼리낌없이 지껄여댈가? 타국의 국민정서와 립장, 자존감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가 아니면 무엇일가? 미국식 국가리기주의가 얼마나 극단적인가를 단면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각이 있는 국민들이라면 분노하고 비난하는게 당연할법하다.     그런데 벙어리 랭가슴앓기격인 딱한 심사도 있을것같다. 비난을 하자니 목구멍에 생선가시 걸린것처럼 거북해질게다. 셔먼의 정치지도자들이“과거의 적을 비난해서 값싼 박수를 받는다”라는 대목에서 비난이 멈춰질수밖에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상당 부분 맞는 말이기때문이다.     그동안 일본의 가지가지 도발에 대해 이렇다하게 실효적이고 가시적인 대응을 보 여준적이 있었던가? 귀동냥하건대 하냥 구두신고 발바닥을 긁는식으로 가렵지도 아프 지도 않게 국내무마용처럼 말해왔으니 말이다. 로골적인 우경화와 군국주의 부활, 평화헌법폐를 시도하는 아베정권의 속심은 자국민들에게 군사대국화의 필요성을 주입시키고 나아가서 해외침략의 길에 합법적으로 뛰어들수 있는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려는데 있다. 세상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알아야 할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체 하는지…     다시 발톱까지 재무장한 일본이 대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리려는데 조약돌을 쥐고 팔매질한 수준이라면 얼마나 우스운가? 그나마도 자발적인 격분라기보다는 세인들의 눈길의 여하에 따라 “봐라, 내 곧 던진다아!’하고 고아대서 세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뒤 부스럭흙덩이 하나 던지는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방자한 일본을 향해 던진것이라기보다 세인들앞에 보여주기가 목적이 아니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위험천만한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량국간 화해와 협력, 정치지도자들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여 흉내를 낸 작동이였고 “역사 인식은 그 나라가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위안부 인권문제, 교과서 왜곡은 이웃에게 상처주는 일”이라는 따위의 덕담도 아닌 어불성설을, 그것도 외교적수사수준을 타파할세라 조심조심하며 다듬고 다듬어서 삼가 아뢰였던것이다.     동족을 대처하기 위해 백년숙적과 어깨동무하며 그자들이 원하는것들을 척척 들어준다. 대표적인것이“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3자 정보공유 약정서”에 서명한것인데 문외한, 일개 촌로옹이 보건대도 자칫 재다시 일본에 군사적으로 종속 될수 있는 길을 자초하는 작태임에 틀림없다. 결국 죽쑤어 개좋은 노릇이 아닐가? 개가 누구일가? 구태어 설명할것 없는 대서양건너 양코배기들이 아니겠는가?     이런 동화가 있다. 어느 잠풍한 날, 잠자리 한마리가 풀위에 내려앉아 조으는데 한 아이가 살금살금 다가가서 잠자리채를 홱 휘둘렀다. 촉기빠른 잠자리가 펄쩍 깨여 나서 날아올랐다. 다행히 사경을 벗어난 잠자리가 “나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너한테 잡힐뻔했구나”하며 좋아하다가 그만 거미줄에 걸리고말았다.     날개를 파닥이는 잠자리에게 거미가 말했다. "너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내 그물에 걸리진 않았을텐데…껄," 거미가 잠자리에게 다가갈 때 난데없는 새한마리가 내리 꼰지더니 거미를 물어올렸다. 산새가 말했다. "거미야, 미안해, 네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나는 너를 발견하지 못했을거야.…”     이 동화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원리”의 축도이다. 배달민족의 열혈지사들이 조선반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자유독립을 웨치며 선혈을 휘뿌린 “3.1운동의 날” 셔먼 친구가 무슨 배짱으로 망발을 내뱉았을가? 일개 촌부로서는 다 알수 없지만 곧 무소불위의 상전이니 하급앞에서 꺼릴것 없다는 그런 배심이 아닐가싶다. 어떻게 말해도 맞설 사람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때문이다. 아니 그러한가?     단재 신채호선생은 일찍 력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천만지당한 금언이다. 력사의 지혜를 섭취하여 미래의 길을 닦는것은 인류사회발전에서 필연적인 요구라는것은 주지하는바이다. 그런데 피로써 얼룩진 민족수난사를 아예 싹 잊으라니? 그런데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비!”라고 외운다면 비애가 아닌가?      미국의 알렉시스 더든이란 교수는 "력사란 편리한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것만 기억하는게 아니며 력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다. 개체는 인류와 세계에 대한 각오에 앞서 자기 인생에 대하여 깨달아야 하고 민족은 군체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사분오렬된 민족은 자업자득의 슬픈 민족이며 자승자박으로 희망을 묶어버린 민족이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우선 력사적교훈에서 미래지향적인 도경을 모색해야 할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나무와 비유한다면 력사는 뿌리이고 현실은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이며 미래는 꽃과 열매이다. 뿌리가 건강해야 땅속 깊이 파고들어 자양분을 잘 흡수하여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에 수송할수 있다. 다시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에 수송된 자양분은 태양의 빛과 하늘의 영양과 서로 조화되어 화려한 나무로 자랄수 있고 나중에 그 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고 호함진 열매가 주렁질수 있다.    욱달부(郁达夫)가“영웅이 없는 민족은 서글프다. 그런데 영웅이 있으나 아낄줄 모르는 민족은 가련하다. (一个没有英雄的民族是 可悲的,而有了英雄 却不懂得爱惜的 民族是可怜的.)”라고 하였다. 우리 민족에도 력래로 영웅들이 있었으나 인재죽이기 악습의 희생자로 되고말았던것이 그저 서글픈 일인가? 가련한 민족은 아닌가?     영원한 적이 없고 영원한 친구가 없다고 할세 형제끼리 싸우다가 동네깡패를 불러들여 동생(형)을 두드려팬다면 누가 득을 볼것인가? 동족을 압살하려고 민족의 백년숙적, 천년숙적과도 입을 맞추며 돌아가는 장거에 타민족들이 웃지 않으면 이상한 일, 민족의 력사에 길이 남아 후손들까지“칭송”하리니!                                                                            2015년 3월 3일
864    (칼럼) 민족화해의 봄은 오는가? 댓글:  조회:230  추천:1  2018-03-10
                                            민족화해의 봄은 오는가?                                                              진 언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들어서니 새 봄이 혹독하던 동장군의 시린 등허리를 써ㅡ억 밀어내고있다. 아직은 높은 산마루에, 골골에 적설이 흰누더기같이 널려있고 강물도 녹을가말가 주춤거리는 이른봄,동토대도 낮결과 저녁으로 얼자녹자 하지만 봄볕은 하루가 다르게 새롭다.     반가운 자연의 봄날과 더불어 분단민족화해의 훈풍이 솔솔 불어오니 반가울손 새 봄이 아니련가,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시내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와 “륙승정 련못가에 늘어진 버들은 실실이 날실로 늘여나 볼가》를 부른 웃동네 사람들이 어우러져 “해원(解寃)”한다면 이보다 경사스러운 민족의 대희사가 없으리라,        선 하나를 두고 세기를 넘기며 대결해 왔지만 한쪽이 없이는 존재할 리유가 없다. 우리 배달민족은 인류군체로부터 선별된 한 공동체로서 세상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존재하면서 자신을 지키고 천세만세 이어질 하나인 운명적군체이다. 결코 모래언덕이나 모아놓 은 껍데기무지처럼 바람에 흩날려버릴 그런 민족공동체가 아니다.     민족인 각각의 개체들은 민족공통체의 구성원으로서 사적인 감정때문에 그 소속이 개변되는것이 아니다. 민족인 개체는 배달민족이라는 이런 특정된 군체안에서 상응, 갈등, 화해의 반복속에 자기 존재를 확보할수 있다. 이 공동체의 력사적현실 및 또한 그것의 내적인 관계는 어느 통치집단의 목적일수 없다. 실존안에서 민족인의 구실을 한다는것이 개체의 존재리유이다. 민족공동체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의취력을 가지며 또한 감화력은 민족성원들을 단합시킬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하여 진실로 세계민족지림에서 떳떳한 민족공동체가 되려고 모지름쓴다.     진실로, 민족공동체가 그 의취력을 확보할 때 배달민족의 기개와 힘을 실천으로 증실해야 희망이 있다. 물론 민족인 개체는 인간 일반인만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민족군체속에 존재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각자는 자기 민족공동체에 충성하면서 자아완성을 도모해야 민족인이라 말할수 있다.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속이는것이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것이다.     젇가락 한모는 쉽게 부러진다. 그러나 몇개로 묶이면 단번에 꺾이지 않는다. 그것이 수천만개로 융합되면 아름드리 나무에 못지 않다. 민족공동체가 빛남으로써, 또 공동체가 글로벌세계에서 생존해 나감으로써 개체도 그 안에서 존재를 빛낼수 있다. 조선민족(한민족)은 전 인류적인 구성부분으로서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있는, 자체에 책임을 다하는, 앞을 내다보면서 화해를 이루는 민족공동체로 거듭나야만 세계 민족지림에서 당당하게 제 자리를 차지할수 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세계에 향하여 언제나 하나로 뭉친 민족공동체로 나서야 하며 작금의 불확정적인 안정과 불안정의 상태에서 대립, 갈등의 초한계선을 지워나가면서 최종적으로 민족융합의 지평을 향해 나가야 한다, 분렬의 아픔을 지속하지 말고 궁극적지평에 이르기 위해 너도나도 화해의 홰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 좋은 노래에 깨진 질긋을 두드리는것 같은 잡음을 화해의 협화음으로 짓눌러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호사다마이다. 혼사말에는 “흥”소리도 방간이라는데 배달민족이 어렵사리 민족화해의 봄을 열려고 하는 때에 간능한 일본정부가 “평창이후”의 대북 유화분위기에 배를 앓으며 남북을 견제하기에 로골적으로 설치고있다.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을 흘리는것은 이상할것 없지만 악어의 눈물은 가증스럽다. 일본내에선 “조선위기론”에 광란적으로 삽질하고있다. 남북의 유화에 금구를 파고있는것이다. 아베는 지난 2일,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미소외교”에 끌리지 말고 압력을 최대한으로 높여가야 한다”며 싱겁게 군불을 지피고있다.       민족공동체안에 있는 개체들의 존재, 민족화해에 대해 옳바른 인식을 가지고 과거에서 쌓인 원한이든 선험적인 관념이든 민족화해속에 녹여버려야 한다. 각자 공동체 안에서(공동체의 사역을 통하여, 공동체의 사역으로) 맹동적이고 가당치않은 동족혐오증을 시궁창에 처박고 서로의 믿음으로 화해를 촉진하라. 하나의 민족이라는 큰 틀안에서 신뢰로 민족통일의 광장의 기초를 닦아나가야 미래가 기약된다.     민족화해는 말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가슴가슴으로 맺는 운명적인 묵결로 이루어진다. 해묵어 곰팡이 낀 적대적감정의 적설을 화해의 훈풍에 녹여버리라.  호상간 믿음은 우선 개개인 자신으로부터, 민족적사랑은 적대관념의 타파로부터, 남북 평화통일은 자신의 담보로부터 시작되여야 한다. 믿음, 사랑, 희망은 모두 민족공동체 안에서, 외세에 의한 분렬의 현상황속에서 시작될수밖에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족융합에 필수불가결의 조건을 화해의 존재론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민족화해는 분렬이 시작되였던 바로 저주로운 3.8선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민족의 정체성을 재건립하려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고질병인 배타성을 철저히 배제하여만 믿음, 사랑, 융합의 금자탑이 서서히 쌓아질수 있다.     해내외 배달겨레들 한마음 한뜻으로 진정을 다해 민족적 화해를 기리고있는 오늘, 남북이 분단 70년의 녹쓴 철조망을 헤쳐버리고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를 포옹하려는 자세로 마음의 문, 믿음과 사랑의 문을 활짝열기를 강건너서 기대해 본다. 리념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다시 보라, 체지와 리념으로 하여 갈라져 반목하여 온 북녘의 사람들도 남녘의 사람들처럼 살아숨쉬고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분단의 아픔으로 쌓여진 증오심과 깊은 상처를 치유하여 남북의 사람들 모두가 관용하며 민족의 화해를 강대국들이 이루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제민족끼리 해결할 담략이 있어야 한다. 내 먼저ㅡ네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로소 민족화해의 새싹이 움트고 마침내 꽃을 피울것이다. 온 세계가 분단민족의 화해의 봄을 환영하는 대변혁속에서 아직도 음으로 양으로 불신과 대립을 꼬드기는 무리들은 하늘이 돕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 시점에서 선의를 아전인수하며 악으로 응수한다면 조상을 탓할것도 없고 방애군인 외세를 원망할것도 없이 영원히 슬픈  민족이 되여질 미래를 통곡하라.     경제든, 문화이든 모든것이 리념갈등의 론리에 지배받는 남북의 현실에서 민족의 화해를 념원하고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실천적인 의지를 색깔론으로 무력화시키려는 것은 치사하기 그지없는 반민족적 아집이다. 세상의 모든 색을 다 합치면 전래의 불교색인 회색(灰色)이 되듯이 오로지 민족의 화해와 융합을 도모하는데 잡소리를 내며 기승부린다면 그는 근원적으로 배달민족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     배달민족의 불화고(不和苦)는 현재적 삼고(三苦) 중에서 가장 큰 시대적, 전 민족적 고통임을 절감하지 못하는가? 기득권자들은 어두운 사심을 버리고 민족화해의 봄마중에 나서라! 세기적인 숙망이였던 민족화해의 봄을 무르익히려면 민족적인 가슴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인위적인 “3.8선ㅡ동토대”에 봄볕이 무르녹게 하려는 대다수 민족인들의 숙망의 인절미에 초를 치려한다면 저주의 기둥에 매달릴것이다.     남북통일의 궁극적 의미는 더불어 함께 사는것이다. 비록 분단 70년동안 서로 다른 양상의 삶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서로의 다른 모습을 존중하며 서로 적대시 할것이 아니라 서로 보듬어주는 마음으로 참된 민족적 화해를 도모하며 통일의 큰 길을 열어가는 이 마당에 “뜨거운 마음들이여 어서 모여라!”                                                                                    2018년 3월 7일
863    “3.1절” 99주년 기념일 소고 댓글:  조회:199  추천:0  2018-03-06
                                      “3.1절” 99주년 기념일 소고                                                      진 조합     “3.1독립운동”이라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천방야담같은 옛이야기로만 알고 있을수 있다. “3.1절”이 무슨 날이냐? 1919년 3월 1일 일제로부터 조선을 되찾자는 광범위한 민중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의 독립을 웨치며 일제를 반대한 전민중적 항쟁으로서 이런 정의적항쟁의 물결은 일파만파로  미국을 비롯한 해외까지 퍼져나갔다. 세계 방방곡을 울린 3.1운동은 전민족의 단결, 단합을 과시한 거대한 민중투쟁으로서 우리 민족이 천추만대로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 비장한 날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민족대표33인을 위수로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포된후 삼천리땅 방방곡곡에서 어린아이들부터 아낙네들.  남녀로인들에 이르기까지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일제침략자들에게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며 목에 피터져라 조선독립만세를 웨치며 일제경찰들의 총칼에 무참히 피를 흘리며 쓰려져간 피빛3.1절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36년 처절한 식민지노예국으로 신음하던 력사를 어떻게 리해해야 하나? 랭정한 눈길로 력사를 투시한다면 “온순한 양처럼 국가를 넘긴 조선사람들이였다. 그러한 망국의 력사는 아무리 숨기고 미화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세계렬강들은 당시 일제의 식민지화를 어떻게 보았을가? 힘의 론리에 의해 일어날수 있는 남의 일로 생각했을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은 멸망한 조선과 일본을 우리의 시각으로 보지 않았을것은 명약관화하다.    세계령강들은 일본이 나쁜 국가라고 생각하였을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점령하고 합병한것을 나쁘다고 생각했을가? 아니다. 당시 미국놈들은 조선인을 아메리카토착민 인디언과 같이 미개인으로 여겼다. 19세기말 조선을 보던 그 당시 미국인의 시각이 확실히 그러했고 지금도 달라진게 없다. 력사사건은 불변이다. 그런데 해석은 각 국의 리해득실에 따라 다를수밖에 없다. 약소국가에 세계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것은 력사가 가르쳐준 준칙이다. 세상은 자고로 약육강식의 준엄한 법칙으로 운행되였기때문이다.     힘없이 평화를 웨치는 사람들은 세상에 모두 선량한 사람들만 있다고 믿는 환상가이거나 아니면 우둔한 사람들이다. 부패무능했던 고종과 같은 최악의 매국노가 리조왕실과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여 조선을 팔아먹은 력사사실과 당시 즉시 무장항쟁을 하지 않았던 사실은 숨기고 “을사오적”과 강대국들의 간섭에서 원인을 찾는것도 편파적이다. 형편없던 필리핀도 19세기 말, 미국식민지가 안되려고 극렬하게 저항하다가 60만명이나 학살당했다. 이런 침중한 대가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조선의 경우, 3.1운동당시 일제놈들의 피비린 탄압으로 10만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력사는 그후의 참상도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간악무도한 일본놈들은 일제시기 36년 동안 100여만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였으며 84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강제로 로역장과 전쟁터로 끌고가 억울하게 무리죽음을 당하게 하였다. 또한 20여만명의 조선녀성을 일본군성노예로 끌고가 잔인무도하게 유린했다.     3.1운동은 온 겨레가 하나가 되여 일제를 반대한 불멸의 애국투쟁이다. 그런데 오늘날 친일파 잔당들, 소위 극우세력들은 3.1절 정신마저 외곡하여 민족간의 화합과 단결을 가로막고 동족대결을 조장하고 있으니 도대체 생각머리가 있는 인간들인가? 빼앗긴 조국의 자주독립을 웨친 3.1절 기념행사장에 력사의 죄인 일본과 미국국기를 흔들며 맹목적으로 남북화합을 반대하고 민중항쟁의 상징인 촛불기념조형물까지 파괴하는 막된 무리들의 만행은 참으로 불가사의하지 않을수 없다.     이 숭고한 력사적기념일에, 자유독립을 웨치다 쓰려져간 선렬들의 고귀한 피가 슴배여 있는 국토에서 남의 나라국기를 들고 광기어린 극우파시즘 이데올로기를 선동하며 리념갈등 부추키는 자들은 대체 어느나라 국민들인가? 99년 전 3.1절날에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싶다. 그날 일자무식의 지고지순한 한 농부가 마을길에 나서서 “독립만세”를 웨치다가 경찰놈들에게 체포당했다. 경찰이 “누가 시켜서 만세를 불렀는가?”하고 배후자를 추궁하자 그 농부의 대답이 천고절창이였다. “그래, 새벽에 우는 수탉은 누가 시켜서 홰를 치는가?”하고 반문했다. 이에 경찰이란 작자도 그만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다고 한다. 오늘 날, 소위 개명했다고, 제노라 우쭈대는 인간들이 일자무식의 시골농부보다 나은게 무엇인가?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하긴 생각해볼 사람들이면 그리하지 않겠지만,     온 민족이 일제에 맞서 저항한 기미년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3•1절, 그러 나100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에도 '매국노'들이 광란하고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비애이다.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기념일인데 일장기를 들고 나온다는것은 다른 나라 같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나온것은 또 무슨 뚱단지같은 추태인가? 항일정신을 기리는 3•1절마다 이런 추태가 벌어졌으니 삶은 소대가리롣 웃을 일이 아닌가? 해방이후 민족반역자들 중용한 친일파 리승만을 찬양하고 하느님이 “대한민국”을 세웠다고 망발하였으니 참으로 천하귀재들이라 할것이다. 력사의식도 전무한가? 어리광대놀이도 유분수이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미국"이라고 고아대는 그런 사대관념. 노예근성이 너무 갸륵하다. 악명높은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모르는 무지랭이들인가? 미국은 1905년 일본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필리핀 지배권을 확보했다. 일본은 같은해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미국은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식민지배를 불러온 원흉인데 상전으로 모시니 얼마나 황당한가? 항일정신을 기리는 날에 미국기를 흔드는 행위는 력사의식으로 보면 일장기를 흔드는것과 다름이 없다. 미국에 굴종하는 노예의식의 관성인가?     아니, 3•1절에 성조기를 흔드는것은 3•1운동의 항일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족적행위다. “북한체제”를 찬양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면서 100년숙적을 찬양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것은 그저 사이비가 아니라 언어도단이다. 일제를 옹호하는것은 동족을 찬양보다 더 비겁한데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광화문광장은 미국도 일본도 아닌 “대한민국” 땅이다. 민족의 항일정신을 기리는 3•1절에 일제 강점기를 불러온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흔드는 자들은 명백한 매국노들이다. 뜻깊은 기념일에, 그들이 신도를 동원하여 서울도심 한복판에서 활개치게 만드는것은 민족의 수치다. 저 민족패류들을 100주년에도 봐야 하는가?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일본놈들은 물론 3.1애국민중항쟁운동을 외곡시켜 동족대결로 치닫고 외세에 아부하는 매국노들, 적폐세력들이 저지른 반민족적죄악은 하늘도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3천만 동포들을 불구덩이에 밀어넣고 학살한 일제와 미국 침략군, 매국노,사대주의자, 반동파들은 언제가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것이다.     피눈물로써 기록한 이런 력사를 어찌 잊을수 있단 말인가? 삼천리 강산를 일제의 수탈지로 만들고 조선사람을 개돼지보다 못하게 취급하며 노예와 대포밥으로 내몬 일본놈들의 반인륜적 죄행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납함한다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격이다. 그러나 일본놈들이 손톱과 발톱이 빠지도록 사죄하고 죄값을 치를 때까지 결코 용서해서는 안될 일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바라건대 는100주년 기념일에는 배달민족을 망신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2018년 3월 1일
862    (칼럼) 기똥찬 “색문화” 댓글:  조회:429  추천:0  2018-03-02
                                                                기똥찬 “색문화”                                                                        진 언            이른바 “성문화”가 변색했으니 잠시 “색문화”라 칭해보자. 칠정륙욕을 가진 인간으로서 마음속에 “색(色)”을 간직하고 있다는것은 결코 잘못된게 아니다. 색은 인간의 심성에 존재하는 진실로서 도를 넘어 황음무치하지 않으면 광명정대하게 용납되는 인간본능이다. 아무나 철저한 금욕주의자가 될수 없으니까, 색을 추구한다는것은 일종 미에 대한 취향이지만 도덕성이 없는 수욕을 뜻하지 않는다. 전통관념에서는 “색”이란 사람을 해치는 나쁜 욕념이라고 락인찍고 성을 입에 자주 떠올리면 “우추부레하다”고 질색했더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놓고 하는 담론을 회피할수록 문제는 더 발생했다. 마치 먹지 말라고 금식령을 내린것일수록 더 먹고싶은 심리와 같다. 이처럼 인성으로서의 “색욕” 을 왕가왈부할수 없는 노릇이지만 “성문화”가 문명시대, 문명인들에 의하여 변태적이 되였으니 사회문제거리가 된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가 하루에도 수천수만건씩 발생하니 “색문화”광란은 어디쯤에서 랭정을 찾을것인가?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자유로운 인권천국 미국에서도 2017년 영화계에서 시작된 성추행, 성폭행 폭로 “미투(나도 당했다, 나도 말한다)” 운동이 일어나서 세계적 범위로 확산시키는 영광을 따냈다. 한국으로 말하면 미국이 천조국이라 곧장 닮아가는가? 최근 한달여 한국사회 최대 화제중 하나가 “미투(#MeToo·나도당했다)” 이다. 각계, 각층에서 성범죄 피해 사실이 드러나 진상규명과 처벌,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타번지고있다. 웅성중심의 외곡된 색문화, 수욕의 피해자가 오히려 기시당하는 권력형 성범죄의 오랜 병폐가 드디어 드러난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연극사의 아이콘, 연극의 자존심”이라던 이윤택의 성폭행이 2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배우 조민기씨가 청주대학교 연극학과교수시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5년 만에 수면위로 올라왔다. 이어 원로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씨의 성추행 의혹도 터져나왔다. 마침내 원형이 드러나자 뻔뻔스럽고 구차한 변명을 늘여놓지만 “예술가” 의 비애이기전에 한국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상하 권력관계에서 권위자의 권한과 지위가 녀제자에게 미치고 녀제자의 인권은 그네들의 영향력아래 있다는 오판과 의식이 금수같이 만행을 저지르게 한것이다. 리씨 본인의 도덕성과 자질, 인격에 문제가 있었지만 본인의 변태적인 인격형성에는 외곡된 성의식과 성문화가 바탕이 되여 있었기때문이다. 재부, 지위, 명예는 인생의 내용이지 전부가 아니건만 그것은 도깨비 금방이로 휘둘러졌다.     무릇 스승이라면 불문률을 지켜야 한다. 이를테면 녀제자를 상대하여 색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권위로 녀학생의 순정을 강탈하지지 말아야 하며 어렵게 꿈을 이루려는 녀제자들을 상대하여 편의를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안하무인으로 잘난체 거드름 부리지 말아야 하고 제자를 상대로 권력봉을 휘두르지 말아야 한다. 명색이 무슨 교수라면 누구보다 자신의 본분을 잃지 말아야 하는 등. 색욕과 금전욕으로 도덕방선과 량심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아야 명실상부한 스승님이시다.     교사로서의 직업도덕을 사덕(师德)이라 한다. 사덕은 교사와 일체 교육공작자가 교육활동에 종사함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규범과 행위준칙이다. 사덕이 있은 후에야 제자 배양이 있고 스승의 존재리유가 있다. 사덕상실자는 교수이기전에 인간패류이다. 신성한 교단에선 몸이라면 적어도 똥구멍으로 호박씨를 까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행실에 따라서 인간됨과 인격력량의 무게와 가치가 가늠된다. 고상함과 비렬함, 밝음과 어둠, 진실과 허위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러한 요소에 의해 숭엄한 사덕이 형성된다. 이씨나 고씨나 소위 예술인생을 연극처럼 산 위선자들이다. 최저의 사덕이 없었으니 교육자로서의 일거수 일투족이 죄다 3류극이였다. 인생이 유희라지만 스승으로서 학생들과 성유희를 놀다니? 녀배우가 연출가를 안마하여 사정시켜주면 더 큰 배역을 얻게 되였다니 얼마나 치사하고 추잡한가?     각설하고, 곁에서 보아하니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만연된것 같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나 지위를 리용한 유명인의 성폭력 행태를 둘러싼 고발이 봇물터지듯 이어지고있다. 한국문단의 고은 시인, 연극계의 이윤택 연출가 등 내노라 하던 인물들의 성추행, 성폭행을 살펴보면 누리는 권위, 거머쥔 권력 등을 언제 지날지 모르는 “유효기” 내에 쓰거나 확인하려고 집착했던것 같다. 관료주의와 서렬주의가 고질화된 공무원 사회나 군대, 경찰은 물론 정계 ,재계, 학계에서도 조만간 미투운동이 벌어질것이라는 바람직한 전망이 나온단다.     대학가에서 교수와 학생의 상하관계에서 비롯된 성범죄 피해 사례가 잇따라 폭로 되고있다. 개별적인 성범죄 현상이 아니라 전 사회 각 기관에 범람하고 있는 외곡된 성문화와 권력형 성범죄가 어느 정도로 우심한가를 얼마든지 류추할수 있다. 법조계를 넘어 문화예술, 연예계로…사회 전반에 확산되였음을 알수 있다. 미투운동은 그간 눈에 띄는 동향이 없던 곳까지 번질것으로 관측된다고 한다.       이처럼 성비위에 련루돼 소속기관의 징계를 받은 국가공무원은 2012년 이후 4년간 모두 586명으로 한달 평균 12명에 달하고있다.아동청소년 성범죄부터 시작해서 싸이코 패스의 비정상적인 성범죄, 그외에도 비일비재한 성폭행, 성추행이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그 뿐인가? 직장내, 학교내 성희롱이, 심지어는 가정내에서의 성폭력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 되고있다. 친애비가 친딸을 성도구로 여기고 친오래비가 녀동생을 강간하는 사건이 련속부절이다. 동물도 근친상간, 란잡교를 하지 않는데 말이다.     동방례의지국의 후손들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가? 왜 이렇게 극악무도 , 파렴치한 범죄들이 남녘에서 유별나게 감행되는가? 잡다한 리유가 있겠지만 극도로 추악해진 성의식과 성문화가 요인이다. 력사적으로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라는 권력구조가 형성되여 발전된 계급사회는 수천년을 내리 남성은 우위에, 녀성은 렬위의 력사를 거쳐 녀성이 남성의 발설의 상대로 존재해 왔기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오늘에 이르러 외곡된 남성상과 녀성상을 만들어버렸다.이럼에도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인간의 DNA, 남자 수컷은 많은 곳에 씨를 심으려 하고 있다. 이런 본능을 문화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공언했으니 한국의 성문화에 대한 의식의 심층을 보여주지 않는가?     지배적인 구조는 당연히 권력관계, 리해관계, 경제관계에 영향을 주었고 사회 저변에 외곡된 의식과 문화를 가져오게 되였다. 시대가 천방야담같이 변화되였지만 그 뿌리를 완전히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던차 썩어빠진 서구의 양문화의 침습까지 즐겨 받아들이면서 작금의 악과를 빚게 된것이라고 말해도 어페는 아닐것이다.     인류에게 성도덕은 최후의 방선이다. 전반 사회적으로 도덕성의 붕괴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 경제, 문화의 선진국일진대 이는 정말 자아풍자가 아닐수 없다. 성폭력은 표면상 남녀의 문제이지만 본질은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한 부당한 억압과 폭력이다.녀성의 의지를 짓밟고 강행하는 색놀음은 엄연한 녀권유린이다. 녀권인즉 인권사항이 아닌가?      하다면 “미투”운동이 한국사회의 심각한 인권문제로 다루어져야 명정언순 (名正言顺)이 될게 아닌가? 인류에게 성도덕은 최후의 방선이다. 녀성의 최후의 신성이 무참히 짓밟히는데 인권보장을 말할수 있을것인가? 개체적 인간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사회문제로 내놓고  칼질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김빠진 인권타령이라도 할수 있으렸다.                                                                                                                2018년 2월 28일
861    황혼소곡 2 댓글:  조회:220  추천:0  2018-02-28
                                                                황혼소곡 2                                                                        최균선     산골에도 심심산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대자연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보군 했을 것이다. 두 팔을 펼쳐들면 량켠에 산봉들을 거머쥘 수 있 듯 좁디 좁은 산곡간, 우중충 푸르른 숲, 싱그러운 공기가 어울려 새소리, 계곡을 빠져 나가려 분주탕을 피우는 물소리,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어낸다.    시골 명동중학교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 벌방에서는 감촉하지 못했던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절실히 느끼였다. 때때로 황혼빛 실실이 걸리는 두만강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매미가 우는 소리에 심취되여 있노라면 매미소리가 귀 속으로가 아니라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서 마치 몽롱한 꿈세계의 선률처럼 신비하게 느껴지였다.    평화가 깃드는 고요한 황혼녘의 자지러진 매미울음소리는 그렇듯 신비로운 대자 연의 음악이였다. 한여름 향촌의 합창단은 해해년년 지칠줄 모르고 울어쌌을 것이다. 세월과 더불어 부르고 부르는 저 서늘한 선률 속에서 향촌은 늙어갔고 사람들도 늙어 갔으리라. 평화로움과 안녕이 깃드는 해질녘의 향촌마을의 상공에 이채로운 풍경은 회백색 의 연기이다. 집집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저녁연기는 석양이 비낀 향촌에 생동한 풍속화를 그려주고 있다. 그 것은 결코 숨 막히게 하는 공기오염이 아니라 풋풋한 인정이 감돌아드는 사람 사는 냄새이기도 하였다.     기압이 한껏 낮은 저녁이면 굴뚝에서 머리를 풀고 나온 연기가 땅에 내려앉으며 마을 길을 휘돌아 동구밖 나무가지에 걸렸다가 미구에 하늘에서 굳어지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제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거의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놀음에 탐했던 마음을 접고 “얘들아, 밥 먹을 때가 되였다, 오늘은 그만 놀자!” 하고 짝짜꿍을 치며 제 보 금자리로 줄달음쳐갔다. 애들의 마음 속에는 저녁연기가 엄마 혹은 할머니가 애들에게 알리는 가장 의미롭고 다정스러운 부름이였던 것이다.     밥 짓는 연기는 향촌에만 있을 수 있는 특이한 풍경선이였다. 잠풍한 이른아침 밥 짓는 연기는 투명하고 석양의 황금색에 물든 마을에 피여오르는 연기는 엄마, 할매들의 냄새, 손맛 그 자체였다.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감도는 연기 속에서 향촌의 삶의 향기와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해 지는 들녘, 곱게 비낀 저녁노을이 고기비늘 같은 엷은 구름을 채단처럼 물들 이는데 풍년가을이 설레이는 밭길을 따라 농부내외가 소수레를 타고 돌아온다. 아낙 네는 무어라 자꾸 새살을 떨고 나그네는 빙그레 웃으면서 장알진 손으로 소궁둥이를 철썩 갈길 뿐이다.     “에라, 이 눔의 소야, 늑장부리지 말고 얼러덩 가자…이랴! 쩌쩌…”너무너무 평화롭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가적인 향촌풍경이였다.     저녁 상을 물리고 모기불 피워놓고 마당가에 나앉아 밤하늘 총총한 별들과 은 은한 달빛, 개구리와 풀벌레, 산새소리, 코끝을 스치고 머리와 어깨를 어루만지고 가는 바람결, 어둠 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느라 떠들석 고아대는 아이들…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어도 소박하고 주어진 삶에 안주하는 행복이란 따로 있으리라.     조물주가 베풀어준 천상천하의 그 많은 경물 중에서 석양도 자체의 특이함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붉게 물들다 못해 그냥 불 타고 있는 듯한 서녘하늘 구름 사이 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장려한 석양은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밤이 가까워지는 시각과 이률배반적인 정경이요, 그 아름다움이 너무도 잠간이여서 아쉬워서 눈물겨운지도 모른다. 아무튼 황혼은 누구와 리별하는 시각도 아닌데 그냥 슬프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인과 문필가들이 해돋이를 두고 붓을 날려 불후의 걸작을 남겼던 것이 아니랴, 라고 한 옛 시구에는 까닭 모를 처량함이 담겨있지만 석양은 그래서 더 감상적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황혼이 찾아들면 매양 처량함이 앞서 온다. 이제 가야 할 멀지 않은 길에 황혼빛 서러워라. 꽃이 시들어짐에 바람을 탓할 수 없 듯이 청춘이 지기 로서니 황혼을 탓하랴만 황혼에 비애를 느끼지 않는 도끼등 같은 감정을 가진 늙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황혼에 림하여 각자의 느낌은 천차만별, 각양각색이다.     황혼은 생로병사의 수순을 가는 인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만개 한 꽃에 눈물 짓고 어떤 이는 지는 꽃에 처연한 한숨을 토하고 혹자는 저녁새 우는 소리에 미묘한 정취를 느끼고 어떤 이는 애처로운 울음에 눈물 짓고… 옳거니, 세상사 영원한 번영을 확보할 수 없거늘, 누군들 황혼의 비애를 느껴보지 못했을 가부냐,     흔적없이 가버린 세월 속에 속절없이 미련은 남아서 비워야 채우고 버려야 얻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보니 황혼이 슬피 운다. 리별은 안타까움으로 기다림을 빚을 수 있다만 황혼은 비애로 어스름이나 빚을가, 노을빛 피같이 물들인 석양의 언덕에 넋을 놓고 앉다. 어째서 온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처없이 걸어온 인생길. 지나온 자국마다 후회가 콜짝인다.     고생 끝에 살만치 되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고 참다운 사랑을 느끼게 되면 사랑 하는 사람은 이미 떠나고 삶의 진실을 깨달으면 머리에 흰서리가 처량하고 삶의 진미를 터득한 듯 싶을 때 몸은 이미 로쇠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허황한 추억이 건만 늙으면 추억병에 걸리는 걸 말려내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세월의 물레방아는 쉬임없이 돌고돌아도 산천은 유구하고 꽃은 지고 다시 피여도 생명의 꽃은 다시 필줄 모르는데 비켜갈 수 없는 세월의 언덕에 황혼은 날마다 도적 고양이처럼 슬밋슬밋 다가오고 늙음은 득달같이 달려온다. 기운은 점점 쇠락해지고 황혼이 슬픈 곡조로 노래할 때 바람 타고 들여오는 하늘의 소리, 황혼의 소리, 대자연의 소리를 고독으로 들으며 새겨보게 될 것이다.     청년시절은 누구나 거의 대동소이하게 살았지만 로년의 삶은 자신이 가꾸기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 외모로 나타나는 격차는 별로 없지만 정신적인 차이는 말 몇마디를 해보면 금방 저울금이 보인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감성이 쇠퇴하지 않 았다면 내면 세계에는 청춘의 록지가 남아있다는 표징이다.    나이80에 미국 헌법을 기초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비록 나이 때문에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젊어 서 죽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프랭클린의 말처럼 만년을 살아간다면 인생의 일몰은 일출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뒤모습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우왕좌왕 방황하는 모습은 민망스럽다 하리라. 바람아, 구름아,황혼아, 말 좀 하려무나. 어디 로 가야 고고한지, 청춘시절도 아득히 잊혀지고 황혼만 눈앞에 생생하니 인생의 초행 길 걷고 걸으며 고래희고개에 오른 로옹의 마른가슴에 회한만 축축하구나.     섭리에 순응하며 현세에서 잠시 쉬다가 종착역인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황혼아, 천천히 가자꾸나. 인고의 세월을 불사르며 황혼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미련만 까불리니 어쩌냐? 마음으로는 스스로 추하게 늙지 말자고 벼르지만 황혼의 로신사가 내게는 인연이 없고녀.                                                     2018년 2월 22일                   연변일보
860    (칼럼) 띄여쓰기와 읽기, 말하기에서의 호흡관계 댓글:  조회:249  추천:0  2018-02-20
                                             띄여쓰기와 읽기 말하기에서의 호흡관계                                                                                                           최균선     옛날 옛적 글을 처음 배울 때 띄여쓰기가 잘 안되여 선생님이 례를 들어 가르치던 일이 생각난다. 물론 그때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면 다들 아는 웃음거리 실례이다.     례 1.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가방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가방 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가방안으로 들어간다.     례 2.     아버지가 방안에서 나온다.                  아버지 가방안에서 나온다.                  아버지가방 안에서 나온다.                  아버지가방안에서 나온다.      이런 례는 띄여쓰기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것으로서 보편성이 적은것은 사실이나 띄여쓰기가 달라짐에 따라 의미전달 등에서 생기는 가능한 페단은 잘 말해주고있다.     조선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만도《띄여쓰기의 기본원칙을 단어마다 띄여 쓴다.》고 규정하였다. (《우리말과 우리 글》저자 ㅡ과학원 언어 문학 연구소 언어 문화 연구실 201페지 ) 하여《완수할 것이다.》《지도한 바를 보고할 것》이라고 써야 한다고 하였다. 불완전명사에 속하는 단어들과 그것이 쓰이는 례에서 살펴 보면《동이 틀 녘 부터 건설장은 청년들로 흥성거렸다.》거나《비가 올 둥 말 둥 하던 흐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개였다》,《승냥이는 양으로 변할 수 없다》등등.     그러나 읽기에는 말째라고 여긴다. 례하여《조금만 늦었어도 길이 어긋날 번 하였다.》《나도 곧 갈 터이니 어서 떠나게》《제법 그럴 사 하게 이야기를 끌고나갔다.》등, 그리고 조선사람은 성이 따로 있고 이름이 따로있기에《김 동무》,《용식 동무》독립적인 단위 즉 하나의 단어이기에 띄여 써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렇게 띄여 쓴대로 이름을 부를 때 성을 부른 다음 쉬였다가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되게 웃기는 일이 될게 아닌가? 결국 띄여쓰기와 언어습관은 별개로 되여진 셈이다.          우리 중국조선어문에서도 초기엔 그때의 조선의것 지금의 (한국것)과 같이 띄여 쓰기를 하였다. 1.  명사들이 토없이 어울릴 때:      로동 계급(로동계급), 중화 인민 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붉은 기(붉은기) 당 앞에(당앞에) 2. 불완전명사와 일부 보조동사의 띄여쓰기:      나라의 것(나라의것), 아는 체를 하다(아는체를 하다), 한 개(한개), 읽고야 만다 (읽고 야만다) 보고 싶다(보고싶다) 3. 토 《아, 어, 여, 아다, 어다, 여다》가 붙을 때 띄여쓰기.     돌아 가다(돌아가다), 일어 나다.(일어나다), 뛰여 내리다(뛰여내리다), 건너다     보다(건너다보다), 젊어 가다(젊어가다) 무거워 보이다(무거워보이다) 등에서 괄호안에것이 현재 우리가 쓰는 띄여쓰기원칙에 따른 서사이다. 그러나 그때 띄여 쓴대로 읽지 않았다.     가령 띄여쓴대로 《중화 ㅡ인민 ㅡ공화국》으로 휴지를 두고 읽거나 말한다면 하나의 완정한 개념인《중화인민공화국》의 의미를 전달하는것이 아니라《중화》, 《인민》,《공화국》이라는 개개의 낱말을 라렬하는것으로 착각될수도 있다. 우리 말에서 음절군은 한번의 날숨에 의해 토해지는 소리마디로서 곧 호흡관계에 의해서 형성된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지금 다시 반세기전으로 돌아가서 한국식 (해방직후 조선식)띄여쓰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되돌아보면 결코 새로운것이 아닌것이다. 옛날식 혹은 한국식으로 띄여쓰기를 한 글을 읽을 때마다 읽기와 말하기에서 습관적인 휴지관계와 탈절되고 있다는것을 새삼스레 절감하게 된다.     옛날식(한국식?)으로 띄여쓰기를 한 례를 든다면《있다는 것은 》, 《정상 적일 수 밖에 없다》,《폭행 사건》,《있기 때문이다》, 《전달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이》,《객관성인 것 같다》,《붙여 놓은 것입니다》,《많을 것으로 생각 된다》, 《대표할 수 없을 수도 있다》.《별로 안 좋습니다》,《크게 잘 못 이 아니라 고》, 《중국 인으로서》,《4대 까지 살다 보니》,《며칠 전》,《박 경선 씨에게》, 《잘 모르는 것에 변명하고 》,《할 것이다》,《있을 것이다》《몇 년이 걸렸소?》 등에서 어떤것은 한국식도 아니고 중국 조선어식도 아니게 뒤죽박죽이 된것도 있다고 본다. 례컨대 《잘 못 이》가 오타가 아닌가 의심할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상술한 례에서 보면 단어를 기준으로 띄여쓴다는 규칙에 따른것이라지만 읽거나 말로 옮길때는 띄여쓰기는 띄여쓰기대로이고 읽기나 말하기는 따로라는것을 쉽게 보아내게 된다. 보통 《크게 잘 못 이 아니라고》를 읽을 때《잘 못 이》에서처럼 휴지를 두지 않게 될것은 자명하다. 다른 례로 《허 생원!》을 휴지를 두고 불러보라, 《허생 원인지》《허허, 이 사람아,》 하는 식의《허, 생원이!》인지 알수 없게 된다. 옛날식으로 띄여쓴대로 읽어보면 말더듬이의《떼떼》의 말처럼 되여지고 아무리 웅변식으로 말한다 해도 어불성설이 된다.     현재 우리 조선말띄여쓰기에서는 단어를 단위로 하여 띄여쓰기. 명사적단어결합, 학술용어, 굳어진 말은 붙여쓰기, 불완전명사,일부 보조적동사의 앞말에 붙여쓰기를 총칙으로 하고있다. 한국어에서도 단위를 기준으로 하는데… 어떤것은 왜 그렇게 꼭 띄여써야 하는지…전문 연구가 없다면 알쏭달쏭이다. 례하여《아버지사진》과《아버지 사진》은 단순히 띄여쓰기에 기준할 문제가 아니다. 전자는 아버지가 찍힌 사진 이고 후자는 아버지가 갖고있는 사진이란 말로서 속격토《의》가 생략된것으로 리해 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식으로는 달리 리해될수 있다. 옛날 조선식띄여쓰기 (후에는 변했지만)에서도 보다싶이 띄여쓰기에서 경제발달국가의 우월성이 체현된다고 말할수 없다. 1970년대 중기까지는 조선이  한국보다 경제가 우세였으니까.    필자의 천박한 생각에는 현재 우리가 쓰는 띄여쓰기가 말하기에서 습관적인 호흡조절 즉 말의 끊기와 억양을 살리기, 랑독에서 소리마루, 말의 속도, 말소리 흐름의 률동성 등에서 과학성은 두말할것 없거니와 호흡상 더 편리한것 같다. 물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에서도 띄여쓴데 구애되지 않고 편하게 말하고 읽기에 습관이 되여서 결국 띄여쓰기가 인위적인 규칙으로 되여졌을뿐이다. 그러니 어깨춤 따로, 엉덩이춤 따로가 된셈이다.     글은 읽기를 전제로 하고 말은 소리를 전제로 하는데 편하게 읽고 편하게 말하게 된 습관을 인위적으로 탈절시킬 필요가 있는가? 기실 탈절되여질수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언어는 발전한다. 그리고 그 발전방향에 따라 전통도 포기될수 있다. 문화발 전에서 보수는 자멸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체성을 잃으면 자기방황이 될 가능성도 많다. 지금 형편같아서는 어느것이 더 과학적이고 어느것이 더 문화적이라고 말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범벅이 되는 페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새것이래야 결국 반세기전것이니 우스운 가치취향이 아닌가? 묻거니와 삼각지대에 선 우리는 몇번 발을 갈아디뎌야 하는가? 자기 부정도 한두번이면 족하다.                          2008.8.22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인물 | 단체 | 블로그 | 쉼터 | 레터 | 포토 | 조글로뉴스 | 칼럼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 | 뉴스스탠드 | 광고문의
[조글로]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潮歌网) • 연변두만강국제정보항(延边图们江地区国际信息港) •아리랑주간(阿里郎周刊)
地址:吉林省延吉市光明街89号A座9001室 电子邮件: postmaster@zoglo.net 电话号码: 0433) 251-7898 251-8178
吉林省互联网出版备案登记证 [吉新出网备字61号] | 增值电信业务经营许可证 [吉B-2-4-20080054] [吉ICP备05008370号]
Copyright C 2005-2016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