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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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    (잡문) 웃기는 참회 댓글:  조회:63  추천:0  2018-11-16
                                                        웃기는 참회                                                            최 균 선      웃기는 참회란 엄격한 의미가 아니라도 어불성설이 된다. 한것은 본래 참회란 가슴을 치며 하는 눈물겨운 심리활동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알락달락한 인간세상에는 별스럽게 웃기는 참회도 있다. 자고로 유모아가 결핍하다는 중국사람들의 결함을  락마관들이 “참회”로 미봉하고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고 해야 하리라.      그런 참회들중 어떤것은 법정에서 불쑥 나온것도 있고 기자의 인터뷰에서 감정이 북받쳐 털어놓은것도 있고 어떤것은 서면으로 적어놓은것도 있는데 듣는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하거나 혹은 너무 비릿하여 구역질을 청하는것도 있으며 심지어 웃지도 울지도 못할것들도 있다. 형형색색의 참회들은 락마관들의 심태와 령혼을 오롯이 내비치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 아닐수 없다.     어떤자가 참회하여 가로되 “력대의 황제들 모두 삼궁륙원(有三宫六院)을 두었는데 내가 녀자 두셋과 좋아한게 뭘 그리 대단한가?”하면서 일컬어 사업차로 외지에 나가면 밑에 사람을 시켜서 거리를 돌며 쓸만한것이면 데려오라고 명령하던 일을 정당화하였다. 또 어떤자는 “권리가 크면 리익도 큰법이다. 벼슬을 하는게 돈을 벌려는게 아닌가? 나는 벼슬해서 먹을알이 없으면 청해도 하지 않을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자리 할 때 돈을 챙기지 않고있다가 물러나면 본전도 없지 않을것인가?”라고 똥싼놈이 와달랑하듯이 기고만장하는데 과시 홍진세계를 투시한 귀재라 할것이다. 어떤자는 착복한 공금 90여만원에서 30만원을 외국에 류학간 딸의 학비로 충당했는데 “나라를 위해 인재를 배양하기 위한것이 아닌가”고 하더란다.     또 “내가 인민의 공복인데 먹고입는것은 마땅히 공가의것이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절창도 내놓았고 어떤자는 “내가 부패를 하느라고 매우 수고하고있다.”고 너스레를 떨었으며 어떤 철면피는 법정에서 “내가 탐오하게 된것은 상급에서 나를 령도간부를 시킨탓이다.”라고 궤변을 늘여놓았다.     또 어떤 후안무치는 “나는 사무실에서 그녀자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끝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연약했다. 그녀자는 나의 피를 짜내려고했다.”라고 하면서 비분강개해서 자기를 변호했단다. 어떤 다정한은 “귀염둥이야, 너는 젊고 문화가 있으니 내가 침대위에서 배양하여 주석대에 앉혀줄게, 먼저 향에 제일 인자가 되였다가 현부련회주석으로 승진시킬테니 얼마나 좋아? ” 라고 하며 두다리 사이에 녀자를 끼고 천국에로 올라갈듯이 흥을 돋구었다고 한다.     어떤 자는 격리심사를 받으면서 “당신들이 반부패를 하느라 수고하지만 나도 부패를 하느라고 매우 수고가 많았단말이요.” 라고 하였다니 과장된것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웃다가 배꼽이 나올일이 아닌가? 하긴 수뢰를 하느라 수고하였다는데는 근거가 있긴하다. 매일 상자속에 꼴똑 찬 백원짜리 지페묶음을 세면서 말할수 없는 쾌감을 느끼면서도 뒤가 저리여 좌불안석이 되였을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령어의 몸이 되여 낡은터에서 이밥먹던 이왕지사를 생각하면 오장이 찢길테니까,     어떤 총명한 지자는 “백성들에게서 얻어서 백성을 위해 썼다구요.”하고 자기를 변명하였다. “수뢰하여 빈곤부축”했다는데 참으로 “경세지언”이라 할것이다. 물론 수뢰한 돈에서 15.47원을 빈곤호부축에 썼다는것이 증실되였다. 그런 탓인지 아니면 말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더니 3년도형에 5년유예집행의 판결을 받았단다. 결과야 어찌 공교롭든 새로운 위장술이 아닐수 없다. 락마관들의 소위 참회서는 역시 틀에 박힌 말, 텅빈 연설습관의 미성으로서 바로 정확한 헛소리이다.     례를 든다면 빈한한 가정에서 태여나 어찌어찌 노력해왔다는 출신론을 내세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 하거나 어떤어떤 좋은 일을 하였으니 좀 봐달라는 공로론도 펼치는데 형식으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대동소이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참회서를 베끼는 현상도 있다고 한다. 이런 참회서에 락마관들의 심령세계는 그나물에 그밥이고 참회라야 거기서 거기라는것을 시사한다.     하남 개봉시에 한 락마관은 소속현인 초유록서거 45주년기념대회에서 초유록정신을 따라배워 견정한 신념을 가지고 사업해야 하며 도덕수양에서 인격을 도야해야 한다는 주제로 일장 연설을 하고 신문에까지 냈다. 그런데 웬걸, 얼마후 그처럼 초유록정신을 고양하던 그가 려산진면모가 드러났으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런 실례를 끝이 없을것이다. 여치평(余治平)란 탐관씨는 “돈을 받지 않으면 사람들이 신경이 비정상이라고 비웃는다.”고 하였다. 변명같지 않은 변명에 합리성을 가미하고있는 관원부패의 보편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하여 세간에는 탐욕스럽지 않으면 벼슬할수 없고 미관말직도 하지 않은 사람이면 수뢰할 일도 없다는 유모아가 류행되고있다. 조금 과장된 말이지만 부지기수의 탐관현상을 반증하기도 한다.     락마관들의 변명으로 내세운 참회는 가지각색이지만 공통성이 있다. 말하자면 날아가는 새도 떨굴듯이 떵떵거릴 때는 참회“참”자도 떠올리지 않던 그들이 “사람”으로 환원되여 눈물코물흘리며 가슴치는것이다. 후회막급이라고 하소연하는자도 있고 눈물범벅이 되여 한번만 용서해달라는 자도 있고 조직의 배양에 미안하다는 자도 있고 가족에 미안하다는 자도 있는데 개괄적으로 자신이 헛살았다고 참회한단다.     웃기는 참회중에서 인생을 “헛살았다.”는 참회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참회는 참회로 남고 속심은 그들만이 알고 하늘이 알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매체에서 시간, 정력을 들여 지면을 랑비하며 그들의 기담괴론이나 “사상감정”을 파헤치느라 대서특필 하는것은 기실 본말이 전도된것이다. 배는 이미 침몰하고있지 않는가?     본래 욕망이 과도하면 사고력이 타래떡이 되고 판단력이 흐려지게 된다. 권력을 휘둘러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욕망, 요행심리가 코앞에 천길나락을 가리워놓은것 이다.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해 욕망을 없애는것보다 자초에 건전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것이 더 요긴하다. 건전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야 하고 욕망이 기본적으로 공익을 우선해야 하는것 아닌가.?     인간의 욕망이 건전하지 못하고 마음이 병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벼슬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더구나 법률, 제도, 도덕, 량심, 관례, 민심 등을 잘 알고 이시작칙해야 할 사람들이다. 뒤늦게 “참회”하는것은 실의하였기때문이고 영화부귀 끝에 “련옥”에 쳐박혔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알량한 참회란 락마하는 순간에 촉발된것이다. 무릇 후회란 지각생으로서 사후청심환도 못가지고있다. 지구는 둥글지만 인생무대는 원형의 회전무대가 아니라 다각의 거울이기도 하다. 이 거울속에서 우리는 무수한 다른 얼굴들을 보게 되는데 가증스러운것은 두 세개의 얼굴을 가진 위군자들이 아닐가?이런 이런 위군자들이 판을 치는 현상은 마치 이른바의“유리창효응”과 같다. 깨진창문을 그냥 놔두면 다른 창문도 련달아 하나둘 마사진다. 창문이 제때에 수리되지 않고있다는것에 아무도 신경쓰지 않기에 다른 창문마저 깨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것이다. 이런 효응은 위함천만하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얻을수 있는것이 청백이라면 반대로 유일하게 무중생유가 되는것도 탐욕심이다. 이미 검어진 마음은 재무지에 떨어진 두부처럼 씻을 묘책이 없다. 행주는 깨끗이 씻으면 다시 행주이지만 걸레는 아무리 씻어도 행주로 되지 못한다. 기담괴론이든 참회이든 다 행차뒤 나발같은것이여늘…                                                                              2015년 1월 23일
907    (잡문) 시와 시인의 아리러니 댓글:  조회:82  추천:0  2018-11-09
                                          시와 시인의 아이러니                                                           최 균 선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시는 말썽많은 한국시인 유치환의 “한 개 바위가 되리라”는 시의 전문이다. 이 시를 누군가 찬양하여 가라사대 작자의 기질적 특성인 의지를 가장 잘 반영한 시란다. 바위의 속성은 어떤것에도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작자 자신의 의지적 태도라는가, 그래서 그는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했다고, 그러나 인간은 변화될수밖에 없는 약하고 슬픈 존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단속하며 의지적 존재가 되기를 념원하던들 그게 어디 마음을 먹는대로 되는 노릇인가?     시의 끝련에서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란 변질되지 않는 의지는 첫연의 발진과 수미쌍관을 이룬 단호하고 강인한 결의로 읽혀지는것은 사실이나 실지로 청마(靑馬)선생님은 그런 사람이였던가! 누구신가 찬양하는바에 의하면 그는 외양적으로 과묵하고 고독(孤獨)의 내면에는 비정의 강인함과 사랑의 불 꽃이 이글거렸다는가,     당시 시조류에 야합하지 않고 독특한 내면세계에 군림하였다는 그는 후에 정말 바위같이 드놀지 않은 지성인이 되셨던가? 묻지 않을수 없다. 해답은 그의 론란거리 가 된 시 “首”가 잘 해석해 줄것이다.                                                                              首                                                                          유치환       十二月의 北海 눈도 안오고 오직 萬物이 苛刻하는 黑龍江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街城 네거리에 匪賊의 머리 두 개 내걸려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少年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寒天의 模糊히 저물은 朔北의 山河를 바라보고 있도다 너희 죽어 律의 處斷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四惡이 아니라 秩序를 保全하려면 人命도 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희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意味함이었으리니 힘으로서 힘을 除함은 또한 먼 原始에서 이어온 피의 法度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生命의 險烈함과 그 決意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수 없는 無賴한 넋이여 暝目하라! 아아 이 不毛한 思辨의 風景위에 하늘이여 思惠하여 눈이라도 함빡내리고지고…     이 시는 유치환이 1942년 3월 ‘국민문학‘ 에 발표한 작품으로서 항일독립군을 비적이라 표현하고 법을 지키지 않아 만주국정부에 의해 처형당했음을 암시. 일제는 조선독립군을 선비(鮮匪), 공산당항일유격대를 공비(共匪), 토착항일민중을 토비(土匪), 만주의 항일군벌을 병비(兵匪), 대도회(大刀會) 같은 항일교단(敎團)을 교비(敎匪), 홍창회(紅槍會) 같은 항일결사원을 회비(會匪)라고 그 전체를 '비적'이라 총칭했다.      이 시로 하여 당시에는 명망을 떨치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자신도 예상할수 없었던 후일에는 일제시대 대표적인 친일시로 락인찍힌 작품으로서 평생을 한국의’실록 친일파’의 저자 고 임종씨가 시에서 등장하는 ‘비적(匪賊)’이 대륙침략에 항거하던 항일세력의 총칭이었다.‘라고 말하면서부터 시비거리가 된것이다.     이 시는 또한 자기 자신의 량지를 속인 거짓말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보다싶이 일제침략자들의 잔인행위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항일하다 잡혀서 효수당한 '머리 두 개'를 꾸짖은 철두철미 친일시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도 혹자들은 일컬어 남성적이요, 시의 소재를 확대한 혁명적 업적으로 극찬했으니 흑백전도가 가관이라 하겠다.     죽어서도 바위같이 되리라고 호언장담하던 그는 너무 쉽게 자가당착에 빠졌다. 왜냐하면 이 밖에도 유치환에게는1943년 발표한 '전야'라는 친일시가 또 있기때문 이다. 유치환은 학병지원 특집으로 출간된 친일잡지 '춘추' 12월에 이 시를 발표 하였는데 학병출정 장려시라고 질타한 사람도 있다. 1944년 4월 '조광'에 기고한 '북두성' 에서는 '아세아의 산맥 넘어서 동방의 새벽을 일으키다' 라며 서구제국주의 자들을 물리치고 대동아공영권을 수립하는 일제를 찬양하였다.     유치환은 만주국에서 일제가 준 농장을 경영하였고 그는 친일세력을 확대하고 반일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조직된 최대의 친일단체 '만주협화회'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는 로골적으로 일제침략자를 찬양하는 산문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필인즉 곧 그 사람이라 한다. 유치환은 초기에는 랑만적, 상징적 경 향의 허무성(虛無性)이였으나 차츰 범신론적(汎神論的) 자연애를 바탕으로 허정무위 (虛靜 無爲)의 세계와 강인한 원시적 생명력의 추구를 보여줬다고 평하고있다.     허정무위(虛靜無爲) 그것은 바로 자연의 법칙이며 그 길이야말로 훼손을 막고 우리가 다시 살길이라고 말했던 같다. ‘비와 바람에 깎이는대로, 억년 비정의 침묵에 안으로, 안으로 채찍질하여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허정무위’의 길을 제시 하였는가? 참으로 꿈보다 해몽이 더 그럴듯하다고 하리라.     그러나 피로써 씌여진 력사는 필묵으로 지워지지 않으며 각성한 지성인들의 혜안은 세월따라 무디여지는것이 아니다. 례하면 한국의 “통영시민연대”는 "통영시장과 통영시의원들의 역사관이 도대체 어떠한지 묻고 싶을 따름이다"며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이들을 지금껏 위인이라고 교육하고 혈세를 부어 기념하고 있는 이 마당에 과연 우리 사회는 일본정부만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라고 따지며 대성질호하고있다.     잡담제하고, 문필은 그 사람의 인격과 백프로 일치하지 않음을 읽을수 있다. 예나제나 약자들인 문인들이 폭압앞에서 절개를 굽히는것은 인간본성의 약점이라고 생각할 때 리해의 여지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인성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던가, 하지만 바위든 갈대이든 자신마저 속이 얄팍한 분식은 하지 말아야 하리라. 강폭앞에서 견정 불이한 자란 세상에 흔하지 않다. 그러나 자진하여 친일주구가 된 유치환처럼 스스로 아이러니를 창조하여 후세에 웃음거리를 남기는 시인의 이미지는 막무가내한 인성에 개탄하고도 나머지가 있게 한다.                                                                                       2017년 6월 30일
906    숲속의 대변론 댓글:  조회:47  추천:0  2018-11-09
                                                   숲속의 대변론                                                           진 편역         개인재산공개문제로 인류사회가 시끌시끌하는 판에 이 사실이 동물세계에까지 전해져서 덩달아 만국동물대회를 열고 의론을 끓이였다.     금사후(金丝猴)가 여론의 첫매가 자기에게 돌아오자 변명하였다. 여러분이 류의할바는 내몸에 금빛옷이 정종금실로 뜬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도 첫인상으로 말하면 표범 (金钱豹)씨가 정말 돈이 많아보인다는것입니다.     표범(金钱豹)이 발끈했다. 참으로 억울합니다. 나의 등에 지고있는 금전은 조상이 물려준 유산입니다. 나는 개인재산공포를 강렬하게 지지합니다. 나는 청백합니다. 그런데 달팽이(蜗牛)는 그냥 자동차집을 몰고다니는데 아무도 고발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도적이 매를 드는 판이라도 이거야말로 말이 됩니까?     달팽이(蜗牛)이는 어이없어 한마디했다. 여러분이 보다싶이 우리네 달팽이가족 전체가 자동차집을 몰고다니지만 근근히 한사람만 용납할수 있습니다. “와차(蜗车” 가 비록 많다한들 누구에게 거저 주어도 욕심내지 않을것이고 또 쓸수도 없는것입 니다. 주택조건이 좋기는 그래도 제비를 첫손에 꼽아야 할것입니다.     제비(燕子)가 달팽이의 무함에 맞받아쳤다. 달팽이 말이 맞는가요? 지난해 나는 왕씨네집에서 지냈는데 한해 한해 못해가는 형편입니다. 사실 내가 집이 있고 층집이라지만 처마밑신세를 개변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주택을 여러채 가지고있는 사람들처럼 집을 가진자로 말하면 그래도 토선생을 거들어야 할것입니다. 옛말에 역은 토끼 굴을 세개 판다고 하지 않습니까? 허허허…     토끼(兔子)가 눈을 붉혔다. 비록 내게 집이 세 채 있지만 모두 천적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피난소일뿐이지요. 게다가 해빛도 들지 않은 캄캄한 토굴일뿐입니다. 이건 사실이 아닌가요? 재산공개문제가 제기되면 왜들 나에게만 눈길을 박는지 리해할수 없습니다. 군자는 대도행이라 했는데 저 쥐들은 노상 밤에 나가 활동하기 좋아하는 족속들인데 필경 부정축재를 많이 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쥐(老鼠)가 찍찍거렸다. 모르는 소리, 기실 나도 심야에 나가 활동하는것을 좋아 하는것이 아닙니다. 만약 대낮에 거리에 나가는 날이면 사람마다 때려잡으라고 소리칠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이 주야장철 아글타글하여 모은 재산이 좀 있기는 해도 그것은 생활을 향상시키려는것입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우리와 같은 약세군체를 못잡아 먹어서 야단입니까? 지금 고양이님이 경찰청장을 맡고있는데 우리는 부득불 수시로 치성해야 합니다. 그러니 고양이는 회색수입이 가관일것입니다.     고양이(猫)가 대노했다. 적반하장이로다. 나쁜놈이 먼저 고소한다더니, 내가 경장을 맡은후 불철주야 안건을 파내고 불법분자들을 잡아내여 심판받게 하는것이 사실이니 일부 사람들에게 득죄할것은 당연합니다만 여러분,절대 쥐가 불어대는 류언비어를 믿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인터넷상에 나붙는 이런저런 말들에 혹해서는 아니될것 입니다. 에, 여러분은 마땅히 락타와같은 거물들을 감독해야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락타(骆驼)가 코웃음쳤다. 헝, 련며칠씩 광막한 사막을 걸으면서도 물한모금 마시지 못한다는 나의 비참한 조우를 누가 안단말입니까? 내가 여위여죽으면 당신들은 동정하기는커녕 여위여 죽은 락타라도 말보다 크다는 말을 잘하지요, 참 싱거운 롱담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왜 코끼리같은 거물과 비교하지 않고 하필이면 나와 비긴단 말 입니까? 모두 눈망울을 어디다 두고 있습니까?     코끼리(大象)가 긴 코를 홰홰 내두르며 소리질렀다. 보시오, 내게서 값이 나갈것이란 두 가닥 앞이빨이 아닙니껴? 단순히 덩치를 보고 불법재산이 많을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웃기지도 않는 편견입니다. 하긴 내가 식량이 크지만 먹는것은 풀이지요, 잘먹고 먹을줄 아는 미식가를 꼽자면 저 웅씨네를 내세워야 할것입니다.     검은곰(熊)이 분통이 터져서 힝힝거렸다. 지어낸 말이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먹을줄 아는것은 공개된 비밀입니다. 물고기며 꿀이며 고기며 과일, 오곡잡량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먹지요, 헝, 그런데 당신들은 공무접대에 응수하기에 얼마나 지치는줄 알기나 합니까? 어떤 날에는 예닐곱번씩이나 식탁에 마주앉아야 한다면 당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수 없는 사이비한 식복이지요.     지금은 3고(三高:高血糖、高血脂、高血压)에 걸리지 않으려고 무척 근신하지만 보다싶이 내몸이 원체 생겨먹은대로 이렇게 비대합니다요. 그러나 나는 그저 흥청망청 먹고마실뿐 공금을 제중태에 넣는짓은 하지 않습니다. 아시다싶이 나는 우직하지만 성품이 강직하기도 합니다. 재산공개는 령도부터 이신작칙해야 아래로 효험을 볼것이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저기 점잖게 앉은 호랑이님말입니다.     범(老虎)은 쓸데없이 자기를 씹어치는 곰이 괘씸해서 따웅!하고 불호령을 내렸다. 곰씨를 비롯해서 여러분이 말하려는 저의를 잘 알고있습니다. 즉 령도인 나로부터 앞장서서 재산을 공개하라는것인줄, 하지만, 먼저 알려드리지요. 내 엉덩이 아래에는 더러운 똥이 묻지 않았다는거요. 만약 누가 믿기지 않는다면 당장 내밑구녕에 코를 대고 맡아보란 말이여. 젠장…     숲속 동물대회에서 재산공개문제를 두고 콩이야 팥이야 하고 법석을 피웠지만 결론이 난것은 한가지도 없었다. 저마다 다른 동물을 물어먹는판이라 아무에게서도 확실한 근거를 잡아낼수 없었다. 역시나 동물세계에도 시비기준이 없는것 분명하였다. 회의가 끝나자 제할노릇을 하러 뿔뿔히 떠나갔다. 꿩구어먹은 자리도 아니였다.                                            출처: 2014년7월 31일자 《북경일보》
905    그저 미중부족만이 아닐세그려 댓글:  조회:51  추천:0  2018-11-09
                                                 그저 미중부족만 아닐세그려                                                                                                      진 언       고기술로 휩싸인 대천세계, 걸어다니면서도 세상만사를 손금보듯 할수 있다는 스마트폰시대, 현대인의 하루는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스마트폰으로 마무리된다. 친구와의 채팅과 인터넷 검색은 기본이고 직장의 업무토의와 이메일 확인, 출퇴근길엔 터테인먼트까지 스마트폰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공공뻐스에서 앉았거나 섰거나 간에 스마트폰에 눈길을 박고 있는 모습은 이제 점입가경이 되였다.     스마트폰은 2010년에 처음으로 출시되고 뒤미처 남녀노소가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였다. 생활내용도, 절주도 급변하였다. 단점만 빼면 스마트폰은 21세기의 완벽한 기계이지만 인간의 자률과 절제능력을 무력화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디지털로 인한 편리함의 과잉은 우리에게 걱정도 안겨주었다. 대표적인 례가 20~30대 젊은층을 포함하여 디지털치매증후군이 증가하는것이다. 디지털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다 보면 기억력을 키우는데 게을러지고 차차 기억을 재생하지 못하게 되는것이다. 마치 치매환자처럼 기억을 되돌리기 어렵게 된다. 디지털기기는 우리가 애써 기억해야 할 노력을 대신하기에 우리 뇌는 그냥 놀기 바쁘다.     심리, 정신세계에도 일대 급변이 일어났다. 휴대전화가 나온이후 사람들은 대체로 성미가 급해졌는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부터는 아예 전화본연의 기능이 “저리 비켜”로 되고 소위 정보의 홍수가 들이닥쳤다. 스마트폰이 전달하는 정보량은 이루다 감당할수 없는데 인간의 두뇌활동이 더 차원이 높아진것은 아닌데도 한결같이 몰두한다. 대뇌발전의 황금시기인 애들이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가지고 놀면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것은 상식인데 아이들 자신부터 외면하고 만다.     첫째, 글을 읽음에서 "겉읽기"에 습관된다는것이다. 열독함에서 "겉읽기" 와 “깊이 읽기”가 있는데 "겉읽기"는 비유해 말한다면 기차의 차창밖에 보이는 간판 등의 문자를 읽을 때처럼 단시간에 슬쩍 읽고 내용을 인지하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길수도 없는 그런 읽기이다. 유관된 연구에서 밝혀진데 의하면 스마트폰으로 텍스트를 읽을 때는 "겉읽기"가 압도적이 된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텍스트를 읽을 때 자연히 "겉읽기"가 되고 집중력도 저하된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할수 있단다.     두번째는, 스마트폰에서의 다중과업화(한대의 컴퓨터로 두 가지 이상의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거나 프로그램을 동시에 구동시키는것ㅡ멀티태스킹)는 인간의 집중력을 크게 저하시킨다는것이다. 걸어가면서, 붐비는 뻐스안에서 열심히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매우 분주한듯, 매우 효률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섭취하고 있는것 같지만 하나의 정보에 집중하는것을 방해한다고 한다.    스마트폰, 인터넷만으로는 창의성이 발휘될수 없다는것은 역설인가? 아무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과도한 사용은 어린이뿐만아니라 성인들의 뇌에도 상당히 부정적영향을 미치고 있음에 류의할 필요가 있다. 세상사 새옹지마요 환득환실이 섭리인지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어마어마한 량의 정보를 쏟아내여 인지능력을 고도화 함으로써 단시간에 훏어보고 인식할수 있게 하는 능력을 새로히 몸에 익힐수가 있다 고 할수 있으나 심층에 이를수 없으니 문제거리가 된것이다.     현시대는 이른바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다. 현대인은 이미 '정보과부하'에 걸렸다. 굳이 알고 싶지 않고 알 필요도 없는 사실을 과하게 알게 되는 상황에 뒤늦게나마 짜증나하는 스마폰사용자들이 늘고있다. 꼭 장악해 할 지식만 장악하고 잡다하고 시시매새한 정보들에서 핵심만 간추려 정리하는 능력도 경쟁력이라고 한다. 정보의 흙탕물속에서 진주를 골라내는 눈이 필요하다. 몰라도 되는 내용까지 알게 해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상기한 피해는 그래도 사치한 피해이다. 스마트폰이 발산하는 전자파가 육체에 끼치는 영향도 악렬하다. 십여년전, 한 동료가 자기 외손자가 네댓살부터 컴퓨터유희를 놀줄 안다고 자랑하더니 얼마후 싼광(散光)안경을 쓰고 다니는것을 보았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것이다. 얼마전 고향친구가 손자놈이 어릴때부터 유희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더니 마침내 싼광(散光)안경을 쓰게 되였다고 걱정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스마트폰에 정신을 팔다 발생하는 사고가 련속부절이다. 산서성의 한 물놀이장에선 젊은엄마가 스마폰을 들여다 보느라 정신을 빼앗긴 사이 어린아 들이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도 스마트폰을 보느라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아이는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뻐스운전사가 휴대전화를 보느라 도로 상황을 주시하지 않아 사고가 나기도 했고…     지금의 시대는 어떤 일은 물론 공부에도 창의성의 선행되여야 한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면 "깊이 읽기"를 하거나 집중해서 무엇인가를 사고할 때가 있을가? 스마트폰은 더없이 편리한 등 장점이 있기에 애용하게 되였는데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능동적으로 적절하게 다루어 창의성 발휘의 수단으로 삼을것인가 아니면 기계의 노예가 될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난제로 안겨졌다.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리용하는것뿐만 아니라 곁에 놔두기만 해도 뇌인지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스마트폰을 장시간 눈에 대고 있으면 시력손상이 불가피한데 특히 아동, 청소년 시력저하 등 치명적인 위협이 동반되고 있다는것이다. 그럼에도 잠자는 시간을 내놓고 스마트폰을 사용하기에 스마트폰에 따른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다. 이 또한 고기술이 빚은 비애가 아닌가?     컴퓨터가 보급되지 못하고 “따거다”도 보급되지 못했던 지난세기 90년대, 일컬어 “왕바(网吧)”라는것이 도처에 생겨나서 사람들을 유혹하였는데 얼마나 많은 중소학생들이 전자유희, 게임에 빠져 학업을 망치고 전도를 망쳤는지 모른다. 지금은 코흘리개들의 손에도 스마폰인지 지능핸드폰인지가 쥐여져 있는 시대라 21세기 자녀교육에 풀수 없는 대난제로 되고있다. 감각을 따라 간다는 시대여서인지 중소학생들이 자극을 추구하여 자기를 절제할수 없을 정도가 되였으니 누가 이 난제를 풀것인가? 스마트폰이 개체에 주는 리해득실은 각자 알아서 분별할 일이다.     문제는 전지구적, 전 인류적인 재난을 불러온것이다. 주지하다싶이 쓰다버린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쓰레기로 하여 또 다른 쓰레기대란을 불러온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2010~ 2015년 사이 아시아 12개국 전자쓰레기 발생량은 총 1230만t. 5년만에 63%나 급증했다 중국이 670만톤, 일본 223만톤, 한국 83만톤, 인도네시아 81만톤, 베트남 45만 톤이나 된단다. 쓰다버린 스마트폰, 예상하지도 못한 전자쓰레기로 지구가 또 다른 몸살을 앓게 되였다.     환득환실이란 말은 참으로 만고의 경세지언이 아닐수 없다. 고도의 물질문명, 고기술의 덕택으로 더할 나위없이 편리해지고 편해졌지만 얻은것보다 잃은것도 그에 못지 않으니 이는 인류문명의 이률배반인가? 간소한 삶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고 하면서도 한편 끝없이 복잡하고 번거로운 삶을 자초하고 있으니 자가당착은 아닌가. 스마폰의 유혹력을 이겨내지 못하게 된 인류는 자업자득을 경축할것인가?                                                                     2017년 1월 20일                                                                                                 (2018년 11월 2일) 연변일보 6면
904    (잡감) 우문현답 댓글:  조회:128  추천:0  2018-10-05
                                                우문현답                                                       진 작성                                                                 1. 하느님과 아담의 대화       누가 지어냈는지 재미나는 이야기가 있다. 아담이 하느님께 물었다. 아담:  "하느님, 이브를 왜 저렇게 예쁘게 만드신거예요?" 하느님: "그래야 네가 이브만 바라보지" 아담:  "이브의 피부는 왜 그렇게 부드럽게 만드셨나요?" 하느님: "그래야 네가 늘 이브를 만지지." 아담: "그런데 왜 이브를 그렇게 멍청하게 만드신거예요?" 하느님: "바보야, 멍청해야 너를 좋아하지 않겠냐?" 아담: 왜 저희들이 저 두그루의 나무에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하십니까? 하느님: 에라 이 미욱한 놈, 저 나무에는 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이 맺혀있니라 아담: 하느님이시여, 그 속성이란 무엇입니까? 하느님: 인간으로서 없어서는 안되는 자유와 의지란것이니라. 아담: 그렇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고 왜 자유의지는 주지 않습니까? 그러니 미와 추를 못가리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 아담아, 너 천진한거냐? 미욱한거냐? 아무튼 내가 못먹는다면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 아담: 그런데 이걸 어쩌나요? 이브가 뱀의 유혹을 못이겨 지혜의 금과를 따먹고 나도 몇입 먹었습니다. 하느님: 이것들이? 끝내!좋다, 내 너희들을 에덴동산에서 당장 쫓아내리라. 이제 너희들에겐 영원한 생명이 없을것이다. 아담: 너무 혹독하나이다. 사과 한알을 따먹었다고 이런 죄를 내립니까? 하느님: 그게 원죄니라. 그 죄는 다만 결과일뿐, 진정한 원인은 인류가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것이란 말이다. 아담: 천국에 오르는 대가란 자유의지를 잃는것이고 지옥에서도 자유의지는 계속 가지는게 아닙니까? 이게 천당과 지옥의 본래의 면모입니까? 하느님: 흥! 이런 심각한 문제는 인간이 물을게 아니니라. 아담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눈빛은 전에 없이 근엄하였다. 하느님은 “어리석은자의 물음에 대답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말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르나 아담에게 하지 않았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불위한 하느님과 우자인 아담과의 대담에서 하느님은 확실히 아담의 우문에 하느님다운 현답을 주었다. 그러나 우자는 그것이 현답인지 알배없을것이다.                                 2. 아담과 이브의 대화   이브: 일이 이렇게 된게 저의 잘못인가요? 저 잡아죽일 뱀을 내 그저…                              아담:이야기의 정절에 희극성이 없다면 재미없지, 하지만 그대가 엄혹한 현실에 신념을 빼앗겼으니 이제 천천히 성숙하여 진정한 녀인이 될거요. 이브: 그러면 나의 신념은 누가 빼앗단말인가요? 아담: 지나간 일이요. 우리는 영생을 잃었지만 수치심을 알게 되였고 자유의지를 추 구게 되였잖아요? 이브: 누가 지나간 일들을 주재한단 말인가요?   아담: 이브여, 그대는 너무 단순한게 탈이구려, 단순함이란 곧 간단함의 동의어란것을 모르는가? 말하자면 아둔하다는 말이요. 이브: 내가 당신앞에서 그렇게 단순했단 말인가요? 그래도 나 사랑하지 ? 아담: 그럼 자기만 사랑하지 이브 - 정말이지 ! 아담 - 여기에 자기말고 다른 녀자가 있어? 이브: 에이, 난 몰라, 이잉… 아담: 징징거리긴, 어리석은 질문에는 어리석은 대답을 하라고 하였어, 그렇지 않으면 이브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길것이니까, 그러나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령혼에 깊은 인상을 새겼소. 이제 에덴동산을 떠날때가 되였소. 에덴동산밖에도 맑은 강  흐르고 해빛이 찬란할수 있어요. 한밤중 서천에 달이 레몬빛으로 변하는 줄을 우리는 몰랐지요. 에덴동산이란 원래의 뜻은《즐거움, 유쾌》라는 뜻으로 칭하였다고 한다. 이브가 고독해서 울적해 하는것을 보고 하느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어주었다. 히브라이어로 아담이란 남자(adomah)라는 뜻이고 이브란《생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남자의 갈비뼈》라는 합성어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의 우문현답에서 이브는 정서적으로 반응하고 아담의 현답은 론리적인 반응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인류의 희비극은 이로부터 시작된것이리라.  3.  진나라왕과 감라의 대담   진나라의 승상 감무(甘茂)는 박학다재한 충신이였으나 늘 직언한 탓으로 왕은 좋 하지 않았다. 어느 하루 진왕은 감무를 괘씸죄로 다스리기로 작심하고 일부러 어려운 문제를 내놓았다.     “네가 박식하고 다재하다니 사흘안에 수탉이 낳은 알 세개를 찾아오도록 하라. 아니면 엄벌을 내릴것이니라.”     왕의 속심을 꿰뚫어본 감무는 어명대로 시행하겠노라고 대답했지만 목이 날아날 날이 닥쳐왔기에 식음을 전페하고 자리에 누웠다. 어린손자 감라(甘羅)가 사연을 캐묻고 나서 자기가 왕을 만나겠으니 보내달라고 청을 들었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어린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별다른 대책이 없지 않는가요? 저를 믿어보세요.”     속수무책이던 감무는 마침내 허락했다.     이튿날 감라는 왕을 알현했다.     “저는 감승상의 손자 감라라고 하옵나이다.”     어린 아이를 보자 왕이 물었다.     “너희 할애비는 뭘하느라 오지 않고 코흘리개를 보낸거냐?”     “할아버지는 지금 집에서 애를 낳고계십니다.”      그러자 왕이 버럭 성을 냈다.     “에끼 이놈, 무슨 허튼소리냐! 남자가 어찌 애를 낳는단 말인고?”     그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듯이 감라가 태연히 말을 받았다.     “남자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수탉이 어찌 알을 낳을수 있단 말이오이까?”     왕은 말문이 막혀 ‘수탉의 알’을 찾는 일은 그만두게 했다.     세상에는 어리석은 우문(愚问)으로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에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큰 랑패를 보게 된다. 어리석은 질문엔 어리석은 대답이 나오기 십상이나 감무는 현답을 하였다. 자초에 잘못된 질문에 현답이 나올수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우문에 우답을 하게 된다.                                                               2011년 8 월  10일
903    (잡문)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댓글:  조회:109  추천:0  2018-10-05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진 언       금옥지언 한마디가 만마디를 당하고 마디마다 진리이던 그 시절에 진리는 하나 이고 보고 듣는것이 지구촌이 돌아가는 진실인줄 알고 자족하면서 진리란 그저 심오 하여 함부로 입에 담을 말이 아닌줄로 알던 초민백성들이였는데 국문이 열리고 서방 사상사조가 물밀듯 쓸어 들어오면서부터 진리와 진실이란 개념이 일상구두어로 되였다. 말하자면 진리도 평범하게 말하게 된것이다.     현시대, 세상은 형언할길없이 복잡다단하게 변하였다. 우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절감한것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이른바 정보의 과잉으로 인하여 오히려 얼떨떨 해진다는것이다. 인류는 오늘날 같이 막연한 감을 느낀때가 종래로 없었을것이다. 서점가에는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이런저런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잡다한 지도서들이 련속부절히 진렬되는데 한평생 읽어도 다 읽을수 없을만큼 무진장하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진리를 표방하고 있어 알쏭달쏭이다.     그뿐만아니라 다양한 잡지들에서도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주위분위기에 맞춰야 하고 어떻게 신통광대하게 처사할것인가를 알려주고있다. 그러나 이런 인생지남서들은 흔히 서로 모순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허무함을 숨기지 못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허위에는 요란한 증명이 필요하지만 진리와 진실은 실재하는것으로서 따로 증명이 필요없기때문이다. 칼릴 지브란은 증거를 필요로 하는 진리는 반쯤만이 진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현실생활에는 허위가 더 요란을 피우고있다.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힌 우화 한편이 있다. 오랜오랜 옛날 어느해 여름날, 오유가 진리에게 함께 강에 가서 목욕 하자고 청들었다. 진리는 이것이 오유의 음모궤계일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날씨가 무덥고 강물은 시원한지라 진리는 마음껏 자맥질하며 즐기였다. 그러나 오유는 진리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진리가 벗어놓은 옷을 입고 줄행랑을 놓았다. 진리는 뒤늦게야 오유의 간계에 빠진것을 발견했지만 후회막급이였다.     진리는 강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저 전전긍긍했다. 옷이 없이 어찌 백주대낮에 벌거벗고 나선단말인가? 오유가 벗어놓은 옷이란게 보이긴했으나 오유를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설수는 없었다. 진리의 외투를 걸친 오유는 온세상을 보란듯이 활개치며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진리가 신을 신고있는 동안 유론은 언녕 온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말한다. 바로 이 우화처럼 생활속에 이른바 오유가 진리리처럼 가장하며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진리는 알몸으로 나타나서 사람들이 외면해버리기 일쑤이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오유에 잘 미혹되지만 진리를 믿으려하지 하지 않는것이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실천은 리론을 검증하는 기본도경이라는 말도 있다. 당시는 절대적진리였다. 진리가 성장하는 옥토는 민간에 있다고 했듯이 진리는 평범한 농민의 입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민간은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여서 상장할수 있는 토양과 공간이 있기때문이다.     일체 진리는 사회규률에 좇아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성숙된다. 황당무계와 권모술수, 죄악과 피비린 탄압이 횡행하는 궁정에서는 진리가 생성할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진리는 권력의 부속물이 아니기에 봉건통치집단은 진리와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좀 생각할줄 아는 머리는 아예 질색이였으니 진리를 운운할수 있었겠는가?     똘쓰또이는 말한다. “가장 위대한 심오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고 소박하다.” 진리는 다분히 평범한 생활속에 있다고 할진대 평범한것이 곧 진리이다. 진리는 어디까지나 민중의 생활속에 있기에 그처럼 평범하다.     진리는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례하면 달걀로 바위치기나 맨발로 바위차기는 대항해서 도저히 이길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으로서 유식하지 못하였던 우리 선조들이 만든 절대진리이다. 그러나 바위와 달걀의 부딪침에서 왜 어디까지나 달걀만 어리석은자로 되는가? 하는 의문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수 있다. 하나의 달걀이 차집에서 차를 “마시고”나면 결국 차물에 절어든 차닭알(茶蛋)이 된다 사회역시 바로 이런것이다. 이는 조금 심오한 진리이다.     싸리긁에서 싸리가 난다는 농촌말도 생물의 유전법칙에 대한 평범한 진리이다. 그러나 광란의 시기,“애비가 영웅이면 아들은 호한이고 애비가 반통파이면 그 아들도 망나니이다”라는 말이 당시에는 진리인듯 거국적으로 진동작용을 하였지만 미친놈의 잠꼬대가 아닐수 없다. 이 말은 실제상 봉건사회에서 “룡이 룡을 낳고 봉황이 봉황을 낳고 쥐가 새끼를 낳으면 굴을 뚫는다”는 유론의 재판본이다.     재난은 진리의 첫걸음이던가,선각자 우라극이 혈통론의 반동성을 까밝혔는데 오히려 반동언론이 되여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진리의 수호자는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했던것이다. 맑스의 명언을 옮긴다면 진리의 입구는 지옥의 입구와 같아서 력사적으로 수많은 인의지사들이 진리를 견지하고 지키기 위해 나중에 생명마저 바쳤다. “나는 진리를 위해 태여났고 진리를 위해 죽을것이다. 진리를 내놓고 나자신의것은 없다”는 왕약비의 호연지기는 비장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달리 해석할지 모른다.     진리의 모체는 언론자유이다. 이역시 통속적인 진리다. 공포와 노역은 오직 우매를 낳을뿐이며 윤토나 아Q 같은 우민들과 조고따위의 인간패류들을 낳을뿐이다. 우민은 담장에 머리를 부딪칠저언정 머리를 쳐들줄 모른다. 한사람의 머리를 따른 억천만 사람들은 만세를 부를줄만 알았지 참말을 할줄 몰랐다. 노복으로 자족할뿐 자신이 공민인줄 모른다는 서술이 있다. 진리의 전제는 사람마다 참말을 하는것이다. 굳어진 두뇌로 내뱉는 말이란 잠꼬대같은 뇌까림에 불과하다.     진리는 실천의 아들이지 권위의 사생아가 아니다. 그럼에도 권세는 흔히 진리를 대체하고 진리의 “태상황”이 되려고 한다. 맑스는“인간의 사유가 객관적규률성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은 리론문제가 아니라 실천문제이다.”라고 하였다. 맑스의 말처럼 력사적으로 진리는 “이단사설”로 취급당하였지만 진리였다는것을 시간이 증명하였다. 진리는 백학처럼 자기 갈길을 가는 성정을 가지고있는것이다.     로자의《도덕경》에“(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樂與餌, 過客止, 道之 出口, 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도를 지켜 살아가면 세상 어디를 가도 방해하는것이 없어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화평하고 태평하다. 즐거운 음악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지나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지만 무위의 도는 그것을 입밖에 내더라도 담담하여 세속적인 맛이 없다. 눈여겨 바라보아도 볼수가 없고 귀기울여 들어보아도 들을수가 없고 그것은 써도 끝이없는 무한한 기능이 있다.”고 했다.     진리문제는 단순히 시비문제가 아니다. “진리” 가 행위와 결과사이의 관계라면 “시비”는 행위의 동기와 결과사이의 관계이다. 이러할진대 우리는 지난날 얼마나 진리에서 소외되였던가를 개탄하게 된다. 로버트 버튼은 바보와 미친사람에게는 진리를 평범하게 말하라고 하였는데 정상인들게도 진리를 평범하게 말하라고 하면 어페인가?     진리도 정의처럼 늘 지각할수는 있으나 결석하는 법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세상은 그냥 무지와 몽매로 도배될것이다. 지각한 성찰도 성찰이다. 비물이 땅에 떨어지는것은 하늘이 비의 무게를 받아당할수 없기때문이고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은 마음이 그런 아픔을 담아줄수 없기때문이다. 진리의 납함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2012년 12월 21일
902    (칼럼) 문학사랑 인간사랑 댓글:  조회:104  추천:0  2018-09-30
                               문학사랑 인간사랑                                        최 균 선     험난하고 고달픈 인생살이에서 사랑을 하는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진정 사랑을 하는 자만이 보람있는 삶을 사는 자이다. 행복한 삶의 의미보다 삶 그자체를 더 사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적인 인간으로서 문학을 사랑하는 일만큼 좋은 일도 더 없다. 문학을 사랑한다는것은 되돌려 사랑을 받는 일이다. 만약 작가가 인간을 사랑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겠는가.     내주어야 가득차는 문학사랑, 불타는 마음으로만 꽃피울수 있는 문학사랑, 산울림처럼 평생 마음의 골짜기에서 울리는 사랑,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마음처럼 웃고울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삭이고 관용하는 문학사랑은 참으로 의로운 사랑이다. 너무 사랑했기에 가슴이 찢기는 아픔도 감내하지만 사랑으로 아물고 사랑으로 다시 찾아오는 문학사랑이기에 성스러운 사랑인것이다     인간의 그 모든 사랑을 포섭한것이 문학사랑이다.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보듬어주는 전인류적인 사랑을 한다. 허무한 인생에 허전해지는 마음에 무엇인가 채워주기 위해 로심초사하는 사랑이 글사랑이다. 글쟁이들의 글사랑은 그 모든 사랑의 의미를 초월한 인간사랑이다. 문학을 리해하지 못하거나 관심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대문명 사회에 문맹자이다.     물론 문학이 생계걱정이 태산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시대의 발전, 변화와 더불어 문학은 이제 더는 출세의 문을 두드리는 벽돌장이 아 니고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음식같은것이 아니지만 불공평과 수모와 아픔을 습관처럼 몸에 익혀 가며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문학은 계몽을 시작으로 높은 차원에로 각성하게 한다. 문학은 이래서 없어서는 안될 정신량식이 된다.     문학은 억압과 피억압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함을 조명한다. 그 부정함에 대한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합리한 현실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자각과 함께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문학은 이러한 사람들이 살고있다는 현실을 까밝히고 빈익빈 부익부의 불공평한 삶의 현장에 칼질한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탐 색하면서 인간사회의 허위성과 기만성을 날카롭게 폭로하여 추문으로 만든다.     문학을 사랑하느냐 않느냐는 죽고사는 문제가 아니지만 문학사랑을 모른다면 감각을 따라 산다는 현대인으로 말하면 감정이 도끼등같은 불쌍한 사람이다. 포식의 욕망뿐인 짐승과 다르게 인간은 실현이 막연함에도 꿈을 가지고 산다. 인간만이 몽상에 취할수 있다. 몽상 자체가 절대 자유공간이다. 그 누구를 억압하지 않기때문이다. 문학은 누군가 그런 자유로운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반성해 보게 한다.     소위 '감동'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복잡다단한 정서파동이다. 감동이나 령혼의 울림은 한 인간이 대상을 정감적으로 파악하는 지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문학을 통해 얻는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모습의 인간과 공통되면서도 각양각색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것일수도 있다는것을 재삼 예상하게 한다.      만포식하고 게트림질하는 자들에게는 문학이 무지를 깨우쳐 준다기보다 문명의 금상첨화가 되여 자신들의 복된 삶에 자족하게 할수도 있고 자기 구원의 하책으로 소일거리로 삼을수도 있는바 문학이 부정적인 면에서 쓸모가 있게 된 셈이다. 그와 반대로 문학은 글을 못읽고 글을 읽을수 없는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사람들게 사색의 불을 달아주는 불심지가 된다.      문학은 기득권자, 배부른 자에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것이기에 약자들을 압박하지 않고 착취하려 하지 않는다. 누구를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것 에 반발하여 인간에게 부당한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춰보인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용 한것을 독식하기 위해 타인을 억압하고 부려먹으려 한다. 피억압자의 억압된 욕망을 문학이 충동질하고 그것을 얻으려는 욕망이 강렬해지도록 불을 지른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강요되지 않는 쾌락을 선물한다. 문학은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각자 자원적으로 어떤 감각을 얻는 단계에서는 쾌락하다. 그 쾌락이 지적이라면 성찰을 동반하게 되며 자신을 랭철하게 파악하고 고상한 경지에 이른다. 그러면서 문학은 지성을 강요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들과 싸울것을 촉구한다.     문학은 아무런 정신적 추구가 없이 시간이 되면 직장에 나가고 무엇인가 하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일하다가 퇴근하는 기계적 삶을 사는 사람들의 개척되지 않은 의식의 묵밭에, 정신가원이 없는 무료한 사람들의 마음밭에 또 다른 생명의 꽃씨를 심어 주고 꽃워준다. 그리고 그런 인생은 사람다운 삶이 아니라는것을 깨우쳐주고 세상에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로 우리를 사색하게 한다.     “탈무드”에서는 인생을 바이올린줄에 비유하고있다. 바이올린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야 저음이든 고음이든 음이 나올수 있고 이런 줄에는 많은 가능성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에 따라서 훌륭한 음색이 나올수도 있고 듣그러운 잡음이 나올수도 있다. 문학은 각자 자기속에 숨겨져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음색을 내도록 추동하는 일을 한다.     문학은 불가능한 어떤 소망을 그리는 일도 한다. 한수의 훌륭한 시는 그것을 향유하는 자에게 그것을 향유하지 못하는 자보다 차원높은 삶의 질감을 느끼게 하고 한수의 침통한 시는 그것을 읽는 자에게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현실을 각성하게 하고 반감을 가지게 하고 항쟁의식을 심어준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는 일은 없다. 문학은 절대적인 자유의 사랑임에랴! 문학으로 물질적 풍요로움은 사올수는 있지만 다채로운 마음의 터밭을 바꾸어 올수는 없다. 고결한 령혼을 불러일으키는 고결한 사랑이야말로 우리게 없지 못할 사랑이며 가장 의미로운 사랑이라고 할것이다. 우리에게 절실것은 살아움직이는 육체만이 아니라 보다는 더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도록 시공간을 초월하여 좋은 면에로 인도하는 문학이다. 가슴속에 품은 의문을 포기하고 문자유희에 몰두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로서는 펜을 던져버릴 때가 왔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문학은 문학자체, 문학만을 위한 문학이 되여질수 없게 되였다.     문학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무지와의 싸움군이며 의미론적 차원에서 인간의 꿈의 불가능성에 실현가능 성을 제시하는 개척자이다. 작가는 사회에서 국외인이 될수 없 다. 오히려 자기의 시대와 혼연일체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의 시대는 작가의 자아가치실현의 유일한 기회이다. 현실은 작가를 위한것이고 되돌아가서 작가는 시대를 위해 존재한다. 그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불가능성에 의문을 던질 때 비로소 생계를 위해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속으로만 분노를 끓여야 하는 생계형동물이 아니라 공동체에 참여하며 납함할수 있는 존재라는것을 립증한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비로소 문학은 시작된다. 시간과 공간, 동적인것과 정적인것, 개체성과 정체성, 안녕과 소란,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 등을 확인시킬 때 문학사랑은 유효한 감각수단으로 거듭나게 된다.     문학을 죽도록 사랑한다는것은 온 넋으로 사랑한다는것이다. 정신적으로 고독을 채워가려고 문학사랑을 하는것이 아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데 필사적으로 문학사랑을 하며 산다는것은 자기 생명을 확충하는 일이다. 그래서 문학사랑 만세다.                                                       2018년 2월 16일
901    (수필) 구름에 실어본 명상 댓글:  조회:111  추천:0  2018-09-28
                                            구름에 실어본 명상                                                     최 균 선                                        푸르게 열린 가없는 하늘가에 떠가는 구름은 옛날에도 무한히 좋았건만 맨날 일밭에서 헤매두드리던 젊은시절엔 지글거리기만 하던 해가 구름에 가리우면 서늘해져 반가웠고 때로는 비구름으로 드리워 작달비를 쏟아부으면 일손을 쉴수 있어 고맙기만 하던 떼구름, 그러나 점심때 잔뜩 촐촐해진 배가 걸음을 재촉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는 구름이 꽃피는지 구중궁궐을 짓는지 별로 흥심이 없었다.      후반생에 도시에 훈장이 되였지만 노상 시간에 쫓기다보니 좁다란 도시의 하늘이나마 여유롭게 바라보며 구름에 사치스러운 명상을 담아보지도 못하였다. 드디어 교단에서 물러나 빼놓은 낫자루같은 사무한신이 되여지니 맑게 개인 하늘에 정처없는 구름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아마도 허무한 인생을 절감하는 로옹의 고질인듯,     간간이 구름이 비끼면 석양의 하늘은 가관이다. 진분홍 하늘가에 양털같은 구름, 자연이 만든 환상적인 조화, 석양에 불타버릴듯한 구름이 없다면 무한히 좋은 석양이라도 저렇듯 이채롭지 못하리라. 석양에 물들어 신묘한 색깔로 채색되여 있는 구름의 형상은 메마른 내 가슴에도 서정의 샘이 솟게 하고…정적상태가 무엇인 모르는듯 무시로 변하는 구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명상이 나래친다. 어찌 생각하면 구름은 예측불가한 변화의 상징물인것 같다. 창망한 우주공간 그 어디에서 정처없이 떠돌던 구름일가, 실체가 없는듯 실존하는 하늘에 류랑자같은 구름은 저혼자 구중궁궐 지어놓고 선녀들을 불러들이는 조화도 부리다가 별을 스쳐온 바람에 몰리여 양떼처럼 여기저기 떠돌면서 때로는 반가운 단비도 뿌려주고 때로는 천둥에 놀라고 번개에 찢기였다가 울분을 쏟아내듯 사정없이 폭우를 쏟아붓는 구름…     흔히 뜬구름같은 인생이라 인생무상을 한탄하지만 구름속에도 미학이 있는것이다. 구름의 여유로움의 지혜, 욕심이 없기에 언제나 가벼워 어디든 갈수 있는 자유로움, 세상의 순리를 따르듯 바람에 자유롭게 흘러흘러 갖가지 무늬로, 만나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변화무쌍한 구름…아이때는 비암산 칼벼랑위에도 걸터앉던 고운 구름이 나를 홀리더니 지금 저 변화무쌍한 구름이 로옹을 “철학가”로 만들어준다.     뜬구름같은 인생이고 하는것은 정해진 귀속이 없다는 뜻에서 하는 말인지…저 하늘에 구름이 아름다운것은 변화무상하기때문이 아닐가, 무엇인가 짓고 허무는데 자유자재한 구름, 사진을 찍고 싶어도 부디 찍지마시라, 방금전의 구름은 지금의 구 름이 아니다. 끝없이 불려가면서 목화꽃도 피우고 꽃대궐도 짓다가 하늘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어디론가 흘러가버린 구름, 방랑이 아름다움임을 가르친 구름이여!     나는 너를 스승이라 부르겠다. 멋모르고 인생길 떠나 허위단심 걷고 걷다가 자갈밭, 비탈길 가시덤불길 헤쳐온 다리가 무거워서 이제 좀 쉬여갈가 두리번거리는데 시간은 기다리지 않겠노라며 재촉질이 성화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 넉넉히 잡고 석양이 비낀 인생길 막바지에 앉아 걸어온 길 뒤돌아보니 찍어놓은 발자국 보이지 않고 허탈과 허무형제만 헐씨근 뒤쫓아 온다. 생명이 푸들치던 그 시절엔 세월이 더디게 흐르는것 같아서 “세월아, 네월아, 어서 가자”고 조바심을 가지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이제 속절없이 아쉬움과 후회만 쌓이고 덧얹히고 일모도원(日暮途遠)만 새삼스럽다. 소모되는 생명이라 말려낼수 없음에도 “세월아, 너만은 좀 쉬염쉬염 쉬면서 저만치 내 뒤를 따라오렴아.” 하고 비난수하는 내가 스스로도 한심하다. 세월을 거슬러 자연생명을 연장시키면 만사대길이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한탄하는것은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욕심을 부렸기때문이고 자기 과거를 잊고 앞날에 너무 많은 기대치를 걸었기 때문이고 허송한 시간이 너무 많았기때문인데 세 월을 탓하니 얼마나 부질없느냐?     공수래공수거 인생인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자꾸 채워가려고 아글타글 하였는데 결국 채워놓은것이 무엇인가. 삶이란 끓여서 식힌 한컾의 물과 같이 수시로 마실수 있으면 족한것이다. 다른 사람이 마시고 있는 여러가지 색소를 넣은 음료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아무리 입맛을 돋구어도 내앞에 놓인 한컾의 물처럼 갈증을 더 말려주지 못한다. 주어진것에 만족하는것 그것이 확실한 만족인게다.     구부러짐은 뒤틀림을 의미한다. 아무 돌이나 부싯돌이 될수 없고 무조건 나무를 비벼댄다고 불이 일지 않지만 각자 만년을 나름대로 가꾸기에 따라 남과 다른 정경이 그려지리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힘들이지 않고 놀며놀며 얻을수 있는 유일한것이 무료함이다. 유일한 무중생유는 오로지 꿈속에만 있다. 낮꿈에 긴 하품만 나온다는것은 생명이 시들해졌다는 징표로서 자기 학대와 다름없다.     나는 자신에게 설파한다. 로옹이여, 저 구름에 모든것을 실어보내라. 사심없이 공평한 저 구름은 매일 저렇게 하고 있는데 네 마음속에 얽히고 서린 온갖 욕망은 다 버리지 못하니 자신도 곤혹스러운게 아니냐, 네 인생의 황혼도 저토록 아름다울수만 있다면 초로인생이라도 유감스럽지만은 않을것을, 일생을 아무 허물없이, 부끄러움 없이, 유감이 없이 산 사람이 없겠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뒤모습은 아름다운데 우왕좌왕 방황하는 네 모습은 민망스럽다 하리라.     마음을 비워낸다는것은 공허해진다는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아무런 추구도 없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졸음을 부르는 여름날 산곡간 나무그늘아래 풀밭에 누워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유유히 떠가는 흰구름을 바라보는것은 결코 시간랑비가 아니며 무료함을 달래는데 하책인것도 아니다. 리기심의 극치를 달리는 현시대, 수염같이 자라는 자사자리만 죽여 주어도 홀가분한 삶이라 하리라.     청사에 길이 남을 생은 아무나 사는것이 아니니 인생일사 사소한 면들을 돌이켜 본다. 로약자를 기시하는 마음은 없었는가? 가난한 사람과 갈 길이 저문 길손을 문전박대 하지 않았는가? 겸손과 덕행으로 사람을 위하며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았는가? 과거, 지난 해, 지난 달, 지난 주간, 아니 어제도 량심을 지키며 살았는가 자문해 본다. 현재 인생학년이 몇학년 몇반이든 인정미 풋풋하게 여생을 살수 있어도 더 바랄것 없을것이다. 인생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알자. 인생의 진실한 의미는 수많은 디테일에 있거늘…                                                                         번거로움 떨쳐 단순해 지자                                                      시시비비에도 애끓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소신을 다하며                                                      순리 따라 처처 살아가는 삶                                                      바람에 구름이 흘러가듯이                                                     거침없고 분식도 없는 여생                                                     그것이 자기다운 만년이것제.                                                                              2018년 4월 25일    (2018년 9월 21일 제 6면에 발표됨)
900    (문화칼럼) 문학혼 댓글:  조회:144  추천:0  2018-09-20
(문화칼럼)                         문학혼                                              최 균 선                 문학의 령혼이란 무엇인가? 공인하는바 문학의 령혼은 작품의 내용 및 그로부터 체현되는 사상이다. 이런 론단은 문학에서의 불문률로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되는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대서방문학리론과 그 경전작품들의 미혹된 이 시대의 선구자들의 눈에는 이 불문률이 가히 던져버릴수 있는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국의 한 작가는 “어떠한 경전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문학작품에서 령혼은 풍격과 결구에 있다”고 하면서 작품의 도덕적 의의는 왕왕 무료한 설교의 대명사이고 위대한 사상은 한무더기 정확한 쓸데없는 말”로 전락된다고 했다. 그런가? 답은 부정적이다. 왜냐? 일종의 문학으로 소유의 “도덕”, “의미”를 부정하고 “사상”의 가치의의를 부정할 때 그게 무슨 문학이 될것인가?     로신선생은 일찍 “일체문예는 결국 선전이지만 일체 선전이 모두 문예인것은 아니라”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기실 문학은 반드시 두개의 기본공능을 구비해야 한다는것을 뜻하는바 첫째는 선전교화의 공능이고 둘째는 그의 예술특징이다. 지금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자기의 작품은 정치, 사상류의 선전, 교육작용과 무관하다고 말하기 좋아하는데 자가당착이다.     무릇 어떤 작가이든 자기의 작품이 독자대중에게 접수되고 즐겨 읽는 문학예술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아닌체 할 작가도 없으려니와 이런 사실을 부인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뚜렷한바 “사상”  정확한 쓸모없는 말이고 “선전”이 무료한 설교의 대명사라고 말하는 저의를 캔다면 곧 세계의 대문호들의 문학활동은 아무런 의의도 가지지 못하고 아울러 허위적이고 심지어는 반인성적이라는것이다. 참으로 경세지언이라 할것이로되 사람을 놀래우지는 못하는 유감을 안고있다.     “선전”은 문학예술이 떨쳐버릴수 없는 숙명이다. 이러한 “숙명”을 거부한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문학이란 무슨 소용이 있는 물건짝인가? 그래 이 세상에 정녕 “도덕함 의”가 전혀 없고 어떠한 정확한 “사상”을 배제한 “순수”예술을 위한 예술인 문학예술작품들이 있단말인가? 아무런 사상도 없는 작가는 작가도 아니거니와 대중에게 쓸모 있고 유익한 작품을 만들어낼수도 없다.     여기서 단언할수 있는바 ”문학혼”이란 바로 작가의 정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시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영혼에 불을 지피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라고 하였다. 또 시는 인생의 행복을 최고 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가장 조화적이며 자연스러운 즐거움의 예술이라고 했다.” 프로이드는 시인을 가리켜 “고달픈 아름다움을 먹으면서 찬란한 은실을 뽑아내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는 려정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국의 드킨스는 문학은 가르치는것과 감동시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이 말은 문학이야우리를 감동시키는 최상의 예술이라는 뜻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출신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문학이란 처음부터 우리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불행을 읽어가면서 그것을 향유하고있다. 그런것으로 인간이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문학적 활동은 필요하다. 작품을 읽은 이들이 선과 악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점은 증명할수 있다”고 말했다. 뮐러는 “문학은 불행을 말할수밖에 없고 그 안에 불행이 반드시 있다. 문학은 위로를 준다. 고통을 말하지만 위로도 덤으로 준다. 문학은 가벼운 주머니로도 만날 수 있는 심리치료사”라고 정의했다. 문학대가들의 론술이 그래 정확한 “사상”,“선전”이 아니며 “무료하게” 설교가 아닌가?     사실 모든 문학은 저자가 의도했든 아니했든간에 교훈적으로 해석할 개연성을 가지고있다. 훌륭한 문학은 인간적호소력 즉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결국은 사 람의 정신개조작업이 아닐수 없다. 이런 정신적작품은 작가와 독자의 묵결속에 재창조된다. 문학은 보여주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감동을 수반한 비판적기능을 가지고 래일을 이야기하는데까지 나가야 한다. 괴테는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고 변화시킬뿐이라고 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문학의 혼에서 나오는것이다.     이처럼 많은 경우에 문학은 작가의 명백한 교훈적목적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인간성에 호소하는 자유로운 상상의 질을 구현하고 있는 까닭에 그런 작품들은 당시에만 효과가 있는것이 아니라 ‘고전(古典)’이라는 이름으로 시간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을 확보한다. 이로써 교훈문학은 하나의 전문적 구분일뿐 그 작품의 가치를 폄하 하는 배타적용어가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다.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사건, 사실들의 변증법적관계를 가장  형상적이고 생동하게 보여줄수 있는 예술로는 문학밖에 없다. 그래서 문학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는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글의 예술이 된다. 참다운 문학은 옛말과 경험을 따르는데 있지 않고 자신의 시대와 경험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문학정신이다. 작가가 모순된 사회를 고발, 비판하는 자기반성과 함께 비정한 사회를 해학적으로 풍자, 비판하는 글은 음풍영월보다 독자들을 못견디게 감동시킨다. 민초들의 모순된 삶의 현장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조명하는 작업은 그래서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것은 세계를 조명함과 더불어 그것을 독자의 정감세계에 투사하는 작업이다. 작가와 독자의 묵결이 있기에 문학, 작가가 존재리유를 확보한다. 사회인으로서 독자와 함께 숨쉬는 작가는 사람 사는 세상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함으로써 자아를 실현하고 독자는 자아완성 진일보 다가서게 된다. 그래서 문학이 인간의 생명의 빛이 되고 가장 깊은 마음에서 피여나는 생명의 꽃이 되는게다.     물론 문학이 인류구원의 유력한 수단, 도구일수는 없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안내할수는 있다. 문학의 화원에서 독자들이 말로 형언할길 없는 위로와 힘을 얻는것은 부인할수 없다. 전통적 관념에서는 문학의 제일 기능을 쾌락보다 교훈에 두고 문학의 가치를 사회적효용성(현실적효용성)에서 찾는다. 교훈주의적 문학관이라고 힐난받을수 있는 현시대이지만 문학의 교훈성을 영원히 배제할수도 없는 일이다.      회고해보면 지난세기 80년대,90년대의 서구문학사조의 격류에 어덩덩해서 휘감겨들 때 의식, 무의식간에 문학이 가벼워지고 창작이 문자유희로 되여지면서 독자대 중들에게 소외당하게 된 인과관계를 우리는 자성해야 마땅하다. 본격적문학은 문학성, 예술성이 도외시하고 상업성을 내세운 책들에 의해 뒤로 밀리게 되였다. 시대를, 누 구를 원망할것도 없다. 자승자박에서 이미 예견된 자업자득이다.     루마니아태생의 작가 게오르규는 “문인이란 시대를 증언하고 어둠속에서 횃불을 밝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만큼 문학의 길은 어렵고 위험천만한 길이다. 그러나 문인은 이 길을 가야 할 사명을 버리려하지 않는다. 배는 바다위에 떠야 제구실하듯 작가는 오직 문학의 길에서만 자기의 존재리유를 확보할수 있다.     아무런 사상도 없이 무엇을 쓰고 싶으면 무엇을 쓰면서 인류가 몇천년의 문명건설에서 쌓아온 인류의 도덕, 륜리, 습속, 인성, 론리 등을  “무료한 설교”혹은 “정확한 쓸데없는 말” 로 치부하고 내버리는 이른바 현대파작가들의 작품은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가? 두서없이 횡설수설 내키는대로 엮어놓은 “령혼”이 부재한 작품들의 범람은 실로 문학의 비애일뿐이다.                                                                           2018년 2월 13일
899    (잡문) 작가의 량지 댓글:  조회:140  추천:0  2018-09-20
                                           작가의 량지                                              최 균 선       량지란 사람들에게 내재한 도덕판단과 도덕평가 체계로서 환경과 교육에 의거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구비되는 도덕의식과 도덕정감이다. 작가의 량지는 사회의 일원인 사람이면 공동히 가지고 있는 량지이면서도 이외에 예술량지와 사회량지가 구비 되여야 하는바 이것이 일반 사람과 한차원 높은 량지이다,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발을 붙이는것은 문학예술발전의 영원한 규률이고 동요될수 없는 준칙이다. 그러므로 문학으로서 인류생존의 침체, 타락, 부패, 퇴화, 기형적인 이화 등에 대하여 편달하고 질타해야 한다. 그러자면 순수한 마음과 성실한 태도로 문학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예술이 작가에게 부여한 량지이다. 사회량지는 예술량지의 외재저표현이라면 예술량지는 작가의 몸에서의 인격화이다.     작가의 사회적량지는 신분증처럼 작가 자신의 확인이다. 작가의 량지는 문학정신의 근원이며 문학정신은 되돌아와 작가의 량지를 체현힌다. 심오하게 생각할것도 없이 “량지(良知)” 란 바로 어떻게 해야 좋은것이고 어떻게 하면 나쁜것인가를 잘 아는것이다. 착함과 성실과 자률 등은 좋은것이고 가치로운것임을 아는것이 량지로서 량지가 있은 연후에 비로소 량호한 창작행위가 있게 된다.     문학창작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생명활동이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작가의 방종에 대한 변명으로 되였다. 창작을 일종 정신사업이라 할진대 작품은 사회에 향한 공공연한 납함이다. 아무도 알아들을수 없는 뇌까림으로는 독자들을 김화시킬수 없다. 작가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글을 짓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의 심목속에 작가로 존재할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기의 자유의지에 따라 글을 쓴다는것은 개인의 창조성으로서 작가적 존재의 리유이고 기초이다. 그가 명작가이든 무명작가이든 다른 사람들의 심목속에 작가라는 사실을 부인하려 하지 않을것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는 반드시 사회, 독자들의 어떤 질문에 대답할 사명을 지니고있다. 즉 원하든 원치않든 부여받은 사회적 작용이다. 세상을 향해 발언한다는것이 바로 작가의 존재리유이다.     자고로 인간사회에 고난과 눈물이 보편적이고 악세력은 아직도 그처럼 악랄하게 횡행하는데 작가로서 이런 현실에 눈을 감고 싱이탑속에서 간지러운 피리만 불어댄다면 이것은 문학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문학은 지혜로 모종의 조우와 생활경험을 증명하는데 그칠것이 아니라 작가내심에 있던 용기로써 존재의 불행과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파헤쳐야 량지가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 할것이다.     당전 우리 문학은 현실을 회피하는 자기 기편적인 모순을 안고 용속한 소비문화의 포로가 되였다. 20세기 80년대까지만도 작가들은 보편적으로 시대의 앞장에 섰고 문학은 사상의 선소리로 메아리쳤다. 그런데 90년대후 작가들은 주류무대에서 자진 퇴장하면서 오늘에 이르러서는 글쟁이군체로 되여버렸다. 작가가 사회상에서 중요한 각색을 맡던 시대는 이미 과거의 언덕에 묻혔지만 스스로를 추락시킨다는것은 자업자득으로서 작가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 독자들도 속상한 일이다.    오늘날 작가들은 민중이 관심하는것을 작가들이 관심하지 않으며 민중이 기뻐하는 일을 작가들이 기뻐하지 않는다. 민중은 다 꿰뚫어보고 있는데 작가들은 잘 모르고있다. 아닌게 아니라 갈수록 더 많은 작가들이 서재에 숨어들어 소용돌이치는 현실생활을 외면하고 민중의 고난을 도외시 하면서 가렵지도 않은 문제를 가지고 대서특필하면서 문자유희에 열중하다보니 작가가 반드시 납함해야 할 때는 결석한다.     따라서 작품들은 련속부절히 쏟아져 나오지만 보편적으로 정신취약성이 낳은 굴욕감으로 점철되여 있다. 많은 작가들의 량지가 혼탁해졌고 정신이 연약해졌기에 문학이 격정과 리상적경지를 상실하게 된것이다. 창백무력한 창작시대가 도래한것이다. 현실은 엄혹하건만 문단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스스로 즐기고 자족하고 끼리끼리 자축하는 이런 현상은 작가들의 비애만이 아니라 독자들의 비애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기 심령의 화원에 원예사이다. 맞다. 누구나 간섭할수 없는 정신왕국이다. 그러나 온 사회가 공유하게 되여먹은 문학의 존재리유는 오직 인간사회의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새로운것을 발굴해내는데 있다. 그러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괴테의 말처럼 용속해지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가? 자신의 골수에 슴배여 있는 작가적 사명감이 곧 그것이다. 그런 사명감을 지니고 붓대를 꼬나들고 생활의 소용돌 이속에 들어가 민중의 대변인 나아가서 나팔수가 되느냐 하는데 근본적 구별이 있는것이다. 자기가 가려고 작정한 길로 견정불이하게 나아가는것이 작가의 옳바른 자세이다.     작가의 량지에는 작가적 분노의 감정의 분출도 포함되여 있다. 작가의 격분이란 바로 현재 존재상황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고 일종의 거부와 현실의 모순을 조화시키려는 작업이다. 작가의 분노는 결코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리성사유를 거친 호소이다. 문학작품에 비판성과 리상적품격이 결여하면 그에서 파생된 문학은 기필고 연약한 문학, 용기를 상실한 문학이 될수밖에 없다.     리상적인 자유창작을 할수 없는 원인을 시대의 제약성에서 찾는것은 교묘한 핑게만은 아니다. 자유로운 창작의 “황금시대”는 그 어느때에도 없었다. 따라서 창작의 황금시대는 먼곳에 있는것도 아니며 미래에 있는것도 아니다. 진정한 문인으로 되지 못하는것은 개체의 비애이고 참된 문인을 용납하지 않는것은 시대의 비애이고 우리 문학인들의 가장 처절한 비극이다.     작가에게 가장 리상적인 정신가원이고 생존방식의 일종이던 문학이 곤궁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였다. 문학의 성당은 이미 “실락원” 이 되였다는것을 부인할수 없다. 작품과 생활과 독자 사이에 벽은 날로 높아지고 두터워지고 있기때문이다.     작가를 존중하라고 요청할수 없지만 문화발전에 헌신하려는 지성인들이 소박받게 된 금전만능의 현실이 개탄스럽지 않으랴, 작가군체에 절대 대부분 작가들은 업여작가들로서 문학을 경영하여 부자가 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작가들은 문학창작에 혼신을 불태운다. 왜? 문학은 일종 고상한 정취이고 일종의 책임이여 나아가서는 일종의 사명이기때문이다.     작가가 현실을 직시하고 발언할수 없다면 굴욕적인 현실의 노예로 될수밖에 없다. 작가들이 자신들이 처경에 분노할줄 모르고 항쟁의 립장을 상실하였디면 초롱속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로 될뿐이다. 허용범위내에서 동네가 부산하도록 왝왝 거리는 게사 니가 될수도 있고 숲속에서 전문 해충을 쫏아먹는 딱따구리도 될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현실은 현실이고 문학은 그저 문학일뿐이라고 하는데 문학정신을 외면하거나 포기한 글짓기는 모두 문학량지의 상실이다.     누가 뭐라든 정의는 영원히 사람들로 하여금 밝은 앞날을 향해 매진하도록 격려하며 정의의 힘은 인민대중의 량지와 각성속에 존재하면서 사악과 투쟁하는 길에 횃불로 타오를것임은 의심할바 없다. 물론 작가도 우선은 인간인만큼 비속한 생존자가 될수 있지만 비속한 작가로 되는것은 독자가 용납하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작가로 말할 때 량지는 창작의 기준이자 출발점이라고 하는것이다.                                    2018년 3월 20일
898    ( 잡문) 작가정신을 기리다 댓글:  조회:128  추천:0  2018-09-20
                                            작가정신을 기리다                                                      최 균 선       작가정신이란 총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작품에서 체현된 사상이고 개체적으로 말하면 한 작가의 특유한 주의, 주장이다. 한 사람의 도덕관, 가치관, 사회관, 세계관 등은 한순간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삶과 생애 전체와 련결되여 형성되듯 작가의식ㅡ정신도 그 형성과정이 있다. 작가의식은 작가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그가 인식하고 느끼고, 깨닫고, 사색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것들이 모여 형성되는것이므로 그 자신의 우주적 총체라고 해야 할것이다.      공익을 위한 정의를 신장시킴에서 작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 사회에 참여함으로써 현실감이 있고 생명력이 있는 글을 지어내고 생동한 인물형상을 부각해 낼수 있다. 사람은 각자 리해득실로 하여 색안경을 쓸수 있지만 작가의 시각은 편협하지도 않고 편향되지도 않은 광명정대한 시각이여야 한다. 우리 조선문학에서 이런 작가를 꼽으라면 우선 최서해를 추천하고싶다.     최서해는 일본의 식민지 수탈이 극대화해 가는 시기의 작가로서 비교적 성실하게 시대의 의미를 모색하였다. 그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행하였으며 그의 작가적 책임은 식민지적 현실―즉 궁핍한 현실에 대한 문제로 집약된다. 그가 다룬 이야기의 대부분이 가난, 기아였던것처럼 그의 소설세계는 모두 하층민, 소작민, 류랑민, 로동자의것이였다. 그의 작품은 모두가 절대 대부분의 조선사람들의 삶의 참상과 체험을 토대로 재현된것이여서 그 간결하고 직선적인 문체에 힘입어 한층 더 호소 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하다는 탓으로 초기의 인기를 지속하지 못하고 불우한 작가의 길을 헤쳐가다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가 신경향파의 대표적 작가이면서도 25년의 카프발족에 가담하지 않은것은 그의 “빈궁문학”이 어디까지나 목적의식적인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과 생리에서 우러나온 자연발생적인것이였음을 말해준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각편차이다. 괴테는 “눈물과 더불어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의 참다운 맛을 모른다”고 했다, 배부른 자가 어찌 배고픈자의 고통을 알며 납함하는 리유를 설명할수 있으랴,     작가 서해는 웨치고있다. “나는 이 세상 사람과 같이 그렇게 미적지근한 자극속에서 살고싶지 않다. 쓰라리면 오장이 찢기도록 기꺼우면 3백 64절골이 막 녹듯이 강렬한 자극속에서 살고싶다. 시퍼런 칼을 이 심장에 콱 박고 시뻘건 피를 확확 뿜으면서 종로 네거리를 이이저리 뛰고 뛰여서 온 거리를 이 피로 물들였으면 나는 퍽 통쾌하겠다. 나는 미친듯이 통쾌하겠다. ” 이런 처절한 고백은 그의 인간적인 개성, 심리적특질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되고저하는 작가적 정신의 납합이라 하겠다.     눈물에 젖지 않은 눈으로는 인간삶의 밑바닥을 들여다 볼수 없으며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으로는 정으로 보듬어주어야 할 사람들의 고충을 알수도 없다. 작가 최서해의 정신세계에 일관하고 있는것은 빈궁과 박해속에서 무한한 고통을 겪는 근로인민들에 대한 동정과 지지,불합리한 사회제도에서의 분노와 규탄,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증오와 투쟁정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빼앗긴 생활의 권리를 찾아내려는 높은 인도주의정신이다. 이로써 최서해의 작가적정신의 핵은 저항적, 민족주의적, 사실적, 현실고발이다.     문학은 시대가 나아가는 앞길을 비춰주는 홰불이고 그 시대 삶의 현장과 인간상, 정서의 뉴앙스를 비추는 거울로서 인간의 정신세계의 구축을 도모한다. 저 낮고 낮아 보이는 일상의 삶을 문학사랑을 지닌 가슴으로 체험하고 그래서 세상에 알리고 사람들에게 나갈 길을 잡아주는게 문학이다. 문학사랑이 아니고는 폭넓은 삶의 현장 을 체험할 길이 없다. 우리는 찰스 디킨스의《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19세기 영국의 빈민가의 그 험악한 삶의 양상을 알수 있었고 현진건의 “빈처”를 읽고 지금은 흘러가버린 시대의 지식인의 삶이며 그리고 지금도 도처에서 재연되는 부부생활의 한 바람직한 단면을 련상할수 있다.     중외고금의 대문호들은 시대의 선지선각자들이였으며 그들이 쓴 글은 나라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았다. 괴테는 유럽변방의 언어였던 독일어를 세계어로 진입시켰으며 볼테르나 루소는 프랑스에 민주화를 이루었다. 레브 똘스또이와 뚜르게네브는 로씨아의 농노들이 자유를 찾게 했다. 그리고 미국의 스토우 부인은 엉클 톰스 캐빈을 통해 노예해방의 위업을 이루어냈으며 존스타인백은 분노의 포도를 통해 19세기초 미국에서 불황을 벗어날수 있게 했다.     작가의 눈길은 그냥 서리발치는 칼날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심하게 스쳐 지난 꽃을 보고 감동는것, 그 자체가 작가적인 가슴에 새겨진 작가정신이다. 눈을 들어 광막하고 고요하고 신비한 우주를 보고 허리굽혀 땅위에 무성한 수림과 풀숲을 본다. 그렇게 아름답고 온전한것을, 언젠가 거미줄에 얽힐 나비한마리에도 정을 가지고 보고 곧 시들어갈 꽃잎에도 무심하지 않다. 이처럼 아주 미미한것에까지 감동어린 눈길로 보는것이 작가의 시각이자 마음이다. 이렇게 작은것에서도 감동되는 마음이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문학정신이다.     작가의 마음은 고요한 련못이거나 목가적인 초원에 호수만은 아니다. 때로는 그 속에 살고있는 무서운 괴물도 보아내고 비리한 바람에 엄청난 격랑을 일굴수도 있다. 당대 시대의 다종다양한 삶의 양태를 문학이라는 화폭에 담으려면 객관현실과 시공을 넘어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예술품을 만들어내야 문학예술을 흔상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진리를 알려주고 감동을 줄수 있다     식물학자는 가시밭 엉겅퀴이거나 이름모를 들풀이거나를 막론하고 장미꽃처럼 소중하게 다룬다. 그 가시나무에 찔려서 피가 나도 나무라지 않는다. 오직 그 식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분명하게 분석하여 철저하게 파악하려는 일념이 앞설뿐이다. 그러기에 문학에서도 삼라만상의 모든 줄기와 뿌리를 인간과 아름답게 련관시켜야 철학과 력사가 깃든 깊이 있고 차원 높고 생명력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해낼수 있다. 그것이 곧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까지 충실히 감당해 가는것이다. 거기에 저자의 인품과 인격과 능력이 반영되여 작품으로서 생명의 빛을 발산한다.     병든 꿀벌은 좋은 꿀을 만들수 없다. 문학도 작가의 인격이 훌륭할수록 진실한 예술경지를 펼쳐보일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글은 글이 아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지 않는 글은 글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것을 밉다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는 시는 시라고 할수 없다고 말했다. (不愛君憂國非詩也,不傷時憤俗非詩也,非有美刺勤徵之羲非詩也). 낡은 레코드에서 나오는 소 리로 여기고 우습게 흘려버릴수 있을것인가? 아니라면 설득력있는 답을 내놓으라.     좋은 작품은 시공을 뛰여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터전이 얼마나 소중하고 영원한가를 보여준다. 천년이 지나도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사랑문학으로 기록될 리도령과 춘향의 사랑이야기는 쉐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에트”이나 “햄리트”, “오셀로” 등 처럼 영원히 살아남을것이다. 한때 잘 팔리다가 시간과 함께 잊혀진 작품들은 문학사랑, 인간사랑으로가 아니라 자기 감각의 충족을 앞세우고 쓴 오락품들이다. 영원히 살아남을수 있는 예술성이 깃든 본격 문학만이 진정 세월과 더불어 사람들의 사랑속에서 영생할것이다.                                                                         2018.2.18
897    ( 칼럼)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댓글:  조회:198  추천:0  2018-09-20
      왜 기어이 “북한”이고 “주민”이 되냐?                                          진 언       한국에서 애용되고 있는 어떤 개념들은 얼토당토 않다. “얼토당토”란 “얼하지도 당(当)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쉬운 실례로 “북한과 북한주민”이라는 개념이 얼토당토 않다. 일컬어 “북한”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를 사람은 없으되 묻거니와 “한국”이 언제 분단되여 “북한” “남한”이 되였는가? 누가 똑 부러지게 날자, 원인을 말할수 있을가? 하긴 일제에 통채로 먹혀버린 소위 “대한제국”을 기점으로, 혹은 “상해 망명정부”를 근거로 조선반도가 한반도로 지칭되면서 북한으로 칭하는것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극구 부정해도 조선은 엄연히 주권국가로 존재해 있지 않는가?     생떼질은 존재가 리유라는 진리를 마멸할수 없다. 이미 확고하게 존재하는 조선을 시종 “반국가단체”로 치부하고 싶던들 뜻대로 되였던가? 그게 옳다면 국가도 아닌것을 성원국으로 받아들인 유엔은 뭐가 되는가? 그렇게 앙앙불락이시면 왜 “반국가단체”를 유엔에 받아들였는가고 발을 구르고 침을 튕기며 고래고래 호통쳐야 명정언순(名正言順)이 되지 않겠냐?     일언이페지하고, 조선인민도 왜 한사코 “북한주민”으로 호칭돼야 하냐? 주민이란 뭐냐? “일정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다. 《현대조선말사전》의 해석과 똑같다. 하건만 조선이 한국의 일부인 “북한”이여야 하고 그 나라의 인민은 기어코 “주민”으로 지칭되여야 한다는데 그저 엉터리도 못된다.     “북한주민”이라는 부르는 그 저의는? 물으나마나 우문인데 그 호칭이 론리적으로 맞기나 한가? 어떤 고명한 이가 가라사대 “억압과 통제속에서 살고있는 북녘 동포를 '북한 주민' 또는 '북한 거주민' 으로 칭합니다.”라고 하는데 론점도 못된다. 론점이 론점이 아니면 설득력있는 론거를 들이댈수 없다     조선이라는 국명을 가지고 제 나라 땅에서 사는 사람들인데 한국 국민인양 지칭하는것은 너무 맹랑하다. 36년간 일제치하에 있다가 겨우 광복을 맞은 조선반도가 뒤미처 렬강들에 의해 분단된후 제 나름대로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 조선이 아닌가? “대한민국”이 갈라져 “북한”이란 생긴게 아님을 잘 알면서도 눈감고 야옹 하긴가?      욕심은 정서의 일종이지 객관적 판단이 아니다. 물론 광의적의미에서의 주민이란 호칭도 전혀 의미불통인것은 아니지만 이 지구촌에 억압과 통제속에 살고있는 수많은 나라 사람들은 그 나라 국민 혹은 인민이 아니고 주민이 되는가? 역지사지로 조선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남조선주민이라 지칭한다면 곧 엎음갚음이 되는건가?     아주 고명한 어떤 제씨가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인민'이라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사전적 정의상 인민은 '법률을 구성하고 있는 자연인' 또는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로 정의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인민이란 그 사전적 정의를 살리지 못한, 단순 포괄 개념으로 통하는 '호칭 수준'에 머무 르는게 현실입니다.”라고 하는데 묻거니와 그래 조선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률적 제약속에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근거를 댈수 있는가? 분명 딱 부러지게 근거를 대지 못하고 심증만 횡설수설할것이다.         “그들은 철학적 의미의 '자연인' 즉, 태어날 때부터 사회를 구성할 권리를 가진 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단순한 구성원 개념이지요. 일당 독재체제 아래서 인민이란 개념은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인민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렇게 통용 될수 없다는 뜻입니다.” 넋나간 년이 횡설수설하다가 제 혀를 씹고만다더니 닮은 꼴이라 할가부다.     “본래 인민이란 단어는 국민과 시민을 포괄하는 민주적이면서도 원초적인 단어입니다. 권리의식을 가진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이지요. 때문에 더 좋은 단어를 북한에게 뺏겼다는 소리도 나오는 것이지요. 가령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북한에서 널리 통용되기에 우린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을 잘 쓰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자아팽창에 량지도 말아먹는데 유치해도 한참 유치하다. 옆구리터진 도토리의 키재기인가? 심통이 어떻게 뒤탈려 있든간에 정상적인 사유인이라면 모든 문제는 상대적으로 분석하고 존재하는 실체를 객관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북한 사회는 우리나라가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헌법 조항처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개념에 상당히 벗어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이다. 그래, 조선이란 나라의 사회를 한국헌법을 기준으로 판정해야 한다는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제 생각이면 다 진리인가?     인민은 계급적 정의로서 적과 상대되는 개념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인민, 국민은 부동한 개념이다. 비록 그것들이 일정한 사회관계 와 한 국가에서 사람들의 지위를 반영하고 있지만 말이다. 또한 인민은 정치개념으로서 일정한 계급내용과 력사내용을 함유하고있다. 인민은 집합개념이나 아무나 인민이라고 칭할수 없다. 이처럼 “인민” 은 “국민”과 동등한것이 아니다.     “인민”과 “국민”은 한글자 차이지만 단어의 의미, 정치리념, 국가의의상에서 완전히 달리 표현된다. 인민은 중성(中性)이지만 국민은 성격성이 내포된다. 즉 백성 민(民)에 “국가성”을 부여한것이다. 허다한 정황하에서 “국민”과 “신민(臣民)”은 같거나 비슷한 함의를 가졌였는바 이런 의미상 “국민”이란 개념은 “군신(君臣)” 관계를 반영하기도 하였다. “대한제국”시절에도 인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고 당시 아나운서가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중국의 중화민국 시절이라던가 공산주의를 혐오했던 장개석이나 김구같은 사람도 인민이라는 단어는 잘 썼다고 한다. 적어도 그들이 활동하던 시대에서는 리념색채가 없는 표현이였던것이다. 이런 고증으로 봐도 절대 인민이라는 용어가 흔히 말하고 있는 조선및 공산권 사회주의국가들에서만 쓰이던 개념이 아니란것이 실증된것이다. 그런데도 웬 감정 앞세우기의 오판 혹은 무지를 고집할가?     한걸음 물러서서“인민”은 그 어떠한 정치리념상, 국적상의 구분없이 상호간에 위계가 없는 자연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인식할 때 우리 조선말과 글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아예 삭제해버릴수 있을건가? 오히려 인문학, 사회과학, 무엇보다 특히 정치학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구별하는 경우, 자연인의 뉘앙스를 강조할 때는 국민이나 시민보다는 인민이라는 개념이 더 잘 사용된다. 정확히 말하면 인민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고 국민은 특수성을 가미한 개념이다.     문제는 조선이라는 국호에 반감을 가지고 “인민”마저 거부하는데 세계에서 쓰는 보편적인 개념을 단지 적대편이라는 리유로 부정하는것은 곧 취약성의 표백이다. 인민이란 단어가 정치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는데도 그냥 “나몰라!”이면 “곤란”하다. 랭전시대, 독일도 서독국민, 동독인민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그로써 통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국민” 이라는 개념에는 력사적인 그림자가 비껴있다. 그쯤해서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랭정하게 생각해 보는개 현명하지 않을가? 세계에 “북한”이라는 국명은 없으니 말이다. 언어의 한계는 인식의 한계이다.  대결보다 민족융합의 아량을 좀 가져보삼.                                             2017년 12월 20일
896    (잡감) 숙명인가? 비애로다 댓글:  조회:128  추천:0  2018-09-14
                                      숙명인가? 비애로다                                                    진 언     대저 어용문인이라면 제왕들이 거두어주면서 오로지 송가를 부를줄밖에 모르는 무료한 문인을 가리켰는데 현재에는 세력이 있는 집단이나 권력자에게 붙어서 감언리설을 늘여놓으며 당나발을 부는 문인을 비유하고있다. 자고로 어용문인이라면 초부도 질시하였는바 중국어에는 이에 관한 헐후어(歇后语)가 많다.     례하면 언덕에서 사람이 물에 빠지는것을 구경하다(岸上看人溺水), 여든살 늙은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다 (八十岁老人进幼儿园), 백골정이 사람의 말을 하다 (白骨精 说人话), 백리가 되는 공로에 굽이돌이가 필요없다(百里长的公路不用拐弯), 백세로 인이 생일을 쇠다 (百岁老人过生日), 백살로옹이 무도를 배우다 (百岁老人学跳舞), 죽은사람을 업고 강을 건너다(背死人过河), 사람을 핍박하여 바다에 뛰여들게 하다 (逼人跳海), 멜대를 땔나무로 한다(扁担做桨用)등등.     문인이 사람구실을 하는데 최저선은 독립인격과 독립적사고를 하는것으로서 그리되지 못하면 사람으로 되는 조건마저 잃는다. 기실 어용문인노릇을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지엄한 페하가 어느 때 무엇에 입맛이 있어하는지, 어떻게 그의 구미를 맞출지, 바로 그런 어려움때문에 어용문인들속에 평생 제왕의 총애를 받은자가 극히 희소한것이다. 토사구팽이여서인가? 한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황당하던 그 년대, “삼가촌”이요 “연산야화”요 하면서 “잡귀신”들을 성토할 때 그럴쯤으로 믿으면서도 몰래 어떤 경의감도 가지였던 문인 오함(吴晗)도 좋은 끝장을 보지 못하고 후날 일대의 “어용문인”으로 락인찍힐줄이야 촌구석농부가 어찌 생각이나 해봤겠는가? 오함은 개괄해서 말하면 이름짜한 사학가였는데 오늘날 알고보니 그는 일생동안 네개의 큰과오를 범한 사람이였다.     우선 1953년, 북경에서 패루(牌楼)를 허물어버리려고 의론이 무르익고 있을 때 고전건축물들을 마구 헐어버리는 악풍이 온 시내에 불어쳤는데 오함이 앞장섰던것이다. 두번째 과오는 정풍, 반우파운동에서 급선봉으로 나선 영웅이 된것이다. 세번째는 그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여 명나라 13릉의 정릉(定陵)을 발굴한것이다. 네번째는 그의 유명한“해서파직(海瑞罢官)”이였다. 대단한 학자로서 중용을 지켰더라면 그렇게 처참하게 되지 않았을것을, 누가든 다 그랬을수 있지만 결국 줄을 잘못선것이다.     1969년 10월 10일, 먹물을 풀어놓은듯 캄캄한 밤, 살을 에일듯한 음산한 바람이 불어치는 경성의 모감옥에서 저승길에 오른 오함은 생사의 계선에서 모대기다가 향년 75세에 불명예스럽게 인간세상을 떠났다. 그는 청화대학 력사계 졸업생으로서 명조력사의 전문가였다. 그는《주원장전》,《등하집,》《오함문집입》,《오함잡 문집》,《해서파직》등 100여종의 저작을 펴냈다. 그런 혁혁한 문인이 어용문인으로 인생패필을 쓴것은 문인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묵존(墨存)선생은 몇십년후에 비효통(费孝通)선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우파시기 다른 사람과 유별나게 인정사정 없었다는것을 기억하고 있소?” 아닌게 아니라 오함은 1957년 7월 7일, 전국제1기인대 4차회의에서 “나는 분노한다. 나는 공소한 다”는 장편보고를 하였는데 “라장련맹(라륭기(罗隆基) 장백균(章伯钧)”을 엄정하기 그지없이 토벌하였다. 그는 마지막에 “그들 무리는 인민의 흉악한 적들이다!”라고 성토하여 오래동안의 박수갈채를 받았단다. 아마 몹시 득의양양했을것이다. 저명한 학자 라륭기는 1965년에 원혼이 되였고 애국민주인사 장백균은 1969년도 우파모자를 쓰고 불귀객이 되였다. 절마다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있다더니…     오함이《해서를 론함(论海瑞)》발표한후 경극배우 마련량(马连良)이 희곡으로 개편할것을 요청했다. 오함은 일년동안 일심불란으로 극본을 완성하였는데 유명하게 된 “해서파직” 이였다. 연극을 본 최고권위자는 마련량을 집에 청하여 밥을 먹으면서 극이 잘되였다고 극구칭찬하였다. 권위자의 칭찬속에 더없이 도취된 오함은 그의 불운이 이 극본으로부터 시작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성세호대한 문혁의 서막이 열리자 오함은 곧 계하수가 되였다. 마연량도 투쟁받으며 시달리다 집까지 발칵 뒤집히고나서 자살하였다. 오함은 필생을 걸고 령수에 충성하였지만 나중에 옥중원혼이 되고말았다. 그가 정치상에서는 미로에 들어섰어도 량심 하나만은 지켰다고 평가하지만 “어용문인”의 감투는 벗지 못하고있다.     어용문인들이 어찌어찌하여 권력의 그늘속에 들어섰지만 부림당하고 대변자가 되여지고 야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인격도 걸레로 만들어버리고 생각과 사상이 빈혈증에 걸리여 제도권에 기생충이 될수밖에 없었다. 책은 책자체의 용도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도권은 언론인들의 언론의 의미와 가치, 용도를 가르쳐주지 않고 오직 무책임하게 리용하였을뿐이다. 이류의 언론보다 오히려 술판에서 민초들이 담론하는 천하만사속에 사회현실이 시사되고있다.     5천년 도도히 흐른 중국력사의 장하에서 조대가 바뀌려는 때에는 필경 부패무능한 군주가 충신들을 피눈물을 흘리게 한 대신 태감들이 권력봉을 휘둘러 백성들을 도탄속에 몰아넣고 나중에 자멸한 사실을 력사가 증명하고있다.례하면 진나라 2세때에 조고가 지록위마라는 지경에 이르도록 권력을 희롱하다가 마침내 진2세를 죽임으로써 천하대란을 자초한 사실, 동한말년“십상시(十常侍)”가 권력을 잡으면서 동탁이 입경하여 횡포무도를 일삼다가 려포에게 죽임당한 사실, 당조말년 태감들의 전횡으로 백여년의 재난이 있었던 사실 등등이다.     몇천년의 봉건사회에서 무치한 어용문인들은 일컬어 천명(天命)과 하늘의 뜻 (天意) 왕도락토라는 황당한 궤론을 만들어냈다. 가장 무치하게 흑백을 뒤섞은것은 백성을 마치 “국가”가 기르는 동물로 만들어버린것으로서 력래로 어느 봉건통치자도 백성들이 자기를 양육한다고 말한적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청조의 력사를 다시 쓰면서 원래의 사료와 어긋나는 일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력사는 고칠수 없는 줄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그 많은 사람들이 피곤한줄 모르고 열정을 불태웠을가? 한마디로 권력과 리익, 일세영달이 그들로 하여금 일사불란하게 만든것이다.     만약 한 개인이 어떻게 후안무치하고 어떻게 량심을 팔아먹든지 그 개인의 일로서 사회적 위해는 별로 없다. 그러나 높은 로임과 우혜대우를 받으면서 모집단을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고 흑백을 뒤섞고 시비를 전도하면서 가상을 꾸며서 민중을 기편하여 리익집단만 위하는 일은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례컨대 한국내에서 보수어용언론의 특징을“거두절미”,“침소봉대”, “아전인수”, “룡두사미”, “부화뢰동”이라고 개괄하고있다. 이것은 어용언론들의 위기감을 폭로한것이다. 그리하여 “그럴듯한 기사”와 “있을것같은 기사”, 그리고 아예 “거짓말 기사”들만 약장사들의 헛소리처럼 판을치고 민중들도 점차 그 “보도행태”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지성인들은 대성질호하고있다.     “국내적으로라도 공정해야 할 매체들이 기득권자들의 리해득실때문에 편파적인 보도만 하고 있고 이와같은 상황에서 신문, 방송, 등 전파매체 (저널리즘)의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고있다”는 지적이 날카로운데 그새장새이다. 자원했든 핍박에 의해서였든 어용문인이 되여야 할 숙명이라면 참으로 애재(哀哉)가 아닐수 없다.                                                        2013년 8월 10일
895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댓글:  조회:249  추천:0  2018-09-03
  (잡문)                         엉터리들을 엉터리로 론함                                                       진 언       “엉터리”란 리치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말이나 행동 또는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겉으로 보기보다 내용이 빈약해 실속이 없는것을 이르는 말이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을 통털어 엉터리라고 말할수는 없으되 인간세상에 엉터리가 비일비재하는것은 사실이렸다,      가까운 실례로 세인들이 절치부심하는 가짜, 저질상품이 바로 엉터리의 걸작들이고 전 지구적으로 골머리를 앓게 된 가짜뉴스, 언론조작도 엉터리수작이며 엉터리를 용납할수 없는 학술연구에서도 표절론문 등도 역시 빈충맞은 엉터리들이다. 이처럼 천차만별의 인간들속에도 엉터리쓰는 인간들이 많고 그런 엉터리능수들은 무슨 일에서나 솜씨를 펼수 있다. 항간에서 일컬어 “쫜쟈(砖家)” 라고 호칭하는 어떤 정영들의 천하기담들을 흔상해 보면 론거들이 나올것이다.     례1. “8억농민과 정리실업자들은 중국의 거대한 재부이다. 그들의 수고로움이 없다면 소수의 향락이 있을수 있겠는가? 그들의 존재와 현재상태를 유지하는것은 매우 필요하다. 중국의 빈부의 격차는 아직 크지 않다. 중국에는 가난뱅이들이 없다. 응당 대기부자라고 칭할수 있다. 중국에 가난한 사람들이 왜 가난한가? 그들 모두가 잘 사는 사람을 미워하는 심리가 있기때문이다. ㅡ경제학가 려이녕(厉以宁)     례2.“중국에 목전 가난한 사람들이 왜 대학에 갈수 없는가? 그것은  학잡비가 너무 적기때문이다.” ㅡ경제학자 장유영(张维迎)     례3. “시민들에게서 마땅히 20원의 호흡비를 받아내야 한다.”ㅡ중국과학원원사 장유서(蒋有绪)     례4. “거리에 자동차들이 막혀 지체되는것은 바로 성시의 번영을 표지한다. 수재는 수요를 자극하여 증장을 이끈다. 단지 물로만으로도 몇백만채의 집을 휩쓸어 버릴수 있는바 수재는 중국을 이끄는것이다.” ㅡ북경대학부교장 류위(刘伟)     례5. “쩍하면 신소하려 다니는 전업호들은 내가 책임지고 말하는바 100%는 아니여도 99%이상이 정신상 문제가 있다. 즉 편집형정신장애자들이다.” 북경대학사법 감정실주임 손동동(孙东东)     례6. “높은 집값은 가히 중국인구증장과 인구소질을 공제할수 있다. 중국에는 방노(房奴)가 없다.”ㅡ임지강(任志强)     례7. “렴가주택에는 마땅히 위생실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돈이 있는 사람들이 사지 않는다.” ㅡ저명한 경제학가 모우식(茅于轼)     례8. “부동산거품이란 없다. 왜냐하면 리혼한자, 첩을 둔자 모두가 집을 수요하며 미혼동거도 집구매수요를 자극한다.”ㅡ북경사범대학의 부동산연구중심주임  례9. “가서 현장조사를 하지 않아도 나는 그곳의 정황을 잘 안다. 왜냐하면 나는 전문가이기때문이다.” 문천지진 때 타지방에 재건에 관하여 한 말: 중국사회과학원 수리부성도산지재해와 환경연구소연구원 장신보(张信宝)     례10. “중국에 탄광에서 죽는 사람이 생기는것을 피면할수 없는 근본원인은 중국사람들이 너무 빈궁하기때문이다. 누가 너더러 불행하게 중국에서 태여나라 하던가?” ㅡ중국과학원원사 하작휴(何祚庥)의 말:     례11. “중국과학원조사보고서에서 지적한바와같이 농민들의 행복지수는 성시거민들보다 높다(비록 고향을 등지고 떠나고 가족과 아이를 버렸지만 말이다.”ㅡ중국 사회과학원 사회학소사회발전실주임 리위(李炜)  례12. “나는 나의 언론이 능히 국가의 개혁방향을 개변시키기를 희망하다.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비단 나 개인의 실패일뿐만아니라 우리 나라의 실패이다. 나는 위대한 사상가이다. 이번에 꼭 성공할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중국사회에 크나큰 위해 를 가져다줄것이다.  ” 국무원발전연구중심연구원 오경련(吴敬琏)     상술한바와 같이 천하기담들이 잡다하니 이만 접어두고, 끝으로 문천지진후에 있은 산동성작가협회 부주석 왕조산(王兆山)의 기담을 보자.“지진이 꼭 나쁜일만은 아 니다. 비유하건대 작년 민현지진후 지은 집들이 얼마나 멋진가”라고 하였고 (天灾难 避死何诉,主席唤,总理呼,党疼国爱,声声入废墟。十三亿人共一哭,纵做鬼,也幸福)라는 시를 지어 전국 네티즌들의 지대한 분노를 샀다. 작가를 일러 인류령혼의 기사 라고 한다. 그런데 왕주석씨는 노복의 가련상을 짓고 칭송시랍시고 지었지만 작가의 량심을 제쳐놓고 최저의 인성마저 말아먹은 대문호라 해야 할가,     중국에는 확실히 명실상부한 전문가들도 많고 많은 그만큼 위전문가, 심하게 말하면 엉터리 “전문가”들도 많고 많다. 이 몇년래 각종 매체상에 등장하여 기담괴론을 설파하는데 입만 벌리면 자신이 무슨 교수요, 고문이요 심지어 대가라고 자칭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것은 이런 경세지언에 상식마저 결핍하다는것이다. 이는 전문가들의 비애이고 중국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그 근원을 캐보면 역시 문화풍토에 뿌리를 박고있다는것을 발견할수 있다.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관본위(官本位文化)”풍토이다. 중국에서는 상급이 말하면 반드시 명언이 되고 의심할바없는 진리로 되고있다. 이 한 문제에 아무리 한다하는 전문가들이라도 반박할 여지가 없을것이다. 무슨 회의에서나 개회사에서 언필칭 “各位领导!” 이고 그만큼 맨 앞줄에는 정말 령도분들이 턱하니 앉아계신다.     필수적인 문화지식이 없어도 모두 풍부한체 하는데 중국의 관본위아래 “…체하는 문화”가 당연시되고있는것이다. 광대한 인민군중을 바보로, 순복공구로 치부하던 시대는 영원히 력사의 락엽속에 묻혀버렸다. 청컨대 위대한 “전문가”들은 지금은 인터넷시대이므로 “일언중천금”이 일단 발설되면 뉘집 안방에나 다 전달된다는것을 명심하시고 발언에 근신해야 할것이다. 무어나 다 아는체 하다가 빈구석이 드러나면 여러사람들을 웃길것이니 말이다.     하기사 혼돈의 인간세상에는 자고로 절대적인것이 없고 사이비하다. 가령 강자가 약자심리를 악용하여 억지로 내리먹인다면 사각형이 사실은 원이라는것을 증명하는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결국 사각형과 원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들은 단지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개념이라는것은 외곡되고 매몰된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 찍어낼수 있는것이다. 약자들의 리성적판단은 그 판단이 용허하는 범위내의 진실을 추구하지만 결과는 늘 참담하다. 비상식이 상식으로 공유되기때문이다.     기원전에도 세상은 바르게 운행되지 않고 한쪽으로 비뚤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2천여년 세월이 흘러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였으니 고대인들보다 더 잘 알것은 자명하다. 인간사회의 가장 큰문제는 진짜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위선과 허위에 있다. 자기 눈으로 보고 두손으로 확인해보았다 하더라도 착각이 아니라는것을 담보할 사람이 몇이나 될가?     그런데도 세상이 사이비하지 않기를 바란다는것은 승냥이가 양으로 진화되기를 바라는 격이다. 아니면 어찌할것인가? 약세군체가 한사코 부정하고 타매하던들 물도 길어올리지 못하는 무모한 헛드레질이 될 뿐이다. 약자들이 사이비하다고, 너무 불공평하다고 소리소리 고함치던들 흑백이 전도되는 괴리가 변할가? 알수 없도다.                                           2016년 1월 23일
894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댓글:  조회:262  추천:0  2018-08-24
                                                  자기 부정이 기꺼운 일인가?                                                               최 균 선       지난해 또 조선말띄여쓰기 새 규범이 발간되였다. 2007년 12월에 출판발행된《조선말띄여쓰기》해설이 10년만에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그래서 또 혼란이 조성되였다. 묻거니와 새 규범의 제정은 시대발전의 소산인가? 필자의 고집으로는 아니다. “남”을 따라하기는 학술적연구라 할것도 없이 그냥 급공근리적인, 실용주의적인 추구일뿐이다. 답습도 현재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서 전혀 새로울것도 없이 반세기도 훨씬 지난것에 매료되였다면 비생산적이요 되돌아 걷기가 아닐수 없다.     우리가 쓰고있는 중국조선어는 조선민족의 언어임과 동시에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의 언어이다. 조선어는 조선민족의 언어를 모체로 하고 있기에 공통성이 있음과 동시에 중국조선족의 언어로서의 특수성도 체현하고있다. 만약 자체의 특수성을 외면하거나 스스로 버린다면 언어사용의 실체를 탈리하게 되고 답습으로 자기를 부정한것이다. 자기부정은 주체성의 상실, 내지는 포기이다. 물론 나름대로 근거를 내세우지만 설득력이 없다. 과거에로의 회귀에 무슨 창신성이 존재할가. 언어가 발전하니까 띄여쓰기랑 가변적일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그저 맞춤법에 속하는 변화가 아니라 곧 민족문화발전의 자주성에 소급되는 중대차한 문제로 승화된다.     하긴 십여년전부터 조선문 간행물에서나 문필사업자, 초고중학생들속에서 한국의 맞춤범을 선호하여 성문화된 중국조선어규범을 무시해버렸다. 무슨 마력에 끌려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구촌 전체 조선민족의 통일된 맞춤법이 나오지 않은 이상 정부차원에서, 학술차원에서 규정하고 사용해 온 자신의 언어규범을 무시하였으니 제혀를 씹는격이 아닌가? 더 심하게 말하면 누워서 침뱉기가 아닌가?     문장들에서 나타나는 저마끔의 표기방식을 볼 때 어느것을 기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제 기분으로 쓰는 글이지만 맞춤법만큼은 나름대로 가동할수 없다.  당초, 경제,문화가 발전했기에《한국서사어규범》에 기준하는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고 질서재조직의 격변기에 기준문제를 거론하는것은 고루한 관념이라 반기를 들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자기부정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며 더우기 광채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이지 그 누구들이 아니다. 즉 중국조선민족이지 한국인이 아니기에 민족언어정책의 혜택아래 규정,완선화하여 가는 우리 서사규범을 무시하는것은 제좋아서 한 자기부정이라도 지극히 불명예스러운 작동이다.     젖이 나오는 모든 녀자가 다 엄마일수 없고 젖이라해서 다 참젖은 아니듯이 잘사는 나라의것은 다 정확하고 무조건 따라야 할 리유가 없다. 세인이 다 알다싶이 한국어와 조선어는 동질언어인데 리념의 분기로 제각기 사용해오면서 대동소이한 차이를 낳게 되였고 갈수록 그 차이가 커지고 있지만도 우리 말, 우리 글이 본질적으로 달라진것은 없으며 또 달라지자고 해도 달라질수도 없는것이다.     한국에서 여자라고 하는것이 좋다해도 우리식으로 녀자라 써도 소통이 막힐 일이 없고 띄여쓰기도 량자의 규칙을 아는 이상 어느것이 선진적이고 어느것이 락후한것이라고 판정할수 없다. 지난세기 50년대 우리도 지금의 한국어처럼 단어를 규준으로 띄여 썼더랬다. 그후 왜 그때의것을 버리고 새롭게 규범화하려고 로심초사했는가? 원래의것에 어떤 결함이 있거나 실용적이 못되여서 그런게 아니였던가?     한국어 띄여쓰기를 따른다면 조선민족 언어문자사업위원회라든가 조선어사정위원회에서 해놓은 사업은 도루묵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기구들의 사업실적이 아니라 한국식표기를 본딴다해서 조선어가 획기적이고 세기적인 혁신이라도 되는가이다. 물론 동족, 동질의 언어문자이기에《초ㅡ한계선》을 그을수 없는 상황이나 모든것은 변화한다. 그러나 장차 어떻게 변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전민족이 수용하고 수용해야 할 통일조선어(한국어?)가 어느것으로 결판날지 누가 알고 있는가? 그것이 필연적으로 한국어가 되여야 한다는 법이 없고 또 꼭 그렇게 된다고 장담할수 없다. 바람직한 변화발전과정이라도 우리식으로 살면서 글도 우리식으로 쓰고 말도 우리식으로 하면서 살아야 명실공히 중국조선족답다고 할것이다. 우리가 백프로 한국화 한다해도 필경 한국민이 되는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렇게 될수 없는 일이다.     우리 중국조선족 언어학자들이 알심들여 자기 언어규범을 만들고 수정, 보완해 왔는데 왜 가급적으로 한국어규범을 기준삼아야 하는가? 기어코 기준이 되여야 한다면 그게 생산적인가? 미래지향적인가? 한국에서 문필활동을 하는 사람들로 말할 때 산에 가면 그 산에 맞는 노래를 부르라는 말처럼 한국식 서사규범을 따라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문필사업의 대상은 중국조선족이다.     바람따라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이라면 별 볼일 없다. 학생들이 중국조선족 언어규범화에 근거하여 편집출판한 교과서를 배우면서도 서사에서는 멋대로라면 그게 바람직한것일가? 어떤 학생들의 작문을 보면 완전 한국식 맞춤법, 띄여쓰기도 아니고 혼탕이였다. 한국식 띄여쓰기가 못배워낼만큼 신비로운것은 아니다, 몇가지 간단한 규정만 외우면 곧 구사할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긁어부스럼이다.     자기의 언어규범을 지키는 문제는 결코 제쓰던 몽당비자루가 좋다는 그런 고루한 가치취향이 아니다. 민족군체의 문화적주체성문제이다. 그런데 한국식표기법, 띄여쓰기가 우리 민족의 서사생활에 기준으로 삼는다면 중국조선어가 볼장을 다 보았다는건가? 우리식도 아니고 한국식도 아닌 접목식의 띄여쓰기 규범이 장구할것인가?     한국과 조선의 맞춤법 차이는 말과 글에서의 다른 모든 차이와 같이 비단 한국과 조선 자체내에서만 문제거리로 되는것이 아니라 그것을 옮겨쓰는 다른 모든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거리로 되는것이므로 그의 전일적인 규범화는 국제적의의를 가질수밖에 없다. 본래 허리가 동강난 국토에서 리념과 국격을 내세우는 바람에 동질어마저 만신창이 되여진것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조선과 한국의 현행규정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으면서도 다른 점도 있다. 이것은 중국조선어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한때 조선식으로 써오다가 후에 주체성을 살리려 애써왔다. 한국에서처럼 띄여쓰기를 하고 문장부호도 한국에서처럼 쓴다면 좋은점도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새 규범이 나오기 썩 이전의 서적들을 읽을 때 그전에 규범화가 락후하였다고 생각하게 될가?     맞춤법의 규정이란 무슨 진리성적인 근거로부터 세워지는게 아니라 차일시 피일시이고 인공적이여서 그 어떤 규정도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그른것이란 있을수 없거니와 우렬같은것은 더구나 운운할수 없다. 문제해결의 고리는 남북학자들이 통일대사전을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조선족인이상 서사어마저 한국화하려 모지름을 쓰고 서둘러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싶다. 혼자 하는 말이라 서지 않더라도,     허리가 동강난 땅이 언제 하나의 혈맥으로 이어질지 묘연하듯이 말과 글의 규범화통일이 예측불가인데 중국조선족이라는 제 삼각지대까지 생겨나서 더구나 조선어가 사분오렬되여 안타까운데 설상가상이 아닌가? 한국식을 기준해야 한다는 주장이 먹혀들었지만 결국은 자기 부정이 되고말았다. 좋아서 하는 자기부정이라도 자아를 상실한다는것은 비애이다. 다 된 밥이 이제 죽이 되랴만 언젠가 또 재차 자기를 부정하게 될 때는 또 무슨 리유가 나설지 궁금하다.                                                                  2017년 10 월 4 일
893    딱해진 우리네 문학 댓글:  조회:225  추천:0  2018-08-18
                                                                  딱해진 우리네 문학                                                                               최 균 선       오늘 세상은 세월을 앞질러 가며 빠르게 변하고있다. 작가들도 그 급류에 실려 삶을 재조하기에 혼란을 겪을수밖에 없다. 기존의 가치체계가 마구 흔들리는 현시대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잘 가늠하며 시종 앞서가야 할 사명을 지닌 작가들이다. 전성기의 문학은 대의를 앞세우고 사회에 응전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지금은  문학을 한다고 똑똑한 사람, 선택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문학의 지위가 날로 변연에로 밀리면서 전지구적으로 엄중한 쇠퇴기에 들어섰다. 이 시점에서 혹자는 문학은 이미 현실을 반영하는 사명을 감당할 힘이 없다고도 말한다. 신매체시대, 인성도 전대미문의 각종 고험기를 맞았다. 문학도 새로운 문제를 잉태하게 되였는바 작가들이 어떻게 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젠 문제중에 문제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고도의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감정모식을 개변시켜 경전문학의 적극적 영향력을 희석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은 고독감을 해소하고 핸드폰은 거리감을 축소하였으며 량자우주리론은 시공관념을 새롭게 세우게 하고 인공지능은 인류의 본질과 자아의식에 대해 사고하게 한다. 인성도 마찬가지로 다종다양한  고험에 직면하였다. 한마디로 신매체시대 문학에 대한 타격은 치명적인것이다.     다매체시대, 매체가 의식의 절대적인 주체로 군림하여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시대에 문학은 더 이상 문화의 주체가 될수 있을지 불투명해진다. 불길하다. 불안해진다. 불과 20여년이 안되는 동안 인테넷과 전자매체의 폭발적인 발전은 문학의 생존공간을 대대적으로 축소시켰으며 문학이 더는 “금나와라, 뚝딱!”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낯선 기괴함이 환상의 코드와 결합해 새로운 문화를 이룩해가지만 이는 늘 이미지의 향유로 결판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미지의 시대에 문자는 사유를 압박하는 절대적인 주체가 아님은 물론 변두리문화작업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스마폰세대들은 물을것이다. 도대체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고     텔레비죤이나 스마트폰에 스쳐가는 장면과 장면 사이는 불련속성이 지배하건만 이런 문화현상은 21세기 지구촌 촌민들을 지배하는 대전제로 되였을뿐만아니라 너 또는 나를 의식의 신기원으로 인도한다. 모든것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사람들이 속도와 편리함에 도취되여있을 때 실재가 사라진 자리에 이미지가 환상과 결합해 새로운 리념을 건설하는 중이다.     문학이 찾아야 할 실용적인 미적부호는 과연 무엇인가? 환상세계속에 도취인가? 아니 환상 이외에는 더는 문학의 소재로 차용될수 없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을듯도 하다. 실물에 대한 서사와 환상의 서사가 극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21세기를 표현하는 의미의 진실이기는 되여지는것일가?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지 않을가? 아무튼 문학의 미래는 밝지 않다.     문학이 인공지능과 스마트폰 사이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엄혹한 이 시대다. 작가가 사회량심으로, 지성의 대표자로 받들리던 때와는 다른 이 시대, 작가들의 고민이 깊어질수밖에 없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다시 길이 나타나고 바다가 펼쳐지고 사랑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자기 위로가 될것인가?     문학이 근대산업과 소비행태에 의한 불가항력의 파괴를 력사적모순, 시대발전의 필연이라  인정하더라도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고 읽어서 오래 가슴에 남는 그런 글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소일거리로 쓴다거니 하는 상업적 회색문학이 공공연히 만연되고 있어 문학의 비애란 화제가 나오는 것이다.     1967년 미국의 작가 존 바스가 발표한 “문학의 고갈”이 문학의 속근심을 드러냈다면 신매체시대에 들어와서 문학의 지위가 변연화되여진것은 문학의 “외환(外患)” 이라 할것이다. 무릇 고전주의든, 랑만주의든, 사실주의든, 현대주의 내지는 후현대주의든 휘황찬란하던 전성기도 기억의 언덕너머로 물러가다보니 문학은 전 지구적으로 엄중한 쇠퇴를 보여주고있다. 물론 문학이 변연에로 밀리였을뿐 문학이 존재리유와 의의를 상실했다고 말할수는 있다.     문학을 인간이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인간학이라 했다. 우리 인간의 가능성 뿐만아니라 그 한계성조차 진지하게 모색하는것이 문학이였다. 현대문명인들에게 금전이 수요되듯 문학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학이 무시되면 인간의 정체성과 진정성이 모호해지기 마련이므로 인간의 본질과 진정성을 확충시키려는 진지한 노력이 바로 문학이 해야 할 급선무였다. 문학은 상상력의 공간속에서 사물들을 재배열함으로써 이것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문학은 언어문자로 인류의 생존상태를 표현하므로 인성을 들여다 보고 인심을 뒤흔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건만 독서위기가 도래하면서 존재의 리유와 근거가 미약해졌다.     문학은 리념이나 체제선전을 위해 존재한것이 아니였다, 본질적으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데 선도자가 되고 보탬이 되는것이 문학의 사명이였으나 독자라는 가죽이 엷어지고 작아지고 있으니 무성한 털인들 있을손가, 물질적재부를 창조하지 못했지만 물질재부를 창조하는 지혜롭고 재능있는 사람을 만든다던 문학이 마침내 상상 이외로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게 되였다. 그래서 우리의 인쇄문학은 어디로 갈것인가? 하는 우문이 나오게 된다.     종이문화의 친인간적 효용은 날로 줄어들고있다. 고상한 정서생활, 정감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결집시키던 문학의 렬차는 이미 산굽이를 돌아갔다. 구체적인 인간 개체등를 기쁘게, 슬프게, 분노하게 하고 종국적으로 행복감을 안겨주던 문학의 진정한 가치, 효용성을 싣고…     그래서 억지로 자아위안을 불러본다. 아무리 전자통신망이 세계를 휩쓸고 인간을 지배하더라도 인간의 령혼마저 그것에 빨려 들어갈수는 없다고, 인터넷과 소셜네트 워크서비스(SNS)상에 숱한 말,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시간의 흐름에 씻기면 되찾기가 어려운 치명적약점도 잉태하고 있으므로 일시적으로 사회를 흔드는 진동파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은 그래도 문학이 가질수밖에 없다고, 문학이 수백년 간을 두고 쌓아온 무게와 질감때문이라고 강변해도 설득력을 잃고만다.     지금 젊은세대, 어린이세대들은 보편적으로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세기를 거듭하며 습관되였듯이 그냥 책을 읽으면서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세상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일들에 매료되여 정감세계의 생화를 가꾸어가지 않을수 없다고 절규하면 독서취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새 세대들은 코방귀도 뀌지 않을것이다.      누구나 돈만 내면 책을 출간할수 있는데 문학의 새로운 발전기회라고 말할수 있을가. 책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읽을뿐이다. 언어의 예술로서의 문학은 언어가 철저히 소실되고  사람들이 서로 심령의 감응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한 소실되지 않는다고 장담하지만 문학의 외재형태, 전파방식과 접수방식상 미증유의 극단적 변화들이 발생한 상황에서 딱해진 우리네 문학임은 틀림없다.                                                                       2018년 2월 17일
892    (단편소설) 선녀바위의 전설 댓글:  조회:262  추천:0  2018-08-17
                                                        선년바위의 전설                                                                최 균 선                                                                                    1       속절없는 세월은 어느덧 18년을 넘겼다. 영원히 사랑하는 사람의 은혜받은 꽃이라는 의미에서 혜화라고 이름지은 딸애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서화라는 사람이 다녔다는 지구의 미술학원에 입학하였다. 혜화는 어머니가 왜 한사코 미술학원에 지망하라는지 그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자기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한 어머니의 소원대 장차 화가가 되리라 작심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 인물화에 조예가 깊다는 서화라는 교수가 한 농촌처녀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본따서 그리게 하였다. 혜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상화의 얼굴이 자기 어머니와 신통히 닮아있는데가 어머니가 밤낮으로 쳐다보며 눈물짓던 그 초상화와 너무 비슷하였던것이다. 크면서 매일 보아왔던것인데다가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니 여느때보다 그림이 잘 되였다. 서화교수도 잘 그렸다고 칭찬했다.       친구들도 어쩌면 그렇게 쉽게 잘 그려낼수 있느냐고 부러워하자 혜화는 얼결에 자기 어머니의 침대가에도 이와 똑같은 초상화가 있어 너무 익숙하였기때문이라고 자랑삼아 해석했다. 친구들은 반신반의하면서 방학에 집에 가면 꼭 가지고 와서 확인시켜 달라고 다짐땃다. 방학이 되여 초상화를 학교에 가지고 가서 친구들에게 보이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펄쩍 뛰였다. 그래서 집을 나설 때 몰래 그림을 꿍져넣고 학교로 달려왔다. 동학들은 그림을 보며 감탄성을 지르다가 서화교수에게 가져다보였다.     서화도 혜화가 처음 놀란것처럼 웬간히 놀라지 않았다. 서화는 혜화를 가만히 불러내여 그림의 출처를 캐여물었다. 사연을 알게 된 서화는 돌아서서 눈물을 삼켰다. 학생들에게 그리게 한 초상화는 비록 당년에 그린것이 아니였지만 너무도 잊을수 없는 인물이였기에 그때의 직감을 애써 살리며 다시 그린것인데 성미술전람에서 특등상 을 받았다. 너무도 가슴아파서 학생들앞에 내놓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자 기 학생에게서 꿈에도 잊어본적이 없는 자기의 그림을 보게되다니…                                                                                                             2   …무슨 혁명이 일어난다고 두메마을마저 술렁술렁하던 어느 봄날, ㅂ대학미술 학원을 다닐 때,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고 언제부터 지청구질하던 미화를 데리고  하 늘아래 첫동네라는 백두산기슭의 선녀동에 사생하러 내려갔다. 풍경화도 그릴겸 예로부터 미인이 많이 낳았다는 선녀동에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산꽃처럼 싱싱하고 고전적인 미를 가진 시골처녀를 찾을수 있다면 인물화를 그릴 타산이였다.    하루 한번 통하는 뻐스를 용케 잡아타고 선녀동에 내리여 취한듯 산천경개를 살펴보니 과연 명불허전이 아니였다. 련산련봉이 평풍처럼 둘러있고 앞에는 골골에 벽 계수가 합수하여 마을앞에 맑은내를 이루었고 뒤산 층층바위에 살구꽃이 흐드러져있고 집집에 오얏나무에 하얀꽃이 봄뜻을 자랑하고있다.     “천산과 만산에 홍장 찬란하고 앞시내와 뒤시내에 흰깁을 펴인듯,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는 천고의 절개요, 복숭아꽃 살구꽃은 순식간 봄이라. 기괴한 바윗돌은 좌우에 층층한데 절벽사이 폭포수는 이 골물 저 골물 합수하여 와당탕퉁텅 흘러가는 저 경개 무진 좋을시고…”라고 묘사한 “토끼전”에 한 절구가 절로 떠올랐다.     현대문명의 해살이 이 골령에도 비추고있으나 아직 인간의 손길에 파괴되지 않은채 고색창연하여 별유선경이 이렇든가, 특히나 소문을 많이 들어왔던 선녀봉꼭대기에 선녀암이 지켜보는 마을도 초가집일색이지만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이렇게 산수좋은 곳에는 시골가녀들도 많으리라는 제좋은 생각에 서화가 빙그레 웃자 미화가 무슨 제좋은 궁리를 했기에 바보처럼 웃음을 흘리고 섰느냐고 퉁을 놓는바람에 자아도취에서 깨여나 마을로 들어가는 수레길로 발길을 옮기였다.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있는 허술한 농가가 첫눈에 들어서 잡담제하고 찾아들어갔다. 여름해살이 살처럼 내리꽂힌다면 봄날의 해살은 나비의 날개처럼 내려앉는다던가. 5월도 저무는 때라 한낮의 해살이 자그만한 뜨락에 가득차서 열기를 뿜고있다. 뜨락에 가득한 온기가 노란병아리의 털처럼 보드랍고 아늑하다. 주인을 찾으니 뒤울안에서 병색이 짙어있으나 한창때는 산골에 미인이였을 녀인이 주춤거리며 나왔다.     그녀는 경계하는듯한 눈길로 느닷없이 찾아든 웬 신사숙녀를 가늠하며 어정쩡해 하였다. 미화가 자기들은 미술학원에 대학생들이라는것, 여기에 그림을 그리려왔다 고 전후 사연을 곧이곧대로 말하고 소개신을 내놓으며 돈도 섭섭하지 않게 드릴터이니 한 이틀만 숙식을 제공해 달라고 사정하였다.     “글쎄유, 루추한 우리 집으로 말하문 귀한 손님들인데 여느집과 달라서 제마음대로 손님이랑 척척 받아들일만한 처지가 못돼유, 그러다가 무슨 말썽이라도 생길가봐 그래유, 마을에 들어가서 빈하중농들의 집을 찾아보세유, 이 마을에 사람들은 집집이 모두 인심이 후해서 받아줄겐데유, 그리고 우리 딸애가 어찌생각할지…”    서화는 말끝을 흐리는 주인의 표정을 보며 무엇인가 짚이는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눌러앉고싶어져서“그럼 받아주시는것으로 알겠으니 첫눈에 든 이 집에서 신세를 좀 집시다”하고는 가방이랑 퇴마루에 벗어놓으며 설레발쳐댔다. 점심때가 되였는지 한 숙성한 처녀가 마당에 들어섰다. 묻지 않아도 이 집에 딸이 분명했다.    미화가 눈이 휘둥그래 서있는 처녀의 두손을 와락 잡고 아까하던 말을 곱씹어 하며 역시 좋은 인연이라며 수선을 떨었다. 수집을 타는지 녀자는 서화쪽은 눈길 한번 돌리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 력연했다. 시골처녀가 낯선 청년앞에서 머금을 법한 원시적수태가 예민한 통찰력은 가진 서화의 눈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비록 봄볕에 그을리기는 했어도 수련꽃같이 흰 살결밑으로 푸른 피줄이 어슴프레 보일만큼 살결이 맑은 처녀였다. 두볼은 한창 붉게 익어가는 복숭아처럼 홍조가 물들어 있었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건만 진붉은 입술은 석류화를 련상시켰다. 그것은 전류였다. 아직 이성에 대하여 그렇게 골몰해 보지 않았던 자신의 몸과 의식에 팽팽한 긴장과 충전을 일으키게 하는 매혹 그 자체였다.     저녁을 먹으며 미화가 비난수해서야 겨우 모델로 되겠다는 답복을 받아냈다. 해가 뜨면 일밭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을 붙잡고 있을수는 없어서25촉이 될가말가한 전등불아래에서 먼저 초상화부터 그리고 밝는날 점심짬을 타서 자연을 배경으로 수채화를 그리기로 약조했다. 서화는 미술가로서가 아니라 한 남자의 정열로 이름이 선 아인것처럼 이 시골의 가인을 가진 재간을 통털어내여 그려갔다.     …맵시있게 빚어서 붙여놓은 당실한 코, 산양의 눈을 방불케하는 커다란 눈, 가늘지만 선명한 반달눈섭, 우정 길게 잡아당겨놓은듯한 속눈섭이 검은 눈동자를 순간 순간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는것이 너무 매력적이였다. 그것은 흡사 어느 화첩에서나 볼수 있는 정교롭게 새겨진 불면 종이장에서 날듯이 깐지게 생긴 그녀를 보고 젊은 사나이가 느끼는 그러한 자연발생적인 감정에 사로잡혔다. 활짝 피여난 한떨기 아름다운 꽃처럼 맑은 얼굴에 잔잔한 홍조가 비낄때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갈아앉혀 주었고 그 얼굴에 비낀 고운 심성이 더구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서화는 감각으로가 아니라 심장으로 그린 초상화를 선아에게 선물로 주고떠났다. 대학생남자가 그려준 초상화를 받은 선아는 그 청년이 헤여지며 가슴속에 새겨준 그 눈길을 잊지 못하고 공연히 가슴을 설레였다. 시골내기로, 더구나 여의치못한 집에서 태여난 그로서는 언감생심이였지만 속일길없는 녀자의 본능으로 서화가 기다려졌다. 서화는 같이 온 처녀가 없는 틈에 다시 오겠다고 가만히 약속했던것이다.     며칠후 서화는 약속대로 찾아왔고 선아의 어머니앞에서 사위로 삼아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그렇게 가연을 맺은 둘이는 대번에 련정의 늪에 빠져버렸다. 그와 그녀는 애욕의 피리를 마음껏 불어댈수 있는 그런 상태에 있었다. 충분히 성숙한 그들의 정 열은 흔히 정열을 식혀주기 마련인 정욕의 향락으로 하여 꺼지기커녕 오히려 더욱 세 차게 불타올랐다. 아마도 사랑이란 향락에 대한 감사의 정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모양 이다. 선아로서는 장차 어찌될지 생각하고싶지도 않아서 그저 감각에 자기를 맡겼다.     원래 함께 왔던 미화도 서화를 사랑했다. 그런데 서화가 늘 혼자 선녀동에 간다 는 사실을 안 그녀는 서화에게 천둥같이 화를 내며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표시해 왔던 자기의 감점을 털어놓고말았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알았으랴, 서화가 선녀동에 한번 가면 며칠씩 묵새기며 선아의 배속에 불행한 사랑의 씨를 심어놓았다는것을, 그 런줄 모르고 한사코 서화를 남편으로 삼는다고 윽윽 별렀던것이다…                                                                             3                       그무렵, 선아는 곧 다시 오마하고 약속하던 서화가 오지 않자 속이 바질바질 탔다. 배가 자꾸 불러갔기때문이다. 그녀는 서화에 직접편지는 못하고 봉투안에 봉투를 넣어 미선이앞으로 편지를 보내고 또 보냈지만 종시 회답이 없었다. 순진해빠진 그 녀가 자기편지를 한번도 서화에게 전해지지 않고 불살라진다는것을 어찌 알수 있었으랴, 그저 자기 혼자만이 무리에서 버림받은 외기러기라고 슬퍼했다.     그녀는 지금 천길나락끝에 서있는것같이 꿈속에서마저 전률하였다. 그녀는 이제 밑창없는 동굴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무고한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세상은 그의 곪아터지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말썽부리가 좋아하는 아낙네들이 속심을 눈치챌가봐 겉으로는 평온한제 하지만 속은 그대로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무엇을 끓이는지 이젠 알수도 없었다. 증오인가? 미련인가?    고운 봄 맑은날 층층이 흘러가는 꽃구름이라도 저도 모르게 한쪼각 음영을 던진다는것을, 그리고 폭우도 실어올수 있다는것을 왜 자초에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가… 리별이 리별로만 완성된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비애라는게 없을것이다. 가령 생각도 생명없는 바위처럼 굳어진다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을 일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 소멸하는것까지를 포함하는것. 꽃핀 이후의 꽃다발 혹은 열매 이후의 열매처럼 쇠잔하게 말라가는것까지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만남의 성찬을 위해서는 아무리 큰 허기와 감동이라도 참아야 하는가? 그것은 실로 무섭고 비장한 일이였다. 보다는 원한과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엄청난 일이였다. 리별뒤에 오는 잊을수 없는것이 훨씬 고통스럽다.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그녀로서는 그저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리별이전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을 몇십번이고 몇백번이고 곱씹는 일밖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녀의 가슴은 그처럼 엉망인채로 고르롭지 않게 뛰고있었다.     순진해 빠진 농촌처녀들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볼수 있는 두가지 사랑의 방법을 가지고있다. 말하자면 마음에서 우러난 사랑과 관능적인 사랑이다. 관능적욕구를 채 워보고싶은 생각에서 남자를 가졌던 녀자는 거개 정신적사랑이란것을 믿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결혼을 통해 남녀간의 순결한 육체적결합에서만 사랑을 추구하는 처녀가 돌연 정신적사랑에 눈이 떠서 육체적관계만이 능사가 아니였다는것을 깨닫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녀 겨우 초중을 나온 시골처녀이지만 잘 알고있었다.     서화는 선아가 눈을 뜨자마자 생각하는 존재였고 잠들기전까지는 한시각도 떠나지 않은 존재였다. 사랑에는 중간계단이 없다. 사랑은 요람으로 되지 되지 않을 경우엔 관으로 되고만다. 그는 지금 사람들 무리속에서 여느 녀인들과 다를게 없이 살고 숨쉬고 일하고 밥을 먹고 웅성에 시달린다. 그는 남자란 무슨 의미인지 알수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오로지 서화라는 멋지게 생긴 화가만 있었다.     선녀바위밑 소나무아래에서 그들은 더없이 친근한 마음으로 가슴속깊이 숨겨졌던 비밀들을 무랍없이 이야기했다. 그러는 동안에 두심장이 하나로 융화되여 한시간후 에는 벌써 서화의 넋이 은혜의 넋으로 되였고 은혜의 넋이 서화의 넋으로 되여버렸다. 그들의 물음과 대답은 그냥 사랑이란 이 보금자리에서 합치되여 있었다. 마치도 오또기가 아무리 번져놓아도 제자리에서 일어나듯이 말이다.     자기를 포근히 껴안으며 타는듯 입술을 자기 입술에 포개던 서화의 눈에서 애원하는 절절한 마음을 본능으로 다 읽어버렸다. 그녀는 이 남자앞에서는 도저히 저항 할수 없음을 가슴으로 느끼였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무조건 순응하는듯한, 그를 향한 뜨거운 사모의 정이 고패지고있음을 느낄 때 이 남자에게 자기를 다 내주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어도 후회되지 않을것 같았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는 가시나무우에도 누울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는 소나무에서 흘려내리는 송진내와 어데선가 숨어서 뿜어내는 버섯의 향기와 나무가지새로 엿보는과 햇빛과 무한의 우주와 그리고 작열하는 정열의 속삭임이 있을뿐이다.     남자가 한낮의 양광아래 그대로 드러난 젖무덤과 사이에 얼굴을 묻고 오래오래 미동도 하지 않을 때 선아는 이젠 자신의 일체를 내주었으니 이 남자의 안해가 되고 도시생활을 할수 있겠지 하는 생각도 미처 할 사이가 없었다. 스스로 몸속 어딘가 열기에 휩싸이는듯 싶어지며 입에서 단내가 확확 뿜겨나갔다…여느 녀자와 다르련만 성숙속에 미숙이 있었다, 초경험과 욕구, 숫처녀의 아리숭함과 20대중반의 성숙한 웅성의 몸부림이 육신을 깡그리 불태우고 있다는 감각뿐이였다.     남자가 몸을 뚫고들어왔다. 처음이면서도 신비하고 절박한 마음들이였기에 서로 상대방을 집요하게 흡인할뿐이였다. 시간도 굳어지고 태양도 빛을 잃었다. 진할줄 모르는듯 격렬한 몸짓이 그녀를 끝없는 꿈길로 이끌어갔다. 마침내 작열도 끝나고 정적 이, 슴슴한 침묵이 깃들었다. 기이한 정적속에서 그녀는 자기의 몸에서 불덩이가 서 서히 빠져나갔는듯 느껴졌다. 선아는 흐느끼듯 남자를 죽어라 끌어안았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순정을 바친 녀자의 얼굴, 그 몸가짐은 여느때보다 수집은 법이다. 그저 살아있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으로 여기던 선아에게 있어서 서화를 사 랑하고 몸을 바친 그후부터 인생이 이처럼 아름다울수 있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몸을 바침으로써 자기 인생도 행복해질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일인가? 이 세상에서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부터 자신이 어느 처녀들보다 행 복하다고 생각할수 있는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녀자는 한번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잘못 사랑했는지도 반성해보지도 않는법인가? 그는 매정하게 소식도 주지않는 서화였지만 그냥 아름다운 추억만 안고 혼자 웃고 울었다. 리별의 괴로움이 눈물로만 씻겨진다면 사람에겐 애초부터 리별의 아픔이라는게 없었을것이다. 오랜 리별기간 눈물젖은 그리움을 달래는것이 선아에게는 참을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하루같이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축음기처럼 생생하게 리별이전 의 일까지를 재생시키는 모든 과정이 하루의 내용이였다.     시골에서는 패풍의 흙탕물에 사람이 빠져죽는 경우가 있다. 살벌하던 비상시대, 마을아낙네들의 눈총질에 온몸이 숭숭 구멍이 날지경이였다. 궁리궁리하다가 마을에 는 남자네집에 갔다고 소문을 내고는 몇십리 떨어진 외할머니네 집에가서 해산했다. 딸이였다. 서운하긴 했지만 남자의 성씨를 따서 서혜화라고 이름지었다. 다행히 인정 사정에 밝은 촌에 주임이 얼렁뚱땅해서 혜화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였다. 한시름 놓은 선아는 남부끄러운 처녀과부로 되였지만 평생 “남편”을 기다리기로 마음굳혔다.     세월은 락엽처럼 쌓여갔고 묵어가는 세월의 락엽속에 그리움으로 타버린 애간 장이 묻혀있다. 밤이면 밤마다 추억의 잎새가 어둠속에서 애달프게 울고있다. 세월의 맷돌은 괴로움도, 아픔도, 기쁨도, 미움도 다 갈아버리여 나중에 망각이라는 앙금을 갈아낸다더니만 그녀에게는 그런 망각의 매돌이 없었다. 마음이 마르면 눈물도 마르는 법이다. 선아에겐 이젠 눈물이 없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도 밤마다 꿈을 꿨다. 그러나 슈제트도 없고 주제도 없는 난삽하고 지루한 꿈이였다.     …혁명의 불길이 고조에 이르러 각파벌의 쟁투가 무단투쟁으로 번지였던 어느 날, 서화가 느닷없이 잡혀갔다. 평시에 그렇게 이를 갈던 미화였고 이른바 반혁명으로 몰린 빌미가 된 일기장을 자신이 제공했지만 가슴이 섬찍하면서도 그보다 더 극렬한 질투심때문에 량심의 가책도 눌러버렸다.     마음씨 착하고 순진한 시골처녀의 인생을 망가뜨린것은 서화탓이라면 서화의 소식을 선아에게 한번도 알리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첫번째 선택도, 두번째로 서화의 인생을 철저히 짓밟은것도 혁명각오였다고 자신을 변명했다. 그러나 10 년도형을 받았다던 서화가 시대적광란이 끝나고나서 곧 억울한 안건을 시정할 때 무죄로 풀려 나왔다. 그 소식을 듣고 미화의 량심의 마지막 방선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돌이켜 생각하면 스스로 면괴해져서 죽을 맛이였다.     더구나 혁명적인 사랑을 한다고 죽자살자하던 남자가 혁명기간 도를 넘은 비행을 너무 많이 한탓으로 잡혀들어가고 나서 역시나 처녀과부로 늙어가는 처지가 되였으니 인과보응이란 결코 빗겨가지 않는다는것을 절감하며 후회를 짓씹고있다. 서화가 그려 준 자기의 초상화를 매일 쳐다보며 남자를 기다릴 시골녀자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에 게는 그저 초상화가 아니라 사랑의 초상화, 사랑하는 남자 그 자체일것이다.     평생 한남자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허망한 사랑에 지쳐버렸을 녀자, 이런 불행한 녀자가 그의 정신기둥이였던 남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는것을 알면 어떻게 될것인가? 역시 죄책감앞서 질투심이 꼼지락거리는것을 말릴수 없었다. 아아, 다같은 녀자의 마음이건만 자신은 왜 이리도 못돼먹었을가? 그녀는 가슴을 탕탕 두드려댔다.          시골녀자의 후반생이 궁금해서 정한과 그리움이 얽혀있는 선녀동으로 가보고싶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서화가 풀려나오는 길로 그리로 가지 않았다면 순박해빠진 녀자는 서화가 자기를 그냥 내버린것으로 알고있을것이다. 미화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서화가 원래 자기와 언약이 있은 남자였기에 다 용서하고 혁명적동지로 결합했으니 다시는 서화를 찾지 말고 새로운 선택을 하라고 편지했던것이다.     그리고 서화에게는 그 녀자가 흑룡강성 어느곳에 한족사람한테 시집을 갔노라고 소식을 들여보냈다. 서화가 그 소식을 믿고있었다면 선녀동으로 가지 않았을것이라고 자신을 위안해 보기도했다. 이제와서 자기가 저지른 용서못받을 죄를 달리 어찌할수 없다고 생각하며 선택을 잘못하고 잘못 살아온 자신을 감출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4       서화는 5년남아 인간이하의 고역에 시달리면서 한시도 선아를 잊은적이 없었다. 누가 보낸편지인지 잘 모르지만 선아가 먼곳으로 시집을 갔다는 소식을 듣고나서도 그냥 잊을수 없었다. 채석장에 끌려나가 일에 지쳐 돌아오면서도 선아가 낳았을수도 있는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죽지말고 버티리라 강심을 먹은 그였다.     입이 열개라도 말할수 없고 말했다해도 믿어주지 않고 강다짐으로 죄장을 만들어 옥살이를 시키는 자들이 이갈리게 증오스러웠지만 벙어리 랭가슴을 앓듯 할수밖에 없 어 자기 인생에 언녕 체념하고있었다. 실낱같은 전깃줄은 타고 서로가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는 동물들의 공동체. 하나가 아닌 여럿이서 군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집단형성, 참새떼가 무리를 이룬 모습이 참으로 부럽게 느껴졌다.     참새떼를 받치고 있는것은 보기만 해도 위태위태한 전선줄이다. 전선줄은 참새들에게 쉼터이다. 사람에게도 자신을 지탱해 주는 쉼터가 있었으면 작히나 좋으랴, 하늘마저 활짝 열리는 가을하늘을 쳐다보며 눈물을 삼키기가 몇번째인가, 그녀는 한창 득세하여 우쭐거리던 ××가 자기를 따르는 미화를 떼여내기 위하여 작간을 꾸민것으로 짐작하며 절치부심하면서 나가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벼르기만했다. 그러면서도 미화가 그런 악독한 짓거리를 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구멍이 펑 뚫린것같은 허탈감이 자신의 리성을 멍하게 만들었다. 자기의 마음은 유리로 만들어진것인가? 비록 수정처럼 고귀하지 않지먼 그렇듯 투명하고 쉬이 깨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의 심신은 강압과 고역속에 저도모르게 한마리 목조당나귀가 되여버렸다. 비가 내리기를 기다릴 때 준비한 우산은 상식이라면 청천하늘에서 벼락맞은것은 자기였으니 이 무슨 저주맞은 운명이란 말인가!     아무리 자신을 반성해보아도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였는지 종잡을수 없었다. 뒤숭숭하던 소문이 마침내 현실로 되여 리상이고 사랑이고 우정이고 구중천에 날려 보내고 오로지“혁명”이라는 두글자를 가슴에 새겨야 하는 질풍노도의 시대가 도래했다. 숭고한 예술의 전당이 하루밤새에 아수라장이 되여버렸다. 교정내에서도 여러 파벌의 반란파조직이 묶어졌다. 그러나 부농집에 딸이라는것을 알고나서도 선아에 대한 사랑이 자기 리상과 목숨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였다. 황차 이미 도덕과 량심 상에서라도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음에랴,     그래서 선아를 생각해서라도 살벌한 소용돌이속에서“소요파”가 되기로 작정했다. 남들이 투쟁대상을 찾기에 혈안이 되여있는 동안 그는 선녀동으로 갈수 있는 기회를 찾느라 천방백계를 다하였다. 물론 그판에 화판을 들고 어정거리는것은 정신나간 짓이여서 그림그리기도 집어치우고 무위도식하는 판이였다.     한편 서화에게서 배신당했다고 절치부심한 미화의 사랑은 증오의 불길로 타번졌다. 그녀는 일컬어“정강산반란파”에 참가하여 미술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혁명 의 렬화속에서 청춘을 불태우려 한다고 선언했다. 혁명적련계를 지으려고 “대장정”을 하느라 남자들과 함께 렬차에서 딩굴며 전국각지를 다녔고 천안문광장에서 불멸의 태양을 우러러 눈이 다 붓고 목이 쉬여도 다함없는 충성심을 불사르며 들떠있었다.     이렇게 이판사판 하는때에 서화도 그냥 무풍지대를 찾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강산파”와 수화상극인“장정파반란단”에 일시 투신하기로 하였다. 그는 밤낮으로 대자보를 쓰고 선전화를 그리느라 분주히 돌아치다보니 가슴은 불붙듯 하였지만 당중앙을 보위하고 위대한 령수를 보위하는것이 천하대사인지라 사심을 잠시 죽이지 않을수 없었다. 미화네파와 서화네파는 설전으로부터 드디어 무단투쟁의 준엄한 대치상태에 이르게 되였다. 녀자가 한을 먹으면 오뉴월에도 서리차다고 했던가, 서화와 미화는 개인적으로도 불구대천의 원쑤로 되였다.     미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껍데기혁명을 하는 서화로서는 이게나 그게나 피장파장으로 생각되여 그저 남의 눈에 나지않도록 행동하기에 신경을 썼다. 그런 살판치는 나날에도 젊은남녀들은 본성으로 이성을 찾고 즐기였다. 미화가 ××와 붙어다닐 때 서화는 선녀바위밑에서 선아가 들려주던 전설을 되새겨보는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옛날 이 깊은 골짜에 한 총각이 어머니가 살았다. 하루는 총각이 다병한 어머니에게 달여서 대접하려고 약촐를 캐가지고 돌아는데 느닷없이 해가 가리워지면서 비구름같은것이 몰려오는듯싶었다. 그래서 비가오려나보다 하고 큰 바위밑에 들어섰 는데 그것은 비가 아니라 옷자라같은것이 훨훨 내려오는것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지상에는 있음직하지 않은 선녀같은 녀자였다. 녀자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였다.     녀자는 웬총각을 먼저 서있는것을 보고는 수집은듯 얼굴을 가리였다. 이름이 바위라는 총각이 큰 맘먹고 이제 곧 해가 지겠는데 이런 심산속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자는 천궁에서 내려왔다고 하였다. 들어본즉 원래 옥황상제의 시녀로 있었는데 그만 잘못을 저질러서 인간세상에 내침을 당했다고 했다. 들어보니 사정이 딱했다.     총각은 이 산에는 인가라고는 자기집뿐이라며 꺼리지 않으면 함께 내려가자고 하였더니 말없이 따라나섰다. 총각의 집에서 며칠 묵으며 인간상정을 알게 되여 차라리 잘되였다 생각하는데 바위어머니가 우리 바위의 색씨가 되여줄수 없겠는가고 청들었 다. 그런데 선녀는 아무대답도 아니하고 고개만 파묻었다. 그때 총각은 다 삼아놓은 짚신을 선녀에게 내주며 맞는지 신어보라고 하였다.     선녀는 말없이 받아서 신어보더니 딱맞다고 하며 매우 좋아했다. 바위어머니가 천상배필이여서 하느님이 점지해주신 색씨이니 바위와 정혼하고 셋이 오손도손 사는 게 어떠냐과 다시 간청했다. 선녀는 "저는 1년이 되면 하늘나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에 허혼할수 없나이다”하고 눈굽을 찍는것이였다. 총각도 슬피 울었다. 그러건말건 바위어머니는 정한수 한사발 떠놓고 달빛아래에서 혼인을 맺아주었다.     그리하여 인간의 절절한 사랑을 받으며 알콩달콩 살게 되였는데 어느새 일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어느날,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다. 선녀는 무서워서 남 자의 품에 안기며 바들바들 떨었다. “웨 천둥소리에 이리 놀라는거요?”하고 바위가 물으니 "저 천둥소리는 옥황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요"라고 말하는 선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총각은 "걱정마오. 하늘이 저리도 머나먼데 여기까지 붙잡 으러 올라구, 나만 믿고 안심하시오”     그동안 인간세상에 정이 들대로 든데다 마음씨고 고운 남편을 떠나기 싫은지라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작심했다. 천둥이 련속 세번이나 울렸다. 그래도 하늘 로 올라가지 않았다. 대노한 옥황이 냉큼 잡아오라고 내려보낸 천신이 선녀를 잡아끌 고 산우로 올라가자 총각도 한사코 따라올라갔다. 선녀와 총각은 살아도 같이살고 죽어도 같이죽자고 서로 부등켜안았다. 천신이 그 정상이 갸륵하여 혼자 천궁에 돌아가 선녀가 이미 속세의 인정에 깊이 물들어 바위라는 총각과 부부인연을 맺었으니 이미 몸을 더럽힌바라고 아뢰였다.     천둥같이 노한 옥황상제가 우뢰신을 시켜 당장 큰 벼락을 내리라고 명했다. 이윽고 “꽈르릉, 번쩍!”하며 련신 번개가 내리쳤다. “옥황님이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번개를 내려보내니 이미 인연을 맺은이상 당신을 버릴수 없어요. 차라리 두몸이 하나가 되여 이대로 바위라도 되여버립시다.”하며 남자의 품에 스며들기라도 하듯이 더 꼭 껴안았다. 벼락은 그쳐지만 선녀와 바위총각은 머리 둘에 몸이 하나인 커다란 바 위로 굳어져버렸다. 산아래서 맺지 말아야 할 짝을 맺어주었다고 땅을 치는 바위어머 니의 대성통곡이 구곡구천에까지 울려퍼지였다…     그때로부터 사람들이 이 바위를 선녀바위라고 이름지었는데 선녀바위에 치성을 드린 부부는 금슬이 좋아진다고 원근에 소문이 나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단다. 서화 는 출신을 잘못타고 난 하늘선녀라면 자기는 벼락을 맞으면서도 녀자를 지켜준 바위총각이 되여야 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군했다. 그리고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한 순결 한 처녀에게서 사랑을 받는 몸이 되여 그녀에게 남녀의 신비한 애정의 장막을 걷어주는 첫남자가 된다는것은 행복과 더불어 신성한 책임감도 느끼게 하였다.     남녀가 격정에 휘말려 금구를 깨뜨리는것은 너무나 례사로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사랑의 시련을 받아본 일이 없는 순진한 마음을 빼앗는것은 아무 방비도 없고 수비군도 없는 도시를 점령하는것처럼 싱거운 일이다. 농촌처녀, 특히 마음이 어지면 어질수록 더 쉽게 몸을 내맡기는 법이다. 이런 녀자들은 자기의 몸을 받침으로써 그 남자를 영원히 자기것으로 만들었는가고 착각하기 일쑤이다.     선아와 함께 뜨겁게 달구던 숲속에서 그 몸짓, 파르르 떨던 입술, 애처로운감도 주었다. 서화는 선아가 열어주는  미궁속으로 잠입하고나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깨 달았다. 처음 체험해보는 전률속에서 녀자의 의미를 체험했다. 그는 순정을 바치는 녀인의 철옹성을 정복했다는 희열과 더불어 일종 자책감감이 갈마들기도 했었다.     이름도 정나미돌고 이름처럼 한없이 탐스러운 시골처녀가 생각밖에 서화의 생활 에, 내심세계에 뛰여들었고 서화는 그저 받아들인 피동적인 위치가 아니라 극력 끌어 당긴 셈이다. 시골의 처녀 선아는 하나의 크고 무거운 행성처럼 서화의 감정의 자기 마당을 소란시키였고 그의 생활궤도를 휘딱 개변시켜버렸던것이다…                                                                                       5    단단히 기억했다는것은 결코 영구함을 의미하지 않으며 잊었다고해서 이미 발생하지 않은것은 아니다. 서화는 그동안 자기를 기만해왔다. 악마가 순결했던 자기를 비틀어 놓았다고 저주하고 참회하면서도 사랑의 사신이 천사에게 웃음을 던지고있는 환상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겪어냈다. 만구할수 없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허무, 삶의 커다란 허무로 비애의 구덩이를 팠다. 거기에 들어섰다는것은 삶에 종지부를 찍는것과 같다. 허무의 종합체를 이루고 또 이루는 그 모든 부산하고 황당했던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이 얽혀서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산다는것은 세월과 함께 사랑과 희망을 곱게 땋아내려가는것이라면 이게 무슨 날 벼락을 맞은 도깨비란 말인가? 여기서는 희망도 없고 인권도 없다. 오로지 억눌리는 인간존엄과 기시와 학대뿐이다. 고달픈 꿈속에서 기갈이 든 한마리 양이되여 녀자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다. 그는 지금 막 발정난 황소가 두발을 번쩍들고 암소 등에 업히듯 녀자를 두팔로 덮쳐본다. 눈부신 양광아래 아무 꺼리낌없이 드러나있던 그 호함지던 젖무덤에 묻혀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남녀의 만남은 우연적이지만 갈라져야 한다면 그것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착오적인 시간에 잘못된 만남이였고 잘못된 대상이라면 말이다. 선아의 선택이 잘못되였는가? 나의 선택이 잘못되였는가? 그러나 서화는 가슴깊은 곳에 새기고 또 새기였다. (그대여 당신이 너울쓰는 날 내가 절에서 중의 가사를 입는 날이 될것이다. 당신이 살다살다가 불행하다면 서슴치말고 나를 찾아오시라. 설사 내가 너무 늙어서 걸을수 없는 지경이라도 당신을 데리고 야반도주하리라. 이것이 내가 기다리는 결과이다.)     머리속으로는 얼마든지 좋은 말을 만들어낼수 있다. 역경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지는 않으나 지혜롭게 한다고, 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 고통의 숨결속에서 령혼은 발육된다고, 고통을 주지 않는것은 쾌락도 주지 않는다고, 곤난이란 위대한 마음을 키워주는 유모…등등, 그러나 억울한 수난자에게 그런 말이 먹혀들것인가? 누가 세상엔 절망하는 약자는 있어도 절망할 처경은 없다고 하는가? 절망은 청춘과 희망을 좀먹는다. 절망은 아무리 강한자의 의지라도 꺾어버린다. 절망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더 무서운 심리병인것이다.     그가 절망속에서 오락가락할 때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진실이 그를 잊지 않았던가, 그는 풀려났다. 그것도 무죄로 풀려났다. 나오고나서야 알았지만 학 교때 그를 무척 아끼던 ㄷ교수가 밖에서 정책락실을 위해 뛰여다니면서 각고의 노력을 해준 덕분이였다. 변화란 무서운것이다. 변화란 절대 진리였다. 하건만 그 자신은 무슨 변화를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세월이 흐르기만 기다렸을뿐이였다. 참혹한 옥생활은 그에게 인내를 배워주었고 시련은 그를 철학가로 만들었다…     그는 ㅂ미술학원에 당당한 조교로 남게 되였다. 자기를 지옥에 밀어넣은 장본인이 미화라는것도 알아냈다. 그러나 복수를 할수는 없는 일이다. 죽여치워도 성차지 않을 일이였지만 악몽은 이미 꿀대로 꾸었고 마침내 악몽에서 깨여났는데 그런 악착 한 녀자로 하여 또 다시 불구덩이에 뛰여들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무엇보다 급한것은 선아의 행방이였다. 선녀동에 다녀왔다.     선아는 거기에 없었다. 원래 허술하던 선아네 초가집도 무너져있었다. 그는 실망을 안고 돌아섰지만 사랑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비록 맹세하지 않았지만 선아가 사랑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믿고싶었다. 맹세는 말에 지나지 않고 말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선아는 속깊은 정으로 맹세한 녀자가 아니였던가?     사실이 어떻게 해명되였든 꼬리표에 달린 선입견은 검질기였고 서른살이 넘은 로총각인지라 대상자가 얼른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애써 가정을 이루려고 생각 하지 않았다. 어덩덩 세월의 화살은 어느새 사십세고개에 꽂혔다. 사십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습관과 결혼해 버린다고 누가 말했던지 그는 결혼을 포기해버렸다.     그런데 또 한차례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서화에게 일격을 가한것이다. 혜화에게 출생지를 물어보니 선녀동이라 하였다. 어머니의 이름을 물었더니 선아란다. 아버지 가 누구인가 물었더니 모른다고 한다. 미화의 말이 딱 맞는것은 아니였지만 어렸을적에 흑룡강에 이사가서 자라다가 중학교를 다닐때 연변에 다시 나왔고 어머니는 선녀 동에서 홀로 살고있다고 했다. 혜화가 자기의 딸이였다. 이 무슨 천방야담인가!     혜화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학교뒤 산에 올랐다. 저물어가는 하늘은 미치광이 화가가 잡다한 색갈을 제멋대로 칠해놓은것만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궁리도 떠오르지 않아 멍청이처럼 그냥 앉아있었다. 첩첩한 산릉선이 검은 빛갈로 그어진 하늘위에 초생달이 신비로운 쪽배처럼 걸려있다. 어떤 감탄도, 표현도 부족할 령롱한 달빛, 그 달빛으로 청산은 문자표현을 비웃는것만 같았다.     구멍이 펑 뚫린것같은 허탈감에 리성마저 멍해졌는데 기상천외로 찾아든 행운은  꽃구름을 타고 공주를 찾아가는 왕자처럼 들뜨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선아가 겪었을 인생고를 상상하니 가슴속에 안개비같은것이 서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치밀어 오르던 일희일비가 구름처럼 낮게 드리우며 눈에서 시큼하고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마침내 그는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선녀동으로 달리는 장도뻐스, 차장으로 들리나니 꽃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이 넘쳐난다.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꽃바람 불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저 꽃들의 매력!서화는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선아만은 늙지 않고 전설 속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대로 있었으면 하고 빌고빌며 가슴을 어루쓸었다…                                                                                           2014년  에
891    (진언수상록 100) 현대의 풍경 댓글:  조회:249  추천:0  2018-08-10
                                             현대의 풍경                                                      진 언       사람은 물질을 창조하지 못하지만 물질가치는 창조할수 있다. 이런 가치창조는 지극히 인간적인것이다. 그런데 돈이 말하는 시대, 가공할만한 가지가지 풍경들이 사 람들을 곤혹에 빠지게 한다. 물은 고기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고기도 물을 위해 사는것은 아니듯 돈은 사람들의 경제활동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건데 종당에 사람이 돈의 노예로 되고 말았으니 자업자득치고 너무 비참한 결과라 할것이다.     인도의 야무나공원에 마하트마 간디의 추모공원에 간디가 말한 일곱가지 악덕 (철학이 없는 정치, 도덕이 없는 경제, 로동이 없는 재부, 인격이 없는 교육, 인간성 이 없는 과학, 륜리가 없는 쾌락, 헌신성이 없는 종교.)이 적혀있는데 무릇 고관이든, 억만갑부이든, 밀차를 밀며 폐품을 줏는 사람이든, 농사짓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심사숙고를 자아내는 경세지언이라 할것이다.        그러나 돈이 “만능”인 시대에 다른 말은 다 허드레 잡소리로 되여있다. 돈만 많으면 잘사는 집, 돈이 없으면 못사는 집으로 판정된다. “잘 산다”는 말을 엄격한 의미에서 따지면 부유한집,부자집, 돈많은 사람 등으로 표현해야 맞지만 누가 그런걸 일일이 캘것인가? 오로지 돈만 많으면 되는 판인데,     일찍 주작인은 한남자의 합격, 불합격을 판정하려면 녀자와 불교에 대한 태도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기준은 당시 중국남자들의 실정에서 판정한것이지만 현대시점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진정한 인격력량은 돈과 권력, 감각적행동에서 가늠되여야 한다고 말할수 있겠다.     남자의 능력과 인격력량은 지갑에서 나오고 과시욕도 돈다발에서 체현되는바 명함장은 자가용의 열쇠로 설명이 된다나, 젊은남자들의 인생자세가 그러니 젊은녀자 들도 현숙함대신 돈에 대한 추구가 공중전을 하며 자신들의 실제보다 턱없이 높고 류행보다도 더 빨리 회전하고 있는 기관을 창출하고있다.     남녀간의 사랑도 원초적인것과는 일만팔천리로 동떨어지게 된 오늘, 고급식당에 가서 와인을 따르고 하루 몇번씩 옷을 갈아입고 외제차를 굴리여 호화별장에 가서 침대유희로 절정을 이루고 그것을 선망하여 앞뒤를 가리지 않게 된 현대인부자들이다.  돈지갑이 엷은 남자는 3등공민, 무능력자로 점찍히는것은 이 시대의 아이디어인가?     돈이 말하는 시대, 의리도, 도덕도, 량심도, 우정도, 사랑도, 혈육의 정도 일종 부호로 되였다. 눈에 보이는것은 돈으로 포장된 자기 리익뿐이다. 공공의 리익은 공익이라 하고 국가리익을 국익이라 말하면 어페가 없는데 개인의 리익은 “개익”이라 하면 되우 웃기는 표현일게다. 그런들 어떠랴, 리익만 챙길수 있다면 만사대길이다.     맞다. 그래서 중국에는 가난은 비웃을수 있어도 매음하는것을 비웃을수 없다는 관념까지 굳어진것이다. 인간의 관념이 이렇다보니 돈과 권력이 야합하기에 이르렀다. 오사모는 누구의 머리에나 쉽게 씌워지는것이 아니다. 두 눈을 한껏 부릅뜬 권력의 눈은 밑창을 알수 없는 블랙홀같이 사람들을 빨아들인다. 그도 그럴것이, 권력한자락 쥐고있으면 호풍환우할수 있고 주지육림에서 자맥질할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인문환경에서 돈을 물처럼 퍼쓰며 산해진미를 먹겠지만 결국 분변으로 배출되고 하루 몇번씩 옷을 갈아입어봐야 외형의 변화일뿐이지 환골탈태는 못된다고, 쉽고 빠르게 얻은 성취는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자신의 행동이 만들어 낸 가치로 자신을 판정해야 마음이 튼실하다고 설교한다면 전혀 웃기지도 않는 머저리같은 롱담이 되여진 이 시대이다.     남보다 옷이 값싼것이라 느껴지면 창피하고 남들이 자가용을 굴릴 때 나만 없으면 창피하고 남들이 돈쓰는만큼 못쓸 때 창피하다 생각하는 리유는 사람들 서로에게 가하는 가진자와 없는자의 심리적차별이 있기때문이다. 서로 극심하게 경쟁하면서 뭐 하나라도 뒤지면 차별시하기때문에 마음들에 안정이 깃들수 없게 된것이다.     천박한자는 돈지갑이 불룩하면 오히려 경박해진다. 마치 가득 불궈놓은 고무풍선처럼 둥둥 정처없이 날아간다. 풍선이 잘 뜨는것은 속에 아무것도 없기때문이다. 외국에 가서 명품, 사치품을 싹쓸이 하며 호기를 피워봤대야 자기 감각의 우물안에 팽창일뿐이다. 우물은 넘쳐나는 법이 없고 강물을 범하는 법이 없을터,     모든 판단착오, 시행착오는 궁극적으로 착각에서 일어난다. 인생의 초행길에서 대번에 꿀떡을 얻은것은 행운이라할세 처음부터 달디단것만 맛보며 살다가 난데없이 들이닥치는 인생고를 맛볼때 그 쓴맛을 감당해낼수 있을것인가?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성공은 마침표를 한송이 꽃으로 변화시키고 실패는 쓰디쓴 약 으로 변화시킨다. 고진감래라 할가, 흥진비래라 할가?     허세는 더 요란한 허세를 낳을뿐이다. 허세에서 진정이 나오기를 바라는것은 너구리가 사향노루가 되기를 바라는것과 같다. 허세가 인격력량이 아니지만 많은 사 람들이 그렇게 착각하고있다. 당신은 못보는가? 공방형의 금사슬에 목을 매달았던 탐욕자들이 일조일석에 원점으로 돌아온것이 아니라 일패도지하는것을, 만악의 근원이라는 돈이 내린 결론이 자기를 너무 따르면 그렇고 그렇다는것인가?     그러나 세상에 절대경은 없다. 인촌에서 화복이 뒤바뀌기는 한순간이다. 예수가 칼을 쓰는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듯이 돈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은 끝끝내 그 돈으로 하여 잘나가던 신세를 망치고만다. 작금에 추풍락엽처럼 락마한 크고작은 락마관들이 돈베개를 베고 돈타령을 흥얼거리다가 미끼통에 지렁이 신세가 되지 않는가?     물론 돈만 바라본다는 관념의 본의는 절대적으로 나쁜것이 아니다. 국가경제가 증장하여 백성들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것은 인지상정이니 사람마다 돈을 바라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일체는 돈을 향하여”가 되다보니 보이는것, 들리는것이 돈, 돈이 될수밖에 없고 돈이 제일 발언권이 있는 시대가 된것은 당연지사인것이다.    그러나 제중태를 채우기 위하여, 소수인의 리익을 위해서 눈이 뒤집혀 국계민생도 거꾸로 보인다면 결국 비극은 엮어질것이다. 아니, 비극은 이제 고조에 달했다. 환언한다면 돈을 바라본다는 관념이 리기의 대명사가 되였기에 결국 사단이 일어날수 밖에 없다. 문명개화한 인간이 마침내 돈-공방형의 노예가 된것이다. 이는 희사인가? 비극인가? 돈많은 자들에겐 너털웃음이 나오는 희극일것이요 돈을 갖지 못한  한한 사람들에겐 통곡해도 시원치 않은 사회비극이 되였다.     가난하여 무시당하는 리유는 “못배우고 못났기…”때문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강자, 부자들이 돈나오는 구멍은 다 차지하다보니 아무리 등골이 휘게 일해도 가난은 가난대로 세습되는 현실, 열심히 농사지어도 가난모자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농민들에게 가난이 운명으로 고착되였다. 아무리 아글타글 일해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가난을 면치못하는 사람들의 한숨소리가 높아지고 “못나고” 못배웠기때문에 기시당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한다며 체념하고 사는 운명론자들의 절망으로 넘치는 현실…     “누구나 열심히 분투하면 부자도 될수 있고 출세할수 있다”는 말은 실증된 진리가 못된다. 가진자와 없는자의 량극분화가 극에 이른 세상에 기회균등이니 평등한 사회건설이니 하는 말이 가당하기나 한가? “족쇄”가 풀린 금전만능주의는 “탐욕” 이 좋다는 슬로건아래 사회불평등과 빈부격차를 가속화하는 악과를 무르익히고있다. 이것이 괄목할만한 현대의 진풍경이다.                                                                    2015년 7월 18일
890    ((진언수상록 98) 약자영탄곡 댓글:  조회:169  추천:0  2018-08-10
                                                                  약자 영탄곡                                                                       진 언       강약은 절대개념이 아니다. 종래로 약자에 대한 정의가 없는바 “약” 은 근근히 일종 비교급일뿐, 나보다 사회지위가 낮고 나보다 못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약자” 이다. 쉽게 말하면 나의 눈에 강대하게 보이는 요소의 반면이 곧 “약”이다. 조물주가 억조창생을 내실 때 강약의 본성까지 금그어 주었다고 할지라도 “약자”에게 잘못이 없고 사회가 불공평한 탓이라는 말은 약자들을 각성시키는 의의를 띠고있다.     지금은 온갖 매체에서 보이고 들리느니 잔인한 가해와 피터지는 피학대에 대한 뉴스인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강자와 약자로 나뉘여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비극이 비일비재인게다. 가정폭력, 교내폭력, 군내폭력, 국제적 비피린 폭력과 죽음…더구나 약육강식의 인생현장에서 약자였던 자가 제보다 더 약한 사람을 찾아 공격하는것으로 “봉창”을 하는 악순환이 빚어진 참담한 인간세상이다.        일컬어 잘난자, 똑똑한자, 부자, 지자, 권세자를 강자라 하고 못난이, 빈자, 우자, 무식자, 권세없는자, 그리고 게으른자, 의지가 박약한자를 약자라 할것이로되 그게 운명적이라면 누가 시비할수 있으랴? 약자는 선량하다는 전통관념이 약자들의 자아위 안이 되였던가? 약자가 선량하지 않으면 어쩔테란 말인가?     자고로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했다. 힘센놈이 왕질하던 아이적에는 단주먹에 상대를 코피나게 한 놈이 완력이 센 놈이었다. 주먹심아래에서는 아무리 머리좋고 공부를 잘해도 가나오나 뛸데없이 침먹은 지네가 되였다. 사실 어른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일단 믿는것이 주먹이다.주먹이 약하면 제집에 들어온 강도에게 두눈을 펀히 뜨고도 란타질을 당하며 굴욕을 삼켜야 한다.     가령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시되는 인간사회라면 강자와 약자로 극명하게 갈리지 않을것이고 강자는 강자대로 으시대고 약자는 약자대로 기시, 릉멸, 불안이라는 구름아래서 살지 않아도 되였으련만 정글법칙아래 운행되는 인간사회도 약육강식이 상식이 되고 강자독식이 합리화되였다. 약자의 눈물을 씻어줄 사람이 이 세상에 없고 약자의 심병을 치유할 약이 이 세상에 없다.     약육강식은 야만시대의 잔습으로서 동물에게 한한것이라고 할수 있으나 우승렬패는 분명히 합리화되고있는 현실이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나 또는 인생의 원리냐? 아니냐? 하는것은 별개로 하되 이는 력사가 증명하는바이다. 약자가 원한다고 세상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 력사란 기록된적이 없다. 강자가 힘으로 지배할 때 약자는 강자에게 무조건 굴종해야만 생존이 가능하였다.“인류에게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원칙은 정의이며 약자에 대한 정의는 보호와 친절이다.”라는 명언이 있더라만 자유와 평등은 공백수표처럼 공리공담이다.     진정한 강자는 약자의 아픔을 리해하고 어루만져주는 사람이여야 하는데 우수한 자는 렬등한자를 무시하고 박대하며 부자는 빈자를 향하여 “왜 그리 가난하냐 ?”고, 강자는 약자에게“그렇게 약해 빠질것이 무엇이냐 ?”라고, 학자는 무식한 자를 대놓 고 “너무 무식하지 않냐 ?”하고, 건강한 자는 병자를 대하여“어찌 그리 약골로 태여났냐?”라고 빈정거려도 재하자는 유구무언(在下者有口無言)이라, 강자들의 시각에서 약자의 천성이란 무엇일가? 역경속에서 인생고를 읽고 새로운 삶의 계기를 발견하려는 자는 생활의 강자로 보고 불행과 고통속에서 마냥 위축되여 보이는것도 안보려고 눈을 감는 자를 현실도피자라 한다. 약자가 역경에 위축되고 강자앞에서 기가죽고 무력해지는것이 천성이라면 불행한 운명이다. 그래서 약자는 자기보다 강한 자들의 생각을 빌려 생각하고 그들의 입을 빌려 말할수밖에 없다.     선량함은 약자의 덕성이 될수는 있어도 이 험난한 인생길에 통행증일수는 없다. 약자라해서 무조건 동정심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슬픈 조우이다. 약자들이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세상이나 상대방을 아주 작은 크기로 축소시켜놓고 그 앞에서 제 크기의“충분함”에 자족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그들의 저렬한 근성이다.     많은 “약자”들은 종종 자신을 긍정하는 강자들과 혼동하며 그런 자신을 스스로 강자라고 착각한다면 구제불능이다. 이들이 알고 있다고 믿으며 보는 세계란 자기가 사는 작은 동네에 지나지 않는다. 능력 있는 난쟁이란 알수 없는 어떤것을 아주 익숙한 자기 동네의 별것 아닌 소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운명이 걸린 대결조차 전쟁놀이로 만드는 골목대장같은 자들이다. 이들과 만날 때 세상은 불행해진다. 저도 모르게 그들의 크기만큼이나 작아지기때문이다. 난쟁이의 어이없는 자신감과 갖잖은 교만은 꼴불견이다. 실속없이 환상적인 “강자” 는 상대방의 강점과 대결하려하면 유부가 되기십상이다. 약자들은 거개 자기의 유약함을 증오심으로 전환시켜 다른 약자에게 성풀이 한다. 이것은 약자들의 렬질품성이다.     약자들은 위축된 마음으로 세상이나 상대자의 크기를 과대평가하여 그와 마주선 자신의 크기를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내면적소인이라면 난쟁이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세상이나 상대방의 크기를 축소시켜 그와 비교되는 자신의 크기의 충분함을 긍정하는 내면적“거인”이다. 전자가 세상을 착각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보지 못한다면 후자 는 자신의 무능력을 잊기 위해 세상을 전도시킨다.     약자에게는 강자들 속에서 살아남는 수단인 유연성이 다행일지 모른다. 강자가 약자들앞에서 개잡은 포수처럼 으시대는 심리가 생기는것은 이때문일것이다. 누구를 압제하지도 누구에게 굴욕당하지도 않을 때 사회에 조화가 영주한다는것을 진실로 아는자는 오직 약자들속에 있지만 그런 속절없는 하소연에 누가 귀를 기울일가?     선천적으로 구제불능의 약자는 자기보다 강한 자들에게서도 약점이나 단점을 찾아 자위한다. 강자는 어디서나 공격성을 앞세우지만 약자는 어디서나 비난거리를 찾는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자가 진정한 강자이건만 그런 강자는 가물에 콩싹처럼 희소하다. 이는 약자가 강자와 공생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로 되였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통탄스러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약세군체의 숙명이요 인생에서 가장 큰 비애가 뭐냐고 자문하면 약자의 비애이라고 대답할것이다. 아마도 태생적으로 육체적강자가 못되고 후천적으로 지적인 강자로도 못된 자신이기에 처처에서 새여나 오는 약자의 “영탄곡”에 비애를 느끼며 공감하게 되고 동조하게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묻지 않더라도 내가 절치부심 미워하는 무리들은 약자들을 기탄없이 짓밟으며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해 온 “강자”들이라고 말할것이다.     약자가 자기를 위안할수 있는 유일한 론거는 “세상에 상승장군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나뽈레옹도 워털루에서 패전하지 않았나?”하는것이다. 사실이라도 약자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는 “용서, 관용” 이다. 용서와 관용은 강자들의 특허이다. 약자에게는 용서받을 자격은 있되 누구를 용서하고 말고 할 권리란 없다. 힘이 약하면 인애로 감화시키라고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자고로 약자의 평화적“공생”의 구호가 그들 자신의 권익을 보장해 준적이 없다. 힘의 론리가 종횡무진하는 세상에서 무조건 강해지고 볼일이다. 강력하다는것과 선량함은 상충되지 않는다. 선량함과 나약함이 결코 등호로 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자강의 길밖에 없다. 정글법칙이외엔 모두 공리공담이다.      “약자여,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이 호소가 약자영탄곡의 미성이다.                                  2015. 10. 1일
889    (진언수상록 97) 언간생심 권위를 긁어보다 댓글:  조회:132  추천:0  2018-08-08
                                                     언간생심 권위를 긁어보다                                                                진 언       권위자란 어떻게 정의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언구정(一言九鼎)으로 사람들을 탄복시켜 한결같이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라 할것이다. 권위에는 인간의 권위, 직위의 권위, 법과 규정의 권위, 국가와 공동체의 권위 등등이 있다고 한다. 무릇 권위는 인간의 불평등과 부자유의 근원으로서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권위가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복종의 소산이며 권위와 리성이 대립하는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권위에는 실질적권위가 있고 형식적권위, 또한 신뢰적권위와 공포적권위가 있다. 사회질서와 통합에 도움이 되는것은 실질적권위, 신뢰적권위이다. 형식적권위를 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마음으로는 상급에 맹종하려 하지 않지만 자기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지엄한 지시에 우선 응하는체 하는것이다. 공포적권위는 공포의 대상이 힘을 잃으면 붕괴하므로 안정된 권위가 아니다. 억압을 통해서는 공포적권위밖에 안되며 선전이나 세뇌교육을 통해서는 형식적권위밖에 형성되지 않는다.     진정 권위자란? 실적과 언행일치에 있지 허명을 쓰고 말만 번지르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실적으로 말하고 실천해야 명실상부 권위자이다. 학자의 권위는 지식의 확실성의 권위이고 기술자의 권위는 기술의 효능의 권위이며 법의 권위는 누구나 꼭 지켜야 한다는 약속의 권위라고 보면 비교적 잘 리해될것이다. 권위의 근거는 사람들의 신뢰, 인정(认定)에 있다. 학교로 말하면 교원은 학생들에게서 인정받아야 하고 위정자로 말하면 백성들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전문지식을 갖추어야 할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저의 도덕성도 지녀야 한다.      학술권위ㅡ하면 우선 과학원원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원사의 칭호는 근근히  해당된 학술성과에 대한 인정일뿐이다. 과학탐색과 창조가 무지경이라할 때 절대적인 학술권위란 없다. 그만큼 최고학술칭호와 최고학술수준 사이에 등호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미 작고한 중국과학원원사 왕선(王选)선생의 말이 론거로 될수 있다.     “원사를 당전 령역에 학술권위라고 보는것은 착오적이다. 나는 늘 시태(时态)를 혼동하였는데 과거식, 현재식, 장래식을 똑똑히 분별하지 못하였다.” 라고 하면서 자 기의 경력으로 설파하였다. “나는 38세에 연구령역의 최전선에 나섰지만 무명소졸이였고 58 세에 량원원사(两院院士)로 되였지만 2년전에 설계방면의 제일선에서 물러났다. 지금 68세로서 또 국가의 최고과학기술상을 받았지만 이미 학술연구의 전초에서 멀리 물러나와 허명으로 살아가고있다…”     과학에는 “최고”가 없고 오직 “더욱 높은것”이 있을뿐이라는 말이 있다. 창신은 권위를 미신하지 않는다. 부단히 권위를 타파하는것은 권위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불문률이다. 권위가 좋아하건말건 익숙한것으로부터 진정 아는데로 나가려면 의문을 가지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즉 “권위성” 에 도전해야 한다. 권위에 대한 맹종은 노예적이며 허영이며 리기적이며 체념이며 음울한 광기이며 사상을 버리는 자아상실이다.     인류는 마치 영원히 암흑속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이다. “모든것을 의심하라!”는 탐구의 횃불을 추겨들고 자신의 길을 밝혀야 거듭날수 있다. 학술권위속에 “물없는 저수지”, 명리에만 목을 맨 학술부패분자들은 허울좋은 허상들이라 할것이다.     데카르트는 “모든것을 의심하라!”고 납함하였다. 이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론거는 아마도 세상에 절대적인것은 없다는 명제일것이다. 정확성의 대명사인 수학도, 창조상상의 걸작인 과학도. 조리정연하다는 론리학의 기본원리조차 의심할 여지가 있다. 례하여 고대중국의 조충지는 선인들의 과학연구방면의 결론들에 의심을 가지고 고심참담한 관찰과 연구를 거쳐 수정보충하였고 가치있는 수많은 과학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가 제정한《대명력(大明历)》은 당시 가장 정밀한 력법이였다. 그의 일곱자리소수점까지의 원주률은 당시 세계상에서 가장 우수한 과학성과였다.       오직 권위에 과감히 질의를 들이댈줄 아는 사람이 많아야 문명세계건설이 비약 할수 있다. 이를테면 뉴톤의 의혹과 연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없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우매무지속에서 자족할지도 모른다. 과학발전사가 증명하다싶이 질의는 진 리를 감싸고있는 층층의 안개를 헤치고 본질을 투시하게 하는 선도자이다. 우리는 습 관적으로 자명하다고 생각하는것, 자고로 진리라고 여겨온것, 언론이나 학술권위자의 주장, 정의들…이런것들을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라고 확신해왔다. 기실 따지고 보면 자기 확신에서의 공조가 아니라 상대의 확고한 의식에 대한 맹신이였을뿐이다.      례하여 한때 달에서 중국만리장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말이 나돌면서 중국사람들을 무한히 고무추동하였다. 이 말은 미국의 “아폴론12호”의 우주비행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마치 50메터밖에서 머리카락을 보아낼수 있다는 말과 같다. 더 비유해 말한다면 384킬로메터 밖에서 한대의 얼음과자를 볼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런 거짓말이 발붙일수 있은것은 달에 착륙한 “권위자”였기때문이다. 그러나 달과 지구사이의 거리는38만공리이다. 그는 이것을 거짓말의 전제로 삼을수 있었던것이다.     미국의 인문주의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자기의 저서《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권위주의 권력의 힘에 눌려)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포기하고 자동인형이 되는 사람은 주위에 있는 수백만명의 다른 자동인형과 같기때문에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그것은 자아의 상실이다.”라고 권위 주의의 피해를 지적한다. 인간의 평등을 전제로 하지않고 근거가 없는 불합리한 권위 는 비민주적인 사회를 만든다는것이다.     만약 스스로 시비를 바르게 가렸다고 확신한다면 무릇 대방이 누구이든 그의 말에 마음의 꼬리를 흔들어댈 필요가 없다. 반대로 모모가 권위라해서 내 개성을 죽일 수는 없다는 정서로 7×3=21일도 반대하는식의 정서는 좋지않다. 반대하기 위해 반대한다면 우를 범하고 그속에 자기를 파묻고만다. 마치 내가 그것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있기때문에 흠집을 찾아내는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무조건 확신하는것도 일이 아니지 않는가?”하는 식의 거부는 무모하다.     살아가면서 자기와 다른 사이에 권위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담벽을 쌓을 필요는 없다. 권위를 타파하자고 웨친다면 듣는 사람은 강렬한 피해의식의 발로라고 생각 할것이다. 권위를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한다면 먼저 자기 마음속에 하나 의 관념모식이 잡혀있고 땀으로 이룩한 성과로써 권위를 타파하려고 행동해야 한다 자아가 부재하면 권위로 못된 약자의 경이원지에 불과할것이다.     권력의 권위주의를 아예 접어버리고 인간본연의 모습으로 현연되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평민백성도 드물거니와 권위라는 보검을 손에 쥐고도 함부로 내두리지 않는 고매한 인격을 소유한 권위자는 더구나 희소하다. 권위자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더 빛나야 하지만 권위주의는 타파되여야 한다.     이른바의 권위주의인격은 환영받지 못할 대상이다. 왜냐하면 권위주의 인격이란 복잡하고 완고하고 각박하며 상대적으로 사람을 들볶는 인격체계이기때문이다. 이에 는 종족편견, 보수성, 맹종, 개인숭배의 전통관념 등 서로 얽힌 반민주주의 정감과 의지가 포괄된다. 권위주의는 일반적인 사실이나 상대의 의견은 무시한채 기존의 권위 에 내흔드는 사고모식으로서 전혀 도움이 안되는 재세만 부리기에 웃기고있다.                                                      20013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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