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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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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편) 불조심 댓글:  조회:226  추천:0  2020-08-07
“불이야!” 아빠트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거릴 때 소방차도 빨간 눈을 켜고 앵앵거리며 들어섰다. 다행히 남자와 녀자가 ‘흑인’으로 변한 시점에서 불은 꺼졌던 것이다. 사달은 다름 아닌 녀자의 건망증에서 생겼다. 액화가스를 켜놓은 채 욕실에 들어가 샤와를 하다 나니 주방에 불이 붙는 것도 까맣게 몰랐고 남자 역시 엊저녁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으로 침실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못한 무렵이였다. 그래도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남자였다. 불시에 그을음냄새가 나기에 눈을 떠보니 이미 눈앞은 연기로 꽉 차있었다. “불이다!” 하는 소리에 욕실의 녀자도 새된 소리를 지르며 욕조에서 뛰여나와 욕실문을 벌컥 열었다. “물 물 물…!” 남자가 소리쳐도 홀랑 벗은 녀자는 우두망창이 된 채 멍해 있기만 했다. 급해맞은 남자는 제꺽 대야를 집어들고 욕조에 물을 퍼서는 주방으로 달려가 불 붙는 벽에 퍼억 뿌려던졌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녀자도 알몸이고 뭐고 다른 대야를 들어 물을 퍼 날랐다. 다행히 주방은 도자기타일로 장식되였기에 그나마 불은 십여분 만에 제거할 수 있었다. 탕탕탕!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옆집 남자였다. “어마나!” 녀자는 얼굴을 싸쥐고 급히 침실로 달려들어갔다. 그번의 ‘불사건’이 있은 후 녀자에 대한 철저한 단속이 진행되였다. 남자는 각별한 주의를 주기 위해서는 그저 말로만 그치는 수준이 아니였다. 다시말하면 ‘문건시달’이라 할 수 있었다. 첫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액화가스 스위치를 확인한다. (저녁에 눈을 감을 때도 점검한다) 둘째, 액화가스를 켜고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오줌 마려워도 참는다) 셋째, 액화가스를 끄고 다시한번 돌아본다. (두번, 세번도 좋다.) 넷째, 목욕하다가도 나와 가스를 관찰한다. (비누 발린 몸이래도 상관 없다) 주* : 밥을 짓다 절대 돌아서서 방귀를 뀌지 않는다. “방귀는 왜 못 뀐다는 겜까?” “방귀에도 불이 붙는단 말이요.” 이건 무슨 어애 방귀 뀌는 소리도 아니고, 남자는 방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소학교 다닐 때 한 개구쟁이가 방귀에 불이 붙는지 궁금해서 성냥을 그어 실험했는데 정말로 불이 붙더란다. 그러면서 방귀도 가스니까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아울러 특별히 강조하기를, 첫째도 불조심, 둘째도 불조심, 셋째도 불조심, 넷째도 불조심이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주방은 물론, 화장대, 목욕실, 각 방문마다 커다랗게 ‘불조심’이라고 써놓고도 성차지 않아 자가용과 남자가 즐겨가지고 다니는 텐트에도 어김없이 써붙였다. 뿐만 아니라 매일 그것들을 ‘좌우명’으로 삼으라고 닥달질이였다. 하긴 크게 실수를 한 탓으로 간이 곤두박질치듯이 놀라마지 않은 녀자는 남자의 말이 곧 법이고 무조건 집행이였다. 이쯤에서 녀자는 남자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구태여 ‘좌우명’에 대한 유래까지 구구히 늘어놓는다.   어느 날, 중국의 대학자인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제나라의 이름 난 재상이였던 황공의 묘당을 찾았단다. 묘당에는 환공이 살았을 때 보던 책이나 입던 옷, 사용하던 물건들이 쭉 진렬되여있었다 한다. 공자는 그 물건들 가운데 반쯤 기울어져있는 술독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단다. 그 술독에는 ‘좌우명’이라고 쓰여져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하구나. 보통 그릇이나 술독은 똑바로 서있게 마련인데, 이렇게 기울어져있다니!” 묘당을 관리하던 사람이 공자의 말을 듣고 자세히 설명했다. “환공께서는 이 술독을 늘 가까이 두고 아끼셨습니다. 이 술독에 술을 부으면 반쯤 찼을 때, 저절로 똑바로 서지요. 그러다 술이 가득하면 다시 기울어져버립니다.” 공자는 제자들을 시켜 그 술독에 물을 부어보게 했다. 그러자 아닌 게 아니라 술독은 서서히 움직이더니 똑바로 섰다가 술이 가득 차자마자 금세 옆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다. 공자는 크게 감탄했다. “역시 환공이로구나. 공부도 이 술독과 같다. 공부를 다했다고 교만하게 굴면, 이 술독이 가득 찰 때 기울어지는 것처럼 나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공자는 집에 돌아와 환공의 술독과 똑같은 술독을 만들어 곁에 두었다 한다. 독 우에 ‘좌우명’이라 쓰고 늘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다. 나중에 사람들은 ‘좌우명’이라는 글자만 따로 써서 벽에 붙여두고 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좌우명’은 살아가면서 꼭 마음에 새겨두고 지키려고 하는 생각이나 좋은 말을 뜻한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뭐 인성교육인지, 한번 불장난에 이 같은 교육까지 받아야 되니 조금은 억울한 감이 들기도 하고 더러는 개나발이 아닌가도 싶었다. 그래도 나중엔 ‘좌우명’이란 말에 그 같은 유래가 있는 것에 대해선 덤으로 지식 하나 배운 것 같아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후에도 녀자는 그 ‘좌우명’을 좌, 우는 물론 고, 저로도 깊이깊이 아로새겨 넣었다. 녀자는 몇달 전부터 십자수에 취미를 가지고 시간 날 때마다 십자수를 수놓았다. 처음에는 견본에 따라 색실을 수놓던 데로부터 풍경 몇점 완성하고 나니 어쩐지 따분한 감이 들면서 별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만은 견본없이 자기 창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제 겨우 절반도 되나마나하게 완성된 ‘활화산’이였다. 작품은 먼산을 녀성의 얼굴과 머리를 이미지화하고 이제 그 앞으로 커다란 젖가슴에서 분출되는 용암이 불바다를 이루는 파격적인 인상을 담으려 하는데 작가의 중심사상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다고 녀자는 그렇게 구상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림의 제목을 ‘베스타’라면 좋겠다 했다. 녀자는 그런 제목은 머리꼭대기부터 멀미나는 일이라 당연히 ‘좌우명’은 될 수 없었다. 녀자의 환각증세가 생긴 것은 ‘활화산’이 불꽃을 내기 시작하는 그 쯤에서였다. 자기가 수놓은 작품임에도 뭔가 안해이면서 엄마로서의 긍지감이 생기면서 얼굴이 막 화끈거려 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며칠 안돼서 녀자는 또 한번 대형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계절은 초록이 가로수를 물들이고 아빠트울안의 복사나무가 꽃너울을 쓰고 아지랑이와 입맞춤을 할 때였다. 녀자의 집창문 아래서 철매가 빨갛게 웃고 활짝 열린 창문으로 훈훈한 봄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와 록색의 커튼을 살짝살짝 흔들어놓았다. 십자수를 수놓던 녀자가 얼핏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저 멀리 서녘에 석양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활화산’이 ‘베스타’로 변하였다. 그러더니 자기가 수놓은 ‘베스타’가 움죽움죽 일어서고 있었다. 왜 그런가 자세히 여겨보니 누군가가 자기의 ‘베스타’를 훔치고 있었다. 다시 찬찬히 보니 그는 다름아닌 ‘프로메터우스’였다. 녀자가 막 소리를 치며 내 물건을 달라고 해도 ‘프로메터우스’는  들은둥 만둥 ‘베스타’를 가지고 창문으로 날아서 빠져나갔다. 녀자도 그만 달려들어 쫓아가다 창문 밖으로 휙- 날아나갔다. 다행히 녀자의 집은 3층이고 1층 집에서 아래에 부추를 심어놨기에 엉덩이뼈가 조금 금이 가서 몇달 병원신세를 지는 데 그치고 말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트면 큰일을 칠 번했다. 그러니 남자의 경계가 더 할 것은 불보듯 뻔했다. 남자는 또다시 서면조항을 작성했다. 제1장, 불, 불을 절대 오래 보지 않는다. 제2장, 물, 물을 절대 오래 틀지 않는다. 제3장, 잠, 잠을 절대 오래 자지 않는다. 제4장, 꿈, 꿈을 절대 오래 꾸지 않는다. 주* : 불을 오래 보면 화끈거려서 정신적으로 태우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고 물을 오래 틀면 정신적으로 잠기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며 잠을 오래 자면 꿈이 많아 질 것이고 꿈이 많아지면 환각이 많아지는 것. 병원에 있는 와중에도 녀자는 꿈에 ‘프로메터우스’가 자꾸만 나타나서 무던히도 애를 먹었다. 정신과 의사에게 보이니 우울증이 조금 있으며 정신착란증세도 조금씩 보인다고 했다. 의사는 너무 자극적인 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하면서 아름다운 그림이나 동화 같은 글들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요즘 남자의 거동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병원도 오네 마네 하다 오랜만에 와서는 신경질적으로 녀자를 대하는 듯했다.   녀자는 징조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가 퇴원해 집에 와서 보니 집안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거실은 물론, 침실도 이불은 개이지도 않고 탈피한 뱀이 빠져나간 자리처럼 지저분하게 구겨져있었다. 녀자는 다른데는 몰라도 침실 하나만은 깨끗하게 정리하기를 좋아했다. 침실은 부부간의 신성한 보금자리이며 가정의 상징이라고 믿고 있듯이 정갈해야 한다고 여기였다. 녀자는 팔을 걷어붙이고 침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쭈그렁망태 같은 이불을 걷어안고 아프리카코끼리 배가죽주름 같은 시트를 와락 당겼다. 그런데 무엇이 발등에 떨어지는 느낌이 생겨 내려다보니 웬 보지 않던 물건이였다. 얼핏 보면 오징어 몸통을 썰어놓은 것 같아 그 물건을 들고 자세히 보니 콘돔이였다. 다음 순간, 녀자의 손에서 콘돔이 떨어졌다. 콘돔은 빠져나온 다이야마냥 도르르 굴러가다 문턱에 걸려 힌들 넘어져있었다. 원체 녀자의 집에는 콘돔 같은 건 있을 수 없었다. 신혼도 아니고 임신기간도 아닌 이제 50대를 바라보며 녀자는 피임조치는 일찌감치 해놓은 시점에서 콘돔이 있다는 건 무조건 남자가 외간 녀자하고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였다. 그것도 다른데도 아닌 녀자가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자기들의 침실에서 이런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겼다는 건 도저히 그저 지나갈 일이 아니였다. 녀자가 가까스로 분을 참으며 다시 침대 안쪽에 눈길을 돌리는 순간, 그 구석에서 또다른 물건이 보였다. 녀자가 제꺽 꺼내보니 역시 콘돔이였다. 아직 비닐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여서 돌돌 말려있는데 그것이 녀자의 손에서 주르륵 펼쳐지는 것이 꼭 마치 꿈틀거리는 뱀과 같아 녀자는 이내 팍 뿌려던졌다. 콘돔세트는 벽에 맞아 아래에 널부러졌다. 한줄에 스무개라고 할 때 열개 푼히 없어진 걸로 보아 남자는 그 짓을 열번도 더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십중팔구는 어느 나이 어린 년을 집에 끌어들였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녀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사태나 다름 없었다. 적어도 자기 남편은 자기 밖에 모른다고 자처하고 있었고 세상 남자들이 다 그렇고 그렇다 해도 자기 남편만은 철두철미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위해 죽을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 됐으니 녀자는 더구나 심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음이 크면 그만큼 상처도 큰 법이거늘 녀자는 남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어느 연해도시에 세미나가 있다고 녀자가 퇴원하기 며칠 전에 출타했던 것이다. 탕탕탕! 문 두드리는 소리다. 녀자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을 인차 열어주지 않았다. 또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자는 그래도 열어주지 않았다. “여보, 안에 없소?” 남자는 소리쳤다. 했지만 아무런 응대도 없다. 남자는 가방 안에서 열쇠를 찾아 구멍에 꽂고 문을 열었다. 열리지 않는다. 안에서 잠가놓은 게 분명했다. 텅텅텅! 둔중한 소리가 난다. 남자가 짜증스럽게 발로 찬다는 것을 녀자는 안다. 이쯤에서 녀자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문을 열어준다. “귀구멍에다 개불 틀어막았어?” “개불 아니라 이건데…”   녀자는 귀에서 이어폰을 꺼내며 “음악을 듣다보니…”그러면서 남자의 가방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신을 벗고 들어온 남자는 이상해진 집안 분위기에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다. 다시 휘둘러보니 자기가 그렇게 신경 쓰던 ‘불조심’이 모조리 없어졌던 것이다. “‘불조심’은 왜 다 떼버렸소?” “오, 그거 이젠 낡아서…” “낡아도 글은 알리지 않는가?” “글은 알려도 너무 어지러워서…” 녀자는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저녁을 지어주었다. 남자는 이번 세미나에서 여차여차 많은 걸 보고 느꼈다면서 장황설을 늘어놓지만 녀자의 귀에는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남자는 출장 갔다가 어찌 빈손으로 오겠냐며 녀자의 선물을 사왔다고 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남자는 녀자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녀자는 그냥 눈을 감았다. 남자가 녀자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너무 좋아서 남자에게 매달리며 키스벼락을 안겼을 녀자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저도 선물이 있어요.” “그게 뭔데?” “눈을 감아봐요.” 남자는 인차 눈을 지그시 감는다. 녀자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뒤로 가서 남자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남자가 무슨 목걸이요?” “이건 특별한 거니깐.” “특별하다구? 어떤 건데?”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가 눈을 떠보니 그것은 콘돔목걸이였다. “엉? 이건…” 그것으로 성차지 않았다. 남자는 팬티바람에 침대에 벌렁 너부러져 자고 있었다. 언뜻 남자의 안경이 전등불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녀자는 그 안경을 당장 박살내고 싶었다. 녀자는 살며시 남자의 안경을 벗겨내렸다. 그다음, 안경에다 자기가 바르는 립스틱을 새빨갛게 발라놓았다. 그리고는 자기 눈에 안경을 걸어보고는 혼자 소리없이 실실 웃었다. 녀자가 다시 안경을 남자의 눈에 대충 걸어놓았다. 침실문을 활짝 열어놓고 출입문은 반쯤 열어놓았다. 이미 휴대폰에다 저장해놓은 소방차앰블소리를 찾아냈다. 이제 “불이야!”하고 소리치면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기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불이야!” 녀자는 크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남자가 다급히 일어나 안경을 바로 걸자 대뜸 선불 맞은 메돼지처럼 허둥지둥 하다가 날 살려라! 하고 문을 박차며 나갔다. 이때라고 녀자는 문을 닫아 안으로 철컥하고 자물쇠를 잠궈놓았다. 남자는 층계를 오르내리며 소리치다가 안경이 벗겨지는 바람에 그제야 녀자의 장난에 놀아난 자신을 느끼였다. 그러나 이미 층계에는 이웃들이 나와 있어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자기를 보고 킥킥 웃고 있었다. 남자는 급히 문을 당겼다. 열릴리 만무했다. 그렇게 남자는 녀자에게 톡톡히 당하고 말았다. 녀자는 거실에 앉아 다시 ‘베스타’를 수놓고 있었다. 텔레비죤에서는 한창 성폭력고발운동을 다루고 있었다. 연예계로부터 법조계와 군대와 스포츠, 어디라 할 것 없이 성폭력과 불륜을 다루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 녀자는 또다시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녀자는 라이타를 찾아 불을 켜고 ‘베스타’에 달았다. 불은 금세 붙기 시작하였다. 불과 불은 서로 만나 악수나 하듯 타올랐다. 녀자는 타오르는 ‘베스타’를 들고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 남자의 이불 우에 놓았다. 그리고는 자기도 이불을 들고 들어가 누웠다. 남편이 새된 소리를 지르며 화닥닥 일어나 불 붙는 이불을 그대로 감아서 바닥에 놓고 발로 밟았다. 불은 그렇게 꺼졌으나 남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미쳤냐?” 녀자는 그래도 말이 없이 송장처럼 누워있었다. “당장 정신병원에 가봐!” 남자는 집을 뛰쳐나갔다. 이틀 후에 남자가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때 녀자는 또 무엇인가 수를 놓고 있었다. 남자가 찬찬히 보니 그것은 자기의 팬티였다. 녀자가 마지막으로 매듭 짓고 팬티를 쏘파에 놓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남자는 또 한번 경악을 했다.   팬티 앞에 빨간색 실로 수놓은 글자는 ‘불조심’이였다. 연변일보 2020.3.20
3    [수필] 사모곡 (김정권) 댓글:  조회:208  추천:0  2017-09-21
수필 사모곡 김정권 어머님, 어머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벌써 1년이 되여옵니다. 그 날은 눈도 참 많이 내리고 있었지요. 오늘도 그 날처럼 눈이 내립니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칩니다. 눈보라도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나는 버릇처럼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가시던 언덕길을 걷습니다. (땅) 저 앞에는 어머님의 땅이 있습니다. 아니! 어머님을 닮은 땅이 있습니다. 회오리가 채찍을 갈겨 살가죽이 갈기갈기 찢겨진 헐벗은 가슴, 가슴은 온통 멍든 자국입니다. 겨울발길에 채워져 딱지가 더덕더덕 앉아 짓물러진 옆구리, 옆구리는 온통 욕창구뎅이입니다. 저 멍든 자국은 무엇이며 저 욕창구뎅이는 무엇입니까?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가려워도 긁지를 못하고 해동의 차거움에 묶이운 손, 일어서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고 지옥의 감발에 묶이운 발, 눈보라가 휘날려옵니다. 흉부과 의사의 눈을 빌려 엑스레이 같은 저 차거운 운무 속을 찬히 들여다보면 쇠잔한 어머님의 하아얀 등뼈, 아, 눈시울이 시려옵니다. (집) 새벽, 아버지의 한숨소리와 막내동생의 투정과 땀냄새를 한광주리 잔뜩 이고 장거리 한구석에 가서 쫑그리고 앉아 간난을 벌려놓으셨습니다. 끓어번지는 태양이 어머님의 정수리를 지져대는 정오 쯤이면 지난밤 셋째(필자는 둘째임)가 잡은 모래무치는 새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눈굽이 곪습니다. 약삭바른 쉬파리떼 윙윙 모여들어 어머님의 살점이 될 돈푼 오십전, 꽁다리연필, 정통편들을 죄다 삼켜버립니다. 해 저문 노을바다 속에 물고기 몸뚱이로 썩고 있는 어머님의 텅 빈 고기 배, 오늘 가면 물고기 배때기 먼저 어머님의 가슴이 다 짓물러집니다. 그런 어머님이셨지만 철부지 우리들은 새끼돼지들이 어미 젖을 찾듯 무작정 장 보고 간신히 돌아오신 어머님의 몸에 매달려 호주머니만 들추어댔습니다. 한배에 새끼 열마리씩 낳는 ‘굴암퇘지’, 가로등 같은 젖꼭지들이 량켠에 불빛을 환히 켜던 날이면 큰애의 고중등록금이며 넷째놈의 페결핵 약이며 막내놈의 운동화들이 불빛처럼 쏟아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가로등은 밤처럼 하나 둘 꺼져갔습니다. 어머님은 돼지의 배란이 없어져 생육기능을 잃은 줄도 모르시고 한밤 내내 끌신을 끌고 우리에 나가 훌쭉한 돼지배때기만 바라보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이셨지만 우리들은 남들이 신는 운동화를 사내라고 막무가내로 졸라댔습니다. 그 때 어머님은 무엇이나 다할 수 있는 줄로 알아버린 저희들이였습니다. 처녀였을 어머님의 가리마를 타고 올라앉은 배부른 동이에서 샘물이 찰랑찰랑이였습니다. 내 아버지의 안해로 되여서는 옹기종기 올감자들 호강시키고 배추 떡호박이 풍선같이 부풀어서 산새들 콩콩콩 널뛰기를 했습니다. 다섯 아들의 어머니여서는 돌종개가 하늘 날고 미꾸라지가 구름 안고 징글거렸습니다. 때론 배가 되고 때론 차가 되고 때론 비행기가 된 어머님의 발바닥 굳은살은 백초구 언덕길만이 압니다. (갈대) 어머님, 저 갈대밭은 왜 흐느낍니까? 언제 한번 허리를 꿋꿋이 펴지도 못하고 질곡의 굴레에 발 묶여 골수마저 모조리 진창에 이식해준 가녀린 갈대, 바람에 할퀴고 잡풀에 휘감겨 마른 뼈마디로 겨우내 지탱하여 오매불망 그 누구의 기다림만 빈 가슴에 가득 채워넣고 밤이나 낮이나 소리쳐부르다 찬바람에 허리 꺾인 갈대, 누워서도 얇은 손 헤적이다 부풀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내내 자식만을 부르던 갈대, 그대는 상기도 누굴 위해 피리를 부시는 겁니까? (침대) 어머님, 죽음을 베고 누운 생령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망을 덮고 누운 생령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구도 모릅니다. 거미줄 같은 시간 한오리를 힘없는 손에 헐렁하니 쥐고는 죽을 맥도 없는 거미 껍데기 한무더기, 빈 우물 같이 말라버린 동공에 파리새끼 앉아 똥 싸도 말릴 수 없는 마른 가랑잎 한지게, 아픔은 너무 일찍 다 아파했고 울음 또한 너무 길게 울어버린 어머님, 날숨 한줌에 생을 통채로 맡겨버린, 미라 같은 가는 입 쯤새로 새여나오는 최후의 말씀은 나는 차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꽃잎이 내 살즙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눈길을 보면서도 그저 바라만 볼 뿐 어찌할 수 없는 자식이 되여버린 나는 뭘 어찌해야 합니까? 아, 어머님! 이제 아픔과 눈물은 나의 몫입니다. 세상이 굴러떨어졌는데 눈물 한방울 떨구지 못하는 자식은 당신 먼저 죽은 몸이옵니다. (하늘) 어머님, 지금 쯤은 어느 별이 어머님의 별이십니까? 나는 매일 아침 일찍 화장터 굴뚝 근처 가로등 밑에서 아침운동을 합니다. 나는 머리를 젖히면서 하늘을 봅니다. 나의 머리 우에는 아직 가로등이 환히 켜져있습니다. 나는 가로등을 헤여봅니다. 하나, 둘, 셋! 문득 가로등이 꺼집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헤여봅니다. 하나, 그런데 그것은 달이였습니다. 나는 또 헤여봅니다. 하나, 둘! 그것은 별이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어머님의 슬픈 눈동자였습니다.   길림신문 2017-09-20                                                             
2    [수필] 나비야, 남으로 오지 마라 (김정권) 댓글:  조회:214  추천:0  2017-08-21
수필 나비야, 남으로 오지 마라 김정권 복사나무잎 한 잎 툭- 하고 어깨 우에 떨어졌다. 나는 그 잎을 쥐고 자세히 보았다. 존경하는 김선생님, 선생님께서 우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신랑: 범나비 신부: 나팔꽃 장소: 연길 동북쪽교외 (무기고 담장 북쪽) 시간: 아침 해오름이 완연할 때 청첩장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그리로 갔다. 새뽀얀 안개궁전이 마치 하늘 우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신바닥의 흙을 툭툭 털고 나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나는 사방을 휘둘러보다가 마침내 눈길은 한 곳에 가서 쏠렸다. 신부였다. 들국화방석에 앉아 나팔꽃은 신부화장을 하고 있었다. 화장사는 시원한 가을바람이였다. 바람은 먼저 지난밤 달빛이 묻은 억새꽃으로 얼굴에 연한 단장을 해주고 엉겅퀴꽃 붓으로 신부의 볼에 붉은 연지를 찍어준다. 그 다음 강아지풀로 붉게 물든 아침노을을 톡 찍어다 립스틱을 바른다. 이제 해오름이 시작된다. 동녘은 벌써 거대한 붉은 등불을 밝힌 듯 황홀하기가 그지없다. 하객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하얀 들국화, 8옆 3색의 코스모스, 노란 씀바귀, 빨간 엉겅퀴, 남색 도라지꽃(옥수수밭 중간에 재배)들이 피여서 그야말로 오색이 찬연하다. 미구하여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신부는 해살의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신부가 서있는 발밑은 쥐콩넝쿨이 쫙 깔려있어 어쩌면 푸른 주단을 펴놓은 듯 했고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작은 손으로 꽃보라를 뿌리는 듯 했으며 이편에서는 꽃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옥수수 엄마들이 화사한 웃음을 날리며 손을 흔들어주고 저편에서는 백발의 로인들이 갈대꽃손수건을 흔들어주는 듯 했다. 그뿐이랴? 하늘에서는 비둘기들이 대렬을 지어 나래를 퍼덕이며 하늘먼지를 닦아주고 입빠른 알락까치들이 백양나무꼭대기에서 꼬리를 달싹이며 저 멀리서 나비가 온다고 기별을 전하는데 엉덩이 가벼운 참새네들이 가을향기를 물어다 잔치집 마당에 사르르 뿌려놓는다. 이제 나비가 오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쪽을 보니 거대한 담장이 가로 막고 있었다. 높이는 2메터도 훨씬 높을 것 같고 담장 우로 여러 줄의 철책들이 날카롭게 가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밑에는 ‘고압 위험’라는 글자가 무섭게 박혀있었다. 나는 그만 마음이 서글퍼져 눈을 지그시 감고 꽃들의 이야기에 귀를 가다듬었다. "약 1억 4천만년 전, 우리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후에 인간들이 생겨나면서 그들은 우리들에게 '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전까지는 우리는 그저 한낱 풀의 염색체에 불과했다…" 순간 따라 나의 머리속에는 김춘수의 명시가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워낙 이 곳의 담장은 낮고 낡았는데 금년 봄부터 다시 새로 더 높이 쌓았다. 담장 밑에도 누군가가 밭을 일궈 곡식을 심었던 터였으나 담장을 다시 쌓는 바람에 심었던 곡식들이 사라졌다. 그 덕분으로 이곳엔 꽃들이 만발할 수 있었다. 나는 나팔꽃이 이처럼 많이 피여있은 것을 처음 보았다. 이전에는 그저 옥수수대에나 몇줄기씩 감겨있고 길옆에서 몇송이들만 외롭게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그러고보면 이 곳은 워낙에 꽃들의 동네였음을. 나비는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언제까지나 나비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발길을 돌리다가 다시 담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속삭였다. "나비야, 남으로 오지 마라!"   연변일보 2017-8-17
1    [단편소설] 우울증 (김정권) 댓글:  조회:486  추천:0  2015-10-15
[단편소설] 우울증  김정권 그녀의 집은 엘레베터가 있는 고층아빠트이다. 2층집 남향켠의 창으로부터 부서져내리는 하얀 달빛으로 침실은 유난히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때아닌 10월초의 싸늘한 날씨와는 달리 아담한 침실은 마냥 포근하다. 그 창문밑에는 시몬스쌍침대가 널직하게 자리잡고있고 침대머리에 놓인 결혼사진액틀에서 례복 입은 남녀가 다정하게 웃고있다. 맞은켠 벽중심에 부착되여있는 텔레비죤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힘있게 울려나오고있었다. ―어제저녁, 초중 2학년에 다니고있는 한 녀학생이 12층 옥상에서 투신하여 숨졌다… 우진이는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창에 반사되여 은은히 빛을 뿌리는 달빛이 하도 눈부셔 고개를 들어 창켠을 넋없이 바라보다가 그 귀동녀를 발견했다. 귀동녀란 다름 아닌 인형이였는데 우진이가 임신하자 녀동생이 언니의 임신을 축하하여 선물한것을 오늘 아침 습기가 있는것 같아 창턱우에 놓아두었던것이다. 귀동녀는 창턱우에서 두손을 뻗치고있었는데 반사된 달빛이 애된 조막얼굴에 흠뻑 뿌려진 그 모양이 마치 창밖의 둥그런 달을 탐내는듯했다. 후― 어쩜… 우진이는 눈부리가 찡하게 솟구치는 감정을 서서히 삼키면서 사뭇 입밖으로 터지려는 《귀엽다》는 말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그녀가 코끝이 찡하도록 감동한것은 귀동녀의 빚은듯한 외형에서만은 아니였다. 그것은 그 조그만 몸에서 뿜어지는 그 무엇인가를 그렇듯 절절하게 갈구하는듯한 분위기라 할수 있었다. 참으로 희귀하게 귀동녀로부터 받은 서글픈 감동은 암울한 자기 천착으로부터 서서히 몰입되면서 우진이는 거듭 한숨을 길게 뽑아낸다. 20여년전의 애시적에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했던 순간이 새삼스레 떠오르면서 달을 찾는 귀동녀의 그 모양에 또 한번 가슴이 뭉클했다. 어쩌다 자기 인생의 절정은 벌써 예고도 없이 어느새 내리막길에 이르러 있는것인지 스스로도 비참해지는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심히 억울하다는 느낌이 자꾸자꾸 엄습해왔다. 분명히 집어낼순 없지만 그러나 억울한 감정과 울분이 동반되여 가슴속에서 쉼없이 솟구치기 시작한것은 그처럼 다정다감하던 남편이 사장으로 발탁된 1년만인 바로 넉달전부터라고 할수 있었다. 바로 우진이가 임신 두달째부터 신경이 극도록 예민해진셈이다. 결혼해서부터 여태 그토록 자상하던 남편이 임신 두달되는 그 즈음에 경악할만큼 철면피하게 나옴으로써 우진이의 정서파동은 눈에 뜨일만큼 경화되여있었다. 다만 자기 불안증의 원인이 우울증과 남편의 탓이 아니기를 바라고픈 그녀의 리성과 의지가 앞섰을뿐 솔직히 이즈음 그녀의 감정은 거의 붕괴의 변두리에 처해있었다. 남편의 외딴 녀자가 자기 울타리를 전혀 개의치 않는듯한 피해의식까지 가진적도 있고 언젠가 자기가 밀려나야 된다는 불안한 예감까지 군림했다. 따라서 우진이의 불안은 또 다른 형태인 신경문란과 범벅되여 실제 나날이 격화됨과 동시에 때론 침실벽만 마주하고있는 모습이 마치 식물인이 된듯했다. 남편이 리혼이란 반기를 들고나온지는 우진의 배속아이가 제법 움직임을 알리는 한달전이였다. 그같이 무서운 말이 언제든지 남편의 입으로부터 터져나오리라는 예감은 미리 못한건 아니지만 정작 임신된 몸으로 당하고보니 우진이는 아빠트의 천정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우리 리혼하지?》 《?》 《나 이제 당신과 감정이 없어.》 《당신의 아이가 저의 배속에 있어요.》 《떨궈버리라구!》 《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드디여 폭발직전으로 치닿은것은 그 이튿날 점심녘이였다. 우진이는 기어이 터지려는 원색의 감정을 혼신의 힘으로 가까스로 억눌러 남편앞에서 끝까지 의연하고싶었다. 그러나 심층은 남편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로 극도의 혼미속에 잦아들어 현훈증을 일으켰다. 화근은 우진이의 남편인 강사장의 외도이지만 그러나 그보다도 애된 녀비서의 의도적인 대담한 행위의 도전을 직감한 그녀는 자신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원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우진이는 정확히 열한시 오십분에 자기 집문을 열었다. 우진이가 미처 신을 벗기도 전에 남편이 욕의를 걸치며 욕실로부터 나오고있었다. 우진이의 눈길은 본능적으로 남편에게 집중된 동시에 다른 한 라체에 얼핏 스쳐졌다. 《누구지요?》 우진이의 음성은 웬만히 날이 서있었다. 《직접 들어가 볼거지. 그럼 모든걸 알수 있잖아?》 남편은 오히려 격한 음성이였다. (이런걸 가리켜 〈적반하장〉이라 하는가.) 《남자는 아니겠지요?》 《그래 녀자야.》 《어떤 녀자지요?》 《직접 보라고 하지 않았어?》 《안녕하세요?》 《?》 녀비서였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는 못으로 양철문을 긁는듯한 바이브레이션이였다. 타올을 달랑 감고 우진이의 앞을 스쳐지나는 그 모양새는 부끄러움이란 도무지 찾아볼수 없고 오히려 슈퍼모델인양 도고함을 자랑하는듯했다. 우진이는 형언키 어려운 충격으로 강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망측스럽다는 느낌외에는 당분간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완전히 배반을 당했다는 느낌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안겨들었지만 우진이는 신경문란으로 인한 자신을 학대하고싶지 않았고 더구나 자기 생명이상으로 간주해온 배속의 아이를 위해 모든 분노와 원망과 저주를 다 눌러버리리라 작심하고 눈을 질끔 감으며 뛰다싶이 다른 침실로 달려들어갔다. 눈물이 좔좔 흘러내렸다. 그녀는 울음소리를 참느라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앞에 별찌같은것들이 마구 날아다니다가 다시 새까매지기도 했다. 깨문 입술사이로 흐느낌이 자꾸 새여나왔다. 그녀는 이불을 마구 뒤집어썼다… 빚은듯 아름다운 귀동녀가 우진이의 시선에서 사라지면서 그녀의 가슴의 동공은 더욱 확대되고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났다. 따르릉… 집전화기가 세번 울렸다. 《여보세요.》 《저… 강사장댁이지요?》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바이브레이션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강사장 비서예요.》 《?》 순간 그녀의 눈앞으로 쓰나미가 몰려오는듯했다. 《무슨 일이세요?》 우진이의 음성은 떨리고있었다. 《강사장 지금 저의 침실에 있어요.》 《……》 《남편을 좀 혼내줘야 될게 아녀요?》 《어떻게 혼내주면 될가요?…》 《방법을 대야지요.》 《무슨 방법을요?》 《가장 좋은 방법은 리혼하는거지요.》 《그건 그쪽 생각이지요.》 《강사장의 의도이기도 해요. 이 전화도 강사장이 시킨거니깐요.》 툭! 전화줄이 끊어지고 전화기가 바닥에서 박살이 났다. 일신에 오한이 엄습해왔다. 다리맥이 탁 풀린 우진이는 다시 쏘파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넋이 나간듯 맞은켠 벽만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혼돈의 늪으로 가슴이며 머리통이며 육신은 전부 파편쪼각으로 폭발되여 부서지는것만 같았다. (어쩜 이럴수가…) 우진이는 히스테리적으로 고개를 휘저으며 입술을 움직거렸다. 《불쌍한 얘야, 나의 몽순아!》 우진이는 배속아이 이름을 《몽순》이라고 벌써 지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그녀의 인생엔 몽순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기의 생명이상으로, 그녀 생의 전부라고 할수 있었다. 남편의 외도가 잦으면 잦을수록, 안해에 대한 남편의 박대가 크면 클수록 모성애는 더더욱 깊이깊이 가슴속에 뿌리내렸다. 귀여운 몽순아: 이제 엄마는 너 하나뿐이야.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엄마야! 까짓 아빠같은건 없어도 괜찮아! 엄마가 있잖니? 엄마는 너만을 바라보고 사는거야! 너는 나의 생명, 아니! 나의 생명이상으로 귀중한 존재야! 이렇게 우진이는 몽순이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목구멍으로 꽉 차오르는 수많은 말들을 되삼키면서 두손으로 불룩한 아래배를 만지며 천천히 일어섰다. 오로지 배속아이만이 삶의 힘이였고 원천이였다. (너만을 위해 사는 엄마야!) 우진이가 귀동녀를 다시 보았을 때는 달은 이미 창밖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귀동녀는 이미 지나간 달을 그냥 쫓고있었다. 《몽순아, 너 왜 그러고있니?》 《엄마야, 달이 달아났어. 빨리 저 달을 붙잡아줘.》 《얘야, 그 달은 이젠 못 붙잡는다. 너무 멀리 갔어. 멀리 갔단 말이야.》 《싫어! 난 달을 가질래.》 《아니야! 래일 아침 달보다 더 밝은 해가 있단다. 해와 같이 있자꾸나.》 《아니야! 난 해도 가지고 달도 가질래. 달이 없으면 밤은 너무너무 어두워. 어두운 밤은 난 싫어!》 《얘야, 네 말처럼 세상의 일은 그렇게 다되는게 아니야!》 《엄마가 안 주면 나절로 쫓아가서 가질래!》 《엉? 몽순아, 안돼!》 우진이는 임산부답지 않게 몸을 날리며 바람같이 창턱을 넘어섰다. 우진이가 오른팔에다 깁스를 하고 오른쪽 눈귀에 거멓게 딱지가 앉은채 병원입원실을 나와 휴계실로 향하고있었다. 추락사고가 있은지 꼭 열흘만이다. 다행히 2층이다보니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그녀는 상처의 아픔보다 더 아픈것은 마음 한복판이였다. 남편이란 사람은 그때까지도 병원문 언저리에도 얼씬하지 않았다. 우진이는 금세 말초신경이 폭발할것만 같았다. 그녀는 처절한 배신의 그물을 뒤집어쓰고 몸부림으로 절규하고있었다. 그녀는 벼랑가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히스테리적으로 중얼거린다.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았을 때 생명은 더는 존재의 가치에 매달리지 않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았을 때 생명은 더는 존재의 리유에 갇혀있지 않는다. 가치는 잃은자들의 배반이고 리유는 얻은자들의 믿음이다. 발버둥은 우주의 얼굴에 슬픔을 더하고 축이 없는 회전은 추락의 날개를 적신다. 휴계실에는 환자 몇이 앉아 텔레비죤을 보고있었다. 우진이도 걸상에 앉아 텔레비죤에 눈길을 주었다. 무시무시한 뉴스가 방송되고있었다. 얼굴은 다 감싸고 두 눈만 판들거리는 괴한들이 일본인 인질을 꿇어앉히고 세상에 공개하고있었다. IS테러조직이라고 하는것 같았다. 그녀는 인츰 눈길을 돌렸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당신 어디야?》 그 소리가 얼마나 높았던지 저쪽에서 텔레비죤을 보던 환자들이 눈을 마주쳐오고있었다. 《나 병원이지 어디겠어요?》 《뭐야? 상기도 병원에 있어? 원체 죽자고 뛰여내린 사람이 아니였구만 뭐?.》 《당신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말이든 소든 퇴원하는대로 리혼도장을 찍으란 말이야. 알았어?》 … … 텔레비죤에는 이스라엘 폭격에 층집이 무너지고 숱한 사상자가 쓰러져있는 화면이 피비리게 터져왔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배에 손을 얹었다. 배가 또 아파오기 시작했다. 《몽순아, 이런건 못 듣고 못 본걸로 한다. 알았지?》 《이미 다 듣고 다 보았는데 어떻게 되돌릴수 있어요?》 《아니야! 넌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었어. 얘야, 저기 창너머를 보려무나. 라일락이 곱게 피면서 그 향기가 밀려오는구나.》 《나에게는 다 화약냄새 같은데요.》 《아니야! 저건 확실한 꽃이야! 그리고 향긋한 냄새고… 너 아직 세상에 나와 보지 않아서 모를거야. 꽃이 피는 세상은 참 아름답거든.》 《꽃이라는것도 아빠, 엄마가 있는게 아니예요?》 《그건?…》 《잘 모르긴 하겠지만 꽃이라는것도 아파서 피는걸거예요. 저는 여기서도 걔네들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것이 빤히 보이거든요.》 《얘야, 너 어쩜 벌써 그런 말을 할수 있니? 그런 말은 너희들이 하는게 아니지. 너희들은 좋은것만 보고 아름다운것만 봐야 하는거야. 그러니 어서 빨리 나오거라. 나와서 우리 꽃구경 가자구나. 꽃놀이 가자구나.》 《아니예요. 전 안 나갈거예요.》 《아니! 너 그건 무슨 말이냐?》 《전 인간세상에 나가기 싫어요.》 《엉? 어쩜 그런 소리를 하니? 엄마에게 제발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지 말거라. 엄마는 너 하나만 믿고 버티는데.》 《죄송해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러니깐 방금 한 말은 취소! 그렇지?》 《그렇게 할수 없어요. 저는 세상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을 단단히 굳혔거든요.》 《아니야! 그건 너무나도 불운한 생각이야. 세상에 나오면 엄마의 배속보다 더 따뜻한 가슴이 있는거야. 엄마는 그런 가슴으로 너를 꼭 안고싶은거야. 그것이 또 엄마의 행복이기도 하고…》 《엄마의 행복을 이뤄주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그럼, 용서하지 못하지. 못하구말구. 그러니 어서 나올 준비를 해야지. 그안에서 오래 있을수도 없는거야. 때가 되면 나오기 싫어도 나와야 하는거야. 그러니 이왕 나오는바 하곤 깨끗하고 밝은 얼굴로 나와야지. 안 그래?》 《엄마, 이제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저같은건 원래 없었던 아이로 생각하세요!》 《아니! 몽순아! 태줄은 왜 목에 감는거야? 엉? 안된다! 어서 풀어라! 어서!》 《우리 몽순이를 살려주세요! 우리 애가 목을 매고있어요.》 삽시간에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휴계실을 메우고있었다. 우진이는 계속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텔레비죤화면에는 잃어버린 아이를 찿는다는 광고가 또다시 뜨고있었다. 길림신문 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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