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zhengquan 블로그홈 | 로그인
김정권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20 ]

20    달개비(외5수) 댓글:  조회:114  추천:0  2022-08-23
달개비(외5수)   김정권   아기야 고운 아기야 엄마가 어제 밤 무얼 만들었는지 아느냐   어제 밤 엄마는 우리 아기옷 만들었다   자작나무 가지 사이 쏟아지는 달빛을 별찌로 떠서 저고리 하나 만들었다   가슴만 살짝 가리고 노란 달맞이꽃술로 고름 달았다   아이구! 요 발길질, 얼렁 나와 입어볼라나   치마는 아직 안 만들었어 그건 사뿐사뿐 걸어 다닐 때 엄마가 모메꽃으로  만들어 줄거야     굴렁쇠    내가에 비낀  할아버지 허연 수염이  거꾸로 휘날린다   포장길로 자동차는 앞으로 달리지만 바퀴는 뒤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굴렁쇠 안에서 할아버지의 할매가  소리친다   얘야, 그만 뛰어라 배 꺼진다     짝사랑   해가 노을보자기에  흰 구름 싸들고 종일 달 만나러 갔다   가다 가다  배가 고파 보자기를 풀어보니 멧던 점심이 아니였다   달의 쟁반에 들어가 익은 별은 저 멀리에 있는 남의 도시락이였다     접시꽃   대체 하늘에  무슨 빚을 지었기에 저리도 벌건 다발을 받쳐 올리는가   꼭 마치 노을을 도둑질하다 들킨 아낙처럼 있는 보따리를 죄다 풀어놓고 변명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저걸 보송보송 펴놓고 달의 해산에 포대기를 깔려는건가     손님   밭일 나간 아버지는 집에 올 때면  꼭 손님을 달고 온다   마당에 와서 옷에 묻은 어스름을 툭툭 털 때 벌컥 열린 문으로 달이 제 먼저 들어온다   그것도 모자라 멀건 국사발에 입을 대고 간을 본다     떨켜   새끼들 여러마리 꽃잎처럼 달라붙어 푸른 삶을 파먹었다   나를 피우기 위해 살을 내놓았던 저 무흔의 가슴,   꽃잎 떨어져나간 련꽃대를 보아라   꽃을 다 올리고는 이제야 비로소 꼭지를 내리는 저 무언의 피날레   피는 속으로 다 떨구고 살청에 목을 내린 저 위대한 부패에 노을아, 너라도 와서 칠성판을 깔아라   (2022년 8월 19일) 료녕신문  
19    [시] 머리짐(외5수) 댓글:  조회:121  추천:0  2022-08-12
머리짐(외5수)   김정권   처녀였을 엄마의 가리마를 타고 올라앉은 배부른 동이에서 샘물이 찰랑 찰랑 찰랑이였다   내 아버지의 안해로 되여서는 옹기종기 올감자들 호강시키고 배추 떡호박이 풍선같이 부풀어서 산새들 콩콩콩 널뛰기를 하였다   다섯아들의 어머니여서는 모래무지가 하늘 날고 미꾸라지가 구름안고 징글거리였다   때론 배가 되고 때론 차가 되고 때론 흑구름이 된 엄마의 발바닥 그 굳은살은 길청령 령길만이 안다     엄마의 돼지   한배에 새끼 열마리씩 낳는 굴암돼지 가로등같은 젖꼭지들이 량켠에 불빛을 환히 켜던 날이면 큰애의 대학등록금이며 둘째놈의 페결핵약이며 막내놈의 운동화들이 불빛처럼 쏟아졌다   언제부터인지 가로등은 새벽별처럼 하나 둘 꺼져갔다   엄마는 돼지의 배란이 없어져 생육기능을 잃은 줄도 모르시고 오늘도 끌신을 신고 우리에 나가 훌쭉한 돼지배때기만 바라보신다     얼굴들   -40년전 동학회에 부쳐-   삶의 거친 붓이 먹물 아닌 비바람을 묻혀 써놓은 일기장들을 누가 보았는가 줄무늬보다 가로 세로 패운 웅덩이가 더 깊은 골짜기들을 누가 보았는가 그 옛날 저 푸른 하늘에 띄우던 가슴 부푼 꿈들이 지금은 흰 서리발로 흘러내려 일기장의 여백을 물들였음을 누가 보았는가 비록 손끝에 침 발라 번질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 확연히 매만질수 있는 그 많고 많은 보이지 않는 사연들은 땀과 눈물이 끈적거리는 풀이되여 차곡차곡 접혔음을 누가 보았는가     가체(加髢)   암수가 몸을 꼬아 죽어서도 풀지않는 흑사(黑蛇)의 불멸의 신념   영원에 가까운 검은 후광에 불빛이 번뜩이는 찬란함은 영겁의 흙에서 빚어진 해솟는 동방의 사미인곡   그 흑안(黑暗)의 허접에서 옥화(玉花)가 이슬처럼 피여나고 오천년의 향기가 풍겨오는 것은 령(靈)과 혼(魂)의 발효된 숨결   그 사생(死生)의 기품은 처연히 까아만 하늘서 별같이 빛난다     머저리   어떤 사냥꾼이 말하더라 꿩이 제일 머저리라고, 꿩은 한 짝이 총알 맞으면 다른 짝은 달아나는 게 아니라 죽은 짝 곁에서 멍해 있다가 결국엔 그놈도 총에 맞아 마저 죽고 만다고 꿩은 그렇게 자기 짝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 목갈리게 울음을 울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미물 그렇다면 꿩은 짝이거나 혹은 새끼거나 하는 죽음앞에서 왜 같은 죽음을 택할까 아마 꿩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리별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닌지 나는 과연 어떤 죽음 앞에서 그같은 머저리가 될수 있을까       첫눈   누가 저것을 이 땅에 소환 하는가   저 높은 곳에서 뛰여내릴 때 정녕 아무런 미련도 없었단 말인가   하얗게 내려오다 추락의 향연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꽃살로 터지면서 자살의 진실을 만끽하는 존재여   달의 부탁을 받고 별을 대신해 어둠벽에 써갈긴 하얀 령혼들이 글씨되여 떨어지는 건 아닌가   저 글씨는 아마 날개 잃은 천사들이 하늘나라에도 어둠이 있고 차가움 있고 순간과 영원속의 눈물이 있다고 몸짓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저것은 하얗게 하얗게 녹아서 젖어서 혼백이 내 꿈밭을 적시는 눈물임에   (2022년 7월15일 연변일보)  
18    하얀 옷고름 (외 4수) 댓글:  조회:268  추천:0  2022-05-06
하얀 옷고름 (외 4수) 김정권 옥빛 꿈 동여 어머니 가슴에서 휘날릴 제 결 고운 눈발이였다   올곧은 사랑 고이 접어 가슴에 얹어두면 님의 숨결 붉게 익어 느닷없이 달궈지는 얼굴, 그 얼굴, 고름으로 가리였다는 청새골 새악시   사과배 꽃밭 속에 하롱하롱 꽃잎 내리면 흰구름 먼저 꽃인 양 고름에 스치고   억새밭 속에 살랑살랑 바람이 일면 해살이 먼저 고름끝 잡아 새빛 감고   첫날밤이 아니고선 절대로 남자의 손끝 같은 건 기다리지 않는 올곧음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이슬 맑은 물방울에 푸른 하늘 얹어놓고 해살 눈부시게 날려라   그것이 고전적인 삶만이 아니라도 우리의 오래된 녀인의 옷고름인 양 우리의 강산에서 우리의 가슴에서 기발 되여 펄펄 날려라.     흰   한 세월 가도 원색이 변하지 않는 저 아리랑 한 고개에 조명사여, 저기에 빛을 주어라   두만강 푸른 물에 맑게 씻어서 안개 속의 구름나무에 걸어놓은 저 흰 무명적삼을 그대는 보는가   저기에 스며든 두만강 전설을 읽는 진달래의 꽃말을 그대는 듣는가   저것을 입고 춤추는 몸짓 속 천추의 흰 뼈가 부시돌 쳐, 불꽃 켜드는 소리   저기를 비추면 깊이 박힌 뿌리의 언어들 흰옷 스쳐 여울치나니 빛이여, 너 저기에 머물러주면 안되겠느냐   저 흰 것의 가슴에 혼불을 달아주어라.     두만강 물새   물을 보며 물가에서 우는 새 흐르는 물에 무어라 너 울음 보태는 까닭은   이른새벽 갈잎에 초생달 걸려 시린 바람 버드나무 등허리에 매달릴 때 피나는 목을 강물에 헹구지도 아니하고 죽음을 말려 부르는 시묘살이 새 어차피 너 아니 울어도 진달래는 피를 토해 여윈 꽃잎 물에 띄웠을 제 달빛 오히려 마음 둘 곳 없어 구름 뒤에 숨는다   아니 울고는 차마 못 견뎌 천리 울음에 젖 부른 당나귀 얼넝 울음 긴 듯 멈추면 한된 네 울음 강물 우에 흘러라.     꽃 길   꽃잎이 지다니 꽃잎은 무엇하러 지는가   필 때는 내 머리 우에서 구름처럼 피더니 무어라 지고 나서 내 발밑에 눕는가   마른 꽃잎 밟혀 소리라도 내면 그것이 꽃의 울음인 줄 알겠다만 진다는 소리도 없이 간다는 내색도 없이 아침이슬 연지 발린 살결 아직 지워지지도 않은 너 새색시의 볼살 같은 촉촉함이여,   넌 밟아도 괜찮으니 어서 나를 즈려밟고 가옵소서 하는 듯하다만 내 버선발에 무슨 저주가 붙어 너를 밟으라는 거냐   아아, 나는 못 밟아 너를 밟고는 차마 못 가겠으니 떨어져 할딱이는 꽃잎아 차라리 나를 공중부양이나 시켜라   꽃잎이 지다니 꽃잎은 무엇하러 또 지는가.     시는 아프다   이제 시에 아름답다는 말은 하지 말자 시는 아름답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목판화의 붉은 피줄에서 칼날이 피물 번지는 파도 대리석의 검은 평면이 드릴에 갈리는 소리   그 속에 하나씩 하나씩 흰 살점 패인 이름들   그 어느 한곳인들 뼈속 저린 통증 없으랴   열 오른 꽃들의 작은 이마 속창아리 뽑힐 듯 칵칵!! 토해내는 어린 새들의 기침   그 어느 한가진들 연고 없는 아픔 있으랴   산은 언제나 가슴에 무덤을 안고 강은 언제나 등에 슬픔을 지고   시는 언제나 목구멍에 가시를 박고. 연변일보 2022-05-06
17    기 발 댓글:  조회:198  추천:0  2021-12-17
기 발 □ 김정권 한포기 모시로 자랄 땐 이 같은 성이 따를 줄 몰랐다 한꼬치 누에로 껍질 벗을 땐 이 같은 이름 붙을 줄 몰랐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 이 땅의 거친 아버지 손들에 나는 뼈를 키웠고 나를 나답게 이끌어준 이 땅의 여문 어머니 손끝에 나는 피줄 얽었다.   1   일찌기 나의 이름을 누가 불러주었던가 나는 안다 이름이란 참 숭고한 것이란 것을, 그 이름으로 세상을 향하여 가슴 터지도록 소리 지르고 싶었던 이가 있었다면 그는 자기의 이름 앞에 먼저 어머니 ‘조국’이라 말할 것이다.   2   내가 있어 조국이 있은 게 아니고 조국 있어 내가 있은 게라 할 때 조국과 나는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단 하나, 신념이 살아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념이 살아있다는 것은 마음의 집이 있고 등허리 기댈 기둥이 있고 창을 열면 바라볼 수 있는 아침해가 있고 마음껏 하늘을 우러를 수 있는 저녁 별들이 있어 남의 집 구들에 누워도 두 다리를 쭈욱 펴고 잠을 잘 수 있기에 그토록 감사할 수 있음이 아니겠는가. 3   달빛이 문풍지에 기댄다 돌쩌귀 쯤새로 새여나오는 달빛이 호롱불을 만나 오리오리 실타래를 뽑아 올린다 올올이 뽑아지는 것은 달빛만이 아니다.   4   달물레가 돌아간다 살그랑 살그랑 돌아간다 올올이 올곧게 꼬아져 실이실이 감기는 것은 명주실의 매끄러움이기 전에 이 땅의 청순한 새악시의 입귀로 새여나오는 미소이다.   5   어머니는 짠다 기쁨을 짠다 지아비의 볼을 만지던 손으로 내 새끼의 앞날만 바라던 가슴으로 해빛을 섞어 달빛을 섞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고운 숨결을 호륵호륵 불어넣어 이 세상 가장 위대한 ‘이름’을 짠다.   6   룡두레우물에 다시 씻어서 진달래꽃물로 정히 달여서 붉은 물 들어번진 저것을 누가 버드나무 빨래줄에 널어놓았는가 저것을 바라보는 이여! 당신의 가슴은 안녕한가? 순정은 단풍과 같이 익어 사스레나무의 무릎에 젊은 피를 괴이고 결 고운 무늬에 새가 울어 드뎌 새별이 뭇별들 데리고 와서 호적을 옮겨 문패를 달았다.   7   엄마 별이 아기 별들 이끌고 하늘서 내려오던 날 려명은 밝아와 동방의 하늘을 진붉게 물들였어라 저기에 스며든 바람의 노래는 국화꽃망울 이슬 헤쳐 태양의 마중물 되여 천혜의 생명수를 길어올렸어라.   8   참, 너를 바라만 보아도 눈시울이 젖어드는 건 무엇 때문인가 손에 만지면 가슴이 떨리고 가슴에 대이면 심장이 불꽃 튀고 펼치면 동방의 홰불로 타오르는 아, 너 아시아의 불씨여! 억만의 가슴에 달아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별처럼 령롱한 세기의 빛발이여!   9   누구던가 저것의 이름을 빌어 이 강산을 피물 만들어 백화만발의 꽃의 가슴에 대못 박던 죄악의 쇠몽둥이는   아팠어라! 찢어지는 살점에 울었어라! 터져나오는 눈물에.   10   너는 보았다 그리고 절규했다 물이 아니라고 물감도 아니라고 화가여, 피로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피물로 그린 그림은 아무리 아름다운 향기일지라도 그것은 피비린 상처일 것임에 아픔이고 눈물일 것이다 피에 눈물이 섞이면 피눈물일 것임에 피는 눈물도 아니요 비물도 아니다 오 화가여! 보는가 하늘을 등에 업고 허리 꺾인 저 아낙네의 저고리고름이 갈라터진 세기의 땅 달구지에 어푸러져 끌려가는 마른 옥수수잎처럼 스쳐가는 것을 당신은 차마 보고 있는가   눈가루도 아니다 달가루도 아니다 화가여, 살로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살가루로 그린 그림은 아무리 진실한 나무일지라도 그것은 아픔이 배인 살갗일 것임에 통증이고 고뇌일 것이다 뼈에 살이 붙으면 골육일 것이고 피에 살이 붙으면 혈육일 것이다 오 화가여, 보는가 고향 잃은 나그네가 피멍 든 저 시퍼런 얼굴로 하늘 중천에 걸린 달을 쳐다보며 짝 잃은 노루처럼 흘러나오는 탄식이 오열하듯 구름에 스쳐가는 것을 당신은 차마 보고 있는가 피는 생명이다 그리고 목숨이다 이제 다시는 피비린 그림은 그리지 말자!   11   하지만 검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건 잠시 뿐, 이제 하늘은 푸르르게 열려 세상은 한집안이 되였다 새가 부러우랴 물고기가 부러우랴 하늘도 바다도 춤을 추듯 온통 우주의 가슴에 꽃물 들인다.   12   날린다 저 눈부심에 노을이 출렁인다 저기에 울어제끼는 닭이 있다 55개의 알을 품고 동방의 궁주리에 높이 앉아 마냥 하늘의 비상을 향해 한밤내 그렇게 꿈을 꾸었나 보다   오천년의 력사를 가슴에 오롯이 품고 창공을 솔개처럼 날아서 찬란한 별들을 쪼아 휘뿌리려고 그처럼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나 보다   그 꿈이 농익어 망울을 터뜨릴제 21세기의 령마루에서 마침내 ‘신주’라는 명찰을 달고 달의 하얀 가슴에 안기려나 보다   아, 거룩한 중화의 령혼이여!   한마리 영계로 지귀 백년의 아침을 울자! 연변일보
16    '그 어느 별의 무덤엔들 꽃이 피지 않으랴' (외 2수) 댓글:  조회:167  추천:0  2021-08-25
[한국 제5회 윤동주문학상 대상 작품]    '그 어느 별의 무덤엔들 꽃이 피지 않으랴', 외 2수 김정권       저기 저 별은 무슨 꽃인가 별을 헤다 별에 간 꽃 보지 않아도 보이는 꽃, 눈을 감고 입술 한번 대여보라 아직 식지 않은 열망 네 몸은 타서 숯이 되어 다시 뜨거운 불길로 타오를 때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아픈 가슴 아픈 무덤으로 피여난 천상의 꽃 새들이 노래하리라 저 하늘무덤 앞에 핏갈 번진 두견새 울음 한점 얹어놓으리라        북간도를 아십니까        혹 밤이 어두워 길을 모르시겠거든 별이 밝혀줄 겁니다 길을 걷다 발목이 뜨거우시면 두만강에 휘휘 적시시고 북으로 북으로 내처 오시다가 컬컬하면 용이 날아올랐다는 우물에 목을 추기시고 다시 고개 들어 하늘 보시면 거기에 동주의 눈동자같은 별이 있을 겁니다 별이 된 북간도의 눈동자 그 별에 스치우는 시 그 불멸의 시는 지금도 펄펄 살아 하늘을 부끄럼으로 물들이고 있을 겁니다         소년과 별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하늘의 별을 가지고 싶었다 소년은 매일 밤마다 민들레동산에 올라가 별을 따는 꿈을 꾸었다 어느 밤, 하늘에서 끝내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년은 막 달려갔다 소년이 간 곳에 민들레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소녀에게 별을 달라고 했다 그 별은 자기의 별이라고 했다 소녀는 너의 별이 왜 나의 가슴에 들어왔냐 하며 시치미를 땄다 소녀는 민들레꽃을 꺽어 소년에게 주면서 별이라 했다 훗날 소년은 소녀의 가슴에서 자기의 별을 찾았다   프로필 연변 왕청현 출생, 연길시문예창작실 주임 2007년 연길시문화관 창작원, 현재 국가1급 극작가. 주요작품 중단편소설 등 20여 편장막극 3부소품 등 100여 편소품 '조선족고급중학교과서'에 실림김정권소품집 출판장편동화 소년아동 연재(2012), 출판,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연속방송극으로 각색국가급 4차 성급 20여차 주급 30여차길림성장백산문예상 1차진달래문예상 3차2014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수필상)2015년 연변문학 문학상(시 부문) 그 어느 별의 무덤엔들 꽃이 피지 않으랴   동북아신문  
15    (단편) 불조심 댓글:  조회:226  추천:0  2020-08-07
“불이야!” 아빠트 사람들이 몰려와 웅성거릴 때 소방차도 빨간 눈을 켜고 앵앵거리며 들어섰다. 다행히 남자와 녀자가 ‘흑인’으로 변한 시점에서 불은 꺼졌던 것이다. 사달은 다름 아닌 녀자의 건망증에서 생겼다. 액화가스를 켜놓은 채 욕실에 들어가 샤와를 하다 나니 주방에 불이 붙는 것도 까맣게 몰랐고 남자 역시 엊저녁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으로 침실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못한 무렵이였다. 그래도 먼저 발견한 사람은 남자였다. 불시에 그을음냄새가 나기에 눈을 떠보니 이미 눈앞은 연기로 꽉 차있었다. “불이다!” 하는 소리에 욕실의 녀자도 새된 소리를 지르며 욕조에서 뛰여나와 욕실문을 벌컥 열었다. “물 물 물…!” 남자가 소리쳐도 홀랑 벗은 녀자는 우두망창이 된 채 멍해 있기만 했다. 급해맞은 남자는 제꺽 대야를 집어들고 욕조에 물을 퍼서는 주방으로 달려가 불 붙는 벽에 퍼억 뿌려던졌다. 그제야 제 정신이 든 녀자도 알몸이고 뭐고 다른 대야를 들어 물을 퍼 날랐다. 다행히 주방은 도자기타일로 장식되였기에 그나마 불은 십여분 만에 제거할 수 있었다. 탕탕탕!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옆집 남자였다. “어마나!” 녀자는 얼굴을 싸쥐고 급히 침실로 달려들어갔다. 그번의 ‘불사건’이 있은 후 녀자에 대한 철저한 단속이 진행되였다. 남자는 각별한 주의를 주기 위해서는 그저 말로만 그치는 수준이 아니였다. 다시말하면 ‘문건시달’이라 할 수 있었다. 첫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액화가스 스위치를 확인한다. (저녁에 눈을 감을 때도 점검한다) 둘째, 액화가스를 켜고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오줌 마려워도 참는다) 셋째, 액화가스를 끄고 다시한번 돌아본다. (두번, 세번도 좋다.) 넷째, 목욕하다가도 나와 가스를 관찰한다. (비누 발린 몸이래도 상관 없다) 주* : 밥을 짓다 절대 돌아서서 방귀를 뀌지 않는다. “방귀는 왜 못 뀐다는 겜까?” “방귀에도 불이 붙는단 말이요.” 이건 무슨 어애 방귀 뀌는 소리도 아니고, 남자는 방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소학교 다닐 때 한 개구쟁이가 방귀에 불이 붙는지 궁금해서 성냥을 그어 실험했는데 정말로 불이 붙더란다. 그러면서 방귀도 가스니까 불이 붙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여 설명해주었다. 아울러 특별히 강조하기를, 첫째도 불조심, 둘째도 불조심, 셋째도 불조심, 넷째도 불조심이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주방은 물론, 화장대, 목욕실, 각 방문마다 커다랗게 ‘불조심’이라고 써놓고도 성차지 않아 자가용과 남자가 즐겨가지고 다니는 텐트에도 어김없이 써붙였다. 뿐만 아니라 매일 그것들을 ‘좌우명’으로 삼으라고 닥달질이였다. 하긴 크게 실수를 한 탓으로 간이 곤두박질치듯이 놀라마지 않은 녀자는 남자의 말이 곧 법이고 무조건 집행이였다. 이쯤에서 녀자는 남자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구태여 ‘좌우명’에 대한 유래까지 구구히 늘어놓는다.   어느 날, 중국의 대학자인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제나라의 이름 난 재상이였던 황공의 묘당을 찾았단다. 묘당에는 환공이 살았을 때 보던 책이나 입던 옷, 사용하던 물건들이 쭉 진렬되여있었다 한다. 공자는 그 물건들 가운데 반쯤 기울어져있는 술독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단다. 그 술독에는 ‘좌우명’이라고 쓰여져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하구나. 보통 그릇이나 술독은 똑바로 서있게 마련인데, 이렇게 기울어져있다니!” 묘당을 관리하던 사람이 공자의 말을 듣고 자세히 설명했다. “환공께서는 이 술독을 늘 가까이 두고 아끼셨습니다. 이 술독에 술을 부으면 반쯤 찼을 때, 저절로 똑바로 서지요. 그러다 술이 가득하면 다시 기울어져버립니다.” 공자는 제자들을 시켜 그 술독에 물을 부어보게 했다. 그러자 아닌 게 아니라 술독은 서서히 움직이더니 똑바로 섰다가 술이 가득 차자마자 금세 옆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다. 공자는 크게 감탄했다. “역시 환공이로구나. 공부도 이 술독과 같다. 공부를 다했다고 교만하게 굴면, 이 술독이 가득 찰 때 기울어지는 것처럼 나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공자는 집에 돌아와 환공의 술독과 똑같은 술독을 만들어 곁에 두었다 한다. 독 우에 ‘좌우명’이라 쓰고 늘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다. 나중에 사람들은 ‘좌우명’이라는 글자만 따로 써서 벽에 붙여두고 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좌우명’은 살아가면서 꼭 마음에 새겨두고 지키려고 하는 생각이나 좋은 말을 뜻한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뭐 인성교육인지, 한번 불장난에 이 같은 교육까지 받아야 되니 조금은 억울한 감이 들기도 하고 더러는 개나발이 아닌가도 싶었다. 그래도 나중엔 ‘좌우명’이란 말에 그 같은 유래가 있는 것에 대해선 덤으로 지식 하나 배운 것 같아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후에도 녀자는 그 ‘좌우명’을 좌, 우는 물론 고, 저로도 깊이깊이 아로새겨 넣었다. 녀자는 몇달 전부터 십자수에 취미를 가지고 시간 날 때마다 십자수를 수놓았다. 처음에는 견본에 따라 색실을 수놓던 데로부터 풍경 몇점 완성하고 나니 어쩐지 따분한 감이 들면서 별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작품만은 견본없이 자기 창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제 겨우 절반도 되나마나하게 완성된 ‘활화산’이였다. 작품은 먼산을 녀성의 얼굴과 머리를 이미지화하고 이제 그 앞으로 커다란 젖가슴에서 분출되는 용암이 불바다를 이루는 파격적인 인상을 담으려 하는데 작가의 중심사상은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다고 녀자는 그렇게 구상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림의 제목을 ‘베스타’라면 좋겠다 했다. 녀자는 그런 제목은 머리꼭대기부터 멀미나는 일이라 당연히 ‘좌우명’은 될 수 없었다. 녀자의 환각증세가 생긴 것은 ‘활화산’이 불꽃을 내기 시작하는 그 쯤에서였다. 자기가 수놓은 작품임에도 뭔가 안해이면서 엄마로서의 긍지감이 생기면서 얼굴이 막 화끈거려 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며칠 안돼서 녀자는 또 한번 대형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계절은 초록이 가로수를 물들이고 아빠트울안의 복사나무가 꽃너울을 쓰고 아지랑이와 입맞춤을 할 때였다. 녀자의 집창문 아래서 철매가 빨갛게 웃고 활짝 열린 창문으로 훈훈한 봄기운이 집안으로 들어와 록색의 커튼을 살짝살짝 흔들어놓았다. 십자수를 수놓던 녀자가 얼핏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저 멀리 서녘에 석양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활화산’이 ‘베스타’로 변하였다. 그러더니 자기가 수놓은 ‘베스타’가 움죽움죽 일어서고 있었다. 왜 그런가 자세히 여겨보니 누군가가 자기의 ‘베스타’를 훔치고 있었다. 다시 찬찬히 보니 그는 다름아닌 ‘프로메터우스’였다. 녀자가 막 소리를 치며 내 물건을 달라고 해도 ‘프로메터우스’는  들은둥 만둥 ‘베스타’를 가지고 창문으로 날아서 빠져나갔다. 녀자도 그만 달려들어 쫓아가다 창문 밖으로 휙- 날아나갔다. 다행히 녀자의 집은 3층이고 1층 집에서 아래에 부추를 심어놨기에 엉덩이뼈가 조금 금이 가서 몇달 병원신세를 지는 데 그치고 말았으니 망정이지 하마트면 큰일을 칠 번했다. 그러니 남자의 경계가 더 할 것은 불보듯 뻔했다. 남자는 또다시 서면조항을 작성했다. 제1장, 불, 불을 절대 오래 보지 않는다. 제2장, 물, 물을 절대 오래 틀지 않는다. 제3장, 잠, 잠을 절대 오래 자지 않는다. 제4장, 꿈, 꿈을 절대 오래 꾸지 않는다. 주* : 불을 오래 보면 화끈거려서 정신적으로 태우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고 물을 오래 틀면 정신적으로 잠기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며 잠을 오래 자면 꿈이 많아 질 것이고 꿈이 많아지면 환각이 많아지는 것. 병원에 있는 와중에도 녀자는 꿈에 ‘프로메터우스’가 자꾸만 나타나서 무던히도 애를 먹었다. 정신과 의사에게 보이니 우울증이 조금 있으며 정신착란증세도 조금씩 보인다고 했다. 의사는 너무 자극적인 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하면서 아름다운 그림이나 동화 같은 글들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요즘 남자의 거동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병원도 오네 마네 하다 오랜만에 와서는 신경질적으로 녀자를 대하는 듯했다.   녀자는 징조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가 퇴원해 집에 와서 보니 집안 분위기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거실은 물론, 침실도 이불은 개이지도 않고 탈피한 뱀이 빠져나간 자리처럼 지저분하게 구겨져있었다. 녀자는 다른데는 몰라도 침실 하나만은 깨끗하게 정리하기를 좋아했다. 침실은 부부간의 신성한 보금자리이며 가정의 상징이라고 믿고 있듯이 정갈해야 한다고 여기였다. 녀자는 팔을 걷어붙이고 침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쭈그렁망태 같은 이불을 걷어안고 아프리카코끼리 배가죽주름 같은 시트를 와락 당겼다. 그런데 무엇이 발등에 떨어지는 느낌이 생겨 내려다보니 웬 보지 않던 물건이였다. 얼핏 보면 오징어 몸통을 썰어놓은 것 같아 그 물건을 들고 자세히 보니 콘돔이였다. 다음 순간, 녀자의 손에서 콘돔이 떨어졌다. 콘돔은 빠져나온 다이야마냥 도르르 굴러가다 문턱에 걸려 힌들 넘어져있었다. 원체 녀자의 집에는 콘돔 같은 건 있을 수 없었다. 신혼도 아니고 임신기간도 아닌 이제 50대를 바라보며 녀자는 피임조치는 일찌감치 해놓은 시점에서 콘돔이 있다는 건 무조건 남자가 외간 녀자하고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였다. 그것도 다른데도 아닌 녀자가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자기들의 침실에서 이런 분통이 터지는 일이 생겼다는 건 도저히 그저 지나갈 일이 아니였다. 녀자가 가까스로 분을 참으며 다시 침대 안쪽에 눈길을 돌리는 순간, 그 구석에서 또다른 물건이 보였다. 녀자가 제꺽 꺼내보니 역시 콘돔이였다. 아직 비닐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여서 돌돌 말려있는데 그것이 녀자의 손에서 주르륵 펼쳐지는 것이 꼭 마치 꿈틀거리는 뱀과 같아 녀자는 이내 팍 뿌려던졌다. 콘돔세트는 벽에 맞아 아래에 널부러졌다. 한줄에 스무개라고 할 때 열개 푼히 없어진 걸로 보아 남자는 그 짓을 열번도 더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십중팔구는 어느 나이 어린 년을 집에 끌어들였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녀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사태나 다름 없었다. 적어도 자기 남편은 자기 밖에 모른다고 자처하고 있었고 세상 남자들이 다 그렇고 그렇다 해도 자기 남편만은 철두철미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만을 위해 죽을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이 됐으니 녀자는 더구나 심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음이 크면 그만큼 상처도 큰 법이거늘 녀자는 남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어느 연해도시에 세미나가 있다고 녀자가 퇴원하기 며칠 전에 출타했던 것이다. 탕탕탕! 문 두드리는 소리다. 녀자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을 인차 열어주지 않았다. 또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자는 그래도 열어주지 않았다. “여보, 안에 없소?” 남자는 소리쳤다. 했지만 아무런 응대도 없다. 남자는 가방 안에서 열쇠를 찾아 구멍에 꽂고 문을 열었다. 열리지 않는다. 안에서 잠가놓은 게 분명했다. 텅텅텅! 둔중한 소리가 난다. 남자가 짜증스럽게 발로 찬다는 것을 녀자는 안다. 이쯤에서 녀자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문을 열어준다. “귀구멍에다 개불 틀어막았어?” “개불 아니라 이건데…”   녀자는 귀에서 이어폰을 꺼내며 “음악을 듣다보니…”그러면서 남자의 가방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신을 벗고 들어온 남자는 이상해진 집안 분위기에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다. 다시 휘둘러보니 자기가 그렇게 신경 쓰던 ‘불조심’이 모조리 없어졌던 것이다. “‘불조심’은 왜 다 떼버렸소?” “오, 그거 이젠 낡아서…” “낡아도 글은 알리지 않는가?” “글은 알려도 너무 어지러워서…” 녀자는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저녁을 지어주었다. 남자는 이번 세미나에서 여차여차 많은 걸 보고 느꼈다면서 장황설을 늘어놓지만 녀자의 귀에는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남자는 출장 갔다가 어찌 빈손으로 오겠냐며 녀자의 선물을 사왔다고 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남자는 녀자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녀자는 그냥 눈을 감았다. 남자가 녀자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너무 좋아서 남자에게 매달리며 키스벼락을 안겼을 녀자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저도 선물이 있어요.” “그게 뭔데?” “눈을 감아봐요.” 남자는 인차 눈을 지그시 감는다. 녀자는 조심스럽게 남자의 뒤로 가서 남자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남자가 무슨 목걸이요?” “이건 특별한 거니깐.” “특별하다구? 어떤 건데?” “세상에 둘도 없는…” 남자가 눈을 떠보니 그것은 콘돔목걸이였다. “엉? 이건…” 그것으로 성차지 않았다. 남자는 팬티바람에 침대에 벌렁 너부러져 자고 있었다. 언뜻 남자의 안경이 전등불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녀자는 그 안경을 당장 박살내고 싶었다. 녀자는 살며시 남자의 안경을 벗겨내렸다. 그다음, 안경에다 자기가 바르는 립스틱을 새빨갛게 발라놓았다. 그리고는 자기 눈에 안경을 걸어보고는 혼자 소리없이 실실 웃었다. 녀자가 다시 안경을 남자의 눈에 대충 걸어놓았다. 침실문을 활짝 열어놓고 출입문은 반쯤 열어놓았다. 이미 휴대폰에다 저장해놓은 소방차앰블소리를 찾아냈다. 이제 “불이야!”하고 소리치면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가 생기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불이야!” 녀자는 크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남자가 다급히 일어나 안경을 바로 걸자 대뜸 선불 맞은 메돼지처럼 허둥지둥 하다가 날 살려라! 하고 문을 박차며 나갔다. 이때라고 녀자는 문을 닫아 안으로 철컥하고 자물쇠를 잠궈놓았다. 남자는 층계를 오르내리며 소리치다가 안경이 벗겨지는 바람에 그제야 녀자의 장난에 놀아난 자신을 느끼였다. 그러나 이미 층계에는 이웃들이 나와 있어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자기를 보고 킥킥 웃고 있었다. 남자는 급히 문을 당겼다. 열릴리 만무했다. 그렇게 남자는 녀자에게 톡톡히 당하고 말았다. 녀자는 거실에 앉아 다시 ‘베스타’를 수놓고 있었다. 텔레비죤에서는 한창 성폭력고발운동을 다루고 있었다. 연예계로부터 법조계와 군대와 스포츠, 어디라 할 것 없이 성폭력과 불륜을 다루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 녀자는 또다시 울분이 치밀어올랐다. 녀자는 라이타를 찾아 불을 켜고 ‘베스타’에 달았다. 불은 금세 붙기 시작하였다. 불과 불은 서로 만나 악수나 하듯 타올랐다. 녀자는 타오르는 ‘베스타’를 들고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 남자의 이불 우에 놓았다. 그리고는 자기도 이불을 들고 들어가 누웠다. 남편이 새된 소리를 지르며 화닥닥 일어나 불 붙는 이불을 그대로 감아서 바닥에 놓고 발로 밟았다. 불은 그렇게 꺼졌으나 남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미쳤냐?” 녀자는 그래도 말이 없이 송장처럼 누워있었다. “당장 정신병원에 가봐!” 남자는 집을 뛰쳐나갔다. 이틀 후에 남자가 다시 집에 들어왔을 때 녀자는 또 무엇인가 수를 놓고 있었다. 남자가 찬찬히 보니 그것은 자기의 팬티였다. 녀자가 마지막으로 매듭 짓고 팬티를 쏘파에 놓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남자는 또 한번 경악을 했다.   팬티 앞에 빨간색 실로 수놓은 글자는 ‘불조심’이였다. 연변일보 2020.3.20
14    [신작시] 나는 당신을 다 쓰지 못했습니다 (김정권) 댓글:  조회:335  추천:0  2019-11-22
시 나는 당신을 다 쓰지 못했습니다   김정권     당신의 머리카락만을 쓰자하니  당신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바람이 아쉬워 합디다 당신의 눈망울만을 쓰자하니 당신의 눈망울 닮은 맑은 하늘이 서러워 합디다 당신의 입술만을 쓰자하니 이슬 먹은 나팔꽃이 울어 젖습디다 그래서 필을 들어도 선뜻 쓰지 못한는 것은 그저 이쁘다 아름답다 이러루한  언어로는 감당이 안되는 까닭에 차라리 아침 안개에게 붓을 맡겼더니  안개가 제법 알아서  당신을 안개꽃으로 피워올리고  거기다 청아한 새소리도 불러옵디다 
13    [신작시] 당신만을 사랑하다 (김정권) 댓글:  조회:250  추천:0  2019-11-22
시 당신만을 사랑하다   김정권   음악을 좋아하는 그대이기에 나는 그대를 더욱 사랑하나 봅니다 내가 그대의 음악이 되고 그대가 나의 음악이 될 때 우리는 서로의 악기가 되고 싶은 것   나는 그대가 좋아하는 피아노되여 그대의 열손락끝에서  쇼팽을 만나고 폴란드로 이송된  그의 심장을 고이 받쳐들고 있으면 그 심장이 아직도 살아있음에 나는 그대의 피아노로 울리고 싶습니다   그대는 나의 첼로가 되여주겠지요 나는 그대를 꼬-옥 끌어안고 바흐를 만날 것이며  평생을 슈만의 안해를 사랑하고  스승의 음악만을 세상에 알리다 죽은  브람스처럼  당신만을 사랑하다 이 한 숨을 재우고  싶습니다
12    [신작시] 바람의 소식 (외2수) (김정권) 댓글:  조회:237  추천:0  2019-11-22
바람의 소식   김정권     바람아, 물어보자 어디서 머물다 이렇게 늦게 오느냐? 남촌의 일은 너는 알터이니 그 곳에는 지금 목련꽃이 입술을 벌렸더냐? 목련꽃 입술 열어 이슬을 머금거든 다른건 다 싫고  그 입술꽃 향기마는 내 입술에 놓고 가려므나       눈     눈은 호수에 빠져 질척이다 물이 되여 달을 붖잡고 침몰을 선언할 때 나는 너의 눈에 빠져 허우적이다  사랑의 눈물 한 드레박  길어올리여 저물녘 꿈밭에 붓는다       폭설     너는 너의 마음을  비행기에 싣고 내 가슴안에 들어왔다 비행기는 내 안에서 폭설을 맞아 결항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안의 비행기는 위장에 내려보내서 죄다 소화시키고 너의 마음만 달랑 내 심장에 가득 담았다  
11    김정권 프로필 댓글:  조회:491  추천:0  2019-11-22
김정권 프로필   1956년 왕청현배초구 안전촌 출생 1982년 왕청현문공단 창작원 1987년 룡정시예술단 창작원 1993년 연길시문예창작실 주임 2007년 연길시문화관 창작원   현재: 국가1급극작가   주요작품 중단편소설 “가죽구두” “모기정전”등 20여편 장막극     “사랑과 야망”등 3부 소품       “첫날이불”등 100여편 소품       “첫날이불”조선족고급중학교과서 실림 소품집 “첫날이불”을 출판   장편동화  “다 함게 차차차” 소년아동 련재(2012) 장편동화   “다 함께 차차차”를 출판 장편동화   “ 다 함께 차차차” 연변인민방송국 련속방송극으로 각색   수필집 “바람, 별에 말을 걸다” 를 출판,   각종 문학상 정황 국가급 4차 성급 20여차 주급 30여차 길림성장백산문예상 1차 진달래문예상 3차   2014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수필상) 2015년 연변문학 문학상 (시 본상) 2017년 도라지 문학상 (시 본상) 2018년 두만강 문학상 (시 본상) 2019년 송화강 문학상 (시 대상) 2019년 일본 세게조선족문화절 주제가 (가사)  
10    [시]상처(외1수) (김정권) 댓글:  조회:208  추천:0  2019-07-15
[시]상처(외1수) 김정권   어떤 몸이 갈려서  광년의 아픔이 번뜩이는 불빛, 저 울음소리 누가 듣는가   우리의 눈이 부시는 것은 오래 보지 말라는 뜻, 아직 념念이 살아있다는 것, 저 볕살 떨어지는 소릴 에덴의 향기로 귀를 틀어막자! 병아리는  꽃은   아니! 저 상처에 우리가 감기자! 상처에 피와 같이 엉켜붙은 그 상처를 걸러내서 같이 아프자! 저 금빛 상처에 우리가 아프자!   욕창褥疮 움직이는 건 겨우 나는 오늘도 너희들을 헨다 그렇게 옆구리 한켠을 보며 나를 그래, 많이 먹어라 그 구멍에 망원경을 대고 그리고 크게 트림을 하거라 설령 뼈만 남아 꽂을 곳 없다면 꽂은 다음 넘어지지 않게
9    [시] 혼길魂道 (김정권) 댓글:  조회:220  추천:0  2019-07-11
[시] 혼길魂道 김정권   넋이 누워서 가는 길 달의 눈물 똘랑 떨어진다 찢어진 불아기佛亚旗는 노을로 타 내 누이의 허벅지에 감겨   저-어 접동새 울음 한아름, 올올이 씨실로 뽑아 별들이 조용히 문상 온다     사자가 울어도 좋소 달이 울고 별이 울고 다만 저 노래만은 울리지 마오 아기물고기처럼 꽃도 울어젖을 게 아니오 눈은 있겠지만 가슴은 나는 차마 꽃이 우는 꼴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 쑥국새의 날개에 젖어 달려온다 제비둥지 같은 살주름이 뭉클 꼴망태처럼 만져진다 구멍난 질경이 잎으로 하늘을 보면 휘여진 무릎이 야위게 걸어온다 누우런 잎 질경이 그 구멍으로 엑스레이처럼 보이는 뼈도 질경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질경이는 벌레가 먹은 구멍이라면 나는 그렇게 한마리 철 없는 벌레였다 내가 파먹은 쓰르라미 노래 해금줄에 스쳐온다 마디마디 구멍 뚫려 바람에 시린 저대여!     벌겋게 터진 입술아, 그 속엔 피 묻어 오직 안으로만 닫아맨 상처, 저녁노을 같은 빨간 울음이     나팔꽃 순정 새벽으로 가리운 어둠을 벗어 안으로만 굳게 굳게 감싸고 안개꽃 속치마를 들어올리고 속살을 내주고 싶을 때가 있나 보다 그렇다면 저 몹쓸 놈의 죄인은 누구던가? 별이 쑥스러운듯 얼굴 돌린다     누구의 손에 뿌리워져 열광하는가? 모든 것에서 광란의 시간을 보지 저 시간 속에서 잉태되고 저 시간 속에서 분만되지 시간이 남겨놓은 제물이라면 지워가는 유물이 아니겠는가 휘두르는 자는 누구인가     황이 든 동공으로 무얼 보시려고   바람에 흩날리는 귀지만으로 그처럼 가랑잎귀를 강구시는 겁니까? 피도 다 말라 입도 벌릴 수 없는 그처럼 비인 하늘을 머금으시는 겁니까? 세월에 짓이겨져 갈비살에 그 누구의 맥박을 품지 못해   한사코 가는 손목 풀지 않는
8    [수필] 사모곡 (김정권) 댓글:  조회:208  추천:0  2017-09-21
수필 사모곡 김정권 어머님, 어머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벌써 1년이 되여옵니다. 그 날은 눈도 참 많이 내리고 있었지요. 오늘도 그 날처럼 눈이 내립니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칩니다. 눈보라도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나는 버릇처럼 어머님이 마지막으로 가시던 언덕길을 걷습니다. (땅) 저 앞에는 어머님의 땅이 있습니다. 아니! 어머님을 닮은 땅이 있습니다. 회오리가 채찍을 갈겨 살가죽이 갈기갈기 찢겨진 헐벗은 가슴, 가슴은 온통 멍든 자국입니다. 겨울발길에 채워져 딱지가 더덕더덕 앉아 짓물러진 옆구리, 옆구리는 온통 욕창구뎅이입니다. 저 멍든 자국은 무엇이며 저 욕창구뎅이는 무엇입니까?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가려워도 긁지를 못하고 해동의 차거움에 묶이운 손, 일어서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고 지옥의 감발에 묶이운 발, 눈보라가 휘날려옵니다. 흉부과 의사의 눈을 빌려 엑스레이 같은 저 차거운 운무 속을 찬히 들여다보면 쇠잔한 어머님의 하아얀 등뼈, 아, 눈시울이 시려옵니다. (집) 새벽, 아버지의 한숨소리와 막내동생의 투정과 땀냄새를 한광주리 잔뜩 이고 장거리 한구석에 가서 쫑그리고 앉아 간난을 벌려놓으셨습니다. 끓어번지는 태양이 어머님의 정수리를 지져대는 정오 쯤이면 지난밤 셋째(필자는 둘째임)가 잡은 모래무치는 새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눈굽이 곪습니다. 약삭바른 쉬파리떼 윙윙 모여들어 어머님의 살점이 될 돈푼 오십전, 꽁다리연필, 정통편들을 죄다 삼켜버립니다. 해 저문 노을바다 속에 물고기 몸뚱이로 썩고 있는 어머님의 텅 빈 고기 배, 오늘 가면 물고기 배때기 먼저 어머님의 가슴이 다 짓물러집니다. 그런 어머님이셨지만 철부지 우리들은 새끼돼지들이 어미 젖을 찾듯 무작정 장 보고 간신히 돌아오신 어머님의 몸에 매달려 호주머니만 들추어댔습니다. 한배에 새끼 열마리씩 낳는 ‘굴암퇘지’, 가로등 같은 젖꼭지들이 량켠에 불빛을 환히 켜던 날이면 큰애의 고중등록금이며 넷째놈의 페결핵 약이며 막내놈의 운동화들이 불빛처럼 쏟아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가로등은 밤처럼 하나 둘 꺼져갔습니다. 어머님은 돼지의 배란이 없어져 생육기능을 잃은 줄도 모르시고 한밤 내내 끌신을 끌고 우리에 나가 훌쭉한 돼지배때기만 바라보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이셨지만 우리들은 남들이 신는 운동화를 사내라고 막무가내로 졸라댔습니다. 그 때 어머님은 무엇이나 다할 수 있는 줄로 알아버린 저희들이였습니다. 처녀였을 어머님의 가리마를 타고 올라앉은 배부른 동이에서 샘물이 찰랑찰랑이였습니다. 내 아버지의 안해로 되여서는 옹기종기 올감자들 호강시키고 배추 떡호박이 풍선같이 부풀어서 산새들 콩콩콩 널뛰기를 했습니다. 다섯 아들의 어머니여서는 돌종개가 하늘 날고 미꾸라지가 구름 안고 징글거렸습니다. 때론 배가 되고 때론 차가 되고 때론 비행기가 된 어머님의 발바닥 굳은살은 백초구 언덕길만이 압니다. (갈대) 어머님, 저 갈대밭은 왜 흐느낍니까? 언제 한번 허리를 꿋꿋이 펴지도 못하고 질곡의 굴레에 발 묶여 골수마저 모조리 진창에 이식해준 가녀린 갈대, 바람에 할퀴고 잡풀에 휘감겨 마른 뼈마디로 겨우내 지탱하여 오매불망 그 누구의 기다림만 빈 가슴에 가득 채워넣고 밤이나 낮이나 소리쳐부르다 찬바람에 허리 꺾인 갈대, 누워서도 얇은 손 헤적이다 부풀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내내 자식만을 부르던 갈대, 그대는 상기도 누굴 위해 피리를 부시는 겁니까? (침대) 어머님, 죽음을 베고 누운 생령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망을 덮고 누운 생령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구도 모릅니다. 거미줄 같은 시간 한오리를 힘없는 손에 헐렁하니 쥐고는 죽을 맥도 없는 거미 껍데기 한무더기, 빈 우물 같이 말라버린 동공에 파리새끼 앉아 똥 싸도 말릴 수 없는 마른 가랑잎 한지게, 아픔은 너무 일찍 다 아파했고 울음 또한 너무 길게 울어버린 어머님, 날숨 한줌에 생을 통채로 맡겨버린, 미라 같은 가는 입 쯤새로 새여나오는 최후의 말씀은 나는 차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꽃잎이 내 살즙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눈길을 보면서도 그저 바라만 볼 뿐 어찌할 수 없는 자식이 되여버린 나는 뭘 어찌해야 합니까? 아, 어머님! 이제 아픔과 눈물은 나의 몫입니다. 세상이 굴러떨어졌는데 눈물 한방울 떨구지 못하는 자식은 당신 먼저 죽은 몸이옵니다. (하늘) 어머님, 지금 쯤은 어느 별이 어머님의 별이십니까? 나는 매일 아침 일찍 화장터 굴뚝 근처 가로등 밑에서 아침운동을 합니다. 나는 머리를 젖히면서 하늘을 봅니다. 나의 머리 우에는 아직 가로등이 환히 켜져있습니다. 나는 가로등을 헤여봅니다. 하나, 둘, 셋! 문득 가로등이 꺼집니다. 그래도 나는 계속 헤여봅니다. 하나, 그런데 그것은 달이였습니다. 나는 또 헤여봅니다. 하나, 둘! 그것은 별이였습니다. 아니! 그것은 어머님의 슬픈 눈동자였습니다.   길림신문 2017-09-20                                                             
7    [수필] 나비야, 남으로 오지 마라 (김정권) 댓글:  조회:214  추천:0  2017-08-21
수필 나비야, 남으로 오지 마라 김정권 복사나무잎 한 잎 툭- 하고 어깨 우에 떨어졌다. 나는 그 잎을 쥐고 자세히 보았다. 존경하는 김선생님, 선생님께서 우리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신랑: 범나비 신부: 나팔꽃 장소: 연길 동북쪽교외 (무기고 담장 북쪽) 시간: 아침 해오름이 완연할 때 청첩장이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그리로 갔다. 새뽀얀 안개궁전이 마치 하늘 우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신바닥의 흙을 툭툭 털고 나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나는 사방을 휘둘러보다가 마침내 눈길은 한 곳에 가서 쏠렸다. 신부였다. 들국화방석에 앉아 나팔꽃은 신부화장을 하고 있었다. 화장사는 시원한 가을바람이였다. 바람은 먼저 지난밤 달빛이 묻은 억새꽃으로 얼굴에 연한 단장을 해주고 엉겅퀴꽃 붓으로 신부의 볼에 붉은 연지를 찍어준다. 그 다음 강아지풀로 붉게 물든 아침노을을 톡 찍어다 립스틱을 바른다. 이제 해오름이 시작된다. 동녘은 벌써 거대한 붉은 등불을 밝힌 듯 황홀하기가 그지없다. 하객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하얀 들국화, 8옆 3색의 코스모스, 노란 씀바귀, 빨간 엉겅퀴, 남색 도라지꽃(옥수수밭 중간에 재배)들이 피여서 그야말로 오색이 찬연하다. 미구하여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신부는 해살의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고 있었다. 신부가 서있는 발밑은 쥐콩넝쿨이 쫙 깔려있어 어쩌면 푸른 주단을 펴놓은 듯 했고 들국화와 코스모스가 작은 손으로 꽃보라를 뿌리는 듯 했으며 이편에서는 꽃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옥수수 엄마들이 화사한 웃음을 날리며 손을 흔들어주고 저편에서는 백발의 로인들이 갈대꽃손수건을 흔들어주는 듯 했다. 그뿐이랴? 하늘에서는 비둘기들이 대렬을 지어 나래를 퍼덕이며 하늘먼지를 닦아주고 입빠른 알락까치들이 백양나무꼭대기에서 꼬리를 달싹이며 저 멀리서 나비가 온다고 기별을 전하는데 엉덩이 가벼운 참새네들이 가을향기를 물어다 잔치집 마당에 사르르 뿌려놓는다. 이제 나비가 오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남쪽을 보니 거대한 담장이 가로 막고 있었다. 높이는 2메터도 훨씬 높을 것 같고 담장 우로 여러 줄의 철책들이 날카롭게 가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밑에는 ‘고압 위험’라는 글자가 무섭게 박혀있었다. 나는 그만 마음이 서글퍼져 눈을 지그시 감고 꽃들의 이야기에 귀를 가다듬었다. "약 1억 4천만년 전, 우리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후에 인간들이 생겨나면서 그들은 우리들에게 '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전까지는 우리는 그저 한낱 풀의 염색체에 불과했다…" 순간 따라 나의 머리속에는 김춘수의 명시가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워낙 이 곳의 담장은 낮고 낡았는데 금년 봄부터 다시 새로 더 높이 쌓았다. 담장 밑에도 누군가가 밭을 일궈 곡식을 심었던 터였으나 담장을 다시 쌓는 바람에 심었던 곡식들이 사라졌다. 그 덕분으로 이곳엔 꽃들이 만발할 수 있었다. 나는 나팔꽃이 이처럼 많이 피여있은 것을 처음 보았다. 이전에는 그저 옥수수대에나 몇줄기씩 감겨있고 길옆에서 몇송이들만 외롭게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인데. 그러고보면 이 곳은 워낙에 꽃들의 동네였음을. 나비는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언제까지나 나비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발길을 돌리다가 다시 담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속삭였다. "나비야, 남으로 오지 마라!"   연변일보 2017-8-17
6    [단편소설] 우울증 (김정권) 댓글:  조회:486  추천:0  2015-10-15
[단편소설] 우울증  김정권 그녀의 집은 엘레베터가 있는 고층아빠트이다. 2층집 남향켠의 창으로부터 부서져내리는 하얀 달빛으로 침실은 유난히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때아닌 10월초의 싸늘한 날씨와는 달리 아담한 침실은 마냥 포근하다. 그 창문밑에는 시몬스쌍침대가 널직하게 자리잡고있고 침대머리에 놓인 결혼사진액틀에서 례복 입은 남녀가 다정하게 웃고있다. 맞은켠 벽중심에 부착되여있는 텔레비죤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힘있게 울려나오고있었다. ―어제저녁, 초중 2학년에 다니고있는 한 녀학생이 12층 옥상에서 투신하여 숨졌다… 우진이는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창에 반사되여 은은히 빛을 뿌리는 달빛이 하도 눈부셔 고개를 들어 창켠을 넋없이 바라보다가 그 귀동녀를 발견했다. 귀동녀란 다름 아닌 인형이였는데 우진이가 임신하자 녀동생이 언니의 임신을 축하하여 선물한것을 오늘 아침 습기가 있는것 같아 창턱우에 놓아두었던것이다. 귀동녀는 창턱우에서 두손을 뻗치고있었는데 반사된 달빛이 애된 조막얼굴에 흠뻑 뿌려진 그 모양이 마치 창밖의 둥그런 달을 탐내는듯했다. 후― 어쩜… 우진이는 눈부리가 찡하게 솟구치는 감정을 서서히 삼키면서 사뭇 입밖으로 터지려는 《귀엽다》는 말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그녀가 코끝이 찡하도록 감동한것은 귀동녀의 빚은듯한 외형에서만은 아니였다. 그것은 그 조그만 몸에서 뿜어지는 그 무엇인가를 그렇듯 절절하게 갈구하는듯한 분위기라 할수 있었다. 참으로 희귀하게 귀동녀로부터 받은 서글픈 감동은 암울한 자기 천착으로부터 서서히 몰입되면서 우진이는 거듭 한숨을 길게 뽑아낸다. 20여년전의 애시적에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했던 순간이 새삼스레 떠오르면서 달을 찾는 귀동녀의 그 모양에 또 한번 가슴이 뭉클했다. 어쩌다 자기 인생의 절정은 벌써 예고도 없이 어느새 내리막길에 이르러 있는것인지 스스로도 비참해지는 마음을 달랠수 없었다. 심히 억울하다는 느낌이 자꾸자꾸 엄습해왔다. 분명히 집어낼순 없지만 그러나 억울한 감정과 울분이 동반되여 가슴속에서 쉼없이 솟구치기 시작한것은 그처럼 다정다감하던 남편이 사장으로 발탁된 1년만인 바로 넉달전부터라고 할수 있었다. 바로 우진이가 임신 두달째부터 신경이 극도록 예민해진셈이다. 결혼해서부터 여태 그토록 자상하던 남편이 임신 두달되는 그 즈음에 경악할만큼 철면피하게 나옴으로써 우진이의 정서파동은 눈에 뜨일만큼 경화되여있었다. 다만 자기 불안증의 원인이 우울증과 남편의 탓이 아니기를 바라고픈 그녀의 리성과 의지가 앞섰을뿐 솔직히 이즈음 그녀의 감정은 거의 붕괴의 변두리에 처해있었다. 남편의 외딴 녀자가 자기 울타리를 전혀 개의치 않는듯한 피해의식까지 가진적도 있고 언젠가 자기가 밀려나야 된다는 불안한 예감까지 군림했다. 따라서 우진이의 불안은 또 다른 형태인 신경문란과 범벅되여 실제 나날이 격화됨과 동시에 때론 침실벽만 마주하고있는 모습이 마치 식물인이 된듯했다. 남편이 리혼이란 반기를 들고나온지는 우진의 배속아이가 제법 움직임을 알리는 한달전이였다. 그같이 무서운 말이 언제든지 남편의 입으로부터 터져나오리라는 예감은 미리 못한건 아니지만 정작 임신된 몸으로 당하고보니 우진이는 아빠트의 천정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우리 리혼하지?》 《?》 《나 이제 당신과 감정이 없어.》 《당신의 아이가 저의 배속에 있어요.》 《떨궈버리라구!》 《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드디여 폭발직전으로 치닿은것은 그 이튿날 점심녘이였다. 우진이는 기어이 터지려는 원색의 감정을 혼신의 힘으로 가까스로 억눌러 남편앞에서 끝까지 의연하고싶었다. 그러나 심층은 남편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로 극도의 혼미속에 잦아들어 현훈증을 일으켰다. 화근은 우진이의 남편인 강사장의 외도이지만 그러나 그보다도 애된 녀비서의 의도적인 대담한 행위의 도전을 직감한 그녀는 자신의 무력함을 다시 한번 원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우진이는 정확히 열한시 오십분에 자기 집문을 열었다. 우진이가 미처 신을 벗기도 전에 남편이 욕의를 걸치며 욕실로부터 나오고있었다. 우진이의 눈길은 본능적으로 남편에게 집중된 동시에 다른 한 라체에 얼핏 스쳐졌다. 《누구지요?》 우진이의 음성은 웬만히 날이 서있었다. 《직접 들어가 볼거지. 그럼 모든걸 알수 있잖아?》 남편은 오히려 격한 음성이였다. (이런걸 가리켜 〈적반하장〉이라 하는가.) 《남자는 아니겠지요?》 《그래 녀자야.》 《어떤 녀자지요?》 《직접 보라고 하지 않았어?》 《안녕하세요?》 《?》 녀비서였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는 못으로 양철문을 긁는듯한 바이브레이션이였다. 타올을 달랑 감고 우진이의 앞을 스쳐지나는 그 모양새는 부끄러움이란 도무지 찾아볼수 없고 오히려 슈퍼모델인양 도고함을 자랑하는듯했다. 우진이는 형언키 어려운 충격으로 강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망측스럽다는 느낌외에는 당분간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완전히 배반을 당했다는 느낌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안겨들었지만 우진이는 신경문란으로 인한 자신을 학대하고싶지 않았고 더구나 자기 생명이상으로 간주해온 배속의 아이를 위해 모든 분노와 원망과 저주를 다 눌러버리리라 작심하고 눈을 질끔 감으며 뛰다싶이 다른 침실로 달려들어갔다. 눈물이 좔좔 흘러내렸다. 그녀는 울음소리를 참느라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앞에 별찌같은것들이 마구 날아다니다가 다시 새까매지기도 했다. 깨문 입술사이로 흐느낌이 자꾸 새여나왔다. 그녀는 이불을 마구 뒤집어썼다… 빚은듯 아름다운 귀동녀가 우진이의 시선에서 사라지면서 그녀의 가슴의 동공은 더욱 확대되고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났다. 따르릉… 집전화기가 세번 울렸다. 《여보세요.》 《저… 강사장댁이지요?》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바이브레이션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강사장 비서예요.》 《?》 순간 그녀의 눈앞으로 쓰나미가 몰려오는듯했다. 《무슨 일이세요?》 우진이의 음성은 떨리고있었다. 《강사장 지금 저의 침실에 있어요.》 《……》 《남편을 좀 혼내줘야 될게 아녀요?》 《어떻게 혼내주면 될가요?…》 《방법을 대야지요.》 《무슨 방법을요?》 《가장 좋은 방법은 리혼하는거지요.》 《그건 그쪽 생각이지요.》 《강사장의 의도이기도 해요. 이 전화도 강사장이 시킨거니깐요.》 툭! 전화줄이 끊어지고 전화기가 바닥에서 박살이 났다. 일신에 오한이 엄습해왔다. 다리맥이 탁 풀린 우진이는 다시 쏘파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넋이 나간듯 맞은켠 벽만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나 표정과는 달리 혼돈의 늪으로 가슴이며 머리통이며 육신은 전부 파편쪼각으로 폭발되여 부서지는것만 같았다. (어쩜 이럴수가…) 우진이는 히스테리적으로 고개를 휘저으며 입술을 움직거렸다. 《불쌍한 얘야, 나의 몽순아!》 우진이는 배속아이 이름을 《몽순》이라고 벌써 지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그녀의 인생엔 몽순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기의 생명이상으로, 그녀 생의 전부라고 할수 있었다. 남편의 외도가 잦으면 잦을수록, 안해에 대한 남편의 박대가 크면 클수록 모성애는 더더욱 깊이깊이 가슴속에 뿌리내렸다. 귀여운 몽순아: 이제 엄마는 너 하나뿐이야.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엄마야! 까짓 아빠같은건 없어도 괜찮아! 엄마가 있잖니? 엄마는 너만을 바라보고 사는거야! 너는 나의 생명, 아니! 나의 생명이상으로 귀중한 존재야! 이렇게 우진이는 몽순이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목구멍으로 꽉 차오르는 수많은 말들을 되삼키면서 두손으로 불룩한 아래배를 만지며 천천히 일어섰다. 오로지 배속아이만이 삶의 힘이였고 원천이였다. (너만을 위해 사는 엄마야!) 우진이가 귀동녀를 다시 보았을 때는 달은 이미 창밖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귀동녀는 이미 지나간 달을 그냥 쫓고있었다. 《몽순아, 너 왜 그러고있니?》 《엄마야, 달이 달아났어. 빨리 저 달을 붙잡아줘.》 《얘야, 그 달은 이젠 못 붙잡는다. 너무 멀리 갔어. 멀리 갔단 말이야.》 《싫어! 난 달을 가질래.》 《아니야! 래일 아침 달보다 더 밝은 해가 있단다. 해와 같이 있자꾸나.》 《아니야! 난 해도 가지고 달도 가질래. 달이 없으면 밤은 너무너무 어두워. 어두운 밤은 난 싫어!》 《얘야, 네 말처럼 세상의 일은 그렇게 다되는게 아니야!》 《엄마가 안 주면 나절로 쫓아가서 가질래!》 《엉? 몽순아, 안돼!》 우진이는 임산부답지 않게 몸을 날리며 바람같이 창턱을 넘어섰다. 우진이가 오른팔에다 깁스를 하고 오른쪽 눈귀에 거멓게 딱지가 앉은채 병원입원실을 나와 휴계실로 향하고있었다. 추락사고가 있은지 꼭 열흘만이다. 다행히 2층이다보니 큰 사고는 나지 않았다. 그녀는 상처의 아픔보다 더 아픈것은 마음 한복판이였다. 남편이란 사람은 그때까지도 병원문 언저리에도 얼씬하지 않았다. 우진이는 금세 말초신경이 폭발할것만 같았다. 그녀는 처절한 배신의 그물을 뒤집어쓰고 몸부림으로 절규하고있었다. 그녀는 벼랑가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히스테리적으로 중얼거린다.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았을 때 생명은 더는 존재의 가치에 매달리지 않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았을 때 생명은 더는 존재의 리유에 갇혀있지 않는다. 가치는 잃은자들의 배반이고 리유는 얻은자들의 믿음이다. 발버둥은 우주의 얼굴에 슬픔을 더하고 축이 없는 회전은 추락의 날개를 적신다. 휴계실에는 환자 몇이 앉아 텔레비죤을 보고있었다. 우진이도 걸상에 앉아 텔레비죤에 눈길을 주었다. 무시무시한 뉴스가 방송되고있었다. 얼굴은 다 감싸고 두 눈만 판들거리는 괴한들이 일본인 인질을 꿇어앉히고 세상에 공개하고있었다. IS테러조직이라고 하는것 같았다. 그녀는 인츰 눈길을 돌렸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당신 어디야?》 그 소리가 얼마나 높았던지 저쪽에서 텔레비죤을 보던 환자들이 눈을 마주쳐오고있었다. 《나 병원이지 어디겠어요?》 《뭐야? 상기도 병원에 있어? 원체 죽자고 뛰여내린 사람이 아니였구만 뭐?.》 《당신 그것도 말이라고 해요?》 《말이든 소든 퇴원하는대로 리혼도장을 찍으란 말이야. 알았어?》 … … 텔레비죤에는 이스라엘 폭격에 층집이 무너지고 숱한 사상자가 쓰러져있는 화면이 피비리게 터져왔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배에 손을 얹었다. 배가 또 아파오기 시작했다. 《몽순아, 이런건 못 듣고 못 본걸로 한다. 알았지?》 《이미 다 듣고 다 보았는데 어떻게 되돌릴수 있어요?》 《아니야! 넌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었어. 얘야, 저기 창너머를 보려무나. 라일락이 곱게 피면서 그 향기가 밀려오는구나.》 《나에게는 다 화약냄새 같은데요.》 《아니야! 저건 확실한 꽃이야! 그리고 향긋한 냄새고… 너 아직 세상에 나와 보지 않아서 모를거야. 꽃이 피는 세상은 참 아름답거든.》 《꽃이라는것도 아빠, 엄마가 있는게 아니예요?》 《그건?…》 《잘 모르긴 하겠지만 꽃이라는것도 아파서 피는걸거예요. 저는 여기서도 걔네들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는것이 빤히 보이거든요.》 《얘야, 너 어쩜 벌써 그런 말을 할수 있니? 그런 말은 너희들이 하는게 아니지. 너희들은 좋은것만 보고 아름다운것만 봐야 하는거야. 그러니 어서 빨리 나오거라. 나와서 우리 꽃구경 가자구나. 꽃놀이 가자구나.》 《아니예요. 전 안 나갈거예요.》 《아니! 너 그건 무슨 말이냐?》 《전 인간세상에 나가기 싫어요.》 《엉? 어쩜 그런 소리를 하니? 엄마에게 제발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지 말거라. 엄마는 너 하나만 믿고 버티는데.》 《죄송해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그러니깐 방금 한 말은 취소! 그렇지?》 《그렇게 할수 없어요. 저는 세상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을 단단히 굳혔거든요.》 《아니야! 그건 너무나도 불운한 생각이야. 세상에 나오면 엄마의 배속보다 더 따뜻한 가슴이 있는거야. 엄마는 그런 가슴으로 너를 꼭 안고싶은거야. 그것이 또 엄마의 행복이기도 하고…》 《엄마의 행복을 이뤄주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그럼, 용서하지 못하지. 못하구말구. 그러니 어서 나올 준비를 해야지. 그안에서 오래 있을수도 없는거야. 때가 되면 나오기 싫어도 나와야 하는거야. 그러니 이왕 나오는바 하곤 깨끗하고 밝은 얼굴로 나와야지. 안 그래?》 《엄마, 이제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저같은건 원래 없었던 아이로 생각하세요!》 《아니! 몽순아! 태줄은 왜 목에 감는거야? 엉? 안된다! 어서 풀어라! 어서!》 《우리 몽순이를 살려주세요! 우리 애가 목을 매고있어요.》 삽시간에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휴계실을 메우고있었다. 우진이는 계속 아츠러운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텔레비죤화면에는 잃어버린 아이를 찿는다는 광고가 또다시 뜨고있었다. 길림신문 2015-10-15  
5    [산문] 님의 부탁 김정권 댓글:  조회:345  추천:0  2015-01-16
[산문] 님의 부탁 김정권  봄이 오는데 왜 떠나려 하십니까? 그대여, 겨우내 목깃에 꽁꽁 채워진 넥타이를 풀고 저기를 좀 보세요. 꽃이 피는 봄날의 빠알간 언덕위에서 호랑나비 하늘하늘 춤을 추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고 서두루십니까? 그대여, 차가움에 시리던 눈을 크게 뜨고 저기를 좀 보세요. 아지랑이 아물대는 반공중에서 노고지리 쌍쌍이 구성진 노래가 흘러나오는 그 고운 입술에서 깨소금 똑똑똑 떨어지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그대여, 강남 갔던 제비들도 어김없이 돌아와 처마밑에 집을 짓고 가슴 따습게 별들의 합창을 들으며 꿀맛 같은 사랑을 나누는데 당신은 왜 떠나신다는 겁니까? 기어이 가시겠다면 차라리 파아란 여름에 떠나세요. 여름이 오는데 왜 떠나려 하십니까? 그대여, 종다리의 지저귐에 간지럽던 귀를 활짝 열고 저기 저 소리를 좀 들어보세요. 록의 홍상 잎새들 속삭이는 언덕에서 짝을 찾은 산비둘기 구구구 노래하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그대여, 가슴을 활짝 펴고 저기 저 라일락의 향기를 맡아 보세요. 새색시의 향분 같은 안개꽃이 사뿐히 내려앉으면 부지런한 참새가 아침해살을 물어다 자리를 만들어주고 파아란 꽃바람이 노을이불을 풀어 내리여 살포시 덮어주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 하십니까? 그대여, 두 팔을 쫘악 벌려 저기 저 남촌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안아보세요. 그리고 바지가랭이를 거두고 별의 눈물 같은 이슬에 시원히 발목을 적시며 저 논두렁길을 걸어보세요. 개구리들 정답게 사랑노래를 부르면서 하늘 향해 팔베개를 하고 오순도순 정감을 나누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고 하십니까? 그대여, 창을 열고 저 소리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심은 옥수수가 단비를 맞으며 쭉쭉 마디 뻗는 소리에 처마밑에서 낮잠 자던 멍멍이가 컹컹 짖어대고 그옆에서 지켜보던 해바라기가 수줍게 웃고있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그대여, 보세요. 하늘에서는 청풍명월 휘영청 달 밝은 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서 서로 만나고 숲에선 봉황이 서로 목마른 입을 맞추고 련못가엔 원앙이 쌍쌍이 갈대밭속에 드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기어이 가시겠다면 차라리 노오란 가을에 떠나세요. 가을이 오는데 왜 떠나시려 합니까? 그대여, 호흡을 크게 들이 쉬여 이토록 향긋한 내음을 한번 좀 맡아보세요. 오상고절 국화꽃 싱그러운 언덕에서 꺼벙이들 알을 깨고 쫑쫑쫑 나오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고 서두르십니까? 그대여, 하늘 보세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 내가 산다면, 그리운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는것과 같이 이처럼 그리운 날은 살진 구름꽃 햇솜같이 높이 떠서 손에 손잡고 아기자기 밀려오면서 청정무구의 사랑을 나누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고 하십니까? 그대여, 저 산을 좀 보세요. 저 가을꽃자리에서 여름에 덴 아름다운 상처로 단풍이 빨갛게 불타는 숲속에 부엉이 날개를 접어 깃들고 마음대로 익어터진 알밤이 아기 가진 고슴도치젖꼭지마냥 팽팽히 부푸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하는겁니까? 그대여, 저 드넓은 들판을 좀 보세요. 신부의 드레스 같은 금빛해살이 투명한 진주가루로 쏟아져 황금빛 오곡에 너울을 씌워주고 탱탱 영근 벼이삭위에 고추잠자리 등에 업혀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하며 사랑 사랑 내 사랑을 하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 하십니까? 그래도 기어이 떠나시겠다면 차라리 하아얀 겨울에 떠나세요. 겨울이 오는데 왜 떠나시려 합니까? 그대여, 숨을 죽이고 저기 저 앞산을 좀 보세요. 설야 창창 눈꽃이 흩날리는 산언덕아래 샘물가에서 산새가 거울보고 노루가 발 씻고 날다람쥐 가랑잎 한잎 물고 굴을 찾아 퐁퐁퐁 달리는데 당신은 왜 떠나신다고 그러십니까? 그대여, 두손 내밀고 거위 털같이 내리는 저 꽃눈 좀 맞아보세요.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려 분가루 같은 눈이 꽃분이가 가는 길, 시집가는 길을 손 저어 바래주는 경도나무머리에 새하얀 수건을 얹어주는데 당신은 왜 떠나시려 합니까? 그대여, 창문 열고 앞마당을 좀 보세요. 무릎 꿇고 엎드려 게으르게 새김질하는 얼룩소의 잔등우에 발 시린 수탉이 달랑 올라앉아 꼬끼오! 하며 청아한 아침을 부르는데 당신은 왜 떠나려고 그러십니까? 그대여, 다시 고개 들어 저 하늘 좀 보세요. 해와 달이 가장 가깝게 하늘 상에 마주앉아 실타래 같은 기인 그리움을 풀어놓으며 은하수를 하얀 유리잔에 가득 담아들고 건배를 하는데 당신은 왜 떠나겠다 하십니까?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떠나지를 마세요. 당신은 떠날게 아니라 이제 저의 령혼의 빈방으로 들어와야 해요. 아니! 무조건 들어오세요! 그래도 기어이 떠나시겠다면 차라리 잊혀진 계절에 떠나세요. 그리고 내가 두견이 되여 당신의 가는 길에 뿌려놓은 피울음을 즈려밟고 가세요. 그러면 저의 찢어진 령혼의 날개의 한조각이나마 당신의 발목에 묻혀서 갈가 봐요. 연변일보
4    [수필] 부끄럼이 뭐길래 (김정권) 댓글:  조회:499  추천:1  2014-07-04
[수필] 부끄럼이 뭐길래 김정권 일요일은 엄마를 목욕시키는 날이다. 엄마는 금년에 88세 고령이시다. 엄마는 오금이 불편하여 목욕은 의레 내가 시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일정에서 일요일은 큰 대사를 치르는 날이나 다름없다. 나는 일요일만 되면 엄마의 속옷을 챙겨놓고 엄마를 홀딱 벗긴다음 욕실로 안고 들어가 비누를 좔좔 묻혀 엄마의 질겨 처진 몸을 빡빡 문댄다. 엄마의 젖가슴은 바람 빠진 고무풍선과 같이 가죽만 거풀거린다. 엄마는 이제 체념한듯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나에게 모든것을 맡긴다. 나는 엄마의 등이며 허리며 모조리 밀며 내려간다. 나의 손은 내려가다가 딱 한곳에서 멈춰선다. 녀자의 가장 부끄러운 곳이라 하겠다. 엄마는 그곳만는 나의 손이 절대 닿지 못하게 하며 꼭 당신의 거쿨진 손으로 씻는다. 늙어도 녀자는 녀자인 모양이다. 우리 집은 나의 우로 녀자 다섯이나 세상에 나와서는 줄줄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그후로 형님과 나의 아래로 남자 다섯이 생겨났다. 엄마는 내가 소학교 3.4학년 때부터 죽는다 산다 했다.  어릴 때적 나의 기억에는 엄마는 늘 수건을 머리에 동이고 자리에 누워있는 아픈 엄마였다. 우리 집은 늘 신음소리가 밥가마 끓는 소리보다 더 높은 가난한 집이였다. 내가 열네살때였다. 엄마는 의식을 잃고있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공사(향)병원에 싣고갔다. 엄마는 이틀이 지나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였다. 나는 엄마가 당장 죽는것만 같아 가슴이 쾅쾅 거렸다. 엄마는 병원에 가서도 의식을 못차리였다. 의사는 엄마의 소변을 화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의식이 없는 엄마의 소변을 받는다는게 참 곤혹스런 일이였다. 그것도 손가락만한 유리관에 받으라는것이였다. 의사는 엄마의 소변을 18살 먹은 형이 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성에 한참 부끄러운 형은 그 일을 가만히 나에게 시키는것이였다. 나는 형이 시키는 일이니 못하겠다고 오리발을 내밀수는 없었다.  소변이 언제 나올지 모르니항상 눈을 엄마의 그곳에서 떨어져서는 안되였다. 엄마의 그곳을 본다는게 죽기보다 더 싫은 일이였다.  이미 세상에 나와서 죽어나간 누나들이 사무치게 그리워나는 시각이였다. 나는 형님 몰래 은근히 눈길을 다른데로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 끝내 큰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내가 모르는 어느 사이 엄마의 소변이 나왔던것이다. 의사들은 형과 나를 바보라며 마구 욕을 해댔다. 그후에도 내가 엄마의 소변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그 일은 나중에 끝내 형이 해냈다. 엄마의 병은 신염이였다. 엄마는 열닷새동안만에 겨우 의식을 차리였다.   엄마는 그후에도 그냥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가정을 살리겠다고 젖은 일 마른 일을 가리지 않으셨다. 내가 왕청현문공단에 간 이듬해였다. 엄마는 동생이 손 얼구며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왕청에 팔러 오셨다. 한참 기다려서 차를 타고 60리 길을 오다보니 큰시장에는 근본 농촌아낙네가 들어앉을 자리가 없었다. 엄마는 물고기 대야를 이고 신민가 시장에 와서 자리를 잡으셨다. 그런데 그 자리가 다른 물고기를 파는 한족 되거리 장사군 자리옆이였다. 되거리 장사군은 눈을 부라리며 엄마를 험상궂게 훈계하였다. 실은 엄마의 물고기가 자기것보다 더 싱싱하니깐 주위에서 물러가라는것이였다.  한어말은 “니디 워디”밖에 모르는 엄마이다보니 도무지 소통이 될리가 만무하였다. 그런대로 엄마가 손더듬이질을 하면서 겨우 한쪽 옆에 앉아 물고기를 팔려 하는데 갑자기 되거리장사군이 다짜고짜로 엄마의 물고기 대야를 걷어차 버리는것이였다.  땅바닥에 좌르르 깔린 물고기들은 행인들의 발에 밟혀 터지고 말았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한 엄마는  손으로 물고기를 끌어 담으며 눈물을 흘리시였다. 결국 엄마는 물고기를 한근도 못 팔고 되거리 장사군에게 밀리워 났다. 문공단의 다른 동료에게서 그 일을 전해들은 나는 화가 꼭두미까지 치밀었지만 엄마의 간절한 부탁으로 그 되거리 장사군에게 욕 한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엄마는 무법천지인 그 되거리 장사군들에게 내가 괜히 피해를 당할가봐 겁났던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바보스러웠던 내 자신에 스스로 화가 나며 자식으로서의 불효에 부끄럼이 더해진다. 만약 그때 엄마가 진단을 제대로 못받고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나는 한평생 내 자신을 미워하며 살았을것이다. 엄마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끄럼따위가 다 뭐기에? 엄마의 애간장이 다 타번저지는데 내 안위 따위가 다 뭐기에? 부끄러운것은 부끄럽지 않은것에 부끄러워 한것이였다. 다행히 엄마가 지금까지도 오래오래 살아주셔서 그저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이런 저런 이왕지사들을 돌이켜보느라니 이제 얼마 안되는 엄마의 인생에 자식으로서 더 이상 부끄럼 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출처 연변일보  
3    [산문] 잎새의 노래 (김정권) 댓글:  조회:539  추천:0  2013-09-06
[산문] 잎새의 노래 김정권 봄이 겨울나그네의 아이를 잉태하고 대지에 푸른 눈섭을 살포시 내민다. 꽃은 아직 푸른 눈섭속에 잠자고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녹두알 같은 파란 잎새만이 콩새부리처럼 입술을 살짝 벌리여 하늘을 쪼으며 봄의 잉태를 세상에 알린다. 이맘때면 화사하고 요사한 녀신이 화창하게 웃으며 아지랑이드레스를 휘감고 피리 부는 목동의 한가슴을 파고든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남 먼저 빨간 리봉을 매고 산릉선을 달리는 진달래아가씨며, 춘몽에 잔뜩 부푼 처녀의 코바늘에 수놓아진 횃댓보 같은 살구꽃이며, 가마 타고 시집가는 새색시의 귀걸이 같은 개나리들이 한껏 저마다의 자색을 뽐낼 때에도 웬지 사과배꽃님은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바야흐로 산과 들이 록색의 치마를 입고 꽃양산을 펼쳐들무렵, 연두색 단추 같은 사과배나무잎새는 그 시점에서 되려 성장을 멈춘다. 한것은 자신의 품속에 꼬옥 껴안겼던 꽃봉오리들이 하얀 찰옥수수알처럼 돋아나게 하기 위함이다. 사과배꽃은 그렇게 늦동이꽃으로 산기슭에 얼굴을 빠금히 내민다. 그즈음 잎새는 호함진 꽃망울이 흐드러진 꽃잎으로 활짝 피여나기까지 꽃님의 뒤에 혹은 옆에 비켜서 오로지 오구작작 돋아나는 꽃봉오리들만을 받쳐주고 밀어준다. 여기까지 잎새는 꽃의 엄마였다면 이제부터는 잎새는 열매의 누나로 변신된다. 이제 잎새는 집안의 큰누나답게 훌쩍 자라서 작은 애기열매를 안아주고 업어준다. 넓은 가슴으로 때아닌 이른 서리를 막아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고 해빛이 따가우면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이 불면 벽이 되여 열매의 생명인 수분과 산소를 보장해준다. 엄마의 사랑을 먹고 누나의 정을 만끽하며 열매는 옹기종기 서로 얼굴을 비비며 알알이 살진다. 또한 잎새는 세월의 말소리를 꼭 붙잡고 커다란 귀를 활짝 열어 사랑하는 열매들에 흘러간 옛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들려준다. 창호(사과배를 성공시킨 사람)라는 사람이 소기골(룡정시 로투구진 소기촌)원두막에서 꿈을 굽고 희망에 부풀던 이야기로부터, 북청엄마(함경북도)가 북간도(연변) 아빠에게 무작정 시집을 왔다는 이야기로부터,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애가 잘 들어서지 않아 애먹던 이야기로부터… 그리고 열매들이 피곤해하면 잎새는 또한 자상한 외할머니마냥 바람의 풍악에 맞춰 은은하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이제 엄마보다 불쑥 커가고 누나보다 한결 건실해진 열매들이 태양과 말을 섞으며 별들의 윙크를 받을 때 잎새는 엄마되고 누나된 소망의 꿈을 다시 또다시 되새겨보면서 그 뿌듯한 대견함에 흠뻑 젖어 하늘에 “청출어람”의 기쁨 한아름을 공손히 바쳐올린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들과 헤여져야 하는 생리적인 슬픔도 달갑게 감내할줄 아는 잎새이고보면 리별이란 그다지 서러운것만이 아니렷다. 리별은 어느 세상에나 다 있는 섭리인것이라 할 때 주어진 삶은 그처럼 소중한게 아니겠는가? 잎새는 그래서 그 소중한 삶을 아껴 엄마처럼 누나처럼 할머니처럼 살아온게 아니겠는가? 이제 “천고마비”의 계절에 잎새는 누렇게 말라가면서 연지곤지 찍고 시집장가가는 열매에 붉은 웃음을 보내며 쓸쓸히 남아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뿌리로 간다. 흙으로 간다.
2    [수필] 추<臭> 중<中> 미<美> 댓글:  조회:778  추천:0  2013-04-26
추 중 미 김정권 만춘의 계절, 봄은 이제 겨울이 흘려버린 찬바람을 걸러내고 흰눈보자기로 도시락을 꽁꽁 쌌다. 점심을 알리는 종달이의 종소리에 벌써 성급한 버들개지들 포동진 손으로 봄보자기를 풀어헤친다. 어느덧 태양의 가슴아래 따스해진 도시락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향기로 감미롭다. 그 즈음 아지랑이에 목마른 잔디손이 뚜껑을 열어젖히면 하얀 꽃이밥이 향그럽다. 파란 나물찬이 상큼하다. 이맘 때면 나의 안(眼)전에는 어김없이 황홀한 벗꽃들이 세월의 겉옷을 벗고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모습이 펼쳐진다. 나는 하루 두번 연길 동북쪽 변두리를 산책한다. 예전에는 사과배나무 과수원길이였었는데 지금은 거대한 하늘룡이 내려앉은듯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뻗어있다. 나는 하루의 3분의 1의 시간을 거의 여기에 할애한다. 아직까지는 길 량쪽에 사과배나무들이 줄져있어 좋다. 길 복판에는 아프리카 코끼리 다리 같은 소나무들이 한일자로 늘어섰고 그 다음 상하선으로 차길이 펼쳐지고 그 옆에 하늘을 찌르는 들메나무들이 촘촘히 서있고 그 다음 인도옆에는 버드나무들이 머리를 풀어 헤친 녀인마냥 흐느적거리며 서있다. 이렇게 다섯줄의 가로수를 가진 길이 내가 사는 동네에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인도에 가장 많은 정을 가진다. 해마다 봄이 오면 량옆에는 굵은 사과배꽃이 하얀구름이 내려앉은듯한데다 그속의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가로수들을 안받침해주어 마치 펼쳐놓은 이불안에 비단구렁이가 지나가는것 같아 보는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해서 이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산책하기 좋은 자리에서 좋지 못한 인상을 받기도 비일비재이다. 길은 아직 정식으로 개통이 되지 않아 사람들의 놀이장소로도 손색이 없을만큼 명소라 하겠다. 그와는 반대로 밤을 자고나면 인도에는 마시고 버려진 술병과 음식찌꺼기들이 군데군데 널려져있다. 어디 그뿐인가? 음주운전으로 귀한 가로수들을 처박아 꺾어 눕히는가 하면 자람새 좋은 들메나무와 버드나무를 가만히 잘라가 그루터기만 봐도 불량량심자들의 속마음을 어렵사리 보아낼수 있다. 거기다 또 세사람중 한사람 꼴로 애완견들을 끌고 나와 인도에다 마구 배설을 하게 놔둬서 기분이 잡칠 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고집하고 걷는다. 그것은 이런 풍경속에서도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있었기때문이다. 지난 여름날,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이 길을 걸었다. 내가 버릇처럼 비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해솟는 동쪽을 향해 걷고있는데 불현듯 앞에서 가던 웬 녀자가 똑 멈춰서더니 데리고 나온 애완견이 변을 보기를 기다리고있는것이였다.나는 또 기분이 잡치기 시작하였다. 내가 코를 찡그리며 얼굴을 들어 지나치려 할 때 녀자는 손에 쥐였던 비닐주머니를 펼치는것이였다.다음 주머니에서 애들 장난감 같은 손삽을 꺼내더니 금방 싸놓은 개똥을 삽으로 담아서 비닐주머니에 넣는것이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어마지두 놀라며 눈섭을 추겨들었다. 녀자는 나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고있었다. 그제야 나는 녀자를 잠간 살펴볼수 있었다. 녀자는 아래우에 연분홍색 운동복을 입고있었다. 꽁져맨 머리카락은 동그스럼한 어깨옆에서 먼지를 쓸어내듯이 달싹거리였다. 애완견 역시 주인을 닮았는지 앙증맞고 귀여운데다 꼬리가 녀자의 머리를 방불케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언녕 돌아서 집으로 와야 할 시간이였건만 그날은 웬지 몸을 탈기 싫었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운동을 하고있는척했다. 녀자가 내 옆에 다시 나타났을 때는 대략 20분후였다. 녀자는 아직 앳된 얼굴의 소녀였다. 소녀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나는 나어린 소녀에게서 진정 아름다움의 향연을 느낄수 있었다. (아! 아름다움은 저렇게 더러움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구나!) 일순, 나는 향기의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향수(香水)에 대한 유래를 음미할수 있었다. 향수는 일찍 영국에서 생선가계 로동자들의 역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린내에 찌든 로동자들의 옷가지와 몸에 뿌려 악취를 없애려는 목적으로 개발된것이 오늘날 남녀로소 할것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선호하는 향수라 한다.그리고 현재 전세계의 거대한 브랜드로 되고있는 녀자들의 하이힐도 가장 더러움속에서 탄생되였다고 한다.이를테면 원시의 후족들이 한자리에서 먹고 싸는 습성에서 나중엔 땅바닥에 배설물이 넘쳐나기에 신발뒤축에 높은 물건을 덧붙인데서부터 유래되였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 녀성들의 발목관절을 망치면서도 결사적으로 고집하는 하이힐이란다. 그 후에도 나는 개똥 담는 소녀를 한번 더 목격하였다. 소녀의 아름다운 그 내면적인 소행은 오래오래 내 가슴속에서 물결처럼 여울쳐 올랐다.소녀가 가지고 가는것은 단지 개똥만이 아니였다.소녀가 가지고 가는것은 개똥이기전에 아름다운 마음이였다. 보석반지가 반짝이는 손에 명품가방을 들고가는 녀인이 번화거리에서 가래침을 내뱉으면 사람들은 얼굴부터 찡그릴것이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입에서 의외의 속된 언어가 튕겨나오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조소의 눈길을 보낼것이다. 겉이 아무리 아름답고 잘생긴 사람이라도 공중장소에서 그 행실이 속된다면 똥보다도 더 더러울것이 아니겠는가? 더러움을 만드는 자나 더러움을 피하는 자에 한해서는 똑같이 아름다움을 운운할수 없겠지만 그 더러움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사람만이 아름다움을 가질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그 길에 산책을 나간다. 이제 만개한 사과배꽃을 바라보며 새파란 털실같은 버들가지들에 스치우며 길을 걷는다.그리고 행여 맞띄우지나 않을가싶을 소녀를 생각해본다.
1    [수필] 설(雪)이 없는 서러움 (김정권) 댓글:  조회:887  추천:0  2012-11-19
설(雪)이 없는 서러움 김정권 지난 9월 4일, 나는 한국 동해시 문화원 일행과 같이 장백산 관광뻐스에 몸을 실었다. 꼭 십년만이다. 십년전 연변텔레비죤 주말극장 프로그램을 찍을 때 가보고 이번이 처음이다. 관광뻐스는 시원하게 뻗어나간 포장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답답하고 꽉 막힌 연길시 거리와는 달리 무척 신나고 상쾌한 나들이라고 하겠다. 뻐스는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서쪽으로 향해 달린다. 달리면서 창옆에 앉은 나에게 잘 익어가는 옥수수밭이며 머리통이 무거워 고개가 숙여진 해바라기밭이며 빨간고추들이 파란 지붕우에서 잠을 자는 산촌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오래 보이기는 아까운지 잠깐씩 보여주고는 뒤로 뿌려친다. 그렇게 뻐스는 두시간가량 달리면서 나의 눈앞에 더욱 놀라운 그림을 선사한다. 망망한 림해의 수려함속에서의 빨간단풍잎, 여느 화가들의 눈길을 빼앗는 계절에 접어들기 시작한것이다. 나는 창문을 열지 못하는것이 무척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같아서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림해의 가을 풍경에 한껏 취하고 싶었으나 공기조절기가 안장된 차인지라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바깥풍경에 충분히 도취돼 있었다. 자연은 그렇게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관경은 꽤 오래가지 못했다. 문득 나의 눈길이 산기슭을 감고있는 “흰비단필”에 가 멎는 순간, 인간의 걸작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기름개구리를 잡는 비닐박막이였다. 비닐박막은 나의 눈길을 따라 마치 꿈틀거리는 백사(白蛇)와 같이 끝없이 늘어져있었다. 순간 내 머리속에선 그 아름답던 풍경은 사라지고 제가 잡힐것도 모르고 비닐박막굽을 따라가다가 인간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져 발버둥 치는 개구리들의 처절한 모습이 련상되면서 다시 바라볼라니 산은 흰색의 올가미에 걸려 얼굴이 누렇게 시들어가면서 마치 죽음을 호소하는것 같았다. 그렇게 뻐스는 처음과는 달리 가볍지 않는 내마음을 담고 백두로 향해 내처 달리고있었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아침 일찍 서두르다보니 잠을 설친것도 있지만 더는 바깥을 내다 볼 기분이 아니였다고 하는편이 더 적절할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으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런대로 애써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그렇게 자는둥마는둥 이생각저생각 하며 한시간 푼히 걸렸을까 할때 가이드가 마이크를 들고 하는말이 이제 20분정도 달리면 종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주의사항을 간단히 알려준다. 말그대로 20분후에 우리는 모두 뻐스에서 내렸다. 옹근 세시간반정도 앉아왔으니 살것만 같았다. 모든 관광차량은 여기서 내린다음 장백산입구까지 걸어가야 한단다. 우리가 이말저말 하며 200메터가량 걸어갈 때 길 오른쪽에 이름모를 무덤이 우리들의 시선을 잡았다. 나는 “웬 무덤이 여기에 이렇게 있을까? 아마 특별한 무덤이겠지…”하며 걸어가는데 무덤은 한두개가 아니였다. 얼핏 보아도 20여개는 잘 되였다. 무덤에 잔디도 없고 별 성의없이 새긴 비목의 이름을 보니 민간인임에 틀림 없었다. 불쾌했다. 어쩌면 다른 산도 아니고 관광객이 하루에 수천명이 지나가는 백두산턱아래에 그런 볼성 사나운 무덤이 생겼났다는것은 너무나도 기분이 잡치는 일이라 하겠다. 그 무덤에 누워 있는 분들에게는 조금은 죄송스럽지만 도리여 그 자리에 민족을 위하여 목숨 바친 독립군 투사들이나 의용군 투사들이라면 경의스러운 하나의 관광코스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도 생각해본다. 그런 와중에 일행은 어느덧 장백산 입구에 들어섰다. 앞에는 대형호화뻐스가 우리를 기다리고있었다. 내다보니 그런 뻐스가 몇십대는 잘되게 손님을 부르고있었다. 그런데 차옆에 있던 이상한 복장을 입은 녀자들이 있으니 멀리서 관광 온 소수민족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가이드였다. 뻐스에 앉아 15분정도 가니 또 다시 내리라고 한다. 내려서 보니 온통 차량과 사람천지였다. 백두봉과 폭포를 올라가는 길목이였다. 우리는 먼저 (三菱)승용차에 앉아 백두봉으로 올라갔다. 차는 굽이 굽이 달리는 품이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스포츠차에 앉은 기분이였다. 아니! 더 적절히 표현한다면 믹서기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랄까? 그만큼 그 운전수들에겐 시간이 돈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에 한사람이 20여차씩 오르 내린단다. 똑같은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르고 내린다. 그들의 운전실력에 탐복이 가지 않을수 없다. 어느새 어떻게 올라왔는지도 모르는 사이 차는 우리를 백두봉 코밑에 부리워 놓았다. 보매 여기도 똑같은 차가 50여대가 대기해 있고 백두봉엔 사람들로 주렁지여있었다. 장백산의 차량을 다 하면 500대도 넘는단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걸어서 올라야 한다. 우리는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엷은옷 한벌 걸쳤는데도 춥지 않는게 이상했다. 올리다 보니 반팔바람으로 오르내리는 관광객도 수두룩 했다. 모두 날씨를 제대로 잡았다고 야단들이다. 십년전에는 삼복철에 와도 춥다고 손을 호호 불었댔는데… 좋아할 일이 아닌듯 싶었다. 아니나 다를가 정상에 올라서니 나의 마음 한구석은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한것은 백두봉엔 눈이 없기때문이였다. 의례히 눈이 있어야 할, 그것도 태양을 덜 받는 음지쪽엔 하얀눈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눈이란 싸래기좇아 보고 죽자해도 없기때문이다. 심히 아쉬웠다. 그리고 이때에야말로 지구의 온난화를 피부로 절감했다. 온난화는 우리 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별다른 관심 없이 남의 나라의 일만 같이 생각 했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느낄줄이야? 사람들은 너도 나도 좋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야단법석이였다. 나는 사진 찍을 흥미도 잃고 곧바로 내려왔다. 우리는 다시 “믹서기 안 만두속”이 되여 내려와서는 폭포로 갔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것은 또 있었다. 폭포 100메터 아래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게 통제되여 있었다. 산새태가 내려와서 천지를 올라가는 층계가 모조리 묻혀 있었기때문이다. 바로 십년전 이때 나는 저 층계를 밟으며 천년설이라는 눈동굴을 지나 천지에 가서 손발을 담그던 그 전경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러면서 자연과 인간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위대하고 아름답던 자연도 오늘날 문명을 부르짖는 인간에 의해 무너져내리는 “비참한 시대”를 겪는구나 하며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자책을 해본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나의 눈길은 자기도 모르게 또 다시 길옆의 무덤가에 머물었다. 나는 애써 그 무덤들을 보지 않으려고 잠시 돌아서서 백두봉을 보았다. 순간 나의 시야에 들어온 백두봉마저 어쩐지 하나의 커다란 무덤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폭포는 설이 없는 서러움에 눈물처럼 흘러 내리는것 같았다. 뻐스는 바로 두시간전에 오던 길 반대방향으로 우리들의 몸뚱이를 빽- 돌려 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뻐스안의 텔레비죤 화면에서 신기, 신비, 신성, 장엄, 웅위롭다는 글자가 백두산천지를 배경으로 하여 날아나오고있었다. 언제 찍었는지는 몰라도 설이 있는 백두산은 그런 형용사가 충분히 붙을만큼 아름답고도 웅위로웠다. 십년전 백두산도 저렇게 아름다웠었는데…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물이 아니로다…”는 옛 시가 이젠 “산도 옛산이 아니고 물도 옛물이 아니로다”로 고쳐야 되지 않나싶다. 사람들은 시계수자가 12시가 끝으로 다시 1시로부터 시작한다는 리치는 다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세계환경시계바늘이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는 잘 모를것이다. 얼마전 우연히 그에 관한 자료를 보고 충격을 먹은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세계환경시계가 정확히 9시33분을 가르키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시계는 충전만 하면 12시에서도 다시 1시로 계속 돌아갈수 있지만 환경시계가 12시가 되면 지구가 어떻게 된다는것을 더 말치 않아도 잘 알수 있을것이다. 백두산이 중국 십대명산이 되면서 관광업이 활기로운건 좋은 일이지만 자연이 파괴되는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