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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남방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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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조글로 & 남방아리랑 제휴 의향서 체결 댓글:  조회:3259  추천:27  2010-08-15
조글로가 남방아리랑과 제휴 의향서를 체결했다.8월 10일 조글로 김삼 대표는 항주를 방문, 남방아리랑 항주지부 공동대표 남연 항주금교국제려행사 한국중심 부사장과 만나 남방아리랑 회원들인 권승문 절강공상대 교수와 현충혁 KOMIPHARM 중국구 특파전원의 입회하에 공식적으로 제휴 의향서를 체결했다.쌍방은 의향서에서 앞으로 각자 우세를 충분히 이용하여 다양한 콘텐츠교류,프로젝트 공동추진을 통해 함께 "건강한 조선족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자고 약속했다.남방아리랑 항주지부 남연공동대표는 최단시일내에 상해 소흥 무석 등지의 남방아리랑 지역지부 공동대표들과 회동을 갖고 공동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표했다.남방아리랑은 절강,상해,강소 지역에 진출한 조선족 교수,언론인,문학인,사업가들의 쇼셜 네트워크 커뮤니티로서 현재 1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중에 있으며 민족정체성을 고양하면서 친목과 발전을 도모하는데 취지를 두고 있다.조글로사무국2010.8.11 
106    대한민국을 더 좋은 나라로 만들려는 몸부림. 댓글:  조회:2650  추천:44  2009-09-10
"국어가 푸대접 받는 이유? 국가기관과 공무원 때문" [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국어기본법 강제 조항 필요...'국어 예산' 늘려야   이대로 한글날을 앞둔 2009년 9월 8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민주당 김재윤이 주최하고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대표 이대로)가 주관하는 “국어기본법 잘 지키고 있나?”란 주제의 국어정책 토론회가 국어기본법을 만든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정책담당자, 한글단체가 모인 가운데 열렸다. 국어기본법은 2005년 1월에 제정되었는데 국민의 기대와 달리 그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국어기본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국어와 관련된 법은 “공용문서는 한글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는 병용할 수 있다.”는 두 줄짜리 한글전용법(법률 제6호)뿐이었는데 그 법을 보완해서 국어 보전과 발전을 위한 여러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기대가 컸으나 이 법을 지키지 않을 때 강제 조항이 없어 공무원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국민들 또한 잘 몰라서 큰 힘을 내지 못했다. 사실 법이 없어도 한국 사람은 한국말과 한글을 사랑하고 지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어와 한글보다 한자와 영어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 더욱 국어 관련 예산이 턱없이 적어서 그 법을 제대로 시행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 법 시행기관인 국립국어원이 문제가 많다는 주장도 제기 되어서 눈길을 끌었다.  ▲ 토론회 주최자 인사말을 하는 김재윤(민주당 제주 서귀포)의원     © 이대로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김재윤 의원은 “국어기본법이 더욱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국어를 부흥시킬 정책이 마련되어 우수한 한글이 세계로 뻗어나가길 바라면서 앞으로 국회 차원에서 국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승곤 한글학회장은 인사말에서 “국회가 하루빨리 국회의원 휘장과 보람의 글씨를 한글로 바꿈으로써 국어기본법 정신을 살려주는 모범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했고, 김수업 전 국어심의회위원장은 “이런 토론회에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국어 교육을 담당한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가 없어서 아쉬운데 두 정부기관을 잇는 끈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두 관련 부처가 함께 고민하고 협조해서 우리 국어를 살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재일 국립국어원장도 격려사에서 “국어기본법 제정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아주 적절한 시기에 토론회가 열려서 주최한 분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올립니다. 아울러 이 토론 자리가 국회와 정부, 민간단체가 함께 힘을 모으기 위한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격려의 말씀을 하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엔 한나라당의 이인기 의원, 민주당의 유선호 의원, 자유선진당의 박선영 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해 격려했으며, 이계진 의원은 “국어기본법 제정에 앞장선 사람으로 이 자리를 마련한 모든 분에게 고마운 인사를 하면서 앞으로 힘을 합해서 우리 한글을 빛내는 일에 노력하자.”고 했고, 민주당의 안민석 의원은 “지금 국회에서 한자로 된 국회의원 배지 글씨를 한글로 추진하려고 준비 중인데, 그뿐 아니라 국회의장석 앞의 ‘議長’ 이란 한자 팻말을 한글로 바꾸자는 서명운동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고, 박선영 의원은 “우리가 만든 자동차가 전자제품의 상표와 상품이름을 영어로만 적는데 한글도 적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첫 번째 주제 발표를 한 이대로 대표는 “국어기본법은 국어 보전과 발전을 위해서 나름대로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런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는 한글과 한국어를 중요한 국가 상징, 상표로 정하고 국외에 알리는 일을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한글과 한국어가 푸대접 받고 있다. 그런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국어기본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외래어표기법을 고치겠다고 하는데 그 최종심의기관인 국어심의위원회는 1년 반이 될 때까지 구성이 안 되었고 공백 상태다. 이래가지고는 아무리 좋은 법과 정책이라도 권위가 서지 않고 잘 이행될 수 없다. 모든 일엔 때가 있고 차례가 있고 그 때와 차례를 잘 맞출 때 그 일이 잘 풀린다. 그렇지 않으면 더 꼬이고 겉돌게 된다.”면서 국회의원과 정부와 관련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발표자와 토론자, 왼쪽부터 조남호, 김정수, 이대로, 김재윤, 이상규, 노일식     © 이대로두 번째 주제 발표를 한 이상규 교수는 국립국어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국어정책 시행 전반에 관한 문제점과 어려움을 밝히면서 “지난날 국어정책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면 첫째, 먼저 국어 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데 철학적 사유가 매우 부족했으며, 국어 정책 기본 방향을 설정해야 할 전문가 집단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았다. 둘째, 국어 정책의 집행 기관의 행정적 절차가 지나치게 관료화되어 있다. 곧 행정 절차 과정에서 중간 위치에 있는 한 두 사람의 의사결정이 국어 정책의 입안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이 봉쇄되기도 한다. 넷째, <표준국어대사전>이 국어 발전에 이바지하게 할 수 있도록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고도화시킬 필요가 있다. 다섯째,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에 따라 국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또 기본법의 법적 절차가 존중될 수 있도록 국어 정책이 입안되고 또 시행되도록 국회에서의 감시와 점검 과정이 뒤따라야 하며, 정부에서는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제기하고 “한글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 등 어문규범을 재정비하고, 전문용어를 누구나 알기 쉽고 고치고, 종합대사전을 국어원이 아닌 전문가와 국민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남영신 국어문화원장은 외국 출장으로 참석하지 않았으나 미리 준비한 토론문에서, “오늘 우리가 국어기본법에 대해서 토론하면서 국어 전반의 정책을 논하고 있는데, 이런 논의가 정부와 국어학자들의 모국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어로 말글살이를 할 때 가장 좋은데 중국 한문이나 영어로 말글살이를 하는 쪽에서 헤매고 있어 답답하다. 국어기본법이 처음부터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 더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또, 김정수 교수는 “현행 말글 규범은 겨레말에 대한 사랑과 연구와 정성이 모자란 채 만들어 진 것이다. 한국말을 충분히 알지 못해서 서툴게 만든 한글 맞춤법, 겨레말의 마그마인 토박이말과 지표의 흙먼지 같은 들온말을 대등하게 다루는 표준말 규정,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어 수입을 위한 외래어 표기법, 한글보다 로마자를 우대하는 로마자 표기법, 모두 크게 혁파해야 할 규범들이다. 국립 국어원은 비정상적인 국립 기관이다. 한자를 극진히 사랑하는 국어학자들만 선별하는 학술원에서 임의 단체인 ‘국어 연구소’를 만들어 치우친 학맥으로 말글 규범의 국정화를 주도했으며, 나아가 ‘국립 국어 연구원’으로 발전시켜 특정한 대학교 특정한 학과의 교수들만 머리를 쥐고 특정한 학벌의 제자로만 일자리를 독점시켜 마침내 ‘국립 국어원’이라는 국어 정책을 총괄하는 최고의 정부 기구로 승격시켰으나 현재 연구 기관인지 행정 기관인지 알 수 없다.”라고 토론했다.  이어서 국립국어원 조남호 실장은 “국어기본법이 법에서 정한 내용을 강제로 따르도록 하는 규제 조항이라든지 예산과 인력이 수반되는 조항은 내용이 약화되어 법은 선언적인 내용 중심으로 통과되어 집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예산과 인력이 늘어나야 하고 많은 국민이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협조해야 겠다. 그동안 국립국어원에서 노력을 하기는 했지만 국어기본법의 여러 조항이 충실히 정책 과제로 추진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라고 털어놨다. 끝으로, 노일식 문화체육관광부 국어민족문화과장은 “오늘 토론 내용을 정책 시행에 적극 반영하겠다. 국어심의회도 전문가 중심으로 다시 구성해 이달 안에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9월 8일 오후 3시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 국어단체와 기관 참석자들     © 이대로이날 토론은 실제로 많은 국회의원과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관계자와 한글단체가 많이 참석해서 국어정책 단합대회가 된 듯했다. 그리고 국어정책 예산을 늘려야 하고, 국어기본법을 지키지 않거나 무시하면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을 넣어야 하고, 국어심의회와 국어책임관, 국어문화원 누리집을 일반 국민도 마음대로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서 건의나 의견을 쓸 수 있게 해야 하고, 국어정책 전담 국어정책청을 만들고 힘차게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한글단체는 “이번 국회에서 바꾸기로 한 새 국회의원 보람은 한글로 꾸며야 한다.”는 밝힘글을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 성명서 전문 : "국회의 새 보람은 한글로 꾸며야 합니다" 2009년 8월 30일 국회 사무처에서는, 한자 ‘國’이 들어 있는 현재의 국회 보람을 버리고 한글 위주로 새 보람(배지, badge)을 도안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우리 한말글 단체들에서는, 비록 늦기는 했지만 너무나 당연한 일이므로 그 계획을 크게 환영합니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새로운 보람은 반드시 한글로 도안되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첫째, 대한민국의 나라글자는 누가 뭐라 해도 한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국새는 한글로 되어 있고,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 3부 요인과 대다수 지도자들이 서명을 할 때에도 한글로 적는 전통을 지켜 오고 있습니다. 둘째, 대한민국 국회는 대한민국 국민이 직접 뽑은 주권 대리인들로 구성된 헌법기관인 만큼 절대다수 국민이 사용하는 한글을 존중하고 애용해야 합니다. 한자를 알고 쓰는 국민은 소수입니다.셋째, 국회가 한글을 존중하는 모범을 보일 때에 그 파급 효과는 매우 커서 나라 안에 우리말과 한글 사랑의 풍조가 크게 일 것입니다. 넷째, 한글은 권위 있는 세계 언어학자들이 하나같이 인정하듯이 정보화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문자요, 문자가 없는 민족한테도 가장 알맞은 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한글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 상품이라는 사실을 온 누리에 알려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계획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여, 한자의 굴레를 떨쳐버리고 자랑스럽고 자주적인 나라글자로 도안된 국회 보람을 하루빨리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9년 9월 7일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운동본부, 국어순화추진회, 또물또세종국어교육연구소, 배달말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대왕생가터복원준비위원회, 신시민운동연합, 외솔회, 우리마당우리말운동연구회, 우리말바로쓰기모임,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짚신문학회,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한국어정보학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한겨레말글연구소, 한글누리, 한글문화연대, 한글학회,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한글사랑운동본부, 한글문화원, 한글문화연구회, 한글재단, 한글집, 한글철학연구소, 한말글문화협회, 한말글이름펴기모임, 한말글연구회, 한류전략연구소, 훈민정음연구소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기사입력: 2009/09/09 [16:39]  최종편집: ⓒ 대자보
105    강남땅 2월꽃 산책 댓글:  조회:3762  추천:24  2009-02-16
                  강남땅 2월꽃 보시라
104    【답사기】강남땅 1월꽃 산책 댓글:  조회:2931  추천:31  2009-01-21
                  강남땅 1월꽃 산책 1월 17일 오후 소흥 남하산책에서 황매화가 피여남을 본후 강남땅 1월꽃들은 또 어떠할까하는 생각이 든다. 소흥의 탑산과 부산을 거닐면서 직접 관찰해 보기로 했다. 1월 19일의 대우릉, 로신 옛집 답사에 이어 1월 20일 오후 아들애를 데리고 소흥 도심의 탑산을 먼저 거닐어 보았다. 탑산이라면 도심에 솟은 해발 31.3메터의 산을 말하는데 산의 정상에는 동진시기 세워졌다가 1985년에 다시 수건된 응천탑이 있고 산우와 산아래 여러가지 꽃들이 피여나 1월꽃 산책에는 리상적인 명소였다. 시내버스서 내려 탑산의 첫 소로길을 택하니 소로길 연도에는 붉은 동백꽃과 연분홍 동백꽃이 아름답게 피여나 카메라에 잡히였다. 탑산 응천탑아래 청량사 정문가에는 두어그루의 표준적인 황매화가 활짝 피여나 또 발목을 잡는다. 가까이에는 여러가지 화분꽃들이 피여 강남땅 1월꽃 구성원임을 알린다. 탑산 다음 1월꽃 산책은 소흥 중앙도심의 도시광장 서쪽가 부산으로 이어졌다. 부산은 2500여년전 춘추시기 월나라 도읍으로서 극성시기의 송나라 때에는 부산에 72개의 루각과 탑, 정자들이 있었다고 알려진다. 산 정상부는 해발이 74. 24메터에 이르고 산 전체면적은 22헥타르에 달해 사철 다양한 꽃들이 피여나는, 수풀이 우거진 유람명승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겨울 1월에 접어든 부산에서는 갓 피여나는 황매화나 동백꽃은 어디서나 볼수가 있지만 빛다른 꽃을 기대할수가 없다. 희디흰 동백꽃과 필자가 나비꽃이라 이름지어본 풀류 꽃들이 여러 종류로 나타날 뿐이다. 강남땅 1월꽃 산책은 여기서 접어야 했다. 강남땅의 주요지구를 이루는 소흥에서는 동백꽃과 황매화, 여러가지 풀류 꽃들 외에는 무엇을 찾아 볼수가 없다. 꽃들이 무성한 광동이나 해남에 비해 광주서 3000리 떨어진 소흥은 가련할만치 꽃류가 몇종에 지나지 않는다. 여하하든 강남땅 소흥의 1월꽃들을 산책해 보았으니 시름이 놓인다. 광동이나 절강이 서로 다른 기후대여서 차이를 나타낸다면 겨울꽃들이 단순한 소흥이라도 눈내리는 북방에 비해 완연 다른 기후대임을 말하고 싶다. 강남땅 절강은, 절강의 겨울은 의연히 비가 내리며 만물이 생장하는 푸르름의 세계이고 자연꽃들이나 인공이 가미된 꽃들이 의연히 피여나는 남방세계의 일원이다.                              
103    【우리 만남】소흥서 만난 김해수교수와 리민덕교수 댓글:  조회:2690  추천:34  2009-01-20
             소흥서 만난 김해수교수와 리민덕교수   절강월수대 대학원생 교수를 위해 연변서 6000리를 날아온 연변대 조선어(한국어)학부 김해수, 리민덕 두 교수, 조선어(한국어)관련 성숙한 교수로 대학원생들의 한결같은 절찬을 받아 안는데 한분은 기자 대학시절의 은사님이요, 한분은 대학시절의 동반동창이다. 김해수교수는 올해 74살로서 연변대 조문학부에 입학한것은 1957년 9월, 그 시절 동북각지서 모여온 조문학부 제9기생들은 71명. 이들 71명이 1반, 2반으로 편성되자 김해수교수가 2반 반장 겸 조문학부 학생회 주석, 대학학생회 문오부장 등 책임을 맡아 나섰다. 흑룡강성 북안시 출신으로, 북안시 주성향 중심소학교의 교도주임으로 있다가 연변대에 입학한 김해수를 두고 전 학년 학생들은 모두 이름대신 “아즈바이”로 부르기를 즐기였다는 얘기. 재미있는 얘기라 필자가 김해수교수와 아즈바이 내력을 물으니 은사님은  “허허허” 웃으며 이런 얘기를 터놓는다. “나는 령남내기지. 그런데 처음 연변대에 오다나니 함경도사투리 아즈바이를 알수가 있어야지. 내가 어리벙벙해 하자 누군가 아즈바이는 욕이 아니라 존칭이라고 알려주데. 그래서 아즈바이 별호가 붙은거유.” 한자리에 모인 류은종교수님, 리민덕교수 등은 재밋거리라고 손벽을 치며 웃어댔다. 류은종교수한테도 김해수교수는 은사님이여서 그 웃음이  보다 진하다. 김해수교수는 이런 재밌는 일화의 소유자. 1961년 7월에 대학공부를 마치자 대학에 남아 교편을  잡았는데 정판룡교수로부터 본의아니게 고한어교수에 나서라는 청탁을 받았다. 흑룡강 출신이니 고한어를 맡으라는 청탁, 이를 계기로 김해수교수는 1972년부터 연변대에서 중국인 대학생 5개반을 모집하여 조선어(한국어)교육을 처음 실시하자 권철교수가 학부장을 맡은 조선어학부에서 조선어 첫 교수로 나섰다. 후에는 조문학부에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조선어학부로 넘어가 몇해간 학부장으로 뛰게 되였다. 72년급 조선어학부 5개반중 한개반은 연변지방반으로서 지방반에는 장춘에서 왕청현으로 하향했다가  현보도조에 근무하던 하향지식청년 장덕강이란 학생이 있었으니, 현임 중공중앙 정치국 위원이고 국무원 부총리인 장덕강이 김교수의 학생이란다. 이런 경력의 김해수교수가 몇해후 학부장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리니 지금 학부장은 조문학부 78년급 출신 리민덕교수다. 리민덕교수에 따르면 김교수는 일찍 리직한후에도 조선어(한국어)학부에 초빙되여 줄곧 대학교수를 이어오고 있는데 70대의 고령에도 대학교수 일선에서 뛰는 조문학부 출신 교수는 김해수교수 한분뿐. 리민덕교수는 4년 년하라지만  연변대 조문학부 78년급 동반동창이고 대학4년을  한 기숙사에서 의좋게 지나온 무랍없는 형님동생 사이. 1982년 7월에 연변대 졸업후 왕청현 배초구 출신 리민덕교수는 내몽고 울란호트시 조선족중학교에 배치되여 교편을 잡다가 시교육국에 전근되여 뛰기도 했다. 연변대 조선어학부로 자리를 옮긴것은 1992년, 조선어학부에서 교편을 잡은지도 어언 근 20년속에 평교원으로부터 학부장으로 승진하고 교수, 박사로 되였으니 대학교수 또한 대학원생들을 끌기에 족하다. 리민덕교수와 필자 대학졸업후 각자 걷는길이 달라 조문학부와 어울릴 기회가 0에 접근. 그러니 대학시절 김해수교수로부터 고한어강의 한학기를 받은후 근 30년만에 연변도 아닌 절강에서 은사님의 강의를 다시 들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리민덕교수의 대학원생 강의를 들어보기도 대학졸업후 처음이 아니던가. 절강월수외국어대에서의 이들 대학원 교수 4일간 필자는 매일과 같이 김해수은사님과 리민덕동창과 어울리며 서로간 우정을 돈독히 하는한편 내내 30년전 대학시절에 묻혀 보았다. 절강 소흥에 처음 온 두 교수한테도 강남대지의 겨울 푸르름, 꽃피는 세계, 겨울의 비내리기가 그처럼 신선할수가 없다. 3~4일간 대학원생 교수기간 리민덕교수와 필자는 오전 시간을 타서 절강월수대 부근의 대우릉을 돌아보고 대우동상이 모셔진 회계산 석범산에 오르기도 하고 19일에는 김해수교수, 리민덕교수를 안내하여 소흥의 로신선생 옛집, 2500여년전 월나라 도읍 부산의 월왕대와 월왕전을 답사하기도 하였다. 강남땅 절강의 짧은 기간이면서도 연변대 조문학부 선후배요, 은사님이요 , 동창이요~무랍없는 김해수교수, 류은종교수, 리민덕교수와 어울림이 흥나기만 하다. 이제 헤여지면 여름방학에나 만날까, 헤여지기도 전에 아쉬움이 한가슴 가득 괴여오른다.  2009년 1월 20일, 강남땅 두앵원에서
102    절강월수대 연변대 대학원생반 운영 댓글:  조회:2942  추천:28  2009-01-20
             절강월수대 연변대 대학원생반 운영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에서는 지난해 여름방학부터 관련 한국어과 젊은 선생들의 한국어자질을 높이고저 연변대 조선한국학원과 손잡고  연구생반을 운영하고 있다. 1월중순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상해, 녕파, 가흥, 항주 등지와 절강월수대 한국어과 선생 10여명이 절강월수대에서 1월 20일 까지 한주일간 연구생 수업을 받았다. 연변대 조선어(한국어)학부에서 모처럼 오신 김해수, 리민덕 두 교수와 절강월수대 류은종교수가 관련교수를 맡아 나섰다.
101    매화를 사랑한 이황 퇴계선생 (펌글) 댓글:  조회:3735  추천:31  2009-01-20
매화를 사랑한 이황 퇴계선생 두타공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다.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선생이었던 지라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었다.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매화에 물을 주어라".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퇴계 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 카페—두타공방 사랑채에서                  
100    1월에 피는 꽃은 매화꽃이라 댓글:  조회:2974  추천:32  2009-01-19
              1월에 피는 꽃은 매화꽃이라 강남에 온후 사철 꽃들을 철따라 찍으며 꽃세계에 매료된 나다. 새해 2009년 1월 17일 오후도 안해와 아들애와 더불어 절강월수대 남대문 부근 남하를 산책하는데 노오란 세계를 펼쳐 놓은듯이 피기 시작한 황매화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올해 들어 강남땅 절강에서 처음 피여나는 꽃이여서 기분이 짱이다. 나는 황매화의 모습을 연속 카메라에 잡아 보았다. 매화는 이른 봄 추위를 이기면서 가장 일찍 피여나는 꽃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무척 받는다. 한반도 등지에서는 흰눈이 내리는 시절에 피여난다하여 시인이나 화가들은 매화꽃의 청초하고 순결한 모습을 얼음과 눈에 많이 비유하며 시를 짓거나 그림그리기를 즐긴다. 이는 겨울에 눈이 내리는 한반도나 북방의 경우를 이르는 말이렸다. 강남땅 절강에 온후 관찰에 의하면 강남의 경우는 한반도나 북방과 다른것 같다. 여기서는 흰눈속의 매화를 거의 볼수 없으며 눈이 내리거나 날씨가 추우면 피여난  모든 꽃들이 얼어 죽어버린다. 수많은 꽃봉오리들만이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연속 꽃을 피워 올리기에 한꽃이 내내 피어있는 기분을 안겨줄 뿐이다. 강남의 매화꽃은 흰매화, 홍매화, 황매화 등 여러가지 류형으로 나누어 볼수가 있다. 이런 여러 종류의 매화꽃들은 모두 하나같이 한철에 피여나는것이 아니다. 요즘 1월 중순에 눈길을 던지면 1월에 강남에서 선참 피여나는 꽃은 황매화인것 같다. 그것도 한류의 영향으로 춥기만 하던 날씨가 요즘 들어 거듭 봄날같이 따스하니 황매화가 앞다투어 피여나기 시작한다. 북방과 같은 겨울의 추위속에서 매화꽃이 피여날까, 절강의 경우를 보면 전혀 불가능하다. 강남의 날씨는 최저기온이라야 거의가 령상7~8도, 10도 좌우여서 꽃들의 핌이 가능하다. 겨울내내 피여나는 동백꽃의 경우를 보면 동백나무는 겨우내 숱한 꽃봉오리를 가지고 있다. 꽃봉오리도 육속 생겨나 성숙된다. 꽃봉오리들은 단단하기가 이를데 없어 강남같은 겨울추위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꽃봉오리들은 연해연방 피여나는데 피여난 꽃들은 추위가 몰리면 대번에 얼어 버려 그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다. 매화꽃도 마찬가지이다. 령하 기온이라면 강남도 모든 꽃들이  피여날수가 없다. 상대기온이 10도 좌우에서만 가능하니 북방의 겨울로 강남의 겨울을 말할수야 없지. 강남은 말이 겨울이지 사실은 북방에서 일컿는 그런 겨울이 아니고 마가을 으스스한 날씨를 방불케 한다면 어울릴것이다. 이거, 매화꽃을 쓰다가 북방과 남방의 겨울을 론하네, 글이 어디로 달아나지~이를 알면서도 남방에서는 왜 겨울에도 꽃들이 피여나는가를 흥취있는 우리 북방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음을 어찌할수가 없다. 우리 셋은 봄날같이 따스한 1월의 남하가를 거닐고 또 거닐었다. 따스한 날씨따라 피여나는 황매화가 그리도 좋을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제목을 “1월에 피여나는 매화꽃이라”고 달아 본다. 2009년 1월 17일, 소흥에서                  
99    이대로교수 한국문화연구소 객좌연구원으로 댓글:  조회:3006  추천:29  2009-01-15
 이대로교수 한국문화연구소 객좌연구원으로                   이대로교수 오늘 절강월수대 떠나 귀국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에서는 오늘 귀국하는 한국인 이대로교수님을 한국문화연구소 객좌연구원으로 초빙.    이대로교수는 한국에 가서도 한국문화연구소 연구원과 대우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오늘은 봄날같이 따스한 날씨다. 오늘 오후 이대로교수는 그간 머무르던 월수대 댁을 떠나면서 "좋은 날씨입니다. 선생들과 함께 회계산 산행에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거듭 유머를 쏟았다.   월수대에 남은 림선옥, 장국화, 리광인 선생들이 이대로교수를 바래였다.
98    【취재기】 아시아나항공 항주지점장 최영택씨를 만나 댓글:  조회:3837  추천:79  2009-01-08
아시아나항공 항주지점장 최영택씨를 만나   아름다운 항주 서호에는 겨레의 옛 숨결어린 항주고려사가 있다. 이대로교수님께서 항주고려사를 한번 답사해 보고싶다고 여러번 내비쳤으나 줄곧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 그것이 맘에 걸리였다. 그러던차 2008년 12월 26일, 우린 항주로 동행할 기회를 가지였다. 주요일정은 아시아나항공 항주지점장 최영택씨를 만나는것. 정오편 렬차로 소흥에서 항주에 이르니 아시아나항공 항주지점장 최영택씨가 항주동역에 마중나와 있었다. 최지점장은 평소 말을 들어 아는터이지만 직접 대하기는 처음이다. 최지점장의 안내로 항주의 한 우리 음식점에 가서 오찬을 하며 취재를 가지었다. 최지점장을 알고, 아시아나항공 중국전역 지점, 금호그룹에 대해 이해하는 첫 시점이였다. 최소장의 소개에 따르면 한국의 금호그룹은 한국내 이름있는 대기업으로서 산하에 아시아나항공, 금호건설, 대우건설, 금호석유화학, 대한통운, 금호보석 등 허다한 기둥 기업회사를 두고있다. 그중 아시아나항공은 중국에만도 북경, 천진, 장춘, 중경, 성도 등 19개지점을 두어 금호그룹의 막강함을 과시한다. 최영택씨는 이런 아시아나항공 중국지점의 한 지점장. 1998년 7월에 최씨는 중국 장춘지점장으로 부임되어 전세편을 정기편으로 바꾸는데 기여, 2003년 3월이후에는 중경지점 개척에, 이듬해에는 성도지점 개설에 뛰어든다. 항주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긴것은 2008년 1월 16일이다. 오찬후 우리는 최지점장이 마련한 전용차로 항주서호가의 항주고려사와 고려사 옛터자리를 돌아보았다. 이대로교수님의 소원이 풀리는 시각이 좋았다. 중한우의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분이여서 항주고려사 관련 고려명승 의천 대각국사님에 끌려드는 교수님이였다. 답사를 마치고 우린 서호가의 한 커피점에 가서 계속 취재를 이어갔다. 한국 금호그룹의 회장은 박삼구어른이시다. 박회장님은 또 한중우호협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아시아니항공이 중국 등지로 진출하면서 한국문화를 중국에 알리고 한중문화교류에 기여하는것이 박회장님의 의지였다. 그래서 중국에 대학생말하기 금호아시아나컵을 설치하고 2008년까지 이미 3회의 말하기대회를 조직하여 왔다. 중국내 아시아나항공 19개 지점을 북경, 절강, 강소, 동북, 산동, 상해, 천진, 광동광서, 하남섬서 등 9개지구로 나누고 9개지구에서 먼저 예선을 가지며 나중에 총예선결승을 벌린다. 최근에 아시아나항공에서는 장춘에서 제3회 금호아시아나컵 중국대학생 말하기결승을 벌리여 9개지구의 23명 선수가 참가하였는데 결승1등은 한국연수 1년, 2등 2명은 한국연수 반년, 3등3명은 한국연수 석달, 나머지 결승참가자들은 2009년 1월내로  한국방문 6일 기회를  가진다. 취재가운데서 최지점장은 길림신문 특간 “한국어마을”시범호 1호~3호를 보면서 길림신문에서 좋은 일을 한다면서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기자의 글짓기 중국대학생경연 건의에도 주의를 돌리면서 서로간의 긴밀한 연계와 도모를 약속했다. 중국에서 아시아나항공 지점장을 맡은 사이 중한문화교류에 기여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것이 최영택지점장의 마음이였다. 2008년 12월 28일, 소흥에서
97    이대로교수 대우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초빙되여 댓글:  조회:2693  추천:37  2009-01-07
   이대로교수 대우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초빙되여    절강월수외국어대에는 20대, 30대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대우문화연구소가 있다. 2006년 12월에 설립비준이 내리고 2007년 4월에 정식 설립된 이 연구소는 회계산문화연구소로 활약하다가 최근에 대우문화연구소로 개칭되었는데 회계산 구역내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관련자료들을 수집, 정리하고 계통적이고도 완정한 문화자료정보고를 건립하는것을 주되는 과업으로 내세웠다. 처음에  대우문화연구소에 대해 그닥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지난 2년 남짓한 기간 절강 소흥의 회계산을 수십차 오르내리는 가운데서 나는 이곳 회계산은 고대 치수영웅—대우천자와 고조선의 단군임금이 연계되여 있고 지장보살 김교각의 옛 바위조각불상이 있는 성스러운 산이라는 것을 알고 나 한사람의 한계를 느끼었다. 한국인 이대로교수님도 회계산에 대해 깊은 흥취를 가지었다. 한데서 2008년이 막가는 12월 하순에 나는 먼저 대우문화연구소 상무부소장 류훈화선생을 찾았고, 이교수님과 나, 류훈화 셋이 다시 모여 앉아 대화를 가지었다. 나의 제의로 12월 31일 오후에 회계산 향로봉 서쪽골 옛 유적지와 지장보살 옛 바위불상 공동답사에 나서 보았고 회계산연구소와 손잡고 중한관련역사를 공동연구할 뜻을 내비치었다. 2009년 1월 5일 오후, 우리는 다시 한자리에 모이여 이 연구소 새해 첫 독서회모임을 가지었다. 새해 첫 독서회는 이대로교수님과 나를 이 연구소 연구원으로 공식초빙하는  모임이였고, 이대로교수님과 내가 회계산관련 수천년 중한친선을 요약해 강의하는 모임이였다. 저녁에 대우문화연구소에서는 만찬을 가지고 우리를 초대하였는데 앞으로 회계산관련 공동연구를 두고 진지하고도 건설적인 의견을 나누었다.
96    당신은 이 겨레와 이 땅의 큰 별이었습니다 (이대로) 댓글:  조회:2588  추천:52  2008-11-09
       당신은 이 겨레와 이 땅의 큰 별이었습니다               [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오리 전택부 스승님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이대로 존경하는 스승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을 중국 땅에서 듣고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한글날에 서울에 가서 병원에 계신 스승님을 찾아뵙고 제 책“우리말글 독립운동 발자취”를 드렸을 때 글이 안 보이신다며 아드님께 추천사를 다시 읽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한글학회 100주년 축하 행사 때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가 쓴 책의 추천사를 써가지고 오셨는데 뵙지도 못하고 가셔서 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병원 응급실로 가셨다고 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 두 달 전에 스승님을 찾아갔을 때 내가 쓴“우리말글 독립운동 발자취”출간에 감동하셨다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내게 격려 인사를 하시려고 일어나셨다.     © 이대로존경하는 스승님, 저는 너무나 큰 사랑 스승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스승님을 모시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려고 국회로 정부로 쫓아다닐 때 많은 감동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스승께서는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 달라고 청와대로 대통령을 만나러 가셨을 때 만나지 못하니 그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셔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가 다행히 깨어나셨으나 그 뒤에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은 병원에서 깨어나셔서 ‘각설이 타령’이란 글을 쓰셨는데 그 글에서 “나는 죽어도 좋으니 한글날은 국경일로 만들어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저는 그에 감동해서 더 발 벗고 나서서 스승님을 모시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었습니다. 두 달 전 제가 처음으로 책을 내게 되었다고 말씀드리며 댁으로 찾아가서 추천사를 부탁드렸을 때 “ 살아온 모습이나 역사관이 나와 어쩌면 그리 똑같으냐. 내 젊은 날 사상계 주간으로 있을 때 외솔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서 고맙다고 큰 절을 했는데 오늘 내가 너에게 큰 절을 하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네가 다 했구나.”시며 불편한 몸을 일으켜서 진짜 절을 하시려고 해서 저와 제 아내가 황급하게 붙잡고 앉으시게 한 일이 있습니다.그 때 스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대로가 있기까지 부인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을 안 해도 안다고 하시며 제 아내에게 “고맙습니다. 애썼습니다.”라고 인사까지 해주셨습니다. 기독교 일에, 또 다른 사회단체 일에 보이지 않게 구준 일을 다 하셨지만 성과와 칭찬은 다른 사람 몫이었고 알아주지 않았다고 하시며, 이대로가 꼭 당신과 닮았다고 하시면서 “내가 다 아니 끝까지 이대로 가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그 때 마침 한글날 제정운동을 함께 한 신기남 전 의원이 제게 전화를 해서 바꿔드렸더니 반갑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스승께서 이렇게 먼저 가시면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달라고 청와대에 가셨다가 쓸어 지신 뒤에 스승님의 병을 간호하시다가 병이 나신 사모님이 어쩌십니까! 저는 그동안 많은 이들로부터 멸시와 비웃음을 받을 때도 스승님이 계셔서 든든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힘들어도 스승님만 믿고 뛰었고 칭찬해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떠나시면 저는 누굴 믿고, 누구의 가르침을 받는 단 말입니까!  스승님!  스승님! 저는 지금 먼 중국 땅에서 스승님이 이 땅을 떠나시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 이 죄스러움을 어찌 한단 말입니까! 이 세상 아무리 잘난 사람이 있어도 저는 스승님이 가장 훌륭한 어른이고 애국자입니다. 스승님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이 겨레와 나라와 한글을 사랑하고 걱정하셨습니다.   ▲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 앉으시라고 하고 스승님의 손을 꼭 잡고 죽는 날까지 스승님의 마음을 알고 이어가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내 아내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 이대로보름 전 경기도 마석 병원으로 제 아내와 함께 제 책을 가지고 가서 보여드렸을 때 “아! 참 좋다!  부인과 함께 와서 참 기쁘다!”고 하시며 불편한 몸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때 제 글을 읽지 못하신다며 아드님에게 읽어달라고 하시면서도 제 아내를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아드님은 제게 “요즘 이대로 선생님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아버님과 선생님이 많이 닮은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선생님 손을 꼭 잡고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스승님께서 못하신 일을 제가 다 하겠습니다. 건강하게만 계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스승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 더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듭니다. 저는 그 때 스승님께서 손자 손녀와 조용한 시간을 갖기 바라는 마음에서 황급하게 서둘러 자리를 뜬 게 가슴이 아픕니다.   ▲ 집안에 오리 인형이 진열되어 있기에 사진을 찍으니“며느리가 나를 보라고 사다 논 거예요.”라고 자랑을 하셨다. 전택부 선생님 아호가‘오리’다. 이제 이 오리는 누가 볼 것인가?     © 이대로스승님께서는 한글학회 100돌이 되는 해에 제 책이 나와서 기쁘다고 하시더니, 올해에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일생을 이 겨레와 나라와 한글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는데 나라로부터 변변한 상을 받지 못하셨습니다. 다행히 살아 게실 때 그 덕을 알아주었으면 했는데 마침 올해 세종문화상을 받게 되었지만 그 상장도 보지 못하고 가시니 안타깝고 가슴 아픕니다.  스승님, 이제 편안하게 가소서! 살아있는 제가 스승님의 뜻과 가르침을 이어가겠습니다. 저도 죽는 날까지 스승님처럼 바른 말을 하고 된 글을 쓰다가 스승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중국 절강성 소흥에서 제자 이대로 올림. 관련기사 '오리' 전택부 서울 YMCA 명예총무는 누구?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사무총장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95    【제주서예전시】 한국 제주 서예작품 중국전 댓글:  조회:3175  추천:51  2008-11-04
【제주서예전시】              한국 제주 서예작품 중국전
94    【말하기경연】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댓글:  조회:2826  추천:63  2008-11-04
【말하기경연】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93    【서예실기】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댓글:  조회:3982  추천:73  2008-11-03
【서예실기】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92    【글쓰기평심】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댓글:  조회:3355  추천:50  2008-11-03
【글쓰기평심】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91    【경필실기】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댓글:  조회:3142  추천:41  2008-11-03
【경필실기】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90    【글쓰기】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댓글:  조회:2794  추천:35  2008-11-02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   2008년 10월 25일, 비가 내린 뒤여서 기온이 떨어지고 날씨가 으스스하지만 절강월수외국어대 중심청사홀과 학생활동중심은 뜨거운 열기로 흘러 넘친다. 08’중국 절강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가 성황리에 펼쳐진다.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 한국국립국어원, 한국서학회,한국제주서학회에서 주최하고 후원한 08’중국 절강 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는 중국 대학생 글짓기, 한글경필, 한글서예, 말하기, 한중서예가 한글서예작품전시, 한국서예가 학술세미나 등 이채로운 대형행사에 북경대학, 북경언어대학, 북경외국어대학, 북경대외경제무역대학, 북경공업대학, 천진사범대학, 복단대학, 상해외국어대학, 남경사범대학, 청도대학, 산동연대대학, 양주대학, 서안외국어대학, 사천외국어대학,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절강관광대학 등 20여 개 대학 한국어과에서 온 사생들, 한국귀빈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하루동안의 긴장한 잔치결과는 이러하다.   글쓰기 대상   수상자  산동 연대대학  왕양 글쓰기 1등상 수상자  북경언어대학 왕노영 글쓰기 2등상 수상자  남경사범대학 정흥 글쓰기 2등상 수상자  상해복단대학 진양뢰 글쓰기 3등상 수상자  북경대외무역대학 황황 글쓰기 3등상 수상자  사천외국어대학 양려평 글쓰기 3등상 수상자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진정결 글쓰기 3등상 수상자  천진사범대학 양양   서예 대상   수상자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오엽 서예 1등상 수상자 절강관광대학 정뢰 서예 2등상 수상자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주리영 서예 2등상 수상자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우기형 서예 3등상 수상자 상해복단대학 수영자 서예 3등상 수상자 북경 외국어대학 이헌앙 서예 3등상 수상자 천진사범대학 반영   경필 대상   수상자 천진사범대학 반영 경필 1등상 수상자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오표 경필 2등상 수상자 북경외국어대학 범교예 경필 2등상 수상자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주민 경필 3등상 수상자 북경언어대학 왕노영 경필 3등상 수상자 절강관광대학 요요 경필 3등상 수상자 절강 월수외국어대학 한방원   말하기 대상   수상자 청도대학 심려 말하기 1등상 수상자 절강월수외국어대학 대군 말하기 2등상 수상자 양주대학 한량 말하기 2등상 수상자 상해외국어대학 두백우 말하기 3등상 수상자 상해복단대학 주예 말하기 3등상 수상자  서안외국어대학 범가심 말하기 3등상 수상자 산동 연대대학 고소로                                          
89    【류은종교수축사】 길림신문 “한국어마을” 을 환영합니다 댓글:  조회:2682  추천:43  2008-11-02
        길림신문에 한국어마을이 생긴것을 환영합니다                                                                        류은종    우리 절강 월수외국어대학의 08대축제에 오신 국립국어원귀빈과 한국 제주서학회를 비롯한 귀빈 여러 분, 전국 각지에서 오신 여러 대학의 교수, 학생 선수단 여러 분, 대학의 지도자들과 신사숙녀 여러 분,    우선 절강 월수외대 대축제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이번 축제에 한국 국립국어원 이상규원장님, 최용기 부장님을 비롯한 귀빈들이 전국대학생 말하기 글짓기 대회를 후원하시고 이번 대회에 참석하시여 자리를 빛내여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리며 제주도 서학회에서 좋은 작품을 전시해주고 더우기 저의 시조를 38수나 전시장에 서예의 꽃으로 단독코너를 만들어 전시해 주신 여러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절호의 기회를 빌어 길림신문의 한국어마을 발행의식이 이 자리에서 성황리에 열리게 됨을 열열히 축하합니다.    길림 신문에 한국어 마을이 생겼습니다. 우리 중국에 한국어 마을이 생겼습니다. 지금 한국어는 세계의 10대 국제언어로 발돋음하여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한글과 더불어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한글은 우리 나라에서 어느 관강지를 가나 한국어로 표시되어 4대 관광언어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 현실입니다.    중국의 한국어마을이 길림신문에 생긴 것은 우리 게레의 자랑이며 한국어를 배워주고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길잡이이며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마을은 중국에 한국문화를 보급하는 기지이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울수 있는 훌륭한 터전입니다. 한국어마을이 있음으로 하여 한국어과 학생들은 자기의 소감을 발표할수 있는 꽃무대가 생겼으며 한국어학습의 지침이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어학습의 경험교류와 한국문화를 꽃피우는 한국어마을은 이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한국어마을이 있게 된것은 우리에게는 더없는 행운으로 생각하며 이런 마을을 건설해준 길림신문 주필님과 한정일 부주필님을 비롯한 길림신문 여러 분들에게 다함없는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 다같이 한국어마을에 모여 한국어를 학습하고 한국문화를 꽃피우는 성스러운 마당에 달려 나갑시다. 2008년 10월 24 일
길림신문 “한국어마을” 특간 발행식 절강에서 펼쳐져     2008년 10월 24일 저녁, 절강월수외국어대에서 길림신문 “한국어마을” 특간 발생식이 북경대학, 복단대학, 천진사범대학, 청도대학, 남경사범대학, 양주대학, 서안외국어대학, 사천외국어대학, 절강월수외국어대학 등 국내 20여 개 대학 한국어과 선생들과 대학생들, 절강월수외국어대 노세걸부총장, 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류은종교수, 한국서학회, 한국제주서학회 한국귀빈들, 길림신문 한정일부주필, “한국어마을” 특간 서창덕발행인 등 도합 100여 명의 참석 속에서 성공적으로 열리었다. 길림신문 “한국어마을” 특간발행식은 08’ 중국 절강 월수 국제 한글문화 큰잔치의 스타트로서 “한국어마을” 특간 편집인인 리광인이 사회하고 절강월수외국어대 부총장 노세걸교수,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 소장 유은종교수, 한국서학회 부이사장 박병천교수, 한국제주서학회 현경찬회장 등 분들이 축사를 드리고 길림신문 부주필 한정일이 특간발행보고를 하여 “한국어마을” 특간이 위상이 크게 떠올랐다. 발행식 행사는 중한 귀빈 환영행사와 어울려 중한 여러분들의 흥겨운 노래와 시낭독으로 이어지면서 자못 열기를 띠였다. 발행식 참석자들은 무료 배포된 “한국어마을” 특간 시험호 제1호와 제2호를 받아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한국어마을” 특간 신문이 중국 내 여러 대학과 사회 한국어 공부와 보급에서 선두적 길잡이 역할을 잘해줄 것을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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