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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로신선생이 친일행적이라고? 댓글:  조회:2385  추천:5  2013-07-07
                  로신선생이 친일행적이라고?  이즘 필자의 마음은 편하지 못하다. 김문학씨가 2013년 6월 17일 조글로 관련코너에 “로신과 리광수”란 한편의  글을 버젓히 올리였기 때문이다. 글의 시작부터가 중국의 위대한 문호 로신선생과 친일작가 춘원 리광수를 비교하면서 “노신 또한 자진해서 반식민지 구역인 상해 일본인조계에 진입하여 문필활동을 한 것에도 이광수와 유사한 ‘친일적’ 형적(행적)을 남기고 있는 사실을 안고 있다. 그 점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고 로골적으로 횡설수설하면서 리광수를 극력 변호하는 대신 로신선생은 그 희생양으로 끌어들이며 어벌이 크게도 친일로 몰아붙인다. 사실로 말해 필자는 한가한 틈이 없는 사람이다. 술상을 즐기는 동료들이 술상에 앉는 시간도 아까와 가도 되고 안가도 되는 장소에는 절대 나서지 않는다. 하물며 한번의 시시비비에 나서면 깊이 빠져들며 많은 정력과 시간을 소모해야 하니 말이다. 몇번이고 마음이 욱하다가도 눌러버리군 했는데 마음이 그토록 편하지 못할 줄은 몰랐다. 로신선생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묵과한다는것이 도저히 지성인의 마음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로신과 리광수”, “친일파의 무덤에도 봄은 오는가?” 이 두편의 글만은 반론아닌 반격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딱  두편의 글만이다. 그외는 누가 뭐라해도 나서지 않을것이다. 그럴 시간과 겨를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여 둔다.  김문학씨, 당신도 인간이면 가슴에 손을 얹고 필자의 글을 정면으로 주시해 보시라, 당신이 로신선생이 자진하여 상해에서 생활하면서 이른바 리광수씨처럼 자진하여 친일을 하는 행위를 보았는가, 아니면 그런 연구자료와 결과라도 보았단 말인가? 그런 자료라도 있다면 먼저 필자를 간략이나마 소개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필자는 오늘까지 우리 겨레력사에 깊숙히 몸담그며 겨레력사와 씨름하는 사람이다. 중국 강남땅에 잠시 삶의 무대를 옮긴 근 10년 간에도 “로신선생과 조선사람(한국사람)”, “로신선생과 조선문학(한국문학)”을 주선으로 연구하면서 중국내 로신선생이 생활한적이 있는 절강 소흥, 남경, 항주, 북경, 하문, 광주, 상해 등지를 모두 현지답사하면서 로신선생의 발자취를 전면 추적하여 보았다. 남들이 잘 모르는 깊은 연구와 돌파로 연구저서를 준비하며 이면의 연구에서는 한국을 망라하여 중국내에서도 으뜸 계열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로신선생의 상해생활이 친일과 직결된다는 그어떤 행위도 보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이다.  김문학씨의 글을 보면 로선선생을 아주 익숙히 알고있는 모양새인데 사실은 당신은 로신선생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있다. 아니면 알면서도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먼저 로신선생 생평부터 들어가 보면 로신선생 인생발자취는 소흥 (1881년 9월~1898년 5월), 남경 (1898년 5월~1902년 3월), 일본 (1902년 4월~1909년 8월), 항주-소흥-남경 (1909년 8월~1912년 5월), 북경 (1912년 5월~1926년 8월), 하문 (1926년 9월~1927년 1월), 광주 (1927년 1월~1927년 9월), 상해 (1927년 10월~1936년 10월) 로 이어진다. 인생의 마지막 시절은 1927.10-1936.10 상해시절이 아니던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는것 같다. 로신선생이 상해로 오기전 정착지는 이 나라 남녘땅--광주이고, 광주 중산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것도 몇달 아니고 사직이다. 광주 먼저 하문대학 시절도 로신선생은 대학이란 직장이 자기의 바램이 아니라더니 중산대학에서도 결연히 사직하고 만다. 그러나 광주도 리상적인 삶의 자리는 아니였다. 로신선생이 보는 그 시절 광주는 “생활비가 너무 비싸고”, “볼만한 간행물이 없으며”, 글을 쓸만한 곳도 아니였다. 글을 써도 팔아먹을 수가 없으니 생활비를 벌어들일 수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 보아낸 것이 상해는 이미 중국의 경제중심이고 문화중심도 북경으로부터 상해로 옮겨져 서점만 해도 40여 집이니 상해에서 글로 살기는 문제 없을것 같았다. 이런 연유로 로신선생은 허광평과 함께 짐을 꾸려 가지고 1927년 9월 27일 배편으로 광주를 떠났고, 10월 3일에 상해에 이르게 되였다.  상해의 발전사를 보면, 상해는 워낙 장강삼각주에 위치한 하나의 모래불(滩头)에 지나지 않았다. 상해탄(上海滩)이라는 말은 그렇게 생겨난것 같은데 1843년 11월 상해 황포강에 부두를 앉히며 개방하며 그젯날의 자그마한 어촌은 점차 변모해 간다.그럴만치 황포강에 부두를 앉혀 반세기 남짓한 변천속에 20세기 20년대 초에 이르더니 동방의 국제성 대도시로 탈바꿈한다.  보다 적절히 말하면 20세기 20년대의 상해는 이미 중국의 경제, 정치의 중심이였다. 또, 20년대 후반부터 전국 각지로부터 많고많은 지식인들이 상해로 몰리더니 30년대에 이르러서는 명실공히 중국의 문화중심으로 자리를 굳히였다. 그런 시대적 물결에 휩싸여 로신선생은 허광평과 함께 상해에 들어섰고, 상해에 집결한 엽공초(叶公超), 문일다(闻一多), 호적(胡适), 곽말약(郭沫若), 심안빙(沈雁冰), 장광자(蒋光慈), 성방오(成仿吾), 소군(萧军), 소홍 (萧红)등 허다한 일대 문인들과 어울린다. 중국의 제1류 수준의 문화정예들이 거의 다 상해에 모이니 그들은 “어사”(语丝), “현대평론” 등 전국성 영향력을 가진 간행물을  꾸리며 그들 생평중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써내였다. 1932년 3월 2일에는 중국좌익작가련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들속의 로신선생은 중국 제1류 문화정예의 한 사람이였다.  다시 로신선생의 상해이주 시절로 돌아오면 로신선생은 상해에 이른후 여러개 대학의  강연과 명류들과의 접촉속에서 상해는 진정 중국의 경제중심이고 문화중심임을 피부를 느끼게 되였다. 광주에서 심한 문화고독감, 문화침묵감에 시달리던 로신선생으로 말하면 삶의 질적 변화였다.  상해란 이 동방대도시는 번역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로신선생에게 더없이 리상적인 생존환경이였다.  상해에 삶의 뿌리를 내린 로신선생에게 둘도 없는 일본 벗이 생기였다. 상해에서 생활한 로신이 친일행적을 갖고있다면 일본 벗이 생겼으니 더구나 친일이 아닐까? 먼저 결론을 내리지 말자. 사실은 웅변보다 낫다고 하지 않는가.  로신선생은 상해에 가서 사흘째 되던 날, 부근 북사천로(北四川路)의 우찌야마 서점(内山书店) 으로 책사러 갔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문 서적을 주로 경영하는 특색있는 서점이였다. 이에 끌린 로신선생은 1927년 10월 한달 사이만도 선후 9차나 우찌야마 서점에 가서 50여원어치 25권의 책을 사들이였다.  로신선생의 두번째  서점 출현은 서점주인--우찌야마의 주의를 끌었다. 책을 고른 후 로신선생은 쏘파에 앉아 주인의 안해가 권하는 차물을 마이면서 숙련된 일본말로 이 책을 아무아무곳에 보내달라고 청들었다.  “존함은요?” “주수인이라고 부릅니다.” “아, 당신이 로신선생이예요?” 우찌야마는 반겨마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로신선생과 서점주인은 세월의 흐름속에서 깊은 우정을 맺으며 로신선생의 상해 10년 생활에로 이어졌다. 서점의 위치와 주인의 댁이 로신선생의 선후 몇곳 주숙처와 가까이여서 서점은 로신선생이 사회활동과 문화활동의 중요한 장소로 되였다. 로신선생한테 오는  편지들도 흔히 서점을 통하여 로신선생에게로 전해지고,이 서점에서 국내외 벗들과 생면부지 혹은 특수신분의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우찌야마와 로신선생과의 우정은 서점주인의 중국과  중국사람에 대한 정감을 크게 개변시키면서 그의 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와 로신과의 10년 우정은 그로 말하면 “일생의 행복”이였다. 그후 일본으로 귀국한 우찌야마는 새중국이 세워진후 수차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중친선활동에 전력하였다. 그러다가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돌 경축활동에 참석했다가 병으로 북경에서 서거하였다. 그의 유체는 로신선생이 처음 안치되였던 상해 만국공묘에 모셔졌다. 친일행위가 아닌 실로 흔치않은 두 사람의 심후한 우정이라 하겠다.  그러면  상해 실생활속의 로신선생은 어떠했을까, 역시 력사사실  한두가지로 개략적으로 말하기로 하자.  1931년, 일본제국주의는 심양에서 “9.18사변”을 일으키고 장개석의 부저항정책으로 아주 빨리 동북 전경을 점령하였다. “9.18사변”이 일어나 3일만에 로신선생은 “문예신문사의 물음에 대답”이란 글을 써서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한 죄행을 적발하였다. 로신선생의 글은 욱달부 등의 짧은 글과 함께 “문예신문”이 개설한 전문란에 게재되였다.  1931년 이해 12월에는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장개석의 부저항정책을 반대하면서 남경청원에 나섰다가 국민당 당국의 체포와 학살을 당하였다. 12월 20일에 로신선생은 저명한 “우방경타”(友邦惊詫)를 써서 25일 좌익작가련맹의 간행물 “십자가에서”(十字街头)에 발표하면서 국민당 당국의 부저항 매국정책과 애국학생운동 진압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1932년 1월, 일본군대가 상해에서 “1.28”전쟁을 발동하면서 로신선생의 저택 맞은켠이 일본해군륙전대 사령부로 되였다. 이튿날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일본군의 수색이 시작되였다. 우찌야마는 일본점원을 급히  보내여 로신일가가 서점 2층에  급히 피하여 옹근 한주일을 지내도록 조건을 지어주었다. 서점 일대가 일본군의 전구(战区)인데서 우찌야마는 또 로신일가와 동생 주건인일가를 상해 삼마로(三马路) 영국조계지의 우찌야마서점으로 옮기여 절대적 안전을 담보하여 나섰다.  이것이 상해시절의 로신선생이고 우찌야마서점의 주인 우찌야마선생이다. 로신선생은 상해 10년 세월 내내 글로 일본침략자와  맞서 싸우고, 일본에 부저항하며 선량한 항일군민을 탄압하는 국민당반동파와 싸웠다.  김문학씨,  오늘은 일제에 의한 "7.7"사변 76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이 어떤 날인가를 잊지 마시고 상해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10년을 생활한 로신선생의 친일행위를 어디 말하여 보시라. 그토록 정정당당하다면 중문으로 써서 중문 신문과 잡지, 인터넷에 올리여 보시라. 당신이 며칠이나 견딜수 있을까.이 글을 더 이상 전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어찌 자진하여 친일에 나선 친일작가 리광수를 중국의 로신선생에 비하며,  로신선생이 일본군의 통치구에서 생활하였다하여  어찌 친일행적으로 몰아가리오?  당신의 론리대로면 일본의 식민지, 반식민지 중국땅에서 생활했던 사람들, 일본의 조선총독부 철제아래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망국노로 생활했던 사람들이 다  친일행적을 가지고 있을까. 당신은 견해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돌았도다. 이 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한 하늘아래서 의좋게 살아갈 인간이 아니도다.                                                                                                 2013년 7월 7일   
527     “무정평전” 등 국가중점작품지원프로젝트로 선정 댓글:  조회:1717  추천:5  2013-07-06
    “무정평전” 등 국가중점작품지원프로젝트로 선정 오늘은 나 생애에서 또 의미가 있는 날인것 같다. 아침 8시 직전에 연변작가협회의 손문혁주임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나의 작품이 재차 중국작가협회 중점작품지지프로젝트에 선정되였다고 한다. 중국작가협회 넷을 열어보니 과연 얼마전 연변작가협회에 보낸 “무정평전”보고가 중국작가협회에 추천되여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문학중점작품지지프로젝트 90항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여 있었다. 오늘 새로 0시에 올린 중국작가협회 2013년 제3호공보였다.  이 모든것은 전적으로 연변작가협회에서 지지하고 받들어주고 추천해준 결과로서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아래 연변작가협회에 드리는 감사편지를 중문 그대로 올리여 본다. 2013.07.05                                 致延边作家协会的感谢信 你们好,我是延边作家协会浙江地区创作委员会李光仁。今天早晨7点多荣幸收到来自延边作家协会孙文赫主任的短信,打开中国作家协会公报(2013年第3号)一看, 我的“武亭评传”已被选定为中国作家协会2013年度少数民族文学重点作品扶持项目90项之一。 谢谢!这都是延边作家协会尽力支持和推荐的结果。2011年度“杨林评传”被评为中国作家协会重点作品扶持项目,也是你们的大力支持和推荐分不开的。 谢谢!我一定不辜负大家的支持,以更加做好浙江地区创作委员会的工作,努力创作更多更好的人物评传以及纪实文学的实际行动来报答你们。 谢谢! 2013.07.05                         中国作家协会2013年度少数民族                   文学重点作品扶持项目 (朝鲜族)        高丽砬子人系列          李洪奎(朝鲜族)         朝鲜语    龙井别曲             崔红一(朝鲜族)         朝鲜语    中国媳妇             许莲顺(朝鲜族)         朝鲜语    火焰               金    革(朝鲜族)            朝鲜语    武亭评传             李光仁(朝鲜族)、林善玉(朝鲜族)   朝鲜语          秋千               金昌国(朝鲜族) 
526    우리 님들 로신의 고향에 모이였소 댓글:  조회:1777  추천:3  2013-07-02
【스케치】                                  우리 님들 로신의 고향에 모이였소 지난 6월 2일은 잊을 수 없는 하루인가부다. 이 나라 강남땅에 빠알간 석류화 흐드러지게 피여나고 아름다운 련꽃 앞다투어 피여나는데 절강월수외국어대 보고청은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와 연변작가협회 절강창작위원회에서 주최하고 민족출판사 조선문편집부에서 협찬한 “홍군장령 양림”평전  출판기념회로 들끓는다. 이날 양림평전 출판기념회에 참가한 이들은 국내 여러 대학교 한국어과들과 한국 관련 대학교, 월수대  한국어과 사생 100여명, 그중에서도 보다 감동적인 이들은 우리 연변작가협회 절강창작위원회와 남방아리랑 주요 맴버들이 아닌가 싶다. 그네들은 일상의 분주함도 마다하고 가까이 항주로부터 멀리 상해, 남경, 무석 등지로부터 무작정 절강월수대로 달려왔다. 우리 님들 또 한번 로신의 고향에 모인 추억을 심어간다. 돌이켜보면 우리 연변작가협회 절강창작위원회 설립은 2009년 6월 13일, 뒤미처 절강창작위원회 산하 자발적 모임체 남방아리랑이 고고성을 터치니 이곳 소흥, 항주, 상해, 남경, 무석 등지 또래 지성인들이 하나로 되여 돌아간다. 이번에도 양림평전 출간식을 가진다니 모두들 신변을 털어내고 무조건 호응하여 준다. 이 감동적인 모습들을 단마디라도 그려내지  않음은 마음이 내려갈것 같지 못하다.  우리 남방아리랑 맴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대학 학력들이 아니면 대학교수출신들이다. 6월의 시작은 한학기를 마감하는 달로서 웬간한 관계가 아니면 곁을 주기가 어려운 줄로 안다. 그러면서도 항주의 남연님, 현충혁님은 양림평전 출간을 첫자리에 놓았다. 절강공상대학의 류일법학박사 권승문교수는 아무리 일이 바쁘기로서니 선배님의 일에 안갈수 있느냐며 절친한 친구이고 절강공업대학의 류일법학박사인 리정일교수와 동행했다. 항주사범대학의 한국어과 학과장 김재국박사는 심양 관련 학술세미나에 참석하고 북경을 거쳐 곧바로 달려 왔다.  연변인민출판사 상해지사 지사장  김창석님은 서둘러 상해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전은종님과 심양에서 모처럼 상해에 오신 심양조선족문학회 부회장 리문호시인을 안내하여 하루먼저 소흥에 달려왔고, 중국력사상 대서예가 왕희지를 모신 소흥 란정을 유람하는 여유를 보여주며 의미론 추억을 만들어냈다. 이들 상해 님들의 과업 아닌 과업은 양림평전의 출판기념 사진과 뉴스를 전담당하는 일이 아니던가.  무석과학기술직업학원 한국어과 학과장 황춘옥님은 소흥으로 달려올 계기가 아니였다. 산하 교수분들이 많지 않고 관련수업이 많은데서 학과장 자기가 더해야 한다며 수업시간을 늘이다보니 6월 2일 이튿날은 여러 수업시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남방아리랑 일에 빠질수 없다는 춘옥님은 련락전화를 받자 두말이 없다. 남경사범대학 한국어과 학과장 유성운박사교수도 두말이 없다. 유성운님은 북경의 관련 학술세미나에 갔다가 그길로 일손을 드티우며 내처 소흥으로 내달았다.  이들 모두가 연변작가협회 절강창작위원회와 남방아리랑 주요 맴버들-남경, 무석, 상해, 항주서 달려온 이들이 있어 절강월수대 보고청에 자리한 “홍군장령 양림”평전 출판기념식은 보다 의미를 가지며 둥글어갔다. 겨레의 위인이고 홍군장령인 양림이 평전으로 재탄생한데 대하여 그토록 기뻐들하며 출간식을 전후하여 기념사진을 남긴다, 이야기꽃을 피운다, 앞날의 구상을 수놓는다 하며 뱅뱅 동그라지는 모습들 너무도 인상적이다.  누가 이들을 남방아리랑 대가족의 한집안식구가 아니랴 하랴, 이들이 있어 절강창작위원회(사실은 장강이남 강남지구를 어우르는 남방창작위원회) 는 희망으로 벅차고, 이들이 있어 남방아리랑은 활기로 넘치거니 어제는 무석에 모이였소, 오늘은 소흥에 모이였소, 래일은 항주에-상해에-남경에 모이오 하며 하나 또 하나의  옛말과 추억을 만들어 간다. 그네들 속에서 남방의 우리 겨레사회의 한 모습은 이렇게 내내 밝아만 간다.                                                                                2013년 7월 2일, 강남땅 두앵원에서
525    력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리문호) 댓글:  조회:1512  추천:3  2013-06-30
력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심양시조선족문학회 부회장 리문호시인                           아득히 머언 시간의 뒷안길에 두터운 천층의 력사가 퇴적한 그 적막한 어둠속에서  홀로 호롱불을 켜들고 미치게 미치게 얼이 남긴 겨레발자취 찾아 더듬어 가시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한 피줄에 흐르던 혼령들이  종적을 감춘 강남 광야에 심혈을 안타깝게 안타깝게 태우며 부르며 부르며 헤매가시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먼지와 곰팽이가 침묵하는 고서적 행간에서도 혈안의 길을 내고 낯설고 물설은 험난한 산천을 집념을 그어 어렵게  답사하시며 옛 사람들이 걸어간 길위에 다시 피어린 발자국을 내시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강한 의지의 학자시여 천고의 무덤을 넘나드시는 광인이시여 그대의 별빛같은 눈동자로 잃어 버린 과거의 행적을 따라 문을 찾으시고 아침을 열듯 여십시오 그리고 웨치며 부르짓으며 그 깊은 잠들을 흔들어 깨우시오 우리가 찾아 왔노라고 일어나 우리에게로 오시라고 –   2013.5.28  
524    【천대산】(2) 천대산의 두견화 댓글:  조회:7350  추천:5  2011-06-26
【천대산】(2)               천대산의 두견화  5월의 천대산행 첫 코스는 천대산 주봉 화정산의 화정사. 화정사는 일찍 고구려 명승 반야스님의  16년 수련지이고, 반야샘이 있다는 사찰이여서 꼭 가보아야 할 답사지였다.  화정사는 천대산 국청사에서 북으로 22킬로미터되는 천대산 주봉 화정산 아래 남쪽비탈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 화정사 주변 관광지에 강남의 이색적인 희한한 두견화가 피여 우리의 발길을 잡았다.  유감이라면 두견화가 한창 지는 시절이여서 생생한 두견화를 대하기 어려운 점이라 할까. 그래도 가담가담 지는 속 두견화에도 선택의 여지는 있어 천만다행.
523    【천대산】(1) 나라 첫 관광일 행사 천대산에서 댓글:  조회:9225  추천:10  2011-06-24
【천대산】(1)                    나라 첫 관광일 행사 천대산에서 2011년 5월 19일 국가 첫 관광일이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필자는 아들애를 데리고 소흥에서 남으로 300리 쯤 떨어진 천대산으로 향했다. 천대산에서 펼쳐진 나라 첫 관광일 행사 모습도 헤아릴 겸 천대산에 깃든 고대 우리 겨레의 발자취를 계속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5월 19일은 명나라 시절 걸출한 려행가이고 지리학자인 강소 강음 사람 서하객이 나라안 려행을 시작하면서 첫 려행지로 천대산에 이른 날이다. 이런 서하객이 일찍 세번이나 천대산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천대산의 화정, 석량, 경대, 국청사,  적성산 등지를 려행답사하고, 지금 보이는 60여만자 “서하객유람기”의 첫 글을 천대산으로 시작하고 있다.    2011년 3월 20일, 국무원에서는 명나라 서하객이 천대산을 첫 유람지로 잡고 첫 유람길에 오른 5월 19일을 “국가관광일”로 정식비준하고, 국가관광국과 절강성 인민정부는 첫 국가관광일 주제활동을 천대산에서 펼치였다. 명나라 시절 걸출한 려행가이고 지리학자인 서하객에 대한 고도의 중시와 존중을 보여 주는데    천대현성과 천대산 이르는 곳마다 서하객과 관광일에 대한 대형 선전광고들을 대할수가 있었다.    지난 2011년 5월 19일 오후 뒤늦게나마 천대산에 이르러 첫 국가관광일 주제활동 뒤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또, 5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천대산에 수차 다니면서도 답사하지 못한 명승지들을 돌며 유람도 하며 고대 겨레발자취를 답사하는 기회를 가져 보았다.
522    【산문】비내리는 고느적한 숲속이 좋아 댓글:  조회:9434  추천:10  2011-06-20
【산문】               비내리는 고느적한 숲속길 좋아     나는 지금 비내리는 강남의 대우릉 구내 숲속길을 걷고 있다. 대자연의 한낱 미물인  흰나비들은 비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갖가지 뭇꽃들에 옮겨 앉으며 부지런히 꿀을 빨고 때 지난 6월 중순까지도 지지 않은 노오란 금사매—망종화랑, 빠알간 석류화랑 흰나비들을 반겨 맞는다. 이런 숲속이 좋아 6월의 비내리는 숲속길을 걷고걷노라니 어딜 보나 고느적한 숲속은 후둑후둑 비소리뿐이다. 벌써 며칠이런가, 하루이틀도 아닌 장장 10여일 하루도 건넘이 없이 찌뿌등한 하늘은 수문을 활 열어놓기만 한다. 그래도 천혜의 땅이기만 한 강남 소흥땅은 가타부타 없이 너그러운 품으로 하늘손님을 맞아 다독여준다. 어디서는 어떻소, 물란리요 해도 소흥땅은 전혀 하등의 낌새도 없다. 4000여년 전 치수영웅 대우님의 하늘같은 은총를 받아서인지 큰물을 포괄해 한해가도 아무 재해도 모른다는 기적의 소흥땅,  나는 오늘도 비내리는 대우릉 구내 숲속길을 걷고걷는다. 대우릉으로 이어진 신도를 지나고 대우릉 정문을 지나고 대우릉 남쪽 백조락원 구내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쏴~쏴 물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어언속에 백조락원 정문을 지나 회계산 산정으로 이어가는 대우릉 남쪽골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소 골골마다 크고작은 내를 이루며 폭포를 이루며 성세를 돋구니 그 기운이 여기저기서 소리로 나에게 전달되고 있는거지. 비내리는 숲속은 어두컴컴하다. 이 시각 인적이 끊긴 숲속길은 뭇귀신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올듯이 으르렁대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어둑어둑 숲속이 좋아 한걸음 두걸음 옮겨 놓는다. 환상의 꿈속길을 걷는 기분이다. 그러면 비속에 청신한 대기로 바뀌인 숲속공기가, 싱그러운 냄새가 페부까지 와 닿으며 샘솟는 힘을 느끼게 한다. 그래설가, 나는 비속 산책, 비내리는 숲속길 산책 즐기는가 부다. 그속에 인생길 그때그때 스트레스가 사리를 내리고 삶의 활력이 온몸에 넘치여 난다. 그속에 한장 또 한장의 대자연의 아름다운 모습, 비방울 어린 아름다운 꽃들이 카메라에 흘러 들며 나의 취미생활를 다채롭게 꾸며준다. 오호라~~비내리는 숲속길에서 나는 떵~~떵 대우릉의 9000근 신종 열번 타종에 힘을 모아본다. 대우릉 종 여섯번이면 류류대순(六六大顺)이고 열변이면 십전십미(十全十美)라는가, 그속에  한학기 스트레스가 다 물러가며 무궁무진한 새힘이 나의 몸을 정화시켜 준다. 희부연 비속 헤가르며 저 산정의 동상 대우님이 빠끔 내려다 본다.   2011년 6월 19일 밤          
521    류은종교수 상해문화원서 한국어 특강 댓글:  조회:8931  추천:16  2011-06-19
  류은종교수 상해문화원서 한국어 특강   2011년 6월 10일 부터 6월11일까지 대한민국 주 상해문화원에서는 3층 문화원 다목적 홀에서 “올바른 한국어 보급을 위한 한중 세미나”를 가지었다. 세미나에는 화동지역 대학 한국어과 교수 및 한국어 교육기관 강사들 도합 55명이 참석하였다. 이 한중세미나에서 한국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박동호 교수와 중국대표로 절강월수외국어대 류은종 교수, 남경사범대학 유성운 부교수가 특강을 하였다. 류은종 교수는 일찍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상무이사로 활약하면서 중국 “조선어규범집” 편찬과 해설집편찬에 처음부터 주력으로 참석하여 왔다. 그후 “조선말맞춤법사전”, “최신 우리말사전”을 편찬에 학교 규범문법까지 편찬하여 중국조선어 어휘-문법규범화 사업에 기여가 컸다. 이런 풍부한 자료축적과 탄탄한 실력으로 이번 상해문화원 “올바른 한국어 보급을 위한 한중 세미나”에서 남북 그리고 중국 조선어규범 차이를 이론적 근거를 들어 특강을 함으로써 청중의 흥미를 유발하였고 인기를 모았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어 교수들의 한국어 교수 능력 향상으로 한국어 보급 수준 제고 및 활성화를 위한 목적에서 진행되었다. 한글맞춤법, 남북의 언어규범과 표현의 차이, 한국언어문화 교수법을 주제로 하여 특강이 있은 다음 열띤 토론이 있었다. 한중세미나에는 또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어과 조순화, 장림, 김남현(한국) 등 선생들도 참석하였다.                                   (오늘 사진 전부 류은종교수 제공)   
520    채색령롱한 련꽃세계 댓글:  조회:5397  추천:16  2011-06-17
                   채색령롱한 련꽃세계   비가 내리던 6월 14일 저녁 절강월수대 캠퍼스서 찍은, 비방울 어린 채색령롱한 련꽃세계입니다. 그대로 지나치기엔  아쉬움이 들어 남방아리랑 코너에 올리여 봅니다.
519    련꽃은 또 피여 난다 댓글:  조회:5480  추천:51  2011-06-04
                    련꽃은 또 피여 난다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큰비가 쏟아진다.  큰비는 다시 잔잔한 비로 바뀌우면서 그칠줄 모른다.    (비방울 어린 련꽃을 카메라에 담아야지!)   아침식사전 시간을 타서  카메라 가방을 메고 우산을 들고 대학의 캠퍼스 련꽃못을 찾았다. 여기저기 련꽃들이  숱해 피여나 신바람 났다. 련꽃들은 또 피여 나기 시작한다.    요즘 하나 둘 피여 나기 시작하던  련꽃들이  련꽃의 향연을 이룬다.  그 향연을 나는 카메라에 담아 본다. 비방울 어린 련꽃들이 아름다움의 절경속에 화알짝 웃는다.
518    아리랑컵 제8회 한글 경연 댓글:  조회:4741  추천:56  2011-05-27
                아리랑컵 제8회 한글 경연 5월 26일 저녁 절강월수외국어대 동방언어학원 희넓은 영상교실에서 절강월수대 한국문화연구소, 동방언어학원 한국어과, 세종한글습작사, 동방언어학원 공청단총지위원회, 절강지구창작위원회 남방아리랑이 공동주최한 아리랑컵 제8회 한국어 글짓기 경연이 성과적으로 펼쳐졌다. 절강월수외국어대 제1회 한국어 글짓기 경연이 펼쳐진 것은 2007년 12월이다. 그로부터 해마다 두번, 즉 매학기마다 한번씩 한국어 글짓기 경연을 벌리었는데 중심주최자는 세종한글습작사와 이 습작사 작문지도 교수였다. 한데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 대학생들의 글짓기 수준은 눈뜨이게 높아져 지난해 10월 남경에서 있은, 길림신문 한국어마을과 한국 국제대학에서 주최한 <한국 국제대학 총장배>화동지역  한글백일장에서 금상을, 지난해 11월 절강성 대학생 한국어 글짓기 경연에서 금상을 딴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동방언어학원 한국어과에서는 2011년 첫 학기 08조선어 본과반 4개반(100여명)에 처음으로 작문과를 설치하고 매주일마다 한편의 작문을 쓰고 관련 두 교원이 번마다 까끈히 수정하여 주면서 절강월수외국어대 동방언어학원 한국어과 08학번 본과생들 한국어 글짓기 수준을 한결 높이었다. 이에 발맞추어 연변작가협회 절강지구창작위원회에서는 제8회 한글 경연부터 처음으로 아리랑컵을 달고 절강월수외국어대 중국 대학생들의 한국어 글짓기 수준 높이기에 공조하기로 했다. 이날 펼쳐진 아리랑컵 제8회 한국어 글짓기 경연에 이 대학 한국어과 09학번과 08학번 전과, 본과반 대학생 40여명이 참석하여 09학번 명제작문—고향으로 가는 길, 나의 이상, 동년시절의 이야기 (한편 선택하기), 08학번 명제제목—길은 눈앞에 있다, 오성 붉은기를 볼 때마다, ……의 즐거움 (한편 선택하기)을 가지고 열띤 경쟁을 벌리었다. 이 대학 동방언어학원 한국어과 방룡남, 서재학, 리광인 세 선생들이 평심으로 나서고 경연 결과는 따로 발표하게 된다.    2011년 5월 27일      
517    안탕산(9) 대룡추로 가는 길 희한도 해 댓글:  조회:5502  추천:55  2011-05-15
【안탕산】(9)          대룡추로 가는 길 희한도 해
516    남칠진 은사님께 드립니다 (서재학) 댓글:  조회:5439  추천:54  2011-05-13
【편자의 말】    지난 4월 30일,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어과 서재학교수님은 흑룡강 탕왕하 기슭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 남칠진 선생님을 찾아 항주로  다녀 왔습니다.    항주에서 뜻깊은 상봉을 하고 서재학교수님은 그 감회를 글로 적었습니다. 그리움과 상봉에 젖은 글이라 서재학교수님이 넘겨 준 그날의 사진과 함께 이 코너에 올리어 봅니다.남칠진 은사님께 드립니다     탕왕하 기슭에서 고등학교 학창시절 엊그제 같은데 어언 45년이 흘렀습니다   은사님의 깊은 정 내 어찌 잊으리오 뵙기 싶은 그 마음 꿈속에서도 간절했습니다   그 이름도 력력한 남칠진 은사님— 민족마저 분별키 어렵다던 탁월한 중국어 강의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주신 가르침 이 제자는 가슴깊이 되새깁니다   뜻밖에 이뤄진  희열의 상봉 인생 70 고령에도 정열에 끓는 꿋꿋한 모습 제자의 기쁨이며 바람입니다   오늘도 제자들에 대한 사랑 한몸에 지니시고 만년의 행복으로 느끼시며 천당 항주에서 삶을 영위하시는 가장 존경하는 은사님, 사모님 부디 오래오래 앉으십시오   제자 서재학 소흥에서, 2011년 5월 1일            
515    안탕산(8) 합장봉 사이는 관음동이라 댓글:  조회:4798  추천:48  2011-05-11
【안탕산】(8)           합장봉 사이는 관음동이라  령봉 풍경구에서 쌍순봉에 이어 장관은 합장봉입니다. 합장봉(合掌峰)사이는 우리 인류의 녀근인양 대자연의 힘찬 새를 이루는데 이 새에 관음동이 생겨나 유람코너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두 가족은 령봉풍경구에서 합장봉 관음동을 유람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 인상이 깊어서 지금도 합장봉 관음동에서 담소하는 것 같습니다.
514    안탕산(7) 령봉 구간 쌍순봉 안고 돌았소 댓글:  조회:5456  추천:50  2011-05-11
【안탕산】(7)          령봉 구간 쌍순봉 안고 돌았소  온주 안탕산의 3대 절경은 령암, 령봉, 대룡추 풍경구로 헤아려 집니다. 4월 30일 오후 우린 령암풍경구 유람에 이어 령봉풍경구 구내에 들어 섰습니다.  령봉풍경구에서 선참 우릴 반기어 주는것은 특이한 쌍순봉이였습니다. 쌍순봉(双笋峰)은 높이가 80미터를 이루고 두개 방향의 지질 단렬작용으로 암석이 갈라지며 생겨 난것으로 알려 집니다.  령봉풍경구 입구에 들어 서면 보이는 것이 령봉 계곡 따라 쌍순봉이 우렷히 안겨 집니다. 입구에서 합장봉 관음동에 이르는 내내 쌍순봉을 안고 돌게 됩니다.
513    오일절 휴가... 댓글:  조회:4738  추천:40  2011-05-03
요즘 별로 바쁜척을 하면서 오랫동안 이곳 남방아리랑에도 자주 들르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 잠간 사진 몇장 부랴부랴 남기고 갑니다^^오일절 휴가가 삼일이긴 한데 휴가철 어디가나 사람들로 북적댈걸 걱정해서 이번 휴가는 가까운 거리에서 지인들하고 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항주시 전당강 남쪽켠에 세워진 자칭 아시아에서 제일큰 규모의 골프연습장이라고 자랑하는 빈강1호 골프클럽에서 땀을 살짝 흘러보았습니다.^^사진에 나오는 뒷모습들이...어디에서 많이 본듯 하지요^^ 
512    안탕산(2) 안탕산의 철쭉 어여쁘구나 댓글:  조회:3912  추천:44  2011-05-03
【안탕산기행】(2)          안탕산의 철쭉 어여쁘구나
511    안탕산(1) 5.1의 안탕산 유람객 넘쳐난다 댓글:  조회:4980  추천:34  2011-05-02
【안탕산기행】(1)       5.1의 온주 안탕산 유람객 넘쳐난다 4월 30일과 5월 1일  방룡남박사와 두만강 두가족은 5.1휴가를 타서 세계지질공원이요, 중국 10대 명산이라는 온주 안탕산을 유람하였습니다. 안탕산은 소흥서 남으로 300킬로미터 쯤 되는 온주시 락청 경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온주 안탕산(雁荡山)은 명산 중의 명산이였습니다. 안탕산 유람에 앞서 인터넷과 관련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으나 현지에서 보는 안탕산은 상상을 초월한 세계적인 명산이였습니다.    이런 명산이여서 안탕산은 어딜 보나 유람객들로 넘치였습니다. 풍경구로 이어진 유람길마다 유람객들이 붐비여 많은 구간이 발을 옮겨 놓기도 어려워 거부기걸음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람객은 오전오후 구분이 없이 끊임없이 몰리여 안탕산으로 이어진 큰길은 몇몇 킬로미터일까, 가고가도 유람 차량과 유람객들로 꽉차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몇회로 나누어 사진으로 보는 안탕산기행을 조글로 “남방아리랑” 코너에 련재로 펼쳐 드립니다. 련속 사진들을 보노라면 천하절경 안탕산을 어느 정도 리해하게 될것입니다. 첫회는 “5.1의 안탕산 유람객 넘쳐 난다”입니다.      
510    대학생들 등산 사진 묶음 댓글:  조회:4355  추천:26  2011-05-02
                  대학생들 등산 사진 묶음   4월 20일, 대학생 애들이 찍은 등산 사진을 모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번 등산활동을 지켜 봐 준 여러 분들 감사합니다 !!!
509    마음 한구석 등산으로 감돌았습니다 (선해리) 댓글:  조회:8502  추천:20  2011-05-01
          마음 한구석 등산으로 감돌았습니다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어과 09 조선어 2반 선해리   지난 주에 우리 반 친구들이 이선생님과 함께 등산을 다녀 왔습니다. 친구들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대학 재학기간에 정말 좋은 경험을 한 날이었습니다. 대자연과 어울리니 기분도 상쾌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반 등산활동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차운전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운전 이론시험을 거쳐 지금은 차운전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운전기술학교는 우리 대학에서 매우 멀었습니다. 반 친구들이 등산을 가던 날 나는 차운전 실천에 나서야 했습니다. 매번  차를 갈아타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처음 차에 오르니 진짜 무서웠습니다.  운전이 그만치 특별히 어려웠습니다. 나는 차가 서로 충돌할가봐 걱정했습니다. 무서웠지만 여전히 운전을 배워야 했습니다. 차운전을 배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우리 반 친구들 등산을 감돌았습니다. 대학으로 돌아오니 반 친구들은 재밌었다고, 기분이 좋았다고 야단들입니다. 이제 등산기회가 또 있다고 하니 그때는 동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날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2011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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