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추
http://www.zoglo.net/blog/wuxueqiu 블로그홈 | 로그인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29 ]

9    훔칠수 없을것 같다(오설추) 댓글:  조회:2760  추천:0  2011-07-27
훔칠수 없을것 같다  오설추    50여년 살아오면서  정말 남들처럼 자랑할것도  정말 으시댈것도 하나 없지만  그래도 제법 큰소리 낼수 있는건  남의걸 훔친적이 없다는것    학과시험을 볼 때면  옆의 련자라는 애는 늘 내 시험지 훔쳐보지만  난 맹세코 련자걸 훔쳐보지 않았다는것  옆집 깜장내는 늘 내 놀음감 훔쳐갔지만  난 한번도 깜장내걸 훔치지 않았다는것    10여년 글이라도 쓰면서  못난 자식이라도 제 자식 곱듯이  졸작이라도 훔치지 않은 내글이란걸    내 문학사전에 코밑치성이란 전무하다는점  상타려 코밑치성도 결국 훔치는거니까    그제날  집체호에 있다가 8년만에 추천받아 떠나오는 날  하향지식청년들 운명을 좌우지하는 5.7간부가  날 보고 놀라더라  온 공사 하향지식청년들이 문턱이 다슬도록 찾아왔는데  왜 동무는 면목이 없을가  미안합니다 한번도 찾아뵙지 못해서  면구스러워 어쩔줄 모르는 나에게  동무 하나가 "령도량심"을 훔치지 않았구만  하던 그분의 말이  십자가처럼 목에 지워져  앞으로 살아갈 30년 동안에도  훔칠래야 훔칠수 없을것 같다  
8    베짱이의 울음 댓글:  조회:1213  추천:49  2009-03-26
(불효했던 에미를 강변에 묻고 슬피 우는 개구리, 자기의 명예와 권리를 사는데는 산더미같은 돈치성을 아끼지 않다가도 떡 한쪼박에도 만족했던 양로원의 어머니에게는 발걸음마저 아끼는 그런 사람을, 옆에서 보는 내눈이 참 죄스러워... 지은 시입니다.) 베짱이의 울음 베짱이도 우는가 바디 닳도록 짜낸 베필을 코 밑에 치사스레 성처럼 쌓아놓고 예쁜 울음 짜낸 목소리에 황관만 버거운것을 한쪼박 베천에도 넉넉했던 어머니의 외로움은 강변에 묻듯, 양로원에 내치고 베짱이도 우는가 개구리 슬픔을... 강변 묻은 에미 울듯 베짱이도 울음우는가
7    환원된 생명의 메아리 댓글:  조회:2002  추천:29  2009-03-04
     마지막 길을 잘 해드리려고 나는 심한 풍을 맞아 말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어머니를 모셔왔다. 몇달간 정성껏 모셨더니 누워 앓는 로인답지 않게 하야말쑥하고 윤기가 돌아 보는 사람마다 천사처럼 곱게 늙는다고 부러워하였다. 남편도 우리 어머니를 ‘5성급’대우를 받는 고급로친이라고 ‘놀려’주군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무엇이 불만족인지 늘 울며불며 진정을 못했다. 때론 밤중에도 새된 소리를 쳐서 집식구들을 몽땅 깨워놓고는 자식들의 걱정과 근심어린 시선속에서 당신은 여유있게 마라손 울음을 시작하는것이였다. 딸이였기에 망정이지 며느리였으면 동네에서 로인을 때리며 구박하는가 하였을것이다.     솔직히 말해 애가 울며보채는것은 귀찮을뿐이지만 늙은이가 밤중에 길게 늘이며 천천이 우는것은 귀신이 곡하는 소리와 같이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얼마나 불편하면 저러실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약도 대접해보고 간식도 드려보고 배겨서 그러는가  돌아눕혀도 보며 별별 방법을 다 해보았다. 그래도 어머니 울음은 그칠줄 몰랐다. 이튿날 아침에는 출근해야겠는데 온밤을 이렇게 시달리고나면 저도모르게 짜증이 나고 미워나서 한참동안 못본척하고있으면 이번에는 마구 발버둥치며 야단이시다. 이러는 어머니를 보고 아들은 외할머니가  ‘전술’을 바꿔 새로운 ‘발동’을 건다고 한다. 아닌게아니라 나도 ‘발동’에 걸렸는지 방금까지 고깝던 생각이 훌 사라지며 킥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아들녀석이 탁아소문어귀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발버둥치던 모습이 떠오르며 ‘피부기아증’이란 의학명사가 생각났기때문이다.     ‘피부기아증’이란 사람이 굶으면 기아가 들듯 피부도 ‘굶’으면 기아에 허덕인다는 뜻이다. 부모의 애무속에서 피부를 포식하며 자라는 애들은 그 증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부모의 애무없이 고독하게 자라는 애들은  그 증상이 심하다고 한다. 고아원의 애들이 간단없이 벽에 골을 짓찧거나 우정 싸움을 걸어 매를 청해 맞는 등 현상이 바로 이런것인데 타의적인 피부학대를 청해받으면서라도 허기진 피부를 달래야 하는 고아들의 무의식적인 발로인것이다. 황차 포화된 애무상태에서도 엄마를 떨어지기 싫어 발버둥치는 애들일진대 따뜻한 애무는 커녕 부모의 아픈 매 한번 맞아보지 못한 고아들이야 더 말할나위 있겠는가. 고아들이거나 현재 외국에 돈벌러간 부모들로하여 고아아닌 고아가 된 아이들이 범죄률이 높은것도, 또 공부를 안하고 pc방에서 밤을 새우는것도 바로 이런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람은 생리적으로 피부기아증을 달래기 위한, 혹은 발설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한데  범죄행위나 pc방같은 곳이 바로 그런  적절한 장치가 아닐듯 싶다.     사람이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도 늙으면 애들처럼 피부기아증이 온다는 말로 된다. 십몇년간 시아버님과 친정어머니를 차례로 모셔보면서 이 점을 절실히 느꼈었다. 늙은이가 ‘아이’가 된다는 말은 결국 ‘늙은 아이’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로 되며 애들이 엄마의 애무를 수요하듯 ‘늙은 아이’들도 ‘엄마’의 애무가 수요된다는 말로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귀여워서라도 안아주고 뽀뽀도 해주지만 파파 ‘늙은 아이’들은 어느 누가 감정이 나서 안아주고 뽀뽀해 주겠는가, 더구나 로인들을 구박만 하지 않아도 복으로 알라는 이 세월에 말이다. 좀 현명한 자식들이라도 기껏해야 나처럼 의식주나 돌보는 의무적인 보모역할밖에 하지 못했을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늙으면 원하든 원치않던 피부기아증에 걸리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울며 불며 진정을 못하시는것도 아마 이때문일것이라고 진단해본다. 로년의 비극은 자식들이 이것을 로망으로 보고 방심하는데 있지 않을가 싶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나니 어머니가 몹시 섭섭해하며 하시던 말씀이 맞혀온다.   ‘애가 그렇게도 고우냐? 너도 다 그렇게 자래웠건만…’   애 엉덩이를 물고 빨고 하며 고와 어쩔줄 모르는 나를 보며 하시던 말씀이다. 오늘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그때 분명 애무를 독차지한 외손자를 ‘시기’하고있었고 이 딸에게 주었던 사랑과 애무를 은근히 되받고싶어했던것 같다. 더구나 서른다섯에 남편을 잃고 오로지 치마폭에 감긴 여섯자식들과만 고독을 풀어나가던 어머니가 아니였던가, 늘 이 막내딸만은 더 크지 말고 조꼬만대로 당신곁에 붙들어놨으면 좋겠다던 말뜻을 이제야 알것 같다. 치마폭에서 하나하나 빠져나가는 자식들로하여 얼마나 허전하고 외로왔으면 이런 말씀이 다 나오실가, 어쩌면 어머니의 피부기아증세가 그때부터 서서히 시작되였는지도 모른다. 제 살붙이에게 쏟아부었던 애무의 손길을 다문 얼마만이라도 부모에게 기울였더라면 어머니의 증상이 이토록 심하지 않았을것을.     가슴저린 추억을 뒤씹으며 나는 과거를 보상하려는듯 와락 어머니를 붙안고  눈물을 흘렸다. 당신도 어느새 진정되였는지 젖먹이처럼 내 볼을 부여잡고 와와 하며 좋다고 야단이시다. 그러더니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할것처럼 끙끙 갑자른다. 갑자르다 안되니 답답하다고 가슴을 팡팡 치다가 끝내는 ‘엄ㅡ마ㅡ’하는 소리가 터져나오고야말았다. 어머니가 말을 잃어버린지 한달만에 처음 나오는 발음이였다.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남편이 너무도 신기해서 어머니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 딸님이 어머이의 엄마란 말임둥?’하고 물으니 단번에 옳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신다. 이어 시름을 놓은듯 안도의 숨을 활 내쉬는것이였다.     ‘딸이 엄마 되믄 이 사위는 어머이의 아부지 되겠씀다, 예?’하고 남편이 슬쩍 롱담을 걸자 알아듣고나 그러시는지 당신도 같이 따라 웃고있었다.     ‘울다가 웃으면 엉치에 털이 나는데…’   곰처럼 자던 아들애가 어느새 깨여나서 할머니를 놀려주고있었다. 어머니의 눈가에는 어느덧 빨간 부끄러움을 탄 연분홍눈물이 달랑달랑 즐겁게 춤추고있었다.     이렇게 어머니와 울고웃고 하며 살아간지도 어느덧 일년이 지나갔다. 여든하고 다섯해를 넘긴 어머니도 이젠 더는 지탱 못하시겠는지 우유 한모금도 넘기지 못한다. 단백질도 다 빠져나갔는지 며칠사이에 팔 다리의 살이 뭉텅뭉텅  물러나며 뼈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신음소리 한마디 없다. 예전 같으면 한동네가 아니라 열동네도 더 깨우며 소리쳤겠건만. 내 발걸음소리만 들어도 반짝 빛내던 안질이 멍해 천정만 쳐다보고있다. 나만 보면 ‘어마’하고 부르던 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자식들이 통곡치며 애끓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모두들 눈물을 머금고 어머니의 림종만 지켜보고있었다. 이때였다.     ‘할머니!’하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아들애가 엎어질듯 달려들며 할머니 얼굴에 마구 뽀뽀를 퍼붓는것이였다. 순간, 옆에 있던 보모가 환성을 올렸다. ‘할머니 웃씀다!’   하긴 달반전에 들어온 보모가 돌처럼 굳어진 어머니의 모습만 보아왔으니 환성을 지를만도 한 일이였다. 뒤이어 철문처럼 닫혔던 어머니 입에서  ‘어ㅡ마!’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숨막힐듯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드디여 흑 하고 터지는 울음소리와 더불어 형제 모두의 입에서 ‘엄마!’하는  소리가 일제히 터져나왔다. 그런데 묘하게도 여섯쌍의 눈들이 약속이나 한듯 어머니의 집요한 눈길을 따라 우리 아들애한테 쏠려진것이다.     순간, 나는 키스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더불어 숭고한 감정이 치달아오르는것을 느꼈다. 남편과의 첫키스도 격정과 환회에만 머물렀을뿐 이렇게까지는 승화되지 못했었다. 언어에 대한 기아를 느끼며 나는 저도모르게 키스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키스ㅡ사랑의 불길을 일으킬수 있는 발화점, 스러져가는 오감을 환원시킬수 있는 환원제, 생명력을 촉동시킬수 있는 촉감, 그리고 또, 또…    그 이튿날부터 쇤이 다 돼가는 이 막내딸과  한타스나 되는 어머니의 손자손녀들이 겨끔내기로 할머니를 뽀뽀해주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내내 웃음이 사라질줄 몰랐고 덩달아 터져나오는 ‘어ㅡ마’소리도 단순히 엄마만 찾는 소리가 아니였다.     그것은 촉감으로 발굴된 생명의 노래였고 촉감으로 환원된 생명의 메아리였으며 절정에서 울려퍼지는 생명의 탄성이였다.  어머니는 이렇게 일주일간 내내 웃으시며 엄마를 부르다가 쌕쌕 잠든 아기처럼 달콤하게 천당으로 가셨다.     금년 가을에 어머니무덤에 가보니 산뜻한 코스모스가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나를 반기고있었다. 어머니가 제일 즐기던 꽃이였다.     심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날아왔을가?                                                                  끝  
6    관리원 댓글:  조회:1680  추천:48  2009-02-27
     관리워이, 관리워이’ 사무실동료가 손짓하며 부른다. 그러자 전쟁 싸이렌소리나 울린듯 난전을 벌렸던 떡과 남새광주리들이 우르르 숨어버린다. ㅎㅎ, 갓난애기 제방기에 놀란다더니 관리원이라니까 모두들 내가 세금받는 시장관리원인가 했던 모양이다. 장난기가 바짝 동한 나는 “주로우(猪肉的)디, 수이로우(水肉的)디, 퉁퉁 매바(卖吧)!”하고 한바탕 “중어”를 답새겨주었다. 저네 되오? 숨이 한줌만해 있던 떡과 남새광주리들이 포복요절하며 감히 다시 등장한건 5분후였던가.      관리원이라는 요 재밌는 명칭때문에 나는 늘쌍 이렇게 빗나가서 웃고 웃어서 빗나가는 일상이 된다. 어디 시장관리원뿐만이겠는가. 이불관리원, 책상관리원, 창고관리원, 심지어 장대걸레관리원까지… 도련님꽁무니에 쫄쫄 묻어다니는 방자처럼 천하고 값싸다는 물건들은 다 내 요 관리원 이마에 쫄쫄 묻혀다닌다.     조선친척때문에 이불을 얻어 달라는 친구가 있어 이불 몇채를 해결해주었더니 해준다는 소리가 류학생부에 있다니까 큰노릇을 하는가 했더니 겨우 "이불관리원"이였구나, 동아리들의 활동때문에 반공실용품들을 구해 내놨더니 시시한 "창고관리원"인 모양이다, 세집맡은 친구에게 장대걸레를 얻어줬더니 겨우 "장대걸레관리원"이구나, 아무튼 뢰봉동지따라 열심히 좋은 일을 해줄 때마다 딱딱 보답해주시는 명칭들이시다.     마치도 유치원생들이 심란이란 이름이면 “심술돼지”, 방자면 “방기퉁재”, 봉남이면 “뽕구대”하고 별명을 붙이듯 유치란만한 보답이 줄줄 이어진다. 류학생들이 숙사에서 애완견을 몰래 길렀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다간 "애완견관리원"까지 묻혀올수 있다.    이렇게 석탄바곤처럼 “천한”명칭이 줄줄 이어지던 일상의 어느날, 기껏해야 책상이나 장대걸레나 해결하던 이 관리원이가 글쎄 어벌도 크게 동아리들의 반공실까지 해결했단다. 이럴 때는 큰맘 먹고 "반공실관리"라도 붙여줘야 하잖는가, 하지만 석탄같은 천한 바곤에 어찌 반공실같은 어마어마한 이름자를 붙이리오, 그래 기껏 해주신다는 말씀이, 제같은 관리워이 어떻게 반공실을 다 해결하오? 정말 놀랐소!이다.     거기다가 헛간이나 행랑채에나 둔치고 있어야 할 “방자”같은 천한 놈이 감히 반공실에 궁둥이를 깔고앉아 커피나 마시는 수준이니 “형벌”처럼 견딜수가 없었던 모양, 베쮼동지처럼 불원천리하고 반공실까지 찾아 일깨워주신다. 이제 정돈하게 되면 저네 과실이 없어지고 공인편제만 둔다오, 원래 제가 하는 일이 공인편제나 하는 일들이지…     우리 과실책임자가 이말을 전해듣고 우스개를 피운다.      “ 저네 친구들이 다 갱년기를 잘못 넘긴게 아뉴?”      요럴 때는 아이러니하다는 현대식언어를 써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정말 놀랐소”라는 순진한 친구나 베쮼동지처럼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덜 순진한 친구나 역시 나처럼 덜도 더도 아닌 관리원이였다면? 더 뿌리캐다보면 관리원아래서 분주히 기계나 돌렸던 로동자였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코등이 낮은것은 모르고 객관적코등이 낮은것만 열심히 념려해주신다. 그네들을 볼라치면 나처럼 순 제노력으로 공인편제로부터 간부편제로 된것이 아니라 남편이나 부모들의 후광을 입고 그만한 자리에 홀라당 앉으신 분들이였다. 이런 지체가 허망 높아진 사람들일수록 심리평형을 찾느라 콤플렉스발산이 심한 법이다.       하긴 나도 앉으나 서나 관리원이였으면서도 여태 자기가 관리원인줄 몰랐으니 누굴 어떻다고 말할 처지도 못되는것이다. 대형기업의 공자와 로동정액을 책임졌던 나를 보통 로신(劳薪)이라 불렀지 관리원이라 부르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때 둬살된 우리 애마저 너 엄마 이름이 뭐냐? 하면 우리 엄마이름이 로신임다 할 정도로 그 명칭에만 익숙해있었던것이다.     그러다가 10년후인 89년도에 의학원에 조동해와 중급직함을 평하게 되였는데 당안을 복사하며 보니까 분명 “로신관리원”(劳薪管理员)이라고 적혀있었다. 공자와 인사공작을 하여도 로신관리, 회계나 출납을 하여도 재무관리, 연구원이나 도서관에서 잡지를 책임져도 도서관리, 결국은 다가 관리원이라는 직책이였다. 하지만 보통 선생 혹은 로신, 회계, 출납이라 부르지 관리원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김아무개, 리아무개라 부르는것과 똑같은 도리이다.      우리학교에서도 사감(숙사감독)을 선생님이라 부르지 관리원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튕기며 골랐다는 이 류학생사감만은 관리원이라 부른다. 그것은 류학생부가 금방 건립되면서 인원부족때문에 정식직공이 아닌 임시공을 초대사감으로 임명했다는 리유에서였다. 뿌리깊은 차별의식이 임시공을 쉽게 선생님이라 존칭할수 없었던 모양, 그렇게 습관된 명칭이 3년후인 나에게까지 세습된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본인의 직함이나 공자에 영향을 주는것도 아니여서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장마당의 떡과 남새광주리들처럼 모두들 공연히 개의들하니까 내사 다시 개의하게 되는것이다. 개의하다보니 수필에서의 발견처럼 발견된 면도 꽤 있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였다. 이런것을 현대말로 하면 반귀효과(反馈效果)라 하는가.     인간의 무의식에는 가장 낮은 서렬로부터 탈출하려는 교묘한 본능이 있다 한다. 이런 본능의 가장 생동하고 천진한 례로써 유치원을 들수 있다.      “오늘 아침 세수하고 온 어린이 손드세요, 기발을 올려줍니다.”      하면 아침에 세수하고 온 녀석이나 전날 묵은 코범벅을 그대로 달고온 녀석이나 다 손을 쳐든다. 더한층 높은 서렬로 되려는 귀여운 탈출들이였다. 그런데 뛰는놈우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난 어제 벌써 세수 다 했씀다!”      하고 우쭐렁대는 눔도 있다. 과시 창발성있는 견해였다. 선생은 한낮 세수라는 물리적인 행위로 서렬을 시도했지만 다섯살생은 어제와 오늘이라는 승화된 시간개념으로 서렬을 시도한다. 그러니 기발 하나를 더 올려줘야 하잖는가. 당연히 “어제세수”기발이 우에서 우쭐렁대고 “오늘세수”기발이 아래서 주눅들게 되였다. 원장선생이 아시고 못내 타발이시다. 그런 엉터리로 교육하는게 어디 있소?     엉터린게 아니라 인간은 본래부터 우, 아래 서렬을 만들어가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는걸 원장님은 알으셔야 했다.     과거 소와 돼지를 잡던 백정들조차 나는 적어도 개는 안잡는다는식의 서렬을 시도했다 하니, 도서관리나 장부관리도 얼마든지 자기는 적어도 숙사따위는 관리안했다는식의 서렬을 시도할수 있잖은가, 거기다가 이불이나 장대걸레같은 접두사를 붙이면 더 효과만점이고,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필자행위도 곧바로 이런 의식의 역설적인 발로가 아니겠는가.     너나 나나, 다들 그렇게 해서라도 앙금처럼 남아있는 무의식속의 ‘천한’농도로부터 탈출될수만 있다면, 그래서 “사람은 다 제 잘난 멋에 산다”는 애절한 심리를 보상받을수만 있다면, 또한 그러한 천진한 서렬시도가 타인의 우월감에 대한 위기감과 렬등감을 없애고 보다 높은 자부심을 키워갈수 있는 지렛대라도 될수 있다면, 하여 보다 조화로운 인간질서와 인간평화가 금자탑마냥 굳건할수 있다면, 이 “관리워이”가 기꺼이 웃층의 우월감을 확인시킬수 있는 밑층의 구실을 할련다. 기발 한대쯤 더 양보할 용의도 되여있다. 아직까지 그런 차원쯤의 서렬시도는 “어제 세수한 녀석”처럼 앙증스럽고 깜찍스러운 삶의 동력으로 봐줄수 있으니까. 까짓거, 장마당에서처럼 ‘주로우(猪肉)디, 수이로우(水肉)디, 퉁퉁 매바(卖吧)!’하고 한바탕 중어를 답새기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낮은 서렬에서의 탈출시도가 아니라 질투로 인한 인격폄하수단으로 될때는 이미 본능이 아닌 타락이기에 인간수양을 쌓을 필요가 있지 않을가 생각된다.
5    성애에 대한 정면 교육을 댓글:  조회:982  추천:35  2009-02-25
    부부간의 애무는 남보는데서는 안되는 금물로 생각하는 우리 부부는 애앞에서 지나치게 ‘혁명’적 행동을 취했었다. 하기에 언젠가 네돐잡은 아들애가 엉뚱한 질문을 들이댄다.     “땐스(텔레비)에서는 어머니하구 아부지 친친(亲吻)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어째 아이 함다?”   “땐스니까 그렇지.”     허나 얼마후에 나타난 어처구니없는 일들에서 나는 나의 대답이 얼마나 미련했으며 애는 언녕 자기의 눈과 마음으로 모든것을 감수하고 짐작할수 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느날, 몇달간 외출했던 남편이 집에 들어섰다. 몹시 그리웠던차라 서로 막 그러안고싶었지만 요놈의  초롱초롱한 보초군때문에 감정을 억제해야만 했다. 내가 남편의 눈짓에 따라 애를 몰리고 슬그머니 객실에 따라갔더니 그이가 문을 닫기 바쁘게 덥석 끌어안으며 키스를 퍼붓는것이였다. 그런데 아불싸, 이게 웬일이냐, 문이 삐죽이 열리며 쬐꼬만 골이 뽈마냥 쏙 들어오는것이 아니겠는가, 화뜰 놀란 우리는 똑마치 도독질하다 들킨 랑패상이다. 순간 부모의 거룩한 형상이 막 구겨지는 무참한 심정이였다.     “아부지하구 어머니 친아이디(亲爱的)하는가 해서  보자구...\"     실로 울지도 웃지도 못할 노릇이였다. 하긴 텔레비에서처럼 아빠 엄마 친아이디 하지 않으니 우리 아빠 엄마는 도대체 웬 영문일가? 한번쯤 정찰해보는것도 재미있는 일이겠다. 감추면 감출수록 들추고싶은것이 사람의 심리거늘 하물며 호기심 많은 어린애임에야.     그날 저녁 기어이 우리와 같이 자겠다고 떼질 써서 셋이 함께 자리에 누웠는데 천만 고맙게도 요눔이 오래 까불지 않고 인츰 잠드는것이였다. 그래 둘이 얼싸좋다고 억제했던 감정을 폭팔해가며 좋아 야단인데 이건 또 무슨 홍두깨비인가? 구석에서 흥얼흥얼 시가락이 흘러나온다.     “어떤 아는 엄마라는게 애기처럼 서적쓰더라 우쁘더라…”     어이쿠, 요눔이 잠든척하고 수를 썼구나, 아직 어려서 구체적인 행동까지 기다려내지 못하고 서막을 연것이 천만다행이였다.     “어머니가 언제 서적썼니?”     “이재 내 다 봤다, 아부지목을 안구 뽀뽀하메 서적쓰더라, 우리 아부지하구 서적쓴 값을 내.”     제법 나하고 흥정까지 하려 든다. 이렇게 계속 아이의 호기심을 방심해두었다가는 원래 으뭉한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밀지, 모방성이 강한 애들이 무슨 후과를 초래할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현실은 우리를 일깨워주고있었다. 부부간의 성애를 회피할것이 아니라 정면교육을 해야 된다고, 그래야만 성애에 대한 신비감을 없애고 건전한 심리를 키울수 있다.     우리는 그 즉시로 계발식과  직관식을 결합해서 애를 교육하기로 했다.     나는 우선 애를 꼭 안고 키스를 뽁 해주며 물었다.     “어머닌 어째서 한생이를 안고 뽀뽀할가?”     “한생이 고와서.”     “어머니도 아버지가 고와서 뽀뽀하겠씀다.”     뽕도 딸겸 님도 볼겸 나는 애앞에서 남편목을 끌어안고 열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바람에 잠간 어리둥절해있던 아이가 불시에 내 품에 안기며 저도 뽀뽀하겠다고 야단이다. 아빠 엄마가 텔레비에서처럼 진짜 \'친아이디\' 하니 오히려 제쪽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모양이였다.     그 이튿날부터 우리는 예전의 “혁명”적행동을 버리고 자연스레 성애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내가 항상 먼저 출근하기에 남편은 문어구까지 나와 살짝 키스를 보낸다. 그러면 아이도 뒤질세라 나에게 코범벅을 칠해준다. 순간, 온몸에 난류가 흐른다. 문밖에 나와서도 그 여운에 두둥실 구름을 탄 기분이다. 오, 세상에 부럼없어라 지상락원이 예 아니더뇨!     저녁에 퇴근하여 채소를 사들고 기진맥진하여 집문앞까지 오면 남편과 아이가 환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그리고 서로 나를 빼앗겠다고 야단이다. 뉘라서 인삼록용만 피로를 풀고 정력을 돕는 약이라 했던고? 이런 정감세계가 세상에 으뜸가는 약이렸다.     이젠 애가 커서 열네살이 되였다.     내가 좀 기분이 언짢을가 하면 제쪽에서 먼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어머니를 좀 안아주시오, 어머니가 웃게서리.”     부부간의 정애와 사랑이 밥먹고 잠자듯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접수되였던것이다.     생물에 흥취가 짙은 우리 애는 온갖 동물의 교배, 번식과정을 연구관찰하고는 자기의 견해와 감상을 거리낌없이 부모와 얘기한다. 교배는 생명의 련속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이므로 하등의 이상할것 없다는 너무나도 객관적인 태도이다.     더욱 재미있는것은 애가 손수 번식시킨 물고기중에는 물고기 할아버지로부터 손자 손녀, 심지어 물고기의 본처 후처, 첩까지 수두룩한데 애가 신기할 정도로 물고기의 적자, 서자, 사생아까지 하나하나 가려낼줄 아는것이다.     장담하건대 우리 아들은 장차 우수한 생물학자로, 훌륭한 세대주로 될것이다.  
4    누구랑? 댓글:  조회:1533  추천:27  2009-02-24
  다방에서 잘 아는분을 만나《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끝에 《누구랑 같이 왔습니까?》라고 문안을 했다가 되게 까박을 당한적이 있다. 둬시간전에 년말총결파티에 함께 참석했다가 끼리끼리 다방에 와서 만난지라 별다른 생각없이 이렇게 물어본것이다.     이제 금방 누구랑 같이 왔는가 물어본게 무슨 뜻인가? 저네따위가 뭐가 돼서 이런 말을 함부로 물어보는건가. 내가 그렇게 시시하게 보이던가. 미친년들… 술에 취한것 같았다.     처음에 아무개랑 같이 왔다고 반갑게 인사를 받으며 돌아서던 분이 정확하게 5분만에 180도로 돌변한것이다. 평소에 우상처럼 숭배하던 분이라서 그런지 와그르르 그 우상이 무너지는것 같은감을 느꼈다. 《량반》이 《상놈》으로 변하는데는  5분이면 충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것도 그때였다.     그날 뜻하지 않게 좀은 《억울한》 까박을 당하고서야 나는 문뜩 깨달은바가 있게 되였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있는 적지 않은 인사말들은 알게 모르게 타인의 사생활을 건드리고있다는것을.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런 습관으로 되였다는것을.     《누구랑?》하는것은 완전히 한 개인의 인간관계를 말하는 사생활로서 《저네따위가 뭐가 돼서 함부로 물어보는가?》하던 그분의 질타처럼 그 누구도 물어볼 권리도 간섭할 권리도 없다. 특히 다방이라는 이 분위기가 묘한 장소에서는《누구랑?》하는 인사말은 그야말로 본의 아니게 남의 사생활을 간섭한 실례가 아닐수 없다. 더구나 사회명망도 있다고 생각하는 당당한 정인군자와 이런 《실례》를 했으니 완전히 대방을 소인으로 접어보고 하는 소리가 된것 같다. 《내가 그렇게 시시하게 보이는가?》며 말끝에 날을 세우던 그분의 모습이 바로 이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누구랑?》은 분명 타인의 사생활에 관계되는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인사방법을 쭉 습관적으로 써왔다. 가장 간단하고 일상적인 례로 길에서 두 친구가 만났을 때 그중 누군가는 먼저 꼭 어디로 가니? 하고 묻게 된다. 그러면 다른 한사람은 아무데로 간다고 답하게 된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정서와 의도를 빼고 순 문자로만 해석한다면 이 묻는 말도 엄연한 사생활 간섭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도 그렇게 인사했거니와 지금도 그렇게 인사하고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인사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때문에?     그것은 일반적으로 인사치례로 묻는다고 해서 묻는 자가 묻는 뜻에 의미를 두지 않고 대답하는자가 대답하는 의미에 뜻을 두지 않기때문이다. 즉 사생활을 묻는다 해서 사생활을 간섭하려는 의도가 거의 없기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디로?》는 진정《어디로?》에 관심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냥 《안녕?》하고 달랑 지나치는 보통사이보다는 한결 절친하다는 무의식적인 정감의 전달일뿐이다. 그냥 무심결에 《누구랑?》했던 나의 인사말도 진정 누구랑?에 중점을 둔것이 아니라 대방과 한결 허물없는 사이를 표현하고싶은 무의식적인 정감메시지였을것이다. 진정 누구랑?에 촉각을 세웠더라면 뒤에서 호박씨를 까지 왜 당면에서 물어보았겠는가?     다른 한 례로 우리는 어려운 선배나 상급과도 《안녕하십니까?》란 깍듯한 인사말끝에 꼭 《어디 가십니까?》란 꼬리말을 붙이게 된다. 《안녕》이라는 인사만 달랑 하고 지나치자면 어쩐지 무심하고 슴슴하고 허전한것 같아 정나미가 느껴지지 않기때문이다.     왜 우리의 인사말들이 이렇게 타인의 사생활을 건드리도록 되여있고 또 그래야만 한결 가까운 정을 느끼게 되였던것이였을가? 그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의 재래식주거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나싶어진다.     내가 어릴적에도 우리 동네는 한국드라마에서 나오군 하는 재래식조선족가옥구조로 되여있었다. 50여평방메터되는 울안을 둘러싸고 다섯집이 오손도손 살고있었는데 집집의 얇은 널칸막이때문에 아래웃집의 귀속말이 환히 들리고 건너집 부엌도 빤히 들여다보였다. 그래서 하루 일과는 아침에 문 열고 건너집과 오늘 반찬거리는 뭘로 한다오? 하는 반찬문안부터 시작된다. 아래웃집 방귀소리조차도 아침문안중의 하나인데 매일 새벽 4시면 요강에 앉아 붕-하고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우리 어머니의 《싸이렌》소리가 곧바로 동네를 깨우는 첫문안이 된다. 온밤을 재워뒀다가 방출해서 그런지 그 소리가 거의 1분간이나 지속되는데 그때마다 《저런, 저런…》하고 감탄을 련발하는 웃집아저씨의 덜 깬 잠소리가 들려오고 《저 로친이 보리죽만 해자시더니 길게도 늘여놓네.》하는 아래집아줌마의 지청구가 건너오면 《그 집에서는 콩죽만 해먹어서 어애가 됐다오?》하는 어머니의 넉살좋은 맞대꾸가 넘어간다. 방귀소리에 관계되는 콩죽, 보리죽 문안뿐만아니라 《아무개 집에서 월급을 타왔다오?》하는 말도 빠뜨릴수 없는 문안인사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어느 집의 월급이 먼저 나오면 그 집의 월급을 서로 드텨서 집집의 바쁜 목을 열어가기때문이였다. 로인들의 꾸중소리도 동네기풍을 바로잡는 호령문안중의 하나였다. 어쩌다가 어머니와 큰소리라도 대들게 되면 그날은 온 하루 숨이 한줌만해서 《또 에미와 맞섰냐? 고얀 버릇 같으니라구. 다리깽이를 분질러놓을라!》하는 호령문안을 뒤골에 달고다녀야 했다.     이렇게 손과 발은 물론 머리까지 맞대고 살아야 하는 촉감적인 가옥구조는 우리 동네사람들로 하여금 서로간에 혈육 같은 정이 돌게 했고 혈육 같은 정이 돌게 되니 저도모르게 네 살림에 내가 있고 내 살림에 네가 있는 동심원의 삶의 양상을 구축하게 한것 같다. 따라서 이런 삶의 양상은 부모자식지간에 혹은 형제지간에 서로 부비며 살다가 어느 한쪽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허전해서 그 행방을 서로 묻고 차중하듯이 동네사람의 행방에도 관심을 갖게 된것이다. 이런 어우러진 삶의 양상에서 비롯된 인사말이 바로 《어디로 가니?》로 되지 않았을가. 다만 동네사람들끼리 혈육 같이 지낸다고 해서 진짜 친혈육은 아니므로 동네사람들끼리의 행방에 관한 진짜 관심과 리해관계가 가족처럼 깊을수는 없다. 하여 자연히 묻는 목적은 세월따라 바래지고 오직 가족처럼 관심하고있다는 정의 상징으로만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산다는것은 다시말해 살고있다는 증거는 이런 촉감적인 인간관계를 맺고있다는것이 아닐가. 촉감으로 정이 생기고 정이 생겨야 생명력이 있다 할 때 《너+나》로 이루어지는 동심원의 삶의 양상이야말로 인간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정의 극치가 아닐가싶다. 바로 이런 정의 극치에서 비롯된 인사말들이기에 우리의 인사말들은 단순한 사생활의 간섭이 아니라 정을 구축하고 사랑을 구축하고 생명력을 구축하는 관계맺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     요즘 우리의 아빠트생활은 편리하고 실용적인 반면에 집집의 손과 발을 얽매는, 다시말해 동심원의 관계맺음을 차단시키는 차단봉의 역할을 노는것 같다. 우리의 시선까지 차단시키는 높다란 콩크리트벽은 집집의 촉감을 거세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한 아빠트에 몇년간 같이 살았어도 《어디로 가세요?》는 둘째치고 《안녕?》이라는 인사말도 하기 싫어진다. 그만큼 면목이 서툴고 정이 없다는것을 설명한다. 거세당한 촉감구조에서 정이 나올리가 만무한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자기방문에 《노크하시오!》를 써놓고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다. 어쩌다 깜빡하고 노크하지 않으면 사생활을 침해당했다는 피해의식으로 으르렁댄다. 실용적인 아빠트구조가 오히려 무정한 온대성동물들을 길들이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로씨야에 간적이 있었는데《로모즈들은》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쁘리웨트?(안녕)》하면 끝이였다. 비무장지대와 같이 엄연하게 여기는 그들의 사생활령역을 나처럼 《누구랑?》했다가는 사생활침해나 인권침해로 몰아세웠을지도 모른다.     로모즈들과 몇번의 인사를 나누어봤는데 그들의 인사법은 그야말로 한점의 흐트러짐도 없는 세련된 동작과 더불어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리성적이고 교양적인데가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개성미가 없어 슴슴하고 멋적고 메마르고 정나미가 돌지 않는듯한 느낌이다.     우리의 인사습관은 덜 세련되고 덜 교양적인데가 있는것 같다. 하지만 촉감이 촉촉히 감돌고 정나미가 잘잘 흐르는 우리만의 독특한 개성미가 있다. 유감스러운것은 우리의 이런 구수한 인사습관이 점점 그 정이 희석되여가고 촉감이 둔해져가고있다는점이다. 주거문명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고 느껴진다.     거세당한 촉감에 대한 집착과 향수, 《너+나》의 동심원이 되고싶다는 무의식적인 갈망, 이러한것들이 오늘도 나로 하여금 고집스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찜질방 가는 친구를 보고 이렇게 묻는것일가? 《누구랑 같이 가니?》  
3    부족해지는 련습 댓글:  조회:1288  추천:19  2009-02-19
    동물세계에서 자립성이 약한 암컷들은 수컷과 짝을 지어서 새끼를 기르지만 강한 암컷들은 짝을 짓지 않는단다. 그래 그런지 우리 집 개 라라는 청승맞게 홀로 새끼를 길렀지만 처마밑의 우리 집 제비는 암, 수가 짝을 지어서 새끼를 기르는것이였다. 라라 새끼 쑈라는 제 애비가 누군지 모르지만 새끼제비들은 용케도 제 애비를 알아보고 짹짹거리며 한결 반가워했다.  아마도 수컷이 암컷보다 더 많은 먹이를 물어다주는 모양이였다.     힘센 애비제비도 대견해보였지만 지아비가 제구실을 착실히 하도록 한발 물러설줄 아는 어미제비가 더 돋보이였다.     어려서부터 어미제비의 열정적인 《팬》이여서 그런지 나는 한심하게 부족한 녀자이다.  어쩌면 남자가 해야할 일을 도맡아하던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때문에 더 부족한체하는지도 모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달만 남편이 집에 없어보라, 집은 그야말로 대 란장판이 된다.     소아마비증에 걸린 전구속의 월프람선은 전기절약모범을 신나게 홍보하고 체증에 걸린 변기는 소화계통청결을 애타게 호소하고… 나 또한 남편의 귀중함을 새삼스레 기억해내며 감상에 젖어 꺽꺽거리고, 남편은 남편대로 이 《팔삭둥이》안해때문에 더욱더 분발해야겠다는 드높은 결심과 더불어 당신이 없으면 집이 무너질수 있다는 뿌듯한 푸념을 잊지 않고 늘여놓고.     이 《팔삭둥이》 딸과는 달리 어머니는 창고도 잘 짓고 김치굴도 잘 파고 전기휴즈도 잘 잇는 다면수였다. 여덟식구의 생계도 어머니의 품팔이에 의거했으니 어머니가 얼마나 강한분이였던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 념원대로 당신 월급으로 당신 책을 사고 당신 학문만 연구하면 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에야 어머니가 처음으로 아버지 월급봉투를 받아보았다고 하면 과연 믿을 사람이 있을가.     어머니는 그야말로 절세의 현모량처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이런 현모량처의식이 모름지기 당신만의 존재를 구축해나간것이라고 한다면 어머니에 대한 너무나도 불효한 정의가 될가.     아무튼 아버지의 만화일기책에는 이 불효한 정의를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어 가슴이 저리다. 병석에 누운 아버지가 지붕꼭대기에서 비새는 틈새를 메우느라 헤매시는 어머니를 쓸쓸하게 바라보며 한탄하는 말씀이 있다.     《저러길래 과부될 팔자지.》     력사뿐만아니라 철학도 연구하신 아버지께서 은연중 음양조화의 신비를 깨는 동양철학에 물든것이 아니였을가.     누군가 녀자는 약자라고 하였다. 약자인 녀자때문에 인간은 반드시 강한 남자를 세대주로 모시고 부부인연으로 살아가야 하는것인지도 모른다. 하다면 남자는 사회란 짐도 짊어져야 하지만 가정이란 짐도 그 못지 않게 짊어져야 하지 않을가. 가정이란 짐이 홀가분할 때 사회에서는 당당한 남자일지 몰라도 가정에서는 이미 남자가 아닌, 적어도 가정에서의 존재가치가 없어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완벽함과 지나친 헌신은 아버지로 하여금 어머니를 약한 녀자로서가 아니라 가정의 구세주로 착각하게 만든것 같다. 당신이 집에 없어도 어머니가 넉넉히 지탱해낼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믿음과 의뢰가 아버지로 하여금 완전히 사회라는 한쪽 어깨에만 집착할수 있었던것 같다. 하여 당신의 일체를, 지어 생명까지 걸었던 학문연구에서 뜻하지 않던 정치적타격을 받게 되자 금시 평형을 잃고 쓰러질수밖에 없었을것이다. 그날, 학술회의에서 낯이 흙빛이 되여 돌아온 아버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륙정산발해고분을 발굴하여 돈화가 발해시기의 중경현덕부라는것을 처음으로 론증하신 아버지, 피땀으로 수집하고 연구해낸 재료와 론문들을 마무리지 못하신채, 그날 이후로 얼마 더 지탱해내지 못하고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고 말았던것이다.     가정의 중임을 떠메야할 자각, 아니, 가정의 부담과 근심은 어쩌면 가정에서의 남편이란 존재를 굳혀가는 삶의 끈이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좀 더 부족하였다면, 하다못해 다른집 아낙네들처럼 달마다 남편의 월급을 채근하며 앙탈부리는척이라도 하였더라면, 그래서 아버지에게 당신의 부재로 말미암아 가정이 무너질수 있다는 위기감을 절실히 심어주었더라면 아버지가 그토록 삶의 끈을 쉽게 포기할수 있었을가.     담쟁이덩굴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문뜩문뜩 떠올리며 어머니에 대한 죄송감을 금치 못하고있다.     담쟁이덩굴은 올리막길이 가파르면 가파를수록, 높으면 높을수록 덩굴 마디마다에서 새파란 덩굴손들이 새록새록 기를 쓰고 생겨나온다. 이어 점성이 강한 분비물이 바늘귀만한 덩굴손가락끝에서 흘러나와 점착제마냥 벽에 착 들어붙는다. 그 끈끈한 힘을 딛고 담쟁이덩굴들이 아득바득 벽을 톺아오른다. 그러나 일단 끝머리까지 오르게 되면 덩굴들이 시름을 푹 놓고 늘어지며 덩굴손들이 더는 생겨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미 나왔던 덩굴손들도 더는 분비물을 분비하려 하지 않는다. 올라가는 벽이 없으니 벽에 점착해야할 가치가 없어진것이다. 결국 꼭대기끝이라는 아늑한 쉼터가 덩굴손으로 하여금 삶의 끈, 즉 간절한 삶의 욕망을 놓쳐버리게 한것이다.     삶의 끈을 놓게 될 때 생물은 죽음의 본능에 사로잡혀 죽음에로 돌진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해의 적당한 부족함이 세대주인 남편으로 하여금 생의 호르몬을 약동시킬수 있는 촉매제가 되지 않을가. 남편에게 드높은 활기와 자신심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발동기가 되지 않을가, 가파른 벽과도 같이 가정 삶의 끈을 좀 더 오래 지탱시킬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되지 않을가.     인류가 지금껏 존속되여왔고 또한 만물의 령장으로 군림할수 있었던것도 녀자들의 적당한 부족함이 기초돌로 되지 않았을가. 기초돌이 든든해야 집이 무너지지 않는듯이 나라 기초돌들도 든든해야 나라가 무너지지 않지 않겠는가.     아무튼 나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부족해지는 련습을 하며 가파른 벽을 높이높이 쌓아가고있다. 나의 부족함에 남편에 대한 사랑과 정성, 행복이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남편에게 보람찬 삶의 부담을 듬뿍듬뿍 안겨줄 예산이다. 그래서 제비처럼 아기자기 삶의 둥지를 틀어가며 오래오래 살련다.     여보 당신, 이 록상기를 어떻게 켜람까?     에이 바보, 이러길래 내가 당신곁을 한시도 못떠나지, 통 시름을 못놓는다까.              
2    오설추 프로필 댓글:  조회:1137  추천:31  2009-02-17
오설추 략력:  출생: 1953년 10월10일현재: 연변대학의학원류학생부(내 부퇴직)    2002년 수필 \"환원된 생명의 메아리\"(해란강문학상)로 문학에 데뷔, 2003년 연변작가협회에 가입.이미 30여편의 수필과 시를 연변문학, 연변일보, 도라지, 장백산, 연변년성, 청년생활에 발표. 연변녀성 백일장 은상, 가작상등 10여상을 수상.
1    [수필]식탁의 풍경 댓글:  조회:1531  추천:13  2009-02-17
  밥과 찬을 진렬해놓은 기다란 식탁을 사이두고 북쪽켠에는 주방아줌마들이 힁대로 줄느런히 서있고 남쪽켠에는 점심식사를 하러 온 한국류학생들이 줄느런히 서있다. 량쪽을 관리하느라 식탁의 서쪽켠에 서있어야 하는 나의 관리각도는 연변과 한국의 문화를 한눈에 스케치할수 있는 ‘3.8선’과 같아서 재미난다.     남쪽켠의 한국학생들은 주방아줌마들을 향해 ‘잘 먹겠습니다’는 90도 인사를 꼬박꼬박 하는데 북쪽켠의 연변아줌마들은 장승처럼 목이 뻗뻗해서 밥과 찬만 퍼주고있다. 남켠은 ‘잘 먹고갑니다’는 인사를 꼬박꼬박하고 가는데 북켠은 그냥 ‘3.8’선의 초병처럼 꼳꼳해서 눈 한번 깜짝 안한다, 90도 0도가 따로 있을가nbsp; ‘황후의 밥’과 ‘걸인의 찬’이 따로 있을가.     하긴 남한테서 받아야만 고마워 할줄 아는 우리 나름대로의 인사상식으로서는 제돈 내고도 고맙다는 그들의 인사문화가 먹혀들리 없었다. 중국학생들은 둘째치고 나를 비롯한 관리부서인원들도 언제 한번 주방아줌마들과 곱다랗게 인사한적이 없었다. 이런 불친절에 아주 면역이 돼버린 그들로서는 준것없이 친절한 한국애들의 인사가 적게 주고 많이 먹으려는 알량한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니 뻗뻗한 목질이상밖에  더 화답해줄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때 류학생사감이였던 나는 늘 남북이 통일되려면 우선 우리 류학생식탁부터 통일돼야하지 않는가하는 웃으개를 피우군 했다. 또한 남쪽켠이 하냥 90도의 풍경을 고집하는한 북켠의 ‘3.8’자태도 원만한 곡선이 이뤄질것이며 풍성한 ‘황후의 밥과 황제의 찬’으로 통일될 날이 멀지 않을것이라는 ‘예언’을 내린적도 있었다.     내가 감히 이런 ‘예언’을 내릴수 있었던것은 해방전부터 겪어온 우리가정의 력사를 통하여 우리민족의 인사성이 가지고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보아냈기때문이다.     위만주국시기에 만선일보사의 편집으로 있었던 우리 아버지 오봉협은 산동쿠리라고 한족들도 꺼리는 문지기로인을 언제나 어른으로 깍듯히 대접하며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꼭꼭 인사를 드렸단다. 그때 서너살이였던 큰오빠와 큰언니는  맨머리바람으로 밖에 나왔다가도 그 로인만 보면 도루 집에 들어가 모자를 쓰고 나오더란다. 인사할 때는 꼭 모자를 벗으며 해야하는줄로 알았던 모양이였다.      일본이 투항하자 사회망나니들이 삽과 쇠스랑이를 들고일어나 조선인만 보면 찍어죽이기 시작했다. 가족숙사 1층까지 쳐들어온 폭도들이 사람을 때려죽이는 소리가 들리자 급해난 아버지가 불시에 못을 거꾸로 박은 널을 뒤창아래에 드리워놓더니 어머니더러 그 못을 타고 3층 아래로 도망치라더란다. 하지만 당장 해산을 앞둔 임신부가 아무리 급한들 어찌 살이 찢기도록 못을 타고 아래로 내려갈수 있단말인가? 어머니는 죽어도 그 못에 앉지 못하겠다고 악을 쓰고, 아버지는 어머니만이라도 살리겠다고 올라서라 윽박지르고, 이에 놀란 애들(오빠, 언니)이 바스러지게 울어대고, 그러던말던 폭도들의 발자국소리는 흉악스레 다가 오고…    바로 이런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 문지기로인이 나섰다 한다. 그때 까딱 잘못 비호했다간 같은 한족이라도 덩달아 얻어맞아 죽을 위험이 있었는데도 견결히 문을 막아나서며 이집 고 소리치더란다. 그 천상의 복음같은 소리에 우리 네식구 아니, 배안의 둘째오빠까지 다섯 생명이 구원되였다 한다.          장춘에서 빠져나온후 우리집은 연길에와 자리잡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옆집에 사는 오즈네도 산동쿠리였다  그런데 그런 산동쿠리의 눈에도 우리 조선인들이 업시보였던 모양이였다. 부디 우리집 창문앞에 저네집 굴뚝을 세워놓아 절반해를 막아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올리막인 우리 마당에다 도랑까지 파놓는것이였다. 아래막인 옆집은 같은 한족이여서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리유에서였다. 오즈 엄마는 전족(缠足)인데다가 90`로 꺽어진 허리병신이여서 공동변소에 갈수가 없었다. 그래 일을 본다하면 대낮에도 그 도랑 첫머리에 앉아 빠다다다- 하고  내갈기기 일수였다. 일 다 보고나서는 구정물 한통을  와르르 쏟아놓는다. 그러면 온갖 오물들이 호호탕탕하게 우리마당에 흘러들군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한족동네에서도 외면하는 산동쿠리를 늘 따거, 니 호우(형님, 안녕하세요?)하며 살갑게 대해주는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저랗게 쿠리와 곱싹곱싹하길래 한족들이 조선인을 더 치뿌(欺负)한다고 말하는것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문화대혁명초기에 모주석의 조카인 모원신이 연변에 와서 연변의 주장인 주덕해를 타도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이에 격분된 군중들이 모원신이 타고있는 할빈공대선전차를 위궁(围攻)하고있었다. 그런데 해방전부터 독실한 천주교신자여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입당마저 마다했던 어머니가 불시에 그 차를 보호하겠다고 나설줄이야, 리유는 간단했다. 모주석의 조카를 위궁하는것은 모주석을 위궁하는것과 같다는것이였다. 그래 밤새껏  팔을 곁고 모원신이 타고있는 차를 막느라고 공격해오는 사람들한테 신발을 벗기우고 머리까지 한웅큼 뽑히웠다. 불시에 탈곡장처럼 훤해진 앞머리때문에 독보조로인들처럼 수건을 쓰고 출근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질투나서 어머니의 머리카락과 신을 몰수 했을것이라고 놀렸더니 예수님을 그렇게 말하면 벌을 받는다는것이였다.      아이러니한것은 예수님까지 배반하시며 모원신을 보호해나섰던 어머니가 바로 그 당사자들에 의해 판국폭란이라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목숨을 잃을번했다는 사실이다. 그자들을 반대하는 시위에 기발 들고 대렬앞에 나선 오빠를 막아나섰다가 총알이 빗나가는바람에 목숨을 건졌던것이다. 대신 뒤에 섰던 한족여자애가  맞았는데 사람이 정말 총을 맞고쓸어지자 와- 하고 모두들 달아나기시작했다. 어머니만은 피를 흘리고 있는 그애를  차마 두고갈수 없어 그애를 안고 쫓아오는 폭도들을 향해 ‘타디 한주,(他是汉族)…’하고 소리쳤단다. 너네와 같은 한족이니까 살려주라는 뜻이였다. 그러니까 총칼을 겨누던 그놈들도 흠칫하며 비켜가더란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애가 후에는 결국 미쳐버리고말았다. 늘 쫄딱 벗고 모주석만세를 부르며 길가에서 달아다녔는데 어머니만은 용케도 알아보고 엄지손가락을 내미는것이였다. 그때마다 차라리 그때 죽게 내버려 둘걸, 하며 락루하시던 어머니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소위 ‘판국폭란’이 이렇게 처참하게 진압된후 반대편의 집들이 거진 대수색을 당했는데 한사람이 우리집 문앞을 지나가다가 당장에서 맞아죽는것을 나는 직접 보았었다. 바로 이런 피바람이 부는판에 역시 오즈네가 우리집을 막아나섰다. 오즈엄마마저 구십도로 꺽어진 허리중력을 마다하고 온종일 우리집 문앞에 지키고 앉아 그 산동특유의 아다못기로 폭도들이 우리 집문앞에 얼씬도 못하게하는것이였다. 그통에 수색의 중점대상인 우리동네의 ‘코신부대’맹장들마저 우리집에 숨어들수 있었다. (코신부대란 조선아줌마들로 조직된 홍군조직으로서 옛날 행주대첩때처럼 치마폭에다 돌을 싸들고  패싸움에 뛰여들어 유명했었다.)     우리 민족의 인사성은 이렇듯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있었다.     사람들마다 인간평등을 부르짖지만 인간 본유의 능력과 처한 환경이 서로 다르기에 평등해질수 없는것이 또한 사람이다. 허나 우리에게는 우리아버지가 그랬던것처럼 또한 우리 류학생들이 그랬던것처럼, 산동쿠리와 기자선생님에게도, 대학생과 주방아줌마들에게도, 가난뱅이와 빌게츠에게도, 백치와 아인슈타인에게도 똑같이 90` 경례를 할수 있는 인사성이라는것이 있다. 그것이 곧바로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창조력이고 평등을 창조해가는 생명력이며 또한 천한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평등해질수 있는 뭉침의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였던지 우리 식탁의 풍경이 변해가고있었다. ‘혁명적’ 바이러스도 감염되는지 가라지처럼 뻗뻗해가는 남쪽켠의 목들이 방불히 ‘3.8선의 초병’을 닮아가고있다. ‘잘 먹겠습니다’하던 인사소리도 모기소리처럼 약해지고 약재처럼 귀해가고 있다. 더욱 우리를 탄복케 하는것은 일부 류학생들의 목에는 각도를 조절할수 있는 레모콘이 있어 식탁에서 고집하던 0`들이 장소에 따라서는 5도90도의 채널로 착착 굽혀진다는사실이다. 시험점수를 관할하는 선생님에게는 무조건90`, 나같은 사감에게는  5`, 청소하는 아줌마들이나 문지기 로인들에게는 아예 5`도 굽히기 싫어 마구 ‘8.3초병’이 돼버리고마는것이다. 이래서 우리 식탁의 ‘남북통일’이 싹 글러졌다는 웃으개소리가 탄식처럼 흘러나오게 되는 모양이다. 물론 한국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90년대에 비해서 그 비례가 놀라웁게 커졌다는 얘기이다. 오히혀 북켠의 목들이 상대방의 문화에 물들었는지 점차 원만한 곡선으로 변해가며 ‘고마워요’하는 인사도 제법 할줄 안다.     남북의 통일을 실현시킬수 있는것은 이런 ‘레모콘’적인  인사문화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인사문화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단순히 남북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인간평등으로서의 회복이고 생명가치로서의 부활이기때문이다.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