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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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2020년 05월 18일 21시 08분  조회:681  추천:0  작성자: 오설추
     봄이 오면 나는 정원의 연분홍화신에 취해 떠날념을 못한다. 봉오리가 상긋상긋 눈짓하는 살구나무의 봄은 님을 그리는 산골처녀의 애틋함이요, 님을 엿보는 처녀의 톡톡 튀는 심장이요, 옷고름 물고 돌아서는 처녀의 입술이였다. 이래서 아버지가 살구꽃 봉오리를 택하신것일가.
     살구꽃이 만발한 그네터에서 구름같이 오르내리는 어머니모습에 넔을 잃었다는 아버지, 그날로 목단화 세송이를 외면하고 살구꽃 봉오리를 택했다는 아버지, 이것은 아버지 그림일기책에 생생히 그려져있는 사랑로맨스이다.
    연변대학 초창기부터 교직에 몸 담았던 아버지는 상당한 선비집안 출신으로서 위만주시절 만선일보사의 편집으로 있었다. 인물 잘나고 박식하여 당시 상류계층의 인테리녀성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목단화 세송이는 바로 그런 녀성들을 가리킨것이고 살구꽃 봉오리는 우리 어머니를 상징한것이다.
      아버지에게 시집와서도 신이 아까와 컬핏하면 촌의 습관대로 신을 머리에 얹고 시내복판을 뛰여다녔다는 어머니, 그래도 나무리지 않고 허허 웃으며 오히려 예쁘게 봐주었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왜 꽃중의 왕이라 할수 있는 목단을 따려하지 않고 수수하기 그지없는 살구꽃에 반했을가.
     살구꽃은 목단같은 고귀함도 화려함도 없다. 허나 산골짜기 부식토와 같은 순박함과 조선치마저고리 같은 다소곳한 운치와 예쁨이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살구꽃에 반했을가.   
    살구꽃은 목단의 우아함과 세련됨이 없다. 허나 금방 따온 풋옥수수 같은 풋풋함과 오이 같은 청신함이 있다.그래서 아버지가 살구꽃을 욕심냈을가.    
   살구꽃은 목단 같은 활달함과 섹시함이 없다. 허나 퐁퐁 솟구치는 샘물 같은 투명함과 천진함이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살구꽃을 택했을가 .   
    향기가 없는 목단과는 달리 살기꽃에는 아기젖내마냥 솔솔 탐스러움이 풍겨서 마음이 더 닿았을가, 아니면 살구꽃운치를 안받침하고 있는 살구나무 둥치에 마음이 더 닿았을가. 
     백양나무나 버드나무의 미츨한 둥치와는 달리 밑둥부터 푸짐하게 줄기를 펼쳐나간 살구나무 둥치는 아무 때나 기댈수 있고 앉아 쉴수 있는 천연적인 보금자리이다. 그래서 우리학교 학생들이 즐겨 찾는 휴식터로 되여있다. 그 모양은 묘하게도 아버지가 하루에 3시간만 주무시겠다는 굳은 결심의 표징으로 일기책에 그려놓은 3자형 걸상과도 같은 형태였다.
    그랬다. 아버지는 걸상에서 매일 3시간 쪽잠만 쉬시고는 일체를 학문연구에 돌렸다. 하여 짧디짧은 5년사이에 언어학, 력사, 고고학, 철학등 령역의 론문과 대학교재들을 편찬했으며 연변에서 처음으로 돈화발해국 정혜공주묘 발굴과 연구정리사업을 벌이셨다. 아버지의 이런 초인간적인 학문탐구에는 반드시 쉬시면서 보다 큰 충발력을 충전하기 위한 살구나무둥치와 같은 보금터가 수요되였을것이다. 어머니는 바로 이 보금터와 같은 살구나무둥치의 역할을 달갑게 여기시고 당신의 일체를 희생한 분이였다.
     어머니는 모델 못지 않게 인물체격이 훤칠하고 아버지한테서 천자문까지 숙달하게 떼어 4, 50연대로서는 그야말로 문무가 겸비한 인테리주부로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 월급이 상당한 수준이여서 어머니는 얼마든지 교수부인 행세를 하며 품위있게 살수 있었다. 히지만 어머니는 촌아낙네처럼 집에서 새끼를 꼬고 시장에나가 품팔이도 하며 어렵게 살림을 연명해나갔다. 아버지봉급으로는 몽땅 학문연구에 필요한 서적들을 사야했기때문이였다. 그렇게 사들인 책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5, 60년대에 외지 사람이 길 가던 사람 아무하고나 “연길에 책이 제일 많은 집이 어디요?” 하면 곧곧히 우리 집을 가이켜 주군 하였다. 그 많은 책들은 후에 아버지유언에 따라 연변대학도서관에 기증하였다.
     비바람에 지붕이 날려가고 연통까지 무너져도 어머니는 학문연구에 지장이 간다고 아버지를 책상에서 까딱 일어못나게 하고 당신이 직접 지붕에 올라가 손질하셨다. 동네분들도 우리집은 원래 그런 법이려니 하고 동원되여 집수리를 해주군 했는데 글쓰는 아버지에게 방해가 된다고 연장 하나라고 그렇게 조심스레 다루었다 한다. 이것 역시 아버지 일기책에 그려져있는 생생한 스토리이다.
     돈화발해정혜묘 발굴사업을 하실 때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시간을 절약해드리느라 당신이 손수 고물에서 난 녹을 하나하나 닦아냈고 고물들에 박힌 흙들을 솔로 털어냈으며 조각난 도자기들을 하나하나 원모양대로 맞추는 작업도 하셨다. 매 고물마다 주머니를 만들어 알뜰히 포장해 놓고 후에 성박물관에 바쳤다 한다.
    헌신적인 내조, 아버지는 이런 살구나무둥치의 속성을 엿보아냈던것 같다. 해방후, 많은 고급지식분자들이 조강지처를 헌신짝 내치듯 내쳤지만 아버지는 보석단지마냥 어머니를 놓을련정 안했다. 세상 뜨기 전날까지 “사랑하는 명희야”를 일기책에 써놓은것을 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어머니를 사랑했던지를 알수 있다.
    나무둥치에서 툭툭하고 맥박 같은것이 들려오며 억센기운이 뻗쳐온다. 인간의 혈액처럼 나무에도 수액이 있는걸가. 어머니의 가녀린 손가락 같은 살구나무뿌리들이 돌과 유리쪼각이 가득 엉켜진 땅속까지 비집고 들어가노라니 얼마만한 상처와 아픔을 겪었을가, 그래도 뿌리들은 쉬지 않고 수분을 빨아 나무의 수액을 만든다.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끈질긴 의지의 뿌리, 인내의 뿌리, 희망의 뿌리, 생명의 뿌리, 수수한 살구꽃봉오리에서 이런 뿌리정신까지 보아낸 아버지 혜안에 탄복된다.
    그 믿음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뿌리 같은 가녀린 손을 붙잡고 자식 여섯을 몽땅 대학까지 졸업시켜달라는 엄청난 유언까지 감히 내리셨을가. 서른다섯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세상뜨기 전해인 84세까지 꼬박 50년을 해마다 세번씩 아버지산소에 다녀오셨다. 가실 때마다 꼭꼭 살구나무 한가지를 아버지비석 앞에 정중이 모셔놓군 했다. 그것은 아버지유언을 꼭 실행하겠다는 뼈 같은 어머니의 결심이였다.
     아니, 그것은 살구나무뿌리가 수분을 빨아 나무의 수액을 만들듯이 남편을 만들고 자식을 만드는 인간생명의 뿌리를 상징하였을것이고 살구나무 한그루가 자연의 일부이듯 세상자연을 만들어가고 우주를 만들어가며 하나의 큰 생명체를 만드는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거룩한 상징이였을것이다.
    수수한 살구꽃봉오리에서 살구나무의 옹군 정신을 보아 낸 아버지혜안에 다시금 탄복하며 나는 금년에도 어머니를 대신하여 살구나무 한가지를 아버지비석앞에 정중히 모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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