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설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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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의 풍경
2020년 04월 25일 21시 00분  조회:740  추천:1  작성자: 오설추
    밥과 찬을 진렬해놓은 기다란 식탁을 사이두고 북쪽켠에는 주방아줌마들이 힁대로 줄느런히 서있고 남쪽켠에는 점심식사를 하러 온 한국류학생들이 줄느런히 서있다. 량쪽을 관리하느라 식탁의 서쪽켠에 서있어야 하는 나의 관리각도는 연변과 한국의 문화를 한눈에 스케치할수 있는 ‘3.8선’과 같아서 재미난다.
    남쪽켠의 한국학생들은 주방아줌마들을 향해 ‘잘 먹겠습니다’는 90도 인사를 꼬박꼬박 하는데 북쪽켠의 연변아줌마들은 장승처럼 목이 뻗뻗해서 밥과 찬만 퍼주고있다. 남켠은 ‘잘 먹고갑니다’는 인사를 꼬박꼬박하고 가는데 북켠은 그냥 ‘3.8’선의 초병처럼 꼳꼳해서 눈 한번 깜짝 안한다, 90도 0도가 따로 있을가, ‘황후의 밥’과 ‘걸인의 찬’이 따로 있을가.
    하긴 남한테서 받아야만 고마워 할줄 아는 우리 나름대로의 인사상식으로서는 제돈 내고 밥먹고도 고맙다는 그들의 인사문화가 먹혀들리 없었다. 중국학생들은 둘째치고 나를 비롯한 관리부서인원들도 언제 한번 주방아줌마들과 곱다랗게 인사한적이 있었던가. 이런 불친절에 아주 면역이 돼버린 그들로서는 준것없이 친절한 한국애들의 인사가 적게 주고 많이 먹으려는 자본주의 나라 애들의 알량한 속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니 뻗뻗한 목질이상밖에 더 화답해줄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때 류학생사감이였던 나는 늘 남북이 통일되려면 우선 우리 류학생식탁부터 통일돼야하지 않는가하는 웃으개를 피우군 했다. 또한 남쪽켠이 하냥 90도의 풍경을 고집하는한 북켠의 ‘3.8’자태도 원만한 곡선이 이뤄질것이며 풍성한 ‘황후의 밥과 황제의 찬’으로 통일될 날이 멀지 않을것이라는 ‘예언’을 내린적도 있었다.
   내가 감히 이런 ‘예언’을 내릴수 있었던것은 해방전부터 겪어온 우리가정의 력사를 통하여 우리민족의 인사성이 가지고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보아냈기때문이다 .
   위만주국시기에 장춘만선일보사의 편집으로 있었던 우리 아버지 오봉협은 산동쿠리라고 한족들도 꺼리는 문지기로인을 언제나 어른으로 깍듯히 대접하며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꼭꼭 인사를 드렸단다. 그때 서너살이였던 큰오빠와 큰언니는 맨머리바람으로 밖에 나왔다가도 그 로인만 보면 도루 집에 들어가 모자를 쓰고 나오더란다. 인사할 때는 꼭 모자를 벗으며 해야하는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일본이 투항하자 사회망나니들이 삽과 쇠스랑이를 들고일어나 조선인만 보면 찍어죽이기 시작했다. 가족숙사 1층까지 쳐들어온 폭도들이 사람을 때려죽이는 소리가 들리자 급해난 아버지가 불시에 못을 거꾸로 박은 널을 뒤창아래에 드리워놓더니 어머니더러 그 못을 타고 3층 아래로 도망치라더란다. 아버지는 넘 급한김에 널을 타고 3층에서 내려가자면 어머니가 널에서 허망 떨어질가보아 널에 못을 박았던 모양이였다. 하지만 당장 해산을 앞둔 임신부가 아무리 급한들 어찌 살이 찢기도록 못을 타고 아래로 내려갈수 있단말인가? 어머니는 죽어도 그 못에 앉지 못하겠다고 악을 쓰고, 아버지는 어머니만이라도 살리겠다고 올라서라 윽박지르고, 이에 놀란 애들(오빠, 언니)이 바스러지게 울어대고, 그러던말던 폭도들의 발자국소리는 흉악스레 다가 오고…
   바로 이런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 문지기로인이 나섰다 한다. 그때 까딱 잘못 비호했다간 같은 한족이라도 덩달아 얻어맞아 죽을 위험이 있었는데도 견결히 문을 막아나서며 이집 <꼬리빵즈 쪼쮸포오라(早就跑了)>고 소리치더란다. 그 천상의 복음같은 소리에 우리 네식구 아니, 배안의 둘째오빠까지 다섯 생명이 구원되였다 한다.
    장춘에서 빠져나온후 우리집은 연길에와 자리잡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옆집에 사는 오즈네도 석탄을 운반하는 산동쿠리였다 그런데 그런 산동쿠리의 눈에도 우리 조선인들이 업시보여 부디 우리집 창문앞에 저네집 굴뚝을 세워놓아 절반 해를 막아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올리막인 우리 마당에다 도랑까지 파놓는것이였다. 상식적으로 아래막인 서쪽켠 옆집에다 도랑을 파야했으나  같은 한족이여서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것이였다. 오즈 엄마는 전족(缠足)인데다가 90도로 꺽어진 허리병신이여서 공동변소에 갈수가 없었다. 그래 일을 본다하면 대낮에도 그 도랑 첫머리에 앉아 빠다다다- 하고 내갈기기 일수였다. 일 다 보고나서는 구정물 한통을 와르르 쏟아놓는다. 그러면 온갖 오물들이 호호탕탕하게 우리마당에 흘러들군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한족동네에서도 외면하는 산동쿠리를 늘 따거, 니 호우(형님, 안녕하세요?)하며 살갑게 대해주는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저랗게 쿠리와 곱싹곱싹하길래 한족들이 조선인을 더 치뿌(欺负)한다고 말하는것이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문화대혁명초기에 모주석의 조카인 모원신이 연변에 와서 연변의 주장인 주덕해를 타도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이에 격분된 군중들이 모원신이 타고있는 할빈공대선전차를 위궁(围攻)하고있었다. 그런데 해방전부터 독실한 천주교신자여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입당마저 마다했던 어머니가 불시에 그 차를 보호하겠다고 나설줄이야, 리유는 간단했다. 모주석의 조카를 위궁하는것은 모주석을 위궁하는것과 같다는것이였다. 그래 밤새껏 팔을 곁고 모원신이 타고있는 차를 막느라고 공격해오는 사람들한테 신발을 벗기우고 머리까지 한웅큼 뽑히웠다. 불시에 탈곡장처럼 훤해진 앞머리때문에 독보조로인들처럼 수건을 쓰고 출근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이 질투나서 어머니의 머리카락과 신을 몰수 했을것이라고 놀렸더니 예수님을 그렇게 말하면 벌을 받는다는것이였다.
  아이러니한것은 예수님까지 배반하시며 모원신을 보호해나섰던 어머니가 바로 그 당사자들에 의해 판국폭란이라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목숨을 잃을번했다는 사실이다. 그자들을 반대하는 시위에 기발 들고 대렬앞에 나선 오빠를 막아나섰다가 총알이 빗나가는바람에 목숨을 건졌던것이다. 대신 뒤에 섰던 한족여자애가 맞았는데 사람이 정작 총을 맞고쓸어지자 모두들 쓸어진 사람을 버리고 와- 하고 달아나기시작했다. 어머니만은 피를 흘리고 있는 그애를 차마 두고갈수 없어 그애를 안고 쫓아오는 폭도들을 향해 ‘타디 한주,(他是汉族)…’하고 소리쳤단다. 너네와 같은 한족이니까 살려주라는 뜻이였다. 그러니까 총칼을 겨누던 그놈들도 흠칫하며 비켜가더란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애가 후에는 결국 미쳐버리고말았다. 늘 쫄딱 벗고 모주석만세를 부르며 길가에서 달아다녔는데 어머니만은 용케도 알아보고 엄지손가락을 내미는것이였다. 그때마다 차라리 그때 죽게 내버려 둘걸, 하며 락루하시던 어머니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소위 ‘판국폭란’이 이렇게 처참하게 진압된후 반대편의 집들이 거진 대수색을 당했는데 한사람이 우리집 문앞을 지나가다가 당장에서 맞아죽는것을 나는 직접 보았었다. 바로 이런 피바람이 부는판에 역시 오즈네가 우리집을 막아나섰다. 오즈엄마마저 구십도로 꺽어진 허리중력을 마다하고 온종일 우리집 문앞에 지키고 앉아 그 산동특유의 아다못기로 폭도들이 우리 집문앞에 얼씬도 못하게하는것이였다. 그통에 수색의 중점대상인 우리동네의 ‘코신부대’맹장들마저 우리집에 숨어들수 있었다. (코신부대란 조선아줌마들로 조직된 홍군조직으로서 옛날 행주대첩때처럼 치마폭에다 돌을 싸들고 패싸움에 뛰여들어 유명했었다.)
    우리 민족의 인사성은 이렇듯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있었다. 사람들마다 인간평등을 부르짖지만 인간 본유의 능력과 처한 환경이 서로 다르기에 평등해질수 없는것이 또한 사람이다. 허나 우리에게는 우리아버지가 그랬던것처럼 또한 우리 류학생들이 그랬던것처럼, 산동쿠리와 기자선생님에게도, 대학생과 주방아줌마들에게도, 가난뱅이와 빌게츠에게도, 백치와 아인슈타인에게도 똑같이 90` 경례를 할수 있는 인사성이라는것이 있다. 그것이 곧바로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창조력이고 평등을 창조해가는 생명력이며 또한 천한 사람들이 인격적으로 평등해질수 있는 뭉침의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였던지 우리 식탁의 풍경이 변해가고있었다. ‘혁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되였는지 가라지처럼 뻗뻗해가는 남쪽켠의 목들이 방불히 ‘3.8선의 초병’을 닮아가고있다. ‘잘 먹겠습니다’하던 인사소리도 모기소리처럼 약해지고 약재처럼 귀해가고 있다. 더욱 우리를 탄복케 하는것은 일부 류학생들의 목에는 각도를 조절할수 있는 레모콘이 있어  장소에 따라서는 5도 90도의 채널로 착착 굽혀진다는사실이다. 시험점수를 관할하는 선생님에게는 무조건90도경례, 나같은 사감에게는 5도 경례, 청소하는 아줌마들이나 문지기 로인들에게는 아예 5도 굽히기 싫어 마구 ‘3.8초병’이 돼버리고마는것이다.
   이래서 우리 식탁의 ‘남북통일’이 싹 글러졌다는 웃으개소리가 탄식처럼 흘러나오게 되는 모양이다. 물론 한국학생들이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90년대에 비해서 그 비례가 놀라웁게 커졌다는 얘기이다. 오히혀 북켠의 목들이 상대방의 문화에 물들었는지 점차 원만한 곡선으로 변해가며 ‘고마워요’하는 인사도 제법 할줄 안다.
    남북의 통일을 실현시킬수 있는것은 이런 ‘레모콘’적인 인사문화가 아니라 절대적인 인사문화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단순히 남북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인간평등으로서의 회복이고 생명가치로서의 부활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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