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 소년의 꿈
허두남
남평진에 이르러 뻐스에서 내리니 여덟시도 안되였다.
(k촌까지 8리길이라고 했지?)
나는 잠간 망서리다가 k촌 가는 길에 올랐다. 30분쯤 기다리면 그리로 가
는 뻐스가 있다지만 기다리고싶지 않았다. 기다리기 싫어서가 아니였다. 취재길에
나설때마다 나는 가까운 거리는 자신의 “11호” 차로 다니기 좋아한다. 길을 걸으
면서 사색하는것을 취미로 여기기때문이다.
8리길이면 슬렁슬렁 걸어도 한시간안에 닿을수 있을것이다. 나는 오늘 만날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취재가방을 추슬러메였다.
길 오른켠은 신록이 무르녹는 산들이 쭉 이어졌다. 가담가담 바위너설들이 들쑥날쑥한 산은 웅장하고도 위엄스러워보였다. 쭉쭉 잘 빠진 소나무들이 창창한 가지를 펼쳐들고 위용을 자랑하는가하면 살구나무, 가둑나무며 이제 한창 홍자
색의 꽃이 흐드러진 싸리나무들이 시골여름의 정취를 자아내고있었다.
길 왼켠은 키넘는 물버들이 꽉 들어섰는데 버들숲 저편은 두만강이다.
버드나무가 하도 빼빽이 들어선탓에 출렁출렁 흘러가는 강물소리는 시원스레 가슴에 와닿는데 물결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가지가 조금 성긴 곳에서만 아침해
빛을 담아싣고 번들거리는 강물이 얼핏얼핏 시야에 들어올뿐이였다.
“잔고기는 빨리빨리 버려라!”
문득 길 아래에서 웬 아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엉?)
나는 삼 서듯 들어선 버드나무숲을 꿰질러 소리나는쪽으로 나갔다. 버드나
무가 길 바로 옆에만 그렇게 빽빽이 섰을뿐 조금 나가니 나무는 없고 풀들이 길
차게 들어섰다. 풀밭밑으로 두만강이 흘러가고있었다.
시내물만큼한 곁갈래가 갈라졌는데 몇몇 사람들이 그 곁갈래를 막고 고기잡
이를 하는중이였다. 금방 물을 막은 모양 우켠으로부터 한창 물이 찌고있었다.
나는 갈길을 잠시 접고 구경하기로 맘먹었다. 오늘의 취재도 고기잡이와 얽
힌 내용이기에 더욱 고기잡이구경에 흥심이 생겼는지 모른다.
풀밭을 지나 강가로 내려섰다.
곁갈래의 기슭에 들어선 억새풀은 허리까지 젖어있었고 물속에 잠겼던 부분
과 잠기지 않았던 부분의 경계에는 검불과 나무잎이 엉켜붙어있었다. 물을 막기
전의 수심을 금방 알수있었다.
물이 거의 찌니 물속에 잠겼던 돌들이 거뭇한 잔등을 드러내고있다. 비릿한 감탕냄새가 코끝에 날아와 멀리 흘러가버린 그리운 동년시절의 사연들을 떠올려준다. 금방 개구쟁이 옛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에 푹 젖었다.
내가 내려선곳은 곁갈래의 아래끝이였다. 곁갈래의 물이 강 원줄기와 합치는
곳에서 십여메터 올라와서 채발을 놓은것이 보였다. 채발우켠은 고기가 채발안으
로 들어오게끔 자갈을 끌어모아 부채형으로 올리막아놓았다.
채발 량옆에는 열둬살 되는 아이 둘이 마주앉아서 채발에 내리는 고기를 주
어 옆에 놓인 커다란 양철바케츠에 담고있었다.
갑자기 물이 찌니 고기들로 말하면 지진해일을 만난것이나 다름 없다. 몸붙
일곳도 숨쉴곳도 순식간에 잃어버린 고기들은 난을 피해서 아래켠으로 륙속 몰려
내려오고있었다. 잠간새에도 채발에 떨어지는 고기가 엄청 많았다.
“너희들이 물을 막았니?”
나는 량손으로 부지런히 고기를 움켜서 바케츠에 담는 두 아이를 보고 물었
다.
“저 사람들이...”
얼굴이 감스레한 아이가 우켠을 곱지 않게 흘낏 바라보며 대답했다.
올려다보니 청년 셋이 제마끔 손에 비닐주머니를 쥐고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고기를 줏고있었다. 우켠은 물이 많이 찌였는지라 곳곳에서 몸에 감탕칠을 한 고
기들이 풀떡풀떡 뛰고있었다.
나는 채발에 고기 내리는것을 구경하려고 방금 나에게 말하던 아이의 맞은켠 얼굴 하얀 아이의 옆에 쪼크리고앉았다.
채발에 고기가 들어오는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쪼르륵 하면 잔등이 검스레한
모래무치가 와서 떨어지고 쪼르륵 하면 배가 새하얀 버들치가 들어와서 펄떡펄떡 뛴다. 떨어지는 고기를 속으로 세여보려 했지만 미처 셀수 없었다. 너무 빨리 떨
어졌기때문이다. 어떤때에는 대여섯마리가 한꺼번에 떨어지기도 했다.
두 아이는 작은 고기를 골라서 채발 아래켠 물에다 던지고 큰놈만 담았다.
하얀얼굴은 어떤때에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새끼손가락만큼한 고기를 쥐고 고기그릇에 담아야 할지 버려야 할지 망설이는듯 맞은켠 아이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까만얼굴이 버리라는 뜻으로 물 아래켠을 턱짓하면 두말없이 훌쩍 버리는것이였다.
어쩐지 맞은켠에 앉은 까만얼굴이 눈에 익은감이 났다. 해볕에 탄듯 감스레
한 얼굴, 좀 크고 잔등이 살짝 솟은 코, 우로 약간 쳐들린 입귀, 더구나 그 눈이 꼭 인상속에 박힌 익숙한 눈이였다. 초롱초롱 영채도는 까만 눈, 그 눈은 너비에 비해 길이가 다소 짧은감이 났는데 아주 만만찬은 느낌을 주었다.
(어디서 보았을가? 이 산골 아이를 내가 언제 보았단말인가?)
돌종개(종개)수염을 한 청년이 비닐주머니에 주어담은 고기를 가지고 와서 바케츠에 쏟아넣었다. 고기를 쏟아넣고나서 바케츠를 흔들어보며 말했다.
“작은 고기도 버리지 말고 몽땅 담아라!”
“알았소.”
하지만 까만얼굴은 그 청년이 돌아서자 여전히 잔고기들을 추려서 던지고 큰
것만 담았다.
“작은것들도 다 담으라했잖아?”
제 친구의 걱정 어린 물음에 픽 코웃음쳤다.
“쳇, 그런 소리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내보내면 돼!”
이 애들이 십상팔구 k촌 애들일것이라고 짐작한 나는 무언가 물으려다 그만
두었다. 행실을 보니 썩 탐탁치 못한감이 들었기때문이다.
버들치처럼 배가 불룩 나온 청년과 붕어처럼 머리가 큰 청년이 또 와서 고
기를 바케츠에 쏟아넣었다. 버들치배가 고기 담긴 바케츠를 들고 근시처럼 눈을
조프리며 들여다보더니 눈귀가 처진 거슴츠레한 눈으로 까만얼굴을 찍어보며 물
었다.
“작은 고기들은 다 버렸잖니?”
“아니요, 몽땅 담았는데요.”
까만얼굴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한마리라도 버려선 안된다. 알았니?”
“근심말라니깐요!”
버들치배와 붕어머리가 돌아서자 까만얼굴은 여전히 잔고기는 버리고 큰놈만
담았다. 괴상하고 고집스런 아이였다.
햐얀얼굴은 잔고기를 버리기도 그렇고 담자니 제 친구와 다른 곡조를 부른는
감이 나서 그러는지 그담부터는 구경만 하고 고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쫘르륵 소리와 함께 큰놈이 채발에 뚝 떨어졌다. 그놈은 채발에 떨어지는 맵시로 본때를 보이는지 펄떡펄떡 뛰면서 숫기운을 뽐낸다.
두 아이는 동시에 손을 내밀어 그놈을 붙잡았다. 네개의 손에 꼼짝못하게 꽉 잡힌 그놈은 몸을 뒤틀며 한참 용을 써보더니 허사인줄 알았는지 맥을 버렸다.
칙칙한 황갈색 바탕에 등 쪽은 암갈색이고 배 쪽은 담색인데 폭이 넓은 암갈색의 세로띠가 있고 옆구리에는 짙은 갈색의 비늘 모양이 흩어져 있었다 생김생김은 꼭 버
들치인데 버들치가 이리 클수가 있을가?
“이게 무슨 고기냐?”
“버들치라는 고기입니다.”
까만얼굴은 내가 두만강물고기에 대해 전 무식인줄 아는 모양이였다.
“아니, 버들치가 이리 크단 말이냐?”
내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린적 버들치를 많이 잡아보았지만 이리 큰놈은 처음이였다.
까만얼굴은 나를 흘낏 쳐다보았다. 내가 두만강물고기에 대해 좀 안다고 느낀상 싶었다.
“우리도 이렇게 큰 버들치는 처음 봅니다.”
까만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우켠에서 고기를 줏고있는 청년들을 힐끗힐끗 올려다보더니 방금 잡은 버들치를 강가 풀숲에다 힘껏 뿌려던졌다.
(아니…?)
내가 눈을 크게 뜨는데 까만얼굴은 입가에 손가락을 세워대고 눈을 끔쩍해보
였다. 말을 말라는 뜻이였다.
그 애는 제 친구에게 턱짓으로 방금 고기를 뿌린 곳을 가리키는것이였다. 하
얀얼굴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 근심스러운듯 그 애를 건너다보는것이였다. 까만얼
굴은 다시 우쪽을 턱질하고는 눈을 부라렸다. (빨리 안 가고 뭘해? ) 하는 뜻인
것 같았다.
(이 애들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하는거지? 작은 고기는 버리고 큰고기는 어
데다 빼돌리려나?)
하얀얼굴은 일어나서 풀숲으로 걸어갔다. 방금 고기가 떨어진 곳에 가서 땅
바닥을 내려다보며 한참 왔다갔다하더니 땅에 쪼크리고앉았다. 다시 일어나 풀
숲을 헤치며 저켠으로 슬금슬금 잰걸음을 친다. 풀숲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았으
나 고기를 들고가는게 틀림없었다.
얼마후 돌종개수염이 또 주머니에 주어담은 고기를 쏟아넣으러 왔다.
까만얼굴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난 인젠 가겠소.”
“왜?”
“집에 가서 할일이 있소.”
까만얼굴은 나를 돌아다보며 다시 한번 입에 손가락을 대고 눈을 끔쩍했다.
그 애는 제법 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까지 하고는 방금 제 친구가 사라진 켠으
로 풀숲을 걷어차며 뛰여갔다.
나는 돌종개수염에게 물었다.
“저 애들은 젊은이들이 데리고 온 애들이요?”
“데리고 온건 아니고 그냥 따라왔지요.”
(그러니 그놈들이 한 마을 사람들의 고기를 빼돌렸구나! )
우켠의 고기를 다 주었는지 세 청년은 채발과 가까운 아래켠에 와서 고기를
주었다. 나는 채발을 지키는 사람이 없는데 그냥 앉아있기도 멋적고 또 구경도
실컷 했는지라 일어나서 슬렁슬렁 우켠으로 올라갔다.
그사이 우켠은 웅덩이 진 몇곳만 내놓곤 물이 싹 찌여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줏지 않고 내버린 잔고기들이 꿈질거렸다.
물을 막은 바로 그 밑에까지 올라갔을때였다.
뜻밖의 광경에 나는 제자리에 못박힌듯 굳어졌다.
방금 물고기를 빼돌리던 까만얼굴이 물 막은것을 터뜨리고있었던것이다.
물을 막을때 아래켠에 큰돌들을 줄지어놓고 그 우켠에 긴 비닐천을 놓은 다
음 다시 비닐천우켠에 흙을 떠놓아 막는다. 그런데 그 애가 물을 막은데서 비닐
천을 빼내고있었다. 두발로 벋디디며 안간힘을 써서 빼내더니 이번에는 비닐천아
래켠에 놓은 큰돌을 굴려버리는것이였다.
저건 또 무슨 놀부심술인가?
엉겁결에 아래켠을 내려다보았다. 곁갈래가 굽이졌는지라 고기를 줏는 청년
들이보이지 않았다.
까만얼굴은 말랐던 바닥을 핥으며 콸콸 흘러내리는 물을 바라보면서 깨고소한 웃음을 짓더니 몸을 돌려 저켠으로 달려갔다.
그 뒤모습에 눈길을 박던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맞다! 그 애다!)
달려가다가 몸을 솟구치며 펄쩍 뛰는 모습이 너무나도 눈에 익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다.
저녁무렵, 쓰던 문장을 마저 마무리한 나는 머리도 쉴겸 저녁찬거리도 보자
고 장거리를 돌고있었다.
길거리에 앉아 남새를 파는 사람들은 거개 자기가 가꾼것을 내다팔기에 남새
도 신선하고 값도 믿을만하므로 그리로 다가갔다.
“두만강 물고기를 사세요! 맛좋고 신선한 두만강 물고기를 사세요!”
웬 애가 부르는 사구려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돌아보니 열둬살쯤 되여보이는 아이였다. 얼굴이 감스레하고 눈이 뙤록뙤록
그 애 앞에는 커다란 비닐바케츠가 놓여있었다.
다가가서 바케츠안을 들여다보았다. 모래무치와 종개가 두어사발가량 들어
있다. 금방 잡은 고기인듯 어떤놈은 아직까지 아가미를 넙적대고있었다.
내가 고기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아이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이건 물고기중에서 제일 맛좋은 두만강물고기얘요. 아저씨, 사지 않겠나
요?”
확실히 두만강물고기가 맞구나 생각하며 한마디 넌지시 물었다.
“물고기면 다 마찬가지지 뭐 두만강 물고기라고 더 맛좋겠냐?”
내 말에 아이는 억울하다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고기라고 다 같은게 아니예요. 강의 물고기가 호수의 물고기보다 더 맛있
는건 강이 물살이 세서 운동량이 많기때문이예요. 두만강은 강중에서도 물살이
세기에 두만강물고기는 고기질이 특별히 좋아요.”
듣고보니 그럴법했다.
우리도 어릴적부터 두만강물고기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말해
왔지만 그 도리를 밝히지 못했는데 그 애가 도리를 밝힌것이다.
나는 그 애를 다시 보았다.
“아저씨, 이 고기가 두근반인데 두근값만 받을테니 사주세요.”
“우리 집엔 이런걸 먹는 사람이 나뿐인데 그리 많이 사서는 어쩌라는거냐?”
내말은 사실이였다.
“전 k촌에서 왔어요. 이 고기를 다 팔고 저녁차로 돌아가야 해요.”
k촌이면 여기에서 백리도 넘는데…
“넌 왜 어린 나이에 장보러 다니느냐?”
그 애는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는 저와 엄마밖에 없는데 엄마는 몸이 안 좋아요…”
나는 속으로 퍽 총명하게 생긴 애가 정말 안됐구나 생각했다. 호주머니를 뒤
져서 두근반 값을 꺼내주고 고기를 받아들었다.
그 애는 너무도 고마와서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하고는 빈 바케츠를 내저으
며 깡충깡충 뛰여갔다. 한참 뛰여가다가 몸을 솟구치며 펄쩍 뛰는 모습을 바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그 애를 여기에서 만나다니!
집형편이 어려우니 물고기를 훔칠수도 있겠지만 물 막은건 왜 터친단말인가?
정말 알수 없는 애다. 가정환경이 만들어낸 콤풀렉스가 반상적인 행위로 이어진
걸가?
나는 그 자리에 오래 있다가 공연히 물이 터진 오해라도 살가봐 길에 올라섰
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데 아래켠에서 물이 터졌다고 물매미 울듯 아우성치는
것이였다.
한참 길을 조였더니 k촌이 눈앞에 나타났다.
뒤에 푸른 산을 수호신처럼 두고 앞에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을 바라보며 백
여호 되는 마을이 모여있었다.
학교는 마을 웃켠 두만강가에 자리잡고있었다. 학교 주위에는 백양나무가 가
지를 엉키고 빽빽이 들어섰는데 먼데서 보면 학교가 보이지 않고 그냥 백양나무
숲처럼 보였다. 간혹 무성한 나무잎새사이로 학교청사의 흰 벽이 들여다보였는데 그렇게 산뜻한 기분을 안겨줄수가 없었다. 작지만 아담하고 오붓한 산골학교이다.
방학이니 아이들이 십상팔구 집에 붙박혀있지 않을것이라고 짐작한 나는 오늘
의 주인공인 그 아이네 집을 찾아가지 않고 먼저 써클지도선생님을 찾기로 했다.
써클지도선생님은 어차피 만나봐야 할 사람이였다.
숙직실에 들리여 선생님의 집을 물어가지고 곧추 찾아갔다.
선생님은 애티를 금방 벗은 처녀선생님이였다. 시원스레 빗어올려 묶은 머리,
갸름한 얼굴, 새물새물 웃는 눈, 키는 크지 않으나 균형잡힌 날씬한 몸매, 어데를
보나 생기로 차넘쳤다. 첫눈에 이분은 원래 교원으로 태여난 분이구나,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며 따르겠구나 하는 인상을 주었다.
찾아온 연유를 말하자 반색을 했다. 선생님은 아주 신이 나서 이렇게 말하였
다.
“저의 학생이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수호는 정말 남다른 애랍니다…”
수호는 별명이 “물고기박사”라고 한다. “두만강물고기관찰써클”을 책임지고있
는데 지금까지 써클소조에서는 물고기표본 스물 다섯종을 만들었단다.
나는 놀랐다. 나도 어린 시절을 두만강가에서 보냈고 고기잡이를 좋아했기에 두만강 물고기 종류에 대해선 잘 안다.
“두만강상류에 고기종류가 그렇게 많아요? 제가 알기로는 열대여서가지였는
데요.”
“수호네는 두만강에 살다가 멸종된 고기의 표본도 만들었답니다. 참, 전에 없
던 고기종류를 발견한것도 있어요.”
전에 없던 고기종류? 진짜 귀맛 당기는 소리였다.
“선생님은 그 스믈 다섯종의 고기 이름을 물론 다 알겠지요?”
“저도 탐관처럼 배가 큰 놈이 버들치이고 간신처럼 매끄러운 놈이 종개라는
정도는 알아요.”
“녜? 하하하…”
선생님의 재치 있는 유모아에 나는 통쾌하게 웃었다.
“써클소조에 성원이 몇입니까?”
“수호가 조장이고 그 외 남자아이 둘 더 있습니다.”
“정말 좋은 써클활동입니다. 듣자니 이번에 전국 최우수써클로 평선됐다지
요?”
“녜. 하지만 학교가 작고 경비가 딸려 어려운점이 많아요. 아이들이 자체로 경
비를 만들어 활동에 보태고있어요.”
소학교 아이들이 자체로 써클경비를 마련한다고? 이것 역시 좋은 기사감인
데!
“아이들이 경비를요? 어떻게요?”
“물고기관찰써클이니 물론 물고기를 잡아서 팔지요.”
써클소조의 애들은 주로 통발과 주낙으로 고기를 잡는단다. 모래무치 같은 작은 고기는 통발로 잡고 야리같은 큰놈은 주낙으로 잡는단다. 잡은 물고기를 시가지에 가져다 팔아서 책도 사고 물고기표본을 만들 재료들을 갖추었단다.
물 막는 곳에서 본 아이도 시가지 장거리에 가서 고기를 팔던 일이 떠올라
얼른 물었다.
“수호는 집에 누구랑 있어요? 부모님이 다 계신가요?”
“녜! 아버지와 어머니도 계시고 할아버지도 계셔요. 실은 할아버지가 그 애의 진짜 선생이랍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참, 표본실에 나가보시지 않겠나요?”
“표본실이요?”
“수호가 거기 나와 있을거예요.”
“방학에도 나오는가요?”
“방학에도 써클소조의 성원들은 자주 나와요. 수호는 거의 날마다 나오지요.”
써클소조의 활동을 눈으로 보고싶던차라 선생님을 따라 일어섰다.
표본실은 문이 열려있었다.
“수호네가 나와있는 모양이예요.”
표본실에 들어서자 눈에 확 안겨오는것은 벽에 줄느런히 걸어놓은 숱한 물고
기 사진이였다. 얼핏 보아도 내가 아는 두만강 물고기들이 다 있는것 같았다.
집안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수호학생!”
선생님이 높은 소리로 불렀다.
표본실 한구석에 널판자로 위생상자처럼 커다랗게 만들어놓은 그 안에서 챙
챙한 대답이 튀여나왔다.
“녜! 여기 있어요!”
“소년보사에서 기자선생님이 찾아오셨어요.”
또 챙챙한 대답소리.
“지금 사진을 씻는중이예요. 곧 나갑니다”
이어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렸다. 써클소조 성원들이 다 같이 사진을 씻고있
는듯했다.
수호가 사진을 다 씻고 나올때까지 벽에 걸린 물고기사진을 감상하기로 했
다.
출입문 정면에는 몽땅 커다란 물고기사진을 두줄로 걸어놓았다. 길이 60센치
메터, 너비 40센치메터가량 되여보이는 사진들이였다.
사진에는 화면에 가득 차게 물고기가 한마리 있고 또 작게 같은 물고기가 한
마리 있었다. 사진밑에는 간단하게 물고기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저 사진에 다 고기 두마리씩 있잖아요? 큰건 확대하여 찍은것이고 작은건
고기의 실지 크기로 찍은것입니다.”
그제서야 왜 같은 고기를 한 사진에 크게 작게 둘씩 올렸는지를 알수 있었
다.
그림밑에 다가서며 설명에 눈길을 박았다.
야리:
우레기 버금으로 큰 두만강 고기. “경량급고기”로 모래무치와 종개가 제일 많
다면 “중량급고기”로는 야리가 제일 많다. 주로 주낙으로 잡는다. 생선국을 끓이
면 달착지근하고 배배하고 기름이 동동 뜨는데 고기맛이 산천어보다도 더 좋다. 뼈가 악센것이 옥에 티라고나 할가?
모래무치:
두만강에 제일 많은 고기이다. 이름으로 미루어보면 물밑바닥이 모래인 곳에 살것 같은데 실지는 그렇지 않다. 모래바닥이건 자갈바닥이건 감탕바닥이건 어디
에나 있다. 두만강이 맑던때에도 제일 많았고 지금도 제일 많다. 그물, 통발, 낚시
에는 많이 잡히나 주낙에만은 잘 물리지 않는다. 입이 작은것과 같이 작은 미끼
만 먹는다는 증거다. 두만강의 물고기를 연구하려면 모래무지부터 연구해야 할것
이다.
이어 버들치. 종개, 종개…사진들을 하나하나 눈주어보다가 낯선 물고기의 사진밑에 멈춰섰다.
깜장어:
두만강에 없던 고기이다. 다른 고기종류가 줄어드는때에 새로 생겨난 반가운 고기. 아직까지 몇마리 발견되지 않았으나 점차 많아지고있는듯하다. 두만강의 물고기 종류를 연구하는데 가치가 큰 고기이다.
새로 생겨난 고기라 자세히 여겨보았다. 검은 바탕에 알릴락말락 부연 무늬
가 있었다. 모래무치처럼 작은 입이 아래로 향했고 뚝지처럼 머리가 컸다. 몸길이는 10센치메터가량 되였다. 이것이 다 큰 고기인지 아직 채 자리지 않은
것인지?
물고기사진들옆에는 물고기그림이 대여섯장 붙어있었다. 사진과 같은 크기
로 그린 그림였다.
“저 고기들은 왜서 사진찍지 않고 그림으로 그렸는지요?”
선생님은 기다리고있기라도 한듯이 대꾸했다.
“저 고기들은 예전에 두만강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거나 멸종위기에 있는 고기들이랍니다. 실물을 찾을수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그림으로 그렸지요.”
“실물이 없는걸 그림은 어떻게 그려요?”
“수호 할아버지와 이 마을에서 함께 자란 친구분중에 유명한 화가가 있어요.
수호가 하도 조르기에 할아버지가 그분에게 부탁해 그렸답니다.”
나는 가슴이 뜨거워났다. 수호의 남다른 끈기에도 감동되였지만 손자의 일
을 극성스레 받들어주는 할아버지의 정성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림으로 그린 고기중에 우레기가 보이기에 다가서서 훑어보았다.
우레기(세지):
두만강에서 제일 큰 고기. 깊은 물속에 산다. 지금까지 발견된것중에 열너근
짜리까지 있단다. 그런데 두만강이 흐려지면서 그 수가 자꾸 줄어들어 지금은 보
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발견된것이 8년전이란다. 그렇다면 이미 멸종된
것이나 아닐가?
우레기는 두만강물고기가운데서 각별히 큰 고기이다. 나도 어렸을때 주낙으
로 몇마리 잡았다. 크고도 고기맛이 좋고 또 생김생김도 아름다와 우레기를 잡은
애들은 장군이나 된듯 시뚝했었다. 그 고기가 멸종에 직면하다니…실로 가슴 아
픈 일이다.
“기자선생님, 이 물고기표본을 보시지요.”
선생님은 맞은켠에 진렬되여있는 물고기표본을 가리켰다.
사진과 그림에 있는 고기들을 모두 표본으로 만든것 같았다. 쭉 진렬되여있
는 표본가운데서 야리표본을 집어들었다. 길이가 한자남짓한 개야리였는데 비늘 하나 손상 없다.
물고기를 쭈그러들지 않게 말린다는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말렸기에 잔주름 하나 가지 않고 원모양
이 그대로 보존되였을가? 껍질을 벗기고 그안에 솜같은것들을 쑤셔넣어 만들었는
가 보면 그것도 아니다. 껍질을 벗겨서 만든 표본이라면 짼 자리가 있어야 할텐
데 이건 아무리 눈박아봐야 칼이 아니라 손톱에 긁힌 자리도 없다.
대체 어떻게 만들었을가? 신기하여 물어보려는데 암실문이 열리면서 두 아이
가 나왔다.
시험지종이만한 사진지를 흔들면서 시뚝해서 앞서 달려나오는 깜장얼굴, 뒤
이어 나타나는 계집애얼굴같이 하야말쑥한 얼굴.
아니?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아까 물고기를 빼돌리던 그 애들이 아닌가?
“인사해요. 소년보사 기자선생님예요”
“안녕하세요?”
두 아이는 꾸벅 허리를 굽히였다.
선생님은 앞서 나온 까만얼굴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이 학생이 수호학생이예요. ”
이어서 수집음을 타며 고개를 숙이는 하얀 얼굴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학생은 다문학생이예요. 아버지가 우리 학교의 영어선생인데 어릴적부터
아버지한테서 배워 영어책을 능히 본답니다.”
“우린 구면이구만!”
내 말에 시뚝하던 수호는 어데 가고 얼굴을 민망하게 찡그리며 뒤머리를 썩
썩 긁는다. 다문이는 나를 힐끔 훔쳐보고 선생님의 눈치만 본다.
선생님은 영문을 몰라 나와 두 아이를 번갈아본다. ”
“아까 이 고기를 훔칠때 기자선생님이 보았어요. ”
수호가 금방 찍은 물고기사진을 내들어보이며 말했다.
“고기를 훔치다니요?”
“마을 청년들이 물막이하는데 갔다가 이 버들치가 하도 크기에 표본을 만들려고…”
선생님은 어이없는듯 나를 돌아본다.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제자가 남의 고
기를 훔쳤다니 게면쩍은 모양이였다.
이제야 그 애들이 버들치를 빼돌린 까닭을 알게 되였다.
나는 수호의 손에서 버들치의 사진을 받아들고 들여다보며 물었다.
“저기 걸어놓은 버들치사진이 있는데 왜 또 사진을 찍었나요?”
“더 큰것이여서..”
“정성껏 찍은 사진을 버리고 새것을 만들어요?”
수호는 눈을 크게 뜨며 당연하다는듯 말했다.
“두만강에 더 큰 버들치가 있는데 바꾸지 않으면 안되죠.”
선생님이 수호에게 물었다.
“영팔이는 왜 보이지 않나요?”
써클소조의 다른 한 아이를 말하는모양이였다.
“인화지와 필림 사러 진소재지로 갔습니다.”
그러니 수호의 부대에는 다문이와 영팔이라는 두 전사가 있구나! 다문이는 어린 나이에 영어책도 볼줄 안다니 이름 그대로 다문박식한 애이고 영팔이는 어
떤 애일가? 영민하고 팔팔한 애일가?
“선생님한테서 써클소조에 대한 이야기를 대체로 들었어요. 수호학생은 정말 많은 일을 했더군요.”
“제가 뭘…”
“별명이 ‘물고기박사’라면서요?”
수호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수호학생은 왜서 물고기관찰에 골몰하나요? 어떤 꿈을 갖고 하는지요?”
수호는 눈을 깜박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두만강가에 살고있는 우리가 고향의 물고기를 보호해야지요! 그러자면 물고
기의 종류와 변화, 발전에 대해 잘 알아야 하죠.”
야무지고 당찬 대답에 가슴이 찡해났다. 나이는 어려도 벌써 두만강의 주인
행세를 하고있구나! 정말 장하다! 나는 총명하고 약삭바르고 당돌한 이 애가 무
척 마음에 들었다.
“정말 좋은 꿈을 가졌군요. 꼭 그 꿈을 꽃피우기 바래요.”
나는 손에 든 야리표본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며 말끈을 이었다.
“표본실에 들어와보고 눈이 확 뜨이더군요. 참, 이 고기는 어떻게 말렸기에 전혀 쭈그러들지 않았나요?”
수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호호 웃었다.
“기자선생님은 이 물고기가 진짜인줄 아세요? 나무를 깎아서 만든거예요”
“뭐요?”
너무나 뜻밖이였다. 다시 이리저리 자세히 뜯어보았다.
“알고봐도 가려내기 어려운데요. 이건 누구 솜씨죠?”
“나무는 저의 할아버지가 깎았고 나머지 뒤처리는 우리 써클소조에서 했어
요.”
“이 비늘이랑 진짜와 꼭 같군요.”
“그 비늘은 진짜예요.”
(?)
“나무로 깎은 모형우에 진짜 고기비늘을 말려서 한잎한잎 붙였답니다.”
요 작은 고기비늘을 한잎씩 붙이다니…”
줄곧 남의 말을 듣기만 하던 다문이가 한마디 끼였다..
“비늘을 풀로 붙이는 방법은 수호가 생각해냈어요.”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참, 컴퓨터안에 물고기관찰일기도 많아요. 보시겠나요? 수호학생, 가자선생
님께 컴퓨터를 열어드려요.”
수호는 익숙한 솜씨로 컴퓨터를 켰다. .”
몇번 클릭하자 “두만강물고기관찰일기”라고 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수호가 자리를 내여주는대로 켬퓨터앞에 앉았다.
일기가 얼마나 많은가 화면을 죽 끌어올려보니 끝없이 연줄연줄 올라왔다.
다시 화면을 끌어내리다가 멈추고 눈이 닿은곳부터 읽어보았다.
x년 x월 x일
두만강물고기중에서 제일 흐린 물을 싫어하는 놈은 버들치이다. 양어장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도랑물엔 언제 봐도 버들치새끼들이 까맣게 무리지어 헤염친다.
만약 두만강이 더 흐려지고 지금보다도 심하게 오염을 앓는다면 버들치가 먼저
멸종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x년 x월 x일
물고기표본을 만들때 지느러미를 만들기 제일 어렵다. 너무 얇아서 나무로는
깎아만들수 없고 진짜 지느러미를 말렸다가 붙이면 지느러미가 줄어들어서 탈이
다. 생각하던끝에 더 큰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말려서 붙였더니 아주 성공적이였
다. 참, 이 쉬운 도리를 왜 이제야 생각했을가?
x년 x월 x일
“돌개흉소”에 놓은 주낙 안돌이 또 감탕속에 묻히는바람에 할수없이 자맥질
해 들어가서 빼냈다. 이 달에만 벌써 다섯번째이다. 온 여름 여기에다 주낙을 놓
았지만 버들치 한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냥 주낙을 놓는데는 그럴만
한 리유가 있다. 이곳은 예전에 우레기가 많이 잡히던 곳이란다. 우리는 우레기가 정말 멸종되였는지 밝히려는것이다.
x년 x월 x일
오늘 보지 않고 두만강물고기와 송화강물고기를 가려내기시합을 했다. 같은 종류의 물고기라도 두만강의것과 송화강의것은 조금 다르다. 두만강물고기가 좀 약삭바르게 생겼다면 송화강물고기는 더 건장하게 생겼다고 할가? 우리는 두만강 물고기 열마리와 송화강물고기 열마리를 한데다 섞어놓은 다음 수건으로 눈을 가 리고 하나하나 가려냈다. 첫번에는 내가 다 맞히고 영팔이와 다문이는 한개씩 틀 렸는데 두번째와 세번째 겨룸에서눈 셋이 몽땅 다 맞히였다. 우리는 진짜 물고기 박사가 되려나봐!
일기를 재미있게 읽다가 점심때가 되여오기에 컴퓨터를 닫고 일어났다.
표본실을 나와 큰길에 들어서는데 수호가 따라선다.
“선생님, 또 걸어가시려나요?”
“시간도 많은데 걸어가지, 근데 수호는 어델 가려구?”
“저의 집은 맨 아래끝에 있어요. 집앞까지 같이 가려구요”
수호와 나는 강변길을 따라 마을 웃켠에서 아래켠으로 걸었다.
“수호는 정말 좋은 써클을 하고있어. 앞길이 창창하다니깐!”
“정말이세요 선생님? 제가 하는 일이 정말 전도가 있을가요?”
“있다뿐이겠나? 지금 생태평형문제가 전 인류앞에 놓인 숙제거든! 앞으로 할
일이 많고도 많을거야!”
수호는 문득 한숨을 호 내쉬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제가 써클을 하는걸 지지하는데 어머닌 견결히 반대
예요”
“건 왜?”
“공부에 영향이 있다는거죠”
수호는 길가에 놓인 돌멩이를 발로 툭 찼다.
‘물론 공부도 잘해야지. 그래 학기말시험에 몇등을 했나?:
“1등을 했어요.”
‘1등을…참 대단한데!’
“대단하긴 뭐가 대단해요? 학생이 여덟인데서 1등을 했는데…”
“수호는 학교에서 인기가 많을테지?”
“쳇, 지난달에도 선생님한테 꾸지람들었는걸요.”
“꾸지람은 왜?”
“한 아이를 때려줬거든요.”
수호는 나를 힐끗 쳐다보고나서 말했다.
“글쎄 그 자식이 우리 써클소조의 애들을 늘 물에서 쏘다닌다고 물개라고 놀
리잖겠나요? 그날 홍수에 통발이 세개나 물모래에 묻혀버려서 기분이 상한판인데
…그래서…”
“그래도 때려서야 쓰나?”
“인차 사과했어요.”
“응당 그래야지!”
“선생님께서 사과하라는데 그럼 어쩌나요?”
“뭐?”
“그후엔 때리지 않고 조용한데 끌고가서 겁을 줬어요. 그랬더니 다신 놀리지
못해요.”
“아니…”
나는 어이없어 허허 웃고말았다.
마을 우켠에서 자그마한 섬을 만들면서 폭이 갑절 넓어졌던 두만강은 마을아
래켠에 가서 다시 좁아지면서 물살이 세졌다. 강건너 조선켠은 깎아지른 절벽이
였는데 절벽밑은 오랜 세월 물살에 뜯기여서 몇메터나 허궁 들려있었다, 그곳은
물이 엄청 깊어보였다.
“저곳엔 우레기가 붙는다는데 조선켠이여서 주낙을 놓을수 없어요.”
절벽밑을 손가락질하며 말하던 수호는 픽 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돌종개수염패들이 저곳에 가서 물남포를 했다가 구류된적이 있어요.”
강에서 남포를 터치는것은 엄격히 금지되여있는데 남의 나라켠에 가서 남포
질했다니 한심한 일이다.
“돌종개수염이란 아까 그 여윈 사람이지?”
“어떻게 알죠?”
“그냥.”
나는 언녕부터 묻고싶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참, 그 사람들이 고기를 주을때 왜 물을 터쳤지?”
“물 막은걸 터치지 않으면 새끼고기들이 다 죽게 되죠. 제가 터쳐놓지 않으
면 그 형님들은 터치지 않고 그냥 갔을거예요. 늘 그래요.”
원래는 그런 일이였구나!
이야기하며 걷는 사이 마을아래켠의 제일 마지막 집앞을 지났다.
“아니, 수호네 집을 지났잖아?”
“기실 저의 집은 학교 바로 뒤에 있어요.”
학교뒤면 마을 우켠이 아닌가? 그럼…
“선생님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싶어서요.”
요런 깜찍한 녀석이라구야!
. “인젠 그만 들어가! 다음번에 또 오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구.”
“또 오시겠나요?”
“오구말구! 다음번에 오면 수호 할아버지도 만나봐야겠어!”
“그래요? 그럼 꼭 약속해요.”
“그래, 약속하지. 다음번엔 통발도 같이 들추고 주낙도 함께 건지자구.”
“정말인가요?”
나를 쳐다보는 수호의 눈은 흑진주처럼 빛났다.
“자, 인젠 그만 돌아가!”
나는 수호의 작은 손을 잡고 작별했다.
그 애는 내가 굽인돌이를 지나 사라질때까지 손을 젓고있었다.
(얼마나 기특한 애인가! 수호는 정말 큰 일을 하고 있구나! 너희들이 있어
이고장은 더 아름다와질것이다.)
올때와 달리 한낮에 접어드니 찌는듯 무덥다. 여름의 시골은 공기가 시원하
고 해볕은 더 따갑다는것이 실감난다. 무더위를 반기는 풀벌레들이 아침나절 푹
쉬고나서 열기띤 소리로 합창한다. 산비탈 록음속에도 물버들숲에도 온통 풀벌 레들이 뽑아내는 귀맛 당기는 노래소리이다. 이마에선 구슬땀이 흘러내려도 마음
은 구름 한점 없는 하늘처럼 상쾌하다. 나는 풀벌레의 합창에 화답이라도 하듯
흥얼흥얼 코노래를 넘기며 씨엉씨엉 걸음을 옮기였다.
한참 걸어가니 물막이를 하던곳에 이르렀다. 버들숲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곁
갈래에는 물이 꽉 차서 흐르고있었다. 수호가 물고기를 훔치던 일과 막은 물을
터쳐놓던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버들숲을 헤치고 물가에 내려서서 걸었다.
물가의 풀숲에 숨었던 잔고기들이 발자취에 놀라 물에 연한 파문을 그리면서 안쪽으로 쑥쑥 헤염쳐들어간다. 수호가 아니였더라면 언녕 말라죽었을 고기들이
다.
곁갈래에 꽉 차 흐르는 물과 해빛을 담아싣고 늠실대는 두만강 원줄기를 바
라보는 나의 머리속에는 이제 가서 쓸 톱기사의 제목 “두만강의 아들”이 서서히 자리잡았다.
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