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bhl
http://www.zoglo.net/blog/ybhl 블로그홈 | 로그인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칼럼/수필/기행/단상

전체 [ 5 ]

5    <웃음보따리>엔 삼로인과 소품, 재담 댓글:  조회:938  추천:2  2015-12-03
《웃음보따리》엔 삼로인과 소품, 재담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12-03 12:03:51 ] 클릭: [ ]   화룡시문화관 문학부 주임 김태현(연변작가협회 회원, 소설가)의 주필로 된 희곡집 《웃음보따리》가 연변출판사에 의해 일전에 출간되여 독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선물하고있다. 1950년대 최수봉, 원주삼, 허창석 등 연변구연계의 원로들에 의해 탄생된 “조선족삼로인”은 1960년대로부터 화룡시문공단의 전형적인 공연종목으로 자리잡았고 광범한 관중들의 애대를 받으면서 거족적인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지난 2008년에는 국가급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였다. 반세기를 지나면서 지금까지 창작된 “조선족삼로인”은 총 163편이지만 제때에 정리, 보존하지 못하여 많은 작품들은 소실될 위기에 처해있다. 희곡집 《웃음보따리》는 1970년대로부터 2000년대까지의 화룡시문공단(문화관)에서 창작한 작품들을 위주로 하였는데 제1부 “삼로인편”에 “경로원의 기쁨”(김흥빈 작), “병아리사건”(최중철 작) 등 29편을, 제2부 “소품, 연극편”에 “내거 삽소”(최중철 작), “쪽지로 인한 풍파”(허강일 작)등 29편을, 제3부 “재담, 만담편”에 “작곡가”(박은 작), “싸움 끝에 든 정”(김명식 작) 등 8편을 수록하였다. “알이 터졌다!”로 유명한 삼로인 “경로원의 기쁨”의 한 장면(좌로부터 량균, 김상옥, 허상권) 50만자 분량, 532쪽으로 된 《웃음보따리》의 가격은 58원이며 연변주내 서점들에서 판매되고있다.  
4    노래의 고향 마라톤대회 그리고 아쉬움 댓글:  조회:555  추천:1  2015-06-03
노래의 고향과 마라톤대회 그리고 아쉬움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6-02 12:51:56 ] 클릭: [ 24]  기원전 490년 아테네 동북쪽 마라톤 평야를 홀로 질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적은 병력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페르샤침략군을 격파한 밀티아데스장군의 승전보를 전하러 가는 용사 페이디피데스였다. 한숨도 쉬지 않고 40여킬로메터를 달린 페이디피데스는 《우리가 이겼노라!》고 웨치고 숨을 거두었다.  후날 그가 달린 거리는 마라톤의 선계가 되였으며 1896년 근대올림픽 제1회 아테네대회부터 마라톤은 륙상경기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였다. 현재 중국내에서만도 북경, 하문, 상해, 정주 등 대도시들에서 마라톤대회를 수십차 개최하고있으며 세계적으로는 크고작은 대회가 3000여차 펼쳐지고있다니 마라톤의 영향력을 가히 상상할수 있다. 마라톤은 우리 연변에도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있다. 2012년 9월 8일, 화룡시는 중국에서 현급도시로는 처음으로 국제하프마라톤경기를 개최하였다. 《붉은해 변강 비추네(红太阳照边疆)》와 《바람속의 영웅(风中的英雄)》 노래가 화룡시가지 곳곳에 울려퍼졌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구라파, 대양주와 아세아에서 온 피부가 서로 다른 수백명 프로선수들이 풍경이 수려한 화룡시경내를 달렸다. 하늘에는 중앙TV 5채널 제작팀의 헬기가 씽씽 날아다니고 마라톤경기는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고 세계 각지로 전송되였다. 세계는 중국 동북변강 오지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도시 화룡을 알게 되였고 화룡은 그렇게 세계속의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났다. 그번 경기는 9538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화룡의 《생태, 문명, 변경, 민속》 특성을 보여준 비교적 성공적인 마라톤경기였다. 때문에 《천지컵》 화룡국제하프마라톤경기는 2013년초에 열린 마라톤년회에서 은메달경기대회로 평의되여 진달래축제와 더불어 해마다 개최되는 화룡의 브랜드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였다. 화룡경흥탄광 까스폭팔사고가 발생한 2013년에 마라톤경기가 취소되였지만 그 이듬해 9월 6일에 진행된 제2회 화룡마라톤대회에는 1만293명의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세계에 화룡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붉은해 변강 비추네》가 전국을 풍미하던 지난 세기 60년대에 동북변강의 연변과 화룡이 선률을 타고 전국에 알려지면서 노래와 춤의 고향으로 불리워졌다면 오늘날에는 국제하프마라톤이라는 새로운 스포츠문화를 담체로 전국, 전세계에 마라톤도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지난 몇년동안 화룡시당위와 화룡시인민정부는 국제하프마라톤경기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주최하여 《스포츠문화로 세계가 화룡을 알게 하고 화룡이 세계로 나가는 전략적인 방침을 제정》하는데 전력하여 변강자원을 리용한 특색관광산업발전에서 커다란 성과를 올렸는바 《장백산아래 진달래, 제일 아름다운 중조변경선》으로도 유명해졌다. 2014년 9월 6일 화룡시 중심거리의 한 장면 하지만 자그마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국제, 국내의 크고작은 마라톤대회들에는 모두 자기의 주제곡이 있지만 화룡마라톤에는 공식적인 자기의 주제곡이 없다는것이다. 《붉은해 변강 비추네》는 스포츠와는 거리가 멀고 또 창작된지 오래된 노래이고 《바람속의 영웅》은 2010년 하남성 정주시에서 개최된 정개국제마라톤의 주제곡이다. 노래와 춤의 고향이라는 불리는 화룡이 스포츠를 통한 세계등장을 화려하게 했다면 자기의 우세인 노래를 접목시켜 더욱 완미한 행사로 만들수 있지 않을가하는 생각이다. 지난해 전파를 타고 세계각지에로 울려퍼졌던 타지역 마라톤대회 주제곡인 《바람속의 영웅》이 올해에도 화룡마라톤대회에서 다시 울린다면 노래와 춤의 고향이라는 화룡시의 형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가봐 자못 근심스럽다. 화룡인민들의 소박하고 활달한 마음과 성품이 담긴, 노래고향의 이름에 걸맞는 화룡마라톤의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리워지길 두손모아 기원해본다. /김태현  
3    김태현의 수필꽃봉오리 감상과 소설싹 보듬기 댓글:  조회:550  추천:0  2015-01-13
〔비평〕   김태현의 수필꽃봉오리 감상과 소설싹 보듬기   우 상 렬   김태현은 누구지? 나로서는 아직 좀 생소하다.  그는 아마 화룡시문화관에서 우리 조선족문화사업의 일을 보는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수필 “된장과 안해와 그리고 그 맛의 향기”, “제비와 집과 그리고 둥지”와 단편소설 “메아리”는 우리 조선족의 희노애락이 듬뿍 배여나 좋았다.  가장 민족적인것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김태현에게는 이런 수필꽃봉오리와 소설싹이 하느작인다.  그럼 아래에 그의 수필꽃봉오리와 소설싹에 윙크에 키스하기다.  수필 “된장과 안해와 그리고 그 맛의 향기”, 못난 “된장녀”의 얘기가 아니다. 잘난 우리 조선족녀인들의 가족사랑 얘기다.  이 수필은 된장을 말한다. 된장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그것은 사랑에 다름 아니다. 실로 “된장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은 우리 조선족녀인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너무나 신성한 과업이다.” 그런만큼 “정성은 물론이고 수많은 인력과 뜸을 들여야 한다.” 친인들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다. “나”의 된장으로부터 느끼는 사랑은 할머니, 어머니에 걸쳐 아내에 이르기까지 죽 이어진다. “안해의 된장맛은 그 옛날 할머니의 된장맛과는 비교가 되지는 않았지만 안해의 정성과 녀인의 마음으로 쏟아부은 남편에 대한 충정과 믿음의 전부로서 그 맛은 그 어떤 된장과도 비할수 없었다.” 이래저래 사랑의 된장맛은 좋은것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그것은 결국 조선족녀인들에 대한 노래가 아니겠는가.  사실 작자는 “그들(조선족녀인, 필자주)에게서 풍기는 맛은 바로 천년을 두고 만년을 두고 세세대대 대를 이어갈 우리 민족의 력사이고 전통이고 소박한 조선족녀인의 정성과 신성함으로 어울어진 된장의 담백한 맛과 구수한 향기가 아니겠는가.”고 감탄한다.  여기서 조선족녀인과 된장은 하나로 클로즈업되면서 사랑의 향기를 톺아내고있다. 첫 시작에 된장에 대한 서정은 구수한 된장맛을 풍겨 좋았다. 그러면서 뒤에 전개될 내용들에 밑받침을 하며 분위기를 잡아주어 좋았다. 할머니의 된장을 만드는 민속적인 사항도 잊혀져가는 우리의것을 되살려주어 좋았다. 그리고 아내가 담그어준 된장을 “안해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함께 퍼내”며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는 “나”의 감정도 진지해서 좋다. 그런데 이 수필은 초점이 좀 흐려진 감을 준다. 수필 “제비와 집과 그리고 둥지”, 제비의 둥지로부터 인간의 집에 대한 생각을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제비의 둥지와 인간의 집은 대비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전자가 “너무나 대견하고 보기가 좋았다.”로 긍정적이다면 후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집으로 돌아갈수 있는 그리고 돌아갈수 있다는 집이나 둥지 혹은 은신처가 있는것만은 아니다.”로 부정적이다. 그것은 “집을 떠나 이국 타향땅에서 고뇌를 그리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때문이다.” 우리 조선족의 비극적인 현실적삶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나”의 “하루도 빠짐없이 알뜰살뜰 우리 가족사랑이 깊이 묻어있는 집안 정리에 신경을 쓰고있”어 희망적이다.  이 수필은 제비의 둥지→인간의 집→나의 집으로 질서정연하게 전개되여 좋다. 그런데 수필이 아무리 논픽션이라고 하지만 보고문학이 아닌 이상 “얼마전(2014년4월30일)”, “그후(2014년6월9일)” 등 실제 년월일을 밝힌다든가, “직일(值班2013년 4월 20일 화룡시경흥탄광에서 발생한 가스폭발사고…)” 등과 같이 주석을 달든가, 첫 부분에 있었던 제비의 사전적, 학문적 서술은 글을 따분하게 하여 예술적감흥을 죽인다. 단편소설 “메아리”, “추락하는자의 슬픈 메아리”,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하나의 현실일진대 스산하고 처절한만큼 서글프고 무겁다.  한국행으로 인한 우리의 비극적현실, 아직도 진행형. 아내의 한국행 및 자식들의 배반에 의해 남편 되는 사람이 자살을 선택한 비극이 아니더냐.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 맞장구를 치면서 비극의 도를 더해준다. 작가의 일정한 구성력이 보인다. 언어표현력도 얼마간 갖춘줄로 안다.  그런데 첫째, 이야기가 좀 식상하다. 한국행 초기면 모르겠지만 20년도 더 되는 한국행에 이런 이야기는 너무도 많이 들었다. 제재의 참신성이 결여되여 있다. 둘째, 아내, 아이들의 배반과 남편의 자살에 필연성이 결여되여 있다. 이들과 같은 경우의 아내, 아이들, 남편들도 얼마든지 있건만 배반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지 않던가. 인물 및 그 행위의 전형성이 결여되여 있다. 셋째, 이 소설은 준호의 자살에 관한 보고문학 같다. “작자의 말”에서 친구 “추락하는 자의 슬픈 메아리” 운운은 이를 더 입증해준다. 그럴진대 준호의 형상을 집중적으로 풍만하게 더 살려야 한다. 그런데 너무 빈약하다. 아내에게 쓸데없이 편폭이 할애된 감을 준다. 한국에서의 아내의 변심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역시 초점이 흐려진 감을 준다.  이 소설은 오히려 중국의 순박한 “농촌” 같은 환경에서 살던 순진한 아내가 한국 “인천”이라는 번화한 현대도시에서 어떻게 마음이 변해갔는가, 또한 아이들은 왜 배반하는가 하는 보편적인 인간성의 악의 문제에 모를 박고 집중적으로 전개하고 무능하지만 정직하고 열심히 사는 준호의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의 훼멸 과정을 유기적으로 꼬아가면서 현 단계 시대적, 사회적 상황 즉 전형적환경 하에서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 비극성을 설득력 있게, 탄탄하게 보여주었으면 좋았겠다. 이러기 위해서는 소설의 허구성을 충분히 감안하고 십분 발휘했으면 좋겠다. 실제 사실에 매여 자유자재의 창작경지를 창출하지 못한 감을 준다. 이상 김태현의 수필이나 소설에 대해 내 나름대로 일독했다.  김태현의 수필이나 소설은 좀 설익은 감을 준다. 그러나 싹수는 충분히 보인다. 특히 수필이 싹수가 보인다. 체험의 문학, 진정성의 문학, 소박한 표현의 문확으로서의 수필이 작가의 체질에 맞는듯하다. 내 나름대로의 일독인만큼 참고에 기하기 바란다.             - 김태현의 수필꽃봉오리 감상과 소설싹 보듬기 -  2014년 제6기에 실렸음.
2    된장과 안해와 그리고 그 맛의 향기 댓글:  조회:625  추천:0  2015-01-13
〔수필〕 된장과 안해와 그리고 그 맛의 향기     장맛이 참 잘 어울어진다. 그동안 왜서 된장을 잘 먹지 않았던가싶게 요즘처럼 된장에 대하여 무척 관심을 많이 들이는지 나도 모르겠다. 우선 남자들이 술 뒤끝에 오는 숙취에는 물론이고 사람의 소화기관을 맑게 청소하고 내장을 든든하게 만들어줌으로 우리 조선족의 밥상에는 오르지 않을때가 없다. 다음 콩으로 삶고 쪄서 다지고 말리고 또 발효시켜 만든것이기에 맛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건강음식에 빠질수 없는 진미로서 시래기를 둥둥 띄우고 돼지고기 삼겹살을 썩뚝썩뚝 썰어넣고 된장 둬 숟가락을 넣고 푹 끓인후 고추가루를 한 숟가락 듬뿍 넣고 입으로 실실 불어가며 떠먹는 그 맛이야말로 시원하고 매콤하여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말도 례외는 아니렸다. 된장에 대한 학문과 학설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은걸로 알고있다. 하지만 된장은 집에서 알뜰살뜰 정을 들여야 그 맛도 일품으로 진가를 가린다고 한다. 그만큼 콩으로부터 시작하여 된장을 만들고 보관하기까지 정성은 물론이고 수많은 인력과 뜸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어릴 때 물남촌의 어두운 골방에서 할머니가 벽구석에 세워놓은 참나무장대에 벼짚으로 아이들 머리만한 메주덩이를 걸어놓고 낡은 옷가지와 이불따위를 덮어두고 띄우던 기억이 새삼스레 오늘의 장맛과 어울어진다. 할머니는 둥그런 밥상을 놓고 메주콩을 알알이 세여 가려내서는 저녁에 나무함지에 불려서 이튿날 아침부터 장작불에 콩을 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낮이 되여 콩이 잘 삶기면 나무함지에 퍼내놓고 뜨거운 김이 빠지기전에 부지런히 떡메로 뭉개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기에도 콩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구슬같은 땀방울을 뚝뚝 떨구면서 으깬 삶은 콩들을 그대로 손으로 다시 주물러서 마지막 남은 콩쪼가리들까지 부셔서는 번들번들한 머리통같은 메주덩이를 만들었다. 메주덩이는 반드시 꼭 짝을 맟추어야 했다. 그렇게 메주덩이를 곱게 또 우아하게 만들어야 장맛도 더 훌륭하다고 했다. 메주는 두덩이씩 쌍으로 짝을 지어 벼짚으로 틀개를 만들어 쒸우고는 골방의 참나무장대에 가로 세로 걸어서 말리고 띄우셨다. 온 겨우내 골방에서 풍기는 메주가 뜨면서 풍기는 냄새는 사람을 질식케 만들었다. 때문에 누구도 골방으로 들어가기를 꺼려하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에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날마다 골방으로 가서 메주가 뜨는 정황을 낱낱이 체크하면서 올해에도 장맛이 잘 울어나겠다고 홀쭉한 볼에 누런 이빨을 드러내놓고 호들갑을 떨었다. 봄이 되면 할머니는 거무스름히 보기좋게 뜬 메주덩이들을 잘게 부수어서는 나무함지에 담아서 해볓쪼임을 시켰고 며칠간 해볕에 푸서푸석 마른 메주덩어리에 씌워져있는 곰팡이와 같은 발효성분들을 행주로 하나하나 깨끗이 닦아내고는 깨끗한 물로 한번 씻어 싸리나무로 결은 둥근 버치를 장독가운데 두고 그 둘레에 금방 해볕쪼임을 시키고 말리고 닦아내고 씻어낸 메주쪼가리들을 장독에 소금물을 두고 담근다.  소금물에 담근 메주덩이들은 며칠동안 할머니의 념원과 더불어 숙성한 된장으로 되여가는데 할머니는 맨손으로 소금물에 담근 메주덩이들을 또다시 잘게 부수고 으깨고 반죽하면서 된장으로 성숙시켰다. 그렇게 성숙시키는 과정에 장독에서 싸리버치로 걸구어내고 찌워낸 소금물을 솥에 넣고 짙게 끓여서 달여내면 그것이 바로 토종간장이 된다. 된장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은 우리 조선족 녀인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너무나 신성한 과업이다. 장을 담글 때는 흥소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녀인들이 화장을 하거나 변소에 가지 않고 절대 남을 흉보거나 상스러운 말을 삼가한다고 한다. 때문에 말 단 집에 장이 쓰다고 하는 말도 생긴것이 아니겠는가?! 장과 어울어진 나의 인생도 이미 지천명에서 반고개를 톱고있다. 그동안 할머니의 된장과 함께 유치한 동년을 훌쩍 보냈고 어머니가 만든 된장을 먹으면서 인생을 알게 되였다. 참, 세월이 무섭다. 할머니의 된장맛을 알게 되자 할머니는 한 올 연기로 되여 하늘나라 저 세상으로 가셨고 어머니의 된장맛에 흥미를 느끼려고 할 때 나의 인생에는 새로운 된장맛이 따로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해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할머니의 된장맛이 사라졌고 어머니의 마음이 우러난 된장이 어느날부터인가 알게 모르게 맛이 가기 시작했다. 매일 밥상에서 풍기는 여러가지 볶음채와 신선한 남새와 물고기들의 튀김료리에 된장이라는 낯말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천천히 밥상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새로운 생활과 더불어 시작된 새로운 밥상에서 새롭게 느끼는 반찬과 료리와 그 맛에 흠뻑 빠지면서 할머니와 어머니와 그리고 그들이 정성으로 빚고 담그고 만들었던 된장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살았던가, 아들애가 스므살을 훌쩍 넘기고 내 머리에 흰머리를 뒤집어쓰니 불현듯 그제날 동년의 건강을 살려주던 할머니의 된장과 이젠 꼬부랑 할머니가 다 된 어머니의 된장맛이 가끔 밥상에 어울어지는 료리와 더불어 생활의 여기 저기를 더듬고 보듬어주는 어머니의 손길과 함께 페부속 깊숙이 구수한 맛으로 떠오르게 되는것은 웬 일인지 모르겠다. 때론 미식성장터에 나가 시골아낙네들이 끓여주는 된장국을 맛보기도 하지만 너무나 담담하다. 도무지 할머니의 구수한 된장맛과 어머니가 손수 끓여주는 향기짙은 된장국맛을 떠올릴수가 없다. 그렇게 어느날부터 나의 입맛이 가기 시작했다. 기름기가 철철 넘쳐나는 안해의 밥상에서 도저히 밥맛을 가질수가 없었다. 날마다 안해한테 된장국만을 부탁하다보니 안해의 잔소리가 늘어났고 알게 모르게 집안에 도는 랭기가 밥상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했다. 그렇게 되자 안해는 자기가 직접 장을 담근다고 했다. 처음에는 떫고 시고 쓰겁고 그 맛이 장맛인것이 아니라 그냥 콩찌개국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장이 아닌 안해의 된장을 입에 담고 맛을 들이기 시작했으며 언젠가부터는 그 맛에 취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나는 안해의 된장맛을 조금조금씩 익혀가기 시작했다. 이젠 안해가 만든 된장맛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지도 벌써 25년 세월이 훌쩍 뛰여넘는다. 할머니의 구수한 된장맛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머니의 정성어린 된장맛에 길들여졌고 오늘은 안해의 사랑이 어울어진 된장맛에 인생을 새롭게 살면서 나도 역시 조선족이라는 우월성에 가슴이 뿌듯해난다. 그런데 이젠 안해의 장독도 굽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할머니의 된장맛을 알게 되자 할머니는 저 세상으로 떠나가셨고 어머니의 된장맛에 길들여질 때 어머니는 꼬부랑 할머니로 되였고 나는 안해를 만났다. 안해의 된장맛은 그 옛날 할머니의 된장맛과는 비교가 되지는 않았지만 안해의 정성과 녀인의 마음으로 쏟아부은 남편에 대한 충정과 믿음의 전부로서 그 맛은 그 어떤 된장과도 비할수 없었다. 굽이 나기 시작한 안해의 장독에서 매번 장을 떠낼 때면 장주걱이 장독을 허비는 아츠러운 소리에 가슴이 싸르르 저려오른다. 4년전 안해는 “F-4”라는 비자로 한국에 진출했다. 그동안 안해가 담그어놓고 맛을 내주던 된장이 밑굽이 드러나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러나 그 맛이 여전히 담백하게 입안에 한가득 감돌아 다른 그 어떤 장맛도 가슴에 안겨오지 않는다. 물론 장터에 나가면 여기저기 조선족 된장이라고 맛을 자랑하는 된장도 수두룩하지만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친근하게 느꼈던 할머니로부터 어머니, 그리고 안해로 이어온 된장맛을 흉내낼수가 없다. 안해는 한국으로 떠나기전에 자신의 손으로 장독을 골똑 채워놓으면 혼자 있는 나의 살림과 식생활에서 많은 번거로움을 덜어줄것이라고 했다. 또한 지금까지 장맛에 사는 내가 된장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부득부득 우기면서 아구리가 좁은 전형적인 장독인 조선족 6호독에 된장을 골똑 쳐넣고 떠난것이다. 그렇게 지난 4년동안 줄곧 된장과 함께 안해의 사랑과 그 맛으로 오늘을 꿋꿋이 버텨왔다. 처음에는 장독에 넘쳐나는 된장을 퍼내면서 안해의 깊은 마음씨를 엿보았다면 1년이 지나서 장독의 반허리가 기울어지면서부터 가족을 위해 타향에서 몸바쳐 헌신하는 안해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함께 퍼냈고 밑굽이 드러나는 장독을 빡빡 긁으면서 내 삶에 된장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하듯이 안해가 없으면 남편이 없고 또 가족이 없듯이 안해, 남편, 엄마, 아빠로 어울어진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살림으로 살아갈수 없다는 나만의 철리를 명철하게 깨닫게 된것 같다.  때문에 사람들은 없다는것에 더욱 련련하는것이 아닐가?! 물론 있을 때는 너무나 풍족한 물질에 눈이 흐려지기도 하겠지만 가족과 사랑과 안해와 남편은 바로 된장의 그 맛이 콩으로부터 시작하여 구수한 된장으로 숙성하기까지의 정성이 담긴 향기이고 사랑이고 영원한 맛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된장은 해를 묵이면 묵일수록 그 맛과 향이 더 진하다고 생전에 늘 말씀하셨다. 따라서 해마다 된장독이 넘쳐나게 담그어서는 해를 넘겼다고 어머니도 가끔 할머니의 된장맛이 뉘집것보다도 구수하였다고 자랑하셨다. 아버지를 낳은 할머니도 또 나를 낳은 어머니도 그리고 아들애를 낳은 안해도 역시 모두가 된장을 만드는 조선족녀성이였다. 그들에게서 풍기는 맛은 바로 천년을 두고 만년을 두고 세세대대 대를 이어갈 우리 민족의 력사이고 전통이고 소박한 조선족녀인의 정성과 신성함으로 어울어진 된장의 담백한 맛과 구수한 향기가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안해는 우리의 가족을 위해서 된장처럼 구수한 맛과 향기로 한국 인천갈비집에서 중국조선족으로 이방인의 곤혹한 삶을 살면서도 자기만의 맛을 독특하게 쏟아내고 있다. - 된장과 안해와 그리고 그 맛의 향기 - 2014년  제6기에 발표.
1    제비와 집과 그리고 둥지 댓글:  조회:603  추천:0  2015-01-13
[수필] 제비와 집과 그리고 둥지     얼마전(2014년4월30일)에 화룡복동탄광장재5갱(和龙福洞煤矿长财五井)으로 직일(值班, 2013년 4월 20일 화룡시경흥탄광에서 발생한 가스폭발사고로 인하여 18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후 화룡시정부에서는 부분적 소형탄광들에 대하 ㄴ안전생산감독제를 실시하여 각 기관과 사업단위의 일부 인원들을 편성하여 륜번으로 올 상반년까지 소형탄광의 안전생산을 감독하게 하였다.)때문에 갔다가 우연이 아닌 우연으로 2층막사의 복도에 가설된 천정의 전등갓귀퉁이에 흙으로 지어진 탄탄한 제비둥지를 보았다.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이 쏟아져나왔다. 백열전등알의 조그마한 갓귀퉁이에 쬐꼬마한 흙덩이들을 물어다가 한뜸한뜸 둥지를 쌓아서 만든 제비의 신근한 노력과 자기의 집이라고 정성을 다해 지은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나며 눈물이 울컥 솟았다. 인간과는 달리 말 못하는 미물이지만 그토록 집이라는것에 집착을 가진 제비의 행동에 너무나 감동되였던것이다. (나도 나만의 집을 장만하기 위해 옹근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세방살이를 하면서 애면글면한 실례가 있었다.) 그후 2014년6월9일에 다시 직일로 그 탄광막사를 찾았을 때에는 제비엄마가 한창 둥지에서 알을 품고있었다. 지난해의 무더운 여름을 새끼들과 함께 올곧게 지켜왔을 집, 둥지로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후대를 위한 제미엄마의 지극정성에 또 한번 놀랐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2층 복도의 천정에 대롱대롱 달린 전등갓귀퉁이에 둥지를 짓고 새끼들을 까는 제비엄마, 인제는 아주 사람들과 친해졌다는 탄광로동자들의 스스럼없는 함박꽃같은 웃음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따라서 제비가 돌아오는 봄철부터 여름내내 창문을 닫아본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제비가 쉽게 드나드는 장소여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제비에게 통로를 내주고 있는셈이였다. 마치도 집을 나간 식구들을 기다리면서 문을 열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의 그런 심리라고 할가, 아무튼 탄광막사의 2층 창문은 그렇게 온 여름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제비들이 추운 겨절이 다가서는 늦은 가을 남방으로 날아가기전까지 한번도 닫혀본적이 없다고 한다. 제비는 참새목 제비과의 여름철새이다. 제비는 흰털발제비, 갈색제비 등이 있는데 벼랑이나 처마밑에 진흙으로 만든 둥지를 결어서 번식하며 곤충을 잡아먹는다. 날개끝이 가늘어 빠른 비행에 유리하고 여름에 따스한 곳으로 겨울나이를 간다. 제비는 집을 지을 때는 해조류나 진흙을 리용해 자신의 침과 섞어 수직벽에 붙도록 짓는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하는데 이는 습기때문에 몸이 무거워진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낮게 날기때문이다. 제비둥지는 보통 한 집에 한개이고 매년 같은 둥지를 보수해서 사용한다.  제비는 귀소성이 강하여 매년 같은 지방에 돌아오는 례가 많다. 산란기는 대개 4-7월경이며 한배에 3-7개의 알을 낳는다. 1년에 2회번식하며 2회째의 산란은 1회의 새끼가 떠난 후 12-16일경에 이루어진다. 새끼는 알을 품은 후 13-18일만에 부화하고 그후 20-24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암,수가 함께 새끼를 기르는데 먹이는 주로 파리, 딱정벌레, 매미, 날도래, 하루살이, 벌, 잠자리 등 날아다니는 곤충들이 위주이다.  지금 문학적으로도 제비는 사람들에게 매우 친근하게 다가온다. 동화인 “흥부전”에서도 마음 착한 흥부를 돕는 존재로 묘사되여 사람들에게 리로운 새로 알려지고있다. 참말이지 말 못하는 제비의 “황당하고 신기한 집”이였지만 너무나 대견하고 보기가 좋았다. 그렇게 겨우내 비워둔 집, 둥지를 찾아 다시 돌아왔다는 그 자체가 바로 감동이였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롯해 모든 동물들은 바로 자기의 집이나 둥지 혹은 은신처를 갖고있다. 한동안 비워두었다가도 돌아갈수 있다는 그리고 돌아갈수 있는 집, 둥지가 있다는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또 감미로운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집으로 돌아갈수 있는 그리고 돌아갈수 있다는 집이나 둥지 혹은 은신처가 있는것만은 아니다. 탄광막사 2층 복도의 전등갓귀퉁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제비둥지를 보고 또 그 둥지로 돌아오는 제비엄마를 보노라니 가슴이 알알해나며 심정이 무거워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개혁의 훈풍에 모두들 현재의 삶에서 더 잘 살아보려고 집을 떠나 이국 타향땅에서 고뇌를 그리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집은 한낫 살다가 떠나간 아니, 다시 돌아오려는 삶의 원천이 아니였다. 말 못하는 제비조차 이듬해 다시 자기의 집, 둥지로 돌아와 새끼를 까고 후대를 늘여가는데 사람들은 웬지 한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를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집이 있어도 돌아올수 없는 사람, 집이 있어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과 그리고 아예 집이란 머리속에 하나의 먼지마냥 쌓여진 사람들로 이 세상은 살아가는 사람들의 객관적인 의식이 천차만별이기때문이다. 눈앞의 순간적인 리익에 자기의 집을 잃고 버리고 또 잊은채 자기가 살아가야 할 의무와 책임감마저 상실한채 허허벌판의 외로운 나무마냥 바람을 안고 살아간다.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을 두고 몇년전 한국땅으로 돈 벌러 떠나간 옆집의 강이네 아빠도 이웃인 민호네 엄마도 앞집의 숙자네 엄마도 또 친구인 영호, 철길이, 병식이, 동해, 기수도 그리고 수많은 엄마, 아빠, 누나, 형님, 녀자, 남자들이 다시는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산골짜기에 지여있는 초라한 탄광막사 2층 복도의 전등갓귀퉁이에 집, 둥지를 짓고 살아가는 제비들도 해마다 자기의 둥지로 돌아와 새끼를 까고 후대번식에 충성을 다하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낳고 간 자식과 자기를 낳아준 부모마저 버리고 떠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것이 웬 말인고?! 언젠가는 그들에게도 이미 주어졌던 집이 그냥 가족사랑으로 묻어나는 한채의 따스한 집으로 되여 다시 돌아올수가 있을가?! 제비둥지에서 알을 품고있는 제비엄마의 입에 먹이를 물어다주는 제비아빠는 그토록 열심히 열려진 창문으로 들락날락 날아예고있다. 하나의 집을 위하여 그리고 후대번식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제비엄마와 제비아빠는 탄광막사 2층 복도의 전등갓귀퉁이에 어울어진 둥지에서 함께 사랑으로 오늘의 새로운 “흥부전”을 만들어가고있다.  먹이를 물어다가 제비엄마의 입에 넣어주는 제비아빠의 순직하고 충성스런 모습에서 순간이였지만 지금 한국에서 힘들게 일하고있는 안해에 대한 그리운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하지만 살면서 한순간도 안해를 념두에 두지 않은적이 없다.  물론 안해가 돌아올 집을 지키고 또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위하여 책임지면서 안해가 돌아올수 있는 집을 갖고 있다는것만으로 즐겁고 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너도나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집이지만 그 집이란 말 그대로 둥지나 하나의 은신처뿐만이 아니다. 집이란 바로 우로는 부모를 모시고 효도하면서 안해와 남편이 자식을 한껏 품을수 있는 가족이란 무한한 사랑으로 키워가는 인류생존의 진정한 터가 아니겠는가?! 탄광막사의 2층 복도 천정의 전등갓귀퉁이에 만들어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신기한 집, 제비둥지를 보면서 새삼스레 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것이다. 우리 모두 집을, 내가 살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집으로 또는 누군가가 돌아올수 있는 사랑이 묻어나는 따스한 집으로 정성껏 폼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알뜰살뜰 우리 가족사랑이 깊이 묻어있는 집안 정리에 신경을 쓰고있다. 이제 돌아올 안해의 빈자리에 남편이라는 그리고 가족이라는 충성스런 믿음과 영원한 사랑으로 언제나 집안 가득 채워가기 위해서이다.             - 제비와 집과 그리고 둥지 - 2014년  제6기에 발표.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