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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파 계(破界) - 2 댓글:  조회:658  추천:0  2017-10-17
 단편소설 파 계(破界) - 2   도  영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알고있어 니가 어디 숨어있는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          귀가에서 메아리치는 아이적의 아련한 노래소리가 가슴을 허비는데 내 나이가 벌써 지천명 언덕의 막바지로 줄달음치고 있다.       옷섶에 지푸라기를 꿰달고 밥알이 툭툭 튀는 삶은 강냉이를 질겅거리며 무리지어 탈곡장마당에서 짚단을 헤집으며 술래잡기를 하던 시절이 호랑이가 담배를 피울 적 옛말처럼 눈앞에서 황홀하게 펼쳐진다.       가끔, 돌아올수 없는 그 시절의 이야기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뱀마냥 머리를 쳐들 때마다 알게 모르게 끈적끈적한 시뿌연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나에게 동년의 추억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속을 더듬노라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벌렁벌렁거리군 한다.       돌아갈 수도 아니, 다시 만들어갈수도 없는 추억, 그것은 음영으로만 비낀 그림자마냥 오늘도 래일도 그리고 인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영원히  나를 동반 할것이다.       나는 오늘도 가물가물 사라져가려는 추억의 끄트머리를 잡고 놓지 않는다.       그것은 저녁노을이 비낀 고요한 호수에서 일렁이는 잔잔한 금물결이 아니라 사막의 끝자락에서 모래를 하늘공중으로 감아올리며 포효하는 황갈색 바람이였다…     (1)         환(幻)은 어느날 두눈에 까만 테프를 붙히고 거리에 나섰다.       눈은 감았는데도 머리끝이 보인다. 발끝도 보인다. 희끄무레한 얼굴도 보인다. 모든 것이 다 보인다. 보인다는 마음에 모든 것이 신기하게도 환하게 영상처럼 다 보인다.       그렇지만 두눈은 시종일관 꽉 감겨져있다.       보인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모으니 모든 것이 눈앞에 생생하게 안겨온다.       참 별일이다.       눈을 뜨면 어차피 보이게 될 것까지도 미리 다 볼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희한하고 신기한가?!       그래서 맹인들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건가?!       아니, 그러면 귀찮게 눈을 뜨고 다녀서 뭘 한단 말인가?! 두눈을 감고서도 모든 것을 선명하게 다 볼 수 있는데 하필이면 힘들게 눈까풀을 쳐들고 거리를 내다봐야 할 필요가 있는가?       아서라!       지친 눈까풀을 아예 테프로 꽉 눌러 붙혀두고 살지 그래. 눈은 본래부터 가죽이 모자라서 내여놓은 구멍이 아닐 것이다.       환(幻)은 차량으로 붐비는 거리에 나섰지만 조금도 당황하거나 두렵지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걸어가야 할 공간이 하얗게 보였고 또 차량들도 자각적으로 그를 피해 다녔다.       인행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에서 북적거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환을 비켜 스쳐갔고 환도 역시 그들과 부딛치지 않고 어렵잖게 비여있는 질서 속에 한몸을 로출시킨 채 자유자재로 걸어다닐수 있었다…     (2)         삶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어느 높다란 빌딩 꼭대기에서 무작정 뛰여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원망도 없이 다만 살고 싶지 않다는 단 하나의 리유만으로 생명의 끊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환도 역시 어느 날부터인가 인생이 귀찮아졌고 두눈을 뜨고 세상을 직시하기가 싫어졌다. 즉 생명을 담보로 살기가 싫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눈으로 보기가, 눈에 보이는 것이 싫어졌을 뿐이다.       일전 모 연구기관에서 사람들이 자살하는 원인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우울증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환이 세상을 바라보기 싫어진 리유는 무엇일가? 그것은 환 자신도 모른다. 그 어떤 우을증 증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세상이 싫어졌을 뿐이다.       두눈을 감고 있어도 환하게 보이는데 하필이면 지친 눈까풀까지 치뜨고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 리유라면 리유였다.     (3)         앞에도 사람이고 뒤에도 사람이다.       좌로 돌아서도 사람이고 우로 비껴서도 사람이다.       보지 않으려고 애써 두눈을 꽉 감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환은 될수록이면 앞사람도, 뒤사람도, 옆사람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앞으로 한발 나서면 바로 앞사람의 길죽한 말상판과 부딪칠 것 같았다. 급하게 뒤로 돌아섰지만 어쩔 새도 없이 어떤 녀자의 갱핏한 얼굴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야?! 눈깔은 어디에 두고 다니냐?! 시퍼런 대낮에 이게 뭔 꼴이람?!”       오밀조밀 여우처럼 귀엽게 생긴 녀자의 조그마한 삼각형 입에서 상상외로 커다란 “구렝이”가 쏟아져나왔다.       “아니?!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되긴?! 길을 가다가 그렇게 급하게 돌아서면 어떡해요?! 어휴, 옷을 다 버렸네…”       땀투성이된 환의 얼굴에 입도장을 찍은 녀자가 연신 퉤퉤 뱉더니 자기의 웃옷을 쳐들어보이면서 펄쩍 뛰였다.       녀자의 황갈색 웃옷에 땀이 밴 환의 손자국이 커다랗게 찍혀있었다.       그러나 환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누가 내 뒤를 그렇게 졸졸 따라오라고 했남?! 이 너른 길을 두고 하필이면…”       환은 저절로도 씩 웃음이 나왔다.       (왜 사람들은 자기 잘못인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남을 탓할가?! 가령 앞서가는 사람의 뒤를 밟더라도 질서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쩐지 머리가 무거워났다.       환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콕콕 찌르는 듯한 아픔이 머리속에서 우왕좌왕 제멋대로 활개치고 다녔다. 속이 울렁거려 금세 토할 것만 같았다. 곁에서 떠들어대는 녀자의 말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마치 가을 논밭에서 펄럭거리는 허수아비의 속이 빈 팔뚝마냥 앞뒤,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환의 시야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갔다.       길길이 날뛰던 녀자의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도 흔들흔들 펄럭거리는 허수아비의 소매자락과 함께 자꾸만 앞에서 닫겼다 열렸다를 반복하며 아리숭하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아우성을 치던 녀자도 점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강아지 한마리가 나타나 으르렁거렸다.       작고 귀여운 하얀 애완견이였다.       깃털을 빳빳하게 세우고 콩콩거리는 모습이 사납다기보다는 오히려 재롱을 부리는 것 같았다. 다가가 기름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하얀색이 가담가담 섞인 황갈색 털을 어루쓸어주고 싶었지만 두발은 굳어진듯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깨가 축 처져내려 량손도 허수아비의 건뎅거리는 텅 빈 소매자락을 방불케 했다.       생각과 달리 몸과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다. 안깐힘을 쓰면서 몸부림쳤지만 환은 간질병환자의 눈처럼 뒤집히는 동공을 의식하면서       밑둥 잘린 통나무처럼 천천히 아니, 갑작스레 길가에 쾅ㅡ 하고 너부러지고 말았다.       허연 게거품이 게질게질 뿜겨져나오는 입가에 덩치가 큰 파리들이 날아들었다.       온몸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면서 개암벌레마냥 동그랗게 꼬부라들고 두다리가 꽛꽛하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길 가던 사람들도 두눈을 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가까이에 다가와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보지 않고 그저 강건너 불을 구경하듯 덤덤하게 내려다볼 뿐이였다.       환은 입을 하ㅡ 벌렸다.       마침내 거친 숨소리가 잔뜩 벌어진 입안으로부터 간헐적으로 새여나왔다.       갑자기 눈이 띄이였다. 살것만 같았다. 쿵쿵거리는 심장의 박동소리가 요란하게 고막을 때렸다.       환은 드디여 잔뜩 오그라든 몸을 간신히 펼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도저히 반듯하게 올방자를 틀고앉을 수가 없었다. 몸을 바로잡으려고 안깐힘을 썼지만 머리가 자꾸만 길 밖으로 숙어졌다.       환은 팔뚝 여기저기 울뚝불뚝 시퍼렇게 멍이 든 자욱을 들여다보며 두눈을 감았다.       이상했다. 눈을 감고있는데도 퍼런 멍자욱은 여전히 눈앞에서 굳어져갔다.       환은 입안 가득 물고 있던 허연 거품이 섞인 침을 길가에 콱 내뱉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바지가랭이에 먼지투성이와 함께 달라붙은 지푸래기들을 뜯어내며 눈물을 흘렸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 때문인지 아무 것도 볼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두눈을 감지 않고 똑바로 떴는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연 눈물이 곬을 파며 흙먼지가 게발린 얼굴 우에서 뚜르륵 시뿌연 먼지와 함께 쉼없이 굴러내렸다.       환은 아무런 말도 없이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앞을 향해 뚜벅뚜벅 긴 다리를 흔들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이상야릇한 눈길들이 멀어져가는 환의 둥그러지게 휘여진 뒤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끝을 세워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세월도 질서없이 흘러갔다.       인생의 년륜도 가고오는 세월 속에 어느덧 반세기를 아로새겨가고 있었다. 지천명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환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뇌경색인지, 뇌종양인지, 간질병인지 하는 원인불명의 불치의 병에 걸려 몸무게가 백근도 안되는 “페인”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환이가 불혹의 끝자락에서 덧없이 먹어가는 나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거리던 지난 세기 90년대말, 더 정확하게 말하면 환이가 49살, 그러니 지천명으로 과도하기 직전인1999년도의 어느 여름날에 있은 일이였다…     (4)         환은 한동안 창밖에 던져지는 시선조차 두려워졌다. 감히 밖으로 나가려는 엄두는 더구나 내지 못했다.       밝고 투명한 빛갈이 두려웠고 사람들이 째려보는 송곳끝 같은 날카로운 눈길에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빵빵 순식간에 터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두려웠고 여기저기 나무밑에 쪽걸상을 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은 로인네들의 뿌옇게 빛을 잃은 유리알 같은 희멀건 눈길들이 소름이 끼쳤다.       “비켜! 비키라니까!”       “비켜! 왜 길을 막는 거야?!”       …       난데없이 들려오는 짓꿎은 고함소리와 악청들이 듣기 싫었고 빨갛고 노랗고 파란색으로 영글어가는 길가의 꽃밭에서 한들거리는 나비와 가느다란 꽃가지 우에서 이꽃저꽃에 옮겨앉으며 희롱하는 빨간 잠자리마저도 보기가 싫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창문을 꽁꽁 닫은 방안에서도 창밖의 고함소리가 고막을 찌르는 것 같았고 두눈을 감고 있어도 화단에서 날아예는 예쁜 나비와 빨간 잠자리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여기저기 도처에서 들려오는 아우성소리가 귀를 뚫고 얇다란 뇌막까지 산산히 짓찢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말 그대로 환은 얼이 나가 있었다.       시중의병원으로 찾아갔더니 의사는 정신장애와 같은 공황속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다잡지 못하고 극도의 실의에 빠져 자기를 구출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즉 자아책망 속에 갇혀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였다.       환은 솜뭉치로 두귀를 틀어막고 두눈에 까만 반창고를 붙이고 이불을 들 쓴 채 하루종일 침대 우에서 우둘우둘 떨어댔다.       누가 보아도 완전히 신들린 “정신병자”였다.     (5)         환에게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약 다섯알을 먹고 아침밥을 먹고 난 후 또 약 열알을 먹고 밖에 나가 운동하고 마당 한복판에 만들어놓은 정원의 화단에서 풀을 뽑는 것이였다.        약은 간호원이 시간마다 챙겨주기에 싫은 대로 억지로 먹었지만 화단의 풀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환이 자각적으로 뽑았다.        화단의 여기저기에 빨간 다리아꽃들이 탐스럽게 피여있었다. 사실 화단에 자란 풀이라 해봐야 부식토에 딸려온 잡풀이 고작이였다.       한달전 환이 구급차에 실려 여기로 올 때는 한창 꽃망울이 잎속에 묻혀 부끄러움을 타던 시기였다. 그 꽃망울들이 이젠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를 쏘면서 요염하게 피여 나고있다.       환은 아롱다롱 여러가지 색갈들로 어우러진 커다란 다리아꽃을 좋아했다.       그것도 진붉은 다리아꽃을 더욱 선호하였다.       탐스럽게 핀 다리아꽃이 어쩌면 환의 두눈을 활짝 틔워준 것만 같았다.       병원에 실려오던 날, 가까스로 밝고 환한 빛을 피해 얼핏 스친 눈길에 보았던 꽃이였다. 곧 망울을 터칠 다리아꽃의 연한 보라색꽃이파리의 유혹에 못이겨 자기도 모르게 화가로서의 본능적인 호기심이 머리를 쳐들었던 것이다.       환은 바깥출입을 하면서부터 약 먹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화단의 낮다란 벽돌담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터쳐지지 않은 빨간 다리아꽃의 통통한 망울이 호기심을 자아냈지만 이젠 막 피여나기 시작한 다리아꽃의 탐스러운 꽃이파리의 유혹에 끌려 넋을 잃고 있었다.       화단을 관리하는 원예사한테 책망도 많이 들었지만 그런 책망과 욕설을 마이동풍으로 여기면서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이젠 원예사도 지쳤는지 아예 환을 관계하려고 하지 않았다.       환은 한가할 때면 이미 피였다가 지기 시작한 다리아꽃의 연보라색꽃이파리들을 한잎한잎 따서 화단을 둘러막은 낮다란 벽돌담에 자기 나름대로 배렬하군 하였는데 그 속에서 일종의 환락과 즐거움을 느꼈다.       환에게 있어서 빨간 다리아꽃은 분명 누군가를 의식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누구라고 딱히 확정 지을 수 없지만 언젠가는 그 확정과 믿음을 자기만의 깨달음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환에게 있어서 다리아꽃은 병원에서의 유일한 향수였고 또 그만의 쾌락을 만끽하는 소중한 존재였다.       환은 오늘도 화단의 낮다란 벽돌담에 걸터앉아 막 시들어가기 시작한 빨간 다리아꽃을 바라보며 우울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직도 더 피여야 할 꽃이파리들이 벌써 시들어서 가담가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환은 다가가 시들어가는 다리아꽃송이를 뜯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꽃송이는 완고하게 꽃가지에 매달려 좀체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환은 손에 완력을 써서 끝내는 시들기 시작한 커다란 다리아꽃송이를 가지에서 뜯어냈다.       그리고는 후ㅡ 길게 한숨을 내쉬고 아예 화단의 벽돌담에 걸터앉아 시들어 떨어지기 시작한 다리아꽃잎을 한잎한잎 따서 화단의 꽃그루터기의 밑둥에 던지기 시작했다.       맹목적으로 꽃잎을 따서 던지던 환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 꽃잎을 다시 주어 낮다란 벽돌담에 한잎한잎 곱게 펼쳐놓고 꽃송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시들어서 요염하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마지막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 다리아꽃송이는 커다랗게 벽돌담에 피여나 환을 보고 정겹게 웃었다.       환도 웃었다.       참말이지 죽어서 다시 피여난 다리아꽃이였다.       “와, 걸작이네요! 다리아꽃이 다시 벽돌담에서 피였네요?!”       언제 다가왔는지 화단을 가꾸는 원예사아주머니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치솔질을 해본 것 같지 않은 시누런 이빨을 드러내놓으며 반색을 하였다.       “당신은 화가… 그러니까 그림 그리는 것이 전공인가 봐요? 아유, 완벽하네요. 다시 피였어요. 죽었던 다리아꽃이…”       원예사아주머니가 곁에서 이순에 넘은 녀인답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환은 나풀거리는 원예사아주머니의 검붉은 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게요. 죽어서도 이렇게 다시 꽃으로 필 수 있네요. 참, 사람도 죽으면 다시 이렇게 살아날수가 있을가요? 떠나갔던 사람이나… 계절… 날아갔던 철새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예요.”       환은 뜬금없이 꽃과 사람과 계절을 련관시켰다.       “아유, 선생님도?!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요?! 말도 안되는 소리죠! 만약 령혼이 있다면 어느 하늘가에서 떠돌고 있을지 모르지만?!”       원예사아주머니는 두눈을 올롱하게 치뜨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정말 그럴가요?”       “그럼요. 어림도 없죠! 귀신이라면 몰라도…”       “그래요! 귀신이라면 모를가… 어림도 없겠죠! 세상을 떠난 죽은자의 령혼이 이생에는 없듯이…”       환은 자기도 모르게 원예사아주머니와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다시는 생생한 꽃송이를 뜯어내지 마세요. 아직도 더 필수 있는데 이렇게 함부로 뜯어내면 어떡해요?”       원예사아주머니의 너그러운 책망이였다.       환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다시는 원예사아주머니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뜯어낸 꽃잎으로 벽돌담 우에 만들어놓은 자기의 작품ㅡ 다리아꽃을 넋 놓고 바라볼 뿐이였다.       “참, 선생님은 괴짜예요. 말이 안 통한다니깐요! 그래도 미워하지 않아요. 사람이 미운 게 아니라 병이 미운 거죠! 누구는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나요?! 그런 것은 아니죠! 하지만 다시는 생생한 꽃송이를 가지에서 뜯어내여 죽이지 마세요!”       원예사아주머니는 바라던 대답을 듣지 못한지만 일러둘 것은 따끔하게 일러둔다는 식으로 할 말을 하고는 등을 돌리더니 길다란 대나무비자루를 들고 자리를 떴다.       환은 뚱기적뚱기적 멀어져가는 원예사아주머니의 오지독 같은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왜 살가? 무엇을 위해서 살가? 저 아주머니는 무엇을 바라고 여기서 화단을 가꾸면서 이처럼 어럽게 살가? 언젠가는 꼭 떠나갈 인생인데…”       환은 문득 가을 논밭에 속절없이 서있는 허수아비가 떠올랐다.       자기의 주의가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속이 텅 빈 홀쭉한 몸뚱이를 펄럭이는 허수아비,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주어진 그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허수아비… 과연 허부아비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가?!       “후ㅡ 저 다리아꽃은 죽어서도 다시 필 수가 있는데…”       환은 끙ㅡ 하고 길게 앓음소리를 냈다.       “선생님…?!”       그때 누군가 환을 부르고 있었다.       환은 부름소리를 따라 머리를 들어 바라보았다.       “선생님, 약이요! 약 먹을 시간이 됐어요!”       병원건물 입구에서 하얀 가운을 걸친 신경내과의 젊은 간호원이 머리 위로 손을 젓고 있었다.       환은 다시 끙ㅡ 하고 앓음소리를 내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피여있는 다리아꽃은 여전히 화단둘레를 막은 낮다란 벽돌담 우에서 곱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다시 필 수가 있어서… 너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여전히 꽃이로구나!”       환은 쓸쓸하게 돌아섰다.       그때까지 병원건물 입구에서 하얀 가운의 젊은 간호원이 손을 저으며 하얀 다리아꽃처럼 환하게 웃고있었다…     (6)         환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경내과의 젊은 간호원한테 부탁해서 얻어온 붓으로 도화지에 자기만의 수묵화를 그렸다.       인물화도 그리고 난초도… 여직껏 이처럼 재미나는 일을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젊은 간호원은 맨날 붓끝에 까만 먹물을 묻혀 도화지에 뭔가를 그리고있는 환에게 호기심을 가졌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아무런 말도 없이 곁에 서서 고즈넉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환이 휘두르는 붓에 하얀 도화지가 새까맣게 꽉 채워졌지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끝내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돌아서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환은 매일 아침밥과 함께 약을 먹고 난 후이면 누가 시키기라도 한듯 붓을 챙겨들었고 횡성수설 알 수 없는 말들을 입 속에서 중얼거리며 하얀 도화지우에 그림을 그리군 했다.       “선생님, 오늘은 무얼 그리셔요?”       한번은 젊은 간호원이 환에게 물었다.       “저기 저 정원 화단의 다리아꽃을 그리려고 하는데 왠지 잘 안돼요?”       그 말에 젊은 간호원은 가까이에 다가가 환의 붓이 휘젓고 지나간 까만 자욱을 세심히 들여다보았다.       “아유?! 맞아요! 그러니깐 이것이 꽃이구만요. 아니, 그런데 다리아꽃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국화, 가을에 핀다는 국화꽃에 더 가깝구만요. 그리고 저기 저 그림은 어쩐지 사람의 머리카락… 그러니까 인물화인 것 같군요. 하여튼 선생님은 그림에 재간이 있다니깐요!”       젊은 간호원은 그제야 환이 그린 것이 꽃이라는 것을 대충 파악한 것 같았다.       환은 어설프게 웃었다.       병원의 화단에 핀 다리아꽃을 주제로 그린다는 것이 생각 밖에 그만 국화꽃이나 인물화가 될 줄은 자기도 몰랐다.       그 자신도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니 어쩐지 국화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다리아꽃이면 어떻고 국화꽃이면 어떠랴? 아무튼 시간 나는대로 짬짬히 그리다 보면 제대로 된 그림이 그려지겠지!”       환은 자기가 그린 몇장의 그림에 자기 나름 대로 만족하였다.       비록 손이 떨려 여기저기 맹인이 제멋대로 막대를 휘젓고 지나간 것 같았지만 하나의 령혼이 붓끝에서 새로운 삶을 안고 꽃으로 부활되고 있지 않는가?!       환은 자신이 그린 국화꽃그림을 한식경이나 들여다보았다.       젊은 간호원이 인젠 점심시간이 되였다고 알렸지만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림만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저기요, 이 그림의 제목을 무엇이라고 달면 좋을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제목을 써넣을 수가 없네요.”       환은 점심시간이라고 재촉하는 젊은 간호원에게 물었다.       “아유, 선생님도? 저같은 일개 간호원이 어찌 이처럼 오묘한 뜻이 담긴 그림에 감히 제목을 달 수 있겠어요? 눈을 씻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뭐가 뭔지 잘 분간하지  못하는 화맹(花盲)인데…”       젊은 간호원이 손사래를 치며 급급히 돌아섰다.       “괜찮아요. 여기 이 그림이 가을국화잖아요. 그럼 국화로서의 어떤 품위를 상대해서 제목을 달 수가 있지요. 세간에서는 국화가 만물이 시들고 퇴락해가는 시절에 홀로 피여나 현세를 외면하고 품위 있게 산다고 해서 정절과 은일(隐逸)함의 상징으로 일컫고 있어요! 과연 어떤 제목이 어울릴가요?”       환은 자기도 모르게 그림에 깊이 푹 빠져들었다.       사유의 세계와 문학의 세계, 그리고 실천덕목인 생활 자체와 불가분리의 관계를 가지고 추구되여온 종합예술의 한 분야라고 할수 있는 수묵화의 기교와 비법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그림에 깊이 빠져들고 또 그 그림이 숨겨진 품위를 자기만의 상상 속에서 승화시켜보기도 한다.       젊은 간호원은 환의 지청구에 자리를 뜰념을 못한 채 선자리에서 오래동안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보세요! 어쩌면 이 국화꽃의 핍진한 그 향기가 모름지기 코밑으로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아요?!”       환은 상상의 련못에 깊이 빠졌다.       “그러게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쩐지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잘 모르겠어요!”       젊은 간호원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간호원아가씨는 사군자(四君子)에 대해 들어봤어요?”       환은 그림에 숙맹인 젊은 간호원이 어쩐지 처량해보였다.       “사군자요? 알아요! 알구말구요! 식물중의 매화, 란초, 국화, 대나무를 일컬어 그림에서 사군자라고 하지 않아요? 치, 선생님도,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어요?”       젊은 간호원이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었다.       “어, 그런 뜻은 아니고! 때문에 옛날 덕과 학식, 인품을 두루 갖춘 사람을 일컬어 ‘군자’라고 하였어요! 특히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가진 군자의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던 유교사회에서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우는 이 ‘사군자’를 선비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고 좋아했어요.”       환은 말고가 터지니 자기도 모르게 일련의 국화꽃을 비롯한 ‘사군자’에 대해 줄줄이 엮기 시작했다.       젊은 간호원은 두눈을 올롱하게 뜨고 환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여기 이 그림에 그렇게 심각한 내용이 담겨져있어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선생님이 한가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젊은 간호원이 미안한듯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며 심각한 기색을 지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 ‘사군자’를 통해 변함없는 뜻과 마음을 나타내고 고아한 경지를 추구하고자 해요. 예로부터 매화는 선비의 아취를 지니고 란초는 제왕과 같고 국화는 호걸과 같은 풍채를 지니고 대나무는 대장부의 기백을 지녔다고 했어요!”       환은 신이 나서 일장 설화에 들어갔다.       “때문에 옛날부터 ‘사군자’를 벗에 비유하여 일컬은 말이 있어요. 알려줄가요?”       환은 잠시 말을 끊고 뜸을 들여 젊은 간호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저는 이 그림에 그런 심오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젊은 간호원이 반색을 하였다.       환은 일부러 건 가래를 뗐다.       “옛날부터 ‘사군자’를 벗에 비유하여 일컸기를 봄에 피는 매화는 “고우(故友)”, 섣달에 피는 매화는 “기우(奇友)”, 란초를 “방우(芳友)”, 그리고 국화는 “일우(逸友)” 또는 “가우(佳友)”, 대나무는 “청우(清友)”라고 했어요. 이 말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매화 “고우”와 “기우”는 오랜 벗과 진기한 벗을 상징하고 란초 “방우”는 꽃다운 벗을, 그리고 국화 “일우”와 “가우”는 뛰여난 벗과 아름다운 벗을 상징하며 대나무 “청우”는 맑은 벗을 상징한다고 해요. 그러니 정말 옛 선인들의 말들이 얼마나 신기해요?”       환은 황홀한 자아감각에 빠졌다.       말할수록 신비의 경지에 다닿는듯한 정취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그럼 이 국화꽃그림의 제목을…?!”       갑자기 젊은 간호원이 환성을 질렀다.       “뭔데요?”       환은 젊은 간호원의 반 쯤 벌려진 발가우리한 삼각형입술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국화가 ‘일우’, 또는 ‘가우’, 즉 뛰여난 벗과 아름다운 벗을 상징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 국화꽃그림을 ‘일우례찬’이라고 하면 어때요? 제목을 그냥 ‘국화’라고 달면 너무 유치하고 번연할 것 같아서요!”       젊은 간호원은 두눈에 신비한 물음을 담고 환을 바라보았다.       환은 그 말에 다시금 어깨가 움쭐 일어서는 것 같았다.       “그래, 바로 그거예요! ‘일우례찬’ 정말 마음에 들어요.”       환은 웃었다.       오랜만에 처음 웃어보았다. 날 것만 같았다.       “그럼 인젠 점심식사를 드셔야죠. 그리고 약도…”       “그래야지요! 먹어야죠. 먹어야 살고 먹어야 그림도 그리고 먹어야…”       환은 제멋에 도취되여 중이 념불을 외우듯 끊임없이 중얼거리다 말고 병실을 나가는 젊은 간호원의 가냘픈 뒤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래 먹어야지요! 먹어야…”     (7)         환의 소장품이 한가지 더 늘어났다.       책이 아닌, 그리고 수석도 아닌 두터운 도화지와 화선지에 그린 그림들이였다.       몇달전부터 시중의병원의 신경내과에 입원하여 치료받으면서 그렸던 그림들, 즉 옛날부터 일컬어왔던 사군자중의 국화꽃을 비롯한 여러장의 수묵화였다.       그가운데서 병원의 젊은 간호원이 제목을 달아준 “일우례찬”의 그림은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미술부에 의뢰하여 정교한 액자까지 화려하게 맟춰서 서재에 걸어놓았다.       비록 자기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려온 수채화거나 유채화에 비하면 또 다른 경지의 신선함이 있었고 뛰여난 품위가 돋보였다.       수채화는 화선지 우에 물감을 올려놓는 방법으로 그리는데 물론 화선지에 물감이 스며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되는 목적이 아니라 물감을 화선지 우에 얹는 것이였다. 그렇게 화선지의 섬유질을 확대하여 보면 화선지 우에 물감이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적이라면 수묵화는 또 다른 예술의 진품이였다.       말 그대로 수묵화는 쉽게 종이에 먹으로 염색을 하는 방법과 흡사하다. 흔히 먹을 화선지 우에 칠하면 그것이 종이에 염색이 되는 것처럼 종이의 단면을 확대해서 보면 종이 우에는 수없이 많은 섬유질로 되여있는데 이 섬유질을 염색하는 방법과 같았다. 그렇게 뒤면까지 먹이 찍혀 나오는 것은 염색이 많이 된 것이고 뒤면에 연하게 나오는 것은 염색이 조금 된 것이였다.       수묵화는 이처럼 천에 그림을 그리듯 먹을 칠했 을 때 종이 속으로 먹이 스며들게 하여 제작하는 것이 주원인으로 수채화에 비해 현란한 기교와 방법이 따로 있었다.       환은 지금까지 그려온 수채화에 대한 호감도가 갑작스레 떨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것도 시중의병원에서의 한차례 입원치료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니 지금까지 그려온 모든 수채화가 알게 모르게 멀리로 가볍게 사라지는 듯한 진통같은 아픈 느낌이 들었다. 반면 알게 모르게 수묵화의 그 전통적인 현란하고 부드럽고 미묘한 종합예술의 눈부신 경지가 자신의 화실에서 환하게 펼쳐지는 듯한 지고무상한 신선한 쾌감들을 올올이 맛 보는것만 같았다.     (8)         환은 국가문화부에서 조직한 중국국제과학기술성과박람회에 출시할 유화 “호랑이”가 곧 마무리단계에 들어섰는데 한켠에 방치해둔 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자꾸만 수채화의 “사군자(四君子)”에 신경이 씌여 도저히 “호랑이”의 천연적인 색조와 물감을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모시간은 바야흐로 다가오는데 화선지 우에서 달려가는 붓끝의 령감은 줄곧 진한 먹물 속에 푹 잠겨 수묵화란 생소한 경지에서 “사군자”의 진한 품위를 안고 활기차게 넘나들었다.     (9)         환은 일상이 분주해졌다.       그만큼 사는 멋이 새로와졌다.       눈에 새까만 반창고를 붙힌 채 활보하던 거리에 좀처럼 나서지 않았다. 물론 다시는 눈두덩에 반창고따위를 붙히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20평방메터 되는 화실에서 분주히 돌아쳤다.       두눈을 뜨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찾고찾아도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환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하루의 코스를 열었다.       창가에 줄 세워 가지런히 놓인 범꽃무늬의 화분통부터 시작하여 늦게나마 새롭게 알고 편애하게 된 “사군자(四君子)”인 매화, 란초, 국화, 대나무의 이파리에 먼지 하나 낄세라 털어내고 닦아내고 안달을 떤다.       반나절이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드디여 마주앉은 화선지 우에 지금까지 배우고 실천하고 익숙하게 그려왔던 유화와 수채화의 기본바탕을 떠나 남보기에도 낯설고 생소한 먹과 물감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령감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꽃의 구상에서 자유로이 나래치다가도 이외로 사람에 대한 인물구상에 몰두하여 심각해지기도 했다.       이른바 한올한올의 머리카락이라도 그 모근이 닿는 살과 피부 사이의 모양을 섬세하게 드러내려고 붓을 두손으로 눌러댔다가 살짝 옅은 동작으로 괴상한 몸짓까지 해가며 수묵화란 생소한 미술의 경지에 푹 빠져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허우적거렸다.       환의 붓이 지나가는 자욱마다 듬성듬성 메마른 가을의 산등성이에 야하게 모습을 드러낸 검은 바위마냥 방안 여기저기에 화선지가 방바닥에 거칠게 널려 발 내디딜 틈도 없었다.     (10)         환은 두문불출하고 스무평방메터 남짓한 화실에만 들어박혀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무지의 한계에서 오로지 느낌으로만이 마주할 수 있는 그림의 세계이고 하늘높이 치닿는 상상의 화려함이였다.       그러나 어찌보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였다.       꿈에조차 그려보지 못한 수묵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허황한 것 같았지만 이제는 그 허무함이 하나의 꿈같은 유혹이 되여 해빛과 비와 물방울에 어울린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칠색무지개와 같았다.       환의 메마른 두눈에 한줄기 푸른 빛깔의 선이 그려졌다.       환영과 환호, 부드러움과 향기 속에 소외되여가던 욕망과 우러름이 하나의 성스러운 빛깔이 되여 하늘과 무한한 땅 사이를 이어놓았다.       환은 환영 속에 두 팔을 자유자재로 벌렸다.       세상 모든 것을 보듬어안을 자신감이 생겼다.       환은 드디여 두눈에 까만 반창고도 붙히지 않은 채 홀가분하게 화실을 떠날 수 있었고 새들이 지저귀고 사람들이 오가며 환호하고 들끓는 바깥세상에 한발을 내디딜수가 있었다.       용기!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또 손으로 만질수도 없는, 하나의 완정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보석같은 결정체, 진실된 “용기!”였다. 비 온 뒤의 땅을 품어안는 무지개의 신성함이랄가, 그것은 바로 하늘과 땅이 하나의 빛깔로 어울어져가는 오로라의 물결 같은 이 세상 극치의 아름다움이였다.     (11)         환은 한장의 그림을 놓고 오래동안 사색에 잠겼다.       왼손에 오각별을 단 군모를 정중하게 받쳐들고 오른손에는 새빨간 비닐가위를 씌운 “모주석어록”책을 가슴 앞에 든 소녀가 량볼에 보조개를 파며 씩씩하게 서있는 반신상이였다.       쌍태머리가 귀가에 보일듯말듯 드리우고 조금은 걀죽한 닭알형의 얼굴에 청초함이 다분하고 쌍겹진 두눈과 량볼에 살짝 패인 보조개로 하여 웃음을 짓는 듯하였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순수한 모습으로 매력적인 자력을 뽐내는 데 비해 목에는 연한 불색스카프를 두르고 가슴 앞에는 끝머리를 살짝 드리우고 허리에는 군용혁띠를 착용한 채 입가에 가느다란 실웃음을 지으며 어딘가를 바라보는 처녀ㅡ 상해지식청년 오청화를 그린 그림이였다.       “후ㅡ”       환은 가슴이 꺼지듯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림을 바라보는 두눈에 푸른 샘물같이 찰랑거리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였다.       살짝만 건드려도 떨어질듯 커다란 맑은 눈물방울이 눈초리 끝에 매달린 채 화실을 비추는 태양의 광선과 어울려 방안에 은보라색빛깔을 뿌렸다.       똑또르르, 좌르륵…       환의 착잡한듯 담담한 얼굴에서 순식간에 맑은 샘줄기가 터진듯 눈물이 량볼을 타고 쏟아져내렸다.       “아버지…?!”       환의 조금 벌어진 입안에서 목갈린 웨침소리가 거칠게 새여나왔다.       “아버지… 아버지…?! 설마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가 만년에 심장병으로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환은 아버지의 “좌천”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향지식청년배치사무실에서 사업하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좌천”되여 쟈피거우의 탄광에서 퇴직전까지 광산로동자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림종전에도 역시 한마디로 40여년전의 모든 것을 일축하였다.       “부질없어라!”       환은 아버지의 말씀을 리해하지 못했다.       가슴 속에 옹이로 남아있는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40여년전의 모든 것을… 이젠 아무 것도, 그리고 더는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아버지는 힘들게 마지막숨을 톱으면서도 어머니와 우리 자식들에게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않으셨다. 다만 그 누구에겐가 던지듯이 알아듣지도 못할 어눌한 소리로 련거퍼 세번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하였다.       “부질없어라! 부질없어라! 부!ㅡ질!ㅡ없!ㅡ어!ㅡ라!”        아버지는 마지막 삶을 병원의 한평방메터도 않되는 침대우에서 살다가 향년 70세를 한달 앞두고 2008년 무자년 8월20일에 총망히 운명하셨다. 가시는 걸음이 무엇이 그렇게도 급하셨던지, 그리고 또 무엇이 그처럼 아쉽고 시름을 놓을 수가 없었던지 우뭉하게 꺼진 두눈확에 처연하게 비친 두눈을 감지도 못하셨다.       그후 아버지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낡고 퇴색한 나무궤 밑에 깔려있는 연한 불색스카프와 그림 한장을 발견하였다.       바로 상해지식청년 오청화를 그린 그림이였는데 날자를 보니 1975년도의 겨울이였다.       이 그림이  상해지식청년 오청화의 연한 불색스카프와 함께 아버지의 유물 속에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2)         환은 오래도록 묵상에 잠겼다.       긴 추억의 짓꿎은 허허벌판에서 쉽사리 헤여나오지 못했다.       모든 것이 악몽과도 같은 혼잡한 세월이 만들어낸 아픔이였고 상처의 딱지가 앉은 흔적들이였다.         …       금방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오청화가 뒤를 따른듯이 집안에 들어섰다.       그날따라 오청화의 목에는 얇고 연한 불색스카프가 걸려있었다.       언제나 풀색 군복을 입고 군모를 단정하게 쓰고 허리에 군용혁띠까지 두르고 다니던 모습에 비해 한결 신선하고 우아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런 오청화를 넋 잃고 바라보다가 문득 창작의욕이 솟구쳐 무작정 그녀를 구들 한가운데 세워놓고 모델로 삼아 고등학생의 서투른 솜씨로 인물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오청화는 말없이 야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이 마치 막 피여나는 다리아꽃을 방불케 했다.       나는 집에 있는 길다란 밥상 우에 도화지를 펴놓고 가로 세로 휙휙 필을 날리며 난생처음 사람을 모델로 인물초상화를 그려갔다.       한식경이나 꼼짝않고 모델이 되여준 오청화는 연필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의 어깨너머로 그림을 감상하면서 환성을 내질렀다.       “와?!탠차이! 니유우탠차이화쟈더치즈!(哇-?!天才?! 你有天才画家的气象质!와 ㅡ 천재네요! 화가의 기질을 타고났나 봐요!)”       오청화는 구들 우에서 폴짝폴짝 뛰며 어랜애마냥 천진하게 손벽까지 짝짝 쳐댔다.       “썬머야…?!(什么呀?! 무슨…?!)”       나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오청화 앞에서 몸둘바를 몰라했다.       곁에서 말없이 지켜보시던 엄마마저 다가와 그림을 들여다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히야, 우리 수현이가… 정말 네가 그린 그림이 맞는거니? ‘꾸냥(姑娘, 처녀)”을 신통하게도 그렸구나! 우리 수현이에게 이런 재간이 있는 줄 몰랐네.”       엄마마저 신기해하며 칭찬하자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림을 그린 나마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통하게도 오청화의 모습이 밥상 우의 도화지에 고스란히 복제되여있었던 것이다.       오청화는 한동안 말없이 그림만 들여다보더니 이윽고 머리를 갸우뚱하고 나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술을 나풀거렸다.       “띠띠!뿌,쭈쐔! 쩌이거화게워싱부싱? 워류거찌낸바!(弟弟!不, 洙铉! 这个画给我行不行? 我留个几年吧! 동생, 아니 수현! 이 그림을 나에게 주면 안돼요? 기념으로 남기려구요!)”       오청화의 얼굴은 빨갛게 타오르는 동녘의 태양과도 같았다.       “띠띠!(弟弟! 동생!)”라고 부르던 오청화의 호칭이 갑자기 “쭈쐔!(洙铉! 수현!)”으로 바뀌어졌다.       “커이!(可以! 되구말구요!)”       나는 통쾌하게 대답했다.       “게이니! 니 나저!(给你!你拿着! 자, 받아요!)”       나는 그림종이를 둘둘 말아서 오청화에게 건네주었다.       “뿌,쭈쐔!니짜이쩌이거화즈쌍챈거쯔호마?(不,洙铉!你在这个画纸上签个字好吗? 아니, 수현! 그림에 싸인을 해줘요.)”       “씨잉!(行! 그럴게요!)”       나는 그림을 다시 밥상 우에 펼쳐놓고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1975년 11월27일”이라고 날인을 밝힌 후 그 밑에 “환”이라고 예서체로 휘갈겨썼다.       오청화는 한동안 묵묵히 들여다보더니 그 의미를 몰라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쭈쐔!쩌이거썬머쯔?(洙铉! 这个什么字? 수현, 이게 무슨 글자예요?)”       나는 오청화의 물음에 머쓱하게 나만의 수줍움에서 깨여났다.       나는 조선민어로 “환”자인데 한어의 “환썅(幻想)”과 같은 뜻으로서 나의 미래 지향적인 꿈을 담아 예명을 “환”자로 했다고 알려주었다.       오청화는 또 한번 환성을 질렀다.       “쭈쐔!니유쩐메이호더링깐나?!호썅파! 니이훠우이띵요준땅거쭈웅궈유밍더따화쟈!(洙铉! 你有真美好的灵感呐?! 好想法?! 你以后一定要准当个中国有名的大画家! 수현, 정말 멋진 아이디어네요. 좋은 생각이예요. 당신은 앞으로 꼭 중국의 유명한 대화가가 될 거예요!)”       나는 오청화의 칭찬을 들으며 또 한번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것은 분명 되는대로 밥상 우에 종이를 펼쳐놓고 그린 하나의 습작품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날 오청화의 극찬속에 하루종일 기분이 둥둥 떠있었다…         환은 이름모를 애수에 푹 잠긴 채 말없이 오청화를 그린 그림을 네모나게 접어서 다시 불색스카프로 곱게 감쌌다.       그리고는 반백이 흐르기 시작한 머리를 쳐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세월은 덧없이 40여년을 줄달음쳐왔다. 그러나 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였던가?!       돌이켜보니 먹물과 화선지 우에 얼룩진 고달픈 인생 뿐이였다.     (13)         환은 한통의 낯선 전화를 받고 아연해지고 말았다.       수도 북경에서 걸려온 장거리전화였는데 국가문화부에서 조직한 2012중국국제과학기술성과박람회 준비위원회의 입선작 선정 통지였다.       입선작으로 뽑힌 작품은 뜻밖에도 유채화 “호랑이”가 아닌 력대 영웅들과 선비들의 절찬 속에 종합에술의 당당한 품위를 지켜온 매화, 란초, 국화, 대나무 등 “사군자(四君子)”중의 하나인 국화를 그린 수묵화 “일우례찬”이였다.     ㅡ 파 계(破界) – 2 ㅡ   2017년 9 월 제9호에서.
19    하늘길을 열어가는 우리 말 "노래소녀" 댓글:  조회:533  추천:0  2017-09-29
하늘길을 열어가는 우리 말 “노래소녀” ㅡ 화룡시문화관 김춘매가수의 이야기   도 영           왔네 왔네 번영세월이 왔네       기다리고 기다리던 번영세월       산넘고 바다건너 찾아왔나        …       김창호 작사, 김남호 작곡으로 된 연변음악 “번영세월이 왔네”가 우리 말의 색갈 그대로, 민요 남도창법의 은은한 멜로디가 북경의 전파를 타고 전국의 방방곡곡으로 울려퍼진다. 한 음 한 음 음절의 높이에 따라 소용돌이치고 물갈기를 일으키는 황하의 포효하는 거세찬 물결마냥 사람들의 심금을 황홀하게 울려준다.     2013년5월22일, 북경에서 열린 중앙텔레비죤방송국 “희곡과 응악”프로에서 조직한 “정기두연ㅡ2013몽장유회가수 우승쟁달전(争奇斗艳-2013蒙藏维回朝奔壮冠军歌手争霸赛)”에서 연변의 조선족으로 자랑스럽게 무대에 올라 수백명의 본토박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조선족 “우수가수”라는 월계관을 가져온 가수가 바로 화룡시문화관에서 간판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춘매양이다.     김춘매는 1988년2월17일 아버지 김인준과 어머니 조은숙의 무남독녀로 화룡시 투도진의 한 교원가정에서 태여났다.     김춘매는 중학교 어문교원인 아버지와 유치원 교양원인 어머니의 영향하에 어려서부터 정확한 우리 말 발음을 익혀왔고 또 어머니의 흥얼거리는 노래소리에 맞춰 앵무새처럼 따라 부르기를 즐겨했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훌륭한 가정교육과 부모님들의 사랑속에 활발한 성격을 키워왔고 그 어떤 취미에도 끝을 보는 강잉한 정신을 양성해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노래부르기 좋아하고 성격도 활발한 딸애한테 취미에 맞는 특장적인 교육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마침 소학교에 음악반이 개설되면서 김춘매는 부모님들의 의사대로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기초를 닦게 되였다. 그러나 특별히 작고 약한 체질의 춘매에게는 악기보다 천성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곱고 활달한 목청이 례사롭지가 않았다.     물론 13살나던 해 화룡시에서 조직한 장기자랑 노래경연에서 춘매가 부른 노래가 소학교조 1등을 따내면서 악기를 탐하는 부모님과 음악반의 선생님들을 감동시키고 성악쪽으로 전향하게 되였다. 그녀의 부모들도 딸애의 기특한 재질을 일찍 보아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늦었지만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성악교수인 강신자교수님을 찾아서 딸애의 우리 말 노래강사로 되여달라고 부탁했다.     강신자교수는 처음 춘매의 노래를 들어보고 춘매의 재질은 독창적인 민요창법에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춘매는 매주 서너시간씩 강신자교수의 엄한 가르침하에 남도창법을 익혀왔고 자기의 타고난 구성진 목청으로 우리 말 노래선률의 쾌활한 률동을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활발하게 부르는 가수로 성장하게 되였다.     그러나 성장의 길에는 곤난과 어려움이 없다고 말할수 없다. 우선 화룡시 투도진에서 매주 서너시간씩 연길에 있는 강신자교수의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는것이 그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더우기 번마다 춘매를 동반하는 어머니의 로고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예로부터 “엄격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고 했다.     악착같이 달려든 발성련습시간에 목이 쉬고 입이 터져도 강인한 성격의 매운 고추같은 춘매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그렇게 험한 련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서 춘매는 드디 2004년6월 연변대학 사범분원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녀는 공부를 하면서도 꾸준하게 노래공부시간을 어기지 않았고 짬짬이 그녀만의 민요 남도창법을 련마하고 숙성시켰던것이다.     지난 일들을 둘러보며 김춘매가수는 조용히 웃었다.     “부모님들은 가수로서의 화려한 무대생활보다 정직하게 사람을 가르치고 키워내는 성스러운 교원사업에 몸 담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혼신을 다 쏟은 성악 발성련습으로 굳어진 몸이여서도 아니고 다만 제가 애착하고 사랑하는 우리 말로 된 노래를 맘껏 불러보고 싶었고 언젠가는 저도 우리 나라 수도인 북경무대에 올라 조선족이라는 긍지감을 세상에 떳떳하게 자랑하고싶었습니다.”     이렇게 김춘매가수는 드디여 가수로서의 삶에 도전하게 되였다.     2007년 7월 연변대학 사범분원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마저 포기한 채 자기의 소중한 꿈을 안고 화룡시문화관의 연원모집 광고를 신문과 방송에서 접수하고 찾아왔다.     그때의 김춘매는 애티가 다분한 19세의 처녀였다.     “그때는 참, 호호호. ‘우둔한자가 범 잡는다’고 했던가요? 멋도 모르고 무턱대고 노래 하나만으로 삶을 선택했으니깐요. 그래도 문화관에 입사할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것만으로도 만족했어요. 2007년12월부터 시작한 소분대온돌공연에 참가할 수 있는 영광을 안고 갓 학교를 졸업하고 아무런 실전경험도 없는 제가 당당하게 관중들을 상대로 떳떳하게 그동안 배우고 갈고 닦았던 저만의 민요 남도창법으로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으니깐요.”     김춘매가수는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하여 2009년 12월 문화관에 정식으로 입사하기 전까지 2년여의 시간을 화룡시 산간벽지를 넘나들며 화룡시문화관 온돌공연팀에 새로운 민요 남도창법으로 독특한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김춘매가수는 오늘날의 이 모든것은 그때의 그 온돌공연이란 소박하면서도 간고한 시련 속에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영광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지난 10여년간 김춘매가수는 화룡시문화관의 간판가수로 대담하게 활약하면서 입사전에 소중한 꿈으로만 안고 있었던 프로가수로서의 삶의 환희를 드디여 현실의 극찬과 환호성 속에 터뜨릴 수가 있었다.     김춘매가수는 지난 2008년10월19일, 중국CNR과 한국 CBS가 함께 하는 “중-한 하나로 가요제”에서 3등상에 입상하여 동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2010년8월28일,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연변천음상업무역유한회사, 연변음악가협회, 연변인민방송국에서 공동 주최한 컵 “2006ㅡ2010 중국 조선족 과외가수 민요콩클 총결산”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2010년9월19일, 료녕성 심양시에서 열린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에서 주최한 “제1회 전국 조선족 노래자랑” 에서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불러 전국 각지에서 온 24명의 쟁쟁한 전업가수들을 물리치고 금상을 받았고 2011년10월14일, “제1회 북경조선족민속풍습절 카라OK경연(第一届北京朝鲜族民俗风情节卡拉OK大赛)”에서 1등의 금메달을 따왔다.     한편 2017년 6월 24일에 있은 산서성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조직한  “황하로부터 시작한 노래(歌从黄河来)” 전국 소수민족 노래경연에서 우리 말로 된 노래 “아리랑련곡”을 불러 단연 1위로 예선을 뛰여넘어 년도 결승전에 오르게 되였다.     오늘의 김춘매는 황홀한 꿈만 무르익혀왔던 지난 10여년전의 “노래소녀”가 아니였다. 자기가 선택한 음악예술의 끝없는 경지를 꾸준한 노력과 부지런한 탐구의 정신으로 자기만의 소중한 꿈을 안고 가수의 길에 도전장을 내걸었던 앳된 소녀가 어느덧 실전경험을 탄탄하게 쌓은 30대의 명실상부한 전업적인 프로가수로서 삶의 길에 큰 걸음을 내디딜 수가 있었다.     올해 3월24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그람에 출연하여 태여나서 석달만에 엄마를 여의고 또 6년전에 아빠마저 잃고 오빠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와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연길시 건공소학교 2학년에 다니는 리유미학생을 만나 그동안 비여있는 부모님의 자리를 안타깝게 걱정하면서 리유미와 할머니에게 따스한 사랑의 마음과 희망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 “당신이 가는 길에”를 열창하는 김춘매가수의 또 다른 성격의 참신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 김춘매가수는 화룡시문화관의 성악배우로 해마다 진행되는 백여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각종 공연과 소분대 온돌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무대에 나서면서 후배 성악배우들에게 가수로서 뿐만 아닌 선배로서 리더로서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화룡시문화관의 간판가수로 좋은 활약을 보일 뿐만 아니라 결혼 3년차의 주부로, 아기 엄마로 또 안해로서의 역할도 잘하고 있다.     김춘매가수는 날마다 연길과 화룡을 드바삐 통근하지만 사업터에서는 항상 쾌활하고 어여쁨을 자랑하는 활발한 “노래소녀”이다. 이제 다가오는 년말이면 김춘매가수는 지난 6월 산서성(山西省)에서 있은 “황하로부터 시작한 노래(歌从黄河来)” 노래경연 결승전에 나서게 된다.     또 한번 찬란한 무지개가 파란 하늘에 걸릴것이다. 그 황홀한 무지개다리 우에서 떳떳하게 하늘길을 열어가는 김춘매가수의 어여쁜 모습을 다시한번 그려본다.           2017년7월17일   2017년 8월 문화시대 제4호에서.
18    락애노희 댓글:  조회:608  추천:0  2017-07-04
단편소설 락애노희(乐哀怒喜)     ㅡ 락   웃을수밖에 없었다. 길은 턱을 주억거리며 다시 들여다보았다. “뛰는 놈위에 나는 놈, 웃기는 진실 10가지” (1)    비누로 눈을 씻을 수 없다. (2)    당신은 당신의 머리카락을 셀수 없다. (3)    혀를 내민 상태에서 코로 숨 쉴수없다. (4)    방금 당신은 3번을 시도했다. (6)    우의 3번을 시도했을 때 한마리 개처럼 보이긴 하나 이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7)    당신은 속은걸 알고 지금 웃고있다. (8)    당신은 5번을 건너뛰였다. (9)    당신은 방금 우에 5번이 있는지 확인했다. (10)당신은 지금 피식 웃으며 어디에 공유해서 올릴가 생각하고있다. 하하하 오늘도 웃으면서 하루 시작하세요.   참말이지 위챗이란 좋기는 좋다. 여기저기 들쑤셔대는 이야기도 살인사건도 강탈사건도 그리고 남자,녀자 바람피우는 속적인 이야기까지도 제일 먼저 올려놓고 수제비마냥 동동 띄워주는것이 바로 전세계 몇십억 인간의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이다. 일파만파 전해지는 위챗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울릴수도 웃길수도 심지어 죽일수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위챗이란 좋은점도 나쁜점도 불행한 점도 많이 공유하고있다. 길은 방금 위챗에 오른 “뛰는 놈위에 나는 놈, 웃기는 진실 10가지”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골고루 웃었다. 크게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며 요란하게 웃을수도 있었지만 나지막하게 그저 흐흐흐 하고 징글스런 사내의 웃음을 야하게 날렸다. 사람이 사는것이 참 신비스러울때가 많다. 길은 요즘들어 손에서 놓을새 없는 폰때문에 사는것 같았다. 오늘도 폰을 켜기 바쁘게 모멘트에 오른 “뛰는 놈위에 나는 놈, 웃기는 진실 10가지”를 보고 아침나절부터 웃었다. 참말 살기 좋은 세상이다. 먹을걸 근심하고 입을것을 근심하던 지난 6~70년대와는 달리 지금은 먹고싶은것도, 입고싶은것도 따로 없다. 눈을 뜨면 산해진미 “륙해공군” 뭐라 할것 없이 길거리의 여기저기 난전이 펼쳐지고 허리춤에서 출렁거리는 두둑한 돈지갑은 항상 여유있게 지퍼를 열고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사는 멋이고 재미인가부다. “먹고싶은것 입고싶은것이 없는 이런 삶을 즐거움의 경지라고 하겠지!” 길은 웃음이 자꾸 꾸역꾸역 솟아나왔다. 출근하지 않는 빨간 하루여서 들볶는 출근도 상념에서 사라진지 이슥했다. 화려한 날씨에 집구석에 처박혀 티비나 보는것은 너무 맹랑한 일이다. 그렇다고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를 촐싹거리며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안해가 없이 싱글로 살아온 지난 8년동안의 삶이 이처럼 길에게 자유자재란 자기도 알수 없는 단어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길은 가정과 안해가 있고 또 자식까지 있는 유부남임에는 틀림이 없다. 집안 객실의 한 복판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채색사진에서 길과 안해와 그리고 아들애까지 나란히 셋이서 한복까지 차려입고 화목하게 웃고있었다. 누가 보아도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ㅡ 너무 부러운 가족이였다. 집안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무엇 하나 빠진데가 없는 전형적인 신식가구와 전기기구와 고급인테리어로 꾸며진 “살만한 집”이다. 다만 이처럼 “살만한 집”에서 길이 혼자 텅 빈 89평방메터의 공간에 허우룩한 사내냄새만 잔뜩 진동시키고 있을뿐이였다. 그러나 길은 혼자가 아니였다. 방안의 여기저기 비쳐있는 공간에는 안해와 아들애가 보이지 않게 자리잡혀 시종 길을 눈여겨 살펴보았고 길도 역시 안해와 아들애의 보이지 않는 모습과 함께 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지난 8년동안 고스란히 빛나는 “싱글”로 살아왔다. 어찌 보면 가족이란 이처럼 보이지 않게 멀리 떨어져있어도 곁에 있는것처럼 서로를 보듬고 챙기면서 다독여주는 힘이 끈끈하게 이어져있는것이 아닌가싶다. 그처럼 서로를 그리며 하나의 리념, 꼭 한집에 다시 모여 함께 살수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 드팀이 없었다. 길은 폰을 들고 “뛰는 놈위에 나는 놈, 웃기는 진실 10가지”를 안해한테 날렸다. “흐흐흐ㅡ” 저도 모르게 또 웃음을 지었다. “당신도 필경 배를 끌어안고 웃을거야? 이 좋은것을 보면서 왜 나만 웃냐?” 길은 입을 헤벌리고 극구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그때 휴대폰이 드르릉거리며 가볍게 진동했다. 액정면에는 파란 하늘아래 활짝 핀 해바라기가 당실하게 떠올라 노란 꽃잎을 나풀거리며 웃고있었다. “웬 일이여? 아침부터…” 길은 아닌보살하고 물었다. “왜요? 어제 우리 약속하지 않았어요? 주말에 만나 비암산가기로” 노란 해바라기가 꽃잎을 바짝 세웠다. “어, 허허허! 그랬던가? 그럼 오늘 꼭 가야겠네!” 길은 또 저도 모르게 쿠욱ㅡ 하고 웃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 노란 해바라기가 폰의 액정면을 전부 다 차지했다. “아니야! 방금 모멘트에 올린것을 보고 ㅎㅎㅎㅎ” 길은 참지 못하고 또 괴상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이제 봐! 보내줄게! 보면 웃지 않을 사람 없어! 아무튼 나 곧 나갈게!” 길은 제꺽 폰에서 “뛰는 놈위의 나는 놈, 웃기는 진실 10가지”의 파일을 찾아 “노란 해바라기”란 그룹을 찾아 휘딱 전송했다. 그리고는 폰을 내려 주머니에 집어넣고 방안 여기저기를 곰곰히 살펴본후 신궤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까만 구두를 내려 발에 꿰다말고 왼손바닥으로 자기의 앞이마를 탁 쳤다. “이 정신봐! 오늘 산행을 탄다면서 웬 구두야? 참?” 길은 다시 구두를 신궤에 집어넣고 하얀색의 밑바탕에 파란선을 그린 등산용운동화를 내려 발에 꿰면서 쿡쿡 웃었다. “아마 지금쯤 내가 보낸 파일을 보면서 웃을거야!” 길은 배가죽이 풀떡풀떡 웃음을 쏟아내던 파일생각에 또 참을수가 없었다. “흐흐 참, 좋긴 좋다. 웃으면 오래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무엇이든 만들어내서 웃고 즐기려고 안깐힘을 다 쓰고있다. 물론 길도 아침시간대를 맞춰 모멘트에 올랐던 그 파일을 생각하면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배가죽을 풀떡거리며 웃고나니 기분도 한결 좋아졌다. 길은 생각하면 할수록 입귀가 씰룩거려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길은 낄낄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흐뭇하게 집문을 나섰다…   ㅡ 애   사람의 정분이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까지도 멀어진다고 했다. 외기러기의 신세로 살아온 삶은 누구의 원망도 없이 스스로 자초한것이지만 안해가 없는 빈 자리를 두고 고독과 그리움과 원망을 짓씹으며 떳떳하게 살아가는것이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다. 주변의 야릇한 눈총과 이름할수 없는 번거로움때문에 술자리를 전전하면서 몸을 혹사했지만 모든것은 바로 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는것도 뼈저리게 느꼈다. 더우기 문화사업 30여년과 잇닿은 55주세 이상의 로간부들을 돌봐준다는 특혜로 직무를 내놓고 사업의 제1선에서 물러나 “문화독찰부"라는 널다란 사무실에서 컴퓨터에 마주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것이 그처럼 어려울줄 몰랐다. 앞에 “전사” 한명도 없이 혼자 명령을 내리고 수행하는 끈 짜른 신세에 누구에게 부탁하고 애원하는것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였다. 흘러가는 세월속에 늙은 그루가 밀리고 새 그루가 산생하는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또 인지상정이라고 하지만 너무 가볍게 직무를 내놓고 사무실마저 바뀐후 궁지에 내몰린 쥐의 신세마냥 너무 “가련한 궁상”이였다. 누구 하나 관심하는이도 없고 “성 쌓다 남은 돌”마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무방한 관심밖의 사람으로 찍히는것이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이미 내놓은 직무를 다시 되돌려달라고 아우성칠수도 없고 또 탐욕스런 눈길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여기저기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욕심을 부릴수도 없었다.  “있을 때 잘 해!” 현직에 있을 때 한결 더 충실하고 열심히 일했을걸. 길은 마음과는 달리 너무나 비굴하게 현실의 상황에 좀 먹듯 길들여져가는 자기가 어찌보면 유충이 번데기로부터 나비로 되는것처럼 사람도 절대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다시 깨달았다. 하물며 꿈같은 20대의 활력으로  분투의 30대에서 고단한 40대로 과도하면서 성장의 50대를 금방 넘긴것 같은데 피곤한 60대에 무릎이 너무 쉽게 꺾이고 너그러이 받아들여지는것도 맘의 한계가 아니였다. 그러나 생기발랄한 젊음과 함께 우후죽순마냥 일어서는 신생력량을 받아들이고 본보기가 되여주는것도 발빠른 시대의 리념이 아니라고 할수 없었다. 길은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것에 도전하고 또 석양속에서 몸부림치는 태양의 빛갈도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와 너무 따스하게 느껴졌다. 길은 열심히 매일 출근하고 빈틈없이 사무실 청소로부터 시작하여 저녁 퇴근전까지 손님을 맞고 바랬다. 그는 후배들의 발전을 부추키며 진지하게 제2선에서 퇴직전의 과도기를, 석양의 꽃보라로 보기좋게 장식하리라 다지고 또 다졌다.   ㅡ 노   세상은 참말 뜻밖에 별스런 인연으로 만나는 경우가 있다. 화룡이라는 자그마한 현성에서 살다보면 스치는 우연이 인연이 되고 또 그 인연이 다시 연분을 만든다는 인생철학은 뻔한 손바닥 뒤집기였다. 그렇다면 이런 우연도 너무 자률적인 연분이 아닌가싶었다. 현대화한 교통수단인 자가용과는 거리가 먼 "출근족"으로 날마다 공공뻐스에서 붐비며 현실적인 “저렴”한 삶을 살아가고있는 길은 그날은 우연이였지만 너무 드라마틱한 인연이였다. 월요일이라 금방 주말을 보내고 맞는 첫 출근이여서 공공뻐스안은 여느날보다 더 붐볐다. 아침출근이 늦어서 급하게 승차한것이 항상 타던 3선 뻐스가 아니라 이외로 7선 뻐스였다. 길은 웬간해서는 7선 뻐스를 타지 않는다. 7선 뻐스의 도로 주변에는 시 7중과 실험소학교가 있고 룡성진정부와 검찰원 등 단위들이 자리잡고있기에 학생과 학부모와 서로 붐비기 싫었다. 그러나 전날 늦은 귀가때문에 아침에 겨우 일어나 급하게 씻고 아침밥도 거른채 부랴부랴 달려나오니 마침 마주오는 공공뻐스가 있는지라 선로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뛰여올랐다. 7월이라 삼복기간의 뻐스안은 말그대로 콩나물시루 같았다. 겨우 자리를 비집고 곧게 서서 앞을 응시하는데 이상한것이 눈에 띄였다. 40대중반의 거무틱틱한 남성이 웬 일인지 자꾸 이상한 몸짓을 하고있었다. 그런대로 승차한 손님이 많고 또 너무 비좁은 공간이다보니 서로 비비고 비벼댈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 남성에게서 눈길을 떼려는 찰나, 그저 지나쳐버릴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앞에 선 남성이 의식적으로 뻐스의 움직임에 따라 왼손으로 어깨에 맨 가방을 그러안고 오른손으로 뻐스통로의 가름대를 붙잡고 서있는 갱핏한 녀성의 탱탱한 엉뎅이에 넉가래같은 손바닥을 얹고있었다. “아니, 이런?!” 남성이 분명히 비좁은 공간과 뻐스의 움직임을 리용하여 손바닥으로 파아란 스커트를 입은 녀성의 팽팽한 엉뎅이를 어루쓸고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깨에 멘 가방때문에 왼손을 움직일수 없고 더우기 휘청이는 몸을 간신히 의지하면서 오른손으로 잡고있는 가름대를 놓을수 없었다. 길은 분명히 남성의 거무틱틱한 오른손을 보았다. 팽팽한 녀성의 엉뎅이에 접착제처럼 딱 붙어있었다. 순간 길은 입을 딱 벌렸다. “이럴수가?!” 길은 다짜고짜 녀성의 엉뎅이를 어루쓰는 남성의 오른손을 번개같이 비탈아쥐였다. “뭐하는 짓이야?!” 그때 녀성도 뻐스의 가름대를 붙잡고 섰던 오른손을 놓고 비좁은 공간에서 홱 돌아서며 뒤에선 남성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아가갸 이 손?!” 길에게 손을 잡힌 남성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넌, 뭐하는 자식이기에?! 이 손 놓지 못할가?!” 갑자기 그 남성이 오히려 길을 노려보며 무섭게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이 누구에게 협박이야! 비좁은 뻐스안에서 녀성의 엉뎅이나 만지는 주제에!” 길은 참을수가 없었다. “기사아저씨 여기 성폭행자가 있어요. 이 뻐스를 곧바로 공안국으로 몰아요.” 길은 그 남성을 꽉 잡은채 소리쳤다. 주위의 사람들도 경계하는 눈길로 그 남성을 아니꼽게 쏘아보았다. “넌 뭐야? 이 녀자의…” 순간 남성의 섬찍한 목소리를 누르고 녀성이 앙칼지게 내쏘았다. “내 남편이다. 왜?! 여보! 이런 놈들은 콩밥을 먹여야 해요! 기사아저씨, 어서요!  공안국으로 향해요.” 뻐스안이 대뜸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니, 나는 의식적으로 그런거는 아니고… 뻐스가… 뻐스가 너무 흔들려 앞에 있는 가름대를 붙잡는다는것이 그만… 저기 운전수량반, 차 세워요. 내리겠소.” 방금전까지 목청을 높이던 남성이 별스레 주눅이 들어 뻐스가 멈춰서기 바쁘게 밖으로 뛰여내렸다. “지금도 저런 한심한 자식이 다 있는감?!” “아직도 치안이 문제야!” “언제면 저런 물건들이 다 없어질거야?” 정말이지 오늘 용감한 시민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저 연약한 녀성이?” … 여기저기 중구난방 떠들어대는 가운데 뻐스는 다시 움직였다. 길은 실험2소의 뻐스역에서 내리려고 문가로 다가갔다. “저기, 여기서 내리시나요?” 방금전 곤혹을 겪은 녀성이 등뒤에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 네! 단위가…” 길은 말끝도 맺지 못한채 멈춰서는 뻐스에서 뛰여내렸다. “아니, 저도 여기서 내릴게요!” 녀성이 움직이려는 뻐스안에서 소리치며 길의 뒤를 따라내렸다. “저기요! 오늘 너무 고마웠습니다. 면목도 모르면서 이렇게 도와주시니깐요. 저는 민혜가도에서 사업하는 옥애, 김옥애입니다. 아까는 너무 급한김에 남편이라고… 용서하세요! 호호호!” 갑자기 녀성이 웃음소리를 낮추며 빨갛게 얼굴을 붉혔다. “아니, 뭐?! 시문화중심에서… 음악을… 길이라고…” 길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알았어요. 부득이한 우연이 인연으로 되였으니 이제부터 이 인연이 다시 연분으로 된다면 꼭 언제든지 만나게 되겠죠…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그녀는 급급히 돌아서는 길에게 한사코 허리를 꺾었다. 길은 그녀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파아란 스커트에 연분홍 짧은 적삼을 받쳐입은 녀성은 얼핏 보아도 50대의 농익은 아낙네였다. “아니요. 저 출근시간이 급해서요. 그럼 후에…” 길은 녀성의 쌕쌕한 음성의 야릇한 파음을 뒤에 달고 길을 건너 시문화중심의 고층건물을 향해 부랴부랴 뛰여갔다. “그럼 후에…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해요.” 건너편에 당혹한 얼굴로 서있는 그녀는 길을 향해 웨쳤다. 길은 급하게 뛰여가면서도 길건너편을 바라보았다. 파아란 하늘아래 선 그녀의 모습이 유표하게 안겨왔다. 그녀가 입은 파아란 스커트에 받쳐입은 짧은 연분홍 적삼이 해빛에 반사되여 한송이 빨간 목련화로 피여 너울너울 춤을 추고있었다…   ㅡ 희   길은 비암산으로 가는 뻐스역에 서있다. 길은 7선 공공 뻐스에서의 인연으로 김옥애를 만난후 주말마다 위챗동아리들과 어울려 외로움을 달래며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있었다. 길이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의 제2선에 내몰린분들과 사회구역에서 제2의 직업을 찾아 퇴직휴양을 준비하는 퇴직직전의 사람들이였다. 그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화기애애하고 삶의 희열로 끓어넘치는 준비된자의 포만한 분위기였다. 길은 웃음을 선사하는 이 사람들과 어울려 하나의 동아리로 “단짝”이 되였다. 석양의 노을빛 이슬로 물들어가는 사람들이라 지난 삶의 사업터에서 쌓아온 스트레스를 자기의 몸건강으로 대체하기 위하여 주먹을 불끈 틀어쥔 도전자들이였다. 길도 이젠 저도 모르게 월요일의 첫 출근부터 다가오는 주말을 생각하게 되였고 또 주말을 어떻게 즐기려는가를 고민하면서 수시로 쉽게 터뜨리는 위챗에서 반짝이는 파아란 불빛을 은근히 기다렸다. 그룹위챗의 이름은 “노란 해바라기”였다. “어서 오세요! 작곡가님이 오시니 우리 모임이 한결 더 밝아지는것 같네요.” 김옥애가 환하게 웃으며 멀리에서부터 손을 흔들었다. 길도 머리우로 손을 흔들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과의 만남이 다가오는 퇴직휴양에 너무나 아름다운 희망과 즐거움을 선물하는 “매치의 선물”인듯 싶었다. 길은 갑자기 아침에 보았던 위챗의 파일 “뛰는 놈위에 나는 놈, 웃기는 진실 10가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는 인생에서 웃음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또 진귀한 삶의 “명약”인가를 다시 한번 찬탄하며 “노란 해바라기”의 그룹에서 한껏 웃고 즐기는 동아리들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다그쳤다…     2016년11월24일 두만강 제92기에 발표.
17    웃음전도사 최중철과 홍미옥의 이야기 댓글:  조회:576  추천:0  2017-07-03
실화 웃음전도사 최중철과 홍미옥의 이야기   ㅡ중국 조선족 “삼로인” 성급 전승인   도  영     2월의 거리는 아직도 해동의 봄추위가 쌀쌀하게 맵짠 바람을 일으키며 길가에 나선 사람들의 외투깃을 치켜세우게 만든다. 금방 립춘이 지나서인지 아침녁 골목길마다 서리가 하얗게 깔렸다. 예로부터 “봄추위는 여우도 눈물흘리게 한다”고 한다. 그만큼 봄추위는 해동의 마지막 기운으로 탱탱 소리치며 길게 잠을 자던 겨울의 꿈을 봄자락으로 살며시 품는 매서움이 있었다. 음력설과 정월 대보름을 맞으며 사람마다 명절의 즐거움을 안고 나들이에 한창일 때 이 글의 주인공은 오늘도 봄샘을 타는 새벽추위속에 “문화혜민직통차”와 더불어 남평진 고령촌 농촌순회온돌공연에 나섰다. 작달막한 키에 부리부리한 두눈, 봄추위에 얼굴이 가무스레 타 한결 다부지게 생긴 50대의 사나이, 차에 오르는 배우들을 지휘하며 공연에 필요한 소도구며 음향설비를 싣고있는 사나이, 그가 바로 화룡시문화관의 업무관장이자 국가2급배우인 최중철씨이다. 1960년 5월29일, 화룡시 팔가자진 상남촌의 한 빈한한 농민가정에서 7남매중 여섯째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형님,누나들과 더불어 쬐꼬마한 종주먹에 호미자루와 낫자루를 익혀왔다. 지난세기 60년대는 농민들마저 근근득식으로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살기 힘든 시기였다. 그는 형들의 퇴물림 옷가지를 주어입고 형들의 읽지 못한 책들을 빼놓지 않고 읽으면서도 도시인으로 탈바꿈할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 속에는 수많은 장벽이 가로막혀있어서 중학교를 졸업한후 부득이 호미자루와 낫자루를 잡지 않을수가 없었다. 혈기왕성한 20여세 청년의 앞길에는 항상 도시와 농촌이라는 넘을수 없는 장벽이 높직이 솟아있었고 직업과 직업간의 차이가 너무나 먼 심연속의 거리로만 느껴졌다. 애타는 가슴앓이도 소용없었다. 이미 몇몇 형들과 누나들이 출가했는지라 집안의 주요로동력은 자신 밖에 없음을 최중철씨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것이다. 당시 개혁개방의 물결과 더불어 지난세기 80년대 중반부터 팔가자진 여러개 촌에서도 구역별로 호도거리 생산책임제를 실시했다. 최중철씨 가정에도 몇뙈기의 수전과 한전이 차려졌다. 하지만 그의 머리속에는 항상 학창시절에 다 읽지 못했던 책들과 이루지 못한 꿈이 떠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그의 꿈은 다른 이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줄수있는 연극배우였던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농촌에서는 영화 한편 방영하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진 정부의 영사대를 기다리는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연극을 직접 창작하고 연출하는 수 밖에 없었다. 최중철씨는 렬악한 농촌생활에서 활기를 찾은듯 자신의 모든 심혈을 연극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여린 손바닥에 호미자루, 낫자루를 익히던 그가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동네 친구들을 동원하며 하나 또 하나의 연극작품을 만들어냈다. 마을에서는 선비가 나타났다고 환호했고 최씨집안에서는 가문에도 없던 “연극쟁이”가 출마했다고 즐거워하였다. 1988년, 전 시”3.8”맞이 문예경연이 화룡시영극원에서 펼쳐지게 되였는데 최중철씨의 연극소품 “누구의 탓인가?”가 팔가자진 상남촌을 대표하여 참가하게 되였다. 예로부터 근면한 노력의 뒤에는 항상 행운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번의 문예경연에서 최중철씨의 작품은 대뜸 인기작으로 각광받았고 표현상, 연출상 등 각종 상을 받아안게 되였으며 행운의 실마리가 길게 늘여졌다. 무대아래에서 조용히 연극을 관람하던 당시 장룡철 시장과 김흥빈 국장(시문체국)은 그를 화룡시예술단의 구연배우시험에 추천했다. 면접을 비롯한 여러 절차의 시험에서 최중철씨는 단연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되였다. 드디여 자기의 다년간의 소망을 이루게 된것이다. 1989년 5월, 최중철씨는 화룡시예술단의 구연배우로 정식 입사하게 되였다. 29세의 열혈청년에게는 광명의 불길이 되였고 그렇게 그의 예술인생이 탄생되였다. 최중철씨의 지난 30여년 예술인생을 뒤돌아보면 남들에게 웃음과 쾌락을 선물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예술적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한 시간들이였다. 그는 입사 첫해인 1989년부터 화룡시예술단의 60여년의 전통인 소분대온돌공연에 참가하여 해마다 화룡시의 산간벽지를 다니며 100여차의 공연과 30여차의 위문공연에 참가하였다. 최중철씨가 무대에서 한 주요 공연은 바로 2008년 6월 성급무형문화재로 확정된 중국 조선족 “삼로인”과 2006년6월, 주급무형문화재로 된 “늙은 량주 대창”이다. 화룡시의 조선족 “삼로인”은 이른바 세 로인이 정면, 반면, 중간부류로 구성되여 하나의 극을 형성하는 구연종목이지만 “늙은 량주 대창”은 말 그대로 늙은 량주의 이인창으로 되는 종목이다. 최중철씨의 “늙은 량주 대창”을 론하려니 부득불 아니, 불가항력적으로 최중철씨와 “파트너”로 함께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게 되는 화룡시문화관의 구연배우 홍미옥씨를 소개하지 않을수가 없다. 홍미옥씨는 화룡시 용화향 광덕촌에서 1970년3월21일, 아버지 홍금산과 어머니 강금녀 사이에서 1남2녀중의 막내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술적 재능을 선보이며 집안내의 크고작은 명절과 모임에서 노래도 잘 불렀고 나비같이 춤도 잘 추었다. 영화배우가 되는것이 꿈이였지만  가난한 집안사정은  수시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장기환자나 다름없는 년로한 부모님이나 오빠와 언니에게 손을 내밀고 공부할수 있는 여력도 없었다. 대학입시에서 624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따냈음에도 대학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 절망할수도 있었지만 남달리 총명하고 쾌활했던 그녀는 다시 희망을 꿈꾸며 일어서기로 했다. 그녀는 현실에 적응하고 사회에 나와 자기만의 길을 모색하면서 어려운 집안살림을 도우려고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험한 사회 사회생활은 나약한 녀자들이 쉽게 헤쳐나아갈수 있는 순탄지대가 아니였다. 그녀가 기로에서 헤매일 때 홍미옥씨의 중학교담임이였던 김철수교원이 뜻박에 도 그녀를 찾아왔다. 여러모로 수소문한 끝에 룡성향 천수촌의 한 과수막을 지키고있는 홍미옥씨를 찾은것이다. 당시 김철수교원은 복동중학교에서 화룡시직업고중으로 전근하여 음악교원으로 사업하였다. 학교시절부터 공부에 열중하고 너무나 똑똑하고 노래 잘 부르던 그녀였던지라 김철수교원은 홍미옥씨가 다시 학업을 잇도록 편리를 도모해주었다. 그리하여 홍미옥씨는 김철수교원의 적극적인 지지와 도움하에 다시 학업을 견지하게 되였다. 1993년, 화룡시직업고중 유사반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홍미옥씨는 다양한 음악과 노래공부에 열중하였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대로 과감하게 가수로서의 도전장을 내들었다. 그렇게 처음 취직한 곳이 바로 화룡 나이트클럽의 밤무대였다. 밤무대가수로 살아가던 와중, 우연한 기회에 화룡시예술단에서 배우들을 모집한다는 소문을 접한 그녀는 본때 있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홍미옥씨는 1995년5월에 화룡시예술단의 면접과 시험을 거쳐 정식으로 가수의 인생을 살게 되였던것이다. 동년의 푸른 꿈이 드디여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셈이였다. 예술인의 길은 부러움의 감탄사만이 아니였다.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된 수많은 순회공연에 지칠대로 지쳤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훌륭한 가수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경주했다. 지난 90년대말에는 다양한 기구개혁과 인원감소때문에 화룡시예술단도 여러 직종의 배우들이 결핍한 연유로 여기저기에서 이른바 배우들을 “빌려쓰기”라는것을 하게 되였다. 홍미옥씨는 지금도 그때의 그 일들을 회상하며 소박하게 웃는다. “97년도 가을이였어요. 외지공연을 가려고 하는데 소품배우가 없었던거얘요. 그때 저도 연극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련습장에 들어서니 최중철씨가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 눈길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때부터 이미 ‘짝꿍’, 아니 ‘파트너’로 될 인연이였던가봐요. 최중철씨는 저한테 다가와 연극대본을 주면서 용기 있으면 한번 읽어보고 도전해보라는거얘요. ‘등기전 결혼’이라는 소품이였는데 저는 그 역에서 갓 결혼한 아니, 결혼하고도 혼인등기를 하지 않은 녀인의 역을 맡게 되였지요 그 작품이 그해 길림성이인전소품경연에서 표현1등상을 받으면서 저는 최중철씨의 인정을 받고 가수로부터 일약 소품배우로 탈바꿈하여 노래도 부르고 구연종목도 연출하게 되였어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최중철씨와는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무대부부’로 널리 알려지고있답니다.” 국가2급배우인 홍미옥씨는 자체로 창작하고 연출까지 도맡는 최중철씨의 곁에서 항상 첫 독자이자 “파트너”였고 무대에서의 “짝꿍”이였다, 또한 작품의 미세한 부분마저 옴니암니 의견을 나누며 작품표현예술의 질을 추구하는 훌륭한 벗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대에 올라서기만 하면 서로의 지나가는 눈길에서도 다음에 나올 동작 하나하나까지 알수가 있다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동료의 정을 쏟아가고 있다. 최중철씨와 홍미옥씨는 몇년째 선 보이던 극작품을 올해에도 어김없이 연변음력설야회에 출연시켜 관객들에게 신선한 명절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최중철씨가 지난 20여년동안 자체로 창작하여 홍미옥씨와 함께 무대에 올린 “조선족 “삼로인”을 비롯한 극 작품과 “늙은 량주 대창”은 무려 160여편(수)에 달한다. 최중철씨와 홍미옥씨가 함께 출연한 작품들가운데서 “또 틀렸군!”,”꿩먹고 알먹기”, “병아리사건” 등 우수한 작품들은 성, 주의 여러가지 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안아오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길림성 제1기 이인조 희극소품 예술절경연에서 소품 “녀인”이 1등상, 길림성 문화(예술)관 간부업무경연에서 소품 “진심”이 표현1등상과 창작우수상, 전 주 개혁개방30주년기념문예회연에서 소품 ”보톨이 꿈”이 표현1등상과 창작상, 전 주 렴정건설문예경연에서 “행복한 만년”이 표현2등상 등 상을 백여차례 수상했다. 그리고 최중철씨는 지난 몇년간 해마다 시문화계통의 우수공산당원, 선진사업일군으로 당선되였고 2011년6월에는 전 주 무형문화재보호사업일군 ”선진사업일군”으로, 2015년12월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문학예술계련합회에서 조직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제6차 중청년 (덕예겸비) 문예일군”으로 표창받기도 했다. 이처럼 최중철씨와 홍미옥씨는 화룡시문화관의 구연배우로써 자신들의 일터에서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그들은 화목한 가족이 있어 늘 든든하다고 한다. 최중철씨의 안해 리선자씨는 얼마전까지 출근하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아예 가정주부로 되여 두 아이의 엄마로, 내조의 녀왕으로 집안내의 뒤일을 모두 도맡으면서 남편이 보다 훌륭한 작품을 내놓고 많은 관중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선물할것을 바란다며 입가에 연한 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최중철씨의 큰아들 최삼은 화룡직업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취업준비에 서두르고 있고 작은 아들 최민호는 화룡시 신동소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홍미옥씨의 남편도 역시 안해의 훌륭한 내조자가 되여주고 있다. 현재 화룡삼림지구법원의 부원장으로 사업하는 남편 박춘일씨는 드바쁜 사업일정이여도 안해가 하는 예술사업을 그처럼 열심히 지지하고 말없이 적극 도와주고 있다. 아들 림걸은 현재 남경경찰학교의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처럼 훌륭한 경관이 되는것이 꿈이였지만 현유의 여러가지 모험중에서 또 국가 공무원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정유년 붉은 닭의 홰치는 소리와 더불어 한해가 서서히 깃을 펴기 시작했다. 막 고동을 울리는 정유년 2윌의 나루터에서 곧 출항을 알리는 행복한 웃음전도사 최중철씨와 홍미옥씨의 자랑차고 활기 띤 미래의 모습을 다시 한번 기대한다.     정유년 2017년 2월19일         ㅡ 웃음전도사 최중철과 홍미옥의 이야기 ㅡ   2017년 4월 제2호에 발표.
16    석양노을에 칠색무지개를 그려가는 우리 말 노래선생 댓글:  조회:419  추천:0  2017-06-27
〔실화문학〕 석양노을에 칠색무지개를 그려가는 우리 말 노래선생   도 영   붉은 닭의 기운을 받은 정유년의 봄은 태동하는 겨울의 한기를 털고 한결 화려하고도 싱싱한 계절의 모습을 선물한다. 새봄과 더불어4월의 첫 주말을 맞으면서 찾아간 곳은 바로 화룡시 문흥사회구역에 자리잡고 있는 로인대학 노래말교실이였다. 화려한 날씨 만큼이나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운 로인대학 고령의 “학생”들을 마주하고 보니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어올랐다. 석양에 저물어가는 인생을 우리 말 노래로 화려하게 그려가는 그들의 즐겁고 희망찬 삶에 박수갈채를 전하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엮어본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노래선생이자 우리에게는 아들같고 사위같은 친절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화룡시로인대학 우리 말 노래선생인 로창선씨를 두고 아버님, 어머님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찬사의 말씀이다. 화룡시 룡성진 천수촌에서 4형제중 막내로 태여난 로창선씨는 어린시절을 농사짓는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했다. 1982년, 줄곧 반장으로 해마다 3호학생의 영예를 안는 모범생이였지만 가난했던 집안사정에 못이겨 결국은 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를 지을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어깨가 부서지도록 농사일을 하면서도 4촌형이 부는 클라리네트의 부드러운 연주소리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힘이 불끈불끈 솟았고 피곤도 말끔히 사라지는것만 같았다. 더우기 마을의 청년들로 무어진 문예선전대의 흥겨운 손풍금소리는 금방 학업을 중퇴하고 농사일에 손을 굳혀가는 그의 가슴에 일종의 형언할수 없는 즐거움과 쾌락을 안겨주었다. 당시80년대는 피끓는 청춘들 속에서 때늦은 학구열과 열정을 안고 “문학도”의 다재다능을 뽐내는 사람들이 륙속 두각을 드러내면서 용솟음쳐나왔다. 로창선씨도 그중의 한명이였다. 1982년 화룡시문화관에서 조직한 “천리봉”문학창작학습반에 참가하면서 “문학도”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장백산”과 “연변문예”잡지사에서 꾸리는 문학창작학습반에서도 작가의 소중한 꿈을 키운다. 물론 작가로서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피타는 노력과 분투의 결실로 로창선씨는 1986년 “연변일보”에 벽소설 “그 녀인의 눈물”을 발표하게 되였다. 끊임없는 도전은 한 문학도에게 불타는 희망과 승리의 희열을 안겨주면서 점차 농촌생활에 재미를 붙여주었다. 그때로부터 로창선씨는 다량의 독서를 하고 여러가지 문학창작학습반에 참가하면서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꽃피워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마을선전대의 최치봉에게서 손풍금도 배우고 나름대로 작곡학습에도 정진한다. 1985년, 룡성진 3.8절농촌문에경연에서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 “시대는 우리시대 미래는 우리미래”가 천수촌을 대표하여 우수상을 받았고 나아가서 그해 화룡시 5.4청년절 맞이 농촌문예경연에서 단연 1등의 영예를 안아왔다. 시작은 희망을 키우고 희망은 영예의 꽃다발속에서 무르익는다. 로창선씨의 꿈도 나날이 무르익어갔다. 이듬해인 1986년, 화룡시농촌문에경연에서 현규동 작사 로창선 작곡으로 된 노래 “청춘챠챠챠”가 또 한번 1등의 월계관을 안아오면서 그의 삶에도 전환이 찾아오게 되였다. 화룡시문화관의 주목을 받으며 농촌문화사업란에 버젓이 이름을 올리게 되였다. 시문화관 사무실주임이자 작가인 손창렬선생의 적극적인 지지를 딛고 평범한 사내는 드디여 농촌생활의 푸르른 전야를 떠나 1987년 7월, 룡성진문화소에 입사하여 인생의 이색적인 코스에서 새로운 스타트를 떼게 되였다. 말 그대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리고 기회는 근면한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법이다. 1989년 7월,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 통신학부를 졸업하면서 더욱 튼튼한 토대를 쌓았고 또 수많은 영예를 축적해놓았다. 꾸준한 노력과 치렬한 근면으로 로창선씨는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한우물을 파면서 자습으로 문학의 벽을 두드렸고 또 고학으로 음악의 쾌청한 종소리를 울리면서 진정한 문화인으로 성장하고 훌륭하게 사업했다. 그는 해마다 문화선진사업일군으로 선정되였고 2009년 화룡시 건국 60주년 합창콩쿠르에서 룡성진대표팀으 합창 “오늘 그대의 생일”이 1등상을, 1995년 1월 단편소설 “달빛아래 눈물”이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의 창작 2등상을, 아동가요창작가요제에서 “철새야 날아라”가 창작1등상을, 2001년, “우리네 동산” 제6회 창작동요제에서 동요 “별을 세는 소녀”가 최우수상을, 2016년 제12회 중국조선족청소년음악제에서 동요 “푸른 나무 춤을 춰요”가 우수상을 받는 많은 영예를 안아왔다. 뿐만 아니라 2010년 12월,길림성문화청으로부터 길림성농촌문화원건설사업 선진사업일군으로 표창받았으며 2010년부터 련속 4년간 화룡시 “우수공무원”으로 선정되였고 3등공 1차까지 기입받는 영광까지 창출해냈다. 2009년에는 룡성진에 진달래전자악단을 창설하고 인재발굴과 육성에 모를 밖고 훌륭한 음악일군을 창출해내기도 하였다. 이 진달래전자악단은 2010년 길림성농촌문에경연대회에서 2등의 영에를 따냈을 뿐만 아니라 이듬해 길림텔레비죤 향촌프로그람에 초청되여 공연하는 영광도 누리였고 또 리홍철(훈춘시문화관 드럼연주자), 김강(화룡시문화관 트롬본연주자), 임영권(룡정시문화관 트롬본연주자) 등과 같은 훌륭한 연주자들을 육성해내여 각지에 수송하기도 하였다. 2014년11월, 로창선씨는 사업의 수요로 화룡시문화관의 부관장으로 전근하면서 그야말로 본격적인 문화인으로 거듭나게 되였다. 2015년 “중국-화룡 제7기 장백산진달래국제문화관광절”을 맞으며 한국의 영산줄다리기보존회와 손잡고 조선족민속문화의 유지를 계승, 고양하는 중국 연변 첫 진달래줄다리기 대형활동을 총지휘하여 원만한 성과를 거둔것이다. 그의 뛰여난 지휘력은 화룡시 정부와 시문화관광국의 한결같은 찬양을 받았고 국내외 수만명 관광객들의 절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처럼 수두룩한 영예와 명예 속에서는 로창선씨만의 아픔도 내재되여있다. 드바쁜 사업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림종도 지켜보지 못한 불효를 “연변일보”에 발표한 수필 “엄마의 동전소리”에서도 절절하게 로출하고 있다. 로창선씨는 지난 2007년부터 과외로 로인들의 문화회관에 노래교원으로 다니면서 비교적 쉬운 노래들을 선택해서 자신이 직접 전자풍금을 연주하면서 배워주고 있다. 2013년부터는 화룡시로령위원회 김화 주임의 요청을 받아 문화회관의 과외선생으로부터 화룡시로인대학의 전업적인 노래말선생으로 등단하게 되였다. 로창선씨는 지난 5년동안 “일소 일소 일로 일로”, “고향으로 오세요”, “내 나이가 어때서”, “즐거워라 노래교실” 등 150여곡으로 된 우리 말 노래를 배워주면서 로인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을 선택하여 두시간씩 배워주는 노래말 시간에는 항상 120여명의 학생들이 좌석에 “꽃밭”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옷단장들로 울긋불긋 화려하게 피여나는 화원을 자랑하듯 꽉 찬 좌석을 바라볼 때가 너무나 감명깊다는 로창선씨, 그만큼 한번이라도 빠질세라 꼭꼭 등교하는 “학생”들이 “귀여워” 어떤 일이 있든지를 막론하고 5년동안 노래말강의시간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노래말교실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모두 어머님들이다. 그리하여 해마다 “3.8절”과 “8.15로인절”에는 학생들에게 소중한 다과모임을 마련해주어 노래말선생으로서의 자식된 도리를 참하게 하고 있다. 올해에도 노래말교실의 120여명의 학생들과 더불어 보름맞이 오락활동을 조직하고 연출하기 위하여 자기의 여유롭지 못한 호주머니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비록 큰 선물은 아니지만 로인들이 명절의 기분을 안고 만년의 행복을 만긱하는 모습을 보는것이 너무 뿌듯하다. 또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들에게 하지 못한 효도이기도 하다”며 덧붙였다. 지금 로창선씨는 “기러기족”으로 살면서 소학교6학년에 다니는 딸애와 함께 장인, 장모를 곁에 모시고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있다. 일찍 하늘나라로 간 부모님들에게 하지 못한 효도를 장인, 장모에게 쏟으며 “로인을 존중하라”는 신조로 오늘도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처럼 로인들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것은 우리 시대의 념원이고 또 우리가 후대들에게 기리는 영원한 바람이 아니겠는가?! 노래말 교실의 박금옥, 문분옥 회장과 권경숙, 김채순, 류청자 등 어머님은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세상에 로선생같은 분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매번 노래를 배워줄 때마다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열번 물으면 열번, 우리들이 리해하고 넘어갈 때까지 차근차근 알기 쉽게 배워줍니다. 그리고 명절 때마다 사탕, 과자 등을 사가지고 로인들에게 명절의 인사를 드리는것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해 로선생이 연변병원에 입원했을 때 위문을 가려고 했지만 그러면 다시는 노래를 배워주지 않겠다는 엄포에 위문도 못가보고…” “올해는 년초부터 로인들에게 보름맞이 문에오락활동도 조직해주고 정말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노래말교실에서 새롭게 젊음을 찾고있습니다. 로선생은 황혼에 저물어가는 우리들에게 살아가는 희망을 즐겁게 키워주는 사람입니다.” “집에 장인과 장모가 계시지만 우리들에게는 매주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노래말 선생이자 또 아들같고 사위같은 사람입니다.” 그렇다! 나는 보았다. 해가 지는 석양노을에 빨갛게 비껴가는 아름다운 칠색무지개를! 그리고 그 무지개다리 우에서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해가는 어머님, 아버님들의 환하게 웃으시는 즐거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담담하게 웃음으로 자리를 지켜가는 로창선씨를!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로인을 존중하고 어린이를 사랑해왔으며 언제나 찰떡같이 뭉치는 고유한 민족전통을 천직으로 여겨왔다. 나는 로창선씨의 새로운 모습을 또 한번 기대해본다. 물론 그가 꿈꾸고 있는 “로인합창단”과 10월8일, 화룡시로인대학 설립 10주년을 맞이하는 “노래교실음악회”가 성공적으로 펼쳐지기를 기원하면서 황혼에 저물어가는 인생에 아름다운 칠색무지개를 그려가는 1964년생 룡띠 사나이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2017년4월8일   ㅡ 석양노을에 칠색무지개를 그려가는 우리 말 노래선생 ㅡ 2017년6월 제3호에 발표.
15    세월의 그림자 댓글:  조회:453  추천:0  2017-06-12
세월의 그림자 □ 도 영 2017-06-08 14:49:29 갑작스레 몰려드는 추위때문에 20여년전에 입다가 궤 속에 넣어두었던 낡은 라사천외투를 꺼냈다. 궤 속에서 쭈글쭈글 볼품없이 구겨지고 퇴색한 외투는 오래동안 외면을 당하더니 한결 초라하게 낡고 어두운 색상으로 지난날의 삶을 눈 앞에 그려왔다. 몇년 전, 한국으로 떠난 안해가 집에 있을 때는 좀체로 입지 못하게 하던 외투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년이나 걸쳤으면 강산도 두번이나 변했을라니 이젠 이처럼 낡고 구겨진 지저분한 외투는 벗어두라는 것이였다. 그렇게 되여 여직 이불장의 침침한 나무궤 속에서 가볍고 서늘한 양복과 깃털 등산복의 멸시를 받으며 맨 밑퉁이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새삼스레 낡은 옷에 대한 집착을 되살리는 내가 야속스럽다. 그러나 낡은 옷을 눈 앞에 두고 바라보는 내 마음이 불현 듯 20여년을 거슬러 처음으로 화룡이라는 시가지에 발을 들여놓고 안해와 함께 새 살림을 꾸려가며 보듬어온 즐거움이 하나의 드라마 각본마냥 가슴에 와닿는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갓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던 탓에 남의 세방살이를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이였지만 마냥 즐거웠고 행복했었다. 또한 날마다 웃음과 환락을 안겨주는 귀염둥이 아들애가 태여나면서부터는 고된 로동의 허탈 속에서도 피곤이란 뭔지 모르고 살 정도였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을 남의 세방살이로 전전긍긍했다. 참말이지 이사만도 열번을 했었다. 세방살이를 하면서 제일 서러운 것은 아무때고 방을 빼라는 집 주인의 독촉소리이다. 그 땐 집없이 사는 서러움보다도 ‘방을 빼라’는 그 말이 어쩌면 그토록 가슴이 시리게 맺혀오던지? 지금도 안해는 가끔 ‘궁궐’ 같은 집에서 ‘호강’하는 오늘의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은 그때의 집 없이 남의 세방살이를 살면서 쌓아온 보귀한 재부, 즉 없이 사는 가난 속에 생활의 진실을 참답게 인식하고 삶을 올곧게 지켜왔기 때문이라며 부드럽게 웃는다. 다섯번째 세방에서 있은 일이다. 단위의 재무일로 며칠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한 여름 갓 돌이 지난 아들애를 업고 땀발을 쏟던 안해가 갑자기 쿨적쿨적 울음보를 터뜨렸다. “왜 인제야 왔어요? 전기세도 물지 못해 전기까지 끊겼어요.” “뭐라오? 그럼 집주인도 모르쇠를 댔단 말이요?” 나는 머리 우로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남의 세방살이를 한다고 집주인마저 모른다고 하는 몰렴치한 행동에 그날로 이사짐을 꿍졌다. 세방살이의 곤혹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토록 렬악한 환경 속에 남의 세방살이를 살면서도 아들애를 키웠고 또 남들에게 흔치 않는 우리들만의 재부- 즉 가정생활의 행복을 쌓았다. 마지막이 되는 아홉번째 세방에서 우리는 세방살이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아름답게 그렸다. 집이 어찌나 헐망한지 한 여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집안에서도 똘랑똘랑 여기저기 비물이 샜다. 그러면 아홉살을 금방 잡은 아들애가 생수병을 들고 다니며 비물을 받는다고 꺄르르 웃음의 동화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나와 안해도 여기저기 비물이 새는 자리를 옮겨가며 몇개 안되는 소래와 작은 양재기까지 동원해가면서 아들이 만들어가는 동화에 아름다운 색감을 얹어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온 집안에 웃음꽃이 피여나는 날이였다. 대야는 물론 크고작은 생수병까지 동원해가며 집안의 비물을 막으며 심어온 하나의 가족이라는 그 아름다운 에피소드야말로 남들의 부러움을 자아낼만한 소중한 추억이 아니였을가?! “여보, 이제 당신이 퇴직하면 우리 ‘이사짐회사’나 꾸리지 않겠어요? 당신은 이사바람에 지쳤어도 저는 ‘이사짐’운반에 이골이 텄나봐요? 그처럼 신물이 나던 세방살이였어도 그 세방을 살았기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감수할 수가 있지 않았을가요?!” 안해는 가끔 지금의 화려하지도 않고 평범한 단층 54평의 자기 집을 가지고 사는 작은 행복에도 만족해서 소담한 웃음꽃을 피우군 한다. 갑작스레 낡은 옷을 꺼내놓고 괜스레 지난 세방살이를 재현시켰으니 웃음이 불쑥 나온다. 하기야 이 라사천외투는 그때 공장에서 판매한 비닐주머니 값 대신 받아온 물품이였다. 하여 로동자들에게 하나에 20원씩 받고 주었던 것이다. 20원짜리 낡은 외투, 기업에 출근할 때는 언제나 나의 몸에 입혀져 겨울을 따스하게 지켜주었었다. 그 후 내가 전근을 하면서 문화인이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였는데 그때부터 라사천외투는 겨울이면 하냥 궤 속에 누워서 ‘구겨진 력사’를 지켰다. 조심스레 몸에 껴입으니 너무나 포근하였다. 비록 20여년 세월의 흔적에 닳고닳아 팔소매가 반들거리고 보들보들한 라사천의 털들이 얇다랗게 변하였어도 너무나 따스했다. 하기야 깃털 등산복에 비하면 무겁고 칙칙하게 안겨드는 색바랜 외투가 너무나 볼품없고 천하게 보이였지만 나에게는 지나온 20여년의 력사를 새긴 한장의 그림과도 흡사했다. 어쩌면 오늘의 나로 설 수 있은 것은 모두가 지난날의 없이 살면서 느낀 생활의 진정한 철리와 있는 자의 부(富)와 없는 자의 부(富)를 가슴깊이 느꼈기 때문이 아닐가?! 문득 낡은 라사천외투를 상대로 자기만의 하찮은 추억 속에서 이제 걸어가야 할 길의 굴곡과 허망한 소용돌이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없이 살 때의 그 건전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쌓은 생활의 지혜로 소용돌이 치는 급류도 헤쳐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것 같다. 남들처럼 화려한 문화주택의 사치를 느끼지는 못했어도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행복을 만족으로 가진 것 하나 없이 추수에 몸을 떠는 가을나무마냥 한껏 욕심을 버리고 겨울의 차가운 땅 속에서 래년봄의 해동을 기다려 다시 새움을 틔우며 여름의 푸르름을 장식하는 나무들처럼 남들에게 주는 것을 사랑으로 행복으로 알고 살 것이다. 나는 궤 속에서 주글주글 구겨진 낡은 라사천외투를 구들 한가운데 놓고 다리미를 꺼내 곱게 다렸다. 황홀하게도 다리미가 지나가자마자 구겨진 주름살은 간 곳 없고 쪽 몸매를 빼는 새 라사천외투가 탄생했다. (그래, 래일부터는 이 라사천외투를 입고 출근할 거야! 나의 지난날의 행복을 쌓아주고 오늘의 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항상 지켜주고 몸을 덮혀준 외투!) 나는 낡은 라사천외투를 곱게 다리미질하여 옷걸이에 걸어놓았다. 한결 빳빳해진 모습으로 깃털 등산복의 곁에서 새롭게 싱싱함을 나타나는 외투를 보며 나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이제 안해가 돌아오면 얼마나 행복해하랴? 비록 지금까지 ‘출국가족’성원으로 외롭게 집을 지키고 있지만 안해와 함께 지난날의 고역을 이겨온 낡은 외투가 있다는 것이 하나의 그리움이 되여 안해와 나누던 사랑을 되새겨주는 것 같아 너무나 기쁘다. 나는 옷걸이에 걸린 낡은 외투를 쳐다보며 래일의 출근길을 상상했다. 마치도 10년, 아니 20년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밥곽을 마련할 쌀밥이 없어 안해와 함께 강냉이국수를 도시락으로 사들고 출근하던 고난의 길, 겨울철 언 동태 한마리 사들고 돌아와 토막토막 끓여놓고 즐겁게 웃음을 토하던 가족사랑, 파산을 선고한 기업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저 입에서 침방울이 떨어지기 바쁘게 얼어터지는 엄동설한에도 목재판에서 통나무를 굴리던 일, 비가 새는 세방에서 안해와 아들과 함께 온갖 잡동사니로 비물을 받으며 환락으로 들끓던 추억의 에피소드… 그 것들은 모두다 오늘의 행복한 삶을 장식하는 가족사랑의 인테리어가 아니였을가?! 낡은 외투, 그 것은 결국 우리 가정에 가져다 준 행복의 상징이였다. 아니, 래일의 분투를 위해 독촉하는 지난날의 교훈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흘러간 세월에 담긴 한장의 황홀한 ‘흑백그림’이였다. 연변일보 6월9일 해란강부간
14    흰구름을 주름 잡는 로야령의 적색사나이 댓글:  조회:492  추천:0  2017-06-07
[실화] 흰구름을 주름 잡는 로야령의 적색사나이   도  영   백설이 뒤덮힌 천혜의 산, 그 산줄기를 타고 갸름한 어깨에 무거운 촬영장비를 둘러메고 흰구름을 주름 잡아 기복이 완만한 장백산맥의 매 하나하나의 작은 골짜기마저 놓칠세라 두눈에 정기를 모아 산천을 누비는 로야령의 적색사나이가 있다. 그가 바로 화룡시촬영가협회 주석, 연변촬영가협회 부주석, 길림성촬영가협회 리사, 중국촬영가협회 회원으로 있는 중국농업은행길림성분행화룡시지행 사용호부 산품경리로 있는 리춘선생이다. 리춘선생은 1961년1월12일 화룡시복동진에서 4남매중 맏이로 태여나 복동진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구호를 높이 웨치며 조선전장에 참녀했다가 제대하여 복동진농촌합작사의 직원으로 사업했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1979년 복동진농촌합작사의 직원으로 채용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경영하는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도와 여러가지 허드레일들을 해오면서 눈에 익혀온 사진사의 꿈은 할아버지의 강경한 반대에 무산되고말았다. 그러나 리춘선생은 줄곧 포기하지 않았다. 용기와 포부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리게 되는법이다. 어두컴컴한 사진관 암실, 약물속에서 한장 한장 인상되여나오는 사진들을 들여다볼때면 자기도 모르게 일종의 강한 느낌, 동녘에서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바라보는 그런 희망의 메세지를 감수하게 되는것만 같았다. 그때로부터 할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리춘선생은 업여로 퇴근후와 휴식날을 타서 낡은 “갈매기”표 사진기를 들고 아버지의 사진관에서 “사진사”의 여린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꿈이란 현혹스러운 미래와 아름다움으로 장식된 개척지였다. 이러한 개척지는 근면하고 부지런하며 힘과 용기로 다져진 사람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늘여가는 행복의 원천으로 되는법이다. 복동진농촌합작사의 직원으로부터 동성농업은행을 거쳐 1997년도 화룡시지행으로 오기까지 리춘선생은 어느 한시도 사진과 촬영이라는 이 두개의 물질적인 포인트를 잊은적이 없었다. 오히려 편벽한 복동진의 농촌합작사로부터 화룡시농업은행이라는 도시의 직장에서 꿈과 희망을 이루려는 의욕이 더욱 간절해졌을뿐이였다. 21세기가 밝아오는 화룡땅에서 리춘선생은 화룡시문학예술계련합회 소속 여러 민간단체들이 가진 활동장소에서 드디여 자기가 애착하고 바라고 있던 화룡시촬영가협회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다. 드디여 용맹스런 호랑이한테 숲이 보이고 날랜 매한테 나래가 겹친 격이 되였다. 리춘선생은 끈질긴 노력과 분투로 촬영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다. 그 노력은 결코 헛된것이 아니였다. 물론 화룡시촬영가협회 류재학선생의 방향성있는 가르침과 위장성선생의 촬영기술교육을 떠날수 없는것도 례외는 아니였다. 2011년 중국미술관에서 주체한 중국공산당성립90주년 촹영작품전시회에 리춘선생의 “백산송수”가 입선되였으며 “꿈속의 로야령”이 길림성촬영작품전시회에 입선되여 “중국촬영예술년감-2011년권”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2006년 화룡시촬영가협회의 새로운 주석으로 당선된 리춘선생의 앞에는 촬영가협회의 눈부신 전망과 아름다운 미래가 찬란하게 펼쳐져있었다. 변경도시 화룡이라는 전체적인 자연환경과 조건을 리용하여 고향을 알리고 자랑하는것이 촬영가협회의 의무였고 자체의 원초적 생존원칙이였다. 리춘선생은 당시 11명으로 구성된 회원들의 단합과 조화의 목적을 우선으로 서로 돕고 배우며 촬영이라는 플랫폼으로 고향을 자랑하고 아름답게 그려낼수 있다는 꿈과 야망을 실현하리라고 굳게 다졌다. 한해의 시작은 정초에 있다고 2007년1월4일 정초에 9명으로 조직된 촬영가협회의 원정팀이 결성되여 천년백설속에 고요히 단잠에 든 장백산맥을 누비는 간고한 탐험의 길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리춘선생의 인솔하에 최문식, 김장훈, 리하, 룡소안, 송룡길, 박종호, 리창복, 홍룡 등 8명의 회원들은 드디여 장백산맥의 변두리로부터 시작하여 장백산 주봉까지 백설속에 잠긴 전설속 불후의 명산을 촬영가의 두손으로 자랑스럽게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화룡시촬영가협회의 작품들은 중국촬영가협회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륙속 촬영계의 센셔이숀을 불러일으키는 뉴스로 주목받았고 화룡시촬영가협회는 주와 성내의 여러 촬영가협회중에서 리더십을 선보이게 되였다. 리춘선생의 촬영작품은 지난 2012년부터 련속 3년간 중국촬영가협회 인터넷사이트에 매년 10여폭 전시되여 수석의 자리를 확보하고있었다. 리춘선생의 촬영작품들을 돌아보면 모두가 조국을 노래하고 고향을 자랑하는 소박한 작품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다. 2012년 촬영작품 “첫눈에 실린 명산”이 길림성”천경컵”2등상을, 2014년 촬영작품 “운해”가 동북아국제촬영전시회에서 3등상을, 그리고 2014년에는 “아름다운 중국 조화로운 농업은행”촬영경연에서 “아름다운고향 사계절 꿈”이 풍경류 1등상을, 2015년에는 중국 장백산”눈의 혼”국제촬영경연에서 “상고대”가 동상을, 금융계통제3기전국촬영예술작품전시회에서 촬영작품 “정과미”가 3등상을, 연변21기촬영예술작품전시회에서 촬영작품 “간밤에 불어온 북풍”이 금상을, 이어 2015첫“중림컵”국가삼림공원풍경촬영경연에서 영예롭게 3등상을 수여받았다. 2015년 “중국림업”잡지 제2기에 11폭의 촬영작품이 실렸고 “산동화보” 제5호에는 10폭의 촬영작품이 발표되였으며 “환구인문지리”잡지 제4호에는 무려 23폭의 촬영작품이 발표되는 영광을 안기도 하였다. 리춘선생은 2015년 연변주문학예술계련합회로부터 연변 제6기중청년”덕예겸비”문예사업자로 선정도여 표창받는 영광을 누렸다. 2016년 제6기연변국제촬영문화관광절에는 40여폭의 촬영작품들이 전문심사위원들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전시되는 영광을 지녔다. 그리고 2016년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 구리시촬영협회와 화룡시촬영가협회에서 공동으로 펼친 제7기 한중국제교류전시회에서 화룡시촬영가들은 50여폭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고향의 아름다운 명물과 명산들을 국외에 홍보하는 “전도사”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리춘선생은 지난 몇년간 부지런한 노력으로 동북아지구와 전국적인 간행물과 예술매체들에 무려 1500여폭의 소중한 촬영작품들을 발표, 전시하였다. 그 가운데서 주와 성을 비롯한 각종 촬영작품전시회와 개인전 및 촬영경연에서 수상한 작품은 도합 100여종이나 된다. 리춘선생의 촬영작품은 대개가 우리의 주변과 생활환경권내에서 찾고 발굴해내는 근면한 로동의 성과작들이였다. 화룡시의 풍경명승지인 “선경대”, “로리커호”, “장백산의 선봉”,등 명승지들은 모두가 리춘선생의 작은 손끝에서 사진작품으로 인상되여 세계의 유람객들을 절승의 관광지로 불러들이는 촉매제적인 작용을 하였다. 리춘선생의 꿈은 너무나 소중하고 또 평범하였다. 자기의 두손에 쥐여진 사진기로 조국과 고향의 명산, 명물들을 사진작품으로 만들어 주변 나아가서는 전국, 전세계에 알리고 자랑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통해 후세에 널리 전수할수 있는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또 너무나 긍지에 넘친다고 하였다. 한편, 현재 46명으로 무어진 화룡시촬영가협회의 코기러기로서 화목하고 조화로운 협회의 건설과 희망의 프로젝트인 “고향과 조국을 찬미”하는 싱싱한 촬영대오의 훌륭한 리더가 되는것이였다. 리춘선생의 노력과 인솔하에 화룡시촬영가협회는12명의 길림성촬영가협회 회원과 5명의 중국촬영가협회 회원, 1명의 미국 뉴욕국제예술촬영가협회 회원을 보유한 찬란한 실력을 갖춘 민간단체로 활약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철과 겨울철을 리용하여 화룡 선봉탐험에 나서고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협회내 회원들지간의 우정과 수준향상에 도움이 되는 교류를 목적으로 한해에 한번씩 정기적인 촬영작품전시회를 펼치고 우수한 작품은 표창하고 회원들의 단결과 발전에 유력한 토대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리춘선생의 다함없는 노력과 끈질긴 열정으로 화룡시촬영가협회의 작품은 수시로 “국가림업사이트”, “극지사이트”와 그가 책임자로 활동하고있는 연변구역의 “관동촬영사이트”를 통해 해마다 500여폭의 작품들이 세계인과 호흡을 맞추고있다. 리춘선생의 다양한 촬영작품과 그 사적은 이미 중국 신화사 특약기자인 왕위에 의하여 “길림선봉국가삼림공원”을 통해 많이 알려진바가 있다. 지금은 문화종합지인 “문화시대”잡지의 촬영편집을 맡고 새로운 분야에서 꿈나무를 키워가고있다. 그는 2014년부터 촬영가의 섬세함과 뚜렷한 성격으로 잡지의 편집에 사랑을 몰붇고있다. 1961년 소띠 리춘선생의 갸름한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만발하고있다. 그와 같이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고 사랑을 주는 단란한 가족과 자랑스런 아들이 있음에야 무엇이 더 부럽고 모자란다고 하랴? 대련미술학원을 졸업한 아들 리정도씨는 현재 한국에서 디자인설계사로 있으면서 자신이 배운 지식과 포부를 딛고 꿈으로 한발작 다가가고있다. 그리고 부인 최선씨는 화룡시3중 교원으로 교육자의 바른 자세로 가정과 남편을 뒤바라지하고있지만 자신의 햇병아리 같은 촬영사의 여린 꿈도 포기하고싶지 않다고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최선씨는 연길시에서 창설된 녀성촬영가협회에 가입하여 자신이 손수 촬영한 작품 “열독”을 남편인 리춘선생앞에 빨간 3등상 영예증서와 함께 내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한 촬영사의 현란한 꿈과 촬영예술의 미래로 다져진 자랑스런 “사랑의 집”이였다. 나는 보았다. 장백산천지에서 하늘로 치솟는 신비한 동물인 뿔달린 룡의 거대한 몸뚱이가 오색령롱한 불기둥을 일으키는 황홀한 모습을, 그리고 백설이 뒤덮힌 장백산맥의 깊고 높은 산봉오리를 질주하며 거세차게 포효하는 적토마를! 또 불을 토하는듯한 적토마를 타고 지구촌 방방곡곡에 고향과 조국을 자랑하고 노래하기 위하여 촬영기를 잡고있는 한 평범한 사나이를! 오늘도 백설속에 잠긴 장백산맥의 깊고 높은 골짜기를 깨워가며 촬영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 억척스런 황소마냥 부지런히 산길을 톺는 소띠생 사나이, 흰구름을 주름잡는 로야령의 적색사나이를 눈앞에 그려보고있다. 이제 시작되는 정유년에도 리춘선생이 애착하고있는 촬영예술과 고해 같은 인간삶의 그 전역에서 혁혁한 성과와 더욱 세련된 발전이 있기를 내심으로 기대한다.     2017.2.5.   ㅡ 흰구름을 주름잡는 로야령의 적색사나이 ㅡ 2017년 1월 제1호에 발표.    
13    방매가 댓글:  조회:571  추천:0  2017-02-28
방매가 편집/기자: [ 전춘봉 ] 원고래원: [ 본지종합 ] 발표시간: [ 2010-12-08 11:39:02 ] 클릭: [ ]    (시)                ○ 김 현 철(화룡)   한 집에 아빠, 엄마, 그리고 아이 세 식구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인가 아빠는 출국하고 엄마는 가출하고 아이만 홀로 개울가의 개구리마냥 발성련습에 지쳤다 그렇게 텅빈 집과 함께 노래만 부르던 아이도 탈출을 시도했다 그때부터 아이가 지켜가던 집에 넌덜넌덜한 《방매가》 한장 주인을 기다려 바람에 우짖는다
12    눈이 내리는 날에는 댓글:  조회:598  추천:0  2016-12-13
[수필] 눈이 내리는 날에는    도 영   눈이 내리는 날에는 홀딱 벗은채 길가에 하나의 부끄럼도 없이 의젓하게 서있는 한그루 라목처럼 되고싶다. 펑펑 쏟아지는 눈발속에서 가진것없이 한여름날의 소복함도 무성한 잎새들도 모두다 달리는 계절의 속삭임에 아쉬움 없이 깡그리 날려보내고 욕심도 부러움도 모른채 주면 주는대로 생기면 생기는대로 대자연의 숙명을 안고 고스란히 땅을 달구는 나무, 그런 나무가 되고싶다. 오늘도 창가를 마주하고  새벽부터 지지리, 띄염띄염 흩날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불현듯 밖으로 뛰쳐나가 아니, 홀딱 벗은채 밖으로 뛰쳐나가 한그루의 나무처럼 눈을 맞고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누가 듣거나 보아도 세상 미친놈의 미친짓에 불과하기 때문이였다. 멍하니 안타깝게 흩날리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짓궂은 생각에 출근시간이 다가오는것도 몰랐다. 주섬주섬 출근복을 맞춰입고 아빠트를 나서는데 어느 사이 하늘은 뽀얀 안개속에 눈송이들이 천송이, 만송이 하늘하늘 날리며 함박꽃으로 급변하여 펑펑 쏟아졌다. 그 눈을 맞는 기분이란 이외로 너무나 상쾌했다. 벌거벗은채 온몸으로 눈을 맞고 싶었던 방금전의 순간들을 되살리며 나는 머리며 온몸에 눈을 뒤집어쓴채 출근길을 다그쳤다. 한편으로는 나의 미친 생각이 누가 생각하기에도 “어불성설”이란 현실에 그만 허구픈 웃음만 나갔다. 그럴수도, 또 그렇게 할수 있는 용기도 없으면서 객관적인 아집때문에 잠시나마 가져보는 미련이였지만 너무나 즐겁고 또 순간적인 행복이 아닐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간혹 이처럼  욕망에 어우러진 꿈과 흘러가버린 옛추억의 끈을 잡고 쉽사리 놓지 못하는것들이 있다. 욕망은 한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였지 실제적으로 가져본 “바람”은 절대 아니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질수 없고 또 가져본적도 없는 “바람”이라도 그러한 욕망을 현실로 실현해보려고 용왕매진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령 누군가에게 아무런 욕망도 또 가지려는 간절함도 없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너무나 처절하고 허무한것이 아니였을가?! 지금까지 줄곧 나만의 글을 쓰면서 남들처럼 문단의 두둑한 상도 그려보았고 또 그런 상을 받아안는 영광의 꿈자리도 현혹하게 그려보았다. 하지만 그저 하나의 간절한 “바람”으로 내겐 지나친 욕망에 불과하였다. 가질수도 바랄수도 없는 꿈이라면 깨쳐버리면 그만이다. 하물며 다가갈수 없는 노력이란 장벽이 엄연하게 가로막혀 있는 상황에서 자꾸 사치스런 꿈속에 빠져 허위적거릴수만 없다. 배나무밑에서 배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숙한 사람들도 자기들의 과오를 느낄수 있기때문이다. 눈은 갈수록 더 억수로 펑펑 쏟아진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있는 가로수와 지붕위와 가늘게 떨어대는 전선줄에마저 하얀 눈송이가 보기좋게 내려앉았다. 도로에는 하얀 눈송이가 발목을 덮었다. 달리는 승용차거나 택시차들이 하얗게 눈송이를 뒤집어쓴채 눈보라를 일으키며 달려가고 달려온다. 새파란 하늘에서 자유로이 날아예던 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새들도 아쉬움에 눈꽃이 하얗게 핀 전선줄에 내려앉기를 거부한다. 부지런히 달려가고 달려오는 차량들, 그리고 부랴부랴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도 자기 몸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떨어버리지 못한다. 아니, 털어버리지 않는다. 나 역시 온몸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털어버리지 못한다. 아침나절의 출근길에서 주은 소중한 욕망의 테스트가 갑자기 사라질가 저어되어서였다. 나는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고스란히 맞고있는 나무가 부럽다. 그처럼 풍성한 가지마다 잎새 하나 없이 가녀린 몸매로 눈을 뒤집어쓰고있는 라목! 나도 저 나무들처럼 홀딱 벗은채 눈속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싶다. 그러면 내 몸안의 모든 욕망들이 아니, 갖가지 크고작은 욕심들이 무더기로 하얗게 가슴을 비워낼것만 같다.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가지려는 맘도 탐하려는 욕망도 두터운 눈송이로 차곡차곡 차거운 랭기로 깡그리 덮어버릴수가 있지 않을가?! 남들에게는 미친놈의 미친생각으로 느껴질지는 모르지만 나는 대자연을 소복하게 덮는 하얀 눈송이에 내 마음의 부러운 욕심과 짓궂은 욕망을 가려버리고싶었다. 그렇게라도 내 마음의 가증스러운 탐심을 없앨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언젠가 어느때부터 아무 욕심도 없이 소박하게 나만의 글들을 쓰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쪽같이 쳐드는 시샘과 갈퀴같은 사회의 부조리에 나도 모르게 욕망의 채바퀴를 굴려보게 되였다. 아빠트정원을 나설때까지만 해도 새파랗게 보이던 하늘이 부옇게 눈송이에 묻혀버렸다. 내 마음의 부끄러운 욕망도 하늘의 눈꽃사랑에 포근하게 잠든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한껏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독자들이 감명깊게 읽을수 있는 글들을, 인민군중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아름다운 노래를 써내고싶다. 또한 내 마음의 아픈 추억도 상처도 깨끗이 치유하고 새롭게 살아가는 떳떳한 모습으로 조화로운 사회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글들을 만들어가며 유혹에 미련없이, 부끄럼없이 하얀 눈발속에서도 의젓하고 당당하게, 추운 겨울의 라목마냥 온몸으로 이 눈을 펑펑 맞고싶다.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에 미치도록 미친놈의 생각을 굴려봐도 여전히 미친생각뿐이라고 투덜거리겠지만 눈 내리는 날에 몸에 걸친 모든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어버리고 거리에 나서서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소복하게 눈을 맞고싶다. 차거운 겨울하늘에 눈은 하얗게 흩날리지만 나는 아직도 하얗게 웃고있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꼭 그렇게 한번 눈을 맞고싶다!   ㅡ눈이 내리는 날에는ㅡ 연변일보 2016년12월9일 해란강부간에 발표.  
11    경숙누나 댓글:  조회:1032  추천:0  2016-10-08
경숙누나 ㅡ “文革”발발 50주기 상기작품 도 영 아 - 미쳤어?! 미쳤다니깐! 아니… 새파란 처녀같은데… 어쩌다가?! 공사(지금의 향,진)의 하방간부 김봉철의 딸아이가… 아인가? 어떡허다가…?! 아버지가 솔개골막치기로 류배살이 가서 비명횡사하더니… 어쩐일로 그 딸아이마저… 허흑! … 여기저기 중구난방 떠들어대는 소리가 길가에 란잡하게 울려퍼졌다. 신화속의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누드녀자의 출현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우… 우… 단추가 벗겨졌는지 출렁거리는 커다란 젖무덤을 덩그라니 드러내놓고 목에 노오란 스카프를 두른채 몸에 어울리지도 않는 꽃불이 몸뻬바지(조선족아낙네들이 집에서 쉽게 입는 편한 바지의 일종.)를 입은 젊은 녀자가 뭔 소리인지 알지도 못할 괴상한 야음을 토해내고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의 야릇한 눈망울을 자극해가면서도 녀자는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듯 량팔을 홰홰 휘저으며 어디론가 천방지축 내닫는다. 경… 겨엉… 어허억… 여보옵소! 우리 겨웅숙이를… 어이구… 흑흑흑! 뒤에서 허리꼬분 늙은 녀인네가 엉금엉금 따라오며 목메인 소리로 웨쳐댔다. 후, 로인네가 불쌍하지! 그러게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고생이여! 자식잃고 손녀까지 미치광이로 만들었으니… 불효여! 천하에 없는 불효여…! … 경숙누나가…?! 나는 시야에서 흐려져가는 포르노영화속의 한 장면같은 짙은 “풍경”에 그만 가던 걸음을 멈춘채 한식경이나 그자리에 못박힌 듯 굳어졌다. 아…?! 어쩌다가…?! 그러니 어쩌다가…?! 나는 놀란 모습으로 어안이 벙벙한채 텅 빈 거리를 훑었다. 하얀 두부모를 담은 플라스틱그릇을 들고 뛰여가던 아이도, 의뭉스런 눈매로 거리를 훑던 길가던 사람도, 흙먼지를 풀풀 날리는 도로변에 앉아 길다란 곰방대를 손에 들고 한담에 열성을 돋구던 구부정한 촌옹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무거운 아침안개만이 솔개골의 푸릿한 기운과 함께 낮게 드리운채 오밀조밀 비좁게 모여앉은 흙산촌 가가호호의 굴뚝에 매달린 검은 연기와 휩싸이며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져갔다. 어 - 엄마! 경숙누나가…?! 경숙누나가 웬 일이여?! 수현은 엄마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묻기 시작했다. 뭔가 좀 말씀해보세요! 네?! 엄마…! 수현은 미칠것만 같았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경숙누나가 그처럼 광분하는 실성자로 되였는지 자기의 두눈마저 의심할정도였다. 경숙이가… 그래 우리 이웃에 살던 경숙이가… 웃집의 경숙누나가… 엄마는 한동안 입귀를 실룩거리더니 드디여 조용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수현도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경숙누나가… 후ㅡ 그러니 웃집의 경숙누나는 네가… 그러니까 네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를 따라 쟈피거우 탄광촌으로 가버린후 다섯호밖에 없는 솔개골 막치기에서…… 오 - 빨간 태양이 누렇게 퇴색하며 서산으로 서서히 떨어져갔다. 어스름이 슬금슬금 흙산촌의 상공에 어렴풋한 자욱을 드러낼 때 흙산촌 제10생산대 모퉁이에 높이자란 해묵은 당산나무의 밑가지에서 “댕강ㅡ댕ㅡ강”하는 둔중한 레루장 소리가 들려왔다. 생산대에 대,소사가 있을때마다 마을군중들을 생산대회의실로 모이게 하는 특별한 회의통지(통신설비가 구전하지 못한 6-70년대의 기막힌 통지)방법이였다. 레루장 쇠소리가 울리게 되면 사원들은 저녁술을 놓기 바쁘게 하루일의 지친 피곤도 마다한채 생산대회의실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던것이다. 성혜도 밥상우에 책을 펼쳐놓고 마주앉는 둘째아들 혜현의 모습을 등에 진채 봉당에 내려섰다. 큰아들 수현이가 아버지를 따라 탄광촌으로 떠나간후 집에는 성혜와 중학생인 둘째아들 혜현이만 남게 되였던것이다. 아버지와 형님이 없는 집에서 벌써 가장이 된듯 과묵하게 변해가는 둘째아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성혜는 급급히 집문을 나섰다. 후ㅡ 오늘저녁에는 뭔 대단한 일이라도 있다고 초저녁부터 레루장이 저리 쉴새없이 울리나?! 저녁밥을 짓기전 벌써 “댕강댕강” 한차례 울렸던 레루장 소리가 밥술을 놓기도 전에 또다시 숨넘어갈 기세로 급급히 한식경이나 울렸던것이다. 성혜는 아직도 찬기운이 완연한 봄바람에 으스스 떨려나는 몸을 한껏 움추린채 생산대 회의실의 거무틱틱한 널짝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삽시에 매캐한 담배연기가 굴뚝연기처럼 뭉글뭉글 미여져나오며 집안을 기웃거리던 성혜를 삼킬듯이 감싸버렸다. 성혜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캑캑 기침을 깇으며 집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60여평방되는 회의실에는 벌써 생산대의 사원들이 빼곡하게 둘러앉아있었다. 구석쪽에 앉아있는 남정네들이 신문지에 말아문 굵다란 엽초를 쉴새없이 빨아댔고 창문곁에는 또 허리가 구부정한 로인네들이 길다란 곰방대를 손에 들고 턱수염을 떨고있었다. 구들 한가운데는 아기를 업은 젊은 녀인들과 나이든 아낙네들이 커다란 엉덩이를 퍼더버리고 앉아 오구작작 떠들어대다가 성혜에게 자리를 틔워주며 앉음새를 고쳐앉기도 하였다. 성혜는 말없이 생산대 부녀대장인 금자의 곁에 쭈쿨데리고 앉았다. 회의실의 바람벽에는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의 초상화가 나란히 정중하게 걸려있었다. 사원들은 회의실 가운데에 앉아있는 생산대의 정치대장인 오명수를 비롯한 몇몇 나젊은 청,장년들을 흘끔거리며 수시로 긴 하품을 해대곤 하였다. 에, 사원군중 여러분…?! 정치대장인 오명수가 드디여 앉음새를 고치면서 건 가래를 떼였다. 여기저기 누워있거나 쪽잠이 들어있던 사람들이 두눈을 비비면서 잠기 실린 눈매로 오명수의 나불거리는 두터운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늘 회의의 목적은… 오명수가 잠간 말을 끊더니 회의실을 주욱 둘러보았다. 문득 오명수의 눈길이 아낙네들과 어울려 구들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성혜의 몸에 와서 시침이 멈춘 고장난 시계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알고있겠지만 김성혜네… 오명수가 갑자기 하던 말을 뚝 끊으면서 김성혜를 아니꼽게 흘겨보았다. 성혜는 퍼런 섬광이 번뜩이는 린광 같은 오명수의 독기 서린 눈길에 온 몸이 별스레 쪼그라드는것만 같았다. 닥살이 돋는듯 오싹오싹 떨려나는 몸에 힘을 주며 성혜는 옷깃을 바로잡았다. 김성혜네 웃집에 살고있던… 공사의 하방간부 김봉철이를… 오명수는 말에 힘을 주려고 잠깐잠깐 말을 끊으면서 어색하게 뜸을 들였다. 솔개골막치기로 이사간 에… 김봉철이가…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의 잔당은 물론이고 에…더 험악한것은… 에, 남조선특무라는것이여! 갑자기 사람들이 출렁이는 물결과도 같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남조선특무라니…?! 그 사람이 어째 남조선특무라오…?! 허, 하ㅡ 별 일이 다…?! … … 사원들이 여기저기에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좀, 조용들 하시우! 회의장이라는것도 의식못했어요?! 갑자기 오명수의 곁에서 새하얀 권련담배를 꼬나물고있던 민병대장 장인길이가 꽥하고 야무진 소리를 내질렀다. 삽시에 장내는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니 김봉철이와 철저하게 계선을 나누고 절대로 거래도 하지 말것이며 더우기 그 집의 식솔들과도 래왕을 해서는 않된다는것이요! 오명수가 말을 끊고 손에 들고있던 입담배에 급하게 성냥을 그어대더니 걸탐스레 빨아대기 시작했다. 삽시에 뽀얀 담배연기가 자오록하게 피여올랐다.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오명수의 길다란 얼굴도 담배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철같은 증거가 있소! 남조선특무분자 김봉철이가 암암리에 남조선과 내통한 이 편지가… 장인길이 몸을 움쭐 일으키며 손에 들고있던 종이장을 사람들앞에 내흔들었다. 하얀색바탕에 빨간 색갈이 띄염띄염 줄무늬를 둘러놓은 낡은 편지봉투였다. 얼결에 머리를 든 성혜의 두눈이 장인길이의 손에서 떠날줄 몰랐다. 이 모든것은 우리 소대의 사회주의 문화혁명소조에서 조사하고 처리한 혁혁한 성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소대에 잠복해 많은 특무활동을 저질렀고 또 솔개골막치기로 이사까지 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군중내부에 잠입한 한줌도 못되는 특무분자… 아…?! 김성혜는 드디여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언젠가 작고한 수현이 할아버지의 나무궤를 뒤적거리다가 낡은 편지봉투를 하나 찾아냈던것이다. 하얀색의 바탕으로 된 봉투였는데 둘레가 빨간색으로 줄무늬가 놓여있었다. 텅 빈 봉투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겉면에는 붓으로 쓴 글자들이 두줄로 넙적하게 누워있었는데 아무리 뜯어보아도 무슨 글인지 도무지 보아낼수가 없었다. 성혜는 낡은 편지봉투를 들고 끝내는 웃집에 살고있는 공사간부 김봉철이를 찾아갔다. 우리 수현이 할배 나무궤에서 이런것을 발견했는데 뭐라고 썼는지 도무지 글자들을 알수가 없어유. 무슨 글자인갑는지? 성혜는 김봉철이에게 낡은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옛적에 씌이던 반서체글씨들이여서 알아보기가 힘든거라오. 아마도 옛날에 수현이 할배랑 살던 고향동네의 주소같은데요, 그러니 수현이 할배도 저 바다건너 이남에서 들어왔구만요. 그런데 수현이 엄마, 다시는 이런 편지봉투를 들고 남들한테 보이지 마소. 괜스레 고생살이 사서 하시지 말고?! 김성혜는 김봉철의 말에 부시시 뒤엉킨 다복쑥같은 파마머리만 긁적거렸다. 알겠어요. 수현이 할배의 나무궤에서… 혹시 중요한 내용인가 해서… 중요하지 않으면 그냥 버리죠 뭐? 수현이 할배가 세상 뜨신지도 얼만데…? 김성혜는 김봉철의 손에서 받아든 낡은 편지봉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쥐였다. 그래도 혹시 가족이나 친척들을 찾을수 있는 주소일른지… 김봉철이가 구겨던지려는 김성혜의 손에서 낡은 편지봉투를 다시 앗아쥐였다. 그래도 모르죠. 혹시… 김봉철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쓸모없으면 버리세요! 성혜는 괜한 일로 이웃집 사람들까지 번거롭게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수현이 엄마는 시름놓고 가서 일 보세요. 아무것도 아닌 그저 엣날주소를 적은것뿐이니깐?! 성혜는 김봉철이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 성혜의 두눈이 점점 커져갔다. 성난 황소마냥 몸을 들썩거리며 꽥꽥 소리를 지르는 장인길의 얄포름한 입술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였다. 저 편지봉투가 어떻게 되여 인길이의 손에 쥐여져있는지 성혜로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정말 이상하였다. (그날의 그 낡은 편지봉투가 어찌하여 인길이의 손에서 김봉철이가 남조선과 내통한 특무라는 철같은 증거로 될수 있는가?! 어림도 없는…) 저기요! 그것은… 성혜는 목갈린소리로 울부짖으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성혜는 갑자기 심한 현기증에 가슴이 꺽 차오르며 숨쉬기가 가빠졌다. 눈앞에서 하얀 물안개가 감돌면서 회의실에 빼곡하게 둘러앉은 사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우기 어디선가 이상하게 울려오는듯한 괴상야릇한 고함소리에 장인길이가 웨쳐대는 말소리까지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성혜는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린채 꺼억-꺽! 힘들게 날숨을 톱았다. 사원들은 성혜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성혜는 말은 못하고 연신 두손으로 자기의 옷섶만 허우적거리면서 허연 눈을 뒤집은 채 옆에 앉은 부녀대장 금자의 품에 물먹은 솜처럼 무너져내렸다. 성혜가?! 수현이 엄마?! 아니, 수현이 엄마?! 금자의 다급한 부름소리에 회의장은 대뜸 아수라장이 되여버렸다. 회의실 한가운데서 목청을 돋구던 민병대장 장인길이도 그리고 한동안 멍청하니 굵다란 엽초만 뻑뻑 쉴새없이 빨아대던 정치대장 오명수까지도 허연 눈자위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금자의 품에서 허우적대는 성혜만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금자는 김성혜의 가슴을 어루쓸고 인중을 눌러주면서 한동안 야단법석을 떨었다. 남조선특무라는 그 소리에 놀란거지? 김성혜네 웃집이라고 강조하는바람에 덜컥 겁이 난거지? 가뜩이나 앓고있는 사람에게?! …… 여기저기 가느다란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다가 창문곁에 앉아있던 장년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원들도 약속이나 한듯 여기저기 일어나 줄레줄레 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치대장 오명수도 민병대장 장인길이도 막지 않았다. 한동안 법석대던 회의장은 누구의 호소도 없이 자연스레 페회가 되고말았다. 다만 어색하게 서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몇몇 아낙네들이 성혜를 품에 안은 부녀대장 금자를 내려다보며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성혜가 눈을 떳을 때는 금자의 품이였다. 텅 빈 회의실에서 오직 금자만이 성혜의 손을 잡고있을뿐이였다. 어이구?! 이걸 어찌하우?! 경숙이네가…?! 경숙이는 어쩐다오? ! 성혜의 얼굴로 시뿌연 눈물이 주르룩주르륵 하염없이 구울러내렸다. 금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념도 못한채 멍한 기색으로 성혜의 하얗게 질린 피기 잃은 얼굴만 넋놓고 바라보았다. 푸ㅡ 웁! 푸ㅡ 웁! 성혜는 가슴이 꺼지듯 연신 긴 한숨을 허겁스레 파올렸다. 누런 소가죽 같이 피기없이 창백하게 말라든 성혜의 얼굴우로 대줄기 같은 눈물이 곬을 파며 흘러내렸다. 성혜는 숨막히는 가슴을 쥐여뜯으며 소리없이 흐느꼈다. 횡뎅그렁한 회의실은 금방까지도 열찬 목소리에 뜨겁게 달구어졌던 분위기를 잃은채 쌀쌀한 찬기운만 감돌고있었다. 텁텁한 담배냄새와 퀴퀴한 땀냄새가 도망치듯 빠져나가고있는중에 푸름한 달빛이 창문으로 새여들어오고있었다. 우 - … ㅡ 후, 경숙이 아버지는 하루 건너 공사마당의 높은 단우에서 길다란 고깔모자를 쓰고 인민들앞에 반성한다고 반나절씩 서있다가는 다시 솔개골막치기로 돌아가곤 했었다. ㅡ 후, 날씨가 쌀쌀한 초봄부터 시작해서 무더위가 기를 쓰는 오뉴월 삼복철에도 고깔모자를 쓰고 땡볕에 서있는다는것이… 사람을 피말려죽이려는 짓이지. 뭐가 또 있었겄어? 가뜩이나 몸이 허약한 량반이 하루종일… 밭에 심은 곡식들도 더위에 타서 노랗게 죽어가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그것도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한채 단우에서… 길가던 사람들도 그 량반에게 물그릇을 가져다줄수 없었어! 경숙이가 몇번인가 그 량반과 함께 단우에서… 허윽ㅡ! 그것이 언제였던가?! 서풍골에 있는 콩밭 두벌김을 매고 돌아오는데 글쎄 공사마당에서 한창 투쟁대회를 하는거야! 또 그 량반이였지! 경숙이 아버지! 그런데 경숙이까지 단우에 서서… 경숙이가 가까스로 서있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서있었어! 정말이지 아버지가 특무라면 어때? 그 자식까지도 특무야?! 세월은… 엄마는 한동안 손바닥으로 가슴만 내리쓸었다. 엄마의 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피기 한점 없었고 학질에 걸린 사람마냥 온몸을 우들우들 떨기만 했다. 수현은 지친듯 어딘가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쓰는 엄마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엄마! 힘들면 말하지 마! 아니, 더 말하지 말아요! 수현은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수현은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다시는 경숙이를 보지 못했고마! 아니, 경숙이 아버지가 며칠후에 죽었다는거여! 그것도 솔개골막치기에서 자살이라나…?! 예…?! 수현은 어머니를 껴안았던 두손을 황급히 풀었다. 엄마의 말에 깜짝 놀랐던것이다. 자살이라니요?! 누가?! 무엇때문에…?! 경숙누나의 아버지가요?! 솔개골막치기에서… 늙은 사과나무에 목을 매고… 사는것이 너무나 힘들었던거여! 살아있는 몸이 몸같았겄어? 하루건너 투쟁대회에 끌려다녔으니… 차라리 죽는것이 더 편안한거여! 지금은 천당에 가서 편안하게 지우고 있을려나 몰라? 경숙이가 저렇게 미쳐날뛰는것을 본다면… 후ㅡ 살아있는 사람이 죄인인가베. 경숙이 엄마까지도… 이듬해 남편의 돌제를 지내주고 남편을 따라갔어! 늙은 사과나무가 뭔 죄여? 너무 오래 살다보니 생떼같은 목숨을 둘이나 잡아간거지! 하기야 지금은 경숙이 엄마도 남편 만나 천당에 갔을라나 몰라! 혹여 그 혼백이라도 살아있다면 알기나 할런지? 그런듸 자식이 뭔 죄여?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이 뭔 죄여? 저렇게 날마다 경숙이를 찾아나서는 할매가 가엽지?! 허리까지 저렇게 꼬부라든 할매가 이제 살면 몇해를 더 살겠는지? 자식새끼 앞세우고 미친 손녀딸 걱정에 후… 엄마는 좀전보다 퍼그나 많이 진정된듯 싶었다. 그러나 찰랑거리는 샘물이 곧 넘쳐날듯 눈확에 꽉 차오르며 괴로움에 파르르 떨고있었다. 수현은 별안간 가슴이 울컥했다. 날카로운 비수가 여기저기 심장을 겨냥하여 사정없이 무차별로 찌르는것만 같았다.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아니,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내주는 하나의 숙제마냥 꼭 풀어야 한다는 강한 의념으로 아프게 자극하는것만 같았다. 수현은 어금이를 꽉 앙다물었다. 엄마! 괜찮아! 세월이 약이라고 했잖아?! 꼭 해결책이 있을거야! 아니, 경숙누나는 꼭… 그러나 수현은 뒤말을 끝맺지 못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그려! 세월이 약인가베! 세월이 약이여! 수현은 엄마의 말소리가 신비하리만큼 아늑하게 들리는것만 같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비쳐오는 하얗고 밝은 광선에 두눈이 부셨다. 수현은 눈앞에 다가오는 신기한 환영속에 집안이 환하게 밝아지는것만 같았다. 온통 붉은 색이였다. 아니, 하얗게 빨갛게 수없이 날리는 무수한 꽃보라였다… 으 - 경숙이는 각별히 분주해졌다. 아침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안고 방안을 맴돌았다. 방안이라야 하얀 바람벽의 여기저기 성기게 박혀있는 대못에 걸려있는 낡은 옷가지들과 구석켠에 놓여있는 나무궤우의 이불 두채뿐이였다. 횡뎅그렁한 방안에서 한동안 앉을자리 설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경숙이는 흔연히 아래방으로 내려섰다. 야가?! 어디로 나가려고 그러냐? 구부정한 허리가 바닥에 닿을듯이 찬장앞에 꼬부리고 앉아서 노오란 콩나물을 가려내고 있던 백발의 안로인이 주름투성이인 볼을 실룩거리며 머리를 들었다. 아냐?! 할머니! 나도 할매 도울가? 아니다. 괜찮대두! 너는 아무일도 하지말고 얌전히 방구석에 앉아만 있거라이! 경숙이가 다가가 나무함지곁에 내려앉으려는것을 안로인은 량손에 콩나물을 뽑아든채 손등으로 마구 떠밀었다. 오늘은 우리 경숙이가 특별한 날인듸! 안로인은 치아가 없이 호물거리는 량볼에 잔뜩 기운을 살리며 흐흐흐 야릇하게 웃었다. 아이참?! 할머니두…? 경숙이는 저절로 빨갛게 달아오르는 량볼을 두손으로 감싸쥐며 제꺽 일어나 방안으로 몸을 사렸다. 흐흐흐… 좋을 때다. 안로인은 어설프게 웃었다. 그러나 로인은 곧 입귀를 실룩거렸다. 엉겅퀴 같이 주름이 얼기설기 실린 강마른 얼굴을 타고 시뿌연 눈물이 쭈르륵 흘러내렸다. 봉철이가… 너그 애비가 집에 있다면 얼매나 좋아할라나?! 흐흐흐 늙은 에미를 두고 저승이라니?! 후우…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바랜 안로인이 체머리를 세게 떨기 시작했다. 눈물도 없이 말라버린 멀건 눈확을 쪼글쪼글한 손바닥으로 쓸어대는 안로인의 탄식소리가 가슴이 미여지게 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로인은 다시 콩나물시루에서 나그네들의 뼘을 웃돌며 자란 콩나물을 뽑아들고 시허연 뿌리를 잘라내서는 옆에 놓여있는 나무함지에 담았다. 날마다 잊지않고 시간맞춰 물을 줬는데도 무슨 뿌리가 이처럼 엉키게 자랐는지 몰라유, 안로인은 누구에게라없이 혼자 입속말처럼 중얼거렸다. 방안에는 안로인의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지만 로인은 입속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오늘 일이 잘 풀려야 할텐듸… 후, 그길밖에 이 솔개골막치기를 떠날수 있는 방법이 없는듸… 후유… 안로인은 가까스로 꼬부랑허리를 펴면서 구들장이 내려앉을것 같은 긴 한숨을 가슴꺼지게 몰아쉬였다. 에미라도 살아있었더라면… 후유, 이 망할것들이 다 이 늙은것을 두고 자기네들이 먼저 허유… 저것이, 저년이… 저 경숙이년이 없다면 나도 언녕 령감을 찾아갔으련만… 저것이, 저것이 눈에 밟혀서 내가 차마… 허유, 내가 오늘 또 웬 망발이여? 새끼의 좋은 날을 두고. 허유…? 안로인은 다시 콩나물시루에 두꺼비 같은 손을 넣더니 콩나물 한줌을 뽑아들었다. 하마 내사 살기싶어 사나? 그래도 저것을 앞에 놓고… 죽다니 내가 어찌 죽어. 후우ㅡ 안로인은 손안에 들었던 콩나물을 나무함지에 놓고는 저고리 앞섶을 쳐들고 물처럼 흘러내리는 코물을 힝하고 풀었다. 손님이 온대도 뭐 할거라도 있나유? 죽어나는게 이 콩나물밖에! 그래도 경숙이년이 밤잠도 자지 않고 물을 잘 줬기에 망정이지. 이것보우, 그래도 뿌리가 많이 자랐는듸… 안로인은 혼자말처럼 계속 웅얼웅얼거렸다. 오늘 저년의 일이 잘 돼야 할텐듸… 금자의 말을 들어봐서는 됨직한 총각이라고 했는듸… 하긴 저년이 이 솔개골막치기를 빠져나갈 좋은 자리인게지비… 내사 부녀대장인 금자를 믿을만하제. 안로인의 넉두리는 끝날줄 몰랐다. 할머니, 뭔 말이여? 왜 혼자서 중얼거리기만 해? 언제 나왔는지 경숙이가 안로인의 등뒤에서 걱정스레 물었다. 어? 아니여! 너그 왜 나왔는겨? 방에서 한잠 듸집어 잘것이지. 그래 오라지 않으면 점심시간도 거의 될란듸… 그런데 왜 여직 부녀대장의 모습이 안 보이는겨? 이젠 올때도 됐는듸… 안로인은 창밖을 흘끔거리며 다듬어놓은 콩나물 함지를 찬장곁에 있는 물뽐쁘곁으로 밀어갔다. 할매 내가 할게! 그런데 뭔 콩나물을 이리도 많이 다듬어! 경숙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토달거렸다. 뭔 말이여?! 귀한 손님이 오잖여? 부녀대장이 모시고 온다고! 안로인은 경숙이를 바라보며 덴겁하게 말했다. 알았어! 이것은 내가 씻을게! 그러나 안로인은 콩나물을 담은 나무함지곁에 쭈쿠리고 앉는 경숙이를 밀어냈다. 관두라니까, 하마 그러면 네사 밖에 나가 닭 한마리를 붙잡아주렴아. 크고 살찐 통통한 암탉 한마리면 될가? 수탉은 씨종자밖에 없는듸… 총각이 첫 걸음인듸… 옛날부터 사위사랑은 장모님이라 했는듸 저것이… 내사 그래도 닭 한마리 대접해야되는기여. 안로인은 곰팡이가 낀것같은 뿌연 두눈을 슴벅거리며 경숙이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하나밖에 없는 수탉은 왜 잡아? 경숙이는 안로인의 곁에서 서성이였다. 그러면 암탉한마리 붙잡아라. 밖에 모이를 주면 닭들이 모여들것이다. 그때 슬쩍… 너는 령민해서 될거다. 그저 닭만 붙잡아주면 된다. 잡는것은 내가 해야지. 후우ㅡ 안로인은 또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손님들이 오기전에 퍼뜩 잡아야하는듸… 알았어! 암탉 한마리 붙잡을게! 경숙이는 바가지에 부수어놓은 강냉이알을 담아들고 봉당에 내려섰다. 안로인은 멀거니 경숙이의 뒤모습을 바라보더니 홀쪽하게 꺼진 볼에 힘을 살리며 쭉 허리를 폈다 수탉을 조심하거라! 수탉도 자기 암탉을 챙기려고 할거니깐! 안로인은 심심찮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알았어! 암탉 한마리 붙잡으면 되잖아! 걱정마! 경숙이는 강냉이알을 담은 바가지를 손에 들고 볼이 미여진 하얀 운동화를 맨발에 꿰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이 - 그런데… 경숙이가… 그날 경숙이가… 엄마는 갑자기 뒤말이 생각나지 않는 듯 하던 말만 되뇌이였다. 수현은 말은 못하고 자꾸 경숙이만 외우는 엄마를 괴이쩍게 바라보았다. 엄마, 웬 일이여? 경숙누나가 그날 어쨌다는거요?! 글쎄…?! 엄마는 말할 대신 벌겋게 상기된 수현의 얼굴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엄마! 진정해! 괜찮아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이잖어? 수현은 부들부들 몸을 떨고있는 엄마의 잔등을 가볍게 어루쓸었다. 엄마는 한동안 그렇게 멀쩡하게 수현의 얼굴만 쳐다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앞으로 다가가 두번째 서랍을 열고 종이 한장을 꺼내들었다. 뭔데?! 수현은 엄마가 건네주는 손바닥만한 종이장을 받아들었다. 연변정신병원에서 내린 진단서란다. 경숙이를… 네…?! 수현은 두겹으로 접혀진 종이장을 와락 펼쳤다. 수현은 자기의 두눈을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너무도 놀라운 진단서였다. 뇌신경상해장애성정신분렬증(脑神经伤害障碍型精神分裂症) 수현은 몇번인가 읽어보다가 종이장의 앞과 뒤를 번져가며 다시 샅샅히 살펴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아니, 경숙누나가 어떻게 이럴수가… 그러나 수현은 할 말을 잃었다. 눈앞에 완연하게 씌여진 진단서를 믿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었다. 더우기 밑부분에 빨갛게 찍혀있는 연변정신병원의 둥그런 도장앞에 아연해지고말았다. 경숙누가 정신분렬증이라니? 뇌신경상해장애성으로 인한 정신분렬증이라니… 무엇때문에… 어떻게 되여 아니, 어쩌다가… 수현은 모든것을 믿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날 부녀대장인 금자의 소개로 경숙이가 맞선을 보기로 하였던거여. 그런듸 그날 늙은 할매를 두고 경숙이가 닭을 붙잡으려다가 그만… 허어이구 엄마는 또 한동안 말을 끊더니 가슴이 꺼질듯 긴 한숨을 내쉬였다. 그날 경숙이가 닭을 붙잡으려고 마당에 강냉이를 뿌려놓고 닭을 유혹했다는거여. 그렇게 닭들이 모여들어 모이를 먹으려고 할때 제꺽 닭 한마리를 붙잡으려는거였지. 그런데 글쎄… 경숙이넨 커다란 종자수탉이 한마리 있었대. 그날 경숙이가 모이를 뿌려놓고 닭을 붙잡으려고 하자 그 수탉이 덤벼든거야. 하필이면 녀자애가 한낮에 닭을 붙잡으려 했으니… 그렇게 몇변인가 시도하다가 수탉이 덤벼드는 바람에 얼굴도 몇번 쫓겼다지 뭐야, 닭은 붙잡지도 못하고. 그러면 그런대로 그만둘것이지, 후우ㅡ 일을 칠려고 그랬어! 그날 경숙이가 아예 일을 저질르려고 잡도리를 했었나봐. 그러다가 끝내 암탉한마리를 붙잡은거야. 하지만 경숙이가 닭을 붙잡고 미처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전에 수탉이 경숙이한테 달려든거야. 결국은 모이를 먹는 암탉을 붙잡고 수탉에게 눈알을 쫓겨서 그만… 오른쪽 눈알이 터진거여! 총각을 불러 맞선을 보려다가 오히려 경숙이가 눈알을 잃었지뭐야. 맞선 보려던 총각은 아이구머니 하고 그예 36계 줄행랑을 놓고. 그래도 부녀대장인 금자가 수탉에게 눈알이 쫓겨 피를 철철 흘리는 경숙이를 업고 부축하면서 공사병원에 갔으니 망정이지. 그런데 어쩌겠어?! 그때부터 경숙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저렇게… 엄마는 길게 숨을 몰아쉬였다. 이 진단서도 금자네가 가져온거여. 경숙이가 종자수탉에게 쫓겨 오른쪽 눈알이 터진후 자꾸 헛소리를 지르면서 입은 옷차림으로 목에 달랑 노란 스카프를 두른채 어디론가로 간다고 집을 나서는 바람에… 경숙이 할매가 아마도 금자네를 찾은거여. 그렇게 금자의 주선으로 정치대장인 오명수와 같이 경숙이를 데리고 연변정신병원에 가보게 되였다나? 후우ㅡ 엄마의 한숨은 멈출줄을 몰랐다. 그날 경숙이를 부녀대장과 정치대장에게 딸려 연변정신병원에 보낸후 경숙이 할매가 우리집에서 하루종일 안절부절 맴돌며 그들을 기다렸던거여. 후, 때늦은 저녁켠이 돼서야 후줄근한 몸매로 집에 들어서는 금자의 뒤를 따라 경숙이가 별스레 좋아서 히히히 웃으며 노래하며 들어오는거여. 나는 좋은 일인갑다고 흐뭇하게 금자만 바라봤지. 경숙이 할매가 앞질러 금자의 두손을 부여잡고 헐떡거렸어! 어서, 어서 말해보시게. 우리 경숙이가 도대체 뭔 병이여? 그러나 부녀대장은 한동안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경숙이 할매의 주름투성이인 쭈글쭈글한 얼굴만 힘없이 들여다보는거여. 아이구, 내사… 빨리 말해보랑께! 우리 경숙이가… 그러나 부녀대장은 오래동안 말없이 뜸만 들였어. 이윽고 부녀대장은 가슴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몰아쉬더니 바로 이 종이장을 꺼내서 경숙이 할매한테 드렸던거여. 아니, 이것이 뭣인가메? 경숙이 할매가 손바닥만한 종이장을 들고 앞뒤로 번져가며 당혹하게 물었지만 부녀대장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어. 내가 얼결에 경숙이 할매의 손에 들린 종이장에서 정신병(精神病)이란 세글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채 부녀대장을 바라보는데 금자의 얼굴을 타고 시뿌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어. 후우ㅡ 엄마는 또 한번 길게 한숨을 몰아쉬였다. 경숙이 할매는 부녀대장의 말을 듣고 그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어. 부녀대장이 드디여 병원에 다녀온 사실을 경숙이 할매한테 전해주었던거여. 뇌신경상해로 인한 장애성 정신분렬증이란것인데 바로 정신병이란 거여. 이제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 점점 더 악화되여 간다나? 그때만큼은 경숙이가 자꾸 시시벌거리며 웃고 노래도 하고 몸치장도 하고 그러기만 했더랬지만… 저런 병은 정말 완치못하는가봐. 그 이후부터 경숙이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기 시작했어. 며칠에 한번꼴로 어디로 누구를 찾아간다고 할매의 꽃불이 몸뻬바지를 들춰입고 예전에 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다줬다는 노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여기 흙산촌 뻐스정류소로 내려온다는거여. 그럴때마다 경숙이 할매가 꼬부랑 허리를 꺽으며 솔개골막치기로부터 여기까지 찾아나서고… 그런데 지금은 완전 더 심해간거여. 쩍하면 옷섶을 건사못해 가슴팍까지 다 드러내놓고… 말도 말어! 누가 보았는지 언제는 홀딱 벗은채 뻐스정류소에 나타나기도 했다는거여. 그게… 나도 다 들은 말이여! 이 에미는 아직까지 보지는 못했지만두. 그말이… 말이 아니여. 누가 봐도 완전 망가졌어. 미쳐버렸당께! 옛날의 그 깨사하고 곱살하던 경숙누나가! 그래, 너를 챙겨주고 돌봐주던 너그… 그 경숙이누나가 아니여! 엄마는 두서없이 시작되였던 길고 긴 이야기를 마침내 끝마쳤다. 그러나 수현은 묵묵히 앉아서 엄마가 끝내는 그 옛말같은 이야기속에 깊숙이 빠져 오래동안 헤여나오지 못했다. 아?! 참말로 그것이… 엄마가 이야기하는 그것이 정말 옛… 옛말이라면?!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이 다 발생할수가 있단말인가?! 경숙누나한테… 이런 말도 못할 어처구니없는 일이… 수현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났다. 경숙누나를 따라 누나가 메고다니던 낡은 풀색 책가방을 메고 “흙산소학교”에 입학하러 가는 일곱살 소년의 어누룩한 모습이 부지중 눈앞에 환영처럼 나타났다… … … 군복무로 부대에 계시는 아버지와 앓고있는 엄마때문에 나는 경숙누나와 함께 학교로 가게 되였다. 엄지발가락이 비죽이 내민 낡고 해진 운동화를 신고 경숙누나의 뒤를 졸졸 따라가던 눈물겨운 소년의 초등학교입학이였다. 나는 경숙누나를 따라 교무실이라고 쓴 방안에 들어갔다. 벽을 향해 책상을 둥그렇게 마주놓고 등을 보이고 앉아있던 남자, 녀자들이 하나, 둘 머리를 돌리더니 의아한 눈초리로 경숙누나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는 교무실문어귀에 못박힌듯 서서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남자, 녀자들을 흘깃거리며 경숙누나의 등에 가로메여져 있는 누나의 풀색 책가방만 넌짓이 바라보았다. “오… 오늘 입학하게 될 수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부모들이 편치 않으셔서 제가 대신…” 너무 긴장한 탓에 순간 머리끝이 쭈볏이 일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리 온!” 가운데책상에 마주앉아 등을 보이던 파마머리 녀자가 걸상에서 일어서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걸상에서 일어섰지만 앉은 걸상의 키를 얼마 초월하지도 못하는 낯선 녀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녀자가 조심스레 다가가는 나에게 물었다. “수현, 그러니 김수현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경숙누나가 늘 부르던 그대로 “수현”이라고 대답했다가 얼른 성씨와 이름을 붙혀서 다시 말해주었다. “몇살이지?” 녀자는 나를 힐끗거리더니 아예 무시한채 경숙누나의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쳐다보며 상냥하게 물었다. “막 여덜살이 돼요! 집에는 어머니가 계신데 요즘 몸이 많이 편치 않으셔서 제가 대신… 저는 수현이네 웃집에 살아요! 김경숙이라고…” 경숙누나가 나를 끄당겨 자기의 앞에 내세우면서 묻지도 않는 자기의 이름까지도 말했다. “그래?! 그럼 네가 여기 이 서류에 적혀있는대로 적고 싸인을 해야겠다!” 경숙누나는 녀자가 내미는 종이장을 받아들고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경숙누나는 녀자가 건네주는 만년필을 받아들고 하얗게 비여있는 빈칸에 또박또박 까만 글자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김남수 빈농 당원 군인ㅡ 나의 아버지였다. 김성혜 부농 가정주부ㅡ 나의 어머니였다. 김수현ㅡ 나의 이름이였다. 김혜현ㅡ 나의 동생이름이였다. …… 나는 경숙누나가 빈칸에 채워가는 빈농과 부농에 대해서 아는것이 없었다. 더우기 그 녀자의 묻는 말에 떠듬떠듬 대답하는 경숙누나가 “수현의 어머니가 정실질환으로 앓고있습니다.”라는 말도 뭔 말인지를 몰랐었다. 다만 아버지가 군복무로 군에 가 있고 몸이 편치 않은 어머니가 홀로 집에서 나와 동생을 거느리고 힘들게 생산대로동에 적응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것만은 알아들을수가 있었다. 모든 절차가 순식간에 끝났다. “오늘부터 김수현은 학생입니다. 제가 김수현학생의 담임으로 될겁니다. 성은 한씨이고 이름은 련화, 아니 그냥 한선생님이라고만 불러라.” 녀자의 나폴거리는 빨간 입술을 쳐다보는데 어쩐지 녀자가 좀전보다 낯설지도 않았고 또 밉지도 않게 생겼다고 느껴졌다. 처음과는 달리 웃는 얼굴에 눈빛도 서글서글하고 또 쪽진 파마머리도 아주 소박해 보였다. 나는 이렇게 “흙산소학교”에 입학하게 되였다. 나는 드디여 글을 배우고 익힐수 있는 “흙산소학교”의 학생으로 된것이다. …… 수현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한낮의 뜨거운 해빛이 아무 여한도 없이 방안으로 짓쳐들어왔다. 수현은 강하게 비추는 태양광선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지나온 세월에 쌓인 아픔의 력사도 다 그 시대를 어우르는 하나의 표상에 불과하였다. 참, 기구한 년대였다. 경숙누나는 1970년대, 그 시대를 어렵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영원히 풀지 못할 미스터리로 남아 후야무야 뒤소리를 달고있었다. 너무나 살벌했고 또 무자비했던 가증스런 년대는 지나갔지만 그 쓰나미와 같은 력사의 흔적은 사막에 널린 죽은 짐승들의 피페한 뼈쪼각처럼 사람들의 가슴속에 쓰라린 상처로 남아있었다. 경숙누나는 이제 길거리에서 헤매는 “미친녀자”로 되였다. 그녀의 가슴터지는 울부짖음은 오로지 세월만이 알아들을수 있는 하나의 메아리로 되여 오늘도 솔개골 막치기의 상류에서 보이지 않는 비바람소리와 함께 세차게 굽이치고있다. 2016년 병신년 3월 17일 学府圆 세집에서 -- 2016년9월 장백산 제5기에 발표.
10    한계(限界) 댓글:  조회:1154  추천:0  2016-03-06
중편소설 한   계(限界)    김도영 처음에는 귀엽고 마음에 와닿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 이름이 알게 모르게 싫증이 난다. 더우기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부터 아기때의 이름이 유치하게 느껴진다. 주인아저씨는 요즘 들어 생활에 권태를 느껴서인지 걸핏하면 아침에 먹다남은 음식을 그대로 던져주어 입맛도 없고 힘도 없다. 심지어 자리에서 일어서려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시도 때도 없이 눈에서 눈물이 자꾸만 흐르면서 눈확이 젖어들어 앞이 뿌옇게 보인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어루쓸어주는 위로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개운해진다. 허지만 그런 위로보다는 차라리 색다른 음식이거나 맛나는 고기붙이를 가져다준다면 얼마나 좋을가? 위속을 파고드는 쓰라림때문인지 맛나는 먹을 거리만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느침이 질질 흐른다. 입을 꽉 앙다물고 아무리 참고참아도 기름기가 번들번들 감도는 고기붙이가 눈앞에서 알른거려 정말 미칠것만 같다. 조물주가 빚어놓은 흑덩이로 태여나지 못하고 시누런 가죽에 하얀색을 뒤집어쓴 애완견의 몸에서 다리가 네개이고 몸이 휘여지게 둥글고 입은 있어도 말을 못하고 “왕왕!” 짖어대지 밖에 못하는 몽톡한 주둥이를 갖고있는 강아지로 태여난것이 한스럽다. 그러나 사실 나는 행복한 강아지임이 틀림없다. 내가 지금 이 주인아저씨와 함께 산다는 자체가 바로 복인것이다. 주인아저씨는 내 족속을 부르는 호칭인 “강아지”라는 강씨이여서인지 나를 무던히도 고와한다. 처음에는 당장 집밖으로 내동댕이칠 기세로 아줌마한테 성깔도 많이 부렸지만 그래도 손바닥만한 나의 가녀린 몸을 한식경이나 들여다보더니 그런대로 아줌마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나는 어느 추운 겨울날에 이 집으로 이사, 아니 팔려왔다. 내가 엄마의 몸에서 태여나 막 한달도 되지 않는, 금방 20여일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주인은 나를 엄마품에서 떼여내 종이함속에 넣어가지고 장마당으로 갔다. 나는 종이함속에 갇힌채 몸을 옹송그리고 추위에 달달 떨었다. 그나마 길가던 행인들과 장보러 온 사람들이 간혹 들여다보고 따스한 손으로 머리털이며 온몸을 살살 어루쓸어주어 기분이 좋았다. “아유, 귀엽기도 해라. 낳은지 얼마나 됐어요?” 나는 새우처럼 몸을 곱송그리고 모재비로 누워있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웬 녀인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종이함속에서 기지개를 쭉 켜며 밖을 내다보는데 어느새 녀자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아직도 젖내가 다분히 묻어있는 나의 털에 와닿았다. 녀자의 손은 어쩌면 포근한 엄마의 품과도 같이 따뜻했다. 나는 용기를 내여 녀자의 손바닥에 머리를 들이밀고 온몸을 비비꼬았다. 꼭 마치 이 녀자가 앞으로 나의 주인이 될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아유, 귀여워라. 요 하얀 털색갈을 봐.” 녀자가 아예 작고 갑삭한 나를 두손으로 받쳐들고 어루쓸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얼마얘요, 이 강아지가?” 녀자가 지갑을 들추며 흥정하였다. “금방 에미 몸에서 떨어진지 20일이 되였수다. 그러니 20원만 주시우.” 나는 어쩐지 나를 낯선 녀자에게 팔아버리는, 눈에 허연 눈곱을 달고 꺼벙하게 서있는 늙은 녀자가 한없이 미웠다. 아니, 정말 싫었다. 이렇게 되여 나는 젖도 채 떼지 못한채 엄마와 생리별을 하여 억지로 낯선 집으로 팔려가게 되였던것이다… 새집의 주인아저씨는 시문화체육국 창작실에서 사업하는 작가였는데 이름은 강설환, 가정의 평범한 주부인 녀자의 이름은 김태희, 그리고 외아들로 태여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있는,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새파란 녀석의 이름은 강환희였다. 나는 새 집에 오자마자 토토(淘淘)란 이름을 얻게 되였다. 이 이름은 환희가 나에게 지어준것이다. 이렇게 되여 나는 새 보금자리에서 그들과 한 가족이 되여 숙명적인 불행한 이야기를 엮게 되였다.     갑자기 엄마가 한국으로 간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저도 모르게 주인집녀자는 “엄마”, 주인집아저씨는 “아빠” 그리고 외아들인 강환희는 “형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수컷이였기에 당당하게 환희를 형님이라고 부를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한국으로 간다고 하니 어쩐지 가슴이 허전해나 미여지는것만 같다. 나한테 날마다 밥도 챙겨주고 치장도 해주고 또 목욕까지 시켜주는 엄마인데. 이제 엄마가 한국으로 가게 되면 누가 나를 챙겨주겠는가? 나는 한동안 입맛이 떨어져 도저히 밥을 먹을수가 없었다. 금방 새 집으로 팔려왔을 때와 같은 그런 막막한 기분이였다. 한달도 안되는 가녀린 내가 새 집에 왔을 때는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더우기 전신에 이가 득실거려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그나마 엄마가 목욕을 시켜주다가 나의 몸에 붙어있는 이를 발견하고 시간이 나는대로 짬짬이 잡아주기에 망정이지 하마트면 이들에게 물려 제명대로 못 살고 죽을번했다. “토토가 이들한테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렇게 여위였을가?” 엄마는 가슴이 아파하였다. 가끔 아빠도 나를 품에 안고 이를 잡아주면서 윤기나기 시작한 나의 털을 곱게 어루쓸어주었다. 형님은 아예 나를 자기의 이불안에 끌여들여 껴안고 잤다. 그러나 나는 형님의 이불안에 기여들기를 싫어했다. 편하게 잠을 잘수가 없기때문이였다. 쩍하면 태질을 하여 쬐꼬만 내 몸이 이불밖으로 밀려나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편하게 잠을 잘수 있는 곳은 유독 엄마, 아빠가 함께 주무시는 이불속이였다. 엄마, 아빠의 이불속에 기여들면 그들은 나를 따스한 살결로 품어주었고 내가 아기인양 둘 사이에 눕혀놓고 겨끔내기로 어루쓸어주었다. 때문에 밤마다 엄마, 아빠의 이불속에서 자는 시간이 나한테는 더없는 즐거움이였고 행복이였다. 어느덧 내가 이 집에 온지도 5년이 되였다. 언젠가 텔레비죤에서 볼라니 인간과 우리 동물, 강아지들의 나이는 다르게 구분되는데 이른바 인간들이 일컫는 한해가 우리 강아지들에게는 6년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나도 어언 서른살의 불같은 청춘인셈이였다. 그러나 아직도 숫컷의 딱지를 떼지 못하였다. 엄마, 아빠는 내가 짝짓기를 하는것을 거부했다. 물론 나도 이같이 행복한 우리 가족을 떠나 불행이 겹치는 혼자의 삶을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또 그렇게 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한국으로 나간다니…? 아빠도 례사롭지 않다. 아직 엄마가 한국으로 나가지 않았는데도 아빠는 밥맛이 없다며 가끔 식탁에서 빈 입을 다시는 경우가 빈번했다. 나의 밥그릇도 좀체로 축나지 않았다. 엄마가 한국으로 나가려고 심양주재 한국령사관에 비자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 집에서는 내내 웃음소리 한번 들리지 않고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다. 내가 아무리 아양을 떨고 극성스레 아빠와 엄마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리며 치근거려도 막무가내였다. “저리 가. 네가 자꾸 눈에 밟혀서 어쩌겠냐? 괜히 길러가지고… 이렇게 정 많은 놈을…” 엄마가 가끔 나한테 눈을 흘기며 정을 떼기라도 하듯 짜증을 냈다. 얼마나 서운한지 몰랐다. 인간들처럼 말할수만 있다면 나도 “엄마, 가지마! 엄마가 없는 이 집이 무서워!”하고 말하련만. 내가 입을 열면 되려 기막힌 울음소리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앙앙! 왕왕왕!” 나는 종래로 식구들앞에서 이렇게 “애처롭게” 울어본적이 없었다. “얘가…” 엄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 말을 잃었다. “엄마가 없더라도 밥 든든히 먹고 아빠랑, 형님이랑 엄마가 올때까지 기다려. 알겠어?” 나는 엄마의 이 말을 머리속에 새겨두었다. 비록 쉽게 알아들을수 있는 말이 아니였지만 나는 머리와 가슴에 아로새겼다. 엄마는 2010년 3월 20일, 연길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난 엄마를 보내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는 아빠랑 형님과 함께 한달, 두달… 1년, 2년을 보냈다. 엄마의 목소리는 아빠가 나를 품에 안고 통화할 때 가끔 엿들을뿐이였다.     지겹다. 사는것이 이처럼 힘들고 피곤하기는 처음이다. 모르름지기 아빠가 알지 못할 곤혹에 깊이 빠져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5년동안 줄곧 엄마를 대신해 목욕도 시켜주고 또 굶길세라 밥도 챙겨주던 아빠가 어느날 갑자기 술에 만취되여 돌아왔다. 엄마가 한국에 나간후 여직껏 한번도 있어본적이 없는 외람된 행동이였다. 지독한 술냄새에 내가 막 취하는것 같았다. 아빠는 형님이 봐드린 이부자리우에 힘없이 쓰러져 곁에서 맴도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벌겋게 충혈된 두 눈에 하얀 물안개가 보얗게 끼여있었다. “토토야, 어쩌면 좋으냐? 사는것이 참말로 지겹고 힘들구나. 뭐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갈라져서 살아야 하냐? 우리가… 이것이 그래 숙명이란 말이냐?” 아빠의 술취한 목소리가 오래동안 머리속에 맴돌았다. 도저히 무슨 말씀인지 아리숭하였다. “엄마가… 엄마가 아직도 3년을 더 벌고 오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아빠의 한숨소리가 나의 예민한 두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깨가 축 처져있는 아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빠가 하도 안스러워 나는 위안의 말이라도 해주려고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빠한테 다가갔다. “아빠,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엄마는 꼭 돌아올거예요. 나도 엄마의 당부대로 아빠랑, 형님과 함께 엄마를 기다리겠어요. 왕왕!” 그러나 나의 입에서는 왠지 “왕왕!”하는 개소리밖에 나가지 않았다. “기특한것이… 그동안 너라도 곁에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토토야!” 아빠는 나의 머리털을 어루쓸며 감격해하였다. “아빠, 힘내세요. 왕왕!” 나는 아빠한테 어리광을 부리며 아빠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렸다. “아빠, 옷 벗고 주무세요. 왕왕!” 나는 한사코 아빠의 구겨진 바지가랭이를 물고 뒤로 당겼다. “후-, 요것이… 그래 토토야, 아빠가 옷 벗고 누울게.” 아빠는 드디여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벗고 이부자리우에 누웠다. “아빠, 왕왕!” 나는 아빠의 이불안에 기여들며 목이 쉬도록 불렀다. 그러나 아빠는 길게 한숨만 톱더니 어느새 드렁드렁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나는 은근히 엄마가 야속해났다. 이젠 그만 벌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은가. 정말 나같은 동물의 두뇌로서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었다. 형님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아빠가 출근하고나면 형님은 하루종일 혼자서 외롭게 자기만의 고독을 씹군 하였다. 왠지 형님이 안스러워보였다. 형님은 한창 나이인 20대의 청년인데 왜 하루종일 집에만 들어박혀있지? 나름대로 내가 몇번이나 물어보아도 형님은 묵묵부답이였다. 아마 형님은 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것 같았다. 형님은 텔레비죤에서 눈을 떼더니 말없이 이부자리우에 쓰러져 코를 골고있는 아빠를 넋놓고 바라보며 가슴이 꺼지게 긴 한숨을 토해냈다. “후- 우리 아버지가…” “형님, 왜요? 혹시 아빠가 몸이 불편해요? 아니면 엄마가? 왕왕?” 나는 형님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쳐다보면서 불안한 생각이 갈마들었다. “이 강아지가… 왜 안하던 짓을 하나? 집식구들한테 종래로 짓지 않던 네가 요즘들어 왜 이래?” 형님이 오히려 걱정스러운지 나의 잔등을 어루쓸며 답답해했다. “아니예요. 아빠가 걱정스럽고 엄마가 그리워서 그래요. 왕왕!” 나는 참을수가 없었다. “형님, 왕왕!” 그러나 형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앉아 텔레비죤에만 눈을 박았다. “토토야, 너도 우리 집에서 10년 넘게 자랐으니 이젠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문득 형님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 나이를 걱정하였다. “나는 이 집에서 형님과 함께 아빠를 모시고 사는것이 정말 좋아요. 왕왕!” 나는 연신 형님의 다리에 감겨들며 재롱을 부렸다. 참말이지 내 나이에 이런 어리광은 당치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형님과 아빠에게 부리는 어리광이 좋았고 또 그들의 따스한 손길이 너무 살갑게 느껴졌다. “토토야, 엄마가 보고싶지? 나도 엄마가 보고싶어 미치겠다. 왜 우리 조선족은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불행한 민족인지 모르겠다. 언제면 우리 모두 한집에서 오손도손 함께 살수 있을가? 날마다 아빠의 힘빠진 처량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이 막 미여진다.” 형님의 울먹울먹한 목소리가 아프게 귀구멍을 파고들었다. “형님, 엄마는 꼭 돌아오실거예요. 엄마가 그랬잖아. 아빠랑 형님이랑 함께 기다리라고. 난 엄마의 말을 믿어. 왕왕!” 나는 형님을 위안하며 형님의 곁에 몸을 뉘였다. 이젠 나의 몸도 례사롭지 않게 많이 무거워졌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나도 가끔 몸이 불편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형님이 간혹 소화제를 먹이며 내 건강을 챙겼지만 인간도 아닌 내가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산다는것은 어불성설이였다. 그만큼 나는 언제부터인가 엄마, 아빠, 형님과 함께 동물이란 개념을 떠나 사람인듯한 환각속에서 버젓하게 살아왔던것이다. 이젠 아빠의 눈치만 봐도 아빠가 성을 내는지 아니면 귀찮아하는지를 제꺽 판단할수 있다.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형님은 종래로 나한테 욕 한번 하지 않았다. 아빠가 간혹 “망할놈의 강아지!”라고 욕을 퍼부었지만 나는 그런 욕쯤은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나를 욕하는것으로 아빠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아빠는 작품을 창작하는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아빠는 매일 아침부터 팽이처럼 바삐 돌아쳤다. 일찍 일어나서 밥을 짓고 나한테 먹이를 챙겨주고 또 출근해야 했다. 직장의 일이 힘든지 저녁이면 량어깨가 축 처져 집으로 돌아왔다. 허지만 종래로 형님한테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위가 아파 며칠동안 입맛을 떨군채 아빠가 챙겨준 밥을 꼬물만큼도 먹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가 아빠한테 혼난적이 있었다. 그날도 아빠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얀 이밥에 돼지고기국을 끓여서 사발에 꼴딱 담아주었다. 그러나 어쩐지 자꾸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서 나는 종내 밥 한알도 먹지 못하였다. 저녁이 되여 퇴근한 아빠는 그것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토토야, 왜 오늘도 밥을 먹지 않았냐? 너마저 이렇게 아빠를 속태우면 어떡하니? 이놈의 강아지가 정말… 자꾸 이러면 래일부터는 밥을 챙겨주지 않을거야.” 아빠는 화가 났는지 사발에 그득 담겨져있는 돼지고기국밥을 뜨물바게쯔에 왈칵 쏟아버렸다. “토토가 낮에 자꾸 토하는것 같습디다. 얘도 속이 부실한가봐요.” 형님이 안스러운지 나를 두둔해서 한마디 하였다. 그러나 아빠는 비여버린 나의 밥그릇을 씻으면서 아닌보살을 했다. “아까운 쌀밥을 던질게면… 정말이지 이런 짐승은 키우는것이 아니야. 말도 못하는 짐승한테 괜히 정만 들어가지고… 후-” 아빠는 긴 한숨으로 형님의 말에 대답하였다. 나는 어쩐지 아빠가 한숨짓는 모습을 쳐다볼수 없었다. 괜히 아빠의 스트레스가 더 쌓이게 한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아빠, 내 몸이 예전같지 않아서 그래요. 이젠 몸이 부실해서 간혹 형님이 주는 소화제를 먹어도 막무가내예요. 왕왕!” 내가 목이 쉬도록 아빠한테 사죄했지만 입에서 “왕왕!”하는 개소리밖에 나가지 않았다. “이젠 우리 토토도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봐. 사람이 늙으면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것처럼 토토도… 역시 세월은 속일수가 없는가봐.” 아빠는 이렇게 탄식하며 다시 나의 밥그릇에 밥을 담아주었다. “그래도 먹어야 살아. 이눔의 강아지야!” 아빠는 걱정스레 겁에 질린 나의 두 눈을 들여다보더니 나를 끄당겨 눕혀놓고 배를 살살 문질러주었다. “너라도 건강하게 엄마를 기다려야지 않겠냐? 토토야?” 아빠는 밥사발을 한켠으로 밀어놓으며 자리에서 움쭐 일어셨다. 나는 아빠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면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식기앞에 다가섰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이는 속이지 못하니라…” 나는 아빠의 말씀을 다는 리해하지 못하였지만 어쩐지 아빠의 건강이 나빠진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빠는 저녁을 드는둥마는둥 몇술 뜨더니 그대로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요즘들어 아버진 통 음식을 드시지 않네요. 어디 아프세요?” 형님이 숟가락을 놓고 물러앉는 아빠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아니야, 환절기여서 그런가봐. 곧 다가오는 겨울을 걱정하다보니 자연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어. 단위일도 그렇고.” 아빠가 힘없이 대답했다. “힘들면 좀 쉬세요. 엄마도 집에 없는데… 아버지의 건강이 좋아야 우리 가족이 있는것이 아닙니까?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죠? 큭!” 갑자기 형님이 쿨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여서 어쩔바를 몰랐다. “형님, 제발 아빠한테 가슴 아픈 모습을 보이지 말아요. 아빠가 얼마나 힘들면 저러겠어요? 왕왕!” 나는 밥알을 씹다말고 목이 꽉 메여 아빠와 형님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날 밤 아빠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였다. 나도 자지 않고 가만히 이불안에서 아빠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 지난 몇년 동안 많이 여위였다. 튼실하던 허벅지도 살이 빠져 가죽만 주글거렸다. 혼자서 집살림을 하랴, 출근하랴 많이 힘들었던가보다. 나는 달리 어떻게 위로해줄수 없어 혀바닥으로 아빠의 허벅지를 살살 핥아주었다. “허허, 이눔의 강아지가… 토토야, 정말이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다독이는 정성에 감복하는거야. 엄마가 있을때는 너에게 밥을 챙겨주는 엄마를 그처럼 따르더니 인제는 나를 따르는구나. 넌 정 많은 동물이야.” 아빠는 내 행동이 대견스러웠는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아빠, 절대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그래야 엄마가 돈 많이 벌어가지고 돌아와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지요. 왕왕!” 나도 마음속으로 아빠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갑자기 목이 심하게 꺾이며 숨을 쉴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앞다리가 풀썩 꺾이는것 같았는데 이젠 뒤다리마저 세울수가 없었다. “웬 일이지? 아빠, 왕왕!” 나는 안깐힘을 다해 주무쉬고있는 아빠를 불렀다. 그러나 아빠는 피곤한지 이불도 덮지 않은채 따듯한 구들에 잔등을 붙이고 굳잠에 깊이 빠져있었다. “아빠, 일어나세요. 아빠! 왕왕!” 나는 힘없이 아빠를 계속 불렀다. 온몸이 엿가락처럼 해나른나며 전신의 기운이 다 빠져가고있었다. 나는 점점 오그라드는 앞발과 맥이 풀려 아운해진 뒤다리를 굽힌채 간신히 아빠한테로 대굴대굴 굴러갔다. “아빠, 일어나세요. 왕왕!” 나는 고개를 쳐들고 깊은 잠에 빠진 아빠의 얼굴을 핥으며 애타게 부르짖었다. 한참후에야 아빠는 나의 혀바닥에 의해 젖어드는 턱을 문지르며 두눈을 번쩍 떴다. “어? 웬 일이야? 아니, 이건 석탄가스냄새가 아니야?” 아빠는 후닥닥 뛰쳐일어나더니 무릎걸음으로 방문앞으로 기여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순간 겨울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강한 바람이 집안으로 후욱 날려들어왔다. “아빠…!” 나는 혼겁해서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아빠의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토토야, 너도 석탄가스를 먹었구나.” 아빠는 나를 한손으로 붙안고 후둘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겨놓으면서 엎어지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갑작스레 찬바람을 맞자 나는 당장 두 눈알이 밖으로 튀여나오는것만 같았다. 나는 아빠의 품에 안긴채 머리를 떨어뜨리고 가슴이 콩닥콩닥 심하게 뛰는것을 가까스로 진정했다. “토토야, 고맙구나. 네가… 네가 어떻게 나를 깨울 생각을 다 했냐? 네가 이 아빠를 살렸구나.” 아빠는 나를 가슴에 꼭 껴안은채 울먹거리며 연신 치하했다. 나는 그러는 아빠를 바라보며 엄마의 말씀대로 아빠를 지켜냈다는 자호감에 가슴이 뿌듯해났다. “아빠, 정말 다행이얘요. 우리 살아났어요. 왕왕!” 나는 아빠의 가슴에 안긴채 기운없이 대답했다. 저녁에 아빠가 부엌에 불을 지핀것이 흐린 날씨때문에 대기압이 높아져 밤중에 석탄가스가 부엌으로 쏟아져 나왔던것이다. 그후부터 아빠는 각별히 조심했고 나도 명심해서 밤을 잘 지키리라고 속다짐했다. 만약 밤귀가 빠른 나까지 잠에 곯아떨어진다면 불행이 눈섶밑에서 떨어질수 있었다. 하여 나는 항상 낮과 밤의 교대를 위해 낮에만 자고 밤에는 자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게라도 아빠를 지키고 우리 집을 지키는것이 바로 나의 임무이고 또 엄마의 당부를 체현하는것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엄마의 요청에 의해 얼마전에 형님까지 한국으로 간 마당에 말이다. 나는 아빠가 출근하고나면 낮에 그날의 잠을 보충받고 밤이면 두눈을 부릅뜨고 우리 집의 안녕을 위해 밤을 새웠다. 아빠도 생목숨을 둘이나 잃을번한 석탄가스중독을 경험하고나서 우리도 빨리 아빠트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씀했지만 아직 새집을 마련할만한 목돈을 장만하지 못한 형편이여서 부득불 계속 단층집에 눌러앉아 살수 밖에 없었다. 아빠는 늘 하루빨리 엄마가 목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였다. 세상에 돈이란 무엇이기에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하는지 모르겠다. 입으로는 곧잘 “개도 안먹는 돈”이라고 하면서도 그 돈에 미쳐있다. 사실 엄마도 그 돈때문에 한국으로 나간것이 아닌가. 만약 속담처럼 누가 나한테 돈을 던져준다면 나는 비록 먹지는 않더라도 제꺽 물어다가 엄마, 아빠한테 가져다줄것이다. 그렇게라도 한국에서 뼈 빠지게 돈을 벌며 고생하는 엄마를 돕고 또 혼자서 힘들게 집을 지키고있는 아빠를 도와주고싶었다. 물론 이 모든것은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하루도 이같은 망녕된 생각을 하지 않은적이 없다. 사람으로 말하면 내 나이가 벌써 70살도 넘었으니 많이 늙었다. 그러나 나는 오래오래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싶다. 언젠가 엄마와 형님이 한국에서 돌아와 온 가족이 오붓하게 모여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시 어릴때처럼 그들의 사랑속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만년”을 행복하게 보내고싶다. 과연 그날이 언제가 될지?…     형님은 한국에 가더니 모질게도 소식 한번 보내오지 않았다. 사실 형님과 내가 함께 한 시간이 제일 많았다. 물론 아빠도 마찬가지였지만 날마다 출근하고나면 나와 형님이 서로 의지하면서 집을 지켰던것이다. 때문에 형님이 한국으로 떠나고나니 집안이 텅 빈것같아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간혹 형님이 일이 있어 밖으로 나가면 나는 불안하여 출입문을 넋놓고 바라보며 꼼짝않고 앉아서 형님이 돌아올때까지 기다리군하였다. 형님이 한국에 나간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늘 형님이 당장 문을 떼고 들어올것만 같아 문앞에서 맴돌았다. 헌데 한국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떤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형님은 한국에 가더니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아빠의 말씀대로 출입문밑에 엎드려 형님을 기다리는것도 고역이였고 너무나 힘겨웠다. 아빠도 나와 같은 심정인지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토토야, 한국은 바다건너에 있는 먼 나라란다. 그러니 무작정 기다리지 말거라. 참, 세상에 너같은 강아지는 처음이야.” 아빠의 말씀에 나는 한국이란 나라가 먼곳에 있는 외국이란것을 알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나는 엄마와 형님을 유혹하여 데려간 한국을 저주하게 되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운 기다림과 한탄으로 가슴을 적시며 그리움을 달래였다…     어느덧 형님이 한국으로 간지도 6개월이 되였다. 형님이 떠날때는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가을이였는데 벌써 하얀 겨울도 다 가고 따스한 봄이 싱그러운 아지랑이를 산과 들에 피워올리며 기별도 없이 찾아왔다. 겨우내 석탄먼지와 가스냄새가 진동하던 지긋지긋한 집안공기는 아빠가 열어젖힌 창문으로 깡그리 사라졌다. 아빠의 얼굴도 한결 밝아보였다. 그러나 나만은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형님은 아직도 한국에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도 인젠 외기러기의 삶이 점차 지겨워나는것 같았다. 비록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내지 않고있었지만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금방 알수 있었다. 아무리 미욱한 동물일지라도 아빠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것도 모르겠는가. 아빠가 갑자기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엄마가 사놓고 간 옷만 입고다니던 아빠한테 여러가지 옷과 더불어 고급양복까지 생겼다. 여직껏 아빠는 종래로 자기절로 옷을 산적이 없었다. 아빠의 거동이 많이 가벼워졌고 얼굴에도 한결 윤기가 돌았다. 나의 미련한 생각으로도 아빠한테 녀자가 생긴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멋을 부리겠는가? 그러나 나는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관찰하였다. 아빠의 옷은 물론 발에 꿰고 다니는 양말의 퀴퀴한 냄새까지 맡아가면서. 어쩐지 아빠한테 버림을 당하는것만 같은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여전히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이 되여서야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군했다. 아빠의 일상은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판에 박은듯이 예전과 똑같았다. 하여 나는 가족을 올곧게 지켜가는 훌륭한 가장인 아빠를 공연히 의심한 자신이 미웠다. 하기야 세상에 우리 아빠와 같은 남자도 드물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만들어낸 속담과 같이 불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가 날리 없었다. 아무리 아빠에 대한 의심을 부정하려고 해도 아빠에게서 풍기는 고기비린내같은 향수냄새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종래로 몸에 향수를 뿌리지 않는데 뜬금없이 웬 향수냄새란 말인가. 이는 틀림없이 밖에서 누군가에 의해 묻혀온것이였다. 나는 미칠것만 같았다. 지금까지10여년을 아빠와 한집에서 살면서 그처럼 엄격하고 당당한 남자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었다. 심지어 나의 짝짓기마저 거부하면서 내가 망측한 행동을 보이면 비자루를 쳐들던 아빠였다. 나도 수컷인지라 가끔 암컷이 그리워 아빠의 기다란 베개를 붙잡고 흘레를 한답시고 촐싹거리군하였다. 그때마다 아빠의 비자루에 얻어맞아 깨갱깨갱명을 지르며 걸상밑으로 달려가서 몸을 사렸다. 그런데 아빠한테 녀자가 생기다니? 물론 내 나름대로의 추측이지만 이건 엄마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불현듯 아빠가 축은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한국에 간지 8년 짓이 되도록 아빠는 내 앞에서 외간녀자를 껴안고 “남자”를 호령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빠도 남자인데 기나긴 세월 독수공방하면서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나도 가끔 암컷이 그리울 때면 미칠것만 같은데. 그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것 같다. 허나 우리 동물과 달리 인간들은 정조란것이 있는데 함부로 녀자를 사귀면 안되지 않는가? 그러다가 엄마가 알게 되면… 내가 걱정하던 일은 끝내 터지고말았다. 어느날 저녁, 술에 알딸딸하게 취한 낯선 녀자가 아빠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토토야, 엄마다. 엄마가 돌아왔어.” 아빠가 등뒤에 선 녀자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나한테 인사를 시켰다. “뭐?! 엄마라고? 아니야, 왕왕!” 아무리 두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보아도 엄마가 아니였다. “왕왕! 우리 엄마가 아니야. 누구야? 왕왕!” 나는 당장 달려들어 낯선 녀자를 물어뜯기라도 할듯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오, 네가 토토구나. 아주 귀엽게 생겼네.” 낯선 녀자가 술냄새를 푹푹 풍겼다. 나의 이름까지 부르며 아빠의 등뒤에서 머리를 내민 낯선 녀자에게서 익숙한 향수냄새가 풍겼다. 바로 아빠의 몸에서 가끔 나던 그 향수냄새가 분명하였다. 첫눈에 녀자가 매우 예쁘게 생겼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몸에 빨간 원피스를 걸치고 함박꽃같이 살풋이 웃는 모습이 아주 복성스러워 보였다. 나는 대뜸 기고만장하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아빠만 퀭하니 쳐다보았다. “아빠, 정말 녀자가 생겼어요? 그럼 엄마는요…?” 나는 아빠 앞에서 녀자한테 감히 덤벼들수 없었다. 더구나 내 이름까지 부르며 귀엽다고 하는데 웃는 얼굴에 침을 뱉겠는가. “이것보오. 녀석이 벌써 제집식구를 알아보고 친해지려고 하는걸…” 아빠가 다가와 나의 머리털을 어루쓸며 잔등을 톡톡 도닥여주었다. “정말요?” 낯선 녀자까지 다가와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나의 머리를 어루쓸려고 하였다. “왕왕! 아줌마는 안돼.” 나는 아빠의 손에서 벗어나 대뜸 무서운 기세로 낯선 녀자를 사납게 째려보았다. “아유, 이 녀석이…” 낯선 녀자가 덴겁하여 뒤로 주춤 물러서며 손을 움츠렸다. “이 녀석이… 안되겠다. 정 이러면 이불장안에 가둬놓는다.” 아빠가 무섭게 호령하면서 나를 덥썩 끌어안았다. “아빠, 아니야. 아줌마가 나한테 손을 대려고 해서 그런거야. 아빠, 왕왕!” 나는 한사코 이불장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네발을 버둥거리였다. 허지만 아빠는 막무가내로 나를 이불장안에 밀어넣고는 거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아빠, 나를 가두지 마세요. 아줌마한테 안 그럴게. 왕왕!” 이불장안에 갇힌채 아무리 소리질러도 아빠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콩알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시커먼 이불장안에서 낯선 녀자를 저주하며 발톱을 세워 유리창을 박박 긁어댔다. 아빠는 그 낯선 녀자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호호… 그러세요?” 녀자도 가끔 아빠의 말에 동조하면서 꺄르륵 귀맛좋게 웃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우리 집에 녀자가 찾아온것이다. 그것도 말쑥하게 생긴 멋장이 녀자가. 녀자의 냄새가 좋았다. 나까지 녀자의 냄새에 이처럼 민감한데 아빠야 말해 더 뭘하랴? 나는 아빠의 녀자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어쩐단 말인가? 아무런 반항도 할수 없고 더우기 쩍하면 갇히는 몸인데 난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나는 더는 발톱을 세워가지고 유리창을 허비지 않았다. 다만 한쪽 눈으로 일광등불빛이 하얗게 부서지는 방안을 숨을 죽이고 내다보았다. 아빠와 낯선 녀자가 나란히 연분홍 비단이불우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있었다. 녀자는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지 아빠의 어깨에 자기의 몸을 기대며 연신 까르르 웃어댔다. 아빠는 그러는 녀자의 함박꽃같은 얼굴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홀연 덥석 껴안고 엄마와 하던 뽀뽀까지 서슴없이 하였다. 녀자는 아빠가 하는대로 자기의 몸을 맡긴채 이불우에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아빠의 손에 의해 녀자의 빨간 원피스가 벗겨졌다. 녀자는 한떨기의 불타는 함박꽃이였다. 빨간색 브래지어가 녀자의 볼록한 젖가슴에서 두송이의 함박꽃으로 피여 도톰하게 입을 열고있었다. 드디여 아빠의 손이 브래지어속으로 파고들자 녀자가 숨 넘어갈듯한 신음을 토해냈다. “헉, 왕왕!” 나도 숨이 넘어갈것만 같았다. 녀자의 말쑥한 알몸이 어느새 눈앞에서 하얗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얼핏 보아도 녀자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아빠의 거친 손길에도 녀자는 아무런 반항도 없이 두 다리를 배배 꼬며 아빠의 몸밑에서 숨박꼭질이라도 하려는듯 아빠를 품고 놓지 않았다. “아빠, 왕왕!” 나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장면은 처음이였던것이다. 오랜만에 아빠는 엄마와만 하던 적라라한 짓거리를 낯선 녀자와 서슴없이 저지르고있었다. “아유, 급해하기는…? 좀 천천히 서두르세요. 옷도 벗지 않고…” 애교가 다분한 녀자의 목소리가 은방울을 굴리듯 유리창에 맞혀 살갑게 들려왔다. “어, 당신이 벗겨줘야지…” 아빠는 응석둥이 어린애마냥 녀자앞에 몸을 맡겨버렸다. 녀자가 웃몸을 일으키더니 아빠의 적삼과 팬티를 벗기는데 벌써 아빠의 “남자”가 우뚝 솟아있었다. “호호호…” 녀자가 호들갑을 떨며 야한 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알몸뚱이 두 남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이불우에 쓰러졌다. “아니, 아니야. 안돼. 왕왕!” 나는 도저히 두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볼수 없었다. 허지만 아빠는 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녀자의 몸우에 올라탔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불장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아빠는 한식경이나 낯선 녀자의 몸을 탐하더니 맥없이 한켠에 떨어져나갔다. 녀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우유빛갈의 몸을 반듯하게 뉘인채 아빠의 곁에 그린듯이 누워있었다. 나는 미칠것만 같았다. “왕왕! 아빠, 왕왕왕!” 나는 연신 이불장의 유리창을 발톱으로 긁어대며 사납게 부르짖었다. “이놈의 강아지가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두컴컴한 이불장안에 갇혀있으려니 무척 답답한 모양이구나.” 아빠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중얼거렸다. “잠깐만요. 제가 밖으로 나간 다음 토토를 꺼내주세요. 아무리 강아지라도 저의 알몸을 보여주기 싫어요.” 녀자가 이불장으로 다가오려는 아빠를 제지시켰다. “어, 그래? 허허, 소심하기는…” 아빠는 녀자의 말을 곰상곰상 잘 들었다. 녀자는 빨간색 원피스를 몸에 걸치더니 문가로 다가갔다. 아빠는 느닷없이 녀자를 꼭 껴안더니 소리나게 뽀뽀를 했다. 녀자는 행복에 겨워 함박꽃웃음을 피워올렸다. 이윽고 삐이익- 하고 방범문이 여닫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막히는 이불장안에서 잠시나마 아빠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가만히 도적질해 보고나니 나는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였다. 다만 뜬금없이 엄마의 얼굴이 떠오를뿐이였다. 어쩐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몸을 옹송그린채 스르르 두 눈을 감았다. 터벅터벅! 아빠의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이불장으로 서서히 다가오고있었다…     너무나 황홀했다. 나는 가벼운 깃털처럼 어딘가로 둥둥 떠가는것만 같았다. 나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아빠와 형님을 바라보며 너무나 즐거웠다. 이게 얼마만인지 기억에도 아리숭했다. 엄마의 품이 이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엄마의 품은 너무나 따스했고 또 엄마의 향기는 세상에 다시없는 싱그럽고 풋풋한 냄새였다. 나는 간혹 이렇게 엄마의 품에 안겨 엄마의 향기를 맡는 자신이 좋았고 또 엄마의 냄새를 느낄수 있다는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했다. 엄마도 언젠가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토토는 꼭 우리 집에서 살게끔 태여난 강아지인것 같아요. 어디 가서도 얘만한 강아지는 보지 못했어요. 얘는 강아지인것이 아니라 사람의 간을 녹여내는 요물단지라니깐요.” 나도 엄마의 이 말씀에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갑자기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풍겨와 코를 찔렀다.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런 냄새를 몰고 올 바람도, 물건도 길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아니, 이 냄새는… 왕왕!” 나는 깜짝 놀랐다. 비릿한 냄새가 분명히 엄마의 입안에서 새여나왔던것이다. “웬일이지? 엄마가…?” 엄마가 언제부턴가 가끔 위가 아프다고 한것은 사실이였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심한 역겨운 냄새를 풍기지? 나는 엄마의 품에서 길게 몸을 늘구고 가만히 엄마의 배에 귀를 가져다대고 조심스럽게 소리를 들어보았다. 마치도 엄마의 위속에서 무엇인가 심하게 태동하며 끓어번지는것만 같았다. “엄마, 어디 아파? 왕왕!” 나는 참을수 없어 엄마한테 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흑흑흑… 엄마가 많이 아파요. 난 어쩌면 좋아? 왕왕!” 나는 엄마가 걱정스러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부지런히 앞서가는 아빠의 뒤만 따랐다. 갑자기 엄마가 몸을 휘청거리며 길섶에 주저앉았다. “웬 일이세요 엄마? 왕왕!”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엄마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엄마가 가슴을 부여잡고 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입술에는 빠알간 피가 가득 묻어있었다. “엄마, 왕왕!” 나는 엄마의 품안에서 풀쩍 땅에 뛰여내리며 근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엄마는 말없이 울컥울컥 길가에 무엇인가 토해내기만 했다. 순간 역겨운 피비린내가 코를 쿡 찔렀다. “엄마 왜 이래? 왕왕!” 나는 기절할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앞에서 형님과 무엇인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부지런히 갈길만 재촉하였다. “아빠, 형님! 왕왕!” 나는 아빠와 형님을 목터지게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무엇엔가 꽉 막혀 입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빠, 형님! 흑흑흑… 왕왕왕!” 나는 연신 아빠와 형님을 부르며 앞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걸어가던 아빠와 형님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 왕왕! 형님, 왕왕!”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헌데 감쪽같이 엄마도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사위가 온통 칠흑처럼 새까만 어둠에 잠기는가싶더니 눈앞도 분간할수 없는 검은 장막이 온 누리를 뒤덮었다. “아빠, 엄마, 형님! 왕왕왕!” 나는 있는 힘껏 앞으로 뛰쳐나가려고 앞발을 모두었으나 전신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허허, 이눔의 강아지가 꿈을 꾸고있는가봐. 꿈속에서도 무엇이 좋아서 짖어대냐? 토토, 토토야!” 누군가 내 몸뚱이를 건드리는것 같아 간신히 두 눈을 떠보니 아빠가 나를 부르며 흔들어 깨우고있었다. 내가 아빠의 곁에서 껌빡 졸았던것이다. 입가에 느침이 게발린것을 보니 자면서 꿈을 꿨나보다. “아빠, 엄마는? 형님은? 왕왕!” 나는 아직도 꿈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비몽사몽간이였다. 피를 토하던 엄마의 그 창백한 얼굴이 떠오르고 그런 엄마를 길가에 내버려둔채 무정하게 사라지던 아빠와 형님의 야속한 모습이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그런데 이것이 꿈이였다니. “후-” 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꿈인것이 천만 다행이였고 또 행운이였다. 그만큼 꿈에 목을 놓던 일이 현실이 아니라는것에 너무나 행복했다. “왜? 꿈에 누굴 만나거냐? 혹시 엄마와 형님을 만난건 아니겠지? 이제 오후가 되면 만날건데…” 아빠의 웃음 띤 얼굴이 한결 밝아보였다. “뭐라구요? 엄마와 형님이 돌아온다구요? 그게 정말이얘요? 와- 좋아라. 왕왕!” 나는 너무나 좋아 선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였다. “허허허, 강아지도 이처럼 제 집 식구가 온다니 좋아하는데… 우린 언제면 헤여지지 않고 한집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지? 후-” 아빠의 얼굴에 잠간 그늘이 비끼는가싶더니 인차 다시 밝아졌다. “토토야, 오후에 아빠가 공항으로 마중가야 하니 잠시 혼자 있거라. 오늘 3시 30분 비행기에 엄마랑 형님이랑 돌아온다는구나.” 아빠는 나의 머리털을 어루쓸고 다독여주면서 무척 즐거워하였다. “좋아요, 아빠. 왕왕!” 나도 흥분에 들떠 뾰족한 주둥이로 많은 말들을 쏟아냈지만 오로지 “왕왕!”하는 소리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저녁이면 엄마와 형님을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허리가 늘씬하게 펴졌고 또 네다리에 기운이 부쩍 솟았다. 이게 얼마만인가? 엄마는 7년 아니, 8년이였고 형님도 거의 1년이 되였다. 그동안 엄마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가? 엄마는 나를 알아볼가? 물론 나는 엄마의 갸름한 닭알형 얼굴과 굵지도 약하지도 않은 몸매와 항상 매끈한 엄마의 긴 다리를 기억하고있다. 형님도 마찬가지이다. 형님의 냄새만 맡아도 아니, 방문을 떼고 집안에 들어서는 거동만 보아도 대뜸 누구라는것을 익히 알아낼수 있다. 나는 점심밥도 거른채 어서 빨리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기만 앞발을 싹싹 비비며 기다렸다. 아빠도 언제 집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집을 나설 때마다 매번 내 머리털을 쓰다듬어주던 아빠가 그것마저 깜박 잊었겠는가. 나는 그런 아빠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었다. 그러나 아빠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완전히 떨쳐버릴수 없었다. 바로 우리 집에서 있은 낯선 녀자와의 만남때문이였다. 일반적으로 남녀간의 만남은 한번이 있으면 두번이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빠는 그번의 단 한번으로 무우를 자르듯이 단칼에 잘라버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물론 나 모르게 밖에서 만났는지는 몰라도 다시는 그 녀자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엄마가 두려워진다. 한번이든 두번이든 아빠는 결국 엄마 몰래 외간녀자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어찌됐든 오늘 하루는 애끊는 그리움과 두려움이 동반하는 희비극이 교차된 시간이 될것 같았다.     내가 우려했던 일은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인간들의 속담에 “밤에 한 일은 쥐가 엿듣고 낮에 하는 일은 새가 엿듣는다.”는 말이 있다. 결국 아빠는 그 녀자와의 불륜이 들통나고 말았다. 그 녀자의 남편이 자기의 안해가 우리 아빠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것을 알았던것이다. 그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아빠의 단위를 찾아가서 국장을 상대로 행악질을 하였다. 남편이 있는 녀자와 사사로이 성관계를 가지는것은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중혼죄”라며 길길이 뛰였다. 심지어 그 녀자마저 자기가 좋아서 아빠와 성관계를 가지고도 뻔뻔스럽게 아빠가 돈으로 자기를 꼬셨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바람에 아빠는 입이 열개라도 변명할수 없었다. 아빠는 더는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없게 되였다. 엄마도 자초지종을 알고나서 기절초풍하였다. 아빠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비참하게 일그러졌다. 결국 아빠는 모든것을 포기하고말았다. 아빠는 아직 정년이 안되였지만 부득불 앞당겨 내부퇴직을 하는수 밖에 없었다. 하여튼 아빠는 그번의 그 실수로 참 많은것을 잃었다. 엄마는 안해를 두고 어찌 외간녀자와, 그것도 가정이 있는 유부녀와 살을 섞을수 있냐고 눈물을 쏟으며 넋두리를 하였다. “당신만 굳게 믿고있었는데…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의 남편만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있었는데…” 엄마는 아빠의 외도로 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것 같았다. “안해가 외국에서 힘들게 돈을 벌고있다는 생각을 하면 차마 어떻게 그럴수 있어요?…” 엄마는 한동안 이런 말을 되풀이하면서 아빠를 원망하였다. 물론 아빠도 그동안 엄마가 한국에서 벌어보낸 돈을 한푼도 건드리지 않고 꼬박꼬박 은행에 저금해두었다. 그러니 그 녀자를 돈으로 꼬셨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였고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였다. 아빠는 누구도 원망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녀자마저. “세상에 내가… 내가 참 바보였어.” 다만 한마디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뿐이였다. 나는 량어깨가 축 처져내린 아빠의 가긍한 모습을 도저히 바라볼수 없었다. 엄마는 원래 힘들고 험한 한국생활에 위가 많이 안 좋아져 잠시 집에 돌아와 건강을 추스려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나가려고 하였었다. 헌데 뜻밖에 아빠한테서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는 바람에 한달도 안되여 형님을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떠나가버렸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수 있는 운명의 끈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모르겠어요. 토토를 잘 건사해주세요. 이제 우리가 돌아올때까지 이눔이라도…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엄마는 마지막으로 위안인지, 위협인지 나로서는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남겼다. “엄마, 형님. 가지마세요. 왕왕!” 엄마는 잘 있으라는 말도, 돌아오련다는 말도 없이 트렁크를 끌고 조용히 문을 나섰다. 나는 불현듯 목이 꺽 메였다. 쏘파우에 그린듯이 앉아 집을 나가는 엄마와 형님을 목이 터지게 불렀지만 마이동풍같이 쓸데없었다. 아빠는 배웅을 나오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한동안 봉당에 내려선채 우두커니 서있더니 한참만에야 불에 덴 황소처럼 후닥닥 문을 뛰쳐나갔다. “아빠, 왕왕!” 나는 떠나가는 엄마와 형님보다 아빠가 더욱 근심되고 걱정되였다. 문을 뛰쳐나가는 아빠의 얼굴에서 하얀 물기가 번뜩거렸던것이다. 분명 아빠는 가슴을 치며 마음속으로 한없이 울고 또 울었을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아빠를 뒤쫓지 않았고 오히려 인내심을 가지고 아빠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비록 미욱한 강아지이지만 아빠한테 위안이 되고 배신을 모르는 영원한 친구로 남으리라고 속다짐했다. 물론 엄마도 그 어느날엔가는 꼭 아빠를 용서하고 형님도 다시 아빠의 곁으로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그날 나는 텅 빈 집에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줄곧 아빠만 기다렸다. 예전에 형님과 같이 있을 때는 용변이거나 오줌이 마려우면 형님한테 기별을 보내 문을 열어달라고 하였었다. 허나 형님마저 한국으로 떠난후에는 용변을 보려고 해도 낮에 집에 사람이 없어 아주 불편하였다. 하여 나는 혼자 있을 때는 절대 밥을 먹지 않고 하루종일 굶었다.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그때가 바로 나의 맛나는 식사시간이였다. 아빠가 있으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쉽게 밖으로 용변 보러 나갈수 있어 근심걱정이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례외였다. 아빠가 황급히 엄마와 형님을 쫓아나간것이 걱정되여 도저히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없었다. 나는 엄마와 형님까지 떠나간 텅 빈 집안에서 하루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아빠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아빠, 어서 돌아오세요. 집에서 이 토토가 기다리고있지 않아요? 아빠, 어서 돌아오세요. 왕왕왕!” 나는 아빠를 부르며 이불깃에 머리를 틀어박고 울었다. “아빠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아빠, 왕왕왕!”     아빠는 이튿날 점심녘에야 술에 만취되여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비칠비칠 집으로 돌아왔다. “토토야, 네가 아무것도 먹지 못했겠구나. 배 고프지?” 아빠는 그래도 집에 들어서면서 내 걱정부터 하였다. “아니야, 아빠. 아빠가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요. 왕왕!” 나는 힘없이 아빠가 앉은 쏘파곁으로 기여가 아빠의 발밑에 앉았다. “어서 뭔가 먹어야지. 아빠가 참 한심하다. 토토야!” 아빠는 호주머니에서 명태쪼가리를 꺼내 나한테 주면서 허구프게 웃었다. 아빠의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어디에서 자고 왔는지 머리가 부시시하고 옷깃이 구겨져 있었다. “아빠, 힘내세요. 토토가 있잖아요. 왕왕!” 나는 마른 명태쪼가리라도 조금 먹고나니 기운이 솟는것 같았다. 그러나 아빠는 힘없이 쏘파에 몸을 뉘이더니 그대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빠, 엄마와 형님은 꼭 돌아올거얘요. 우리 함께 기다려요. 아빠, 왕왕!” 나는 아빠의 잠을 깨울세라 입속으로 아빠를 응원하며 저도 모르게 아빠의 코고는 소리에 흠뻑 빨려들어갔다…     참으로 독한것이 인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세상이라는것도 역시 무정하고 넌덜머리가 난다. 그렇게 떠나간 엄마는 소식 한번 전해오지 않았다. 형님도 전화 한통 없었다. 그러나 아빠는 매일 소식이 두절된 전화통만 부여안고있었다. 미욱한 짐승이지만 곁에서 바라보는 나의 가슴이 다 찢어지는것 같았다. 인간들은 너무 매정하고 무서운 독종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같은 동물들은 인간들에 의해 할수없이 서로가 떨어져 살지만 사람들은 왜서 자기절로 자기의 마음을 아프게 허비며 사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날마다 술에 절어서 살았다. 아침부터 술병을 끼고 앉으면 온종일 고주망태가 되여 나한테 밥을 챙겨주는것마저 까맣게 잊었다. 가끔 음식물찌꺼기나 술안주로 먹던, 고기 한점 붙어있지 않는 뼈다귀를 던져주는것이 고작이였다. 나의 몸도 날마다 여위여갔고 목욕도 하지 못해 눈가에 항상 시허연 눈곱이 덩어리져 붙어있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시누렇게 말라들어 눈을 아프게 찌를때도 있었다. 허지만 아빠는 목욕은 커녕 세수조차 시켜주지 않았다. 매일 앞발로 자꾸 문지르다보니 눈가의 털이 허옇게 빠져 보기가 흉했고 발톱에 심하게 긁혀 피까지 났다. 하지만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 아빠도 며칠에 한번 꼴로 세수하고 이발을 닦는데 나같은 강아지가 언제 그런 향수까지 바라겠는가? “아빠, 아빠만 무탈하면 전 아무것도 필요없어요. 우리 함께 가족의 재상봉을 위해 힘내요. 왕왕!” 나는 머리속으로는 이렇게 말하였지만 뾰족하게 툭 틔여져나온 뭉툭한 주둥이로는 도저히 이같은 말귀를 짜낼수도, 뱉어낼수도 없었다. 다만 남들이 듣기에도 귀찮은 “왕왕!”하는 개소리밖에 낼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이상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천성이 미욱한 동물인 나에게 사람과 소통할수 있는 대화식별능력을 갖추라고 억지를 부린다면 실로 강아지보다 더 우둔하고 미욱한 놈팽이가 아니겠는가. 이젠 아빠도 기다림에 많이 지쳤는가보다. 날마다 부여안고있던 전화통에 다시는 매달리지 않았다. 나는 이런 아빠가 걱정되였고 또 아무렇지도 않은듯 태연한 기색으로 하루일상을 시작하는 아빠의 거동이 알게 모르게 불안해났다. 나는 아빠가 예전과 같은 밝은 모습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빠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은 한숨만 내쉬였다. 간혹 한식경씩 넋을 잃고 멍하니 나를 바라볼 때면 푹 꺼져 들어간 눈확에 살얼음이 쫙 깔려있는것 같아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마치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무서웠다. 아빠는 암암리에 뭔가 무시무시한것을 계획하고있는것 같았다. 이것은 나같은 미욱한 동물만이 가지고있는 직감이다. 우리 동물들중에서 지진의 방위를 제일 먼저 알아맞추는 짐승은 쥐이다. 쥐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살기에 지진이 일어나기전에 그 지진파를 용하게도 감지한다. 물론 다른 짐승들도 지진이 일어나기전에 재난을 미리 예견하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나도 같은 동물로서 아빠의 수상쩍은 거동에서 뭔가를 감지할수 있었다.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지는데도 아빠는 구들을 수리할 궁리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석탄가스를 먹고 크게 혼이 난적이 있었으면 무척 걱정되련만… 도대체 무슨 심사인지? 그래도 나는 날마다 아빠와 함께 있는다는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토토야, 참 인간으로 산다는것이 너무나 힘들다.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이런 벌을 받는지…” 아빠의 이런 말씀을 들을때면 나도 눈물이 난다. 허지만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아빠를 쳐다보는것으로 그 마음을 헤아릴뿐이다. “아빠, 아니야. 아빠가 얼마나 훌륭하다고 그러세요? 엄마랑, 형님이랑 돌아올 때까지 집을 지킨다는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데요? 왕왕!” 아빠는 말없이 나의 머리털을 곱게 쓰다듬으며 긴 한숨을 내쉬였다. 언젠가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한적이 있다. “참, 사람이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어쩌다가 그런 녀자를 만나서 인생을 말아먹었는지… 후- 인제와서 누굴 탓하겠냐? 내물은 건너봐야 알고 사람의 마음은 지내봐야 안다던 옛 선인들의 말씀이 참말로 지당하구나. 그래도 토토야, 네가 있어서 아빠가 조금 위안이 되는구나.” 아빠가 자책감에 모대기는데 엄마도 아빠를 용서하고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인간들에게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이제 세월이 가고 또 시간이 흐르고나면 아빠의 상처도 치유되고 엄마도, 그리고 형님도 집으로 돌아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게 될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싶다. “참, 아빠도 불쌍해. 어쩌다가 불여우같은 녀자를 만나가지고…” 예로부터 여우라는 동물은 요물이였다. 때문에 여우는 꼬리가 아홉개라고 하였다. 아빠가 알게 모르게 정에 빠져 허우적거린 그 녀자도 결국은 꼬리가 아홉개 달린 구미호같은 녀자이다. 아빠를 홀려 제 욕망만 채우고 오리발을 내민 천하의 나쁜 년이다. 그 녀자를 만나게 되면 날카로운 이발로 콱 물어 뜯어놓고싶다. 아니, 날이 선 발톱으로 할퀴여 주고싶다. 그렇게라도 아빠에 대한 분풀이를 할수만 있다면 조금이나마 가슴이 후련하련만. 그러나 나는 절대로 사람을 물수도 또 할퀼수도 없다. 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토토”이기때문이다.     “토토야! 아빠가 오늘은 나갔다 올테니 집에서 혼자 놀고있어.” 아빠가 아침부터 출근할 때도 입지 않던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부산을 떨었다. “네, 다녀오세요 아빠. 왕왕!” 나는 오늘따라 한결 더 멋져보이는 아빠를 바라보며 흡족하게 짖어댔다. 아빠는 며칠동안 깎지 않은 더부룩한 수염을 깎고 얼굴에는 크림까지 바르고 거울앞에 서서 이리저리 비춰보며 한동안 서성거렸다. 나는 아빠가 오늘에야 비로소 그동안 억눌렸던 기를 펴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것 같아 무척 기뻤다. 아빠는 이불장밑에 깊숙히 숨겨놓은 나무궤속에서 가방을 꺼내들고 집문을 나섰다. 그 가방에는 엄마가 그동안 한국에서 벌어 보낸 돈은 물론 여러가지 문서와 각종 서류들이 들어있었다. 실로 우리 집의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나는 아빠가 엄마의 양로보험료를 물려고 나간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씨가 추워져 올해의 양로보험료를 엄마의 생일인 12월달을 넘기지 말고 년말전에 꼭 물어야 하였던것이다. 나는 쏘파우에 엎드린채 아빠가 어서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였다. 이렇게 넋 놓고 아빠를 기다려보기는 오랜만이였다. 불현듯 얼마전에 아빠가 한 격월간 잡지에 발표했던 나에 관한 글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날 아빠는 화보처럼 두터운 잡지를 들고 오시더니 나를 안아다 앞에 앉혀놓고 시름없이 웃으시였다. “허허허, 토토야. 네가 오늘은 내 글의 주인공이 되였어. 바로 이 잡지에 너를 모델로 쓴 아빠의 수필이 실렸어. 그동안 우리 토토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어. 네가 있어 우리 집안에 웃음이 생겼고 즐거움이 감돌았어. 이제 아빠가 천천히 읽어줄테니 명심해서 잘 들어.” 아빠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어 소리내여 읽었다.     …토토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어찌나 작은지 방 한가운데 가로 놓여있는 미닫이문턱도 넘지 못해 쬐꼬만한 발로 뚱기적거렸다. 그럴 때면 반드시 누군가가 안아서 건늬여주어야 했다. 더우기 해바라기씨를 담은 작은 양재기안에 제 집인양 비집고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있을 때면 가엾다기보다 귀엽기만 했다. 그때로부터 토토는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되였다.   …손바닥만하던 토토가 지금은 키도 훤칠하고 몸매도 둥글둥글하고 허리통도 늘씬하게 잘 자랐다. 그만큼 우리 집 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정도 많다. 내가 퇴근하면 제일 먼저 꼬리를 뱅뱅 돌리며 달려와 반기는것이 바로 토토이다. 집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토토는 내 다리에 감겨들며 안아달라고 앞발을 껑충 쳐든다. 나는 그런 토토가 너무 귀여워 옷에 털이 묻어나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덥석 안아준다. 비록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토토는 우리 집에 웃음을 가져다주는 “천사”였다.   …그런데 “토토”가 이상해졌다.   안해가 한국으로 간후부터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마 밥을 챙겨주던 주인이 바뀌여서인것 같다. 그런 토토가 가여워 예전에 안해가 하던대로 닭알을 삶아서 노란자위에 밥을 비벼주었지만 여전히 입맛이 없어한다. 녀석도 은근히 엄마가 그리운가부다. 그러고보니 못난 사람보다 아니, 은정을 모르는 사람보다 토토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토토에게 바라는것이 있다면 오직 건강뿐이다. 안해가 돌아올 때까지 앓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자라 우리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헌데 그날이 언제면 현실로 될지? 옆집 강이네만 봐도 그렇다. 얼마전 강이네 엄마가 한국에서 3년동안 이국생활을 하고 돌아오더니 강이 아버지와 리혼하고 다시 한국으로 나갔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있다. 동병상련이라고 안해를 한국에 보낸 나도 어느날 갑자기 그런 일에 맞띄울가봐 가슴이 죄여든다. … …     창밖에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는데 아빠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눈물이 난다. 눈가에 허옇게 꼈던 눈곱이 꼬들꼬들 말라들어 눈을 아프게 자극한다. 온종일 아빠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문가만 주시해서인지 두 눈에 아픔이 몰려든다. 오늘도 또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혼자 밤을 지새야 하는가? 나는 기다림에 지쳐 쏘파우에 옹송그리고 누웠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온종일 물 한모금, 밥알 한알 먹지 않았더니 탈진상태가 오는가보다. 그러나 아빠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먹을수가 없다. 나는 아예 두 눈을 꾹 감고 두 귀만 벌쭉 세웠다. 나는 청각이 특별히 발달하여 멀리에서 울리는 아빠의 발자취소리도 가려들을수 있었다. 나는 창밖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없이 누워있었다…     덜커덩! 문이 여닫기는듯한 둔중한 소리에 눈을 뜨려 했나 좀체로 떠지지 않았다. 아빠를 기다리다가 그만 깜빡 졸았나본데 웬일이지? 앞발로 두 눈을 비벼댔지만 눈가에 엉킨 찐득찐득한 눈곱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빠, 왕왕!” 나는 곤하게 하품을 하며 허연 눈곱사이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언제 왔는지 아빠가 부엌에서 지난번 엄마가 한국에서 올 때 사다준 노란색 긴 팔 적삼을 입고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삶은 돼지고기를 썰고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우리 토토가 몹시 곤한가보구나. 아빠가 돌아와 밥하고 돼지고기를 삶고있었는데도 깨여나지 못한것을 보면… 허허허, 이젠 우리 토토도 많이 늙었네.” 아빠가 먹음직스럽게 잘 삶긴 커다란 고기덩이를 칼로 썩뚝 잘라서 나의 밥그릇에 놓으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더는 참을수 없어 쏘파에서 풀쩍 뛰여내려 아빠가 금방 챙겨놓는 밥그릇앞에 다가가 냉큼 고기덩이를 물고 씹을새도 없이 꿀꺽 삼켰다. “아빠, 이게 얼마만이죠? 와- 맛나다. 왕왕!” 나는 아빠가 돼지고기국물에 말아준 밥을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치웠다. “허허, 우리 토토가 많이 배가 고팠구나. 이젠 다시는 너를 굶길 일이 없을거야. 오늘저녁에는 아빠도 술 한잔 해야겠다. 이 좋은 돼지고기 안주에…” 아빠가 돼지고기 한점을 집어 나의 밥그릇에 놓아주며 말했다. “아빠, 고마워요. 왕왕!” 나는 오늘따라 넘치게 베푸는 아빠의 사랑에 눈물이 찔끔 솟았다. 나는 다시 아빠의 곁을 떠나 쏘파에 기여올라가 누웠다. 아빠는 둥그런 밥상을 마주하고 혼자서 자작술을 마셨다. 종래로 혼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아빠인데 오늘따라 이상했다. 이윽고 아빠가 또 나를 불렀다. “토토야, 이리 온. 아빠곁에 앉거라. 정말 너한테 정이 많이 깊어졌어. 네가 우리 집에 올 때는 애들 손바닥만했었는데…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너도 인젠 사람으로 치면 칠십살이 넘었을거야. 그동안 강아지라는 동물을 떠나서 가족처럼 잘 살아왔는데…” 아빠는 술 한잔을 입안에 털어넣더니 긴 한숨을 내쉬였다. 나는 아빠의 허벅지와 엉덩이에 몸을 기댄채 가만히 드러누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이 언제 함께 살았던지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낱 강아지에 불과한 나마저 이렇듯 가족이 그리운데 아빠의 마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빠, 술 많이 마시면 안돼요. 몸이 상해요. 왕왕!” 나는 아빠가 은근히 근심되였다. “왜? 아빠가 걱정되냐? 괜찮아, 다시는 토토 너를 굶길 일이 없을거다. 인젠 아빠도 정신을 차려야지.” 아빠는 또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를 집어 나한테 주면서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더는 먹을수가 없었다. 이미 배가 너무 많이 불러있었다. “아빠, 래일 먹을게요. 오늘은 과식이얘요. 많이 먹으면 소화도 잘 안되는데… 왕왕!” 나는 아빠가 준 고기덩이를 입으로 물어다가 나의 밥그릇에 가져다놓았다. “참, 세상에… 토토 너같은 령물은 없을거야. 우리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할텐데…” 아빠의 긴 한숨소리에 내 가슴이 막 꺼져들어가는것만 같았다. “아빠, 나 졸려요. 쏘파우에 가서 잘래요. 아빤 술 적게 마시고 얼른 밥을 드세요. 왕왕!” 나는 아빠의 곁을 떠나 무거운 몸을 엉기적거리며 쏘파에 기여올라갔다. “그래, 토토야. 오늘 아빠를 기다리느라 무척 힘들었던 모양구나. 어서 가서 자거라.” 아빠의 눈언저리가 이상하게 벌겋게 상기되여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서러움과 그리움으로 눈물이 차올라서 충혈된것이라는것을 몰랐다. 나는 무거운 몸을 쏘파우에 반듯하게 펴고 힘없이 누웠다. 전신이 물먹은 햇솜처럼 해나른해났다. 온종일 물 한모금, 밥 한알 먹지 않고있다가 배고픈김에 급히 기름진 돼지고기국밥 한그릇을 뚝딱했더니 식곤증이 몰려오는것 같았다. 나는 무겁게 처지는 눈까풀을 앞발로 연신 치켜올리며 졸음을 쫒으려 하였으나 천근같은 눈까풀을 도저히 이겨낼수가 없었다. 나는 쏘파의 한켠에 몸을 뉘이고 혼자서 자작술을 마시는 아빠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쏘파우에서 언제 내려왔는지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있었다. 저녁에 혼자 자작술을 마시던 아빠는 웬 일인지 아침에 집을 나가던 정장차림으로 이불우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둥근 밥상도 말끔하게 치워진채 찬장앞에 곱다라니 세워져있었고 부엌도 깔끔하게 잘 정돈이 되여있었다. 나는 아빠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머리가 뗑하고 자꾸 눈까풀이 맥없이 처져내려왔다. “아빠, 웬 일이죠? 눈을 뜰수가 없네요. 아빠, 왕왕!” 하지만 모기소리만한 웨침이 목구멍안에서 간신히 맴돌뿐이였다. “아빠, 왕왕!” 나는 아빠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으나 무엇인가에 꽁꽁 묶인듯 도저히 움직일수가 없었다. 아빠의 얼굴도 저녁에 마신 술때문인지 피기 한점 없이 창백하고 퉁퉁 부어있었다. “아빠, 왕왕!” 나는 힘이 빠진 앞발로 아빠의 가슴을 허볐다. 그러나 아빠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빠의 팔이 나의 몸을 으스러지게 감고있었다. “아빠, 왕왕, 왕왕왕!” 나는 덴겁하여 사납게 부르짖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간신히 앞발로 버티고 섰으나 뒤다리의 맥이 풀려 도저히 몸을 일으킬수가 없었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석탄가스냄새가 풍겨왔다. 아빠가 겨우내 구들을 수리하지 않더니 결국 이런 후과를 초래하였다. “아빠, 아빠! 왕왕!”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온몸이 뒤탈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꾸만 길다란 몸뚱이가 안으로, 안으로 꼬부라들었다. “아빠, 석탄가스예요. 빨리 일어나세요. 아빠! 왕왕왕!” 나는 힘없는 앞발로 아빠를 허비고 머리로 떠박았지만 아빠의 몸은 통나무마냥 꽛꽛하게 굳어진채 전혀 움직일줄 몰랐다. 나는 곧 쓰러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가누며 아빠의 머리곁으로 다가가 뻣뻣하게 굳어지는 혀끝으로 아빠의 얼굴을 핥았다. 그런데 웬 일인지 아빠의 얼굴이 너무나 차가웠다. 따스한 온기라곤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아빠, 아빠! 왕왕왕!” 나는 목이 터지도록 아빠를 부르며 아빠의 머리맡에 맥없이 쓰러졌다. 석탄가스냄새는 점점 더 강하게 몰려왔다. 집안에는 이미 매캐한 석탄가스가 꽉 들어차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기여가서 문이라도 열고싶었지만(물론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였지만) 이미 문마다 안으로 꽁꽁 잠겨져있었다. 나는 더는 소리를 낼수 없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넘었고 나도 전신이 마비되여 도무지 움직일수 없었다. 아빠는 엄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다는 파란색 첫날이불우에 태연하게 누워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것 같았다. 나는 더는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아니, 아빠의 꽛꽛하게 굳어진 팔을 헤집으며 아빠의 품속으로 기여들어갔다.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창자가 뒤탈리는듯한 아픔을 참아내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 한사코 아빠의 품속으로 기여들었다. “아빠, 고마워! 마지막까지 나를 잊지 않고 챙겨줘서…  왕왕왕!” 나는 전신의 기운을 한껏 살려 목청껏 웨쳤다. 그러나 목구멍이 꽉 막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아빠를 떠날수가 없었다. 아니, 아빠와 우리 가족을 떠나서는 영원히 살아갈수가 없었던것이다. 나는 하얗게 굳어진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순간 지난 13년간 우리 가족과 동고동락했던 일들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갔다. 나는 아빠의 품에서 점차 밀려오는 강한 졸음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비록 죽음이라는 낱말과 이어진 영원한 졸음이였지만 나는 아빠의 곁을 떠나 다른 생을 찾을수도 없었고 또 아빠를 두고 혼자 살길을 찾아 헤맬수도 없었다. 오직 아빠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것만이 나에게 다함없는 사랑을 준 가족에게 보답하는 일이였다. 인젠 온몸을 휘감던 아픔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아빠의 차가운 품이였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따스하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까스로 눈곱이 쌓인 두 눈을 떴다. 갑자기 눈앞에 아름다운 칠색무지개가 곱다라니 펼쳐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청아한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자주 듣던 “우리는 길 떠나는 인생”이라는 노래였다.   … 더 사랑해 줄걸 후회할것인데 왜 그리 못난 자존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리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했는지 사랑하며 살아도 … …   꿈결처럼 안겨오는 영상속에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가까스로 새여나오는 날숨을 크게 몰아쉬며 아빠의 품속에서 순간이였지만 엄마를 보았다. 그리고 형님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짧은 순간이였다. “엄마, 형님! 아빠가… 아빠가… 왕왕!” 허연 눈곱같은 눈물이 샘 솟듯 흘러내렸다. 그러나 닦을수도 닦을 기운도 없었다. 다만 입속으로 부르짖을뿐이였다. 이때 갑자기 아빠의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허지만 아빠는 미이라처럼 고즈넉히 누운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액정에는 내가 늘 아빠의 품에 안겨 보아왔던 눈에 익은 전화번호가 떠있었다. 엄마의 전화였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였다…   2015년 11월 学府园세집에서 ㅡ 연변문학 2016년 제2월호에 발표.
9    희곡집 <웃음보따리> 댓글:  조회:1135  추천:0  2015-11-07
〔론 문〕   “조선족삼로인”과 “늙은 량주 대창”으로부터 본 조선족구연예술발전     김 태 현     1. “삼로인”의 형성과 발전   일찍 50년대 초반부터 최수봉옹을 비롯한 원주삼, 허창석 등 연변구연계의 원로들은 화룡시 투도진 석국촌과 룡호촌에서 빈하중농들과 고락을 함께 하면서 “조선족삼로인”을 탄생시켰다. “조선족삼로인”은 60년대부터 화룡시문공단의 전형적인 공연절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광범한 관중들의 애대속에 거족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문화대혁명” 초기에는 각급 문예공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으로 간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80년대에 조선족구연계의 정상으로 오른 소품은 “조선족삼로인”의 형식에서 형성발전한것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족삼로인”은 오늘날까지 화룡시는 물론 전 주 관중들의 애대속에 대를 이어 창작되고 발전하고있다.     “조선족삼로인”은 세 로인이 출연하여 독특한 연변사투리를 진하게 구사하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강한 웃음과 해학과 익살로 깨달음을 주고있다. 등장인물은 정면인물과 반면인물 그리고 중간인물이 나온다. 사상이 락후한 반면인물과 립장이 견정하지 못한 중간부류의 인물 그리고 모든 면에서 앞장서는 선진적인 정면인물을 서로 대비하면서 마지막에 정면인물의 사상을 내세우고 지지하는 형식의 표현예술이다. 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조선족삼로인”은 대중화, 통속화의 풍격을 살리면서 인민군중들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주제로 즉 착하고 아름다운것과 보수적이고 락후한것 그리고 영예와 치욕 등에 대해 서슴없이 이야기하면서 폭로하고 노래함으로써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의의를 가진다. “조선족삼로인”은 복장으로부터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조선족의 풍속과 습관을 잘 살려 세세히 반영하였다.     지금까지 “조선족삼로인”은 무려 163편의 작품을 창작 공연하였다. 일찍 50년대 초기에는 “백년대계”, ”좋은 일” 등, 60년대에는 “소포주인” 등, 70-80년대에는 “로인축구대”, “경로원의 기쁨”, “련애암호”, “장마당에서 생긴 일” 등, 오늘날에는  “인터넷풍파”, “하마트면”등 등과 같은 우수한 작품을 창작, 공연하면서 자기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여 조선족구연예술에서 독특한 예술형식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2. “늙은 량주 대창”의 형성과 발전       일찍 지난 세기 50년대말 화룡시문화관의 김태국, 리룡연 창작으로 된 “공산당과 모주석의 은덕일세”라는 작품은 탄생하자마자 연변구연계에 “늙은 량주 대창”이란 새로운 형식을 창출시켰다.     이 작품은 광활한 농촌을 무대로 작가들이 실생활에 접근하여 인민들이 쉽게 부르고 또 애창할수 있는 선률을 바탕으로 창작하였다.     지금까지 “늙은 량주 대창”은 화룡시의 전형적인 공연형식으로 되여 각광받고있다. 공연작품들은 군중들이 열창할수 있도록 선률이 심금을 울려줄뿐만아니라 내용도 인민들의 실생활에서 창작된것이기에 가슴에 와닿는다.     “늙은 량주 대창”은 초창기 손풍금반주로부터 오늘은 전자풍금반주로 대를 바꿔오면서 100여수의 작품들을 공연하였다. 작품들은 조선족로인들의 전형 형상과 풍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연기, 노래를 겸한 종합예술로써 민족특색이 다분하다.     지난 세기 50년대말 60년대초기에는 “공산당과 모주석의 은덕일세”, “늙은 량주 씨름구경”, 등 작품을 창작, 공연하였고 70년대에는 “새 마누라”, “어떻게 요렇게”등 작품으로 전국무대에까지 올라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80년대에는 “늙으막 사랑”, “올롱볼롱”, “따끈히 삽시다” 등 작품으로 한층 더 세련됨을 나타냈고 오늘날날에는 “진달래 심으러 갑시다”, “늙은 량주 박사마중” 등과 같은 우수한 작품으로 “늙은 량주의 대창”을 질적으로 승화시키면서 조선족구연예술에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였다. 특히 작품들은 너무나 절절하게 늙은 량주의 마음을 환히 들여다볼수 있는 소박하고 진지한 언어들로 구사되였기에 해석이 필요없이 리해하기 쉽고 인차 받아들일수 있다.       아래에 “늙은 량주 대창” “올롱볼롱”의 가사를 보기로하자.     령감로친 때시걱 짓느라 바삐 돌 때면 / 코등에 석탄재 묻힌 령감님이 불 때고   옷섶에 입쌀겨 묻힌 로친네는 밥짓고 / 올리보고 내리보고 막사랑 실컷 나누세   올롱볼롱 / 올롱볼롱 / 안가마 잘끓지 / 옆가마 잘끓지   당신 그래 내 령감 / 당신 그래 내 로친 / 올롱볼롱 잘 끓여보세     령감로친 아침상 맛스레 차려놓았소 / 소고기 감자볶음에 매운탕도 올랐소   약주나 한잔 마실가 당신 한잔 나 한잔 / 마주치며 들자요   찰랑찰랑 / 찰랑찰랑 / 술맛이 참 좋지 / 제맛이 참 좋지   당신 그래 내 로친 / 당신 그래 내 령감 / 오손도손 잘 살아보세      3. “조선족사로인”과 “늙은 량주 대창”으로부터 보는 우리의 자세   “조선족삼로인”과 “늙은 량주 대창”은 그 형성, 발전 과정을 보면 시대적인 산물이지만 조선족인민들의 일상생활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대중성을 띤 없어서는 안되는 조선족구연예술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대중들의 절찬속에 자리를 굳힌 훌륭한 형식과 종목의 구연예술이라고 하여도 그 계승과 부단한 창조가 따라가지 못하면 영원히 발전할수 없는것이다.     지금까지 화룡시 “조선족삼로인”과 “늙은 량주 대창”은 각각 6대와 3대로 나누어 계승, 발전하여왔다.       “조선족삼로인”의 발전단계를 살펴보면:       제1대: 최수봉, 원주삼, 허창석,(1947년말 - 1948년초)     제2대: 김상옥, 량균, 리룡하, 전길춘, 리순옥, 김련화,(1950년대)     제3대: 허상권, 리송자, 김봉석, 현경숙, 최금석, 김석관, 석봉숙,(1960년 -  1980년대)     제4대: 최중철, 홍미옥, 리순녀, 황은희,(1990년대) 제5대: 한태민, 강철민, 허순선.(2000년대) 제6대: 리문추, 리홍철, 허성란. (2010년부터 지금까지)         “늙은량주대창”의 발전단계를 살펴보면:       제1대: 김태국, 리룡연, 김상옥, 량균, 김련화, 리순옥, (1950년대말)     재2대: 현경숙, 석봉숙, 허상권,(1960년 - 1980년대)     제3대: 최중철, 리순녀, 홍미옥,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화룡시의 “조선족삼로인”과 “늙은 량주 대창”은 오랜 발전단계를 거쳐 인민군중들의 열렬한 애호속에 자체의 고유한 민족문화의 특징을 살리면서 화룡이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유일하게 계승, 발전하여왔다. “조선족삼로인”은 지난 2007년 4월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에서 공포하고 연변조선족자치주 문화국에서 발급한 주급무형문화재로 선정되였고 2007년 6월에는 길림성인민정부에서 공포하고 길림성문화청에서 발급한 성급무형문화재로 비준, 선정되였으며 2008년 6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에서 공포하고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에서 발급한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비준, 선정되여 보호를 받고있다. 그리고 “늙은 량주 대창”도 역시 지난 2007년 4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에서 공포하고 연변조선족자치주 문화국에서 발급한 주급무형문화재로 선정되여 상응한 보호를 받고있다.     이상으로 화룡시의 “조선족삼로인”과 “늙은 량주 대창”의 형성, 발전에 대해 대략적인 고찰을 진행하였다.     전 사회의 정신문명건설과 민족의 전통예술을 살리고 보존하여 민족의 문화를 진흥, 발전시키는것은 우리 민족문화사업일군들의 밀어버릴수 없는 신성한 과업일뿐만아니라 전민의 책임으로도 되는것이다.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진흥하고 발전시키는것은 하나의 힘들고 간고한 작업이다. 그러나 전반 문화사업일군들이 옳바른 관념을 수립하고 사명의식을 갖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밀고나간다면 우리 민족문화의 앞날은 밝을것이다.  
8    누워보는 세상게임 댓글:  조회:1296  추천:3  2015-07-21
〔단편소설〕 누워보는 세상게임    김 태 현   - 사람찾는 광고 -   사람을 찾습니다. 나는 1.70센치메터의 체격에 오관이 단정하고 신체가 량호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공직사업에 충실했으며 본직외에도 문학이라고 심혈을 기울여 창작에도 열성(고집)을 부리며 남들에게 비난이 아닌 비난설도 많이 들으면서 자기만의 울퉁불퉁한 인생을 애면글면 파헤치다가 나이 오십에 갑자기 자기를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보았거나 향방을 알고있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꼭 부탁합니다. 밤중이건 대낮이건 하루 24시간 열려있는 휴대폰 15326438669번호에 련계하여주십시오. 그러면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하여 꼭 감사의 인사를 무지무지 올리겠습니다. 자기를 잃어버린자의 “사람찾는 광고” 자기만의 비좁은 “성냥갑서재”의 컴퓨터앞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자 내가 씀. 2014년1월 1일 (원단)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하여 “사람찾는 광고문”을 시가지의 중심거리를 비롯한 크고 작은 광고철에 끼워넣고 그것도 모자라 길가에 길다랗게 서있는 전선대마다 내다붙이고 집으로 돌아오니 내가 아닌 내가 거울속에서 서글프게 웃고 있었다. 지난 세월의 흐름때문에 얼기설기 파헤쳐진 인생의 삶밭에 쭉정이 씨앗만 묻고 고스란히 세월을 달래며 한뉘를 달려온 그 못난 미련때문에 입귀를 실룩거리며 웃고 있는 그 모습이 어쩌면 그처럼 못나고 찌들고 여위여 비린 냄새 하나 가질것 없이 서운하게 안겨오는지… 나는 처연하게도 지지리 못난 그 허구픈 웃음이 게발린 얼굴을 거울속에서 빼앗아냈다. 그리고 그 누구의 탓도 때문도 아닌 나, 자신의 못난 모습을보며 길길이 날뛰면서 자신의 황페한 삶밭에서 억지로 턱을 주억거리며 이리저리 금이 가고 쪼각난 깨여진 거울속으로 다시 이끌어갈수가 없었다. 그러나 거울은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찾기엔 너무나 매혹적이였다. 그만큼 나는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한 “사람찾는 광고문”을 어디에서도 쉽사리 떼여버릴수가 없었다. 물론 말 못하는 거울이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또 너무나 반듯하게 사물의 원형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그 고귀함에 머리를 숙이지만 오늘은 다시 그 거울속에서 나를 찾고싶지 않다. 더구나 자기를 잃어버리고 나를 대신하여 허무한 광고문이지만 비좁은 마음의 문을 열고 어수룩한 모습으로 세상에 공공연히 사람찾는 광고로 아우성을 치는 무지한 소행때문에 억지로 부끄럼을 삼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니, 영원히 금이 가고 쪼각난 깨여진 거울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린 나의 지난 날을 다시 끄집어낼수가 없어서이다. 나는 나였지만 또한 자기를 잃어버린 나는 결코 내가 아니였기때문이다. 그만큼 내가 펼쳐온 삶밭에서 그루터기만 남은 쭉정이 인생을 다시 돌아서서 보고 싶지 않다는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가면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찾을수가 있을가?! 그것도 어떻게 하면 나였던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되찾을수가 있단말인가?! 때문에 나는 세상에 어눌한 모습 그대로 오늘처럼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하여 여기에 “사람찾는 광고”문을 아니 낼수가 없다. 물론 지겨운 비바람과 남들의 버림속에 더러운 휴지로 될것을 각오하면서도 나만의 나, 아니 나밖의 나로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하여 진심으로 광고문을 낸것일뿐이다. 나를! 아니,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찾아주세요! 나가 아닌 나, 나만의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꼭 찾아주십시오! 나는 슬그머니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오늘저녁의 이 사치스러운 밤에도 광고문에 적힌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울려줄 휴대폰은 하루 24시간 한번도 울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 인쇄기를 들볶기 시작한다. 래일엔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한 “사람찾는 광고문”을 더 많이 찍어서 시가지의 중심거리 아닌 여기저기 골목, 골목길까지도 내다 걸 예산이다. 하지만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정말 도로 찾을수가 있을지는 오늘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 얼굴에 력력히 새겨지는 아픔만이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하여 나의 얼어든 가슴을 조금이나마 안온하게 위안해줄수 있을것만 같다. 나는 래일을 위해 아니,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하여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한 “사람찾는 광고문”을 찍고 또 찍는다.     언젠가 연회석에서 필요이상으로 마신 술에 녹초가 되여 자리에 드러눕기까지 그것도 병원침대를 빌미로 병상신세를 면할수 없는 60키로그람의 가녀린 몸이 욕창으로 구겨져 간호사의 번거로움을 받으면서 생을 이어가노라니 걸어다닐수가 있었던 그 무딘 세상이 이승의 한끝에서 언틀먼틀 두꺼비 낯가죽을 쥐여짠듯한 저승사자를 몰고왔었다. 한편 이승과 저승의 가느다란 생의 문턱에서 용케도 가물거리는 정신을 수습하면서 일찍 원혼이 된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으며 아우성을 치려니 불행이 낳은 결혼이 가져다준 이승의 마지막 선물, 미친 남편이 안고 온 폭팔물의 폭팔로 온 가족이 몰죽음의 세려를 받은 누이동생네 세 식솔의 짓이겨진 참상이 하얗게 그려진 병원침실의 한 구석에 몰켜서 피를 쏟으며 찾아오군 했다. 그리고 중국대지에 전례없던 “문화대혁명”이란 폭풍우에 휘말려 여느 향(乡)의 유일한 신용합작사의 주임으로부터 일약 어두컴컴한 “우사간(牛棚)”에 같힌 아버지의 정치운명의 곤혹때문에 홀로 4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이끌고 어려운 생활고를 헤치시던 어머님께서… 불후한 70년대를 전후한 어느 설날아침에 용드레우물로 물 길러 나가셨다가 긴 겨울의 추위에 꽁꽁 얼어든 용드레우물의 가름대를 부여잡은 쇠줄이 끊어지는바람에 용드레우물의 가름대에 머리를 맞고 “뇌진탕”의 후유증으로 인해 이승에서 광명을 잃고 한생 어둠속에서 살아오신 어머니가 외로운 저승의 문짬으로 찌든 얼굴을 내밀고 한치의 앞도 볼수 없는 시커멓게 꺼진 눈확을 치뜨고 지켜보시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그처럼 하얗게 바래는 찌든 얼굴을 태연히 쳐다볼수가 없었다. 더구나 누이동생네 일가 세 식솔의 차마 눈여겨볼수 없는 참상에 피를 물고 넘어가는 어머니를 껴안고 억억 황소울음을 터치시던 아버지의 까맣게 타신 모습도 쳐다 볼수없는것은 물론 누이동생네 세 식솔의 너무나 피맺히는 참상에 한탄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타시던 동네로인들이 치아가 없는 이몸으로 곰방대를 물고 하얀 연기를 피여올리며 병상으로 다가서는 모습도 연연히 쳐다볼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홀연 나타난 아버지의 등굽은 모습이 저승에서 이승의 문짬으로 기웃거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밀막으며 언틀먼틀한 저승길로 기우뚱거리며 다가오는 두꺼비 낯가죽의 저승사자를 향해 노기충천하여 고래고래 고함치는 우뢰와 같은 괴성에 두눈을 번쩍 뜨니 아니,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누이동생네 일가도 그리고 동네로인들의 합죽한 볼에 담아올리던 곰방대의 하얀 연기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온 방안이 하얗게 눈부신 빛발을 쏟고 있었다…       - 아…?! 나는 입을 하- 벌렸다. -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누이동생아… 애고사리같은 손을 감빨던 예쁜 조카야… 그렇게도 고맙던 동네로인님들… 나는 급작스레 사라진 친근한 사람들이 너무나 아쉬워 입으로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입안에선 “고무공이 김빠지는 듯”한 가느다란 한숨소리밖에 새여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났다. 온 몸이 무엇에 짓눌리웠는지 숨도 제대로 쉴수가 없었다. 두손을 움직여보려고 애써도 천근같이 무거워 좀체로 움직일수가 없었다. 두눈은 방금보다 더 크게 치떴으나 오로지 하얗게 바래는 흰 색갈뿐이였다. - 아…?! 아! 아아…?! - 여보?! 여보세요…?! 정신차리세요! 당신, 정신 좀 차리세요. 여보! 흑흑흑… 흐리멍텅하게 비쳐드는 하얀 눈빛에 흔들리는 턱을 주억거리며 간신히 실눈을 뜨려니 누군가 몸우에 얼굴을 묻고 오열을 터뜨리고있었다. - 어…? 어…? 민, 민… 이… 야! 끝내 아들애의 이름을 힘들게 입밖으로 간신히 짜냈다. - 여보…?! 아, 여보! 언제 왔는지 아들애 대신 5년전에 돈벌러 간다고 집을 떠났던 안해가 가슴우에서 몸부림치다가 히스테리적으로 울고 웃으며 반신반의한다. - 아…?! 여보! 당신이…?! 민, 민이야! 아버지, 아버지가 깨여나셨다. 얘, 민이야…! - 아버지…?! 아, 아버지! 연신 폭탄 터지는듯한 부름소리에 천근무게같이 지지누르는 눈까풀을 치켜뜨고 가까스로 쳐다보니 둥그런 얼굴들이 몸우에서 당혹스레 무당의 신들린 얼굴처럼 춤추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 여보! 이래째예요. 당신… 당신이 쓰러지신지가 벌써 이레가 되였어-요-오. 흑흑흑… 안해가 긴 끝말을 삼키며 흑흑 눈물을 쏟는다. 나는 오히려 오랜 잠속에서 꾼 꿈들이 어쩐지 아쉽기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이동생네 일가와 함께 병상에 다가서서 안타까이 불러깨워주시던 동네로인님들의 그 상냥한 모습들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러니 누워서 보는 세상은 그처럼 안온했고 그처럼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너무나 흡족한 삶에 태연한 나날들이였다. 물론 누워서 본다는 세상은 그처럼 애닲은 설음과 함께 인간의 깡마른 마음을 너그럽게 헤아려주기도 하였지만 애오라지 삶에 지친 나그네의 가는 길에 너스레를 떠는 빈한한자의 “축복”으로 받아주는 바램으로서 마음속에 소중한 사람들만 불러오는 귀중한 기억의 순간으로 남아 욕창으로 뒤엉킨 온몸을 가볍게 어루쓸어줄수 있는 사랑이 되여 이 가슴이 미여지도록 으깨고 피나게 깨물고싶다. 그러나 저만치에서 귀를 때리는 안해의 목젖을 떠는것 같은 흐느낌은 연해연방 깊은 밤 귀축 같은 부엌아궁을 헤집는 귀뚜라미들의 울음소리마냥 귀아프게 고막을 찌른다. - 당신이… 맨날 술만 이렇게 마시고 아이는 어떻게 건사하고 또 사업은 어찌했어요?! 그러기에 사람들은 집에서 나가 돈벌이하는 사람들보다도 집에 남아서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 했지요. 물론 당신을 망라한 모든 로무자의 남편들을 일컫는것만은 아니겠지만도… 순간 눈앞에서 오리오리 하얀 빛발로 눈부시던 방안이 오색찬연한 무지개를 그리는가싶더니 길게짧게 깨알같은 어둠을 무수히 쏟았다. 두눈이 아래로 처져내리는 얇다란 눈까풀을 이겨낼수가 없었다. - 아버지! 아버지! 빨리 깨여나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네, 아버지…?! 갑자기 빠알간 태양의 열기가 얼굴에 확 덮쒸워졌다. 나는 다시 무겁게 내리덮이려는 두눈을 이악스레 치떴다. 아들애의 괴로움에 젖은 얼굴에서 쏟아지는 눈물들이 탱탱하게 굳어진 얼굴에 와서 부딪치며 한여름날 풀잎우의 이슬마냥 산산히 방울을 튕긴다. - 아버지…?! 아버진, 왜 이렇게 견강하지 못해요? 네?! 아버지…?! 아버진 제가 성공하는 자식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그렇게도 보기가 싫습니까? 예?! 아버지! 말씀을 좀 해보세요. 아…! 사랑하는 아버지! 아! 아… 흑흑흑 아버지야…?! 아들애의 터치는 애끊는 부름소리가 마침내 누워서보는 세상게임에 훌쭉하게 시든 나의 어둑스레한 몽환을 철저히 깨뜨려버렸다. 나는 드디여 두눈을 번쩍 뜰수가 있었다. 그것은 온 누리를 환히 밝힐수 있는, 광명을 가진 태양과 도전할수 있는, 세월을 짓밟고 일어설수 있는 무지무지 무한한 용기와 힘을 떨치고 자리를 박찰수 있었다. - 어, 한잠 잘 잤네그려. - 그런데… 너무 오래 잔거 아니야? - 뭐…?! - 다신 그렇게 긴 시간 잠을 자지 말라고? - 오, 그래 알았어! 다신 이렇게 당신을 두고 홀로 잠자리 선택하지 않을게! - 그런데… 당신, 언제 집으로 돌아왔지? - 뭐…?! 내가 이레동안이나…?! - 그렇게 오래동안 정신없이 잠만 잤다는거야? - 그래…?! - 그런데 당신, 집엔 영 돌아온거야? - 뭐…?! 아… 아니라구?! - 아하 참, 미안해! 정말 미안… 했어! 집에 없는 당신 마음을 비워두고 잠만 자서… 정말 미- 안- 해! - 이젠 그만… 됐어! 다만 민이가… 우리 민이가 걱정일뿐이야…?! - 아버지! 아버진 정말 이젠 깨여나셨죠? 다신 이렇게 민이를 두고 긴 시간 잠을 자지 않겠다고 약속할수 있죠? 예?! 아버지…?! 아들애의 해바라기같이 환한 얼굴이 두 눈확에 미여질듯이 꽉 안겨왔다. - 그래! 민이야! 아버지가… 너한테 미안함을 어쩔수가 없구나. 그러니 자사자리한 이 아버지를… 용서해다구. 살림살이에 찌든 못난 아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도 너무나 지쳤어! 그리고 너무나 보고 싶었어! 너의 엄마가… 보고 싶었어! 그래! 너의 엄마가 보고 싶었던거야. 술을 먹으면 환청으로 나타나는 너의 엄마가… 한없이 보고 싶었던거야! 정… 정말이야! 민이야…! 그러나 오늘부터 다신 이런 옹졸한 마음을 갖지 않을게! 절대…! 너를 두고 너와만 가질수 있는 아니, 지킬수… 있는 약속인거야! 그리고 오로지 건강한… 건강한 너의… 너의 모습만을 바라볼게…     그러나 나는 그날부터 누워서보는 세상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쩐지 누워서보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수가 있었고 또 가장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저승에서 굽어보는 상냥한 사람들로부터 시름을 놓고 배울수가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나만의 누워보는 세상게임에서 소중하게 키워온 선량한 마음들을 무턱대고 열독하는 독자들의 앞에 돈후하게 펴보일수가 없다. 그것은 한 인간이 저승행차에서만 느낄수 있는 이승에 바치는 비좁은 인생의 독백이기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시는 걸음인줄을 번연히 알지만도 그 길에 앞서 누워서보는 세상게임에 키워보는 독백은 흔치 않기때문이다. 그러니 이에 앞서 살어생전 너르디 너른 마음심에 오기로 엉킨 비좁은 독백을 가두어두지 말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뿐이다.     물론 나는 어느날 연회석에서 필요 이상으로 술을 마시고 “뇌출혈”이란 병원측의 엄한 축출령을 받은채 행운을 안고 누워서보는 세상게임을 완성하고 반년에 반년을 더한 일년만에야 겨우 그것도 비로소 간신히 다시 서서 보는 세상게임에 도전하여 나설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러므로 누워서 보는 세상게임으로부터 얻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터치고 다시 누워서 보는 세상게임으로 후회의 막을 따로 열지 않을것을 다짐하며 성큼 새 세상을 내딛기 시작한 이승의 행운자들과 함께 다시 삶을 살핀다. 오늘은 바로 내가 “누워보는 세상게임”을 아득히 물리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부축임속에 서서 보는 세상을 맞이하는 행운의 첫날이다.   아들애의 까르르 터치는 웃음소리를 듣는 즐거움, 막상 아들애의 그 천진란만한 행복을 두고 이승에서 아득한 거리인 저승길에 “누워보는 세상게임”을 편친 어수룩한 인간, 나를 두고 자기를 잃어버린 한없는 서글픔을 금할수가 없어 자기를 잃어버린 나, 아니 자기를 잃어버린 나를 대신한 “사람찾는 광고문”에 “누워보는 세상게임”을 가볍게, 가볍게 날려보낸다. “누워서 보는 세상게임”은 바로 죽기전의 이승에서의 선 죽움이였다.         - 누워보는 세상게임 - 2015년7월 장백산 제4기에 발표.
7    메아리 댓글:  조회:885  추천:0  2015-01-06
〔단편소설〕 메 아 리     (1)     바보같이…  준호는 손에 들린 종이장을 꽉 움켜쥐였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수도 없었다. 다만 이 바보같은 세상살이에 풀을 먹이는 자신이 싫어졌고 또 너무나 미웠다. 물론 준호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과도 같은 나락에 이처럼 굴러떨어짐에 한없이 서러웠다. 준호는 천천히 손에 들린 종이장을 펴들었다. 시뻘건 도장이 맨 끝에 꽉 박힌 듣기에도 보기에도 거북살스러운 가족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한장의 “리혼판결서”가 준호의 손끝에서 바르르 떨렸다. 준호의 귀가에는 아직도 법원재판정에서 울리던 나젊은 녀판사의 가늘고 챙챙한 목소리가 귀전에서 맴돌았다.   … 강준호는 아들과 딸의 선택에 따라 자식을 포기하고 영원히 자식을 찾지 않을뿐더러 자식을 만날수도 없다. 강준호의 아들 강한국과 딸 강한희는 어머니인 한지수와 더불어 한국으로 함께 이민을…   흑흑흑… 준호는 흐느꼈다. 준호의 손바닥에서 얇다란 종이장이 삽시에 파지처럼 구겨져버렸다. 터덜터덜…  법원청사의 길고 긴 높다란 층계를 쓰러질듯이 내리는 준호의 모습은 마치도 가을바람에 휘청이는 메마른 가을나무마냥 당장이라도 꺾여질것만 같았다. 그러나 끝내는 타오르는 한여름의 땡볕으로 무르익은 세멘트포장도로에 석연히 내려섰다. 길가에는 노오란 택시들이 줄을 지어서서 타려는 손님들에게 문을 열었지만 준호는 한동안 멍하니 길옆에 서서 아득하게 뻗은 먼 하늘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그래서, 가려거든 가라고 해라!” 분명히 준호의 입속으로부터 처연한 울부짖음이 타이야에서 새는 바람소리처럼 쌕- 하고 거칠게 그러나 너무나 강렬하게 터져나왔다. 하지만 준호는 오래동안 석상처럼 굳어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직도 눈앞에서 표연히 아들을 데리고 가는 딸애의 가녀린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것도 그처럼 쉽게 아버지인 강준호, 자기를 포기하고 엄마를 따라 한국이란 미지의 나라를 선택한 딸애를 쉽사리 용서할수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물론 8년여의 긴 시간을 엄마를 잊고 살아온 자식들의 선택이라고 쉽게 그것을 용서하려고 하였지만 그것은 시간의 결정과 바람뿐이였다. 준호는 그때까지 빼끔히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있는 노오란 택시에 천천히 구겨진 몸을 던졌다. 이 시각 자신이 들어갈수 있는 공간이란 바로 여기에 외롭게 서있는 이 비좁은 택시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 쓰고 살던 집은 안해가 번 돈으로 사놓은 집이였으니 안해가 처리하는대로 따르면 되였다. 준호는 떠나가는 자식과 그동안 함께 부부로 살면서 가족이란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오던 안해를 눈앞에서 쫓기듯 빼앗기듯 떠나보내야만 한다는 비운때문에 처참해진 몰골을 자식들한테 보이고싶지 않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택사운전사의 엷은 미소가 살갑게 웃음을 팠다. “가는대로… 아니, 가고싶은대로 그냥 가주시오!” 준호의 찌그러진 얼굴에서 답안을 찾듯 한동안 어색하게 돌아보던 택시운전사는 소리없이 엔진을 켜고 미끄러지듯 도심을 향해 천천히 달렸다. 준호는 두눈을 꼭 감고 긴 한숨을 련신 톱았다. 이때 알듯말듯한 노래가 가느다란 녀인의 바스음성을 타고 택시안을 가볍게 울렸다. 준호의 거동을 백미러로 스쳐보던 택시운전사가 록음기를 켰던것이다. 준호는 그런대로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작정 달리는 택시에서 조용히 쉬고 싶었다.   … 가야지 가야지 가야지 내맘 한 곬으로 가야 해 …   내가 원하는 곳으로 꼭 가야 해 내가 원하는 곳으로… …   어디선가 들은것 같기도 한 아리숭한 노래소리가 준호의 귀방울을 살살 간지럽혔다. “그래, 가야겠지?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준호는 자기도 모르게 택시의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 노래에 자신을 파묻고 언제부터인가 입속으로 조용히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준호의 깡마른 털보숭이 볼우로 시뿌연 눈물이 곬을 파고있었다.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씰룩거리는 입귀로 거친 숨결이 짙게 뿜겨져나왔다. “아, 바보같이… 내가 바보같이 살았어! 인생 50년을 헛살았어! 그래도 항상 자부심으로 살았었는데… 아, 어무니(어머니), 아부지(아버지)! 만약 당신들이 하늘나라에서 이 아들을 굽어보신다면 당신의 아들을 좀 구제해주세요! 네?! 난… 난 어쩌면… 어쩌면 좋습니까?! 준호는 터져나오려는 비명때문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갑자기 이 세상에 홀로라는 콤플렉스가 무섭게 준호의 가슴을 옥죄이였다. 간다. 간다. 모두가 간다. 아들도 가고 딸도 가고 안해도 가고 모두가 간다. 아니, 지금까지의 모든 소요를 깨버리고 준호만을 이 세상 한끝에 버려둔채 조용히, 조용히 사라져간다. 아들도 딸도 그리고 안해와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택시는 여전히 자기의 동그란 바퀴를 굴리며 앞으로 달려갔고 택시운전사는 가담가담 끊겨가는 록음기테이프를 바꾸기에 여념이 없었다. 택시가 어디까지 달렸는지 준호는 들썩이는 좌석에 머리를 기댄채 입귀로 느침을 흘리며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나 택시는 자기가 가야하는 목적지를 아직은 알수가 없지만 준호를 싣고 줄곧 앞으로… 앞으로 달리기만 했다…     (2)     준호가 안해인 한지수를 만나기전까지 참 힘든 세월을 보냈다. 중국의 전례없는 흑운이 뒤덮이는 “문혁(文革)”의 년대에 공사(지금의 향,진급)의 지식청년안치반공실에서 사업하던 아버지가 우파로 몰려 “우사칸”신세를 지는바람에 준호는 밑에 졸망졸망 딸린 삼남매를 거느리고 어머니를 도와 중학생의 어린 몸으로 가장의 무거운 짐을 떠메여야만 했다. 더우기 어머니가 설날아침 룡드레우물(그당시 마을에는 수도물이 없었다. 수도가 마을에 생겼을때는 1970년대 중반이였다.)로 물길러 가셨다가 우물가름대가 끊어지면서 내리친 이깔나무등걸에 머리를 맞고 그것이 뇌진탕으로 이어지면서 실명하여 앞을 보지 못했던것이다. 실로 아비규환의 년대에 다닥친 불행의 지속이였다. 그때에는 무엇,무엇해도 배고픔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 곤난이였다. 언젠가 “우사칸”에서 간신히 풀려나온 준호의 아버지가 어디에선가 감자로 만든 당면부스러기를 마대에 반나마 얻어오셨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국수가 끓기도 전에 돌덩이마냥 땅땅한 국수오리를 정신없이 주어먹고 아이들 넷이 두눈을 멀뚱멀뚱 치뜬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을가?! 준호가 열두살 되던 해의 가을이였다. 준호네 집 뒤에는 두쌍 남짓한 수지촌과수원이 있었고 그 과수원을 배경으로 집 터밖에 자그마한 우물이 하나 있었다. 때문에 늘쌍 배고픔을 달래기 위하여 준호는 동생들을 거느리고 우물가에 내놓은 두레박으로 시원한 샘물을 길어올려서는 주린 배를 달래면서도 과수원의 주렁주렁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사과배만은 탐을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너무나 배가 고프고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배의 유혹과 곁에서 칭얼대는 여섯살 막내동생으로하여 준호는 끝내 과수원주위에 울바자처럼 둘러막힌 비술나무숲을 헤치고 과수원에 침입하였다. 눈앞에 황홀하게 안겨오는 사과배의 유혹에 자기집 과일마냥 제멋대로 따먹다가 과수원지기에게 들켜 우물가에서 조롱조롱 기다리는 동생들앞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붙들려 호되게 얻어맞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회의 찌꺼기인 불량배처럼 생산대의 과수원에는 왜 뛰여들어 도적놈의 행세를 하느냐?” 본래 목청이 남들보다 한결 높으신 준호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과수원지기가 달려왔다. 어린애이니 별문제라며 타일렀지만 과수원에 뛰여들어 아직 익지도 않은 과일을 도적질하는것은 안된다며 그래도 아버지의 면목을 봐서 학교에는 알리지 않겠다며 늙은 과수원지기는 준호 아버지의 눈치만 슬슬 살폈다. 준호는 그처럼 무섭게 성을 내시는 아버지를 처음 보았다.  준호의 아버지는 그렇게 넉가래 같은 손바닥으로 준호의 볼구니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준호가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맞은것이 아마 그때가 처음이였을것이다. 그래도 과수원에서 한입 베여먹던 사과배가 호주머니에 그냥 남아있어 곁에서 덩달아 울어대는 막내동생에게 주면서 준호는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문지르며 소담하게 웃었다. 하지만 준호의 아버지는 금방 여섯살인 막내동생의 여린 손에서 그 사과배를 빼앗아 과수원너머로 멀리 내던졌다. “안돼! 절대 도적질한 놈의 물건에 입을 댈수가 없다!” …   그때로부터 준호는 도적놈과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못난 인간들을 보면 그때의 아버지처럼 증오하고있었다. 때문에 준호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도적놈을 제일 증오하였고 또 용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시기에 배고픔의 유혹은 좀체로 참을수가 없었다. 더우기 밑에 조롱조롱 커가는 동생들과  잘 보이지 않는 안질때문에 생산대의 로동에 참가하지 못해서 강냉이쌀도 없어 밥대신 멀건 강냉이죽으로 동생들의 밥그릇을 멀겋게 채워주며 곤혹을 치르는 엄마때문에 결국 또다시 도적놈의 행세를 한적도 있었다. 준호는 엄마 몰래 아버지의 이름자가 새겨진 청줄마대를 가만히 구겨들고 밤의 어둠을 타서 남의 자류지밭으로 막 영글기 시작하는 풋강냉이를 훔치러 갔었다.  그 시기에는 집집마다 마대에 가장들의 이름이거나 혹은 자식들의 이름을 새겨서 가을 량식분배때에 여러 집과 섞이여 혼란을 일으키는것을 막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커먼 옥수수밭에서 금방 물이 오르기 시작한 강냉이를 따다가 불쑥 마주친 웬 낯모를 사내때문에 “도적이 제 발이 저려” 줄행랑을 놓다가 무서웠지만 가지고 갔던 아버지의 이름자가 새겨진 마대를 생각하고 다시 되돌아가 어둠속에서 밭고랑에 팽개쳤던 마대를 주어들고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파김치가 되여 봉당에 들어서던 준호는 깜짝 놀랐다.  마대에는 반듯하게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자는 없고 대신 괴상한 한어로 비뚤비뚤 왕xx라고 씌여있는 덕지덕지 기운 마대가 손에 들려있었던것이다. 너무나 놀라 말은 못하고 되짚어 다시 옥수수밭으로 달려가보았지만 준호는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마대는 끝내 찾지 못하였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준호도 지지리 못나던 그 어려운 세월속에 잔뼈를 굳히며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학입시가 회복되고 그처럼 가고싶던 대학을 지망하고 빨간색으로 된 대학입학통지서를 받던 그날만큼은 준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또 뜻깊은 날이였다. 준호는 1984년 7월 연변대학에 입학하는 행운을 잡게 되였다. 그토록 배우고 싶었고 또 달려가고싶던 학업의 전당이였다.     (3)     준호가 안해인 한지수를 만나게 된것은 대학교 3학년때였다. 맞선을 보려고 두만강 상류의 편벽한 산골에 자리잡은 길죽촌에 있는 친구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른 저녁녘이였다.     집에는 친구의 어머니가 저녁준비를 하고 계셨는데 숙성한 처녀가 재봉틀을 마주하고 옷을 짓고있었다.     준호는 인사를 드리고나서야 친구에게 과년한 녀동생이 있는줄을 알았다.     저녁이 되여 밥상에 앉으니 어색하기만 했다.  준호는 친구가 겸상을 했건만 눈길은 자꾸 옆상에 앉은 친구의 녀동생에게 쏠리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런대로 저녁상을 물리고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준호는 친구의 녀동생이 떠다주는 슝늉물도 마시지 못한 채 웃방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저녁녘에 접어두었던 세계문학명작 듀마의 장편소설 “몽떼 크리스또백작”을 펼쳐들었지만 글 줄이 하나도 안겨오지 않았다. 준호는 별수 없이 책을 내려놓고는 얼기설기 연목이 훤하게 구름발을 타는 집안의 천정만 머룽머룽 쳐다보았다.     “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언제 들어왔는지 친구의 녀동생이 더운김이 피여오르는 슝늉물을 받쳐들고 빤히 내려다보고있었다.     “슝늉물을 마시지 않았기에…”     친구의 녀동생은 슝늉물을 준호의 곁에 내려놓고 살포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오빤…”     준호는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생면부지의 녀자와 처음으로 단둘이서 그것도 자그마한 방안에 앉아있으려니 쑥쓰럽고, 부자연스럽고, 또 부끄럽고… 저도 모르게 얼굴만 지지벌개났다.     “오빤, 동네 친구들한테 잠간 나갔나봐요.”     친구의 녀동생은 머리를 들고 소리없이 웃었다.     준호는 무슨 말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맞선을 보는 자리가 친구의 집이였다는것도 이상하거니와 그것도 맞선녀가 바로 친구의 녀동생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것이다.  슬그머니 꼭 닫겨진 방문을 흘끔거렸지만 친구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동… 동무는 무슨 ‘띠’입니까?”     친구의 녀동생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갑작스레 난해하게 물었다.     준호는 이름도 묻지 않고 별스레 “띠”부터 밝히는 녀자의 그 물음에 어딘가 실망을 느꼈다.     “돼… 돼지띠입니다.”     준호의 입에서는 본의 아니게 엉뚱한 대답이 저도 모르게 불쑥 튕겨나갔다.     “한지수예요. 오빠를 통해 강준호동무에 대해서 많이 들었어요. 당혹스러웠지요. 처음 만나는 남자한테 생뚱같이 ‘띠’부터 밝혀서 호호호…”     녀자의 웃음소리는 그처럼 밝고 구성졌다.     준호는 녀자의 웃음소리에 긴장감을 조금씩 풀면서 앞에 앉은 친구의 녀동생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갸름한 얼굴, 당실한 코마루, 쌍겹진 눈, 연지분 먹지 않은 순수한 볼, 녀자의 모습은 생신한 자연의 모습이였다. 더우기 무릎을 포개고 마주앉은 녀자의 모습에서 녀성의 신선한 자연미를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마음놓고 흔상하게 되였다.  준호는 녀자의 취할듯한 체취에 온몸의 탕개가 스르르 풀어지는것만 같았다.     준호는 마침내 모든 불편감을 털고 친구의 녀동생인 한지수와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고 또 가정배경과 생활형편도 낱낱히 들려주었다. 특히 맏이로서 부모를 모셔야 할것이고 세 동생의 앞날도 책임져야 한다는 고풍스런 말까지도 아낌없이 털어놓았다.     “세상에 부모 없이 태여날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한지수는 밉지 않게 준호를 흘겨보았다.     “그래도…”     준호는 한지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왜요? 얼굴에… 눈자리 나겠어요!”     한지수는 몸을 빽 탈며 얼굴을 돌렸다.     준호는 그때 녀자의 하얀 목덜미를 보았다. 분결같은 하얀 살결이였다.     “동… 동무의 살결은 참말로 하얗소.”     “아이, 동문… 남의 목덜미만… 훔쳐보고.”     한지수는 주먹으로 준호의 가슴을 콩콩 때렸다. 준호는 그러는 녀자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아이, 미워요. 정말…”     한지수는 고스란히 준호에게 몸을 맡겼다.     준호는 녀자의 몸에서 청춘의 욕망으로 끓어넘치는 부드러운 사랑을 마음으로 깊이깊이 느낄수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예요. 오빠한테서 많은것을 듣고 꼭 만나보려고했어요.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둘이 맞들고 벌면 남부러울게 없어요. 안 그래요? 꼭…”     한지수는 이외로 조용히 말끝을 흐리였다.     “동… 동무는 꼭 불행을 껴안는 바보… 같군요.”     준호는 녀자를 가슴으로 보듬어주었다.     한지수는 두손으로 준호의 목을 꼭 껴안고 단숨을 콕- 하고 내쉬였다.     “영원히 사랑하자요! 변함없이…”     그날밤 강준호는 한지수와 더불어 하나의 약속으로 어울어진 가슴을 사랑의 홰불로 환하게 밝혔다.     (4)     준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룡화시라는 낯선 시가지의 조선족중학교에 배치받았다. 그때까지만도 보통중학교에는 대학졸업생이 몇명 되지 않는 희귀한 존재였다. 그러나 본래부터 가난한 살림살이에 동생들의 지원으로 겨우 학업을 마친 준호는 한지수와 시교외에 따로 살림방을 차렸지만 집안에는 책장 하나외에는 값나가는 물건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한지수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이불장과 재봉기와 재봉기우에 마주놓인 함박꽃으로 그려진 미술 구도가 환한 법랑소래 두짝이 없는 집안에 윤기를 돋구어주었다. 준호의 안해가 첫 애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준호가 점심에 집으로 돌아와 막 밥술을 들려는데 아기 옷을 짓는다고 재봉기에 마주 앉아있던 준호의 안해가 임신 예닐곱달되는 커다란 배를 부둥켜안고 허둥댔다. “여보, 웬 일이요?” 준호는 숟가락을 들고 멍하니 안해를 바라보았다. “소변이…”  준호의 안해는 바지춤을 틀어쥐고 끌신을 꿰며 부랴부랴 밖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준호가 밥술을 놓을때까지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준호는 불안한 생각에 끌신을 대충 걸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여보!” 그런데 바자굽에 지은 화장실에서 안해의 신음소리가 애절하게 울려왔다. 준호는 달려가 다짜고짜 화장실문을 열었다. 안해가 벽을 짚고 엉거주춤 서있었는데 가랑이사이로 아기의 새빨간 발이 내밀려있었다. 준호는 그 자리에 기절할번했다. 안해는 이를 앙다물고 비지땀을 쏟고있었는데 으깨문 입술사이로 시뻘건 피가 랑자하게 흘려내렸다. “어서 의원을…” 준호는 그제야 촌 위생소의 황의원을 모시러 달려갔다. 황의원을 모셔오니 안해가 화장실밖에 쓰러져있었다. 황의원은 너무도 당황하여 선자리이에서 맴돌며 입만 쩝쩝 다셨다. “아, 나원 참! 어서 시병원의 구급차를 불러라!” 황의원도 발을 동동 굴렀다. 준호는 다급히 촌의 사무실로 달려가 시립병원의 구급차를 불렀다. 그렇게 준호의 안해는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날수 있었다. 그러나 준호의 첫 아기는 준호 안해의 임신중독으로 인해 고고성을 한번도 울려보지 못한채 세상의 환한 빛줄기도 보지 못하고 준호 안해의 컴컴한 자궁속에서 가슴아프게 요절하고말았다. 그후부터 준호의 안해는 이상하게도 말못하는 동물들에게 남다른 애착을 기울이고 집뜨락에 돼지며 닭이며 오리를 비롯한 가금류(家禽類)의 동물들을 기르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집뜨락에 넘쳐나는 온갖 가금들의 울음소리를 그날 하루의 싱싱한 생활의 찬송가로 들으며 동물원의 너그러운 사육사(飼育士)마냥 항상 선량한 녀인으로 또 준호의 하나밖에 없는 안해로 열심히 꾸준히 살았다. 준호 안해의 두손은 복손이였다. 집안에 갖춰놓는 자질구레한 신식가구들은 물론이고 전자제품들도 모두가 준호 안해의 손끝에서 이루어낸것이다. 물론 뜨락에서 길러낸 가금들이 가져다 준 혜택이였지만 준호의 안해는 딸과 아들을 3년 터울로 키우면서까지도 가금들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시종 버리지 않았다. 딸애가 여덟살, 아들애가 다섯살이 되는 2001년, 즉 21세기의 새 아침에 준호는 시 고급중학교로 전근하게 되였다. 그러자 준호의 가정에는 일약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10여년을 쌓아온 준호 안해의 눈부신 재산들이 한꺼번에 도시의 번화가에 우뚝 일떠선 17층 높이의 강도아빠트(江图公寓)로 바뀌였으니 이 모든것이 이변이라면 역시 대이변이였다. 아이들도 시내에서 농촌애들이 부러워하는 룡화시의 유일한 학전반으로 설치된  “6.1”유치원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새로운 재미로 커갔다. 하지만 준호 안해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던 풋풋하게 손에 쥐이던 모든 경제래원이 끊기고 준호의 월급통장에만 의거하면서부터 집안에 감도는 이상한 기운이 언제부터인가 화기애애하던 집안분위기를 압축해버렸다. 매달 고정된 월급에서 아빠트단지의 관리비(物业管理费)와 생각보다 엄청난 두 애의 학전반과 유치원 학잡비가 “아이보다 배꼽이 더 큰 격”으로 되였다. 거기에다 여기저기 전해오는 친척, 친우들의 각종 기념으로 이어지는 축하파티에 따른 부조금에 월급통장을 달달 긁다보니 이젠 깔랑깔랑한 빈 종이장 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이 현대화한 설비로 꾸며진 유치원에서 밝게 뛰노는 모습과 부모로 된 어시로서 환하게 자라나는 애들에게 훌륭한 교육환경을 이루어주었다는 자호감으로 모든것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생각으로만 그쳐지는것이 아니였다. 준호도 가끔 젊은 교직원들이 새롭게 갖춰들고 다니는 3G, 4G로 된 스마트폰이 스치는 눈길에도 부러웠고 또 출, 퇴근길에 쉽게 굴리는 급이 높은 교수님들의 자가용도 어렵사리 눈에 탐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고 준호는 모든 부러움을 악마의 욕망이라고 짓눌러버렸다. 하지만 준호는 안해의 욕망과 욕심만은 자기맘대로 관용을 베풀어갈수가 없었다. 준호 안해의 손끝에서 껄끄러운 돼지죽냄새가 사라지고 온갖 가금들에게서 풍기던 시큼털털하던 잡다한 똥오줌 냄새가 아빠트단지에서 깜쪽같이 없어지니 새로운 욕망의 한계가 바다의 파도마냥 꿈틀대더니 재빨리 사납게 넘실거렸던것이다. 안해가 한국행을 독단했다. 그러나 준호는 할말이 없었다.  아니 할말이 있어도 무슨 말로 안해를 만류하고 안해를 집에 붙잡아두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렇게 세상의 요지경 같은 일은 항상 자기의 마음과 주관대로 되는것이 아니였다. 물론 준호도 그리고 준호의 안해도 역시 사람은 숙명에 따라야 한다는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처럼 룡화시공안국의 외사과로 날마다 줄을 이어 뛰여다니던 준호의 안해가 갑자기 하루밤사이에 한국 중개인에게 집 한채를 날린채 빈털털이 신세가 되여버렸다.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이란 한곬으로 마음을 기울이면 절대 되돌릴수가 없는가보다. 준호의 안해는 우리 조선족의 생활을 유들유들하게 만들어주는 한국이라는 이 황금알을 영원히 포기하지 않을 잡도리였다. 하지만 한국 중개인에게 사기당하고 날마다 우울속에 나날을 보내면서도 요행속에 한국에 시집간 조카애의 초청장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준호의 안해가 느닷없이 한국이란 나라로 날아가련다는 욕망을 다시는 아니, 영원히 접겠다는것이였다. 그리고 준호 안해의 친조카애한테서까지 초청장으로 요구하는 거액의 현금때문에 이가 갈린다며 친척도 그리고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남편까지도 다 쓸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말았다. 그때부터 준호의 안해는 강도아빠트(江图公寓)의 17층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힘들게 오르내리며 장돌뱅이 아줌마로 나섰다. 준호가 고급중학교 교직원의 사모님으로써 학생들도 보고있으니 남부끄러운 일을 제발 찾아하지 말라고 그렇게 애곡간장이 타도록 말했건만 안해는 그런것이 돈이 되여 우리 살림에 보탬하냐고 또 아들딸의 학잡비를 대주냐며 준호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오히려 극구 나선 일이 바로 장마당에서 삶은 풋강냉이를 되넘겨다 파는 일이였다.     (5)     준호의 안해에게는 장돌뱅이의 원칙과 그 비결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준호의 안해가 삶은 강냉이주머니를 무릎사이에 끼고 앉기가 바쁘게 여기저기 밀려드는 고객들로 하여 한번도 팔다가 남긴 강냉이이삭을 집으로 가져온적이 없었다. 그만큼 준호의 안해는 팔고있는 강냉이를 자기의 후더분한 마음처럼 한 이삭씩 덤으로 얹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그러다보니 익은 강냉이를 사는 대부분의 고객들인 아낙네들은 덤으로 얹어주는 그 한 이삭의 강냉이때문에 준호 안해의 주위에 물결처럼 밀려들군 한것이다. 그것도 장사의 비결이라면 바로 준호 안해만의 비결인가부다. 길 가던 나그네도 그렇고 어린 아이는 물론 중학교의 학생들까지도 아낙네들로 빙  둥근 원을 치고있는 사람들을 흘끔거리다가 의혹스레 다가가 웬 강냉이냐싶어 너도나도 한 이삭씩 사서는 선자리에서 입가심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준호 안해의 장사길에는 노상 웃음과 즐거움만 피여난것은 결코 아니였다. 비록 농촌에서 가금을 치던 시기처럼 경제의 활성화를 이루어내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의 학잡비와 또 생활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있던 준호 안해의 삶은 풋강냉이장사가 하나의 피치 못한 “바지사건”으로 인하여 접게 되였으니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미여지고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 준호 안해의 삶은 풋강냉이장사길에 대운이 틀 때였다. 삶은 강냉이주머니를 자전거에 싣고 장마당에 가져가던 준호 안해가 그만 자전거를 뒤엎어버렸던것이다. 그것도 어느 웬만한 집 아가씨의 몸에 자전거를 넘어뜨린것이 아니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줄줄이 늘어선 안마방은 보기에도 희귀한 존재로 사람들의 눈에 이색적으로 보이던 시기였으니 과히 안마방의 아가씨는 감히 건드릴수도 또 넘볼수도 없는 살진 “비게덩어리”였다. 그런데 삶은 풋강냉이주머니를 두개나 박아실은 준호 안해의 무거운 자전거가 하필이면 이 “비게덩어리”의 몸을 덮쳤으니, 가히 상상만해도 몸서리쳐지지 않겠는가?!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가, 다만 그 “비게덩어리”의 새파랗게 하늘을 타는 “당꼬바지”의 허벅지가 자전거의 어디엔가 긁히면서 조금 미여지고 하얀 허벅지살이 빨갛게 노여움을 타면서 피를 물었다고 했으니… 결국 저절로 넘어간 자전거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섬약한 준호 안해와 그 보상을 엄청나게 호소하는 실팍한 안마방 “비게덩어리”의 대판싸움으로 번져지면서 그날은 공안국 110 대원들까지 출마하여서야 비로소 “바지사건”이 간신히 끝날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준호의 안해는 안마방 “비게덩어리”의 미여진 “당꼬바지”의 전액을 물어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루낮 겨우 삶은 풋강냉이를 팔아서 백여원도 만들지 못하는 어려운 세월에 안마방 “비게덩어리”의 새파랗게 하늘을 타는 “당꼬바지”는 “아이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였다. 바지 하나의 값이 고급중학교의 교직원인 준호의 한달 로임봉투보다 더 두꺼웠으니 준호 안해도 눈을 부라리며 노발대발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준호 안해의 무리는 빨간 피가 한모숨 배여나온 안마방 “비게덩어리”의 허벅지 앞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말았다. 준호 안해는 이를 악물고 한여름 땀으로 절은 빨간 돈가방에서 그해 여름내내 세여오면서 쌓고있던 황금산을 무너뜨렸다… 준호 안해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중국대지의 큰 어른의 초상화가 새겨진 빨간 지페가 안마방 “비게덩어리”의 하얀 손끝에 넘어갈 때 준호의 안해는 두눈이 뒤짚혀지는것 같았다고 한다. 물론 온 여름 땀으로 절궈온 돈을 허망하게 여느 녀자의 판난 바지의 보상으로 주어야 한다는것이 얼마나 가슴이 미여졌으랴?! 그날의 “바지사건” 이후 준호의 안해는 혼자 심한 가슴앓이를 하였다. 날마다 두터워지는 돈의 유혹에 래일이면 얼마, 또 래일이면 얼마 그렇게  날마다 희망으로 쌓아가던 장사로써 하늘을 떠인 높은 17층 아빠트단지에서 부인들의 낯간지러운 귀티를 피해 엘레베이터를 오르내리면서도 자식의 학잡비에 보탬하는 즐거움으로 삶의 노래를 불러가던 준호 안해는 준호의 만류에도 굽히지 않던 장사일을 결국 포기하고야 말았다.  준호의 안해는 “바지사건”으로 하여 큰 충격을 받았던것이다. 준호 안해는 한동안 삶은 풋강냉이를 먹지도 않았다.  아니, 강도아빠트(江图公寓)단지내 이웃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다시는 장마당으로 나가 장돌뱅이의 고달픈 길을 걷지도 않았던것이다.     (6)     준호의 안해는 장돌뱅이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아예 집안을 지키는 “구석영웅”으로 돼버렸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트럼프로 운을 점쳐본다고 란리였다. 트럼프의 점괘가 어떻게 나오는지 준호의 안해는 온 겨우내 트럼프목을 몇개나 바꿨는지 모른다. 보풀이 일다못해 두터워지면 패를 섞을 때 자꾸 몇장씩 겹친다고 낡은 트럼프목을 주방의 싱크대밑에서 한껏 입을 벌리고있는 비닐쓰레기주머니에 질러넣고는 새것을 구입해서는 계속 트럼프장을 펼쳤던것이다. 준호의 안해는 그 트럼프가 도무지 싫지 않은가 보다. 웬만하면 쉽게 진저리가 났으련만 그녀의 트럼프목은 언제나 진달래와 나리꽃 무늬가 수놓인 하얀 돛자리우에 질서정연하게 펼쳐져있었다. 이제 그 트럼프목이 준호의 안해에게 어떤 행운을 가져다줄지는 누구도, 심지어 준호도 그리고 준호 안해 한지수 자신마저도 모른다. 그런데 겨우내 준호 안해의 한숨으로 질려있던 그 트럼프목이 행운을 가져왔는지 어느날 준호의 안해가 한국으로 나아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운 좋게 땡으로 잡게 되였다. 정말이지 겨우내 넉살좋게 펼치던 트럼프의 점괘에 결국 운이 틔였나보다. 누가 뭐래도 관계치 않고 밤낮으로 치고 번지던 트럼프가 희소식을 안고 날아왔던것이다. 금방 구정을 보내고 번다한 음식상을 피해 또 트럼프를 잡는 준호 안해에게 웬 낯모를 전화가 걸려왔었다. 어느 가도판사처에서 사업하는 동창이자 절친인 김숙자씨였다. “얘, 너 집에서 뭐하냐? 왜 까딱하지 않냐? 좋은 소식이다. 지난 12월 1일부터 중국 국가공무원을 비롯한 대학 4년 졸업생들을 상대로 한국법무부에서 “F-4” 5년비자를 내준단다. 니 남편도 대학졸업생은 물론이고 고급중학교의 교직원인데 얼마나 좋냐? 이번에 한국 “F-4” 비자수속을 마치면 가족들도 그 혜택을 받게 된단다. 얘, 남들이 한다고 할 때 니도 어서 빨리 해라!” 준호 안해의 입이 넙적 벌려졌다.  입귀가 눈등에 가붙을 지경이였다. “얘, 니 금방 뭐랬냐? 그게 정말이라니?” “그래, 그러니 어서 알아서 해!” “응, 알았어. 그러니 전화끊어!” 준호 안해는 무작정 친구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막 출근길에 나서는 준호의 옷깃을 잡았다. “여보, 지금 국가공무원과 대학 4년 졸업생들을 상대로 한국법무부에서 한국진출 비자를 발급한대요. 그것도 가족들이 함께 혜택을 받는답니다. 당신, 못들었어요. 이 좋은 기회를 왜 우리가 몰랐지? 당신, 오늘 꼭 출근해서 잘 알아보세요. 아, 우리에게도 이제야 살길이 틔이는가부다. 그렇게 한국으로 나가자고 갖은 애를 다 썼는데 오늘에야 그 행운이 찾아왔나봐! 아, 여보, 당신이 고마워요. 대학생인 당신이…” 준호는 안해의 긴 사설을 더 들을수가 없었던지 안해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 왜 출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이 란리요? 나도 얼마전에 피뜩 들었소.” “그런데 왜 이 좋은 소식을 저한테 알려주지 않았어요?” 준호의 안해는 급기야 뾰로통해서 콕 내쏘았다. “당신, 지금도 제가 한국으로 나가는것이 그렇게도 싫으세요?” “아, 아니 그런것은 아니고. 하여튼 내가 오늘 출근해서 다시 어련히 알아봐가지고 오겠으니 그런줄이나 알고있소.” 준호는 안해의 달아오르는 얼굴을 피해 급히 문을 나섰다. “꼭 잘 알아보세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이 좋은 기회를 우리가 왜 잡지 않겠어요? 당신이 꼭 잘 알아서 하세요.” 준호는 집문을 나섰지만 마음만은 가볍지가 않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안해가 한국으로 나가는것을 극구 반대하던 준호였던것이다. 지금의 형편에 남들앞에서 떵떵거리며 살수는 없어도 남들의 부러움을 자아내며 살아갈수가 있는데 왜 하필 부부간에 서로가 떨어져 그리면서 아픈 삶을 살겠느냐고 안해의 출국을 저지하였던것이다. 그러나 준호는 안해의 부탁을 회피할수가 없었다. 학교에 출근하니 한 동료가 벌써 이 좋은 소식을 먼저 얻어듣고 지금 한창 “F-4” 수속을 밟는다고 여기저기 뛰여다니고 있었다. 물론 안해의 수속도 함께 넣는다면서, 안해가 한국으로 나가야 아빠트를 살수 있는 딸라까지도 무난히 벌어들일수 있다며 동료는 입이 함박만해져있었다. 남들이 그토록 황홀하게 바라보고 또 그처럼 한국으로 나가지 못해 안달을 떨면서도 나갈수 없는 이 절호의 기회를 왜서 잡지 않겠냐고 동료는 마치도 자신이 한국으로 나가는 당사자인것마냥 기분이 붕 떠 있었다. 그 동료의 말을 빌어서 지면에 옮겨본다. “남들처럼 몇만원이라는 거금도 들이지 않고 단지 려권과 비자수속비만 간단히 내면 되는 이 좋은 기회를 포기 할수가 없지 않습니까? 더구나 여느 사람들이 다 수속을 밟을수 있는 조건도 아니고 딱 공무원과 대학졸업생으로서 그것도 중국 조선족에 한해서만 차려지는 행운인데요. 어차피 중국에서 우리 같이 말단 중학교 교직원의 로임으로는 어느 천년에 가서야 몇십만원으로 치닿는 아빠트를 꿈이나 꿀수 있겠습니까? 김선생님도 사모님이 집에서 취업중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차피 공무원과 대학졸업생들이 지금 다 수속을 밟고 집사람들을 한국에 내보낸다고 란리가 났는데 금후에 또 어떤 정책이 내릴지 누가 안답니까? 좋을 때 시기를 잘 잡아야지 않겠습니까? 물론 우리 자신들은 국가에 매여있는 출근때문에 한국으로 나갈수가 없지만 가족들이라도 한국에 진출해서 딸라를 번다면야 헤헤, 자가용까지도 가히…” 준호는 동료의 권고를 그냥 묵언으로만이 들어갈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집에 있는 안해한테 전화를 걸어서 상세한 정황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동료의 뒤를 이어 한국 려권을 신청하였고 얼마뒤 정확히 말해서 보름뒤 신청하였던 려권을 받아가지고 다시 중국 서광국제려행사를 통하여 중국의 조선족 공무원과 대학졸업생들이 한국으로 나갈수 있는 “F-4” 한국비자를 심양주재 한국령사관에 안해와 함께 둘이서 나란히 신청하게 되였던것이다. 20여일이 숨막히게 지나갔다. 그동안 준호 안해는 다시는 트럼프목을 손에 잡지 않았다. 준호 안해의 말에 따르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 행운이 우리 집에 쌍으로 날아들었는데 왜서 하필이면 트럼프목을 다시 뒤집으며 찾아든 행운을 무시하려는가였다. 드디여 준호와 준호 안해의 한국비자도 쉽게 손에 받게 되였다. 한국으로 나갈수 있는 행운의 기회가 준호 안해에게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준호네 집에 봄날의 해볓처럼 신기하게 날아왔던것이다. 준호 안해가 지난 몇년동안 그토록 오매불망 바라고 또 진축시키던 한국 진출의 꿈이 오늘에야 드디여 가볍게 실현되였다.   준호 안해의 말로 다시 말한다면 자기가 원래 복많은 녀자라는것이다. 지난 몇해동안은 그 복을 받을수 있는 시기가 아직 성숙되지 않았을 뿐이고 이제 드디여 모든 복을 누릴수 있는 시기가 서서히 무르익어간다는것이였다. 그것도 혼자서는 필수 없는 사랑이기때문에 “샌님의 돈은 미친개도 안 먹는다”는것을 무마한채 여직껏 없이 사는 “무깍쟁이” 같은 사람이였지만 꼭 피여날수 있는 사랑이였기에 지금까지 준호를 꼭 붙잡고 남편으로 떠받들었단다. 준호는 안해가 이토록 자기가 남편을 잘 만났다고 또 자기가 복많은 녀자라고 스스로 기뻐하는 모습을 여직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준호 안해의 한국 진출은 물론 행운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부를 창조하는 로동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피땀의 결실이기때문이다. 준호는 두텁지도 않은 한국 려권비자를 무한정없이 들여다보았다. 한국으로 나갈수 있는 “F-4” 비자는 려권에 파르스름하게 덧붙여진 한장의 종이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헤아릴수 없이 많은 중국 조선족들이 이 얇다란 종이 한장을 위해 죽었고 또 살기 위해서는 가족과 갈라져 이역만리에 리산가족의 피눈물을 처절하게 쏟고 있지 않았던가?! 지금도 이 시각 이 한장의 비자를 챙기지 못하여 험한 파도를 헤가르며 배밑창에 갇혀 밀항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것이고 또 아까운 목숨마저 뿌리치며 이역에서 불법체류자로 락인이 찍혀 피를 빨리우며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며 또 가짜서류를 꾸며 오도가도 못하는 자기가 아닌 타인으로 변경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 한장의 엄청난 한국 비자때문에 몸을 팔아 가짜결혼으로 출국을 꿈꾸는 사람들과 아까운 청춘을 값없이 잃어가는 우리 중국 조선족녀인들의  밑창터진 삶의 “아리랑”이 오늘의 21세기에도 새삼스레 눈물이 나게 연주되고 있지 않는가?! 물론 이 한장의 려권비자를 챙기기 위하여 집을 날린 사람도 있고 또 거금을 들여 중개인에게 사기당한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그리고 출국으로 몸을 달구었다가 실패로 되여 집 잃고 직장을 떼우고 모든것을 잃은 나머지 자살로 목을 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그처럼 아글타글 모아온 전부의 재산과 집을 담보로 모든 심혈을 기울여 려권과 비자를 챙겨가지고 천당이라고 찾아간 나라가 내던지는 랭혹한 랭대와 멸시와 구박과 추방으로 이어지는 압박에 다시 돌아올수 없는 조국과 가족에게 빚진 삶을 선택할수 없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무수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힘든 삶의 현장에서 지친 인생의 불길을 꺼버린 사람들도… 준호는 오래도록 파르스름한 빛을 발산하는 한국 비자로 한장 덧붙여진 그 페이지를 황홀하게 들여다보았다. 마치도 그속에서 발산하는 파르스름한 빛갈이 어쩐지 여직껏 한번도 보지 못했고 또 보아올수도 가질수도 없었던 신기한 색갈의 종이로 된 딸라뭉치로 서서히 번저져가는것을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다. 준호 안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향집에 남겨둔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인 연길을 떠나, 그것도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드넓은 대륙을 떠나 한국으로 날아갔다.     (7)     누군가 세월은 류수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8년이란 지난 세월은 준호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힘든 세월이였다. 2920일이란 준호의 가슴속에서 찌들고 멍이 든채 보이지 않는 먼지만 풆풀 흩날리며 8년을 딛고 까맣게 흘러갔다. 그동안 준호네 다섯살의 아들애가 열세살의 소년으로 자라났고 여덟살의 딸애가 열여섯살의 어엿한 소녀로 남들이 우러르는 고급중학교의 학생으로 공부잘하는 딸로 성장했다. 눈물로 한을 싣고 흘러간 세월속에 남은것이란 오로지 예쁘고 건실하게 성장한 자식들의 참된 모습뿐이였다. 드디여 준호의 안해가 한국에서 돌아온다고 한다. 아니, 곧 돌아온단다. 준호에게는 웃음밖에는 없었다. 돌아오는 안해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가, 아니 돌아오는 안해의 모습이 지난 8년동안 어떻게 변모되였을가 하는 그런 궁금한 생각뿐이였다. 준호 안해가 한국으로 날아가서부터 준호는 스스로 혼자의 생활에 서서히 길들여져 갔고 또 사람이 살아가는, 부풀어가는 이 세상의 풍선같은 환경에서 눈앞을 살피는 조그마한 식견도 꽤나 넓히게 되였던것이다. 준호의 안해는 한국 “인천갈비집”에 근무하면서 처음에는 한국 생활에 적응되지 못해 한동안 힘들게 보냈었다고 한다. 물론 낯선 이역땅에서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모든것을 생각하고 개척해나가는 준호 안해의 한국행은 상상만 해도 그 고역을 알수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준호의 안해는 한국땅에 발을 들여놓은 그 시각부터 이 낯선 땅에서 생존해 가야 하는 비결을 스스로 찾았고 또 그 세상에서 고국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법칙을 힘들게나마 스스로 깨치면서 드디여 동일 민족국가인 한국이라는 이 나라의 환경과 그 법규에 서서히 적응이 되여갔던것이다. 준호의 안해는 한국에 도착해서 3년동안 손끝이 달토록 번 돈을 달마다 자기가 써야 할 집세와 생활의 필수핌을 챙기는데 조금씩 남기고는 월급의 전부를 딸라로 환산하여 중국으로 송금해왔다. 준호의 안해가 한국에서 부쳐오는 딸라의 무게는 엄청났다. 준호의 안해는 3년동안 무려 30만원이라는 두터운 인민페를 보내왔었다. 중국 공상은행에서도 가끔 찾아가면 “대부”라고 각별히 갖추는 서비스가 친절로 사람을 죽인다. 세상은 참말로 요지경 같은것이였다. 닭알이 먼저 있었냐, 아니면 닭이 먼저 있었냐가 문제가 아니였다. 다만 닭이든 닭알이든 그것을 챙기는자가 바로 능수였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는 사람보다 돈이 제일 부자이고 금전이 만능인가싶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의 존경은 물론이고 그 어떤 경우의 서비스도 스스로 따르게 된다고 한다. 준호의 안해는 8년동안 줄곧 한국의 인천에서 살았다. 한국 “인천갈비집”에서 8년동안 결근 한번 하지 않고 근무한 준호의 안해는 두툼한 딸라를 벌어서 대국인 중국에 부쳐 선진국가의 높은 차원의 문화생활과 어깨의 높이를 과감히 견줄수가 있었다. 준호의 안해는 피터지게 딸라를 벌었다. 8년이란 긴 세월속에 번 3년간의 월급은 중국에 보내왔고 나머지 5년동안의 월급은 고스란히 저금통장에 쏟으면서 불어나는 액수에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준호의 안해는 한국은행에 억대의 예금구좌를 갖고있었다.  준호의 안해는 바로 부자가 되였던것이다.  때문에 남들은 한국땅으로 가면 그곳이야말로 천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이 나라도 결국은 천당은 아니였다. 아니, 천당이란 우리의 삶에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별도의 세계인것이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처량한 미친 인간들이 꿈으로만 우러르고있는 영원히 오를수 없는 푸른 빛의 하늘이였기때문이다. 준호의 안해가 집으로 돌아온다. 8년전의 지는 봄에 떠났다가 새봄을 안고 돌아왔다. 길가에 파랗게 움을 틔우는 버드나무에 하얀 버들개지를 물고 봄은 산뜻하게 다가와 우물쭈물 서성거리는 어리석은 계절을 재촉한다. 겨우내 쌓였던 눈석이도 황홀하게 사라진 거리는 봄빛으로 반짝인다. 물큰하게 당겨오는 봄의 화려함에 입가에 와닿는 버들피리가 너무나 생소하다. 그 옛날 동년의 꿈을 묻고 해란강 버들방천에서만 불어오던 버들피리가 이제는 여기저기 시가지의 주변 길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서 불어볼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이다. 꽃이 피고 열매를 무르익히는 황홀한 계절이다. 그러니 여름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다. 세상의 모든 만물을 잉태하고 키워주는 가을의 문턱이 바로 여름이 아닐가?! 그동안 봄을 불러 여름을 심어 가을앞에 당겨오는 준호 안해의 삶은 무엇을 품었을가?! 준호는 구태여 더 짓궂은 생각을 멈춘다.  안해가 가져오는 삶은 바로 준호네 가족이 행복으로 치닷는 금열쇠가 아니였을가?!     (8)     준호의 안해가 돌아왔다. 하지만 준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준호는 또 외로운 그림자만 길게 늘이는 혼자가 되여버렸다. 딸애도 아들애도 그리고 8년세월을 딛고 돌아온 안해도 모두가 채 완성하지 못한 하나의 그림이였다. 준호의 안해는 대한민국이라는 지난 8년동안의 세월을 선택했던것이다.  그동안 쭉 그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자식들의 존재까지도 대한민국에 담기를 원했었다. 물론 준호의 안해에게는 이미 준호가 아닌 8년세월을 선택한 대한민국에 다섯살이 되여가는 살가운 한국인의 딸애가 곱게 보금자리를 틀고있었던것이다. 역시 준호의 안해인 한지수도 결국 중국을 떠나 한국에서 살아온 지난 8년세월동안 개량된 대한민국의 국민이였다. 이것이 바로 혼자가 된 강준호의 마음에 담을수 없는 현실이였다.     (9)     준호는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새들의 울음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그래, 새들이 지저귄다. 온갖 새들이… 그리고 하늘높이 종다리가 우짖는다. 그동안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하늘의 높이가 눈밑에서 바람에 스친다. 17층의 아빠트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높지 않았다. 그래, 구름은 발밑에서 유유히 흘러간다. 아물거리는 아지랑이가 지평선을 타고 들판에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안으며 작은 성냥갑마냥 죄꼬맣게 보인다. 아니, 이 여름에 봄이 오는 소리가 어쩜 이처럼 신선하게 들리나?! 그리고 농부들의 참 모습도 이처럼 눈이 부시지?! 아하, 그런데 봄에 알을 까서 새까치 둥우리에 넣어두고 뻐꾹뻐꾹 가만히 뺑소니치는 봄의 새인 미운 뻐꾸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봄을 불러 하늘높이 지저귀던 종다리도 그리고 들판에서 밭갈고 씨앗뿌리던 농부들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 어디에도 없었다. 하기야 지금은 봄이 아니였으니깐! 준호는 아무런 여유도 미련도 없었다. 다만 너무 낮게 보이는 아빠트의 17층 높이가 서러웠다. 그러나 준호의 입에서는 째진 바스음성이 마지막으로 길게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놓았다. 번개불이 번쩍인다. 우두둑 후두둑 굵은 비방울이 땅을 덮는다. 준호는 온 몸에 그리움을 담고 단 한마디만 부르짖었다. “잘 살아라!!” 준호가 17층의 높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늘과 땅 사이에 던진 처절함이였다. 그것은 바로 준호의 깡마른 가슴과 텅 빈 마음을 싣고 17층 높이에서만이 토해낼수 있는 추락하는 자의 슬픈 메아리였다…     작자의 말     안해가 돌아왔다고 즐거운 표정으로 연길공항으로 달려가던 강준호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안겨온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면서 한국에 안해를 보내놓고 힘들게 아이 둘을 거느리고 쪼들린 생활에 련련하면서도 자기만의 웃음을 터뜨리던 소탈한 친구였다. 그러나 그 웃음이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것도 안해가 한국에 간지 8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항상 입가에 느슨한 웃음을 담고 즐거운 표정으로 다니던 친구였으니 더 자별나게 생각된다. 아마 친구도 하늘나라에서 이 불공평한 세상을 두고 먼지투성이던 삶에서 해탈된것이 자기만의 추구였고 또 행복이였다고 자인할것이다. 물론 그 추구가 강준호만이 행할수 있는 마지막 길이였지만도 친구는 결국 웃으면서 자기의 분노를 이 세상에 던지면서 처연히 떠나갔으리라! 이제 그 분노가 친구의 진노로 마른 하늘에서 깡마르게 터뜨리는 우뢰가 되여 이 세상의 불공평한 삶을 살아가는 어진 생도들에게 하나의 깨우침으로나 될수 있을런지?! 하지만 한 인생의 값없는 죽음이였다고 그 생명을 놓고 감히 다른 인생에게 줄수 있는 무엇이였다고 왈가왈부할수가 없다. 다만 이처럼 불공평한 세상과 삶에 저항하여 강준호가 선택한 길이 죽음이였다는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였냐고 묻고싶을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누구의 대답도 바라지는 않는다. 죽음과 삶이란 바로 종이 한장의 차이도 되지 않는다는 가벼운 탄식뿐이기에?! 하지만 오늘도 그 탄식을 멈출수가 없다. 왜서?! 아직도 강준호의 죽음을 의식할수가 없기때문이다! 그리고 강준호의 죽음으로 들려준 이 세상에서 단 한번밖에 들을수 없는 소리, 17층 높이에서 토해낸 “추락하는 자의 슬픈 메아리”였기때문이다! ‡     - 메아리 -   2014년 12월  제6기에 발표.  
6    바람의 길을 찾아 댓글:  조회:629  추천:0  2014-09-03
[수 필]    바람의 길을 찾아   김 태 현      당신은 바람의 그 뜻을 아십니까? 네? 뭐라고요? 아신다고요!    저희가 알건대 당신이 아신다고 하는 바람은 결코 저희가 말씀드리려고저하는 그런 자연의 바람이 아닐것입니다.     우리말 사전에는 이 바람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기압의 변화로 말미암아 일어나거나 또는 인공적으로 일으키는 공기의 흐름과 어떤 물체의 속에 주로 압축되여서 들어있는 공기와 사상령역의식상태에서 나쁜 영향을 끼치는 작용, 그리고 남녀관계로 들뜬 마음이나 허황한 짓, 한때의 운동이나 류행, 등을 이르는 말로 해석이 되여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에서 대자연이 나타내는 바람, 즉 기압의 변화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공기의 흐름에 대한 바람의 방향과 그 바람이 갖고있는 바람의 길에 대해 아시는것이 있습니까?     바람도 자기의 주어진 길이 있다는것입니다. 때문에 바람도 자기의 그 주어진 길을 따라 오불꼬불, 때로는 종횡무진, 때로는 심술스레 농민들의 땀투성이를 짓밟고 심지어 길가의 가로수마저 휘여뜨린답니다.     살펴보면 바람도 역시 우리 인간들이 갖고있는 그런 사람의 성격과 일치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이 간혹 자기의 심성이 사나우거나 못마땅할 때면 으려히 터뜨리는 그런 못난 행위를 하듯이 바람 역시 자기의 행로에 주어진 길을 따라 오불꼬불, 곰상스레 달려가다가도 못생긴 인간의 비뚤어진 성격마냥 자기의 볼성사나운 개성을 부려 자연은 물론 우리 사는 인간들의 령역을 과감히 짓부시고 심지어 바다로 달려가 거세찬 물과 합세하여 인간의 마땅치 않은 삶과 그 행위에 따르는 몰렴치한 비리에 대해 폭풍과 같은 드센 바람, 힘으로 대항한다는것입니다.      저회는 언젠가 이처럼 대자연과 우리사는 인류사회를 괴롭히고 저도 몰래 탄식하는 바람의 후회성을 들은적이 있답니다. 아시겠어요? 저희는 긍정코 당신에게 말씀하듯이 바람의 아우성에 따른 그 원성을 참담하게 들었다는것입니다.     만약 당신도 바람의 원성에 대해 귀를 기울여 듣는다면 언젠가는 꼭 그 바람의 숨넘어가는듯한 아우성과 피타는듯한 후회의 탄식소리를 듣게 될것입니다.     물론 당신도 아시겠지만 차거운 겨울의 추위로 자연을 얼음덩이로 만들고 사납게 원성을 터뜨리던 겨울의 그 바람도 새봄이 오면 곰상스레 자연과 들에 봄바람으로 아지랑을 피워올려 겨울동안 추위에 몸살이 든 대지에 모름지기 사랑을 줍니다. 온갖 바람을 몰고 인간, 대지에 추위로 위협을 주며 고스란히 자기의 의지대로 다스려온 세상만사를 하나의 그림으로 봄날의 대지에 다시 사랑을 지펴올린답니다.    하지만 바람은 결코 우리 인간들하고 구별이 다르거든요. 바람이 주는 봄빛에 젖은 아지랑이 사랑은 너무나 화려하게 인간, 대지를 황홀하게 물들입니다. 신성한 자연의 품을 정성스레 바람으로 다독여 겨우내 몰인정하던 마음을 아프게 후회의 뉘우침으로 고이고이 다져갑니다.     만약 당신이 조금만 주의를 돌려 살펴본다면 어렵지 않게 바람이 주는 봅빛사랑이 품어온 여름날의 그 화려한 모습과 황홀한 자연의 삼라만상, 아름다움의 경지를 마음껏 감수할수 있을것입니다. 이처럼 바람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한겨울의 추위로 못살게 기를 죽여준 대자연에 대한 그 죄책감으로 인간, 대지에 참된 반성을, 너무나 확실하게 합니다.     당신도 보시다싶이 여름날의 바람은 자연에, 우리들의 삶에 너무나 기특하게 참사랑을 펼쳐주지 않습니까? 여름날에 바람은 아름다움을 정성스레 키워주고 피워줍니다. 하여 아름다운 꽃들이, 인간들이, 자연을 더 화려하게 미화하는것이 아닐까요?     이처럼 바람은 너무나 화사하게 자기의 잘못을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들은 자기의 잘못인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좀체로 그 잘못에 대한 뉘우침을 마음 따갑게 받아들이지 못한답니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는답니다.     저희는 이같은 대자연에 대한 바람의 신성하고 부드러운 사명감앞에 남몰래 머리숙여 감회를 느낍니다. 그러니 당신도 저회와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을 가지지만 어쩐지 이름할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동반되는것도 역시 이상하답니다.     물론 바람은 여름날의 황홀함으로 우리의 생활과 삶에 남다른 세계를 창조하여가면서도 자기는 여전히 겨우내 지은 죄책감에 얼굴을 붉히고 여름날의 아름다움으로 꽃을 피우지만 지나친 무더위로 쪼글쪼글 지져주는 여름날의 사랑에, 자연과 인간들의 피곤함에 다시 잘못을 느끼고 선뜻 가을의 풍성한 가슴을 헤쳐 선들선들한 가을바람을 대지, 인간들에게 선물한답니다.     하여 인간은 물론 대자연도 가을날의 이 선물에 만족을 느끼고 바람의 성스러움에 넘쳐나는 사랑을 붉디붉은 단풍으로 여실히 표현한답니다.     하지만 가을날에 익어가는 모든 만물의 그 풍요한 만족에 바람은 산야에 펼쳐지는 앙상함으로 하여 일종의 서글픔을 간직한답니다.     무릇 가을바람에 익어간 농산물들은 너무나 자연스레 그루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고 산야에 넘실대던 나무, 풀잎들은 감지덕지한 가을바람에 몸을 싣고 알 수 없는 려행길에 떨쳐나서기때문입니다.     물론 바람은 가슴아프게 대성통곡하지요. 당신은 바람의 이 대성통곡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아니 가슴을 째는 바람의 아픈 울음소리를 들어보셨는가말입니다. 바람은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대지의 자식들에게 아픔으로 호소합니다. 윙-윙… 쏴-쏴… 기나긴 노여움을 울음으로 터뜨립니다!     이처럼 바람은 다시 사랑으로 녹아들었던 상처의 마음을 열고 겨울의 아픔을 이 세상에 토해낸답니다. 그러나 이런 바람도 그 길이 있다는것입니다. 우리들의 눈에, 우리들의 마음으로 가릴수는 없지만 바람은 자기의 가는길을 참답게 간답니다. 오불꼬불, 소용돌이…로 몸을 간추리면서도 자기의 가는길을 꼭 간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도, 사랑도, 화려하게 느낀다는것입니다.         - 바람의 길을 찾아 -    
5    뿌리깊은 나무 댓글:  조회:831  추천:0  2014-08-16
〔수 필〕 뿌리 깊은 나무   김태현 나무, 나무가 있다. 조선족이 살고 있는 어느 동네의 마을입구에 홀로 서있는 나무가, 아주 오래된 커다란 느릅나무가… 옛날 우리 선조들은 그 어디에 정착터를 잡게 되면 우선적으로 느릅나무들을 많이 심었다고 한다. 느릅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써 춘유(春楡) 또는 가유(家楡)라고도 한다. 봄에 어린 잎은 식용할수도 있으며 한방에서는 나무의 껍질을 유피(楡皮)라는 약재로 쓰는데 치습(治濕),리뇨제, 소종독(消腫毒)에 사용한다. 목재는 주로 건축재, 기구재, 선박재, 세공재, 땔감 등으로 쓰였다. 느릅나무가 이처럼 여러가지 약효과가 있어서 나무중에 귀한 나무였다고 했다. 특히 예전에는 마땅한 약이 없었기때문에 자연에서 나는 식물을 리용하여 왔는데 이 느릅나무껍질, 즉 유근피를 가지고 비염과 피부질환 그리고 소변배출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부종, 수종 등 악성종창과 관련된 각종 암종에 좋은 만능약재로 알려져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필수적인 나무였다. 한여름에는 무성한 잎새들로 길 가는 나그네와 로숙자들에게 그늘을 지어주고 지종지종 지저귀며 숲속을 날아예다 방황하는 뭇새들에게 포근한 보금자리도 되여주며 천둥번개와 비바람을 막으면서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려 가을에는 받은것만큼 자연계에 되돌려주면서 겨울의 엄동을 지켜 하나라도 가진것없이 앙상함으로 겨울의 엄동을 지킨다. 그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봄이면 언덕에 신심과 희망으로 뿌리내리고 드팀없이 굳건히 자기만의 청백한 리념을 안고 오래동안 아주 오래동안 살아가고있다. 지구땅에 화룡(1910년 청조 선통2년에 청정부에서 정식으로 화룡현을 설립하였고 1945년에는 화룡현인민정부가 성립되였으며 1993년에는 국무원에서 화룡현을 화룡시로 고치였다)이란 이름이 생겨서부터 백년이 지나고 그 희귀한 존재와 더불어 화룡이란 이 백년의 력사에 손색이 없이 자기가 보고 듣고 담아온 이민사를 울울창창한 나무가지와 잎새에 담아 하많은 세월속에 얽히고 엉킨 세상과 인간과 자연의 사료(史料)를 터실터실한 한몸에 그대로 고스란히 새겼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자연에 입문하여 이 땅을 일구어낸 우리 조상들로부터 생명을 가진 소중한 그날부터 이 땅우의 한 부분이 되여 살아간다는 그 의미를 깨닫고 완성하기 위하여 오늘도 척박한 땅을 걸구면서 돌틈서리를 꿰둟고 땅속 깊이 내리고 있다. 뿌리, 뿌리를…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비와 자연에서 받은 모든 사랑을 묵묵히 한치의 욕심도 없이 차례진 자기만의 땅우에서 넓혀가지도 좁혀가지도 않고 오로지 땅쏙으로만 깊숙이 깊숙이 뿌리를 내리면서 잎새를 피워가고 있는 나무, 나무가가 되여! 때로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한숨소리에, 때로는 길가는 로숙자의 탄식소리에, 때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는 무지한 동물들의 원성소리에 귀가 아파 무성한 잎새로 막아도 보았지만 하냥 들리기만 하는 하소연에 나무는 갈라터진 줄기와 몸으로 단즙을 쏟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때로는 무지한 사람들의 도끼질에 살덩이같은 나무쪼각들을 흩날리고 몸부림치며 잎새도 날렸고 때로는 고마운 사람들의 은총같은 은혜에 벌레가 먹은 나무가지를 치료하고 건실한 몸으로 지탱하면서 솔솔 불어예는 가는 바람에도 우수수 나무가지를 흔들며 고마움을 전했으며 무정한 사냥군의 렵총을 피해 날아드는 뭇새들에게 나무잎을 펼쳐 산같은 보호막이 되여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늙은 지인들의 한숨소리와 탄식소리를 들으면서 또 언젠가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리도록 집을 잡아준 나그네들이 떠나가는 마지막 인생길을 지켜 길가에서 잎새를 털며 애닲으게 흐느껴운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윙윙 불어치는 비바람을 동반해 나무가지를 꺾으며 자기의 살점들을 뜯어내 고인이 지나가는 길에 아름다운 락엽들로 발목을 잡아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삼대외독자로 자라서 대가 끊긴다고 랭수 한사발 정히 떠다놓고 천지신명께 자식복을 점지해달라고 한밤중 북두칠성에 치성을 드리면서 나무에 빨간 천쪼박을 매여놓고 마음을 열고 손이 발이 되게 빌고 또 비는 로부부를 지켜보면서 구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나무의 그 눈물이 가지와 잎새를 타고 흘러내리며 땅을 적시고 뿌리를 적시면서 땅의 신령을 감동시켜 늙은 로부부에게 자식이 생겼으니 참으로 희한하고 또 너무나 행복한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때로부터 나무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찾았고 무엇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렸다고 찾았고 마을에 재앙과 액운이 끼치면 제거해달라고 찾았고 자식복, 안해복, 남편복, 형제들의 복, 외국나들이 등 꿈같은 행운도 찾아와서 알렸고 심지어 죽은자의 슬픔도 빼놓지 않고 알리면서 세상의 좋은 일 궂은 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도 빠칠세라 고하려고 찾아오는 친구들이 계속 늘어가기만 했다. 처음에는 굵다란 몸에 둘러주던 빨간 천들이 하나, 둘씩 댕기마냥 바람에 휘날렸는데 점차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후부터는 그 천쪼박들이 하나의 필이 되여 나무에 휘감기고 휘감겨 지금은 나무의 등걸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무는 너무나 씩씩했고 건실했다. 나무는 외롭지가 않았다. 사계절 그 어느 계절에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어 나무는 외로움을 몰랐다. 한여름 무성하던 잎새들이 가을바람에 우수수 설레이는 모습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도 빨간 천쪼박들이 나무가지에 매달려 휘날렸다. 빨간 천쪼박과 구름종이와 음복상이 사계절 나무와 동무하면서 비바람도 눈바람도 함께 겪는다. 나무는 혼자가 아니였다. 나무에게는 항상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비바람도 눈바람도 길 가는 나그네도 로숙자도 그리고 숲을 찾는 뭇새들까지 나무에게는 버릴수 없는 고마운 친구들이였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도 흔들린적이 있었다. 중국조선족들의 절규에 가득찬 피의 원성을 나무도 들었다. 외국진출로 가정을 잃고 찾아오는 나그네들의 통곡소리도 들었고 남편을 잃고 아우성치는 녀인네의 한 맺힌 원한도 들었고 가짜결혼으로 가정을 잃고 자식을 잃고 모든것을 다 잃고 허허벌판에 나도는 바람같은 존재로 하나 가진것 없이 찾아온 녀인네도 보았고 외국나들이의 힘든 역로로 에 칼을 무는 원한의 곡성도 들었다. 그리고 자기 몸에 죽음이란 낱말도 새기면서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안해를 떼우고 자식을 빼앗긴 나그네의 외로운 목숨을 거두어준적도 있었다. 안된다고 몸부림치고 설레이는 나무잎새로 우수수 아우성을 터쳤어도 모질게 먹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무는 나그네가 목을 달았던 나무가지를 세상에 두고 볼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나무는 자신만의 천지신령께 빌고 빌었다. 제발 나그네의 목숨을 거두어간 나무가지를 잘라달라고! 드디여 나무의 탄식이 천지신령을 감동시켰는지 어느날의 그 어느날, 한여름 비바람이 울부짓는 삼복기간에 쏟아지는 소나기를 동반한 천둥번개가 나무의 그 가지를 잘라가고말았다. 나무는 고통으로 한동안 심하게 몸살이를 했지만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사람들의 목숨을 거두는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나무는 오늘도 계속 그 한자리에서 땅을 지키고 있다. 아니, 력사를 지키고 있다. 화룡, 그 백년의 유구한 력사, 조선족 이민의 백년력사와 더불어 이 땅을 지켜가는 한 그루의 나무, 나무가 있다. 어린 아이 손목잡고 늙은 부모 지게에 얹고 쪽박차고 넘은 한 맺힌 두만강을 바라보며 이민의 력사를 그려온 중국땅, 중국조선족으로 살아가는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뿌리로 박은 그 소중한 생명력으로 산다는 아니, 살아가야 한다는 그 희망을 보여준 나무, 조선족이라는 하나의 뿌리로 떳떳이 일어선 이 나라 조선족들의 삶의 력사는 두만강이 알고 력사가 알고 바로 너, 뿌리깊은 나무가 알고있다. 오늘도 나무는 자연의 활력소로 세상에 풍요로움을 주고있다. 나무는 항상 자기만의 어여쁨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있다. 때문에 친구들은 어김없이 나무를 찾았고 나무에게 하소연했고 또 나무의 웅글은 대답을 듣기도 했었다. 길가던 나그네도, 로숙자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며느리도, 딸도, 사위도, 남자도, 녀자도, 처녀도, 총각도, 한족도, 외국인도 모두가 그리고 온갖 동물들도, 뭇새들도 자유자재로 쉬여갈수 있는 나무, 그 나무의 숲은 하늘과 땅과 빨간 태양과 자연이 준 선물이였다. 중국이라는 이 거대한 땅우에서 하나의 문명민족으로 살아가는 중국조선족들, 그리고 세계방방곡곡에서 동일민족으로 살아가는 모든 조선족들이 그 어디에 뿌리를 내리던 하나같이 자연과 세상과 소통할수 있는 든든한 나무가 되기를… 뿌리깊은 나무는 기대하고있다. 나무, 나무의 수명은 무한하다. 뿌리깊은 나무일수록 그 생명의 연장은 영원하지 않을가?! 나무, 나무에게 축복을 드리고 싶다. 그처럼 자연이 준 행복으로 돌아가고싶다. 주고받는 욕심도 모르고 한껏 베풀어가면서 존재하는 세상사, 모든것이 넘치면 부서뜨리고 과하면 빼앗는 자연사,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과 그 죽음을 반영한 인간사…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세상과 자연으로 보는 삶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가?! 언젠가는 하나의 나무가 꼭 되고 싶다. 뿌리 깊은 한그루의 나무가! - 뿌리 깊은 나무 - 2014년1월11일 장백산 제1기에 발표.
4    11월, 그 하늘의 차거운 별 댓글:  조회:669  추천:1  2014-08-15
〔단편소설〕 11월, 그 하늘의 차거운 별   김 태 현     1     그녀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화장실이 급했다. 발가락이 막 오그라들었다. 언제나 급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별 신기한 생리현상이였다. 저려오는 두다리를 배배꼬며 몸을 탈아보았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도저히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머리속에는 빨리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두다리가 자꾸만 안쪽으로 굽어든다. 자리에서 조금씩 일으키던 몸도 자꾸만 땅속으로 꺼져들어가는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히 오른손으로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폰을 끄잡아 가져올수 있었다. 막 밤이 깊어가기 시작하는 10시 50분이였다. 헉-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목구멍을 칼칼하게 허비는듯한 내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텅 빈 방안에는 아스라하게 어둠을 밝히는 탁상전등의 오렌지색뿐이였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간신히 폰을 들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꺼질줄을 모르는 폰이다. 저녁에 어떻게 자리에 들고 또 금방 어떻게 잠을 깼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무지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고 머리가 욱신욱신 아파 고개도 바로 들수 없었다. 게다가 칼칼하게 가슴을 저미는 야릇한 내음에 목구멍이 터질것 같았다. 져녁에 부엌에 불을 지폈는데… 그녀는 머리속에서 굼실대며 바야흐로 삭막해져가는 기억의 끈을 가까스로 붙잡고 어제저녁 일을 떠올렸다. 아, 일산화탄소중독…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기력이 점점 쇠잔해져갔다. 머리속이 하얗게 비면서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화장실에 가야한다는 일념뿐이였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얼어붙은듯 움직여주지 않았다. 귀가에서 사나운 겨울바람이 윙윙 기승을 부리는 소리가 청승맞게 들려왔다. 아, 여보! 어머니! 아버지! 지현아! 저도 모르게 입안에서 맴도는 끝말들이 순서를 잃었다. 그녀는 사력을 다해 폰을 잡은 오른손에 눈길을 주었다. 밤, 11시 15분이였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울컥 솟았다. 도저히 주체할수 없는 눈물이 눈귀를 타고 흘러내려 베개잇을 적셨다. 아, 엄마! 그녀는 끝내 이 한마디를 짜냈다. 갑자기 머리속을 무엇이 휘젓고 다니는 느낌과 함께 구토증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가슴을 치며 올라오는 역겨움때문에 벌떡 일어났다. 저녁에 마신 하얀 우유가 욱하고 치밀어올랐다. 허지만 그대로 이부자리에 토할수 없었다.  그녀는 점점 더 무거워지는 머리를 외로 탈며 옆으로 뒹굴었다.  한번, 아니 이제 한번만 더 구르면 출입문가로 다가가는데… 그녀는 안깐힘을 다하여 다시 한번 몸을 탈았다. 허지만 몸이 천근무게 같이 느껴지며 더는 움직일수 없었다. 행여나 하는 생각에 처져내리는 눈길로 폰을 들여다보았다. 딸 지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딸의 단축번호로 입력이 되여있는 2번을 눌렀다. 그러나 단축번호 2번은 이미 직장동료로 바뀌여져 있었다. 아, 아?! 그녀는 문틈으로 새여들어오는 찬 공기를 가슴에 받으며 그대로 머리를 떨어뜨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어디선가 가슴을 흠뻑 적셔주는것 같은 시원한 물결에 두손을 잠그고 아니 온 몸을 잠그고 허우적거리고있었다. 오른손에 꼭 잡은 폰에서는 “언니, 언니! 영희… 으흐흑 영희언니…”하는 애처로운 부름소리가 방안을 울렸지만 그녀의 오른손은 벌써 문턱밑으로 길게 뻗어내리고 있었다…     2     영희는 숨가뿐 출근길을 재촉하며 손에 들고 있던 만두를 앞이발로 야금야금 물어뜯었다. 이렇게 출근길을 걸어온지도 벌써 6년 남짓이 된다. 남편 민호가 한국비행기를 타면서부터 6년여의 긴 시간을 아침이면 전쟁을 치르다싶이 하였다. 서둘러 딸애를 학교에 보내고 부랴부랴 출근준비를 하다보면 별수없이 아침식사를 만두거나 전병으로 때우기가 일쑤였다. 식구들끼리 오붓하게 마주앉아 식사를 해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헌데 남편은 아직도 귀국을 념두에도 두지 않고있다. 꼭 자기의 계획대로 10년을 채운다는것이였다. 하기야 남편이 아글타글 벌어서 아빠트를 장만하고 또 근심걱정 없이 딸애까지 명문대학에 보내려면 그럴법도 하였다. 헌데 한국에 간지 6년이 넘도록 남편은 아빠트 살 돈마저 보내오지 않았다. 남들은 3~4년이면 아빠트를 척척 사놓는데 말이다. 돈을 못 번건지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하지만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아직까지 단층집에서 고중생 딸애를 키우며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있다. 지금까지 딸애의 성장을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몰부었다. 딸애를 중점고중에 입학시키기 위하여 과외보도만 해도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모른다. 이제 딸애가 북경대학에 붙기만 하면 엄마의 임무도 끝나는 셈이다. 시문화관에서 무용배우로 사업하는 영희는 6년 동안 남편없이 혼자서 딸애를 키우면서 남모르게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모른다. 맡은바 사업을 하랴, 딸애를 돌보랴 그녀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였다. 그렇게 날마다 달달 볶으면서 살았지만 그나마 학급에서 딸애가 언제나 1, 2등을 놓지지 않았기에 보람을 느꼈다. 딸애도 엄마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 자기도 꼭 북경대학에 붙겠다고 장담하였다. 물론 하회를 봐야 알 일이지만 그녀는 날마다 밤새도록 딸애의 방에서 불빛이 새여나오는것을 볼 때마다 스스로 위안을 받군 하였다. 오늘도 딸애의 등교길에 발목을 잡혀 “아침전쟁”을 치르다보니 출근길에 만두를 씹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젠 이런 만두로 대충 때를 에우며 출근하는것이 습관이 되여 그녀에게는 례상사였다. 그만큼 입안에 착착 달콤하게 감겨드는 만두의 부드러운 맛에도 진작 길들여져 있었다. 영희는 만두를 한입 크게 베여물고 우물우물 씹다가 꿀꺽 삼켰다. 헌데 오늘따라 목이 꺽 메이며 만두덩어리의 속살이 비좁은 목구멍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서둘러 핸드빽에서 물병을 찾았다. 그러나 오늘따라 핸드빽에는 물병이 없었다. 캑캑캑- 영희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련신 기침을 깇었다. 숨이 활 나왔다. 목구멍이 간지러웠다. 날마다 만두의 속살을 베여먹으며 느끼던 그 재미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대신 알알하게 목구멍을 자극하는 간지러움과 더불어 잔 기침이 터져나왔다. 영희는 손에 들고 있던 만두를 길가의 나무밑둥에 홱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휴지를 꺼내 입가를 닦았다. 그러나 조금뒤에 자신의 행동이 너무 문명치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허리를 굽혀 방금 던져버린 만두를 다시 주어 휴지에 꽁꽁 감쌌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길가에 쓰레기통이라곤 없었다. 영희는 부득불 휴지에 감싼 만두를 핸드빽에 집어넣고는 아직도 가느다란 실벌레가 꼼지락거리며 기여가는듯한 목구멍을 의식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영희는 계속 출근길을 재촉하였다. 래년 봄에 열리게 될 “진달래축제”와 “장백의 여름” 광장무용때문에 주군중예술관과 시문화체육국에서는 시민단체에 무용을 보급시킬데에 대한 문건을 하달하였다. 영희는 오늘부터 무용보급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였다. 그녀가 금방 사무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오랜만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제쯤 돌아와요? 지현이도 인젠 고중생이 되였는데… 전 이미 지쳤어요. 웬만하면 돌아가지… 그녀는 숨이 컥 막히는것 같았다. 눈물이 주체할수 없이 볼우에서 곬을 팠다. 아직도… 그녀의 손안에서 폰이 스르르 책상우에 미끄러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주어들념을 하지 않았다. 그대로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신이 해나른해지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또 목구멍이 칼칼해나며 실벌레가 기여가는것 같았다. 짧은 순간이였지만 짜릿한 아픔과 함께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칵칵칵… 왼손바닥으로 입을 막았지만 기침은 거침없이 련달아 쏟아져나왔다.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자지러진 기침을 깇었다. 기침이 너무 심하여 얼굴까지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간신히 책상우에 떨어뜨렸던 폰을 다시 주어들었다. 그러나 폰은 이미 까맣게 꺼져있었다. 앞이마에 내리드리운 머리칼이 땀에 젖어 착 달라붙었다. 그녀는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되여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남편은 번마다 귀국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녀는 그런 남편이 리해가 되지 않았다. 남들보다 우월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인제는 그만큼 벌었으면 따뜻한 집에서 세 식구가 함께 오붓하게 생활할수는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남편은 아직이란다. 남편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편이 아니, 애아빠의 빈자리가 너무 컸다. 그래도 첫 2년간은 명절이거나 생일이면 남편이 돈을 보내주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전화도 뜸해지고 돈도 부쳐주지 않았다. 남편의 말로는 10년을 기약으로 한국땅에 그럴듯한 부동산을 마련한다고 한다. 이미 6년 남짓한 동안 억척스럽게 벌어서 농협통장에 억대를 쌓아놓았다고 한다. 남편이 생활비를 따로 보내주지 않다보니 그녀의 로임통장만 보풀이 일게 닳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정을 위하고 딸애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바가지를 긁지 않았다. 언젠가는 남편이 금의환향할 날을 기다리면서… 그녀는 폰을 주어 힘없이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상에서 일어나 사무실의 커다란 창문유리를 마주하고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름내 무성하게 이파리들을 자랑하던 길가의 가로수가 어느새 락엽이 지여 빼빼마른 가지들만 어수선하게 내리드리우고 11월의 추위에 애처롭게 울부짖고있었다. 그녀는 바람에 무시로 그네를 타듯 흔들어대는 가로수의 가지들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호, 벌써 11월이라니…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콕 새여나왔다. 이제 한달만 지나면 또 새해가 되는구나. 갑자기 아츠러운 사이렌소리가 귀청을 째더니 빨간 소방차들이 줄지어 달려갔다. 그녀는 길을 꽉 메우며 달려가는 소방차의 빨간 경광등을 바라보며 왜서 소방차는 빨간색으로 치장했을가 하고 저도 모르게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잠시였다. 인행도를 걷는 사람들이 벌써 두터운 솜옷들을 입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몸을 훓어봤다. 아침에 빨간 등산복을 껴입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11월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갑작스레 차가워져갔던것이다. 그녀는 다시 책상앞에 마주섰다. 책상우에 놓인 컴퓨터가 보호그물을 늘이면서 깜빡거리고있었다. 그녀는 컴퓨터에 손을 대려다가 그대로 다시 걸상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목을 한껏 움추린채 걸상에 몸을 뉘고 긴 생머리를 등받이에 드리운채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쩐지 전신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목구멍이 또 칼칼해지면서 간질거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벌레가 가느다란 발로 앙금앙금 기여가는것 같았다. 그녀는 두손으로 목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책상우에 놓여있는 물컵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시원했다. 막혔던 목구멍이 뻥 뚫리는것 같았다.  가슴까지 열리는것 같았다. 그녀는 책상우의 서류철에서 빨간 가위를 씌운 책자를 꺼내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3     회의실에서는 “진달래축제”에 관한 토론이 한창이였다. 그러나 영희는 리해가 되지 않았다. 명년이면 제6회를 맞는 “진달래축제”를 해마다 개최하였지만 자체종목으로 프로그램을 짜본적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동안 상급지도자들의 건의대로 외지의 이름있는 문예단체의 종목을 그대로 영입하였던것이다. 그러다나니 해마다 외지의 문예단체에 지불하는 자금만 해도 천문수자에 달했다. 그 자금의 절반만 투자해도 본 지방의 힘으로 능히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프로그램을 만들수 있는데 말이다. 헌데 명년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연변에서 꽤나 명망이 높은 어느 문예단체의 종목을 그대로 들여온다고 한다. 영희는 손으로 칼칼해나는 목을 주무르며 잔 기침을 힘들게 삼켰다. 문예부 주임인 그녀는 비록 전 시의 군중문화령역에서 멘토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문화를 주관하는 령도들의 개별적인 건의에 당당하게 맞서 자기의 주견을 과감하게 펼치게에는 태부족이였다. 영희는 속으로는 용암같은것이 치솟았지만 체념한듯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았다. 이번 “진달래축제”의 기획을 맡은 업무관장 최성수가 입을 나풀거리며 장황하게 지껄여댔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두눈을 지그시 감아버렸다. 사실 화룡이라는 이 변강명주의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자랑하려는것이 바로 “진달래축제”를 개최하는 목적이였다. 그러자면 반드시 본지방의 특색을 살린 자체의 문예종목으로 프로그람을 꾸미는것이 바람직했다. 헌데 상급에서는 해마다 외지의 문예단체에만 의거하려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변을 들썽해놓은 가무와 국가급무형문화재의 유산으로 손꼽히는 화룡특유의 “삼로인”을 주축으로 하면서 화룡정신을 살린 소박한 종목들로 알차게 꾸민다면 얼마든지 국내외의 손님들에게 민속적이고 지방특색이 짙은 축제를 선보일수 있었다.  이제 “진달래축제”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영희는 막걸리를 고는 누룩처럼 배속이 막 괴여가고있었다. 최성수의 말이 끝나자 물 뿌린듯 조용하던 장내에 박수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영희도 덩달아 박수를 치다가 어망결에 서리 맞은 배추잎처럼 후줄근해서 옆에 앉아있는 보도부(辅导部)의 김화주임을 바라보았다. 김화주임도 엄청난 자금을 들여 대외로부터 문예프로그람을 인입하는데 대해 반대의견을 내놓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이미 엎지른 물이였다. 진달래축제령도소조에서 결정을 내린 이상 누구도 더는 왈가왈부할수가 없었다. 영희도 김화주임처럼 속으로 앙앙불락하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언제까지 남의 밥그릇에 매달려 흘리는 밥알만을 주어먹어야 한단말인가?! 어쩐지 자기들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로보트 같았다. 회의참가자들이 우르르 쓸어나가자 영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두시간 남짓이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결같은 자세로 걸상에만 앉아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눈앞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녀는 시야에서 흔들거리는 사람들을 일별하며 두눈을 꽉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길게 하였다. 이때 보도부의 김화주임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영희는 김화주임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눈을 슴벅거렸다. 그들은 마지막 사람으로 나란히 회의장을 나섰다.     4     여보, 우리 결혼하면 나 당신한테 절대 고생 안시킬게!  피, 누가 안대? 남자들은 결혼만하면 다… 다가 뭔데…? 다… 늑대라는데… 늑대…? 늑대가 왜 나쁜데…? 늑대는 동물중에서 유일하게 일부일처제를 고집하는 동물이라는걸 알고있어? 그래도 늑대아빠는 자기는 굴안에서 한가하게 새끼들만 지키고 늑대엄마더러 사냥을 해오게 하지 않나요? 자기는 새끼들을 지킨다고… 새끼들을 지키는것이 더 힘들고 위험하니까! 그럼 늑대엄마의 사냥은 위험하지 않고? 그렇구말구! 사냥은 단지 자기가 취할수 있는 작은 동물들만 취하면 되지만 새끼들을 지키는 일은 뭇짐승들로부터 위험을 무릅쓰고 새끼들을 보호해야 한단 말이요. 하긴 늑대아빠도 고생이지… 목숨을 걸고 새끼들을 지켜야 하니까! 그러기에 늑대아빠는 언제나 위험을 감내하면서 새끼들을 지키고 늑대엄마를 한결같이 사랑한단 말이야! 호- 늑대의 사랑을 칭찬할만하네! 그럼, 난 영원히 늑대아빠같은 사랑만 할거야! 저도 늑대엄마 같은 그런 사랑으로 사냥감을 취해 남편 먹이고 자식들을 키울래요! 하하하 호호호 …   그녀는 갑자기 서글퍼졌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여직껏 줄곧 늑대엄마의 역할만을 해왔다. 남편은 결혼한후 제대로 된 직장에 출근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만 홀로 집에 남겨둔채 한국으로 훌쩍 떠나가버렸다. 늑대아빠는 새끼들을 지킨다고 해놓고선…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결혼한것을 후회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시문화관의 무용배우로 뛰면서도 남편한테 충성을 게을리해본적이 없었다. 물론 늑대엄마처럼 줄곧 자식과 남편을 위해 부지런히 “사냥물”을 취해왔다. 그리고 자기가 맡은 무용배우라는 분야에서도 첫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고전하였다. 허나 흐르는 세월은 락화류수와 같다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불혹이란 나이테가 그녀를 향해 올가미처럼 바싹 조여왔다. 무용배우의 나이가 불혹이면 모두들 한물 갔다고 하였지만 그녀의 몸매는 항상 날씬하여 나젊은 무용배우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내가 정말 늑대엄마로 살아왔나? 그래 아직은 딸 지현이가 대학에 가지 않았으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이제 지현이까지 대학에 보내고나면 나도 나만의 인생을 살거야.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념도 하지 않고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득히 펼쳐진 창공에서 무엇인가를 찾듯이. 갑자기 목구멍이이 울컥 메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식도암 4기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룰수 없습니다. 생명이 위험합니다… 청천벽력이였다. 그녀는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뭐?! 식도암 4기라구요? 믿을수 없어요. 제가 왜 식도암이여야 합니까? 아직 우리 딸 지현이가 대학시험도 치르지 않았는데… 뭔가 잘못된것 아닙니까? 그녀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의 팔소매를 붙잡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렸다. 틀림없습니다. 의사가 어찌 환자의 생명을 가지고 함부로 장난하겠습니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수 없었다.  의사의 팔소매를 으스러지게 부여잡았던 손이 맥없이 스르르 풀렸다. 그럼 얼마나 더 살수 있어요? 설마… 반년, 아니 서너달을 넘기지 못할겁니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십시오. 가족들에게도 알리십시오. 그녀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안돼요! 절대 가족에게 알려서는 안됩니다. 우리 딸 지현이가 래년에 대학시험을 치르는데 제가 암이라는걸 알면 충격을 받아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할거얘요. 그럼 남편에게라도… 남편이요? 그녀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하였다. 허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용케 참았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찾아올게요… 그녀는 의사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진동한동 병원을 뛰쳐나왔다. 밖에 나서니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벤취에 풀썩 주저앉았다. 돌이켜보니 정말 그동안 늑대엄마로 살아온것 같았다. 오직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기의 한몸을 불살랐던것이다. 여보, 당신은 늑대아빠라면서요? 새끼를 지켜주고 일부일처제만 고집한다는 늑대아빠… 그녀는 점점 더 세차게 어깨를 들먹였다. 의사의 말이 다시 귀전에서 울렸다. 이제 더는 마른 음식을 입에 대지 마십시오. 그리고 밀가루로 된 만두와 떡 따위를 절대 먹지 마십시오. 간혹 오래동안 묵은 가루음식덩어리들이 목안에서… 가끔 목안이 실벌레가 기여가는것 같은 간지러움이거나 칼칼하게 기침을 련발하는 증상이 있지요? 이 병은 흔히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이 걸립니다. 이를테면 남편이거나 안해를 외국땅에 보낸 외기러기들이 말입니다. 집에서 되는대로 음식을 챙겨먹고 몸관리를 하지 않다보니 그런거지요. 특히 영희선생은 아침마다 만두만 고집하셨다면서요? 그것이 화근이였습니다.  그녀는 날마다 출근길에 이빨로 만두를 베여먹던 일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만두가… 만두가 화근이였다니?! 그녀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만두는 먹기 편리하고 또 집에서 물 한병만 갖고나오면 출근길에 배를 불릴수 있었던것이다. 간혹 잊고 물병을 갖고 나오지 않았을 때에는 목구멍을 메우는 만두덩어리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녀가 만두와 함께 살아온지도 벌써 6년이나 되였다. 그녀는 갑자기 목안에서 실벌레가 기여가는것 같아 두손으로 목을 꽉 움켜잡았다. 왜 나에게 이런 몹쓸 병이… 아직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데… 초기도 아니고 말기나 다름없는 식도암 4기라니? 설상가상으로 다른데로 전이될지도 모른다지 않는가? 아아…  그녀는 너무나 야속하고 서러웠다.  심지어 빨간 태양이 흐느적거리는 하늘까지도 원망스러웠다. 11월의 높푸른 하늘에서 빨간 태양이 먹장구름과 싱갱이질을 하고있었다. 곧 덮쳐올 먹장구름을 피해가려는듯 빨간 태양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려온 락엽이 그녀의 주위에서 핑그르르 돌더니 땅우에 떨어져내렸다. 그녀는 여느때 같으면 노랗게 단풍이 든 락엽을 주어들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쪽쪽 오리를 찢으며 즐겼을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만은 아무런 흥심도 느끼지 못한채 땅우에 떨어진 락엽을 구두끝으로 살짝 밟았다. 풍성한 잎새를 자랑하며 여름을 불러 사람들에게 그늘을 지어주고 뭇새들에게는 더없는 보금자리가 되여주더니 계절의 문턱에서 고스란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무의 너그러운 잎새가 하나의 락엽으로 되여 그녀의 발밑에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대지와 작별을 고하고있었다. 그녀는 어쩐지 속절없이 지는 락엽이 자기와 너무나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찌뿌둥한 하늘에 쟁반같이 걸린 태양도 먹구름사이에서 짙은 적색을 내뿜으면서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녀는 발밑에 깔린 노란 락엽을 주어들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오리오리 찢지는 않았다. 그녀는 한동안 락엽을 들여다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손에 들었던 나무잎새를 옆에 가까이에 있는 나무그루밑에 살며시 놓아주었다. 가슴이 탁 트이면서 숨이 콕 하고 나왔다. 그녀는 스쳐가는 가을바람도 예고없이 무턱대고 찾아오는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도 원망하지 않았다. 이 모든것은 오로지 세상과 함께 하는 대자연의 섭리였으니깐! 어찌보면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가?  계절의 변화를 어쩔수 없듯이 운명도 피할수 없으면 고스란히 받아들이는수 밖에. 그녀는 방금 병원에서 찾은 진단서를 다시 꺼내보았다. 그러나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6     영희는 소고기국수사발을 앞에 놓고 김화와 마주앉았다. 언니 요즘 이상해진것 같아. 혹시 갱년기야? 김화는 소고기국수사발에 젓가락을 박으며 영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거 아니야. 요즘들어 몸이 좀 고달파서 그래. 그리고… 영희는 하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김화를 눈자리나게 빤히 쳐다보았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언니답지 않게. 김화는 언제나 성격이 불같은 영희를 웬 일이냐는듯 바라본다. 사실 나 오래살것 같지 못해. 훗훗훗, 하다하다 이젠 자기의 목숨을 가지고 롱담이야? 참, 어이가 없어. 언니는… 아니, 나 며칠전에 병원다녀왔어. 그래서, 그래서 곧 죽는다는거야? 얘는?  그럼? 식도암이래! 그것도 4기야! 말기가 닥친거래. 곧 전신에 전이가 된대! 뭐?! 언니가? 그것도 말이라고 해?! 현대과학을 믿어야지. 나도 그렇게 믿기로 했어!  언니가? 아니, 어쩜 이럴수가… 시간이 없어. 난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지현이가 명년이면 대학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언니는 뭐 이 시각에도 지현이가 걱정돼? 자기가 죽는건 두렵지 않고? 그러게… 내가 왜 지금까지 남들만 걱정했는지 모르겠어. 나 자신은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있는것 같지가 않아. 언니, 그럼 빨리 지현이 아빠더러 돌아오라고 해야지 않겠어? 냅둬! 당신도 아직이래! 물론 나의 병에 대해서는 감감 모르고있어!  왜? 곧 알려야지 않겠어? 당신은 10년을 꼭 한국에서 채운대. 녀편네가 암으로 죽어가는데도? 그런 험한 말 하지 마! 지현이 아빠는 훌륭한 아빠야! 꼭 지현이를 잘 지켜줄거야! 우리는 일찍 결혼전부터 약속했거던. 서로 늑대아빠가 되고 늑대엄마가 되기로!  뭐?! 늑대아빠? 늑대엄마? 너는 잘 모르지만 세상의 동물들중에서 늑대는 일부일처제를 고집하는 유일한 동물이래. 그리고 암컷이 사냥을 나가면 수컷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새끼들을 돌본다고 했어! 처음 듣는 얘기야, 하지만 언니는… 지현이 아빠가 보고 싶어! 벌써 6년이야. 그럼 아무말도 하지 말고 어서 돌아오라고 해! 내가 그럴수가 있을가? 나도 모르겠다! 지현이는 알고 있어? 얘는? 내가 지현이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차마 입을 열수가 없어! 그럼 지현이도 모르고… 죽을 때까지도 지현이에게는 말하지 않을거야. 언니는 참… 우리가 함께 동료로 보낸지도 벌써 15년이 됐어. 그동안 선배로서, 또 언니로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준것이 없어.  그만하면 언닌 후배들한테 너무 잘해줬어. 언니는 후배들의 본보기야. 헌데 지금 이런걸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대. 정리할것이 너무 많은데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당분간 직장에 휴가를 내야겠지? 의사선생님이 뭐래? 석달, 길어서 반년이라나… 어떻게 할거야? 당분간은 지금처럼 계속 출근할거야. 너도 아무 내색 내지마. 부탁한다. 곧 모든것을 정리하면 휴가를 낼거야.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할건데? 정리가 다되면 지현이 아빠한테 가야 하겠지. 아마… 지현이 아빠가 얼마나 놀랠가? 어쩌겠어? 운명이니까 받아들이겠지! 그런데 언닌 어쩌면 그처럼 아무렇지도 않을수가 있어? 마치 남의 일처럼… 황차 남의 일이라도 가슴이 미여질텐데… 인간이 세상에 태여날 때 빈손으로 온다지 않았니? 가는것도 마찬가지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것이 바로 인간의 숙명이고 자연의 섭리인거지. 아무튼 나머지 시간만은 나 자신을 위해서 살고싶어.  그렇게 해! 언니는 지현이 아빠를 한국에 보내놓고 혼자서 지현이를 키우느라고 하루도 편하게 지낸 날이 없었잖아? 인차 지현이를 학교기숙사에 넣을거야. 그리고 나 혼자서…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혼자만의 아늑한 삶을 살아볼거야. 그렇게 해도 될가? 되구말구요! 언니는 돼요! 여태까지 언니는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였는데 하루라도 자기만의 삶을 살아봐야지. 그리고 지금까지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남편이였고 2번은 지현이였어. 그러나 지금부터는 2번을 너로 바꾼다. 내 모든것을 너한테 맡겨도 될가? 걱정마세요. 언니… 그동안 언니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네. 사람의 욕심은 버릴수가 없나봐. 살고싶다는… 아직 오십도 되지 않았는데 당연하지. 괜히 점심먹자고 불러내서는… 너를 난처하게 만들었구나. 국수가 다 불었네. 다시 바꿀가? 흑, 괜찮아요. 지금 그깟 국수가 다 뭐게요? 언니는 언제나 이래. 자기자신은 하나도 관심하지 않고 언제나 남의 걱정만 하면서… 어쩜 자기몸이 이처럼 망가질때까지도 내버려뒀지?! 나도 몰랐어! 어느날 갑자기 목안이 아프고 전신에 기운이 빠지고 신경질이 자주 나서 병원에 가봤더니… 그러나 이미 늦었어. 언니, 우리 언니가 불쌍해서 어쩌나? 난 지금까지 언니를 친언니마냥 따랐는데… 걱정마! 가는 날까지 너의 친언니로 살거니까! 고마워! 언니를 항상 나의 생활과 사업의 멘토로 삼을게! 얘는? 내가 뭐 한 노릇이 있다고… 어느날 언니가 불쑥 떠나가면… 그러니 지금부터 련습이 필요하지 않겠어? 가끔 나도 나의 빈자리를 보여줄거야. 그리고 그동안 언니노릇 제대로 못했는데도 언니로 생각한다니 고마워. 죽어서도 감사하게 생각할거야! 언니도 참… 그렇게 끝내 날 울릴거야?! 흑흑흑… 김화야! 사랑해! 나도, 언니… …   영희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김화도 굵다랗게 퍼진 소고기국수를 저가락으로 휘저으며 흑흑 흐느꼈다.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만 앞에 태연하게 앉아있는 영희의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게 아니, 너무나 따스하게 안겨왔다.     6     병원에 다녀온지도 막 한달이 되여간다. 그동안 몸에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신에 기운이 빠지고 머리가 흐리멍텅해지기가 일쑤였다. 그렇다고 의사의 말씀대로 병원치료를 받을수도 없었다. - 암세포의 특성은 자신을 보호하고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단단한 보호막을 치게 됩니다. 활동성일 때와 휴면상태일 때가 있기에 항암제의 공격이 무색한 경우가 다반수입니다. 항암제는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것이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파괴합니다. 따라서 항암치료과정에 머리가 빠지거나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 수치들이 떨어지고 간수치 등 혈액수치가 상승하게 되여 쉽게 전이가 됩니다…   눈만 감으면 의사의 말이 머리속에서 뱅글뱅글 맴돌이쳤다. 더우기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가 빠진 흉측한 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쌀쌀해지는 랭기에 몸을 오싹 떨더니 바람에 휘날리는 코트자락을 다시 여몄다. 인제야 겨울이 다가서는것 같았다. 언녕 추웠어야 할 날씨가 이외로 기온이 왕년보다 4~5도가량 올랐다. 그래서인지 11월이의 날씨인데도 자못 푸근하였다. 그녀는 오늘까지 일을 정리하고 래일 직장에 휴가를 낼 예정이였다. 물론 이미 휴가신청서를 써서 책상서랍에 넣어두었다. 딸애도 인젠 학교의 기숙사생활에 안정이 되여가는것 같았다. 이젠 자기만의 나머지 생을 즐기면 되였다. 그러나 너무나 지쳤다. 낮에도 목을 꽉 죄여오는것 같은 심한 통증때문에 몇번이나 걸상에 맥없이 쓰러져있었는지 모른다. 더는 꺼져가는 초불 같은 가련한 모습을 직장동료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았다. 벌써 어둠이 깃든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 누군가를 부르는듯 깜빡이고있었다. 차가운 11월의 하늘에서 별들은 얼마나 추울가? 엄마, 아빠의 별도 저 하늘 어딘가에서 이 딸을 내려다보며 깜빡이고있겠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콕하고 새여나왔다. 흔히 암은 유전이라고 한다. 허지만 그녀가 알기에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난것이 아니였다. 그녀가 한창 예술학교에서 무용배우의 꿈을 안고 학업에 전념하고있을 때 백년에 한번 있었다는 홍수에 시골마을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그때 마을의 30여호가 전부 홍수에 밀려가고 엄마, 아빠를 비롯하여 민수네 할아버지, 옥자네 곱사등이할머니, 그리고 지부서기인 최병기네 풍맞은 할아버지까지 다섯이나 액운을 면치 못하고 저 세상의 고혼이 되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의 우대정책으로 아담한 민속촌이 보기좋게 일떠섰다. 정부에서는 당의 우대정책을 노래하고 죽은이들의 령혼을 기리기 위해 그 마을을 진달래의 이름을 따서 “진달래민속촌”이라고 명명하고 해마다 “진달래축제”를 열고 있다. 명년봄이면 제6회를 맞이하게 된다. “진달래축제”를 위해 할 일들이 많은데… 그녀는 또 목을 움켜쥐였다.  갈퀴로 긁는것 같은 아픔이 목구멍을 자극하여 저도 모르게 거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더우기 며칠전부터 기상국에서 일산화탄소적색경보가 내려 공기가 혼탁한데다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서가거리의 단층집들에서 골목을 메울듯 연기를 내뿜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때문에 그녀는 요즘들어 추위에 떨면서도 집에 감히 불을 지피지 못하고 전기요로 하루하루 버텨왔었다. 집의 온돌을 뜯어본지가 언제였던지 까마득하다. 남편이 한국으로 간후 한번도 손을 보지 않았으니 적어도 6년은 되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은 집에 도착하면 우선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부터 따뜻하게 덮힐 예산이였다. 오랜만에 옛날처럼 따뜻한 구들에 등을 지지면서 혼자만의 아늑함을 실감나게 느껴보고싶었다. 울컥! 갑자기 목구멍속에서 무엇인가 치밀어올랐다. 그녀는 두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황급하게 쭈크리고 앉았다. 눈앞에서 무수한 불꽃이 얼른거렸다. 그녀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수셔넣었다. 무엇인가 물컹물컹한것이 손끝에 맞혀왔다. 그녀는 안깐힘을 다하여 입안을 가득 메우는 비릿한 액체를 왈칵 토해냈다. 빨간 액체가 도로변의 눈무지우에 장미꽃을 그렸다. 그녀는 길가의 눈무지를 두손으로 마구 헤집었다. 안돼! 안돼! 아직은 안돼! 아직은… 그녀는 그대로 길가에 퍼더버리고 앉은채 넉두리를 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단말이야!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엉뎅이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녀는 꽛꽛하게 얼어드는 바지를 추스르며 다시 일어났다. 예전과 달리 전혀 기운이 없었지만 머리만은 아주 맑고 청신했다. 어서 집으로 가자!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녀는 앞으로 한걸음을 내디뎠다. 그래! 나만의 시간을 갖고 맘껏 즐겨보는거야… 흐흐흐… 그녀는 괴상한 신음을 토해내며 밤하늘에서 깜빡이는 무수한 별들을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모두다 밤하늘의 어둠을 헤가르는 반짝이는 불꽃이였다. 그녀는 석탄연기에 목이 메는 어두운 골목을 헤치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또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자기만의 행복을 향해 부지런히,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8     영희가 죽었다. 마흔세살, 아직은 할 일도 많고 또 살아가야 할 나날들도 많은 나이에 너무나 일찌기 요절했다. 심지어 그토록 오매불망 바라던 딸의 대학입학시험도 보지 못한채… 딸애에게도 남편에게도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채… 11월의 어느날 밤, 하늘의 차가운 별로 조용히 사라졌다. 영희의 죽음은 식도암때문이 아니였다. 아이로니하게도 자기의 집에서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죽었던것이다. 삶에 대한 욕망으로 아득바득 출입문가까지 기여갔지만… 조금만 손을 내밀었어도 문을 열수도 있었것만… 결국 문턱밑에서… 시체로 굳어진 그녀의 손에는 휴대폰이 꼭 쥐여져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짧은 인생을 살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김화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녀가 식도암 4기로 석달이라는 시한부생명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감 모르고 있었다. 딸애도… 남편도… 그리고 그녀의 주변 동료들도…  그녀는 그렇게 늑대엄마로 살다가 조용히 한생을 마쳤다.     그녀의 유품에는 유서가 없었다.  다만 프린터로 인쇄해놓은 종이 한장이 어느 책갈피속에 끼워져있을뿐이였다. 제목은 “목표”였다. 우리 딸 지현의 목표: 북경대학 엄마의 목표: 지현이를 북경대학에 붙이는것 지현아, 힘내!  화이팅!! 사랑한다!  엄마가!   그 밑에 빨간 하트가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늑대엄마와 늑대아빠의 이야기도 적혀있었다.         2014년 2월의 어느 날, 화룡에서     - 11월, 그 하늘의 차거운 별 -   2014년 5월호.
3    하얀 동네 댓글:  조회:979  추천:1  2014-08-15
[중편소설]   하 얀 동 네 - 끝나지 않은 조선족사회의 낯설어가는 풍경이야기 (2)    김 태 현 프 롤 로 그     하늘이 꽉 잠기는가 싶더니 이른아침부터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철구는 듬성듬성 가늘게 발을 잡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입에서는 칙칙한 사내의 투박한 음성이 거칠게 터져나왔다. “괜스레, 고추가루 팔러 가는 날 바람이 분다더니 웬 놈의 눈이 이렇게 길을 막냐? 그것도 홀애비가 가는 길을…” 철구는 걱정스레 눈발이 뿌옇게 감도는 하늘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집문을 나설 때부터가 문제였다. 철구는 아직도 함께 따라나선다고 설레발을 치던 딸애의 갸날픈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한사코 길을 재촉하는 철구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려 징징거리며 울먹이던 다섯살 난 연순이가 저만치에서 서럽게 눈물을 짜고있다. “흑-, 아빠도 떠나면 나는…?” 연순이가 채 하지 못한 뒤말이 뭘가 생각하면서 철구는 은연중 또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다행이였다. 함께 따라나서겠다고 울고불며 야단을 칠것이라고 여겼던 연순이가 너무나 쉽게 물러났던것이다. “후-!” 철구는 길게 한숨을 내뿜었다. 벌써 구불구불 길게 뻗은 마을길에는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있었다. 푸실푸실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즈려밟으며 큼직한 발자국을 찍어가는 철구의 마음은 왠지 이상하게 젖어들었다. 뒤돌아보니 여기저기 란잡하게 찍혀있는 발자국이 하얀 눈길우에 우묵하게 꺼져들어간채 보이지 않는 마을과 멀리 잇닿아있었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그는 아예 돌아온다는 확신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더우기 어린 연순이를 마을에 와서 남들이 버리고 간 과수원을 경영하고있는 한족 홀아비 왕씨(汪氏)에게 집을 공짜로 넘겨주는 대가로 떠맡기고 가는 그의 마음은 칼로 저미는듯 아팠다. 물론 왕씨에게 연순의 생활비를 대주기로 하였지만 딸애를 떼여놓고 가는 그의 발걸음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철구는 이렇게 몇년전에 사라졌다가 죽은 안해의 뒤를 이어 자신마저 언제 돌아올지 모를 한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인지상정이라 할가, 정작 태를 묻고 30여년간 살아온 정든 고향마을을 떠나자니 눈앞이 부옇게 흐려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철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노래소리가 처절하게 흘러나왔다.     철구는 무작정 하얗게 길을 덮는 눈길을 헤치며 저벅저벅 걸었다. 간단없이 흩날리던 눈송이들은 커다란 솜덩이 같은 함박눈으로 변해 점점 더 기승을 부리며 그의 등이 굽은 거쿨진 몸뚱이에 처연하게 떨어졌다…     (1)     강옥이의 귀가에는 아직도 비단천을 찢는듯한 갓난 딸애의 울음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강옥이는 수시로 흐느끼는듯 몸을 떨어대면서 고개를 돌려 간간히 방금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길에는 이미 하얗게 눈이 쌓여 비뚤비뚤하게 찍혀진 그녀의 자그마한 발자국을 메워가고있었다. 강옥이의 눈에서 굵다란 눈물이 찔끔 솟아나와 볼을 타고 주르륵 굴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듯 하얗게 굳어진 얼굴에 대롱대롱 매달린 눈물을 닦을념도 하지 않고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갔다. 강옥이가 성룡진 흠부촌(鑫富村)으로 시집 가던 그해 겨울에도 역시 오늘처럼 하얀 눈송이가 하늘하늘 춤을 추면서 손잡이뜨락또르에 앉아가는 길에 단풍잎처럼 살풋이 내려앉았었다. 그때부터 3년동안 강옥이는 네번이나 임신했는데 결국 류산으로 다 잃고 겨우 팔삭둥이 딸애 하나만 낳았다. 하지만 딸애가 문제였다.  비록 낳은지 한달도 채 안되는 피덩이였지만 강옥이는 남편인 박철구의 앞에서 감히 딸애의 입에 젖꼭지를 물릴수가 없었다. 성룡진 룡남촌에 살고있는 이모의 소개로 박철구를 만나서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후딱 결혼하였으니 처녀의 눈부신 황금인생이 그것으로 한단락 끝났던것이다. 그렇게 처녀를 잃고 아니, 처녀를 버리고 임신 2개월만에 불행하게도 자연류산으로 아이를 잃었다. 하지만 강옥이의 자궁에는 아이가 너무나도 잘 들어섰다. 현부유보건원의 의사는 임신이 잦은 강옥이를 보고 몸이 튼튼하게 회복된후에 임신해야 임신부는 물론 배속의 아이도 건실하게 자랄수 있다고 권고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강옥이의 마음처럼 되는것이 아니였다. 세세대대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순천박씨 가문에서 아이를 생산하여 대를 잇는것을 천륜으로 여기고있었으니 그녀인들 어찌하랴. 그런데 마디에 옹이라고 하필이면 농사일이 가장 드바쁜 여름철만 되면 강옥이는 임신이 되였고 또 그해 가을이 채 가기전이면 고역에 시달려서인지 자연류산으로 태아를 잃군 하였다. 그렇게 강옥이의 심신을 괴롭힌 일이 벌써 세번이나 반복되였다. 그날도 마을 중앙에 있는 탈곡장으로 향하던 강옥이는 갑자기 아래배를 부여잡고 허리를 꼬며 길섶에 주저앉았다.  마침 손잡이뜨락또르에 벼단을 산더미처럼 박아싣고 지나가던 촌의 절름발이 리회계가 강옥이를 발견하고 황급히 뛰여내렸다.  그는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린 강옥이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허둥대며 벼단을 반쯤 길섶에 부리였다. 그리고는 강옥이를 건뜩 안아서 손잡이뜨락또르의 적재함에 싣고 현부유보건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참으로 묘하게 엮이였다. 50살을 훌쩍 넘긴 절름발이 리회계는 혼자 사는 “외톨이”나 다름이 없는 반늙은이였다. 그의 안해는 강옥이가 박철구에게 시집 오던 해에 로씨야로 장사를 떠났는데 여직껏 한강에 돌을 던진듯 종무소식이였다. 강옥이는 절름발이 리회계의 도움으로 현부유보건원에서 세번째 아이를 잃고 귀로에 올랐다. 또 이렇게 허무하게 아이를 잃다니? 어쩐지 자기는 아이와 인연이 없다는 생각이 갈마들며 서글픔이 몰려왔다.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렸는데 설살가상으로 마을이 훤히 바라보이는 장수동고개길 언덕받이에서 갑자기 손잡이뜨락또르마저 숨가쁘게 모지름을 쓰더니 엔진이 뚝 멈춰버렸다. 절름발이 리회계가 황급히 뛰여내려 쇠파이프로 여기저기 두드려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강옥이는 류산후유증으로 벼단우에 쪼그리고 앉은채 간간히 앓음소리를 내더니 어느새 까무룩히 잠이 들어버렸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강옥이의 하얗게 질린 피기 한점 없는 얼굴을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순간이였지만 절름발이 리회계는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는 지쳐서 잠이 든 강옥이의 하얀 얼굴을 넋없이 들여다보다가 슬그머니 다가가서 이마우에 드리운 벼짚을 떼여내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때 강옥이가 눈을 번쩍 떴다.  절름발이 리회계가 자기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는줄로 여긴 강옥이는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몸이 천근같이 무겁고 하신에 동통이 밀려와 일어날수가 없었다. “가만히 누워있소. 얼굴에…” 절름발이 리회계가 떠듬거리며 손을 움츠렸지만 벌써 강옥이의 여린 손바닥이 그의 꺼칠한 왼쪽 볼을 힘없이 때렸다. “아니, 난…?!” 절름발이 리회계는 말을 잇지 못했다. “왜, 이러세요? 금방 류산한 녀인네의 몸도 탐을 내요… 흑흑흑.” 강옥이가 흐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벼단더미우에 누워있는 강옥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라 자네의 이마에 벼짚이 묻었기에…” 절름발이 리회계는 떠듬거리면서 다시 허리를 굽혀 옹송그린 강옥이의 몸을 반듯하게 눕혀주었다. 몸이 허약해진 강옥이는 저도 모르게 절름발이 리회계의 목을 껴안았다. “리회계, 미안해요! 그런줄도 모르고…” 강옥이는 몸을 축 늘어뜨린채 절름발이 리회계의 품에 안겨있었다.  절름발이 리회계의 얼굴이 갑자기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는가싶더니 갑자기 사내의 꽛꽛한 억센 두팔이 강옥이를 힘껏 끌어안았다. 강옥이는 숨이 꽉 막히는것 같았다. 그러나 남자의 강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는지 류산후의 동통이 서서히 밀려가며 따뜻하고 포근한감이 들었다. 강옥이는 저도 모르게 남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땀에 절고 퀴퀴한 냄새가 다분한 늙은 남자의 가슴이였지만 어쩐지 싫지 않았다. 강옥이의 약간 별려진 입에서 련신 이상야릇한 신음이 새여나왔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서 장승처럼 굳어져있다가 급기야 부르르 전신을 떨고있는 녀자의 갑삭한 몸우에 허리를 꺾었다. 순식간에 늙은 남자의 두터운 입술이 젊은 녀자의 차거운 입술을 덮어버렸다. 미구에 산간에 어둠이 찾아오고 초승달이 길가에 처박힌 손잡이뜨락또르를 내려다보며 아기별과 숨박꼭질을 하고있었다… 그날 저녁 류산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길가에 세워놓은 손잡이뜨락또르우에서 우연이 아닌 우연으로 절름발이 리회계와 몸을 섞은 강옥은 그의 씨를 배게 되였다. 그후 강옥이가 다시는 절름발이 리회계에게 몸을 내준적은 없었지만 그녀의 자궁속에서 새 생명은 건실하게 자라고있었다. 하지만 강옥의 남편 박철구는 이 사실을 꼬물만큼도 모르고있었다. 강옥이와 절름발이 리회계는 다만 가을하늘에 높이 걸려있는 초승달과 반짝이는 아기별들만 그들의 치정을 알고있을뿐 귀신도 모를거라고 여기고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바람이 새지 않는 벽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쥐도새도 모르게 치른 일이였지만 그들의 도색사건을 알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2)         강옥이가 시집을 올 때까지만 하여도 이 마을은 “하얀 동네”로 불리우지 않았었다. 당시는 흠부촌(鑫富村)이라는 마을명칭에 걸맞는 갑부촌이였다.  지금도 마을을 둘러보면 갑부촌의 옛 흔적들이 여기저기 력력히 남아있다.  마을 동북쪽에 지은 2층짜리 소학교건물만 보아도 흠부촌의 화려했던 력사를 알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족인구의 마이나스장성이 초래한 학생원천부족으로 하여 현소재지에 있는 동신소학교에 합병되였다. 종합반이라는 명목으로 3, 4, 5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했었는데 결국 그 7명의 학생들마저 뿔뿔히 시내학교로 전학하였다. 한때 학생들의 글소리 랑랑했던 소학교는 그렇게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즉 “흠부소학교”라는 명칭이 영원히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을씨년스러운 공터로 변한 학교건물은 사람들의 발길마저 끊겨버린 황량한 페허로 되고말았다. 물론 학교운동장이 몇번 다른 용도로 사용된적이 있었다.  남방에서 온 한족들이 학교운동장에 술공장을 꾸린다면서 흠부촌의 울바자며 전선대에 로동자모집광고까지 붙였었는데 그 광고문의 풀이 채 마르기도 전에 현소재지에서 들이닥친 공안국과 공상국의 집법일군들에 의해 쇠고랑을 찼다. 그들은 페기된 공업용알콜에 물을 타서 가짜술을 생산하는 무리들이였던것이다.  그뒤 또 다른 한족이 소학교1층에 있는 빈 교실의 간벽을 전부 헐어내고 목재가공공장을 꾸린다고 불도젤과 굴착기를 몰고와서 운동장의 여기저기를 파고 뚜져대더니 결국 몇 트럭이나 되는 벌레먹은 마른 나무가지들만 곳곳에 남겨놓고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그후 한동안 잠잠한가싶더니 어느날 모 회사의 여리사장(汝董事长)이라는 난쟁이 뚱보가 까만 승용차를 타고 함께 온 현소재지의 지도자어른들과 수근거리며 소학교의 운동장둘레를 돌아보고 가더니 이튿날부터 소학교운동장주위에 자란 키넘는 아름드리 황철나무들을 전부 베여버렸다. 그것도 모자라서 학교운동장을 사람의 키가 넘게 파헤치더니 송평강의 합수목으로부터 물을 끌어다가 양어장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양어장주위에다 올망졸망한 나무덕대를 만들어놓고 금박으로 “흥광낚시터”라고 새긴 나무패말을 박아놓았다. 그러나 그 낯선 양어장과 낚시터도 결국은 어느 한 순간 흠부소학교처럼 처절하게 사라지고말았다.  지금은 양어장이 죽은 닭이며 개며 돼지며 온갖 잡동사니들을 버리는 쓰레기장으로 되여버렸다. 언젠가는 거기에서 한구의 죽은 녀자시체까지 발견되였었다. 녀자시체는 너무 오래동안 방치해두어 원래의 몰골을 전혀 알아볼수 없었고 부패된 몸뚱이는 살짝만 건드려도 살점이 뚝뚝 떨어졌다. 그후부터 마을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외지에서도 더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완전히 공포의 대상이 되여버렸다. 게다가 누군가 지붕을 덮었던 붉은 기와를 벗겨가고 창문유리와 문틀을 빼내가는 바람에 흠부소학교건물은 황막하게 변해버렸다. 다만 그나마 뻘건 벽돌로 된 벽체만 엉성하게 남아 조선족학교의 아픔을 자아내고있었다. 흠부촌은 원래 “하얀 동네”로 불리웠었다. 그것은 두만강을 건너온, 흰 두루마기와 치마저고리를 입은 백의동포들만 오롯이 모여살던 곳이기때문이였다. 동네는 사람들이 입은 옷만 흰것이 아니라 집도 희고 울바자도 희고 그들이 땀 흘려 가꾼 입쌀도 희였다. 심지어 사람들의 웃음도 희고 마음도 희였다. 옛날에는 마을어구에 “하얀 동네”라고 새긴 커다란 돌비석도 세워져있었다. 후에 문화대혁명의 세례속에서 민족주의를 타파한다고 하면서 때리고 부수고 하는 바람에 부득불 마을이름을 “흠부촌”이라고 고치게 되였고 돌비석도 두동강이 나버렸다. “흠부촌”이란 이름도 누군가 하루빨리 부유해져 공산주의로 가야 한다고 무심코 던진 말에서 비롯되였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사실 모든 명칭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마을이름이였지만 해석하기나름이였다. 하지만 세월의 고난과 풍진을 겪다나니 인젠 돌비석도 잡초와 쓰레기에 묻혀 거의 형체도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특히 마을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외지나 외국으로 떠나면서 “하얀 동네”도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지금 마을에서 젊은 사람을 찾으려면 쌀에 뉘만큼 적다. 대부분 로약자들뿐이다. 란시에 앉은뱅이가 없다고 그 개도 안 먹는다는 돈 때문에 뿔뿔이 고향을 등지고 떠나버렸던것이다. 가령 돈을 벌었다고 해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향은 더는 고향이 아니다. 고향은 한낱 버려진 헌신짝 같은 존재이다. 그러니 “하얀 동네”가 점차 본연의 이름이 색바래질수 밖에.     (3)           “하얀 동네” 아니, 흠부촌은 룡화현소재지로부터 송평강을 끼고 흐르는 시 교외의 동남쪽에 위치해있었는데 30여가구의 농가가 모여 사는 오붓한 동네였다.  그러다가 어느 해인가, 정확하게 말하면 강옥이가 집을 떠나고 그 이듬해 여름에 살인사건으로 인해 두구의 시체가 발견되면서부터 일약 공포의 분위기가 감도는 무시무시한 동네로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웃간에 조개떡 하나가 생겨도 서로 나눠먹던 동네가 이젠 아래웃집은 물론 앞뒤집 사이에도 키 넘게 막아선 벽돌담장으로 하여 숨이 꽉 막혔다. 더우기 뻘건 벽돌담장우에 깨진 유리쪼각까지 촘촘히 박아놓아 닭이나 개는 물론 사람도 얼씬거리지 못하였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집주위에 울타리를 쳤다. 돈이 없는 사람은 산에 가서 굵은 나무를 베여왔고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는 벽돌을 사다가 담장을 둘렀다. 물론 자기 집 주위를 막는다고 누가 뭐라고 할수는 없었지만 울바자나 벽돌담장에 갇힌 집들은 마치 올망졸망한 성냥갑 같은 감옥을 련상케 하였다. 철구도 남들에게 뒤질세라 곤두뿔암소가 끄는 소발구를 몰고 뒤산 골짜기의 독수리바위로 향했다. 오늘까지만 나무를 베여내리면 집주위를 전부 든든한 통나무로 둘러쌀수 있었다. 독수리바위는 아무나 쉽게 발길을 돌리는 곳이 아니였다.  예전부터 독수리바위 부근에 승냥이무리가 출몰하였기에 흠부촌 사람들은 감히 범접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철구만은 례외였다. 워낙 몸집이 거쿨지고 힘이 장사인 그는 그따위 풍문을 개의치 않았다. 철구가 독수리바위에 오르니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것이 사람이 비집고 다니기조차 힘들었다. 얼마나 오래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하얀 봇나무가 울울창창한 수림은 한폭의 수채화를 방불케 하였다.  초겨울이였지만 따사로운 해빛이 나무가지사이로 부채살처럼 비쳐들고 먹이를 찾아 헤매는 다람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있었다. 철구는 올곧은 하얀 봇나무만 골라 찍었다. 그의 도끼질에 산중턱에 자리잡은 독수리바위가 쩡쩡 울렸다. 이윽고 철구는 땀이 흐르는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쓱쓱 몇번 문지르더니 아예 개털모자를 벗어서 풀숲에 던졌다.  철구의 더벅머리에서 하얀 김이 연기처럼 피여올랐다. 다시 도끼를 쳐들고 나무를 찍으려던 철구의 손이 갑자기 허공에서 멈칫했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간간히 들려 왔던것이다.  철구는 천천히 머리우에 쳐들었던 도끼를 내리고 두 눈이 화등잔이 되여 여기저기 숲을 눈빗질했다. 긴장으로 하여 그의 얼굴이 재빛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두귀를 벌름거리며 둘레둘레 살펴보아도 다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것이다. “쳇, 내가 뭔가 잘못 들은게지. 어제도 아무일 없었는데 오늘이라구…? 괜스레 녀편네들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면서…” 철구는 다시 도끼를 머리우로 높이 쳐들었다. “뚜드득 툭-!” 그러나 철구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미처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굵다란 나무가지가 무엇에 의해 부러지는 소리가 력연하게 들려왔다. 철구는 흠칫 몸을 떨며 급기야 두손으로 도끼를 꽉 틀어잡았다. 하지만 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철구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면서 선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말처럼 승냥이무리가 나타난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는 감히 한발작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주위의 동정에 귀를 도사렸다.  갑자기 철구의 두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총총히 하얗게 늘어선 건너편의 봇나무숲속에서 무언가 거뭇한 물체가 등을 구부정하고 나무사이에서 얼씬거리고있는것이 포착되였던것이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도저히 그 물체가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철구는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재빨리 나무뒤에 몸을 숨겼다. “혹시 불곰이? 아니면 메돼지가? 그렇지 않으면 정말 승냥이가…?” 철구는 속으로 오만가지 추측을 다 하였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입에서 하얀 김이 새여나왔다. “아니, 사람이 아잉가?!” 부지중 철구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튕겨나왔다. 비록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사람의 모습이였다. 철구는 누군가 자기 몰래 이 산으로 나무 베러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흠부촌에서 자기를 제외하고는 독수리바위로 감히 나무 베러 올만한 담략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한것은 철구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무를 베는 모습이 아니였다.  철구는 손에 도끼를 든채 조심스레 마른 풀숲을 저겨디디며 건너편의 하얀 봇나무숲을 향해 살금살금 걸어갔다. 봇나무숲에서 얼씬거리는 검은 물체는 아무런 위기도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한 곳에서만 움직이고있었다. 먼발치에 이른 철구는 확실히 사람임을 확신했다. 하얀 봇나무숲속에서 나무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발가내는것은 분명히 사람의 손이였던것이다. 그러나 몸을 온통 나무껍질과 검불로 두르고있어 자칫 귀신으로 착각할수 있었다.  철구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발볌발볌 검은 물체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철구의 가슴은 방망이질하듯 쿵쿵 뛰였다. 분명히 사람인데 왜 저런 몰골을 하고있을가? 머리는 온통 수세미처럼 뒤엉키고 몸은 지저분한 헝겁오리나 검불과 나무껍질 따위로 대충 가려져있었는데 군데군데 벌건 살이 드러나보였다. 철구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집을 잃은 거지의 모습이였다. 그런데 거지라면 응당 마을로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먹을것을 구걸할텐데 왜 승냥이무리가 출몰한다는 산속에 들아와서 봇나무껍질속에 있는 여린 하얀 속살을 벗겨 먹고있을가?  철구는 마침내 용기를 내여 저벅저벅 마른 풀숲을 헤체며 검은 물체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그때까지 그 검은 물체는 사람이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여전히 자기의 일에만 집착하고있었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요?” 철구의 입에서 바위돌을 들었다 놓는듯한 거친 음성이 웅글게 튀여나갔다.  순간 하얀 봇나무에 매달려 막 벗겨낸 나무속살을 입안에 밀어넣으려던 검은 물체가 홱 몸을 돌렸다. 철구는 분명히 보았다. 람루하다 못해 거지꼴을 하고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작년에 어린 딸애를 팽개치고 집을 뛰쳐나간 강옥이였다. 즉 자기의 안해이며 딸 연순이의 엄마였던것이다. 철구는 손에 들고있던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를 홱 내던졌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자기의 두눈을 마구 비벼댔다. 아무리 보아도 분명히 자기의 앞에 서있는 사람은 딸애와 남편을 버리고 흠부촌을 떠난 얄미운 녀인- 강옥이였다. “어흐흑…!” 철구의 커다랗게 벌려진 입에서 산을 메우는듯한 처절한 통곡소리가 터져나왔다. 강옥이는 하얀 봇나무에 매달린채 흰자위가 가득한 눈으로 곡성을 토하는 철구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누… 누구세요? 왜… 왜 그래요?” 떠듬떠듬 말을 하는것을 들어보아도 분명히 코맹맹이인 강옥이의 목소리였다. “강… 강옥아, 너, 이 년아…!” 철구는 나무가지를 와삭와삭 헤집으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서슬에 화들짝 놀란 강옥이는 몸을 홱 돌리더니 포수에게 쫓기는 노루마냥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옥아, 너 이년 거기 섰거라! 이년아, 강옥아!…” 철구의 부름소리가 독수리바위의 봉우리를 타고 하늘 높이 타래쳐오르면서 길게 화음을 이끌었지만 녀인은 철구의 눈앞에서 사라지고있었다.  비록 철구도 산을 타는데 미립이 튼 사람이였지만 도저히 강옥이를 따라 잡을수가 없었다. 요리조리 나무사이를 비집고 달아나는 강옥이는 마치 한마리의 날렵한 다람쥐 같았다.  이윽고 강옥이는 철구의 눈앞에서 깜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허무맹랑하게 강옥이를 놓친 철구는 다시 나무를 찍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초겨울의 초승달이 밤하늘의 구름층을 비집고 나와 하얀 봇나무가지를 어루쓸고있었다. 사실 곤두뿔암소의 영각소리만 울리지 않았어도 철구는 자기가 나무를 찍던 자리를 찾지 못했을것이다. 철구는 한동안 강옥이가 나무껍질을 벗겨내고 여린 속살을 훑어먹던 그 봇나무를 부여안고 목놓아 울었다. “강옥아, 이년아… 네가 어디로 가든 상관치 않겠지만 하필이면 이 산속에서 나무껍질로 연명을 하다니… 그런줄도 모르고 어린 딸애를 버리고 도망친 년이라고 얼마나 원망했는데… 네 이 년이, 어이구 으흐흑흑… 우리 불쌍한 연순이를 어쩌면 좋아…?” 철구의 울음소리가 꺼벅꺼벅 구름사이에서 졸고있는 가냘픈 초승달을 불러깨우며 한동안 독수리바위의 깊은 골짜기에 처량하게 울려 퍼졌다. 곤두뿔암소도 배가 고픈지 철구의 곁에 앉아서 두눈을 꾹 감고 빈입을 다시며 새김질하기 시작했다.  곤두뿔암소의 입에서 흐르는 허연 느침이 철구의 손에 차겁게 와닿았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악몽에서 깨여나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 네년을…?!” 그러나 철구는 끝내 뒤말을 잇지 못했다. 철구는 곤두뿔암소의 고삐를 봇나무가지에서 풀어내였다.  그리고는 코구멍으로 힝힝 거친숨을 내뿜는 곤두뿔암소의 고삐에 딸려서 암울한 마음으로 골짜기를 떠나 죽음의 숲이 무성하게 내리드리운 독수리바위를 헐떡거리며 쫓기듯 내리기 시작했다…     (4)     어느날 흠부촌위생소의 곽병기의사가 느닷없이 박철구를 찾아왔다.  곽병기는 박철구의 짜개바지친구였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송평강에서 까만 “고추”를 달랑거리며 미역도 감고 물고기도 잡으면서 자란 사이였다. 물론 지금은 촌위생소에서 의사로 있지만 박철구와는 입술과 이와 같은 막역지우였다. 몇년전에 곽병기가 흠부촌에서 유일하게 지원병으로 참군할 때만 하여도 박철구는 농촌에서 혼자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너무나 억이 막히고 막막하기만 하였었다. 사실 박철구도 참군하고싶어 현병원에 가서 신체검사까지 하였지만 그번의 징병은 군의를 양성할 목적으로 일정하게 의학지식을 갖춘 사람을 모집하는 특수부대였기에 촌의사로 있는 곽병기 한 사람만 합격하여 북경위수부대로 가게 되였다. 박철구는 미칠것만 같았다. 하지만 운명은 원망한다고 소원이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였다.  곽병기는 북경위수부대에서 3년 동안 군복무를 하다가 제대하였다. 그는 얼마든지 성룡진위생원에 취직할수 있었지만 “어찌 내가 태를 묻고 자란 고향마을을 떠나겠는가?” 하면서 극구 흠부촌으로 돌아와 계속 촌의사로 일하였다.  결국 곽병기는 3년전과 똑같이 하얀 가운을 입고 촌위생소로 출근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병을 떠날수 없다.  그 병을 고쳐주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의사는 존경받는 인테리계층이였다.  특히 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연고로 곽병기는 일약 흠부촌에서는 내노라 하는 권위자로 떠올랐다. 그런데 그런 곽병기가 오랜만에 박철구를 찾아왔던것이다. 군대에서 제대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찾아오지 않았던 그가 말이다. 그동안 박철구는 고된 농사일에 찌들어 겉늙었지만 곽병기는 몇해 도시에서 생활을 해서 그런지 허여멀쑥하고 세련되였다. 완전한 도시인으로 탈바꿈해 있어 감히 옆에 다가가기마저 저어되였다. 박철구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곽병기가 불쑥 찾아온것이 이상하였다. 성룡진위생원의 의사라는 뜨르르한 직업마저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온것부터가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는데 오늘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제대한후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던 그가 오막살이집으로 자기를 찾아왔는지 도무지 그 속내를 알수가 없었다. 곽병기는 집안에 들어서면서 박철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막 세살을 잡는 연순이를 흘끔 바라보더니 강옥이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구, 우리 제수씨가 그새 귀동녀를 보았구만? 헌데 이름은 뭐라고 지었소?” 곽병기의 짓꿎은 물음에 강옥이가 오히려 얼굴을 빨갛게 태웠다. “연순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약골인지 매일 병을 달고있다.” 박철구가 산제밥에 풀메뚜기 뛰여들듯 앞질러 말하였다.  “하긴 늘그막자식이니 별수 없지.” 곽병기가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강옥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야, 늘그막자식이라니? 나는 아직 서른도 안됐는데… 그리고 너는 아직 장가도 안 간 녀석이 무슨 소리를 그렇게 맹랑하게 하니?” 박철구는 제법 어른 흉내를 내는 곽병기를 짜증스레 흘겨보았다. “아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다만… 그런데 말이다. 연순이는 누구를 닮아서 요렇게 귀엽게 생겼니? 무뚝뚝한 너 박철구는 전혀 안 닮은것 같고… 그렇다고 제수씨를 닮은것도 아니고… 별로 다른 사람을 닮은것 같애… 허허, 롱담이야.” “야, 아무리 롱담이라도 지나치지 않니? 연순이가 애비, 에미를 닮지 않으면 누구를 닮았겠니?” 박철구는 버럭 화를 냈다. “미안해, 그냥 해본 소리야.” 곽병기는 허구프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수씨, 연순이가 자주 앓으면 위생소에 와서 면역력을 높이는 주사나 한대 맞히오. 그러면 저항력이 생겨 감기에 자주 걸리지 않을거요. 약값은 안 받겠으니 부담갖지 말구. 아무렴 내가 철구를 보더라도 제수씨한테서 돈을 받겠소?” 곽병기는 누런 코물이 흘러서 코밑에 말라붙은 연순이의 볼따구니를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그래 확실히 누군가를 닮았어…” 곽병기는 의미있게 웃으면서 또 한번 강옥이를 슬쩍 돌아보았다.  순간이였지만 강옥의 얼굴에 당황해하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에구, 아주버님두 그게 무슨 말씀이예요? 우리 연순이가 닮긴 누구를 닮았다는거얘요? 여기 아빠, 엄마가 다 있는데…” 강옥이는 어쩐지 저도 모르게 가슴에 불을 품은것마냥 전신이 달아올랐다. “그럼 나 간다. 주사를 맞히고 안 맞히는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곽병기는 출입문을 나서면서 다시한번 구들가에 쭈크리고 앉아있는 강옥이를 흘끔거렸다.  그러나 강옥이는 고개를 숙이고 외면하였다. “그눔아가 그게, 오늘 뭘 잘못 먹었나?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줴치니… 뭐, 우리 연순이가 다른 사람을 닮았다구? 내 어이가 없어서 원.” 박철구는 볼이 부어서 투덜거렸다.  그러나 강옥이는 씩씩거리며 화풀이를 하는 박철구와 맞장구를 칠 대신 오히려 못마땅하게 내쏘았다. “당신은 뭘 그런것까지 다 신경을 쓰고 그래요. 누구를 닮았다면 그래 저 애가 당신의 딸이 아니랍디까?” 강옥이는 안고있던 어린애를 구들우에 탁 내려놓으며 짜증을 부렸다. “넌 다 큰 계집애가 왜 에미품에만 기여드냐? 니 애비한테두 좀 가서 놀아라. 에구에구 이게 무슨 원쑤냐?” 강옥이는 누구에게라 없이 분풀이를 하였다. 박철구는 어린것과 화를 내는 강옥이가 오늘따라 얄밉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문득 금방 곽병기가 한 말이 떠올라 박철구는 안해를 닥달하였다. “여보, 병기가 우리 연순에게 면역력을 높이는 주사를 공짜로 놓아주겠다는데 얼른 갔다 오오.” “그래도 되겠어요? 주사값이 얼만지도 모르고…” 강옥이는 얼결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볼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아, 주사값을 안 받겠다는데 뭘 걱정이요. 아무렴 남자새끼가 불알을 차구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소.” 철구가 들볶는 바람에 강옥이는 구들에 제멋대로 누워서 뒹굴며 노는 연순이를 둘쳐업었다. “그럼 지금 곧 가서 주사를 맞혀가지고 올게요.” 강옥이는 밖으로 나와 마을 서북쪽에 있는 촌위생소를 향해 달싹달싹 걸어갔다.      (5)     절름발이 리회계는 오늘도 힘겹게 장수동고개길의 언덕받이를 오르고있다. 멀리에서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바람에 날려갈듯이 휘청거려 보는 사람마저 안스러웠다. 그는 오늘도 룡남촌에 다녀오는 길이다. 얼마전 로씨야장사길에 본전까지 다 날리고 겨우 려비만 마련하여 도주하다싶이 로씨야경내를 간신히 빠져나왔다는 경철이를 찾아갔었다.  울라지보스또크에서 흑룡강성 오상현에서 간 낯선 남자와 어울려 장사를 하는 안해를 보았다는 말에 행여나 소식이라도 알가싶어 걸음을 하였던것이다. 그러나 횡설수설 늘어놓는 경철이의 말을 고스란히 다 믿을수 없었다. 경철이의 말에 따르면 로씨야에 간 사람들은 모두 남자와 녀자가 어울려 “따방(짝)”을 무어야만 장사를 할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녀자몸으로 혼자서 장사는커녕 근본 로씨야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절름발이 리회계의 녀편네도 다른 외간남자를 만나 그의 보호를 받으면서 “따방”을 뭇고 함께 장사를 하고있을것이라고 했다. 경철이도 룡정의 덕신에서 간 녀자와 “따방”을 뭇고 한 집에서 일년 남짓이 함께 살면서 돈잎을 늘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뛰여든 무지막지한 로씨야깡패들에게 푼전까지 깡그리 털리웠는데 덕신녀자를 볼모로 맡겨두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수도 없었다.  살림집까지 팔아서 경철이의 장사밑천을 챙겨주고 애 둘을 데리고 세방살이를 하면서 오로지 경철이가 로씨야에서 목돈을 벌어오기만 애타게 기다리는 무던한 녀편네를 속이고 장사라는 허울속에 외간녀자와 살을 섞으며 살았고 또 그 여우같은 녀자에게 속히워 전부의 재산을 깡그리 날렸다는것을 감히 어떻게 발설한단말인가?  경철이는 룡정의 덕신녀자와 한집에서 부부행세를 하며 함께 살았는데 네 돈 내 돈 구별없이 버는족족 한 저금통장에 저금하였다.  돈이 웬만큼 모아지자 경철이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였다. 헌데 정작 둘이 돈을 반반씩 나누니 얼마 안되였다. 이런 와중에 덕신녀자와 알몸으로 함께 자다가 불시에 뛰여든 로씨야깡패들에게 잡혔다. 다행히 덕신녀자를 볼모로 남겨놓는 조건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어디에 가서 깡패들이 요구하는 그 많은 돈을 가져다가 녀자를 구해낸단 말인가? 그것도 로씨야장사길에서 서로의 수요에 의해 잠시동안 함께 장사를 하고 살을 섞으면서 살아온 녀자를 그 무슨 백년해로하겠다고 다시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들겠는가. 그리하여 경철이는 로씨야인 브로커를 통해 가짜려권을 만들어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모든것이 경철의 돈을 갈취하기 위한 덕신녀자의 음흉한 계획이였을줄이야.  바로 그날 밤 경철이네 하숙집에 뛰여든 로씨야깡패들은 덕신녀자의 사주를 받은 무리들이였던것이다. 하지만 경철이가 중국에서 아무리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이를 갈아도 다 행차 뒤 나발이였다.  그후에도 덕신녀자는 여러번 이런 방법으로 “따방”을 뭇고 함께 살던 남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국장사군들은 덕신녀자라면 모두 도리를 떨었다고 했다. 하지만 덕신녀자도 이젠 행방불명이 되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하도 많이 지어 어디론가 피신하였는지 아니면 로씨야깡패들에게 죽음을 당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한다… 경철이는 오늘도 절름발이 리회계앞에서 꼭 로씨야로 다시 나가서 덕신녀자를 찾아 발기발기 찢어놓겠다고 길길이 뛰였다. 하지만 이미 행방불명이 되였다는 녀자를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경철의 하소연을 듣다가 아무런 소득이 없이 안주도 없는 눅거리 비닐봉지술을 한잔 얻어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절름발이 리회계의 걸음걸이는 아침에 집을 떠날 때보다 한결 더 무거워졌다.  장수동고개길의 언덕받이에서 천천히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그는 마치 논밭에 외롭게 서서 바람에 펄럭이는 허수아비와 흡사했다.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몸이 땅에 닿을듯 좌우로 기우뚱거렸다.  그는 술기운때문인지 맥없이 길가의 펑퍼짐한 청석돌우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입에 침방울을 튕기며 덕신녀자를 찾아 복수를 하겠다고 칼을 갈던 경철이의 처연한 모습이 눈앞에서 얼른거리며 좀체로 사라지지 않았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후-, 우리 집 말숙이도 외간남자와 “따방”을 뭇고 함께 살겠지? 돈 벌어다 잘살겠다고 로씨야로 떠난지 근 10년 철이 다 돼가도 소식 한장 없으니… 혹시 말숙이도 로씨야깡패들에게 돈을 강탈당했거나 죽음을 당하지 않았는지…? 애초에 로씨야로 떠나는것이 불행의 시작이였어! 이젠 돈도 필요없어. 다만 말숙이의 생사만이라도 알았으면… 내 생전에 다시 만날수 있을는지?) 절름발이 리회계는 눈앞에 초라하게 안겨오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어이없는 탄식속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남들이 다 하는 아버지노릇도 못하고 혈혈단신으로 소식조차 없는 안해를 기다리다가 인젠 중늙은이가 다되여버렸다. (후-, 인생이란 무엇인고? 사람이 어째서 사는지?) 절름발이 리회계는 한동안 넋을 잃은채 태를 묻고 살아온 마을을 멍하니 굽어보다가 지친 몸을 일으켜 장수동고개길의 언덕을 느릿느릿 내리기 시작했다. 해나른해진 몸을 가로세로 흔들며 비칠비칠 걷던 절름발이 리회계가 마을입구에 이르렀을 때였다.  문득 그의 눈에 박철구네 집에서 뛰쳐나오는 곽병기의 모습이 띄였다.  그는 멍하니 서서 곽병기가 사라진 박철구네 울안을 기웃기웃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강옥이가 어린애를 둘쳐없고 문을 나서더니 곽병기가 사라진 마을길로 부랴부랴 종달음을 놓았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강옥이만 보아도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먼발치에서 강옥이를 보면 고개를 숙이고 슬그머니 다른 길로 에돌아다니군 하였다. 그만큼 강옥이에 대한 생각을 머리속에서 털어버릴수 없었던것이다. 오늘도 강옥이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것만 같았다.  특히 강옥이의 등에 업힌 연순이가 마음에 걸렸다. 연순이는 박철구는 몰론 어미인 강옥이도 한곳도 닮은데라곤 없었다.  인간의 본능인지 아니면 직감인지는 몰라도 어쩌면 자기와 련관이 있지 않는가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연순이가 인젠 세살을 잡는다.  제법 엄마, 아빠라고 옹알옹알 말도 한다. 너무 귀여워서 눈에 넣어도 아플것 같지 않다. 그리하여 그는 강옥이와 몸을 섞은 시간과 연순이가 태여난 날자를 따져보았다. 아무래도 이상하였다. 그는 언젠가 강옥이에게 슬그머니 연순이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였다. 그러던차에 오늘 면바로 강옥이가 혼자서 어린애를 둘쳐업고 집에서 나오는것을 보게 되였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절뚝거리며 강옥이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마을 서북쪽으로 내닫는것을 보니 또 연순이가 아파서 촌위생소로 곽병기를 찾아가는것 같았다. 불현듯 절름발이 리회계의 머리속에 섬광이 번쩍 빛나며 한가지 생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내가 늘그막에 만들어서 어린것이 면역력이 약해 자꾸만 앓는것이 아닌지?) 순간이였지만 자식에 대한 강한 욕구로 전신이 뜨거워났다.  결혼후 안해의 불임으로 남들이 다하는 아버지의 구실도 할수 없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안해가 로씨야로 훌쩍 떠나다나니 완전히 줄 끊어진 연의 신세가 되여 지천명의 언덕을 훌쩍 념겼다. 그에게 있어서 자식에 대한 소망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낙비에 의해 생기는 아롱다롱한 무지개와 같은 환상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지금 막연하게나마 강옥이와 한번 살을 섞은것을 빌미로 연순이에게 더욱 집착하는지 모른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두 발을 더욱 재게 놀렸다. 그 바람에 한쪽 다리가 특별히 짧은것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몸 전체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다. 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앞에서 반달음으로 뛰여가는 강옥이의 뒤모습만 응시하면서 헐금씨금 쫓아갔다. 이윽고 강옥이가 하얗게 석회칠을 올린 촌위생소 대문안으로 사라졌다.  (옳거니, 연순이가 또 감기에 걸렸구나.) 절름발이 리회계는 망연자실한채 위생소대문밖에 서서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그가 막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안으로부터 연순이의 바사질듯한 울음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려왔다. (저 씨팔놈이, 왜 어린것을 울려? 의사라는 놈이 주사도 제대로 못 놓아?) 절름발이 리회계는 모름지기 화가 벌컥 치밀었다.  그가 혀를 끌끌 차며 막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갑자기 연순이의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곽병기의 히스키한 음성이 밖으로 거칠게 새여나왔다. “뭐, 애를 울리면서까지 뻐기긴… 이젠 처녀의 비싼 몸도 아니면서… 제수씨는 그래 늙은 절름발이 리회계만도 내가 못하단 말이요? 하기야 리회계는 절름발이여도 거시기만은 꽤 쓸만했겠지? 오래동안 녀편네가 없이 방치해두었던것이라 아주 힘이 좋았을거야. 안 그래? 제수씨.” 절름발이 리회계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문고리를 잡은 그의 거쿨진 손이 바르르 떨렸다. (곽병기가 나와 강옥이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알았을가…?) 절름발이 리회계는 문가에 바싹 다가서서 귀를 도사리고 집안의 동정을 엿들었다. “3년전 초가을, 그날 나는 진위생소에 약품 가지러 갔다가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장수동고개 언덕받이에서 우연찮게 제수씨와 절름발이 리회계가 손잡이뜨락또르의 적재함우에서 그 짓거리를 해대는것을 목격하게 되였소. 제수씨의 허연 허벅다리가 절름발이 리회계의 몸뚱이밑에서 버둥거리고 사내는 씩씩거리며 쿵덕쿵덕 방아를 찧어대고있더구만…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그 일을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소. 그것은 제수씨의 고운 얼굴에 먹칠을 할가봐였소. 그러니 제수씨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오. 지금이라도 내가 박철구를 찾아가서 절름발이 리회계와 제수씨가 오입을 했다고 고발하면 그 후과가 어떻게 될것 같소? 허허허, 그리고 요 어린것도 절름발이 리회계의 씨종자라고 까밝히면…” 문가에서 가만히 엿듣고있던 절름발이 리회계의 몸이 점점 더 한쪽으로 기울여졌다. “그러니 제발 제수씨도 고분고분 내 말을 듣소. 나는 제수씨의 고운 얼굴만 생각하면 장가 갈 생각마저 없소. 그 늙다리에게 몸을 바치면서 나에겐 앙탈을 부리다니? 그리고 검둥이같은 박철구가 뭐 볼데가 있다고 계속 붙어 사오? 지금까지 남의 새끼인줄도 모르고 제 자식처럼 키우는 미욱한 놈인데…” 이때 무엇인가 집안에서 왈그랑절그랑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다급히 집 주위를 살펴보았다.  마당 한켠에 나무장작을 패다가 그대로 벽돌담장에 기대여 세워놓은 도끼가 눈에 띄였다.  그는 절뚝거리며 뛰여가 도끼를 손에 집어들었다. “아니얘요. 연순이는 제 남편인 박철구의 딸이얘요. 박철구와 결혼한 제가 왜서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단 말인가요?” 집안에서 강옥이의 앙칼진 목소리가 문틈으로 터져나왔다. “뭐라구? 하하하, 귀신을 속여도 나를 못 속이오. 그날 당신들이 질탕하게 놀아대는 꼴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단 말이요. 그리고 연순이가 크면서 점점 절름발이 리회계의 몰골을 쏙 빼닮아가는것만 봐도 모르겠소? 어거지를 그만 부리오.” 갑자기 집안에서 유리병이 마루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여지는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안돼요! 절대 안돼요!” 뒤이어 강옥이의 새된 비명소리가 방안에 회오리쳤다. “이 년이… 좀 곰상곰상하면 안돼? 절름발이면 어떻고 이 곽병기면 어떻단 말이야? 한번 바람 피운 년이 두번 안 피운다는 법이 있어? 내가 박철구한테 모든걸 까밝히기전에 곱다라니 몸을 내주는게 좋을거야…” 곽병기의 거친 숨소리가 문밖으로 흘러나오더니 갑자기 집안이 조용해졌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문틈으로 집안을 살펴보았다.  삽시에 그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곽병기가 환자용 테블우에 강옥이를 눕혀놓고 한손으로 녀인의 가슴팍을 꽉 누른채 다른 한손으로 헐렁한 아래도리를 막 벗겨내리고 있었던것이다.  물론 강옥이가 몇번 버둥거렸지만 녀자의 허연 허벅다리와 엉덩이가 순식간에 적라라하게 드러나고말았다.  뒤미처 곽병기의 거쿨진 몸이 이미 반라체가 되여 아래도리를 드러내놓은채 테블우에서 간간히 떨고있는 강옥이의 몸우에 올라탔다.  이윽고 가느다란 책상다리가 두 남녀가 버둥거리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찌그덕찌그덕 요란한 소리를 냈다. 도끼를 든 절름발이 리회계의 두손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는 힘없이 절뚝거리면서 대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장 뛰여 들어가서 곽병기를 요절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강옥의 신변에 닥쳐올 후과가 두려웠다. 이 일이 소문이 나면 자연히 박철구가 자기와 강옥이의 관계는 물론 곽병기에게 겁탈당한것도 알게 될것이 아닌가. 더우기 이제 겨우 세살 밖에 안된 어린 연순이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절름발이 리회계의 주름진 얼굴로 부연 눈물이 곬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촌위생소의 하얀 널벽에 몸을 기대고 오래동안 서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맥이 풀려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때 위생소문이 벌컥 열리더니 강옥이가 잠 자는듯 꼼짝 않고있는 연순이를 둘쳐업은채 비칠거리며 마당으로 걸어나오고있었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제꺽 한켠에 몸을 숨겼다. 강옥이는 미처 절름발이 리회계를 발견하지 못하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마을의 긴 골목길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측은한 눈길로 강옥이의 뒤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리회계는 갑자기 절뚝거리며 위생소 앞마당으로 뛰여가서 다시 담벽에 기대세워놓은 도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두눈에 쌍불을 켜고 위생소 출입문을 쏘아보더니 절뚝거리면서 한발한발 다가갔다… 이윽고 집안에서 투닥거리는 둔중한 소리가 들리는가싶더니 뒤미처 아츠러운 비명소리가 문틈을 꿰뚫고 창밖으로 새여나왔다.  그리고는 모든것이 잠잠해졌다… 그날 밤, 커다란 빨래돌을 처맨 한구의 사체가 페허로 된 흠부촌소학교 운동장의 낚시터 오물속에 던져졌다. 물론 이틑날부터 흠부촌위생소의 출입문에 주먹만큼한 자물쇠가 걸린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마을사람들은 곽병기가 외지로 출장간줄로만 알았지 그 행방에 대해서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곽병기는 가을이 가고 이듬해 음력설이 되였지만 여전히 마을에 돌아오지 않았다.  한강에 배 띄운듯 종무소식이였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자연히 몇리밖에 있는 성룡진위생원으로 병 보이러 다녔다. 위생소의 출입문에 걸린 자물쇠도 점차 시뻘건 쇠녹이 쓸기 시작했다.     (6)     철구가 흠부촌소학교 운동장의 페허로 된 낚시터에 이르니 이미 현공안국의 크고 작은 경찰차 여러대가 “흥광낚시터” 주위를 삼엄하게 둘러싸고있었다.  처음으로 낚시터의 오물속에서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제보한 사람은 마을에 와서 남들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내놓은 과수원을 도맡아 다루고있는 왕씨(汪氏)였다.  왕씨는 산동에서 온 한족홀아비이였는데 처음엔 뻥튀기기계를 메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옥수수나 입쌀 따위를 튀여주는 장돌뱅이였다. 그가 처음 흠부촌에 나타났을 때는 얼굴이 검댕이로 범벅이 되고 옷도 기름때가 반질반질하여 모두들 업신여겼었다.  어느해 겨울 그가 오갈데 없어 밖에서 떨고있는것을 보고 마음씨 착한 철구가 자기 집에 데려다 따뜻한 밥을 먹이고 온돌방에서 자게 하였다.  그때로부터 왕씨는 흠부촌에 올 때마다 철구네 집에 머물렀고 그들은 막역한 사이가 되였다. 그러다가 왕씨는 철구의 알선으로 흠부촌의 몇몇 조선족들이 외국으로 나가면서 땅을 내놓게 되자 과수원을 도맡았던것이다.  오늘도 왕씨는 늪바닥의 개흙을 비료로 쓰려고 “홍광낚시터”의 양어장에 들어가서 개흙을 파내다가 시체를 발견하였던것이다.  벌써 마을의 많은 남녀로소들이 낚시터의 한켠에 몰려서서 쉬쉬거리고있었다. 하지만 감히 앞으로 다가서지는 못하고 낚시터에서 무엇인가 건져올리는 경찰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볼뿐이였다. 철구도 마을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윽고 나무껍질과 검불에 감긴 한구의 시체가 경찰들에 의하여 낚시터의 오물속에서 둔덕으로 올라왔다.  철구는 하필이면 쓰레기장으로 변한 오물속에서 시체가 발견되였다는것이 꺼림직했다. 아무리 죽고싶어도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낚시터의 오물속에 빠져죽을건 뭔가? 그러나 금방 건져올린 시체를 보는 순간 철구는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어디선가 한번 보았던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어쩐지 눈에 익은데, 어디서 보았던가?…) 철구는 숨을 죽이고 법의(法医)에 의해 나무껍질과 검불이 한겹한겹 벗겨지는 시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체는 이미 너무 오래동안 오물속에 잠겨있은탓으로 썩을대로 썩어서 사람의 손이 닿기만 하면 살이 뭉청뭉청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얼굴의 살은 물론 두 눈알이 빠져나간 허연 백골이 몸우에 엉성하게 붙어있어 보기만 해도 섬뜩해났다. 시체가 부패될대로 부패되다나니 신원을 확인할수 없었다. 다만 망인이 녀자라는것만 알수 있었을뿐이였다. 별수없이 경찰들은 커다란 비닐주머니에 시체를 넣어가지고 낚시터를 떠났다. 그러나 철구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날념을 못했다. 경찰차량들이 모두 떠나간 텅 빈 낚시터는 더없이 휑뎅그렁했다.  그제야 마을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주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뒤공론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갑론을박하며 왈가왈부 지껄여봐야 탁상공론에 불과하였다. 나중에 해가 서산에 기울어 낚시터에 어둠이 스멀스멀 깃을 펴서야 마을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하지만 철구는 멍하니 그 자리에 불상처럼 굳어진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가 눈길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있는것은 경찰들이 오물속에서 건져올린 시체에서 벗겨낸 나무껍질과 검불이였다.  문득 재작년 초겨울에 마을 뒤산의 독수리바위에서 보았던 강옥이가 떠올랐다. 철구는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나무껍질과 검불이 버려진 곳으로 다가갔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철구는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철구는 두손으로 썩어서 미끌거리는 나무껍질을 와락와락 헤쳤다.  분명 그 나무껍질은 하얗게 색이 바랜 봇나무껍질이였다.  로인들이 하얀 봇나무껍질은 겨울추위를 막아줄뿐만아니라 웬간해서는 좀체로 썩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옛적에는 죽은 사람의 묘를 이장할 때 반드시 봇나무껍질을 벗겨다 해골을 주어담았다가 다시 묻었다고 한다. 철구는 그 나무껍질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썩을 년, 죽어도 더럽게 죽었네.) 철구는 물에 퍼질대로 퍼져서 물고기잔등처럼 미끌거리는 봇나무껍질을 주섬주섬 주어다가 주름이 갈세라 곱게 펴놓은다음 물가에서 주어올린 새끼줄로 꽁꽁 동여매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이 죽으면 하얀 천으로 몸 전체를 감싸듯이 “가슴”이며 “허리”며 “다리”를 꽁꽁 동이였다.  아무리 어쩌고 저쩌고 해도 필경 자기와 함께 3년이나 살을 섞으며 살았고 또 딸애까지 낳아준 녀자가 아닌가.  비록 자기를 배반하고 흠부촌을 떠났지만 강옥이는 일찍 자기가 목숨처럼 사랑했던 녀인인것만은 틀림없었다.  다행히 그녀의 령혼이나마 흠부촌에 남아있고 또 자기의 손으로 마지막 길을 바래줄수 있어 다소 위안이 되였다.  어쩌면 그녀는 죽어서도 흠부촌을 지켜주고싶었는지 모른다. 철구는 그 길로 집으로 뛰여가서 삽과 괭이를 메고 달려왔다.  그리고는 새끼로 동인 봇나무껍질을 메고 낚시터를 떠나 소학교옆의 빈터로 겅정겅정 걸어갔다.  철구는 나름대로 풍수가 좋아보이는 마른 땅을 찾아 삽날을 박았다. 삽과 괭이를 엇갈아 휘두르며 한참 땅을 파고나니 한자 깊이가 되는 길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철구는 조심스럽게 구덩이안에 새끼로 동여맨 봇나무껍질을 내려놓고 두눈을 꼭 감고 기도를 드렸다.  나중에 자기의 색바랜 웃옷을 그우에 벗어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제일 부드러운 흙을 골라 한삽 푹 떠서 “시체”- 봇나무껍질우에 골고루 펴놓았다. 철구는 무덤앞에 서서 묵묵히 묵례를 드리고 돌아섰다.  비칠비칠 걸어가는 그의 꺼칠한 얼굴로 뿌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철구는 다시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먼발치에서 나무껍질로 온몸을 감고 뛰여가는 검은 물체가 보이는듯했다.  결국 철구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꺽꺽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무엇인가 하얗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마치 한겨울의 하얀 눈송이인양 금방 만들어놓은 무덤우에 살풋이 내려앉고있었다. (아직은 겨울도 아닌데…?) 철구는 두손을 벌려 하늘하늘 춤을 추는 “눈송이”들을 잡으려고 허둥댔다.  그러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은 환각이였다. (그래, 강옥이가 시집올 때 눈발이 흩날렸었지.) 철구는 길게 한숨을 톱았다. 어디선가 연순이를 부르는 한 녀인네의 갸날픈 목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철구는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시뿌옇게 안겨오는 흠부촌이 저녁밥을 짓는 검은 연기속에 처량하게 안겨왔다.     (7)     흠부촌은 한동안 페허로 된 양어장에서 건져올린 한구의 녀자시체로 하여 민심이 흉흉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겨울에 접어들면서부터 시퍼렇게 독을 쓰던 양어장의 물이 온갖 잡동사니와 오물들로 엉킨채 커다란 얼음덩이로 얼어붙게 되자 모든것이 그 밑에 깔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철구는 매일이다싶이 곤두뿔암소가 끄는 소발구를 몰고 뒤산 중턱에 있는 독수리바위로 향했다. 이미 집 주위를 굵다란 통나무로 키넘어가는 울바자를 둘렀지만 철구는 까닭없이 독수리바위에 오르군 하였다. 하지만 매일과 같이 늦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철구의 모습은 항상 초췌하였고 소발구에는 나무가지가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철구는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쉬지 않고 이듬해 눈석이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초봄까지 계속 독수리바위를 찾았다.  마을사람들은 철구가 독수리바위에 올라 무엇인가를 찾는다고 쑥덕거렸다.  하긴 철구가 매일 풀숲을 헤치며 여기저기 쏘다녔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도대체 하얗게 눈이 뒤덮힌 겨울의 황량한 산속에서 무엇을 찾을가?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철구의 그런 짓거리는 온 겨우내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독수리바위에서 무리승냥이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났지만 철구만은 여전히 아무 탈이 없었다.  그는 지금도 독수리바위를 하루종일 헤매고 다니고있다. 그렇게 한해 겨울이 또 무사히 지나갔다. 다만 철구의 모습만은 마을사람들이 쉽게 찾아볼수 없었다.     (8)     갑자기 절름발이 리회계가 없어졌다. 마을사람들이 농사대부금때문에 마을동북쪽에 있는 절름발이 리회계네 집을 찾아갔을 때 이미 리회계는 물론 크고 작은 잡동사니들도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다만 구들우에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낡은 옷가지들만 뽀얗게 먼지를 들쓴채 열린 방문으로 새여들어오는 차거운 한파에 나뒹굴고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누구도 절름발이 리회계가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갔는지 몰랐다. 절름발이 리회계는 봄파종이 끝나고 또 나무가지의 무성한 이파리들이 그늘을 만들면서 온갖 새들을 불러들이는 여름이 올 때까지도 소식 한장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더는 절름발이 리회계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흉흉한 소문이 마을에 퍼지기 시작했다.  소학교운동장의 페허로 된 양어장 오물속에 빠져죽은 녀자가 이 마을사람들의 고독한 령혼을 하나하나 불러간다는것이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해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페허로 된 낚시터에 유난히 온갖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그리하여 현위생방역국에서 내려와 소독약을 뿌리고 벌레를 잡는다고 한동안 들볶았다. 그 덕에 좀 누그러드는가싶더니 며칠이 지나자 또 물밑에서 올라오는 역한 냄새가 사람들을 질식시켰다. 촌민위원회에서는 할수없이 성룡진정부에 진정서를 올리고 페허로 된 양어장을 메꾸어버리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입 빠른 사람이 양어장의 쓰레기를 가셔내고 다시 맑은 물을 가두어 호수를 만들면 좋은 휴식터로 된다고 제의하는 바람에 흠부촌의 진정서는 기각되고말았다.  며칠후 갑자기 때자국이 꼬질꼬질한 농민공들이 트럭에 앉아 우르르 쓸어오더니 오물로 뒤덮힌 양어장을 가셔내기 시작했다.  한켠에서는 현환경위생처의 굴착기 두대가 양어장 바닥의 흙을 퍼서 트럭에 싣고 다른 한켠에서는 농민공들이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오물속에 고무장화도 신지 않은채 맨발로 들어서서 쓰레기를 뚝으로 건져올리고있었다. 흠부촌의 사람들은 먼발치에 서서 구경만 할뿐 감히 누구도 양어장에 들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농민공들은 시커멓게 그을은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웃으며 대수로와하지 않았다. 하긴 더럽고 힘든 일만 해온 그들에게 이쯤은 땅 짚고 헤염치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또 하나의 이변이 일어났다. 한 농민공의 삽날에 시퍼렇게 썩은 시체가 걸려 나왔던것이다. 그 농민공은 힘들게 겨우 끌어올린것이 사람의 시체라는것을 알고 화들짝 놀라 뚝으로 뛰여 오르더니 한참 왝왝 토하였다.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채 열물까지 다 쏟아내더니 일당마저 받지 않고 돌아가버렸다. 결국 또 현공안국의 경찰들이 출동하여 흠부촌소학교 운동장의 페허로 된 양어장을 봉쇄해버렸다. 시체는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았는데 한쪽 다리가 류달리 약하고 짧았다.  마을사람들은 대뜸 그가 절름발이 리회계라는것을 알아보았다.  경찰들은 마을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려 하였지만 누구나 입에 빗장을 지르고 모르쇠를 대였다. 공연히 경찰에 불리워다니며 시달림을 받기 싫어서였다. 삽시에 흠부촌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경찰들의 경계대상이 되여버렸다. 그때까지 농민공들은 한켠에 몰켜서서 우들우들 떨면서도 감히 자리를 뜰념을 못했다. 물론 경찰들이 그들이 떠나는것을 허락하지 않았던것이다. 결국 농민공들은 경찰들의 감시속에 다시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물속에 뛰여들어 계속 작업을 하였다.  소학교운동장의 드넓은 상공에 피여오르는 시체 썩은 냄새는 흠부촌을 공포속에 몰아넣었다. 저녁녘이 되여 막 일을 마무리하려는데 갑자기 또 이상한 물체가 어느 한 농민공의 삽날에 걸려 좀체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몇사람이 모여서 함께 힘껏 끌어냈다. 불쑥 물우에 떠오른것은 또 한구의 시체였다. 사람들을 다시 한번 경악하였다. 시체에는 색갈도 분간할수 없는 기다란 가운이 입혀져 있었는데 가운의 왼쪽 가슴에 빨간 색실로 “흠부촌위생소”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몸에는 또 굵은 바줄에 여러겹으로 칭칭 감긴 커다란 돌멩이가 매달려있었다. 가운에 새겨진 “흠부촌위생소”라는 글자만 보아도 키꼴이 훤칠한 촌위생소의 곽병기의사라는것을 대뜸 알아볼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완전한 타살이였다.  누군가 죽여서 돌멩이를 매달아 페허로 된 양어장의 오물속에 처넣은것이 분명했다. 삽시에 소학교운동장의 페허로 된 양어장은 짙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다. 농민공들은 여름인데도 이발을 덜덜 짓쪼았다.  그들은 머리카락이 곤두선다며 다시는 물에 들어설념을 못했다.  그러자 경찰들이 위엄을 부리며 그들을 닥달하였다. 그 서슬에 눌리워 농민공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물에 들어섰는데 옷퉁을 벗은 그들의 몸에 온통 닭살 같은 소름이 돋아있었다. 그러나 더이상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발견된 두구의 시체중 한구는 몸에 돌멩이를 달아매고 다른 한구는 망측하게 몸에 옷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여서 사람들의 의구심을 자아냈다.  흠부촌촌민위원회의 낮다란 벽돌집은 커다란 백열등이 밤낮이 따로 없이 환하게 켜진채 현공안국 경찰들의 수사사무실로 변해버렸다. 왜 그처럼 잘 나가던 촌의 권위자이자 위생소의 의사인 곽병기가 몸에 돌멩이를 매달고 더러운 오물에 빠져 처참하게 죽었을가?  그리고 절름발이 리회계는 또 무슨 연고로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채 알몸으로 죽었을가?  과연 두 사람의 죽음에는 어떤 련관성이 있을가? 녀자(강옥)의 시체에 이어 련이어 발견된 두 남자의 주검은 사람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렸다.           (9)     그해 여름은 빨리도 지나갔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여름이 더웠던지 아니면 선선했던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공포속에 떨며 전전긍긍하다나니 계절의 변화를 느낄 경황도 없었던것이다. 사람들은 모여 앉기만 하면 마을에 귀신이 비친다는둥, 마을이 망할 징조라는둥 하면서 중구난방으로 입방아를 찧어댔다. 하긴 련이어 세 사람의 주검이 발견되였으니 인심이 흉흉해지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썩 후에야 마을사람들은 한 녀인으로 인해 두 사람의 목숨이 오물속에 처박혀졌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페허로 되였던 양어장이 다시 수건되였고 또 새파란 송평강의 맑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인공호수로 변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는 즐거운 낚시터로 된 뒤였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오래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절름발이 리회계가 박철구의 안해 강옥이와 애매한 관계를 발생하였고 또 그녀를 겁탈하려는 곽병기를 도끼등으로 쳐서 죽이고 시체에 돌멩이를 매달아 양어장의 오물속에 처넣고나서 한동안 자아모순에 빠져 우울증으로 자신을 학대하다가 결국 스스로 양어장에 뛰여들어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을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마을사람들은 뒤늦게야 맨 처음에 발견된 한구의 썩은 녀자시체가 바로 강옥이의 주검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두 사내의 목숨을 앗아간것이 결국 요망한 계집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한동안 흠부촌 아니, “하얀 동네”의 상공에 뒤덮혀있던 공포의 죽음이 한 녀인으로 인한 살인과 자살로 결론이 났다. 그때로부터 줄줄이 마을을 떠나는 이사호들이 늘어났다.  누구도 말려낼수가 없었다.  간혹 촌민위원회의 만류로 이사짐을 다시 풀어내린 사람들도 있긴 하였으나 나중에는 모두 외국으로, 관내로 돈벌이를 떠나버렸다. 며칠사이에 “하얀 동네”의 사람들 태반이 상해, 북경, 청도 등 연해도시로 흘러나갔고 돈개나 좀 있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 그러다나니 목숨보다 소중한 땅뙈기들을 외지에서 온 타민족 입주호들이 맡아서 다루었다.  마을은 짜장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들판처럼 황량해졌다. 하지만 다시 새롭게 인공호수로 거듭난 소학교운동장의 낚시터에는 수많은 외지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 가족끼리 소풍을 온 사람들, 장기판을 둘러싸고 장이야, 멍이야를 웨쳐대는 사람들… 하여튼 공포의 대명사였던 옛 소학교운동장은 여기저기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하였다. 그러나 해가 여러번 바뀌여도 한번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앞을 감돌아 흐르는 송평강도, 뒤산 독수리바위도, 장수동고개길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만 마을의 주인은 이미 바뀌여있었다.  다만 몇명 남지 않은 로약자들만 자식을 기다리고 안해를 기다리고 남편을 기다리고 집을 떠나 흩어져버린 가족을 기다리며 날에 날마다 낚시터의 둔덕우에서 하얀 옷자락을 찬바람에 펄럭이고 있을뿐이였다. 흠부촌에 외래인 타민족 입주호들이 자리를 굳히기 시작하면서부터 해마다 설명절이면 낯선 집들의 높이 쳐들린 처마밑에 항아리만한 붉은 초롱이 걸리고 묵은 귀신을 쫓아내고 새 귀신을 영접한다는 폭죽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려퍼졌다.  오랜 세월 고요했던 마을상공을 요란하게 들볶는 그 소리는 마치 흠부촌 아니, “하얀 동네”가 이미 다른 세상으로 변해가고있음을 예고하는듯싶었다…     에필로그           한국에서의 체류기간이 만기된 철구는 5년만에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연길공항에 들어서는 즉시 택시를 잡아타고 흠부촌으로 향했다.  차창밖으로 푸실푸실 흩날리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철구는 한시라도 빨리 흠부촌에 가닿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웠다.  그사이에 흠부촌은 많이 변해있었다.  흙길이여서 개인 날이면 먼지가 풀썩풀썩 일고 비오는 날이면 질척거려 마누라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던 마을이 전부 콩크리트길로 바뀌였고 고래등 같은 벽돌집들이 즐비하게 들어앉아있었다.  겨울이여서 농가의 지붕과 담장에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어 한결 산뜻해보였다.  다만 그 벽돌집들이 대부분 조선족양식이 아니라 한족양식이여서 낯설뿐이였다. 철구는 빠드득빠드득 눈길을 밟으며 자기가 살았던 옛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길에선 멍멍개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뒹굴며 재롱을 부리고있었고 낯선 집들의 검은 대문엔 시뻘건 주련이 붙어있었다. 마을 동구밖의 옛집앞에 이른 철구는 멍하니 굳어졌다.  자기가 살았던 초가집이 그사이에 번듯한 벽돌집으로 바뀌여있었다. 둘레를 벽돌로 담장을 높이 쌓고 대문엔 방울까지 달려있었다.  어쩐지 위압감이 느껴졌다. 철구가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방울소리를 듣고 집안으로부터 한 녀인이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쎄이야?(谁呀?누구세요?)” 젊고 이쁘장하게 생긴 녀인이 철구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집을 잘못 찾았나?) 철구는 주춤거리며 다가가 왕씨를 찾아왔다고 여쭈었다. 그러자 녀인이 집안에 대고 소리쳤다. “로왕, 커런 라이라.(老汪,客人来啦、여보, 손님이 찾아왔어요.)” 이윽고 집안으로부터 웬 사내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왕씨였다. “아이야, 쩌쓰 쎄이야? 쓰 로우 표바.(哎呀、这是 谁呀?是 老朴吧、아이구, 이게 누구야? 박씨구만.)” 왕씨는 다짜고짜 철구의 손을 잡아끌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엔 현대식 가장집물들이 그쯘하게 갖춰져있고 구들에선 네댓살되여 보이는 녀자애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있었다. “왕씨, 그사이에 부자가 됐구먼. 이 녀잔 색시겠지.” 왕씨는 헤벌쭉 웃으며 뒤더수기를 썩썩 긁어댔다.  조선말을 잘 구사하는 그는 철구가 한족말에 서툰걸 알고 조선말로 말했다. “맞쏘. 우리 안깐이우. 내 과수원을 해서 돈 쪼끔 벌었쏘. 그래서 집두 짓구 싼뚱 로쟈(山东老家산동의 고향)에 가서 녀자를 데려왔쏘. 초우쌘주(朝鲜族조선족)들이 버리고 간 과수원때문에 난 돈두 벌구 색시도 얻구 딸도 보았쏘. 초우쌘주들이 빈털털이였던 날 쌀려줬쏘.” 철구는 어쩐지 기분이 씁쓸하였다.  자기는 돈을 벌겠다고 한국에 나가서 갖은 고생을 다 하였는데 왕씨는 앉은자리에서 부자가 되지 않았는가. 게다가 새 마누라도 얻고 자식도 보고. “연순이는 어데 갔소?” 철구가 가장 보고싶은 사람은 연순이였다. 헌데 연순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핵교(학교)로 갔쏘. 마을에 핵교가 없써 썽룽쩐(盛龙镇성룡진)에 가서 쑤써(宿舍숙사)에 있으면서 핵교를 다니고있쏘. 가볼라우?” 철구는 왕씨의 오토바이에 앉아 성룡진으로 향했다.  그사이에 눈이 좀 즘즉해지는가 싶더니 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연순이는 한족학교에 다니고있었다. 하긴 조선족학교가 없으니 그럴수 밖에. 왕씨가 연순이의 교실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더니 선생님과 자초지종을 여쭈고 연순이를 복도로 불러냈다.  교실문이 살며시 열리며 한 녀자애가 나왔다.  나실나실한 머리, 살구씨 눈, 유난히 당실한 코, 특히 입귀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상처자국, 그것은 어릴 때 넘어지면서 밥상모서리에 입을 짓쫗아 생긴 허물이였다.  연순이였다.  여위고 가냘퍼보였지만 몇년 사이에 훌쩍 커있었다.  “연순아…!” 철구는 갈린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연순이는 뒤로 주춤 물러서며 벽에 몸을 기대여선채 말똥말똥한 눈으로 철구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연순아, 아빠다.” 철구가 다가가자 연순이는 슬며시 왕씨의 뒤에 숨었다. “부쓰, 워데 짜이 한궈.(不是、我爹在韩国、아니얘요. 우리 아버진 한국에 있어요.)” “싸 하이즈, 쩌쓰 니 친데. 타 충한궈 깡 후이라이.(傻孩子、这是你亲爹、他从韩国刚回来、바보같은 녀석, 이분이 네 친아버지다. 한국에서 금방 돌아왔어.)” 왕씨가 연순이의 등을 다독여주며 손목을 잡고 철구의 앞에 내세웠다. 철구는 연순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연순이는 고개를 틀어 철구를 외면한채 오돌오돌 떨기만 하였다.  마치 갈곳이 없어 남의 둥지 옆에 자리를 틀고앉아 추위에 떨고있는 참새와 같았다. 철구는 연순이를 데리고 흠부촌의 옛 소학교운동장옆에 있는 강옥의 묘지를 찾아갔다.  그사이에 묘지는 볼품없이 작아져있었다.  얼핏 보면 무덤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길옆에 무져놓은 흙더미 같았다. 더구나 마을에서 묘지옆에 쓰레기를 내다버려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  비록 그녀가 생전에 몸에 걸치고있던 봇나무껍질을 대신 묻은 묘지였지만 그나마 철구에겐 마음의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내가 왔소. 연순이도 데리고 말이요.” 철구는 준비해가지고 간 제물을 차려놓고 꾸벅꾸벅 절을 하였다. 그리고나서 연순이도 묘지앞에 꿇어앉혔다. “연순아, 네 에미의 묘지이다. 어서 절을 올리거라.” 연순이는 술을 붓고 절을 하더니 갑자기 “마!(妈!어머니)…”하고 부르며 막혔던 보뚝이 터지듯 울음을 쏟아냈다.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는 연순이의 가여운 모습이 그렇듯 처량할수가 없었다. 푸실푸실 눈은 계속 내렸다.  참으로 기이했다.  강옥이가 철구에게 시집 오던 날도 눈이 내리고 철구가 마을을 떠나던 날도 눈이 내렸는데 오늘도 또 눈이 내리고있다.  과연 이것은 무슨 까닭일가? 철구는 마을동구밖에서 연순이와 헤여졌다. “연순아 미안하구나. 이 못난 아빠가 너를 두고 또 떠나는구나.” “…” “연순아…” “아빠, 또 가? 흑, 아빠가 떠나면 난…” 철구를 만나서 처음으로 조선말로 또박또박 말하는 연순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바로 그 말이였다.  연순이는 철구가 자기를 왕씨에게 맡기고 한국으로 떠나갈 때의 그 말을 되풀이하고있었다. 철구는 연순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비록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연순이는 분명히 자기의 딸이였다.  세상이 열백번 바뀐다고 해도 자기가 연순이의 아버지로 살아가야 하는것은 하느님이 내린 연분이요, 숙명이였다. “연순아, 누가 뭐래도 넌 아빠의 딸이다. 아빠가 한국에 가서 돈을 더 많이 벌어다가 연길에 아빠트를 사놓고 너를 데려가마…” 연순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5년전에 철구가 한국으로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별로 징징대지도 않았다. 하지만 얼굴엔 서글픔이 가득 묻어있었다. “아빠, 꼭 나를 데리러 올거지?…” “그래, 꼭 데리러 오마, 약속할게…” 철구는 연순이와 손가락을 걸었다.  그제야 연순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린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으랴?  하지만 연순이는 또 그 외로움과 고독의 연장선에 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찌보면 그것은 연순이의 운명이였다.  아니, 어쩌면 연순이가 혼자만 겪는 고통이 아니였다.  수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겪는 고통이였다. 철구는 몸을 돌려 씨엉씨엉 걸어갔다.  그가 헤치고 간 생눈길엔 큼직한 발자국이 찍혀졌는데 동구밖에 동그마니 서있는 연순이와 잇닿아있었다.  멀리에서 손을 저으며 가끔씩 손등으로 눈굽을 훔치는 연순이의 모습이 흩날리는 눈송이에 가리워져 어슴프레하게 안겨왔다…     - 2014년  제8월호  -
2    생일찬가 댓글:  조회:996  추천:0  2010-01-19
[단편소설]   생 일 찬 가          나의 생일은 동지달 초여드레이다.    예전 같으면 크게 웅성대였을 방안에 홀로 생일상을 마주하고 앉아있노라니 지나간 옛일과 더불어 사람이 이다지도 그리운줄을 모르겠다.    전에는 로친네가 차려주는 생일상을 받고 키넘어가는 자식들의 축복속에 괴로운줄을 몰랐건만 오늘은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뿐이다.    며칠전 로친은 구정물바게쯔를 들고 밖에 나갔다가 살얼음발에 발을 빗디디며 넘어지는바람에 그만 늙은몸이라 쉽게 다리뼈가 부러져 지금은 현성병원에 가 누워있는것이다.    속담에 <늙으막사랑이 기둥뿌리를 뽑는다>고 하더니 환갑도 지나고 이제 70을 바라보는 파파늙은 로친네를 새삼스레 생각는 나자신이 어쩐지 낯뜨겁게 부끄럽기만 하다.    로친은 다리를 상하기전에 집에 있는 막내딸년더러 외지에 가있는 오빠네한테 편지를 띄우라고 알리면서 이번의 아버지생일은 혹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며 바가지를 박박 긁더니 지금 병원에서 어떻게 보내고나 있는지?    나와 로친은 슬하에 아들 셋과 딸 둘 이렇게 5남매를 두었는데 지금은 막내딸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집, 장가를 가 외지에서 일들을 보고있다.    며칠전 연길 일보사에서 일을 보는 큰아들이 제 어미의 기대와는 달리 편지와 함께 돈 500원을 부쳐보내면서 아버님에게 생일상을 잘 갖추어 드리라는것이였다.    큰아들은 편지에다 사업취재차 장춘으로 간다면서 아버님생일에 갈것 같지 못하다는것이였다.    그래도 너그러운 마음에 기자란 원체 그렇고그런것이니 어찌 집안의 녀편네들처럼 집구석에 처박혀 있겠는가고 생각하니 그놈의 자식이 그래도 난놈인것 같다.    여기 이 두메산골의 자그마한 중학교교원으로부터 일약 벼슬하여 남들이 그렇게도 부러워하는 일보사의 기자편집으로 사업할라니 여간만 바쁘지 않겠는가?    참, <개천에서 룡이 솟은 셈>이지    그리고 그때 둘째놈은… 그때 둘째놈은 오지도 못하고 대신 녀편네를 보내서 아버님생일에 갈것 같지 못하다고 기별을 전하지 않았던가?    둘째놈도 어느 한 편벽한 시골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는데 어느핸가 나도 모르게 그 무슨 작가협횐지 하는데 들어가지고 날마다 사업외에 글을 쓴다고 란리더니… 하긴 작가라는것이 결국은 옛날의 문장가를 말하는가보지.    그래도 둘째며늘애는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시애비앞에서 제 남정 자랑만 주섬주섬 한무더기 섬겨대면서 어디 뭐 동북3성중청년작가들의 창작실정교류모임에 참가하고저 할빈으로 떠나갔다지.    그놈도 못난놈은 아니야. 제노릇은 착실하게 한놈이였거든. 글쎄 맏이를 따라 날마다 시인지 소설인지 하는것을 쓰던것이 끝내는 작가로 되였으니 그놈도 역시 인물은 인물이야.    그런데 셋째놈은 앞서번에 미리 시골에 내려와서 뭐라고 했던가?!    아, 옳지. 그 무슨 조동령 때문에 몇백리나 되는 왕청땅으로부터 떠나올수 없다는것이였지.    그러니 그놈도 원체 농촌에서 구을어 먹던 놈이였는데… 그래도 어느 방송국인가 하는데 문예편집으로 들어간다고했지. 결국에는 그녀석도 제 형들을 본받아 글 깨나 쓰더니 글쎄 제 형들을 제치고 먼저 우화시집을 4권이나 세상에 내놓았다지 않겠나?    허허허…    그러나 참, 다 키워놓으니 모두 제 갈데로 뿔뿔히 흩어져 나와 로친은 이젠 형체만 남은 거미신세로밖에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 괘씸한 막내딸년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안누? 고년도 뭐 저들 오빠처럼 글을 써서 작가로 되겠다구 호들갑을 떨며 밤낮 글을 써대더니 이젠 제법 현문화관이요, 진문화소요 하는데로 중뿔나게 뛰여다니던것이 오늘은 현문화관창평실에서 선생님들이 사업검토를 내려왔다면서 저녁에 집을 나간것이… 에참, 고년도 역시…    그래도 괜찮아!    옛날 같으면야 언제 조런 코비린내나는 계집애들이 감히 현의 <관원>들을 쳐다나 보았을라구?    허허허…    그래서 아들 세놈이 모두 작가로 되였으니 이 애비도 밖에 나가면 동네어른들한테서 작가를 키운 애비라고, 아들 세놈을 잘 두었다고 떠받들리운다니깐!    그런데 뭐 이 무식쟁이인 애비가 그놈들을 가르쳤다고? 어쩌면 아들놈들과 함께 사업한다는 작가선생들까지도 어찌나 우리 령감, 로친이 아들을 잘 두었다고 떠받들고다니는지.    그래도 아들 세놈의 덕분에 무슨 주석이라 했지? 그래 뭐 작가협회 주석이란분도 다 만나보았으니 시골 촌놈으로서는 늙으막에 눈을 틔운 대운이지비. 이때까지 나이 70을 훨씬 먹으면서도 한개 나라에는 주석이 한분밖에 없는가했더니 그놈들의 작가협회에도 주석이란 계신다고 했었지.    그래, 그놈들 셋이 모두 오지 못해두 별문제는 아니지. 지금은 사회주의 새 농촌건설이라고 여기 이 두메산골 로덕촌에서도 농촌문화건설을 시작했을라니 그놈들의 일들이라고 어찌 한곳에 매운채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작년까지만 해도 아들 세놈과 딸 하나에 따르는 며늘들에 사위까지 와서 크게 동네방네 청해 들이고 장수잔 높이 돌렸건만 오늘은…    그래도 옛말과 같이 <부모어시 생각는데는 딸자식이 낫다>고 유신산골에 시집보낸 큰딸년이 해마다 꼭꼭 제 남정을 배동해가지고 차없는 시골눈길을 헤치면서라도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금년 초봄에 불쌍한것이 생활이 펴일락하더니 그 무슨 암인지 뭔지 하는 불치의 병에 걸려 이 늙은것들을 두고 앞서갈줄이야…?!    휴- 옛날에는 암인지 뭔지 하는 그런 병은 없었는데. 지금은 쩍하면 간암이요, 위암이요 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다고 했지.    거 몹쓸 암이라는것도 참! 나같은 늙은것들이나 잡아갈거지 새파란 나이에 한창 복된살림 꾸려가려고 버둥거리는 젊은놈을 글쎄…    그런데 요년, 요 막내딸년은 왜 아직도 안 오누? 이젠 10시라 밤도 깊어가는데…    그래도 고년이 나이 어려도 제법 셈팽이 다 든 모양이야. 하여튼 정말이지 지금은 까놓고 말해서 문학이든 뭐든 사람이란 먹물이 들어야 되여!    아까 저녁녘에도 고년이 애비한테 어머니가 집을 비워 생일상을 갖추어드리지 못해서 자기가 대신 갖춘다며 어디서 굴러온 놈인지는 몰라도 허여멀끔한 사내놈 하나 차고와서 나 좋아하는 통닭구이대신 꿩 한자웅으로 차린다며 반나절이나 지지고 볶고 야단이더니 상다리 부러지게 한상 푸짐히 갖추어놓고는 저희들이 돌아오지 못해도 서운한 생각 마시고 혼자서라도 폭 드시라면서 훌쩍 떠나가더니 왜 아직도 안 오누?    어쩌면 거 현문화관의 창평실선생님들도 너무 하다니깐.    오늘은 고년들을 좀 일찍 돌려보낼거지. 그래 내가 어찌 고놈들을 기다리지 않고 늙은것이 주책머리없이 혼자서 납작납작 이 술을 따라먹겠나?    -    창밖에서는 두만강을 훑는 여우바람이 윙- 윙- 전선줄을 때리며 세차게 불어치고있다.    창호지가 바람에 부르르 떨면서 별 싱그러운 소리를 낸다.    ……    휴-    이 추운날 병원은 춥지도 않은지? 어쩌면 병원에서는 구들(온돌)을 놓지 않을가? 그러다가 로친네가 관절염이라도 더 도진다면…    허참, 내가 왜 이런 부질없는 생각만 다 하누?    어저께 병원에 갔을 때 의사선생님들이 안심하고 돌아가라면서 저희들이 모두 잘 돌봐준다고, 병원에는 간호원이 따로 있어 환자를 돌봐드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이 주책머리없는 늙은것이 따로 남아있겠다는것을 억지로 등을 떠밀어 돌려세우지 않았던가?    허, 홀로 이 상을 받으니 왜 이다지도 사람이 그리울가? 해마다 생일날이면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녀석들까지 와 로친까지 한상에 모시고 즐겨주던 날들이 종래로 있어본것 같지가 않구나.    -    윙- 윙-    두만강을 훑는 강바람은 무섭게 창살을 후려갈긴다.    ……    아차, 고 막내딸년들이 돌아오느라면 몹시 추울텐데… 장작이라도 한아궁이 더 서려놓아야지. 그래 그래야지. 고놈들이 돌아오면 언몸들이나 후끈후끈하게 녹이게 해야지.    -    똑, 똑, 똑…    ……    아니, 그런데 저건 무슨 소린가? 그래 딸년놈들이 돌아왔단말이지?    인제는 고년도 사내를 차고다니며 제격인데.    -    탕, 탕, 탕…    …    아?! 옳지! 내가 이게 무슨 생각이야. 딸놈들이 밖에서 얼면 어쩔라구. 사람이 늙으면 생각이 많고 또 걸음도 뜨고.    아니, 이것보지. 이 주착을… 어서 문이나 열어주지 않고.    -    “어? 가네. 가. 잠간만 기다리라구. 내가 가네.”    부뚜막의 끌신을 꿰며 바쁘게 달려가 문을 열었다.    오후까지도 괜찮은 날씨였는데 저녁나절부터 시작해서 눈이 내렸는지 문밖에는 전신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쓴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거 누구시오?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어서 들어오게. 밝은곳에 있어선가 눈앞이 잘 보여야지. 자 추운데 어서 들어오게…”    “령감…”    “뭐…?! 령감이라구?! 로친은 병원에 있는데… 잉? 임자가?”    “그래유. 령감 나 돌아왔수.”    “뭐라?! 그래 자네가… 이 눈길에…”    -    눈보라가 사납게 휘몰아치는데 열려진 부엌문은 바람에 부르르 떨고 도배질한 창호지는 앵앵 무서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래 로… 로친네가 정말 돌아왔단 말이유?!”    두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았다.    겨드랑이밑에 쌍지팽이를 끼고 하얀 눈바람속에 서있는 그 사람은 분명 로친네였다.    로친의 손에 들린 보자기에서 통닭구이가 대가리를 비죽이 내밀고있었다…    한순간 어안이 벙벙한채 넋없이 서서 로친네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령감… 여보 령감…!”    “여보…! 로… 로친네!” ‡                
1    천년의 맛 댓글:  조회:1038  추천:0  2010-01-19
〔단편소설〕   천년의 맛     (1)     “혜숙아, 뭘하고 있냐? 후딱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꾸물대다간 어느 천년에…” 아침상을 물리기 바쁘게 장모는 딸 혜숙이를 들볶기 시작했다. “장모님께서는 뭘 하시려고?” “어제 동무가 두부를 즐겨 자신다고 말씀했더니… 오늘은 기어이 초두부를 앗는다면서 저렇게 부산떨어요.” 나의 물음에 혜숙이는 (잔잔하게) 웃었다. 장모는 언제 준비하셨는지 벌써 손매돌 두짝을 부엌에 이미 엎어놓은 가마뚜껑우에 올려놓고 쭈크리고 앉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반질반질 손 때 묻은 나무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장모가 빙-빙 돌리는 매돌을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매돌은 윙윙 소리까지 내며 부드럽게 돌아갔다.    장모님은 왼손에 쥔 길죽한 나무숟가락으로 돌아가는 매돌의 입구에 수시로 물에 불려 커다랗게 퍼진 누런 콩을 한술한술 떠넣었다. 그런데 콩알 한알도 곁에 흘리지 않고 너무나 정확하게 매돌의 입구로 들어갔다. 얼마 안되여 하얀 콩비지가 돌아가는 매돌의 두쪽사이를 타고 엎어놓은 가마뚜껑우에 줄줄 흘러내렸다. 장모는 량손으로 엇바꿔가며 돌리던 매돌을 멈추고 이번에는 앞끝이 반달처럼 휘여들어 무지러나간 길다란 알루미늄국자를 들고 가마뚜껑우에 흘러넘치는 콩비지를 곁에 놓인 함지에 퍼담았다. 그리고는 또 량손을 바꿔가며 매돌을 힘차게 돌렸다. 장모의 백발의 머리카락속에서 젓가락만큼 굵은 유난히 하얀 은비녀가 장모님이 좌우로 몸을 기울일 때마다 반짝반짝 찬연하게 은빛을 뿌렸다… 부엌아궁이에서도 탁-탁 장작이 타면서 내는 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왔다…     (2)     경상남도 합천에 태를 묻은 할머니는 가끔 집에 드는 나그네들을 대접한다고 손매돌을 돌려 뜬 김이 서린 부엌에서 두부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힘들게 려인숙을 운영하면서 두부를 만든 증조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었다. 증조할머니가 만든 순두부가 참으로 맛이 있었다고… 그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다시는 증조할머니의 두부사연을 들어보지 못했다. 소학교에 다닐 때에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콩을 사발에 담아가지고 한족 사람들이 만드는 “두부방”에 가서 콩 한 사발에 두개의 커다란 두부모를 가공비 5전씩 주고 바꿔먹었다. 그 두부는 언제나 비지가 탄 냄새만 났다. 그런 냄새나는 두부라도 그 시절에는 귀한 음식이였다.   가마가 넘칠듯 콩물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장모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콩갈음이 가마전을 넘길세라 양철로 만든 쇠바가지를 들고 조심스레 휘젓더니 어느새 푹푹 떠서는 가마목 함지에 준비해놓은 새하얀 헝겁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주머니아구리를 비틀어쥐고 지긋이 내리눌렀다. 새하얀 헝겁주머니의 면직사이로 뽀얀 우유같은 콩물이 뿌지직뿌지직 소리를 내며 솟아나왔다… 그 콩물이 다시 가마에서 달여질무렵은 서산의 해가 바야흐로 넘어가는 저녁무렵이다. “혜숙아, 날래 양념장을 치거라! 파랑, 고추가루랑 듬뿍 넣고…”    쇠바가지를 들고 콩물을 휘저으며 성에꽃마냥 연한 두부발이 엉키는것을 들여다보시던 장모님께서 딸에게 분부내렸다. 장모는 옛날 닭곰 할 때 쓰던 뚝배기에 초두부를 넘쳐나게 담았다. “어려워말고 많이 들게…” 땀에 젖은 장모의 얼굴에는 행복 같은 미소가 어린다. 나는 체면을 접고 대뜸 초두부 그릇에 숫가락을 박았다. 그리고는 무작정 한술 떠서 입안에 넣었다. 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잠간새에 초두부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먹었다. 내가 다시 한 그릇을 더 받으니 장모님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시뻘건 팔뚝으로 쓱쓱 닦으며 입이 미여지게 웃었다. “그래야지. 음식은 만든 사람의 성의를 살피는게야. 그래 많이 들게. 아무렴, 이런 눅거리 두부야  못해주겠나?” 나는 혜숙이와 약혼말을 떼고 처음으로 두만강 변두리에 자리잡은 길지촌 혜숙이네 집으로 놀러갔다가 농가에서 초두부를 앗는것을 생동하게 보게 되였고 또 그처럼 맛있게 먹었다.     (3)     점심밥을 먹고 오후 일찍이 외손녀를 앞세우고 들미나리 캐러 나섰던 장모님께서  되돌아와 혜숙이를 불렀다. “얘 혜숙아. 오늘이 스므이틀이다. 그래 콩을 물에 불궈놓았느냐? 래일 새벽에 퍼뜩 초두부를 앗을거면 서둘러야 하느니라.” “엄마도 참, 초두부가 뭐 그리 좋다고 자꾸만…” 혜숙이의 못마땅해하는 말에 장모님께서는 눈을 찔 흘겼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년은 아직 멀었어. 그게 초두부가 음식 같냐?” “음식이 아니면 먼가요?” “이 철없은것아, 당장 시집갈 년이 그리도 철이 없구서야.” 이런 말을 남기고 미나리 캐러 가셨던 장모님은 저녁편에야 절뚝거리면서 들어섰다. “아재, 외할머니가 제방뚝에서 굴렀어요. 저녁상을 갖추는데 장모님을 따라갔던 조카애가 밥상앞에서 종알거렸다 “요년이 주둥아릴…” 장모님이 떠듬거리는 외손녀의 머리를 살짝 튕기며 어색하게 웃었다. “음, 돌에 걸채여 넘어졌었네” “아임다. 제방뚝에서 구불었슴다.” 조카애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정색해서 종알거렸다. “괜찮네. 발목뼈가 좀…” 이튿날 풍성한 생일상에는 장모가 손수 앗은 초두부까지 뚝배기에 수북하게 담겨있었다. 그러나 장모님은 그날 내내 접지른 상한 발목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정말이지 그 발목으로 어떻게 새벽 녘 초두부를 앗았는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촌위생소의 의사를 모셔왔더니 넘어질 때 무릅뼈가 돌에 쫒기여 상한것 같다고 하였다. 장모님은 시내의 큰 병원에 가서 x광 사진을 찍으라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모님은 그때부터 20세기가 저므는 그해 세상을 뜰 때까지 불편한 오른 다리를 힘들게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4)     이듬해 정월 초이틑날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가 막가는 그믐날 나는 혜숙이와 함께 장모한테로 음력설 쇠러 가게 되였다. “에그에그 이 추운데 어찌들 왔냐?” 장모님은 바람막이도 없는 길가의 뻐스역까지 마중나와 있었다. 장모님은 뻐스에서 내리는 혜숙이를 밀어놓고 뒤에 선 나의 두손부터 꼭 잡았다. 하지만 장모님의 두손은 이미 얼음장 같이 차가워져 있었다. “장모님두 이 추운 날씨에 마중은 뭐 나오시며…” 나는 외투를 벗어 우들우들 떨고있는 장모님의 등굽은 몸우에 씌워드렸다. 저녁에 혜숙이가 설빔으로 내놓은 새 옷 한 벌을 두고 장모님의 치하가 그칠새 없었다. “에그그… 이 사람 사위, 옷은 뭘 다 해가지고… 이 옷은…” 장모님은 새 옷을 곱게 개여 농속에 깊숙히 넣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입고플 때… 혜숙아, 얼른 헛간에서 콩을 내다가 물에 불궈놓아라. 래일 초두부를 앗게.” 장모님은 농문에 노란 쇠까지 찔러놓고는 설겆이를 하고있는 혜숙이를 급히 불렀다. “아이참, 엄마두. 저 동무가 아무리 두부를 좋아한다고 설날까지도 두부를 앗겠수? 사위가 고우니 이젠 로망이지 않수…?”    혜숙이가 헛간으로 나가려는 장모님의 옷자락을 잡고 웃으면서 말렸다. “왜 설날에 두부를 앗지 말라는 법 있다냐?” 장모의 고집은 누구도 못 꺾는다. (설날 아침 밥상에는 산해진미가 다 올랐다. 삶은 통닭은 물론 새파란 들미나리까지 올라 연연하게 입맛을 돋구었다. “미나리는 내가 가슬(가을)에 꺾어서 김치움에 보관해두었던거네. 저 사람은 이걸 생것채로 고추장에 잘 묻혀먹었었지?” 장모는 미나리를 그릇채로 나의 앞에 밀어놓고는 삶은 닭의 날개를 북 찢었다. 그리고는 찢은 닭의 날개를 나의 밥그릇에 놓으며 푸념같이 중얼거렸다. “새해에는 훨훨 날아야지… 그리고… 그리고 사람을… 사람을 아끼라구!” 장모는 내가 닭의 날개살을 뜯는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6)     그믐날, 불현듯 초두부가 먹고싶었다. 장모님께서 부엌의 엎어놓은 가마뚜껑우에 손매돌을 올려놓고 물에 불궜던 콩을 갈아 손수 앗아주던 초두부가 별스레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그러나 장모님의 뜨거운 향기가 피여오르던 초두부는 어디에도 없다. 시장통 음식매대에서도 장모님의 향기가 피여오르는 추억의 초두부는 찾을수가 없었다. “여보, 우리 오늘 초두부를 앗아먹을가? 오늘따라 왜 초두부가 이처럼 먹고프지?” “예? 그믐날에 웬 생뚱같은 초두부예요?” “글쎄, 왠지 장모님께서 앗아주던 그 초두부가 불현듯 생각나서…?” 혜숙이는 나의 말에 힘없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흘렸다. 재작년 장모님의 돌 제사를 마치고 모두들 제사날을 고치자고 합의를 보았었다. 장모님께서 음력으로 정월 초이튿날에 돌아가시다보니 음력설이 장모님의 제사날로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작년에도 음력설날에 장모님의 제사상을 차렸다. 해마다 설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나는 늘쌍 안해인 혜숙이에게 장모님의 사랑은 바로 돌아가신 그 장모님의  딸자식에게서 향기로 피여난다고 말했다. 나는 장모님의 초두부맛을 영원히 잊을수가 없다. 비록 혜숙이와 첫선을 보고 장모님에게서 받은 첫 대접이였지만 나는 손매돌로 콩을 갈아 농가집에서 손수 앗는 초두부는 그때가 처음이였다. 나는 지금도 초두부의 그 첫 맛을 잊지 못한다。 초두부는 음식이 아니라 장모님의 정이였다. 그 정은 다시 향기가 되여 천년의 맛으로 되였다. 나는 아지랑이처럼 피여오르는 천년의 맛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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