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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을 열어가는 우리 말 "노래소녀"
2017년 09월 29일 09시 30분  조회:534  추천:0  작성자: 김태현

하늘길을 열어가는 우리 말 “노래소녀”

ㅡ 화룡시문화관 김춘매가수의 이야기
 

도 영
 
 
      왔네 왔네 번영세월이 왔네
      기다리고 기다리던 번영세월
      산넘고 바다건너 찾아왔나
       …
 
    김창호 작사, 김남호 작곡으로 된 연변음악 “번영세월이 왔네”가 우리 말의 색갈 그대로, 민요 남도창법의 은은한 멜로디가 북경의 전파를 타고 전국의 방방곡곡으로 울려퍼진다. 한 음 한 음 음절의 높이에 따라 소용돌이치고 물갈기를 일으키는 황하의 포효하는 거세찬 물결마냥 사람들의 심금을 황홀하게 울려준다.
    2013년5월22일, 북경에서 열린 중앙텔레비죤방송국 “희곡과 응악”프로에서 조직한 “정기두연ㅡ2013몽장유회가수 우승쟁달전(争奇斗艳-2013蒙藏维回朝奔壮冠军歌手争霸赛)”에서 연변의 조선족으로 자랑스럽게 무대에 올라 수백명의 본토박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조선족 “우수가수”라는 월계관을 가져온 가수가 바로 화룡시문화관에서 간판가수로 활약하고 있는 김춘매양이다.
    김춘매는 1988년2월17일 아버지 김인준과 어머니 조은숙의 무남독녀로 화룡시 투도진의 한 교원가정에서 태여났다.
    김춘매는 중학교 어문교원인 아버지와 유치원 교양원인 어머니의 영향하에 어려서부터 정확한 우리 말 발음을 익혀왔고 또 어머니의 흥얼거리는 노래소리에 맞춰 앵무새처럼 따라 부르기를 즐겨했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훌륭한 가정교육과 부모님들의 사랑속에 활발한 성격을 키워왔고 그 어떤 취미에도 끝을 보는 강잉한 정신을 양성해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노래부르기 좋아하고 성격도 활발한 딸애한테 취미에 맞는 특장적인 교육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마침 소학교에 음악반이 개설되면서 김춘매는 부모님들의 의사대로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기초를 닦게 되였다. 그러나 특별히 작고 약한 체질의 춘매에게는 악기보다 천성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곱고 활달한 목청이 례사롭지가 않았다.
    물론 13살나던 해 화룡시에서 조직한 장기자랑 노래경연에서 춘매가 부른 노래가 소학교조 1등을 따내면서 악기를 탐하는 부모님과 음악반의 선생님들을 감동시키고 성악쪽으로 전향하게 되였다. 그녀의 부모들도 딸애의 기특한 재질을 일찍 보아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늦었지만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성악교수인 강신자교수님을 찾아서 딸애의 우리 말 노래강사로 되여달라고 부탁했다.
    강신자교수는 처음 춘매의 노래를 들어보고 춘매의 재질은 독창적인 민요창법에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춘매는 매주 서너시간씩 강신자교수의 엄한 가르침하에 남도창법을 익혀왔고 자기의 타고난 구성진 목청으로 우리 말 노래선률의 쾌활한 률동을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활발하게 부르는 가수로 성장하게 되였다.
    그러나 성장의 길에는 곤난과 어려움이 없다고 말할수 없다.
우선 화룡시 투도진에서 매주 서너시간씩 연길에 있는 강신자교수의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는것이 그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더우기 번마다 춘매를 동반하는 어머니의 로고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예로부터 “엄격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만든다”고 했다.
    악착같이 달려든 발성련습시간에 목이 쉬고 입이 터져도 강인한 성격의 매운 고추같은 춘매의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그렇게 험한 련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서 춘매는 드디 2004년6월 연변대학 사범분원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녀는 공부를 하면서도 꾸준하게 노래공부시간을 어기지 않았고 짬짬이 그녀만의 민요 남도창법을 련마하고 숙성시켰던것이다.
    지난 일들을 둘러보며 김춘매가수는 조용히 웃었다.
    “부모님들은 가수로서의 화려한 무대생활보다 정직하게 사람을 가르치고 키워내는 성스러운 교원사업에 몸 담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혼신을 다 쏟은 성악 발성련습으로 굳어진 몸이여서도 아니고 다만 제가 애착하고 사랑하는 우리 말로 된 노래를 맘껏 불러보고 싶었고 언젠가는 저도 우리 나라 수도인 북경무대에 올라 조선족이라는 긍지감을 세상에 떳떳하게 자랑하고싶었습니다.”
    이렇게 김춘매가수는 드디여 가수로서의 삶에 도전하게 되였다.
    2007년 7월 연변대학 사범분원을 졸업하고 교원으로 강단에 설 수 있는 기회마저 포기한 채 자기의 소중한 꿈을 안고 화룡시문화관의 연원모집 광고를 신문과 방송에서 접수하고 찾아왔다.
    그때의 김춘매는 애티가 다분한 19세의 처녀였다.
    “그때는 참, 호호호. ‘우둔한자가 범 잡는다’고 했던가요? 멋도 모르고 무턱대고 노래 하나만으로 삶을 선택했으니깐요. 그래도 문화관에 입사할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것만으로도 만족했어요. 2007년12월부터 시작한 소분대온돌공연에 참가할 수 있는 영광을 안고 갓 학교를 졸업하고 아무런 실전경험도 없는 제가 당당하게 관중들을 상대로 떳떳하게 그동안 배우고 갈고 닦았던 저만의 민요 남도창법으로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으니깐요.”
    김춘매가수는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하여 2009년 12월 문화관에 정식으로 입사하기 전까지 2년여의 시간을 화룡시 산간벽지를 넘나들며 화룡시문화관 온돌공연팀에 새로운 민요 남도창법으로 독특한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김춘매가수는 오늘날의 이 모든것은 그때의 그 온돌공연이란 소박하면서도 간고한 시련 속에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영광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지난 10여년간 김춘매가수는 화룡시문화관의 간판가수로 대담하게 활약하면서 입사전에 소중한 꿈으로만 안고 있었던 프로가수로서의 삶의 환희를 드디여 현실의 극찬과 환호성 속에 터뜨릴 수가 있었다.
    김춘매가수는 지난 2008년10월19일, 중국CNR과 한국 CBS가 함께 하는 “중-한 하나로 가요제”에서 3등상에 입상하여 동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2010년8월28일,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 연변천음상업무역유한회사, 연변음악가협회, 연변인민방송국에서 공동 주최한 <천음>컵 “2006ㅡ2010 중국 조선족 과외가수 민요콩클 총결산”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2010년9월19일, 료녕성 심양시에서 열린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에서 주최한 “제1회 전국 조선족 노래자랑” 에서 우리 민요 “아리랑”을 불러 전국 각지에서 온 24명의 쟁쟁한 전업가수들을 물리치고 금상을 받았고 2011년10월14일, <커시안컵(可喜安杯)> “제1회 북경조선족민속풍습절 카라OK경연(第一届北京朝鲜族民俗风情节卡拉OK大赛)”에서 1등의 금메달을 따왔다.
    한편 2017년 6월 24일에 있은 산서성 텔레비죤방송국에서 조직한  “황하로부터 시작한 노래(歌从黄河来)” 전국 소수민족 노래경연에서 우리 말로 된 노래 “아리랑련곡”을 불러 단연 1위로 예선을 뛰여넘어 년도 결승전에 오르게 되였다.
    오늘의 김춘매는 황홀한 꿈만 무르익혀왔던 지난 10여년전의 “노래소녀”가 아니였다. 자기가 선택한 음악예술의 끝없는 경지를 꾸준한 노력과 부지런한 탐구의 정신으로 자기만의 소중한 꿈을 안고 가수의 길에 도전장을 내걸었던 앳된 소녀가 어느덧 실전경험을 탄탄하게 쌓은 30대의 명실상부한 전업적인 프로가수로서 삶의 길에 큰 걸음을 내디딜 수가 있었다.
    올해 3월24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사랑으로 가는 길” 프로그람에 출연하여 태여나서 석달만에 엄마를 여의고 또 6년전에 아빠마저 잃고 오빠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와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연길시 건공소학교 2학년에 다니는 리유미학생을 만나 그동안 비여있는 부모님의 자리를 안타깝게 걱정하면서 리유미와 할머니에게 따스한 사랑의 마음과 희망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심금을 울려주는 노래 “당신이 가는 길에”를 열창하는 김춘매가수의 또 다른 성격의 참신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 김춘매가수는 화룡시문화관의 성악배우로 해마다 진행되는 백여차례가 넘는 크고 작은 각종 공연과 소분대 온돌공연 등 다채로운 공연무대에 나서면서 후배 성악배우들에게 가수로서 뿐만 아닌 선배로서 리더로서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화룡시문화관의 간판가수로 좋은 활약을 보일 뿐만 아니라 결혼 3년차의 주부로, 아기 엄마로 또 안해로서의 역할도 잘하고 있다.
    김춘매가수는 날마다 연길과 화룡을 드바삐 통근하지만 사업터에서는 항상 쾌활하고 어여쁨을 자랑하는 활발한 “노래소녀”이다.
이제 다가오는 년말이면 김춘매가수는 지난 6월 산서성(山西省)에서 있은 “황하로부터 시작한 노래(歌从黄河来)” 노래경연 결승전에 나서게 된다.
    또 한번 찬란한 무지개가 파란 하늘에 걸릴것이다. 그 황홀한 무지개다리 우에서 떳떳하게 하늘길을 열어가는 김춘매가수의 어여쁜 모습을 다시한번 그려본다.
 
 
 
 
 
2017년7월17일
 
2017년 8월 문화시대 제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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