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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의 질서화와 시의 골격
2019년 11월 27일 14시 54분  조회:982  추천:0  작성자: 륙도하

무질서의 질서화와 시의 골격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역사 이래 사람들은 보이는 사물과 대상, 보이지는 않으나 느껴지는 것까지 상징적 언어로 구분하여 왔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의 세계, 즉 보편적 음성언어와 문자언어로 발전시켜 왔고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진리는 계시적 언어, 또는 영적 언어로 구분지어 신(神)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시인은 신의 영역 바로 아래 단계인 형이상학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언어를 축약하여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세상 모든 예술의 제일 앞자리에서 거명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를 쓸 때 우선 시인의 자세부터 배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시만 좋으면 훌륭한 시인인양 알아주는 작품성 지상주의가 우리 시단에 인성이 덜 성숙된 시 노동자나 시 기술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요즘은 시만 잘 쓰는 사람이라고 우대받는 시대가 지나고 있다. 이제 사람다운 시인, 시에 값하는 시인이 진정한 시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시를 쓴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보편의 세계에서 특수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보편에서 특수를 찾는 작업'은 시인의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기억해야할 작법이다. 그러나 보편적 현상을 끌어와서 시를 써 보려고 하면 무질서하고 가닥이 잡히질 않는다. 그래서 시 창작이란 무질서한 사물을 질서화 시키는 작업이라고도 한다. 시에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는 말은 시의 골격을 갖추라는 말이다. 골격을 갖춘다는 이야기는 시적 주제에서 이탈하여 이 말 하다가 저 말 하거나 난삽하여 무슨 말인지를 오르는 잡문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즉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여서 그 주제와 연관되는 간접적인 이야기나 이미지로 연결되는 확장성 있는 시를 쓰라는 말이다. 이 연습에 게으름을 피우면 시의 실력이 늘지 않는다.

  시를 잘 쓰려고 하지 말자. 시가 되도록 쓰자. 이 말도 아주 중요하다. 화려한 언어를 동원하여 아름답게 쓰려고 하면 시도 잘 안 되지만 그런 시는 그 화려한 기교가 시의 감동을 까먹어버린다. 감동은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시인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고 쉬운 보통 말을 사용하되 말의 조합을 제대로 하는 노력이 시를 잘 쓰는 방법이다. 말의 조합을 잘 한다는 것은 시의 골격과도 직결 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논리가 아니라 비논리를 논리처럼 말하는 작업이고 드러난 뜻이 아니라 감춰진 또 다른 이야기를 쓰는 방법이다. 논리가 보편적이라면 비논리의 논리는 주관적 특수성을 띠는 것이다. 그렇게 써놓고 보고 또 보고 어색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시를 써놓고 밤새도록 퇴고를 했기에 고칠 게 더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것이 바로 초고(草稿)다. 하루 이틀 여유를 두었다가 또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그때 또 고쳐라. 그것이 퇴고다. 퇴고는 여러 번 할수록 시가 단단해 진다.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최문자, <닿고 싶은 곳> 전문


  우리가 시 쓰기에 실패하는 이유야 많겠지만 초보자들이 가장 안 되는 부분이 시의 주인공이나 등장 하는 대상에게 확실한 역할을 주는 작법이 서툴다. 다시 말해서 시의 집중도나 골격이 약한 경우가 많다. 위 시는 '나무'라는 주제에 끝까지 집중한 시다. 시가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나무를 이야기 하면서 결국 생명에 대한 시학으로 치환 되고 있는 것이다.

   - 이어산
 




쉬운 시 쓰기와 시적 대상 찾기

   시를 쓰다보면 절벽이 가로막은 것처럼 도무지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거나 싱크홀 같은데 빠진 것 같이 허우적 거리다가 시 쓰기를 그만 둘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시인치고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 480~406)는 "약간의 노력으로 좋은 시의 열매를 맛보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2천5백 년 전에 이미 설파 했는데 그 말은 오늘도 유효하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끊임없는 노력으로 시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는 사람살이의 지점을 읽어내는 일이 곧 시 쓰기요,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삶의 질곡을 새롭게 진단하여 세상에 보고하는 일이 시 쓰기인데 신이 아닌 이상 노력 없이 되겠는가? 그리고 엄밀하게 따지자면 시 쓰기의 성공이란 사실 없다. 다만 좋은 시 쓰기가 있을 뿐이다. 중국의 대 사상가 루쉰(魯迅)의 말처럼, “길이 없던 곳도 자꾸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것이고, “파도를 겁내지 않고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 고기를 잡는다”는 말과도 같다.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변화하는 세상을 읽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안주하면 성공하기 힘들게 되고, 세상의 속도만큼 나도 같이 뛰면 현상유지는 되는 것이며,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뛰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시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시에는 관심이 없고 현대시의 흐름을 모르면서 자기 고집에 사로잡혀 시를 쓴다면 시가 진부한 넋두리인지,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주목받는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어보란 이야기다. 주의할 것은 초보 시인일 때는 남의 시를 모방하여 쓰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계속 기성 시인의 흉내나 내는데 머물면 시인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좀 서툴고 거칠어도 반드시 자기만의 색이 드러나도록 써야 새로운 시인의 탄생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새로운 시인과 시인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말도 생겨났나보다.

   그리고 시 쓰기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좋다. 나는 난삽하고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시를 쓰지 말자는 입장이다. 좋은 시와 어려운 시는 다르다.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가 결합된 말의 덩어리를 이미저리(Imagery)라고 하는데 이것이 잘 결합된 시는 어려운 시가 아니라 뜻이 깊고 읽을수록 맛이 나는 좋은 시다. 그렇지만 몇 번을 읽어도 뜻이 잡히지 않는 시는 쓰레기통에 집어넣어도 된다. 세 번 정도 정독을 해도 시인도 이해하지 못할 시라면 일반 독자들은 머리가 아파서 시를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시를 좋은 시라고 꼽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즐기든말든 나는 서정이 살아있는 시의 깃발 아래로 나가려고 한다. 나의 이 강의가 어려운 시론을 짜집기하여 유식한척 폼이나 잡는 것으로 읽힌다면 이 글 읽기를 중단하라. 유식한 시론으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가슴으로 느껴져야 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될 수만 있다면 회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깊이가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강좌가 학위를 따기위해 마련된 것도 아니요 다만 시를 쓰는데 약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것임을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오늘은 시적 대상에 대한 것을 생각하면서 세 편의 시를 보자.

   물론 시적 대상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선택한 소재는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여러 시인들이 이미 발표한 흔한 소재로 시를 쓴다면 여간해서는 주목받기 힘들다. 어차피 시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공감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쌍방향의 문학인데 여기저기에서 봤던 내용을 다시 본다면 독자는 흥미를 잃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처음 시를 쓸 때, 시의 소재로 가장 많이 택하는 것은 '자연'이다. 그런데 이 소재는 수대에 걸쳐서 동서양의 시인들이 너무나 많이 다뤘고 훌륭한 시도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여간 잘 쓴 것이 아니라면 자연에 관한 소재로 시를 써서 좋은 시로 주목 받기 어렵다. 자연을 매개로 시를 쓸 작정이라면 누구나 느꼈을법한 내용은 멀리하고 새롭게 형상화 된 내용, 즉 자기만의 특질화 된 시각의 시를 쓰기 바란다.


   와우리 성애원 옆, 금곡폐차장엔
   벌써 10년 넘게
   쇠와 싸우는 풀들이 있습니다.
   보통리 그 넓은 벌판 다 빼앗기고
   변두리로 밀리고 밀리다
   폐차장 무쇠더미 속까지 떠밀려와 살고 있습니다.
   쇠와 살대고 살면서도
   쇠와 섞이지 않는 강아지풀 하나
   지난 봄에 살해당한
   풀의 아이를 배고
   죽은 엔진 뼈대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습니다.
      - 최문자, <쇠 속의 잠 3> 1연

   위 시는 자연을 소재로 한 시인데 시인은 생명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고 파괴된 풍광을 비판, 고발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진술이 무엇인지를 공부하려면 우리나라 최고의 '진술시인'으로 불리는 최문자 시인(계간 시와편견 편집고문)의 시를 눈여겨 보기를 권한다.


   대지를 물들이는 저 쑥과 냉이, 씀바귀에 대해
   과수원 언저리를 온통 노랑물살 지게 하는 저 유채꽃에 대해
   (중략)
   뻐꾹새에게 물어봐라
   벌, 나비에게 물어봐라
   (중략)
   별과 달이 밤새도록 읽다가 펼쳐둔
   과수원 시집
   나는 거름 져다 나르며 읽고
   앞산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
      - 배한봉, <과수원 시집>중에서

   그 뻔한 풍광도 시집이 되고, 그 시집은 새도 읽고 나비도 읽고 거름을 져다 나르는 시인도 읽는데 결국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봄을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로까지 진행되어서 서술+묘사+진술+이미지화에 성공하고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모든 것이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제각각의 역할이 확실하게 주어졌다. 눈여겨보라. 배한봉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것들은 역할이 명징하기로 유명하다. 시 쓰기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다.


   대흥사 입구의 마늘밭
   마늘잎들이 누렇게 때깔을 쓰고 있다
   마늘이야 마른 생각들 버석거려도 머리통 가득
   매운맛을 가두겠지만
   수확이 가까울수록 잎들의 혈행(血行)을 끊어
   머리 뿌리 온통 깨달음으로 채워넣으려는
   저 독한 마음을 읽고 있는 한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갈증을 견뎌야 하는
   메마른 5월이다. 누가 내 몸을 캐서
   불알 두 쪽 갈라본들
   거기 통속의 향기 드러나겠는가
        - 김명인, <마늘> 부분

   위 시는 '마늘'이라는 대상을 선택하여 마늘의 수확이 가까워질수록 거추장스러운 잎들의 혈행(血行)을 끊고 마늘의 특성인 매운맛을 가득 머금고 여물어져 가고 있는 것과 통속의 향기(通俗의 香氣)인 마늘의 특질을 시인에게로 치환(置換)시켜서 오롯이 제 맛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자문하고 있다. 이처럼 담백 하지만 사물의 특질과 연결된 자신만의 사람살이의 해석이 시를 쓰는 본질에 가까이 가는 일인 것이다. 김명인 시인의 시는 서정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읽어 볼 일이다.

   - 이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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