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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복습반
2013년 10월 14일 13시 15분  조회:1197  추천:0  작성자: 최원

 대학입시복습반

 
나는 자기의 실력을 점검해 볼겸 소설을 하나 번역해볼 생각을 하였다.

 과학기술관에는 외국어도서자료실이 있는데  일어로 된 책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일본의 저명한 작가들이 쓴 작품집도 적지않았다. 나는 이 도서자료실을 통해 일본의 문화를 알게 되였고 좋은 문학작품들도 많이 접촉할수 있게 되였다.

노심초사끝에 나는  “나는 두살 입이다.”라는 제목의 일어소설을 골랐다.
9만여자 되는 이 소설을 나는 한달만에 조선어로 다 번역하
였다. 그런데 수정하면서 보니 어쩐지 원작을 읽을 때처럼 그렇
게 신나지 않았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한 친구에게 나의 번역작품을 보이였다.
친구에게 읽은후의 느낌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그는 빙그레 웃으
면서 겨우 다 읽었다고 하였다. 괜찮기는 한데 원문의 뜻을 그대
로 나타내는데만 너무 치중하다보니 문학적색채가 짙지 못하다
고 했다.그는 번역은 재창작이기에 뜻만 그대로 나타내서는 안된다
고 하였다. 그의 말에서 계발을 받은 나는 다시 수정하였다.

나는 품을 들여 번역한 작품을 그대로 처박아두기 아까와
투고하기로 작심하였다. 나는 어느 잡지사에 보낼가고 궁리하다
가《도라지》잡지사에 보내였다. 이 잡지사에 문창남이라고 하는 수필작가가 계셨는데 나는 그의 수필을 대단히 즐겨 보았다.수필집까지 사서 외울 정도로 좋아하였다.그런데 원고를 보낸지 몇달이
지나도 종무소식이였다. 기다리다 못해 문의편지를 써보냈더니
문창남선생께서 그런 원고를 받은적이 없다는 회답이 왔다.그러면서 그는 맥을 버리지 말고 좋은 작품을 번역하면 꼭 보내달라는 부탁도 잊지않았다.원고가 분실되여 몹시 아쉬웠지만 힘이 되는 회답편지를 받고나니 그래도
기뻤다.

그해 음력설에 연길의 둘째이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
으로 놀러 왔다. 둘째이모는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연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었는데 아는것도 많고 나에 대한 관심도 극진했
다. 그는 나를 보고 요즈음 뭘 하고있는가고 관심조로 물었다.
내가 외국어공부를 하고있다는것을 안 둘째이모는 참 잘한
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면서 사람은 꼭 자기의 취향에 따라 뭐든
지 자꾸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내가 번역을 해보니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번
역을 하자면 먼저 자기 민족 언어부터 잘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
었다. 자기 민족 언어에 능숙하지 않고 어떻게 번역을 잘할수 있
는가고 하면서 연변대학에 성인고등학부가 있는데 한번 시험쳐
보라고 했다.

소학교를 졸업한 내가 대학교공부를 할수 있을가? 둘째이모
는 주밋거리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면서 번역을 하려면 문
과공부를 해야 하기에 한어학부를 지망하면 좋을거라고 하였다.
듣고보니 옳은 말이였다. 그러면 나도 대학생으로 될수 있다

는 말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났다. 얼마나 가고싶
던 대학교인가?! 대학생을 하늘처럼 높이 우러러보던 나는 여직
껏 나 같은 사람은 대학교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가고만 여
겼는데 이제 노력만 하면 오매에도 바라던 대학생으로 된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둘째이모는 장애인이 대학교에 가기가 필경은 쉽지 않기에
여차여차하게 준비하라고 상세히 알려주었다.
마침 외국어강습반에서 영어와 일어를 배운터라 인제는 본
격적으로 초고중 문과교과서를 놓고 공부하면 되였다. 그런데
중학교에 다니지 않은 내가 선생님의 가르침도 없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통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누구의 도움
이 없이 순 자습으로 공부한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불보
듯 뻔한 일이였다.

때마침 도문시제2고급중학교에서 복습반을 꾸리였다. 대학
시험에서 락방된 학생들을 다시 1년 동안 공부시켜 이듬해 대학
시험에 응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어머니보고 빨리 가서 신청하라고 졸라댔다. 어머니는
학교에 찾아가 나의 사정을 상세히 말하고 도와주기를 바랐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나의 소행이 기특하다면서 무료로 복습반에
보내라고 했다.

어머니는 너무도 감동되여 나의 손을 꼭 잡고 “그래도 이 세
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학교에서 너를 동정하여 학비도
받지 않는데 꼭 공부를 잘해야 한다. 선생님들의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열심히 해야 한다.” 하고 의미심장
하게 말하였다.

나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어떻게 차례진 학습기회
인데 되는대로 대하겠는가? 절대 그럴수가 없었다.
이제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면 되였다. 이번에는 어찌된 영문
인지 별로 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닥 벼르지 않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는데 뜻밖에도 마음대로 하라는것이였다.

모든것이 순조로왔다. 나는 날듯이 기뻤다.
9월 20일에 나는 필요한 책들을 한 가방 챙겨메고 학교로 향
하였다. 복습반은 제2고급중학교의 선생님들이 퇴근후에 과외
시간을 리용하여 수업을 하기에 저녁 5시 반에 시작하였다. 한
시간 반을 걸어가야 하기에 나는 3시부터 떠나야 했다. 떡구유처
럼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한걸음한걸음 힘겹게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여 2층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고나면 온몸
이 땀에 흠뻑 젖군 했다. 지팽이를 땅에 내려놓고 책을 꺼내놓으
려니 두손이 바르르 떨리였다. 갈증이 나서 물을 실컷 마셨으면
좋으련만 물 마실 곳도 없었다.

(참자. 모든것을 참아야 해. 자기의 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는 이만한 곤난을 꼭 이겨내야 한다.)

복습반의 수업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척되였다. 학과목을 따
라잡으려니 진땀이 날 지경이였다. 강의를 한마디라도 빠뜨릴가
봐 눈을 크게 뜨고 도정신해서 들었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할 내
용이 많았다. 필기도 따라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휴식시간에
옆에 앉은 학생의 필기책을 빌려다가 제때에 보충하군 하였다.

90분 강의를 두번 듣고나면 밤 8시 30분이 되였다. 나는 걸
음이 더디다보니 항상 마지막에 혼자 학교마당에 남아있을 때가
많았다. 전등불도 없는 캄캄한 밤에 사람 하나 없는 넓다란 학교
운동장을 걸어지나가기란 여간만 무섭지 않았다.

바람이 나무잎을 스치는 소리가 자꾸 사람의 발자국소리로 들
려 겁이 나 뒤도 돌아보지 못했다. 혹시 고양이나 개가 지나가
도 놀라서 울음이 나올 지경이였다.

학교마당을 나와 또 한시간 반을 걸어야 나는 집에 도착할수
있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정말 힘들어서 죽을것만 같았다.
내가 어망결에 동생을 보고 매일 저녁 시꺼먼 학교운동장을
걸어나오는것이 아주 두렵다고 말했더니 동생은 아버지 몰래 매
일 저녁 마중을 나왔다. 내가 아버지한테 들키면 안된다고 말리
는데도 동생은 괜찮다면서 계속 마중나왔다. 나는 반가우면서도
또한 걱정되였다. 동생의 공부에 지장될가봐 걱정되였고 아버지
한테 욕볼가봐 걱정되였다. 욕을 먹는것쯤은 괜찮지만 복습반에
다니는것을 그만두라고 하는 날이면 큰일이였다.

마중나온 동생은 내가 걷는것이 너무도 더디니 막 업고 걸음
을 다그쳤다. 동생의 등에 업힌 나는 나 같은 누나를 만나 고생
하는 동생이 불쌍하여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것을 걷잡을수
없었다. 누나로서 동생을 돌봐줄 대신 항상 동생의 보살핌을 받
아왔다.  때론 이렇게 넘려해주는 동생이 차라리 동생이 아니고 오빠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오빠라면 덜 미안하겠는데… 이러는 동생이 있어 나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였다.

동생은 아버지가 알면 욕할가봐 집에 거의 이르면 나를 내려
놓고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일찍이 집으로 들어가면 아버지의
의심을 사게 되기에 시간을 맞추어 들어가야 했다. 어떻게 할가?
어디에서 공부를 좀 하다가 집으로 가면 좋으련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거리 량옆을 참빗질하던 나는 문득 어머니의 단위에 눈
길이 멎었다. 어머니의 단위는 우리 집과 큰길을 하나 사이두고
있었다. 거기에서 좀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것이 좋을듯싶
었다. 살펴보니 현관문은 잠겨져있지 않았다.

나는 문앞의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다.
네댓평방메터 밖에 안되는 현관에는 희미한 가로등불빛이 비껴
들고있었다. 책을 꺼내 펼쳐보니 글을 얼마든지 볼수 있었다. 앉
을 자리도 없는지라 나는 줄곧 서서 가로등불빛을 빌어 배운것
들을 복습하였다. 한참 서서 공부하느라면 다리와 지팽이를 짚
은 두어깨가 아파났다. 하지만 공부는 잘되였다. 옛날에는 모두
기름등잔밑에서 공부했다고 하지 않는가. 아마 사람이란 간고한
환경에도 곧잘 적응하는것 같았다.

밤 11시가 되자 이튿날 공부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하여 집
으로 돌아간다. 내가 집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가면 집식구들은
모두 잠에 빠져 누구도 모르고있다. 나는 자리에 누웠지만 잠
이 오지 않는다. 낮에 공부한 내용과 가로등불밑에서 외웠던 내
용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머리속으로 한번 훑어본다. 지
칠대로 지친 나는 채 훑어보기도전에 잠에 곯아떨어진다.

복습반에서 공부하는 사이에 드바쁜 스케줄에 습관되였고
또 많은 친구들을 사귀였다. 처음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보던 학
생들이 얼마간 지나자 나를 지지해주고 도와나섰다.
내가 사는 아빠트에도 나와 같이 복습반에 다니는 녀학생이
둘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걷기 힘들어하는것을 보고 학교에 다
니는것을 도와나섰다. 그들은 저녁을 먹기 바쁘게 우리 집으로
와 나를 자전거짐받이에 싣고 학교로 간다. 수업이 끝나면 또 자
전거에 앉혀서 어머니 단위까지 실어다준다. 그러면 나는 거
기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매일 변함없
는 일과였다. 이렇게 되자 동생이 더는 마중오지 않아도 되였다.
추운 겨울의 어느날, 눈까지 펑펑 쏟아지는데 공교롭게도 한
아빠트에 있는 애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혼자서 돌아가야 하
는 나는 근심이 태산같았다.

눈길에서 뒹굴며 두시간 넘게 걸어 집에 거의 도착하는데 어
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최원아, 인제야 여기까지 왔니? 너무 늦었으니깐 내가 업어
주마.”
어머니는 초저녁 잠이 많은 사람이였다. 저녁술을 놓기 바쁘
게 잠들어버리는 어머니는 내가 저녁에 어떻게 고생하며 다니는
지를 잘 몰랐다. 하지만 밤중에는 꼭꼭 일어나 내가 돌아왔는가
를 보고서야 시름놓고 다시 주무셨다. 이날 잠결에 깨여난 어머
니는 내가 보이지 않자 이렇게 급히 달려나왔던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떻게 나를 업겠는가. 동생도 업기 힘들어
하는 판인데… 나를 업으려면 맨몸만 업으면 되는것이 아니라
묵직한 책가방과 쌍지팽이도 들어야 하기에 요령이 없이 뚝심만
으로는 안되였다. 그래서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어머니는 기어이
나를 업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숨이 턱에 닿아 나를 내려놓았
다. 이렇게 몇번 되풀이해서야 집에 이르렀다. 함께 들어가면 또
아버지가 뭐라고 할가봐 어머니가 먼저 들어간후 내가 들어갔
다. 눈길에서 몇시간 헤매고난 나는 허기가 차고 온몸의 맥이 탁
풀려 마치 눈처럼 녹아버릴것만 같았다.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
는 날에는 학교로 가지 않아도 되겠건만 수업을 한시간도 빼놓
지 않으려니 이렇게도 힘들었다.

다른 애들은 이미 다 배웠기에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련습문
제를 풀면서 기초를 더 잘 다지면 되지만 나는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여서 품을 몇곱절 더 들여야 했다.

9월부터 복습반에 다니기 시작해서 이듬해 6월에 전국성인
고등학교입학시험에 참가해야 하기에 시름놓고 잘 시간도 없었
다. 집에서 공부하다가도 너무 피곤하면 깊은 잠에 곯아떨어질
가봐 두손을 이마밑에 고이고 엎드려서 잠시동안 휴식을 취했
다. 약 20분이 지나면 이마에 눌린 손이 저려나 저절로 깨여났
다. 그렇게 쪽잠을 자고 깨여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젊어서인
지 웬간히 힘들어서는 얼마든지 견뎌낼수 있었다. 이래서 젊음
이 좋은가보다.

때론 공부할 내용은 많은데 정력이 집중되지 않아 머리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계획적으로 여러가지 학과목을 번갈아
공부하면서 의식적으로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동안
지나니 정력집중이 점차 잘되였고 나중엔 누가 불러도 듣지 못
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집중력을 키우니 공부가 잘되여갔다. 공부를 할수록 재미났
고 시간이 모자랐다.
어려서부터 해온 집안일은 늘 친구들과 함께 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석탄깨기와 나무패기는 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친구들
의 도움을 받군 하였다. 어쨌든 아버지가 하라는 일은 에누리없
이 해놓고 공부를 했다. 그러다보니 아주 바쁘게 보냈지만 마음
은 편안하였다.

매일 잘 자지 못하고 때시걱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긴장하
게 보냈더니 늘 입술에 물집이 생기고 뒤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일주일 혹은 보름에 한번씩 뒤를 보니 늘 혈변을 보게 되였다.
뒤를 본 다음에는 눈앞이 아찔해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벽
을 짚고 겨우 일어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너무 우둔한것 같았다. 공부를 하는것
도 살기 위해서인데 그렇게도 몸을 아낄줄 몰랐으니… 어머니는
공부밖에 모르는 딸이 걱정되여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치료를
받아보라고 했지만 나는 전부 귀등으로 흘려보냈다.
“근심하지 말아요. 죽지 않아요.”

“어이구, 죽었으면 좋겠다. 한번 실컷 울고 말게. 사람 말을 이렇게 듣지 않으니… 내 너때문에 속 타서 지레 죽고말겠다.”
어머니의 사랑푸념은 늘 노래소리같이 들리였다.
첫 학기의 긴장한 학습을 거쳐 나는 많은것을 배웠다. 문맹
으로부터 단번에 지식인으로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
험을 잘 치려면 아직도 공부를 많이 해야 했다. 외워야 할것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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