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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리혼서류
2013년 11월 13일 13시 53분  조회:975  추천:0  작성자: 최원
10   리혼서류
 
북경에서 돌아와 렬차에서 내리자 어머니는 빨리 집으로 가
자고 잡아 끌었다. 내가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집으로 들어
가니 아버지는 또 화를 내며 길길이 뛰였다.

다투던 끝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리혼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어머니와 나는 생활필수품만 챙겨가지고 이튿날 어머니의 사무
실로 옮겨갔다.

사무실에서 살림을 한다는것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사무실에 주방시설이 없으니 때시걱을 끓이는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옷을 씻기도 불편하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보고 공부만 잘하면 되니 다른건 관계치 말라고 했다.

어머니 단위의 사람들도 령도로부터 일반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를 도와나섰다. 침대를 가져다주는 사람, 칼판을 만들
어주는 사람… 누구 하나 비웃는 사람이 없이 다들 리해해주고
지지해주었다. 그들은 나보고 공부하는것은 죄가 아니라고 하면
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공부를 잘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들의 다함없는 지지를 받으면서 나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였다.  학교
에서 정해준 《레미제라블》(悲惨世界),《외제니와 그랑데》(欧叶妮与
葛朗台),《홍루몽》(红楼梦),《사세동당》(四世同堂) 등 몇십권에
달하는 국내외명작들을 통독하였다.

좋은 작품들은 나의 견식을 넓혀주었을뿐더러
수양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한편 나는 은근히 아버지를 걱정하였다. 한손밖에 없는 아버
지가 때시걱을 제대로 끓여자시기나 하는지… 나와 어머니는 동
생이 아버지를 좀 도와주기를 은근히 바랐는데 웬걸, 동생은 늘
우리한테로 와 함께 식사를 하군 하였다.

언니는 결혼하여 따로 살림을 하기에 아버지를 돕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는 근심은 하면서도 한번 좀 혼쭐이 나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웬만한 일에는 동네가 시끄럽다고 양보만 하던 어머니
가 이번엔 큰 결심을 내리고 집을 나온것이였다. 자식의 전도를
위하여 자기의 안락한 생활을 서슴없이 버리고 나온 어머니의
그 마음에 나는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가정에서의 세대주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마치 배의 선장처림 옳바른 방향으로 자기 가족들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세대주라고 모두 그런 능력을 가지고있는것은 결코 아니였다.

물론 그 아버지에 그 딸인지라 나는 웬간해서는 무릎을 꿇
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때문에 리혼한다는데도
물러서지 않았으니 나의 고집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아버지가 계속 고집을 꺾지 않자 석달후에 어머니는 법원에
가 기소장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나보고 기소문을 쓰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리혼해야 하는 리유를 두장에 꽉 박아
썼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부모의 리혼서
류를 쓰는 자식이 있다면 나를 빼고 또 어디에 있을가? 실로 한
심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튿날 어머니는 기소장을 가지고 법원으로 갔다. 법원에서
는 인차 리혼신청을 접수하였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으로 아버지
를 찾아가 리혼서류를 내보이였다. 리혼서류를 본 아버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번져질줄을 몰랐던지 며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며칠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시 마주앉게 되였다. 이모네들도 와있었다. 어머니는 긴 말이 없이 두가지 요구를 제기했
다. 첫째로는 나를 계속 공부시키는 것이고 둘째로는 어머니가 출
장을 마음대로 다니게 해달라는것이였다. 이 두가지만 동의하면
다시 들어와 살림을 하겠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출장을 다니는데 불만이 컸던것이다.

그 당시 환경보호국에서 유일한 고급공정사였던 어머니는
새로운 연구과제가 있으면 늘 단위의 기술일군들을 이끌고 출장
다녀야 했다. 그때면 어머니는 늘 난처해하였다. 출장을 가자니
아버지가 화를 내고 가지 않자니 일에 지장이 있었던것이다.
언제나 안해와 자식들 앞에서 최고통치자였던 아버지가 이
두가지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양보할수 있을가? 아무리 따
져보아도 불가능할것 같았다.

이날 어머니는  퍽 늦어서야 돌아왔다. 어떻게 되였는
가고 물었더니 이모네가 집중공격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그
두가지 조건을 다 받아들였다고 하였다. 정말 상상도 못할 결과
였다. 하지만 나는 믿기 어려웠다. 계속 행패질로 나와 어머니를
다스려온 아버지인데 말로 받아들인다고 실제행동에 옮
길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어머니가 큰마음 먹고 집에서 뛰쳐나왔는데 이제 다시 들어
갔다가 아버지가 그간의 복수를 더 잔인한 수단으로 하는 날이
면 더 처참해질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보고 아버지의 몇
마디 감언리설에 넘어가지 말고 좀더 생각해보자고 하였다. 어
머니는 괜찮을것이라며 한번만 더 믿어보자고 했다. 이모들앞에
서 굳게 다짐하였는데 쉽게 실언할수 있겠는가? 내가 공
부하는것을 아버지가 동의했는데 또 무슨 리유로 계속 갈라져
살겠는가고 했다.하여 어머니가 먼저 집에 들어가고
나는 두달 동안 어머니의 사무실에 더 머물러있으면서 열심
히 공부하고 시험까지 본 다음 집에 가기로 하였다. 공부하
는 동안 될수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연변대학에 가서 시험도 치고 수업도 받은후 집에 돌아
오니 아버지는 약속대로 더는 내가 공부하는것을 반대하지 않았
다. 하지만 나는 속이 여전히 편안하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는
자기절로 독립하리라 다지며 나갔는데 또 원모습대로 기여들어
왔으니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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