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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이설
2009년 05월 16일 13시 10분  조회:1917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아들애는 인제 겨우 다섯살이다. 자연인으로 태여나 어른들을 <<흉내>>내면서 문화인으로 성장하는 그 애의 가슴엔 아직은 파란 잔디뿐이다. 인제 그 잔디밭을 파헤치고 무엇을 심게 될가 하는데는 어쩔수 없이 그 애의 흉내의 대상물이 되여버린 우리 어른들의 형상이 보기가 될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애 앞에서 일거일동을 애써 아름답게 꾸미려고 모지름을 쓴다. 마치도 흰종이에는 어떤 색갈이나 다 옮을수 있듯이 고운 말, 미운 말, 옳은 행동, 그른 행동이 죄다 그애한테 <<전염>>될수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지나친 조심성이 더 부자연스러운 때가 많았다. 몸에 배지 못한 공식화된 규범을 지키노라니 자연 그 배역이 서툴수밖에 없을것이다. 그런데다 아들애는 나이를 한살 더 먹더니 호기심에 찬 질문도 많아졌고 성인사회에 대한 불신임도 훨씬 커진듯싶었다. 그애의 엉뚱한 질문이나 간단한 추리, 판단에 문뜩문뜩 놀라움을 금치못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고 그래서 례사롭게 지나쳤던 사회현상에 새삼스럽게 철학적사색까지를 굴리여보는수도 종종 있었다.
얼마전의 어느 휴식일이였다. 금방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가 산책하고 돌아오는데 아들애가 떠들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거짓말 했습니다.>>
<<응, 무슨 거짓말을 했게?>>
나는 안해를 핀잔주려는듯 쳐다보았다.
<<아까 아버지 친구가 왔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화룡갔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거짓말쟁입니다.>>
나는 대뜸 얼굴에 노기를 띄우며 안해를 쏘아보았다. 안해는 얼굴을 붉히며 아들애를 흘겨보더니 바삐 변명을 하였다.
<<마작놀러 가자고 찾아왔더군요. 오늘 글쓸것들이 많아 하루종일 바쁠것 같다기에 둘러붙인거예요...>>
한순간 할말을 찾지 못했다. 안해와 아들애가 다 접수 할수 있는 표정을 골라잡지 못하여 그런대로 멍청한 상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들애가 또 떠들었다.
<<그런데 어째 나를 보고 거짓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고 했습니까?>>
하긴 어른들로부터 귀에 아프게 도적질하면 나쁜 사람이다, 거짓말을 하면 나쁜 사람이다...하는 식의 훈시를 밥먹듯해왔으니 어느덧 그런것들이 그애가 문화인으로 성장하는 좌우명으로 자리매김했을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른이 그 좌우명과 빗나간 행위를 저지른것이다.
<<너 아버지가 공부하는게 좋니? 마작노는게 좋니?>>
<<공부하는게 좋습니다.>>
그러던 아들애는 갑자기 신대륙이나 발견한듯이 눈을 반짝 빛내며
<<아, 그런건 좋은 거짓말입니다. 예?>>
하는것이였다.
<<엉?>>
너무도 엉뚱한 추리에 어안이 벙벙했던 나는 마침내 안해와 함께 웃어버렸다.
좋은 거짓말, 참 유치하면서도 멋스러운 말이다. 거짓말에도 좋고 나쁨의 구별은 있다는 말이 된다. 구태여 단어의 합리성을 추상적으로 따질 필요가 있는가.
<<어머니를 찾아 삼만리>>(영화)에서 오빠는 동냥한 음식을 어린 녀동생한테 주면서 자기는 배고프지 않으니 어린 네가 많이 먹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걸탐스레 먹어대는 녀동생을 바라보면서 군침을 꼴깍 삼킨다.
희생적 거짓말이라고 할가. 아무튼 자기를 희생하는 도덕과 인정에 젖은 거짓말이다.
거리에서 관계가 그닥 투명하지 못하고 지어는 알륵까지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얼굴에 웃음을 피우며 알은체한다. 등등...
이런건 뭐라고 명명할가? 생각키우는대로 먼저 문화적 거짓말이라고 하여보자.
백사람이면 백가지 성미라고 남남에 아니 지어는 혈육지간에도 생각이 착착 맞물려지는것은 아닌데 그대로 내내 얼굴을 붉히고 지어는 드잡이따위를 한다면 인정이란 무엇이고 질서란 또 무엇인가. 그러니 작은 알륵을 숨기고 큰 화목을 도모하며 례의와 문화인격을 수립하려는 <<틀>>에 맞추는 거짓말이겠다. 그러고보면 원시인격이란것이 보다 진실하면서도 대항적이거나 배타적인것이라면 문화인격이란것은 보다 허위적인것이기는 하면서도 평화적이고 도덕적인것이 아닐가.
그런데 상술한 이 두가지 거짓말을 말고도 또 한가지가 있다. (이 글에서는 남을 해치고 자기 욕심을 채우는 그런 악의 소산으로서의 거짓말은 철저히 배제된다는것을 밝혀둔다. 하긴 제목부터가 거짓말 이설이니깐 밝힘이 오히려 지나친 로파심이기도 한것같다.)
한 대학본과 졸업생이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나와 자기의 포부를 실현하려고 어느 향정부에 배치되였다. 몇년간 꾸준히 일한 보람으로 사업에서 떳떳이 한몫을 떠멜수 있게 되였고 선거표도 표결전에 벌써 불보듯 빤해졌다. 그런데 어찌해도 향장관을 통과할수가 없었다.
이튼날, 그는 전화로 향장을 찾아 자기는 현장인 아무개인데 자기의 먼 조카벌되는 아무개가 일 잘하는가고 물었다. 그후에 그는 영광스럽게도(?) 부향장으로 제발되였으며 사업에서 큰 성과를 따낼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사실여부는 따질 필요없다. 사회적비리를 풍자하여 확대가공한것일수도 있다. 도리대로 하면 이것은 없어야 할 거짓말이다. 그러나 생활현실에서는 없을수 없는 필연성까지를 내함하고 있다는것이 비극적으로 받아안게 되는 결론이다. 그것은 악의 범람 내지 삶의 무질서가 제도적으로 또는 사회의지적으로 극복 내지 구속되지 않는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극복할수 없기때문이다.
더우기 권력은 한사람이 만사람을 다스리는것이요, 또 층층이 구슬처럼 꿰여져있는것이기에 덕을 선행하면 만사람이 복을 입게 되고 악을 선행하면 만사람이 해를 당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또 권력에 매달린자들은 촉매제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쾌속반응을 나타낸다. 특히 권력자체가 어떤 일에서 직접 촉매제로 나설 때 그 일은 에누리없이 성공을 미리 축하할수조차 있는것이다. 그러고보면 거짓말의 대상물이 부패 내지 악이라면 그 거짓말자체가 진실과 진리의 가면 내지 수단으로 될수도 있지 않을가?
도덕에 어긋난 악의 소산으로 된 거짓말은 그 거짓말을 타매하고 뿌리뽑을수 있는 처방을 떼야 지당할것이지만 부패와 악을 대상물로 한 거짓말은 그것을 합리하게 받아들일바는 아닐지라도 처방만은 틀림없이 부패 내지 악을 제거하는 처방을 떼야 하는것이다. 이때는 병의 뿌리가 거짓말에 있는것이 아니라 악에 있기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때에 거짓말을 제거하는 처방만 뗀다면 그것은 칼로 부추베기거나 도리여 악을 조장하는 결과외엔 아무것도 될수 없는것이다.
악을 대상물로 한 거짓말은 그 악을 제거할 때라야만 그 필연성이 소실될것임이 당연하지 않은가!
여기에 <<신을 신고 발바닥긁기>>란 속담을 추천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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