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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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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2012년 12월 31일 10시 35분  조회:1360  추천:4  작성자: 한세준
                       흘러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한세준



지난 겨울은 어쩐지 유난히도 춥고 매서웠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썩 반갑지도 않은 큰 눈이 자주 내려 이 시골늙은이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허나 계절의 변화는 어쩔수 없는것이라 그저 구시렁거릴뿐이다. 그런 낮과 밤이 쉼없이 바뀌더니 어느덧 꺼칠하던 뒤산숲에 봄이 슬며시 들어와 움을 틔우고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새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뒤산 가둑나무숲에서 먹이를 찾느라고 쪼아대는 딱따구리소리가 이따금씩 들리는가 하면 해마다 지금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할미새, 호박새가 뜰에 내려와 까불까불 꼬리를 달싹이며 가벼운 몸짓으로 인사를 한다. 철새도 내 고향 산이 정들어서 해마다 찾아오는것인가.

오늘따라 따스한 해볕을 찾아 앞마루에 나와 앉으니 촉촉히 젖은 흙과 물기 먹은 숲에서 싱그러운 봄향기가 배여나온다. 마루에 앉아 얼없이 뒤산을 쳐다보노라니 내 마음은 전처럼 넉넉해지고 즐겁지 아니하다. 비록 내 소유는 아닐지라도 40여년을 기대여 살아오면서 나를 동무하여 희로애락을 같이한 산, 언제보아도 싫지 않은 고향산이였는데 이 봄에는 마치 정든 친구를 작별하는듯 아쉽기만 한 심정이다.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사는 땅에 애착하고 볼일이다. 높고 멋진 산이야 지천으로 널렸지만 내 마음을 주고 그 기운을 받으며 품어온 고향산만 하겠는가? 나의 청춘의 꿈이 묻히고 내 삶의 신조가 저 푸른 송림과 더불어 오롯이 깃들어있는 산! 타향에서 산은 그냥 산이지만 여기 고향에서는 그저 산이 아니다.

긴긴 세월을 두고 마을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해온 내 고향 뒤산, 비바람속에서 산과 교감하는것을 배우며 살아와서 자기도 모르게 산과 하나로 되여진 내 마음인가? 여기 산은 보기에 따라서 미시적인 아름다운 사연과 거시적인 대자연의 조화로움이 얼크러진 유서깊은 나의 보금터이다. 그만큼 산은 그저 나무랑 찍어내고 버섯이랑 캐내며 리용만 해먹는 자연상태가 아니라 보듬는 존재로 되여있다.

이런 끈끈한 정으로 얽힌 이 산과 우리를 먹여살린 문전옥답과 함께 어느 집단에 팔려 징용되다보니 지금 우리에게 남은것이란 달랑 살고있는 집 한채뿐이다. 요즈음에는 가급적으로 파가이주를 해야 한다는 소문까지 들리며 인심이 뒤숭숭한 판인데 어제 신문에는 뒤산에 있는 조상들의 묘지도 시한적으로 옮기라는 통지까지 났으니 이건 정말 뿌리채로 뽑혀나갈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셈이다.

이제 갈길도 멀지 않은 나그네가 된 마당에 모든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싶다. 가진것은 없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조용히 살면서 때론 지나온 세월을 새김질하면서 40 성상 내가 손수 세우고 가꾼 이 자그마한 가원을 마지막 정착역으로 삼고 시름없이 여생을 보내리라 작심했건만 이 소박한 희망사항마저 여의치 못하니 돌아가는 세상일을 도무지 종잡을수 없다.

인제 어디로 떠밀려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가원에서 사는 날까지 남의것이 된 저 뒤산을 마음대로 바라볼수 있고 즐길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조금 편해지고 또 다른 감사의 마음이 생기는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랴, 인생의 목표는 남보다 많이 차지하는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풍성하게 존재하는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어디에 집착하여 얽매이게 되면 맑던 심성도 흐려지게 되고 존재도 빛을 잃는다. 요즈음 사람들은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크게 차지하여 부자가 되려고만 욕심을 부풀리지 “적당한 부족함”을 유지하면서 소신대로 살면서 인생을 즐기려 하지 않아 곤혹스럽기만 하다. 군자는 사물을 모조리 혼자 취하는데 마음을 두지 않는다. 공자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부모를 공양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낚시질은 하였으나 그물질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낚시질을 하는것은 필요되는만큼 취하려는것이요 그물질을 하는것은 모조리 취하 는것이다. 탐욕은 모든 악의 뿌리이다. 적게 가질수록 더욱 사랑을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이웃을 대하고 자기 인생을 깨끗하게 살수 있는것이다.

하건만 무슨 욕심으로 100년을 넘도록대대손손 내리 피로써 지키고 땀으로 걸군 남의 가원까지 지페로 말아먹으려는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심사들인가? 알고도 모를 일이라면 내가 어리석은것일가? 아무튼 풍전등화의 우리 마을의 앞날을 두고 쓰잘것 없는 근심을 하다보니 마을이 더 쓸쓸해 보이고 쓸쓸한 마음에 고향애가 무더기로 솟구치는것은 어쩔수 없다.

                                                                                  20012년 12월 31 일 (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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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진언
날자:2013-01-10 09:21:14
고향의 산을 바라보며 자연좇아 떠오르는 절절한 감수를 정채로운 언어로 표백함으로써
당전 우리 조선농촌의 상황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있다. 더 많은 좋은 글들을 기대해본다.
Total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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