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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한 그 새벽에
2020년 07월 24일 16시 34분  조회:503  추천:0  작성자: 홍천룡

푸름한 그 새벽에

홍천룡


지루한 밤장막이 바야흐로 걷히게 될 동틀 무렵, 서광이 곧 어리게 될 시각이 각일각 박두해올수록 어둠은 더 짙어만 간다…

새 천년에 들어서기 전이였던 지난 세기말, 밤마다 꾸는 꿈은 파아란 희망이 펼쳐지는 바다가였다. 21세기에 가면 전쟁의 포연도 테로의 폭력도 지진의 재난도 질병의 아픔도 모두 사라지고 하늘가엔 비둘기가 날아예고 록음 속엔 방초가 향기롭고 지구촌은 웃음과 행복만이 여울치는 에덴동산이  될 것이라고 동경해왔었다.

헌데 새 천년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그만 벼락 같은 사건이 터졌다. 지구촌을 전률시켰던 ‘9.11’테로! 그 후 지구의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일로 인류는 어쩔 수 없는 재앙을 맞는다. 차바퀴로 세계를 누벼보겠다던 일본도 해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였다. 뒤이어 사스가 인류사회에 도전장을 내던지며 걸고 들었다. 그 기염이 살벌했다. 하지만 21세기의 문명에 개화된 인류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사스의 기염을 꺾고 반복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혈로를 뚫고 나와 한숨 쉬려고 할 때 이번엔 또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들이닥쳤다. 소리없는 괴력으로 인간접촉의 공간에서 게릴라전을 벌리며 육박해왔다. 언제 어디로부터 엄습해올지 모르는 그 공포에 인류가 경악에 떨었다. 삽시간에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2020년 새해벽두의 칼바람이 그처럼 매서울 줄이야! 그제야 너도나도 깨우치는 바가 있었다. 아, 21세기 초반은 아직도 그 푸름한 새벽녘이였구나!

지난 세기 중반부터 우리 고향은 쭉-푸른 숲속에 잠겨왔었다. 앞벌엔 벼모가 푸르렀고 뒤산엔 나무숲이 청청했었다. 목이 마르면 샘물을 바가지로 들이켰고 배고프면 이밥이던 조밥이든 푸른 야채에 된장을 찍고 비벼서 먹었다. 당뇨가 병인지 모르고 살았고 생채기가 생기면 된장을 쭉 발랐으며 열이 나고 감기들면 꿀물을 타서 숟가락으로 퍼마시면 그만이였다. 그때는 화학비료를 밭에다 치는 줄 몰랐고 농약을 곡식에다 치는 줄 몰랐다. 그래서 앓음이란 모르고 살았다. 그 모든 것이 푸름이 안겨다준 덕이였다.

언제부터 우리의 먹거리에 문제가 생겼을가?

며칠 전 시골의 밭머리에서 뜨락또르에 앉은 농민과 목을 빼들고 몇마디 주고 받은 적이 있다 .

“저기 저 모아둔게 무엇인가? 얼룩덜룩한게 약병 같은데…”

“지금 세월에 농약이 없으면 농사를 어떻게 짓습둥?”

그렇구나! 농약을 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화학비료를 뿌리지 않으면 수확률을 높일 수 없는 오늘날의 현대화농업이구나.

요즘 아이들은 먼지가 뽀얀 북데기 속에 들어가 놀았다간 큰일 난다. 부모들의 줄욕세례는 둘째치고 그 먼지 속에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면역력이 살얼음처럼 취약해져 어루쓸어주자고 해도 손이 떨린다. 옛날에는 튼실하지 못한 아이를 온실 안의 화초에 비유하기도 했었다. 온실 속 화초는 푸름을 잃은 식물이다. 그때는 온실이 푸름을 앗아갔다면 지금은 농약이 푸름을 절궈내고 가스가 푸름을 중화시키고 오수가 푸름을 세탁해내고 있다. 이처럼 푸름을 앗아가는 세력을 밀어주는 파렴치한 막후 조종자는 어떤 작자일가? 바로 너도나도 다 좋아하는 돈이다.

돈이 많이 드는 곳일수록 푸름이 밀려나가게 된다. 모든 것이 시장경제로 구축되는 오늘날 자본이 그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자본의 동력은 돈이다. 자본운영에서 원시적인 토대로 닦아지는 산업, 례컨대 광업, 가공, 제약, 제조 등 기초공업에 들어가는 기본원료가 자연을 파고 갉아낸 것들이란다. 공업이 자연을 말아먹는다고 공업을 페지할 수 있는가? 없다. 지금 세계는 인류생활의 수요와 향상의 욕구를 공업으로 실현하고 공업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 사회는 늘 자아모순에 빠지고 인류는 그 내연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그 모순을 해결하고 그 갈등을 조률하고저 사회의 그린리더십이 강한 지도자들이 분분히 나서서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해결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습근평 주석께서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록수청산은 금산은산이다.”

그 리념에서 ‘금산은산’을 오로지 경제효익에다만 국한시킨다면 자칫 편면성에 빠질 수 있다. 록수청산이 우리에게 하사해줄 선물에는 보이는 실물도 있고 보이지 않는 무형 선물도 많다. 례컨대 건강학적으로 따져보면 록수청산, 즉 자연의 푸름이 인류에게 안겨줄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가? 또한 인류와 병마지간의 전쟁은 지속적인 진행형으로 이어져왔는바 승자와 패자 지간에 관건적인 요인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 무엇이였을가?

툭 찍어말하면 딱 한마디 면역력이다!

푸름을 잃어가는 우리의 ‘고급’ 생활이 우리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각종 질병, 특히는 이번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뒤에 남긴 교훈이 무엇인가? 너도나도 자기의 인체 면역력에 대해 너무나 홀시해왔다는 후회였다. 우리는 먹거리의 영양분으로, 운동체질의 튼실함으로, 기분의 전환으로 면역력을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관건적이고 기본적인 것은 환경의 푸르름이다. 환경의 푸르름을 확보하자면 우선 자연조화의 섭리를 잘 체득해야 한다. 인류는 자연의 섭리에 순연히 순응하지  않은 탓으로 숱한 재앙을 겪어왔었다. 우리 연변에서도 식수조림에 등한했다가 골물피해를 당한 동네가 적지 않았다. 작년 여름에 모아산에 가본 분들은 아마도 소름이 바싹 돋는 정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몸이 오싹해나는 송충이가 떼를 지어 사처에서 바글거렸다. 산기슭 등산길에서 발을 옮겨디딜 자리를 찾지 못해 아가씨들의 놀란 비명이 수시로 터지군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꿈질거리는 송충이떼는 정말 보기만 해도 끔찍스러웠다…

왜서 모아산에 이처럼 심각한 충해가 발생했을가? 그것도 2019년이라는 그 시점에서 슬그머니 애꿎은 등산객들을 놀래웠을가? 추측과 의문들이 쏟아졌다. 그 무슨 2019년은 봄이 없는 ‘무춘년’이여서 벌레가 성해졌다는 설도 있었고 지구온난화로 인기된 생태교란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아무튼 자연의 생태구성에 이상한 실금이 생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였다. 한 여름에도 푸름이 시들 수 있다는 경고장이였고 메시지였다. 대책이 세워져야 했다. 푸름은 푸름으로 지켜내는것이 상책이다. 식수조림, 오물제거, 공업의 ‘점원오염(点源污染)’에 대한 개조, 농업의 ‘면원오염(面源污染)’에 대한 공제는 국가나 정부의 행정추진이고 우리 개개인도 세세한 생활일정에서 푸름을 키워내고 확보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푸름의 수호천사가 되자면 두가지 면에 좀 더 노력하고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실내와 실외의 일거일동이다. 실내에서는 거주환경과 음식위생에 주의하고 실외에서는 공공규칙에 언행을 단속하고 이산화탄소의 방출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기본이여야 한다. 사실 관건은 그래도 마음가짐이다. 생태문화의 고양, 옛날과 현실의 리념차이, 자연속성과 개인심리 갈등, 기분정서와 환경변화 속의 함양적인 수양, 그리고 자각적인 질서 의식에는 차분한 마음가짐이 주추가 되여준다.

지난번 안해와 함께 오월답청 삼아 나물캐러 갔다. 모아산 서쪽골짜기를 넘어서니 완만한 언덕을 따라 푸른 풀이 잔디처럼 깔려 한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다. 약동하는 봄기운이 푸근하게 안겨왔다. 그야말로 ‘저 푸른 초원 우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은 기분이랄가! 막바지 언덕자락을 휘도니 발밑으로 톱이가 배긴 잎사귀를 활딱 펼치고 동글납작하게 앉은 민들레가 밟혀왔다.

“와, 무슨들레네!”

“여기, 여기두… 저기두…”

안해가 떠는 호들갑에 살펴보니 새파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쫙 깔려있었다. 요즘 민들레는 웰빙야채로 남새보다 더 귀해졌다. 그 옛날 민들레잎사귀에 달래를 움켜쥐고 토장에 뚝뚝 찍어서 와삭와삭 씹으면서도 “우리가 뭐 토끼냐! 이따위 풀잎을 다 술상에 올리구 그래?”라고 을러메던 뒤집 술고래아저씨의 볼멘 소리가 귀가로 막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피씩- 절로 새는 웃음을 날리며 나는 미형 군용삽을 꺼내들었다. 많이 캐고 싶은 욕심이 꿈틀거렸다. 한삽에 한포기, 가끔 한꺼번에 두세포기씩 묻어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하얀 줄기에 노란 꽃을 피운 민들레도 묻어올랐다. 주위를 살펴보니 여기저기에서 배시시 웃음꽃을 날리는 민들레가 적지 않았다. 안해가 앉은뱅이 걸음질 치며 다가왔다.

“여보, 꽃이 핀건 캐지도 마세요.”

“왜?”

덩둘해서 묻는 나에게 안해는 고개를 갸웃이 탈며 말했다.

“왜는 왜요? 꽃이 피였다는 건 이미 성가한 몸이라는 고백인거죠. 연연한 맛도 없고 쌉살한 맛도 날아나고 질기기만 해요. 그리고 꽃이 핀 걸 놔두어야 씨를 품은 갓털이 영글어지게 되여 락화되는 족족 봄바람을 타고 더 많은 씨를 저기 언덕너머로 날라다 뿌리지요. 그래야 명년엔 더 많은 민들레가 돋아나잖아요.”

“어쭈, 와늘 정식이구만! 우리 마누라가 언제 이런 철학가로 탈바꿈했나?”

나는 허리를 쭉 펴며 일어섰다. 저 아래쪽 개울가엔 파란 버들이 휘휘 늘어지며 흐느적거린다. 파란 치마를 두른 공주가 어리광 부리는듯 앙증맞다. 그렇다. 안해의 말에 그 어떤 철리가 담겨져있는 것만 같다. 자연 식물인 민들레를 자주 캐 먹는 것도 신체에 유리한 일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캐서 먹게 하자면 더 많은 민들레가 돋아나도록 해야 자연선행의 베품이 될게 아닌가!

돌아올 때 푸름 속으로 오불꼬불 꼬리를 감추려는 오솔길로 내리막 걸음을 타노라니 허기진 배가 출렁거렸다. 파랗고 노랗고 빨간 등산객들의 오르내림이 푸름 속으로 어룽어룽거린다. 푸른 숲속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은 파랗게 청청했다. 역시 푸른 숲속 사이로 저 멀리 내려다 보니 곡강분지에 틀고앉은 연길은 뽀얀 운무 속에 잠겨있었다. 홀연, 귀가로 연연히 울려주는 한가닥 선률이 있었다. 그 옛날 농촌에 내려 갔을 때 파란 벼모를 꽂으며 불렀던 노래다.

  -푸름한 새벽에 해지는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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