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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나무 그늘 / 김선진
2018년 12월 24일 17시 55분  조회:601  추천:0  작성자: 강려
철쭉나무 그늘                                            
 
                                       김선진
                                                                           
장맛비 바삐 오는 축축한 발걸음 소리                  
이른 아침, 베란다 건너 철쭉나무 밑
음습한 그늘 속에서
화다닥, 놀란 만삭의 길 고양이
얼결에 줄줄이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아침나절 까치 울음소리
 
몸을 푼 철쭉나무 그늘을 벗어나
측백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몸을 누이고
뜨거운 여름, 하오 고단한 산후조리
 
꼬물꼬물 다섯 새끼들
축 늘어진 어미 배를 딛고
젖꼭지를 찾느라 분주하다
어미는 마음껏 몸을 부려두고
가슴을 쭈욱 펴고 젖꼭지를 새끼 쪽으로 밀어준다
 
아무도 떼어내지 못할
젖꼭지
 
채 눈도 뜨지 못하는 새끼를 종일 핥더니
오늘, 퍼붓는 폭우 뒤에
행방 묘연
 
어디로들 갔나,
 
고양이 그림자를 놓친
철쭉나무 그늘
 
 
<이선의 시 읽기>
 
    시인의 길고양이를 보는 시선이 나른하고 길다, 따뜻하다.
    우장산 공원 영산홍나무 밑에도 세 마리 새끼고양이가 살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으슥한 어둠을 사랑하는 족속들이다. 의자 밑에 엉덩이를 드러내고 숨어버린 아기같다. 사람들에겐 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걸 모르는 걸까?
  화려한 수식어를 남발하지 않아도, 깜짝 놀라 새끼를 주루룩 낳는 길고양이 모습을 적나라하고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우습고 재미있고 측은하고 애틋하고 처절하고 믿음직스럽고 아련하고 애잔한
  ‘새끼를 낳는다’는 단순한 ‘사실’이 왜 이렇게 감동스러울까?
  사실적이 주는 힘이다. 명징하고 철학적이다.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순간적으로 포착한 진실은 감동의 파장이 길다.
  가슴을 쭉 펴고 젖꼭지를 내어주는 어미 고양이의 자세가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진다. 절망의 끝에서 태어나는 희망처럼. 눈물나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비쩍 말라 비실비실 말라갈지라도 제 새끼를 잘 거두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다섯 마리나 키우려면 어미 길고양이는 먹이를 구하기도 힘들 거다. 요즘 음식물 분리수거로 먹을 게 없는데.
  시인의 궁금증은 몇 날이고 고양이를 눈으로 찾고, 관찰하고, 지켜볼 것이다. 더 마음이 내키면 생선 몇 마리 넌지시 건널지도 모를 일. 결국 데려다 안방에서 기를지도 모를 일.
  
  고양이 그림자를 놓친
  철쭉나무 그늘
 
  위의 시 8연은 늘 고양이를 궁금해 하는 ‘철쭉나무 그늘’에게 슬며시 시인의 마음을 실어놓은 것. 시인의 마음이 자못 어떠해야 하며, 시의 눈은 자못 어떠해야 하는지 이 시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웅변하지 않고 넌지시. 은근하게. 시인의 성격대로. 무기교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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