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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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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는 의미주의다 [퍼온 글]
2021년 05월 19일 18시 30분  조회:696  추천:0  작성자: 강려
원문 출처 https://cafe.daum.net/geumchunmunin/CV32/1616

1. 구조주의의 이론

1) 구조주의의 개념

구조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구조주의라는 용어가 환기하는 독특한 국면들 때문이다.

문학론의 경우 구조주의는 작품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인식되지만 구조주의가 강조하는 구조의 개념은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학론이나 낭만주의의 유기체론 따위도 구조의 개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품은 하나의 전체이며 전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의 유기적 결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소박한 구조의 개념이 20세기 문학론의 대표적 유형으로 부각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마디로 구조가 아니라 구조주의라는 용어가 갑자기 유행된 이유는 무엇일까?

20세기의 지적 상황을 먼저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20세기 전반의 서구의 지적 상황은 지식의 단편화라는 명제로 요약된다.

일종의 원자론적 인식론이 팽배한다.

사물을 전체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서 분리된 개체. 곧 하나의 원자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론의 전형적인 보기가 소위 실존주의이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세계나 타인으로부터 분리되고 고립된 하나의 개체로 인식된다.

따라서 삶의 본질은 고독이나 부조리로 드러난다.

이러한 원자론적 인식론에 반대되는 당시의 지적 태도로 마르크스주의를 들 수 있다.

문학론의 경우 루카치의 주지주의 비판, 사르트르의 후기이론 따위가 그것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적인 변증법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었고, 특히 역사에 대한 지나친 신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판되고 있었다.

구조주의는 이러한 지적 상황, 곧 원자론의 인식과 유물사관의 약점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나타나는 하나의 정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40년대를 전후하여 태동한 이러한 지적 태도가 실제로 확고한 방법론으로 수용된 것은 60년대를 전후하면서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사고 법칙이 원시인이든 문명인이든 동일함을 강조한다.

모든 인간 정신은 인간의 상징적 기능이 구현하는 보편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신화에서 읽을 수 있는 구조적 체계가 그렇다.

신화의 구성 성분들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들의 다발로 존재한다.

관계들의 다발이란 관계들이 서로 결합되어 신화적 의미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신화의 의미는 결국 신화를 구성하는 성분들의 상호관계로 나타난다.

문학론의 경우 이러한 구조주의적 인식론은 언어, 특히 문학적 언어를 지배하는 보편적 법칙의 발견을 지향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20년대의 러시아 형식주의, 30년대의 체코 구조주의, 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까지의 미국 신비평 이론들을 포함시킬 수 있다.

구조주의자들은 문학 작품을 작가나 독자나 세계에서 독립된 하나의 객체로 인식한다.

그러나 협의의 구조주의 문학론은 60년대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된다고 봄이 옳다.

따라서 극도의 객관주의적 시선으로 작품을 보며, 이때 작품이라는 하나의 객체는 언어적 구조로 드러난다.

그것은 언어적 기호의 세계이다.

구조주의의 중심 개념은 체계이며 따라서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체계적 구조, 변형, 구조와 의미의 상관성 따위가 강조된다.

피아체의 소위 전체성, 변형성, 자기 규정성이 강조된다.

또한 구조주의자들은 개별적 작품이 아니라 유형, 나아가 문화라는 거대한 체계 속의 한 체계로서 문학을 연구한다.
그들의 이론적 배경은 대체로 동일하다.

그들이 서 있는 토대, 곧 논리 체계를 먼저 고찰할 필요가 있다.

 

2) 구조주의의 논리

구조주의 문학론이 서 있는 이론적 토대는 언어학과 인류학이다.

언어학이 강조되는 것은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 때문이다.

언어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거부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언어학자는 스위스의 소쉬르이다.

그는 세계에 대한 원자론적 인식을 거부한다.

세계에 대한 원자론적 인식이란 세계가 고립된 객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객체들을 전체에서 독립시켜 개별적으로 고찰하고 분류할 수 있다는 신념을 전제로 한다.

언어학의 경우 이러한 태도는 언어를 고립된 단위들, 이를테면 낱말들의 단순한 집합으로 보며 그들의 의미 역시 낱말들의 관계가 아니라, 개별적인 낱말들이 환기한다는 신념을 유도한다.


언어와 낱말의 관계는 원자론적 인식론에서 읽을 수 있던 세계와 객체들의 관계와 동일하다.


언어에 대한 전통적 관점은 언어를 이렇게 정의할 뿐만 아니라 언어가 통시적 차원으로 존재하며 이러한 통시적 차원 때문에 언어학은 변화의 법칙을 찾는다는 견해로 수렵된다.


소쉬르의 언어학을 혁명적인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이러한 전통적 관점을 정면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언어를 고립된 객체들의 집함으로 보는 실체론적 견해를 뒤엎고 그는 구조주의적 인식론에 의하여 언어를 최초로 정의한다,

언어에 대한 실체론적 견해가 아니라 관계론적 견해가 제시된 셈이다.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제네바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그의 사후에 제자들이 출판한 <일반 언어학 강의>(1916)에서 그는 언어는 개별적 부분들로서가 아니라 부분들의 상호 관계에 의하여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시적 연구보다는 공시적 연구를 강조한 것이다.

그의 독창성은 총체적 체계로서의 언어가 어느 시대에나 그 자체로서 완벽하다는 주장에 있다.

언어는 실제로 발화된 말들의 총체가 아니다.

언어를 구성하는 요소가 물리적으로 기술될 수 있고, 감각적으로 인지되는 실체로서의 말이 아니라는,

이러한 자각은 실체론적 언어관을 전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언어 행위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

언어 활동, 언어, 말이 그것들이다.

언어 활동은 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을 의미하지만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개념이다.

언어는 우리의 말(parole)이 타인의 지성에 호응할 수 있고.

(따라서 담화를 생성케 하는 언어 체계, 혹은 추상적 법칙을 의미한다.)

말은 일상적 언술, 곧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실체를 의미한다.

언어가 실제로 발화된 말들의 총체가 아니라는 인식은 그의 유명한 장기놀이 개념으로 설명된다.

 

장기놀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장기판, 장기말 같은 물리적 실체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기놀이에서 장기판, 장기말의 크기, 장기판이나 장기말을 이루고 있는 재료들은 중요치 않다.

장기판의 재료는 종이이든 상아이든 관계 없으며 장기말의 크기나 형태도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장기말의 상호간의 관계, 곧 장기말의 기능, 역할, 장기판의 구성 등이다.

한마디로 장기에서 중요한 것은 장기의 형식인 추상적인 법칙이다.

물론 장기판, 장기말 같은 물리적 실체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실체들의 총화가 장기는 아닌 것이다.

장기판이나 장기말은 언어학에서의 말에 해당되고

장기의 법칙, 곧 추상적 형식은 언어에 해당된다.

따라서 언어는 실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언어라는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 기능으로 정의된다.

 

문학론의 경우 개별적 작품들은 말에 해당되며 작품을 생성하는 추상적 법칙들은 언어에 해당된다.

결국 작품이라는 전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구조로 인식된다.

  

구조주의 문학론의 다른 이론적 토대로는 인류학을 들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여 대표되는 구조 인류학적 관점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특히 유행한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인류학은 크게 친족 이론, 신화 이론, 야성 사고 이론으로 나뉘어 진다.

이 글에서는 신화 이론을 중심으로 몇 가지 기본 개념만 살피기로 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사회 생활은 무의식을 기초로 성립된다.

사회 생활의 연구는 단순한 경험주의적 시각으로 충분치 않고, 단순한 자연주의적 시각으로는 오도된 결론을 유발할 가능성이 많다.

사회 생활에 대한 모든 연구는 무의식적 기초를 탐구해야 하며, 그것은 문화의 언어를 탐구해야 함을 뜻한다.

표면적이고 물질적인 말의 세계가 아니라 심층적이고 추상적인 언어의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무의식적 기초의 단서를 원시 사회 무당들의 질병 치료 양식에서 읽는다.

무당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질병을 신화의 세계, 곧 환자가 믿고 있는 귀신들의 세계와 관련시키는 그의 능력에 힘입는다고 본다.

그것은 오늘날의 의사들이 질병의 원인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따지는 인과적 방법과는 매우 다르다.

오늘날의 의사가 합리적 방법, 따라서 의식의 논리에 의지한다면 옛날의 무당은 비합리적 방법, 따라서 무의식의 논리에 의지한다.

무당은 환자에게 독특한 신화적 체계에 속하는 언어를 부여한다.

환자는 이 신화적 체계를 현실로 인식함으로써.

곧 무당의 독특한 발화에 의하여 혼돈에서 깨어난다.

질병이란 혼돈된 신화적 체계이며, 무당의 언어는 그러한 혼돈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환자의 치료는 신화적 언어 곧 신화적 체계의 발견과 관계된다.

따라서 신화는 갈등을 해석하는 방법이며, 집단적 무의식(ritual)의 기초, 일종의 미적 유희로 산물로 인식되며, 신화의 주인공들은 의인화된 추상, 성스러운 영웅, 혹은 전락한 신으로 유추된다.

레비-스트로스의 궁극적인 관심은 인간들의 정신을 반영하며 동시에 형성적(formative)인 특성을 나타내는 신화적 구조를, 탐구함에 있었다.

신화의 구조는 인간 정신의 구조를 반영한다.

 

특히 그는 신화와 언어의 관계를 동일성과 차이성의 논리로 해석하였으며, 동일성은 소쉬르의 언어, 차이성은 소쉬르의 말에 해당한다.

 

신화 연구에서 그가 발견한 기본 명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신화 의미가 신화를 구성하는 고립된 요소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소들이 결합되는 방식 및 변형의 잠재성 속에 존재한다는 명제이다.

다른 하나는 신화 속에 언어는 특수한 속성들을 나타내며, 그 속성들은 일상적 언어의 차원을 초월한다는 명제이다.

문학론의 경우 이러한 신화 연구는 작품 자체를 신화와 동일시함으로써 작품의 의미, 문학적 언어의 특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유발했다.

 

3) 구조주의 비판

구조주의 문학론의 이론적 토대라 할 언어학과 인류학에서 도출되는 이러한 기본 논리들은 그러나 실체로 문학론의 경우 다양한 모습들로 굴절된다.

대표적인 이론가들만 들어도 야곱슨, 레비-스트로스, 졸레, 소류, 프로프, 토도로프, 바르트, 제네 등이 있다.

 

20세기의 대표적 문학론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는 구조주의적 방법이란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의의를 주는 것일까.

구조주의 문학론의 한계와 가능성은 무엇일까.

첫째 구조주의 문학론이 언어학적 방법을 원용한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지적된다.

구조주의 문학론의 정당성은 이론 전개를 위하여 기술적 용어를 언어학적으로 원용함에 있다.

그러나 언어학적 기술은 문학적 반응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문학적 반응의 문제는 또한 언어학적 조작적 방법이나 통계적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한편의 시가 오직 특수한 시적 구조로 짜여진 메시지만 주는 것이라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시적 메시지의 문법과 구문만 연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시적 구조로 짜여진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독자를 전제로 하는 반응적 체계이다.

반응은 언제나 송신자와 수신자의 상황을 전제로 한다.

시는 이러한 상황의 이중성을 자각할 때 섬세하게 이해된다.

시는 언어적 구조이며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둘째 구조주의는 여러 문학적 일상들을 법칙들로 환원시킴으로써 기계적 예술론을 강조한다.

예술 고유의 자발성을 고려치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은 구조주의 자체가 아직도 하나의 신비에 싸여 있기 때문에 충분한 설득력을 띠지는 못한다.

구조주의 자체가 신비에 싸여 있다는 것은 구조라는 개념이 단순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사고 양식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인간 정신의 본질이 바로 구조를 형성하는 능력에 있다는 생각은 칸트 같은 철학자 뿐만 아니라 형태 심리학자들과 최근의 자연 과학자들의 이론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아직은 구체적인 실증의 단계에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인간의 정신은 상징적 기능을 수행하고, 이 상징적 기능이 구현된 것이 신화이며, 신화는 구조적 체계를 나타낸다는 논리는 구조주의의 밝은 면을 암시한다.

 

셋째 구조주의는 언어의 본질과 사고 과정의 본질이 동일하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인간적 보편성에 대한 새로운 신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적 특수성과 고립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적 이념을 거부한다.

또한 역사성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도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구조주의는 이 시대의 새로운 이념일 수 있다.

따라서 문학론의 경우 구조주의는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 된다.

세계를 보는 눈이 되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인간 조건을 자유와 선택이라는 윤리적 명제로 요약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에의 신뢰를 강조한다.

사르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대립은 실존적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의 이념적 차이가 무엇인가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전자는 인간이 역사 속에 존재함을 확신하며, 따라서 보다 나은 미래를 지향한다.

후자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으며, 따라서 역사주의적 태도를 거부한다.

전자, 실존주의는 현대 과학의 중요한 결과들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는 현대 과학의 중요한 결과들을 수용한다.

예컨대 인간적 진실을 상대성 원리에 의하여 파악한다고 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 곧 모든 측정이 측정을 가능켸 하는 준거들, 이를테면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는 명제를 수용한다.

상대성 원리는 또한 역사적 진리라는 마르크스즈의적 개념에 배반된다.

우리에게는 한 역사가 아니라 많은 역사가 있고, 각 역사는 역사가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해석한 신화의 다양한 변주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르트르가 인간은 역사 속에 살며 신화란 역사로부터의 도피라고 본다면,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은 신화 속에 살며 역사는 신화로부터의 도피라고 본다.

역사의 진보란 신화의 변형 속은 대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끝으로 구조주의는 최근 탈구조주의로 전환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데리다 같은 철학자의 논리에서 읽히는 것이지만, 탈구조주의적 시각은 구조주의가 구조적 체계를 강조함에 반하여 그러한 체계를 지배하는 중심에 대해 비판한다.

 

2. 구조주의 수용

1) 구조주의의 수용

문학을 연구하는 방법은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인식하는 가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문학 작품이란,

현실 세계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고,

작가의 기질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고,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문학 작품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나름대로 문학 연구의 길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문학 작품과 현실 세계의 관계, 문학 작품과 작가의 관계, 문학 작품과 독자의 관계를 살피는 일 따위로 나타난다.

이러한 연구 방법은 물론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지니지만, 문학 작품을 문학 작품 밖의 것들과 밀착시켜 연구한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자각이 소위 20세기에 오면서 문학 작품을 문학 작품 자체로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재적 접근법을 태어나게 한다.

구조주의란 문학 연구의 경우 내재적 접근법 가운데 하나로 수용된다.

내재적 접근법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문학 작품을 문학 작품 자체로 연구한다는 점에서는 러시아 형식주의, 미국의 신비평 혹은 다소 다른 관점에서이긴 해도 신화 비평이나 원형 비평 같은 것들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 연구에 있어서 구조주의가 나타내는 의의는

결국 문학 작품을 문학 작품 자체로 연구하겠다는 새로운 의지와, 20세기 초의 형식주의나 신화 비평과는 다른 국면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구조주의란 구조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자각에서 출발한다.

구조라는 용어는 17세기 생물학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세기에는 언어학, 문학, 문학에서도 폭넓게 사용된다.

 

물론 구조와 유사한 의미로 체계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다.

 

구조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따라서

체계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기능이라는 제3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대체로 구조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구조란 체계의 기능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구조는 체계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구조는 그 자체로는 어떤 기능을 나타내지 않고, 다만 한 체계가 주어질 떼 기능을 나타낸다.

이를테면 교통 신호의 경우,

그 신호 체계는 교통을 규제하는 기능을 나타낸다.

 

이때 신호 체계가 이러한 기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그 체계가 계기적(繼起的)으로 교체되는 붉은색과 초록색의 대립이라는 구조를 소유하기 때문이며, 이때 두 색의 대립성이 바로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체계는 체계로서의 형식을 지니지만,

구조는 형식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형식이란 물질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것, 곧 체계의 물질적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면,

구조는 물질적으로 드러날 수 없는 것, 곧 체계의 의미적 양식이라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의 경우 율격(律格), 연(聯)의 배열같은 기술적 문제, 곧 2행 시니 시조니 하는 것은 시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의 구조는 한편의 시에서 사상이 조직되는 양상, 곧 대조, 평행, 반복 등으로 나타난다.

 

구조를 체계의 의미적 양식이라고 한 것은 시의 구조가 시라는 체계로 하여금 어떤 의미를 나타나게 하는 하나의 정신 활동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학의 경우 형식 분석과 구조 분석은 다르다.

전자가 문학 작품의 물질성을 다룬다면,

후자는 물질성이 아니라 일종의 정신성을 다룬다.

러시아 형식주의 및 미국의 신비평이 전자를 지향한다면,

20세기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한 구조주의는 후자를 지향한다.

구조주의자들은 체계의 형식이 아니라

체계의 구조를 해명한다고 할 수 있다.

 

2) 언어학의 경우

언어를 하나의 구조로 인식한 언어학자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소쉬르이다.

그의 사후에 출판된 <일반 언어학 강의>(1916)에서 그는 언어가 자기 충족적 체계라는 견해를 발전시킨다.

따라서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를 형성하는 요소들의 상호 관계이다.

언어 체계의 기능은 의미 작용에 있으며,

언어 체계를 형성하는 요소들은 기호이다.

기호는 소리 심상과 개념이라는 두 양상을 소유한다.

이를테면 "사람"이라는 기호가 "saram"이라는 소리 심상과

"人"이라는 개념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人"이라는 개념을 미국에서는 "human", 중국에서는 "人間"으로 부른다는 점에 유의한다면,

결국 소리 심상과 개념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 관계가 없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기호는 자의성(恣意性)을 본질로 한다.

기호를 형성하는 소리 심상과 개념 사이에는 어떤 내적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쉬르가 말하는 언어적 기호의 제1원칙이다.

소쉬르에 의하면 소리 심상은 오직 시간적으로만 전개된다.

따라서 소리 심상은 선형성을 본질로 하며, 이것이 언어적 기호의 제2원칙이다.

언어적 기호의 이러한 특성을 전제로 할 때,

하나의 기호에 언어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상이성(相異性)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상이성은 물론 소리 심상들 사이에서도 드러나며, 개념들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하나의 기호가 언어적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이러한 상이성은 언어의 경우에는 논리적으로 실증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산"이라는 기호가 언어적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삼"이라는 기호와의 상이성을 전제로 해서이다.

그렇지만 이 두 기호간의 상이성은 논리적으로 실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산"은 "삽" "간" "상" 등 여러 가지 기호에 대해서도 상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이라는 기호에 대한 연구는 이 기호가 담화 속에서 선형적 본질을 기초로 하여 다른 기호와 어떤 관계를 성취하는가를 따지는 일로 수렴된다.

전자를 통합적 관계, 후자를 계열적 관계라고 부른다.

전자는 기호들의 배열 관계, 후자는 담화의 일정 시점에 실현된 기호와 대치되어 나타날 수는 있지만 상호 배타적이어서 동시에 나타날 수 없는 잠재적 언어 요소들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산이 높다"고 할 때, "산"→"이"→"높다"는 통합적인 관계이며,

이때 "산"이 "산맥"으로 대치되거나, "높다"가 "크다"로 대치되어 통합체가 구성된다면

"산"과 "산맥" "높다"와 "크다"의 관계는 계열적 관계가 된다.

상이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투르베츠코이의 <음운론>(1939)에 오면 대립성의 개념을 중심으로 더욱 세밀하게 탐구된다.

그는 일찌기 언어가 나타내는 구조의 두 측면, 곧 의식적 측면과 무의식적 측면을 분별했으며, 이러한 분별은 특히 후기 구조주의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에 의하면 실제로 발음되는 것은 발해진 언어의 체계를 직접 그리고 필연적으로 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음성학의 영역이 바로 음운론의 영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해진 언어의 체계, 혹은 법칙은 실제로 발음되는 것을 토대로 한 가설과 추리에 의하여 성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후기 저술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성에 대해서 레비-스트로스 같은 후학(後學)들보다는 관심을 덜 기울인다.

오직 그는 참된 구조는 언어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견해를 강조한다.

 

3) 인류학의 경우

이러한 구조 언어학은 레비-스트로스 같은 인류학자에 의하여 프랑스에서 새롭게 수용된다.

또한 이러한 구조 언어학은 촘스키의 저술에서 새로운 방향을 나타낸다.

촘스키는 문법의 표면 구조와 심층 구조의 대립, 심층 구조의 변형, 생성이라는 개념이며,

레비-스트로스는 사회 체계가 나타내는 역동적 교환성이다.

이러한 인식은 언어의 교통이 낱말들의 교환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과 유사한 발상을 토대로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근친 상간의 금지라는 사회현상으로서, 족의 결혼 제도를 여자들의 교환 체계로 해석한다.

성관계는 언어의 경우와 똑같이 교통의 위대한 기능 가운데 한 기능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심리적 구조들의 특성은 무의식 현상이라는 사실이 중시된다.

따라서 그는 사회 제도와 인습의 심층에 존재하는 무의식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다.

이러한 발상은 구조 언어학자 투르베츠코이의 견해와 유사하다.

언어 체계의 기능, 곧 교통에 대해서는 오랜 시일에 걸쳐 논의되어 왔고,

특히 구조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기능을 충족시키는 구조적 요소들과 그 관계에 대해서 논의해 왔다.

 

인류학의 경우에도, 친족 연구의 경우에서처럼 친족 체계의 요소들과, 그 요소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고, 특히 구조 인류학자들은 어떻게 이 요소들이 하나의 체계의 구조를 구성하며, 그 체계의 기능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왔다.

뿐만 아니라 언어학의 경우처럼 인류학의 경우에도 구조적 특성은 여러 관습, 신화, 친족 유형 등에 드러나는 상이성을 연구할 때 드러난다.

구조라는 항수(恒數)는 결혼의 특수한 한 가지 법칙이 아니라, 결혼의 여러 법칙들이 모여 이루는 유형이며, 그 변수(變數)는 제한된 수효로 교환의 순환적 질서를 지킴으로써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게 된다.

20세기 후반의 구조주의 운동이 그토록 유행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를 우리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1955)와 <야생적 사고>(1962)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자전(自傳), 여행기, 철학적 성찰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구조주의자의 면모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조주의의 도덕적 성격에 대해서 알려주는 바가 크다.

그의 지적 발전에 영향을 끼친 사상은 마르크시즘과 정신 분석학이며, 이것이 그의 신화 연구의 배경이 되고, 세 가지의 기본적 사회-철학적 문제를 환기한다.

곧 집단 속에서의 개인의 위치, 집단과 자연 세계의 관계, 자신이 연구하는 문화와 자신이 소속한 문화 양자와 관련되는 인류학자의 책임 등이 그것이다.

촘스키의 경우가 그렇듯이 레비-스트로스의 경우에도 그가 연구하는 구조들은 인간의 정신을 반영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야생적 사고>에서 그는 이러한 주제를 좀더 명확히 다진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가장 자연스런 상태에 두는 일이다.

여기서 그는 흔히 원시인이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으로 사고한다는 이제까지의 견해에 비판한다.

그는 원시인의 사고 속에서 소위 "구체성의 과학"을 발견한다.

또한 원시인들은 기사(技師)라기 보다는 조립공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조립은 구조주의의 기본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된다.

신화는 마치 언어가 초기 언어들의 단편으로부터 구성되듯이, 초기 신화들의 단편으로부터 구성될 수 있으며 이때 분석의 과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분석 과정에서 함께 되는 것은 기계보다 더욱 정확한 구조를 소유한 원시인들의 정신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구조는 이러한 정신을 반영한다.

신화의 경우 분석 과정은 제1의 신화가 어떻게 제2의 신화의 변형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일들로 구성된다.

그것은 신화의 심층 구조를 탐구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정신의 유형을 추출하고, 무질서한 자료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유라는 환상의 심층에 일종의 필연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4) 문학의 경우

문학 연구에서 구조에 대한 관심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 분석에서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문학 연구에 있어서의 구조주의적 접근법은 20세기 후반에 오면서 구조 언어학의 이론을 모형으로 해서 한결 명료하게 부각된다.

구조주의 비평의 충격적인 보기 가운데 하나는 언어학자 야콥슨과 인류학자 레베-스트로스가 공동으로 성취한 보들레르의 소네트 '고양이'에 대한 분석(1962)이다.

이러한 연구에서 읽을 수 있듯이 문학의 경우 구조주의적인 접근법은 문학을 포함해서 어떤 문화적 현상, 문화적 활동, 문화적 산물들도 내적 관계들로 구성되는 자기 충족적 자기 결정적 구조로 나타나는 의미 체계로 인식한다.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음운이나 말소리는 실증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요소들의 순수한 관계에 의해서 해명된다.

체계의 요소들은 체계 내부에서 다른 요소들과 대립되거나 상이성(相異性)을 드러내는 관계에 의해서 증명된다.

또한 전체로서의 하나의 체계는 위계적 계층들을 소유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낮은 단계의 요소들은 복잡한 결합을 통하여 복잡한 기능을 나타낸다.

구조주의자들은 총체적 체계, 그 체계를 구성하는 관계들의 하부 구조, 결합 법칙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언어에 대해서 소쉬르가 말하는 소위 숨어 있는 체계, 곧 "랑그(langue)"를 찾는 일과 유사하다.

따라서 구조주의 접근법이 환기하는 제1의 임무는 체계가 암시하는 구조와, 그 구조의 자질들을 명시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심층적 체계를 특수한 문화 형상 속에 나타나게 하는 일이다.

소쉬르 식으로 랑그를 특수한 언술인 "빠롤(parole)" 속에 나타나게 만드는 작업과 같다.

구조주의적 접근법에 따르면 문학은 제1의 질서 체계인 언어를 사용해서 형성되는 제2의 질서 체계로 인식된다.

말하자면 제1의 질서 체계를 수단으로 하는 제2의 질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학의 이론을 모형으로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구조주의 비평가들은 하나의 문학 작품이나 혹은 어떤 시각에서 서로 관계되는 일정한 수의 문학 작품군을 취급한다.

이들은 음운론적 계층, 형태론적 계층, 통사론적 계층에서 문학 작품이 어떻게 조직되는가를 분석하고, 혹은 통합적 계증, 계열적 계층에서 문학 작품의 구조적 요소들이 띠는 관계를 분석한다.

토도로프 같은 일부 비평가는 한 문장의 통사법(syntax), 곧 통사 규칙을 모형으로 문학 작품의 구조를 분석한다.

말하자면 문학 작품의 구조적 요소들이 나타내는 기능은 한 문장 속에 명사, 동사, 형용사 등이 나타내는 기능과 유사하다는 가설에 의해 작품을 분석한다.

일부 구조주의 이론가들은 언어학의 모형을 더욱 충실하게 원용한다.

주로 소설의 분석에서 그렇지만 그들은 어떤 주어진 문학적 유형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결합 법칙들과, 문학적 인습의 심층 체계를 밝히는 일은 사회 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문학의 문법, 체계적 규칙, 약호 체계(code)를 명시하는 일이 된다.

그것은 언어에 대해 언어학이 구축하려는 것과 같은 방향에서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학을 구축하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5) 구조주의 비평

20세기 후반에 나타나는 구조주의 비평의 두드러진 양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학 작품은 기술(記述)의 한 가지 양식이며, 그것은 순수한 문학적 인습과 약호 체계에 따라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됨으로써 구성된다.

인습과 약호 체계라는 이러한 인자들은 문학적 제도 속에서 체계 외부에 존재하는 현실과는 무관하게 스스로의 문학적 효과를 형성한다.

둘째 개별적 작가 혹은 주체는 문학 작품을 생산함에 있어서 어떤 계획이나 의도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개별적 작가, 곧 의식적 자아는 언어적 인습 속에서 "나"라는 대명사가 나타내는 그러한 기능을 나타낼 뿐이다.

작가는 언어적 인습의 산물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작가의 정신은 하나의 "맡겨진 공간"이 되며 문학적 인습, 약호 체계, 결합 법칙 같은 비인격적 체계는 이러한 공간 속에서 하나의 특수한 기술물(記述物)이 된다.

세째 객체로서의 독자는 독서라는 비인격적 활동 속에 용해되고 만다.

그는 의미들로 침투된 하나의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를 기술한다.

결국 구조주의 비평의 초점은 독서 행위이며, 독서 행위는 필연적으로 인습과 약호 체계를 수반함으로써 문학 작품의 의미를 태어나게 한다.

곧 구조주의 비평은 문학적 기술(記述)의 단편이라 할 수 있는 문장, 어귀, 낱말 등의 배열에 새로운 형식과 의미를 부여한다.

초기 구조주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독서가 비록 하나의 정확한 의미보다는 복잡한 이미지 효과를 산출한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는 이제까지 계승된 문학적 세계에 의해 규제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데리다를 중심으로 하는 탈구조주의 비평가들은 독서 곧 문학적 기술이란 무한한 의미들의 창조적 유희, 혹은 제멋대로의 유희를 태어나게 하는 "표시"들만 보여주면 된다고 제의한다.

또한 구조주의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전통적 비평가들과 수사학자(修辭學者)들이 발전시킨 분석적 용어들을 채용하지만,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사용한다.

이를테면 작품의 통일성, 장르, 구성, 화자, 인물, 비유어 같은 친숙한 비평 개념들이 구조주의자에 의하여 작품의 객관적 자질로 일단 간주되면, 그것들은 곧장 반응과 기대의 체계로 수용된다.

따라서 분석 과정에서 이러한 체계들은 충족되거나 좌절되거나 변경될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읽어감에 있어서 통일성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그 작품에 대해서 지니게 되는 반응과 기대의 체계가 어떻게 충족되고 좌절되고 변경되는가를 더듬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구조주의자들은 시보다는 산문에 더욱 많은 관심을 나타낸다.

소설 구성의 유형과 구조 분석의 선구자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러시아 형식주의자 프로프이며, 그는 <민담 형태론>(1928)에서 러시아 민담의 항수(恒數)와 변수(變數)를 탐구했다.

인물들의 행동이 기능을 나타낸다는 관점에서 그는 러시아 민담에 나타나는 기능을 31개로 요약했다.

한편의 산문 소설에 대한 철저한 구조 분석은 롤랑 바르트의 (1970)에서 명확하게 드러났으며, 여기서 그는 발작의 중편 소설 <사라진느>를 절단하여 가장 작은 기능적 단위들을 설정한다.

이 단위들은 한 낱말로부터 문장들의 계기(繼起)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구성되며, 다음 이 단위들 속에서 해석적 독서를 인도하는 약호 체계의 다섯 가지 유형을 분별한다.

이밖에도 토로도프는 <데카메론의 문법>에서 수사학, 통사론, 의미론의 시각 가운데 특히 통사론의 시각으로 작품을 분석했으며, 최근에는 후기 구조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는 푸코, 데리다, 알튜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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