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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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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김경화
2012년 11월 19일 09시 39분  조회:1229  추천:2  작성자: 김경화
아버지의 유산

김경화



날씨도 이젠 점점 추워지고 아침저녁으로 뼈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에 소름이 오싹오싹 돋아난다. 남 다 사는 난방아빠트에서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채 평생 불 때는 집에서 고생만 하다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요즘 따라 자꾸 꿈에 나타난다. 엄마가 혼자 불 때는게 걱정되여서인가?


바쁜 일정을 제쳐놓고 친정에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다행히 엄마는 별일 없으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젠 다섯달이 되였는데 엄마의 슬픔은 아직도 여전하신듯하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만나 평생 오로지 서로만을 사랑해온 부모님이시니 그럴만도 하다.


아버지 유물을 이것저것 정리하시며 엄마는 또 그리움에 목메여 눈물을 지으신다.


문득 오래동안 보이지 않던 텔레비죤만큼 큰 라지오가 눈에 띄였다. 언제 우리 집에 왔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집에 온지 참 오래 된 라지오이다. 저게 아직도 있었나? 덩치 크고 무거워서 자리나 차지했지 요즘 세상에 누가 라지오 듣는다구 저걸 아직도 보물단지처럼 모시고있지?


“네 아버지 고집을 모르니? 나두 저걸 없애버리려구 몇번이나 말했는데 네 아버지가 다치게 하니 어디? 그게 어떤 라지온데 페물로 팔아버리냐며 뗑하는데 내가 뭐 어쩔수 있어야지?”


“어떤 라지온데 아버지께서 그렇게 보물취급 했어요?”


어릴 때 아버지한테서 들은 기억이 날듯말듯하면서 도무지 잡혀지지 않아 엄마한테 물어서야 연변일보의 지난 력사와 엉켜진 옛이야기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는 뭐든지 하나밖에 몰랐던분이시다. 열일곱살 되던 1957년에 연변일보사에 통신원으로 취직해서 얼마뒤 전신부에 옮겨진 뒤 장장 40년 세월동안 바위처럼 드팀없이 그 일터를 묵묵히 지켜오셨다. 그때는 지금처럼 통신망이 발달되지 못한 때여서 신화사에서 발송하는 뉴스를 무전으로 받아 라지오방송으로 교정한 뒤 시사부에 넘기면 시사부에서 우리 말로 번역해 조선문판 연변일보에 실었다고 한다.


우리 집의 쏘련제 고물 라지오가 바로 그 담당자였다. 이 라지오의 래력을 말할라치면 아득히 먼 7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것 같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투항을 선포한 뒤 한동안 무정부상태였던 때가 있었단다. 연변에서는 그때 《한민일보》,《연변일보》,《길동일보》, 《인민일보조문판》이 련이어 나왔고 북만(지금의 흑룡강)에서 《인민일보》,《신민일보》,《단결일보》가 나왔으며 남만(지금의 료녕)에서 《민주일보》가 탄생했다.


1949년초, 주덕해가 연변으로 파견되면서 《연변일보》, 북만의 《단결일보》와 남만의 《민주일보》를 합쳐서 《동북조선인민보》를 꾸리게 했다. 그때 《민주일보》에서 이 라지오를 가지고왔었다.


몇해전에 《민주일보》 창시인의 한분이셨던 김윤송이 우리 집에 놀러오셨다가 이 라지오를 보더니 감개가 무량해하셨다.


1946년에 《민주일보》를 꾸리긴 했는데 통신설비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매하구를 거쳐 심양까지 가 쏘련홍군이 관리하던 중장철도사무실을 찾아 지원을 요청했다 한다.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쏘련홍군장교가 물을 때 눈에 띄는게 바로 이 라지오였단다.


“이겁니다. 이걸 주면 됩니다.”


그 장교는 김윤송의 요구에 흔쾌히 대답하였고 그후 인차 국민당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져 그들은 이 라지오를 메고 조선에 가 피난하면서 신문을 꾸렸다고 한다. 그때 이 라지오를 통해 서울, 평양, 일본, 미국, 쏘련 방송을 들으면서 시사편집을 할수 있었단다.


후에 컴퓨터가 나오고 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력사의 무대에서 밀려나 별 쓸모가 없이 구석자리만 차지하던 그 라지오를 신문사에서 싼 값으로 처리하면서 우리 집에 옮겨오게 되였던것이다.


아버지는 집에 계실 때면 늘 그 라지오를 켜놓고 국내국제뉴스를 듣군 하셨다. 참 오랜 세월의 풍랑을 거치고나서도 라지오의 음질은 마냥 맑고 부드러웠다.


그후에도 김윤송은 연변에 왔다가 우리 집에 들리셨다. 그때 이미 퇴직하고 북경에 거주하고있던 김윤송은 우리 집에서 그 라지오를 보자 잃었던 자식을 다시 만난 부모처럼 눈물이 글썽하여 오래오래 그 라지오를 어루쓸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모진 세월 거친 비바람속에서도 여전히 빛 바래지 않고 윤기나는 외곽, 아직도 맑고 깨끗한 그 음성… 참 우리 아버지를 많이 닮은듯 하다.


평생 청빈하게 사시면서도 불의한 재물 일전어치도 챙기려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러면서도 누구네 집 가전제품이 고장났다 하면 밥도 안 잡수시고 달려가 고쳐주시고도 일전 한푼 받을줄 몰랐던 고지식한 우리 아버지, 중병에 돈 쓸 일도 많으시련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그 라지오를 못팔게 지켜나선 아버지…어쩌면 아버지한테는 그 라지오가 아버지의 한평생 정열을 고스란히 바쳐온 연변일보와 끈끈히 이어진 자식과도 같은 존재였던지도 모른다.


아니, 이 라지오는 정녕 돈으로 계산할수 없는 아버지의 소중한 유산이다.


아버지의 오랜 손때 묻은 고물라지오를 보면 그 곁에서 뭔가 골똘히 듣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오늘도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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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경화
날자:2017-10-04 22:53:03
이 글은 제가 쓴게 아닌데 어떻게 여기에 올려져있는지 알수가 없네요. 운영진에서 이 댓글 보신다면 삭제 부탁드리겠습니다.
Total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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