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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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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길목에 서서
2019년 07월 16일 09시 01분  조회:39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길목에 서서

김경화

 

아침산책을 한다. 10월의 막바지에 이른 북방의 아침은 은근히 매섭다. 나는 그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매서움이 짜릿하다. 동쪽으로, 서쪽으로, 남과 북으로, 나는 매일 순례길에 나선 성실한 구도승이 되여 길을 밟는다. 

그 길에서 나는 많은 것을 만난다. 계절을 알리는 락엽을 만나고 물이 제대로 올라 가슴께가 푸르고 아래도리가 정결하게 흰 북방의 가을무우를 무더기로 만나 괜히 가슴이 설레인다. 무심코 길을 가다가 우연하게 친구를 만나 총알처럼 뛰여가 얼싸안는 어떤 소녀의 터지게 환한 얼굴을 만난다. 

사람냄새가 지분처럼 묻어있던 골목은 재개발을 앞두고 허연 뼈를 드러내고 있다. 처연하게 치부를 드러낸 녀인네처럼 그것은 쓸쓸하다. 나는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해 한참을 머뭇거린다. 

터벅터벅 가다 보면 어떤 길이든 끝나는 시점이 있다. 다행스럽고 허전한 마음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이 길이 끝나는 것처럼.

한순간, 깨달음을 얻은 현자의 마음이 된다.

사랑이 영원할 것을 믿었던 시간이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픈 사랑은 지구 저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까마득한 일인듯 착각했거나 혹은 그렇게 믿고 싶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시간이 있었다. 

깊이 사랑했을 때, 처절하게 아플 것이라는 예상도 했어야 했지만 온통 나한테는 무지개빛만 비출 것이라고 헛된 상상에 사로잡혔던 시간이 있었다. 

그 영원하리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던 사랑이 퇴색하고 깨여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오직 텅 빈 가슴을 그러안고 신음하는 일 뿐이였다. 

바람이 분다. 

이마가 서늘하다.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걸 알기에 비로소 사랑도 소중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아플 수 있어서, 영원하지 않아서, 어쩌면 사랑은 더욱 아름답고 우리는 사랑을 열망하는 건 아닐가.

사랑 이외의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영원을 살고, 이 모든 우주의 만물이 퇴색하지도 변화하지도 않고 정지된 시간처럼 우리 곁에 머물러있는다면, 천년을 산다 한들 만년을 산다 한들 무슨 재미가 있으랴. 

권태가 우리를 바줄처럼 꽁꽁 묶어버려 우리는 질식해 죽어버리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매서움이 곧 사라지고,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몰려와 내 몸이 옴츠러들게 하고, 눈이 내리고 칼바람이 몰아치고, 그러다가 또 시간이 흐르면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고 새싹이 돋아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내 얼굴에 스치는 이 칼날의 단면 같은 선뜩한 느낌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걸 알기에 지금의 이 매서운 감각이 더욱 짜릿할 것이다. 

사람의 인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아이의 지금의 모든 순간이 소중한 건 아이는 곧 성장할 것이며 그래서 지금의 이 순간이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부모님 역시도 나이가 들고 늙고 병들고 언젠가는 생명이 다해 내 옆을 떠나갈 것임을 알기에 지금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순간이 소중할 것이다. 

어떤 인연 혹은 스치는 모든 사물들 역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깝게는 내 자식과 부모 친구. 가끔 가다 얼굴을 부딪치는 이웃들. 멀리는 무심히 길거리에서 만나는 나와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 나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먼 나라의 사람들. 그리고 이 바람, 이 공기, 저 나무와 풀과 돌멩이 하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자리 그 곳에 다시 그 사람이, 그 물건이 있을지라도 지금과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상황은 아닐 거라는 걸 알기에 소중할 것이다. 

지현. 성주. 사랑해.

언젠가 등산길에서 만난 돌멩이에 새겨진 사랑의 증표를 기억한다.

그렇다. 

저들은 사랑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기어이 저 돌멩이에까지 두 사람이 사랑하는 순간의 그 절절한 마음을, 너무 사랑해서 심장마저 아파나는 그 마음을 증표처럼 검은 글씨로 새겨놓고 두 이름 사이에 심장 같은 하트를 새겨놓았을 것이였다. 

사랑이 처음 그대로 영원히 지속된다면 어떠할가.

항시 처음 만나던 그 순간처럼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심장이 고장나서 죽어버리기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 두근거림은 희소성이 떨어져 대단한 게 아니게 될 것이다. 

사랑이야 두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 내려 서로를 이어주겠지만 어떤 련인도 설레고 두근거리는 시간은 일정한 기간 뿐이다.

그래서, 영원하지 않아서, 지극히 짧은 동안만 설레고 두근거리기에 사랑은 더욱 소중하고 사랑은 영원한 화제이고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모든 남녀가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닐가.

    

길은 끝난다.

영원토록 이어지는 길은 없다. 

길은 끝난 게 아니다.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이 길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몹시도 망연한 마음이 되였는데 또 다른 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가 끝난 게 아님을 알게 해주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하나의 길이 끝나는 길목에 서서 또 다른 길을 한참을 바라본다. 

내 하나의 사랑은 갔지만, 이 길처럼 언젠가는 또 하나의 사랑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 때가 오면 나는 두려움 없이 저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리라. 

바람이 분다.

나는 옷깃을 펄럭이며 그림처럼 서있다.

마음에 맑은 샘물이 차오르는 순간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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