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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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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언니
2019년 07월 08일 13시 28분  조회:242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언니

김경화

 

 

기우뚱하고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손바닥을 펼쳐 조수석 의자 뒤잔등을 밀며 간신히 평형을 유지해보려는데 덜컹하고 차체가 뒤집힐듯이 요동친다. 나는 하마트면 조수석 의자에 머리를 박을 번한다. 

헝클어진 자세를 바로잡으며 흘깃 운전석 쪽을 곁눈질해보니 머리가 반나마 벗어진 중년의 기사아저씨는 평온한 얼굴로 태연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다. 쉴 새 없이 엉뎅이를 들썩거리게 하는 도로사정에도 고요하기 그지없는 눈빛이다. 여기 도로가 이런 걸 몰랐어? 초행길도 아니라면서 뭘 새삼스럽게 호들갑이야. 아저씨의 표정이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짐짓 제풀에 멋적어져 눈을 돌린다. 밖을 내다본다. 누런 먼지가 뽀얗게 달라붙은 차창 너머로 시퍼렇게 물든 산이 집어삼킬듯 마주 달려오다가 물러간다. 십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다. 도로는 보수도 안하는지 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고 산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과 달라지지 않았다. 

“응. 나다.”

며칠 전 걸려온 전화 속 언니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있었다.

뭔 일이 있는 건가 하는 걱정보다는 짜증이 확 났다. 또 무슨 부탁이 있는 건가. 언니는 꼭 자기가 도움 청할 일이 있으면 이렇게 온몸의 힘이 다 빠진듯한 목소리가 되여버린다. 

“냐.”

나는 애써 감정조절을 하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 요즘 바쁘니?”

바쁘기야 하지. 출근하랴, 애 키우랴, 살림 하랴. 거기에 한국에 나가있는 당신하고 오빠가 시도 때도 없이 똥강아지 훈련시키듯 심부름을 시키지 않소. 내가 뭐 슈퍼우먼에 초능력자나 되는듯이.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는다.

“뭐 그냥 그렇지 머. 괜찮소. 왜?”

“응, 니가 시간이 나면 형부한테 한번 가봤으면 해서.”

형부? 나는 순간 떨떠름해진다. 서류상으로 리혼도 했고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한번 변할 시간 동안 전화 한통 없었으면서 형부라고 어쩌면 이렇게 스스럼없이 말을 할 수 있나 싶은 게 입이 딱 벌어진다. 하긴 뭐 언니라면 가능할 법도 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무슨 소리긴. 그냥 궁금해서. 듣자 하니 샘골로 돌아갔는데 거기서 양봉을 해서 돈을 잘 벌고 있다고 하더라. 정말인지 아닌지 니가 한번 알아봤으면 해서.”

알아봐서는 어쩔 건데 하려는데 언니의 말이 이어진다.

“그냥 한번 가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라. 진짜로 그렇게 자리잡고 돈 잘 벌고 있는 건지. 그렇다면 은근슬쩍 언니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구, 여태 혼자서 열심히 돈만 벌었다구 하구, 형부 소식을 물어보더라, 그렇게만 하면 된다. 그러면 반응이 있을 거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모르긴 해도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샘골에 우리가 살던 집을 여태 팔지 않고 남겨뒀다는데 그것만 봐도 분명 그래.”

“글쎄…”

“아니야, 글쎄는 무슨 글쎄.”

꿈이라면 이제 깨여날 때도 됐는데 여전히 이렇게 허황한 생각에 젖어있는 언니가 한심해 한숨이 푹 나간다. 내 시들한 반응이 못마땅하다는듯 언니는 대뜸 목소리를 한옥타브 높인다. 

“그 나그네를 내가 모르면 누가 안다니? 십년이 아니라 이십년이 지났어도 날 기다릴 사람이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야.”

“그러니까 형부가 아직 기다리고 있던 거라면 다시 합치려구? 합치면 이제 뜬구름 잡는 생각 안하고 살 수 있겠소? 정말 그렇게 결심했소? 괜히.”

장마철 날씨보다도 더 가늠하기 힘들고 변덕스러운 언니인 걸 아는지라 나는 그렇게 대놓고 물어본다. 보아하니 사는 게 힘들던 차에 형부가 돈 좀 벌고 있다는 소리를 얻어들은 것 같고 저 혼자 형부가 큰 부자라도 된 걸로 어림짐작해버리고 지금 당장 팔자를 고칠 것 같은 꿈에 젖어있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깊은 바닥까지 잘 안다는 건 좋은 게 아니다. 그 사람의 추하고 비루한 면까지 다 알아버리면 때로는 나 자신이 우울해지고 비참해진다. 지금 내 기분이 그렇다. 

쩝. 나는 입을 다신다. 할 말이 없다. 

“얘 좀 봐라. 누가 나 좋자고 그런다니? 다 준이 때문이지. 이제 갸도 결혼할 나이가 다되여오는데 부모가 리혼했다면 어쨌든 사돈집에서도 못마땅해할 거고 결혼식 할 때도 애매할 거란 말이다. 한쪽 부모만 례식장 부모자리에 앉아있기도 그렇고 거기서 어색하게 만나 결혼식 치르기도 그렇고, 어쨌든 상황이 애매할 거다. 그래서 그러는 거다. 자식 때문에 이러는 거야.”

기껏 변명을 한다는 게 조카를 끌어다 붙인다. 그렇게 준이만을 위한 거라면 조건부 없이 재결합을 해야지 형부가 돈을 잘 벌고 있는지 아닌지는 왜 렴탐하라고 하냐고 쏘아붙이려다가 길도 멀고 힘들어 그만둔다. 

“여보, 소문에 형부 샘골에서 양봉도 하고 잣산도 도맡고 돈 잘 벌고 있다는 것 같슴다. 정말일가?”

“누구? 준이 아버지?”

형부면 준이 아버지지 누구겠슴가. 하려다가 찔리는 데가 있어 네 하고 대답해버린다. 

“그렇다구? 그거 잘됐구만. 부지런한 사람이니까 잘할 테지. 지금 꿀 가격도 많이 올랐고 잣도 비싸니까 돈이 될게요. 그 형님은 또 그런 일이 적성에 맞을 테지. 그런데 당신 어디서 그런 소리 들었소? 준이한테서?”

“아니, 그냥 들었슴다.”

“거 잘됐구만. 돈 많이 벌구 좋은 녀자도 만나 그 형님 좀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소. 난 항상 그 형님 생각을 하면 영 마음이 안 좋다니까.”

“예 뭐 글쎄 말임다. 잘살면 좋지 뭐. 근데 정말 그렇게 잘살고 있을가? 새로 녀자를 만났을가? 언니 밖에 모르던 사람이였는데.”

나는 슬쩍 같은 남자로서의 남편의 생각을 알고 싶어 그렇게 던진다. 

“녀자야 만나자면야 왜 못 만나겠소. 널린 게 녀자인데. 그 형님 어디가 모자라서? 뭐 처형이 맨날 자기가 잘났다고 우쭐해서 그렇지 까놓고 말해서 처형보다 못한 것두 없소. 처형이야 겉보기엔 그 정도면 괜찮지만 다른 거야 어디.”

남편은 평소 은근히 언니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때를 만났다고 아주 대놓고 험담을 하려고 든다. 사람의 마음이란 요상하다. 내 혼자 속으로는 그보다 더한 욕을 수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그렇게 나오자 기분이 확 나빠진다. 그러니까 나는 내 언니에 대한 욕은 나만 할 수 있는 전매특허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냥 만났을가 어쨌을가 하는 말임다. 궁금해서.”

애써 내 감정을 감추려 목소리톤을 낮춰보지만 바닥에 질펀하게 깔리는 짜증만은 숨길 수가 없다. 

“당신 설마? 설마 처형이 그 형님이 돈 잘 번다니까 다시 생각 있어하는 거 아니지?”

“아니, 무슨 소릴. 아무리 그래도 언니 그 정도 치사하진 않슴다. 사람을 뭘로 보구.”

남편이 정곡을 쿡 찌르자 나는 스프링처럼 반사적으로 튕겨오른다. 

“아니면 좋구, 혹시라도 그렇다면 야, 처형두 정말 량심 없는 거요. 뭐 남자가 내 마음대로 버렸다 주었다 하는 장난감인 줄 아나.”

“아니라니까 그램가?”

그제는 듣기 싫어져 소리를 빽 질러버린다. 

“아니면 말구, 혹시라도 당신 또 말두 안되는 처형 부탁을 들어준다고 나설가봐 미리 침 놓는 게요. 사람이 량심이 있어야…”

밖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남편은 괜히 흥분하며 사설을 풀어놓으려고 한다. 

괜히 말을 꺼냈다 싶다.

재결합하면 하는 거지 안될 건 또 뭐가 있냐고 하려다가 그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 뻔뻔스러운 것 같아 입을 다물고 돌아서서 설겆이를 했다. 그 쯤 되자 남편도 재미가 없어졌는지 사설을 중단하고 거실로 들어가 텔레비죤을 켰다.

신랑과의 실랑이는 그렇게 마무리됐지만 문제는 나였다. 

언니의 그 말도 안되는 부탁을 기어이 들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건 아니였다. 하지만 언니의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 형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니 자꾸만 언니와 형부가 재결합해서 사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였다. 무던하고 착했던 형부가 다시 가문의 일원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았고 조카는 늦게나마 온전한 가정이 생겨서 언니 말처럼 결혼식을 해도 보기 좋을 것이다. 언니는 의지할 언덕이 생기는 것이니 남은 삶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이없고 한심하지만 언니가 아닌가. 언니가 잘살아야 나도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였다. 그렇다면 결국은 나를 위한 건가? 아무려면 어때.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해버렸다.

인간이란 참으로 리기적인 동물임에는 틀림없었다. 적어도 그 생각을 하는 내 머리 속에 형부를 위한 건 없었다. 

굽인돌이를 힘겹게 벗어난 택시가 비로소 평지에 들어선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본다. 언니네가 살던 동네까지는 앞으로 반시간 안으로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언니 말처럼 형부는 여태 언니를 기다리고 있을가. 형부가 사람이 우직하긴 하지만 무작정 일방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도 있을가? 남녀간의 사랑은 모름지기 상호간에 주고받는 감정이 아니던가. 메아리처럼 한쪽이 소리 지르면 다른 한쪽에서 화답해주는 게 사랑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컨대, 십년이란 시간이면 이미 형부는 아프고 힘들고 절망하고 체념하는 모든 단계를 다 거쳤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며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저녁 무렵의 어둠처럼 기여오른다.

모르지, 또 내가 모르는 어떤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 사랑의 경지도 있을지.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잠간 헛된 꿈을 꾸어보기로 한다. 

하늘이 맑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길을 떠난 터라 걱정했었는데 다행스럽다.

“샘골엔 무슨 일로 가요? 거기 누가 있어요?”

차가 요동치면서 손님이 머리를 박을 번한 게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말 한마디 없이 산길을 달리는 게 지루해서였는지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네, 형… 아니, 친척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친척이 누군데요? 나 여기 거의 이틀에 세번은 다녀서 샘골 사람들 많이 아는데? 말해봐요. 친척이 누구인지. 집앞까지 태워다줄 테니까.”

“아, 아니예요.”

나는 어쩐지 귀찮아져 고개를 젓는다. 기사아저씨는 힐끗 나를 바라보더니 멋적은듯 입을 다물고 앞을 바라보며 단단히 운전대를 잡는다.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나 누구를 만나러 가요. 하고 때늦은 고백처럼 말을 건네기는 싫다.

차 안에는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나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휴대폰을 꺼내 위챗 아이콘을 클릭한다. 

오늘 독일하고 멕시코 축구 승자는 누구일가?

말이라구. 당연히 독일이지.

변수가 있을 수도 있지. 

에이, 변수야 있을 수 있겠지만 독일이야. 피파랭킹 1위라구. 지금 독일에 돈 건 사람들이 엄청 많을 걸. 

그러다가 지면 어떡해. 돈 다 날리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도박이지. 돈 날리는 생각부터 하면 누가 도박을 하겠어? 이기면 돈이 몇십배로 뻥튀기하듯 튀는 거니까 로또보다도 이건 더 유혹적인 거야. 

위챗그룹들마다 월드컵 경기 승부로 떠들썩하다. 체육복권을 몇장 사는 정도는 경기관람에 재미를 더해줄 거니까 바람직한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하루아침에 인생역전할 꿈을 꾸면서 도박을 한다니. 저들의 허공에 들린 발이 슬그머니 걱정스러워진다. 

샘골과의 거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형부를 처음 만난 건 열살 때였다. 

혼자 집에서 놀고 있는데 언니가 해실해실거리며 어쩐지 실없어보이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왜 또 저러나 하고 바라보니 언니 뒤로 얼굴이 새카만 남자 하나가 쭈볏거리면서 따라들어왔다. 

“선희야 엄마 어디 갔니? 엄마 오라고 해.”

언니가 하는 말이였다.

“응, 왜?”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맑은 강물 속 돌멩이 들여다보듯 빤하게 알고 있는 내가 그 시간에 엄마가 어디에 가있다는 걸 모를 리 없지만 나는 그렇게 되물었다. 언니의 지나칠 정도로 흥분해있는 표정과 낯선 남자에 대한 경계도 있었다.

“너 얼른 가서 엄마 모시고 오나. 집에 손님 왔다고 그래.”

언니가 명령조로 말했다.

나는 슬쩍 그 낯선 남자를 곁눈질해보았다. 그리고 이 남자가 과연 언니와 무슨 관계일가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열살이였지만 어른들의 수다를 귀동냥으로 많이 들으며 자랐고 나이보다는 조숙한 아이인지라 어렵지 않게 그 상관관계를 추측해냈다.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어디서 저렇게 까만 얼굴에 멋있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남자를 데려온 거야. 

나는 언니한테 입을 삐쭉해보였다. 언니는 혀를 홀랑 내밀어보이며 나를 놀렸다. 

그 철없어보이는 행동이 꼭 언니가 아니고 동생 같아 저렇게 철이 못 들었어도 시집은 가려나 보다 싶은 게 어이가 없었다.

언니는 엄청난 미인은 아니였지만 갸름한 얼굴에 피부가 희고 눈이 커 우리 마을 언니네 또래에서 내세울 만한 미모였다. 평균을 조금 웃도는 키에 적당히 통통하게 살집이 있어 녀성미가 돋보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럴사하게 포장된 언니의 겉껍질에 불과한 것이였다. 사람들은 일단 겉껍질에 마음을 뺏기면 껍질 안에 숨겨진 진짜 중요한 알맹이를 보는 눈이 흐려지게 된다. 

가족은 외부에서 보는 눈과는 반대로 알맹이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관계이다. 때문에 나는 언니의 알맹이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언니는 나이만 먹었지 정신년령은 아직 성장중인지 아니면 다 자랐어도 여전히 미숙한 건지 심하게 유치했다. 덩치는 엄마보다 더 커가지고 과자 하나도 나나 오빠한테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따발사탕 하나라도 칼도마를 내려놓고 식칼로 세몫으로 쪼개놓고는 그 크기가 조금씩 다른 것들을 기어이 같다고 우기고는 제일 큰 조각을 자기가 홀랑 집어먹었다. 말도 안되는 걸 우겨대다가 본인의 무식이 드러나면 바락바락 화를 내는 건 일상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성격이 변덕스러워 금세 좋았다가 금세 화를 내였고 룡두사미처럼 뭐든지 시작은 거창하게 하고 끝은 항상 미미해 세타도 시작해놓고 며칠은 엄청난 열성으로 짜다가 어느 순간 훽 방 한구석에 뿌려던지군 했다. 엄마는 어휴 언제 철이 들겠냐 하고 푸념질하며 그걸 마무리하군 했다. 

뭐 여기까지도 봐줄 만은 했다.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언니는 늘 허공에 발이 들린듯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꿈을 꾸듯이 산다는 것이였다. 앞마당에 바나나나무를 심고 싶다는 둥, 앞강물에 갈치며 명태새끼를 키워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건져서 먹고 싶다는 둥, 쌀 한알이 고구마 만큼 크면 한알만 먹어도 배불러서 좋을 텐데 말이야 하고 허황한 소리를 하는 것이였는데 문제는 눈빛이며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운 것이였다. 뭐 여기까지도 한번 심심해서 장난 삼아 던져본 유머로 받아들이면 별문제 아닌 것이라는 생각에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니가 백마 탄 왕자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자기가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를 막 해주다가 저도 모르게 자기가 만든 세계에 도취된듯 황홀경에 빠져있을 때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살의 내 눈에 비친 언니는 위태롭고 철부지였다. 나는 과연 언니가 성숙한 성인만 가능하다고 그 때 내가 생각하던 결혼이란 걸 하고 시집이란 걸 갈 수 있을가 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남자라고 분류되는 인간 종류들은 녀자를 볼 때는 시력이 나빠지는 것인지 언니는 성격 좋은 인자언니나 손재주 좋은 명자언니를 제치고 남자들한테 인기가 대단했다. 나는 언니한테 쪽지를 전해달라는 한심한 남자들의 부탁을 귀찮을 정도로 받아야 했다. 싹둑 거절할가 싶다가도 쪽지와 함께 건네는 사탕이나 과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쪽지를 갖다주면 언니는 때로는 그걸 읽어보고는 새침한 표정으로 흥, 어디서 감히. 하고 잘난 척을 하기도 했고 때로는 잔뜩 흥분에 들떠있기도 했다. 

언니는 여러번 련애를 했다. 

양은냄비처럼 금세 달아오르고 금세 식어지는 성격인지라 언니의 련애는 오래가지 않았고 상대가 자주 바뀌였다. 

언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련애를 하면 금방 티가 났다. 시도 때도 없이 저런 주책이 다 있나 싶게 음정 박자 맞지 않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흥분해있는가 하면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방문턱에 앉아 부끄럽다는듯 혼자 입을 막고 웃었다가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며 요람에 누운 아기 흉내를 내기도 했다. 

잠자리에 누워 이불 안에서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엄마한테 솜 떨어진다고 혼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한 표정이 되였다가, 또 어느 날은 세상을 다 잃은듯한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흥분했다가 우울했다가 화를 냈다가 하는 언니의 다양한 감정기복을 통해 매번 언니의 련애가 어느 단계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언니가 사귄 남자들을 라렬해보았다. 언니가 데리고 온 이 남자는 그 모든 남자들 중에서 가장 외모가 처져보였다. 큰 고려 없이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 덥석 믿고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언니의 성격으로 미루어보면 의외였다. 

너보다 못하지 않냐는 친구들의 말에 언니는 형부를 선택한 리유를 이렇게 말했다.

“일 잘하고 돈 잘 벌고 부모들도 젊어. 그리고 둘째아들이라 나중에라도 내가 시부모를 모실 일은 없거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 말이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한다는 거야. 아줌마들이 그러는데 시집갈 남자는 이래야 한대. 여태 내가 철이 없었던 거야. 두고 봐. 난 공주처럼 살 거야.”

나는 언니가 드디여 철이 드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무던하고 일 잘하는 남자라 언니를 고생시키지는 않겠다고 엄마 아버지는 언니와 형부의 교제를 허락했다. 형부는 감지덕지한 표정이였고 언니는 시뚝해하다가 약간 기분이 나쁜 것처럼 미간을 찌프렸다. 벌써 마음이 변한 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언니는 이번에는 마음을 굳힌 건지 끝낼 만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귀고 있었다. 

얼마 후에 언니가 그 먼저 사귀던 성일이 삼촌한테 딱지를 맞아서 화김에 형부를 사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성일이 삼촌은 언니 친구 동생하고 사귀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일이 삼촌이 인물만 보고 언니와 사귀였다가 언니가 철이 없어서 언니한테 딱지를 놓은 거라고 했다. 언니는 펄쩍 뛰였다. 성일이 삼촌이야말로 겉만 반지르르하지 가정조건도 별 볼일 없고 돈 잘 버는 것도 아니고 어디를 보나 텅 빈 깡통이라 자기가 차버린 거라고 했다. 진실을 알 수는 없었으나 그 때는 이미 언니가 량쪽 가정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 형부와 사귀고 있었다. 그 전에 몰래 하던 련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였다. 나는 드디여 언니가 철이 좀 들어 이제 시집을 가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시골 치고는 시댁이 꽤 잘살았으므로 약혼식 때 형부네 집에서는 그 시절에는 드물게 화장품세트와 영구표 자전거, 돈 이천원 그리고 몇벌의 옷을 례물로 가져왔다. 언니는 시뚝해서 구경하러 온 친구들 앞에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자랑했다. 

일년여의 오고가는 련애 뒤에 언니는 결혼을 했다. 

방학이 되여 놀러 가보니 언니네 신혼살림은 꽤 근사했다. 큼직한 흑백 텔레비죤도 있었고 새로 짠 가구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불장 안에는 두툼한 이불들이 꽉 차있었고 새 소래며 사발이며 4단으로 된 식장에 가득차있었다. 언니는 뭐 이 정도 가지구 하는 표정으로 시뚝해하며 옷장을 열고 그 안에서 두툼한 양털탄자며 앙증맞은 애기 배내저고리며를 꺼내보였다.

“이것 봐. 이거 다 시어머니가 해준 거야. 이거 시내 백화점에서도 젤 비싼 거야. 신강에서 진짜 양털로 만든 거래. 만져봐. 털이 엄청 부드럽고 포근해. 백화점에 같이 갔는데 시어머니가 나 보고 고르라고 해서 젤 좋아보이는 걸로 골랐더니 판매하는 아줌마가 나 보고 안목이 있대. 호호. 흠. 애기 업고 이걸 씌워가지고 나가면 다들 부러워하겠지? 그렇지? 흠. 배내저고리 귀엽지? 그나저나 우리 시엄마도 참 웃겨. 애기를 언제 낳을 지도 모르는데 벌써 이런 걸 다 사주다니, 웃기지? 선희야. 훗.”

짐짓 부끄럽다는듯 몸을 비탈며 언니는 입을 막고 호호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더니 정색해서 말했다.

“아무튼 선희야, 너도 꼭 잘사는 집에 시집을 가야 해. 알았지? 가난한 집에 시집가면 이런 탄자는 꿈도 못 꾼단다. 구질구질하게 산단다. 알겠지?”

그 때 한창 사랑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소설에 빠져있던 나는 역시 언니는 참 속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니네 집에 있으면서 지켜보니 부러운 마음이 슬그머니 들 만큼 언니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형부는 언니를 무척이나 아꼈다. 

아침이면 먼저 깨나서 부엌에 불을 지피고 큰 가마솥에 가득 물을 부었다. 집안에 훈기가 돌고 가마솥에서 김이 나면 비로소 언니가 배시시 웃으며 짐짓 눈을 쥐여뜯는 척하며 일어나는 것이였다. 언니가 가마뚜껑을 열고 따듯한 물을 바가지로 퍼내 찬물과 섞어 적절한 온도를 맞추어놓고 세수를 하는 사이, 형부가 사랑채에서 쌀을 퍼다가 주고, 언니가 쌀을 씻어 밥을 안치는 사이에 형부가 언니의 지시에 따라 감자도 양푼에 담아 건네주고 사랑채에 들어가서 닭알도 가져다주고 하는 것이였다. 

엄마는 항상 우리 식구 중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널장판을 거두고 불을 때고 혼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밥을 했었는데 이건 완전 다른 세상이구나 싶었다. 

형부는 집안일 뿐만 아니라 바깥일도 잘했다. 둥글소를 끌고 산으로 가서 나무도 아버지보다 더 굵은 걸로 발구에 실어왔다. 그걸 전기톱으로 켜서 도끼로 짝짝 내리 쪼개는 솜씨를 보니 어린 마음에도 보통솜씨가 아니구나 싶었다. 언니가 하는 일이란 고작 형부가 패놓은 나무를 울바자 곁에 쌓아놓는 것이였는데 그마저도 언니가 할라 치면 형부는 추운데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였다. 

형부는 나도 무척 이뻐했다. 

저녁이면 드라마가 나와도 내가 보고 싶은 그림영화를 보게 했고 내가 그 동네 또래 애들과 슬슬 친해지는 걸 보더니 같이 타고 놀라고 썰매도 만들어주었다. 시내에 갔다오면서 그 겨울에 집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었던 커다란 사과도 여러개 사다줄 무렵에는 완전히 형부한테 매료되였다.

나는 형부가 너무 좋아져서 될 수만 있다면 형부하고 똑같은 사람을 하나 복제해놨다가 내가 커서 시집가고 싶은 마음까지 들 지경이였다. 

형부는 사냥도 잘했고 버섯 따기, 나물 부업, 농사일, 어느것 하나 막힘이 없었다. 형부 덕분에 언니네 생활은 나날이 윤택해져갔다. 얼마 후에는 조카가 태여났다.

“이 집 준이는 또 옷을 샀소? 아버지가 돈을 잘 벌어가지구.”

“이건 뭐 금이요? 목걸이 이쁘다.”

“네. 생일이라구 준이 아버지가 사준 겜다. 호호.”

그즈음,

내가 본 언니는 그 동네 또래 아줌마들의 부럽고 시샘 어린 눈길 속에 에워싸여서 생글생글 웃으며 가진 자의 여유와 우월감에 잔뜩 들떠있었다. 

언니가 원하는 대로 꿈을 꾸듯 살던 때가 있다면 아마 그 때였을 것 같다. 

 

*

“한국 로무수속을 넣었는데 안됐지 뭐야. 아휴 짜증 나. 그나저나 이 집 국수 오늘 왜 이렇다니.”

잘 헹구지 않았는지 잔뜩 뭉쳐있는 면발을 신경질적으로 저가락으로 뚜지며 언니는 잔뜩 얼굴을 찌프리고 있었다.

“여기 가위 좀 갖다줘요.”

손을 번쩍 들더니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에 힘을 넣어 언니가 소리 질렀다.

“안되면 말지 뭐. 형부는 시골에서도 잘 벌재요. 뭘 그렇게까지 욕심을 내면서.”

“얘 좀 봐라. 무슨 애가 할머니 같은 소릴 하구 있니?”

언니가 나를 째려본다. 

썩둑 썩둑. 랭면이 아니라 남편과 바람난 년 머리카락 짜르듯 언니는 면발을 향해 분노의 가위질을 해댄다. 저렇게 자르다가는 국수를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 동네에서도 벌써 리비아로 고기 잡이 배 타러 간 사람에, 한국에 간 사람에, 외국 나간 사람이 서넛 된다. 매도 첫매를 맞아야 한다는데 우물쭈물하고 망설이다가 내가 하도 닥달하니까 이번에 넣은 건데 안됐지 뭐야. 벌써 외국 나간 집은 돈 들어오는 액수가 달라. 형부도 빨리 외국 나가 돈 벌어서 시내에 아빠트도 사고 차도 사고 반짝반짝 살아야겠는데 짜증 나.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이 싫어. 밤에도 번쩍번쩍 불빛이 눈부신 시내에서 살고 싶다.”

짜증 나를 말끝마다 붙이는 언니를 바라보니 얼굴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듯 푸들거린다. 

“언니, 너무 그러지 마우. 그 동네에서는 언니네가 제일 잘살재요.”

뻐스부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얼굴을 펴지 않는 언니한테 그렇게 위로랍시고 던졌는데 마른 장작에 불이 달린듯 확 성질을 낸다.

“너 자꾸 사람 속 뒤집어놓을 거야? 우물안 개구리 같은 소리 하지 말래두. 애초에 시내에 있는 남자한테 시집을 갔어야 했는데 그 때는 내가 정말로 우물안 개구리였어. 시골에서 본 게 없고 들은 게 없어서 뭘 몰랐던 거지. 어쩌면 시골에서 시골로 시집갔나 몰라. 시내로 시집을 갔어야 시내사람으로 자리잡고 사는 건데. 바보, 멍충이. 아이 짜증 나. 엄마 아버지도 그래,뜯어 말렸어야지 왜 철없는 내가 덥석 시집간다 한다고 무작정 동의하냐구, 그 동네에서 잘살면 뭐한다니? 시내 아빠트 화장실 가격도 시골 집 한채보다 비싼데.”

“나 갈게. 회사에 들어가봐야 돼서.”

엄마 아버지한테까지 화살을 돌리며 현실에 불만을 람발하는 언니의 투정을 들어주려니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 알았다. 근데 오늘 랭면은 진짜 맛없었다. 짜증 나게.” 

귀찮아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언니가 톡 쏘아붙이고는 홱 고개를 돌리고 쥉쥉 걸어간다. 어휴, 정말 언니이길 다행이지 동생이였으면 저걸 그냥. 나는 언니의 뒤모습을 흘기다가 돌아섰다. 

언니의 바람과는 달리 형부는 그 뒤에도 외국행 비자를 받지 못했다. 그 때 쯤 시골에 사는 것 자체가 싫다고 이마살을 찌프리던 언니는 무작정 시내로 이사를 가자고 형부를 닥달했다. 형부는 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조카가 일곱살이던 늦은 가을, 탈곡을 마치고 언니네는 서둘러 시교에 단층집을 사고 이사를 왔다. 

여긴가.

어렵사리 찾아간 언니네 새집은 아빠트가 즐비한 시내 중심을 벗어나 외딴 섬처럼 단층집들이 들어선 동네, 거기서도 맨 끝에 위치한 집이였다. 그것은 도시와 격리된 섬마을처럼 외롭고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게다가 도로에서 푹 꺼져들어가있어 비라도 오면 어쩌나 싶은 집이였다. 시골에 있을 때의 가구를 그대로 가져다 놓았는데 시골집에 놓여있을 때는 반짝거리던 가구들이 어쩐지 부옇게 빛을 잃고 있었다. 

“언니 시내로 오니 어떻소?”

“뭐가 어떻기는, 보면 모르냐.”

언니가 퉁퉁 부은 소리를 하며 손바닥 만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나 이 주름이 생기는 거 좀 봐라. 저번에 친구들 만났는데 세상에 영자 그 기집애는 신랑이 한국 가서 돈을 벌더니만 주름 없어지는 크림을 발라서 아주 눈가에 주름 하나 없이 탱탱하더라. 이건 뭐 몇십원짜리 화장품 사려 해도 손이 떨리게 살고 있으니.”

언제는 시내로 오기만 하면 된다더니 이제는 생활수준 차이가 또 문제가 되는 것인가. 하긴 인간의 욕망이란 원래 그런거니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형부는?”

“응. 좀 있으면 올 거다. 석탄 실으러 갔다. 네 형부가 뭘 배운 게 있냐, 재간이 있냐. 시내로 오니 뭘 할게 있어야지. 석탄 실어다가 팔고 있는데 한차 팔아봐야 오십원 륙십원 떨어진다. 그것도 융통성이 없어 가지구 남들은 석탄을 더 적게 싣고도 많이 실은 것처럼 웃부분을 뾰족하게 해가지구 말로 막 밀어붙여서 파는데 이 나그네는 고지식하게 듬뿍 실어놓구는 팔짱을 끼구 서서 입도 동면하는 개구리처럼 떡 붙이고 있으니 팔리겠니? 남보다 적게 떨어지지, 많이 못 팔지, 뭔 돈을 벌겠니? 하튼 머리가 안 돌아가.”

고개까지 도리도리 흔들어가며 형부를 영 형편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데는 듣는 내가 심기가 불편할 지경이다. 뭐 어릴 때처럼 형부 같은 사람 하나 복제해서 시집가고 싶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형부 만한 사람도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던 터라 언니의 행동이 더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뭐 어쨌든 일은 하니까. 돈은 벌구 있는데 너무 그래지 마오. 착하고 성실하고 마누라한테 잘해주지, 아들 이뻐하지. 도박을 하나, 바람을 피나, 술을 많이 마시나. 그 정도면 괜찮은 거지. 언니처럼 사람을 닥달해서야 어디 사람이 기를 펴겠소? 하도 형부니까 봐주는 거지.”

“어머, 얘 좀 봐라. 누가 들었으믄 니가 내 동생인게 아니라 시누인가 하겠다. 동생이 되가지고 언니 편을 들어야지 어떻게 넌 형부 편에 서냐?”

언니가 나를 향해 사정없이 눈을 흘긴다. 

퉁퉁퉁 손잡이뜨락또르 소리가 들린다.

“형부 오는 거 아니요?”

“응, 그러네. 오나 보다. 오면 오는 거지 뭐.”

언니는 거울을 내려놓고 일어선다. 

“선희 오랜만에 왔구나.”

“예, 형부.”

누가 오래만인 걸 모르나. 부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나를 반기는 형부는 그제날의 형부가 아니였다. 도끼로 나무를 쩡쩡 쪼개던 때의 활기도 없어졌고 커다란 토끼를 잡아오던 때의 자신감은 차치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사람이 풀이 죽어있었다.

언니가 사람을 아주 그냥 달달 볶는구나 하는 생각에 풀잎에 손이 베이듯 슥 가슴이 베인다. 

그저 그런 일상사를 단답식으로 형부와 재미없게 주고받으며 나는 두 사람 사이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형부가 불을 때고 언니가 밥을 하며 알콩달콩하던 부부는 전설이 되여 사라져버린듯했다. 언니는 자꾸만 짜증을 냈고 형부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

“나 한국 간다.”

“언니가? 어떻게?”

“어떻게는 뭐. 위장결혼으로.”

“언니.”

“얘, 목소리 좀 낮춰라. 애 떨어지겠다.”

“아니, 그게 말이 위장결혼이지 리혼에 가짜 진짜가 어디 있구 결혼에 가짜 진짜가 어디 있소? 형부도 돈을 벌고 있고 밥 먹고 못살 정도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정 가고 싶으면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지.”

“아니야, 난 결심했어.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겠더라. 다른 건 비자 나올 가능성도 적구, 돈도 꾸어야 하구. 난 한국 갈 거다. 가서 돈 벌어서 준이도 출세시키고 나도 좀 다르게 살아봐야겠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다가 마느니 훅 죽어버리는 게 나을 거 같애.”

“무슨 말을 그렇게. 언니, 언니 준이를 이뻐 죽으면서 아들 장가나 보내야 죽지?”

무슨 말을 해야 할가 하나 하다가 롱담조로 던지고 푹 웃어버렸다. 

“아무튼 난 결심했어.”

“그럼 먼저 리혼을 해야 할 건데 형부가 동의하겠소?”

“그거야 뭐. 동의하도록 해야지. 동의 안하면 또 어쩔 건데.”

정색해서 눈을 내리깔고 새초롬해있는 언니의 표정은 낯설고도 서늘했다. 

 

*

언니가 리혼을 했다. 구두상 가짜이고 서류상 진짜인 리혼이였다.

형부와 언니 사이에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언니 말로는 한국에 가서 국적이든 영주권이든 따는 즉시로 리혼을 하고 다시 형부와 합치는 조건으로 리혼을 했다는 것이였다. 

“어떻게 형부가 그걸 동의했소?”

“그거야 뭐, 내가 잘 구슬린 것도 있고. 또 뭐 자기가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겠냐? 흠. 아무튼 난 한국 갈 거다. 곧 한국에서 남자가 오기로 했어.”

그게 무슨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시라도 되는듯 언니는 너무도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그런 말을 했다. 

얼마 후에 언니는 한국남자를 만났다. 자기를 첫눈에 마음에 들어했다는 말도 언니는 서슴없이 했다. 아직 내 미모가 살아있다고 들떠서 자랑삼아 말할 때는 너무 한심해보이긴 했다. 

사진을 찍네, 서류를 하네, 비자 받으러 심양으로 가네, 어쩌네 하고 부산을 피우더니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너 당분간 준이 맡아줘라. 난 한국 간다. 하고 빚 받으러 와서 큰소리 치는 사람처럼 통보를 해버리는 것이였다.

입이 하 벌어졌으나 얼마 후에 여름방학이 되자 가방을 멘 조카를 사전 통보도 없이 데리고 왔을 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생이 애를 낳은 지 석달 밖에 안됐는데 조카까지 맡을 수 있겠는가 하는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동생한테 애를 맡기려면 우선 동생 남편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상식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싶은 막무가내였다. 내 언니지만 너무 한심하고 하는 행동이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거렸다. 하지만 한껏 풀이 죽어 엄마 뒤를 따라 들어온 조카애를 보고는 어쩔 수 없었다.

애기방으로 하려고 꾸며놓았던 방에 조카애 짐을 내려놓고 나니 남편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걱정이 앞을 가로막았다.

“여보, 언니가 준이 맡아달라고 무작정 데려왔는데 어떡함까.”

“내가 뭐 처가집 조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아버지하고 있는 게 애한테도 낫지 않소? 부모가 둘 다 없다면 모를가 이건 좀 아니오. 형님은? 형님도 동의했다오?”

“예, 언니 말로는 동의했다는데.”

“마누라 없는데 애까지 여기 오면 형님은 허전해서 어찐다오? 처형은 정말 자기 생각만 하네.”

“언니는 준이가 중점대학 가려면 학교가 이쪽이 낫다구…”

“공부야 어디서 하든 매한가지지. 어떤 학교서 다니냐보다는 본인이 어떻게 하냐가 중요하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소? 참. 중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지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생리별을 시킨다는 건 말이 안되는 거지. 왜 언니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다들 상식이 안 통해?”

“그럼 이미 데려온 애를 보내람까?”

“언니보다 당신이 더 문제라는 생각 안해봤소? 틀린 건 틀린 거라고 아무리 언니라 해도 말해야지 이건 잘못된 거에 동조하는 것 밖에 안되잖소.”

“도리로야 뭔들 말을 못함까? 이미 왔고 애도 여기서 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어찌람까?”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남편과의 실랑이는 여러날 이어졌다. 결론이 있을 수 없는 실랑이였다. 

며칠 후, 나와 남편의 판가름 나지 않는 전쟁과는 상관없이 어쨌거나 조카애는 전학수속을 하게 되였고 우리 집에서 생활하게 되였다. 

“나 한국에 잘 왔다. 그래. 걱정하지 말구. 형부가 차 가지고 데리러 와서 지금 가는 중이다. 형부 전화로 너한테 거는 거지. 그래, 또 전화할게.”

참, 가짜 결혼이라 서로간에 주고받는 비즈니스라 할 때는 어쩌고 형부라는 말을 서슴없이 갖다 붙이다니. 내 불편한 마음과는 달리 언니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들떠있었다. 

필요에 따라 색갈을 변화시키는 카멜레온이 떠오른 건 거의 자동반사였다.

 

*

형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니가 가고 나서 반년 정도 되고 나서였다. 

어쩌다가 전화를 해도 간단한 안부만 묻던 형부가 갑자기 오겠다고 했다. 

나는 대뜸 리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즈음 언니는 형부와 전화련락을 끊고 있었다. 리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언니는 더 이상 형부가 기다리는 집으로 오고 싶지 않아한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관여할 문제도 아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손 놓고 있는 터였다. 형부는 언니의 소식을 알아보러 오는 것임이 분명했다. 

아직 남편은 퇴근하지 않았고 애를 보행기에 태워놓고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형부가 고기며 과일이며를 사들고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억지로 형부는 웃어보였다. 마음고생이 심해서인가, 아니면 아들도 없고 마누라도 없으니 음식을 제대로 챙겨드시지 않았는가. 형부는 그 사이에 살이 쏙 빠져있었다.

“공부는 잘하니?”

“예, 그냥 좀 함다.”

“오. 친구는 많이 사귀였구?”

“예, 좀 있슴다.”

“지성이랑 찬우랑 너 언제 오냐고 여러번 물어보더라.”

“예.”

“선생님은? 원래 학교 선생님처럼 널 고와하니? 원래 반주임은 너한테 잘해줬재야. 너 선생님 집에 가서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그랬지 않니.”

“예, 그냥 괜찮슴다. 그 선생님 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슴다.”

하학해서 돌아온 조카애와 형부가 대화를 주고받는데 형부는 무척 궁금한 게 많은듯하나 조카애는 마지못해 응부하는 식으로 시들하게 대꾸한다.

나는 형부가 들고 온 비닐주머니를 열어보았다. 피가 잘 빠지지 않았는지 색갈이 다소 검게 보이는 소고기가 꽤 큼직한 덩어리로 들어있다. 이 정도 소고기를 사려면 지금 형부의 경제형편에서는 버거운 지출일 것이다. 

돼지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소고기는 푹 삶아서 양념간장과 함께 내놔도 잘 먹고 고추와 함께 간장에 생강과 마늘을 넣고 졸여줘도 잘 먹는 조카애를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형부의 부성애에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도마에 올려놓고 써는데 칼이 잘 들지 않는 건지 고기가 질긴 건지 칼날에 고기가 씰룩씰룩 밀리면서 잘 썰어지지 않는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그 때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형부와 조카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제발 언니의 전화는 아니여야 할 텐데.

발신자 번호를 보니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다. 하필이면 이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걸어오다니. 형부와 조카의 대화는 어느 순간 뚝 멈춰있다. 이 전화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다는 건 맑은 물속 돌멩이 들여다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고 걸려온 전화를 안 받을 수도 없다. 그게 더 이상할 테니까.

나는 숨을 죽이고 전화기의 수신 버튼을 눌렀다. 

“오, 나다. 잘 있니? 나 지금 형부랑 바다로 왔어. 와 너무 좋다.”

잔뜩 신이 난 언니의 목소리다. 이 하이톤이라구야. 나는 형부와 조카애 귀에 다 들리는 건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고 당황하다. 

“아. 예예.”

나는 얼버무린다. 

“준이 아버지 온 거야? 알았다. 끊을게.”

내 더듬거리는 말투에 대뜸 눈치를 채고 언니는 똑 하고 전화를 끊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화기를 내려놓는데 민망하기 짝이 없다. 형부와 조카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마주볼 수 없을 것 같다. 얼굴이 화끈거려 저도 모르게 두손을 볼에 갖다 댄다.

주섬주섬 형부가 일어섰다. 조카애는 미동도 없이 앉아있다.

나는 어쩔 바를 모르고 서서 형부가 벗어놓았던 잠바를 주어입고 나오는 걸 지켜본다. 형부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있다.

그럴 테지, 그 정도로 호들갑스럽게 소리 질렀으니 들리지 않았다면 더 이상할 테지. 

형부는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천천히 신발장 문을 열고 신발을 집어든다. 

“아니, 형부 어쩌다가 오셨는데 식사는 하고 가야지 왜. 좀 있음 우리 신랑두 돌아올 건데 식사를 하고 가쇼. 준이하고도 더 얘기를 하고.”

나는 급기야 황황하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도적질을 하다가 들켰어도 이보다는 덜 민망할 것 같다. 

“아니다. 갈게.”

형부의 목소리는 한여름 뙤약볕에 시든 호박잎처럼 가라앉아있었다. 나는 그 낮고 갈린 목소리에 가슴이 뾰족한 무엇에 찔린듯 통증이 밀려왔다.

신발을 신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형부는 나갔다. 

그 날 저녁, 조카애는 소고기졸임에 저가락도 대지 않았다.

그 날 이후, 형부는 다시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조카애만 명절이나 방학이면 아버지한테 가서 있다가 왔으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절대 하지 않았다. 나는 형부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물어보기가 껄끄러워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조카애는 대학에 가면서 우리 집을 떠났고 형부에 대한 소식은 그 후로는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게 되였다. 

언니는 위장결혼을 한 한국남자하고 불과 두달도 동거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멀쩡하고 차도 몰고 다니고 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일하기는 싫어하고 술을 좋아해서 형제들 중에서도 기피대상이고 모아놓은 돈이 없는 건 물론이고 여기저기 빚을 지고 사는 처지였다고 했다. 뭐 거기까지는 국적을 목적으로 결혼한 남자니까 국적 따낼 때까지는 참자 했는데 언니가 식당에서 일해서 월급을 받자 처음엔 그 돈 좀 꾸어달라 하더니 나중에는 대놓고 술 사오라, 고기 사오라 한다는 것이였다.

“내 돈은 절대 못 내놓지. 어떻게 번 돈인데.”

언니는 그렇게 단단하게 말했다. 

언니는 남자 몰래 집을 나왔고 또 우여곡절 끝에 얼마간의 돈을 주고 남자와 리혼을 했고 이번에는 나이가 언니보다 스무살 정도 년상인 왕년에 잘 나갔지만 현재는 아들한테 회사를 물려준 사업가를 만났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 먹고 살 건 있다고 했어. 아들한테 다 넘겨줬다지만 그래도 어느 만큼은 남긴 게 있을 거 아니야. 집에 가봤는데 그렇게 크고 으리으리한 집은 처음 봤어. 집에 가보고 내가 결정한 거 아니야? 내가 어리고 이뻐서 그런지 나한테 아주 푹 빠졌어. 뭐 이 정도면 가진 걸 다 내놓는다고 봐야지. 이제 기다려봐라. 내가 한몫 단단히 챙기면 너한테도 섭섭하게 안할 테니까.”

언니는 잔뜩 꿈에 부풀어있었다. 

엄마 아버지도 다 돌아가시고 없으니 언니 쪽에야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지만 그 사업가의 자식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 나이가 스무살 가까이 차이나고 중국에서 온 녀자라는 게 반대 리유였다. 돈을 다 빼내면 도망갈 거라고 한다는 것이였다. 

“뭐 지네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지도 않으면서 돈에 눈이 뒤집혀가지구 거품 물고 달려들어 반대한다니까. 량심도 없는 것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저씨도 완전하게 자식들 의사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거야. 참 나.”

언니는 투덜거렸다. 

“자식들은 정 같이 살 거면 법적인 절차 없이 그냥 동거만 하라고 한대. 어이 없어.”

“그럼 어떡하오?”

“뭘 어떡하긴. 연극을 하든 앙탈을 부리든 혼인신고를 하도록 해야지. 걱정 말아. 한다니까. 내가 누군데.”

언니는 큰소리를 땅땅 쳤다.

“혼인신고를 했다.”

얼마 후에 언니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끝내는 해냈구나. 그 로인네 정말로 언니 말처럼 언니한테 푹 빠졌나 보네. 그럼 언니는 이제 목적을 달성한 건가? 그런데 이 심드렁한 목소리는 뭐지?

“근데 왜 목소리가 이렇소?”

“응, 하긴 했는데 하고 나서야 로인네가 나랑 혼인신고하는 조건으로 모든 재산을 미리 다 자식들한테 증여를 했다고 하네? 재수없는 년은 고추가루 팔러 가면 바람이 분다더니 내가 그 꼴이다. 꼭 사기당한 기분이 들어. 재수 없어.”

“그럼 어떻게 하려구?”

“뭘 어떻게 하기는. 이미 혼인신고도 했으니 같이 살면서 살살 구슬려봐야지. 늙으면 다 능구렝이가 되는 거야. 말로는 전혀 없다고 하지만 그럴 리야 있겠니? 어딘가에 숨겨놓은 게 있을 수도 있어. 뭐 정말 아무 것도 없으면 2년 후에 국적이 나오면 그 때 가서 리혼해버리면 되지.”

전화기 저편에서 결혼과 리혼을 언니는 마치 치마 한벌 사는 것처럼 간단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잡은 채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블록을 쌓고 있었다.

집이 다 완성되고 우에 빨간 지붕을 얹으면 될 판이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빨간 삼각형으로 된 지붕을 집어 올려놓는다.

그런데 지붕을 올려놓고 가만히 뒤로 조심조심 거둬들이던 아이의 손이 집 한켠을 확 짚어버린다. 집은 순식간에 웃켠이 무너진다.

아이는 그만 화났는지 반쯤 무너진 집을 두손으로 아예 확 밀어버린다. 집은 형체조차 없어진다.

언니한테는 삶이 저 아이의 블록 쌓기보다도 더 장난스러운 것인가. 

 

*

조카애는 대학을 나오고 고향 쪽이 아닌 남방으로 날아가 자리를 잡았다. 언니는 로인한테서 아무 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영주권을 받고 리혼을 했다. 이제는 다 지겹고 귀찮아서 혼자 살 거라고 했다. 

“다 소용없어. 이제 준이나 잘 키워서 장가 보내야지 머. 내가 남편 복이 없나 보다. 내가 낳은 내 자식 밖에 믿을 게 있겠니? 이젠 자식 바라보고 살련다.”

그즈음 바뀐 언니의 인생관이였다. 

그 이후, 한동안은 언니의 신경이 온통 멀리 있는 조카애한테 쏠려있었다. 보고 싶으면 비행기표를 사가지고 보러 가면 될 터인데 끊임없이 전화에만 매달려있었다. 조카애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된 관심은 한발 더 뻗어가 사귀고 있는 녀자친구로 이어졌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녀자애의 신상부터 시작해서 부모들은 어떤 사람이고 뭘 하는지 모든 걸 알려고 했다. 

조카애와 전화 통화를 하고는 다시 나한테 전화가 와서 조카애의 말에 상처받았다는 둥, 여태 고생스럽게 키워놨더니 저 모양이라는 둥, 아들을 왜 키웠는지 모르겠다는 둥, 저 녀자애 아무리 해도 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다는 둥, 내가 늙어서 아들 덕 볼 수 있겠냐는 둥, 종류도 다양하게 푸념질을 했다. 

혼자 외롭게 사는 걸 생각하니 안스러운 마음이 들어 짜증이 올라오는 걸 꾹꾹 누르며 푸념질을 들어주고 나면 기운이 쏙 빠졌다. 

언니의 말 중에 반 이상은 말도 안되는 것이였다. 고생스럽게 여태 키워놨다는 말만 해도 그렇다. 글쎄 어렸을 때는 키웠다 쳐도 중학교 이후에는 생활비야 보냈지만 내가 키운 건데 무슨 이런 소리를 하나 싶어 어이가 없었다.

본인은 여태 누구의 말도 들은 적 없이 독단으로 결정을 해가며 기껏 인생을 살아놓고는 아들이 녀자친구를 사귀는 문제마저 완전히 좌지우지하려고 들다니 조카애가 불쌍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언니와 조카애 사이의 일인지라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여서 나는 그저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차가 멈추어선다. 

아니 여기가? 

시내 아빠트 단지에나 있을 법한 운동기구가 도로 옆 공터에 턱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나무가 아닌 파란색 양철로 된 울바자가 길옆을 가로막고 있다. 줄을 맞춰 서있는 덩실한 벽돌집들이 새 것이 가지고 있는 반짝거림과 오기를 자랑한다. 제대로 찾아온 건가 의심이 갈 정도로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샘골이라면서요. 여기가 마을 중간 쯤인데. 누구네 집에 가는지를 말하지 않아서 여기 세웠어요.” 

은근히 뒤끝 있는 아저씨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돈을 건네고 차문을 열고 내렸다. 엉뎅이가 아프다. 

차에서 내려 아래우를 훑어보니 그래도 옛 흔적이 조금 남아있다. 놀이터 아래쪽으로 나있는 길은 강으로 통하는 길이고, 그렇다면 뒤돌아서서 지금 커다란 벽돌집이 있는 웃길로 해서 들어가면 언니네 집이 있던 곳이지. 

장님이 담벼락 더듬듯 더듬거리며 찾아나선다. 언니네 집이 있던 위치가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나는 멈춰섰다.

울바자에 둘러싸인 그곳은 온통 푸르러있었다. 종아리께를 넘어선 옥수수가 바람에 잎을 날리고 있는데 금방 후치질을 한듯 고슬고슬한 흙이 옥수수 뿌리께를 덮고 있었다. 

시퍼렇게 독을 쓰고 있는 오이넝쿨 사이사이로는 오이넝쿨이 타고 올라가라고 꽂혀있는 일정한 굵기의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나무들이 가쯘하게 꽂혀있었다. 

밭 주인의 알뜰한 손길이 그대로 드러나있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어, 저건.

채소밭 끝머리 쪽에 거리가 멀어서 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홍빛 꽃들이 피여있었다. 언니의 꽃밭이 떠오른다.

형부는 꽃을 좋아하던 언니를 위해 항시 채소밭 끝머리에 꽃씨를 뿌렸었다. 형부가 물을 줘가며 정성스럽게 가꾼 꽃밭에는 여름이면 분꽃이며 봉선화가 피고 가을이며 코스모스가 한들거렸었다. 언니는 꽃이 피면 이쁘다고 호들갑을 떨며 냄새도 맡아보고 꽃옆에 서서 사진도 찍어달라고 형부한테 응석을 부렸다. 그러면 형부는 입이 귀에 걸려 사진을 찍어주었었다. 그 꽃밭에 서서 환하게 웃던 언니는 그토록 아름다웠었다. 

지금, 저 꽃밭은 누구의 것인가?

“누구네를 찾아온 아가씨요?”

꽃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몸이 뒤로 젖혀진 키가 자그마한 할머니가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예, 그게.”

“이 동네 많이 변했지? 오랜만에 오는 사람이면 찾기 바쁠 게요. 누구네를 찾아온 게요? 내가 길 안내해줄게.”

짐짓 길 안내까지 자청하는 할머니다.

“아, 예, 준이라고 아시는지 모르겠슴다. 준이 아버지 이 동네에 사심까?”

나는 잠간 망설이다가 이런 할머니라면 물어봐도 괜찮겠다 싶어 말을 꺼낸다. 

“준이? 준이라고 누기던가? 애들 이름은 잘 몰라가지구. 아아, 한석구 아들 아니요? 가만 보자. 그 석구네 집에 놀러 다니던, 누구던가? 어째 그래 보니 낯이 익은데. 생각이 날듯말듯하네. 이제 늙어가지구 영 기억력이 없다니까.”

그제는 나도 어렴풋이 주름이 깊게 패인 할머니의 얼굴을 더듬어 오랜 기억을 살려낸다. 언니네하고 서너집 떨어진 이름이 뭐더라, 한때 같이 놀기도 했던 녀자애네 할머니였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할머니가 혹시 나를 기억해낼가봐 더럭 걱정스럽다. 나를 기억해내면 언니 말이 나올 거고 그러면 로인네 특유의 오지랖으로 언니가 형부하고 리혼했네 어쨌네 한국 가더니 소식이 없다더니 이런 말로 이어질 것 같아 귀찮아진다. 

“여긴 처음임다. 친척은 아니구 그냥 볼일이 좀 있어가지구.”

“아, 그렇소? 그런 걸 난 또. 이젠 봤던 사람도 낯선 사람 같구 처음 본 사람도 어디서 봤던 것 같구 그렇소. 나이가 웬수라니까.”

할머니는 입을 막고 호호 웃더니 손가락으로 꽃밭 너머로 보이는 하얗게 회칠을 한 벽돌집을 가리킨다.

“저거 아니요. 저게 석구네 집인데. 여기로 돌아가면 대문 보이지? 집에 있을라나 모르겠네.”

“아, 예.”

길게 말을 늘여놓으려는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테두리는 쇠로 하고 가운데 널판자를 비살무늬로 엮어넣은 대문은 뼁끼칠을 한 지 오라지 않은듯 색갈이 선명하다. 

언니가 들은 소문이 완전한 뻥튀기는 아니였구나 싶다. 형부는 샘골에서 자신의 터밭을 일궈낸 걸가. 

동그란 문고리에 손을 갖다댔다가 멈칫한다. 불쑥 들어가서 형부 하고 부르긴 아무래도 좀 그렇다. 

한참을 망설이고 있다가 돌아서려던 때였다.

덜컥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문이 활짝 열린다. 

나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린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가 놀라서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아니, 선희야. 네가 어떻게.”

먼저 말을 꺼낸 건 형부였다.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듯 얼굴에 주름은 몇가닥 건너가있지만 형부는 살도 적당히 붙었고 얼굴표정도 밝다. 

“예, 그냥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나는 정작 마주하고 보니 어색해 말꼬리를 흐린다.

“들어와라. 어서 들어와.”

형부가 문을 잡고 한쪽으로 비켜선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물러설 길은 없다. 나는 성큼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콩크리트로 다져진 뜨락은 상상 이상으로 널직하다. 나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손잡이 뜨락또르가 세워져있다. 아까 멀리서 보았던 꽃밭은 가까이에서 보니 줄을 세워 꽃들을 심어놓아 참으로 가지런하고 이쁘다. 

“집에 들어와라.”

엉겁결에 형부의 뒤를 따라 집에 들어선다. 

아담한 집이다. 비싼 가구나 전기제품은 별로 보이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잘 정돈되여있다. 

“집이 좋슴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말을 고르다가 겨우 그렇게 말한다. 

“응, 나라에서 좀 대주고 나머지는 자기 돈으로 해가지고 지었다. 너 거기 좀 앉아있어라. 뭐가 있던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자식을 챙기는 아버지처럼 형부는 랭장고문을 열고 기웃거린다. 나는 오래 전, 열살의 소녀가 되여 치런치런한 마음이 되여버린다. 

“커피 줄가?”

형부는 탱글탱글한 살구가 가득 담긴 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묻는다. 

“예.”

“요즘은 농촌사람들도 다 커피를 마시고 산다. 허허.”

형부가 롱담처럼 그런 말을 던지더니 허허 웃으며 전기포트에 물을 담고 버튼을 눌러놓는다. 

“그거 살구 여기 뒤울안에서 딴 거다. 잘 익어서 맛있을 거다. 약은 한번 쳤다.”

“예.”

나는 여전히 솔직한 형부의 말투에 푹 웃으며 살구를 하나 집어들었다. 잘 익어서 입안에서 몽글거리는 살구는 약간 새큼한 맛이 돈다. 맛있다. 

형부가 내 앞에 김이 피여오르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마주앉는다. 

“너 그동안 준이 공부 시키느라 얼마나 고생 많았니. 참 면목 없다.”

“아니 뭐 저절로 공부를 한 검다. 제가 해준 건 딱히 없슴다.”

“갸가 뭘 제절로 했겠냐. 다 니 덕분이다.”

“예, 뭐.”

나는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물조절을 적당히 해서 커피는 싱겁지도 텁텁하지도 않아 마실 만하다. 

“애기 많이 컸겠다. 신랑은 잘 있구?”

“예, 이제 컸다고 말도 잘 안 듣슴다. 신랑은 그냥 출근하고 그저 그렇죠 뭐. 준이는 전화 자주 옴가?” 

“가끔 온다. 잘 있는다니 된 거지 뭐.”

“예…”

“여기서 무슨 일을 함가?”

“저기 송림동 골안에 벌을 백통 좀더 되게 놓았다. 잣산을 맡아가지구 그것두 하구. 갈 때 꿀 가져가라. 꿀을 뜨면서 니 생각 했었는데 들고 갈 수도 없구 해서…”

벌 백통이면 꿀이 얼마나 나오고 돈은 얼마 정도 벌어지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어 나는 아…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헌데 형부는 언니에 대해서는 전혀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그 때였다.

마당으로 막 어떤 녀자 하나가 들어서고 있다.

나는 엉겁결에 일어섰다. 

“앉아있어라.”

형부는 나를 만류했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쪽은 내가 말하던 준이 이모요.”

“아. 얘기 많이 들었는데. 고생 많았다구. 어서 앉소.”

녀자가 환하게 웃으며 반색한다. 

나는 형부의 옆에 앉은 녀자를 흘깃 건너다보았다. 자그마한 체구에 이쁘지는 않지만 부드럽게 생긴 중년녀인이다. 

나는 괜히 맹랑해진다.

“손님한테 뭘 좀 대접하지 않구.”

“글쎄 나야 뭐가 어데 있는지 알아야지. 허허.”

곱게 형부한테 눈을 흘기는 녀인과 환하게 웃는 형부는 누가 봐도 몇십년은 산듯한 자연스럽고 친숙한 부부로 보인다. 나는 언니를 퍼즐처럼 그 두 사람 사이에 놓아보는 가상을 해보다가 고개를 흔든다. 내 눈앞에 있는 저 두 사람 사이에는 비집고 들어갈 만한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다. 

“이만 가겠슴다.”

“점심을 잡숫고 가오.”

“어쩌다 왔는데 밥을 먹고 가지.”

“아님다. 가겠슴다.”

더 이상 내가 앉아있을 자리가 못되는 자리라는 걸 알았으니 일어나는 게 맞을 것이였다. 나는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났다. 

“언니는 잘 있는다니?”

택시를 기다리다가 드디여 형부가 지나가는 말처럼 무심하게 묻는다. 

“예 그냥 한국에 있슴다.”

“오 그래. 나도 한국에 가서 삼년을 있다가 왔다.”

아. 나는 흠칫 놀랐다.

형부가 한국에 갔었다는 사실보다 한국에 가서 삼년을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라고 거기 가서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언니를 찾지 않았다는 것에 더더욱 놀란다. 그렇다면 형부는 아주 오래 전에 벌써 언니를 깨끗이 놓아버렸다는 말이 되겠구나. 

“그 때 그렇게 언니를 한국에 보내고 설마설마 하면서도 기다렸다. 리혼이 가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구 언니를 놓을 수 없었던 거지. 사람의 정이라는 게 무서워서… 힘든 시간도 많았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니까 차차 마음 정리가 되더라. 원래부터 나랑 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 오히려 편하더라. 혼자 있으면서도 놀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하다가 한국수속이 돼서 한국에 갔었지. 거기 가서 노가다를 하다가 저 사람을 만났구. 돌아와보니 시골도 살 만하다 싶구 저 사람도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해서 눌러앉은 건데 큰 돈은 못 벌어도 살 만은 하다.”

“예, 형부. 좋은 분 같슴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그렇게 말했다. 

대화가 끊기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하던 차에 저 멀리서 택시차가 누렇게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그래. 허허. 얼른 타라.” 

십키로는 됨직한 꿀을 기어이 택시차에 올려놓고 형부는 물러선다. 

나는 형부한테 손을 흔든다. 저 사람은 이제 내 형부가 아니며 그러므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터덜터덜, 턱턱. 택시는 몸을 떨었다가 요동쳤다가 하며 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래년이면 길을 닦는대요. 이렇게 엉뎅이를 들썩거리며 달릴 날도 얼마 안 남았어요.”

모든 일에 락천적일 것 같은 기사가 웃으며 말한다.

“아. 네 그러면 좋겠네요.”

“길 닦으면 다니기 편할 거예요.”

“예, 그렇겠네요.”

이 길이 포장된 후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

피파랭킹 1위 독일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멕시코에 패했다. 독일을 굳게 믿고 돈을 걸었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돈을 날렸다. 

오랜 독일 축구팬이였던 나도 돈을 잃은 사람들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지만 잔뜩 기분이 다운되여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뒤통수를 쳐도 적당히 쳐야지 독일이 어찌 멕시코에, 그것도 0대 1로 꼴 한번 넣어보지 못하고 패할 수 있단 말인가. 

하필 날도 후덥지근하다. 괜히 짜증이 난다. 남편은 그런 와중에 하필이면 만두가 먹고 싶다고 했다. 

“메이퇀으로 배달시킬가?”

“집에서 한 게 맛있재? 난 밖에 음식은 별루…”

“오우, 괘씸스러워.”

신혼 초에는 당신이 한 음식이 어떤 맛집 음식보다 더 맛있다는 남편의 말에 붕 떠서 온갖 재주를 다 부려가며 료리를 했었다. 이제 그 붕붕 뜨는 신혼은 아득한 옛말이 되여버리고 집밥만 고집하는 남편이 귀찮고 짜증난다. 

그렇다고 별것도 아닌 만두 먹고 싶다는 소박한 남편의 요구를 싹둑 자를 수가 없어서 소만 하고 만두피는 사왔다. 

가장자리에 물을 묻히고 소를 놓고 만두를 싸다 보니 들쑥날쑥했던 마음이 어느새 가지런해지고 있었다. 

“우앙, 만두다.”

딸애가 환성을 지르면서 달려들어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뒤따라 들어선 남편도 빙그레 입가에 웃음을 물고 있다. 

“얼른 손 씻어. 엄마가 금방 삶아줄게.”

커다란 남비에 물을 가득 담아 가스불에 올려놓고 마늘 두쪽을 칼등으로 두드려 썰었다. 만두 찍어먹을 간장을 해놓고 나니 물이 적당히 끓어오른다. 

“우리 만두 맛있게 먹고 저녁에 축구 구경하자. 너네 엄마 좋아하는 독일이 집에 갔으니까 이젠 시름 놓고 아무 팀이나 응원하면 된다. 하하.”

남편이 크게 웃는다.

그래, 사는 게 별 거 있나. 이렇게 만두 하나에 온 집식구가 행복할 수 있으면 된 거지. 

나도 푹 웃어버린다. 

 

*

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내가 샘골로 다녀온 이틀 뒤였다. 

“그래 어떻데? 니가 직접 가보니까 어때?”

언니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하고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댔다. 

나는 언니한테 형부가 샘골에서 작은 집을 짓고 벌 몇통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형부가 삼년 동안 한국에 있었다는 말과 샘골의 그 아름다운 꽃밭과 그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녀자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런 걸 또 그렇게 소문만 무성했구나. 하긴 그렇겠다 했다. 벌 몇통 하는 걸 또 무슨 몇백통 해서 돈 엄청 버는 것처럼 소문이 돌더라니. 사람들이 왜 그런다니?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돼. 너 내 말은 안했지?”

“안했지.”

말을 했으면 크게 혼이라도 낼 기세다.

“그래 잘했다. 나도 뭐 생각해보니 어휴 왜 그런 생각을 잠간 했나 싶더라. 하도 준이 결혼시킬 생각을 하니까 아버지 엄마가 나란히 앉아있으면 보기가 좋겠다 싶어서 잠간 그런 생각을 한 건데 요새 뭐 리혼한 가정이 한둘이야? 그건 뭐 허물도 못된다고 다들 그러더라. 그리고 뭐 니네 형부 착하긴 했었지만 나보다 못한 거야 사실이지 뭐. 잘해주긴 했어도 사는 동안 숨이 탁탁 막혔어. 어휴 애초에 눈을 좀 높였어야 하는데. 준이 얼굴 까만 걸 보면 괜히 짜증 나는 거 있지.”

그렇게라도 해야 실망한 마음이 위안이 되는 것인지 언니는 형부를 다시 만나고 싶어한 그 잠간의 마음이 사실은 진실한 마음이 아니였음을 구구절절히 늘여놓았다. 마치 그래야만 잠간 구겨질 번한 자존심이 다리미로 주름을 펴듯 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언니가 이제라도 허황된 꿈만 버릴 수 있다면. 

 

장마가 갑자기 시작되였다.

해가 쨍쨍한 날씨라 잘 안 입는 치마까지 꺼내입고 김치가게를 하는 후배한테 가서 밥 먹고 커피 마시러 가는데 갑자기 토닥토닥 아기 잔등 두드리며 어르듯 해비가 떨어지는 것이였다.

“해비가 오네.”

“그러게 말임다. 어릴 때는 해비 오면 키 큰다고 나가서 비 맞았는데.”

“맞아.”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비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뭐 곧 지나가는 비려니 했다. 한참 지나자 예상 대로 비줄기가 가늘어져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불과 몇십메터도 채 못 가고 우리는 어느 려관으로 올라가는 아빠트 현관문 안에 허겁지겁 뛰여들어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는 점점 거세지더니 그제는 좌락좌락 대야로 물 끼얹는 소리가 나는 것이였다. 큰길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더니 차들이 물살을 헤가르고 달리고 있었고 우리는 아빠트 물받이에서 락수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걸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시골 산골짜기 도랑물 수준이다 그렇지?”

“언니 완전 도랑물이 흐르는데요.”

그렇게 주고받을 때 쯤에는 급기야 바람까지 불어 길가의 백양나무가 긴 머리채를 마구 휘날리고 있었다. 

다행히 한참 지나 비가 가늘어져 우리는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그새 발목을 치게 물이 차있는 큰길을 깔깔대며 건너 무사히 후배네 가게까지는 도착했다. 도착해서 얼마 안돼서 또 언제 그랬냐 싶게 해가 반짝 났다. 우리는 하필 우리가 오고 나서 해가 나냐고, 우리가 올 때 비가 그쳐있다가 도착한 뒤에 소나기가 마구 두드려대야지 하면서 웃었다. 

집에 돌아와 얼마 안 지났는데 통유리창에 눈 먼 새가 마구 날려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열콩알 같은 우박이 하얗게 올챙이떼처럼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다행히 시간 맞춰 집에 왔기에 우박은 피했다고 안도하며 나는 저녁준비를 했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오이 세개를 씻어 칼도마에 놓고 칼로 두드려서 깨뜨렸다. 너덜너덜해진 오이에 칼집을 넣어 썰고 참기름과 마늘과 소금을 넣어 버무린다. 반찬통에 담아 랭장고에 넣어놓고 돼지고기를 꺼내 작은 토막 여러개를 낸다. 한토막만 남기고 랭동실에 넣는다.

돼지고기를 작은 정방형 꼴로 잘게 썰고 표고버섯 한개를 썰고 감자 하나를 껍질 벗겨 작은 네모꼴로 썬다. 기름에 돼지고기를 볶다가 감자를 넣고 버섯을 넣고 한참 볶아주다가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덮는다. 고기와 감자가 익는 사이, 카레가루를 꺼내 적당히 그릇에 덜어놓고 찬물에 잘 저어가며 푼다. 뚜껑을 열고 고기 하나를 숟가락으로 건져내 빛갈을 보니 적당히 잘 익었다. 카레가루 푼 것을 조금씩 흘려가며 넣고 천천히 젓다가 걸죽해질 무렵 가스 불을 끈다.

이걸로 저녁은 다해놨다 싶어 돌아서려다가 밥솥이 보온으로 되여있는 걸 보는 순간, 이게 왜 오늘은 칙칙거리지도 않고 벌써 밥이 되였나 싶은 게 아무래도 미심쩍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게 웬 일인가. 취사버튼을 누른다는 게 그만 보온을 눌러버린듯하다. 잔뜩 퍼져 쌀이 봉긋하게 올라와있다. 이걸 그냥 눌러버리면 밥은 되겠지만 맛없어서 못 먹을 거고 그렇다고 퍼서 버리자니 농사군의 딸인지라 아까워 죽겠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이 너무도 고민스러워 밥솥 뚜껑을 열어젖힌 채 우두커니 서있는데 식탁 우에서 휴대폰이 드르륵 드르륵 요동을 쳤다. 집어들고 보니 언니가 위챗으로 음성통화를 보내왔다.

“너 잘 있냐?”

“냐, 언니는?”

착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는듯한 언니의 목소리에서 나는 언니한테 좋은 일이 있구나 하고 류추해낸다. 무슨 일일가? 나는 선뜻 언니한테 있을 좋은 일을 짐작해낼 수 없다. 

“저기 길림에 말이다. 거기 살기 좋을가?”

“아니, 갑자기 길림에는 왜?”

“응, 여기 언니 일하는 회사에 키 크고 멋있는 남자가 있는데 너무 죽자살자 따라다녀 가지구. 돈 좀 벌어서 길림에 가서 살재. 그 사람 길림사람이거든.”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말투를 보아하니 벌써 사귀고 있는 모양이였다. 

“언니 잘 알아보지 않구.”

“빠릿빠릿하고 돈도 있는 사람이야. 결혼은 했었다는데 애도 없고 집에서 막내라 아무 부담도 없어. 나한테 엄청 잘해. 나 목걸이도 선물받았다? 노오란 금목걸이인데 네 것처럼 가느다란 게 아니구 엄청 굵은 거야. 이제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 호호.”

언니의 웃음소리가 명랑하다.

“언니 준이는 잘 있지?”

“응? 준이? 잘 있겠지 머. 이제 녀자친구까지 있는 놈을 뭐하러 걱정하냐.”

언제는 아침에 뭘 먹고 저녁에 몇시에 자는 것까지 궁금해하구서는 완전 딴사람처럼 엉뚱한 소리를 한다. 하긴 그게 언니가 아닌가. 

“언니 그럼 이제 준이 걱정 안하려구? 녀자친구 맘에 안 든다더니 그건 또 어찌오?”

“이제 관심 끊었다. 달가워하지도 않는데 뭐 하러 걱정한다니? 다 부질없다. 이제 이 사람이랑 내 인생 살란다. 자식은 키울 때 뿐이지 다 소용없어.”

통화를 끝내고 나니 이상하게 피로가 몰려온다. 

번쩍 하고 눈앞에서 빛이 보이더니 우르릉 꽝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난다.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

그 날 밤, 자정에 있은 독일과 한국 월드컵에서 한국은 피파랭킹 1위인 독일을 2대 0으로 이겼다. 

위챗그룹과 인터넷은 온통 한국의 승리를 경축하는 축제로 시끌시끌했다. 한국이 이기는 체육복권을 산 위챗그룹의 후배 몇명이 기쁨의 훙보를 뿌렸다. 나는 의외로 마음이 담담했다. 그래 그렇구나. 세상일이란 그렇구나. 뭐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 같다.

모두가 즐거움을 만끽하던 그 시각. 누군가 강물에 뛰여들었다는 영상이 올라왔다. 

“독일을 샀나 봐.”

“허황된 꿈을 꾸다가 참.”

“독일이 질 줄 누가 알았겠어?”

“알 수 없기에 도박을 거는 거지.”

“참 안됐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메시지들을 읽어보다가 나는 위챗을 껐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나는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깔린 바깥은 고요했다. 군데군데 땅바닥에 고여있는 물이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나는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카텐을 쳤다. 

뽀송한 이불을 가슴께까지 올려덮으며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 말고 깊은 잠에 빠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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