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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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의 血 제1부 30.
2012년 10월 04일 19시 03분  조회:4770  추천:0  작성자: 김송죽
 

 

 

   30.  

 

   숱한 애국지사들이 망국의 치욕을 참지 못해 순국으로써 앞날을 경고했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일본의 침략야욕을 분쇄할 수 있으랴. 증오가 격발된 국민들 중 어떤 사람은 복수를 함에 보다 적극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으니 그 첫 시도가 이른바 5적을 암살해버리는 것이였다.

   을사5적인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에 대한 국민의 규탄은 일본침략자에 대한 증오에 못지 않게 격렬했던 것이다.

   맨먼저 이자들을 암살하려고 기도한 것은 기산도(奇山度)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협객이였다. 기산도(奇山度)는을사조약이 성립되자 박종섭, 박경하, 송한주, 이종대 등을 포섭하여 결사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준비한 후 곧 5적을 주살하려다가 발각되여 체포됨으로써 거사는 미수에 그쳤다.

   한편 거의 같은 시각에 서상규(徐相奎), 구우영(具禹濚) 등도 5적중 먼저는 가장 악질적인 이근택부터 죽여버리려고 폭탄을 구입해 북산에 들어가 그 성능을 알아보느라 실험을 하다가 발각되여 체포됨으로 하여 역시 실패하고말았다.

   얼마후인 1906년 2월 7일, 기산도(奇山度)가 다시 부하 이근철(李根哲), 구완선(具完善), 이세진(李世鎭)을 데리고 이근택집의 담을 뛰여넘어 들어가 잠들어있는 이근택에게 10여군데 자상(刺傷)을 가하였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한채 경위원과 순사 10여명이 달려드는 통에 실패하고말았다.

    그와 손잡은 라철은 그 소리를 듣고 몹시 맹랑해하였다.

   《아쉽게도 두 번 다 실패하고말았구나!》

    한편 라철의 친구 오기호는 적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지독한 놈들이지. 산 산람 다리를 잘라내다니 원!》

    적들은 체포된 기산도(奇山度)를 옥에 가두고 모진 악형을 들이대였거니와  나중에는 그의 왼쪽다리를 잘라버려 불구로 만들어버린것이다.

    하지만 그 지경이 되어갖고도 기산도(奇山度)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자기는 반일을 끝까지 하리라 다짐했다. 매국노에 대한 응징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있는 그이야말로 실로 투사다왔다!   

   나라의 꼴이 마치도 고목이 거센 바람에 흔들리여 뿌리가 당장 빠질것만 같은 모양이라 라철은 속이 몹시 안달아났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고?》

  《라형, 그래도 애초의 방략대로 다시 한 번 도일을 해서 정계인물들을 력방함이 좋잖을가하오. 내 생각인즉은 한번 다시 그네들의 반성을 촉구해 보는게 좋겠다 그겁니다.》

  《한번 다시 그네들의 반성을 촉구해본다?.....》

  《그렇지요. 민간적인 차원이기는 하지만은 그것이 더 직접적으로 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걸루 되니까. 안렇습니까? 그리구 그 방법이면 접촉이 구애없이 가능하기두한거구요. 아무튼 그들이야 지금도 의연히 동양평화를 주장하고있으니까. 안그렇습니까?》

   오기호는 라철에게 다시 한 번 탐방을 역권(力勸)했다.

   (일본침략이 일본의 정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맘먹은대로 그냥 거기 정계의 거물급 인물들을 다시 력방해서....조선의 태도와 주장을 력설하고....침략을 거두게끔 촉구해본다.... 하긴 그게 바람직은 하겠구나. 아무튼 한국내에서 일본인을 상대하기만은 더 낫겠지.)

   생각이 다시금 여기까지 미치고 보니 오기호의 말과 같이 과연 그것이 더 가능할것 같아 보여 라철은 그러면 어디 그래볼가고 작심했다.

   그가 이 일을 친구인 강기환(姜基煥)이와 말했더니 그는 적극 호응해나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오기호는 상해로 가고, 라철은 이해의 10월 20일에 그를 데리고 함께 재차 도오꾜오를 향해 도일(渡日)하게 되었다. 

   그들이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동양평화론자라 소문난 마쯔무라 유노신이였다. 라철이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어 초면인 그는 올해 나이 53세라니 라철보다 10살이 이상이요 외모가 인자해 보여 이쪽에서 받는 인상이 우선 좋았다. 이 동양평화론자는 모처럼 찾아온 라철일행을 열정적이면서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자기를 찾아 온 뜻이 무엇이라는것을 알아맞힌 마쯔무라 유노신은 일편단심 기우러져 가는 자기 나라를 어떻게든 춰세워보자고 발분(發奮)하는 이들의 헌신성과 의용을 찬양했다. 그러면서 그는 라철의 력설을 귀담아듣더니 일본에는 자기를 내놓고도 거물급의 정객 몇이 더 있으니 그들도 만나보라며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다른 거물급의 정치가로는 도야마 미쓰루와 오까모도 류노스께였다.

   라철과 강기환은 오까모도 류노스께를 만나 그의 앞에서 한국의 독립론과 동양의 평화론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도의상(道義上)으로도 응당 지난날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리라 여러번이나 곱씹었던 낙언(諾言)을 지켜야 할게 아니냐고 력점을 찍었다. 오까모도 류노스께는 잠자코들어주었거니와 동정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 둘이 이번에는 도야마 미쓰루를 찾아갔다. 라철은 오까모도 류노스께와 한 말을 그와도 했다. 도야마 미쓰루는 자기를 찾아와 조선의 독립이니 동양평화니를 력설하는 이 다기진 중년의 조선사나이를 감개에 찬 눈매로 보면서 머리를 주억거렸다. 자기도 동감이라는 표현이였다. 그러나 그는 입을 열더니 리유좋게 슬쩍 밀어버는것이였다.

   《나역시 동양의 평화를 옹호해온 사람이요. 지금도 의연히 그것을 주장하고있는 것 만큼 라선생과 어디까지나 동감인것이요. 라선생의 말씀에 일리가 있지, 있구말구! 허나 현실적으로 보면 라선생, 권리가 곧바로 힘이 아니겠소. 집권자인 이또오의 대한정책이 이미 수립되여 그것이 추진중에 있는 것 만큼 나로서는 달리 더 어쩔 방법이 없구만. 안그렇겠소?.... 그러니까 라선생, 내 생각에는 라선생이 한번 이또오와 직접 교섭해을 해보는게 더 좋지 않을가하오.》

   《저더러 그를 다시 만나보라 그 말씀인가요? 아니요, 그러고싶지는 않습니다.》

   라철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갈의 배속에 독이 들어있구 그자의 배속에는 침략야심만 꽉 들어차 있는건데 내가 그자를 다시만나서는 뭘한단말인가? 차라리 담벼락허구 말을 하는 편이 났지.)

   입밖으로 이런 말이 튀여나오자는 것을 겨우참았다.

   그의 안색에서 내심이 였보이는지 도야마 미쓰루는 눈을 내리깔더니 생각을 굴리느라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그는 고개를 다시들고는 그렇다면 내가 다른 한 사람을 소개해주겠으니 그를 만나서 얘기해 보거라 그러노라면 뭔가를 알게 될거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것이였다.

  《라선생, 우찌다를 꼭 만나보게. 한국문제에 대해서는 내보다 어쨌든 우찌다가 더 알고있는거니까 비교적 만족스런 대답을 들을지도 모르지.》

 

   하오리를 걸치고 맨발에 게다짝을 꿴 70대의 늙은이가 한국에서 온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바깥어디론가 막 나가려던 참인 것 갔다.

   (이 령감쟁이가 실력이 대단한 정객이란말인가?)

   라철은 기름박같이 반들거리는 그의 자그마한 번들머리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댔다.  

   우찌다의 저택은 빈번한 지진의 흔들림에 견딜수 있게끔 만들어진 전통적인 일본식의 목조건물이였는데 지저분한데라곤 한곳도 없이 실내가 깨끗이 거두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널직한 방의 벽에 걸려있는 한폭의 그림이 유난히 라철의 눈길을 끌고있었다. 그것은 일본그림이 아니였다.

   《라선생! 저 그림이 어쩐지?....》

    강기환이 역시 그 그림에다 눈길을 떨구면서 의문을 던져왔다.

   《<夏景山水圖>라, 잘 보라구, 저건 허유선생이 그린 그림일세.》

   《글쎄! 그러게 어쩐지 눈익어 보이지.》

    허유(許維)는 83세를 일기로 10여년전에 작고한 한국의 유명한 화가인바 벼슬이 지중충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지만 글, 그림, 글씨를 모두 잘해서 삼절(三絶)이라 사람들은 그를 벼슬아치로 보다도 화가로 더 알고 있었다. 한데 창윤고아(蒼潤古雅)한 이 담채산수화(淡彩山水畵)가 어떻게 돼서 이런 왜의 집 벽에까지 걸려있는걸가? 그것이 복제품일수도 있겠지만 현해탄을 넘어 여기로 온 것이 별스러웠다. 라철의 머리에 피끗 떠오르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임진왜란때 조선을 몹시 어지렵혀놓았다는 왜군무장 고바야까와 다까가게였다. 그는 모오리 히데모또와 1만5천명의 병력을 끌고 서울에 까지 들어왔고 금산(錦山)에서 조선의병 700명이나 죽였다. 정유재란때도 군대를 끌고 와 내침하여 철수할 때는 많은 서적을 일본에 반출해 간 략탈자인것이다. 조선의 주자학(朱子學)은 그리하여 일본에 영향을 끼친것인데 라철은 허유의 그림을 보니 지난 력사가 새삼스레 상기되면서 마치 도적을 맞친 제 집의 귀중품을 오늘 여기서 발견한것 같은 기분이였다.

   우찌다는 눈치역은 령감이였다. 그는 대방의 얼굴에서 미세하게 나타나는 감정적 색체의 변화마저 포착하고는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두분 다가 이 그림이 아주 숙친한 모양이구려. 그렇지요?》

    자기의 얼굴을 빤히 여겨보며 물는지라 라철은 응대를 안할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아주 숙친하지요. 이 그림이 우리 한국의 작고하신 허유선생의 작품아닙니까. 한데요, 우찌다선생님! 이 그림이 어떻게 돼서 선생댁에까지 오게됐습니까?》

   《그게 이상해서 나하구 물는건가? 궁금하다면 내 알려주지. 이 그림은 말이네 극진하게 사귀여 둔 한국친구가 준것일세. 보다싶이 물건이란 그를 소유하고 있는 주인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거네. 이 그림이 민간인의 손에 나돌면야 그때는 값이 서푼어치도 안갈테지만 지금 내 집 벽에 걸려있으니 만금같이 빛을 내고있는게 아닌가. 한폭의 그림ㅡ 그걸 어찌 그저 그림으로만 볼수 있겠는가. 오늘와서 이 그림은 바로 우리들 량국민간의 친선과 우정의 표징이요 증거물이기도 한  것일세.》

   우찌다는 그저 이쯤 말하고는 누가 준 그림이라는건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라철은 꼭 알아내려고 바투다가가 보았다. 그림의 한쪽 귀퉁이쯤으로 해서 존경하는 우찌다선생님께 봉정(奉呈)이라 해놓고는 도장을 박았는데 그 도장에 전자체(篆字體)로 오려진 것이  송병준(宋秉畯)이였다.

   《빌어먹을 개놈!》

    라철의 입에서 어느덧 욕설이 튀여 나갔다.

   《보아하니 라선생은 심정이 그닥 유쾌치를 않는 모양이구려. 송병준이는 머리있는 사람일세. 붕우를 알고 스승을 아는건 모든 지능인이 취할바지. 인생이 몇번인가.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났으면 복락을 한번 누려봄도 지당한 일이지. 안그런가? 해도 안될....》

   《저 선생님!....》

    라철은 무례하달 정도로 그의 말을 중둥잘라버렸다. 얼굴이 벌개나면서 뜸을 드리다가 이어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대체 우리를 뭘로 보고 이러십니까?》

    우찌다의 얼굴에 한동안 실망의 빛이 어리더니 차츰 얄팍한 웃음기로 변해갔다. 일본에서는 손을 꼽는 이 늙은 정객은 로련한 여우가 튀개약을 덤벙 물어 씹지는 않고 혀로 겉을 살살 핥아서 거기에 발린 기름을 먹듯이 그들이 찾아온 뜻을 미리 알아맞히고는 되려 듣기 좋은 소리로 슬슬 회유(懷柔)하려 드는지라 그들은 본말을 꺼내지도 않고 그만 나오고말았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것은 옳았다. 우찌다는 통감부고문(統監府顧問)이였는바 실지로는 한국침략의 막후실력자였던것이다. 이 우찌다나 그를 라철에게 소개한 도야마나 그들은 다가 일본 현양사(玄洋社)의 계맥(系脈)을 이은 흑룡회(黑龍會)의 핵심간부로서 일본정계의 주요인물이였다. 기름박머리 우찌다는 도야마의 부하다. 송병준, 윤시병, 이용구같은 자들을 추겨서 일본주구세력인 유신회, 진보회, 일진회 등 어용단체를 만들게 한 것이 바로 그였다. 그런데도 라철이나 강기환이나 다 그 내막을 미처몰랐던것이다.

   어느날 아침때다. 그들이 투숙하고 있는 려관의 나젊은 뽀이(boy)가 그날의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을 갖다주길래 받아서 보니 톱기사란에 이또오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귀국하여 일본제국의회(日本帝國議會)에 제2차한일협약의 체결을 보고한 내용과 동시에 한국의 내부대신 이지용이 보빙대사(報聘大使)로 일본 도오꾜오에 왔다는 내용의 보도가 대서특필로 실려있었다.

   《이걸 보우, 이걸 보란말이우! 이또오 히로부미는 우리 한국의 외교권과 내정권까지 빼앗아내구는 그걸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는구만! 나 원 더러워서!.... 보란말이오, 온 일본이 그걸 대단한 공적으루 인정하고 이또오 그자를 하늘높이 올리추고 떠받든단말이오!》  

   라철이 신문을 보면서 흥분된 목청으로 웨치였다. 그것은 누르길없는 격분이였다. 

   《싹 잡아서 죽여치울 개자식들이다!》

   그의 입에서 마침내 욕설이 터져나갔다. 위로는 일본 천황에서 아래로는 말단관리에 이르기 까지, 악질친일파나 일본의 행정기관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도 원쑤로 돼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지어는 이 신문을 보고도 무감각할 무지한 서민에 이르기 까지도.

   《가기오, 가! 이제 뭘 할려구 여게 그냥 머물르겠나?》

   라철은 서둘러 행장을 챙겨갖고 려관을 나와버렸다. 이 이상 일본에 더 체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본에는 칼이 많았다. 누군가는 그것이 남의 목숨을 앗아내기를 즐기는 일본사람의 애호에 기인된다고 지적한적이 있다. 과분하고 무례한 억설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옳은것 같기도했다.

   그들이 그지간 여러날 묵고있었던 려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칼만 전문으로 파는 상점이 있었다. 라철은 가던 걸음을 멈츳거리더니만 발길을 돌려 그 상점으로 들어갔다.

  《아니 여기는 왜?》

   강기환은 따라들어오며 의아쩍어했다.

  《아마도 역적놈부터 잡아치우는게 옳을 것 같아.》

   라철은 매대에 진렬해 놓은 칼에다 눈길을 꽂으면서 응대했다.

   크기 작기 모양이 각가지인 칼들이 많기도 했다.

   라철은 날이 한뼘가량되고 자루를 구리로 만든 단도를 한자루 샀다.

   강기환도 자기 맘에 드는걸로 한자루 골라서 샀다. 자국의 역적놈들부터 주살(誅殺)하자는 라철의 주장에 찬동이였던 것이다.

   (내가 그자들의 승리를 축하했으니 어리석었다. 이웃마을이구 형제란 왼 말이냐, 그놈들은 곁에 가까이있으면서 탐욕만 키워 온 야수였던 것을 몰랐구나.)

   라철은 전에 이기, 오기호 등과 함께 메이지천황과 이또오 히로부미에게 좋은 말로 힐소(詰疏)했던 일을 하나하나 다시금상기하고는 자조(自嘲)를 했다. 메이지천황도 이또오 히로부미도 그따위것을 거들떠보기나했을가?....

   라철과 강기환이 현해탄을 다시건너 조국에 돌아온 것은 12월.

   (내가 어떻게 하면 5적을 다 잡아치울수 있을가?....)

   이 문제는 일본을 떠날때부터 내내 머리속에서 맴돌이치건만 신통한 방법이 나서지를 않았다.

   라철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기호는 물론 이기선생도 나어린 주사(主事) 김인식이도 인차 달려왔다. 물론 돌아온 사람을 위안하고 로고를 풀어주자는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크게 기대한 일이 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갑갑했던것이다.

  《속담에 <다 가도 문턱 못 넘기>라더니 말이 맞네. 그렇게 애를 썼건만도 대륙침략의 당로자(當路者)들은 만나지도 못해 면담을 못했지. 정객 몇을 만나서 호소를 해봤소. 헌데두 그게 다 마이동풍이니 결국은 허공중에 헛막대질이였지.》

   라철이 이번행차에는 일호반점의 성과도 없음을 이같이 고백했다.

   모두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왔다.

  《우선 5역적이 되는 대신들부터 자살(刺殺)해놓고 볼판이요. 올라 앉는 놈은 잡아버리고 올라앉는 놈은 잡아버리고.... 우리가 그렇게 몇번만 번복하고 나면 깨닫는 바가 있어서 주저하게 될것이요. 제 목숨이 아까와서도 주는 벼슬을 받을려구 안할거요. 그때가 되면 어떻게 될가? 일본도 하는 수 없이 맥을 버리고말게 아니겠소. 생각들 해보시오, 아니그렇겠는가구?》

   라철은 여지껏 수차 일본을 대처해온 외교경험과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의병투쟁과 같은 무력항쟁보다 현시점에 있어서는 그래도 2천만동포의 혈분(血憤)인 매국노 을사5적을 도살하며 지금의 매국노정부를 타도하는데다 력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방략만이 현실적이고 따라서 가능하다고 동지들을 설득했다.    

  《글쎄 생각이 옳네만은....》

   오기호는 앞서 여럿이 거듭거듭 실패만 거듭한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이 일은 그저 생각이나 용감성만 갖고서는 안되는 일인 것 만큼 우선 착실히 연구한 기초상에서 계획을 세우고 그 준비작업부터 잘해나가야 할 것이라했다.

   결국 라철이 제시한 방략이 채택된것이다.

   이해 겨울날의 추위는 유달리도 혹독했다.  

   어느날 이홍래가 문득 제 친구를 데리고 라철을 찾아왔다. 라철은 이홍래는 알지만 그의 친구와는 초면이였다.

   《저는 경상북도 금산군서 사는 박대하올시다. 선생님을 만나 뵙고 우러러 모시고푼 맘에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박대하는 국궁재배하고나서 자아소개를 했다.

   박대하는 최익현을 숭배하여 부유했던 재산을 털어 무장을 구입하고 인원을 모집해 의병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명성도 높았건만 실패는 가슴을 더 아프게만 하여 그는 서울에 올라와서 민영환의 부하였던 이홍래와 김동필, 이용채 등과 서로 왕래하면서 의병재거를 밀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생각에도 어쩐지 신통치를 않아서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선생님, 저와 저의 이 친구는 함께 의병을 다시일으키려 하면서 선생님의 조언을 받고싶어 왔습니다.》

    이홍래는 라철의 앞에 박대하와 자기의 궁리를 말했다.

   《다들 보다싶히 일본은 스스로 전쟁때 조선의 독립을 시켜주리라던 말을 식언하고 기행동 한가지도 독립부액의 실지에 부응됨이 없이 삼천리강토를 저들의 령지로 만들고있는게 아니겠소. 나는 이를 구제할 길이 궁한 나머지 다시 일본의 지사에게 기정책을 변경시키고자 도해를 하였던 거요. 오까모도와 마쯔무라를 역방했구 도야마도 역방을 했더랬소. 그들을 만나서 내 나라를 생각하는 애정을 호소했더니 그들은 다 시기가 아니라 해서 하등의 소득없이 헛되이 귀국하고말았던거요.》

    라철은 그들의 앞에서 우선 자기의 외교적인 수단이 실패하였음을 솔직히 알려주었다.

   《선생님. 그러니까 무장을 손에 들고 싸우는 길밖에 없잖습니까.》

    박대하가 격정적으로 말했다.

   《선생님, 지금 보면 의병을 일으킴에 어려움도 어려움이려니와 일으킨  후에는 실패가 너무나 참혹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해얄지요?....》

    이홍래가 이마를 짚었다.

    그가 고개숙이는 것을 넌짓이 보면서 라철은 입을 다시열었다.

   《보아하니 아직도 대세를 잘 모르고들있는 것 같구만. 일본은 현재 강유력한 군사를 보유하고있는 것 만큼 그자들과 변변치 못한 무장항쟁으로 맛선다는건 무모한 노릇인거요. 안그렇겠소? 생각들을 해보란말이요.》

   《선생님, 그렇다고 항쟁을 거두고 나앉을수야 없잖습니까.》

    이홍래가 숙였던 머리를 번쩍 들고 하는 말이였다.

   《왜서 나앉아? 우리가 이 기초상 항쟁수단을 바꿔보면 안될가? 국권의 회복은 백계가 다하였으며 돌아보건대 금일의 꼴이 되게 한 소이는 현정부대신들이 한바이니 우리들 스스로가 국민을 대신하여 그자들을 주살하고 현정부를 전복하여 새로 조직한 정부로써 독립을 지켜낼 수는 없겠는가말이오.》

    이 말을 듣고 보니 박대하도 이홍래도 눈앞이 밝아지는 것만같았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웨쳤다.

   《오적을 주살하자, 그 말씀이지요!》

    그들은 오기호도 방문해보았는데 오기호역시 라철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시기가 아니라 하면서 의병투쟁보다는 5적부터 없애버리는 것이 더 낳으리라 력권했다. 하여 둘은 마침내 5적암살에 동참하게되였다.

    한정없이 밉고 더럽고 교활한 저자들을 한꺼번에 싹다없애치울 수는 없을가? 라철과 오기호는 실패한 이들보다는 더 큰 집단적인 암살을 모색했다. 

    매국노 을사5적을 일망타진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준비사업이 잘돼야 한다. 첫째는 치밀한 계획과 조직, 그리고 거사에 필요한 자금장만이였다. 무기를 구입하자해도 거사행사를 하자해도 자금이 없어서야 되는가. 라철과 오기호는 먼저 자금조달을 위하여 자기 부인의 비녀와 가락지 등 귀중품들을 팔았다. 그러면서 성균관박사인 이광수(李光秀)에게서 2만량, 내부대신(內部大臣)을 지낸바가 있는 이용태(李容兌)에게서 1,700원, 군수(郡守) 정인국(鄭寅國)에게서 300원, 농공상부주사(農工商部主事) 윤주찬(尹柱瓚)에게서 1,000원을 각각 모금하였다.

   이 돈중 김동필(金東弼)에게 600원주어 인천에서 피스톨 50정을 구입했다. 이같이 자금과 무기가 준비되자 라철일행은 1907년 2월 13일(음력 정월초하루)을 거사일로 정했다. 이날 각 대신이 참내(參內)하는 길에서 저격하여 일거에 결행하자는것이였다. 그러자면 암살자 인선과 이에 따른 결사대원이 확보돼야 할 것이다. 라철이 쓴 동맹서(同盟書)와 이기가 기초한 참간장(斬奸狀) 수백장을 인쇄하였다. 모집자는 그것을 지참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에 가서 을사5적을 저격할 결사대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 행동은 극비밀적으로 진행되고있었다.

   한편 윤주찬, 이광수는 본국정부와 통감부, 일본군사령부 그리고 각국 령사관에 보내는 공개장(公開狀)과 내외국민에게 보내는 포고문을 작성하였다. 이 글들은 애국혈성(愛國血誠)과 독립의 주지(主旨)와 토적복수(討賊復讐)의 대의(大義)를 밝힌 대문장이였다.

   그런데 결사대 모집도 그렇고 교통이 불편한지라 상경시간이 지연되는 등 유감에 조우(遭遇)하여 계획한 일자에 거사를 이를수 없게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중도에 그만둘 일은 아니였다.

    라철은 오기호, 김인식 등 동지와 계획을 세우고 1907년 2월 28일 아침 폭발물을 장치한 두 개의 상자를 이지용, 박제순의 집으로 선물로 보냈다. 그랬으나 그건 실패하고말았다. 

    결사의 장한(壯漢) 70여명이 륙속 상경하여 서울시내 여러 려관에 분산투숙했다. 라철은 동지들과 토론하여 거사일을 3월 21일로 다시정했다. 이날은 황태자 탄신일 즉 천추경절(千秋慶節)이였다. 백관들이 하례(賀禮)로 입궐할것이니 이때를 리용하여 5적을 일망타진(一網打盡) 하는게 좋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홍래, 박대하 등이 그날 새벽 남산에서 발포하는 총성을 기다리는 한편 정인국은 이 사실을 광무황제에게 주달(奏達)하여 놀래지 말도록 하고 조칙(詔勅)을 내려 국민들의 안정을 기하게 하는 등 준비를 했다.

                     

    諸君 諸君 今日之事 實維持大韓獨立之不二法門也 而我二千萬衆生死之問題也 諸君苟能愛自由乎請勉力決死志誅此五賊 掃除內? 則我輩及我子孫 永得生息於獨立天地也 其成耶在今日 其敗也在今日 其生耶在 諸君 其配耶在諸君 寅永不材 倡此義務今日揮縷縷之淚滴滴之血披心瀝膽匍匐?伏提出此義於有血性有智勇之諸君胸臆之前諸君乎諸君乎各勵純潔之愛國心函誅凶頑之賣國賊 使我國家?然獨立於世界上 寅永雖入十八地獄 受恒河沙衆苦 當歲喜無量也 ?哉勉哉

 

   이것은 라철이 향사(鄕士)들을 격려하여 지은 격려사였는데 이 격려사를 들은 향사(鄕士)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했다.

   그날이 돌아왔다. 아침부터 각자 예정한 장소로 가서 길가에 숨었다. 오전 10시경 참정대신 박제순이 광화문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오기호가 인솔한 향사(鄕士)들에게 《해라! 해라!》 하고 턱아래소리로 시켰건만 향사(鄕士)들이 주저하는 사이 박제순이 실내로 들어가 기회를 잃었고, 11시경 서태운이 인솔한 10여명의 향사는 서대문밖에서 법부대신 이재극의 출입을 기다렸으나 경계가 하도 엄하여 한발도 쏘지 못한채 그자를 통과시키고말았으며, 11시 30분경 이홍래는 인솔한 향사와 같이 중서사동(中署寺洞)에서 군부대신 서중현이 4인교에 앉아 통행하는 것을 요격하였으나 명중하지 못해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뿐만아니라 향사중 한 사람인 강상원이 일본순경에게 체포되고말았다. 이로말미암아 사면의 경비는 급속히 강화됐다. 용산별서(龍山別墅)에서 오던 내부대신을 남대문밖에서 기다리던 김동필을 비롯하여 타지방에 배치되였던 향사들은 동시에 저마끔 해산하고말았다.....

    라철이 계획한 거사는 이로서 실패하고말았다.

    

 

 

                                           (제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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