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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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부르하통하(김철호)
2008년 09월 01일 15시 00분  조회:1371  추천:31  작성자: 김철호
부르하통하는 연길을 지나면서 미모를 한껏 자랑하게 된다. 물막이언제의 성공적인 완공으로 작년 9.3부터 큰 강으로 변모되였기 때문이다. 이로하여 무려 89.2만평방메터의 인공수면이 있게 되여 연길시는 한결 우아해지게 되였다.
부르하통하는 지금 한창 큰 변신을 꿈꾸고 있다. 연변춘추려행사에서 개발한 표류코스는 부르하통하와 해란강이 합류하는 연길시 하룡촌에서 출발하여 마반산까지 가는데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의 재미있는 놀이장소로 될것이다.
이제 유명한 성자산산성유적지를 개발하기까지 한다면 부르하통하 중류지대는 강의 덕을 톡톡히 입을것이다.
취재차는 새로 뺀 강변도로를 달린다. 찬란한 아침해살을 다붐이 받아안은 커다란 거울같은 조용한 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강변길을 산책하는 시민들의 얼굴은 신나기만 하다.

사과배의 고향

오늘 취재는 연변인민출판사 <<별나라>>편집부 주필 김현순씨와 김세웅씨가 동행해주었다. 김현순씨는 안도현출신이라 부르하통하를 잘 알고있다면서 큰소리다. 차는 어느새 아득히 펼쳐진 로투구벌에 접어들었다. 내가 연변의 자랑 사과배의 탄생지가 로투구의 소기촌이라고 하자 다들 흥미진진해 하면서 귀를 강구었다.
<<사과배는 사과나 살구처럼 원래부터 있던 품종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80년전 사과나무를 접가지로 하고 돌배나무를 접구루로 하여 알심들여 배육해낸 배의 새 품종인데 이 품종을 배육해낸 사람은 최창호라는 사람이라고 하더구만.>>
1916년 19세의 최창호는 아버지를 따라 로투구진에서 부르하통하를 건너 남쪽으로 5킬로메터쯤 떨어져있는 소기골에 첫 사람으로 말뚝을 박았다. 1921년 동생 범두가 방학에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조선 북청의 사과나무 겹가지 6대를 가져왔다. 최창호는 동생이 가져온 이 여섯대의 사과가지를 벼짚에 사서 김치움에 보관하였다. 이듬해 봄 울안에 있는 2-3년생 돌배나무에 이 여섯 대의 가지를 가접하였다. 5월이 되자 사과가지들에서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았다. 가을이 되자 최창호는 묘목이 얼가 저어되여 마른풀로 가접부위를 덮고 흙으로 잘 다졌다. 그랬건만 이듬해 봄이 오자 세대가 동상을 입어 죽고 겨우 세구루만 요행 살아남았다. 그로부터 7년후 그 접한 나무가지에 열매가 달리였다.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처음보는 과일이였다. 이 열매는 배처럼 색깔이 노란 바탕에 한쪽은 사과같이 붉은 색을 띠였고 그 맛은 배와같지 않아 당분과 수분이 많고 시원하였다. 당시 최창호네는 이 과일을 <<사과같은 배>>, <<참배>>라고 불렀는데 1952년 길림성과수품종조사조가 이 새로운 품종을 보고 <<사과배>>라고 명명하였다.
소기골에서 뻗어나온 사과배는 연변땅을 뒤덮었으며 흑룡강, 길림, 료녕, 북경, 하북, 섬서 등 북부지구는 물론 조선, 로씨야, 구라파 등 수십개의 나라에까지 보급되면서 조선민족의 자랑으로 세계에 이름떨치게 되었다. 최창호가 맨처음 재배해낸 세그루의 사과배나무는 지금도 소기골에 건재해있다. 룡정시정부에서는 이 모수앞에 <<사과배선조기념비>>라는 비돌을 세웠다.

유적지가 많은 강역

로투구의 만인갱은 한때 세상을 들썽해놓았다. 일본제국주의 자들에게 탄광로동으로 무자비하게 학대받다가 죽은 광부들의 해골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쇠사슬에 얼매인 해골, 머리가 박살난 해골, 륵골이 불러진 해골... 현지를 참관한 사람들은 인간도살장이였던 만인갱의 몸서리치는 정경을 영원히 기억할것이다. 만인갱유적지는 지금도 보전되여있다고는하나 보러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지는 퍽 오래다고 한다.
연변의 금강산이라고 불리우는 유수천을 지나면 오호령 긴턴넬을 만난다. 턴넬을 지나면 오호령이 나타나는데 산아래 마을들에서는 일명 오봉산이라고 부른다. 다섯봉오리가 험준하게 솟은 오봉산은 석문벌을 지키는 다섯 장수마냥 위엄있게 솟아있다. 부르하통하는 서쪽의 좁은 협곡을 우회하며 흐른다. 유명한 오호산산성이 이 오봉산에 있다. 산성은 제2봉오리로부터 제4봉오리사이의 산등성과 두 봉오리가 서남쪽으로 뻗은 지맥의 산등성에 수축되여있다. 지금도 성문자리, 성벽, 망대, 치 등 유적지가 남아있다. 저명한 력사학교수 방학봉선생은 오호산산성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처럼 지세가 험요하고 성벽이 웅위로운것은 연변지역내에서는 보기 아주 드물다. 성은 발해시기에 쌓고 료, 금 시기에도 의연히 계속 사용된것일것이다. 이곳은 두만강류역으로부터 돈화와 길림지역으로 래왕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경과하여야 할 지대이므로 옛날 수륙교통을 굳게 지키는 군사요충지였을것이다.>>

아름다운 명월구

안도현소재지 명월진에서 우리를 맞아준 민간이야기수집가 리룡득선생과 함께 일행은 이룡산에 올랐다. 리룡득선생이 들려주는 이룡산의 신비한 전설을 들으면서 걷노라니 어느새 이룡산 등허리에 다달았다. 량옆에 강을 껴안고있는 이룡산은 물속에 누워 자맥질하는 한 마리의 룡같았다. 오른쪽으로 흘러내려가는 강은 복흥하이고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강은 량병하-즉 부르하통하의 원줄기라고 한다. 두 강은 서서히 합치면서 토월산을 에돌아 흘러오는 장흥하와 다시 손잡는다.
<<해달이 솟는 토월산, 시내를 지켜주는 칼바위산, 영월산, 처녀봉 등이 빙 둘러있어 명월진은 말그대로 산속의 작은 도시이지요. 거기에다가 세갈래의 강이 다정하게 손잡는 합수목이라 산좋고 물맑은 금수강산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리룡득선생의 고향자랑은 끝이 없었다. 2만6천년전 상고시대 인류생존의 첫 자취를 떠올린 석문산 안도원시인유적지와 북편의 옹성라즈, 토월산기슭의 신선동과 장수샘, 석문산석비...
리룡득선생은 명월진전설을 손수 수집정리한 민간이야기집 <<이룡산 명월호>>를 건너여주면서 읽어보면 명월진의 아름다운 유래를 속속들이 알수있을것이라고 했다.
명월구의 원지명은 옹성라즈라고 했다. 시내 한복판에 난데없이 치솟아있는 절벽이 옹성라즈인데 거기로부터 기원된 지명이였다. 후에 일본사람들이 철로를 놓으면서 역전이름을 명월구라고 해서 명월구로 된 것이다.
<<1931년 12월에 있은 옹성라즈회의는 연변의 항일투쟁을 무장투쟁으로 전환시킨 유명한 회의입니다. 진한장, 양정우, 김일성 등 유명한 항일명장들이 그번 회의에 다 참가했으며 특히 김일성의 행동이 특기할만 했지요. 동만특위서기 동장영이 룡정에서 체포되여있었는데 김일성이 사람을 파견하여 구해왔던것입니다.>>
그번 회의후 연변에서의 항일투쟁은 더욱 치렬했으며 안도현에서도 선후로 침략자를 무찌르는 혁혁한 업적을 쌓았는바 부르하통하상류에서의 경도선렬차습격전 등이 그것이다.

발원지는 예쁜 옹달샘

량병진 고수촌의 농민시인 김일량씨네집에서 점심을 먹은 일행은 김일량씨와 함께 부르하통하발원지탐사에 나섰다. 김일량씨도 발원지를 가보지 못했는지라 좀 답답한 표정이였다. 차가 량병벌 막바지에 닫자 괜찮게 큰 마을이 나타났다. 남구촌이라는 마을이였다. 김일량씨는 마을에 들어가서 당지부서기를 찾은후 사연을 말하고 조선말을 한마디도 할줄 모르는 리일남이라고 부르는 조선족청년을 길잡이로 데려왔다.
<<한 8리쯤 가면 3호동골인데 거기가 발원지입니다. 찾기가 힘들지 않아요.>>
리일남은 류창한 한어로 말했다.
마을을 벗어난 취재차는 좁은 산골수레길을 기다싶이 하면서 들어갔다. 좁은데다가 호박길이여서 차가 몹시 들춤질했지만 든든한 길잡이가 생긴지라 일행은 기분이 맑아있었다. 잡목들로 우거진 산자락과 그 밑의 콩밭은 벌써 가을빛이 비끼기 시작하고있었다. 시누런 콩밭아래에 개울물이 흐르는데 바로 부르하통하였다. 조금 더 올라가니 버드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사이로 소택지가 펼쳐져있었다. 풀이 무성한 소택지에는 갖가지 가을꽃들이 다정스럽게 피여있었다. 소택지는 좀 더 넓어지고 풀대신 지난 홍수때 쌓였을 모래둔덕이 여기저기 거칠게 널려있었다. 자그마한 언덕에 집한채가 있는데 개가 몹시 짓어대면서 낯선 길손을 저어했다. 마당에는 많은 벌통이 질서없이 놓여있는데 멀리서도 벌들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였다.
우리는 리일남의 뒤를 따라 소오줌물같은 작은 물줄기를 바라고 계속하여 앞으로 반달음을 쳤다.
<<여깁니다! 여기예요!>>
리일남의 목소리에 일행은 풀을 걷어차며 정신없이 달려갔다. 3호동막바지의 자그마한 산굽이에서 가냘프지만 정다운 옹달샘 하나가 파랗게 눈뜨고 일행을 바라보고있었다. 둬바가지 퍼내면 밑굽이 들어날것만 같은 작은 샘터,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디선가에서 쉴새없이 모여드는 맑은 샘줄기가 있었다. 발밑으로 숨어내리는 가냘픈 물줄기는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끊임없는 흐름을 약속하고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보고있던 일행은 갑자기 손바가지를 해서 샘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샘이였다.
저녁녘이고 보슬비까지 와 사위는 어둑어둑했다. 그러나 샘줄기에서 흘러내린 자그마한 물줄기는 신비한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다우치느라고 하얀빛을 번득거리고있었다. 해란강과 손잡고 가야하를 껴안으면서 도문에서 수줍게 두만강의 품에 안길 때까지 한번도 쉬지않고 달려야 하는 부르하통하의 178키로메터의 첫 발자국은 이렇게 떼여지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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