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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김지하 - 타는 목마름으로
2015년 12월 24일 20시 16분  조회:6101  추천:0  작성자: 죽림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루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84년 대학교에 입학해서 누군가로부터 복사한 시집을 한 두 권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누군가는 교양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詩에 대해서 잘난 척을 하니까 그랬는지...

그 잘난 척을 인정해줘서 그랬는지, 정말 나에게 文才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정말 問題兒여서 그랬는지...

 후후... 아무튼 복사된 시집을 두 권 받았었는데,
그 중 한 권은 정지용의 시집이었고,
또 한 권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이었습니다.

 

그 때는 서정시인 정지용의 詩도 납북작가라는 이유로 禁書로 지정되어 있어서 販禁되어 있었을 때였습니다. 물론 ‘타는 목마름’역시 판금되었던 시집이었지요.

 

그 두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몰래 읽으면서... 손을 떨면서 읽으면서...

가슴 떨림을 느끼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詩는 그 때 떨림이었습니다. 손 끝을 통해서 가슴으로 떨림을 전해주고, 가슴의 그 떨림이 온 몸에 감전된 전류처럼 흐르는 그런 전율이었습니다.

 

 

정지용의 詩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抒情詩가 단지 납북작가라는 이유만으로 교과서 뿐만 아니라 나라의 금서가 되어서 일반 사람들이 접근할 수도 없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어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거대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냥 느꼈었습니다.

 

 

김지하의 詩는, 가슴 속에 목마른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이른 새벽 뒷골목에서 남 몰래 써야 한다는 시적 상황이 당시의 현실 속에서도 선명하게 집약되었기에... 후에 노래를 붙인 노래곡을 배웠을 때에도 자주 흥얼거렸던 적이 있는 詩였습니다.

 

 

김지하의 이 시가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가 제 2 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하면서 발표한 저항시 “자유” 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은 나중에 문학이라는 것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시를 좋아했습니다. .

 

 

이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는 1975년에 발표되었었고, 이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인은 또다시 체포,구급되는 상황을 맞게 되고, 이 작품은 불온한 작품으로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에도 불온서적이었지요.

 

물론 이후에는, 이 시집이 시중에서 편히 팔리게 되었을 때에는, 정작 시인이 생명사상이니 뭐니 하면서, 스스로를 세상과 不穩하게 했지요. ㄹㄹ

 

하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처럼 이 시를 만날 때에는 떨림이 있습니다. 시인이 그 당시에 가졌던 절실함과 열망이 느껴지고, 당시의 숨막히는 상황이 詩語들의 행간에서 읽히기 때문.
...
...

 

예정된 시나리오들처럼 느껴지고...

 

내 예측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

 ‘왜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지'를...

 

어수선한 세상...
늘 무사하시길만을 .

 

 
  • 김지하 시인 (서울경제 DB)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가 교과서에까지 수록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최근 자기 
트위터에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게 (폴) 엘뤼아르의 표절인 걸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 묻게 된다”라는 글을 올렸다. 시인 노태맹도 올 초 한 지방지에 게재한 글에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는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를 대 놓고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를 표절했다는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2000년대 중반에도 변형이냐 표절이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김지하 역시 ‘자유’의 영향을 받아 ‘타는 목마름으로’를 썼다는 건 부정하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엘뤼아르와 김지하의 작품은 억압 속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강렬한 주제의식, 자유와 민주주의를 각각 의인화해 이인칭으로 호칭하는 점, ‘쓴다’는 행위를 반복해서 열거하는 점 등에서 닮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두 시는 모두 짧은 문장을 나열해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문단 일각에서는 소설가 신경숙이 한 문단의 유사성 때문에 표절 시비에 휘말린 만큼 이참에 김지하의 작품에 대해서도 시비를 가려야 한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타는 목마름으로’의 표절 시비를 명확하게 가려야 하는 이유는 이 시가 교과서에까지 수록돼 있을 정도로 유명한 데다 수많은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취재한 결과 현재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2종에 ‘타는 목마름으로’가 수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
.

워낙 주제와 호소력이 강한 탓에 작품을 읽고 감명 받은 학생도 적잖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정치인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친 작품.

엘뤼아르의 ‘자유’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의 전문.

‘내 학생 때 공책 위에/ 내 책상이며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도 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어본 모든 책상 위에/ 공백인 모든 책상 위에/ 돌, 피, 종이나 재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숯칠한 조상들 위에/ 전사들의 무기들 위에/ 왕들의 왕관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밀림에도 사막에도/ 새 둥지에도 금송화에도/ 내 어린 날의 메아리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과 밤의 기적 위에/ 날마다의 흰 빵 위에/ 약혼의 계절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하늘색 누더기 옷들에/ 곰팡 난 해가 비친 못 위에/ 달빛 생생한 호수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림자들의 방앗간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새벽이 내뿜은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또 배들 위에/ 넋을 잃은 멧부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구름들의 거품 위에/ 소낙비의 땀방울들 위에/ 굵은 또 김빠진 빗방울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형상들 위에/ 온갖 빛깔의 종들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잠깨어난 오솔길들 위에/ 뻗어나가는 길들 위에/ 사람 넘쳐나는 광장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켜지는 램프 불 위에/ 꺼지는 램프 불 위에/ 모여 앉은 내 집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겨울의 또 내 방의/ 둘로 쪼개진 과실 위에/ 속 빈 조가비인 내 침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주접떠나 귀여운 내 개 위에/ 그 쫑긋 세운 양쪽 귀 위에/ 그 서투른 다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문턱의 발판 위에/ 정든 가구들 위에/ 축복 받은 넘실대는 불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사이 좋은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내미는 손과 손마디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놀란 얼굴들의 유리창 위에/ 침묵보다도 훨씬 더/ 조심성 있는 입술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은신처들 위에/ 허물어진 내 등대들 위에/ 내 권태의 벽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나는// 욕망도 없는 부재 위에/ 벌거숭이인 고독 위에/ 죽음의 걸음과 걸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다시 돌아온 건강 위에/ 사라져 간 위험 위에/ 회상도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에 힘입어/ 내 삶을 다시 시작하니/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네 이름지어 부르기 위해// 오 자유여’

(폴 엘뤼아르의 ‘자유’)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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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 기자는,ㅡ 
“비슷하면 표절”이라는 논리가 신경숙 표절 사건의 여파를 타고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서 횡행한 것처럼 말하지만 수긍할 수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그의 글에서 “비슷하면 표절” 의혹을 받을 법한 사례로 김지하, 김남주, 윤동주의 시가 언급돼 있는데 김지하의 경우 맥을 잘못 짚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필사’한 뒤 뼈대는 그대로 두고 살을 다른 것으로 덮어쓰기 한 것이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쓴다’라는 표현의 반복에서 ‘자유’와 ‘구체적’으로 낱낱이 닮아 있다.

 

표절은 남의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속이는 행위다. 최 기자가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를 표절한 것이 아니라 차용했거나 그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김지하가 그 시에 출처를 달았거나 발표 당시 엘뤼아르와의 연관성을 언급했어야 했다. 만약 ‘자유’가 낯선 외국시가 아니고 김지하 시에서 누구나 엘뤼아르를 떠올릴 수 있다면, 출처 표기가 없더라도 표절 시비는 비껴갔을 것이다. 그러나 ‘타는 목마름으로’는 오랫동안 김지하의 고유한 창작물이자 대표작으로 영예를 누려왔지 않은가. <맹자>의 구절이 담긴 윤동주의 ‘서시’를 표절이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천하가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김남주가 ‘조국은 하나다’를 쓸 때도 “쓰리라” 구절의 반복이 당대에 고전이 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발상을 가져왔다면 차용이나 모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표절 시비에 대해 “인용 출처를 밝히지 않은 작가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하는 것은 신경숙, 권지예, 황석영 등 표절 혐의를 부인할 수 없게 된 작가들이 단골로 입에 올린 변명이었다. 물론 자신의 행위가 표절이라는 명백한 인식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출처를 표기하지 않을 경우 남들이 자신의 온전한 저작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그동안 내가 쓴 글을 돌이켜보니 나 또한 남의 말을 할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쓴 글에서도 남의 주장을 가져와 쓰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 몇 건 있음을 알았다. 그걸 단순 실수라고 변명할 생각은 없다. 나는 당시 내 행위가 표절이라는 인식은 없었지만, 내가 가져온 남의 생각이 내 것이라고 남들에게 여겨졌으면 하는 욕망은 분명히 있었다. 창피하고 부끄럽다.

 

표절은 독자들이 잘 모를 것 같은 작품이 대상일 듯하지만 국내 유명 작품도 가리지 않으며 문학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인터넷 게시물, 만화 등 전방위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표절 의혹을 신중히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마땅히 제기되어야 할 표절 시비를 가로막거나 표절 작가들을 빠져나가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정문순 문학평론가


 
 

1973.4. 7 서울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의 주례로
결혼하는 시인 김지하와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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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시인의 병을 낫게 한 장병두옹.

"남편 정신병원 12번 입원, 그리고 완치… 밖에선 김지하를 잘 몰라"

옥중의 김지하를 순교자 만들려는 계획거절하자 운동권서 따돌림
출감 후 이혼할 결심도 운동권측과의 갈등으로 남편, 정신발작 일으켜

어느 날 김지하(金芝河) 시인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까지 내가 12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했어요. 이젠 완전히 나았어요. 잠을 자도 꿈에 안 시달려요. 병원·한의원 어디서도 못 고친 걸 장병두 할아버지가 낫게 해줬소. 내 처와 자식들도 그렇게 나았소. 그런 분을 의사 면허증이 없다고 환자를 못 보게 막습니다.

 

법과 제도가 사람 살리는 걸 막고 있는 격이오. 그분 연세가 105세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소. 전통 춤·노래·공예 부문에 ‘인간문화재’가 있듯이, 그분을 전통의술 부문 ‘인간문화재’로 만들 순 없겠소. 그분 비방이 합법적으로 전수될 수 있게 말이오.”

 

장병두옹은 사회적 논란이 됐던 인물이다. 한쪽에서는 그를 ‘현대판 화타’로 떠받든다. 암·당뇨·간질·백혈병·중풍 등 난치병을 그가 고쳐왔다는 것이다. 다른 쪽에서는 한낱 ‘무면허’ 한의사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2006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이는 제도의학과 민간의술의 충돌이기도 했다. 그는 1·2심에서 똑같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 뒤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고령(高齡)의 나이를 감안해 판결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에 대한 검증은 사실 불가능하다. 설령 그의 치료 효과를 봤다 한들 또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지하가 그동안 12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모처럼 그 가족이 ‘건강’해졌다는 스토리는 들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강원도 원주로 가서 김지하 대신 부인 김영주(65)씨를 만났다. 김지하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얘기할 것 같았다. 토지문화관 관장인 그녀는 어머니 박경리(朴景利)를 쏙 빼닮았다. 말에는 경상도 억양이 남아있었다.

“외부에서는 김 시인(김지하)이 어떠했는지 몰라요. 출감(1980년)한 뒤로 늘 술에 절어 살았죠. 5년쯤 지나니 도저히 못 참겠더라. 제가 이혼하려고 했어요. 김 시인이 ‘이혼은 못 한다. 대신 당신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해서, 환경을 바꾸면 좋아질 것 같아 전남 해남으로 이사갔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김 시인의 속을 뒤집어 놓았어요. 그들이 떠나간 뒤 헛소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소위 운동권 동지·후배들의 집단따돌림, 이에 대한 분노·배신감·피해의식 등이 복잡하게 작용했겠지요. 그때부터 정신병원에 12번이나 입원했어요. 발광해 들어가면 약을 한 주먹씩 먹였어요. 몸이 고릴라처럼 부어 멍하게 앉아있어요. 조금씩 약을 줄여가고 그렇게 1년쯤 지나면 사회 활동을 합니다. 세상 일에 대해 못 견뎌했어요. 그러다가 다시 발작하고. 1991년 시위 때 분신자살이 유행하자, 운동권 세력을 향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고 조선일보에 쓴 것도 그러했던 거죠.”

당시 나는 현장을 취재했다. 아침에 눈뜰 때면 ‘지금 어디서 누군가 또 자살할지 모른다’고 괴로워했다. 열댓명이 ‘민주화’라는 명목으로 유행처럼 자살했다. 그때 김지하가 작심하고 쓴 ‘죽음의 굿판’ 칼럼은 세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운동권 동지·후배들로부터 욕설과 비난, 협박 전화가 끊이질 않았어요. 우리 집에 경찰을 보내 지켜주겠다고 했어요. 나는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스트레스를 못 견뎌 정신병원에 또 들어가고. 지나고 보면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이 저 사람의 소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 사건 이후 운동권에서는 김지하를 ‘변절자’ ‘생명사상 교주’로 욕했지요. 어린 후배조차 소위 인연을 끊었습니다.

“조직적으로 매도하고 따돌렸어요. 그 모욕감에 김 시인이 술 마시고 들어오면 대성통곡을 했어요.”

―그쪽에서 보면 ‘배신’과 ‘변절’일 수도 있지요. 김지하는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김 시인은 ‘나는 달라진 게 없다. 나는 어떤 조직에 들어간 적도 없고, 모든 운동조직은 나 스스로 만들었다. 나 자신은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그러니 나와 다르다면 저네들이 변절자다. 내가 변절한 적은 없다’고 했어요. 감옥에 갇혀 있을 때부터 ‘동지’라는 사람들이 김 시인을 죽이려 했고, 그게 안 되자 그를 따돌렸어요.”

―납득이 안 되는군요. 동지들이 수감 중인 그를 왜 죽이려고 하며 어떻게 죽일 수 있습니까?

“김 시인은 형무소에 들어갔지만 ‘투사’가 돼 죽으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게 7년이나 오래 독방 수감 생활을 할 줄은 자신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세력은 김 시인을 소위 민족의 제단에 바치는 제물로 삼으려고 했지요. 박정희 체제에 더 극렬하게 저항하는 문건을 옥중에서 계속 쓰도록 요구했어요.

 

 박정희로 하여금 김 시인을 죽이도록 해 김 시인을 ‘투사’나 ‘영웅’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지요. 그 동력으로 박정희 체제를 엎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박경리)가 ‘동지들이 김지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했어요. 이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어요. 그러니 우리 모녀도 죽이려고 했어요. 누가 동지고 적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정말 믿기 어려운 얘기입니다. 증거도 없고. 어떤 피해의식에 근거한 망상 아닙니까?

“세상에서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것이 있어요. 당시 첫 번째 오는 택시는 안 탔어요. 그렇게 납치될 뻔한 경험을 했거든요. 이런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지나간 일은 덮고 가려고 했어요. 선과 악 모두가 당시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김 시인을 매도하고 건드려요. 그것에 쇼크를 받고 정신병원에 갑니다. 폐인에 가까운 상태였어요. 사람 사는 게 아니었어요. 발작을 일으켜 집을 나가면 제가 찾아서 병원에 데려가요. 그러면 퇴원시켜달라고 전화로 난리칩니다.”

 

▲ 김영주씨는“김지하가 정치적으로 그렇게 휘말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원주 토지문화관=최보식 기자

―김지하는 어떤 사람입니까?

“억세고 무서운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면이 있긴 하나, 순한 사람이에요. 결혼 전에 이 사람에게서 세 가지를 봤어요. 굉장히 여성적인 모습과 속이 텅텅 빈 허(虛)한 느낌, 그리고 골짜기가 많은 큰 산 같다는 인상이었어요. 앞의 둘은 부정적인 느낌이었는데 들어맞았어요. 마지막은 모르겠어요. 골짜기에 가만히 있으면 편할 것 같았는데 살아가면서 아직 그런 맛을 못 봤어요.”

―처음 어떻게 만났습니까?

“동료 문인들과 함께 정릉의 우리 집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왔어요. 제가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였어요. 그가 ‘오적(五賊)’을 발표한 시인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때는 시를 읽어보진 않았어요. 그다음 왔을 때는 ‘수배받고 있으니 숨겨달라’고 했어요. 딸과 단둘이 살고 있는 엄마로서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를 보내면서 마음이 안됐어요. 어릴 때 외할머니가 제게 ‘너는 복(福)이 많아 잘 살 것’이라고 했는데, 내 복의 절반을 저 사람에게 떼줬으면 했어요. 결혼 생각은 없었는데…, 결국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이었어요. 수배가 풀리자 그가 다시 나타났어요. 엄마가 결혼을 허락했어요. 하지만 내가 그런 인생을 살게 될 줄은 몰랐죠. 정치적으로 그렇게 휘말릴 줄은 몰랐던 거죠. 딸을 보면서 평생 속상해한 거지.”

―1973년 결혼하자마자 바로 이듬해 김지하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는데(당초 사형선고를 받고 감형돼 1980년 석방됐다).

“자기가 붙잡혀 들어갈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 준비를 다 해놓은 뒤였어요. 그러고는 저와 결혼을 한 거죠. 그때 결혼 안 했으면 결혼 못 했을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이었지요. 감옥에 들어가면서 생후 몇 달 안 된 아들까지 남겨놓았으니….”

―그런 남편과 같이 살았다는 점만으로도 김 관장께서는 충분히 대단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버리겠습니까. 김 시인이 멀쩡하면서 애를 먹였다면 같이 안 살죠. 병이 나서 그러니 누가 데려갈 사람도 없지, 할 수 없는 일이죠. 저는 상황에 매달려 질질 끌려왔어요. 그 상황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어요. 김 시인은 외부 강연에서는 ‘마누라 덕분에 어쩌고저쩌고’ 해놓고, 막상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삐쳐요.

 

 어떨 때는 집을 나가버려요(웃음). 하지만 매일 한 주먹씩 정신병 약을 먹고 지금껏 살아있다는 게 대단해요. 장병두 할아버지 치료를 받을 때 그 약을 끊으라고 하니 겁을 냈어요. 약 안 먹으면 잠을 못 드는데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어떻게 장병두옹의 치료를 받게 됐습니까?

“발작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이들은 상처받고 무서워했어요. 둘 다 대학을 못 갔어요. 이제 서른살이 넘었지만 결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아버지처럼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무의식에 있는 것 같아요. 김 시인에게 ‘당신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꿋꿋하게 서 있어줘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어느 날 큰아이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그때는 제가 죽고 싶었어요. 병원에 데려가도 소용없고. 한 지인의 소개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장병두 할아버지를 찾아간 겁니다.”

―김 관장 본인도 치료를 받았다면서요.

“저도 만날 아팠어요. 하체에 감각이 없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어요. 할아버지의 약을 먹고 어느 날 앙가슴에서 울화로 맺힌 불덩어리가 확 빠져나가는 걸을 느꼈습니다. 그분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생명의 은인이지요.”
장병두옹의 구술(口述)로 엮은 ‘맘 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란 책에서 김지하가 서문을 썼다.
‘큰아들은 나의 발광을 보고 극도의 우울증에 사로잡혔다. 작은아들도 내 발광에 놀라 뇌신경의 반이 마비돼 낮에는 자고 밤에는 깨어있다…. 두 아이가 선생에 의해 완전히 치료됐다.

 

우리 식구 중 끝까지 잘 치료가 안 되고 끝없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던 아내도 어느 날 몇 시간 몸부림치다 기적처럼 치유의 경험을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렸는데도 김지하 마음속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와의 통화에서 “과거에 내가 어려울 때 이명박씨는 3000만원이나 도와줬다. 지난 정권 때 정신병원에 세 번이나 입원했지만 그쪽에선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운동권 사람들이 많이 들어간 지난 정권에서 비리가 터져나왔을 때는 참지 못했어요. ‘도둑질이나 해먹고 너희가 인간이냐’며.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간씩 욕을 해대요. 그래서 아예 휴대폰을 빼앗아 버렸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을 때도 자살 행위를 비판해 더욱 적을 만들었지요.”

―이제 본인을 위해서라도 분노를 비우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됐습니다.

“김 시인도 그걸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처음 ‘서푼짜리 노여움을 풀어라’는 말부터 했어요.”

―그런데 박경리와 김지하 중 누가 더 문학적 천품을 타고난 것 같습니까?

“모두 대단한 사람이지요. 엄마는 친구도 없이 딸 달랑 하나와 살았어요. 글을 그렇게 많이 고쳐요. 파지가 산더미 같았어요. 원고를 쓰면 제게 읽어보라고 했고, 제가 고쳐주곤 했어요. 어떤 때는 제가 읽기 싫다고 하면 화를 냈지요. 너무 가까이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몰랐어요. 김 시인은 천상 시인이에요.

 

 

 모든 시가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탁월한 시들이 많아요. 하지만 산문 쓰는 것, 어려운 글 쓰는 것은 못마땅해요. 내가 ‘누구 읽으라고 그런 글을 쓰나’고 타박하면 화를 벌컥 내요. 참견한다고.”

이런 자리를 만들어준 장병두옹은 올라오는 길에 잠깐 만났다.
105세의 나이란 귀한 것이다.

 

시인 김지하, ㅡ
문호(文豪) 박경리에게서 '화엄개벽'을 보다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어머니들, 아이들 억압하지 마세요"
여성의 힘 되살아나는 새 문명사가 '화엄개벽'
"장모는 주역의 대가"
"창조적 발상은 여성에게 의존할 수박에 없어"

시인(詩人)은 화가 나 있었다. 얼마 전 스웨덴에 간 걸 두고 뒷얘기가 있었다. 노여움에 불을 지른 건 '노벨문학상을 노린다'는 해석이었다고 한다. 김지하(金芝河·68)의 스웨덴행(行)은 한·스웨덴 수교 50주년 강연 때문이었다.

"내가 ○나 △같은 졸때기도 아니고…, 문학을 상(賞) 타려고 해? 괴로워서 하는 거잖아! 전 이미 옥중(獄中)에서 제3세계의 노벨문학상이라는 로터스 특별상(1975년)을 탔어요. 상(賞)하고의 인연은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이야기에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친구 이야긴 묻지도 마. 정치 얘기도 안 할 거고." 경망(輕妄)의 대표격인 한 인물을 결코 입에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제야 흡족한 듯 그가 '숙제'를 냈다.

"잡지에 글을 썼어요. 
박경리(朴景利) 선생 평론인데 제목이 '흰그늘과 화엄(華嚴)'이야. 200자 원고지 400장짜린데 꽤 어려워. 다 읽고 오세요. 근데 말투가 조폭(組暴) 같은데, 토건(土建)업자 냄새도 나고?…."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토지(土地)문학관은 산속에 있었다. 자궁(子宮) 속 태아(胎兒) 같은 모습이었다. 앞은 황금빛 들판이었다. 내방객은 드물었다. 시인은 약속했던 낮 12시가 훨씬 지난 1시쯤 나타났다.
 

 
▲ 토지문학관 앞 소나무 곁에 시인(詩人)이 서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흡족하게 웃으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줬다. 한 폭의 동양화 같다는 느낌이 그 순간 들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지하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흰그늘과 화엄'의 보충자료라며 육필(肉筆) 원고 복사본을 건넸다. "여기가 남에게 잘 안 보여주는 곳"이라며 방으로 안내했다. 목판 속에 새겨진 박경리가 사위와 기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연

문학청년 시절 김지하는 서울 정릉 박경리 집에 가끔 갔다고 한다. 한번은 
김동리(金東里)의 집에 갔다 허탕친 후 박경리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유현종(劉賢鍾), 김국태(金國泰)와 함께 그는 맥주를 얻어먹었다.

1972년 10월 유신(維新) 선포 때도 그곳에 갔다. "기관원들이 잡으러 올 게 분명하니 며칠만 숨겨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박경리는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 딸 김영주는 어머니에게 "매정하다"고 했다.

터덜터덜 뒤돌아 나가는 그에게 김영주가 달려왔다. "어머니가 혼자 살다 보니 성격이 그렇다. 이해해 달라"며 대신 사과한 것이다. 소설(小說)의 산맥(山脈)과 시의 거봉(巨峯)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친구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설악산으로 숨기 위해 새벽 골목길을 나서다 친구 집 앞 담벼락에 백묵으로 뭔가를 썼다. '민주주의 만세.' 그 문구가 훗날 절편(絶篇)으로 탄생했다. '타는 목마름으로'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 김지하의 표정은 다양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카리스마에 섞여 극명하게 드러났다. 나중에 사진을 확인하면서 사진기자가 말했다.“ 워낙 표정이 좋아서 크게 써도되겠는데요?

―'박경리론'이란 평론이 꽤 어렵더군요.

"제 전공이 미학(美學)이잖아요. 박 선생 문학을 정리하려고 벼르다 이번에 그 글을 썼습니다."

―장모의 문학을 평하는 게 쉽지는 않지요.

"장모가 돌아가신 후 기념행사가 많았어요. 매번 그런 자리 나가기도 그렇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궁리하다 내용으로 그분의 기념비(紀念碑)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아시아권에서 상(賞)을 만들 계획도 있고요."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 '토지' 소설 세 편을 분석했습니다. '흰그늘의 미학'으로 시작되는데 무슨 뜻입니까.

"게로니모스 하이로미에라는 15세기 
이탈리아 시인이 '흰 눈부심을 거느린 검은 악마들의 시위'라는 시를 썼습니다. 윤리적 타락이 극에 달했을 땝니다. 종교 지도자의 사생아 30명이 여자를 끼고 거리를 활보할 정도였어요. 정신 질서가 붕괴될 때 나타난 게 옛 희랍 인문학입니다."

―희랍의 인문학이 흰색, 윤리적 타락은 검은색이라는 건가요.

"검은색을 다 부정할 순 없지요. 죽여 없앨 수도 없고. 어스름 저녁 물빛을 보면 반짝하고 흰빛이 순간적으로 비쳐요. 융합되는 것, 그게 바로 흰그늘입니다."

―일전에 칼럼에서는 '욕이 많아지는 게 르네상스가 온다는 증거'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측천무후(아내)'가 절대 욕하지 말라고 했는데, 피렌체나 베네치아의 귀족, 귀부인들이 당시 쓴 욕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심했어요. 우리도 남자 성기(性器)를 가리키는 말이 PC방 상호(商號)가 될 정도잖아요. 그게 네오(Neo) 르네상스가 올 징조지요."

―박경리 선생의 '시장과 전장'에서 시인은 '경제적 삶의 흙탕물 속에서 끝내 삶의 신조를 버리지 않는 젊은 여인의 하얀 이미지'를 흰그늘이라 했습니다.

"그건 서세동점기(西勢東漸期), 근대문명의 변화와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 서사(敍事)의 압권이지요. 여성이 미래를 어떻게 개척해나갈 것인가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아시안 네오(Neo) 르네상스를 위한 미학'이 바로 흰그늘이란 말에 숨어 있습니다. 박 선생은 대단한 분이었어요."

―수년 전부터 아시안 네오 르네상스가 온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올까요.

"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미 세계가 다극(多極)체제가 됐다고 선언했습니다. 중국 해남성(海南省)에서 열린 포럼에서도 자본의 중심이 동아시아에 와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가는 데 마음 간다'는 말 알죠?"

―무슨 뜻입니까.

"마음이 가치잖아요. 자본 중심이 옮겨왔으면 가치 중심도 동아시아로 오게 됩니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놀라요. 예지자(豫知者)의 면모를 느꼈습니다."

―그런 소설을 왜 평론가 
백낙청은 멜로 드라마적 조작이라고 평했을까요.

"크게 잘못한 거지요. 하버드대에서 엘리어트나 좇던 사람이 6·25를 어떻게 제대로 알겠어요. 깊이 새긴 뒤에 평필(評筆)을 들어야지."

―박경리 선생이 생전(生前)에 시인의 분석에 동의하던가요.

"사위와 장모가 작품을 놓고 논할 수는 없지요."



파국

박경리론은 '흰그늘'에서 '검은 암소(牝牛·빈우)' '검은 구멍(玄牛·현우)'과 '화엄개벽(華嚴開闢)'으로 확장된다. 검은 암소는 주역(周易)에 등장한다. 모성(母性), 생산력, 포용력, 부드러움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여성의 힘이 되살아날 때 도래할 새 문명사가 불교(佛敎)와 동학(東學) 용어를 합친 화엄개벽이다. 시인은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과 '토지'에 이 암시가 숨어 있다"며 "표는 안 냈지만 장모는 주역의 대가"라고 했다.

―하필 여자가 '검은 암소'나 '검은 구멍'입니까.

"복희씨(伏羲氏)가 동굴 속에서 여자, 아이들과 7년을 보냅니다. 거기서 인류 최초의 문자인 '결승'을 만들어 가르치지요. 검은 굴 속에서 깨달음의 흰빛이 나오는 거지요. 영화 '워낭소리' 봤어요?"

―못 봤습니다.

"그 영화 세 번 봤는데 사람들이 숨죽여 우는 대목이 있어요. 농부가 아끼는 소가 늙어 병이 드는데 시커먼 우리 속에서 웁니다. 그 눈물이 하얘요. 시커먼 구멍 속에서의 흰빛, 그게 숨은 모성입니다."

―여성이 세상의 주도권을 잡는 시대가 온다는 건데….

"이미 왔어요. TV 드라마나 영화에 유독 '어머니'란 단어가 많이 등장하잖아요. 영화 '마더(Mother)', '엄마를 부탁해', 이미 어머니가 아이콘(icon)이 됐습니다. 아버지의 시대는 간 거지요." 

―시인께서 이런 주장을 하기 전에 페미니스트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다르죠. 3000년 전 세상은 모계(母系)사회였어요. 그 위치가 주(周) 문왕 이후 상실됩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를 철천지원수, 부르주아 대(對)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처럼 봅니다. 헤겔, 칸트부터 다윈까지 가세한 남성 가부장제 권위라는 반동만 자초했지요."

―검은 암소, 검은 구멍 다음에 황상(黃裳)이란 말이 나옵니다. 중국 한대(漢代)의 노장(老莊) 학자 왕필(王弼)이 한 말인데요.

"황상은 '여성 왕통(王統)'을 뜻합니다. 여성 임금을 들어올려야 혼돈이 극복되고 개벽기의 전환적 대안이 된다는 거지요. 조건은 있어요. 여성 왕통을 보완해주는 남성 지혜자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의 이원집정제(二元執政制)나 재상총권(宰相總權)이 배합돼야 합니다. 이건 과학적으로도 증명돼요."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요?

"태양(陽) 위주의 사고체계가 변하고 있어요. 요즘 기후현상을 온난화로만 설명하지만 실제 태양열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태양열이 아닌 태양빛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달(陰)은 새롭게 조명됩니다. 미국 NASA의 이탈리아 과학자 에밀리아노 포플러가 달에 물이 존재할 뿐 아니라 아예 물의 벨트가 있다고 했어요. 우주의 변동이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게 경제현상입니다."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태양열에 대한 버블(Bubble·거품) 현상이 가져온 게 뭡니까, 금융위기잖아요. 경제뿐 아닙니다. 신종플루나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도 우주의 변동과 관련 있습니다."

―'황상'이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의원을 연상시키는데요.

"허허, 그렇게 보여?(여기서 시인의 표정이 싹 바뀌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날 죽이려 했지만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두 가지 면에서 인정해. 일본 극우재벌의 돈을 안 썼고 청와대 캐비닛에 달러가 그득했지만 다 남 주고 정작 본인은 막걸리에 북어포만 먹었잖아."

사단(事端)이 결국 일어났다. '시인이 이토록 박경리 문학에 매달리는 게 평생 돈벌이 못하고 장모에게 신세를 졌기 때문이라는데…'라는 말을 꺼낸 직후였다. 이후의 상황을 요약하면 이런 식이었다.

"나, 몇살이야?"(시인) "우리 나이로 예순아홉이시죠."(기자) "당신은?" "(큰일 날 태세여서 잽싸게 두살 얹어) 오십입니다." "그런데 그리 싸가지 없는 질문을 해? 뭐? 황상에서 박근혜가 연상돼? 천박한 질문 같으니!"

기자는 부글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위층의 김영주 토지문학관장이 황급히 달려왔다.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20분쯤 뒤 파투의 위기가 지나갔다.



2막

대화는 독방(獨房) 이야기로 재개됐다. "참 무서운 거야.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밀고 들어오면 정신이 끝장나는 거야. 그때마다 교도관들이 '박 대통령께 용서해달라는 각서를 쓰라'는 거야."

그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내가 위대해서도 아니고 아내도, 아이들도 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배신할 순 없잖아. 나중에 보니 세계 각국에서 그때 수십억원을 지원해줬어요. 난 한 푼도 못 받았지만."

옥고(獄苦)의 후유증으로 시인은 지금까지 12차례나 정신병원을 들락거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가 
노무현 정권 때 정신병원에 3번이나 갔어요. 병원비는커녕 안부전화 한 통 거는 놈도 없더군."

―제가 범인들만 쫓다 보니 질문이.

"한 대학에서 석좌교수를 했어요. 그때 얼마나 기뻤다고. 
영국에 유학 간 작은놈 도와줄 수 있으니 얼굴 좀 펼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학교에 가니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이 잔뜩 붙어 있는 거야."

―그래서요.

"학벌 없는 그이가 대통령이 된 거 그걸 존경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대통령이 개인이야? 돈 받아먹고 조사하는 게 국가의 공적 과정이잖아. 왜 도망가? 우리나라에 한 해 자살자가 1만3000명으로 세계 4위인데 '베르테르 효과'란 거 있잖아, 다 따라 죽어? 그걸 조장하는 게 교육이야? 집사람한테 말했어요. '기분 나쁘면 그만두라'고 하더군. '너희 같은 놈들하고 같이 산다는 게 창피하다'고 하고 관뒀지. 올라올 때는 통쾌했지만 아버지 위해 기도하는 둘째 놈 생각하니 눈물이 나. 실존적 문제거든."

―그만 하시지요.

"내가 
서울대 미학과에서 올 A였어요. 구한말 김홍집(金弘集) 재상 있었죠? 그분 손자가 김정록 교수님이라고 중국 북경대에서 모택동(毛澤東)도 벌벌 떨게 한 대학자 곽말약(郭沫若)의 제잡니다. 그 동양사상사의 대가가 날 예쁘게 봐 '교수하라'고 했는데 제가 '썩어서 싫다'고 했어요."

―왜 그런 말을.

"한 교수가 강독(講讀) 시간에 특정 학생만 시키는 거야. 어느 날 새벽 낙산에서 운동하고 오는데 그가 그 교수 집에 청주 병을 들고 서 있더군. 교수가 칙사대접하며 술병을 받는 걸 보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내가 공부를 더 하려고 학부만 8년 다녔어요.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의 기초가 됐지. 중정(中情)은 '직업적 학생혁명가가 되려는 고의적 장기 학적 보유자'라고 했지만. 우리 증조부, 조부가 동학혁명 했고 아버지는 코뮤니스트였어요. 월출산(月出山)에서 빨치산도 했고. 난 절대 공산주의에 안 빠져요. 아버지가 빠진 게 뭔지 공부는 했지만. 지금 관료 중에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은 사람이 몇이나 돼? 다 엉터리 좌파지. 자, 어디까지 얘기했지? 그래 여성에 의한 획기적 재분배, 우리 역사에 전례가 있어. 우리 인제 이성적으로 하자고."

―어떤 전례인가요.

"중앙아시아 사마르칸드에서 벽화를 보고 놀랐어. 중앙에 고구려인이 있는 거야. 시(市) 입구에 서 있는 돌에는 '초포나타'라고 쓰여 있어요. 고구려 졸본성(卒本城)이야. 당(唐) 이세민이 왜 고구려를 없애려 안간힘을 썼겠어요. 고구려부터 중앙아시아는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였거든. 중국은 자기들을 포위한 걸로 봤겠지. 이 부족연맹들의 시장(市場)이 얼마나 복잡했겠어요. 그걸 획기적으로 재분배한 게 여성이 참여하는 신시(神市)의 전통에서 나온 겁니다."

―남성은 왜 획기적 재분배를 못할까요.

"월가(街) 앞에 항상 탐욕이라는 수식어가 붙죠? 대표적인 남성적 시장이지. 지금 외식(外食)이 증가하잖아. 그것도 여성이 맡아야 해요. 얼마 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만나서 '왜 포스트 한류(韓流)를 시장에 맡기느냐'고 했어요. 말은 그럴듯하지만 직무유깁니다. 잘 이해를 못하더군. 창조적 발상을 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건 여성의 아이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과학에서 역사까지 종횡으로 달리는 주장을 세상이 이해할까요.

"누군가 편지를 보냈어요. 겉봉투에 '金美親(김미친)'이라고 썼더군. 미쳤다는 거지. 신비주의자로도 보이고."



■어머니

시인은 '종합병동(病棟)'이라 불릴 만큼 여러 병으로 고생했다. 그런데 작년 말 '백학선생'의 제자라는 104세 한의사를 만나 쾌차했다. 약 없이 잠들 수 없었던 그는 요즘 꿈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한다고 했다.

몸이 개운해지니 기억도 돌아와 시작(詩作)에 한창이다. 이름이 '땡'이라는 고양이에 정을 들여 같은 이름의 시집을 낼 계획이다. '화엄 개벽 모심의 길'을 비롯한 몇권의 책과 오역(五譯) 화엄경도 쓰고 있다.

―아직도 세상은 '오적(五賊)'의 시인으로 기억합니다.

"그 시를 사흘 만에 썼는데 아무도 믿지 않아요. 그 시를 쓴 후 절망했어요. 붕어 키우느라 온도 맞추고 집 안에 에스컬레이터 있다고 썼는데 다 상상이었거든요.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절 껴안으며 '김지하, 넌 애국자야'라고 하는 겁니다. 시적 상상이 사실이었다니, 얼마나 절망적입니까."

―고양이에 애정을 느끼는 건 무슨 이윤가요.

"
스톡홀름 가면서 파김치가 됐어요. 꿈에 '땡'이가 떠올라요. '야옹!' 하면서. 내가 늙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니 땡이도 내 방문 앞에서 그렇게 울었대요. 정(情)의 정체가 뭘까, 여성성 아닐까요."

―모든 여성이 다 온화하고 획기적 재분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희랍신화에 이시스와 고르곤이라는 여신(女神)이 있습니다. 이시스가 백색을 뜻하는 모성의 상징이라면 고르곤은 제 새끼를 씹어먹는 흑색입니다. 르네상스 시절 피렌체와 베네치아에도 그런 부류들이 있었어요. '파스쿠치'라 불렀죠."

―어떤 인간들이었습니까.

"파스쿠치들이 약소국 그리스의 성전(聖殿) 유물을 헐값에 사 메디치가(家) 같은 명문가에 비싸게 되팝니다. 그렇게 축적한 부(富)로 희귀한 정력제를 사먹고 우아와 음란을 오가지요. 르네상스가 와야겠죠? 파스쿠치들은 어둠이죠. 아시안 네오르네상스가 온다고 하면 웃는 이들이 많은데 우리 주변에도 징조가 있어요."

―뭡니까.

"고르곤이나 파스쿠치 같은 여자들 안 보여요?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로 번 돈을 들고 아이들 팽개치고 향락에 빠진 여자들이오. 여자들 얼굴이 하나같이 희지요? '맨하탄 화이트'거든. 지금은 눈 주위 컴컴하게 칠해 마귀 같은 여자가 많잖아. 색마(色魔)가 악마(惡魔)로 변한 거죠. 옛날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여자들이 거리를 활보하잖아. 사실 박 선생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도 독하기 그지없습니다. 불륜도 저질렀고. 그런데 그 안에 다 장치가 숨어 있는 겁니다."

―무슨 장친가요.

"서희가 소설 마지막 부분에 스님과 대화합니다. 법화(法華) 신앙인데, 법화는 화엄세계에 들어가는 꽃무늬입니다. 알면 알수록 장모님이 참 묘해요, 생각할수록."

―'토지'도 펄벅의 대지(大地)와 같은 개념이 아니겠군요.

"단순한 땅이 아닌 인간이 발 딛고 사는 세계의 근거, 삶의 정체(正體) 같은 겁니다. 그게 화엄이고요."

―시인의 어머니는 어땠습니까.

"어렸을 적에 그림을 잘 그렸어요. 양반 가문인 어머니는 그걸 못하게 했어요. 두 손을 묶고, 제가 발가락에 붓 끼워 그림 그리면 발까지 묶었어요. 아버지와 백부가 기술자여서 연장이 그득했는데 그것도 못 만지게 했어요. 제가 지금 컴퓨터를 못 다뤄요. 집에 뭐 고장나도 못 고치는 기계치(痴)가 됐죠. 그래서 미학과를 택한 겁니다."

―그림과 미학이 무슨 관계입니까.

"억눌림을 당하면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택한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겁한 절충이었지요. 이 말 꼭 써주세요.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아이들 억압하지 말라고."


북한 서열 22위인 '간첩 대장' 이선실이 "민족의 제단에 김지하를 바치겠다"며 그의 주변에 거액을 뿌렸다. 시인에게 반(反)정부 성명 발표를 종용해 옥사(獄死)를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이 고백에는 함축이 많다.

장모는 사위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그런 박경리를 운동권은 핍박했다. 시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시스와 고르곤의 틈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장모에게서 '어머니'를 본 것이 아닐까.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긴 사연을 듣고 나서야 시인이 말한 '흰그늘' '검은 암소' '화엄개벽'이 명료해졌다. 그가 박경리라는 큰 품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기자에게 시인은 여러 번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게 인터뷰가 잘되려고 그랬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격정(激情)마저 없었다면 시인은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가슴의 한(恨)을 잠시라도 풀고 후련해질 수 있다면 욕 천 마디가 대수랴. 



"어둠속 '흰 그늘'과도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ㅡ 김지하 문학관


1.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우선 3년 전에 쓴 한 편의 시, ‘詩(시)’라는 제목의 시로부터 그 대답을 시도해 보자. 
짓지도
쓰지도 말라 
이제
속에서 떨리고
밖에서 흐르라 
넋이
넋이 아니거든 
쓰지 말라

때로
창녀와의 풋사랑이 
흰 그늘
빛나는 한 편의 
詩. 
쉽게 말하자. 궁상도 청승도 허풍도 다 접고 한 마디로 말하자. 넋이 내 시의 기점(起點)이다. 넋이 무엇인가? 
넋은 사람이 죽었을 때 ‘날아오르는’ 혼(魂)이요 ‘흩어지는’ 백(魄)이다. 넋은 사람이 살았을 때, 안에서 ‘떨리는’ 영(靈)이요 밖에서 ‘흐르는’ 생명(生命)이다. 
혼 없이 백 없고 백 없이 혼 없듯이, 영 없이 생명 없고 생명 없이 영은 없다. 영이 커질수록 생명은 복잡해지고, 생명의 복잡성이 촘촘해질수록 영의 깊이 또한 깊어진다. 
영이 안에서 ‘떨리고’ 생명이 밖에서 ‘흐르는’ 것을 일러 풍류(風流)라 한다. 
‘떨리고 흐르는 넋’을 두고 ‘풍류도(風流道)’라 한다. 
“넋은 곧 도(道)인가?” 
그렇다. 
“도는 바로 넋인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넋의 풍류 탓이다. 
그 뿐. 

2. “너의 시는 억압, 투쟁, 고통, 외침, 저항, 혁명, 고문, 죽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모두 넋의 시란 말인가?” 

그렇다. 
“왜?” 
그 극한적인 것들에 대한 내 넋의 떨리는 감응과 흐르는 반응이 곧 나의 시였다. 
“예를 들어라!” 
거의 모두 다 떨림과 흐름이 없을 때, 즉 나의 넋이 넋이 아닐 때 나는 짓지도 쓰지도 못하거나 아니면 태작을 썼다. 그러매 30년 시업(詩業)이 거의 적막하기까지 하다. 
“그 기념비(記念碑)는 무엇인가?” 
아마도 ‘황톳길’이나 ‘불귀(不歸)’나 ‘어름’이 아닐까? 
“그것은 아주 옛날인데 3년 전에 그 시론(詩論)을 반복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왜?” 
내 넋이 새로운 도전에 부딪쳐 전처럼 결연하지 못하고 방만했기 때문이다. 
“너의 시를 정치적 선동 선전시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럼 3년 전 앞뒤의 새로운 도전이란 무엇인가?” 

3. ‘애린’이다. 

그러나 나는 ‘애린’의 도전을 역시 내 넋의 떨림과 흐름으로 결연히 응전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창녀(娼女)와의 풋사랑이다. 
애린은 창녀다. 
창녀는 천민(賤民)이다. 
인간과 신(神)이 합일(合一)하는 순간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직업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참혹하게 저주받은 인간이다. 그러매 창녀와의 풋사랑은 고통에 찬 기적이다. ‘모순 어법’이다. 
“그것이 너의 새로운 문학이요 문학의 동기인가?” 
그렇다. 
“미학 또는 시학으로 그 말을 바꿀 수 있는가?” 
있다. ‘흰 그늘’이다. ‘그늘’은 삶의 신산고초요 생명의 복잡성이다. ‘흰 빛’은 초월적 ‘아우라’요 신령함이다. ‘흰 그늘’이란 ‘신비의 과학’이나 ‘은총의 중력(重力)’처럼 ‘모순 어법’이다. 
“그것은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가?” 
그렇다. ‘그늘’은 우선 우리 민족 전통예술 일반에 적용되는 민족 미학의 제1원리다. 그것은 윤리적이면서 미적인 패러다임이요, 전통적이면서 초현대적 패러다임이며 슬픔과 기쁨, 골계(滑稽)와 비장(悲壯), 이승과 저승 그리고 영성적이면서 생태학적인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은 일단은 미학적 계율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그 안으로부터 새하얀 ‘아우라’, 동양적 표현으로는 신성한 ‘무늬’가 생성 계시될 때까지는. 

4. “너의 등단 배경을 말할 필요가 있다.” 

시인이기 이전에 나의 꿈은, 아직 확실치는 않았으나 일종의 ‘사드비프라’(인도 사상가 사르카르의 ‘행복한 길 운동’에서 주체로 설정된 영적 혁명가) 혹은 일종의 ‘요기-싸르’(내면적으로는 수행자이자 외면적으로는 혁명가인 사람)이었다. 
명상과 변혁의 통일자, 혹은 ‘영적 혁명가’ 혹은, ‘삼ㆍ일신고(三ㆍ一神誥ㆍ단군이 겨레 지도자들에게 전한 가르침)식으로 말하자면 ‘성통공완’(性通功完ㆍ성품을 도통하고 세상을 바꾸는 공을 이룸)의, ‘신선혁명가(神仙革命家)’를 꿈꾸었고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맸다. 
동학(東學)에서 이것은 ‘시인(侍人)’ 즉 ‘모시는 사람’이니 ‘안으로 신령(神靈)이 있고 밖으로 기화(氣化)가 있는 사람’이라 칭한다. 안의 신령과 밖의 기화란 다름아닌 영의 떨림과 생명의 흐름이다. 
어쩌다 시인이 되었다. 시와 행동(行動)이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했다. 길흉(吉凶)을 점(占)치는 소발굽 같기도 하고 하나가 됐다 둘이 됐다 하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설화 같기도 했다. 
등단 전에 내 주변엔 ‘폰트라’(PONTRAㆍPOEM ON TRASH, 쓰레기 위에 시를!)라는 사귐이 있었다. 여기서 어느날 한 여자 선배 왈, ‘네가 결혼하거나 연애를 하려면 반드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하니 시인으로 문단에 등록해라’고 자꾸만 권유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등단했다. 
그런데 그 뒤의 나의 시가 과연 ‘폰트라’의 길을 갔던가? 

5. 거듭된 저항과 투옥으로,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피로감을 술로 풀다 풀다가 나는 지치고 병들었다. 내 자신이 쓰레기가 되어갔다. 

혹독한 ‘죽임’의 예감으로 나의 시는 일종의 ‘묵시’가 되기도 했으나 그 극단적인 시적 ‘반혼(返魂)’ 속에서 도리어 넋의 무거운 만가(輓歌)로, 영적 파탄으로까지 변해 갔다. 그 반환점이 곧 ‘애린’의 출현이다. 
그러나 애린은 ‘흰 그늘’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제 내 앞에, 밑에, 틈에, 그리고 내 뒤에서까지 ‘흰 그늘’을 부름으로써 진정한 넋의 떨림과 흐름, 영과 생명의 풍류로 나아가고자 함이 지금의 내 삶과 내 시의 동기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바로 그것, 
넋의 풍류 탓이다. 
그 뿐. 

6. 내가 앓았던 그 오래고 오랜 질병의 한 끝에서 10여년 전에 나는 또 한 편의 시를 얻었다.
그 시 ‘속’으로부터 대답의 마지막을 갈무리해 보자. 

솔직한 것이 좋다만
그저 좋은 것만도 아닌 것이 
詩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 
‘어둠’과 ‘햇살’! 
이 때 이미 ‘흰 그늘’은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분열되어 있었다. 
확실한 미학적 의식으로 확대되고 심화된 과정은 4ㆍ19 직후인 스무 살 때의 아득한 흰 길의 한 환상, 민청학련 무렵인 서른 세 살 때의 우주에의 흰 길의 한 환상, 재구속되어 옥중에서 100일 참선에 돌입했던 서른 여덟 살 때의 흰 빛과 검은 그늘의 한 투시, 그리고 4년 전 율려 운동을 시작하던 쉰 여덟 살 때의 대낮의 뚜렷한 한 문자 계시를 통해서 왔다. 그리고 3년 전 가야(伽倻) 여행에서 점차 시학적 명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흰 그늘’의 길은 그 자체로서는 아득하다. 
지금 내게 있어 그 길은 우선 삶의 길을 뜻한다. 
목숨이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영성적으로 살아야 비로소 넋이 넋다운 떨림과 흐름의 풍류도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매 시는 내게 있어 일단은 하나의 ‘활인기(活人機)’다. 
‘죽임이 가득한 이 세상과 이 넋의 지옥에서 ‘삶’과 ‘사람’과 ‘살림’을 가져올 하나의 ‘활인기’다. 
되풀이하지만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한 마디로 말하자.
‘살기 위해서’다. 
어찌 살려 하는가? 
이 길! 
나의 시, 나의 삶으로 가는 이 ‘흰 그늘’의 길! 
우주 저편으로까지 이어지는 이 ‘흰 그늘의 길’에 서는 것. 
나그네는 반드시 길에서 죽는다던가? 



• 1941년 전남 목포 출생
•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 1969년 문예지 '시인'에 '황톳길' 등 시 5편 발표 등단
•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1964) '오적(五賊)'사건(1970) 민청학련 사건(1974) 등으로 8년여 투옥
• 1988년 문화운동단체 '율려학회' 발족
• 시집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애린' '별밭을 우러르며' '이 가문 날의 비구름' '중심의 괴로움' 등 산문집 '밥' '남녘땅 뱃노래' '살림' '옹치격' '생명' '생명과 자치' '사상기행' '예감에 가득찬 숲 그늘' '옛 가야에서 보내는 겨울 편지' 대설(大說) '남' 등
• 로터스특별상(1975) 위대한시인상(1981) 크라이스키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등 수상

 

[허문명 기자 ㅡ‘김지하와 그의 시대’]


김지하 시인을 처음 만났을 당시 1970년대 초반의 박경리 선생. 단아한 모습의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이다. 박 선생은 당시 암 투병 중에도 토지 1부를 써내 문단으로부터 존경받는 문인이었지만 은둔하다시피 살고 있었다. 동아일보DB
주로 원주에 머물던 김지하는 서울에 올라오면 문단의 지인들과 어울렸다. 1971년 가을 그날은 ‘현대문학’ 편집장 김국태 형(2007년 작고·소설가·김근태의 형)과 소설가 유현종(73·전 한국문학예술진흥회장·전 중앙대 국문과 교수)과 함께였다. 일행은 1차를 마치고 더 마시고 싶었지만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인근에 있는 가까운 작가들 집에 쳐들어가기로 마음먹고 먼저 성북동에 살고 있던 소설가 김동리 집으로 갔다. 선생은 마침(?) 출타 중이었다. 

김 편집장이 “가까운 곳(정릉)에 박경리 선생 집이 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제안했다. 박 선생은 69년부터 현대문학에 토지 1부를 발표한 상황이어서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였다. 김지하 역시 토지를 읽었던 상태였고 이미 당대 최고 작가 반열에 올라 있던 박 선생에 대해 그 역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박 선생은 다행히(?) 집에 있었다. “맥주 한잔 얻어먹으러 왔다”고 하는 일행을 흔쾌히 안으로 들였다. 선생 옆에는 딸 김영주(현 토지문화관 이사장)가 서 있었다. 김영주는 당시 연세대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문화재관리국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선생과 일행들 간에 이야기꽃이 피기 시작했다. 김지하의 회고다.“말로만 듣던 박 선생을 그날 처음 뵈었다. 얼굴이 굉장히 미인이셨다. 말씀도 잘 들어주시고 대답도 잘 해주셨지만 쉽게 속내를 알 수는 없었다. …역사(歷史) 이야기가 나오자 식견이 보통 탁월한 것이 아니었다. 주로 내가 여쭙고 박 선생이 답을 했는데 경상도 전라도 지리산 등등 민감한 지역 문제들에 대해서도 막힘이 없었다. 화엄불교, 동학에도 해박했고 동서양 역사는 물론 한국 현대사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혹시 공산주의자인가 싶어 은근슬쩍 물었더니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아주 비판적이었다. 나는 작가들 중에서 그렇게 똑똑한 사람을 태어나서 그때 처음 보았다.”

일행은 맥주를 잔뜩 얻어먹고 나왔다. 박 선생은 일행을 배웅하며 “또 놀러 오라”고 말했다. 평소 낯가림이 심하기로 유명했던 선생으로서는 이례적인 말이었다. 일행은 “박 선생이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아마 지하가 마음에 드셨나 보다” 하는 반응들이었다. 

김지하도 그날 만남이 오래 잊히지 않았다. 

며칠 뒤에는 한밤중에 홀로 자신의 일본어판 첫 시집 ‘긴 어둠의 저편에’를 박 선생 집 신문 넣는 구멍을 통해 집어넣고 왔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며칠 뒤엔 혼자 놀러 가기도 했다. 김지하는 “박 선생이 따뜻하게 대해 주어 고마웠다. 그 뒤로도 가끔 놀러 갔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는 ‘광복 이후 한국 문학이 거둔 최대의 수확’이라는 평가를 받는 ‘토지’의 작가 그리고 그의 딸과 훗날 장모와 아내라는 운명적 인연을 맺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박경리 선생은 김지하와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박 선생(2008년 작고)은 생전에 인터뷰를 극도로 사양했다. 어렵게 이뤄진 인터뷰에서도 가족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1994년 작가세계 가을호에서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과)와 장시간 인터뷰를 하면서 김지하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 나이 마흔여섯이었을 거예요. ‘토지’를 집필하자 곧 (유방)암 수술을 받았지요. 나는 소풍가는 기분이었어요. 의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실지로 그랬지요. 그늘, 태어나고부터 줄곧 나를 억누르던 그늘에서 이제야 해방된다는 홀가분한 심정이었어요. (내가 쓴 소설) ‘시장과 전장’은 실화예요. 서대문 형무소에서 남편이 죽고 (곧이어 소설) ‘불신시대’를 쓰기 전에는 아들이 죽었지요. …(어느 날) ‘현대문학’ 김국태 씨가 지하와 함께 왔어요. ‘오적’을 읽고 싶었는데 구하질 못해 읽어보지는 못했던 때였죠. (글을 쓰는 내가) 글 잘 쓰는 젊은이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71년 가을 그날, 김지하가 박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선생은 69년 집필을 시작한 토지를 위해 거의 은둔하다시피 살고 있었다. 그해 암으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도 수술 뒤 보름 만에 퇴원해서는 수술 부위를 붕대로 싸맨 채 토지를 썼던 그였다(토지 2부를 쓸 때는 사위 김지하가 구속되면서 또 다른 고초를 겪는다).

선생을 평생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딸 김영주 토지문화관 이사장은 당시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한다. 

“마음속으로 온갖 고통을 꾹꾹 누르고 있다가 마지막 해를 넘기는 날 같은 때에는 한 번씩 창자가 끊어지듯 우셨어요…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어느 연말 어수선한 밤, 방에서 울려나오던 통곡소리가, 마음 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마치 가슴이 터져버릴 듯 통곡하시던… 그 밤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작가로서 별처럼 반짝이며 떠오르고 있었고,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질시의 표적이 되었던 것 같은데 그날은 아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험한 말을 들으셨나 봐요. 어머니는 마치 온몸을 부숴 버릴 듯 통곡을 하시고 난 다음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단정하게 앉아, 그야말로 모질게 원고지 앞에 앉아 펜을 드시곤 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어머니가 김 시인을 처음 만난 날 호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라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암 투병 후 내 결혼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하나 남은 딸자식에게 꼭 인연을 만들어주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실제로 김 시인을 만나기 전에 어머니가 주선해 선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김 시인을 우연히 만나보고는 마음에 드셨던 거지요. ‘오적’을 낸 시인이니 앞으로 고난은 좀 있겠지만 똑똑한 젊은이니까 처자식 밥은 굶기지 않겠구나 생각하신 거죠.
하지만 보기 좋게 틀린 생각이 되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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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유달산 자락에 있는 김지하 시인의 시비

목포시 죽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목포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곳


[출처] 김지하 시비|작성자 돌비늘

 

◈ 김지하 '오적(五賊)'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된 작품이다. 담시(譚詩)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택해 전통적 해학과 풍자로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시이다. 1970년대 초 부정 부패로 물든 한국의 대표적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조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에 비유해 적나라하게 풍자함으로써, 문단에 파문을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시인의 존재를 널리 알린 문제작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사상계》는 폐간되고, 작가와 편집인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1960년대의 시에 대한 강렬한 비판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일제 통치 시대의 수혜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오적'이라 일컫고, 이들을 모두 '犬(개 견)'자가 들어가는 신조어 한자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등장시킨다. 짐승스런 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 장안 한복판에서 도둑질 대회를 벌이는 것으로 사건을 전개시키며 고대소설처럼 등장 인물들을 차례대로 풍자해 나간다.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들의 부정부패와 초 호화판의 방탕한 생활은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부정 부패를 척결할 임무를 부여받은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의 비유)이란 인물은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매수되어 오적을 고해바친 죄 없는 민초 '꾀수'를 무고죄로 몰아 감옥에 집어넣고 자신은 도둑촌을 지키는 주구로 살아간다. 작가는 포도대장과 오적의 무리가 어느 날 아침 기지개를 켜다가 갑자기 벼락맞아 급살한다는 고전적 기법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소실되어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진 작품이다. 창작 서사시로서 한국의 현대시문학사에 '담시'라는 새로운 형식과 전통적인 풍자 기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야기를 소리로 형상화함으로써, 특권 지배층을 날카롭게 공격하고 피지배계층의 한을 드러낸 점과 판소리를 계승 발전시킨 점은 높이 평가된다.

 

  이 시는 1970년 5월 '사상계'를 통해 '담시'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 파문과 물의를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오적'은 민중의 집단적 창조력에 의해서 긴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예술 형식의 하나인 판소리 양식으로 뒷받침되어 있으며, 일제 식민 통치의 암흑기 속에서 쇠잔하고 소실되어 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졌다. 그것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학의 새로운 진로에 큰 빛을 던져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때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못지 않게 양식과 가락에 대해서도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담시(譚詩)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 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기습성(담시의 발표 연도와 정치적 사건의 맥락에서의),
공격성(반민중적 소수 집단을 향한 정치적 풍자시라는 점에서),
이야기 전달성(담시의 형식적인 면과 감추어진 진실의 폭로라는 의도에서) 등의 특성을 지닌
이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오적'을 보면 대뜸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은 표면 구조에 있지 않고 심층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적이라고 못 박은 사람들 즉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일제 식민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이 오적을 통해서 의도한 바는 이 작품에 그린 과장되고 희화화되고 풍자의 대상이 된 모든 인물들의 행태가 바로 불식되지 못한 일제 식민 유산의 부산물로,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통치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식민 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통한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통치 이념의 구현이 필요하다는 방향 제시였다고 할 수 있다. 

 

 

 


  1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 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 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 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 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 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 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 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 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
  십 년 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 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 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 해 입고 돈으로 모자 해 쓰고 돈으로 구두 해 신고 돈으로 장갑 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 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 봐라 저 재벌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 치고 계자 치고 고추장 치고 미원까지 톡톡 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나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 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 까기 여념 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 쥔 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 얻고 수의 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 몫 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 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외상 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 할애비요 구워 삶는 재조는 뙤놈 술수 빰 치겄다.

  또 한 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 투성이 몽둥이에 혁명 공약 휘휘 감고
  혁명 공약 모자 쓰고 혁명 공약 배지 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 일성, 쪽 째진 배암 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 축재는 축재 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 선거는 선거 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 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 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3
  셋째 놈이 나온다

  고급 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 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 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어허 저놈 뒤 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당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 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 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 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 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 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 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 밑에 졸개 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 공단 울긋불긋, 천 근 만 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 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 쉬엇 열중 열중 열중 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 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 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 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 고여 삐져 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 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 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산이닷, 아사(餓死)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 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 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 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 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 자네 핸디 몇이더라?


  4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 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라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사돈네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 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뜯고 업어 메치고 뒤집어 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 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 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중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 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 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 없이 쏙쏙 기어나오는 건
  아니랑께롱
  한 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 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 있나 말만 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 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 좋아 제 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 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 같은 저 함성 범 같은 늠름 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 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갖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 손상, 백성 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 푸른 용트림이 기둥 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 십 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 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 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 원짜리 수석 비석(瘦石肥石), 천만 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 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 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 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 두고 가정 교사는 철학 박사 비서는 정치학 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 박사
  박사 박사 박사 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 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 속에 에어컨 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 속에 히터 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 속에 냉장고 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 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 치고 굽도리 삿슈 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 발라
  앞뒷퇴 널찍 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 매달아 부연얹고
  기와 위에 이층 올려 이층 위에 옥상 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 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 밑에다 연못 파고 연못 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 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 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 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 층 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 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 점 걸어 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 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이태리화기, 호피 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 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 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 만년필, 촛불 켠 샨들리에,

  피마주 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 직접 직사 곡사 천장 바닥 벽 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네들 치장 보니 청옥 머리핀, 백옥 구두 장식,
  황금 부로취, 백금 이빨, 밀화 귓구멍 마개, 호박 밑구멍 마개, 산호 똥구멍 마개,
  루비 배꼽 마개, 금파 단추, 진주 귀걸이, 야광주 코걸이, 자수정 목걸이, 싸파이어 팔지 
  에머랄드 팔지, 다이야몬드 허리띠, 터키석 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 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 암야에 횃불처럼
  도도 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 콧구멍 볶음, 염소 수염 튀김, 노루 뿔 삶음, 닭 네 발 산적, 꿩 지느라미 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 발톱 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 안 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면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 식혜,
  파인애플 화채, 무화과 꽃잎 설탕 버무림,
  롱가리트 유과, 메사돈 약과, 사카린 잡과, 개구리알 구란탕, 청포 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 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 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 잔 두 잔 헐레벌떡 석 잔 넉 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 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 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 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 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 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 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 찾고 쪼각달 희게 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 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 같은 꾀수 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 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 살다 서울 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 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 사정 누가 있어 바로잡나
  잘 가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 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하매,
  포도대장 이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 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 같은 거지 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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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이성부 - 벼 2015-12-22 0 5907
358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신경림 - 농무 2015-12-22 0 7072
357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박용래 - 저녁눈 2015-12-22 0 4838
356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천상병 - 귀천 2015-12-21 0 6820
355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2015-12-21 0 4277
354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김종길 - 성탄제 2015-12-20 0 3883
353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허영자 - 자수 2015-12-20 0 4819
352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정한모 - 나비의 려행 2015-12-20 0 3773
351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이형기 - 폭포 2015-12-19 0 4568
350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2015-12-19 0 5045
349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2015-12-19 0 3639
348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고은 - 머슴 대길이 2015-12-18 0 4104
347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박재삼 - 흥부 부부상 2015-12-18 0 6298
346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광복以後 시: 신석초 - 바라춤 2015-12-18 0 4737
345 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광복以後 시: 김남조 - 정념(情念)의 기(旗) 2015-12-18 0 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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