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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명인들과 커피 중독자들
2017년 01월 02일 01시 02분  조회:4193  추천:0  작성자: 죽림

[헤럴드경제=육성연 기자=

“아, 이제 더 이상 커피 잔을 들 수 없구나.” 
죽음을 앞둔 루소의 마지막 말은 가족도, 친구도 아닌, 바로 커피였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녀도 몇년 지나면 식상해지기 쉬운 법,
대체 커피의 매력은 얼마나 치명적이길래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중독시켜 온걸까.

커피는 17세기 베네치아를 통해 유럽에 처음 소개된 이래, 서양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책을 읽거나 생각할 여유까지 주는 커피는 주의력을 모아주고
창의력까지 높여 사유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왔다.

그래서일까. 역사 속 많은 위인들이 커피를 즐긴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 폐인’ 볼테르=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계몽주의 선구자 볼테르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소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쯤되면 그는 커피마니아가 아닌 ‘커피 폐인’이다.
볼테르(Voltaire) 와 함께 했던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역시 커피 마니아로서, 프랑스 시민혁명 사상적 근간은 두 사람의 커피타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카페 프로코프에는 단골이었던 두 사람의 테이블을 300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

▶‘지못미 커피광’ 발자크 =볼테르가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시고도 84세까지 장수한 걸보면 그는 분명 타고난 커피체질이다. 반면 커피체질도 아니면서 용감하게 커피를 사랑하다 죽은 이도 있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e de Balzac)는 하루에 커피를 40잔 이상 마셨는데 이후 그는 과로와 카페인 중독이 겹치면서 숨졌다.
사실 발자크의 ‘커피광’ 타이틀은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유부녀 백작부인에게 반했던 33세 발자크는 남편이 죽고나면 결혼하겠다는 그녀와의 약속때문에 결혼 비용을 마련하려 하루 15시간 이상씩 글을 썼다. 그래서 그는 잠을 쫓기 위해 더 커피를 마셔야만 했다.
결국 18년에 걸친 구애끝에 그는 51세때 백작부인과의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카페인 과다복용과 과로로 결혼한지 5개월만에 죽고말았다. 한 프랑스 통계학자는 발자크가 마신 평생 커피가 무려 5만잔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내가 제일 잘끓여’ 브람스=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악보 종이, 담뱃갑과 함께 커피 추출기부터 찾았다고 전해진다. 특히 아무도 자신의 커피를 끓이지 못하게 하면서 그 누구도 자신만큼 커피를 잘 끓이지 못한다고 자만하기도 했다.





▶카페 ‘진상고객’ 사르트르=프랑스 실존주의 사상가인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는 카페를 사무실처럼 이용한다는 코피스(Coffee+Office)족이었다. 카페를 집필실로 삼았던 그는 파리 생제르맹에 위치한 카페 되마고를 10년넘게 드나들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찾아와 커피한잔만 시켜놓고 반려자와 테이블 두개를 차지한 채 진을 쳤으니 카페 주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재능 기부’ 바흐=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자신의 작곡 재능을 바쳐 커피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커피 칸타타‘로 알려진 ‘칸타타 BMV211’는 세계 최초로 커피 광고 음악으로 사용됐다. 이 곡의 내용은 커피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이를 거부하는 딸 간의 실랑이다. 특히 이 곡의 작사자인 시인 피칸다는 “천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마스카트 포도주보다 달콤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커피맛 좀 아는 남자’ 고종=고종황제는 지대한 커피사랑때문에 목숨까지 건질수 있었다. 1898년 고종황제는 식사를 마친후 황태자(훗날 순종)와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몇 모금 마시던 그는 평소와 향이 다르다면서 곧바로 밷어내기까지 했다. 반면 그 향을 구별하지 못했던 황태자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앙심을 품었던 김홍륙이 커피속에 아편을 타 암살을 시도했던 것. 커피 향을 바로 구별할 정도로 남달랐던 커피 사랑이 그를 살렸다.



▶‘커피 된장남’ 베토벤=커피마니아로 브람스· 바흐만 언급되면 서운해 할 루드비히 반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독일 작곡가인 그는 아침마다 정확히 60알의 원두를 세어 커피를 추출해 마실만큼 커피 맛에도 엄격했다. 손님이 오시는 날에는 손님 수만큼 120개, 180개…일일이 세어 커피를 대접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커피는 대중음료가 아니었기에 커피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난했던 그였지만 늘 생활비에서 커피값을 떼어 원두와 분쇄기를 구입했다. 그런 원두를 아침마다 한알한알 세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그는 정말 눈물나는 커피마니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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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카 마타리 커피를 사랑한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3.30 ~ 1890.7.29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명인
 
몇 점 되지 않습니다. 


그는 커피의 여왕이라 부르는
예멘 모카 마타리를 즐겨마셨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 그의 커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Café Terrace, Place du Forum, Arles)'
 
빛 받지 못했던 그의 삶이
빛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가난함 속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
 
 

 
♥ 커피 칸타타의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3.21 ~ 1750.7.28
 

 

 
독일 출생,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적 업적을 이룬 음악가입니다. 
바로 , 커피 칸타타 'Coffee Cantata' ! 
커피와 클래식의 즐거운 조화,
인상적인 칸타타입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
 
 
 
 
 
♥ 사랑을 지키기 위해 커피에 빠진 발자크
1799.05.20 ~ 1850.08.18

[ 커피가

나폴레옹의 부대처럼
...
 
이윽고
종이는 검은 잉크로 물든다. 
일단 창작의 몸부림이 시작되면


<' 현대 흥분제에 관한 고찰' 

20여년 동안 70편의 소설을 탄생시킨 인물로
마신적이 있으며
커피에 대한 애착을 보인 소설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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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입니다. 이즈음 생각나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 (후략) 

▲박종우 바이핸커피 대표
 
▲박종우 바이핸커피 대표
 
'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시인 김현승은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호를 다형 즉 커피 형님으로 했다고 합니다. 김현승 시인의 집을 방문하면 꼭 하얀색 사기그릇에 커피를 가득 담아 한 사발 내주었다고 합니다. 김현승의 사발커피는 지금도 가끔 회자됩니다. 

소설가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 '인생의 첫출발', '잃어버린 환상'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세계적인 대문호입니다. 하루 15시간 이상씩 글을 쓰고 스스로를 '문학노동자'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발자크의 나이 33세에 폴란드 백작부인 '한스키'에게 반해 계속 자기 마음을 고백합니다. 백작부인은 유부녀였기 때문에 발자크의 끈질긴 구애에 '남편이 죽으면 결혼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발자크는 오로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하루 4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50이 넘어서야 결혼에 성공했지만 5개월 만에 죽고 맙니다. 발자크가 마신 커피는 대략 5만잔 정도로 지독한 커피매니아입니다. 

베토벤은 60개씩 원두를 세어 커피를 내려마셨다고 합니다. 손님이 한명 오면 120개. 왜 그렇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바흐는 '커피 칸타타'로 알려진 '칸타타 BMV211'을 작곡합니다. 내용은 커피를 그만 마시라는 아버지와 커피를 좋아해서 계속 마시겠다는 딸의 실랑이입니다. 이 곡의 작사가인 시인 '피칸다'는 “커피는 천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마스카트 포도주보다 달콤하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브람스는 자신이 먹을 커피는 자신만 내리고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와 루소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고, 그들의 단골 까페 '프로코프'에는 두 사람이 열띤 토론을 했던 테이블이 300년 넘게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커피에는 어떤 이들의 삶이 녹아있고, 열정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커피 그 자체가 그들의 인생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박종우 바이핸커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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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 

햇볕 짱짱한 여름날 오후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40분간 차를 몰고 담양읍까지 갔다. 차를 몰고 가면서, 고등학생인 내게 검은 진주 빛깔 커피를 끓여주셨던 김현승 시인을 생각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시를 써 가지고 갈 때마다, 선생님은 손수 커피를 끓여 주시곤 했다. “고독을 견디려고 커피를 마신다”던 선생님 말씀도 생각난다. 1960년대 조선대 교수였던 선생님은 매일 퇴근하면 충장로까지 1시간을 걸어 노벨다방에서 홀로 커피를 마셨다. 한번은 수업을 마치고 교복을 입은 채 다방으로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커피 대신 칼피스를 사주시며 “칼피스 맛은 첫사랑 맛이야. 첫사랑 맛은 달콤하면서도 톡 쏘거든” 하며 웃으셨다. 

나도 몇 년 전부터 커피 잘 내려주는 찻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간질간질한 즐거움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유명한 강릉 B커피숍은 물론, 양평이며 우리 집에서 가까운 여수, 순천, 정읍, 고창의 커피 전문점을 찾아다닌 지 오래다. 최근에는 남원에 있는 커피숍에서 다크 초콜릿 맛 나는 예멘 모카 마타리를 마신 후, 그 뒷맛의 여운을 못 잊어 가끔 찾는다. 

메타프로방스는 담양 메타세쿼이아 숲에 조성된 유럽풍 관광단지다. 이곳에 M커피점이 생겼는데 한갓지고 분위기가 괜찮다. 나는 콜롬비아 슈프리모와 과테말라 안티구아를 놓고 고민하다가 안티구아를 주문했다. 두 가지 모두 스모키한 향이 강하다. 내가 처음 핸드드립에 매료되었을 때는 맛과 향의 밸런스가 적당하고 뒷맛이 깔끔한 케냐와, 신맛과 바디감이 좋은 예가체프를 사랑했다. 그런데 안티구아 맛을 본 후로는 스모키한 향기에 푹 빠지고 말았다. 고급 스모크 커피 안티구아는 약간 타는 듯한 냇내 외에도 신맛, 단맛, 쓴맛, 초콜릿 맛의 균형이 잘 잡히고 특히 묵직한 바디감이 좋다. 여러 가지 커피를 자주 마시면 혀가 진화하는 것 같다.

안티구아를 마실 때마다 나는 기분이 울연(鬱然)해진다. 인구 3만의 안티구아는 1821년에 과테말라가 독립하기까지 300년간 식민지시대 수도로 상처가 많은 도시다. 1776년에 해발 2000m의 아구아 화산 폭발로 도시가 파괴됐는가 하면, 독립 후 인디오들은 그들의 권익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가 군인들에게 총살당했다. 마야 문명의 후예들로, 몽고점을 가진 인디오 15만 명이 커피 농장에서 일하다 죽은 것이다. 나는 인디오들의 검은 눈물과도 같은 안티구아를 마셨다. 아주 천천히 슬픈 영혼들을 생각하며 연기를 품은 듯한 맛을 음미했다. 커피 향이 쩌릿쩌릿 온몸으로 퍼졌다. 커피는 향기와 맛을 동시에 느끼며 마셔야 한다. 그래서 커피는 코와 혀와 목젖으로 마신 후, 입과 목에 남은 여운의 맛까지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커피는 목이 말라서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커피 한 잔 안에는 행복과 사랑, 위로 등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시고 쓰고 달고 탄 맛에 젖어 잔잔한 행복감에 빠진다. 커피 한 잔의 행복은 시들어가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연소시킬 힘을 준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가, 커피가 창작의 열정을 불태워주는 연료라고 생각하고 즐긴 것일까.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바흐는 “커피 맛은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다”고 했고, 베토벤은 “커피가 작곡의 원동력”이라면서 아침마다 60알의 원두를 갈아 마셨다. 박목월 시인은 “암갈색 심연을 혼자 마신다”고 했으며, 신달자 시인은 “견디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문학노동자라고 부르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커피 이야기는 너무도 슬프고 안타깝다. 가난한 발자크는 우크라이나 여자 한스카 백작 부인을 사랑했다. 발자크는 18년 동안 그녀와 팬레터를 주고받은 끝에 청혼했다. 한스카 부인은 남편이 죽은 다음에 결혼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다. 발자크는 그녀와 같이 살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매일 50잔의 커피를 마시고 줄기차게 소설을 썼다. 마침내 한스카의 남편이 죽자 발자크는 51세가 되어서야 결혼했다. 그러나 발자크는 결혼 5개월 만에 카페인 과다 복용으로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국 여인에게 보낸 편지’가 4권의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나는 오랜 시간 혀끝에 맴도는 커피 잔향(殘香)에 취해 분위기 좋은 ‘제3의 공간’에서 자신을 충분히 해체시켰다. 커피는 여럿이 이야기하며 마시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보다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여유를 갖고 생각하며 마시는 것이 더 행복하다. 때로는 자신을 여유로운 공간에 가둘 때 자아가 확실해져 살아갈 방향이 뚜렷이 보인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로사회’에서 몸도 정신도 지칠 대로 지친 채 쫓기듯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직장, 그리고 삶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나만의 여유로운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 LG에서 10년간 전문 경영인으로 일하고 프랑스로 돌아간 에리크 쉬르데주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한국은 미쳤다!’는 책을 썼다. 이제 우리도 그의 말 대로 ‘일하는 기계’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여유로운 삶이 필요하다. 역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고등학교 시절 김현승 선생님 댁에서 처음 마셨던 ‘악마의 유혹’ 같은 쓰디쓴 커피 맛을 다시 떠올렸다. 그 추억은 지금껏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도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나만의 커피숍을 만들어 놓고, 나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커피를 끓여주어, 그들에게도 영원히 남을 추억을 심어주고 싶다. 



  • 커피는 문학가와 예술가들에게 밤새워 창작의 혼을 불태우게 한 요긴한 음료였다. 카페인은 작가의 지성적 각성뿐 아니라 불합리에 맞서는 시대정신도 일깨웠다. 프랑스혁명기 귀족과 성직자의 횡포에 대한 항거가 싹트기 시작한 곳도 카페였다.
창작혼 산파  시대정신 각성제

[사진제공·커피비평가협회]

커피를 처음으로 문학 소재로 삼은 인물은 이슬람권에서 나왔다. 커피가 7세기 이슬람교 창시와 함께 음용되기 시작해 근 1000년 동안 무슬림만의 문화로 향유된 사실에 비춰보면 당연한 결과다.  

커피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발견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기원전 10세기경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에게 바친 공물에 에티오피아산 커피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물증은 없다. 커피의 기원지라고 자부하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난 메넬리크 1세가 초대 황제가 된 점을 들면서 커피의 기원도 이때부터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체로는 커피의 기원 시기를 서기 6세기경으로 본다. 

커피가 왕성하게 소비된 곳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권이다. 아라비아를 벗어나 이집트나 터키로 전해진 것은 15세기쯤인 것으로 관측된다. 커피는 이슬람 포교 경로를 따라 퍼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신비주의 수피교(Sufism)의 공은 지대했다. 수피교도인 잘랄 앗 딘 알 루미(1207~1273)가 ‘입술 없는 꽃’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문학의 소재로 삼았다. 다음은 그 일부다.  

“깨어나라, 아침이므로/ 아침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할 시간이다/ 팔을 벌리라/ 영접할 아름다운 이가 왔도다…” 

‘아침의 포도주’는 커피를 상징한다. 커피의 어원은 아랍어로 ‘카흐와’다. 카흐와는 포도주라는 의미인 동시에 커피를 뜻한다. 유럽에선 17세기에 커피를 ‘아라비아의 와인(The wine of Arabia)’이라고 했다. 이슬람 문학과 예술에서 커피를 다룬 내용은 적지 않겠지만, 종교적 이유 등으로 인해 서방에 전해진 건 거의 없다.  

유럽 강국들은 17세기 말에 커피 값이 치솟자 앞다퉈 식민지에 커피 밭을 일구는 경쟁을 벌였다. 이 무렵부터 커피에 관한 흥미로운 목격담과 에피소드들이 기록으로 전해진다.

‘커피 칸타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가 흔히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로 알려진 칸타타 BWV 211을 작곡한 것은 1732년경이다. 아내와 사별한 뒤 재혼한 안나 막달레나와의 사이에 13명의 자녀를 두고, 47세가 돼 맏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딸과 커피를 그만 마시라고 다그치는 아버지가 승강이를 벌이며 주고받는 풍자적인 아리아가 인상적이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여성의 출입을 금했기에 커피 칸타타에서 딸이 부르는 소프라노 대목을 남성 가수가 가성으로 불러 더욱 재미있는 요소가 됐다.   

“오~ 이 커피는 너무나 달콤하구나.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백포도주보다 더 부드럽구나! 커피, 커피야말로 내가 마셔야 할 것이야. 나를 기쁘게 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내게 커피를 따르게 하세요….” 

커피를 끊지 않으면 약혼자와 결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아버지의 최후통첩에 딸은 굴복하는 척한다. 하지만 재치덩이 딸은 혼인계약서에 ‘커피 자유섭취 보장’이라는 조항을 슬쩍 써넣으면서 결혼에 골인하고 커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반전을 이끌어낸다.

종교음악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바흐가 이처럼 대중을 위한 희극적 작품을 쓴 것은 ‘커피 애호가로서의 커피에 대한 헌정’이라는 견해가 있다. 바흐 자신도 “모닝커피가 없으면, 나는 그저 말린 염소고기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 

‘느리게 퍼지는 毒’

신체의 나른함을 일깨우는 커피의 각성 효과는 프랑스혁명을 이끌어낸 요인의 하나로 종종 언급된다. 커피를 즐겨 마신 한두 인물의 파워보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진 계몽사상가들과 시민의 교류와 공감대가 구체제(앙시앵레짐)를 무너뜨리는 동력을 만들어냈다.  

1686년 문을 연 프랑스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는 이 점에서 온갖 사연이 깃든 곳이다. 프랑스혁명의 지적 기원으로 꼽히는 총 28권짜리 ‘백과전서(Encyclopedia)’가 공동 편집장 드니 디드로(1713~1784)와 장 르 롱 달랑베르(1717~1783)에 의해 처음 기획된 장소가 이곳이고, 이후 26년 동안 백과전서가 완간될 때까지 계몽사상가들의 아지트로 활용됐다.  

볼테르(1694~1778), 장 자크 루소(1712~1778), 빅토르 위고(1802~1885), 장 아르튀르 랭보(1854~1891) 등이 단골이었으며, 비운의 급진주의적 혁명가 장 폴 마라를 비롯해 당통, 로베스피에르 등 공화주의자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르 프로코프의 터줏대감으로서 커피에 관한 어록을 남긴 인물로는 볼테르와 루소가 손꼽힌다.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철학자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볼테르의 면모는 백과전서 집필 참여뿐 아니라 모차르트(1756~1791)와의 ‘악연’에서도 드러난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모차르트가 볼테르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악당의 괴수가 드디어 죽었습니다”라는 기쁨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냈다는 일화는, 역설적으로 당시 볼테르가 지닌 사회적 무게감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볼테르는 르 프로코프에 앉아 건너편 극장에서 자신의 연극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곤 했다. 하루에 40~50잔의 커피를 마시던 그에게 주치의는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그는 커피를 놓지 않았다. 그는 “커피가 독이라면, 그것은 느리게 퍼지는 독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84세까지 장수함으로써 커피의 유익함을 몸으로 증명한 인물로도 기억된다. 

악마, 키스. 지옥, 천사

계몽사상가 루소는 자서전 ‘고백록’에서 후견인이자 연인이던 바랑 부인과 아침 산책길에 우유를 탄 커피를 함께 마실 때 가장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연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던 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진위를 확인할 순 없지만, 그는 죽는 순간 “아, 이제 더 이상 커피잔을 들 수 없구나”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루소는 관능적으로도 매우 섬세했던 것 같다. 그는 “오, 나를 즐겁게 만드는 커피의 향기. 이웃에서 커피를 볶을 때면 나는 문을 열어 그 향기를 만끽한다”라고 읊기도 했다.

커피 맛이 주는 행복감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인물은 주교 출신의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1754~1838)이다.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다.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이처럼 커피의 검은 외관과 그윽한 향기를 악마, 키스, 지옥, 천사 등 자극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단어로 묘사한 탈레랑은 커피 인물사에서 제법 비중 있는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유사한 표현이 이보다 훨씬 앞서 터키 속담(‘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렬하고,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과 헝가리 격언(‘좋은 커피는 악마처럼 검어야 하고, 지옥처럼 뜨거워야 하며, 키스처럼 달콤해야 한다’)에 나온다.  

커피를 사랑한 덕분인지 탈레랑의 지성적 각성은 대단했다. 그는 바스티유 습격 1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했다가 ‘혁명의 주교’로 불리며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했다. 그 후 탈레랑은 외교계에 입문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를 정계에 진출시킨다. 나폴레옹도 계몽사상가들처럼 카페 르 프로코프를 들락거렸다. 값을 치를 형편이 못 될 땐 모자를 맡기면서까지 커피를 마셨다. 1804년 황제가 된 후 기독교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커피를 군대 보급품으로 정했다. 나폴레옹은 커피를 마셔야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마니아였다고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 발자크(1799~1850)는 하루에 50잔씩의 커피를 마시며, 2472명이 등장하는 ‘인간희극’ 등 100여 편의 장·단편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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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프랑스 작가)
 초인적인 끈기로 장편소설 74편을 비롯! 많은 단편을 남긴 작가.
 어느 종계학자는 발자크가 평생 마신 커피가 50,000 잔 정도라고 추산.

 

⊙탈레랑(프랑스 외교관이자 작가)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바흐(독일 작곡가)
 카페 칸타타를 즐기다..

 

⊙베토벤(독일 작곡가)
 베버가 베토벤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집 묘사!!
 "방안이 온통 악보와 옷으로 어지럽혀 있으나 
                  테이블에는 악보용지 한 장과 끓고 있는 커피뿐이였다"

 

⊙브람스(독일작곡가)
 자기 아닌 다른 누구도 커피를 못 끓이게 했다!!

 

⊙칸트(독일 철학자)
 철저히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하인이 커피를 빨리 끓이지 못하면

가만히 있지 못했다고 한다.

 

⊙사르트르(프랑스 작가, 실존주의 사상가)
 카페를 집필실로 삼았다.

 

⊙루소와 볼테르(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계몽사상가)
 루소 " 아 이제 더 이상 커피잔을 들수 없구나"라고 말한뒤 운명!!
 볼테르는 하루에 50잔 넘게 마신 메니아, 84세까지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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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mania 이야기
  • 정균화 명예회장 교수
정균화 명예회장 교수

‘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香氣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惡魔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프랑스 作家’타테랑‘(1754~1838)의 커피禮讚 글이다. 또“커피가 위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념들은 위대한 군대처럼 전쟁터 앞으로 나가고 싸움이 벌어진다.” 프랑스의 文學家’발자크‘가 남긴 커피 예찬으로 그는 하루에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

'바흐'의 세속 칸타타 중에서는 이 「커피 칸타타」와 다음의 「농민 칸타타」가 가장 유명하다. 커피가 독일에 들어온 것은 17세기경인데 바흐(1685년 ~ 1750)도 애음가의 한 사람으로 「커피 칸타타」는 바흐의 일상생활을 엿보게 하는 것들 중의 하나다. 이 「커피 칸타타」는 프리드리히 헨리가 쓴 극시(劇詩)에 의한 것으로서, 당시의 처녀들이 커피에 열중하는 것을 부친이 한탄하면서, '너에게 좋은 신랑을 속히 중매해 줄 테니 커피를 너무 마시지 말라’고 말한다. 마지막에는 합창으로 커피의 예찬이 떠들썩하게 불려지는 1732년경(세속 칸타타 제211번)다.

初期의 ‘카페하우스’는 貴族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카페하우스는 신문을 읽거나 카드놀이, 당구, 체스를 즐기는 공간이자 社交클럽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커피가 점차 대중화되면서 일반 시민들도 카페하우수를 자주 찾게 되었고, 19세기에는 여성들에게도 출입이 허용되었다. 20세기 초반 빈의 카페하우스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보헤미안, 예술가, 지식인들의 休息處였다. 지식인 알프레드 폴가는 빈에 번성한 카페하우스를 가리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옆자리에 벗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오늘의 우리 커피숍도 20세기를 거슬러 올라 응접실, 공부방, 미팅룸, 회의실, 미니레스트랑형태의 자유공간으로 回遊변천하고 있다. 커피는 영어로 ‘coffee’, 식물학적으로는 ‘coffea’로 불린다. 英國에서는 ’아라비아 와인‘으로 불리다 1650년경 커피 애호가였던 ’헨리 블런트‘卿이 커피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최근 들어 커피가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를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커피는 醫藥品으로 이용되다가 오늘날처럼 飮料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예멘을 비롯한 이슬람 세계에서 커피는 종교의식 또는 의학과 깊은 상관관계를 맺으며 확산됐다. 커피는 담석, 통풍, 천연두, 홍역, 기침 등 놀랄 만큼 다양한 질병에 대한 治療劑로 처방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주인이던 터키인들은 커피의 藥效를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醫學者 ’프로스페르 알피누스‘는 자신의 의학 서적에서 "(커피)는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거나 生理痛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에게 특효가 있다"고 적었다. 18세기 독일 의학자인 ’크리스찬 하네만‘도 "커피는 醫藥品"이라고 인정했다.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확산되면서 커피의 效能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는 의학자들이 늘어났다. 영국 醫師’손튼‘는 "커피 한 잔은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강하고 활기차게 해준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보다 우리를 더 새롭고 활기차게 해주는 것은 없다"고 稱頌했다.

커피는 중독성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커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에 놀라운 효과를 끼친다고 여러 연구기관의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筆者역시 커피를 愛好하는 메니아(mania)다. 진한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3~5잔을 마신다. 아직까지 건강에 도움이 되고 다양한 ’칼럼‘을 쓸 수 있는 原動力인 커피를 지적음료로 禮讚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발표되었던 커피의 효능을 열거해본다. ’기억력증가’ ,‘피부암보호’, ‘간 예방’,‘우울증치료’(하버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3~4잔의 커피를 마시는 여성은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이 20%로 감소)‘심장활력’,‘에너지증가’(美온라인 학술지에 운동효과 발표), ‘당뇨병예방’ (하루에 6잔의 커피당뇨병의 위험도를 33% 줄이는 것으로 하버드 연구결과 ),‘발 건강’(하루에 6잔의 커피를 마시게 되면 남성들의 경우 통풍(gout)의 발생을 59% 감소).

“이해력을 높이고 싶다면 커피를 마셔라. 커피는 지적인 음료다.”<시드니 스미스>

/정균화 명예회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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