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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산지석] - 이 세상에 언어가 없다면...
2018년 01월 05일 00시 44분  조회:3084  추천:0  작성자: 죽림
언어, 외래어 잡담...
2017년 12월 29일 작성자: 최세만
 
이 세상에 언어가 없다면 거의 소통이 불가능하고, 세계의 기억장치가 황폐해 질 것이 뻔하다. 언어는 민족과 국가가 생존하는데 뿌리와 초석과도 같다. 언어는 나라환경 영향을 받으며 편향적인 ‘극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중국은 93%이상이 한어(汉语)를 사용하는데, 소수민족은 한어를 잘 못해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사업과 생활에서 한어가 짧아 자기 의사 표달이 잘 안 되어 갑자르기도 한다. 한때는 우리민족이 인근에 민족학교가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자식을 한족학교로 떠미는 현상이 많았다. 자식 출세를 위해선 한족학교로 보내는 것을 당연한 줄로 알았고, 적어도 중국에서 자기 앞의 말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때는 한족학교에 나와 한어로 꽝-꽝 말하는 사람을 흠모하기 까지 했다. 
 
그렇게 조선어가 밀리다가 천지극변이 일어난 것이다. 92년 중한수교로 많은 인파가 한국행을 하면서 한국어(조선말)의 위상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한국기업이 중국대륙 진출로 한국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더욱이 2007년도에 출범 된 무연고동포 한국어능력시험 전산추첨으로 하여, 한국어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는 교원들이 신이 나 했고, 배우는 학생들이 자부심을 얻게 되었다. 한족들까지 한국어를 배우는 열조가 일어났다. 그런 기류속에 성년이 다 된 자식들은 자기를 한족학교로 떠밀었던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헌데 직접 한국에 와 보면 한국말을 알고 쓸 줄 안다고 으시대다간 큰코를 다칠 수도 있다. 한국 땅을 디디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거리 마다 촘촘하게 붙은 간판이다. 한국어로 된 간판과 영어발음으로 된 간판이 반반을 차지 한다. 영어발음 공부를 하지 않고선 눈 뜬 소경과 다를 바 없다. 하이마트니(전자품상점), 모텔(큰 여인숙)이니, 인테리어(실내 장식)요 하는 것들은 묻지 않고선 모른다. 미국사람도 이런 간판을 보고는 어리둥절 할 게다. 발음은 영어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 문자는 한글로 씌어져 있기 때문이다. 발음만 영어로 되었어도 미적 감각을 주는 훌륭한 '디자인'으로 보는 것일까. 아마 이 나라 사람, 디자인 설계사들은 자기 나라 한글명사로 달면 촌스럽게 여기는 모양이다. 낙후하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보는 것 같다. 기실 한국 농촌은 신선하다. 구시대적인 원양(原样)에서 벗어 났다고 할 수 있다. 
 
7년 전, 내가 한국 와서 처음 찾은 일이 식당 숯불장치었다. 식당이름이 “모이세 돼지갈비”인데 첫날 사장한데 물었다. “‘모이세’ 는 무슨 영어 단어입니까?” “그저 ‘모이세요’ (모두어라)하는 한국말이지요.” 허참, 영어 간판으로 된 이름이 하도 많기에 무엇이나 외래어로 착각했던 것이다. 한국인의 대화에서도 외국어 발음이 빈번히 튕겨 나온다. 삼성반도체에 갓 출근했을 때 일이다. 그때 한 반장이 “와이프 왔어요?” 하는 말에 나는 옆의 친구를 툭 치며 누구 와이프를 말하는가고 물어 본 일이 있었다. 나는 아내를 영어로 와이프라고 한다는 것을 김성종 추리소설에서 본 기억이 났다. 친구로부터 아까 반장이 말한 ‘와이프’는 비닐에 포장한 고급스런 물걸레(물티슈)란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하품 같은 웃음이 나왔다. 우리 동포들이 건설현장에서 영어로 된 장비이름을 몰라 상사들한테 야단을 맞는 일은 보통 일이다. 동포들이 사투리를 많이 쓴다고 따가운 눈총을 받을 때도 많다. 
 
한국인은 미국을 좋아하며, 미국 영어에 친숙하다. 일상 대화나 발언에서 보면, 생소한 영어단어를 살살 끼워 넣으며 유식함을 드러낸다. 조선족이 말을 하다보면 습관적으로 중국 단어(单词)발음을 입에 그대로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실지 한국은 세종이 우리 한글을 창제하기 전 까지는 중국 한자(汉字)를 써왔다. 지금도 지식인, 학자들은 한자로 뜻풀이에 많이 활용한다. 그러니 중국한테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실지는 그렇지 않다. 외래어를 잘 모르고 조선말 사투리를 한다고 폄하된다. 그리고 적지 않은 한국인은 자기네 나라에 와서 3D종 같은 허드레 일을 하며 돈을 버는 동포들을 시답잖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실지 한국인은 중국 동포 보다는 재미동포들을 더 곱게 바라 본다. 그것은 이 나라에서 온 동포들은 영어도 잘 하고, 돈도 많고 ‘문명’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옛날 어르신들이 자주 했던 말이 적중 할 것 같다. “잘 사는 집 애는 밥을 복스럽게 먹고, 못 사는 집 애는 밥을 게걸스레 먹는다.” 
 
많은 한국인이 영어 발음에 치중하면서 미국을 지고 지순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친미감정’에 조금은 얄미스럽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반도체에 출근 할 때, 휴식시간에 한국인 친구와 북한(조선) 얘기를 꺼냈다. 그때 나는 뜬금없이 불쑥 질문을 하나 던졌다. “북한과 국군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국군이 이기지요. 한국에는 미군이 있잖아요.” “그러니 북한방송이 자꾸 한국을 ‘남조선00집단’이라 하지 않아요!” . ‘익살스레’ 한 말이기에 이 친구는 덤덤하게 나를 쳐다 보기만 했다. 나는 이 한국인 엘리트친구하고는 스스럽없이 아무 대화나 주고받는 처지라,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도 막 던지군 한다. 
 
한국이 미국을 믿고 좋아하고, 중국을 멀리 하는 것 쯤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그들을 도와 싸웠고, 휴전시기엔 미국의 경제적 협조를 많이 받았다. 이것을 한국인은 잊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인(일부)이 순전히 미국에 편향하고 중국을 싫어한다고 보면 안 된다. 사실 한국인들이 중국을 부러워 하는 측면도 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땅덩어리도 엄청나게 큰 것을 부러워 한다. 실지 한국은 조선반도가 작은데다 두 동강으로 짝 갈라진데 서운해 하고,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다 중국이 국방,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놀랍게 바라 보고 있다. 만일 중국이 더 큰 경제성장을 가져 와 우리 동포들이 한국에 와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때, 진정 한국은 중국을 부럽고 보기 좋게 바라 볼 수도 있다. 
 
당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 서면서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빙하가 풀리고 있다. 아울러 이전보다 더 좋은 경제협력파트너로 이어지는 전망이 눈앞에 다가 온다. 한국인이 미국과 그 영어를 좋아하듯이,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과도 가까워지려 하고 중국어도 더 사랑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아진다. 

///길림신문 해외판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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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酒)
2017년 10월 13일 작성자: 최세만


인생에 한 번도 취해 안 보면 종생 ‘유감(遗憾)’이고, 자주 취해 있으면 종생 ‘유한(遗恨)’일 것 같다.

서먹하고 섞이지 않았던 사람도 한순간에 십년지기처럼 가까워지기도 하고, 낯선 남녀에게 사랑의 묘약으로 작용해 뜨겁게 타오르기도 한다. 잘 지내던 사람도 조그마한 거슬린 말에 뜬금없이 화를 내며 앙숙이 되기도 한다. 또 술에서 깨어나면 앙금을 풀며 더 친해지기도 한다. 요술사 같은 술의 ‘매력’이다. 이 세상에 술은 희로애락이 반복하는 일상을 살아가는데 마음의 ‘안착제’이기도 하다.

내가 술을 알게 된 것은 열두 살 때다. 선친의 군용물통에 담겨있는 술을 홀짝 맛보면서 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술통이 비어 있으면 술통을 꺼꾸러 들고 코로 킁킁 술내를 맡았다. 사과이상의 향기가 났다. 선친은 술이 적고 돈이 그리울 때라 병술(瓶酒)은 엄두를 못 냈고 작은 술단지에 술을 담아 넣고 마실 그런 형편도 못 되었다. 매양 두 근 자리 군용술통으로 술을 받아서 마셨으니 술이 비어 있을 때도 술통안의 술향만은 짙어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때의 그 술향이 잊히지 않는다.

77년 3월, 학교 교원으로 들어갔다. 선생들도 드문드문 회식을 한다. 술이 귀할 때라 공사(公社)상점에 술이 없으면 내가 좀 젊었다고 육리를 걸어서 외촌 가게 가서 술을 받아오던 것이 어제 일 같다.

그 때 우리가 즐겨 마셨던 술은 고성빼주 (古城百酒), 오가백(五加白), 닝안라오빼갈(宁安老白干)이었다. 명나라 덕원용이란 곳에서 양조한 고량주가 맛도 좋고 빛깔도 무색 투명하여 ‘빼갈’이라 했다. 지금 베이징 ‘이과두주(二锅头)’니 하는 것이 대표적인 셈이다. 닝안라오빼갈 같은 술은 우리 청년교원들은 저 마다 한 병(500그람, 42%)씩 굽을 냈다. 취기가 좀 돌지만 술 마신 티가 나지 않았다. 마신 뒤 기분은 언제나 상쾌했고, 마음은 허공에 날아 있는듯한 기분이었다.

술이란 원래 인류의 형성과 더불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마셨다 한다. 과일을 저장해 두면 뭉크러져 과즙이 흘러나오고 자연에 존재하는 효모에 의해 자연발효 되어 저절로 술이 빚어지게 된 것이다. 취기가 돌고 기분이 좋아지는 이 ‘원시적 발견’을 터득한 후세 사람들은 밀(大麦)로 누룩 잡아 곡식을 넣고 발효시켜 오늘날까지 애음하고 있다. 이렇게 과일이나 곡식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양조주라고 한다. 맥주, 탁주(막걸리), 고량주, 위미주(옥수수술)가 그런 것이다. 인간은 또 증류 기술을 이용하여 알코올을 농축한 증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고급스런 양주인데 위스키, 브랜디, 데킬라 같은 것들이다.

대부분의 술은 그래도 양식으로 제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양식을 절약하자는 목적에서 술을 금했던 세월도 있었다. 일제시대, 일본은 군량미 확보를 위해 민간에서 술을 빚는 것을 통제했다. 일본 순경들이 술을 빚는 민가만 발견하면 수색하고, 붙들어 가기가 일수였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인 육칠십 년대에도 술 조사가 난리법석을 피웠다 한다. 그 시대 한국도 곡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먹을 쌀도 없는데 그 쌀로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을 범죄로 다스렸다. 육칠십 년대 술이 귀했던 중국과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귀한 술이라서 그랬던지 그 년대는 같이 술 먹는 사람도 서로 오붓하게 앉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더구나 술 마시면서 정담(情谈)으로 웃는 빈도가 잦아지니 가히 금상첨화라 할 수 있었다. 술상에서 술을 잘 마시고, 야한 말도 잘하는 사람이 학교선생들이라고 많은 사람들의 정평에 나 있었다. 낮에는 학생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술 마시면서라도 그 스트레스를 풀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수년이 지나고 생활이 펴이면서 술의 ‘희락성’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술도 너무 잦고 과다하면 말실수, 행위 실수로 번지기 쉽다. 제일 잊히지 않았던 것은 그 해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95년 1월 중순, 성 교육학원(하얼빈)에서 조선언어문학 학습반을 조직했다. 수업이 끝나서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떠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말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였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일상이 복잡해진 까닭일까, 살기가 팍팍해서일까? 술자리가 거칠고 삭막해 질 때도 있었다. 술에 취하면 평소에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켜 동석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깔아 뭉긴 채 자기만 똑똑해져 버리는 엉터리 ‘술꾼’도 있다. 다른 사람이 말 할 기회를 막아버리고 덧없이 지나간 옛일을 자랑삼아 늘어놓아 말을 듣는 재미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과음, 피로, 개인 사유로 회의 참석자 80여명에서 열흘간의 교수 강의를 다 듣지 못 하고 중도 하차한 사람이 과반수다. 나도 이틀 앞두고 그날 저녁에 귀가하려다가 기차를 타지 못해 가지 못 했다. 모두 술의 작간이었다. 한 주일간 ‘술 전쟁’으로 피로하고 정신이 혼동됐던 것이다. 맥주 같은 것을 전혀 입가에 대지 않고 빼주만 들입다 마신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날 저녁도 술을 잔뜩 마시고 기차역에 갔는데 기차표가 다 팔리고 없었다. 그래서 여관에 묵기로 했다. 마침 이쁜 여관안내아가씨가 상큼 걸어왔다. 자기네 여관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여관비 12위안밖에 안 된다고 하니 순순히 이 여자를 따랐다.

차를 타고 20분 거리 달려 지정여관에서 내렸다. 그런데 말과는 달리 카운터아가씨는 합방이 30위안이고, 단칸방이 50위안이라고 했다. 나는 속았다는 배신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데 가 봐도 그렇겠지 하고 여기서 하루 밤을 묵고 아침차로 떠나려고 마음 정했다. 연 며칠 과량 술로 하여 편안한 단칸방을 요구했다.

그런데 저녁 9시쯤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여니 카운터에서 돈을 받던 여자가 조용히 들어왔다. 30대초반의 이 여자는 짙은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내 침대에 살포시 앉더니만 내 손을 만지작거리고, 내 얼굴을 쓰담으며 “얼굴도 요렇게 하얗고 말쑥하지...”하며 한어(汉语)로 쫑알거렸다. 그러면서 옷까지 벗으려 했다. 나는 너무 피로해 자겠으니 빨리 나가라고 했다. 이 미녀는 멋이 적었던지 살그머니 나가는 것이었다. 한 시간 후, 노크소리가 또 들렸다. 연속 노크했어도 나는 잠자코 응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 노크하더니 조용해졌다.

이런 미모의 여인을 두고 싫어 할 남자는 없을 게다. 그런데 나는 술을 많이 마셨지만 ‘이지’의 방어선만은 허물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신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내 뇌리를 지배했다. ‘개방적 남성’들은 나를 두고 목석처럼 멋이 없다고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했다. 이튿날 집으로 돌아왔는데 술에 찌들기는 했지만 마음만은 ‘부끄럼 없이’ 당당했다.

이렇게 술에 몹시 착착해져 학습에 영향을 준 일도 있었다. 하지만 여색에만 감각이 무뎌 ‘사랑풍파’의 위기는 넘겼던 게다. 그러니 나에게는 꼭 술의 절제만은 필요하다. 못난 말은 다시 외우고 싶지는 않지만, 글쎄 와이프가 한국수속에 수 만 위안의 돈을 떼였을 때는 답답하고 막연한 생각으로 매일 한 근 이상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런 폭음은 나의 이미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후에 건강검진도 하고, 한국에 와서도 정밀검사를 했는데 생각 밖으로 간, 폐가 모두 정상 수치에 달했다. 와이프도 “그렇게 술을 많이 했는데도 간이 좋다니” 하며 의아스러워 하면서 놀라는 기색을 보이곤 했다.

나는 철저한 유물론자이지만 ‘유심사상’도 더러 있다. 술을 마실 때 남에게 자극 주는 말은 삼가고,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받는 일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며,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는 것을 몹시 꺼려한다. 나 자신도 그리 우수한 편이 못 되니 말이다. 혹간 남의 기분을 잡치며 상처 준 일이 있었다면 고민하고 후회하고 사죄한다. 집에서 술을 마실 때도 남을 평가하거나 남의 뒷욕을 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아마 이런 마음가짐이 나에게 ‘엄청난 병마’를 주지 않은 것이라고 ‘유치’하고 ‘유심적’으로 제 좋은 생각을 굴려보곤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언제나 기분이 한껏 고조 되어 낙천적인 처신을 하는 것이 좋다. 최고의 술맛은 좋은 분위기, 너그러운 마음가짐, 친구들과의 호탕한 어울림 속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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