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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무너뜨리기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쉽게...
2018년 04월 21일 01시 36분  조회:3450  추천:0  작성자: 죽림

베를린 장벽은 동서 냉전의 산물이자 분단의 상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분단되자 동독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대거 탈출했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 탈출자는 280만명에 이르렀다. 동독에는 막대한 고급 경제 인력의 손실이자 정권의 위기를 의미했다. 동독정권은 더 이상의 탈출 물결을 막고 동독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을 세운 것이다. 호네커는 1992년 재판에서 "장벽을 건설하지 않았더라면 동독은 1961년에 이미 무너졌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1989년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출과 월요데모로 동독 정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됐다. '철의 장막'이 무너진 사건은 독일통일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38년 동안 동독 정권과 체제의 보호막이던 '철의 장막'이 어떻게 무너지게 됐을까. 이 역사적 순간은 동독 당국 제2인자의 실수로 촉발됐다.

1980년대 후반 동독의 경제상황은 계속 악화됐고 동독 주민들의 여행조건 완화에 대한 압력은 거세지고 있었다. 1989년 5월부터 확산된 월요데모에서 '여행의 자유'를 계속 요구하고 탈출자가 늘어나자 동독정부는 여행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새 여행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요인은 재정문제였다. 동독 여행자들에게 제공해줘야 하는 외화가 충분히 없었던 것이다. 동독 지도부는 고민 끝에 1989년 10월 말 서독정부에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독재 독점권력 포기, 자유선거 실시 등 정치개혁부터 하라고 요구했다. 외환 부족 때문에 여행법 개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시민들의 '여행자유화' 요구는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오후 7시7분 전 기자회견에서 샤보브스키 당 대변인이 사고를 쳤다. 그는 새 여행법 초안을 설명하면서 "동독 주민들이 제3국을 통하지 않고 바로 서독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기로 결정했다"라고 발표했다. 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행 허가가 즉시 내려진다"라고 덧붙였다. 이때 이탈리아 ANSA통신사 기자가 "이 법률이 언제부터 발효되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브리핑 자료를 들춰보며 "내가 알기로는 즉각, 지체없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는 당 서기장 크렌츠로부터 회견 직전에 여행법 개정안을 건네받아서 대충 읽어보고 나간 상태라 내용을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질문이 사건을 더 키웠다. "서독만 얘기했는데 서베를린도 해당되는가?" 그는 "그렇다. 동독에서 서독 그리고 서베를린으로 가는 모든 국경 통과소가 다 해당된다"고 답변했다.

기자회견은 동독 텔레비전으로 생방송되고 곧바로 통신사들과 서독 방송사들은 톱뉴스로 '동독이 국경을 개방했다'는 헤드라인 뉴스를 내보냈다. 이 소식을 접한 동독주민들이 바로 국경통과소로 몰려갔다. 상부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못한 국경수비대원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12시쯤 수많은 군중의 힘에 못이겨 동서베를린의 모든 국경통과소가 개방됐고 동·서독 주민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의 도가니에 빠졌다. 다음날 사태를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독지도부는 전면적인 여행자유화를 선언했다. 동.서독 경계선의 모든 국경통과소가 완전히 개방됐으며 동독 시민들은 장벽을 망치와 정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통일 후 독일 제2방송인 ZDF는 샤보브스키의 발언을 '독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실수'로 표현했다. 베를린 장벽의 개방은 그의 말실수로 촉발됐지만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과 거센 저항으로부터 시작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권의 보호막이던 장벽이 제거되자 동독정권의 종말도 시간문제였다. 이와 함께 독일 분단의 종말도 시작되고 있었다. 동·서독 국민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게 되자 독일은 사실상 통일된 것과 다름없었다.

/양창석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감사


=========================덤으로 더...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년 뒤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 콜 서독 수상, 브란트 전 수상을 비롯한 많은 독일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生前엔 통일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통일이 언제 이뤄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질학자들에게 친숙한 시간 단위로 논의해야 한다는 농담도 등장하였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사건에 대응하기 바쁜 정치인들일수록 역사적 변화를 感知하는 데 무딘 경우가 많다. 
 
 *1984년 브란트 전 수상은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아무 실효가 없으므로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1988년 기민당 출신의 스투트가르트 시장 만프레드 롬멜이 "독일통일은 완전히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해도 정치적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았다. 
 
 *1988년 10월 콜 독일 수상은 모스크바를 방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났다. 그 후 한 기자가 언젠가는 고르바초프가 독일에 통일을 제의하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콜은 비꼬는 투로 답하였다: "나는 (영국인 소설가) 웰즈처럼 미래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질문은 판타지의 領域에 속한다." 
 
 *동독을 탈출한 사람들이 유럽의 서독 대사관으로 들어가 농성중일 때인 1989년 여름 서독 지식인들은 '이젠 공식적으로 동서독 통일의 포기를 선언해야 될 때가 온 것이 아닌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주간지 '슈피겔'은 카버 스토리로 왜 정부가 西獨 대사관을 찾는 東獨 사람들을 받아주느냐고 따졌다. 
 
 *1989년 8월15일 서독의 콜 수상은 기자들에게 "나와 호네커 동독 당국 서기장은 지금 유지하는 우호 정책을 계속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은 유럽방문을 앞둔 1989년 10월25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청와대에서 빌리 브란트 서독 前 수상을 접견시, 1970년대 동방정책으로 동서독 교류 시대를 열었던 브란트 전 수상은 “독일의 통일과 구라파의 통합이 매우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통합이 이뤄진 다음에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라파 통합은 그 과정에서 어떤 차질이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적 추세는 분명합니다. 서구의 통합은 中歐를 흡수해서 확대되어 갈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독일 통일의 여건도 유리하게 될 것입니다. 독일의 통일은 꼭 한 나라(One State)가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역사상 독일이 단일국가였던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일차적으로 하나의 국가연합(confederation)의 형태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통합은 과거 George Kennan이 半유럽국가(Half-European Countries)로 불렀던 미국과 소련으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동독이 민주화가 되면, 비록 그것이 서독과 똑같은 정도의 것이 아니고 비슷한 것으로라도 변화된다면, 통일의 가능성은 보다 희망적이 될 것입니다”
 
  브란트가 독일 통일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불과 2주일 뒤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그 1년 뒤 (브란트가 생각하였던 중간단계 없이 바로) 완전한 통일을 이루게 된다. 
 역사는 한번 구르면 가속도가 붙게 된다. 유식자층일수록 南北통일을 비관적으로 보는데, "통일이 도둑처럼 올 것이다"...


=================


(시우다드후아레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5월 3일 (현지시간) 미국 뉴멕시코 주 선랜드파크와 멕시코의 시우다드후아레스 사이 국경장벽에 손을 대고 양국 종교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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