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컴퓨터 변성준(왼쪽) 대표와 윤디자인 편석훈 대표가 '한컴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을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나란히 섰다. 한컴이 창사 30주년을 맞아 개발하고 올해 한글날 공개한 이 글꼴은 윤디자인이 디자인을 맡아 훈민정음 해례본을 원본에 가깝게 복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한글과컴퓨터 변성준(왼쪽) 대표와 윤디자인 편석훈 대표가 '한컴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을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나란히 섰다. 한컴이 창사 30주년을 맞아 개발하고 올해 한글날 공개한 이 글꼴은 윤디자인이 디자인을 맡아 훈민정음 해례본을 원본에 가깝게 복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옛 문헌 속 한글을 디지털 글꼴로 되살려서 현대에도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앞으로 해나갈 계획입니다. 올해 창사 30주년을 맞은 한컴이 한글의 시작을 재조명한다는 의미에서 훈민정음부터 시작했죠.”(한글과컴퓨터 변성준 대표)

“훈민정음 기반의 글꼴은 전에도 있었지만 대개 현대적 재해석을 많이 가미했어요. 이번에는 원본에 최대한 가깝게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차별화했습니다.”(윤디자인 편석훈 대표)

최근 서울 마포구 윤디자인에서 마주 앉은 변성준·편석훈 대표가 말했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 ‘한글’을 만든 한컴은 한글의 우수함과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온 소프트웨어 회사, 윤디자인은 국내 대표적 글꼴 디자인 회사다. 의기투합한 양사는 ‘한컴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을 개발해 올해 한글날 무료로 공개했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만들고 배포하는 글꼴의 상당수가 마케팅 목적인 것과 달리 한컴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글꼴에 접근한다. 변성준 대표는 “한컴오피스 프로그램에 저작권 걱정 없는 ‘안심글꼴파일’을 탑재하고, 한글 글꼴 확산에 활용하고 있다”면서 “선뜻 나서기 어려운 옛 한글의 디지털 복원도 한컴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고 했다.

이 글꼴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복원이라는 목표에서 비롯된 중요한 특징이 있다. 우선 글자의 비례 등을 해례본처럼 세로쓰기에 최적화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방식이 아니지만 편석훈 대표는 “특별한 분위기를 내기 위한 디자인 작업에 쓰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책등이나 세로 간판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문장부호도 세로쓰기에 맞게 디자인하고 권점(문장 끝에 마침표처럼 찍는 작은 동그라미) 같은 세로쓰기용 부호도 만들었다.

이제는 거의 잊힌 훈민정음의 옛 자모들까지 지원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현대 한글의 자모를 결합해 만들어낼 수 있는 글자는 총 1만1172가지. 여기에 옛 자모를 추가하자 그 수가 163만8750가지로 늘었다. “옛 한글로 구현할 수 있는 최대 글자 수”라고 한다. 변성준 대표는 “옛 한글은 연구 목적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개발 과정에서 자문에 응해주신 전문가들도 ‘옛 한글을 충분히 지원하는 글꼴을 한컴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한글과컴퓨터에서 개발한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로 훈민정음 서문 도입부를 입력한 모습.
 
한글과컴퓨터에서 개발한 훈민정음 세로쓰기 글꼴로 훈민정음 서문 도입부를 입력한 모습.

해례본에 한글 ‘온자’(초성·중성·종성이 모두 결합된 글자)는 176자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체 글자의 구조를 설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동국정운이나 석보상절처럼 한글이 등장하는 비슷한 시대 문헌을 참고해 비례와 형태를 도출했다. 반대로 훈민정음 글씨에 내재된 기하학적 속성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편 대표는 “훈민정음은 현대적이고 기하학적인 미감을 갖고 있어서 붓글씨의 표현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글자보다 분석하고 체계를 세우기가 용이한 면이 있다”고 했다. 훈민정음엔 없는 영문자를 한글과 어울리게 디자인하는 일도 생각보다 수월했다고 한다. 예컨대 훈민정음은 모음의 짧은 줄기를 선으로 긋지 않고 점으로 찍었는데, 이 점을 ‘i’나 ‘j’ 같은 영문자의 점과 비슷하게 만들어 통일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이 글꼴은 한컴이 만든 웹사이트(font.hancom.com)에서 누구나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웹사이트에는 이 외에 한컴의 브랜드 글꼴 등도 공개돼 있으며 앞으로 개발하는 글꼴들도 올라올 예정이다. 변성준·편석훈 대표는 “앞으로 훈민정음 가로쓰기 글꼴을 개발하고, 용비어천가 같은 다른 문헌의 한글도 글꼴로 되살릴 계획”이라면서 “디지털로 복원된 한글이 후대에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