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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렬사비19]장세걸 홍14군기념관에 동상으로 모셔져
2017년 06월 13일 19시 01분  조회:1283  추천:0  작성자: 리함

건군 90돐 기념 특별기획-중국대륙의 겨레렬사기념비 (19)

■ 리 함

1

 

 

장세걸 자료사진

꼭 남방의 강남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머나먼 강남땅 남통에서 여고로 달리는 뻐스에서 차창밖을 내다보노라니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황금물결 밀밭들이며 한창 씨털이에 여념없는 누우런 유채들이며 눈꽃처럼 하얗게 피여있는 류달리 커다란 여름 흰 목련들이며 모두가 이 시절 북방에서 볼 수 없는 강남만의 현상들이다. 5월의 강남 진풍경 속에, 강남의 생활 속에 묻혀있다는 착각이 그리도 달콤할 수가 없다.

 

신나는 도취 속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더니 어느덧 강소 여고시 중심뻐스부가 눈앞에 나타난다. 50여키로메터 거리를 한시간에 달려내니 꿈결에도 그리던 여고 땅이 반기여 준다. 뒤미처 이곳 홍14군 제1사 사장으로 활동했던 장세걸의 발자취 어린 홍14군기념관이 얼싸 품어준다. 드디여 여고란 강남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되였으니 들뜬 기분은 둥둥 부풀기만 한다.

그런데 둥둥 기분도 한때라 홍14군기념관 바깥 입구를 지나 기념관 어구에 이르니 한창 기념관 1층 중앙홀 청소에 나선 녀청소공들은 오늘은 월요일이라 기념관은 문을 열지 않는단다. 그 소리가 뢰성벽력으로 되여 온몸을 강타한다. 머얼리 산동 위해서 강소 여고로 달려온 뜨거운 열성이 와그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천길나락에 떨어지는 기분일가, 한참이나 어정쩡한 기분 속에서 헤여나지 못하였다. 멀리멀리서 달려왔어도 방법이 없다는 그녀들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기념관 사람들이 모두 휴식이라는데야. 찰나, 기념관 중앙홀 내에 름름히 일어선 홍14군 17명 장령들 동상군체가 시선에 잡혀온다. 그래 저 17명 장령들 동상군체를 보려고 다시 달려온 내가 아니였던가. 녀청소공들을 보고 중앙홀 내 17명 장령 동상군체만 잠간 보고 돌아서겠다고 청드니 그럼 행동을 빨리하라고 한다. 그러는 녀청소공들이 고맙기만 하다.

홍14군기념관 1층 중앙홀에 모셔진 홍14군 17명 장령들 동상군체. 이중 한 동상이 당년 홍14군 1사 사장 장세걸.

다시 꺼내보지만 강소 여고 땅 홍14군기념관 내 휘영청 넓은 중앙홀에는 홍14군의 장령들을 형상화한 17명 장령들 동상군체가 우람차게 서있다. 저 동상군체들 속에는 1930년에 벌써 홍14군 1사 사장이였던 장세걸도 섞이였으리만 5년 전 처음 이곳을 찾을 때는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하였었다. 그것이 늘 마음을 허빈다. 그래서 근 2000리 길도 마다하고 홍14군기념관을 다시 찾으니 우리 겨레 장세걸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 싶다.

소중한 기회, 소중한 시간. 나는 홍14군 17명 장령 동상군체 하나하나에 눈길을 박아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살펴보아도 동상들마다 누구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17명 장령 군체의 조각과 위치, 배치로 보아 장세걸도 이들 17명 동상군체 속에 섞이였음은 틀림이 없다. 너무도 자명한 일이렷다.

2

이날은 2017년 5월 22일, 시침은 오전 8시 직전을 가리킨다. 홍14군기념관 1층 중앙홀에 일어선 17명 장령 동상군체는 실명으로 밝혀지지 않았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홍14군기념관을 다시 찾음은 바로 실명이냐, 실명이 아니냐를 알자는 것이니 기념관 내 이모저모를 다시 돌아볼 수 없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원인은 간단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이미 홍14군기념관 구석구석을 샅샅이 찾으며 장세걸 관련 전시 모두를 보아냈으니 말이다. 이 기간 해마다 수차례씩 중문 바이두(百度)로 검색해 보아도 전시에서 변화는 알려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10여년 전만 해도 우리 조선족사회는 홍22군 참모장 장세걸이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 장세걸이라는 이름조차도 알지 못하였다. 새 세기에 들어선 후 2003년 가을부터 2년 남짓한 기간 중앙인민방송국 조선어부를 중심으로 하는 보도매체에서 중국대륙의 겨레 반일투쟁 유적지 답사를 조직하면서 장세걸이라는 홍군의 고급장령을 찾아냈으니 그것이 처음이였다. 그때를 두고 중앙인민방송국 기자 김성룡씨는 김성룡 저, 최룡수 감수로 된 《불멸의 발자취》(민족출판사, 2005년 11월 출판, 제237페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강소 여고시의 홍14군기념관에 이르러

《중국공산당 조직사 자료》 제2권에는 홍군시절의 다른 한 조선인 군사장령의 이름이 나온다. 중국로농홍군 제22군 군장은 진의였고 참모장은 장세걸이였는데 장세걸은 조선인이라고 밝혀있다. 그러나 조선혁명가 장세걸에 대해서도 더 이상 연구가 없다.

그때까지 조선인 장세걸에 대해 아는 것이 홍22군 참모장이 전부였다. 하기에 김성룡씨는 여기 책에서 “고위장령 장세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없는 것이 안타까왔다”고 심경을 터놓았다. 필자도 《불멸의 발자취》를 통해서 조선인 장세걸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였으니 그 후 인터넷에서 여러 해를 두고 꾸준히 장세걸을 찾았으나 아무런 단서도 나서지 않았다.

그래도 맥을 버리지 않았더니 2011년 년말을 앞두고 인터넷에 장세걸은 조선이름으로 김홍묵이고 서울사람이며 홍22군 참모장에 앞서 홍14군 제1사 사장이라는 간단한 략력이 나타났다. 뒤미처 홍군음악가 최음파와 정강산 중대장 진룡학과 더불어 여태 몰랐던, 강소땅과 중앙혁명근거지에서 활동한 장세걸의 자료들이 보물을 이룬다. 가담가담 끊어지기는 하지만 수천자 정도의 인물전기는 얼마든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3

때는 2012년 1월 4일 밤이려니 온밤 기분이 둥둥 뜨면서 절정을 이룬다. 하루밤 새 잘 모르던 최음파, 진룡학, 장세걸 세 홍군렬사 자료가 마구 쏟아지니 흥분이 절정을 이룰 수 밖에 없나부다. 이튿날과 그 다음날 1월 5일, 1월 6일 밤도 이들 세 홍군렬사 자료 찾기로 밤을 새우다 싶이 했으니 장세걸이 일찍 활동한 강소 여고에 홍14군기념관이 있다는 글도 보인다. 대단한 발견이다. 한시급히 강서 여고로 달려가고 싶지만 대학에서 강의 중이여서 어찌할 수가 없다.

드디여 겨울방학이 닥쳐왔다. 2012년 1월 31일 마침내 절강 소흥-강소 남통 행 쾌속뻐스에 올랐으니 아침 7시 45분에 소흥을 출발한 쾌속뻐스는 330여키로메터 거리를 4시간 반에 축내며 남통중심뻐스부에 들어선다. 남통에서 다시 여고 행 뻐스를 잡으니 50여키로메터 사이가 한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어 여고시내에서 홍14군이란 굉장한 주제공원을 찾아냈으니 널다란 광장 너머로 정문에 큼직한 붉은 오각별을 박은 웅장한 건물이 보이였다.

홍14군기념관 주체건물

보고 또 보아도 광장 너머로 안겨오는 웅장한 건물은 제14군 기념관이 틀림없다. 꿈이 아니였다. 그렇게 찾고 싶던 홍14군 1사 사장 장세걸, 그렇게 찾고 싶던 장세걸 소속 부대가 하나의 거대한 기념관으로 되여 필자 앞에 나타난다. 그 날 나는 기념관 1층 중앙홀에서 홍14군 장병들 립체군상을 찾아보고, 기념관 전시청 한 구간에서 장세걸의 사진과 문자소개도 찾아내면서 엄청 기쁨 속에 빠져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중앙홀의 17명 립체군상이 홍14군의 장령들로 무어졌음을 알지 못하였다.

이 일을 두고 얼마나 후회하였는지 모른다. 그 후회는 지난해 2016년 《길림신문》에 장정기행 련재를 실으면서 생겨난 일이였다. 장세걸 련재물을 쓰면서 바이두(百度)에서 강소 여고의 홍14군기념관을 검색하니 2012년 1월 31일 그 날 오후 기념관 내 중앙홀에서 보고 사진 찍은 홍14군 장병 립체군상은 홍14군의 쟁쟁한 17명 장령들로 조각된 립체군상이였다. 홍14군 1사 사장인 장세걸도 립체군상 속의 한 조각상으로 섰다는 말이렷다. 이 점을 보아내지 못하였으니 두고두고 후회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2012년 1월 31일, 강서 여고의 홍14군기념관 현지답사는 후회가 있다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성공적이였다. 필자는 우선 바이두 등 인터넷 검색에서 얻어낸 장세걸 관련 모든 자료를 홍14군기념관 전시자료들과 홍14군 관련 책자들에서 모두 찾아내는 일대 성과를 거두었다. 다음은 이런 자료들 확인 뿐 아니라 여러 면으로 기성자료를 보다 풍부히 하는 성과를 이룰 수가 있었다. 이름 정도 뿐이던 중국홍군의 고급장령 장세걸 발자취가 쭈욱 이어졌다.

4

그 후도 장세걸 연구는 끊임없었다. 지금까지 알려지는 장세걸(张世杰, 1901-1933)은 홍14군 1사 사장이고 홍22군 참모장으로서 원명은 김홍묵(金洪默)이며 서울사람으로 나타난다. 서울에서도 종로구 수은동 5번지 내 뢰혜붕(汉城授恩洞五番地转 赖慧鹏)으로 또렷이 밝혀진다. 1925년에는 중국 남녘 땅 광주에 자리한 황포군관학교 제4기 생으로 들어가 군사를 배우며 그 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고 전한다. 관련 자료 연구로부터 보면 황포 4기 생 김홍묵은 키가 크고 실팍한 편이며 목소리까지 웅글어 제4기 동기생들한테서 ‘검은 곰’(黑瞎子)으로 통하고 있었다.

1926년 1월, 황포군관학교 제4기를 졸업한 후 김홍묵은 당조직의 지시로 국민혁명군 제4군 독립퇀 즉 엽정독립퇀 직속 공병련 중위 부련장 책임을 맡아나섰다. 이 해 5월 이후 위대한 북벌전쟁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는 국민혁명군 제4군 엽정독립퇀이 북벌군의 선견대로 우선 호남으로 진격하면서 북벌전쟁의 서막을 열어제끼자 김홍묵은 북벌군 선견대의 중위 부련장으로 나섰다.

홍14군기념관 넓은 정원에 나붓기는 홍14군 군기  /이상 사진 2017년 5월 22일 현지촬영

1927년 장개석의 상해 ‘4.12’반혁명정변과 국민정부 주석 왕정위의 무한 ‘7.15’ 혁명배반으로 제1차 국공합작이 파렬되고 기세 드높던 북벌전쟁—대혁명도 실패로 돌아갔다. 북벌전쟁에 뛰여든 수백명 겨레 전사의 한 사람으로 무한까지 진출하였던 김홍묵은 국민당반동파의 무자비한 백색공포에서 결연히 벗어나 상해에 가서 중공 한인지부를 찾았고 한인지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이였다. 1930년 4월 3일, 강소 여고에서 홍14군이 조직되면서 상해의 중앙군위와 중공 강소성위는 조선인 장세걸을 홍14군 제1사 사장 겸 제2퇀 퇀장으로 파견하였다.

장세걸의 강소 땅 출현은 이 같은 연유이지만 2011년 이전까지만도 중문 바이두(百度) 등에서 장세걸을 검색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2년 새해를 잡아 많은 연구자료들이 쏟아진 것은 나름의 연유가 있었다. 홍14군기념관이 2010년 4월 말에 준공되여 2011년 6월에 대외로 개방되니 강소 땅에서 활동한 홍14군 내 장세걸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숱한 연구자료들이 중문 인터넷에 오르게 되고 필자에게까지 다가서게 되였었다.

그래서 필자는 며칠 전 2017년 5월 22일에 가진 홍14군기념관 제2차 현지답사에서 기념관 이모저모를 돌아보지 못하여도 괜찮다고 보게 된다. 홍14군기념관 1층 중앙홀 재차 답사에서 중앙홀의 홍14군 17명 장령 동상군체 중의 한 동상이 조선인 장세걸이라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가. 장세걸은 강소 여고의 홍14군기념관에 동상으로, 사진으로 모셔진 우리 겨레의 홍군 고급장령이요 위인이였다.

2017년 5월 27일 정리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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