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잔등은 지금도 동지섣달 자외선으로 따갑다
내 몸에선 지금도 한겨울 한조각 얼음이 녹아 흐른다
내 눈에선 지금도 흰손을 가진 바다가 사면에서 넘실거린다
내가 든 검은색 우산은 지금도 대줄기 소낙비를 맞고있다
내가 먹은 천년거북은 지금도 내 몸안에서 기어다닌다
내가 탄 관광뻐스는 지금도 손금 같은 안개길을 달린다
내가 해변에서 주은 아가손만큼한 조가비는
지금도 내 품에서 축축한 모래를 찾고있다
내가 다녀간 관광명소들은 지금도
인제 금방 그물에 걸려 올라온 싱싱한 물고기처럼
사면팔방에서 밀려온 사람들로 우글거린다
그리고 내 귀에선 지금도 시간을 재촉하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발을 동동 구른다.
꽃피는 해남도
먼 옛날 귀양살이 가던 곳
류배지 가던 도중 반은 원혼이된 곳
북송 시인 소동파가 3년을 좌천한 곳
일제때 흰옷 입은 조선인이
두눈 가리우고 집단살해된 곳
지금은 사시절 뭇꽃들이
수풀속에서 화사한 잔치 펼치는 곳
가파른 산등성이 깊은 골짜기에
그젠 날 원혼이된 흰저고리 도라지꽃이
이슬방울 입에 물고 피여있을지 누가 알랴.
야자나무
별빛이 반짝이는 밤이면
인어공주 같은 야자수 아줌마들이
지느러미 같은 넓적한 손바닥을 하늘에 펼쳐
한방울 두방울 이슬을 굴리며
푸른 녹이 두텁게 낀
동그란 그릇에 담는다
갑자기 밤하늘에 우뢰 울고
소낙비 쏟아질 때면
때로는 룡의 눈물 같은 비물도
이슬과 함께 흘러 들어간다
긴긴 세월 세세손손 물려온 가법
새날이 밝으면
인어공주 같은 야자수아줌마들이
앞다투어 운명의 야자를 머리에 이고
안개속을 걸어나온다.
산호초(珊瑚礁)
수천년 수만년
바다물에 산화된 산호의 뼈
하얀 몸뚱이에
섬세한 꽃무늬가 촘촘히 새겨진
도야지만큼한 산호초
죽어 산호초되여 눈을 갖고
죽어 산호초되여 귀를 갖고
죽어 산호초되여 손을 갖고
죽어 산호초되여 발을 갖고
바다사자처럼 뚱기적거리며
해변에 기여올라
해석(海石)을 찾아 헤매는
내 품에 덥썩 안겨
해변에서 만난 련인마냥
주절이 주절이
무수한 바다이야기 들려주며
나를 매일 하늘빛 바다로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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